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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2003 대만영화 국제 심포지엄 - 차이밍량이여, 울음을 그쳐라

1. 허우샤오시엔의 리듬을 느끼다 몇년 전 처음 타이베이를 방문했을 때, 대만국립대학의 캠퍼스를 혼자 걷게 되었다. 밤이었다. 그러나 낮의 뜨거운 지열이 아직 남아 있었다. 잠깐 바람이 불었고 하늘을 쳐다보자 엄청난 키의 종려나무들이 보였다. 옆으로 자전거를 탄 학생들이 드문드문 지나가고 나는 그들보다 느리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 순간, 어떤 기시감, 데자뷰의 감각이 느껴졌다. 그건 허우샤오시엔 영화의 리듬이었다. <호남호녀>가 아마도 가장 가까울 것이다. 나는 꿈결 같은 그러나 슬픈 그 리듬감을 몸에 새기고 한국에 돌아왔던 것 같다. 지난 몇년을 돌아보면 내가 은밀히 가장 많이 마음을 빼앗겼던 것은 대만영화였다. 차이밍량, 허우샤오시엔 ,에드워드 양만이 아니다. 로테르담영화제에서 장초지 감독의 <흑암지광>을 보고는 지나치게 흥분해 남아 있는 다른 영화들을 보지 못한 적도 있었다. 사실 비평이나 이론을 하게 되면 머리가 분석적으로 그리고 가학적으로 회전하게 된다. 황홀경 상태에서 영화를 보는 지고지순한 쾌락을 뒤로 하고 관련 책들을 찾아 읽고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맥락을 생각하게 된다(또 그래야 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끔 ‘사무치게’ 좋아하는 차이밍량의 영화에 대해서는 <애정만세>에 대한 짧은 평을 제외하곤 긴 논문을 쓴 적이 없다. 하지만 아뿔싸! 선택을 해야 하는 시점이 왔으니 바로 이번 학술회의가 그러했다. 대만영화에 대한 국제 심포지엄을 하는데 참석하겠냐는 대만 영화학자 로버트 첸의 연락을 받고 한편으로는 예의 황홀경을 지켜야하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다른 쪽에선 대만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라는 강렬한 바람이 생겨났다. 이럴 때는 욕망이 이기는 법! 더구나 차이밍량이 참석할 것이고, 허우샤오시엔이 경영하는 서점 겸 시네마테크에서 만찬을 한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두말않고 가겠노라고 답장을 했다. 2. 폐허의 미학: 조리개와 스크린으로서의 대만 11월28일부터 11월30일까지 대만국립대학에서 열린 학술회의는 그야말로 당신이 대만영화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두세 가지 것들을 넘어 거의 전부를 알려주려는 기획의도를 갖고 있음이 분명했다. 대만의 루페이, 린웬치, 펭핀치아 등의 영화학자 등과 더들리 앤드루, 지나 마르체티, 크리스 베리, 데이비드 보드웰 같은 외국 학자들이 참석해 대만의 뉴웨이브와 그 이전의 역사, 하위 장르, 대만 영화사,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장초지와 대만의 흥행작 <더블비전> 그리고 리안의 <헐크>에 이르는 영화들을 분석하고 토론했다. 첫날 기조 연설은 더들리 앤드루 교수로부터 시작했다. 한국에도 번역된 <영화이론의 주요 개념들>(1984)의 저자인 그는 1981년 폴 앤드루와 공저한 <미조구치 겐지>라는 개론서로 일찌감치 아시아영화에 대한 관심을 보인 적이 있다. 이번 발표문은 ‘조리개로서의 대만, 스크린으로서의 대만’이라는 제목이다. 그는 홍콩의 “실종의 미학”에 대비, 대만을 ‘폐허의 미학’이라 부르면서 허우샤오시엔의 역사를 향한 조리개가 불안을 반영하는 스크린으로 나간다면 에드워드 양의 와이드스크린은 그 표면을 관통해 인터내셔널 근대성을 일별하게 한다고 진단한다. 허우샤오시엔의 <연연풍진>의 터널장면을 대만과 그 영화에 대한 진입로로 그리고 조리개로 볼 수 있지만, 막상 그 기차는 이미지를 기다리는 스크린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조리개가 스크린이 되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허우샤오시엔은 하나의 매개체로서 스크린을 가볍게 두드린 다음, 착시적 현실, 그 고통스러운 역사를 다시 경청하게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플라톤의 동굴과는 정반대되는 영화를 생성시킨다. 더들리 앤드루의 기조 연설에 이어 차이밍량, 허우샤오시엔의 영화에 대한 분석들이 이어졌다. 대만 차오퉁대학 림 키엔 켓 교수는 ‘누아르로서의 국가’라는 발표문에서 에드워드 양의 <고령가 소년살인사건>(A Brighter Summer Day)을 누아르 장르로 읽으면서, 이 잃어버린 시간의 누아르가 냉전시대, 대만 우파의 독재정권 시기에 설정되어 있음을 환기시킨다. 소년 범죄자들이 자신의 조직원들을 관리하는 방식이, 독재정권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또한 미국의 필름누아르와 이 영화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마지막엔 국가가 개입해 살인을 해결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그럼으로써 대만 누아르는 단순히 외로운 거리들, 쓸쓸한 탐정, 팜므파탈의 장르가 아니라 국가의 문제를 다루는 장르가 된다. 3. 첫째 날 저녁: 차이밍량의 울음 차이밍량의 영화를 다룬 패널(내가 발표한, ‘영화의 (아시아) 집: 시간, 외상 그리고 초/국가’ 그리고 왕잉오의 ‘욕망의 (탈) 지도화’, 그리고 수젠이의 ‘세계화의 도시에서의 유령주체’로 구성)에는 차이밍량이 직접 참석해 발표를 경청하고 자신의 근황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가 <하류>를 만든 뒤 대만 내의 비판을 견디다 못해 고향인 말레이시아로 가 있던 당시 잡지 <키노> 지면을 위해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그 어려운 때도 차이밍량은 예의 긍정적 에너지가 넘치는 얼굴과 맨발로 자신의 다음 프로젝트를 이야기했었다. 어떤 이는 차이밍량을 만나면 그 작은 키의 사람으로부터, 태산을 안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고 한다. 생생한 활기로 빛나는 다정다감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그는 학술회의장 밖에 이강생의 새 영화 <불견>(The Missing)과 새로 만든 <부산>의 입장권을 준비해놓고, 사람들에게 그것을 사달라고 애원하다시피 했다. 이어서 대만영화 관객에 대한 그의 불평은 10여분 정도 이어졌다. 그리고 그날 저녁, 학생회관에서 차이밍량과의 대화의 시간이 있었는데 빨간색 옷을 입은 이강생이 동반했다. 차이밍량은 <안녕! 용문객잔>이 비평적으로는 가장 많은 찬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배급이 되지 않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거기에다 이강생의 <불견>, 또 자신의 신작 <부산> 등의 제작으로 두 사람 모두 집을 은행에 담보설정해놓은 상태라고 했다. 대만 관객이 완전히 할리우드에 침식되어 자신의 영화를 외면하고 있다면서 중국이나 한국에 가서 영화를 찍을까도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국제영화제의 정치도 비판했는데 어떻게 공리와 같은 배우가 심사위원을 맡을 수 있는가를 개탄하면서, 공리가 말하길 대중이 좋아하는 영화에 수상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앞으로도 불쌍한 공리는 차이밍량 영화에는 나오지 못할 것 같다. <하류>의 강에 떠오르는 시체 역할이면 모를까). 그래서 국제영화제를 돌아다니는 것도 이제 매우 피곤하며, 생활이 곤란하다고, 급기야는 눈물을 흘렸다. 이강생도 짧게 몇 마디를 했는데 자신의 첫 번째 영화 <불견>이 부산영화제에서 상을 받았고 그것이 상당한 위안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잠깐 <불견>과 <안녕! 용문객잔>의 장면들을 보았다. 차이밍량은 이제 극장표를 팔 시간이라면서 만원 정도의 가격이라고 했다. 그리고 영화감독으로서는 정말 할 수 없는 이야기까지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영화를 보지 못하더라도 표를 사달라는 것이다. 물론 나는 표를 샀지만 차이밍량이 느끼는 위기감을 가늠할 길이 없었다. 그는 현재 중요한 잡지나 신문에 세계에서 중요한 20명 혹은 40명의 감독 중 한 사람에 꼽히고 있고, 그에게 헌정된 웹사이트들도 자발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저토록 긴급한 호소를 하고 있고, 개별적으로 극장표까지 팔고 있으니 그 안과 밖의 간극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또 그런 차이밍량의 모습이 대만의 평론가들이나 다른 독립 영화작가들에게 그리 공감을 얻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한 평론가가 차이밍량에게 이제 제발 그만 하라고 말했다고 해서 내가 그럴 것이 아니라 제작 지원을 해주어야 할 것이 아니냐고 힐난하자, 다른 감독들보다 차이밍량의 상황은 훨씬 좋다고 설명했다. 4. 둘째 날: 여성 복수극과 갱스터영화 이튿날 세명의 여성학자로 이루어진 패널에서는 대만 뉴웨이브가 등장하기 이전의 1970년대와 80년대 초반의 영화를 다루었는데, 펭 핀치아는 1970년대의 블랙스플로이테이션영화(타란티노가 이 장르의 여성영웅 팜 그리어를 기용 <재키 브라운>을 만들었다) <클레오파트라 존스> 등과 대만의 여성복수극 영화 사이의 비교연구를 시도하려 했으나 바로 그 복수극 영화들이 대만 필름아카이브에 한편도 보관돼 있지 않아 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이어서 양 유안 링은 ‘대만의 지하세계를 다룬 영화에 대한 분석: <상해의 사회 파일에 관해> <분노> <사랑하면 죽여라>’라는 발표문에서 한때 ‘범죄영화’로 불렸던 영화들이 대만 영화연구에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보고, 이 영화들이 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초, 대만사회의 정치·경제적 변화와 세계 지정학의 변화와 관계되어 있음을 지적했다. 즉 1975년에 미국과의 외교 관계가 단절되고 장제스의 정치적 영향력이 줄고 오일 파동이 있었으며 독재에 대항하는 시위가 일어나면서 사회적 불안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라는 것이다. 여성복수극 영화에 이어 만들어진 범죄영화는 당시의 이러한 공포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같은 패널의 랴오 잉 치의 논문 ‘계엄령 이후 시대의 정체성과 새로운 대만 갱스터영화’는 위의 관심에 이어 허우샤오시엔과 장조치의 영화들이 그 이전 대만의 갱스터영화에 깊은 영향을 받았음을 지적한다. 즉 1983년 대만의 뉴웨이브가 등장하기 이전 익스플로이테이션영화가 대만 영화시장을 장악했다. 그러면서 117편의 영화가 만들어졌고 섹스와 폭력, 갱들이 주로 다루어졌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허우샤오시엔의 <비정성시> <남국재견>에도 갱들이 등장한다. 장초지의 <흑암지광>도 대만 원주민들과 본토인들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위의 발표문들은 이제까지 대만의 뉴웨이브를 작가적, 예술영화의 관점에서 균질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넘어 그 이전의 대중문화와 하위 장르 영화들과 만나게 하는 생산적인 연구 태도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5. 셋째 날: 허우샤오시엔의 서점에 놀러가다! 마지막 날, 데이비드 보드웰의 허우샤오시엔의 텔레포토 미학에 대한 기조 강연에 이어 장초지의 영화를 대만의 뉴웨이브와 다른 ‘또 하나의 영화’로 설정하는 루 페이의 시도, ‘장초지 영화의 홀린 시간’이라는 크리스 베리의 발표가 이어졌다. 지나 마르체티는 리안의 <헐크>가 미국 내 이라크 사막에서 벌어지는 공포를 건드리고 있다고 보고, 비평적, 흥행적 실패에도 불구하고 옹호되어야 할 영화라고 주장했다. 이어 로버트 첸의 <더블비전>의 스페셜 이펙트 효과와 영화의 디지털화에 대한 주목, 그리고 해적복제를 대만영화의 새로운 대안적 배급 경로로 보자는 카피레프트, 왕슈젠의 용감무쌍한 발표를 끝으로 3일간의 학술회의는 끝이 났다. 전반적으로 대만의 영화연구자들은 한해에 장편영화가 7편밖에 제작되지 않는 상황에 깊은 절망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한국의 영화정책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기도 했다. 독일 뉴저만 시네마의 운명처럼 대만의 뉴웨이브가 한줌의 학자들과 미래를 위한 영감을 남겨놓고 끝날 것인가 아니면 장초지처럼 국제영화제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작가들과 <더블비전>과 같은 흥행작으로 명맥을 잇다가 새로운 도약을 할 것인가는 여전히 미지수다. 드디어, 학술회의가 끝난 저녁 허우샤오시엔이 기획했다는 성품문고로 향했다. 옛 미국대사관 자리에 들어선 이 새로운 타이베이의 명물은 그야말로 영화광들의 천국이었다. 특히 오주의 <만추>가 상영되는 와중에 홍콩, 대만, 일본의 DVD들을 마음껏 고를 수 있었고 영화책들도 상당했다. 우리는 서로 부딪치면서 열심히 희귀 DVD를 찾아냈다. 이층에는 카페와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어 대만국립영화학교 학생들이 만든 영화를 함께 감상하기도 했다. 학생들의 작품으로 판단하건대 대만 학자들의 우려는 기우로 보였다. 다만 할리우드에 경도된 관객을 대만의 포스트 뉴웨이브의 영화로 어떻게 다시 유혹해낼 것인가, 는 여전히 문제로 보인다. 여하간 차이밍량 감독이 울음을 그치고 이런 새로운 젊은 감독들과 더불어 대만영화에 또 한번의 변화를 가져오길 바랄 뿐이다.

