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텔레@UPCOIN24테더송금업체컬쳐랜드코인구매테더송금업체컬쳐랜드코인구매' 검색결과

기사/뉴스(1997)

경이롭고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니모를 찾아서>

픽사의 DVD들은 풀 3D로 제작된 디지틀 데이터를 아날로그 텔레시네 과정을 거치지 않고 데이터 자체를 디지털로 전송하는 다이렉트 디지털 트렌스퍼 방식으로 제작함으로써 디지틀의 장점을 극대화시킨 극상의 화질로 AV 애호가들로부터 절대적인 찬사를 받고 있다. 특이하게 바다 속을 무대로 삼음으로써 <벅스 라이프> 이후 다시 한번 자연의 경이로운 아름다움에 주목한 <니모를 찾아서>는 깊은 바다 속에 사는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들과 주변의 해초와 바위 등이 보여주는 놀랄 만큼 다채롭고 화려한 색채의 향연을 화면 가득히 펼쳐 보여줌으로써 시각적 쾌감을 만끽하게 한다. 아나모픽 1.78:1 영상은 픽사의 전작들이 보여줬던 극도로 투명하고 명징한 고해상도 영상과는 전혀 다른 경향의 화질을 보여주어 다소 당황하게도 만든다. 화면 전체에 여러 겹의 반투명한 막들을 쳐놓은 것처럼 뿌옇고 흐리게 보여지는 영상은 언제나 프랑크톤과 부유물들이 떠다니고 햇볕과 조류에 따라 밝기와 색깔이 시시각각 변하는 바닷속의 실제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해내기 위한 의도를 반영한 것이다. 그 결과 해상도에서는 약간의 손실이 있지만, 디지털 특유의 차가운 질감을 아날로그적인 느낌으로 바꿔놓는 주목할 만한 효과를 얻어냈으며, 경탄할 만큼 화사하고 현란한 원색들로 묘사된 물고기와 해조류들의 높은 채도와 색농도는 현재까지 출시된 모든 DVD를 통틀어 단연 최고이다. 전체적인 톤을 맞추기 위해 약간 불투명하게 설정한 물 바깥 장면들에서 질감이 거칠고 지글거리는 노이즈가 드러나는 점이나 원경에서 물고기 몸 주위에 의사 윤곽 노이즈와 아트팩트가 보이는 점 등은 DVD 매체의 용량의 한계를 보여준다. 국내판의 DTS ES 6.1과 돌비 디지털 EX는 미국판의 돌비 디지털 EX와 기본적으로 거의 동일하다. 음향 역시 전달이 제한되는 물속의 특성을 사실적으로 반영한 탓에 또렷한 대사나 음악에 비해 효과음은 날카로운 임팩트감이 다소 부족한 측면이 있다. 어뢰의 연쇄 폭발이나 잠수함의 충돌 등에서는 양감이 부족하지만, 물속의 거품 소리나 상어의 공격, 물고기들의 움직임 등은 매우 우수한 방향감과 이동감을 들려준다. 서플먼트 디스크의 구성도 푸짐하다.김태진 화질 ★★★★★ / 음질 ★★★★☆ / 부록 ★★★★ Finding Nemo | 2003년 | 앤드루 스탠튼, 리 언크리치 | 100분 | 1.85:1 아나모픽 | DTS ES 6.1, DD EX 5.1, 영어, 한국어 | 자막 한국어, 영어 | 브에나비스타 ▶▶▶ [구매하기]

[인터뷰] <오구> 무당딸 미연역 이재은

“주연 조연 안따져요 강한 캐릭터면 그만이지” 〈오구〉를 찍기 위해 사람을 찾던 이윤택 감독이 식당에서 밥먹는데 텔레비전에서 〈명성황후〉가 방영 중이었다. 이재은이 소리하는 장면이었다. “쟈가 누고 … 영화 나온 것 있나” 이재은이 나온 영화를 비디오로 본 이 감독은 여러 다리를 건너 이재은을 찾아냈다. “〈오구〉의 미연이를 내가 하면 잘할 것 같았어요. 부전공이 소리인데 그것도 살릴 수 있고요. 죽음을 축제로 표현하고 거기에 사람 냄새가 묻어나는 작품 자체도 좋았고.” 항상 새로운 면 보이고 싶어 〈오구〉에서 이재은(23)은 확실히 도드라져 보인다. 그가 연기한 미연은 무당의 딸로 태어났다가 동네 청년들에게 봉변을 당해 미혼모가 된, 또 그 사건 때문에 애인이 자살해버린 비극적 사연의 소유자다. 처연함이 느껴지는 캐릭터이기는 〈내츄럴 시티〉도 마찬가지였다. 디스토피아 같은 미래도시에서 몸을 팔고 사는 소녀를 연기한 이재은은 그 영화에서도 도드라져 보였다. 나이보다 먼저 어른들의 추한 세계를 알아버린, 그럼에도 앳된 얼굴. 그 묘한 부조화가 눈길을 잡아챈다. 연민을 품을라치면 바로 그 틀을 벗어나버린다. 〈오구〉에서 두눈 부릅뜨고 앙칼지게 싸울 때 이재은은 무섭다. 〈노랑머리〉 〈세기말〉 〈자카르타〉 〈내츄럴 시티〉 〈오구〉, 5살 때부터 연기를 시작한 이재은이 성인으로 출연한 다섯 편의 영화는 저마다 다르지만 그가 맡은 역에는 공통점이 있다. 남자들의 음습한 욕망으로 얼룩진 세상에서 상처입지만 기죽지 않고 자신을 위해 열심히 싸운다. 한국영화에서 드문 캐릭터들임과 아울러, 이미지 관리를 중시하는 여자 배우들이 아직도 잘 안 맡으려는 역이다. 이재은은 잔 계산 하지 않고 용감하게 달려왔다. 충무로에선 그런 태도를 높이 사는 이들이 많다. “주·조연 잘 안 따져요. 역의 비중보다 그걸 내가 해서 눈에 띌 수 있는 강한 캐릭터면 좋겠다 싶죠. 색다르고 이미지가 강한 것, 그런 역 하는 게 좋고 연기도 팍팍 늘고. 착한 역도 좋겠지만 악역을 잘해서, 사람들이 쟤만 나오면 죽이고 싶어지게 하는 것, 그런 거 매력있지 않아요” 연기경력 19년, 비움의 덕 알아 이재은은 스스로도 욕심이 많다고 했다. 뮤지컬, 연극,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 가리지 않고 ‘배우’이길 원하고 새로운 역과 일들을 찾아 나선다. “이런 연기를 잘하던데 이것도 잘하는구나, 그런 말 듣고 싶어요. 쟤가 이번엔 또 무슨 일을 저지를까 궁금증을 자아내고 싶고. 〈어을우동〉(이재은이 공연중인 마당극) 하면 ‘쟤 창도 해’ 같은 반응 있잖아요.” 색다른 역을 선택해 왔는데, 그러다보니 영화에서 그의 배역들은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커 보이는 역설이 빚어진다. “크면서 차가운 이미지가 풍기는 건지, 착하고 똑똑한 건 해 봤는데 멍청한 역은 한번도 안 해 봤어요. 그런 역이 안 들어와요. 제가 똑똑하게 생겼나 봐요. 부드럽기보다 날카로워 보이나 봐요. 착한 푼수, 바보 같고 그런 귀여운 여자를 해보고 싶은데 ….” 연기경력 19년. 이재은의 연기관은 뚜렷해 보였다. “촬영 전날까지 대사만 외워놓고 아무것도 안 해요. 미리부터 고민해서 준비하고 연습하면 사심이 많아지거든요. 연기가 계산적이 되고 사족이 많아져요. 저는 공부 안 하기로 유명한 배우예요. 그 인물에 빠지려고 하기보다 그 인물도 내 인생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죠. 이 인물이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만 알고 있고 나머지는 감독에게 맡겨요. 내 작품이긴 하지만 전체를 조율하는 건 감독이니까. 저는 비어 있으려고 한다고 할까. 마른 스펀지가 물을 많이 빨아먹는 것처럼.” 글 임범 기자 isman@hani.co.kr ,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지나친 `비주얼`만의 승리,<매트릭스3 레볼루션>

