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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충무로는 통화중] 영화 제작 ‘병풍’ 맞고 움찔

병역비리 파동이 충무로 영화제작 진행에까지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캐스팅된 배우의 출연이 불가능해지면서 어쩔 수 없이 촬영이 지연되고 있는 것. 영화배우 ㅈ씨의 경우 10월 중 크랭크인 예정이었던 A영화사의 영화에 이미 구두계약을 통해 캐스팅을 확정한 상태였으나, 이번 병역비리 혐의에 연루되면서 중도하차할 수밖에 없게 됐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주연을 바꿔야 할 상황이다. 몇명 봐둔 배우가 있긴 하지만 올해 안에 스케줄을 맞추고 또 확정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겨울이 지나야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영화사쪽은 갑작스런 제작 진행 차질에 난감해하고 있다. 병역비리 혐의 문제 때문에 손실을 빚고 있는 것은 비단 충무로만은 아니다. 텔레비전 드라마쪽도 사정이 급박해지긴 마찬가지다. ㅈ씨의 경우 내년 2월 SBS에서 방영예정인 <파라다이스 카페>에도 역시 출연할 예정이었으나 본인의 번복으로 제작사 캐슬 인 더 스카이는 다른 주연배우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 밖에도 ㅈ씨와 같은 질병인 사구체 신염 판정을 받고, 군입대를 면제받은 영화배우 ㅅ씨와 ㅎ씨 역시 지금 진행 중인 대형 프로젝트에 걸려 있다. 김종학 프로덕션의 김종학 대표(사진)는 지난 9월14일 <태왕사신기> 제작발표회장에서 “방송사쪽과 협의하여 ㅎ씨를 다른 배우로 교체하겠다”고 밝혔다. ㅈ씨는 김종학 프로덕션이 제작하는 KBS 사극 <해신>에 출연하여 이미 상당수 분량을 촬영한 상태이다. 한편, 김종학 프로덕션과 포이보스, 두손엔터테인먼트가 공동제작하여 내년 1월 방영예정인 드라마 <슬픈 연가>의 주인공으로 결정됐던 ㅅ씨 역시 같은 상황이다. 아직까지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ㅅ씨의 드라마 출연여부는 <슬픈 연가>의 뮤직비디오 촬영에서 돌아오는 9월18일 이후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프로야구선수들로 시작하여, 연예계에까지 번진 병역비리 파문으로 충무로의 영화사 및 텔레비전 드라마 제작사가 때아닌 된서리를 맞고 있다.

‘예스 브레인’ 코미디, <노브레인 레이스>

텔레비전 프로그램 한 코너의 이름을 빌린 제목과 코미디언 정준하가 얼굴을 들이미는 포스터 때문에 <노브레인 레이스>는 막가파 영화처럼 비칠지 모른다. 그러나 제리 주커 감독에 녹록지 않은 배우들이 포진해 있는 이 영화는 반듯한 짜임새를 가지고 제대로 웃기는 코디미영화다.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 카지노에서 슬롯머신을 당기던 이들 가운데 6명이 호텔 사장이 참석하는 파티에 초대된다. 거기서 사장은 사물 보관함 열쇠 6개를 나눠주며 뉴멕시코의 실버시티역 1번 사물함에 현금 200만달러가 든 가방이 있으니 먼저 가서 가지라고 한다. 초대된 이들 가운데 몇은 그 말을 안 믿고, 몇은 “바보 짓 안 하겠다”며 버티다가 실버시티를 향해 사막길을 달려간다. 원제 ‘Rat Race’는 영한사전에 ‘무의미한(극심한) 경쟁’이라고 번역돼 있다. 그 뜻이 돈에 눈이 멀어 미친 듯 달려가는 이들의 경주에 어울리지만, 정작 경주 결과에 돈을 벌고 잃는 이들은 따로 있다. 돈 많고 할 일 없어 내기 중독증에 걸린 전세계의 갑부들이 이 호텔에 모여 누가 돈을 챙길지에 내기를 건다. 열쇠 6개엔 위치 추적장치가 달려 있어 호텔방의 대형 지도에 경주상황이 중계된다. 그 상황판이 마치 쥐들이 경주하는 경기장을 연상케 한다. 예상할 수 있듯 경주자들은 지적인 변호사부터 <덤 앤 더머>를 연상케 하는 얼간이 형제까지 성격, 나이, 인종이 다양하다. 다종다양한 인간들이 모여사는 미국 사막엔 별의별 이벤트가 벌어질 터. 경주자들의 개성에 맞춰 이 이벤트를 일대일 대응시키는 조합이 재치있다. 토실토실하면서도 탄탄한 근육질의, 아줌마들이 좋아할 타입인 쿠바 구딩 주니어는 60년대 드라마의 루시처럼 가꾼 루시 열혈팬 아줌마 군단과 동행하게 되고, 도무지 정치에 무관심할 것같이 생긴 존 로비츠는 친나치 박물관과 반나치 집회를 오가며 죽을 고생을 한다. 내기중독증 갑부들은 맛깔난 양념을 친다. 심심하니까 하는 일이 내기다. 억지스럽게 우연이 겹치는 경우도 많은데, 제리 주커는 그럴 때일수록 정신없이 몰아붙인다. ‘점점 빠르게’와 ‘점점 세게’가 합쳐 상승효과를 낼 때 폭소를 참기 힘들다. 코미디의 리듬을 잘 알고 마무리도 깔끔하게 한다. 예상과 달리 가장 기대를 했던 로완 앳킨슨이 좀 썰렁하다.

[외신기자클럽] 세련된 몬트리올 vs 화려한 토론토 영화제 (+영어 원문)