워킹 타이틀 대표작가 리처드 커티스 [1]

<러브 액츄얼리>로 감독 데뷔한 워킹 타이틀 대표작가 리처드 커티스 세상에는 두 사람의 리처드 커티스가 있다. 한명은 <블랙애더> <미스터 빈> <디블리의 교구 목사>를 쓴 시트콤 전문작가이고 다른 한명은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노팅힐> <러브 액츄얼리>의 각본을 쓴 로맨틱코미디 작가이다. 이 둘을 연결하는 것은 어색하고 이상하다. 한 작가가 텔레비전과 영화 모두를 넘나드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한명의 작가가 쓴 각본들이 장르와 매체에 따라 극단적으로 다르다면 그건 신기하고 불편하다. 무자비한 블랙유머의 대명사 시트콤 작가 리처드 커티스는 냉정하고 무자비하며 영국적인 블랙유머에 강하다. 그의 대표적인 걸작 <블랙애더>를 보자. 그와 로완 앳킨슨, 벤 엘튼은 블랙애더라는 성을 가진 일련의 주인공들을 난처한 곤경 속에 밀어넣으며 (가상의) 리처드 4세 시절부터 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영국 역사를 멋대로 두들겨부수고 모욕하고 겁탈했다. 그들은 이 우상 파괴적인 걸작 시리즈를 통해 인간들의 우매함이 얼마나 극단적인지, 어떻게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그 어리석음의 총합이 원래의 어마어마한 양을 유지하고 있는지 보여주었다. 주인공 전원의 전사로 끝나는 장엄한 <블랙애더4>의 결말을 쓸 때를 제외한다면 그들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냉혈한들이었다. 아무리 냉정한 작가들이라고 해도 자신의 창조물들에게는 약간의 관대함이라도 보이는 법인데, 이들에겐 그런 관대함도 없었다. 교활한 궁중 집사였던 <블랙애더3>의 주인공을 제외한 대부분의 블랙애더들은 작가들로부터 어떤 자선도 구하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블랙애더>의 콤비인 앳킨슨, 엘튼과 뭉쳤던 <미스터 빈>에서도 커티스는 여전히 냉정했다. 물론 영국 역사에 대한 지적인 야유였던 <블랙애더>와는 달리 <미스터 빈>은 거의 대사가 없는 슬랩스틱이었고 로완 앳킨슨이라는 걸출한 코미디 스타의 개성에 의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기본 성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감상적인 채플린과는 달리 빈은 처음부터 끝까지 면도날처럼 건조하고 날카로웠다. 어린아이와도 같이 순진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논리로 세상을 사는 미스터 빈은 영국 중산 계층의 예절바르고 안전한 세계를 뒤흔드는 무정부주의적인 폭풍과도 같았다. 여기엔 로맨스도 미화도 없었으며, 그건 주인공 미스터 빈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리즈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주인공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말랑하고 달콤한 로맨스의 길로 그런 그가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의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로맨스로 영화계에 뛰어들었던 것이다(사실은 <톨 가이>가 먼저지만 지금 이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그리고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이 그냥 보통 영화인가? 너무나도 달짝지근하고 안전해서 최근 앙케트 때엔 가장 유치한(cheesy) 영화 리스트에까지 올랐던 영화이다. 갑자기 그가 사람이 바뀐 것일까? 아니면 원래부터 그는 그런 남자였던 걸까?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과 같은 해에 나온 그의 마지막 시트콤인 <디블리의 교구 목사>에서부터 변화의 흔적을 찾아도 될까? 던 프렌치가 연기한 뚱뚱하고 리버럴한 여자 교구 목사가 보수적인 마을에 부임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루고 있는 이 시트콤은 그의 이전 작품들에 비하면 상당히 따뜻했다. 여전히 이야기와 주제는 우상파괴적이었지만 커티스는 그가 만든 캐릭터들은 존중했고 그들에게 관대했다. <디블리의 교구 목사>의 이런 성격은 시골 마을의 괴짜들을 주인공으로 한 일반적인 영국 시트콤의 성격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지만 이 역시 커티스의 최근 개성이 굳어지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을 듯하다. 여전히 그의 영화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감상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러나 또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은 원래부터 커티스의 내부에 내재되어 있었을 수도 있다. <디블리의 교구 목사>는 그가 거의 처음으로 전권을 휘두른 작품이었다. 로완 앳킨슨이라는 인물의 개성과 공동작가 존 엘튼의 도움 속에 어느 정도 묻혀 있을 수밖에 없었던 <블랙애더>나 <미스터 빈> 시리즈와는 달리 <디블리의 교구 목사>는 커티스 자신의 개성이 좀더 자유롭게 발휘된 작품이다. 이 작품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쓰여졌을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을 통해 원래부터 내재되어 있던 그의 좀더 온화하고 솔직한 면이 터져나왔다고 추정해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게다가 이 두편의 작품이 나왔던 94년에 그는 벌써 30대 후반이었다. 슬슬 젊은 날의 냉소를 접고 부드러워질 때가 된 것이다.

하면 된다는 고집만 버리자, <부두 빈스>

장르: 어드벤처 배급사: 마이크로소프트 플랫폼: Xbox 언어: 영어 음성/영어자막 “내 이름은 빈스. 깨어보니, 집안이 엉망이더군. 무슨 일이지? 그때 샤메인 마님의 텔레파시가 느껴졌어. 코스모에게 납치를 당하셨대. 세계 평화가 달렸다는 말씀에 용기백배, 놈들의 소굴로 출발! 첫 번째 보스 몬스터 ‘죽음의 돼지 저금통’을 해치우는 건 식은 죽 먹기였는데 방금 마주친 ‘휘발유 펌프’는 쉽지 않네. 녀석이 던진 쇳덩이에 맞아 죽고 살아나기를 여러 차례. 싸움으로 맞설 상대가 아니란 결론을 내리는 순간, 눈에 들어온 푯말 하나. ‘화기 접근 금지’, 그래, 이거야!” <부두 빈스>는 흥겨운 재즈 선율 속에 작은 인형의 모험을 따라가는 어드벤처 게임이다. 이 세계에서는 ‘부두’란 단어가 연상시키는 음습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주인공보다도 귀여운 몬스터와 웃음을 자아내는 빈스의 엽기발랄한 자해 공격이 있을 뿐이다(빈스는 ‘부두 인형’이다!). <부두 빈스>의 중요한 관문은 대부분 매운 주먹이 아닌 반짝이는 재치로 지나야 한다. 그렇다고 혹시나 이 게임 때문에 자신의 지능지수를 의심하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힌트는 늘 가까운 곳에 있을 테니. ‘하면 된다’는 고집만 버리자. 생각을 유연히 하고 고개를 드는 순간,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눈에 쏙 들어올 것이다. 무난한 난이도, 게이머를 지치게 하지 않는 길이의 <부두 빈스>는 어드벤처 장르에 입문하려는 이에게 딱 어울리는 게임이라 하겠다. 그런데, 대화에서 이야기 진행의 단서를 찾아내는 어드벤처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부두 빈스>가 영어 버전 그대로 출시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특정 게임이 5년 넘게 판매 차트 1위를 지키는 기형적 시장에서, 비인기 장르인 어드벤처에 한글화까지 더하면 수지를 맞출 수 없다는 것이 배급사의 판단이었겠지만. 심형래씨의 말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팔리지 않으니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일까, 신경을 쓰지 않으니 팔리지 않는 것일까? 노승환/ 게임마니아 bakerboy@hanafos.com