추상적 사고의 여지를 남기지 않은 <매트릭스3 레볼루션> <매트릭스3 레볼루션> 속의 혁명은 혁명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역(逆)혁명에 가깝다(물론 이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매트릭스3 레볼루션>이 세계의 숨겨진 비밀을 당신에게 알려줄 거라고 성급히 기대하지는 말라. 지난 세기에 시작된 이 시리즈물의 인간 내면을 향한 격렬한 여정은 스펙터클의 대혼란 속에서 이제 한 차례의 연습을 마무리짓고 있는 듯 보인다. 사실 <매트릭스> 본편이 애초에 보여준 독창성은 이 영화가 시각적 혼란보다는 형이상학적 내용을 통해 우리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는 데 있다. 모순되게 들리지만, 가히 천재적이라고 할 만한 <매트릭스> 본편은 총알의 속도에 가까운 슬로모션을 통해 영화사상 가장 기억할 만한 “폭력”장면을 펼쳐 보인 “지적인” 액션영화였던 것이다. 거기에다 <매트릭스> 본편은 90년대 후반의 두 가지 영화적 유행을 (비디오 게임의 이야기 구조를 따르는 영화적 조류와 맥루한적인 견지에서 역사를 바라보며 텔레비전 형태의 새로운 사이버-전체주의에 착안한 좀더 편집증적인 조류의 두 가지) 성공적으로 버무려놓았다. 닷컴 시대 천재들의 등장을 알린 <매트릭스> 무엇이 우리가 <매트릭스>에 그토록 열광하도록 만들었던가? 이 영화는 주도면밀하게 다문화적이고 (물론 가장 처음 홍콩영화의 창조성을 흡수한 할리우드영화 중 한편이기도 하다) 닷컴시대의 천재들을 미화하고 있으며, (1999년 당시를 돌이켜보건대) 시각효과에 있어 하나의 기술적 경의였다. 오랜 세월 인간의 실제 행위를 기록해온 카메라 촬영술과 새롭게 떠오른 컴퓨터그래픽 이미지, 실제 배우들과 그들의 스턴트 대역들, 그리고 실제 로케이션 장면들과 스튜디오 세트장면들을 결합해내기 위해 워쇼스키 형제가 감내해야 했을 복잡다단함을 생각해본다면, 영웅 해커 네오(키아누 리브스)와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가 컴퓨터에 의해 구현된 가상의 현실을 상대로 펼치는 이 무용담은 아마도 영화 역사상 가장 자연스러운 애니메이션영화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난 지금 너의 정신을 해방시키려는 거야”라는 영적 지도자 모피어스의 주장이 당신의 흥미를 더욱 자극했던 것이다. 하지만 <매트릭스3 레볼루션>에서의 모피어스(로렌스 피시번)는 전편에 비해 그 비중이 커진 니오베(제이다 핀켓 스미스)와 짝을 이룬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자신이 주창하는 계급이론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한다. 사실 네오가 매트릭스에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매트릭스 내부에 (혹은 다른 곳 어디에) 남겨져 있다는 영화의 첫 설정 자체가 하나의 미스터리이다. 뒤바뀐 오라클의 모습은 글로리아 포스터의 사망으로 인한 메리 앨리스로의 배역 교체를 설명하기 위해 의도적인 설정이라 치더라도,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별거 아니야”라는 뜻으로 시온 사람들의 대화 속에 은근슬쩍 기어들어 와 있는 “It’s the big bupkes-nada”(역자: bupkes, nada는 모두 nothing을 의미하는 고어 및 은어)라는 할리우드 은어의 존재는 정말 하나의 미스터리라 할 것이다. 그리고 “전체 방어 시스템을 상대로 겨우 전함 한척이 무슨 희망이 되겠는가?” 따위의 대사나 지껄이는 코넬 웨스트의 끈질긴 등장 역시 그 못지않은 미스터리이다. 무엇이 진짜 희망인가? 네오를 구하기 위해 지하세계로 들어선 트리니티는 우선 유로트래시 음악이 죽음의 향연처럼 울려퍼지는 디스코텍에서 메로빈지언(람베르 윌슨)과 그의 배우자 페르세포네(모니카 벨루치)를 상대로 전투를 치러야 한다. 여지없이 등장하는 트리니티의 공중 발차기와 완벽한 구형에 가까운 페르세포네의 빵빵한 가슴, 그리고 지독하리만치 악의에 찬 메로빈지언의 중얼거림 모두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메로빈지언은 오라클의 한쪽 눈을 가져오라고 요구하지만 트리니티는 시간낭비하기 싫다는 듯 총을 빼들고, 이제 한바탕 총격전이 벌어진다. “그녀가 우리 모두를 죽여야 한다면 그녀는 정말로 사랑에 빠진 거야”라는 페르세포네의 설명처럼 <매트릭스3 레볼루션>은 초반 한 시간 동안 사랑이라든지 카르마라든지 하는 단어들의 의미를 분석한다거나 오라클이 미래를 알고 있었는지 아닌지 아님 알고 모르고가 차이가 있는지 없는지 등등에 어리둥절해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굉장한 전투장면 뒤에 남은 것 간단히 말해서 영화 <매트릭스3 레볼루션>은 시온의 병사들이 육중한 전투 로봇에 자신들의 몸을 싣고 무지막지하게 밀려드는 기계충 무리를 상대로 포화를 퍼부어대기 전까지 전혀 딴짓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에서 우리는 버로스의 SF소설 속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위용마저 느끼게 되는데, 이쯤 되면 필자의 해설 역시 버로스를 모방한 학부 때의 습작을 닮아가기 시작한다. “BX 케이블, 오징어 스파게티, 전기 충격파! 기관총, 기계 지옥, 최후의 성전! 지긋지긋한 주황빛-푸른빛 안광들, 무시무시한 촉수들의 회오리여!!!” 니오베의 우주선이 나타나 전장을 정적으로 몰아넣기까지 한 시간쯤 이어지는 이 전투장면은 초반부에 비해 훨씬 나을 뿐 아니라 한마디로 굉장하다고 할 수 있겠다. <매트릭스2 레볼루션>은 그 이야기 구조면에서 <반지의 제왕> 최종편을 예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곤도르 방어는 여기서 시온에서의 전투로, 둠산으로 향하는 샘과 프로도의 이야기는 여기서 홍수와도 같은 기계충들의 화염을 거슬러 어둠의 심장, 검청색 기계 도시의 영토로 향하는 네오와 트리니티의 이야기로 각각 치환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실체의 사막인가? 아님 네오와 (말하자면 사우론의 존재에 해당하는) 스미스 요원이 들이치는 번개와 폭풍우 속에서 공중 격투를 벌인 끝에 추락한 진흙 웅덩이마저 복구된 매트릭스 속에 존재하는 초록빛 기호의 협곡일 뿐이라는 것인가? 무슨 상관인가. 아무튼 그래픽 이미지는 훌륭하지 않은가! <매트릭스3 레볼루션> 속에서 특수분장을 통해 만들어진 상처들은 가히 예술의 경지를 보여주며, 영화 속에 즐비한 시신들은 <킬 빌> 속의 그것보다도 훨씬 뻔뻔스럽게 미화되어 있다. <매트릭스3 레볼루션>은 (가장 부정적인 형태의 니힐리즘이라고 할) 최고의 사랑과 가장 설명하기 힘든 우주론을 함께 보여준다. 그리고 휘황찬란한 만신전의 약속과도 같은 광활한 하늘과 그 속으로 펼쳐진 무지개는 피땀으로 적셔진 도피처 시온의 존재를 허용하는 것과 동시에 또 다른 매트릭스 후속편이 이어질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매트릭스> 시리즈를 현대판 성경 서사극이라고 (헐뜯기라도 하듯) 말한 동료 비평가의 지적은 물론 옳은 것이겠지만, 당신이 영화 속의 육중하고 어리석기까지 한 테크놀로지를 무시해버리기로 한다면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마치 고약한 대중 선동가와 같이 영화 <매트릭스3 레볼루션>은 지식에 대한 진실의 우위를 주창한다. 하지만 일단 영화가 당신 앞에서 가동(?)되기 시작하면, 가히 “승리”라고 평가할 만한 영화 속의 비주얼들이 당신에게 그 어떤 추상적인 사고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곧 발견하게 될 것이다.

