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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한국판 <슈퍼 사이즈 미> 윤광용씨 한달간 패스트푸드만 먹으며 부작용 체험

하루 세끼를 꼬박 패스트푸드만 먹는다면 우리의 몸은 어떻게 변할까. 패스트푸드 생체실험으로 화제가 된 영화 <슈퍼 사이즈 미>(Super Size Me)가 한국에서 제작돼 화제다. 생체실험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주인공은 ‘환경정의 시민연대’ 상임활동가 윤광용(31)씨로, 16일부터 하루 세끼를 패스트푸드에 의존하고 있다. <슈퍼 사이즈 미>는 모건 스펄론 감독이 직접 30일간 맥도날드 음식만을 먹으며 자신의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제작자인 모건 감독은 영화를 끝낼 당시 체중이 84kg에서 96kg으로 12kg 늘었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급상승했다. 모건 감독은 패스트푸드로 부작용에 시달리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줘 전 세계인에게 충격을 안겨줬었다. 그렇다면, 윤광웅씨가 이런 무모하고 위험한 실험에 동참한 이유는? 패스트푸드의 위해성을 직접 체험해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윤씨는 “다큐멘터리 제작 참여를 결심하기 전 미국에서 먼저 한 일(모건 스펄론 감독의 <슈퍼 사이즈 미>)을 왜 따라하느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모방은 했지만 다른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으며, ‘패스트푸드 업체들의 오만한 자세를 고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두렵고 긴장됐다. 하지만…….” “솔직히 패스트푸드를 한 달 동안 먹을 생각을 하니 두렵고 긴장됐어요. 모건 스펄론 감독의 <슈퍼 사이즈 미>를 봤는데, 부작용이 생각보다 크더라고요. 충격을 받았죠. 하지만 실험 전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건강상태가 좋았고 딱 한달만 실험에 참여하는 거라고 위안하며 고통을 참겠다고 결심했죠.” 패스트푸드가 인체에 미치는 악영향을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윤씨는 “평생 먹을 패스트푸드를 한 달 동안 집중적으로 먹고, 몇 달 치료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이달 16일부터 실험에 참여했다. 그는 하루 매끼를 맥도널드나 롯데리아에서 나오는 패스트푸드로 해결하고, 중간에 1~2회씩 프라이드치킨 등으로 간식을 해결한다. 그는 하루 평균 3100kcal 정도의 열량을 섭취하고, 1만보 가량을 걷는다. “제 하루 섭취 열량은 권장치보다 조금 높지만 운동량은 일반 사람들보다 두배 가량 많다고 보면 되요.” 실험 참여 열흘째 그의 체중은 1kg 늘어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체지방은 3.5kg이나 늘었다. 근육이 오히려 지방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뜻이다. 실험 전 23이었던 간 건강 정도를 나타내는 효소수치는 정상치(43)를 넘어, 50까지 높아졌다. 심각한 간 손상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우울증 등의 조짐이 보인다는 진단도 받았다. 간 수치란? 간 기능을 진단하기 위해 쓰이는 것이 간 효소검사(AST, ALT/일명 GOT, GPT)다. AST, ALT는 간세포 내에 있는 효소인데 간세포가 망가지면 혈액 속으로 흘러나온다. 따라서 혈액에 이 두 효소의 수치가 높을수록 간세포가 많이 손상됐음을 뜻한다. 흔히 ‘간수치’라고 불리는 것이 바로 이 간 효소검사 수치를 말한다. 수치는 30IU/L이하가 안전하며, 간수치가 높아질수록 간의 기능이 저하됐다고 보면 된다. “도대체 어떤 재료를 사용했기에 내 간이 이렇게까지 나빠졌는지 모르겠어요. 패스트푸드의 문제점이 비만 유발이라고 할 때 체지방이 늘어난 것은 이해하지만, 간 수치가 심각히 나빠졌잖아요. 엄청난 양의 식품첨가물을 사용한다는 증거죠. 이런 ‘쓰레기’같은 음식을 자라나는 아이들이 먹고 있다니, 가슴이 아프네요.” 패스트푸드의 문제는 환경 뿐 아니라 고유 음식문화까지 파괴 “‘알아보고 싶다’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실험에 참여했지만, 직접 체험해 보니 부작용이 생각보다 크네요. 의욕이 떨어지고, 짜증도 많이 나고.” 그는 요즘 우울증을 비롯 만성 피로와 무기력증에 시달린다. 스스로 “이러면 안 된다”고 달래보기도 한다. 최근에는 ‘안티패스트푸드’ 카페(http://cafe.daum.net/antifastfood)에 올라오는 음해성 글이 그의 짜증을 돋울 때도 있다. “대부분 패스트푸드 업계 종사자들인 것 같다는 생각을 들어요. ‘환경단체가 왜 안티패스트푸드 운동을 하느냐’부터 ‘다른 음식을 한달 동안 먹어도 지금과 같은 부작용이 올 거다’ 등등……. 