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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주말 극장가] 학교간 록커, 허리붙은 쌍둥이 "누가 더 웃길까"

한국영화 개봉작이 없는 이번 주말은 움츠렸던 외화들이 간만에 '기를 펴는' 타이밍이다. <붙어야 산다>, <베로니카 게린>, <실종>, <스쿨오브락>, <브링 다운 더 하우스>, <타임라인>, <리지 맥과이어>, 까지 8편 모두가 외화다. 코미디부터 멜로, 액션, 드라마, 스릴러까지 장르도 다채롭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여전히 극장가를 주름잡고 있는 가운데 다양한 외화들이 얼마나 선전할지 김은형 기자를 따라 주말 극장가를 미리 가본다. 편집자 주 학교에 간 록커·허리붙은 쌍둥이 “누가 더 웃길까” 이번 주에는 코미디의 두 강적이 극장가에 뜬다. 젊은 코미디 배우 잭 블랙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스쿨 오브 락>과 화장실 유머의 시조로 추앙받는 패럴리 형제 감독의 <붙어야 산다>.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에서 주인공과 감독으로 만났다가 이번에는 경쟁자로 만나게 됐다. <스쿨 오브 락>은 재능은 없지만 열정만은 차고 넘치는 록커가 우연히 사립초등학교에 임시교사로 들어가 어른들의 등쌀에 풀죽은 아이들에게 록음악의 에너지를 불어넣어준다는 이야기다. <붙어야 산다>는 허리가 붙어있는 쌍동이 형제가 할리우드에 오면서 벌이는 좌충우돌을 발랄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두 영화 모두 가족 코미디의 공식에서는 약간 비껴나 있는 영화지만, 가족나들이로, 또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모두 모자람없는 만족감을 줄 만한 영화다. 강한 여성상을 연기해왔던 실력있는 여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주연한 두 영화도 나란히 개봉한다. 혼자서 거대 마약책과 전쟁을 벌이는 아일랜드 여기자의 실화를 그린 <베로니카 게린>과 어린 딸을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유괴당한 어머니의 분노와 투쟁을 그린 <실종>. <실종>은 <뷰티풀 마인드> <랜섬> 등의 론 하워드가 감독한 작품으로 서부개척시대의 거대한 자연풍광이 볼 만하며 올해 베를린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올랐던 작품이다. 지난해 초부터 개봉이 잡혔다 미뤄졌다를 반복했던 프랑소아 오종 감독의 도 드디어 개봉한다. 크리스마스날 교외저택에서 고립된 한 가족이 살인사건에 휘말리는 과정을 뮤지컬 형식으로 그리는 이른바 ‘스릴러 뮤지컬’로 카트린 드뇌브를 비롯해, 이자벨 위페르, 임마누엘 베아르 등 쟁쟁한 프랑스 여배우들이 총출동한다. ‘붙어서 뜬’ 형제 떨어지면? 바인야드라는 시골마을에서 햄버거집 ‘번개 버거’를 운영하는 밥과 월트 형제. 얼굴도 따로 손도, 발도 따로지만 하나의 간을 같이 쓰는 샴쌍둥이인 이들은 이 마을 인기‘짱’이다. 야구면 야구, 축구면 축구 못하는 게 없는 만능 스포츠맨에다가(이 ‘따로 또 같이’ 커플이 골키퍼로 나서면 이미 경기 끝이다) 연례행사인 마을 연극에서 늘 주인공을 맡는 빼어난 배우이며, 식당에서는 손 네개, 발 네개로 순식간에 햄버거 열세트를 뚝딱 만들어내는 이들을 누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고 영화는 말하지만 뭔가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사진 한번 공개되면 전국민의 연민의 대상이 되는 희귀장애인들이 인기스타가 되다니. 그러나 정신분열증 환자와 난장이(<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 팔없는 볼링선수(<킹핀>), 엄청난 뚱보(<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며 연민이나 조롱없는 코미디를 만들어온 패럴리 형제의 영화에서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붙어있을 때 기쁨 두배’가 되는 두 형제가 언제나 함께 일해온 패럴리 형제의 분신처럼 느껴지는 <붙어야 산다>는 붙어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황당한 에피소드를 유쾌하게 펼치는 코미디 영화다. 운동신경 탁월하지만 소심한 밥(맷 데이먼)과 예술가적 기질과 바람둥이 기질 다분한 월트(그렉 키니어)는 서로의 취향과 일상을 존중하면서 함께 살아간다. 밥이 좋아하는 운동을 할 때는 월트가 함께 뛰고 월트가 연기를 할 때는 밥이 관객 눈에 띄지 않도록 검은 스타킹을 입고 무대에서 함께 움직인다. 그러나 월트가 할리우드 진출을 선언하고 나서면서, 그리고 밥이 채팅으로 사귄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비밀을 공개할 때가 되면서 ‘붙어있음’은 이들에게 장애로 다가온다. <붙어야 산다>는 전작들에서 형제감독의 편집증적인 집착처럼 보였던 ‘비정상’, 또는 비주류에 대한 관심이 실은 진심어린 애정이었다는 것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영화처럼 보인다. 월트는 비록 약발 떨어진 늙은 여배우 셰어(그는 실명으로 등장해 자신을 연기한다)의 이용 목적으로 텔레비전 드라마 캐스팅이 되기는 하지만 인기스타가 된다. 밥을 카메라에 등장시키지 않기 위해 벌이는 제작팀의 조야한 트릭은 영화의 가장 웃기는 장면 중 하나. 가슴성형수술을 받은 배우 지망생 에이프릴이 이들의 모습을 보며 “와아, 그건 어디서 수술받은 거야”라고 묻는 장면은 일반인보다 훨씬 편협한 사고방식으로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드는 할리우드의 편견을 살짝 꼬집는다. 실연의 아픔으로 괴로워하는 밥을 위해 월트는 분리수술을 결정하고 실행한다. 그러나 30년 이상 붙어살아온 이들에게 분리된 환경은 또 다른 재난으로 다가온다. ‘붙어있음’은 사랑이고, 중요한 건 남에게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서로를 ‘내몸같이’ 생각하는 것이라고 짓궂은 감독형제는 따뜻한 결론을 내린다. 다만 훈훈해진 만큼 전작들에서 보여줬던, 지체없이 ‘막 가는’ 유머의 통쾌함은 다소 완화됐다. 화장실 유머의 시조로서 패럴리 형제를 모셔왔던 관객들에게는 이렇게 착한 결론이 밋밋하거나 느끼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27일 개봉. 막강원작·감독 만나 어수선한 시간 여행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마이클 크라이튼의 베스트셀러 소설 <타임 라인>을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했다. 중세 고성의 유적 발굴 작업을 하던 일군의 젊은 고고학자들은 우연히 600년 이상 꽁꽁 숨어있는 지하유적을 발견한다. 그런데 양피지 필사본 등 내부 유물 가운데 이들의 지도교수인 존스턴의 안경알과 직접 쓴 구조요청 편지가 들어있다. 후원사인 ITC에 이 사건을 보고하면서 이들은 ITC가 양자 원격 이동 장치를 발명했고, 존스턴은 며칠 전 이 장치를 타고 중세로 갔다가 실종됐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타임 라인>은 액션 블록버스터 가운데 명작으로 꼽히는 <리썰 웨폰> 시리즈의 리처드 도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다. 막강 원작자와 막강 감독이 만났지만 시너지 효과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 듯해 아쉽다. 프랑스-영국 간 백년 전쟁의 한가운데 뚝 떨어진 인물들을 통해 감독은 중세시대의 액션 스펙터클을 끌어내고자 한다. 그런데 특별한 연유도 없이 죽어가는 대원들을 비롯해 영화 전체가 어수선하게 진행되는 바람에 컴퓨터그래픽을 마다하고 실제 크기로 만들었다는 고성의 위용이나 중세의 우아한 스펙터클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10대 겨냥한 <리지 맥과이어> 무모하리만치 깜찍한 디즈니표 <로마의 휴일> 동화 속 그림 같은 낯선 곳으로의 여행. 꽃미남 소년과의 달콤한 데이트, 눈부신 조명 한가운데 서는 스타 되기. 십대의 한 시절에는 누구나 한번쯤 빠져봤을 몽상이다. 아이돌 스타에 열광하며 예쁜 스티커로 다이어리를 알록달록 꾸미는 십대 소녀들을 겨냥해 만든 <리지 맥과이어>는 이런 판타지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틴에이저 영화다. <평범한 여중생의 일상을 그린 디즈니의 텔레비전 드라마 시리즈 <리지의 사춘기>를 극장판으로 확장한 이 영화는 <로마의 휴일>의 십대 버전 같다. 다만 <로마의 휴일>에서는 로마라는 비현실적 공간에서 공주가 평민이 되지만, <리지 맥과이어>에서는 평범한 학생이 공주로 변신한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로마에 단체 답사여행을 떠나는 리지 맥과이어. 학교에서는 실수 투성이에 공주님들의 구박덩이지만, 일상을 벗어난 이곳에서 뭔가 특별한 일을 기대하는 건 당연지사다. 길거리에서 만난 이탈리아의 아이돌 스타 파올로는 리지를 자신의 연인이자 듀엣 파트너인 이사벨라로 착각한다. 파올로는 <로마의 휴일>의 그레고리 펙처럼 스쿠터를 타고 리지를 로마의 구석구석으로 안내한다. 그리고는 사라진 이사벨라 대신 자신과 함께 뮤직비디오 시상식장의 무대에 올라가자는 제안을 한다. <리지 맥과이어>는 십대소녀의 콩닥거리는 가슴 대신 늙고 심각한 이성으로 보기에는 말 안 되는 구석이 많은 영화다. 또한 디즈니표답게 십대의 우울함이나 고민 대신 밝고 귀여운 부분만 부각한다. 그러나 무모하리만치 깜찍한 판타지 역시 젊기 때문에 꿀 수 있는 꿈 아닌가. 그래서 <리지 맥과이어>는 십대 소녀의 철없는 몽상이라는 전제를 깔고 봐도 싱그럽고 유쾌한 영화로 즐길 만하다. 텔레비전 드라마에 이어 영화에서도 주연을 맡은 17살의 힐러리 더프는 리지 역을 통해 영화 속 리지의 꿈을 이룬 10대 스타다. 짐 폴 감독. 27일 개봉.

