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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의 노액션배우 예찬론 [1]

자칭 액션중독자. '씸마이" 영화를 사랑하고, 성룡 영화에 출연하는 게 소원이라 밝혀온 류승완 감독. <다찌마와 Lee>로 70년대 액션영화에 대한 관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그는 신작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백일섭, 백찬기, 김영인 같은 왕년의 스타들을 모셔 다시 한번 애정을 고백한다. 류승완이 옛 기억을 더듬어 풀어놓는 짜릿한 영화관람의 회고담, 액션배우 예찬론. 편집자 오줌 냄새인지 오징어 냄새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냄새가 지배하던 검은 어둠 속. 어린 나는 좌석번호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극장으로 들어가 좋은 자리를 찾기 위해 잽싸게 뛰어간다. 나름대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편한 마음으로 폼나게 팔걸이에 팔을 턱 올려놓는 순간, 이런! 오늘도 누가 팔걸이 밑에 껌을 붙여놓고 나갔다! 알 수 없는 그 누군가에게 저주를 퍼붓는 동안, 어둠을 뚫고 나온 한 줄기 빛이 커다란 흰 천을 향해 돌진한다. 어렸을 때 도대체 무엇을 광고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봤던 생리대 광고를 지나, 친절하게 그려놓은 양장점과 예식장 등의 지도가 펼쳐지는 동네 광고를 보내고 나면, 불규칙한 색깔의 비가 내리며, 지직거리는 소음과 함께 빨간 글씨로 제목을 알리는 영화가 시작된다. 물론 대한 늬우스는 필수코스. 두둥! 검은 양복에 중절모를 쓰고, 흰 면장갑을 착용한 영웅들이 항상 그림하고 소리하고 잘 매치가 안 되는 상태로 멋진 대사들을 한바탕 읊고 난 뒤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둘러싼 악당들을 물리친다. 언제나 악당들은 맞지 않은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뒤로 벌러덩 나자빠지고, 여럿이 한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데도 꼭! 한 사람씩만 덤빈다. 옛날엔 아무리 수가 많아도 한 사람을 공격할 땐 한 사람씩만 덤비는 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었나보다. 아니면 적어도 최소한의 예의 같은 것이 남아 있었거나. 하지만 영화를 본 내게 그런 싸움의 예절 따위는 통하지 않았다. “역시 한국영화는 안 돼!”라는 말만 중얼거리며 나는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토종 액션영화는 안 돼…” 어린 시절을 지방의 소도시에서 보낸 나는 동네에 하나 있는 극장에서 매주 두편씩 동시상영 영화를 보았다. 다행히 지방이라서 그런지 아저씨들은 어린 내가 혼자 극장에 들어가도 붙잡지를 않았다. 물론 대부분 삼촌과 드나들기도 했지만 말이다. 내게 한국 액션영화의 기억은 동시상영관 문화로부터 시작된다. 지금 추측해보건대 아마도 당시 지방의 극장에서는 과거에 상영했던 필름을 보관하고 있다가 동시상영할 영화의 수급이 여의치 않을 경우 옛날 영화를 틀곤 했던 것 같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난 이소룡의 <사망유희>를 필름으로 보았다! 그때 동시상영 프로는 <변강쇠>였다. 아무튼 나는 이렇게 시간을 초월한 배급을 펼치는 극장문화 덕분에 엉뚱하게 과거의 한국영화들을 보곤 했다. 하지만 당시에 성룡의 화려한 몸놀림에 빠져 있던 내게 한국의 토종 액션영화들은 마음의 상처만 안겨주었다. “역시 우리는 안 돼…” 식의 상처 말이다. 그나마 제작되던 한국·홍콩 합작영화들 덕분에 한국에도 그럴 듯한 액션 스타가 있다는 믿음이 생기려 했지만 그 영화들의 무국적성 때문인지 결국 나의 상처는 치유되지 못했다(아마도 무국적성에 예민했던 이유는 살벌한 반공교육과 함께 강요된 애국애족에 대한 교육의 힘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뒤로도 나는 동시상영으로 인해 볼 기회가 아니면 일부러 한국 액션영화를 볼 생각은 하지 않았고, 또 어느샌가 그나마 제작되던 액션영화들도 서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아마도 10대 시절 마지막으로 본 액션영화다운 액션영화는 진유영 주연의 <인간시장>과 전영록 주연의 <돌아이> 시리즈 정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난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애타게 피를 찾는 뱀파이어처럼 새로운 피를 찾아 극장과 비디오 가게를 기웃거렸고,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한국 액션영화를 볼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영화를 폭식하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매끈한 영화들이 재미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새로운 출구로 선택한 길이 바로 B-무비의 세계였다. 뭔가 엉성한 것 같은데 다른, 그래서 즐거운…. 영화 속 배우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열연을 할수록 나는 웃었고, 배우들의 연기가 설렁설렁할 때면 오히려 배우의 연기에 푹 빠졌다. 난 언제부턴가 삐딱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무렵 나는 다시 한국 정통 액션영화와 화해를 시작한다. 모두가 외면했고 명절 때 방송에서도 밤 12시가 한참 넘어야 틀어주던 그 영화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사실 나에게 가장 고전적인 액션 스타는 이대근과 황정리와 거룡과 당룡이었지만 이 시기를 통해 박노식, 허장강, 장동휘, 독고성, 이대엽, 오지명, 김희라, 백일섭, 황해, 장혁, 문오장 등 일일이 이름을 나열할 수 없는 독특한 개성을 지닌 액션 스타들을 만나게 된다. 아! 그대들은 아는가. 협객 김두한이 하얀 정장을 입고 멋진 발차기를 날릴 때 쭉 찢어지는 바지틈 사이로 비추는 빨간 팬티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향수 어린 협객의 시대 지금은 조폭이라 불리는 영화 속 주인공들은 의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던지며, 낭만을 잃지 않기 위해 홀로 전쟁터 속으로 뛰어든다. 그리고 이들은 깡패나 조폭이 아닌 협객이라 불렸다. 아! 협객…. 분명 이 시절 김두한은 장군의 아들이 아닌 협객 김두한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이 시절 영화들은 아직 사리분별이 흐린 관객을 위해 선이 좋고 악이 나쁘다는 친절한 교육용 멘트로 마무리를 지었으며, 조금 더 나아가 국내의 위험한 정치상황을 좀더 쉽게 정리해주기 위해 악당 두목을 느닷없이 간첩으로 둔갑시키기도 한다. <유주얼 서스펙트>에 비견할 만한 반전이 이미 우리의 영화 역사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즈키 세이준의 <도쿄 방랑자>가 마지막에 여주인공에게 내겐 여자가 필요없다며 떠나는 반면 우리의 협객은 그런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 위해 관객을 향해 일장연설을 펼친다. 이 얼마나 철저한 팬 서비스인가! 이처럼 시나리오 교과서들에서 하지 말라는 거의 모든 것을 실천하는 영화가 과거의 향수 어린 액션영화들이었다. 분명 의도한 파격은 아니었지만 세대가 바뀐 지금 예전 영화들의 엉뚱한 장면과 대사들은 너무나 흥미롭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예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중요한 점을 또 하나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배우들의 감정이다. 비록 우리의 액션 영웅들이 성룡이나 이연걸 같은 곡예에 가까운 액션기술을 펼치진 못하지만 그들이 악당들과 대결을 벌일 때의 눈빛은 이소룡과 왕우가 보여주던 비장미와 일맥상통했다. 배신한 친구에 의해 아편쟁이가 된 부인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부인에게 죽음을 선물하는 고독한 영웅의 눈빛…. 크! 우리의 액션영웅들은 결전의 순간에서도 한 호흡 쉬어가며, 자신의 생을 돌아볼 줄 아는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난 어느 순간부터 정색을 하고 예전의 액션영화들을 찾기 시작했고, 이제부턴 또다른 즐거움이 나를 사로잡기 시작했다. 형님을 위해, 형님 때문에 지금은 시트콤 스타로 더욱 친숙한 오지명씨나 푸근한 아버지나 재미있는 푼수 캐릭터로 친근한 TV스타 백일섭씨 등이 예전 액션영화들에서 한 가닥하는 왈짜패들로 나올 때의 재미란…. 난 예전의 영화들을 다시 보면서 장동휘 아저씨나 박노식 아저씨가 벌이는 장면들보다 조연으로 등장하던 아저씨들의 연기가 더 재미있었다. 예를 들면 <팔도 사나이>에서 엘리트 깡패로 등장하는 오지명 아저씨가 일본놈들에게 집으로 돌아갈 정도로만 살려두는 가혹한 린치를 당하고 집으로 돌아와 편지를 전하는 장면의 비장미는 일품이다. 물론 그 편지를 받는 박노식 아저씨가 글을 못 읽는 바람에 오지명 아저씨는 죽어가면서도 편지를 다 읽고 죽어야하는 수고를 하지만 말이다. 또 백일섭 아저씨는 어떤가. 시골에서 갓 상경한 막내건달의 이미지로 기차역 앞에서 운명적인 고수와 만난 뒤 대결을 벌이고, 이 대결은 영웅들의 모임을 만들어내는 계기를 제공한다. 하지만 백일섭 아저씨가 벌이는 싸움은 그다지 큰 명분이 있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안고 온 보따리를 지키기 위해 주로 벌어진다. 극의 흐름이 과도하게 진지하게 진행된다 싶으면 어김없이 유머 코드를 진행시켜 관객의 긴장을 풀어주는 인물이 바로 백일섭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재미있던 캐릭터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때 슬픔은 배가 되는 법. 언제나 “형님”을 위해, 혹은 “형님들” 때문에 최후를 맞이하는 백일섭 아저씨의 모습은 비장하기 그지없었다(나는 <피도 눈물도 없이>를 만들며 찍은 장면 중 하나인 칠성파의 최후 장면에서 보여준 백일섭 선생님의 눈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 부분은 본편에서는 삭제되었다). 또한 주인공들에게 가려져 낯은 익지만 이름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악당들이 난 좋았다. 언제나 묵묵히 보스의 옆을 지키고 서 있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외투를 벗고 주인공과 대결을 벌이는 모습은 낭만이 있었다. <오사카 대부>에서 이대근 아저씨와 마지막에 시공간을 초월하며 대결을 벌이던 김영인 아저씨의 모습은 정말 근사했다. 그리고 이들은 정말 끝까지 싸운다. 실력이 비슷한 두 사람이 펀치로 이기는 게 아니라 맷집으로 이기는 것처럼 말이다. 선배들의 존재를 확인하다 나는 <피도 눈물도 없이>를 만들면서 내가 보고 싶었고,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예전의 액션 스타들을 모시고 싶었다. 백일섭 선생님처럼 예전의 이미지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분들을 통해 잊혀졌던 기억을 다시 부활시키고 싶었고, 완전히 사라져버린 듯한 분들을 찾아내어 그들의 건재한 모습을 나 스스로가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작업을 진행하면서 너무나 쓸쓸한 모습들을 발견했다. 내가 다시 부활시키고 싶었던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거나, 혹은 너무나 빠른 영화계의 변화 속에서 물러나 연락 두절이 되거나, 아니면 도저히 연기를 하지 못하실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어 계시거나…. 하지만 결국 백일섭 선생님이나, 김영인 선생님, 그리고 백찬기 선생님 등 과거의 액션배우들을 만나는 데 성공했고, 난 그분들에게 다시 스크린에서 연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드릴 수 있다는 게 너무나 기뻤다. 그런데 이게 웬걸. 오히려 기회를 제공받은 사람은 나였다. 난 이분들을 통해 온몸으로 영화를 만들던 당시의 진심 어린 애정을 느꼈고, 영화란 머리가 아닌 끓는 피와 뜨거운 땀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에게도 멋진 선배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직접 체험한 흥분은 도저히 설명이 안 될 것 같다. 어쨌건 이 작업을 통해 난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기분이다. 그리고 그 강은 생각보다 깊이가 얕았다. 그 얕은 강을 건넌 것이 먼 길을 돌아서 가는 것보다 훨씬 의미있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가지고 있던 역사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었는지 잘 모르고 지냈던 것 같다. 우리의 선배님들이 계속 현역에서 역사를 이어주시길 바라며….