하지만 그것은 패스트푸드 사업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죠. 밥, 불고기, 김치를 열흘간 먹었다고 가정했을 때도 제 간이 이 정도까지 나빠졌을까요?” 그는 이번 실험을 통해 패스트푸드의 위해성과 관련 비만문제를 떠나 산업 전반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싶다고 했다. 우선 아이들이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시간대에는 무분별한 패스트푸드 광고를 하지 못하도록 규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건강과 관련해서는 단백질과 지방, 탄수화물이 단지 몇 그램 포함됐는지 수치적으로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재료의 원산지 표시와 식품첨가물까지 공개하도록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엄청난 조미료가 패스트푸드에 들어갈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공개되지 않고 있어요. 이는 패스트푸드점이 수십조 원의 경제규모를 갖는 거대기업이지만 현재 휴게음식점으로 등록돼 있어 법적인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죠. 패스트푸드 점포는 공장에서 만들어진 재료를 튀기거나 데우거나 해서 내놓을 뿐인데, 정작 재료를 공급하는 공장문제를 지적할 법이 없다는 거죠. 또 배출물의 환경파괴 문제나, 우리 고유의 음식문화가 급속히 파괴되고 있다는 점 역시 패스트푸드의 부작용 가운데 하나죠.” 원래 고기를 좋아했지만 1년 전부터 채식을 실천해 왔다는 윤씨의 실험은 11월 12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만약 건강에 심각한 위험이 생겨 의사가 그만두기를 권유하면, 그 전에 실험이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자라나는 아이들과 환경을 위해서라도 “햄버거를 밥, 콜라를 된장찌개, 감자튀김을 김치라고 생각하며 끝까지 먹어보겠다”며 의욕을 불태웠다. 윤광용 씨와의 일문일답, 패스트푸드의 위해성을 몸으로 알리고 싶었다 보름째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는데, 몸상태는? 패스트푸드를 먹고 난 뒤 화장실 가는 횟수가 늘었다. 지금은 하루 3번 이상 간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났을 때 무거운 몸이 하루 종일 지속된다. 몸무게가 많이 늘어서 그런가. 일주일에 한번씩 진찰을 받고 있다. 몸무게는 1kg 늘었지만 체지방은 열흘 째 3.5kg 늘었다. 근육이 오히려 지방으로 전환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패스트푸드의 위해성을 말할 때 비만을 흔히 떠올리는데 닷새 지나서 간수치가 23에서 43(정상치)이 됐고, 열흘이 됐을 때는 50이 됐다. 심각한 간 손상을 가져온다는 얘기다. 지금 하루 열량 섭취량이 평균 3100kcal 정도고, 하루 1만보 가량을 걷고 있다. 성인평균 권장 칼로리가 2700~3000kcal인 반면 운동량이 일반인의 두 배로 폭식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체지방이 늘고 있으니 문제 아닌가. 이 실험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환경정의에서는 5년째 대안먹거리 운동을 해오고 있으며, 4년 전 내가 이 단체에 들어올 때부터 식품 관련 업무를 했다. 처음 접했던 운동이기도 하고, 관심도 있어서 제안이 들어왔을 때 하겠다고 했다. 실험에 참여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나. 후회하지 않는다. <슈퍼 사이즈 미> 영화를 봤을 때 충격을 받았지만 감수했던 부분이다. 다만, 혼자서 음식을 먹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이때 오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패스트푸드를 ‘쓰레기’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인터넷카페에서 인신공격을 당할 때 오는 스트레스도 있다. 햄버거는 밥, 콜라는 된장국, 감자튀김은 김치라고 생각하면서 먹고 있다. 실험은 언제까지 하게 되나. 매주 월요이 병원에 가는데, 수치상으로 위험요소가 증가하면 그만둘 의사도 있다. 예정대로 한달을 채운다면 11월12일까지 하게 된다. 패스트푸드의 어떤 문제를 지적하고 싶었던 것인가. 비만문제를 떠나 패스트푸드 산업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제기하고자 한다. 건강과 관련해서는 단백질과 지방 몇 그램이 포함됐다는 것이 아니라 재료의 원산지 표시와 식품첨가물 공개 등이다. 원산지 표시와 식품첨가물 공개라니? 패스트푸드에는 조미료가 엄청나게 들어갈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는 패스트푸드점은 수십조원의 경제규모를 갖고 있는 거대기업이지만 현재 휴게음식점으로 등록돼 있어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또 아이들 텔레비전 시청 시간대에 무분별한 패스트푸드 광고를 하지 못하도록 규제해야 한다. 