[런던] 영국 아카데미는 할리우드를 좋아해?

지난 2월15일 열린 브리티시 아카데미필름 앤 텔레비전 아트(BAFTA)는 예년과 다름없이(!) 할리우드영화들이 강세를 보인 행사였다. 이미 노미네이션에서 예상됐듯이, 각 분야의 후보에 오른 대부분의 영화들이 할리우드영화였던 점을 고려하면 그 수상 결과가 놀라울 이유는 전혀 없는 것 같다. 단지 예외라면 예외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최고 작품상을 수상한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의 피터 잭슨 감독이 최고 감독상을 놓치고, 최고 각색시나리오상을 수상했다는 것 정도. 최고 감독상은 역시 영국산 소설을 바탕으로 한 해양모험영화를 선보인 호주 출신 감독 피터 위어에게 돌아갔다. 한편, 소피아 코폴라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주연을 맡았던 빌 머레이와 스칼렛 요한슨이 각각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특히 <진주 귀고리 소녀>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동시에 두번 오른 스칼렛 요한슨은 영국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여우조연상은 <콜드 마운틴>의 르네 젤위거가, 남우조연상은 <러브 액츄얼리>에서 나이들어서도 여전히 짓궂은 록스타 역할을 연기한 빌 나이히가 수상, 유일하게 영국영화의 자존심을 세웠다. 이외에 영국영화로는 산악다큐멘터리영화 <터칭 더 보이드>가 알렉산더 코더 특별 영국 영화상을 수상했고, 에밀리 영이 <키스 오브 라이프>로 영국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에게 주는 특별상을 수상했다. BAFTA 안에서도 영국영화가 발붙일 자리는 영국영화에만 한정해서 주는 상들에만 국한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등의 영화로 유명한 영국 감독 마이클 윈터보텀은, 정작, 아프가니스탄 난민 소년의 여정을 다룬 영화 <인 디스 월드>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이런 정황들 때문에, BAFTA는 영국영화에 대한 시상식이라기보다는, 영어권 영화들을 대상으로 상을 주는, 미국 아카데미처럼 되고 싶어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수준을 따라갈 수 없는, 미국 아카데미의 덜 글래머러스한 사촌 정도라는 자조적인 시선이 지배적이다. 런던=이지연 통신원

VOD상영관, 예술영화의 새로운 배급모델?