충무로 중견 프로듀서들의 히든 프로젝트 [8] - 황정욱

마징가의 전설, 베일을 벗다 구상하게 된 계기는? <리베라 메>를 찍던 2000년 여름에 장난처럼 시작된 얘기다. 우리 세대, 30∼40대의 어린 시절을 장악했던 마징가에 대한 기억을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말이 나왔는데, 유치하다고 할까봐 걱정한 것과 달리 현충렬 이사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선뜻 해보자고 했다. 20여년 전 MBC에서 방영된 <마징가>는 우리 세대에게 아주 재밌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개인적으로는 6·25와 반공을 강조하는 분위기에서 어린 마음에도 안전하게 살고 싶다는 심리, 절대 강자에 대한 동경같은 게 있었다. 지난해 3월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원작의 판권 계약을 타진해왔는데, 원작자 나가이 고쪽과 접촉할 경로도 잘 모르고 해서 반년쯤 헤맸다. 판권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징가로 가능한 15가지 버전’의 시나리오를 개발해왔다. 계약이 안 되면 마징가의 원래 디자인을 포기하고 깡통로봇을 개조한 것 같은 마징가로 갈까, 마징가가 안 나오면 또 어떨까 등등. 다행히 <리베라 메>의 일본 개봉을 맡았고, <바람의 파이터>도 같이할 일본쪽 파트너인 양시영씨의 프랩엔터테인먼트가 다리를 잘 놔줘서 판권 계약에 진전이 있었다. 지난 1월 나가이 고의 프로덕션에 가서 협상하고, 현재 계약 마무리 단계다. 대중적 호소력의 근거는? 마징가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이 있으니까. 액션과 SF의 볼거리는 기본이고, 코미디가 아주 진하다. 허접스런 웃음으로 끝내지 않기 위해, 역사적인 사실을 소품삼아 마징가가 등장해 적들과 결전을 벌이기까지를 일종의 음모이론으로 풀어갈 것이다. 요즘도 테러로 비행기가 빌딩에 떨어져 수백명이 죽는데, 미래에 로봇 테러가 이상할 것도 없다. 내가 못 보는 뒤쪽에서 일어날 법한 일, 인과응보가 있다면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또 마징가는 일본에서도 중요한 캐릭터고, 나가이 고쪽도 반다이와 3D로 리메이크를 준비중이라고 했다. 한국과 일본만 봐도 시장 가능성이 높은 기획이다. 현실화 계획은? 기본 투자는 넥스트 벤처와 함께 진행할 예정이고, 40억원으로 예상하는 순제작비 중 20%는 프랩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일본에서 끌어올 계획이다. 연출을 맡은 박종대 감독은 신인이지만, 제이콤 시절 김종학 감독 수하에 픽업될 만큼 인정받던 사람이다. 만화, SF 계통에 밝은 영상원 교수에게 추천받았는데, 6개월 정도 손발을 맞추면서 신뢰도 쌓였다. 시나리오도 그가 직접 2고에 이어 3고째 손질중이고, 상황과 대사를 다듬어줄 작가는 거의 섭외를 마쳤다. 배우는 재밌으면서 비교적 신선한 얼굴로 갈지, 스타급으로 갈지 아직 고민중이다. 크랭크인은 6∼7월경, 개봉은 크리스마스 혹은 아예 내년 여름을 생각하고 있다. 개인적 혹은 산업적 의의는?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게 정말 의미있다. 남들이 안 하는 걸 하는 것, 성공할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가 있는 것도 좋고. 산업적으로 보면, 그동안 한국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소재와 장르다. 또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드문 방식으로 만화와 실사를 결합하는 시도가 될 거라 본다. 올해 개봉을 앞둔 <스파이더맨>처럼 컴퓨터그래픽 특수효과를 이용해 만화 원작에 비교적 충실하고 사실적인 실사영화를 만들어낸 경우는 할리우드에도 많지만, <마징가>는 좀 다르다. 원작에 없는 트위스트인데다가 특수효과와 미니어처, 특수촬영기법, 실사를 한 몸뚱아리로 합치는 실험을 준비중이다. 성패의 관건은?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징가가 나오는데, 어떻게 하면 만화 느낌이 아니라 그럴 듯하게 보여주는가 하는 점이다. 이를테면 <맨 인 블랙>은 만화적인 설정에 유쾌하고 웃기지만, 마지막에 그럴싸한 긴박감이 느껴진다. 어떻게 하면 산뜻하면서도 너무 가볍지 않게 끝낼 수 있을까. 자칫 실없는 얘기 같아서 진짜 하는 거냐, 애들 영화, 만화영화 아니냐는 말을 듣는데, 그걸 극복하는 게 관건이다. 로봇이 나와도 탱크나 전투기를 보듯 실감있게 보여주는 것. 또 <스타워즈>나 가 잘 안 되는 나라에서 어떤 식으로 마케팅을 할 것인가도 관건이다. <마징가>는 어떤 영화? 근미래의 한국, 일단의 세력에 의해 로봇을 이용한 테러가 발생한다. 겉보기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판매조직 같은 이들은, 사실은 지구 정복의 야심을 지닌 집단. 평소에는 보통 사람들처럼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던 지구평화협의회와 강 박사는, 이들의 음모를 막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선다. 이러한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에서 오래 전 비밀리에 개발했다는 마징가를 내보내자는 것이다. 수십년 동안 모습을 드러낸 일이 없는 마징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회자되어온 막강한 로봇. 하지만 마징가의 주변을 지켜온 사람들조차 실체를 본 일이 없어 의문을 품고 있는 형편이다. 마징가를 움직일 키를 지닌 조종사라는 말을 들은 주인공 역시, 마징가의 존재는 물론 자신의 능력을 믿지 않는다. 과연 마징가는 존재하는 것일까. 테러와 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마침내 마징가의 전설이 베일을 벗는다.

