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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회고전 열리는 칼 드레이어의 영화세계 [1]

<메데아>는 노년의 칼 드레이어가 컬러- 그가 결코 발을 들여놓지 못했던 영화의 한 영역- 이용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실험을 하고 싶다는 큰 포부를 갖고서 시나리오 작업에 돌입했으나 결국엔 성사되지 못하고 만 프로젝트였다. 유리피데스의 비극에 영감을 받아 쓰여진 드레이어의 그 시나리오를 가지고 나중에 영화(TV용)로 만든 것은 같은 덴마크인 영화감독인 라스 폰 트리에였다. 이건 드레이어에 대한 폰 트리에의 흠모를 생각하면 사실 거의 자연스런 일처럼 여겨진다. 폰 트리에는 드레이어를 대단히 경배하다 못해 그와 텔레파시를 통한 교감을 나누고 있다고까지 주장하는 인물이니까 말이다. 그 실례를 몇 가지 들어보면 그 정도의 지나침이 거의 ‘광신’의 경지에 이르러 처음에는 우스꽝스럽다가 어떤 순간 이상한 경건함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예컨대 폰 트리에는 자신이 기르는 개 역시 드레이어와 영적인 교분을 나누고 있어 드레이어라는 이름만 들어도 짖는다고 주장했다. 언젠가 그는 드레이어가 <잔다르크의 열정>을 준비하는 동안 파리에서 샀던 턱시도를 구입해서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에 그것을 입곤 했었다. 그런 폰 트리에가 드레이어의 영화에 출연했던 나이 많은 배우들, 늙은 촬영감독, 심지어는 드레이어의 영화를 만드는 데 쓰였던 것과 같은 카메라까지 원했던 것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각각의 영화마다 스타일의 혁신을 그렇다면 드레이어라는 이 시네아스트, 현재의 덴마크를 대표하는 영화감독인 폰 트리에의 영웅이며 역할 모델인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한 성급하나마 요약적인 짧은 대답은 무엇보다도 영화 자체로 돌아가서 이 둘의 영화세계가 맺고 있는 관계를 관망해봄으로써 도출될 수 있을 듯하다. 폰 트리에의 영화들, 특히 그의 초기 시절 이후 현재까지의 영화들에서 일종의 에센스 같은 것을 추출해보라면, 아마도 대담한 스타일을 이용하면서 인물의 감정에 몰두하는 영화라고 정리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드레이어적인 자취 혹은 유산을 발견하게 된다. 폰 트리에가 열광했던 드레이어는 인간 감정의 영역을 중요한 탐구 주제로 삼았던 영화감독이었다. 단 드레이어에게 감정이란, 폰 트리에의 그것처럼 아주 강렬하지만 다소 공허하게 과장되어 있는 것, 그래서 센티멘털리티에 면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격전이 벌어지는 인간의 내면을 다소 고요하면서도 깊게 비추는 거울에 좀더 가까운 것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폰 트리에가 매혹되었던 드레이어는 형식적인 면에서 안이한 관습을 벗어나 새로운 언어를 탐구한 시네아스트였다. 다만 드레이어가 지향한 스타일이란 폰 트리에의 그것과는 다르게 대담하긴 하되 종종 신심없어 보이기도 하는 센세이셔널리즘을 지향하진 않았다. 이해의 편의를 위해 동시대 인물인 폰 트리에를 비교대상으로 놓고 이야기하자면, 요컨대 그의 영화세계에서 속류의 기미를 벗겨내면 드레이어 영화세계의 주요한 면모가 어슴프레 하게나마 모습을 드러낸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굳이 장 뤽 고다르가 <비브르 사 비>(1962)의 한 장면에서 드레이어의 <잔다르크의 열정>에 경의를 표한 것을 재차 언급하지 않더라도, 드레이어의 이 1927년작은 가장 잘 알려진 그의 영화라고 말해도 절대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것은 우선 클로즈업에 대한 매혹 혹은 강박관념을 가지고서 혁신을 이뤄놓은 영화로서 우리의 기억에 값하는 영화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과연 이 ‘클로즈업의 영화’는 마치 서로 싸움을 벌이는 듯한 수감자 잔다르크와 재판관들의 표정을 담은 클로즈업 숏들을 끊임없이 이어 붙여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여기서 공간의 전체 모습과 전반적인 위치 관계는 자연히 우리의 시선 밖으로 밀려나고 크게 확대된 표정들에 담긴 고조된 감정들이 전면에 드러난다. 여러 비평가들이 이런 영화에서 지배적인 영화양식은 그저 컨벤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격정적으로 폭로하려는 거대하고 모험적인 시도를 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잔다르크의 열정>이 보여준 이 강렬함에 그만 눈이 멀어 이 영화가 드레이어 특유의 스타일상의 인장을 담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분노의 날> <오데트> <게르트루드> 같은 드레이어의 후기 영화들에 이르면 <잔다르크의 열정>과는 형식적으로 완전히 딴판인, 그러면서도 역시 혁신적이라고 평가될 영화들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이 후기작들에서 몽타주는 거의 배제되는 대신 롱테이크가 주로 활용되면서 결과적으로 굉장히 느리면서 우아한 걸음걸이가 느껴진다(이건 많은 이들이 드레이어의 후기작들에 잘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드레이어가 회고하기를, 어떤 덴마크인 평론가는 그의 영화들에는 그것들을 나눌 수 있는 적어도 여섯 가지 범주는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어서 드레이어는 그렇게 자신의 영화들이 서로 다른 스타일로 만들어졌다는 데 자부심을 가진다고 말한다. 그가 찾고자 했던 것은 자신만의 체계를 이룬 일관된 스타일이 아니라 “어떤 한 영화에서만 가치를 갖는 유일한 스타일”(들)이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드레이어의 초기 대표작인 <잔다르크의 열정>과 드레이어의 마지막 작품인 <게르트루드> 사이에는 37년이란 긴 시간의 흐름이 놓여 있는 만큼이나 큰 스타일상의 편차가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스타일의 스펙트럼에서 멀리 놓여 있는 이 두 작품이 완전히 분리된 것들만은 아니다. 드레이어에게는 영화를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자신만의 목표가 있었고 또 그걸 이룰 일종의 방법론 같은 것도 있었다. 그렇게 볼 때, <잔다르크의 열정>과 <게르트루드>는 다른 한편으로 서로 그리 먼 거리를 두고 있는 영화들이 아님이 밝혀진다. “여자들을 사랑한 남자” 르네 마리아 팔코네티(<잔다르크의 열정>의 주연을 맡은 배우)의 생생한 얼굴에서 볼 수 있듯이, 드레이어는 자기 영화에 출연할 배우들에게 분장을 절대 금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인간의 얼굴은 그 탐구가 결코 질리지 않는 하나의 대지”라고 이야기한 그는 인물의 얼굴에서 드러나는 표정과 디테일을 관찰하고 그럼으로써 거기에서 자연히 한 인간의 영혼이 반영되기를 원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자기 영화 속의 인물들이 입고 있는 옷이나 그 주위 배경도 인물의 분장없는 얼굴처럼 최대한 현실에 밀착할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드레이어는 그럼에도 결코 자연주의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리얼리즘으로 귀착될 수 있는 자신의 세계에다가 드레이어는 거의 항상 추상화(abstraction)의 원칙을 도입해 그 리얼리즘을 중화해버렸다. 예컨대, <잔다르크의 열정>에서 흰색의 벽으로만 보여지곤 하는 리얼하지 않은 배경들과 지극히 양식화한 카메라워크는, 그 영화가 펼쳐지는 세계를 단지 재판이 벌여졌던 역사적 장소와 잔다르크의 내면적 투쟁이 벌어지는 현실 바깥의 어떤 시공간 그 사이에 위치해놓는다. 이건 단지 역사 속의 재판을 스크린 위에 재연하려는 영화가 아닌 것이다. 드레이어의 다른 영화, 이를테면 <게르트루드>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가능하다. 충실하게 재현된 세기 초의 공기와 아울러 그것의 리얼리즘을 중화하는 세트와 카메라워크의 양식화는 이것이 몽상 속에 갇힌 세계- 바로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이 자리하는 세계- 임을 시각화한다. 이렇듯 드레이어는 리얼리즘에의 욕구와 그런 리얼리티의 울타리를 벗어나려는 양식화에의 시도를 미묘하게 공존시킴으로써 그 자신의 세계를 그가 5차원이라 부르는 다른 차원(즉 심적인 것)에로 향하는 문을 열어놓는다. 그럼으로써 그의 영화는 외부적인 리얼리즘이 아니라 내면적인 리얼리즘을 향하면서도,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이 완전히 분리되지는 않으면서 그렇게 하는 세계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그 드레이어적 세계에서 다뤄지는 감정은 한마디로 수난(혹은 고통)과 열정(또는 완고한 사랑)을 모두 의미하는 것으로 패션(passion)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담지자는 주로 여성들이다. 초창기 영화에서부터, 이를테면 <사탄의 책>의 마지막 장에서 기꺼이 스스로를 희생하는 핀란드 여인에서 보듯이, 드레이어는 여성들이 겪는 고난과 순교, 희생 등을 통해 인간의 심적인 면, 정서적인 면에 다가갔었다. 그의 영화들에서 남성들이 차지하는 영역은 권위, 법률, 말씀 등으로 정의될 수 있는 규칙의 세계이다. 그리고 여성들은 그런 갑갑한 세계를 벗어나고자 한다. 예컨대 <분노의 날>의 안느는 나이 많은 남편의 아들과 격정적인 사랑에 빠지면서 성직자인 남편이 지배하는 엄격하고 무감각한 세계 그 바깥을 내다보게 된다. 한편 <게르트루드>에서 사랑을 일종의 이념으로 삼고 사는 동명의 주인공은 그런 자신과는 다른 신조를 가진 남성들과 (재)결합을 할 수가 없다. 그같은 드레이어 영화 속의 여성들은 다른 세계를 꿈꾸는 몽상가이면서 반역자이고 그렇기 때문에 결국에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순교자이다. 언젠가 <카이에 뒤 시네마>는 드레이어 영화의 사진 특집 기사를 실으면서 (프랑수아 트뤼포의 1977년작 제목을 빌려) “여자들을 사랑한 남자”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런 별칭은 미조구치 겐지, 막스 오퓔스, 잉마르 베리만 등에 어울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드레이어에게도 아주 적절한 것이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드레이어가 자신이 사랑한 그 대상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손을 들어주는 무분별한 연인이 아니었다는 점은 여기서 꼭 지적되어야 하겠다. 예를 들어 앞에서 거론했던 <분노의 날>의 안느는 말씀의 권위에 희생당하는 가련한 여인임에 분명하지만 한편으로 영화는 그녀에게 진짜로 마녀의 악한 힘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암시도 같이 흘림으로써 그녀를 일방적으로 연약한 선인/희생자로만 그리지는 않는다. <게르트루드>의 여주인공 역시 입체적으로 살펴야 할 인물이다. 게르트루드는 마치 오로지 사랑을 위해 사는 듯하지만 그녀가 의지하는 사랑의 개념은 독선과 편견과 맞물려 있다. 그래서 결국 그녀가 선택하는 고독은 마치 스스로 벌을 달게 받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기서 보듯, 이른바 대가라고 하는 이의 터치, 특히 인간과 그 감정을 다루는 그것에는 세밀함과 미묘함이 배어 있다. 영화를 열망하고, 영화를 위해 살다 언젠가 드레이어는 라디오 방송과 인터뷰를 가질 때 “당신에게 영화는 무엇이죠?”라는 질문에 “그건 내가 가진 단 하나의 위대한 열정(passion)이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듯 드레이어의 영화세계는 패션에 대한 것임과 동시에 패션으로서 구축된 것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영화에 특별히 애정을 갖거나 관심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으나 일단 자신의 천직을 찾은 뒤에는 그것에 위대한 열정을 갖고 임했다(그에게 자주 쏟아지는 완벽주의자 혹은 사디스트라는 비난은 그 하나의 방증이었다고 보면 된다). 인간에 대한, 그리고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탐구의 정신으로 가득한 그의 영화들은 그 자체가 드레이어라는 한 영화감독이 보여준 열정의 기록들인 것이다.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은 무려 50여년에 이르는 긴 영화인생 동안 고작 열네편의 장편만을 내놓지 못한 ‘태만함’을 지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 영화를 내놓지 못할 때조차 항상 영화작업을 해온 열정에 찬 영화감독이었다. 일흔이 넘은 나이의 그가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영화 <예수>를 만들기 위해 이스라엘로 여행하고 히브리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영화에 대해 가진 그의 열정의 너비를 일러준다. 그 프로젝트가 결국 완성되지 못했다는 것은 로베르 브레송의 <창세기>가 현실화되지 못한 것과 함께 영화사의 안타까운 공백으로 봐도 무방할 듯싶다.