음과 양은 잘 살아 있다. 캐나다의 영화제 세계에서 말이다. 여기엔 선언되지 않은 전쟁이 이런 행사의 미래에 대한 큰 암시를 갖고 절정에 다다르고 있을 것 같다. 나는 캐나다의 어느 호텔방에 앉아서 이 글을 쓴다. 북미 최대 규모의 가장 중요한 영화제인 토론토국제영화제(9월9∼18일)가 29회째 개최 중이다. 일주일 전쯤에도 캐나다에 있었는데, 그때는 28회째를 맞은 몬트리올세계영화제(8월26일~9월6일)에 있었다. 이 두 영화제와 두 도시는 불과 몇백 마일 떨어져 있지만, 서로 다른 나라나 심지어는 서로 다른 대륙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불어권 퀘벡주에 있는 몬트리올은 특색이 있으면서 꾀죄죄하고, 산이 많고 역사에 전 듯한 도시로 막강한 세인트 로렌스 강가에 자리해 있다. 말하자면 유럽 도시인데 공교롭게 북미에 위치해 있을 뿐이다. 영어권 온타리오주에 있는 토론토는 밋밋하고, 티 한점 없이 깨끗하고, 평탄하고, 역사성이 떨어지는 도시로 거대한 온타리오 호숫가에 있다. 이는 미국 도시인데 공교롭게 캐나다에 있는 것과 같다. 두 도시 모두 다중문화권이다. 몬트리올은 라틴계 인구 요소가 큰데 특히 스페인어를 하는 쪽이 많다. 토론토는 동아시아계 공동체가 형성돼 있는데 특히 중국인과 한국인이 많다. 그런데 두 도시가 공유하는 특징은 이뿐이다. 자기 정체성에 안심하고 있는 몬트리올은 마을 행세를 하는 도시와도 같은데,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워 하는 토론토는 도시 행세를 하는 마을과 같다. 각 도시의 영화제 또한 그 고장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반영한다. 창립자이자 오너인 크로아티아 태생의 세르지 로지크가 여전히 원맨쇼처럼 운영하는 몬트리올영화제는 국제경쟁 부문에 더해 커다란 세계 파노라마 부문을 갖췄다. 칸 마켓에 열흘 동안 있는 것과도 같은데, 언제 작은 보배를 우연히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이 고장 관객은 영화를 잘 아는 사람들로 편견이 없고 감상 능력이 세련됐다. 토론토영화제는 떼를 지은 위원회들로 운영되며, 경쟁부문이 없고, ‘명성이 있는’ 영화와 감독들에 상당히 치중한다. 고장 관객은 사회적 겉치레에 더 관심을 가지고, 뭘 볼지 선택할 때는 남에게서 행동방침을 내려받길 좋아한다. 70년대 중반에 몬트리올은 화려함, 스타와 영화에 우세를 갖췄지만 당시 토론토는 아직 보수적인 벽지였다. 그런데 프랑스어를 쓰는 퀘벡이 캐나다로부터 탈퇴하겠다고 위협하자 미국 투자자본은 남쪽 영어를 쓰는 토론토영화제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80년대 토론토영화제는 점점 더 기꺼이 할리우드의 가을 개봉작 정켓을 치르는 장소가 되어줬다. 할리우드=스타=인지도=후원자란 공식은 90년대부터 영화제 세계를 지배한 것이다. 로지크는 이제 정부 지원 기관인 텔레필름 캐나다가 의뢰한 보고서에 면해 있다. 보고서는 불투명한 영화제 경영과 공식이사회의 부재나 재무 관련 비밀스러움을 비판하는 것이다. 텔레필름 캐나다는 지원금(현재 영화제의 20% 정도를 차지함)을 취소하겠다고 위협하고, 다른 이들이 도시에 새로운 가을 영화제 운영을 신청하기를 청했다. 로지크는 과거에도 몇번 정부의 위협과 맞서기도 했고, 캐나다는 일반적으로 비대결적인 스타일로 유명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영화제 세계는 변하고 있다. 국제영화를 사랑하는 독립입장을 취한 개개인이 운영하는 행사들에서, 할리우드의 마케팅 플랫폼으로 이용당하기를 기꺼이 좋아하는 위원회와 후원자가 운영하는 기업형 행사로 변하는 것이다. 영화제들은 스타와 유명한 영화를 필요로 한다. 또한 화려함도 필요로 한다. 그렇지만 스타와 영화와 화려함은 오로지 미국에서만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국제영화제- 칸과 베니스를 포함한 영화제- 들이 그렇다는 잘못된 생각에 은밀히 결탁할 때 관객에게는 슬픈 날이 되는 것이다. A Tale of Two Cities By DEREK ELLEY Yin and yang are alive and well and...living in Canada's film festival scene, where an undeclared war, with deep implications for the future of such events, may be reaching a climax. I write this sitting in a hotel room in Canada, in the midst of North America's largest and most important festival, the Toronto Intl. Film Festival (9-18 Sept.), now in its 29th year. A week or so earlier, I was still in Canada, at the Montreal World Film Festival (26 Aug.-6 Sept.), which celebrated its 28th edition. The festivals, and cities, are only a few hundred miles apart - but they might just as well be in different countries, or even different continents. Montreal, in the French-speaking province of Quebec, is a characterful, scruffy, hilly, history-soaked city on the banks of the mighty St. Lawrence River. It's a European city that happens to be in North America. Toronto, in the English-speaking province of Ontario, is a bland, spotless, flat, history-light city on the edge of the huge Lake Ontario. It's a U.S. city that happens to be in Canada. Both are multi-cultural. Montreal has a large Latin element, especially Spanish-speaking; Toronto has a sizable East Asian community, especially Chinese and Koreans. But that's the only characteristic they share. Montreal, secure in its own skin, is a city pretending to be a village; Toronto, conflicted about its identity, is a village pretending to be a city. Each of the city's festivals exactly reflects the local mindsets. Still run like a one-man show by its founder-owner, Croatian-born Serge Losique, Montreal has an international competition plus a large world panorama. It's like being in Cannes' Market for 10 days: you never know when you'll stumble across a small gem. Local audiences are film-savvy, open-minded and sophisticated. Toronto is managed by hordes of committees, has no official competition and is heavily into "name" films and directors. Local audiences are more into social posing and like to be led by the nose in choosing what to watch. In the mid-'70s, Montreal had the edge on glamour, stars and films, while Toronto was still a conservative backwater. But as Francophone Quebec threatened to "separate" from the rest of Canada, U.S. investment capital started to move south to Anglophone Toronto, which was increasingly happy during the '80s to oblige Hollywood, as a place to junket its autumn releases. Hollywood = stars = profile = sponsors - an equation that has come to dominate the film festival world since the '90s. Losique now faces a report, commissioned by government funding agency Telefilm Canada, that criticizes his untransparent management of the festival, its lack of an official board and secrecy with finances. Telefilm has threatened to withdraw its funding (around 20% of the festival's budget) and has asked others to tender for a new autumn film festival in the city. Losique has faced off other government threats in the past, and Canada in general is famous for its non-confrontational style. But the film festival world is changing - from events run by individual mavericks with a love of international cinema to corporate-style events run by boards and sponsors happy to let Hollywood use them as marketing platforms. Festivals need stars and name films. They also need glamour. But stars, movies and glamour are not exclusively U.S. inventions. It's a sad day for audiences when international film festivals - including Cannes and Venice -collude in the lie that they are.