<카우보이 비밥>의 신화는 계속된다

투니버스 오늘부터 일본 애니메이션 ‘울프스 레인’30부작 방영 98년 일본 도쿄텔레비전과 위성채널 와우를 통해 방영돼 선풍적인 화제를 모은 〈카우보이 비밥〉의 제작사 ‘본즈’사가 다시 내놓은 일본 애니메이션 〈울프스 레인〉이 8일부터 매주 월요일 저녁 8시 애니메이션채널 투니버스를 통해 방영된다. 〈카우보이 비밥〉의 각본을 쓴 노부모토 케이코와 일본의 천재 음악가로 평가받는 칸노 요코가 다시 손잡고 〈울프스 레인〉에 참가했다. 인간의 모습을 한 늑대의 이야기를 그린 〈울프스 레인〉은 올 1월 후지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된 작품으로 국내에서는 25분분량 총 30편이 방영될 예정이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 방영 직전까지 줄거리조차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을 정도로 비밀리에 작업이 이뤄진 본즈사의 야심작이다. 폐허가 된 돔 모양의 미래도시를 배경으로 주인공인 인간의 형상을 한 늑대들과 이들을 쫓는 늑대 사냥꾼, 인간 위에 군림하는 귀족, 그리고 잃어버린 낙원으로 가는 열쇠를 지닌 꽃의 소녀가 물리고 물리며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이 작품에는 늑대, 인간, 꽃이라는 세가지 상징적 존재가 등장한다. 늑대는 소외되고 버림받은 상처투성이의 존재를, 인간은 늑대를 멸종시키고 꽃을 불태워버리는 전쟁의 존재를, 꽃은 이 둘 사이에서 고통받지만 늑대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줄 수 있는 희망의 존재로 그려진다. 노부모토 케이코의 탄탄한 이야기 구조와 칸노 요코의 감칠 맛나는 음악, 음미해 볼 만한 메시지까지 담겨있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도형 기자 aip209@hani.co.kr

[외신기자클럽] 스타탄생 (+불어원문)

1999년 데이비드 크로넨버그가 위원장으로 있는 칸영화제의 심사위원단은 일군의 비전문 배우들에게 상을 주었다. 이로 인해 논쟁이 일어났다. 이들의 연기는 분명 설득력이 있었으나 본격적인 배우의 작업에 속하지는 않았다는 것 때문에 칸이 높이 평가한 것에 대해 격한 비난이 쏟아진 것이다. 그러나 <로제타>로 상을 받은 에밀리 드켄은 이제 출연요청이 쇄도하는 배우가 되었다. 대표적으로 <늑대의 후예들>에서 연기를 했고, 올해 로버트 드 니로와 나란히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The Bridge of San Luis Rey)를 찍었다. 그녀는 <휴머니티>(L’humanit)의 세브린 카닐과 여우주연상을 공동수상했다. 오늘날 세브린 카닐은 여전히 자기 공장의 극단에서 연기를 하고 있으며 <하늘 한 조각>(Une part du ciel)에서 그를 볼 수 있었다. 한 사람은 전문배우이고 다른 한 사람은 아니지만, 두 사람 모두 재능있는 여배우들이다. 그 수상자 명단의 이점은 ‘전문배우’의 정의가 무엇인가를 묻는다는 데 있었다. 따끈따끈한 <오아시스>(사진)의 프랑스 개봉은 이 낡은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많은 관객은 이 영화가 거북하게 느껴진 것에서 나아가 심적으로 뒤틀리게 했다고 주장했다. 만약 그들이 한국 관객처럼 배우 문소리를 그 배역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면, 또는 <박하사탕>이 좀더 이목을 끄는 개봉을 할 수 있었다면, 그리고 특히나 텔레비전이나 잡지에서 그녀를 보았었다면 그렇게 반응했을까? 더스틴 호프먼이 <레인맨>에, 톰 행크스가 <포레스트 검프>에 나왔을 때, 우리는 전문가의 어려운 묘기를 목격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놀라워 감탄을 하건 회의하고 무덤덤해졌건 우리는 그들을 곡예사 재주꾼처럼 바라본다. 그러나 문소리가 화면에 등장할 때, 우리에게 그녀는 비틀어지고 침흘리고 눈은 뒤집힌, 완전한 장애인의 몸뚱어리로 보인다. 영화홍보를 위해 잠시 프랑스에 들른 그녀는 지난달(지난 11월) 파리와 리옹에서 열린 시사회에 몇 차례 참석했다. 조명이 다시 들어왔을 때 상영관 안에는 갑자기 희미한 술렁임이 퍼져나갔다. 아름다움의 확신에 찬 채 무대에 오른 그녀는 영화계의 스타들만이 지니고 있는 부드러운 자신감을 보여줬다. 그 모습에 한결 가벼운 마음을 갖게 된 관중은 박수를 쳤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되찾은 것이다. 고로 ‘전문배우’란 관객이 그 배우에게 두는 시선으로 정의된다. 이들 상영회에 참석한 프랑스인들은 영화상영 중에, 그리고 상영 뒤에 문소리를 바라보았던 방식을 통해 <오아시스> 주제의 적절성을 스스로 찾는 수밖에 없었다. 문소리는 이미 위대한 배우이다. 그녀는 앞으로도 멋진 배역을 맡아 보여줄 것이고 훌륭한 커리어를 해나갈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재능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기는 <오아시스>가 갖는 원초적인 힘을 되찾지는 못할 것이다. 무엇인가가 죽은 셈이며, 이것이 바로 스타 탄생이다. A star is born. En 1999 le jury du festival de Cannes présidé par David Cronenberg récompensa une brochette d’acteurs non professionnels. Il créa une polémique comme la presse culturelle française les affectionne. On lui reprocha vivement de saluer des performances certes convaincantes, mais qui ne relevaient pas d’un travail de comédien. Emilie Dequenne, récompensée pour « Rosetta », est devenue une actrice très demandée. Elle a joué notamment dans « Le pacte des loups » et tourné cette année « The Bridge of San Luis Rey » aux côtés de Robert de Niro. Elle partageait son prix avec Séverine Caneele pour « L’humanité ». Aujourd’hui, celle-ci joue toujours dans la troupe de son usine. On a pu la voir dans « Une part du ciel ». L’une est professionnelle, l’autre pas, toutes deux sont des comédiennes talentueuses. Le mérite du palmarès était donc de poser la question de ce qui définit un « comédien professionnel ». La sortie française toute fraîche d’Oasis vient nourrir ce vieux débat. Beaucoup de spectateurs, ont déclaré se sentir gênés, voire profondément dérangés par le film. L’auraient-ils été autant si comme les spectateurs coréens, ils avaient connu la comédienne Moon Sori avant son personnage ; si Peppermint Candy avait bénéficié d’une sortie moins discrète, et surtout s’ils l’avaient vue à la télévision et dans les magazines ? Lorsque Dustin Hoffman apparaît dans Rain Man ou Tom Hanks dans Forest Gump, nous savons bien que nous assistons au tour de force de professionnels. Ebahis et admiratifs ou dubitatifs et blasés, nous les regardons un peu comme des acrobates. Mais quand Moon Sori surgit à l’écran, elle nous apparaît pleinement comme un corps handicapé, tordu, bavant, les yeux révulsés. De passage en France pour la promotion du film, elle assista le mois dernier à quelques avant-premières à Paris et à Lyon. Lorsque les lumières se rallumaient, la salle était soudain parcourue d’un frisson. Elle montait sur scène, forte de sa beauté, portant cette douce assurance que seules possèdent les stars de cinéma. Soulagée, la foule applaudissait. Les choses reprenaient leur place. Un « acteur professionnel » se définit donc par le regard que le public pose sur lui. Les français qui assistèrent à ces projections ne purent que vérifier la justesse du propos d’Oasis à travers la façon dont eux-mêmes regardaient Moon Sori, pendant et après le film. Moon Sori est déjà une grande actrice. Elle nous offrira encore de beaux rôles et fera une très belle carrière. Mais en dépit de son talent et de son travail, jamais ses interprétations ne retrouveront la force primitive d’Oasis. Quelque chose est mort : A star is born. Adrien Gombeaud Journaliste et critique à la revue Positif.