대장금 시청률 50%돌파

문화방송 드라마 <대장금>이 드디어 시청률 50%를 돌파하며 올해 최고시청률 프로그램으로 등극했다. 18일 시청률조사회사인 닐슨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17일 방영된 <대장금>이 50.4%의 가구시청률을 기록해 에스비에스 <올인>의 마지막회(4월3일) 시청률 44.7%를 깼다. 텔레비전을 보유한 전국의 두가구중 한가구는 지난 17일 <대장금>을 본 셈이다. <대장금>의 연출자 이병훈 피디는 <허준>에서도 62.5%(티엔에스조사 2000년 6월27일)~63.5%(닐슨조사 2000년 4월24일)라는 경이적 시청률을 기록한 바 있다. 닐슨미디어리서치의 역대 최고시청률은 <첫사랑>(65.8%, 97년 4월20일)<사랑이 뭐길래>(64.9%, 92년5월24일) <모래시계>(64.5%, 95년 2월16일) 순으로 지난해에는 <야인시대>가 12월9일 51.8%로 최고시청률을 기록했다. 지난 9월15일 19.0%로 첫방송을 시작한 이후 줄곧 시청률 상승세를 기록해 한달여만인 지난달 21일 40%를 훌쩍 넘은 이 드라마는 최근 최고상궁 자리를 놓고 장금과 그의 요리스승 한상궁과 금영·최상궁의 화려한 요리경연이라는 볼거리에다 최상궁 집안의 음모와 술수라는 전통적인 극적 갈등구조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놀라운 시청흡인력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대장금>은 시청률이 높아지면서 극 초반부에 보여주었던 신선도와 완성도는 오히려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제작진들이 시청률을 의식해서인지 대결구도를 지나치게 질질끌거나 매회 엎치락뒤치락하는 반전을 거듭함으로써 극초반 새로운 사극에 열광했던 일부 시청자들을 실망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최근들어 한상궁과 대척점에 있는 최상궁역의 견미리의 이상야릇한 미소와 표정을 화면 가득 클로즈업하는 일이 잦은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히려 차분한 몰입을 방해한다. 게다가 일각에서는 이 드라마의 제작현실을 들여다보면 <대장금>의 시청률은 오히려 한국의 드라마제작을 후퇴시킬 수도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이 드라마 원고는 최근들어 방영 일주일전쯤에 나와 제작진은 일주일내내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꼬박찍어야 겨우 방영시각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17~18부에서 죽는 것으로 설정된 한상궁의 경우 뜻밖에 네티즌으로부터 높은 인기를 얻자 다다음주 23~24부까지 연명했다 결국 12월27일 방영되는 27부에서야 최상궁의 덫에 의해 숨지는 것으로 또한차례 출연이 연장됐다. 제작진에 따르면 23~24부에서 한 상궁은 최고상궁이 걸린 요리경연에서 산딸기를 만든 과자을 올린 장금의 음식철학에 감복한 중종의 판정으로 최고상궁에 올랐으나 직접 음식을 만들지 않았다는 최상궁쪽의 거듭된 주장으로 재경합이 벌어지게 되고, 재경합에서도 승리는 거둔다. 하지만 한 상궁은 음식에 이물질을 투입한 최상궁의 음모로 결국 어명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장금도 28부(12월28일 방영)에서 제주관비로 출궁을 당한다. 김도형 기자 aip209@hani.co.kr

북극에도 사랑과 질투는 존재한다,해외신작 <아타나주아>

한겨울, 아주 이상하고 유쾌한 영화가 국내에 상륙한다. 광활한 설원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에스키모인들에 관한 영화 <아타나주아>가 국내에 개봉한다. 제54회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하며 세계 영화계에 ‘에스키모 영화’의 돌풍을 일으킨 <아타나주아>는 세계의 주변이자, 영화사의 귀퉁이인 에스키모와 그들의 삶에서 재미를 얻어냈다. 실제로 북극 툰드라 지방의 에스키모 원주민이며, 유명 조각가이기도 한 자카리아스 크눅은 자신이 성장한 문화를 바탕으로 두편의 비디오 다큐멘터리 <목소리>와 <나의 첫 곰>을 만들었고, 이 영화 <아타나주아>로 중심에 들어섰다. 텔레비전도 없는 이곳에서 자카리아스 크눅은 전 출연진과 스탭을 에스키모 원주민으로 구성하면서도, 기술적으로는 할리우드 액션영화에 비견할 만한 긴박감을 전해준다. 자카리아스 크눅이 전하듯이 <아타나주아>는 “전세계인이 이해할 수 있는 인간 감정에 기초한 보편적인 이야기”이며, 북극에도 사랑과 질투와 화해가 공존한다는 사실을 풍성한 화법으로 전달한다. 수천년 전, 에스키모인 툴리막의 두 아들인 아막주아(힘센 자)와 아타나주아(빠른 자)는 부족 중에서도 가장 용맹한 사냥꾼으로 맹위를 떨친다. 그러나 부족의 지도자 사우리의 아들 오키는 언제나 이 두 형제를 시기한다. 약혼녀 아투아를 아타나주아에게 빼앗기고 복수의 기회를 엿보던 중, 이 형제들이 자신의 여동생까지 내치자, 오키는 살인을 계획한다. 형 아막주아가 살해당한 뒤 끝없이 펼쳐진 설원에서 벌어지는 ‘빠른 자’ 아타나주아의 도주와 그를 쫓는 오키 일행의 추격전이 일품이다. 가장 낯선 곳에서 왔지만 누가 보아도 생생함으로 넘치는 영화 <아타나주아>는 12월12일 개봉예정이다.정한석 ♣ 부족들은 아타나주아와 아투아의 관계를 걱정스런 눈빛으로 쳐다본다.(사진왼쪽)♣ 거대한 이글루를 짓고 있는 에스키모 부족들.(사진 오른쪽) 아타나주아는 나체로 오키에게 쫓겨 도망친다.