[팝콘&콜라] 거저 먹은 TV영화 배부르지만‥허전한

추석 연휴는 극장가 최대의 성수기지만 개인적으로는 북적대는 극장에 가기 보다 집안에서 뒹굴거리며 ‘안방극장’을 즐기는 게 더 좋다. 특히 이번 추석은 ‘중고제품’이기는 하지만 개봉관보다 질적인 면에서 더 성찬에 가까운 영화들이라 매일 밤 채널을 오가면서 영화삼매경을 즐겼다. 특별 상차림이 차려지는 연휴 때가 아니더라도 나는 텔레비전 영화를 꽤 즐기는 편이다. 그것도 외화에 자막처리를 하는 케이블이나 교육방송이 아닌 더빙된 공중파 채널의 영화를 말이다. 이번 추석에도 지금까지 나온 디브이디 가운데 최고라는 찬사를 받는 <반지의 제왕:두개의 탑> 확장판 디브이디를 책장에 처박아 둔 채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영화를 신나게 봤다. 도덕교과서 방식의 문체로 더빙된 대사는 때로 실소를 자아냈지만 그 역시 꽤나 즐거운 관전 포인트 중 하나였다. 영화를 사랑하는 순정파들에게는 ‘변태’라는 표현으로도 모자랄 작태다. 올드 버전 가운데도 한참 늙은 텔레비전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가 특별히 있는 건 아니다. 남들처럼 어린 시절 ‘주말의 명화’로 길들여진 관람태도에 게으름이 보태져서 만들어진 습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굳이 한가지 변명을 보태자면 텔레비전 영화에는 극장 관람이나 비디오 대여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발견’이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개봉관을 찾거나 비디오를 고를 때는 내 의지만이 100% 작동을 하지만 텔레비전 영화에서는 전원만 켜면 퍼주는 밥을 먹어야 한다. 영화에 대한 정보도 남다른 애정도 없던 시절 텔레비전이 떠 주는 밥의 반 이상은 그저 그런 것이었지만 때로는 돈주고도 사먹기 힘든 귀한 음식이 차려지곤 했다. 이를테면 승용차와 트럭, 달랑 차 두대 만으로 한시간 반동안 아찔한 긴장과 공포를 만들어냈던 스티븐 스필버그의 초기작 <대결>이나, 비디오 출시도 안돼 그때가 아니었으면 지금까지도 못봤을 우디 앨런의 <바나나 공화국>같은 영화가 그렇다. 일요일 내내 빈둥거리다가 무심코 켠 텔레비전에서 발견한 이 보석들은 우연한 발견이기에 더 큰 포만감을 안겼다. 그러나 공중파 3사가 경쟁적으로 화제작 상영에 열을 올리면서 ‘발견의 즐거움’을 찾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같다. 물론 여기에는 영화에 대한 정보를 홍수처럼 쏟아내는 매체들의 역할도 어느 정도 작용한다. 우연한 발견이 이뤄지기에는 매체들이 너무 일찍부터 요란스레 떠들어대고, 반면에 텔레비전 영화담당자들은 ‘안전한’ 시청률이 보장된 흥행작으로만 가려고 하니 떠주는 밥을 먹어야 하는 시청자로서는 별 도리가 없다. 하루 빨리 디브이디족으로 업종전환을 하든지, 텔레비전 영화가 좋은 그럴싸한 이유를 새로 만들어내든지, 하는 수 밖에는.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 총력가이드 [4] - 다채로운 장르영화 15편 (1)