2월20일 한국영화 최초로 온라인·오프라인 동시개봉한 <욕망>의 흥행 성적이 흥미롭다. 네이버의 VOD상영관에서 하루 평균 500∼600명의 유료 관객이 몰리며 흥행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데 반해 예술영화전용관 네트워크인 아트플러스를 찾는 관객은 그 10분의 1에 근접하는 수준이다. 26일 현재 3천원의 관람료를 내고 <욕망>을 본 관객 수는 5천명선. 이 속도라면 개봉 3주차에 1만명 돌파가 가능하다. 네이버쪽은 <욕망>이 2만∼3만명 선에는 무난히 도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지금까지 네이버의 VOD상영관 최고 흥행작은 4만명을 기록한 <몽정기>다). <욕망>의 이같은 ‘선전’은 제작사인 명필름도, 네이버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다. 그렇다면 여기서 인터넷의 VOD상영관이 예술영화의 대안적 배급망의 하나로 기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까? 명필름의 박재현 마케팅 실장은 “예술영화인 동시에 디지털영화라면 유력한 개봉관으로 상영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와이키키 브라더스>라면 온라인으로 개봉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HD 카메라로 제작된 디지털영화 <욕망>은 텔레시네라는 가공의 과정을 거친 필름 제작 영화에 비해 VOD상영관에서 화질과 사운드에서 월등한 경쟁력을 보인다는 것이다. 수익 규모의 측면을 감안하면 저예산영화여야 한다는 조건을 추가할 수 있다. 관객 1만명을 기준으로 했을 때, 제작사에게 돌아오는 몫은 1700만원. 9억원이 들어간 <욕망>의 제작비 회수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그렇지만 관객이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간판’을 내리지 않는 VOD의 특성을 고려하면 ‘지속성’의 문제에선 오프라인 극장보다 유리해 보인다. 네이버 웹기획자 박문칠씨는 “3∼4년째로 접어드는 VOD상영관은 현재 과도기적 단계여서 배급·유통만 담당하는 지금의 기능에서 멈출지 아니면 더 확장할지 검토 중”이라며 “우리 입장에선 성인 코드의 영화뿐 아니라 <와이키키 브라더스>나 <고양이를 부탁해>처럼 관객 사이에 이슈가 되는 예술영화도 온라인 상영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새DVD] <참을수 없는 사랑>,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외

<참을 수 없는 사랑> 감독 조엔 코언/출연 조지 클루니, 캐서린 제타 존스/화면비율 1.85:1 아나모픽/사운드 DD & DTS 5.1 돈 밝히는 변호사 남자와 남편을 속옷 갈아입듯 갈아치우며 거액의 위자료로 살아가는 여자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 코언 형제의 영화답게 로맨틱 코미디지만 낭만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냉소적인 영화다. 그럼에도 부록으로 들어있는 감독의 영화소개에서는 코언은 “그저, 사람들이 많이 웃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로맨틱 코미디니까” 라고 얘기한다. 유니버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화면비율 1.85:1 아나모픽/사운드 DD 모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애니메이션. 디스토피아적 미래세계에서 인류를 구원하는 소녀의 이야기를 웅대한 서사시처럼 그려냈다. 부록 가운데 98년 일본 텔레비전에서 방영했다가 DVD용으로 다시 편집한 28분짜리 ‘지브리 탄생 이야기’를 놓치기 아깝다. 지브리 타이틀 가운데 음성해설이 처음으로 들어가 있는데 이 작품에서 원화를 담당했던 안노 히데아키가 해설에 나섰다. 대원C&A홀딩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 감독 로베르트 로드리게즈/출연 안토니오 반데라스, 셀마 헤이엑, 조니 뎁/화면비율 1.78:1 아나모픽/사운드 DD 5.1 & 2.0 초저예산 영화 <엘 마리아치>, 이 영화의 대박을 통해 할리우드에 진출한 뒤 만든 <데스페라도>를 이은 로드리게즈 감독의 ‘엘 마리아치’ 3부작 완결편. 감독이 직접 HD 카메라를 들고 찍은 제작 과정을 비롯해 DVD에서만 즐길 수 있는 부록들이 풍성하다. 영화지망생들을 위한 ‘10분 영화 교실’은 HD카메라로 찍은 장면을 컴퓨터에서 가공해 영화의 장면을 완성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셀프 카메라로 찍은 감독의 깜짝 요리교실도 귀여운 부록. 콜롬비아.

<논스톱> 시리즈, 그 얄팍한 매력에 대하여 [2]