임권택 감독 99번째 도전 <하류인생>

미도관에선 ‘니코라스 레이’ 감독, ‘제임스 띤, 나탈리-’ 주연의 <이유 없는 반항>이 상영중이었다. 입장료는 350환. 다음 영화로 구봉서가 주연한 김수용 감독의 데뷔작 <공처가>의 간판이 걸려 있다. 경기도 부천시 부천판타스틱 스튜디오의 <하류인생> 촬영장은 58년의 서울 명동을 연상케 하는 한 번화가를 재현해 놓았다. 텔레비전 드라마 <야인시대> 촬영 세트 바로 옆에 들어선 1500평 규모의 이 영화 세트는 <야인시대>의 그것보다 훨씬 정교했다. 건물 디자인은 물론 표면 벽돌, 길바닥 아스팔트의 질감까지도 예스러웠다. 양장점 ‘송옥’의 쇼윈도엔 50, 60년대풍 의상과 구두가, 약국엔 ‘에비오제’와 ‘푸로나민’이 진열돼 있다. ‘뮤직살롱 휘가로’와 ‘클럽 마이애미’의 전화번호 국번은 모두 ‘2’자 한자리다. 대물림된 향수. 미도관 건너편 골목의 ‘명동 통술’ 집에서 정종 한잔 하고 싶어진다. 임권택 감독의 99번째 영화 <하류인생>은 92년 <장군의 아들 3> 이후 10여년 만에 내놓는 액션활극이다. 지난 18일 공개한 촬영장에선, ‘명동파’에 들어간 건달 최태웅(조승우)이 ‘동대문파’에게 죽도록 얻어맞은 뒤 쓰러져 있는 걸, 국회의원의 딸로 반듯하게 자란 교사 박혜옥(김민선)이 찾아내 인근 ‘은성여관’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장면을 찍었다. 혜옥의 동생이 태웅과 친구인 걸 연으로 만난 둘은, 정치계와 주먹판이 협잡하던 50년대말의 이런저런 사건을 거치면서 가까워져 결혼까지 한다. 4·19를 지나 5·16 때 군사정권에 잡혀간 태웅은 인생을 마감할 뻔하다가 풀려나와선, 영화제작자로 나선다.(여기서 임 감독과, 제작자 이태원 태흥영화사 사장 등이 겪었던 그 시절 영화계의 웃지 못할 일화들이 빼곡히 삽입될 것이라고 제작진은 전했다.) 격변하던 그 시기에 아무 생각 없이 눈앞의 이익만 좇는 태웅은 시간이 갈수록 타락해간다. 영화사를 말아먹고, 건설회사로 돌아서 권력에 빌붙으면서 스스로 권력의 만만한 먹잇감이 돼간다는 게 힘들게 뒤동냥한 이 영화의 아웃라인이다. “순수하고 정의감 있고 착하던 사람이 험한 역사에 시달리면서 때가 묻고 인간성 자체가 황폐해져 가는 이야기다. 그래서 어두울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주인공이 꼼지락거리며 살고 있는 삶 자체를 좇기 때문에 밝고 명랑할 것이다. 별 큰 사건 없이 그냥 살아온 일상에서, 그 안의 재미를 강렬한 힘으로 찍어내고자 한다. 재미로 치자면, 내 영화 중에 가장 재미있는 영화가 될 것이다.” 임 감독은 액션의 분위기도 <장군의 아들>처럼 영웅적인 게 아니라, 실제 싸움판의 개싸움 같은 사실적인 느낌으로 찍고 있다고 전했다. “쉬어 가자고 시작했지만, 나는 그게 안 된다. <서편제>도 그렇게 시작한 건데. 액션은 내가 주기적으로 찍고 싶어하는 걸 보면 거기에 남다른 매력을 느끼는 것 같고.” 내년 2월말 크랭크업한다는 일정은 칸영화제를 겨냥한 듯했다. 그러나 사극 아닌 현대물이고, 지난해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자신감도 가진 임 감독이다. “찍고 싶은 대로 찍는 거야. 우리 얘길 하는 거지.” 이태원 사장은 힘주어 말했다.

그 영화가 소설이였다고? 영화를 낳은 원작소설 [1]