No.3_대중영화 : <에쥬케이터> 등 다채로운 장르영화 15편 로맨스부터 느와르까지, 관객을 부탁해 너무 긴장하지는 말자. 영화가 우리를 잡아먹는 일은 없을 테니까. 솜씨좋은 이야기꾼에서부터 장르의 숙련가들까지 우리를 마냥 즐겁게 해줄 영화들이 이렇게 많지 않은가! <에쥬케이터> The Edukators 감독 한스 바인가르트너 l 독일 l 2004 l 126분 독일영화로선 7년 만에 올해 칸 경쟁에 초청받았고, 호평받았던 이 영화를 대중영화로 소개한다는 건 어색하지만 틀린 것도 아니다. 다큐멘터리 느낌으로 촬영했지만 픽션이고, 부자들의 세계를 뒤집고 싶어하는 21세기의 젊은이들과 변절한 68세대를 맞세운 이데올로기극이지만 삼각 로맨스의 갈등이 중요한 축을 이룬다. <굿바이 레닌>으로 우리에게 낯을 익힌 다니엘 브륄은 지금 독일에서 정상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단호하면서도 불안한 눈빛의 그가 맡은 얀은 비폭력적 혁명가다. 친구 페터와 함께 밤이면 “돈이 너무 많은 자본주의 돼지들”의 고급 저택에 침입해 경고의 메시지를 남긴다. 노예, 억압, 착취 등의 단어를 쏟아내는 그들의 입이 어쩐지 상투적인데, 이 영화의 진정한 ‘혁명’은 본의 아니게 얀과 페터, 그리고 페터의 여자친구가 한 부르주아를 깊은 산속으로 납치하면서 일어난다. 그 부르주아는 너희들의 이상을 진심으로 이해한다며 살갑게 다가선다. 자신이 68혁명 당시 독일 지도부의 일원이었고, 지금의 아내는 함께 코뮌을 이뤘던 동지였다는 것. 젊은이들은 “세상을 구하기 전에 자신부터 구원해야 한다는 걸 깨달은” 옛 혁명가와 화해하는 것으로 끝나는 듯하더니 뜻밖의 메시지로 마무리한다. 70년생인 한스 바인가르트너 감독은 90년대 중반까지 의학공부를 했고 신경전문의로 일했던 이력을 갖고 있다. 위스키 Whisky 감독 후안 파블로 레벨라, 파블로 스톨 l 우루과이 l 2003년 l 94분 야코보는 우루과이에서 초라한 양말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독신의 유대인 늙은이. 어느 날 그는 오랫동안 교류가 없었던 동생으로부터 방문하겠다는 연락을 받는다. 동생은 브라질에서 성공적인 양말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어엿한 가장. 불타는 경쟁심을 느낀 야코보는 공장 인부인 마르타에게 아내인 척 해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세 사람의 여행이 시작되면서 거짓부부 마르타와 야코보는 어느 순간부터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그들 사이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우루과이영화의 발견’이라 일컬을 만한 <위스키>는, 정적인 화면 속에 터져나오는 웃음의 순간과 짙은 페이소스를 동시에 담아낸 서글픈 블랙코미디다. 대국 브라질과 실패한 복지국가 우루과이 사이의 사회·경제적 알레고리를 읽어내는 것도 흥미롭다. 세계의 끝과 여자친구 World’s End/Girl Friend 감독 가자마 시오리 l 일본 l 2004년 l 112분 양성애자 친구와 함께 살면서 분재가게를 운영하는 시노스케. 그는 남자친구와 헤어질 때마다 집으로 찾아오는 하루코를 위해 사귀는 여자친구도 버려둘 정도지만, 정작 하루코는 그런 그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 행복한 순간 파국을 염려하며 눈물 흘리는 하루코, 바니 래빗 탈을 뒤집어쓰고 사랑을 고백하는 남자, 패닉상태에 빠진 시노스케를 진정시키기 위한 키스에 진심을 담는 그의 동거남…. 이들이 그리는 사랑의 화살표는 물론 어긋난다. 그러나 영화는 영원을 이야기하며 힘겨워하는 대신 동그란 하늘을 함께 올려다보며 순간을 음미하는 경쾌함을 택한다. 그것은 좌충우돌 젊은 날의 진실을 보여주는 나름의 방법이다. <마이제너레이션> My Generation 감독 노동석 l 한국 l 2004년 l 85분 웨딩 촬영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감독지망생 병석과 돈을 벌고 싶어 각종 직장을 전전하는 재경. 좀처럼 가벼워질 것 같지 않은 지리멸렬한 일상의 무게는 이 커플이 함께 나누기에 다소 버거워 보인다. 흑백디지털 영상에 담긴 모든 출연자들은 스탭을 겸한 비전문배우. 그러나 감독은 적절한 캐스팅과 세심한 연출을 통해 이들의 얼굴과 행동 하나하나에 진심을 담았다. 내내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하지만 단 한순간도 연민하거나 후회하지 않는 그들의 씩씩함이 인상적인, 청춘의 기록.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The Motorcycle Diaries 감독 월터 살레스 l 미국, 프랑스 l 2004년 l 126분 브라질 감독 월터 살레스(<중앙역>)가 우직하고 아름답게 재현해낸 체 게바라의 라틴아메리카 여행기. 순진무구한 의학도 시절의 체 게바라는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라틴아메리카 대륙 횡단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는 여행 중에 만난 민중의 불행한 현실을 자각하며 혁명가로서의 씨앗을 가슴속에 품기 시작한다. 실제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한 이 영화는, 전설적인 혁명가 체 게바라의 젊은 시절을 통해 현재진행형인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고통스러운 삶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캐산 Casshern 감독 기리야 가즈아키 l 일본 l 2004 l 142분 50년 동안의 전쟁 끝에 아시아 연방이 유럽연합을 제압한 시점, 과학자 아즈마는 방사능, 화학무기 등으로 오염된 인간의 세포를 재생시킬 수 있는 신조세포(新造細胞) 연구에 성공한다. 이는 죽어가는 아내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군부 집단의 후원 속에 연구를 진행시키던 그는 유럽연합 반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아들의 시체와 맞닥뜨린다. 아들의 장례식날, 실험실에서 신조인간이 스스로 탄생하고, 경비대로부터 가까스로 살아남은 신조인간들은 인류를 향한 복수를 선언한다. 절망한 아즈마는 아들의 시체를 신조세포 용액에 담근다. 복수심에 불타는 신조인간들과 또 다른 신조인간 캐산의 대결이 시작되는 것이다. <캐산>은 70년대 한국 TV에서도 소개됐던 만화영화 <신조인간 캐산>을 실사로 옮긴 블록버스터영화다. 일본 정상의 가수 우타다 히카루의 남편이자 사진작가인 기리야 가즈아키 감독은 이 영화에서 사이버펑크적 세계관을 현란한 CG 영상에 녹여 지독히 음울한 미래세계를 그려낸다. 영화적 문법보다는 이미지의 충돌을 강조하는 영상은 언뜻 <풍운>류의 홍콩영화를 연상시키지만, 암담한 디스토피아의 이미지는 일관된 톤을 확보하고 있어 훨씬 정제된 느낌을 준다. 대사건 Breaking News 감독 두기봉 l 홍콩 l 2004년 l 90분 1955년생의 두기봉 감독은 한국에서 그리 많은 팬을 두고 있지 않으나 홍콩 영화계에선 평단도 인정하는 ‘중요 인물’이다. 자기 사단을 이끌고 후배를 양성하며 장르 안에서 작가적 개척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갱과 경찰 사이에 텔레비전 뉴스를 끼어놓은 미디어 전쟁의 외양을 띠지만, 실은 홍콩 갱스터물의 면모를 쇄신하려는 시도가 돋보이는 장르영화다. 첫 총격 시퀀스는 하나의 카메라로 건물 내부와 바깥, 위와 아래, 거리 좌우를 물 흐르듯 이어가며 갱과 경찰의 전쟁을 선포하는 멋진 도입부다. 경찰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장면이 TV 생방송으로 중계된 뒤 경찰은 위신을 되찾기 위해 총력전을 펼친다. 갱들이 잠입해 들어간 아파트를 경찰과 미디어가 에워싸고 숨바꼭질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또 다른 재미가 펼쳐진다. 건물 내부를 미로처럼 연출해 갱과 경찰을 마치 거미줄에 포획된 듯 배치해놓고 그들의 아우성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저항의 로커, 영화를 찍다, <색을 보여드립니다>