<출발!비디오…> 500회 이끈 홍은철 아나운서

지난 7일 문화방송 텔레비전 <출발! 비디오여행> 500회 특집방송에 출연한 영화배우 안성기는 프로그램 진행자인 홍은철 아나운서를 보고 “남의 자리 빼앗은 것같아 미안해”라고 말했다. 얼마전 문화방송 주최 ‘제2회 대한민국 영화상’의 사회를 맡아본 안성기는 “당연히 내자리”라고 생각했다 영화제 사회자 자리를 놓친 그의 서운한 마음을 읽은 것이다. 부천영화제도 5회나 진행했고, 대종상의 사회도 맡아봤는데 정작 내집 행사에서는 한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나 배제돼 절망감을 느꼈다”는 그는 이번 일로 85년 입사해 18년이나 다닌 회사를 그만둘까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얼핏 직장인으로서는 ‘튀는 발언’처럼 들리지만 그의 말뜻을 뜯어보면 영화와 일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같은 게 고스란히 묻어난다. 1993년 10월29일 <비디오산책> 이름으로 첫회가 나간 이후 지난 7일 500회를 맞은 <출발! 비디오여행>의 진행자로 한주도 거르지 않고 꼬박 10년간 자리를 지켜온 그를 일러 박찬욱 영화감독은 “영화인의 친구”라고 칭한다. 주성우 책임 피디는 “아나운서보다 영화인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고 들었다. =영화사 주최 시사회는 놓치지 않고 가려고 한다. 한달에 새 영화는 10~15편 보는 것같다. 디브이디와 비디오를 합해 한달에 20~30편 정도 챙겨본다. 어머니와 형님·누나가 영화광이어서 4~5살 무렵부터 영화 속에서 살았다. 어릴 때부터 형성된 영화에 대한 감성이 내 몸에 녹아있는 것같다. 학창때 친구들이 모두 나를 영화와 관련해 기억하고, 직접 본 영화보다는 나한테 이야기 들은 영화가 많다고 한다. -엠시가 개봉작을 다 챙겨볼 필요는 없지 않은가 =대본을 쓰는 작가가, 영화를 보는 관점이 반드시 옳다고 볼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원고의 최종 점검자가 될 수밖에 없다. 진행자는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다. 작가와 생각이 다를 경우 “이 멘트는 적당한 것같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해 제작진과 협의해 고치기도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은 선에서 가능하다. 영화를 보지 않으면 (내가 소개하는 영화에 대해) 판단할 근거가 없기 때문에 가능하면 많이 보려 한다. -한 프로그램을 10년쯤 진행하다보면 매너리즘에 빠질 법도 한데…. =남들이 요구하기 전에 내 스스로 변화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제작사(서울텔레콤-세종미디어)가 간판을 몇번 갈아달고 스스로 프로그램 내용 때문에 막다른 골목에 든 느낌을 가진 적은 있어도 매너리즘은 없었다. 내 자리는 누가 대체할 수 없다는 고집 같은 게 작용한 것같다. 자신에게 싫증을 잘 느끼는 성격이 아무래도 변신에 자연스럽게 도움이 된 것같다. 영화광 가족덕 코흘릴 적부터 영화와 친구, “대한민국영화상 사회 놓쳤을땐 정말 서운” -<출발! 비디오여행>이 한국영화에 끼친 영향을 어떻게 평가하나. =93년 출범때만 해도 제작진의 전문성이 떨어졌으나 3년뒤부턴가 영화과 출신 피디가 들어오고 영화잡지 기자들이 작가로 참여하면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고 본다. 마침 그때 영상세대가 본격적으로 움트면서 한국영화 붐이 시작됐다. <출발! 비디오여행>이 한국영화 붐에 기여했다고 자부한다. <출발! 비디오영화>를 통해 팬들의 눈높이가 높아지고, 만드는 사람들도 수준을 높여야겠다는 변혁의 시발점이 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출발! 비디오 여행>을 포함해 영화소개 프로그램은, 최근 같은 영화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다 방송위로부터 간접광고라는 지적과 함께 징계를 받지 않았나. =영화소개 프로그램에서 정보전달과 홍보의 구분이 사실상 쉽지 않다. 또 지난 영화를 소개하면 당장 시청률이 크게 떨어지는 게 현실이다. 품위를 지키고 싶어도 경쟁에 내몰리는 현실이 때론 안타깝다. (<출발! 비디오여행> 제작진은 방송위 지적 이후 한 영화를 1회 이상 소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레옹 패션을 선보이는 등 패션감각이 남다르다. 패션도 전략인가. =굳이 튀려는 생각은 아니지만 내 몸에 걸치는 것에 싫고 좋은 게 뚜렷하다 보니 아무거나 선택을 하지 못한다. 또 단점이 많은 체형이라 보완하는 측면에서 패션감각을 발휘하는 편이다. 90년인가 91년인가 어떤 프로그램의 영화코너를 진행하면서 아나운서로서는 처음 넥타이를 안매고 스웨터만 입고 진행하다 (아나운서실) 실장님한테 불려가 혼난 적이 있다. -녹화할 때 카메라맨에게 “늙어 보이니까 바스트 샷을 잡지 말아달라”고 하고 기자들한테 나이를 밝히지 않는 것은 인기관리 때문인가 =영화 관객의 95%는 20대인데 선입관 때문에 나한테 거리를 느끼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나이 때문에 나를 어렵게 생각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최근에는 황인뢰 감독의 <한뼘드라마>에 출연했는데…. =황인뢰 감독이 녹화장에 찾아와 내심 바라던 드라마 출연을 제의해와 선뜻 받아들였다. 박찬욱 감독은 언젠가 나한테 뱀파이어역을 해보자고 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역시 뱀파이어역이었다. 남과 다른 소수계층, 아웃사이더를 상징하는 역이라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영화사신문 제27호(1964∼1965)