<대부>부터 <태양은 가득히>까지, 영화를 낳은 원작소설 10選 이건 정말 해묵은 이야기다. 영화와 문학이 피를 섞은 것은 영화가 줄거리를 갖게 된 무렵부터니까 말하나 마나다. 두 장르가 엮이는 방법도 시대와 더불어 가지를 쳤다. 각색은 기본. 잉마르 베리만, 크리스토퍼 햄튼, 장 콕토, 데이비드 마멧 같은 ‘투잡스’도 많았고, 비슷한 시기 탄생한 모더니즘 문학과 영화는 시간과 이미지를 편집하는 법을 서로에게 배웠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영화가 세를 불린 뒤로는 새로 나온 영화의 사진으로 표지를 갈아치운 고전의 개정판이나, 시나리오의 행간을 메워 이야기를 얽은 ‘영화소설’까지 서점 한 코너를 번듯이 차지하게 됐다. 그렇지만 “영화는 영화이고 문학은 문학이다”라고 잘라 말하는 냉정한 관전평이 여전히 우세하다. 만약 정말 위대한 문학이라면 언어라는 매체에 꼭 들어맞는 내용을 지녔다는 뜻이니 숙명적으로 좋은 영화로 냉큼 변신할 수 없다는 명쾌한 논리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학과 영화를 서로의 빛에 비추어 읽는 일이 불가능하거나 즐겁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영화를 본 다음에도 공복감이 가시지 않아 서점으로 달려간 경험이 당신에게도 몇번쯤 있지 않은가? 여기 모은 10권은 그런 허기를 만족스럽게 채워주는 책들이다. 그렇다고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전쟁과 평화>를 다시 정독하자는 제안은 아니다. “그 영화가 소설이었다고?”라고 한번쯤 갸웃할 만한, 그러나 각색영화가 발휘한 매력 플러스 알파의 재미를 갖춘 책들을 권한다. 위험한 마음의 고백 영화 <리플리> - 소설 <태양은 가득히> 우리에게는 그다지 악명이 높지 않지만, 톰 리플리는 상당히 유명한 사기꾼이다. 리플리처럼 독신으로 세계를 주유하다가 스위스 로카르노에서 1995년 백혈병으로 사망한 작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그녀는 히치콕 영화 <스트레인저>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는 일곱권의 소설에 그의 사기행각을 담았는데, 그중 <태양은 가득히>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이 책이 르네 클레망 감독의 <태양은 가득히>와 앤서니 밍겔라 감독의 <리플리>로 영화화된, 시리즈의 제1권이다. 좀더 세련되고 원숙해진 중년의 리플리를 실물로 보고 싶다면 존 말코비치 주연의 2002년작 <리플리의 게임>이 있다. 인색한 고모네 집에서 친부모에 대한 험담을 들으며 살아가던 젊은이 톰은 집을 뛰쳐나와 뉴욕에서 시시한 사기로 연명한다. 톰을 아들 디키의 아이비리그 친구로 오인한 선박 재벌 허버트 그린리프는 가업을 계승할 생각을 잊고 이탈리아에서 유유자적하는 아들을 설득해 미국으로 데려와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그린리프의 돈으로 대서양을 건너 디키를 만난 톰은 그를 아버지의 세계로 끌어내기는커녕 자신이 디키의 세계로 빠져든다. ‘엿보는 톰’은 디키의 아름다운 육체와 윤택한 삶을 동경의 시선으로 어루만지고 디키의 여자친구 마지를 증오한다. 결국 디키는 사랑을 통해 톰과 하나가 되거나 아니면 죽어야 한다. 디키를 살해한 톰은, 타고난 모방의 재능으로 디키 그린리프를 사칭하며 위험천만한 가면놀이를 벌인다. 톰의 도주를 그린 후반부는 독특한 이탈리아 기행문으로 읽어도 손색이 없다. 톰 리플리는 완전범죄자가 아니라 완전한 범죄자다. 그의 동기는 질투와 고독이며 그에게 범죄는 윤리의 영토 밖에 존재하는 일종의 예술이다. 메소드 배우의 집중력으로 디키를 연기하는 순간 톰은 세계가 자신의 청중이라고 느낀다. 그의 실존과 비즈니스는 하나다. <로리타>의 주인공 험버트를 혐오하면서도 연민하듯이, 독자는 비뚤어진 리플리의 독백을 외면할 수 없다. 앤서니 밍겔라의 영화 <리플리>와 소설 <태양은 가득히>의 비교는 감독의 귀족 취향을 부각시켜 거꾸로 흥미롭다. 계급의 격차를 강조한 탓에 영화의 리플리는 동일시보다 동정을 부르는 인물에 가깝고 주드 로와 기네스 팰트로가 분한 디키와 마지는 소설 속 인물보다 총명하고 매력적이다.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우아한 커플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와 랠프 파인즈처럼. 강호를 비웃으며 영화 <소오강호> <동방불패> - 소설 <소오강호> 김용은 ‘신필’(神筆)이라고 불리는 무협작가다. 그는 <녹정기>를 마지막으로 소설을 쓰지 않았지만, 그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산봉우리처럼 육중한 무게를 잃지 않고 있다. 대륙과 개인의 운명을 한데 누벼넣고, 수십명의 인물들에게 흔치 않은 과거와 무공을 부여하는 대가. <소오강호>는 그런 김용이 써낸 열다섯편의 소설 중에서도 유독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오강호>는 두 가지 무공비급을 두고 다투는 비정한 무림세력들보다도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품을 나누어주기 때문이다. <소오강호>는 김용의 소설로서는 보기 드물게 역사와 거리를 둔다. 자유분방한 청년 영호충은 화산파의 대제자지만, 정(正)과 사(邪)를 넘어 우정을 나눠온 두 고수가 살해당하는 현장을 목격하면서, 강호의 정의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그는 다만 사부의 딸 악영산과 인연을 맺고 평생을 함께 보내고 싶을 따름이다. 그러나 은거하고 있던 화산파 고수 풍청향이 그에게 독고구검을 전수해주면서, 영호충은 파란에 휩쓸리게 된다. 그는 벽사검보를 훔쳐 절정의 검법을 연마했다는 오해를 받게 되고, 사랑하는 악영산의 마음마저 새로 들어온 제자 임평지에게 빼앗긴다. <소오강호>는 많은 이들에게 무협이라기보다는 절절한 애정소설로 다가갔다. 악영산이 복수에 눈이 먼 임평지에게 살해당하면서도, 그가 무사하기를 바라면서 죽는 장면은, 김용이 단지 남자들만을 위한 작가는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영호충 역시 가장 사랑받는 김용의 인물 중 하나다. 그는 군자라고 자처하지 않으며, 분방하고, 호기가 있다. 그 때문에 그는 일정한 검법없이 상대방의 초식에 따라 변화하는 독고구검의 계승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강호를 비웃으며’라는 뜻의 제목을 가진 이 소설은 정파와 사파 모두를 희롱하면서 자유로운 한 영혼에게 마음을 준다. <소오강호>는 <소오강호> <동방불패>, 두편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중 <소오강호>는 오악검파 내의 암투를, <동방불패>는 밀교의 음모를 중심으로 떼어내어 각색했다. 가족과 패밀리 영화 <대부> - 소설 <대부> 나폴리 출신의 작가 마리오 푸조가 1969년에 쓴 시칠리아계 이민 가족의 이야기인 <대부>의 완역판은 벽돌만큼 두텁지만 기관총처럼 읽힌다. 훌륭한 소설이나 영화가 흔히 그렇듯이 <대부>의 도입부는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이야기의 요체를 던진다. 막내딸 코니의 화기애애한 결혼식이 정원에서 열리는 동안 대부는 내실에서 억울한 사연을 탄원하는 하객들에게 피와 권력으로 정의를 베풀어줄 것을 약속한다. 두 가지 서약은 모두 다정한 입맞춤으로 봉인된다. 갱을 미국 문화의 아이콘으로 옹립한 정전답게 <대부>는 마피아 세계의 메커니즘을 인류학자의 관찰력으로 해설한다. 그러나 영화학자 제임스 모나코가 지적했듯이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영화나 마리오 푸조의 소설이 대중을 휘어잡았던 괴력은 <대부>의 액션이 아니라 <대부>의 가족드라마에서 솟구친다. 아버지와 아들, 남자와 여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을 도모하는 가족이 직면하는 사생활과 비즈니스의 갈등 같은 보편적 테마를 <대부>는 신화의 권위로 그려낸다(“이게 어디로 봐서 사업상의 일이야? 누구나 살아 있는 동안은 매일 먹어야 해. 그것은 개인적인 일이야”라고 마이클은 반문한다). 가족의 질서는 패밀리의 질서로 확장된다. 비토 코를레오네는 그의 친구와 이웃에게 불공평한 법을 무시하고 정의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이상적인 가부장이다. 코를레오네의 공평무사한 제국은, 사실 정의의 복잡한 상대성을 무시한 환상이다. 그러나 마리오 푸조는 “왜 이 존중할 만한 남자들이 도둑과 살인자가 됐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만큼은 대부의 셋째아들인 마이클 코를레오네를 통해 철저히 답한다. 패밀리 비즈니스의 방관자였으나 가족과 자신의 생존을 위해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깨달은 그는 입을 굳게 다물고 심연으로 걸어들어간다. 그리고 ‘민간인’으로 사는 꿈은 아들 딸의 세대로 넘긴다. 소설 <대부>는 영화 <대부> 1, 2편의 내용을 아우른다. 1947년 뉴욕 마피아 전쟁을 중심에 둔 1, 4, 5, 7부가 1편에 해당된다. 마피아의 시스템이나 기원부터 읽고 싶다면 <대부2>에 그려진 비토의 청년 시절로 돌아가는 3부부터 펼쳐도 무방하다. 말론 브랜도의 위협적 카리스마와는 색깔이 다른 온화한 돈 코를레오네, 루시, 줄스, 조니 폰테인 같은 주변 인물의 전사, 마피아의 행동 수칙과 제왕학의 세세한 레슨도 책만의 도락이다. 마초 판타지가 징그럽다면 <대부>는 힘든 도전이다. 남자들이 지옥에서 불타는 동안 여자들은 천국에 가겠지만 세상일만큼은 남자가 적임자라고 공언하는 책이다. 그럼에도 <대부>는 비토 코를레오네식으로 말하자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거라면 거기에 대해 말하지 마. 아무리 해도 그건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야. 너는 그냥 하면 돼. 그리고 잊어버려” 같은 대사의 비애에 무감동할 수 있는 독자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거의 완벽한 소설” 영화 <포제션> - 소설 <소유> 닐 라뷰트는 <포제션> 시나리오 초고를 쓰는 데 1년 반이나 걸렸다. 그러고도 그는 작가에게 혼이 날까봐, 작가가 문학적인 무언가를 요구할까봐 불안했다고 말했다. <포제션>은 100년 전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를 추적하는 로맨스지만, 그것만으로는 원작의 매혹적인 토양에 한 걸음도 다가갈 수 없기 때문이다. 부커상 수상작인 <소유>는 여러 편의 문학작품을 한데 뒤섞은 태피스트리와도 같다. 켈트와 부르고뉴의 전설, 빅토리아 시대로 돌아간 듯 고풍스러운 일기와 편지, 레즈비언 성향이 있는 시인이 은밀하게 써내려간 환상동화, 언어가 찬란하게 빛나는 시, 미스터리와 멜로를 동시에 달성한 서사. 이것이 <소유>라는 한편의 소설인 것이다. <소유>는 빅토리아 시대의 시인 랜돌프 애쉬와 크리스타벨 라모트, 현대의 영문학자 롤랜드 미첼과 모드 베일리, 각각의 사랑이 굵은 줄기를 이룬다. 영문학자 롤랜드는 오래된 책장 사이에서 애쉬가 어느 여인에게 쓴 연서를 발견한다. 애쉬는 단 한번의 스캔들도 낸 적이 없는 성실한 남편으로 알려져왔다. 롤랜드는 애쉬가 누구를 사랑했는지 추리하다가 라모트의 존재를 발견하고, 그녀를 연구하는 모드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소유>는 무엇보다도 여자들의 소설이다. 고대와 중세, 빅토리아 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는 <소유>의 여인들은 성(性) 때문에 고통받는다. 긴머리를 고집스럽게 감추는 모드는 혼자 있을 때만 여성으로 돌아갈 수 있는 존재다. 그러나 그 고통은 아름다움의 원천이기도 하다. 차가운 비늘을 반짝이는 인어 멜루지나의 전설은 <소유>를 관통하는 이미지. 그리고 버림받은 요정과 시인과 영문학자가 복귀하는 순간, <소유>의 들판- 말 그대로 들판- 은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소유>를 “거의 완벽한 소설”이라고 칭송했다. 사랑의 결과만을 바라는 성급한 독자라면 이 더딘 소설에 답답해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만 느긋해진다면 이만큼 매혹적인 향연도 없을 것이다. 실패에 관한 매력적인 보고서 영화 <블랙 호크 다운>-소설 <블랙 호크 다운> 소설 <블랙 호크 다운>은 미군의 작전 개시와 함께 시작된다. 소말리아의 군벌 아이디드 휘하의 참모 두명을 낚아챈다는 백주대낮 납치작전. 워싱턴이 미덥지 않아했고 작전을 계획한 게리슨 소장도 여러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임무였다. 하브 지디르 부족의 중심지인 바카라 시장 인근 건물을, 소말리아 주둔 유엔군조차 기피하는 이곳을 미군이 뻔뻔스럽게 쳐들어가는 형국이었다. 단 두명을 잡기 위해, 블랙 호크 헬기 8대를 포함한 항공기 19대와 험비 9대가 동원된 차량 12대가 마른 공기를 가르고 조용히 잠입해 들어갔다. 레인저와 델타포스 소속 군인 160명은 같은 마음을 나눠 갖고 있었다. 한 시간 내로 임무를 완수한다. 그리고, 그외에 불필요한 잡념은 버릴수록 편하다. 이 책은 1993년 10월3일 소말리아의 군벌 보좌관 두명을 납치하려는 미군 특수 부대원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아이디드파간의 전투를 세밀히 그린 전상서다. 이날의 작전은 건물의 네 귀퉁이를 장악하는 계획부터 어긋났다. 미군이 총구를 겨누기도 전에 모가디슈 시민들은 쌓았던 분을 터뜨렸다. 두대의 블랙 호크 헬기가 미국이 지원한 유도탄을 맞아 차례로 추락했고, 시민들의 총질을 감당 못한 미군은 무기력하게 시내에 갇혀버렸다. 한 시간짜리 작전이 다음날 아침에야 끝이 났다. 미군 사상자는 90명가량. 그뒤로 열배가 넘는 소말리아인들이 죽거나 다쳐 길거리에 널브러졌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의 기자였던 마크 보든은 96년초부터 조사 작업에 착수해 3년 뒤 베스트셀러를 탄생시켰다. 이 매력적인 보고서는 세계의 심판자를 자처하는 거대한 나라 미국이 일개 주(州)에나 빗댈 만한 작은 나라에서 얻어간 실패담을 담아 미 국방성조차 감동시켰다. 달리 감동했을까. 에필로그와 역자후기에는 미국인 특유의 자긍심과 애국심이 어김없이 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이 당시 전투 속에 미군들만 존재하진 않았었다는 점을 수시로 상기시켜주고 있다. ‘모가디슈 작전’으로 소박하게 끝날 수 있었던 임무가 ‘모가디슈 전투’로 불릴 수밖에 없게 된 진저리치는 상황을 작가는 난생처음 실전에 투입된 군인의 시각과 그 군인의 육중한 뜀박질을 뒤에서 지켜보는 소말리아 소년의 시선으로 나누어 보여준다. 리들리 스콧이 영화화한 <블랙 호크 다운>이 간과했던 점이 여기서 멀지 않다. 전우애가 감도는 한가로운 저녁과 소름돋게 짜릿한 출격 화면만 기억한다면 이 책의 메마른 글자들은 훨씬 더 딱딱히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마크 보든은 블랙 호크 슈퍼 61호기가 추락하는 장면에만 17쪽을 할애했다. 그리고 수많은 전쟁영화에서 그저 쓰러지는 또 한명의 흑인쯤으로 묘사되었을 소말리아 시민의 이름을 불러주고 있다.