그렇다면 <논스톱>이라는 장르가 해낸 것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 시리즈가 아직 능력과 가능성이 입증되지 않은 반반한 외모의 젊은 신인들을 위한 신병훈련소라는 것이다. 지금은 어느 정도 인정받는 스타가 된 장나라, 조인성, 정다빈, 양동근, 김정화와 같은 배우들은 모두 본격적인 스타로 진입하기 전에 <논스톱>을 거쳤다. 그들에게 처음으로 맞는 이미지를 찾아준 것도 <논스톱>이었고 일주일에 5일 방영되는 일일 시트콤의 강행군을 통해 배우로서 어느 정도 수준으로 기능할 수 있게 도와준 것도 <논스톱>이었다. 이런 신병훈련식 접근법은 시리즈의 이야기와 캐릭터들에 예측 못할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논스톱>에서 캐릭터는 계획대로 만들어지는 대신 시리즈가 흐르는 동안 배우들과 함께 성장과 탐색을 거듭했다. 캐릭터들의 발전은 종종 예측불허였으며 덕택에 설정만 따진다면 무개성적이기 짝이 없는 로맨스들의 성과도 높아졌다. 지금도 기억되는 경림과 인성, 동근과 나라의 로맨스는 반쯤은 의식적이고 반쯤은 장르와 습관에 갇힌 진부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이들의 상품 가치를 높이고 7시 시간대의 시청자를 되찾기 위한 방향없는 시도가 서서히 고유의 개성을 구축했다는 사실도 지적해야 할 듯하다. 말 그대로 <논스톱>은 코미디를 만들기 위해 뭐든지 했다. 필요하면 캐릭터의 성격을 중간에 바꾸었고, 제4의 벽을 깨뜨렸고, 물리법칙을 비틀었으며, 한동안 그래도 안 해보려던 패러디도 결국 쏟아부었다. 그러는 동안 시리즈와 시리즈가 그리는 세계는 일종의 무책임한 매력과 같은 것을 얻기 시작했다. <논스톱>의 세계에서도 학교수업과 취업고민, 경제적 격차는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은 ‘뭐든지 한다’의 진행 속에서 서서히 자기만의 규칙을 갖기 시작했다. 학부생에게 수업보다 교수의 세미나가 더 중요하고 부모 세대의 사람들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존재하지 않으며 연애에서부터 경제문제에 이르기까지 평균보다 훨씬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젊은이들의 공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심지어 경림이나 몽처럼 심각한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는 주인공들의 고민도 진짜 현실세계의 고민에서 살짝 벗어나 유형화된다. 이 시리즈에서는 현실에선 심각한 고민인 것도 과장된 농담과 캐릭터 구성을 위한 장난감이 된다. <논스톱>에서 대학은 현실세계에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해방구가 된다. <논스톱>의 핵심도 그것이다. 예쁘거나 재미있는 젊은이들이 자기만의 장난감과 고민을 가지고 마음껏 놀 수 있는 환상 속의 공간만 존재한다면, 이 시리즈는 어떤 배우들이나 캐릭터들이 등장해도 여전히 <논스톱>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런 환상은 텔레비전 광고만큼이나 가짜이다. 하지만 비슷한 세계를 좀더 사실적으로 다루는 다른 시리즈나 영화에 비교해본다면 <논스톱>은 오히려 더 솔직하다. <논스톱>의 설정과 이야기는 너무나도 허황되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그 이야기와 설정에 몰입하는 동안에도 그 환상을 현실에 그대로 대입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논스톱>이 주는 20여분간의 오락은 솜사탕처럼 입 속에서 사라진다. 특별히 남는 건 없지만 바로 이 시리즈가 원하는 오락 역시 바로 그런 것이다. <논스톱>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시청자들과 제작진들이 원하는 것처럼 계속 등장인물들과 배경들만 바꾸어가며 비슷한 농담들로 대를 잇는 프로그램이 될 것인가? 아니면 그러는 동안 어떤 발전과 변화를 모색할 것인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자에 안주하고 싶을 것이다. 지금까지 7시대 시트콤에 변화와 발전을 주려는 대부분의 시도는 좌절을 맛보았다. 사체과나 밴드부로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는 시도는 다 어디로 갔는가? 결국 흔한 짝짓기 이야기로 흘러갔다. <논스톱>의 성공은 시청자들이 원하는 가장 안전한 길을 알아서 따라주는 데 있었다. 결국 <논스톱>의 고민은 장르물의 고민으로 연결된다. 어떻게 되면 지금까지 공들여 쌓아온 단단한 공식들을 서서히 변해가는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추어가며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이 진부한 음악에 맞출 새로운 춤을 부여할 것인가. <논스톱4>가 가까스로 회복한 에너지로 이 고지를 넘을 것인지에 대한 질문의 답은 이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논스톱>이 배출한 스타들 여기에 실린 이름은 스타들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논스톱>이라는 시트콤의 캐릭터의 이름이었다. 우리나라의 시트콤이 배우들의 실명을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전통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논스톱> 시리즈는 어느 순간부터 기존의 스타가 아닌, 새로운 얼굴들을 끌어들여 시청자들에게 특정한 이미지를 받아들이도록 유도하기 시작했다. 거짓말처럼 그러한 이미지 메이킹은 대부분 적중했고, <논스톱>을 통해 이름이 알려진 ‘캐릭터’들은 이미 익숙해진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드라마나 영화로 활발하게 진출했다. <논스톱>을 계기로 무명의 딱지를 떼게 된 그 이름들을 다시 짚어보자. 어리버리 캔디_ 장나라 그 누구도 미워할 수 없는, 어리버리의 원조. 구리구리 양동근의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에 어김없이 넘어가고, 매번 약점을 잡힐 때부터 수상쩍더니 이후 <뉴 논스톱> 후반부의 대표적 언밸런스 커플로 엮였다. 꾸밈없이 솔직한, 언제나 당하는 쪽이지만 굴하지 않는 캐릭터는 드라마 <명랑소녀 성공기>로 반복되면서 인기를 끌었다. 영화 데뷔작인 <오! 해피데이>의 무시무시한 스토커도 그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만한 인물. 아무리 망가져도 여전히 귀여운 캐릭터는 그의 전공 분야다. <논스톱3>의 이진 등이 그 계보를 넘보았으나 일단은 귀여움에서 그를 능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수려한 외모 어설픈 젠틀맨_ 조인성 “얘는 멋있다. 지금은 아닌 거 같아도 멋있어질 거라고 시청자들을 세뇌시킨다.” 권익준 PD의 표현에 따르면 ‘작정하고’ 멋지게 보이도록 만든 캐릭터. 수려한 외모에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경림과 커플이 됐고, 덕분에 확실한 인기를 누렸다. 이후 굵직한 드라마 <별을 쏘다> 등은 물론이고, 영화는 <마들렌> 이후 세편에 출연했다. 충무로에 젊은 피를 수혈한 <논스톱> 시리즈의 공로가 확실하게 인정된다. 젠틀한 바른생활 사나이의 캐릭터는 이후, <논스톱3>의 조한선, <논스톱4>의 전진으로 변주된다. 속물이라고? 웬일이니, 웬일이니∼_ 정다빈 <단적비연수>에서 최진실의 아역을 맡았던 것으로 관심을 끌기도 했지만, 정다빈의 성장이 <논스톱> 시리즈의 공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뉴 논스톱>의 조연에서 시작하여, <논스톱3>에서는 짠돌이 최민용과 커플을 이루면서 주연급으로 연결된 케이스. 속물스러우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의 원조이다.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에서는 김래원과 함께 ‘현실적인 그 모습이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확실히 각인시킨다.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미학은 가히 감동적이라고나 할까. 썰렁해도 멋있어_ 조한선 <논스톱3>가 시작된 지 몇달 뒤 합류한 ‘일종의’ 완벽남. 태우에 대한 마음 때문에 고생하던 정화를 남몰래 짝사랑하다가 결국은 커플로 맺어지고, 시리즈의 중심으로 진출했다. 정화가 유학을 떠난 뒤에는 다나와 의남매가 되면서 또 다른 모습을 선보인다. 반반한 외모이면서 얼굴값은 못하고 썰렁한, 바른생활 캐릭터의 계보를 잇는다. 고구마와 치즈를 양손에 들고 운명적인 만남을 이루는 CF에서 보여지는 썰렁함. 드라마 <좋은 남자>에서 보여지는 단순무식과격하지만 정에 약한 형사 강태평은 모두 <논스톱3>에서 익숙해진 그의 모습들의 일부였다.