충무로 중견 프로듀서들의 히든 프로젝트 [6] - 조민환

참혹한 미래, `인간`을 깨치다 구상하게 된 계기는? <무사>를 찍을 때, 문득 사막이라는 공간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 무엇보다 이 공간은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이 없다. <무사>를 통해 과거는 가봤으니 이제는 미래로 한번 가보는 게 어떻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관심을 갖고 있었던 SF라는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점도 숨길 수 없다. 특히 스펙터클이나 비주얼적인 요소를 강조한다는 차원이라기보다는 과학문명과 인간의 관계를 조명하는 좀더 본래적인 의미의 SF, 즉 인본주의적 SF에 접근해보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무사>에서 조감독을 했던 조동오 감독이 아이디어를 내놓았고 재밌겠다 싶어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됐다. 암울한 디스토피아에서 살아가는 개인과 집단, 문명의 의미 등을 그리되, 액션영화 구조로 풀어간다는 이 영화의 방법론은 현재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형태의 SF라는 생각도 했다. <무사> 이후 정립된 생각이지만, 범아시아권의 역량을 결집한 작품과 블록버스터영화를 주된 축으로 삼겠다는 김성수 감독과 나의 회사 운영 방향에도 딱 들어맞는다고 판단했다. 중국이라는 공간에서 숙련된 중국 스탭과 함께 작업한다면 상당한 퀄리티의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또 아시아 시장에서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대중적 호소력의 근거는? 그 배경이야 어찌됐건 우선 이야기의 극적 재미가 존재한다. 비주얼 차원의 어떤 놀라움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총이 됐건 비행수단이 됐건 세트 미술이 됐건 아무튼 대중의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들은 많다. 작품의 규모가 자연스레 만들어내는 관심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으로 본다. 현실화 계획은? 아직은 트리트먼트 단계이므로 전체적인 규모를 산정하긴 어렵다. 어차피 규모라는 것은 표현의 수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긴 하지만, 확실한 것은 순제작비 54억원을 들였던 <무사>만큼 또는 더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제작비 조달은 범아시아 프로젝트를 회사의 전략적 목표로 설정한 이상 해외, 특히 아시아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최근 AFM에 다녀온 것도 미국 파트너를 물색하기 위한 것이었다. 해외합작은 영화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나 해외진출을 위해서나 필수적인 요소다. 조동오 감독은 <비트> <태양은 없다>의 연출부를 거쳐 <유령>과 <무사>에서 조감독을 맡았던 인물이다. 특히 <무사>에서는 세컨드 유니트의 연출을 맡았는데 큰 프로젝트를 연출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줬다. 김성수 감독은 그가 ‘한국에서 액션연출을 가장 잘하는 감독 중 하나’라고 말할 정도다. 개인적 혹은 산업적 의의는? <무사> 이후 이상하게 내가 사고하는 영화의 규모는 점점 커진다. 스스로도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프로듀서 입장에서는 블록버스터가 재미있다. 블록버스터 무용론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한 나라 영화의 영화산업과 영화기술을 발전시키는 데는 블록버스터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CG, 미술 등 시각화 기술을 생각해보면 블록버스터가 존재함으로써 발전했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전과 비슷한 자본, 비슷한 상상력으로는 이같은 수준을 계속 업그레이드할 수 없다. 결국 한국영화가 ‘저기’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입증하고 싶다. 성패의 관건은? 물론 스토리와 캐릭터다. 또 하나를 꼽는다면 <무사> 때 절실히 느꼈던 블록버스터에 걸맞은 시스템 구축이다. 큰 규모의 영화는 감독이 찍는 것도, 프로듀서가 만드는 것도 아니다. 배우와 스탭 하나하나가 자기 역량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안정적이고 원활한 시스템이 블록버스터의 창조자라고 본다. 물론 미래사회를 그럴듯하게 보여줄 수 있는 미술의 컨셉과 CG도 중요한 요소다. <게토>는 어떤 영화? 지금으로부터 100년 뒤, 지구에서 핵전쟁이 일어나 오존층이 파괴되고 온난화 현상이 일어난다. 지구는 사막화되고 과거의 화려했던 영화는 팍팍한 모래 속에 묻히게 된다. 길고 참혹한 전쟁터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생존자들은 ‘게토’라는 공동 군락지를 중심으로 전쟁만큼이나 고달프고 어려운 생활을 하게 된다. 이 사회의 특권계층 집단인 유니언은 게토의 주민들을 집중적으로 관리, 통제하며 이들의 노동을 통해 부족한 에너지를 조달한다. 이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수단은 사람들이 게토 밖으로 나가는 것을 절대적으로 금지하는 것. 누군가 이 지역을 빠져나가거나 다른 게토로 옮기려 하면 유니언에 의해 고용된 인간 사냥꾼들의 총구가 불을 뿜는다. 이런 상황에서 유니언은 전세계 게토 중 하나인 ‘서울 게토’의 일부 지역을 제거하려는 ‘게토말살계획’을 세운다. 술렁이는 게토 거주민들 사이에 들어온 한 사냥꾼은 우여곡절 끝에 이들의 저항을 조직하는 리더가 되고, 유니언과 피할 수 없는 대결을 위한 채비를 갖추게 된다.

촌지 받은 영화기자, 10여명 형사처벌 대상

3∼4명 구속, 나머지는 불구속 기소 방침, 영화계 자성론 높아 영화계 촌지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일까. 서울지검 컴퓨터수사부(부장 한봉조)는 3월8일 영화사들로부터 금품을 받고 홍보성 기사를 실어준 혐의(배임수재)로 <스포츠서울> 전 편집국장 이기종(53)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씨는 1998년 4월부터 2000년 5월까지 연예부장과 편집국장으로 일하면서 C영화사 등 4개 영화사 관계자들로부터 홍보성 기사를 실어주는 대가로 19차례에 걸쳐 모두 19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씨가 영화사 관계자들로부터 직접 8차례에 걸쳐 현금 100여만원씩 850만원을 받았으며, 부하 기자에게 “돈을 주지 않으면 기사를 쓰지말라”는 등 영화사들로부터 금품을 받아 상납하도록 지시해 11차례에 걸쳐 모두 1050만원을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씨 이외에도 한 스포츠신문 부국장급 간부 등 추가로 혐의가 포착된 스포츠신문 기자 10여명에 대해 다음주 중 일괄적으로 형사처벌할 방침이다. 이번 발표에 앞서 검찰은 지난 3월6일 메이저 배급사인 C사와 제작사 M사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였고 관계자들을 소환조사했다. 2월27일 영화 투자, 배급사인 T사와 C사를 조사하면서 시작된 이번 수사가 한때 이들 두 회사에 대한 수사로 그칠 것처럼 보였으나, 혐의사실이 드러난 한 스포츠신문 기자가 해외로 출국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확대됐다. 검찰로서는 일단 칼을 빼든 이상 그냥 물러설 수 없었던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영화사들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전표와 장부 등을 토대로 기자 개인별 촌지규모를 파악하는 한편 단순한 촌지 관행을 벗어나 먼저 금품을 요구하는 등의 정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형사처벌 대상자를 선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돈을 건넨 영화사 관계자들에 대해서는 사안의 경중에 따라 불구속 또는 약식기소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이같은 사태를 접한 영화계 반응은 크게 ‘동정론’과 ‘자성론’으로 나뉜다. 사법처리되는 사람들만 불쌍한 것 아니냐고 말하는 동정론은 대다수 영화사들이 촌지를 준 경험을 갖고 있다는 사실과 관련있다. 일부 영화제작자들 사이에선 사법처리 예정인 스포츠신문 기자를 위해 탄원서를 내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동정론이 우세이긴 하지만 영화인들의 자정결의를 발표하자는 자성론도 적지 않다. 대외적으로 실추된 이미지를 복구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의사표현이 있어야 할 것이라는 입장. 한 영화인은 “문제가 된 기자들과 별도로 어쩔수없이 촌지를 건넨 영화사 관계자들에 대해서는 선처를 해줬으면 하는 게 지금 영화계의 공통된 바람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사실 영화계의 해묵은 촌지 관행은 홍보나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에겐 언제나 골칫거리였다. 이번 검찰수사에서 한 영화사의 장부에 버젓이 ‘촌지’라는 항목이 있었고 온라인 입금까지 했다는 이야기는 영화계가 그간 얼마나 도덕적 불감증에 노출돼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동정론이든 자성론이든 이번 검찰수사가 촌지 근절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남동철