매력적으로 뻔뻔한 <올드보이>와 박찬욱 감독 [1]

금지된 욕망, 과잉의 미학 박찬욱 감독의 5번째 장편영화 <올드보이>가 11월21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시사는 단 한번뿐이었고, 영화의 내용은 비밀에 붙여지고 있다. <올드보이>가 감추고 싶어하는 것에 대한 우회적인 코멘트와 박찬욱 감독이 직접 보내온 가상의 ‘셀프 인터뷰’를 묶어 그 궁금증을 대신한다. 기억나는 대로 대사를 적어본다. 오대수와 이우진의 문답. “넌 도대체 누구냐?” “에이, 질문이 틀렸어요. 왜냐고 물어야죠.” “왜 날 가둔 거냐?” “아니죠, 이우진은 왜 오대수를 가뒀을까, 가 아니라 이우진은 왜 오대수를 풀어줬을까, 이렇게 물어야죠.” 이것이 <올드보이>의 미스터리를 푸는 방법론이다. 평범한 샐러리맨 오대수가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8평짜리 사설감금소에 갇힌 이유가 드러나면서 영화는 첫 번째 비밀의 문턱을 넘는다. 그리고는 15년이 지난 뒤 이유없이 오대수를 풀어준 이우진의 그 행동이 두 번째 더 큰 비밀의 문턱으로 우리를 이끈다. 영화 <올드보이>가 꽁꽁 싸매고 싶어하는 비밀이 이 두개의 질문 안에 들어 있다. 영화 <올드보이>가 아이디어를 빌려온 동명의 일본 만화 <올드보이>에서 재벌 카키누마는 초등학교 동창생 고지마를 10년간 사설감금소에 가둔다. 그리고는 10년이 지나서야 고지마를 세상에 내놓고 그를 조종한다. 카키누마가 고지마에게 그런 형벌을 내린 이유는 음악시간 그의 노래에 눈물을 흘렸던 고지마가 그 눈물의 의미를, 즉 고독을 함께 나눈 듯한 소통의 의미를 망각해버렸다는 배신감 때문이었다. 박찬욱은 오래전에 (봉준호의 소개로) 이 만화책을 읽었고, 한 남자가 오랫동안 감금 뒤 풀려난다는 초반 설정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거기에 “갇혀 있는 사람이 할 일도 없이 자기 생활을 복습하는 면”을 추가해 넣었다. 영화 속에서 오대수는 갇혀 있는 동안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본다. 왜 내가 여기 있게 된 걸까? 누구에게 어떤 큰 잘못을 저지른 걸까? 내가 저지른 모든 악행들을 적어보자. 그러면서 이른바 ‘악행의 자서전’을 써내려간다. 최민식이니까! 이 오대수의 역할을 누가 할 것인가가 <올드보이>의 관건이었다. 박찬욱은 자신의 작업방식에서 처음으로 배우를 먼저 캐스팅하고 시나리오를 써나가는 순서를 선택했다. “최민식이 아니었다면 영화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오로지 텔레비전만 보며(감금소 안에는 텔레비전이 있다) 생활했던 오대수가 바깥으로 나와 뱉어내는 문어체의 대사는 누가 해도 실감나지 않을 거라는 걱정과 달리, 최민식은 “황량한 느낌 그대로였고, 기분좋게 어색한 면”이 있었다. 박찬욱은 이 점을 두고 “김기영 감독에 대한 오마주”라고 농담을 할 정도로 만족했다. 또한, 박찬욱이 그리고 싶었던 ‘영웅’, “힘은 부족하지만, 굴복하지 않고, 내면이 붕괴될 때까지 맞서 싸우는 영웅”으로 적격이었다. 시나리오가 완성되었고, 오대수의 상대역 이우진으로 유지태를 캐스팅했다. “오대수의 힘으로 굴복시킬 수 없는, 굉장히 방어적이면서도 공격을 무화시킬 수 있는 사람, 흔히 로맨스영화에서 감미로운 역할을 하는 사람을 골라야겠다”는 생각의 결과이다. 이 두 배우의 대조적인 캐릭터는영화 속에서 긴장감 있게 어울리는 짝패이다. 감금소에서 풀려난 오대수는 무작정, 그야말로 무식하게 돌진하며 이우진을 찾아다닌다. 장도리 하나를 들고 18 대 1의 격투를 벌이고, 10개이든지 100개이든지 중국집을 뒤지며 군만두의 맛 하나로 갇혀 있던 장소를 찾아낸다. 그러나 오대수의 모든 행동반경을 주시하는 이우진은 침착하고 여유있다. 눈앞에 금방 내리칠 것 같은 장도리의 위협이 들어와도, 나를 죽이면 갇혔던 이유를 알지 못할 거라고 말하면서 오대수를 놀려먹는다. 분노하지도 않고, 미치지지도 않으면서 계획적으로 천천히 그를 유인하여 마지막 장소로 불러들인다. 그렇다면 다시. 이우진은 왜 오대수를 감금했는가, 이우진은 왜 오대수를 풀어주었는가. 감금과 출옥의 이유는 원작과 다르다. 그보다 더 슬플 뿐만 아니라, 더 폭발적이다. 여기에서 박찬욱은 원작의 설정들을 저 멀리 벗어난다. 오히려 여기에 닿아 있는 것은 전작 <복수는 나의 것>이다(사실 박찬욱은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 사이에 연관성을 지으려는 ‘작당’을 와 <봄날은 간다> 사이에 연관을 지으려는 정도의 억지로 받아들인다. 셀프 인터뷰를 참조할 것). <올드보이> vs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가 <복수는 나의 것>에 선형적으로 달라붙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관계 어딘가에서 불쑥 튀어나온 ‘영감’은 앞뒤로 고리를 맺고 있다. 적어도 <올드보이>에 “영감”을 준 부분들이 있음은 분명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박찬욱도 동의하는 듯하다. 캐릭터의 관계들을 따라가자. <복수는 나의 것>에서 류에게는 누나가 있다. 동진의 회사에서 류가 쫓겨나고, 류는 누나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신장을 떼어 판다. 그러나 장기밀매업자들에게 사기를 당하고, 회사 사장 동진의 딸을 유괴하여 대신 돈을 벌려 한다. 유괴 사실을 알게 된 누나는 자살을 하고, 동진의 딸은 물에 빠져 죽고, 동진은 복수극을 이행한다. 다시 동진에 의해 류의 여자친구 영미가 죽고, 류는 동진에게 죽고, 동진은 영미의 동지들에게 죽는다. <올드보이>에서 이우진은 누나가 있(었)다. 과거 오대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들의 관계에 ‘무언가’ 상처를 주었고, 누나는 죽고, 그 대가로 이우진은 오대수를 납치하여 사설감금업자들의 감금방에 가둬놓는다. 풀려난 오대수는 우연히 미도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녀의 도움을 얻어 이우진에 대한 복수를 실행한다. 그러나 끝내 오대수는 이우진이 미리 짜놓은 덫에 걸려 허우적거리게 된다. 이우진은 오대수를 ‘가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오대수는 말이 너무 많아요.” <복수는 나의 것>의 류는 ‘말이 너무 없는 자’였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하는 것은 어떨까? 왜 이우진은 오대수를 15년 만에 풀어준 것일까? 이우진은 “공소시효가 끝났다”고 말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경찰서에 끌려들어간 오대수는 그러나 훈방조치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우진이 말하는 공소시효 말소는 대한민국 법이 아니라, 이우진의 법이다. <복수는 나의 것>의 모든 인물들이 자신만의 사적 법으로 모든 것을 주관했던 것을 기억하자. 그렇다면 15년이라는 세월은 죄값의 마무리였을까? 오대수가 15년을 감금당해야 했던 것은 대한민국 법이 용서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기간이 아니라, 이우진이 오대수가 진짜 아픔을 겪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15년을 갇혀 있었던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15년 뒤에 풀려난다는 것이 중요하다. 왜? 그 무엇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누군가’를 제외하고, 그 관계의 구도를 빌려 <올드보이>의 캐릭터를 이항시키면 이 동기를 이해하기가 쉬워진다. ‘시작이 있는 곳에 끝이 있다.’ 물론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은 스타일상의 변화이다. “아마도 사전정보가 없는 외국인이 본다면 같은 감독이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만큼 <복수는 나의 것>과 달리, <올드보이>는 전혀 다른 지점에서 스타일을 추구한다. 오대수를 맡은 배우 최민식의 갈기머리는 곧 폭발할 것 같은 분노와 절망의 결정체이다. 그리고 오대수와 이우진을 대비시키는 색감의 분명한 대조가 이들을 구분한다. 또한, 남들 같으면 잘 쓰지 않으려 하는 보이스오버의 효과적인 선택과 인물들의 표정을 하나의 “장관”으로 만들어내는 클로즈업 등이 그렇다. 박찬욱은 덧붙여 스타일뿐만 아니라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계급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었다. <올드보이>에도 완전히 다른 계급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나오지만, 좀더 신화나 동화에 가까운 원형적인 이야기”라고 또 다른 차이점을 설명한다. '원형적 욕망'을 둘러싼 미스터리 박찬욱은 이 ‘원형적 욕망’의 금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스터리복수극으로 <올드보이>를 만든 것이다(이것이 두 번째 질문에 대한 가장 개념적인 대답이다). 그는 일렉트라와 판도라의 이야기를 가져와 그리스 비극의 모티브를 반복하면서, 한편으로는 파멸하는 영웅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다. 또한 잠언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구약성서적 세계관이 그 안에 녹아들어가기를 바란다.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듯이, 새가 그물을 벗어나듯이.” 여기에 또 다른 격언들이 따라붙는다. 영화 속에서 그 격언들은 일종의 예시이자, 은유이자, 플롯상의 암시로서 떠돌아다닌다.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 “모래알이든 바윗덩이든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 “아무리 짐승만도 못한 놈이어도 살 권리는 있는 것 아닌가요?”라는 식으로. 박찬욱은 그 격언들 중 마지막 격언, 즉 가장 어깨에서 힘을 뺀 세속적 격언이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드보이>는 대략 대칭과 반복의 형식으로 서 있다. 어느 정도까지 쫓아오게 만든다. 캐릭터의 관계(거울로 서 있는 오대수와 이우진)가 그렇고, 상황(첫신의 자살남과 오대수, 육교 위에서의 이우진과 이수아)이 그렇다. 또한, <올드보이>에는 도상을 통한 암시(우산, 손수건, 상자, 치마의 같은 무늬)가 있고, 수수께끼처럼 불쑥 튀어나오는 소품들(‘실비아 플라스’의 책을 읽고 있는 수아)이 있다. 그러나 순간이 되면 머리로 세워놓았던 대칭점을 깨버리거나, 무너뜨리고, 빼버리면서, 해석들이 그 공터 안으로 들어와 자기네끼리 싸우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박찬욱도 이 영화의 말미에 불분명한 지점이 있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그렇지만 이건 논쟁의 여지가 있다). 오히려 중요한 건 그 ‘원형적 욕망’앞에 놓인 딜레마라고 주장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 상황에 놓인. 이런 이유일 수도 있다. 박찬욱은 ‘복수’가 ‘연애’만큼 세상에서 얼마든지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우연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기자들이 하도 되물어 ‘복수 삼부작’이 될지도 모른다고 둘러대기는 했지만, 복수의 정의 같은 건 없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사랑에 대한 정의가 수없이 많듯, 복수에 대한 정의도 그러할 테니까. 사실 <올드보이>에 대한 이야기는 ‘알아먹기 편하게’ 좀더 쉽게 말해야 한다. 하지만 관객이 미리 알고 싶어하지 않는 결론을 내비치지 않고서는 많은 부분을 말할 수 없는 딜레마가 있다. 그래서 질문을 잘해야 한다. 이 영화가 정작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지금으로선 타당하지 않은 질문이다. 대신, 이 영화가 지금 숨기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가, 라고 물어보아야만 한다. 이제 곧 불이 붙을 것이다. <올드보이> 초미니 제작일지 이모저모갈기머리 하는데 5시간 걸렸어요 캐스팅 박찬욱 감독은 그의 다섯 번째 장편영화 <올드보이>의 주인공으로 최민식을 선택했다. 최민식 역시 나이 불혹에 ‘액션배우’로 등극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0kg을 감량하고, 5시간에 걸쳐 갈기머리를 하고 오대수 역에 뛰어들었다. 이우진 역의 유지태는 시나리오를 받고서는 어딘가로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꼭 출연하고 싶습니다.” 최민식이 그 문자를 받았다. 긴 팔, 긴 다리로 박찬욱 감독의 마음을 휘어잡은 유지태, 하지만 양복에서 셔츠 일체까지 그 긴 몸 때문에 모든 옷은 맞춰 입어야만 했단다. 미도 역의 강혜정. <나비>에도 출연한 적이 있던 그녀는 300명의 지원자 중 박찬욱, 최민식, 김지운, 설경구의 특별 심사위원단으로부터 동시에 엄지손가락 선물을 받은 ‘똑똑한 배우’. 세트디자인 64층에 있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 이우진의 펜트하우스. 창 너머로 보이는 배경을 만들기 위해 108평짜리 거대 세트의 배경사진이 사용됐다. 총제작비만 4천만원. 도저히 미술팀과 세트팀만으로는 세울 방법이 없어서 옥외배너 전문가들이 출동하여 겨우 세웠다. 그러니까 이우진의 펜트하우스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한편 수직의 선을 강조하여 만들었다는 이우진의 펜트하우스에는 온갖 명품들이 즐비하다. 나오지는 않지만 크기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PDP, 특수 제작된 유리 장롱. 이우진의 취미를 보여주는 카메라 30여점. 그 가격만 수천만원을 호가한다. 또 시가 3천만원짜리 오디오세트와 몽블랑 만년필까지 그 모두가 명품이다. 보안 <올드보이>의 결말 숨기기 노력은 대단했다. 지금도 그러하다. 스탭 계약서에는 절대 이 내용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문항도 있었다고 하니. 결국은 사이버 수사대에 의뢰하는 법적 수준까지도 서로 인정했다고.