넉살 좋은 홍반장과의 귀여운 로맨스, <…, 홍반장>

내로라 하는 부잣집의 금지옥엽 외동딸이지만, 아버지의 돈으로 쉽게 인생을 꾸려가는 대신 당당한 홀로서기를 꿈꾸는 치과의사 혜진(엄정화). 그러나 삶이 어디 그리 만만하던가. 치과의사의 권리를 주장하며 기세 좋게 내던진 사표가 단번에 수리되는 바람에 갈 곳을 잃은 혜진은 착잡한 마음을 달래러 바닷가를 찾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어머, 이런 데가 다 있었네!” 공동 빨래장에서 사이좋게 빨래를 하는 아주머니들, 지나가는 이들에게 늠름한 인사를 건네는 갈매기, 허허실실 인심 좋은 동네 할아버지들, 지중해 풍광을 뺨치는 바닷가 풍경…. 혜진은 이곳에 치과를 개업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이 작은 마을에서 일생일대의 적수를 만나게 되다니. 딱 한살 위라는 이유로 처음부터 반말을 찍찍 날리는 홍두식, 일명 홍반장이 그녀의 ‘진상’이었던 것이다. 키도 훤칠하고 얼굴도 그만하면 쓸 만하고 수리면 수리, 배달이면 배달, 요리면 요리, 노래면 노래, 싸움이면 싸움… 못하는 게 없는 만능 재주꾼이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 백수 건달, 그러나 그 덕분에 마을의 모든 대소사에 반드시 끼어들며 그의 도움을 청하는 이들에게 단돈 일당 5만원으로 날품팔이하는 이상한 남자 홍반장. 그런데 ‘소셜 포지션’이 달라도 너무 다른 이 두 사람 사이에 서서히 로맨스가 피어나기 시작한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하 <홍반장>)은 제목에서부터 스스로의 정체성을 언명한다. 분명 귀에 익은 제목 아닌가?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짜짜짜짜짱가 엄청난 기운이. 얏! 틀림없이 틀림없이 생겨난다….’ <우주소년 짱가>의 주제가에서 곧바로 따온 기나긴 제목은 우리의 일상 곳곳에 숨어 있을 법한, 겉으로는 무척 평범한 이웃이지만 사건만 터지면 곧바로 해결사로 등장하는 새로운 히어로의 등장을 예고한다. 그러니까 <홍반장>의 주요 축은 홍반장이라는 낯선 영웅의 디테일 묘사, 그리고 일상의 사소한 사건들에서 시작되어 로맨스라는 놀라운 판타지의 대단원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개그 만화적 관점에서 따뜻한 웃음을 유발시킬 것인가 하는 두 가지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홍반장은 보기 드물게 매력적인 캐릭터로 섬세하게 그려진다. 그는 만능 재주꾼으로 동네 사람들 모두에게 사랑받지만 정작 자신은 마음 한구석을 꽁꽁 싸매고 상처받기를 두려워하는 소년 같은 남자이며, 제대 뒤 3년 동안 마을을 떠나 있던 공백기의 미스터리어스함으로 더더욱 호기심을 한몸에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는 홍반장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을 되도록 삭제한 채, 그저 이 특별한 남자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를 권유한다. 그리고 관객은 논리를 일일이 따지지 않은 채 기분 좋게 그 권유를 받아들인다. 그것은 무엇보다 영화의 두 번째 축, 개그 만화의 감수성을 제대로 포착한 디테일의 승리에서 비롯된다고 보여진다. 모든 것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작은 상황 하나만으로 캐릭터의 느낌이 충분히 배어나오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조폭과 양아치들이 난립하던 슬랩스틱코미디가 결여하고 있었던 가장 기본적인 전제, 캐릭터로부터 웃음의 상황이 자연스럽게 이끌려나와야 한다는 기본을 제대로 지키는 영화인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자꾸 자기 주위를 맴돌며 도움을 주는 홍반장의 속을 떠보려는 혜진이 짐짓 시침떼며 물어본다. “너 나 좋아하는구나?” 남자, 잠시 동안 침묵하더니 “짜증나…”라며 한숨을 쉰다. 닭살 돋는 로맨스의 억지 춘향, 우연 남발, 운명 지향주의는 깔끔하게 제거된 채 최대한 현실에 밀착된 대사와 더불어 고고함과 썰렁함을 오가는 남녀주인공의 순정 개그 만화적 감각을 최대한 확장시키는 순간에 비어져 나오는 웃음들은, 웃어야만 하기 때문에 마지못해 웃으면서도 불쾌감을 떨칠 수 없었던 일련의 영화들과 달리 상쾌한 뒷맛을 남긴다. 여기에서 다카하다 이사오의 애니메이션 <추억은 방울방울>의 정서가 얼핏 끼어든다. 도시 여자와 시골 남자, 환경과 계급과 성격이 너무 다른 두 남녀가 만나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끌어안는 과정에 있어, 차가운 도시와 대비되는 시골의 수려한 자연 공간이 ‘여기야말로 사람 사는 곳’이라는 낭만적 판타지를 심어주며 두 남녀의 차이를 무화시키는 도움을 주는 과정 말이다. 홍반장의 재촉으로 전공 분야도 아닌 산부인과 의사 노릇까지 하며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은 혜진이 홍반장과 함께 바닷가의 아름다움을 완상하는 장면의 지극한 센티멘털리티는, 그만큼 갑작스럽고 당황스럽게 지금까지의 착한 명랑함의 균형을 뒤흔드는 장치이다. 낭만을 최고치로 한껏 끌어올리고 난 뒤 영화는 그 낭만성의 반동으로 유지될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나머지 30여분은 전반부와 달리 약간 맥빠진 느낌의 순정만화로 일관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그런 한계와 단점에도 불구하고 강석범 감독의 데뷔작 <홍반장>은 억지스럽지 않은 캐릭터의 탄탄한 구축으로부터 작은 웃음들을 직조해낼 수 있는 산뜻한 코미디영화의 좋은 예로 남을 만하다. 소박하게 휴머니즘의 가치에 찬사를 보내는 이 착한 영화 앞에서 미소짓지 않고는 배겨나기 힘들다. :: <홍반장>이 발굴한 매력남 ‘공구하고 싶은 남자’ 김주혁! <홍반장>에는 배우들이 그리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동네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엄정화와 김주혁, 간호선 미선 역의 김가연이 영화의 주요 파트를 책임지고 이끌어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영화 <홍반장>과 캐릭터 홍반장의 매력을 최대로 살려낸 주인공 김주혁은 발군의 세련된 코미디 감각을 과시한다. 귀신도 울고 갔다는 확실한 배짱밖에 믿을 게 없는 사내 홍반장, 텔레비전 화면에서 막 기어나온 <링>의 귀신이 그 앞에서 훌쩍훌쩍 울며 “잘못했어요...”라고 칭얼거리는 장면에서의 김주혁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이미 TV 드라마 <흐르는 강물처럼>에서도 어느 정도 선보인 바 있지만) 이 점잖고 차갑게만 보이던 배우의 어디에 이토록 능청맞고 허점투성이의 매력이 숨어있었나 싶게 놀라게 된다. 지금까지 주로 상대 여배우와의 협업을 통해서 ‘커플 파워’를 발휘해왔던 김주혁은 <홍반장>의 타이틀 롤을 연기하며 비로소 확실한 눈도장을 찍는다. 어쩌면 20대 초반까지의 여성들은 왜 혜진이 홍반장에게 매혹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굳이 찾아낸다면 라스트 신의 ‘와인 수십 병’이라는 낭만적인 장치 때문? 그러나 20대 중후반부터 30대에 이르는 미혼 여성들은 모두 하나같이 영화를 보는 내내 ‘홍반장 같은 남자라면...’라고 남몰래 한숨을 내쉴 것이다(그리고 일제히 그를 ‘통장’으로 추대할 것이다). 그것은 온전히 김주혁의 힘이다.