‘프랑스의 히치콕’ 클로드 샤브롤 회고전

13~26일 서울 하이퍼텍 나다에서 대표작 15편 상영, 누벨바그 감독중 가장 장르적 프랑스 누벨바그 감독들 가운데 가장 장르적인 영화를 만들어온 클로드 샤브롤(73)의 대표작 15편을 상영하는 ‘클로드 샤브롤 회고전’이 동숭아트센터와 시네마테크부산 공동 주최로 13일부터 26일까지 서울 동숭동 하이퍼텍 나다극장에서 열린다. 부르주아 사회·가족 안의 욕망을 스릴러의 형식으로 헤집고 파고들어 ‘프랑스의 히치콕’이라고도 불렸던 샤브롤의 영화는, 누벨 바그 감독들 가운데 그 형식이 가장 쉽고 친숙한 편이다. 샤브롤의 영화들이 인간을 관찰하는 시각은 간단치 않지만, 그럼에도 대중들이 가깝게 다가가서 재밌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행사는 관심을 끈다. 그 내용도, 사소한 일상에까지 계급이라는 문제를 끌어들여 다루기 때문에 영화광이 아닌 이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샤브롤은 고다르, 트뤼포 등 누벨바그 주도자들과 함께 프랑스 비평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활동하다가, 멤버들 가운데 가장 먼저 영화를 찍었고(58년작 〈미남 세르주〉) 영화도 찬사를 받았지만 1960년대를 거치며 주목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엔 그가 상업적인 장르영화를 찍어오면서 다른 누벨바그 감독들보다 형식실험을 덜 했던 점도 한몫 거들었다. 전형적인 삼각관계에 스릴러를 접목시킨 68년작 〈암사슴〉부터 다시 작가적인 목소리를 담기 시작하면서 전성기를 맞다가 70년대 중반 잇단 흥행실패로 궁지에 몰려 텔레비전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침없이 지금까지 45년간 50편을 찍어온 샤브롤은, 90년대 들어서면서 ‘샤브롤식 스릴러’로 불리는 그만의 영화세계를 인정받으며 거장의 입지를 굳혔다. 그 정점에서 샤브롤은 부르주아 가정에 들어온 문맹의 하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살인극 〈의식〉(95년)을 내놓는다. 갈등은 분명히 계급적이지만, 인물들의 동인과 그 결과는 계급적인 관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아이러니한 세계를 펼쳐 보이는 이 영화는 〈카이에 뒤 시네마〉로부터 ‘오랜만에 나온 가장 위대한 프랑스 영화’라는 격찬을 받았다. 상영작은 〈미남 세르주〉 〈암사슴〉 〈의식〉을 비롯해 〈사촌들〉(59년), 〈부정한 여인〉(69), 〈야수는 죽어야 한다〉(69), 〈도살자〉(69), 〈파멸〉(70), 〈붉은 결혼식〉(73), 〈닭초절임〉(85), 〈여자이야기〉(88), 〈마담 보봐리〉(91) 등이다. 서울 상영에 이어 내년 1월3일부터 18일까지 부산시 시네마테크부산에서도 상영한다. 예매 및 문의는 하이퍼텍나다 극장 (02)766-3390(교환 293,294), www.dsartcenter.co.kr, 시네마테크 부산 (051)742-5377, www.piff.org/cinema 임범 기자

영화사신문 제25호(1960∼1961)