영화가 허구라고?프랭크 오즈의 <보우핑거>

화려한 주류 영화계의 뒤편에서 오직 영화를 향한 열정만으로 악전고투하는, 하지만 재능은 좀 모자란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는 쉽사리 보는 이의 관심을 끌게 마련이다. 특히 언젠가 자신이 직접 영화를 만들어보겠다고 맘먹고 있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니켈오데온>이나 팀 버튼의 <에드 우드>, 폴 토머스 앤더슨의 <부기 나이트> 그리고 덧붙이자면 톰 디칠로의 <망각의 삶>이 그런 영화들이다. 말하자면 이들 영화 속의 인물들은 펠리니의 과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장만옥의 이마베프>, 혹은 필립 가렐의 <야성적 순수>에 등장하는 ‘예술가형’ 영화감독들과 짝패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스스로를 명감독이라 생각하고 어린 시절부터 착실히 준비해온 한 인물이 자신의 친구들을 데리고 해괴망측한 공상과학영화를 찍고자 한다.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오디션 응시자들로부터 응시료를 꼭꼭 받아 챙기고, 카메라는 스튜디오에서 몰래 훔쳐낸 것을 사용하고, 촬영허가증이 필요한 곳에선 게릴라식 도둑촬영으로 일관한다. 팀 버튼의 <에드 우드>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긴 프랭크 오즈의 <보우핑거>는 분명 어느 정도는 팀 버튼의 영화를 의식하고 만들어진, 그리고 보기에 따라선 거의 후안무치한 모방으로도 여겨질 법한 좌충우돌 B급영화 제작기라 불려 마땅할 것이다. 텔레비전용 인형극 제작자로 출발한 (그리고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제다이들의 스승 요다의 목소리 역을 담당하기도 했던) 프랭크 오즈는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뒤 고전기 할리우드 코미디의 전통을 잇는 몇몇 흥미로운 영화들을 줄곧 만들어왔다. <흡혈식물 대소동>(1986)은 로저 코먼의 <공포의 작은 상점>과 그것의 오프브로드웨이 뮤지컬 버전을 참고해 만들어진 리메이크작으로, 할리우드 뮤지컬 코미디의 그로테스크한 패러디라 할 만한 영화이다. 그뒤에 만들어진 <화려한 사기꾼> <밥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결혼 만들기> 그리고 <인 앤 아웃> 등도 보는 이에게 제법 상당한 재미를 주는 영화들이다. 프랭크 오즈는 특히 코미디 배우 스티브 마틴과 몇편의 영화에서 함께 작업했는데, <보우핑거>에서도 그는 악전고투 끝에 명작(?)을 만들어내는 감독 보우핑거 역을 맡아 출연하고 있다(스티브 마틴은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직접 쓰기도 했다). 어느 날 회계사 친구가 쓴 공상과학영화 시나리오를 읽다 영감이 떠오른 보우핑거는 이런저런 삼류인생들을 모아 영화제작에 착수한다. 영화의 흥행을 위해 스타급 흑인배우 킷 램지(에디 머피)의 출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고심 끝에 묘안을 하나 짜낸다. 바로 외계인 침공에 관한 황당무계한 대사들을 읊조리는 연기자들을 무작정 그의 곁에 다가가게 만든 뒤, 놀란 그가 반응하는 모습들을 멀리서 몰래카메라로 촬영하는 것이다. <보우핑거>의 몇몇 장면들은 폭소를 유발하지만 동시에 약간은 서글픈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국경을 몰래 넘어오는 멕시코인들을 차량에 태워 싣고 와 스탭으로 쓰는가 하면, 킷 램지를 직접 촬영하기 힘들 경우엔 그와 외모가 유사한 남자를 찾아 먼 거리에서 롱숏으로 찍는 식이다(나중에 그는 킷의 형임이 밝혀진다. 에디 머피가 1인2역을 맡았다). 특히 배우 킷 램지를 유인- 보기에 따라서는 납치- 해 시나리오의 마지막 대사를 읊게 하고자 <보우핑거>의 촬영팀들이 벌이는 소동은 정말이지 가관이다. 촬영용 차량 위로 길게 솟은 크레인 위엔 한 무더기의 나뭇가지들로 몸을 감춘 촬영감독이 올라타 있다. 이들은 주연 여배우와 킷 램지가 탑승한 자동차를 도시곳곳을 누비며 죽을힘을 다해 뒤쫓는다. <보우핑거>는 영화와 삶에 관한 대단한 통찰을 제공해주는 영화는 아니다. 대신 이 작품은 영화란 근본적으로 화면 바깥에서 벌어진 일을 감추기 위해 이런저런 ‘사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허구적인 현실 내지는 ‘현실의 인상’을 주는 허구라는 지당한 사실을 꽤 감칠맛나게 보여준다. 예컨대 서로 다른 시간대에 따로 찍은 장면을 편집을 통해 이리저리 이어붙여 마치 킷이 여자 외계인에게 쫓기고 있는 듯한 인상을 만들어내는 장면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메시지가 앞서는 일은 절대로 없는 까닭에 <보우핑거>는 글머리에 언급한 여타의 영화들에 주로 나타나는 음울함의 정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거기 참여한 이들의 기억을 통해 더욱 아름답게 채색되는 법이라고 말한다. <보우핑거>는 기어이 영화를 완성하고 킷을 포함한 모든 이들은 기억을 되새기며 흐뭇한 표정으로 스크린을 응시한다. 거기에 완성된 영화의 시사회에 참석한 이들의 박수갈채가 덧붙여진다. 믿거나 말거나. 유운성/ 영화평론가 akeldama@netian.com Bowfinger|1999년|97분|컬러감독 프랭크 오즈출연 스티브 마틴, 에디 머피화면포맷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 1.85:1오디오 돌비디지털 5.1출시사 유니버설 ▶▶▶ [구매하기]