평론가 정성일이 만난 <송환> 김동원 감독

독립영화 <송환>의 개봉(19일)은 독립영화인들뿐 아니라, 충무로 주류영화인들 사이에서도 화제다. 지난 8일 열린 특별 시사회장엔 이장호, 하명중을 비롯해 박찬욱, 김지운, 안성기, 유지태, 배두나 등의 감독과 배우들이 참석했고, 이 영화에 필름프린트 5벌 뜨는 비용을 지원한 강제규 감독도 자리를 함께했다. “예전에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컬럼바인> 시사회 때 영화를 보고 많이 부러웠는데 이젠 전혀 부럽지 않다.”(권해효) “처음부터 끝까지 울면서 본 영화는 처음이다. 보는 사람의 감정을 쥐었다 놨다 하면서 감정과 이성을 한꺼번에 움직이는 영화였다.”(박찬욱) <송환>은 화제가 될 이유들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다큐멘터리 집단 푸른영상의 대표인 김동원 감독이 92년부터 12년 동안, 장기수 할아버지들을 쫓아다니며 촬영한 그 분량이 800시간에 이른다. 또 다큐멘터리임에도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있다. 촬영 중간인 2000년 9월에 비전향 장기수의 북한 송환이 있었고, 영화의 등장인물 중엔 북으로 간 이도 있고, 남은 이도 있다. 영화는 주제의식을 앞세우지 않고 사람에 주목한다. 신문의 몇줄 기사로 읽어온 우리 시대의 거친 역사가 실제 사람의 삶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체온과 체취를 실어 전하는 <송환>은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미국 독립영화제 ‘선댄스 영화제’에서 ‘표현의 자유상’을 받기도 했다. “비전향 장기수 문제 앞서 인간의 삶을 좇은 12년이었지” 지난해 한국 영화 가운데서 <송환>을 최고의 영화로 꼽았던 영화평론가 정성일씨가 <송환>의 김동원 감독을 만나 인터뷰했다. 인터뷰에 나오는 조창손(73) 할아버지는 62년 연락선 부기관장으로 남파됐다가 체포돼 30년간 복역한 비전향 장기수이다. 낙천적이고 유머가 많은 그는 촬영 도중 김 감독과 제일 친해졌고, 2000년 북한으로 송환된 뒤 “김동원은 사실 내 아들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편집자 <송환>은 지난 20년 동안 한국 다큐멘터리 작업 속에서 하나의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끝낼 수 있는 순간들이 정말 많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버티게 하는, 여기선 끝낼 수 없다는 그 힘이 느껴져서 2시간28분의 긴 상영시간 동안 긴장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다. 그게 김동원 선배에게는 매우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왜냐면 남북관계가 수시로 변하고 자칫하면 이게 소재주의로 몰려서 작품 전체를 버려야 할 수도 있는 거고. 그걸 12년 동안 버틴 건 감독으로서 뭔가 대답을 기다린 것일 텐데 그 대답이 뭐였을까. 내가 기다렸다 조창손 선생님 얼굴 다시 보고, 조 선생님이 돌아가서 본 북한의 현실, 행복감의 정체 그런 것들을 확인하고 싶다고 할까. 아직까지 기다리고 있는 건데. 달라진 북한의 모습에 대해 선생들이 머리 속에 상상하던 것과 직접 만나서 본 것과 차이를 어떻게 느끼고 계실지, 질문해도 대답을 잘 안 하시겠지만 미묘하게라도 표정 같은 걸 통해 내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또 이제는 남한에 계실 때와는 다른 관계로 만날 것 같은데 그럴 때 선생들의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 그런 게 궁금해. 북으로 간 조 할아버지, 달라진 현실 행복한지 표정이라도 보았으면… 김 선배가 조창손 선생을 찍은 지 12년이 흘렀다. 12년은 긴 시간이고 조 선생은 이전에 고초를 겪으셨고 나이도 있으시다. 끔찍한 가설이지만 만약 조 선생께서 건강이 악화돼 중간에 운명을 달리했다면, 이 영화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때려치웠겠지. 조 선생 중심으로 찍고 있었을 때인데, 아마 작품을 포기했겠지. 그렇다면 이 영화는 테마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인간에 관한 영화라고 받아들여도 되나. 비전향 장기수라는 건 개념이고 조창손 할아버지는 한 인간이지 않은가. 조 할아버지가 작품의 시간을 못 견뎠을 때 작품을 포기할 거라는 건, 인간에 대한 관심이 훨씬 더 컸던 영화라는 말 아닌가. 아마추어리즘인지는 모르지만, 작품 하려고 만난 건 아니거든. 조 선생 때문에 관심이 촉발됐고,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다루기 위해 조 선생을 찍은 건 아니거든. 작품을 하려다 보니 테마를 도드라져 보이게 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 이야기도 꺼냈지만, 인간적인 관심이었던 건 분명한 것 같아. <송환>은 찍는 것보다 편집이 지옥이었을 것 같다. 800시간 촬영분을 2시간반으로 줄이려면 편집에 원칙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것 같다. 테마를 뭘로 하느냐에 따라 수십편이 나올 수도 있었을 거다. 원칙이 있었다면 뭐였는지. 다큐멘터리에 선전 선동의 액티비즘이 빠지면 좀 싱겁지. 조 선생의 삶이겠지. 다 표현되진 않았지만 함께 남파돼서 몇 사람 죽고 몇사람 전향하고, 못 간 사람도 있고. 그게 이야기 축이었고. 또 하나는 그 과정에서 시대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역사를 배치하고. 그 다음에 옛날에 찍은 화면은 너무 듬성듬성해서 그걸 연결시키려고 내레이션을 넣고. 편집하는 과정이 힘들지는 않았어. 옛날 일기를 다시 끄집어내서 읽어보는 기분 있잖아. 저거 쓸 건가 말 건가보다 저 때 재밌었는데, 저런 일도 있었는데, 그런 생각으로 즐거웠다. 사실 이게 비전향장기수에 대한 첫번째 본격 다큐멘터리 같다. 만약 이전에 이런 영화가 많았다면 <송환>은 한 사람 이야기만 다룰 수 있었겠지만 처음이어서인지 <송환>에는 계몽적인 부분도 있고, 설명적인 부분도 있다. 처음 하니까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는 큰형 같은 생각이 있었던 것 아닌가. 다큐멘터리를 모르고 찍었던 80년대, 막 설명하고 선전 선동하고, 뭔가 행동을 촉발하려고 하는 그게 다큐멘터리라고 알고, 왜 액티비즘이라고 말하는 것 있잖아. 나는 성격은 그렇지 않지만 그렇게 시작했단 말이야. 그 뿌리를 지우기 힘든 것 같아. 아직도 액티비즘이 빠진 건 좀 싱겁게 느껴지고. 계몽적인 게, 선전이 나쁜 게 아니고 어떻게 계몽하고 선전하느냐가 우리의 관심사라고 생각하는데. <송환> 보고 나보고 짓궂다는 사람도 있고, 포스트모던의 경향이 있는 줄 몰랐다고 하는 이도 있어. 나에게 그런 성향이 있는 것 같아. 70년대 성향을 이어받았지만 자유주의적 기질이 있는 것 같고. 그러면서도 액티비즘의 고집 같은 것도 남아있고. 다큐멘터리는 저널이고 아트이면서 액티비즘이라고 하는데, 셋이 잘 조화되는 걸 실험해볼 기회가 별로 없었어. 이 영화엔 장기수들의 지금 삶과 관계없는, 그들의 기억에 의존한 진술들은 다 뺐다. 어차피 기억이 역사인데 어떤 불안함이 있었던 건 아닌가. 그들의 기억에 의존하면 다른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기억하는 현재에 관한 영화나 기억 자체에 관한 영화가 되든가. 그건 너무 포스트모던한 것 같지 않은가. 영화는 기억 이후만 찍는데, 거기에는 라이프만 믿을 만하지 메모리는 못 믿겠다는 원칙이 있던 것 아닌가. 민가협 같은 단체에서 선생들의 기록을 내놓고 있었고, 텔레비전 프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도 전향공작을 다뤘고. 그게 내 부담을 덜었던 것 같다. 또 지난해 개봉한 홍기선 감독의 극영화 <선택>의 영향도 커. 그 영화에 다 있으니까 굳이 내가 다 담을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지. 기억에 의존한 진술, 학습으로 나온 대답, 내면과 상관없어 뺏다. <송환>엔 의외로 한 사람과의 장시간 인터뷰가 없다. 어쩌면 장시간 인터뷰할 만큼 가깝지 않다는, 김 선배가 가까이 가긴 했지만 거리를 느낀다는 것을 읽게 된다. 예를 들어 그들의 북한관이나 수령론 같은 문제로 논쟁이 벌어질 수도 있었을 텐데. 내가 정면으로 선생들에 대해 끝까지 물고 늘어지거나 문제제기를 한 적은 없는 것 같아. 매우 조심스러워졌던 게 사실이야. 너무 잔인한 질문이 될 것 같았고. 어쩌면 호기심일 수도 있잖아. 남한의 자유주의자가 퍼붓는 진지하지 않은 호기심 어린 질문일 수도 있잖아. 또 질문을 하게 되면 나오는 대답은 거의 비슷하다고. 그건 우리가 익히 아는 북한 선전물의 대답이야. 내겐 재미가 없었어. 넣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지. 나는 그게 선생들의 진정한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학습받은, 내면과는 상관이 없는. 조창손 할아버지에게 이 지면을 빌려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건강하시라는 말을 하고 싶지. 건강하면 언젠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1년 안에 꼭 찾아가겠다고 두번이나 큰 소리를 쳤거든. 4년이 됐는데 아직 못 간다는 게, 부시를 원망해야 할지. 송환이 있었던 2000년의 분위기와 비교하면 지금은 화딱지 나는 현실이지. 그렇지만 또 기다리다 보면 만날 거라고 믿지. 일개 영화평론가로서 노무현 대통령께 간절히 바라건대, 김동원 감독이 조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게 되도록 해주시길 바라면서 인터뷰를 마무리합니다.