영화사신문 제25호 The Cine History 격주간 · 발행 씨네21 · 편집인 김재희 1960 ~ 1961 <싸이코> 영화미학의 새 장 샤워실 살인장면, `감각의 시대' 문 열어 충격적인 샤워실 살인장면을 선보인 앨프리드 히치콕의 <싸이코>(1960)가 할리우드 영화미학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을 얻고 있다. 평론가들은 과도할 정도로 쇼킹하고 센세이셔널한 샤워실 살인장면에 주목하며, “<싸이코>는 20세기 말의 주류 영화미학이 될 만한 것의 도래를 상징하는 영화”라고 입을 모았다. 이제 기존의 할리우드영화를 특징지웠던 “정서의 영화”(cinema of sentiment)로부터 독립해 성장하기 시작한 “감각의 영화”(cinema of sensation)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평론가 데이비드 톰슨은 히치콕의 <싸이코>가 관객 내부에 본능적으로 잠재해 있는 “영화에 대한 새로운 지각”을 확립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프랑스의 뉴웨이브 감독인 프랑수아 트뤼포는 “<싸이코>는 영화관객의 새로운 세대를 겨냥한, 본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미학의 영화”라고 극찬했다. 그는 영화의 역사를 두동강낼 만큼 획기적인 영화로 <싸이코>를 지목하고, 바로 그 순간으로 여주인공 마리온 크레인(재닛 리)이 칼에 난자, 살해되는 모텔 샤워장면을 꼽았다. 이 장면은 내러티브에 우선순위를 두는 할리우드 고전영화의 규칙을 깨는 것으로, 무엇보다 센세이션(감각)을 위해 고안된 장면이라는 것이다. 영화계가 주목한 <싸이코>의 또 다른 특기할 만한 점은 비일상적인 드라마적 장치이다. 영화 중반 이전에 여주인공을 심술궂게 살해해버리는 전복적인 플롯은 샤워실 장면이 창조해낸 강력하고 새로운 시각적 미학보다 더 놀라운 것이다. 이러한 <싸이코>의 줄거리 구성은 고전적 할리우드영화의 전통적 가치를 전복시킬 만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할리우드의 베테랑 감독인 히치콕은 자신이 만든 첫 공포영화인 <싸이코>의 흥행성적에 몹시 안달해한다고 전해진다. “살아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 뉴아메리칸시네마그룹·시네마베리테 등 反상업화 운동 봇물 영화의 주류를 바꿔보기라도 하겠다는 것일까. 60년대가 시작하자마자 세계 곳곳에서 상업영화에 반발하는 영화인들의 움직임이 조직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뉴아메리칸시네마그룹’, ‘시네마베리테운동’ 등의 형태로 할리우드를 대표로 한 기존 영화계에 ‘도발’을 시도하고 있다. 60년 9월 요나스 메카스, 셜리 클라크를 비롯한 뉴욕의 독립영화 감독·제작자들이 ‘뉴아메리칸시네마그룹’을 결성하고 기존의 영화를 “허위가 가득하고 호화로운 영화들”이라고 공격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우리는 더이상 장밋빛 영화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핏빛 영화를 원한다”라며 “거칠고 못 만들었어도, 살아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토로했다. 앤디 워홀 등 전위적인 예술가들도 이 그룹에 가담했다. 프랑스의 뉴웨이브, 영국의 프리시네마운동과 궤를 같이하면서도 훨씬 대담한 이들은 주제와 테크닉 면에서 상업영화와 차별화되는 영화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투아니아 출신인 메카스는 16mm 실험영화를 다수 제작하면서, 1956년엔 <필름 컬처>(Film Culture)라는 잡지를 창간하기도 했다. 이어 61년 프랑스에서는 장 루슈가 사회학자 에드거 모랭과 함께 영화 <어느 여름의 연대기>를 내놓으며 ‘시네마베리테운동’의 시작을 알렸다. 이들은 극적 구성을 피하는 대신, 렌즈의 기록성을 최대한 살려 현실 속에서 새로운 진실을 발견하려는 시도를 했다. 또 인터뷰 형식을 중시하는 특징을 보였다. <어느 여름의 연대기>는 영화 도입부에서 이 영화가 “시네마베리테(cinema verite)에 대한 새로운 실험”이라고 명백히 하고 있다. 영화계의 이같은 사회참여적이고 운동적인 성향은 멀리 일본에서도 ‘새로운 물결’이란 이름으로 함께 나타났다. 오시마 나기사는 60년, ‘미-일 안보조약’(Ampo)에 대한 좌파 학생들의 투쟁을 가차없이 비판한 <일본에서의 밤과 안개>를 만들어 개봉했지만, 즉각 상영 중단됐다. 또 이마무라 쇼헤이는 61년 <돼지와 군함>을 통해 날카로운 정치·사회 비판을 보였다. 주제:할리우드 영토확장 러시 TV명화 제작·기내 상영 등 새로운 수익원 창출 나서 TV 등 새로운 매체에 당하고만 있던 할리우드의 역공이 시작됐다. 60년대 들어 뉴미디어들을 영화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할리우드는 이제 ‘영화=극장에서’란 도식을 무너뜨리며, 안방으로 항공기로 ‘상영관’을 넓히고 있다. 61년 9월 에 <토요일 밤을 명화와 함께>(Saturday Night at the Movies)란 프로그램이 첫선을 보였다. 주요 시간대에 영화시리즈 프로그램이 편성된 첫 케이스로, TV를 통해 할리우드영화를 감상하는 새로운 유행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란 분석이다. 첫선을 보인 <토요일 밤을…>을 장식하게 된 영화는 와이드스크린 코미디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1953)이다. 앞서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텔레비전 쇼를 제작해오고 있다. 대규모 스튜디오의 영화제작이 감소한 탓이다. 이들 스튜디오들은 또 극장 상영과 텔레비전 방송에 둘 다 쓰일 수 있는 독립영화 제작에 필요한 제작시설을 대여하는 방법으로 돈을 벌기도 했다. 황금시간대 TV 진출에 앞서 할리우드영화는, 항공기를 새로운 영화상영 매체로 끌어들였다. 61년 7월 TWA 에어라인은 퍼스트 클라스 승객을 대상으로 영화상영을 시작했다. 비행 중(in-flight) 상영이 정규화되기는 TWA가 첫 시도였다. 미국의 영화제작사들은 이 밖에도 음반, 출판 등 다른 엔터테인먼트 분야로 영화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한 노력에 이미 착수했다. 진짜 사나이 사라지다 클라크 게이블 심장마비, 유작은 카우보이 역할 “완전한 남성성의 본질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는 이 세상에 딱 한명뿐이다. 바로 클라크 게이블이다.” 클라크 게이블의 마지막 영화였던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The Misfits, 1960)의 제작자였던 프랭크 테일러는 그를 남성성의 상징으로 치켜세웠다. 