영화사신문 제27호 The Cine History 격주간 · 발행 씨네21 · 편집인 김재희 1964 ~ 1965 '마카로니 웨스턴' 나가신다 개척정신은 없다, 단지 냉혹한 총잡이의 세계만 있을 뿐 세르지오 레오네 <황야의 무법자>/b> 세르지오 레오네, 클린트 이스트우드, 그리고 엔니오 모리코네. 세 사람으로 충분했다. 60년대 들어 시작된 서부영화의 탈신화화는 이 세 사람의 협업으로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형식의 장르를 탄생시켰다. 64년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 65년 <속 황야의 무법자>(For a Few Dollars More)는 ‘마카로니 웨스턴’(macaroni western)이란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원조격인 미국 서부극을 압도할 정도의 인기를 얻었다. 동시에 기존의 미국 서부영화가 왜곡했던 미국 역사에 대한 비판적 텍스트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스페인에서 촬영한 광활한 풍광, 심도를 왜곡시키는 광각렌즈의 사용 등 레오네의 화려한 시각적 양식은 서부영화 장르의 관습을 완전한 의식(儀式)의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렸다는 평을 얻고 있다. <황야의 무법자>는 한 사나이가 강력한 두 패거리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하며 이익을 챙기고, 끝내 그들을 제거한다는 내용. 플롯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61년작 <요짐보>(Yojimbo)에서 따왔다. 찌푸린 인상에 담배를 씹어 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별다른 명분도 없이 그저 냉혹하고 자기 자신만을 챙기는 새로운 총잡이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잔혹하고 강렬한 서부극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낸 레오네 감독은 사실 밥 로버트슨이란 미국식 가명으로 이 영화의 연출을 맡았고, 다른 이탈리아 스탭 역시- 심지어 엔니오 모리코네는 댄 사비오라는 이름으로- 가명을 사용했다. 10만달러라는 저예산으로 야외촬영은 스페인에서, 실내신은 로마의 시네시타에서 찍었다. ‘무법자’ 시리즈, 다시 말해 ‘마카로니 웨스턴’의 출현을 얘기할 때 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엔니오 모리코네는 애초 클래식의 대가를 꿈꾸었지만, 생활고에 시달려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음악을 맡기 시작했는데, <황야의 무법자>로 뜨기 전에도 몇개의 가명을 쓰며 <일 페데달로> 등 영화작업에 참여해왔다. 모리코네의 음악은 웅장한 현악으로 배우들의 연기를 영웅화하거나 갑작스러운 휘파람 소리로 그것을 조롱하기도 했다. 레오네는 모리코네를 자신의 ‘각본가’라고 부를 정도였는데, 그것은 감정을 표현해주는 그의 음악이 영화의 주제적인 측면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레오네 감독은 66년 개봉을 목표로 ‘무법자’ 시리즈의 완결판격인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The Ugly)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컬러는 ‘마음 상태로서의 풍경’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붉은 사막>으로 현대적 미감 창조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는 자신의 첫 번째 천연색 영화 <붉은 사막>(The Red Desert, 1964)에서 상징적이고 표현주의적 색채를 사용, 현대영화의 새로운 미감(美感)을 창조했다. 이 영화는 신경증에 시달리는, 부유한 엔지니어의 아내 질리아나(모니카 비티)가 산업사회의 불모지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녀의 개인적인 혼돈, 그리고 자연과 산업사회가 복잡하게 충돌하는 과정을 안토니오니는 상징적 색채와 추상적 형식미를 통해 모던하게 드러냈다. 공장에서 뿜어져나오는 파도치는 거대한 노란색 연기, 항구의 회색 안개를 뚫고 계속해서 오가는 선박들, 그리고 공장 쓰레기에 불쾌한 빛을 던지는 산업염료들, 이 모든 것이 마을의 자연적 풍광을 침입해 들어가는 것들로 제시된다. 또한 깊은 붉은색과 녹색은 남편의 친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여주인공의 정신상태를 드러낸다. 반면 밝은 색조는 그녀가 공상의 나래를 펴 판타지로 진입할 때 쓰였다. 여주인공의 정신질환은 현대인들이 감당해야 하는 소외와 고독에 대한 징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안토니오니가 산업 구조물에서 발견한 단아한 선들과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순도의 색채, 매혹적인 질감 등은 그를 가장 현대적인 감독 중 한 사람으로 자리잡게 했고, 1964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안겨주었다. 영화계도 비틀스 열풍 일상 다룬 <하드 데이즈 나잇> 개봉, 리처드 레스터 자연스런 카메라와 신선한 영상으로 큰 반향 미국의 리처드 레스터 감독은 별다른 플롯없이 희대의 스타 비틀스의 일상을 그냥 쫓아다녔다. 그리고 뮤직비디오 같기도 하고, 다큐멘터리 같기도 한 독특한 영화 한편을 만들어냈다. 주연이야 당연히 비틀스의 멤버인 존 레넌,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64년작 <하드 데이즈 나잇>(A Hard Day’s Night)이다. 영화는 비틀스 멤버들이 리버풀에서 ‘비틀마니아’(Beatlemania)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TV쇼 출연차 런던행 기차에 오르는 모습에서 시작한다. 런던에 도착한 비틀스 멤버들은 리허설 도중 무대를 빠져 나와 TV 연출진을 당황하게 한다. 그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캔 바이 미 러브>(Can’t Buy Me Love)를 배경음악으로 공터를 달리는 비틀스 멤버들은 영화팬들을 열광시켰다. 비틀스 멤버들의 무정부적인 성향을 반영이라도 하려고 했을까. 레스터 감독은 비틀스 멤버들을 그냥 내버려둔 채 영화를 찍었다. 때로는 헬기를 동원하기도 하면서. 그리고 파격적으로 의외인 장면에 비틀스의 음악을 배치하고, 과감한 점프 컷(jump cuts)과 플래시백 등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카메라 기법을 자유롭게 동원했다. 이 작품은 막 스타덤에 오른 비틀스의 하루를 따라가보자는 감독 리처드 레스터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고, 이를 계기로 레스터는 유명세를 얻었다. 영화 내엔 타이틀곡인 <하드 데이즈 나잇>을 비롯해 히트곡 13편이 들어 있다. 이 영화는 비틀스가 TV쇼인 <에드 설리반 쇼>에 출연, 미국에서도 대중적인 인기를 확보한 뒤 얼마 되지 않아 개봉되었다. 중국 문화혁명 바람 마오쩌둥 “사회주의적 혁신” 성토 중국의 마오쩌둥 주석이 ‘문화’ 개념의 재정의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중국 영화계에도 한파가 몰아닥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중국 영화계의 쇄신 조짐은 마오의 아내인 장칭(江靑) 휘하에 있는 연극계에선 이미 기정 사실화된 것이다. 모든 고전적인 레퍼토리는 진보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마오 주석은 64년 2월 <인민일보>를 통해 “작가들, 극작가들, 영화감독들이 당의 노선을 따르고 있지 않다”며 강한 불만을 표명했다. 마오는 이어 “그들은 수정주의라는 미끄러운 언덕길을 내려오고 있는 중이다”라며 “온 나라가 재교육을 받아야 하는 지경”이라고 말했다. 지난해(1963) 12월에도 마오는 “많은 영역에서 사회주의적 혁신은 거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고, 과거의 것들이 아직도 군림하고 있다”고 성토한 바 있다. 매년 480여편의 작품을 생산하고 있는 중국 영화계에 이데올로기 측면의 급격한 변화가 찾아올 것이란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줄리 앤드루스 ‘즐거운 비명’ <메리 포핀스>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사운드 오브 뮤직> 흥행 신기록 줄리 앤드루스는 연극무대에서 자신의 출세작인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 1964)의 영화화 과정을 보며 크게 실망했다. 제작사인 워너브러더스픽처스는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의 스타인 앤드루스를 버렸다. 대신 대중적 인기에서 앤드루스를 능가하는 오드리 헵번을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의 주연으로 기용했다. 그러나 앤드루스는 헵번을 포함, 쟁쟁한 여배우들을 물리치고 1965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그것도 영화로는 데뷔작인 <메리 포핀스>(1964)의 주인공 자격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출연작인 <사운드 오브 뮤직>(1965)은 20년 넘게 깨지지 않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의 박스오피스 기록을 경신하며 영화사에 남을 명화로 기록됐다. 로버트 스티븐슨 감독이 연출한 <메리 포핀스>에서 ‘신인’ 앤드루스는 탁월한 노래와 마술사 연기로 상상과 현실의 세계를 이어놓았다. <메리 포핀스>는 특히 영화사 최초로 실사(實寫)와 애니메이션의 합성을 시도하며 영화 기술사적으로도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다. 제작사인 월트 디즈니는 이용 가능한 영화 기술을 총동원해 특수효과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박스오피스 신기록을 세운 <사운드 오브 뮤직>은 앤드루스의 전공 장르인 뮤지컬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할리우드에서의 영화화에 앞서 50년대 말 이후 1400여회의 장기 공연 기록을 세웠다. 또 뮤지컬에 앞서 56년 <트라프 가족>이란 이름으로 이미 독일에서 한 차례 영화화되기도 한 폰 트라프 일가의 실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감독 로버트 와이즈는 이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뮤지컬영화의 대가로 인정받은 인물. <도레미 송> <에델바이스> 등 걸작 삽입곡은 뮤지컬에서 이름을 떨친 작곡가 리처드 로저스와 작사가 오스카 해머스타인의 합작이다. 뒤늦게 영화에 데뷔, 60년대 중반 영화계를 석권한 줄리 앤드루스는 영국 태생으로 12살 때부터 무대에 섰고, 54년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 역시 뮤지컬 배우였던 줄리 앤드루스의 부모들은 네 옥타브를 내지르는 그녀의 재능을 발견하고 일찌감치 줄리에게 노래 교육을 시켰다고 한다. 단 신 들 시나리오작가 유니버설과 판권 소급 계약 65년 12월 미국 시나리오작가협회(The Screen Writers Guild)는 1948∼60년에 만들어진 영화에 대해 효력이 소급되는 새로운 판권 계약을 유니버설픽처스와 맺었다. 이 계약으로 시나리오작가들은 그들이 쓴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당시 영화들이 텔레비전에 방송될 경우 유니버설픽처스가 얻는 수익의 1.5%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장 뤽 고다르 SF스릴러 도전 장 뤽 고다르는 신작 <알파빌>(Alphaville, 1965)에서 테크놀로지가 가져온 ‘소외’문제에 대한 우화를 만들기 위해 SF스릴러라는 새로운 장르를 시도했다. 시간적 배경은 미래의 어떤 시점. 비밀 요원인 레미 코숑(대중적인 스릴러 배우인 에디 콘스탄틴이 맡음)은 우주 밖 외계의 나라로부터 알파빌이라는 도시로 우주여행을 하는 중이다. 알파빌이라는 도시에서 그가 행해야 할 임무는 폰 브라운 박사를 파괴시키는 것. 폰 브라운 박사는 알파빌 시민들을 무감각하게 하고 생기없이 멍청하게 만들는 ‘알파 60’이라는 컴퓨터의 발명자이자 조정자이다. 코숑은 폰 브라운 박사와 알파 60을 파괴한 뒤 브라운 박사의 딸과 함께 산산조각이 난 알파빌을 빠져나오는 데 성공한다. 원래 <타잔 vs. IBM, 알파빌>이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고다르가 가장 공을 들인 작품 중 하나. 내러티브와 등장인물의 대사에서 SF임을 느끼게 해주는데, 촬영기사 라울 쿠타르는 현대의 파리 시내를 그대로 찍어냄으로써 비인간화된 미래도시를 화면에 창조해내는 놀라운 솜씨를 보였다. 카트린 드뇌브 사이코 변신 인간 내부에 있는 사악한 본능과 악성(惡性)에 대한 탐구를 세밀하게 다루는 감독 로만 폴란스키는 1965년작 <혐오>(Repulsion)에서 우아한 카트린 드뇌브를 사이코로 등장시켰다. 런던의 사우스 켄싱턴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차가운 금발 미녀(카트린 드뇌브)는 정신분열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녀는 성적인 공포로 인해 자신의 남자친구인 존 프레이저를 살해하기에 이르고, 또 호색한인 집주인 패트릭 와이마크를 면도칼로 난자해 죽인다. 관객은 포장도로에 난 균열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그녀의 강박증에서부터 그녀 안에 자꾸만 떠오르는 무시무시한 망상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눈을 통해 광기의 끝을 경험하게 된다. 이 영화의 숨막힐 듯 부패한 감각은 드뇌브의 핸드백에 쑤셔박혀 있는 태아(胎兒) 같은 피부를 한 토끼 이미지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진심으로 믿게 만드는 영화, <아타나주아>

디지털 시대의 영화가 영도로의 귀환을 꿈꾸며 질주할 수도 있으리라는 것을 어느 순간 진심으로 믿게 만드는 영화 <아타나주아>는 픽션처럼 보이는 다큐멘터리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신화를 재현하려 드는 대신 카메라 자체를 바로 그 신화적 시간으로 가져가 촬영할 것, 흡사 <마태복음>을 찍을 때의 파졸리니를 연상케 하는 이 무모한 기획이 결국 ‘기적’을 만든다. 완전히 벌거벗은 채 눈덮인 설원을 질주하는 아타나주아의 모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이미지 가운데 하나다. 순수로의 회귀. 어처구니없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렇게밖에는 달리 말할 도리가 없다. 디지털영화 <아타나주아>는 참으로 신기하게도 디지털 시대의 영화가 영도(零度)로의 귀환을 꿈꾸며 질주할 수도 있으리라는 것을 어느 순간 진심으로 믿게 만드는 영화다. 도대체 이제 와서 그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아타나주아>는 스펙터클한 디지털 이미지들이 휩쓸고 지나간 뒤의 사막과도 같은 영토에 단순소박하기 그지없는 신화적 세계를 구축하고 운명, 사랑, 음모, 그리고 복수라고 하는 닳고 닳은 테마들을 끌어들인다. 그러니 우리는 100년이 넘는 영화사가 쌓아올린 모든 기억들을 뒤로 하고, 초기영화의 관객처럼 그저 저 이미지들이 주는 매력에 흠뻑 몸을 내맡기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오래전, 한 에스키모 공동체에서 있었던 일이다. 사우리는 악령의 힘을 빌려 족장의 자리를 차지한다. 하지만 그가 부족 내에 끌어들인 악의 힘은 대를 이어 전해지고 이는 종국에 부족의 균열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한편 사우리의 라이벌이었던 툴리막은 사우리가 족장이 된 뒤 부족 내에서 천대받으며 살아간다. 세월이 흘러 툴리막의 두 아들은 훌륭하게 성장하여 부족 사람들의 기대와 부러움, 그리고 질투를 한몸에 받는 인물들이 된다. 바로 아마크주아(강한 자)와 아타나주아(빠른 자) 형제. 아타나주아는 족장의 아들이자 그들 형제를 시기하는 인물인 오키와의 결투에서 승리해 오키의 정혼녀 아투아를 차지하게 되고, 심지어 오키의 누이인 푸야마저도 아타나주아의 두 번째 아내가 된다. 그리고 오래전 부족에 흘러들어왔던 악의 힘은 서서히 다시 지상으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아타나주아>는 디지털로 촬영된 에스키모 버전의 <잊혀진 조상들의 그림자>(세르게이 파라자노프, 1964) 혹은 <도마적>(티엔주앙주앙, 1986) 같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신인감독 자카리아스 쿠눅은 이런 신화적인 이야기를 매우 이상한 방식으로 찍어냈다. 영화에 담긴 광활한 설원의 풍경이 아무런 특수효과도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그 자체로 장관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서 디지털카메라 고유의 질감은 우리로 하여금 지금 ‘옛날 옛적’의 인물들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믿게끔 만드는 대신 모든 풍경과 인물을 지나칠 만큼 ‘동시대적’이고 ‘현재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러니까 <아타나주아>는 로버트 플래어티의 <북극의 나누크>(1922)와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영화인 것이다. 플래어티의 영화가 사실상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픽션이라면 자카리아스 쿠눅의 <아타나주아>는 픽션처럼 보이는 다큐멘터리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신화를 재현하려 드는 대신 카메라 자체를 바로 그 신화적 시간으로 가져가 촬영할 것, 흡사 <마태복음>(1964)을 찍을 때의 파졸리니를 연상케 하는 이 무모한 기획이 결국 ‘기적’을 만든다. <아타나주아>가 각종 영화제에 초청되고 많은 이들로부터 주목받는 영화가 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에스키모에 의해 직접 제작된 최초의 에스키모어(語) 영화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가 외부자의 시선이 아닌 내부자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것임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엑조티즘과 인류학적 시선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감독은 흔히 서구 제국주의가 타자를 재현하는 기술로 간주되곤 하던 것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함으로써, 이 작품이 내부자 스스로에 의해 만들어진 자기재현적 민속지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아타나주아>는 볼거리를 제공하는 데 결코 인색한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에스키모 고유의 생활방식과 관습, 그리고 규율과 의식(儀式)에 관한 풍성한 묘사는 누구에게나 흥미롭게 여겨질 법한 것들이다. 이 영화에서 매우 두드러진 몇 가지 것들, 즉 철저하게 기교를 배제한 촬영방식, 사실적인 것과 어색함 사이를 오가는 배우들- 대부분이 아마추어 연기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의 연기, 익숙한 듯하면서도 생경하게 느껴지는 플롯 등은 쉽사리 영화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타나주아>의 흡인력은 놀라울 정도이다. 불현듯 우리는 그 아무런 장식도 없는 화면 속에서 벌어지는 소박한 주술들마저도 경이로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놀라게 된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마법에 홀리기라도 한 듯, 2001년 칸영화제는 감독 자카리아스 쿠눅에게 신인감독상에 해당하는 황금카메라상을 안겨주었다. :: 감독 자카리아스 쿠눅 감독이 누구라고? “수천년 동안 살아남았던 우리 에스키모들만의 문화는 지난 50년 동안 완전히 변형되어버렸다.” 디지털로 만든 장편 데뷔작으로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했는가 하면 여러 평자들로부터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사를 얻어낸 <아타나주아>의 감독 자카리아스 쿠눅의 말이다. 그의 부모는 에스키모 원주민들이었으며 에스키모 공동체에서 태어난(1958) 그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문화와 생활방식을 몸에 익히며 자랄 수 있었다. 그는 9살에 캐나다 정부가 설립, 운영하는 학교에 들어가 거기서 영어를 배우게 되었는데, 이때 교실에서는 원주민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영화는 어린 시절부터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토요일마다 학교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입장료를 벌기 위해 작은 조각품을 만들어 내다 팔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반, 그는 조각품을 팔아 얻은 수익으로 포타팩(porta-pack) 비디오카메라와 26인치 텔레비전, 그리고 VCR을 구입했다. 이후 그는 지역방송에서 일하면서 과거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에스키모족 연장자들과의 인터뷰를 카메라에 담았다. 결국 그는 그러한 이야기들을 소재로 삼아 직접 영화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욕구를 품게 되었고, 이는 1991년에 에스키모 출신으로 구성된 최초의 독립영화사를 설립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그는 동료들과 함께 <누나부트: 우리의 땅>이라는 제목의 텔레비전용 시리즈물을 만들기도 했는데, 이는 1940년대 에스키모들의 삶에 관한 반 시간짜리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세대를 가로질러 대대로 이어져내려온 이야기”이자 “(에스키모인들이) 자라나면서 들었던 베드타임 스토리”를 영화화한 <아타나주아>는 자카리아스 쿠눅이 어렵사리 재정지원을 따내 완성한 그의 첫 번째 장편영화이다. 이 작품은 칸영화제에서 수상했을 뿐 아니라 에든버러국제영화제, 토론토국제영화제 등 숱한 영화제에 초청되어 좋은 평가를 얻어냈다.