자각이 완전하게 발전하지 않은 아이들이 광고를 보면 뉴질랜드에서는 패스트푸드를 먹지 못하게 하는 날을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환경파괴 부분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미국은 국내에서 패스트푸드 붐이 불면서 햄버거 소비량이 급증하자 브라질 등 남미국가에 목장을 짓도록 유도해 고기를 충당해 왔다. 이 때문에 브라질의 경우 지구의 산소 25%를 공급하는 아마존 열대우림이 급속히 파괴되는데 일조했다. 또 패스트푸드 음식을 먹고 난 뒤 배출되는 쓰레기도 무시할 수 없으며, 패스트푸드로 인해 우리 고유의 음식문화가 파괴된다는 점도 패스트푸드의 악영향 중 하나다. 패스트푸드 뿐 아니라 다른 음식을 한 달 동안 먹는다면, 편식 때문에라도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밥, 불고기, 김치를 매일 한식집에서 열흘간 먹었다고 가정해보자. 지금처럼 간수치가 나빠졌겠나? 아니라고 본다. 난 지금도 패드스푸드업체에서 웰빙제품이라고 선전하는 샐러드도 먹는다. 필수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가 있다면 이 정도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시도해보려고 한다. 라면하고 김치만 먹어도 내 간이 이렇게 망가질까…. 이 정도로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평상시 패스트푸드 음식을 좋아했나. 가끔은 먹었지만 좋아하지는 않았다. 환경정의에 처음 들어와서 경험한 것이 대안 먹거리 운동이었다. 특히 육식과 관련된 공부를 많이 하게 됐는데, 지난 1년간 채식만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현실이 채식을 용납하지 않더라. 아침은 집, 점심은 도시락을 먹었는데, 저녁에는 회식이 있거나 하면 채식만 고집할 수 없었다. 정신적으로 힘든 것은 없나. 의도적으로 연출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우울증에 빠지고 매사 무기력해졌다. 의식적으로는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너무 힘들어질 것 같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최면을 건다. 신경질을 내기보다 기분을 좋게 가지려고 한다. 음식도 맛있게 먹고. 하루 일과는. 집에서 아침을 먹고 나와야 하는데, 아침식사를 패스트푸드점 개장시간에 맞추다보니 출근시간이 늦어지고 있다. 또 이 실험에 참여하면서 이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일을 하다보니까 본연의 일은 다른 사람에게 50% 이상 넘겨졌다. 원래 내가 했던 일은 우리 단체에서 하는 일을 일반 시민들에게 알리고 홍보하고, 시민들이 우리 단체를 후원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했었다. 다큐멘터리 제작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있나. 독립영화 쪽에서 일하고 유정우 씨가 찍고 있다. 전에 우리 단체에서 일했었다. 우선 한달 동안 실험이 끝나면, 1차 편집을 할 거다. 그 뒤에는 내 몸이 회복되는 과정도 찍을 예정이다. 다큐멘터리를 빠른 시일 안에 완성해 인터넷 등을 통해 공개하겠다. 주변의 반응은.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위험한 일이다. 무모한 일이다”라고 걱정하면서도 먹거리를 변화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격려해 준다. 요즘에는 길거리에서 아는 척 하는 사람도 있고, 사인을 부탁하는 사람도 있다. 이 실험에 대해 언론보도가 많았다. 어떤 느낌이었나. 우리나라 기업의 문제점은 잘되면 무조건 확장하고 보는 것이다. 지금 경기상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패스트푸드 매장이 몇 개 주는 줄어든 것은 경기가 나빠진 것에 비하면 큰 타격도 아니다. 또 최근에는 웰빙제품이 나오면서 매출이 엄청나게 늘었다. 하지만 마치 안티패스트푸드 운동 때문에 패스트푸드 업계가 ‘휘청거린다’는 식으로 보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안티패스트푸드 운동은 언제부터. 환경정의는 식품첨가물 등의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 왔다. 햄버거를 비롯 분유의 문제도 다뤘다. 본격적으로 패스트푸드 산업이 갖는 문제점을 지적하기 시작한 것은 안티맥도날드운동 20주년을 맞는 올해부터다. 동네 음식점이나 중국집 등에 대해서도 대안먹거리 운동을 하라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다 하면 좋지만 3~4명의 인원이 막대한 자본을 가진 기업을 모두 상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한다면, 지쳐서 포기하게 될 것이다. 현재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은. 김치찌개다.