이 영화의 각본을 썼던 극작가 아서 밀러도 그가 만났던 배우들에 대해 언급하며 클라크 게이블에게 “유일한 진짜 사나이”란 호칭을 선사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의 영화로 뭇 여성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클라크 게이블이 1960년 11월16일 세상을 떴다. 향년 60살. 그는 죽기 직전까지 배우의 길을 걸었다.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그가 죽던 해 찍은 영화. 존 휴스턴 감독의 연출로 마릴린 먼로와 함께 출연했던 이 영화에서 그는 나이를 잊고 스턴트 연기를 직접 했다. 나이 든 카우보이 역할이었는데, 노익장을 과시했지만 무리였던 모양이다. 그는 촬영을 마치고 나흘 뒤 심장마비로 쓰러져 열흘 만에 숨을 거뒀다. 5개월 뒤 그의 늦둥이 아들 존 클라크 게이블이 태어났다. 39년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은 ‘사나이 연기’의 전형으로 통한다. 남북전쟁으로 인한 피폐한 환경을 뚝심으로 이겨나가는 그의 모습은 인간의지의 위력을 보여줬다. 앞서 35년 <어느날 밤에 생긴 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을 때부터 그는 이미 할리우드의 왕자였다. 훤칠한 체격에 막힘없는 성격의 그를 보며 여성관객은 주저하지 않고 ‘할리우드 제1의 성적 매력을 가진 남자배우’란 호칭을 주었다. 많은 이들에게 칭송받는 그의 남성성은 영화계 입문하기 이전 벌목공, 유전의 인부, 농부, 그리고 영업사원 등으로 활동했던 그의 선 굵은 이력을 보면 수긍이 간다. 지방 극단의 단원으로 연기를 시작, 할리우드에서 갱(gang) 연기를 통해 영화계의 제왕으로 떠올랐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외에 <바운티호의 반란>(1935), <모감보>(1953),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1960)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블랙리스트 무용지물, 대부분 가명으로 활동 1960년대 들어, 1950년대의 악명 높은 할리우드 블랙리스트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많은 감독들이 강제로 해외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배우들은 은퇴를 하거나 연극으로 방향을 돌린 반면, 많은 시나리오 작가들은 익명이나 가명으로 일을 계속했다. 그래서 “할리우드 10대 작가” 중 한명인 달튼 트롬보는 두개의 신작영화의 작가로 크레딧에 올랐는데, 하나는 유니버설이 제작한 커크 더글러스 주연의 <스팔타커스>와 유나이티드 아티스츠가 제작한 오토 프레밍거의 <영광의 탈출>이다. 재미있는 것은 <더 브레이브 원>(The Brave One)으로 1956년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로버트 리치는 트롬보의 필명에 다름 아니며, <콰이강의 다리>로 프랑스 소설가 피에르 불이 수상한 것으로 알려진 1957년 아카데미 각본상은 사실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영국에 망명 중인 칼 포맨과 마이클 윌슨이 공동 원작자라는 사실이다. 화제의 영화 <네 멋대로 해라>, 헨드헬드·점프컷 신기술 등장 장 뤽 고다르의 첫 장편영화 <네 멋대로 해라>(Breathless, 1960)가 개봉과 동시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 프랑수아 트뤼포가 영화의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할리우드 B급영화의 산실인 모노그램픽처스에 헌정하는 이 영화는 젊은 자동차 도둑(장 폴 벨몽도)이 경찰을 살해하고 미국인 여자친구(장 세베르)와 도주를 한다는 스토리. 플롯은 관습적이지만, 시나리오는 정반대이다. 미국 갱스터영화의 직접성과 경제주의를 영화 속에 다시 구현하고자, 고다르는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 촬영기사 라울 쿠타르도 종종 기용하면서 핸드헬드 카메라와 로케이션 촬영을 감행했다. 또 전통적인 구축숏(establishing shots)을 생략하는 과감한 점프컷(jump cuts)도 사용했다. 고다르는 배우에게 큐사인과 동시에 펼쳐지는 즉흥연기를 요구했고, 영화 찍는 내내 연기동선을 익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결과 무정부주의자 벨몽도와 매혹적인 세베르가 보여주는 유례없이 신선한 연기는 영화제목(breathless)처럼 관객을 숨막히게 했다고. 르네 클레망, 뉴웨이브 합류 르네 클레망은 신작 <태양은 가득히>(Plein soleil, 1960)에서 젊은 날의 고뇌가 팽만한 시대정신을 포착했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을 바탕으로 뉴웨이브(New Wave) 시나리오 작가인 폴 제고프가 각색을, 뉴웨이브 스타일에 공을 세운 뛰어난 촬영기사 앙리 드케가 촬영을 맡았다. 1940년대를 풍미했던 할리우드 B급영화의 음울한 정취를 떠오르게 하는, 태양빛에 잘 그을린 필름누아르인 <태양은 가득히>. 이 영화에서 24살난 알랭 들롱은 엄청난 부와 사랑에 대한 욕망으로 인해 결국은 파멸하는 주인공 톰 리플리 역을 설득력 있게 연기했다. 문제적 청년 톰 리플리는 친구 필립(모리스 로네)을 속여 돈을 갈취하고, 그를 죽인 뒤 그의 여자친구 마리 라포레를 자기 여자로 만든 다음, 죽은 친구의 행세를 하는 불안정한 정신의 소유자이다. 하이스미스의 소설 원제는 <자줏빛 정오>(Purple Noon). “명작을 몰라보다니” <피핑 톰> 평단 혹평 영국 합작 공포영화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 마이클 파웰의 신작 <피핑 톰>(1960)이 평단의 혹평을 받고 있다. 정신병에 걸려 여자들을 살해하는 젊은 영화 촬영기사 역으로 칼 봄이, 그의 타깃이 되는 발레리나 역에 모이라 시어러가 각각 열연했다. 16mm 카메라로 타깃이 되는 여인들을 훔쳐보며 카메라의 삼각대 다리로 희생자들을 찌르는 엽기적 행각을 보여주는 <피핑 톰>은 많은 이들을 곤혹스럽게 할 만큼 추악하면서도 대담하고 놀라운 영화다. 파웰 자신이 봄의 아버지 역을 맡아, 고의로 자기 아들을 공포에 질리게 하고 그의 반응을 촬영하는 심리학자로 출연한다. 더 나아가 영화 속 아이는 파웰의 아들 콜롬비아가 직접 연기했다. 한 분노한 평론가는 “한마디로 <피핑 톰>은 수세식 변기로 씻어내려버려야 마땅한 영화”라고 평했다. 그러나 영화가 보여주는 블랙유머, 그리고 파웰의 주된 관심사인 인생과 예술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에 대한 치밀한 탐구는 이 영화가 갖고 있는 흔치 않은 미덕으로 그를 논쟁적인 감독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영화사신문 제26호(1961∼1963)