[외신기자클럽] 현대 그리스 비극의 종말? (+영어원문)

마지막으로 그리스영화를 본 적을 기억하는지? 쉰이 넘은 사람이라면 아마 마이클 카코야니스의 영화 중 하나일 것이다. 그의 <희랍인 조르바>(1965)는 전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했었는데, 사실 미국 자본, 멕시코 배우(앤서니 퀸) 주연, 영어대사로 찍은 영화였다. 아직 쉰이 안 된 사람이라면 아마 테오 앙겔로풀로스 작품일 것이다. <율리시즈의 시선>(사진)의 이 감독은 고압적일 정도로 느리고 자만심이 강한 작품을 만들어, 그의 커리어는 전적으로 각종 영화제에 의존하고 있다. 1950년대에서 7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는 자국의 영화스타들이 따로 있을 정도로 영화산업이 번창했으나, 1974년 많은 영화사를 지원해주고 있던 우익 군사정권이 몰락하고 텔레비전이 발달하면서 대중영화산업은 무너지고 말았다. 언제나처럼 그 공백은 미국영화들로 채워졌다. 그러나 90년대 독일에서 한국에 이르는 많은 나라들처럼 그리스에서도 새로운 세대가 할리우드만이 양질의 주류 엔터테인먼트 세계특허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2천년이 넘는 역사의 도시 테살로니케는 유행에 앞서고 잘 노는 분위기를 풍기는 그리스 북부의 대학도시다. 그리스보다 ‘마케도니아’(알렉산더 대왕의 출신지)에 있다고 자부하며 발칸반도의 분위기가 짙다. 테살로니케는 지난 44년간, 국내 행사로 시작됐어도 이제는 그리스 최대 규모의 국제행사가 된 영화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본인이 마지막으로 이곳에 왔던 1999년에는 그리스영화의 대중적인 부활이 한창이었다. 남녀관계를 다룬 섹시코미디 <소의 오르가슴>(The Cow’s Orgasm) 감독인 올가 말레아,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를 제치고 흥행선두를 달리고 있던 <안전한 섹스>(Safe Sex)라는 아슬아슬한 코미디를 감독한 방송작가 출신 미할리스 레파스(Mihalis Reppas)와 타나시스 파파타나시우(Thanasis Papathanasiou) 같은 이들이 그 선두에 있었다. 그로부터 4년 뒤 상승세는 여전하여 지난해 20편이 넘는 영화가 제작됐다. 지난 11월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를 제치고 현재 70만명 관객몰이를 한 영화는 다양한 문화가 미끈하게 포장된 대중적 취향의 <향신료 한줌>(A Touch of Spice)이었다. 예상 관객 수는 100만명을 넘을 것으로 기대되는데, 한국 인구의 1/4이 채 안 되는 인구의 나라 그리스에서는 대박이다. <향신료 한줌>의 각본과 감독을 맡은 타소스 불메티스(Tasos Boulmetis)는 사실 터키 이스탄불에서 태어나 7살 때 그리스로 이주했다. 그리스어, 터키어, 영어로 이뤄진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감독의 이야기이다. 여기에 동화 같은 분위기와 삶을 대하는 그리스인들의 태도를 표현하는 ‘음식적인’ 요소(요리, 향신료, 정을 쌓는 식사시간)를 가미했다. 다른 참가작들을 제치고 이 영화가 테살로니케영화제 관객상을 차지했다. 그리스와 터키간의 우정이라는 민감한 문제를 솔직하게 다뤘다는 것이 그리스 내 성공을 설명할 수 있는 한 가지 이유이다. 그러나 <향신료 한줌>의 중심에는 이별- 소년 자신이 태어난 이스탄불과의 이별, 그리고 그곳에 머문 할아버지와의 이별이 있고, 이별이 심정적으로 다가오는 관객이라면 누구에게나 이 영화가 호감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한국이여, 기립하라. 이 작품은 <희랍인 조르바> 이후 근처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첫 그리스영화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유럽영화의 가장 잘 지켜진 비밀 중 하나, 즉 그리스 주류영화에의 첫 소개가 될지도 모른다. An End to the Modern Greek Tragedy? By DEREK ELLEY THESSALONIKI, Greece - Remember when you last saw a Greek movie? For anybody over 50, it was probably one of the films of Michael Cacoyannis, whose "Zorba the Greek" (1965) was a popular hit around the world, though it was actually made with U.S. money, starred a Mexican actor (Anthony Quinn) as the eponymous Cretan hero, and was shot in English. For anybody under 50, the last Greek movie they saw was probably one directed by Theo Angelopoulos, a filmmaker of magisterial slowness and self-importance ("Ulysses' Gaze," "Eternity and a Day") whose career is entirely dependent on film festivals. During the '50s to '70s Greece had a flourishing film industry with its own movie stars, but after the fall in 1974 of the right-wing military junta (which had supported many of the film companies) and with the growth of TV, the popular movie industry collapsed. As always, U.S. movies filled the gap. During the '90s, though, as in many countries (from Germany to South Korea), a new generation realized that Hollywood did not own the worldwide patent on good quality, mainstream entertainment. Thessaloniki is a hip, hard-partying university city in northern Greece with a history of over 2,000 years. It actually bills itself as being in "Macedonia" (the birthplace of Alexander the Great) rather than Greece, and its atmosphere is heavily Balkan. But for the past 44 years it has hosted a film festival which started as a national one but is now Greece's leading international event. When I was last there, in 1999, the popular resurgence of Greek cinema was in full swing, led by directors like Olga Malea, with her sexy relationship comedies "The Cow's Orgasm," "The Marriage Game" and "Risotto," and the TV directing team of Mihalis Reppas and Thanasis Papathanasiou, whose risque comedy "Safe Sex" was beating "The Thomas Crown Affair" at the box office. Four years later, the upswing is still continuing, with over 20 features made during the past year. In late November, the film that was packing them in, with over 700,000 admissions to date - beating "Pirates of the Caribbean" - was the slickly-made, cross-cultural crowdpleaser "A Touch of Spice." Admissions are expected to top 1 million - big business in country with less than 25% of the population of South Korea. The major backer of the film was the Greek branch of Australian exhibitor-distributor Village Roadshow, which is reputed to have spent as much on promoting the film as it did on making it ($1 million). "Spice" is the second film of writer-director Tasos Boulmetis, who was actually born in Istanbul, Turkey, and only moved to Greece at the age of seven when his Greek parents were deported in 1964. Using Greek, Turkish and English dialogue, the film is essentially his own story, though he's given it a fairytale edge and decorated it with "foodie" elements (cuisine, spices, the bonding quality of mealtimes) that express Greek attitudes towards life. Against all comers, "Spice" won the festival's Audience Award. One reason for its local popularity is its upfront handling of the sensitive issue of Greek-Turkish friendship. At heart, though, "A Touch of Spice" is about separation - the boy's separation from the Istanbul of his birth and his grandfather who stayed behind - and should appeal to any audiences for whom this is an emotional issue. Stand up, Korea. It could well be the first Greek movie you'll be able to see at your local multiplex since "Zorba." And an introduction to one of European cinema's best-kept secrets: mainstream Greek cinema. -Based in London, Derek Elley is Senior International. Film Critic of Variety, the Hollywood-based showbiz paper. He writes here in a personal capacity.