[충무로는 통화중] 영화 관련 예산, 줄이지 마라

정부가 산업논리의 잣대만을 지나치게 내세워 영화인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문화관광부가 지난 2월8일 승인한 2002년도 영화진흥위원회 예산 중 예술영화전문투자조합 결성을 위한 40억원, 예술영화전용관 운영비용 20억원 등이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모두 빠졌기 때문. 문화부 영상진흥과의 한 관계자는 “기존의 영상투자조합으로도 예술영화가 투자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 그런데도 굳이 전문투자조합을 만들기 위해 기금을 투여하는 것은 그 돈을 날려도 좋다는 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예술영화전용관의 운영비용 역시 기존 임대 비용으로 책정된 150억원을 활용하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문화부 관계자의 해명은 진흥기금의 ‘보전’만을 생각하는 ‘근시안’적인 발상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무엇보다 영상정책을 주도하는 부서가 한국영화의 시장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올해 영진위가 ‘작은 영화’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책을 마련한 데는 지난해 <고양이를 부탁해> <와이키키 브라더스> <꽃섬> <나비> 등 완성도 있는 ‘작은 영화’들이 블록버스터에 밀려 스크린을 잡지 못했고 이로 인해 줄줄이 넘어진 게 컸다. 뒤늦게 관객의 호응이 뒤따랐지만, 상영관을 옮겨다니는 간헐적인 상영으로 수지를 맞추기는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영진위는 저예산, 예술영화 역시 전문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하고 투자를 유도하여 제작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전문투자조합 결성과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안을 내놓았고, 이에 대한 지원을 결정했던 것이다. 스크린쿼터문화연대의 지원액을 대폭 줄인 반면 아태영화제 지원에 선심을 쓰는 등 올해 문화부의 예산 승인 결과는 영화계의 바람과 크게 어긋나 있는 걸로 보인다.이영진

<질투는 나의 힘> 촬영현장

쌀쌀한 바람은 여전했지만 봄볕이 고개를 들이민 여의도 국회 도서관 앞에서는 <질투는 나의 힘>(감독 박찬옥, 제작 청년필름) 촬영이 한창이었다. 매력적인 유부남(문성근)에게 옛 애인을 뺏긴 것도 모자라 새 애인(배종옥)마저 뺏겨버릴 상황에 처한 이원상이라는 젊은 남자의 이야기인 <질투는 나의 힘>은 어쩌면 이 변화의 계절이 띠는 모호함과 어울리는 영화일는지 모르겠다. 사회와 학교의 중간에 애매하게 걸쳐 있는 스물일곱 대학원생 원상의 계절도 가을인 듯 겨울이고, 겨울인 듯 봄이다. ‘연적’인 한윤식에 대한 감정이 질투인 듯 선망이듯. 이날 촬영에는 특별히 엄선된 예비 관객이 초대되었다. “어머, 박해일은 실물이 훨씬 잘생겼다”, “종옥이 언니 팬이에요”. 미리 조직된 영화팬클럽 ‘질투사랑’ 회원들은 호기심과 기대에 찬 눈으로 추위 속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촬영장을 떠나지 않았다. 강남역 근처 사무실에서 진행된 몇주 뒤 촬영에는 문성근의 모습이 보인다. ‘이 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임을 자처하는 출판사 편집장 한윤식은 얄밉지만 귀여운 구석을 가진 남자. “순간순간 불조심, 그럼 순간과 순간 사이에는 불조심 안 해도 된다는 거야?….”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불조심 포스터를 보던 한윤식이 썰렁한 농담을 던진다. 대본에 있냐고? 물론, 문성근의 현장 애드리브다. 오묘하면서도 귀여운 유머를 가진 영화 <질투는 나의 힘>은 오는 가을쯤 그 힘을 관객에게 보여줄 예정이다. 사진 이혜정 정진환·글 백은하 사진 설명 1.2. 지난 가을부터 시작된 촬영이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다. 조금만 더 힘을 내자구! 3. “박성연, 이 여자 너무 재밌어요.” 자유분방하고 나이답지 않은 순수함이 귀여운 여자, 수의사이자 사진작가로 일하는 박성연이 5년 만에 스크린 나들이를 하는 배종옥이 맡은 역할. 이번 영화 때문에 처음 담배를 배웠던 배종옥은 요즘엔 거의 골초 수준으로 담배가 늘었다. “뭔가 안 하면서 하는 척하는 거, 좀 그렇더라고.” 4. “이거 누구 줄 거예요?” 박찬옥 감독은 촬영 틈틈이 뜨개질에 열심이다. “마음을 안정시켜주고 잡념을 사라지게 한다”는 것이 그 이유. 촬영 막바지에 이르면서 목도리의 주인이 누가 될 것인가, 는 것이 모든 스탭들의 관심사다.