되놈과 쪽발이,사극 속의 외국인 혐오증

남한은 고립된 섬이다. 삼면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한면은 철책선으로 막혀 있다. 반세기 동안 한반도 남쪽은 한국인의 감옥이었다. 게다가 세계사적으로 아주 ‘예외적인’ 단일민족 사회(라고 우긴)다. 물론 단일민족이란 없다(이건 우리 집안의 비밀인데, 사실 내 혈통은 여진족이다. ^^). 순수 혈통이라니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다행히 단일민족은 ‘신화’일 뿐이다. 그래도 여기 ‘이상한 나라’에서는 신화가 현실로 여겨진다. 불행히도 단일민족의 자긍심은 이 땅의 상상력을 가두어왔고, 한국인의 감수성을 닫아버렸다. 그래서 외국인은 언제나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드라마에 외국인 혐오증(제노 포비아)이 엿보이는 캐릭터가 나와도 낯설지 않다. 현대극에서는 아예 외국인이 등장하지도 않지만, 사극에서는 중국인과 일본인이 단골 악당으로 열연한다. 시청률 50%를 넘긴 초절정 인기드라마 <대장금>에서 수라간 궁녀들이 가장 기피하는 곳은 중국 사신들이 묵는 ‘태평관’이다. 명나라 사신들이 어찌나 까탈을 부리고, 트집을 잡는지 태평관에 가면 전혀 태평하지가 않다. 죽어라 고생하고도 좌천되기 십상이다. 때는 최 상궁과 한 상궁이 수라간 최고상궁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이던 중. 최 상궁은 음모를 꾸며 수라간 최고상궁을 궁 밖으로 쫓아낸다. 최 상궁이 수라간 대행 최고상궁이 되자, 라이벌 한 상궁과 장금이를 ‘찍어내기’ 위해 태평관으로 보내버린다. 물론 착하디 착한 두 사람은 모질디 모진 명나라 사신을 만나 호된 시련을 겪는다. 소갈(당뇨)에 걸리고도 기름진 음식만 찾는 명나라 사신에게 ‘풀밭’투성이인 상을 올렸다가 엄벌을 받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결국 장금이가 명나라 사신을 개과천선시키는 것으로 매듭되지만, 막판의 반전에도 중국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어디 <대장금>뿐인가. 사극에서 중국인은 죄다 무뢰한이다. 일본인 아니 왜구는 모두 냉혈한이다. 언감생심 개과천선이라니. 마구 죽이고 또 죽인다. 올해 들어서만 <천년지애>에 다쓰지(김남진)가 냉혈한으로 등장했고, <다모>에 왜구들이 조선 역모세력과 연합한 칼잡이들로 묘사됐다. 이처럼 중국인과 일본인에 대한 묘사는 상상력이 필요없다. 일본인은 호시탐탐 조선반도 침탈을 노리는 도적떼고, 중국인은 내정간섭을 일삼는 되놈이면 그만이다. 고증이 웬말인가. 중국인에게는 간사스러운 염소수염만 붙이면 그만이고, 일본인에게는 머릿기름만 잔뜩 발라주면 끝이다. 만약 중국, 일본 드라마에서 한국인이 이렇게 묘사되었다면? 아마 인터넷을 타고 사발통문이 돌아 그 드라마를 만든 방송사 사이트는 초토화됐을 게다. 이처럼 우리에 대한 부정적 묘사에는 몹시 민감하지만, 남에 대한 부정적 묘사에는 매우 둔감한 것도 조선의 전통이다. 물론 부정적인 묘사에는 근거가 있다. 중국의 내정간섭과 일본의 침략에 시달린 역사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중국이 언제나 내정간섭만 하고, 일본이 항상 침략만 했을까. 글쎄다. 아무리 대표 이미지라 해도 지나치게 ‘단일’하다. 기억에 남는 긍정적인 일본인상, 중국인상은 좀체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드라마에서 일본인과 중국인은 주변인물일 뿐이다. 오히려 주변인물에 대한 묘사라서 더 무섭다. 아무 생각없이 만드는 주변인물의 캐릭터에서 편견은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주인공이라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서 검열을 하겠지만 주변인물은 고정관념대로 만들게 마련이다. 매일 편견덩어리 드라마를 보고 사는 이들이 어떻게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텔레비전의 외국인 혐오증은 거리의 애국주의와 거리가 멀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노 사건으로 촉발되고, 월드컵 4강 ‘신화’로 절정에 달하고, 촛불집회의 열기로 이어졌던 21세기 ‘대한민국’의 애국주의 말이다. 배타적인 감수성에 먹고살 만해졌다는 자신감까지 덧붙여져 만들어진 애국주의는 ‘감히 우리를 건드려’라고 말한다. 하물며 같은 노란 얼굴의 외국인에게도 거부감을 느끼는데 검은 피부의 외국인에게 너그러울 수 있겠는가. 장금이의 승승장구에 이어지는 마감뉴스에는 비보가 날아든다. 이 땅에서 국경을 초월한 노동자의 죽음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는 제아무리 달리는 전철에 몸을 던지고, 공장에서 목을 매도 공허한 몸부림일 뿐이다. 우리 땅에 감히 허락없이 들어와서 험한 일 마다않고 살았기 때문이다. ‘같은 민족’의 부르주아를 증오하는 한민족 노동자들은 제 몸에 불을 붙이고, 제 목에 밧줄을 매달아도 외롭다. 감히 핏줄로 얽힌 대한민국 공동체의 평화를 깨려 했기 때문이다. 아∼ 대한민국! A 신윤동욱/ <한겨레> 기자 syuk@hani.co.kr

서울독립영화제 다음달 5일부터 열려

영화독립군 거침없는 대학로 점령 한국 독립영화 최대축제인 ‘서울독립영화제’ 2003년 행사가 12월 5일부터 14일까지 열린다. 극영화, 다큐멘타리, 애니메이션을 통틀어 지난 1년 동안 만들어진 독립영화 가운데 엄선된 60편이 이번 행사기간 동안 경쟁을 벌인다. 또 해외초청작 19편을 포함해, 국내외 독립영화 42편이 비경쟁 초청작으로 함께 상영된다. 상영장은 서울 대학로의 동숭아트센터 동숭홀과 하이퍼텍 나다 두곳이다.(서울독립영화제 2003 홈페이지 www.siff.or.kr, 전화 02-362-9513) 이번 행사는 전신인 ‘한국독립단편영화제’부터 치면 29회이고, 이름을 ‘서울독립영화제’로 바꾼 뒤로 2회다.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의 표어는 ‘충돌’로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충돌 안에서, 새로운 흐름과 에너지를 감지해 내자는 취지를 담았다. 올해의 표어는 거기서 한발 나아가 ‘거침없이’이다. 서울독립영화제 조영각 집행위원장은 “말끔하고 말쑥하자는 게 아니라, 거침없이 발언하고 구애받지 않으면서 현실적인 여건들을 넘어서자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 표어를 반영하듯 올해 경쟁작들의 큰 특징은 IMF 구제금융 이후 다시 닥친 경제란 속에서 발생하는 지금 이 사회의 문제들에 직접 다가서는 작품들이 많다는 것이다. 또 쉽게 나오기 힘든 장편 다큐멘타리들이 여러편 출품됐고, 애니메이션 분야의 선전도 눈에 띈다. 국내 초청작 중엔 김명준 감독의 <‘하나’를 위하여>, 거식증에 걸린 한 여자의 이야기인 <그집앞>(김진아 감독) 등 화제작이 많다. <‘하나’를 위하여>는 지난 4월 세상을 떠난 여성 독립영화 감독 조은령이 찍던, 일본의 조선학교를 다룬 영화 ‘하나’의 미완성 촬영분에 남편인 김명준이 부인의 이야기까지 함께 보태 완성한 다큐멘타리이다. 해외초청작은 브라질과 칠레의 독립 장편영화 10편, 오스트레일리아의 단편 9편 등 19편이다. 우발적으로 동네 건달을 죽였다가 영웅이 되자 내친 김에 킬러가 돼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그 남자 최고의 해>(브라질, 호세 엔리크 폰세카 감독)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색채를 빌린 사회드라마이며, 20대 초반 젊은이들의 섹스와 우정 사이에서 흔들리는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살피는 <어느날 갑자기>(아르헨티나, 디에고 레르만 감독)는 이번 영화제 개막작이다. 단편 경쟁작 단편 경쟁작은 애니메이션 10편 포함해 37편. <여기가 끝이다>(박인제 감독)는 남한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는 탈북 청년의 이야기이다. 이방인의 시선으로 본 남한의 풍경을 익숙한 듯 낯선 것으로 만드는 세련된 연출이 소재의 직설성을 녹여버린다. <나무들이 봤어>(노동석 ˝)에서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아 나선 어린이는 어른들의 장난으로 고생한다. 그 어린이의 눈높이로 잡아챈 골목길의 세계가 거꾸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성인 버전 같다. 달팽이를 키우면서 달팽이의 온갖 습관, 달팽이가 병에 걸렸다가 약을 먹고 회복하는 과정까지를 담은 <달팽이가 애인보다 좋은 7가지 이유>(최수영)는 화자의 감정을 담아 쓴 수필같은 다큐멘타리이다. 정리해고된 한 중산층 남자의 악몽같은 판타지 (하준원)는 올해 칠레단편영화제에서 최우수극영화상을 받았고, 영어를 둘러싼 실험영상으로 한국사회의 식민성을 드러내는 <제3언어>(손광주)는 부산국제영화제 선재상 수상작이다. 올해 단편은 실사영화 못지 않게 애니메이션들이 눈에 띈다. <볼록이 이야기>(김진만)는 이제껏 선보인 적이 없는 ‘국수 애니메이션’이다. 삶지 않은 국수 묶음의 종단면에, 뒤쪽에서 밀고 당겨 생기는 굴곡을 가지고 화면을 만든다. 내용도 그 기법에 어울린다. 오목이들이 사는 별에서 왕따가 된 볼록이의 사랑이야기다. <지옥>(연상호)은 죽음과 지옥의 강박증에 쫓겨 사는 이의 악몽같은 삶을 다루는데, 화면이 <공각기동대>나 <인랑>같은 저패니메이션을 연상케 한다. 테두리선이 분명한 삽화체의 인물들이 정확한 데생에 힘입어 생동감을 얻는다. 중장편 경쟁작 올해 중편경쟁에 상영되는 작품은 총 14개. 20분에서 한시간 미만의 작품들로 다큐에서 SF까지 다양한 장르들의 성찬이다. <목두기 비디오>(윤준형)는 얼마 전 텔레비전에 소개되면서 ‘귀신이야기’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소문난 가짜 다큐멘터리. 여관방 몰카 비디오에서 귀신의 형상이 나타나면서 귀신의 사연을 추적해가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따라간다. 촬영과정만 2년이 걸린 <편대단편>(지민호)은, SF는 자본력의 결과물이라는 통념을 깨는 신선한 저예산 SF물. 미래사회에서 기억을 삭제당한 군대의 요원이 전투과정중 기억의 조각을 발견하면서 겪게 되는 혼란을 음울하면서도 서정적으로 그렸다. 켄 로치의 <빵과 장미>에 대한 헌사로 제목을 달았다는 <빵과 우유>(원신연)는 해직통보를 받고 자살을 결심한 철도원 노동자가 철로에 누워있다가 엉뚱한 곳에서 굴러떨어지는 낙석을 피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블랙 코미디 영화다. 지난해에 비해 두배가 넘는 출품작들이 경합을 벌인 장편부문에서는 9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이 가운데 7편이 우리 현실의 문제를 응시한 다큐멘터리다. 10년 이상 비전향 장기수들을 취재하면서 그들의 삶을 응시한 <송환>(김동원)엔 장기수 할아버지들에 대한 애정과 남·북한 사회에 대한 감독의 단순치 않은 생각이 오롯이 담겨있는 독특한 작품이다.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김환태)는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처음 스크린 안으로 끌어왔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이경순)은 말많고 탈많았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내부의 갈등과 모순을 담았다. ‘짬뽕 장르’임을 내세우는 옴니버스 프로젝트 <제국>은 7팀의 독립영화 제작 집단이 만든 7개의 작품을 엮은 것으로 ‘제국’이라는 하나의 주제 아래 다양한 소재를 통해 각자의 생각을 서로 다른 장으로 풀어냈다. 글 임범 김은형 기자 isman@hani.co.kr