[해외단신] <슈팅 라이크 베컴> 뮤지컬로 外

◆<러브 액츄얼리>, 영국 1위 고수 11월21일 영국에서 개봉한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러브 액츄얼리>(사진)가 자국 내 평단의 부정적인 평에도 불구하고 영국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320만파운드를 벌어들인 <러브 액츄얼리>의 뒤는 232만파운드를 기록한 미국 코미디 <엘프>가 따랐다. 새롭게 진입한 콜린 파렐 주연의 는 196만파운드를 벌었고, 110만파운드의 <마스터 앤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 88만파운드의 <브라더 베어> 등이 5위권 안에 포진되어 있다. ◆<슈팅 라이크 베컴> 뮤지컬로 거린다 차다 감독이 자신의 히트작 <슈팅 라이크 베컴>을 뮤지컬로 각색하는 프로젝트를 위한 제작비를 모으고 있다고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2004년에 초연을 계획하고 있는 뮤지컬 <슈팅 라이크 베컴>에 대해 프로듀서 디팩 나야르는 “뮤지컬은 영화에서 소개한 펀자브 문화를 더욱 화려하고 생생하게 재현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굿바이 레닌> 유럽영화상 주요부문 휩쓸어 12월6일 베를린에서 열린 제16회 유럽영화상 시상식에서 볼프강 베커의 <굿바이 레닌>이 최우수 작품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그리고 관객상 3개 부문(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을 모두 휩쓸었다.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은 감독상과 촬영상을 수상하였으며, <스위밍 풀>의 샬롯 램플링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알린 브로시 매켄나 원작소설 영화화 알린 브로시 매켄나가 쓴 <파더 노즈 레스>(Father Knows Less)가 뉴라인시네마에서 제작된다. 미국 부권에 대한 코미디인 이 영화의 감독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매켄나는 최근 줄리언 무어와 피어스 브로스넌이 주연하고 피터 호윗이 감독한 <유혹의 법칙>을 집필했으며, 로맨틱코미디 를 스파이글래스에 팔았다. 또한 <리치 걸>과 <센트럴파크에서의 한철>은 각각 디즈니와 워너브러더스에서 제작준비 중이다. ◆브라이언 싱어 차기작 폭스에서 <엑스맨> 시리즈의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엑스맨3>에 관한 협상과 별도로 20세기 폭스와 향후 2년간 연출, 제작 작품에 관한 계약을 맺었다. 브라이언 싱어로서는 스튜디오와 맺는 최초의 장기계약인 이번 계약에 따르면 싱어의 제작사인 배드 해트 해리는 폭스 스튜디오 내에 사무실을 갖게 된다. 수 년간 영화, TV, 비디오 게임에 관한 많은 아이템을 축적해온 싱어는 “제작 전초기지와 작업공간을 갖게 되어 기쁘다”는 소감을 밝혔다. ◆워너와 섹션 에잇의 신작 조지 클루니와 스티븐 소더버그의 제작사 섹션 에잇이 워너브러더스와 함께, <트래픽>의 시나리오 작가 스티븐 개그헌이 감독하는 정치스릴러 <시리아나>를 제작한다. 조지 클루니가 제작과 주연을 겸할 것으로 알려진 <시리아나>는, 로버트 베어의 회고록 <악마는 없다: CIA의 반테러전에 참전한 어느 보병의 실화>를 가공한 작품이다. ◆알렉산더 페인, <네브래스카> 연출 <어바웃 슈미트>의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제작비 1천만달러 미만의 <네브래스카>의 연출을 맡아, 저예산영화의 세계로 귀환한다. 페인 감독이 남의 시나리오로 연출하는 첫 영화가 될 <네브라스카>는 나이든 알코올 중독자와 그 아들이 복권당첨금을 타기 위해 몬태나에서 네브래스카까지 떠나는 자동차 여행을 그린다. 스스로 네브래스카 출신인 페인 감독은 이 영화를 흑백으로 촬영할 예정이다.