<피도 눈물도 없이> 개봉한 좋은영화 대표 김미희

‘흥행전선 이상있다?’ 최근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의 초반 성적을 두고 충무로의 혹자는 제작사인 좋은영화, 그것도 김미희(38) 대표의 ‘선구안’이 예전 같지 않다고 수군댈지도 모르겠다. <주유소 습격사건>(1999)을 시작으로 지난해 <선물>과 <신라의 달밤>까지, 연달아 내놓은 영화 세편의 평균 서울관객 수가 100만명. 매번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호타준족’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것에 비해, 이번 작품의 초반 기세가 대단한 돌풍을 예고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정작 김 대표는 조급해하는 기색도 아니었고, 당황스런 눈치도 아니었다. 늦잠을 자고 나왔다는 그는 이번 영화가 앞으로 자신의 관심이 가닿는 지점을 분명히 보여준 것에 대해서 오히려 만족스럽다고 했다. 또 ‘흥행제조기’라는 패찰을 고수하는 것보다는 이제껏 미뤄둔 새로운 영화들을 만들어간다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 있다고 했다.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장규성, 김영호 감독 외에도 그는 얼마 전 <와니와 준하>의 김용균 감독과 <낮은 목소리> 시리즈로 알려진 변영주 감독을 끌어들였고, 류승완 감독의 차기작에도 힘을 불어넣었다. 바깥이 어둑해질 때까지 이어진 2시간의 인터뷰는 앞으로 그가 예고한 변화의 전조를 감지하기에 충분했다. -청바지 차림은 처음 본다. =봄맞이 행사로 봐달라. 변화를 주려고 머리도 짧게 잘랐다. -혹시 <피도 눈물도 없이> 성적이 저조해서 기분전환하려고 그런 건가. =무슨 소리? (웃음) <피도…>는 류승완이라는 개성있고 아이디어 많고 에너지 넘치는 감독과 작업하고 싶어서 시작한 영화다. 또 결과적으로 그 부분에 대한 평단의 반응도 충분히 끌어냈다. 거기에 전도연이 변신했고 이혜영 선배가 돌아왔으니 애초 목표는 이뤘고, 지금은 해피하다. 돈 들였으니 흥행도 좀 되면 좋겠다는 기대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건 부차적인 거였다. -생소한 장르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사회가 암울해서 그런지 아직은 관객이 밝은 영화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주유소 습격사건>만 하더라도 통쾌한 면이 있었기 때문에 소재 자체가 칙칙해도 됐지만, 이 영화는 가장 어두운 밑바닥 생활을 리얼하게 묘사하는 데 치중한 면이 있고, 아직 그런 것에는 호응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요즘 감독에 대한 욕심이 부쩍 많아졌다. =결국 영화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감독. 누구랑 같이 가느냐가 앞으로 그 영화사가 계속 굴러갈 수 있을지를 결정하니까. 내게 없는 장점들을 품고 있는 감독들이 좋다. 제작자라면 다들 그렇지 않나? -<피도…>를 시작으로 뭔가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김상진 감독이 따로 영화사를 차려 나간 뒤에 뭐가 변한 건가. 품고 있던 욕심을 슬슬 풀어놓는 것 같다. =김상진 감독이 딴살림 차렸다고 달라진 거 없다. 요즘도 매일 보다시피 한다. 가끔 분당의 작업실 습격해서 시나리오 안 쓰고 게임하고 있으면 뭐하는 짓이냐고 ‘야지’놓기도 하고. 심심했는지 조만간 우리 위층으로 다시 이사온다고 그러더라. (웃음) 김 감독하고 같이 시작할 땐 흥행 확률이 높은 작품들 위주로 간 게 사실이다. 대박이 터질 줄 몰랐지만. 근데 앞의 작품들이 너무 강하다 보니, 나중에 다른 걸 하고 싶은데도 계속 코미디만 들어오는 거다. 그래서 류승완 감독이 이 시점에서 꼭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김용균 감독의 <신데렐라>나 변영주 감독의 <밀애>(가제)는 개인적인 호감도 작용한 것으로 아는데. =<와니와 준하> 시나리오를 봤는데, 순정만화의 감성을 그대로 옮겨놨구나 했다. 내가 원래 순정만화 광팬이다. 그거 보면서 김용균 감독은 섬세한 코미디를 곁들인 이야기도 잘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기회가 돼서 같이 하게 됐다. 변영주 감독은 사회적인 발언을 많이 해서인지 만나기 전엔 좀 딱딱할 거라 생각했다. 근데 여성영화인 모임에서 만나 보니 이렇게 유쾌한 사람이 있나 싶더라. 코미디영화를 맡기고 싶을 정도로. 그러다 얼마 전에 신혜은 프로듀서로부터 <밀애>를 소개받았고, 변 감독으로부터 영화에 대한 구상을 30분 정도 들었다. 격정적인 멜로영화이지만, 인물들이 그 과정에서 정체성을 찾아간다는 의욕도 좋았다. 몇몇 장면에 대한 이미지 설명에서는 굳이 말로 풀어놓지 않아도 될 만큼 감독의 의견에 동의했다. 무엇보다 김지운 감독처럼 어떤 장르를 시도해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능력을 갖춘 감독인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본인은 안 한다고 하지만, <밀애>(가제)가 끝나면 코미디영화 한편 하자고 조를 거다. -감독들 붙잡고 수다를 즐기는 걸로 유명하다. =수다는 아니고 그냥 커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 그렇게 편한 자리 만들어서 유년 시절, 첫사랑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감독이 어떤 사람인지 보인다. 개인적으로 영화는 감독을 닮는 거라고 본다. 수다처럼 보이지만, 그런 자리는 내겐 일의 연장인 셈이다. -<밀회>라고 불렸던 변영주 감독의 프로젝트는 이전에 캐스팅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좋은영화의 캐스팅 파워에 대한 기대가 없진 않을 텐데. =그런 게 어딨나. 절대 그렇지 않다. 나 역시 개봉할 때보다 캐스팅할 때 훨씬 스트레스를 받는다. <신라의 달밤> 때도 김상진 감독하고 눈물의 빵을 나눠 먹었고, <선물> 때는 장염에 걸릴 정도였다. 