23일 막 내리는 <대장금> 김영현 작가 인터뷰

“장금이는 보통사람 호기심·열정이 달랐을뿐” 매주 월·화요일 밤 10시,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두가구 중 한가구를 불러모았던 문화방송 텔레비전 드라마 〈대장금〉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23일 54회로 막을 내리는 〈대장금〉을 드라마가 거둔 최고 시청률 수치만으로 기억하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비록 극 후반부, 최 상궁 일가를 향한 장금의 복수극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짜임새가 엉성해져 짜증 나기도 했지만 “다른 드라마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새로움과 긴 여운을 남겨주었다”는 평가를 훼손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것은 도무지 지칠 줄 모르는 꿋꿋한 장금이라는 캐릭터에 시청자들이 매료됐기 때문은 아닐까. 막바지 원고쓰기에 여념없는 〈대장금〉의 작가 김영현(37)씨를 지난 9일 여의도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돌이켜보면 장금은 어떤 인물이었나 장금이 성인(聖人)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썼다. 기본욕구에 충실하다 보니 성공했다더라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호기심과 열정, 단순함을 주려고 했다. 도전정신으로 똘똘 뭉친, 복잡함이 없는 인간, 성공하고 싶은, 칭찬받고 싶은 욕구가 굉장히 강한 여성이 바로 장금이다. 어머니한테 종아리를 맞으면서도 ‘왜 안돼요’라고 따져묻는 게 장금의 캐릭터다. 장금을 맡은 배우 이영애의 지성적인 면과 품위가 캐릭터 표현에 큰 힘이 됐다. 극 초반 한 상궁한테 만날 혼나다가도 헤헤거리며 ‘칭찬해주세요’라고 하는 부분이 시청자들에게 정감있고 귀엽게 다가왔던 것도 이영애라는 연기자 때문일 것이다. 이영애 덕에 캐릭터 표현 큰힘 장금이 궁으로 돌아와 복수극을 벌이면서 지나치게 호흡이 빨라지고 에피소드 중심으로 엮다보니 드라마 맛은 많이 떨어진 느낌이다. 한 상궁 이후 복수에 대한 시청자들의 갈망이 많이 생겼다. 처음 기획의도는 아니었는데 한 상궁, 정 상궁을 그렇게 보낸 사람들을 그냥 뒀다가는 결론이 안나겠더라. 그게 복수라면 복수고 진실규명일 수도 있는데 불가피한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조금 강퍅해진 느낌은 있다. 또 시청자들이 한회로 완결구조를 갖는 단막극처럼 느꼈다면 내가 본격적인 연속극 형태는 두번째 쓰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형식이 시청률을 급하게 올라가게 하는 데 기여했지만 역경극복의 과정이 생략되면서 덜 드라마틱해진 것 같다.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대장금>의 차별성은 여성주의적 시각에도 있는 것 같다. 후반부 들어서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대결 구도 때문에 흐려지긴 했어도 여성끼리의 따뜻한 동료애나 관계는 다른 드라마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는데 … 혹시 레즈비언(여성동성애자)이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었다.(웃음) 시청자들은 한 상궁이라는 스승, 연생이같은 동무를 가진 장금이를 부러워하는 것 같다. 장금이를 자기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드라마 구조상으로는 궁궐이라는 폐쇄 공간에서 사실상 거세된 채 살아가는 궁녀집단의 특수성 때문에 어머니와 딸 같은,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설정은 불가피했다. 엄마를 떼어놓고 온 아픔을 같이 겪었기 때문에 여자들끼리의 남다른 동무애가 있었던 것이다. 애초부터 궁녀집단을 가족으로 그리자는 기획의도가 있었다. 말하자면 연생이와 장금은 동기간이고 한 상궁과 장금이의 관계는 모녀지간이었던 셈이다. 드라마의 주제를 어머니로 가고 싶었다. 어머니라는 굴레를 강조하다 보면 여성을 옭아매는 측면이 있지만 여성의 가장 큰 강점은 ‘어머니성’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장금이 다시 궁에 돌아온 뒤 최고상궁이 된 금영을 만나 “행복하십니까. 행복하셔야 할텐데요”라고 싸늘하게 말하던 부분이나, 세자를 죽여달라는 중전의 권유에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에 권력의 손맛을 묻혀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라고 거절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특별히 공들인 대사가 있는가 가능하면 시청자와 감성을 공유할 수 있는 대사를 쓰려고 노력했지만, 솔직히 13부 이후에는 원고를 쓰기 바빴다. 전체적으로는 1부에서 장금의 아버지가 도사를 만나 세 여인에 대한 계시를 받는 대목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부분이라 가장 공을 많이 들였다. 한상궁 죽은뒤 시청률 압박감 시청률을 얼마나 의식했나 2001년에 내 이름을 걸고 쓴 첫 드라마 〈신화〉의 첫 시청률이 11%가 나왔다. 그때는 일주일 동안 잠이 안오더라. 그 다음 대본을 쓰고 어떡하든 잠을 자려고 애썼지만 중압감 때문에 못잤다. 시청률 무섭다는 것 뼈저리게 느꼈다. 이번 드라마 하면서는 내 생활 내가 요리하면서 글을 쓸 수 있어 행복했다. 초반에 시청률이 너무 올라 한 상궁 죽고 나서 안 보면 어쩌나 하는 압박감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 때문에 드라마 완성도에서 조금 떨어진 부분이 있을 거다. 장금이 관비로 내려간 제주도 부분이 간단하게 다뤄진 것도 빨리 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작용했다. 민정호의 사랑은 조금 모호하다. 여자가 주인공이다 보니 남자가 부각 안돼 솔직히 조금 괴롭다. 장금이와 그의 하는 일을 인간적으로 이해하는 남자로 그릴 수밖에 없는데 현실의 여자들은 그런 남자를 싫어하지 않느냐. 이 드라마에서 멜로를 쓰는 게 힘들다. 멜로를 못 써서 그럴 수도 있지만 궁녀라는 신분에서 멜로를 펼치는 게 초반에는 힘들었고 그 다음에는 장금의 석세스 스토리가 중요해지면서서 남자가 끼어들 틈이 좁아졌다. 그래서 철저하게 그 여자를 인정하고 후원하는 인물에 그쳤다. 다음 작품 계획은 김종학 프로덕션 소속으로 다음 작품도 이병훈 프로듀서와 함께 하기로 했다. 애초 〈토지〉를 하고 싶었는데 에스비에스에서 먼저 해 개인적으로 아깝다. 사극보다는 시대극이 더 매력적인데 마땅한 원작이 없어 〈대장금〉이 끝나면 감독님과 독서토론을 해야 할 것 같다.