[결산 한국영화 2003] 정성일·김소영·허문영씨 좌담

2003년이 저문다. 한국 영화에는 좋은 소식이 많았던 해다. 시장점유율이 50% 가까이로 올라,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조폭 코미디 등 가벼운 기획영화의 흥행주도 현상이 시들해지면서 보다 완성도 높은 영화들에 관객이 몰렸다. 장르나 소재 모두 다양했던 올해의 화제작들에서 어떤 경향을 짚어낼 수 있을까. 또 이렇다 할 관심을 끌지 못한 영화 가운데 문제작은 없었을까. <한겨레>에 영화비평을 릴레이로 쓰고 있는 정성일, 김소영, 허문영 세 평론가가 지난 12일 한자리에 모여 2003년의 한국 영화를 정리하고 점검하는 좌담을 열었다. 세시간 반에 걸친 좌담에서 많은 말들이 오갔으나 지면 관계상 중요한 이야기들을 추렸다. 양식미, 금기시돼 온 소재, 동시대성의 빈곤 허문영=2003년은 한국영화에 있어 양식미를 대중들이 본격적으로 지지하기 시작한 첫해가 아닐까 싶다. 즉 전통적 드라마의 중심요소인 이야기와 캐릭터 뿐 아니라, 이를테면 호러의 미장센이나 조명, 뮤지컬의 노래 등 특정 장르의 양식적 요소가 대중에게 호소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핍진성의 대중적 시장가치가 저하되는 징후로도 볼 수 있다. 있을 법한 이야기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영화가 젊은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양식적 계기를 발견해 나가기 시작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같다. 사례로 호러 영화가 수적으로도 늘어났고 대부분이 대중들의 지지를 받았다. 에스에프나 누아르처럼 호러도 가장 양식적 장르에 속하고 소수의 마니아를 중심으로 소통되는 장르인데 올해는 메이저 장르로 보일 만큼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사극도 주목해봐야 하지 않을까. 영화에서는 <스캔들> <황산벌> 정도지만 텔레비전에선 <다모> <대장금> 등 젊은 문화소비층의 사극에 대한 소비가 폭발적이었다. 지금까지의 사극은 대체로 궁중 내 권력투쟁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이었는데 이 작품들은 그 밖의 요소들, 액션히어로나 성적욕망, 음식, 미술같은 양식적으로 풍부해질 수 있는 요소들을 끄집어내면서 실제로 그랬을까를 묻지 않고 자기의 시공간을 만들어나간다. 이 지점에서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왜냐면 많은 영화들이 역사적 체험이나 개인적 고통의 기억에서 출발하긴 하지만 그것과 정면대결한다기보다는 양식적인 틀로 도피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할 것같다. 김소영=올해 대중매체들이 웰빙을 강조했는데 이런 문화도 영화에서 웰빙이나 웰메이드, 장르적 조형미를 가진 영화들을 띄우는 데 한 몫 거든 것 같다. 주목되는 건 그런 와중에서 한편으로 익스트림 영화라고 할까, 다시 말해 이제까지 말해지지 못한 것, 타부시돼온 것들을 다룬 영화가 많이 나왔고 상당수가 흥행했다는 점이다. <살인의 추억> <지구를 지켜라> <올드보이> <아카시아> <장화, 홍련> <바람난 가족> <사인용 식탁>까지 개인적 트라우마나 근친적 욕망, 역사에서 해결되지 못한 것 등 말하자면 극한적인 것들을 다룬 영화들이다. 이중에서도 <지구를 지켜라>는 얘기를 파국까지 끌고간다. <올드 보이> <장화, 홍련>은 영화적 양식미를 갖추면서 트라우마들을 영화적으로 해결하는 쪽인데 반해 <지구…>는 완전히 반대편에 있다. 거짓 화해도 하지 않고 포기하지도 않고 완전 폭파시켜버린다. 나는 <바람난 가족>이 그 중간쯤에 있다고 봤다. 이 영화는 <지구…>처럼 파국으로 끝내지도 않고 <올드 보이>처럼 영화적으로 해결하지도 않는다. 영화적 결말과 현실적 결말의 협상 지점을 아주 잘 찾고 있다고 봤다. 이런 스펙트럼에서 보면 대중들은 개인적 트라우마나 역사적 상처와 직접적 대면하는 것보다는 영화적 해결을 훨씬 선호하는 것같다. 정성일=개인적으로 올해 서울에서 본 영화 중 최고가 뭐였을까 생각해봤더니 허우샤오시엔의 <밀레니엄 맘보>와, 텔레비전에서 본 차이밍량의 <지금 거기는 몇시인가>였다. 두 편은 동시대라는 시간, 즉 흔들리는 주체의 자리에 대한 고민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영화가 생각하는 시간은 무엇일까 하는 화두가 떠올랐다. 앞의 영화들에는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시간성에 대한 성찰이 있었던 반면, 한국 영화들은 이미지로서의 시간이 아닌 이야기의 시간에만 매달려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살인의 추억>이 ‘농촌 스릴러’라고 표현했지만 그것의 방점은 농촌에 있다. 왜 농촌으로 갔어야 할까. 농촌으로 감으로써 80년대라는 시간에 대한 망각에 매달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다만 흥미로운 건, 과거를 다룬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한 반면 미래로 나아간 영화들은 끔찍할 정도로 흥행에서 버림받았다는 점이다. <지구…>나 <내츄럴 시티>는 대중들에게 버림받을 만큼 큰 실험을 한 것이 아님에도 실패했다. 미래의 시간에서 우리를 생각하는 것에 대해 대중이 반대하는 게 아닐까. 대중의 욕망이 말하자면 과거에 매달리고 싶어한다는 느낌이다. 공포 영화들 역시 시간의 정지상태, 진공상태를 다루면서 과거에 매달린다는 점에서 한국영화는 다가올 시간에 대해 의도적으로 눈감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공포 영화들은 도래할 시간에 대해 스스로 장님되기를 자처하거나 또는 다가오는 시간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올드보이>에서 가장 이상했던 건 마지막 순간에 오대수가 왜 자기의 남근이 아니라 혀를 잘랐냐 하는 것이다. 남근을 자르는 것이 근친상간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일 텐데, 혀를 자른 건 망각에 대해 일정 정도 영화가 동조하는 것 아닐까. 공포영화를 말할 때 자주 인용되는 표현이 ‘억압의 귀환’인데 귀환한다면 도대체 무슨 억압의 귀환인가. 이 모든 공포 영화들은 공포라는 말만 제외한다면 전혀 다른 계보에 속하기 때문에, 과연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가에 대해서 묻고 싶다. 그런 점에서 이것이 억압의 귀환이 아니라, 김소영씨의 말처럼 유사 트라우마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억압의 귀환이 아니라, 대상의 상실에서 오는 공포가 아니라 결여를 나타내는 데에 실패한 불안의 영화들이 아닐까. 그렇다면 묻고 싶은 건 왜 불안한가. 한국의 시간은 대통령의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웃음) 노무현 대통령 이전과 이후로 말하고 싶다. 마치 베트남 전 끝나고 어떤 영화가 성공할까 했을 때 <조스>가 터졌고, 스필버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 영화가 베트남 이후 미국 대중의 정신상태에 대한 알레고리가 됐다면, 올해 한국 흥행작들은 노무현을 선택한 남한 대중들의 어떤 무의식의 알레고리로 표현된 것일까. 그게 올해 한국영화의 한 담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김=<조스>의 경우는 사후적으로 읽힌 것이고, 아직 1년도 안된 <살인…>과 비교하는 건 좀 다르지 않을까. <살인…>이 사회적 불안의 반영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이 영화가 일종의 알리바이를 제공하고 있다고 봤다. 너는 그때 거기 있었으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느냐에 대한 알리바이를 준다. 영화에서 피해자는 여자들인데 이들은 수렁에 시체로 박혀 있거나 언덕녀처럼 정신 나간 상태에서 산다. 그들이 전혀 발언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농촌 스릴러가 되는 것같다. 이 영화엔 또 애매한 시점 숏이 있다. 관객의 시점인데 그게 모호하고 무기력하다. 그건 역사인식에서 오는 무기력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그 이야기가 정당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과거의 알리바이가 필요한 것같다. 피해자들은 수렁 속에 있어야 하고 범인은 찾아지지 않고. 과거의 죄를 완전히 묻는 건 전두환식 망각이니까 반쯤만 묻는식으로 수렁에 박힌 시체나 언덕녀가 나온다. <살인…> 만큼 내게 영화를 만들고 싶은 충동을 준 영화가 없었다. 이 영화의 여자들을 다 깨워서 공포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말 좀 해보라고. 올해의 성취, <바람난 가족> <지구를 지켜라> <선택> 허=어차피 장르영화들은 자기의 시간에 충실하는 일 외에 현실의 시간을 의도적으로 개입시킬 윤리적 사명이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런 비판적 시각이 제기되는 건 장르 영화들이 실제 역사와 현실의 상처를 직접적으로 끌어들이면서도 그것과 제대로 대면하지 않고 유사화해로 끝나지 않느냐는 생각 때문인 것같다. 그중에서도 김소영씨는 <바람난 가족>이 남다른 성취를 이뤘다고 했다. 정성일씨는 올해에 진전된 성취를 보인 영화가 없다고 보는가. 정=충무로 주류 영화들 중에선 못봤다. 김=<바람…>이 무인도 갈 때 가져가고 싶은 영화는 아니지만 협상을 잘 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몸에서 피가 솟구쳐 며느리와 아들에게 튀는 건 장준환식 지구 폭파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피가 다음세대를 물들이지만 아버지는 죽어야 되는 가부장제의 파국처럼 그려진다. 그 다음세대는 각자의 방식으로 협상하며 산다. 쥐어짠 면이 있지만 그런 점에서 임 감독이 도약을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구…>의 파국도 의미가 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재앙으로 볼 수 있지만 협상지점을 너무 못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화학교를 졸업한 학생의 작품 같은 느낌이 남는다. 정=<지구…>는 성취라기보다 예외적 출현이고, 장준환 감독의 발견이지 영화의 발견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바람…>은 김소영씨 의견에 공감이 가긴 하지만 동의하기는 힘들다. 영화를 보면서 부도덕의 일상화에 모든 것이 맞춰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통해 부르주아의 삶을 붙잡은 면이 있지만 거꾸로 그것 때문에 삶에 대해 눈을 감아버리게 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강했다. 나는 아이가 던져질 때 영화가 끝난 것 같았다. 나머지는 결론으로 끼워맞춘 것 같은 느낌이었다. 김=문소리가 아이 죽고 산에 오를 때 영화는 녹색 필터를 사용해 아주 과잉으로 찍었다. 윤리적 파탄상태를 보여주고 여자가 그걸 감당하는 장면인데, 영화의 무의식을 보여주는 것같다. 그래서 윤리에 대한 감수성이 없다고 보이진 않는다. 이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거기엔 동의한다. 녹색필터를 써서 찍었던 그 장면이 올해 한국영화의 최고의 명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저렇게 대담하게 찍다니, 김우형 촬영감독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허=현재와의 대면이라는 점에서 <바람…>이 올해 주목할 만한 성취를 이룬 작품이라는 건 이론이 없을 것 같다. 98년에 데뷔한, 편의상 ‘98 세대’라고 말할 수 있는 감독들이 올해 대거 새 영화를 만들었고 흥행을 주도했다. 재밌는 건 모두 과거의 기억을 다루거나 아니면 현재를 다루면서도 현실이 공간으로부터 멀어진 곳, 일종의 판타지 공간에서 자기의 무대를 찾고 있다는 점이다. 김지운의 <장화, 홍련>의 무대, 박기형의 <아카시아>의 시간은 모두 현재이지만 고립적이고 장식적인 공간 안에 들어가 자기의 시간을 만들어내는 데 몰두하고 있다. <여고괴담>이 당대의 여고생의 현실에 대한 긴장을 유지했고 무대도 현실의 교육 공간이었는데, 이재용의 <스캔들>이나 99년에 데뷔하긴 했지만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도 그렇다. 반면 임상수 감독만 현재의 문제를 현실의 무대에서 다룸으로써 데뷔작이 고민을 확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나라의 영화가 어떤 진화과정을 걷는 과정에서 양식적 풍부함은 긍정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당대의 문제를 잘 다룬 영화뿐 아니라 한국영화에서 그간의 약점이었던 것 중 하나가 형식에 대한 자의식의 결여라는 점이었다. 쉽게 ‘웰메이드 영화’라고 이야기되지만 적어도 세공술이 뛰어난 장르영화가 많이 나온 건 전체적 수준의 향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정=동의하면서 한마디만 수정을 부탁드리자면 형식에 대한 배려는 있으나 형식에 대한 자의식은 없는 게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우스개로 올해 새로 등장한 장르가 ‘명품 호러’와 ‘명품 사극’, 또는 ‘청담동 호러’, ‘청담동 사극’이라고들 말한다. 충무로의 이 자조적인 표현이 형식은 그토록 추구하는 데 자의식은 없다는 말이 아닐까. 허=정선생의 지적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그런 면에서 개인적으로 <지구…>가 탁월한 성취가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 영화에서 부재한 종류의 장르적 상상력을 한계까지 밀고 갔다는 점에서 그렇다. 백윤식이 외계인 왕자고 지구 파멸의 임무를 띤 인물이었고, 결국 지구가 파멸한다는 점만으로 일종의 해방적 설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올해 나온 다른 장르영화와 달리 지극히 누추하고 촌스런 미장센과 캐릭터로 가득하다. 또한 중간에는 70년대를 연상시키는 멜로적 요소까지 등장한다. 그 모든 요소를 망라하고 나서 그 모든 걸 무화시킨다. 우주를 스펙터클로 소비하지 않고 영화적 사유 안으로 끌어들인 이 상상력은 한국 영화의 장르가 진전했다고 말할 때 중요한 징표가 되지 않을까 한다. 이 영화에 대한 두분의 견해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주장을 계속 하고 싶다.(웃음) 그리고 개인적으로 올해 중요한 성취를 꼽을 때 <선택>을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선택>은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 나의 베스트 원이다. <선택>을 보면서 내가 최근 충무로의 웰메이드 경향에 대해 뭔가 잘못돼가고 있다고 생각한 게 왜인지를 불현듯 깨닫게 됐다. <선택>은 모든 신, 대부분의 쇼트가 하나의 테마를 위해 달려가고 있다. 이 영화를 본 다음에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를 보니까 쇼트들이 잡다하더라. 없어도 되는 쇼트들을 장식으로 늘어놓고. <선택>은 그걸 다 치우고 모든 신들이 하나의 테마로 달려간다. 영화적으로 보면 빈약하고 황폐할지 모르지만, 그게 거꾸로 영화가 세상과 만나는 진정성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모든 담론이 웰메이드 영화를 추종할 때 <선택>은 ‘좋은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우리가 질문했던 원래의 지점으로 돌아가 생각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두번째로 오직 <선택>만이 과거의 시간의 무게를 하여튼 견디어 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개봉 여부를 가리지 않고 이야기한다면 나에게 올해의 최고작은, <선택>처럼 장기수 문제를 다룬 김동원 감독의 다큐멘타리 <송환>이었다. <선택>과 <송환>은 많은 제작자와 감독과 관객들이 웰메이드 영화에 매달릴 때 명품영화가 아니라 진품이 무엇이냐를 찾아갔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 새로운 경향 <동갑내기 과외하기>, 그리고 장진영 박해일 정다빈 정=그 다음에 한번 이야기해보고 싶은 게 <동갑내기 과외하기>이다. 나는 이 영화가 몹시 당혹스러웠다. 이 영화의 대중적 성공이 굉장히 낯설었다. 새로운 영화가 왔다기 보다는 새로운 관객들이 도착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허=개인적으로 <동갑내기…>는 주목할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요소 중 하나는 만화적 기법인데, <영어완전정복>에도 나오지만 거기선 너무 직접적이라 덜 흥미로웠던 반면 이 영화는 캐릭터 설정, 편집, 그리고 흐름 전반에 만화적 감수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보통의 기준으로 보면 말 안되는 장면이 끊임없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흥미로웠다. 그것이 처음에 말했던 양식적인 것, 즉 비로소 사람들이 양식적인 것에 매혹되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돌아가 이야기할 수 있을 것같다. 이제는 이야기가 있을 법한 사건인가가 아니라 영화를 구성하는 갖가지 요소들이 나를 얼마나 매혹하는가 하는 양식들과의 대화라는 느낌이 들었다. 정=<동갑내기…> <옥탑방 고양이> ‘귀여니’가 하나로 링크되는 어떤 뉴(new)한, 또는 영(young)한 통속성인 것같다. 스타일의 양식화라는 면에서 새로운 통속성이 도착했다고 느낀 것은 김지운이나 이재용의 명품쪽이 아니라 오히려 이쪽에서 더 강하다. 단지 언어의 새로움만은 아닌 것같고. 우리는 어른이기 때문에 거부감이 있을지 몰라도 한국 대중영화의 새로운 도약은 거기에 준비돼있는 게 아닌가 한다. 귀여니 소설을 읽다보니 김지운, 이재용, 봉준호는 너무 올드하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암호 같아서 정말 힘들었고 <동갑내기…> 영화 보는 것은 지옥이었다. 내가 보기엔 하나도 안 웃긴데 관객들은 앉았다 일어섰다 난리였다. 영화 감상 태도가 이전엔 인터액티브였다면 이제는 인터미디어블한 것 아닌가. 완성도를 제외하고 새로움 만으로 본다면 올해의 가장 새로운 영화는 <지구를 지켜라>가 아니라 이 작품일 수있다. 그래서 <동갑내기…>의 성공에 대한 해석은 좀 더 긍정적, 창조적으로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웰메이드에만 집착하다 보면 영화가 전반적으로 올드해진다. 이러한 유치하고 영한 힘들을 중재하는 것도 대중영화가 지금 해야 할 역할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봤다. 허=<동갑내기…>나 <옥탑방…> 둘다 멜로드라마인데 주인공들은 트라우마에서 자유롭다. 심지어 계급적인 차이조차 사소한 취향의 차이와 다름없이 드러난다. 두 작품 모두 남녀의 계급차이가 크지만 계급적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노력해서가 아니라 주인공들에겐 그런 게 귀찮은 일일 뿐이다. 게다가 인물들이 노는 세상은 현실에 존재하는 무거운 정치사회적 사건의 개입에서 자유로운 자기만의 공간이다. 여기서 부정성과 긍정성 공존한다고 본다. 그런 캐릭터들이 빚어내는 극 속의 수평적 질서는 새로운 세대들이 보여주는 긍정성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중압감의 부재가 주는 자기 성찰은 없다는 부정성이 있다. 그러나 그 캐릭터가 주는 해방성은 어쨌든 이전의 캐릭터들이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것임에는 틀림없다. 김=생각해보니 과외하기라는 서사구조가 임권택 영화에도 등장했듯이 오래전부터 남녀관계, 계급관계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구조이다. 멜로가 발생하고 계급상승도 일어나고. 그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가볍게 환골탈태한 것같다. 지금의 상대적 빈곤감·박탈감은 어느 때보다 심하다고 생각한다. 계급이 아니라 명품, 짝퉁으로 이야기되니까 그렇지, 옛날에는 선생과 제자의 결혼 등으로 정말 과외를 통한 신분상승도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 세대는 계급간의 차이를 넘을 수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아닐까. 이건 그 어느 때부터 더 판타지인 것같다. 신분상승 드라마도 일어날 수 없는 사회의 판타지. 정=대중들의 관심은 스타에 있는데 올해의 얼굴은 누구라고 생각하나. 김=장진영. <아멜리에>의 오드리 토투와 비슷한데 훨씬 가볍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한국적이지도 않고, 아바타같은 캐릭터의 얼굴이다. 텅 비어 있는 얼굴. 이영애씨도 그런 느낌이 있지만 장진영씨는 정말 캐릭터같은 얼굴이라서 징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의미나 역사나 상처도 없고, 그렇다고 어린 것도 아니고. 가장 아름다워서라기 보다 매우 시대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오히려 전지현이 그 얼굴과 비교하면 어둠이 있어 보인다. 허=<살인의 추억>의 박해일. 흥미로은 건 이 인물에게서 대학생 이미지가 나온다는 점이다. 대학생인데 뭔가 쫓겨서 운동하러 공장으로 들어온 것같은 느낌을 준다. 80년대 억압을 영화가 말하는데도 억압을 빚어낸 장본인인 살인범이 그 시대에 억압과 맹렬히 싸운 대학생 이미지를 가졌다는 건 흥미로운 아이러니다. 영화가 그 아이러니를 더 밀고 나갔으면 훨씬 더 풍부해졌을 것같다. 박해일의 이미지에는 그런 식의 이상한 아이러니가 있다. 정=나는 영화가 아니라 텔레비전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의 정다빈이다. 남자와 동거해도 아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같은 얼굴이다. 시뮬레이션 같은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이 드라마에 다른 배우가 나왔으면 안 통했을 것같다. 파워풀하지는 않은데 이상하게 끄는 힘이 느껴지고 매우 시대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국가의 자리를 놓고 벌이는 숨바꼭질,<실미도>