그때는 또 병원이 파업해서 혼자 끙끙 앓아누워 고생했다. <피도…>도 전도연을 캐스팅한 데는 류승완 감독의 명성이 컸고. 패러디영화인 <재밌는 영화>도 어려움은 마찬가지였다. 밖에서 보면 하루 만에 ‘뚝딱’ 된 걸로 보이지만, 조금씩 작업해서 얻은 결과들이다. <밀애>도 다음주부터 캐스팅 들어가야 하는데 한숨이 나온다. 그렇게 고민하고 사람 만나다 보면 얼굴이 좋아질 리 없다. -제작자로서 장단점에 대해 자평한다면. =아이템을 직접 쓰는 것도 아니고, 비즈니스적 마인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만나는 사람들이 자기 장점을 잘 펼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줄 정도다. 괜한 겸손의 말이 아니다. 정말이다. 그거 하나로 버텨왔고, 버티는 것 같다. 인복이 있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현장 경험이 없어 제작자로서 겪은 어려움은 없나. =시네마서비스에서 기획이사로 있을 때도 강우석 감독님에게 제작일 하게 해달라고 졸랐다. 매번 그러마 해놓고서 결국 간청을 들어주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현장 가면 열심히 물어본다. 카메라 기종이나 조명기기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지만, 그럴 때마다 솔직하게 ‘이건 뭐냐, 뭐가 좋나’ 스탭들에게 알려달라고 한다. 그거 모른다고 해서 뭐라 그러는 사람은 없으니까. -주위에서 가끔 ‘못됐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고집이 세다고 들었다. =근성이나 오기 같은 거 중학교 들어가면서 몸으로 체득한 것 같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난 빨간 똑딱이 구두도 혼자 못 신는, 매번 징징대는 그런 애였다. 긴 머리 땋아주는 것부터 엄마가 항상 챙겨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했으니까. 그러다 중학교 때 아버지 사업 실패로 집이 넘어가게 됐고, 말 그대로 길바닥에 나앉게 됐다. 그게 어떤 계기였던 것 같다. 그때 친구들은 우리집이 그렇게 가난한지 몰랐다. 얼굴도 하얗고 그런 애였으니까. 그때는 누가 어디 놀러가자고 해도 ‘나 일찍 가야 되거든’ 하고 집에 와서는 밥하고 살림했다. 남들보다 부지런해야 했던 시절이었고, 그게 쭉 이어진 것 같다. 지금도 내가 맞다고 판단되는 건 무조건 밀고 나아간다. -영화계에 들어와서 겪은 전환점도 있을 것 같다. =<투캅스3>. 시리즈의 후광이 있으니 이건 대충 만들어도 되지 않겠어, 하고 김상진 감독하고 안일하게 시작했던 게 실패의 이유였다. 너무 참패를 당해서, 둘이서 그때 서로 말도 안 하고 아침 11시부터 술을 먹었다. 술도 못 먹는 내가 그랬으니 심정이 오죽했겠나. 근데 김 감독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투캅스3>가 있었기 때문에 <주유소 습격사건>에 더 절박하게 매달리지 않았나 싶다. 시나리오가 좋았지만, 그렇게 안 덤볐으면 그 정도로 흥행이 안 됐을 거다. 그때 이것도 안 되면 늙은 남자한테 시집을 가거나 다 접고서 어디 취직을 가거나 하는 뭐 그런 생각까지 했다. -현재 준비하고 있는 작품만 해도 꽤 된다. =<신데렐라>와 <밀애> 외에도 얼굴에 딱 ‘멜로’라고 써붙이고 다니는 것 같은 김영호 감독의 <유월>이 있다. 오래된 러브스토리를 세련되게 풀어나가는 멜로영화다. 와 왕가위 영화의 중간 느낌 정도라고 하면 될까. 또 <재밌는 영화>를 연출하고 있는 장규성 감독의 <선생 김봉두>라는 시나리오가 있다. 휴먼코미디인데 촌지를 밝히는 선생이 낙도로 쫓겨가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제 곧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할 류승완 감독의 <마루치 아라치>도 있고. -멜로와 코미디영화가 주를 이루는데, 아무래도 멜로영화쪽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멜로적인 감성이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제작에 들어가도 접근하는 게 조금 다르다. 코미디영화는 큰 틀에서 이야기가 통하면, 주로 감독과 작가에게 많이 의존하는 편이다. 믿고 맡기는 것은 똑같지만, 멜로영화는 소소하고 디테일한 부분에서 의견도 많이 내는 편이다. -멜로영화에 대한 관심은 사실 일상에서 멜로적인 상황을 많이 못 접해서 그런 것 아닌가. =무슨 말인가. 나도 멜로 많다. (웃음) 내가 살아온 햇수가 몇인데 멜로 없었으면 어떻게 하나. 물론 연애 하면 ‘너는 내 인생에 들어온 거니까 무조건 내 인생에 맞춰야 돼’ 그래서 그런지 남자들이 되게 힘들어하고, 무서워하긴 하지만. (웃음) -개인적으로 도전해 보고픈 장르가 있나. =굉장히 감동적인 역사물이나 신나는 어드벤처영화를 언젠가 하고 싶다. 어드벤처 경우에는 한때 잠깐 준비를 했었는데, 우리나라 시장 환경에서 아무래도 처음 10분 동안 공감대를 끌어내기가 어렵더라. 그게 안 되면 이후 전개가 황당무계한 것 이상은 아니잖은가. 소재는 갖고 있는데, 언젠가는 그런 영화를 하고 싶다. 내 조카들이 보고서 ‘우리 이모가 저걸 만들었어’ 할 수 있는 그런 영화. 옛날에 내가 보면서 좋아했던 것처럼. 어드벤처와 판타지와 휴머니즘이 골고루 섞인. -그렇게 일 욕심이 많은데도, 공언한 것처럼 몇년 뒤에 다른 일 찾아 할 수 있겠나. =영화를 접는다는 게 아니었다. 근데 그 말 하고 나서 오랫동안 같이 작업해온 박정우 작가가 그런 이야기 하면 밑의 사람들은 어떡하냐고 해서 놀랐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내가 영화를 그만두겠나. 다만 개인적으로 엉뚱한 일을 벌이고 싶다는 욕심을 털어놓은 것인데 그게 와전됐다. 그게 어떤 건지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서 털어놓을 수 없지만, 영화와는 아주 먼 분야의 일이다. 돈이 되는 일은 절대 아니고, 정신적으로 좀더 안락해지는 뭐, 그런 종류다. 글 이영진 anti@hani.co.kr·최수임 sooeem@hani.co.kr·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인생, 위험과 자유의 기회