최건은 붉은 머리띠로 눈을 가리고 천안문 광장에서 노래하던 모습으로 선명하게 남아 있는 조선족 로커다. 최건의 노래 <일무소유>는 솔직하다는 이유만으로 선동적이었고, 1989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천안문 시위의 상징이 되었다. 콘서트를 위해 한국에 온 적도 있었지만, 그동안 수많은 노래를 불렀지만, 오랫동안 부모의 땅에서 잊혀졌던 최건. 그가 첫 번째 영화를 준비하는 감독이 되어 올해 부산영화제 부산 프로모션 플랜(PPP)를 찾아온다. “내 마음속에만 존재해서 나 자신조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영화 <색을 보여드립니다>. 우수한 아시아 프로젝트들이 투자와 배급 경로를 찾는 PPP에 오기 전, 최건은 제작자인 필립 리와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과 함께 조금 일찍, 글로 적은 답변을 보내왔다. 최건은 몇년 전부터 영화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그는 베이징 젊은이들의 현재를 기록한 장위안의 영화 <북경잡종>에 록가수로 출연했고, 7년 뒤인 2000년엔 장원의 <귀신이 산다> 영화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 그렇더라도 마흔셋, 딥 퍼플과 공연을 할 정도로 확고하게 명성을 쌓은 뮤지션이, 새삼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최건은 “내 노래는 모두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영화는 조금 더 긴 이야기에 불과하다. 나는 영화를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좀더 깊이있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까지, 다른 길을 걸어서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음악으로부터 태어난 영화. 최건의 뮤지컬에 바탕을 두고 있는 <색을 보여드립니다>는 하나의 노래가 세개로 변주되고, 세개의 삶이 그 노래 위에 실리는 뮤지컬이다. 세 젊은이의 고민을 노래하는 뮤지컬 <색을 보여드립니다>는 세 젊은이의 인생을 <잃어버린 계절>이라는 노래로 묶는 영화다. 노란색과 붉은색, 푸른색이 그 젊은이들의 현재와 미래를 대변하는 색채. 노란색을 부여받은 여가수 진은 오직 <잃어버린 계절>을 부를 때만 그 영혼을 느낄 수 있다. 그녀에게 노란색은 햇살과 온기를 의미한다. 모험을 좋아하고 언제나 한계를 향해 돌진하는 레이는 붉은색의 남자다. 그는 열정적이지만, 위험에 이끌리고, 결국엔 파멸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푸른색의 남자는 유일하게 남은 혈육이 죽어가는 비극에 처하지만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어머니를 만나면서 균형을 회복한다. 이 이야기에서 푸른색은 힘과 지혜라는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 장위안 감독의 <북경녀석들>은 최건과 그의 친구들을 담은 영화였다. 1993년작은 <북경녀석들>은 중국영화의 6세대를 널리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최건은 색채가 갖는 전통적인 이미지와는 관계없는 개인적인 느낌만을 담았다. 4년 전부터 이 영화를 구상하기 시작한 최건은 “붉은색은 열정과 모험, 노란색은 휴식, 푸른색은 영혼과 지성”이라고 말했다. “내 영혼의 색깔은 붉은색이다. 나는 등산가와도 같다. 정상에 이르는 데는 여러 가지 길이 있지만, 나는 그저 정상에 오르기만을 원한다.” 그리고 세 가지 색 위에 흑백으로 살아온 부모 세대의 기억이 덧칠된다. <색을 보여드립니다>의 프롤로그가 되는 문화혁명은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에게까지 유전자 같은 패배감을 물려준 사건이었다. 최건은 “내 부모 세대와 내 세대는 비슷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무언가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먼저 그들 자신부터 두려워한다”고 했고, 어쩌면 그 때문에 프롤로그는 무채색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최건은, “<색을 보여드립니다>는 모든 세대의 젊은이들을 위한, 특히 젊은 시절 우리 부모 세대를 위한 영화”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최건과 크리스토퍼 도일은 <색을 보여드립니다>를 베이징과 그 부근에서 촬영할 계획이다. 홍콩과 중국, 아시아 각국을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할리우드영화에도 여러 차례 프로듀서로 참여한 필립 리가 이 영화의 제작자. 저항이라는 이미지도, 조선족이라는 핏줄도 부인하고, 오직 자유만을 강조하는 최건은 정말 국경과 언어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프로젝트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바로 지금의 이야기”인 <색을 보여드립니다>는 “그저 서로를 좋아해서” 만난 세 남자와 함께 부산에서 그 단서를 보여줄 예정이다.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 “최건의 영혼에 이끌렸다” 크리스토퍼 도일은 왕가위뿐만 아니라 장위안, 펜엑 라타나루앙, 박기용 등 다양한 아시아 감독들과 작업을 해왔다. 놀라운 에너지를 가진 그는 영화보다 사람을 보고 프로젝트를 선택하는 모험가다. 최건은 영화를 처음 찍는 사람이다. 어떻게 그와 함께 일할 결심을 했는가. 나는 최건의 영혼에 이끌린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사랑의 고백, 조금 다른 우정의 표현이 될 것이다. 최건과 나처럼 같은 종류의 영혼을 가진 사람들은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를 멀리서 존중하거나 그에게 사랑과 에너지를 쏟아붓거나.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색을 보여드립니다>는 세 가지 색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그것은 촬영감독에게는 제약이 될 수도 있을 텐데. 나는 최건과 내가 색채에서 의견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영웅>도 몇 가지 색으로 나뉘어져 있었지만, 이번보다는 좀더 작위적으로 구성하는 과정을 거쳤었다. 이 영화를 어떻게 찍어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느낌은 있지만 색을 좀더 공부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최건과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서로 알고 있다. 최건의 연출 태도는 매우 힘있고 상징적이다. 아마도 결국엔 우리가 고른 공간 안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색이, 적절하게 채워질 것이다. 최건은 <색을 보여드립니다>가 자신의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뮤지컬영화라고 말했다. 당신도 그의 음악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는지. 최건 같은 뮤지션과 일하다보면 멋진 재즈를 연주하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메인테마, 잼 세션, 솔로… 음악을 들으면서 우리는 카메라를 고정하거나 움직일 거고, 심지어 카메라의 존재 자체를 잊을 수도 있다. <색을 보여드립니다>는 그런 스타일 자체가 이야기의 일부인 영화다. 나는, 영화는 스스로 만들어지는 거라고 믿는다. 촬영을 시작하고 몇주가 지날 때까지도 내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왕가위는 시나리오도 없지 않은가. 당신은 공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색을 보여드립니다>는 어떤 곳에서 찍을 계획인가. 아마도 중국 본토에서. 적당한 장소를 찾고 있는 중이다. 내가 펜엑 라타나루앙과 찍은 <우주에서의 마지막 삶>이나 내 대부분의 영화들은 공간이 또 하나의 캐릭터인 영화였다. 최건과 나는 매우 가깝기 때문에, 적절한 공간을 찾으면 같은 반향을 느낄 것이다. 프로듀서 필립 리“영화에 들어갈 노래를 들었을 때 눈물이 났다” 필립 리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에 참여하기도 했던 프로듀서다. 주로 홍콩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와호장룡> <영웅> 등의 프로듀서를 맡았고, <툼레이더2> <스파이 게임>의 로케이션을 책임지기도 했다. 필립 리는 자신의 회사 옥토버픽처스를 세워 텔레비전과 영화, 광고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으며 아시아 외부로 세일즈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색을 보여드립니다>는 상업적인 영화로는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이 영화를 제작하게 됐는가. 하루는 크리스토퍼 도일에게 술을 마시러 가자고 했는데, 중요한 일이 있다면서 거절했다. 도일이 술을 마다한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며칠 뒤 그가 최건을 만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프로젝트는 당장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베이징에 있는 최건의 스튜디오에 가서 이 영화에 들어갈 노래를 들었을 때는 눈물이 나오기도 했다. 최건은 영화를 찍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그가 놀라운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내 자신의 재능과 취향, 능력도 신뢰한다. 제작비와 배급 규모는 어느 정도나 될까. 제작비 150만달러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아시아 관객을 주요 대상으로 삼겠지만, 이 영화는 유럽과 미국시장에 나갈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나는 우리가 뭔가 다르고 특별하고 흥미로운 프로젝트, 국적과 상관없이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믿는다. PPP가 이 영화를 제작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무엇보다도 전세계에서 온 영화인들을 만날 수 있다. 나 역시 몇년 전에 PPP에 참석했다가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발견한 적이 있다. 그리고 PPP는 좀더 넓은 세계시장의 관심을 끄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외신기자클럽] <나이트 워치> 등 자국영화 붐… 90년대 중반 한국영화 붐과 비슷(+영어 원문)