미리보는 겨울영화 68편 올가이드 [3] - 12월 ③

알게 될거야 Va Savoir 누벨바그의 맏형 자크 리베트의 2001년 칸영화제 진출작. 파리에서 한편의 짧은 연극이 상연되는 동안 세명의 남자와 세명의 여자가 서로의 삶 안으로 들어가 사랑의 삼각구도를 만든다. 유머와 사유가 함께하면서 자크 리베트식의 로맨틱 스토리가 전개된다. 요컨대 자크 리베트가 사랑을 말하면 그건 ’철학’이 된다. 바람의 검, 신선조 壬生義士傳 일본 막부시대 말기, 교토의 도시 치안을 위해 결성된 무사단 신선조에서 활동하는 무사들의 이야기. 칸이치로는 남부 사투리를 쓰는 촌스러움에 오로지 돈을 위해 칼부림을 하지만 검술은 최고다. 반면 사이토는 정통 무사도를 따르는 사무라이. 영화는 이 두 사람의 갈등과 우정을 그린다. <러브레터> <철도원> 등 일본에서 흥행한 영화들의 원작소설을 쓴 아사다 지로의 소설 <미부기시전>이 원작. 요컨대 의를 훼손하느니 할복하리라는 무사도 + 시대를 뛰어넘는 사나이들의 우정. 스노우보더 Snowboarder 스포츠용품 가게에서 일하면서 보드 선수가 되기 위해 연습에 몰두하던 가스파는 스노우보드 챔피언의 권유를 받아 스위스로 떠난다. 가스파는 프로 스노우보더의 세계를 직접 접하곤 황홀경에 빠지지만, 세계 챔피언이 일개 아마추어도 못 되는 친구를 아무 이유없이 끌고왔을 리 없다. 요컨대 2002년 <익스트림 OPS>에 이은 계절액션스릴러. 춤추는 대수사선2-레인보우 브릿지를 봉쇄하라 踊る大搜査線2 텔레비전 드라마로 시작하여 영화로 이어진 뒤 일본 내 흥행폭풍을 일으켰던 <춤추는 대수사선>이 2편까지 만들어졌다. 1편의 감독 모토히로 가즈유키가 다시 한번 연출을 맡았다. 전편에 이어 주요 배역을 다시 캐스팅하였고, 완간 지역 내에서 벌어지는 엽기적인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한다. 요컨대 열혈 경찰 아오시마가 온다! 아타나주아 Atanarjuat-the fast runner 에스키모 원주민 출신의 감독이 에스키모들을 데리고 그들의 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수천년 전. 부족에서 가장 용맹한 형제 아타나주아(빠른 자)와 아막주아(힘센 자)가 겪게 되는 사랑과 복수에 대한 설화. 설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낯선 인물들과 함께 인류의 보편적 감성까지도 건드리는 신기한 영화. 요컨대 이글루보다 신기하고, 눈썰매보다 유쾌한 영화. 코로나도 Coronado 재력과 미모를 겸비한 것은 물론, 근사한 애인까지 두고 있는, 부러울 것 없는 여인 클레어. 그러나 출장길에 오른 남자친구가 실종된 것을 알게 되고, 그가 사라진 중앙 아메리카 코로나도로 달려간다. 혁명이 진행 중인 위험천만한 그곳에서 클레어는 악몽의 여행을 시작한다. 여성 전사 캐릭터를 내세운 액션 영화로, <인디펜던스 데이> <고질라> 팀이 연출해낸 특수효과가 양적으로 질적으로 풍성하다는 것이 제작진의 자랑. 요컨대 혁명의 전장에서 남자친구를 구출하라! 8명의 여인들 8 Femmes 지난해부터 여러 차례 개봉이 연기됐던 이 다시 개봉일정을 잡았다. 카트린 드뇌브, 이자벨 위페르, 파니 아르당, 에마뉘엘 베아르, 루디빈 사니에르 등 내로라 하는 프랑스 여배우가 총출동해 2002년 베를린영화제에서 화제가 됐던 프랑수아 오종의 영화. 함박눈이 쌓인 성탄절 아침, 아버지가 등에 칼이 꽂힌 채 발견되고 집에 있던 8명의 여인들이 서로 의심하기 시작한다. 전형적인 스릴러를 연상하기 십상이지만 오종은 이 이야기를 뮤지컬코미디로 둔갑시킨다. 요컨대 프랑스 최고 여배우들이 협연하는 스릴러 뮤지컬. 더 캣 The Cat In the Hat 짐 캐리의 <그린치>가 성공한 데 힘입어 닥터 수스의 동화가 다시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번엔 <오스틴 파워스>의 마이크 마이어스가 고양이인간으로 분장해 아이들의 혼을 빼놓는데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나타난 이 고양이인간은 집안을 온통 난장판으로 만들어놓는다. <아이 엠 샘>의 루시로 기억되는 다코타 패닝이 등장하며 <가위손> <배트맨2> <맨인블랙2> 등에서 프로덕션디자인을 맡았던 보 웰치가 감독을 맡았다. 보 웰치는 <가위손>의 프로덕션디자이너답게 영화 전체를 아이스크림 색채로 물들여 어린이들을 동화 속으로 끌어들인다. 요컨대 어린이를 위한 마이크 마이어스의 원맨쇼. 12월의 얼터너티브 12월의 시네마테크는 레즈비언, 게이 다큐멘터리로 문을 연다. 12월1일부터 7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퀴어베리테’에서는, 목소리를 빼앗긴 성적 소수자들이 스스로 쓴 퀴어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 <헤드윅> 메이킹 다큐멘터리 <좋든 싫든 헤드윅 이야기>, 니카라과 퀴어 시트콤과 관련 다큐멘터리를 묶은 <니카라과의 호모들>, 레즈비언 음악운동사 <여전사들의 합창> 등 18편이 상영되며 이중 15편은 전주, 청주, 대구, 광주, 대전에서 순회상영된다. 12월5일부터 14일까지 동숭홀과 하이퍼텍 나다에서는 서울독립영화제가 진행된다. 개막작 <어느날 갑자기> 등 실험영화와 애니메이션을 포함해 총100편의 장·단편 영화(경쟁작 60편)가 스크린에 오른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영화계의 신작 10편을 묶은 ‘비바! 라틴 시네마’ 섹션이 눈길을 끈다. 단편영화축제는 하늘에서도 펼쳐진다. 제1회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는 12월13일부터 16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본선진출작 30여편을 상영하고 내년 1월부터 6개월간 12편의 수상작을 국제선 전 노선에서 기내 상영한다. 한국영화아카데미는 12월18일부터 20주년 영화축제 ‘성인식’으로 성년을 기념한다. 아카데미의 현실을 바라보는 다큐멘터리, 전설적인 졸업작품과 숨은 문제작들을 상영하고 아카데미 출신 감독 20인이 참여한 디지털 옴니버스 <이공>(異共)도 공개한다. 12월에 회고전이 헌정되는 작가는 클로드 샤브롤과 하워드 혹스. 12월13일부터 26일까지 하이퍼텍 나다에서 열리는 클로드 샤브롤 회고전은 <아름다운 세르쥬> <암사슴> <의식> 등 15편을 소개한다. 샤브롤 회고전을 내년 1월 초 이어받는 시네마테크 부산의 12월 프로그램은 하워드 혹스. <붉은 강> <리오 브라보> <연인 프라이데이> 등 대표작 12편을 12월13일부터 2주간 상영한다. 12월27일부터 내년 1월 중순까지 진행되는 ‘나다의 마지막 프로포즈’는 올해 개봉된 수작 중 일찍 종영되어 아쉬움을 남긴 영화를 앙코르 상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