나는 소설가가 된 뒤 <씨네21> 필자가 되고 싶었다. ‘전 <씨네21> 편집장’이라는 크레딧으로 행세하기는 유오성처럼 ‘쪽팔려서’싫었다. <씨네21>에서 원고를 쓰라고 하면 ‘금의’(錦衣)를 못 구해서 ‘환향’(還鄕)을 못 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결국은 금의를 입기 전에 환향하고 말았다. ‘소설가’라는 크레딧을 구해오려면 시간이 좀더 필요한데… 한쪽 팔을 마저 짜야 가시풀 옷이 완성되는데…. 하기야 사람의 일이 계획대로 되기만 한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가령, 곰과 범에게 동굴 속에서 쑥과 마늘만 먹으면서 1백일을 버티라고 했을 때, 곰은 그렇게 해서 사람이 됐지만 범은 참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반인반신(半人半神)의 단군왕검도 다 그런 태생의 비밀이 있는 것이다. 박지원 소설 속의 허생도 10년 공부 끝내야 세상에 나오겠다고 독을 품고 방구석에 틀어박혔지만 결국 7년 만에 뛰쳐나오고 말았다. 액면으로는 쌀 떨어졌다는 마누라 바가지에 못 이겨서라고 했지만, 사실상은 세상일에 참견하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도 2년 만에 다시 영화계 주변으로 복귀한 셈인데, 그 2년 사이에 영화계는 딴판이 되어있었다. 영화사 중에 모르는 이름이 절반이 넘고, 한국영화의 힘도 훨씬 세졌다.판이 이렇게 커졌으니 일찌기 영화계에 한발이라도 걸쳐놓았다면 운좋은 사람이다. 영화감독 지망생이라면 이 판에서 데뷔 못하면 바보될 수 있고, 안 풀렸던 중견감독은 지금 재기작을 찍지 않으면 기회가 없을 테고, 제작자는 여기서 한 밑천 못 건지면 두고두고 한이 될 것이다. 우리 가족 중의 한 사람은 올해 34세의 독신녀인데, 광고회사와 벤처회사를 다니다가 영화공부하러 유학을 가겠다고 해서 내가 말렸다. “기획·프로듀싱 공부를 하겠다면, 지금 충무로에서 배우는 게 답이다.” 요즘은 유난히 영화지망생도 많고 영화재수생도 많고 영화휴학생도 많다. 심산씨가 운영하는 한겨레문화센터 시나리오작가 과정에는 의사, 교사, 회사원 등 직능별 대표선수들이 다 모인다. 최근 어떤 영화잡지의 평론상에 응모한 영화평론가 지망생들을 10명쯤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이 가운데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대부분 재료공학과나 조선공학과를 다니면서 장래의 희망을 영화쪽에서 찾겠다거나, 대학에서 다른 공부를 하고는 영화과 대학원에 들어가려고 준비하거나 이미 들어갔거나, 였다. 70년대까지만 해도 개나 소나 다 법학이나 정치학을 하겠다고 했는데, 80년대엔 사회과학으로 몰리더니, 90년대 이후엔 확실히 영화나 컴퓨터쪽이 대유행이다. 이런 추세로 나아가면 조만간 국내시장에서 한국영화와 외화의 비율이 역전되고 마침내는 국산차들 틈에 외제차가 가물에 콩나듯 박혀있는 한국 자동차산업처럼 될지도 모른다. 그런 날이 오면 나도 배철수씨처럼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우리 음악의 90%를 가요가 점령하고 있어요. 애국심 차원에선 바람직할지 모르지만 음악의 균형적 발전이란 측면에선 좋은 현상은 아니죠.” 솔직히 말해서 나는 한국영화가 가요나 자동차처럼 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재미없고 답답할 것 같다. 그래서 말인데,요즘 영화쪽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게 좀 불안하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게 마련이다. 70, 80년대 사회과학을 공부하겠다고 유학 갔다가 돌아와서 박사 실업자가 되었거나 IT 산업 붐이 일었을 때 대기업을 빠져나갔다가 입장이 난처해진 사람들만 불러모아도 ‘사열종대 앉아 번호로 연병장 두 바퀴’다. 그래서 사실, 영화 유학을 떠나려던 동생에게 주었던 충고의 전체 맥락을 살리자면 이런 것이었다. “몇 년 동안 유학 갔다 돌아와서 어디 취직하려고 그래? 지금 영화판에 들어와있는 사람들도 떠나야할 때가 올지 모르는데. 기획·프로듀싱 공부를 하겠다면, 지금 충무로에서 배우는 게 답이다.” 재료공학과를 다니는 영화평론가 지망생들에게 평론상 심사를 함께 한 기성의 영화평론가와 내가 입을 모아 이렇게 충고했다. “전공을 살려서 취직하고 취미로 영화에 대한 글을 쓰면 안 될까?” 요즘이야말로 영화를 하고 싶은 사람은 자기 적성을 냉정하게 따져야 할 때인 것 같다. 영화를 잘할 수 있을지,영화로 먹고살 수 있을지,영화 안 하면 못살 거 같은지….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어디선가 “옳은 개소리 작작 해!” 하는 소리가 들린다. 딴은 그렇군. 옳은 소리이긴 하지만,실생활에 도움이 안 되는 개소리인 것이다. 저 하고 싶다는 걸 어떻게 말리나? 나중에 실업자가 되더라도, 낙동강 오리알이 되더라도, 하고 싶은 건 해야지. 나는 뭐 산업적으로 직업적으로 비전이 있어서 소설 쓰겠다고 나섰나? 카뮈는 작가수첩에 “인생은 위험과 자유의 기회”라고 썼다. 그래. 인생이 그런 게 아니었다면, 알제리에서 태어나 두살에 아버지를 잃고 폐결핵으로 학교 결석을 밥먹듯 했던 불우하고 병약한 아이가 어떻게 파리 문단의 중심에 뛰어들 수 있었겠으며 어떻게 프랑스 현대소설의 얼굴이 될 수 있었겠는가. 조선희/ 전 <씨네21> 편집장