영화사신문 제26호 The Cine History 격주간·발행 씨네21·편집인 이유란 1962 ∼ 1963 <만주인 포로> “케네디, 미안하오” 케네디 암살 사건에 책임느껴 영화상영 중단 1963년 말, 존 F. 케네디의 죽음이 <만주인 포로>의 ‘실종’을 불러왔다. <만주인 포로>가 11월23일 케네디 암살 사건 직후 극장가에서 사라졌다. 케네디가 사망하자 배급사가 일종의 ‘책임’을 느끼고 영화 상영을 중단한 것이다. 개봉한 지 1년이 지난 영화가 새삼 문제가 된 것은 <만주인 포로>가 대통령의 암살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존 프랑켄하이머 감독의 <만주인 포로>는 6·25 전쟁에 참전하고 귀향한 미군들이 겪는 고통을 그린 영화. 주인공인 마르코와 쇼는 참전 당시 북한군의 포로로 잡혀 공산주의 사상을 세뇌받았다. 그때 겪은 고문으로 악몽에 사로잡힌 마르코는 공산주의자들이 쇼에게 동료들을 죽이는 것은 물론 미국 대통령을 암살하도록 세뇌시켰다고 믿게 된다. 케네디 사망 뒤 문제가 된 것은 바로 여기, 곧 영화에 대통령의 암살이 언듭되고 있는 대목이다. 사실 이 부분은 그 내용의 민감함 때문에 영화제작 전부터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배급사인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사 대표 아서 크림은 거듭해서 시나리오상의 이 부분을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영화의 주연배우이자 제작자인 프랭크 시내트라는 이러한 압력에 굴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가까운 사이였던 케네디를 직접 찾아가, 원래 시나리오대로 영화를 찍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케네디 사망 이전에도 <만주인 포로>는 1962년 시사회 직후 이미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좌파와 우파 모두, 이 영화가 상대 진영의 이데올로기를 선전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곧 공산당이 발행하는 <민중의 세상>은 <만주인 포로>가 “미-소간의 긴장을 상업적으로 이용한 가장 악랄한 시도”라며 이 영화에 “독약”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반면, 가톨릭 비평가인 윌리엄 무어링은 좌익 프로파간다를 숨긴 영화라고 쏘아붙였다. 또한 남부 캘리포니아의 재향군인회는 “<만주인 포로>는 공산주의자들이 다시 영화산업에 스며들었다는 증거”라며 “HUAC는 할리우드를 재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이념의 대립은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의 한 극장에서 <만주인 포로>가 개봉하던 날 극명하게 드러났다. 곧 이날, 극장 앞에서 공산주의자들과 반공산주의자들이 나란히 서서 피켓 시위를 벌이는 진풍경이 연출됐던 것이다. “관습·구속으로부터 자유” 독일 오버하우젠영화제 “새로운 영화 창조” 선포 1962년 2월28일 독일 오버하우젠영화제에 모인 26명의 젊은 영화인들이 낡은 영화의 죽음을 알리는 ‘오버하우젠 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상업적인 독일 영화산업의 붕괴로 영화제작의 경제적 기초가 옮겨가고 있다”라며 “그 결과 새로운 영화가 도래할 기회가 왔다”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그들은 “우리는 기존 산업에 만연된 관습으로부터의 자유, 상업적 배려에서 나온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를 바탕으로 새로운 독일영화를 만들 수 있는 내용과 형식과 경제적 구조에 대하여 구체적 논리를 갖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날 선언에 참가한 영화인들은 주로 단편영화 감독들. 아직 장편영화를 만들어본 적이 없는 이들은 그러나, 단편영화로 지난 몇년간 국제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수상했고 비평가들로부터 인정도 받았다. 이러한 경험은 그들에게 새로운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불어넣었다. 이들은 “이러한 성공은 독일영화의 장래가 새 영화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놓여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라고 자신했다. 젊은 영화인들은 선언문 발표 이전 여러 차례 한자리에 모여 독일영화의 현재와 미래 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러한 연대감을 바탕으로 이들은 장편영화에서도 새로운 독일영화를 창조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선언문은 “낡은 영화는 죽었다. 우리는 새 것을 신봉한다”로 끝난다. 미국 ‘멀티플렉스’ 탄생 미국 극장가에 ‘멀티플렉스’가 등장했다. 1963년 스탠리 H. 더우드는 미조리주 캔사스시티에 있는 쇼핑센터 안에 두개의 작은 상영관을 가진 극장을 오픈했다. 이로써 관객은 쇼핑과 영화관람을 동시에 할 수 있게 됐다. 복합관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사실, 쇼핑센터 극장은 1960년대 초부터 미 전역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영화잡지인 <박스오피스>는 1961년 쇼핑센터 극장을 “영화계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스타”라고 평했다. 쇼핑센터 극장은 몇 가지 점에서 기존 극장사업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여겨졌다. 곧 도심 안에 있는 극장들은 너무 낡아 철거해야 할 형편이었고, 드라이브 인 극장은 교외의 땅값 상승으로 새로 극장을 여는 데 돈이 많이 들었다. 반면 쇼핑센터 극장은 극장건물을 따로 지을 필요가 없으므로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었다. 관객의 접근이 용이하다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한편, 스탠리 더우드는 얼마 전 문을 연 멀티플렉스가 일단 성공했다고 보고, 앞으로 AMC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를 설립해 다른 지역으로 멀티플렉스를 확장할 예정이다. 니콜라스 레이 ‘불행의 반전’ <북경에서의 55일> 흥행참패로 할리우드 등돌려 “그를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이 말하겠다. 영화관에 가지마라, 더이상 영화를 보지마라. 그런 사람은 좋은 영화의 의미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감독’에 대한 프랑수아 트뤼포의 상찬이다. 그런데 요즘 이 감독, 실의에 빠져 마약과 술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다시는 할리우드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다시는 영화를 만들지 못하리라는 절망감 탓이다. 니콜라스 레이가 바로 ‘이 감독’이다. 니콜라스 레이는 ‘뛰어난 감독’으로 통했다. 특히 유럽의 평론가들이 그의 영화에 열광했다. 그럴 만도 했다. 데뷔작인 <그들은 밤에 산다> 이후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며 잇따라 성공작을 내놓았으니까. B급 필름누아르인 <그들은…> <외로운 곳에서>, 변주된 서부영화인 <쟈니 기타>, 새로운 세대의 도래를 알린 <이유없는 반항>, 그리고 <카이에 뒤 시네마>의 필자 페레둔 오뵈다로부터 레이의 최고작이라는 평가를 받은 1958년작 <파티 걸>까지, 그의 영화 대부분이 뛰어난 미학적 성취를 보였고 그 덕에 언제나 비평적인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60년대 들어 대규모 시대극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그의 영화인생은 ‘불행의 반전’을 맞게 된다. <왕중왕> <북경에서의 55일>의 잇단 흥행실패가 문제였는데, 그중 결정타가 된 건 1963년작 <북경에서의 55일>이었다. 이 영화의 실패 이후 그는 사실상 할리우드에서 쫓겨났다. 그가 연출하기로 되어있던 영화들은 다른 감독들에게 넘어갔다. <북경에서의 55일>은 무려 1700만달러가 들어간 대작 프로젝트. <아라비아의 로렌스>보다 200만달러가 더 들어갔다. 레이는 이 영화를 찍기 위해 스페인 마드리드 교외에 1900년대의 베이징을 통째로 재현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영화를 촬영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수만명의 중국인 엑스트라들을 그곳으로 불러모았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는 비평과 흥행에서 참패해 레이를 나락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장 뤽 고다르 인터뷰글쓰기도 영화를 만드는 한가지 방법이다 <네 멋대로 해라>는 놀라웠다. 비평가였던 장 뤽 고다르는 이 한편의 영화로 그때까지 데뷔한 수십명의 신인감독들을 제치고 단숨에 누벨바그의 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는 해마다 새로운 실험물들을 내놓고 있다. <카이에 뒤 시네마>가 1962년 11월 고다르를 만났다. 비평가, 감독이기에 앞서 영화광인 그는 인터뷰에서 ‘영화를 살다’(live the cinema)라는 표현을 여러 번 입에 올렸다. 비평가로서의 경험이 영화를 만드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나. <카이에 뒤 시네마>의 우리는 모두 스스로를 미래의 영화감독이라고 생각했다. 글쓰기는 영화를 만드는 방법의 하나였다. 글쓰기와 연출, 그 사이의 차이는 양적인 것이지 질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 중에 유일하게 100% 비평가는 앙드레 바쟁뿐이었다. 비평가 시절 나는 스스로를 영화감독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은 비평가라고 생각한다. 나는 에세이스트이다. 예전에는 글을 썼던 거고 지금은 영화를 만든다. 혹여 영화가 사라진다면 나는 텔레비전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텔레비전이 사라진다면 종이와 연필로 되돌아갈 것이다. 모든 형태의 표현에는 연속성이 존재한다. 그것들은 모두 하나이다. 처음 영화를 만들었을 때, 영화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지녔나. 우리의 데뷔작들은 모두 시네필의 영화다. 우리는 영화를 만들 때 이미 영화에서 보았던 것을 참조한다. 그건 순수하게 영화적인 태도였다. 촬영을 하면서 프레밍거, 쿠커 영화의 장면을 기억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인용했다. 그러면 안 될 이유가 있는가.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인용한다.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인용할 권리가 있다. 누벨바그의 꿈은 할리우드에서 1천만달러짜리 <스팔타커스> 같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난 저예산영화가 불편하지 않지만, 자크 드미 같은 감독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누벨바그가 거대영화에 대해 저예산을 옹호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나쁜 영화에 대해 좋은 영화를 옹호하는 것이다. 분명 저예산으로 만들어서 더 좋은 영화도 있지만, 더 많은 예산이 들어가야 더 훌륭한 영화도 있다. 그렇다면 누군가 <비브르 사비>를 1억프랑에 만들라고 제안했으면 어땠을 것 같나. 거절했을 거다. 그게 영화 만드는 데 무슨 소용인가. 미국식 제작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데에도 이점이 있다. 하지만 제작비가 커지면 그 영화는 프로듀서의 영화가 돼버린다. 오직 프랑스에서만이 프로듀서들이 작가라는 개념을 인정했다. 최고의 이탈리아 프로듀서들도 감독을 고용인 정도로 여긴다. 그래도 미국과 이탈리아의 영화산업에 차이는 있다. 이탈리아 산업은 무가치한 반면 미국은 스튜디오 시스템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정말, 전세계에서 최고였다. 미국인들은 단순함 속에 깊이를 불어넣을 줄 안다. 그들은 리얼하고 자연스럽다. 프랑스인들도 프랑스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 이전에 프랑스를 보려고 애썼던 사람은 자크 베케르뿐이었다. 다른 감독들은 리얼리티를 찍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영화 따로, 인생 따로였다. 그들은 영화를 살지 않았다. 단 신 들 오즈 야스지로 60년생 마감 1963년 12월12일 일본 감독 오즈 야스지로가 자신의 60번째 생일날 저녁, 세상을 떠났다. 지난 4월 중순에 병원을 찾아 암 선고를 받은 그는 그로부터 일년을 넘기지 못했다. 투병 중에도 그는 동료들에게 9월에는 다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1927년 시대극 <참회의 칼>로 데뷔한 그는 <어느 가을날 오후>까지 모두 33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마를린 먼로 의문의 죽음 1962년 8월5일 마를린 먼로가 전화기를 손에 꼭 쥔 채 침실에서 죽어 있는 시신으로 발견됐다. 사인은 수면제 과도 복용으로 추정된다. 유서는 남아 있지 않았다. 지난 5월21일 뉴욕 메디슨 스퀘어에서 열렸던 케네디 대통령의 생일파티가 먼로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마지막 자리였다. 국교모독죄 인정 - 파졸리니 4개월 집행유예 1963년 5월11일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에게 국교모독죄가 인정돼 4개월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파졸리니는 옴니버스영화 에서 국교를 모독했다는 혐의로 고소됐다. (Ro는 로셀리니, Go는 고다르, Pa는 파졸리니, G는 그레고레티를 뜻한다)의 한 에피소드인 <백색 치즈>에서 파졸리니는 종교의 메시지와 이를 전하는 종교인들간의 모순을 그려내 교계의 반발을 샀다. 예수에 관한 영화를 찍는 촬영장이 <백색 치즈>의 배경. 촬영 도중 주인공이 십자가 위에서 죽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알고보니 그가 잔치에서 백색 치즈를 너무 많이 먹은 것이 사인이라는 설정을 통해 파졸리니는 가톨릭을 저속화하는 종교인들을 신랄하게 풍자했다. 007시리즈 ‘스타트’ 1962년 제임스 본드 시리즈 첫 번째 영화 <007 살인번호>가 개봉했다. 1961년 영국의 제작자인 알버트 쿠비 브로콜리와 해리 샬츠만은 유나이티드 아티스츠와 계약을 맺어 앞으로 7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영화마다 액션, 이국적인 로케이션, 시각효과가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 계약의 내용이었다. 이안 플레밍의 소설에 등장하는 영국 스파이 제임스 본드를 주인공으로 한 <닥터 노>는 테렌스 영이 감독을, 숀 코너리가 주인공을 맡았다.