러시아가 한국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일까? 지난 7월 개봉된 대규모 예산의 흡혈귀 블록버스터 <나이트 워치>(사진)는 여러모로 러시아의 <쉬리>처럼 보인다. <쉬리>가 <타이타닉>을 이기고 상업영화의 새로운 시대를 초래한 한편 <나이트 워치>는 <왕의 귀환>을 밀어내고 새로운 흥행 기록을 세웠고, 대중 관객이 자국영화를 보는 태도를 완전히 바꿔놓기도 했다. 러시아 영화업계는 업계 붐에 돌입하기 직전의 한국과 다른 방식으로도 많은 공통점이 있다. 같은 길을 걷게 될지는 예측하기 어려우나 러시아의 영화업계는 향후 몇년간 흥미롭게 지켜볼 만할 것이다. 한국영화는 1990년대 초반, 할리우드 배급사의 지사들과의 경쟁에 시장점유율이 16%까지 밀려내려갔을 때 최악의 상태에 이르렀다. 소련 붕괴 시절 러시아 영화업계의 와해는 훨씬 심했다. 1980년대 러시아인들은 세계 웬만한 곳의 영화 관람객 못지않은 열기를 띠었으나, 1995년에 이르러서는 한해 평균 1인당 0.25편의 영화를 봤을 뿐이다. 1995년에 필자는 교환학생으로 모스크바에 살고 있었는데, 도시의 커다랗고 충충한 콘크리트 영화관들이 거의 항상 비어 있었던 게 기억난다. 그 시절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가졌던 것은 연극이었고, 모든 지하철역에서 연극표가 판매됐으며, 매회 공연에 군중이 꽉 들어찼다(지금은 연극계에서 이름을 날린 배우들이 영화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이중에 <나이트 워치>의 스타인 콘스탄틴 하벤스키도 포함된다). 초반의 영화업계 부활은 정부 지원금에 의해 이루어졌다. 주로 간접적인 재정지원을 제공하는 한국의 영화진흥위원회와는 대조적으로 러시아 영화진흥기구인 고스키노는 자국영화 제작지원을 직접적으로 했으며, 2002년에 400억원, 그리고 2003년에 600억원을 지원했다. 정부는 또한 영화에 투자하는 회사에 세금 혜택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 결과 제작 편수는 매년 100편을 넘기고, 업계에 새로운 세대의 영화인들이 진입하기도 했다. 그들 중 몇명은 영화제 서킷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그 예로 (올해 후반기 한국에 개봉예정인) <귀환>으로 2003년 베니스영화제에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데뷔 감독 안드레이 즈비야진체프와 같은 이가 있다. 그렇지만 최근에 대기업과 텔레비전이 러시아 영화제작에 좀더 상업적인 요소를 이입하기 시작했다. <부머>나 <안티-킬러>나 <안티-킬러2> 같은 영화는 러시아 스타와 강력한 마케팅 캠페인을 활용하여 적당하게 히트했다. 러시아 텔레비전 방송사가 공동 투자한 <야경꾼>은 평균 예산인 6억원에 대조되는 24억원 예산이 들어갔고, 러시아에서 전적으로 제작된 정교한 특수효과를 선보였다. 광고 연출자인 이 영화의 감독 티무르 베그맘베토브는 PPL을 다량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영화는 삼부작 중 첫 번째로 내년 초에 <데이 워치>를 기대할 수 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인 이십세기 폭스사는 이미 삼부작 영화의 미국 판권을 모두 사들인 상태다. 이전에 할리우드영화만 개봉하던 러시아 배급사들도 이제 상업적 사고방식을 지닌 젊은 영화인들에게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규모 예산의 영화제작 역시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중 140억원 예산의 칭기즈칸 전기를 다룬 영화, 자동차 경주 드라마, 로마 배경의 스파이 스릴러 등 여러 편의 야심찬 작품들이 만들어질 전망이다. 러시아에는 1억4300만명 인구에 늘어나는 중산층이 있다. 현재 러시아의 전반적인 영화시장 규모가 한국의 시장 규모보다는 작지만 무척 빨리 성장하고 있다.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전국적으로 옛 극장들을 대체하고 있다. 영화제작과 연극의 긴 전통을 지닌 러시아인 만큼 관객이 할리우드영화보다 자국영화를 훨씬 더 선호하게 된다 해도 놀랍지 않다. 그런 경우라면 러시아의 영화업계는 5년 뒤쯤이면 한국의 업계와 무척 비슷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Could Russia be following in Korea's footsteps? Night Watch, a big-budget, vampire-filled blockbuster released last July, looks in many ways to be Russia's Shiri. While Shiri beat out Titanic and ushered in a new age of commercial cinema, Night Watch seta new box-office record by topping Return of the King, and has completely changed the way mainstream audiences look at local cinema. In other ways too, the Russian film industry seems to have much in common with Korea just before it entered its commercial boom. Whether or not it will follow the same path is hard to say, but Russia's film industry is going to be very interesting to watch over the next few years. Korean cinema reached its commercial low point in the early 1990s, when competition with the Hollywood branch offices pushed local market share down to 16%. The collapse of the Russian film industry during the dissolution of the Soviet Union was much worse. Although in the 1980s Russians were some of the most avid moviegoers in the world, by 1995 the average citizen watched only 0.25 films per year. In 1995 I was living in Moscow as an exchange student, and I remember how the city's big, drab, concrete movie theaters were almost always empty. During those days, it was theatre that people were most interested in, with tickets to plays sold at every subway station, and packed, passionate crowds at every performance. (Now, many of the actors who made theirname in the theatre have now turned to cinema, including Konstantin Khabensky, the star of Night Watch.) Initially, the revival of the film industry was led by government funding. In contrast to the Korean Film Council, which provides mostly indirect financial support, Russia's film promotion body Goskino provided $34m [400억원] of direct production support for local films in 2002, and $50m [600억원] in 2003. The government also provided tax breaks to companies that invested in film. As a result, annual production now tops 100 films a year, and a new generation of filmmakers has entered the industry. Some of them are making waves on the festival circuit, such as debut director Andrei Zvyagintsev, who won the Golden Lion at Venice in 2003 with The Return (which will be released in Korea later this year). Recently, however, large businesses and television have been introducing a more commercial element into Russian filmmaking. Movies like Boomer, Anti-Killer and Anti-Killer 2 used local stars and strong marketing campaigns to become modest hits. Night Watch, co-financed by a local television station, cost $4m [24억원] to make compared to the average budget of $500,000 [6억원], and featured elaborate special effects, all done in Russia. Director Timur Bekmambetov, a commercials director, also made heavy use of product placement. The film is the first episode in a trilogy, so we can expect Day Watch early next year. Hollywood studio 20th Century Fox has already bought U.S. rights to all three films. Local distributors, who used to release only Hollywood movies, are now showing a clear interest in young, commercially-minded filmmakers. More big-budget filmmaking is on the way, too, including a $12m[140억원] biopic of Genghis Khan, a car-racing drama, an espionage thriller set in Rome, and several other highly ambitious projects. Russia has a population of 143 million people, and an expanding middle class. Although currently the overall size of Russia's film market is smaller than Korea's, it is growing very fast and will probably pass it soon. Multiplexes are replacing old theaters throughout the country. With a long tradition of filmmaking and theatre, it would not be surprising to see Russian audiences developing a clear preference for local movies over Hollywood product. If that's the case, then Russia's film industry could end up looking a lot like Korea's in five years or so.