나는 인간으로 살겠다 <인조인간 키카이더>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관한 한 ‘왕국’이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인 ‘일본’에서는 최근 이 두 분야의 시장이 점차 감소하는 추세다. 주소비층인 어린이와 청소년층의 감소, 여타의 엔터테인먼트적 요소의 증가 같은 요인도 무시할 순 없지만, 무엇보다 큰 원인은 <드래곤 볼> <슬램덩크> <에반게리온> <세일러문>으로 대변되는 1990년대 황금기의 거품이 꺼진 뒤 ‘대박’이라 불릴 만한 히트작의 부재다. 이러한 시장축소에서 나온 제작경향은, 일정 수의 고정팬을 가지고 있고 자금력이 있는 중장년층의 소비자를 유인해낼 수 있는 ‘리바이벌’ 붐이다. 이러한 붐의 최대 수혜 작가는 <마징거 Z>와 <게타로보> 등 ‘거대 로봇물’의 아버지인 나가이 고와 <파워레인져> <백터맨> 같은 이른바 ‘특촬물’의 개화기를 장식한 <가면 라이더> <레인보우 전대> 등의 창시자 이시노모리 쇼타로일 것이다. <마징거 Z> <그레이트 마징거> <그렌다이져> 등으로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나가이 고에 비해 특촬물로 제작된 이시노모리의 작품들은 국내에서는 접할 기회가 극히 드물었다(그의 작품 중 애니메이션 시리즈 최대의 히트작인 <사이보그009>조차 한국에서 단편으로밖에 소개되지 않았다). 필자도 70년대 해적판으로 출시된 그의 만화를 보고 팬이 됐고, 그중 제일 깊이 인상에 남았던 것 중 하나가 <키카이더>였다. ‘양심’을 가진 인조인간 ‘지로’(키카이더)가 주인이 내리는 명령을 거부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을 습격해오는 적들과 싸우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모습과 몸체 부분부분 내부 기계가 비치는 독특한 디자인 등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기억에 남은 작품이었다. 그뒤 1972년에 특촬물로 제작된 버전을 보기에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은 물론이거니와 중년의 드럼통형 허리를 지닌 주인공이 펼치는 액션신들을 보다가는 자칫 작품에 대한 감정이입이 제대로 이루어질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리바이벌’ 붐 덕분에 2000년 12월부터 TV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키카이더>는, 탄생 20주년을 맞이한 2002년에 제작 완료된 후속작 OVA <키카이더01>에 이르기까지 원작의 작품세계를 충분히 살려주면서 작품에 또 다른 생명력을 부여해주고 있다. 오토모 가쓰히로의 복귀작이었던 <메모리스>의 2번째 이야기인 ‘체취병기’를 연출한 오카무라 아마토키 감독을 비롯해 <마법기사 레이어스>와 등의 작품에서 활약한 곤노 나오유키가 참여하고, <나그네 겐신> 같은 화제작들을 제작한 소니 비주얼 웍스가 제작을 맡아 ‘자아’를 찾아가는 인조인간 ‘키카이더’의 모습을 되도록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수작 애니메이션을 팬들에게 선사할 수 있게 됐다. 미형(美形) 캐릭터에 좀 멍한 성격만 지니면 인간처럼 지낼 수 있는 요즘의 ‘인조인간’ 캐릭터와는 달리 자신의 불완전성에 대해 항상 고뇌하면서도 어느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려는 인조인간의 비애와, ‘키카이더’의 제조자인 교무묘우지 박사의 딸 미쓰코가 ‘터부’의 장벽을 뛰어넘어 주인공을 사랑하게 되는 모습은, 비슷한 소재를 차용한 어떤 작품보다도 더 선명하게 인간에 대한 존재가치나 양심에 대해 자문하게 해준다. 이시노모리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작품 중간중간에 그의 다른 작품의 주인공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점이다(실제로 키카이더의 원작만화에서도 사이보그009가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러한 카메오 출연으로 그의 작품세계는 연장되고 확장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현재 한국 애니메이션의 ‘리바이벌’적 요소는 거의 <로보트 태권V>에 집중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70∼80년대 시절 보았던 작품은 <로보트 태권V>만이 아니다. 제발 <황금날개>나 <전자인간337> <소년007> 같은 작품의 제작소식도 들어봤음 하는 바람이다. 김세준/ 만화 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 neoeva@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