남성 마초의 진화,<나는 달린다>

<나는 달린다>MBC 수·목 밤 9시55분 꽃들은 어디로 갔을까? 한반도에 꽃미남 열풍이 불던 때가 있었다. 2001년 무렵이었다. 뽀얀 피부, 곱상한 생김새, 고분고분한 성격. 여자친구 말을 호환 마마보다 무서워할 것 같은 이미지의 꽃미남이 대중매체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꽃미남 열풍이 각종 잡지의 표지를 장식던 시절이 있었다. 꽃미남은 여성 상위시대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마침내 마초들의 시대가 거한 듯했다. 그러나 꽃시절은 오래 가지 않았다. 지금 텔레비전에는 남자들의 땀냄새가 물씬하다. MBC <나는 달린다>의 무철(김강우)의 직업은 용접공이다. 그러나 무철은 단순무식한 공돌이가 아니다. 일단 그는 ‘외로워도 슬퍼도’ 달린다. 용접봉을 들고 불꽃을 튀기며 일하는 모습에서도 땀냄새가 물씬하다. 게다가 그의 방은 손때 묻은 책들로 빼곡하다. 지식인 남성의 좀스러움과 노동계급 남성의 우악스러움에 지친 먹물 여성들의 판타지를 완벽하게 만족시켜주는 조건이다. 노동계급의 근육질에 중산층의 지성을 갖췄다니 웬만해서는 거부하기 힘들다. <나는 달린다>를 보면 무철의 매력에 빠져 나도 달리고 싶어진다. 무철은 또 책임지는 가부장이자 묵묵한 남자친구이며 속깊은 아들, 손자다. 고아인 무철은 동생에게 유사 가부장이다. 무철이 청계천 헌 책방을 처음으로 찾게 된 것도 동생에게 읽어줄 동화책을 사기 위해서였다. 전과자 동생이 끊임없이 사고를 쳐도 언제나 형은 동생을 믿고 보듬는다. 어떤 경우에도 화내지 않는 ‘책임지는’ 가부장 이미지다. 사진기자인 여자친구 희야(채정안)에게는 그저 말없이 지켜봐주는 묵묵한 남자친구다. 오는 사람 막지도, 가는 사람 잡지도 않는다. 그뿐인가. 집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동네 구멍가게 할머니에게는 다정다감한 손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 다 망해가는 공장 사장님과는 의리를 버리지 않는, 끝까지 믿고 따르는 유사 부자관계를 맺는다. 이 드라마는 우리 시대 연애 판타지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80년대의 속물적인 판타지 중 하나는 남자 대학생과 여공의 연애담이었다. 물론 욕망의 주체는 남성이었다. <나는 달린다>는 남녀의 신분을 뒤집는다. 대학을 갓 졸업한 여기자와 용접공의 연애담이 이야기의 중심축을 이루는 것이다. 이 욕망은 남성의 것이라기보다는 여성의 것에 가깝다. 평범한 듯 비범한 김강우의 외모는 무철의 캐릭터에 썩 잘 어울린다. 짙은 눈썹과 파릇한 구레나룻에서는 강인함이, 유난히 붉은 입술과 깊은 눈빛에서는 유약함이 드러난다. 적당히 저음의 목소리는 화룡점정이다. 그래서 드라마의 시청률은 바닥을 치지만, 연기자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김강우는 가장 데이트 하고 싶은 연예인 1위로 꼽히기도 하고, 그의 팬카페 회원 수는 1만명을 훌쩍 넘겼다. 이 드라마의 흥행 실패에도 불구하고 용접공을 주인공으로 한 또 다른 드라마까지 등장한다니 당분간 드라마에서 ‘땀냄새’는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러면 꽃들은 어디로 갔을까? 2002년 여름, 대∼한민국과 함께 김남일 열풍이 반도 남단을 강타했다. 근육질의 남성이 꽃미남을 꺾은 것도 이즈음이다. 축구선수 김남일은 물론 근육질이다. 김남일은 또 경기 도중 부상으로 그라운드를 빠져나가면서도 “경기 끝나고 나 빼고 나이트 가면 안 돼”를 외치는 귀여운 마초의 이미지를 가졌다. 자기팀 동료에게 부상을 입힌 선수에게 과격한 태클로 복수를 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이 귀여운 마초에게 한국 여성들은 “남일아 불 꺼라”라는 화끈한 농담으로 응답했다. 이 무렵 ‘근육’으로 승부하는 가수들도 부쩍 늘어나기 시작했다. 예전의 꽃미남들이 너도나도 근육을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신화가 근육을 키우고 나와 인기를 끈 것도 이즈음이다. 심지어 ‘평범함’으로 승부하는 국민가수 god조차 근육질로 무장하고 나왔다. 플라이투더 스카이, 비 등도 예외는 아니다. 이제 적당한 근육은 가수에게도 기본이 됐다. 근육질의 꽃미남의 등장에는 좀더 솔직해진 여성의 욕망이 투사돼 있다. 데뷔 초기에 몸매로 승부하는 배우들이 잇따라 나오기 시작했다. 권상우가 그 대표선수다. 권상우의 벗은 웃통이 없었다면, 권상우의 오늘도 없었을 것이다. 권상우뿐 아니라 이제 웬만한 배우들에게 단단한 몸매는 연기의 한 조건이 됐다. 땀냄새는 브라운관 안팎에서 풍긴다. 취향의 마초이제이션은 ‘추리닝 패션’의 유행으로 드러났다. 추리닝 패션이 뜨면서 아디다스가 떴고, 푸마가 인기를 끌었다. 아디다스와 푸마의 이미지는 나이키에 비해 훨씬 더 독한 땀냄새를 풍긴다. 거리를 뒤덮은 검은색 푸마 티셔츠와 빨간색 런닝화는 21세 초반 한국사회의 중요한 코드가 됐다. 이렇게 후끈한 땀냄새 속에 한국사회의 마초이제이션은 조금씩조금씩 진행되고 있다.신윤동욱/ <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