선택의 즐거움이 있는 명절이 되길

초등학교 시절 극장에 가지 않고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은 텔레비전뿐이었다. 그중에서도, ‘명절’은 절호의 기회였다. 아침저녁으로 영화 프로그램을 틀어주는 텔레비전은 일종의 멀티플렉스 상영관이었다. 물론 모두 다 좋은 영화는 아니었다. 아니 좋은 영화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아쉽고 부족한 극장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비디오가 생겼지만, 그건 귀한 물건이었다. 나는 큰아버지집에 가야만 그걸 볼 수 있었고, 대개 그날은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이었다. 추석 때 빌려보지 못한 <쾌찬차>를 7개월이 지난 그 다음해 설날에 겨우 빌려보면서 명절이 3개월에 한번씩 있었으면 좋겠다는 어린 생각을 했었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친척집에 가는 대신 친구들과 뭉쳐 동네 동시상영극장을 찾는 것이 명절 행사였다. 편집은 영사기사 아저씨의 전권이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릴리아나 카바니의 <우편배달부>와 <천녀유혼>을 같이 보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몇년이 더 훌쩍 지나서 진지하게 신문을 읽을 줄 아는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진짜’ 멀티플렉스 상영관이 생긴다는 기사를 봤다. 더 좋은 영화를, 더 많이 볼 수 있겠다고 무한정 기대했다. 그런데 도래한 세상은 같은 영화를, 그것도 상당수 무미건조한 영화를, 멀티하게 동시상영하는 요상함의 형태로 찾아왔다. 자본의 그늘을 이해하지 못했던 소년의 신천지는 오지 않았다. 올해 설날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실미도>를 본 것은 좋지 않은 경험이었다. 영화에 대한 평가를 떠나, 극장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보고 싶지 않아도 볼 수밖에 없는 그 시스템의 강압에 다시 한번 놀랐다. 명절에 영화를 보러 나온 다섯 가구 중 한 가구가, 또는 5천만 중 1천만이 이 한편의 영화를 목매어 본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는 몇달이 지나 접한 또 하나의 허탈한 소식. 내년 2월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대로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더이상의 상영계획이 없다고 한다. 적어도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곳은 상업 시스템에서 채워질 수 없는 교양의 장소이고, 학습의 공간이고, 세계와 영화 사이에 나를 근접시키는 성찰의 영역이다. 이제 볼 기회만이 아니라 생각할 여유까지 박탈당하는 느낌이다. 이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명절날 온 가족이 나와 10개의 상영관에서 10개의 영화를 놓고 어느 것을 볼지 고민하는 즐거움이 필요하다. 한편의 영화를 보기 위해 연휴 중 하루를 버려도 썩 괜찮을 만한 장소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이번 추석에도, 다음 설날에도, 그 다음 추석에도 여전히 독점적 상업주의에 선택을 강요당하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별 다섯개짜리 명절이란, 보고 싶은 영화가 잔칫상의 음식처럼 푸짐하여 망설이는 그런 것이다. 그게 미래의 명절에 벌어질 풍경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쉽지 않다는 걸 알기때문에 더 절실하다고 느낀다. 정한석 mapping@cine21.com

상상예찬 영화제작단, 데드라인 앞에서 최선을~

우여곡절이 없는 팀이 있겠냐만 홍성우씨 연출의 <낮잠>과 김세랑씨 연출의 <꼼짝마라, 박찬욱>은 사연이 많았다. 홍성우씨 팀의 경우 영화전개상 꼭 햇빛이 쨍쨍한 날씨가 필요했는데 부산에 온 이후 줄곧 흐리고 비가 왔으니 촬영은 지연될 수밖에. 방에 앉아 대안을 논의하던 그들은 누군가 노란 타이즈를 뒤집어쓰고 태양을 연기해야 하나, 라고 고민할 정도로 절박했단다. 김세랑씨 팀은 스태프들이 한꺼번에 도착하지를 않아 감독 혼자서 외롭게 헌팅을 다니면서 팀원을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도 이 두 팀은 촬영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시간이 부족할 법 하지만 “잘 나올 것 같다”라고 한다. 임박한 데드라인 앞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두 팀의 촬영현장을 소개한다. 태양아, 나 잠 좀 잘께 - 코미디 <낮잠> 현장 “날씨예보는 기상캐스터보다 더 환하게 꿰고 있었어요.” 송정 해수욕장은 그야말로 절정이었다. 부서지는 햇빛을 보면서 스태프들은 감격한 표정이다. 흐린 날씨 때문에 잠 좀 자려고 누운 주인공을 햇빛이 방해한다는 시트콤 같은 <낮잠>의 시나리오가 몽땅 바뀌어야 할 판이었으니. 그러나 4일 밤낮으로 태양을 향해 기도한 보람이 있었다. 날씨는 쾌청, 밀려드는 파도 앞에서 촬영은 초스피드로 진행 중이다. 마지막엔 태양이 주인공을 향해 씩 비웃어주는 장면을 합성으로 넣을 거라 했다. 내용이 꼭 햇빛 때문에 살인을 하는 <이방인>같다 하니까 “<이방인>이 아니라 텔레토비죠”라고 응수한다. 사람이 극한 상황에 몰리면 얼마나 우스워지는지를 보여주는 게 이 영화의 목표라고. “웃기고 편안한 영화가 될 겁니다” 라고 말하는 홍성우 감독(28)의 표정이 그야말로 구름 한점 없는 맑음이다. 박감독니임, 겁나 존경합니다~! - 코미디 <꼼짝마라, 박찬욱> 현장 10월9일 저녁 8시, 남포동 부산극장 앞 야외무대에서 김세랑씨(28) 팀은 말 그대로 씨름 중이다. 두 남자 배우가 찰싹 붙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감독은 콘티를 쥐고 이리저리 펜으로 지시를 하는 중. 스태프들이 늦게 도착한 탓에 혼자 헌팅을 하고 고생했던 김세랑씨는 이제 막 시작된 촬영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모양이었다. 영화는 박찬욱 감독을 존경하는 어떤 남자의 이야기. 지금은 박찬욱 감독에게 대본을 건네려는 주인공이 자원봉사자들에게 제지를 당하는 장면을 촬영 중이다. 물론 박찬욱 감독 역할은 대역을 쓴다. 완성하려면 시간이 부족할 텐데 그래도 김세랑 팀은 태연하다. “재밌고 눈물도 나는 영화가 될 겁니다” ‘상상예찬’ 팀 중 박찬욱 감독이 등장하거나 소재가 되는 두 번째 영화이다. 송혜진