이른바 ‘과욕의 승부사’가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다시 다듬어 내놓은 <해안선>. 영화가 시작되면 우리는 어둠이 내려앉은 숲을 가로질러 빠르게 이동하는 한 무리의 사내들을 보게 된다. 이들은 바로 “박정희 모가지 따러” 내려온 북한특수부대원들이다. 그 시간 월북한 ‘빨갱이’ 아버지를 둔 주인공 인찬은 누군가를 칼로 살해한 뒤 쫓기는 중이다. <실미도>의 오프닝은 서로 다른 공간에서 벌어진 이 두개의 사건을 서로 병치시켜 보여준다. 아주 상투적이기 짝이 없지만 그런대로 효과적인 교차편집을 통해서 말이다. 영화 <실미도>의 이 이상한 오프닝은 영화 전체를 요약해 보여주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곧이어 우리는 남파된 북한특수부대원들이 달성하지 못한 목적이 그 방향을 바꾸어 삼류인생 인찬의 간절한 소망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지켜보아야 한다. 따라서 <실미도> 오프닝에 묘사된 침투장면은 인찬이 끝내 이루지 못할 그 기괴한 소망- 주석궁에 침투해 김일성의 모가지를 따는 것- 을 거울처럼 뒤집어 반영하고 있는 상상적 이미지들의 연쇄에 다름 아니다. <실미도>는 역사극이라기보다는 국가의 자리를 놓고 벌이는 숨바꼭질에 가까운 영화다.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절대 가시화되지는 않지만 가장 강력하게 텍스트를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기에 684부대의 31명의 훈련병들, 그들을 훈육하는 교관들, 그리고 중앙정보부의 기관원들 가운데 그 어느 누구도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이라 불릴 수 없다. <실미도>의 떠들썩한 이미지들과 그에 질세라 (어울리건 말건) 언제나 과잉으로 넘쳐나는 사운드 및 음악 뒤에 숨은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국가이다. 그것은 인격화되기를 거부하고 계속 그 정체를 바꾸어가며 ‘기능’하는 국가이다. 누가 뭐래도 <실미도>의 (좀 길다 싶은) 전반부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섬에 끌려온 일군의 남성들이 어떻게 마초적 동지애를 형성해가는가에 관한 장광설이다. 이때 훈련과정을 그토록 상세하게 묘사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이상하게도 그것은 큐브릭의 <풀 메탈 자켓>의 전반부처럼 훈련의 비인간적 속성을 고발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684부대원들이 진정 김일성을 암살할 수도 있었을 만큼 탁월한 인간병기였음을 입증하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한편 (좀 짧다 싶은) 후반부는 국가를 찾아나선 일군의 돈키호테들에 관한 로드무비이다. 기괴한 것은 강우석이 여기서 텅 빈 국가의 자리를 마련해두고 거기에 인물들을 차례로 대입하는 방식이다. 교육대장(안성기)이 그 자리에 놓여 있는 동안 국가는 하나의 통일된 인격을 지닌 존재로 구체화되지만, 그 자리가 중앙정보부의 관료에 의해 다시 채워지는 순간 국가는 하나의 허구가 된다. 따라서 684부대는 잠시 실체의 탈을 썼던 허구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허구가 될 수밖에 없다. 적어도 여기까지는 옳다. 그런데 별안간 조 중사(허준호)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면서 ‘못다 이룬 꿈’이 부서져가는 것을 애도하고 애석해하는 끔찍한 국가가 허깨비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 까닭에 <실미도>는 이중, 또는 삼중의 욕망으로 들끓는다. 그 하나는 국가에 의해 희생당하고 역사 속에 묻혀버린 비운의 684부대원들을 애도하고자 하는 것일 게다. 물론 이는 그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짭짤한’ 상업영화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텍스트 외적인 욕망과 단단히 결부되어 있다. 그리고 가장 위험한 욕망인 동시에 오늘날 한국영화의 가장 이상하고 뒤틀린 욕망이 <실미도>를 단단히 사로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숨바꼭질하는 국가를 빌미로 죽음을 스펙터클화하려는 도착적인 욕망이다. 결국 <실미도>는 이루지 못한 강요된 꿈을 지닌, 국가에 의해 버려진 낙오자들이 벌이는 자해극에 다름 아니다. 영화 말미에 삽입된 자막을 통해 ‘조국’ 운운할 때는 어안이 벙벙해진다. 하지만 그보다 더 기괴한 것은 고무보트를 타고 북으로 향하다 김일성 암살계획의 취소소식을 전해 듣고는 안타까움에 절규하는 684부대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것은 불필요할 뿐더러 용납되기 힘든 장면이다(차라리 그냥 훌쩍 건너뛰어 암살계획이 좌절된 뒤 무료하게 시간을 죽이고 있는 부대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이 장면을 보면서도 <실미도>를 ‘국가가 개인에게 자행한 폭력이 초래한 비극에 관한 영화’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조 중사가 쏘아대는 기관총을 피해 파도 일렁이는 바닷물 속으로 뛰어든 부대원들은 그 와중에도 간절하게 제발 북으로 보내달라고 외친다. 이 장면은 거의 강요라 해도 좋을 만큼 우리로 하여금 그 부대원들의 감정에 가까이 다가가도록 만들고자 한다. 의도했건 아니건 간에 여기서의 메시지는 아주 노골적이다. 만일 국가가 일관성 있는 실체였다면, 우리는 진짜로 김일성이의 모가지를 딸 수도 있었을 텐데. :: 684부대는 누구인가 임무는 김일성 암살, 작전명 '오소리' 실미도에 관한 이야기는 백동호의 책, 시사 다큐멘터리나 텔레비전 드라마, 그리고 영화 <실미도> 제작과정 중 그와 관련하여 언론에 실린 기사들을 통해 이제는 꽤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여하간 한번쯤 다시 실미도 부대원들에 대한 몇몇 역사적 사실들을 정리하고 영화를 보는 것도 나름대로 흥미로운 일이 될 것 같다. 먼저 실미도에 있었던 684부대의 공식명칭은 공군 제7069부대 소속 2325전대 209파견대이다. 684부대라는 명칭은 그것이 1968년 4월에 창설- 684부대의 창설에 빌미를 제공한 김신조 일당의 침투사건은 1968년 1월21일에 일어났다- 된 데서 유래한 것이다. 사형수, 무기수 및 일반재소자들로 구성되어 있던 이 특수부대의 임무는 김일성 암살 및 주석궁 폭파였으며 작전명은 오소리였다. 훈련병은 김신조가 이끈 남파특수부대원들의 수와 동일한 31명으로 구성되었으나, 훈련 도중에 사고로 죽거나 탈출하고 처형되기도 하여 최후까지 남은 것은 24명뿐이었다. 684부대가 최초로 북파를 시도한 것은 부대창설 이후 고작 4개월이 지난 뒤였으니, 그동안의 훈련의 강도가 어떠했는가를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계획은 취소되었고 훈련병들은 다시 실미도로 돌아와 새로운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 훈련병들이 부대의 기간병들 및 부대장을 몰살하고 섬을 탈출한 사건이 일어난 것은 1971년 8월23일이었다. 교육대장을 포함한 총 18명의 교관 및 기간병이 사살당하거나 익사했고 6명만이 살아남았다. 같은 날 오전 인천에 상륙한 24명의 훈련병들은 버스를 탈취해 서울쪽으로 향했고 그들을 막는 과정에서 군인들과 경찰관이 부상당하거나 사살되기도 했다. 그들은 서울로 진입하기에 이르렀으나 결국 교전 끝에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하고 4명만이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1972년 3월10일, 살아 있던 4명의 훈련병들에게도 사형이 집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