낭독의 상상력

혹시 TV를 틀어놓고 화면을 보지 않은 채 흘러나오는 소리만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화려한 스타군을 등장인물로 가진 드라마의 경우에 인물들의 대사를 귀로만 수용하다 보면 그 단순성과 유아스러움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가 과연 텔레비전은 우리에게 무엇을 선사하고 있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우리는 익숙하게 알고 있는 그 어떤 스타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안이한 시청 상태로 들어간다. 발음이 분명치 않고 대사조차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고 있는 경우에라도 그 탤런트가 몇번 얼굴이 드러나 내게 눈으로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그 청각적인 껄끄러움을 참아내며 그가 우리에게 편안한 연기를 선사해줄 날을 기다리는 인내심을 키우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는 결코 ‘멀티’미디어의 시대가 아니다. 미디어 세계의 왕처럼 군림하는 텔레비전은 ‘시각’이라는 감각을 빼고 나면 죽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이미 시각편식증에 걸려버린 시청자들을 유혹하기 위한 TV 광고 화면들의 한컷 한컷을 보라. 내게 그것은 놀라운 시각중심 문화의 결정적 성과물들이다. 인간에게 마치 눈만이 확대되어 달려 있는 듯한 기형을 만들어 세대를 물린다 해도 우리는 시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멀티’라는 용어가 무색하게도 청각, 촉각, 후각, 미각들은 시각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다 어느 고즈넉한 늦은 밤, TV에서 누군가 책을 펴고 조용히 읽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낭독으로 느끼는 제3의 감각이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소리를 내어 스스로 몸을 통하여 느끼는 것이다. 시각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틈새가 없다. 왜냐하면 보는 것이 듣는 것을 압도하여 아무런 공간을 만들어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공간과 여유가 바로 사람들에게 ‘울림’과 ‘느낌’을 소생하게 해주는 산실이다. <낭독의 발견>에서 ‘잘 읽는’ 사람들이 정성스럽게 들려주는 아름다운 말에는 리듬과 절주가 있었다. 말과, 시와 음악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님을 알려주는 그 시간이 내게는 무엇보다도 소중했다. ‘보여줌’이 아니라 ‘들려줌’의 미학이 다양한 진동을 선사하면서 빡빡하고 강요된 감정의 획일 속에서 벗어나게 해줄 때 우리는 하나에만 지배당하지 않는 다양한 즐거움을 알게 된다. 성시경과 송선미는 함께 김종완 시인의 <그의 시 & 그녀의 시>를 조용한 음악 속에서 낭독해주었다. 그때 난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얼마나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를 그 시가 말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시각으로 보여주었으면 간단하고 유치하게 처리되었을 장면들이 시 속에서 얼마나 다양한 여운을 남겨주는가를 말해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남자)난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아침에 그녀는 꼭 커피를 마신다. 밀크가 아닌 블랙으로 2잔/… 그리고,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알고 있다∥ (여자)그는 모르는 것이 너무도 많다/ 그는 아침에 내가 뽑는 커피 한잔이 그의 것인지를 모른다…∥ (남자)그녀는 하기 싫은 부탁을 받을 때는 그냥 웃는다/ 그리고, 내색을 안 하는 그녀이지만 기분이 좋을 때는/ 팔을 톡톡 두번 건드리며 이야기를 건넨다…∥ (여자)그는… 나의 침묵에 담긴 긍정의 의미를 모른다/ 난 내가 기분이 좋을 때 그의 손을 잡고/ 얼마나 이야기하고 싶은지 그는 모른다…∥ (남자)… 그리고, 나는…/ 그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여자)… 그리고, 그는/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서로가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것은 언제나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아침마다 그녀가 타는 커피 두잔 중에 한잔이 그의 것임을 모르며 그녀가 싫을 때와 좋을 때의 표현이 그 때문에 연유하는 것임을 그는 모른다. 그래서 결국은 그녀가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그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아마 그녀를 관심있게 바라보고 있는 그는 진정 그녀의 사랑을 원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같은 근원에서 움직이는 데도 그녀와 그는 얼마나 다르고 보고, 다르게 느끼며 다르게 결론짓고 있는가. 나는 진정한 문화의 힘은 서로 다른 개인에게 건강하게 자기만의 울림을 가질 수 있게 하고 그것들이 조화롭게 공명하도록 해줄 수 있을 때 나오는 것이라고 믿는다. 조금은 천천히, 조금은 깊숙하게, 조금은 낮게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의 감각들에게 자리를 만들어주자. 빨리 좋은 것을 보여달라고 하기 전에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그래서 차분하게, 다르지만 또한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할 수 있도록…. 素霞(소하)/ 고전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