환상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유령연습’, <빈 집>

소설가 장정일과의 대담에서 김기덕 감독은 “언젠가 ‘집’이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소망은 올해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빈 집>을 통해 실현되었다. 하지만 제목의 그 ‘집’은 의미심장하게도 ‘빈집’이다. 굳이 제목에 연연하지 않더라도, 한강다리 아래의 천막(<악어>), 정박 중인 배(<야생동물 보호구역>), 새장여인숙(<파란 대문>), 형형색색의 좌대(<섬>), 빨간색 군용버스(<수취인불명>), 매춘이 이루어지는 트럭(<나쁜 남자>), 그리고 호수 한가운데 뜬 암자(<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등등 김기덕의 영화에서 불완전하고 정상적이지 않은 집의 형상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빈 집>에서 엿보이는 집에 대한 김기덕의 관념(의 변화)에는 어딘지 예사롭지 않은 데가 있다. 우리는 여기서의 그의 관심이 장소(집) 자체가 아닌 장소와 장소 ‘사이’ 혹은 ‘간격’을 만드는 작업에 놓여 있다는 점을 확실히 깨닫게 된다. 이런 점에서 <빈 집>은 전작 <사마리아>에 대한 감독 스스로의 친절한 주석처럼 읽힌다. 주인공 태석(재희)은 값비싼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집집마다 광고전단지를 붙여놓고는 오랜 기간 전단지가 그대로 남아 있는 집을 골라 몰래 들어가 며칠씩 머무르곤 한다. 영화의 첫 몇 장면을 본 관객은 그를 아르바이트생이나 좀도둑쯤으로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그런 예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그릇된 것임이 밝혀진다. 그는 그저 주인들이 잠시 떠난 빈집에서 혼자 기거하며 밥을 지어먹고 잠을 청하고 빨래를 하거나 집을 청소한다. 그리곤 또 다른 빈집으로 거처를 옮긴다. 그뿐이다. 어느 날 그는 한 집에서 폭력적인 남편에게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는 선화(이승연)- <나쁜 남자>의 여주인공과 동일한 이름 - 를 만난다. 이후 둘은 함께 이곳저곳의 빈집을 전전하며 비록 잠깐이지만 그들 나름의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빈 집>은 여전히 김기덕이 미완의 작가라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나쁜 남자> 이후 가장 흥미로운 영화로 여겨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여기서 그는 지금껏 자신이 창조해왔던 많은 인물들이 그들 자신의 삶을 살았다기보다는 죽음을 연기하고 있었던 것임을, 즉 유령과도 같은 (비)존재들이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보이고 있기 때문이다(<빈 집> 이외의 작품 가운데 이의 가장 명료한 예는 아마 <실제상황>이나 <해안선> 등일 것이다). 감옥 안에서 태석이 행하는 ‘유령연습’, 영화 속에서 거듭 복선으로 등장하다 두 주인공이 합일을 통해 무게 ‘0’의 유령적 존재가 되었음을 보여주기에 이르는 저울 같은 소도구의 활용은 약간은 우스워 보이고, 지나치게 의도를 투명하게 드러낸다는 단점은 있지만 여기에 김기덕의 진정이 담겨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 것 같다. 사실 <빈 집>에서 좀더 매력적인 점은 김기덕이 <나쁜 남자>에 이어 다시 한번 환상의 구조를 작품 속에 끌어들이고 있다는 데 있다. 다만 여기서 환상의 주체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뀌었는데, <빈 집>의 서사적 진행과정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이 영화와 가장 닮아 있는 것은 김기덕 자신의 영화가 아니라 이창동의 <오아시스>라는 걸 깨닫게 된다. 여기서 김기덕은 더이상 스크린에 인간의 모습을 한 짐승의 형상을 그려내는 작업엔 관심이 없다. 거듭 말하지만 그는 장소, 그러니까 짐승들의 ‘서식지’ 혹은 ‘야생동물 보호구역’을 미학적으로 무대화하는 작업으로부터 여러 장소들이 만들어내는 사이 내지는 간격의 존재를 드러내는 작업으로 이행한 것이다. 영화 속에서 우리는 태석이라는 인물을 상징적으로 의미화하는 장소를 결코 발견할 수 없다. 그렇다면 김기덕은 스스로 장소에 대한 집착을 벗어남으로써 필연적으로 장소와 결부되게 마련인 현존을 의문에 봉착하게 만든다, 라고 말하는 건 지나친 것일까? 어쩌면 아직은 그렇게 말하기엔 <빈 집>은 빈틈이 적지 않은 영화처럼 보일 수도 있다. 전작 <사마리아>는 김기덕이 대사의 운용에는 그다지 재능이 없으며 상투적이기까지 하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빈 집>에서 두 남녀 주인공의 대사를 거의 없애버린 것이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많은 대사가 할당된 선화의 남편이 내뱉는 (전형적인 텔레비전 연속극풍의) 말들을 듣고 있노라면 사실 ‘한국인으로선’ 웃음을 참기 힘들다. 하지만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는 이런 식의 집착을 떨쳐내고 <빈 집>을 들여다보면 분명 이 작품이 최근의 김기덕이 내놓은 가장 사려 깊고 성숙한 작품이라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 김기덕 감독의 변화 공간의 비정상성, 정상성의 교란으로 당연한 말인지도 모르지만 <빈 집>은 김기덕의 이전 작품들을 떠올리게 하며 그런 만큼 일종의 ‘숨은그림찾기’의 유혹으로 보는 이를 끌어당긴다. 하지만 우리가 좀더 주목해야 할 것은 김기덕이 공간과 사물과 인물들을 다루는 데서 보여지는 미세한 변화들이다. 물론 사물들을 그 본래의 기능(이라고 여겨지는 것)으로부터 이탈시켜 의외의 용도로 활용함으로써 관객에게 충격- 때로는 웃음- 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은 여전하다. (골프채) 3번 아이언이 흉기로 활용될 지경이니까. 그러나 제법 공들여 꾸며진 비정상적인 거처들을 인물들의 심리를 반영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규정하곤 했던 영화들- <악어>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까지- 과는 달리 (<사마리아>와) <빈 집>에는 그런 식의 공간이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뚜렷이 정주할 거처를 지니지 않은 주인공들이 오가는 공간들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공간들, 즉 이런저런 계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각양각색의 집들이다. 또한 인물들이 그 공간에서 취하는 행동들 역시 지극히 범속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빈 집>에서 특히 태석이 감방에 수감되고 선화가 집으로 돌려보내지기 전까지의 부분에서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색다른 공간도, 인물들의 기이한 행위도 아니며 오직 공간과 공간 사이를 옮겨다니는 인물들의 이동 자체이다. 이같은 이동을 우리는 정상성의 ‘섬’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그럼으로써 그 정상성을 교란시키는 일종의 ‘간격 만들기’(spacing)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동해야 할 것들을 멈춰 서 있게 하고- 배(<야생동물 보호구역>), 오토바이(<섬>), 버스(<수취인불명>)- 정지해 있어야 할 것들을 움직임으로써- 모터를 단 좌대(<섬>), 호수 가운데의 사찰(<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혹은 응당 고정된 장소에서 벌어져야 할 일을 이동하면서 벌어지게 함으로써- <나쁜 남자>에서의 트럭을 통한 ‘이동 매춘업’- 낯선 감각을 창출해냈던 김기덕은 <사마리아> 이후로 이제 그런 식의 단순한 아이디어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김기덕의 ‘성숙’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