터키영화 <우작> 5일 개봉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은 터키 영화 <우작>이 5일 개봉한다. 이스탄불의 이혼한 중년 사진사의 황폐한(또는 황폐해 가는) 삶을 비추는 이 영화는 줄거리가 간결하고 대사도 적다. 쇼트들의 길이도 긴 이 영화는 그러나 때로는 노골적이고 때로는 은근한 유머들을 간간히 배치하면서 그 유머와 보잘것 없는 일상이 만나는 풍경을 즐긴다. 이혼한 뒤 혼자 사는 마흐무트(무자파 오즈데밀)는 가끔씩 정부와 섹스를 나누지만 그 역시 활력이 없다. 이혼한 아내는 조만간 다른 남자와 함께 캐나다로 이민갈 것이라고 말한다. 사진 찍어 출판사에 파는 일을 빼곤, 그의 삶을 구성하는 별다른 요소가 없다. 그런 마흐무트에게 시골에서 공장 다니던 사촌동생 유스프(에민 토팍)가 찾아온다. 취직할 때까지 일주일 정도 머물게 해달라고 했지만 직장 구하기가 쉽지 않다. 특별히 의지가 강하지도 못한 유스프는 하릴 없이 마흐무트 집에 머문다. 이스탄불 시가지를 배회하며 여자들을 쫓아다녀 보지만 소득이 없다. 마흐무트는 그런 그가 보기 싫다. 영화는 마흐무트의 전 부인이 캐나다로 떠나고, 정부마저 다른 남자를 만나면서 더 고립돼 가는 마흐무트를 중심에 놓고서 그와 유스프 사이의 갈등을 곁길에 배치한다. 마흐무트는 유스프가 있을 땐 텔레비전에서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보다가, 유스프가 방에 들어가면 포르노 영화를 본다. 유스프를 구박하면서도 관음증 환자처럼 그를 훔쳐본다. 이런 마흐무트와, 그와 정반대로 우직하고 미련한 유스프의 모습을 긴 쇼트 속에 대조시키는 연출엔 능청스런 유머가 있다. <빌리지 보이스>는 이 영화의 감독·각본·편집을 맡은 누리 빌게 세일란을 두고 “반복과 우스꽝스런 침묵이라는 점에서 키아로스타미, 차이밍 량과 동시대에 있다”고 평했다. 마흐무트의 냉대 속에 결국 유스프마저 떠나는 영화의 전체적인 정서는 쓸쓸하지만 구원이나 속죄같은 관습적 해결책을 넘보지 않는다. 세상을 혼자 버텨내기 힘들어하면서도 마땅히 기댈 관계를 찾지 못하고 또 남이 기댈 언덕도 내주지 못하는 한 지식인의 자폐성 안에 낮은 수준의 동시대성을 담아낸다. 마흐무트 역의 무자파 오즈데밀과 남우주연상을 공동수상한 유스프 역의 에민 토팍은 이 영화가 칸 경쟁부문 후보로 발표된 직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12월의 열대야> 신데렐라 입성이후…

문화방송 수목드라마 는 신데렐라 스토리다. 오영심(엄정화)은 결혼을 통해 신분상승에 성공한 듯 보인다. 남편(신성우)은 실력있는 신경외과 전문의에, 시아버지(이순재)는 종합병원을 운영하는 재벌급 의료계 원로다. 시놉시스를 보면 시어머니(박원숙)는 “교양있고 기품있는, 홍라희 호암미술관장 같은 이미지”다. 지지리도 가난한 집에서 나 고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오영심이 이런 집안의 맏며느리가 됐다면, 그건 당연히 왕자비가 된 재투성이 이야기다. 그런데 는 결혼 뒤 이야기다. 안방극장을 명멸한 무수한 신데렐라 이야기와 달라지는 지점이다. <파리의 연인>도 <황태자의 첫사랑>도 모두 결혼 또는 사랑의 성립 직전까지가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이다. 재투성이는 왕자 주변의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결국 감동적인 사랑의 꼭지점에 도달한다. 여기까지다. 신데렐라가 그 뒤 왕궁에 들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다. 는 그 얘기를 들려주고픈 모양이다. 결론적으로 재투성이는 여전히 재투성이인 채다. 그는 예전 자신의 신분과 비교되지 않는 시집의 휘황한 광휘 안에서 오히려 예전보다 더 힘겨워 보인다. 평균 학력이 석사 이상인 시집 식구들 사이에서 그는 “너는 그것도 모르니”로 아침을 시작해 “도대체 니가 아는 것은 뭐니”로 하루를 마감한다. 집안 일은 모두 그의 몫이고, 누구도 그를 왕자비로 대접해 주지 않는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경멸적 시선에 내몰린다. 그럴 것이 그는 시집의 분위기와는 너무도 이질적인 존재다. 그는 아랫동서될 새 신부 집에서 보내온 예단을 둘러보다, 자신에게 배당된 수표가 2000만원인 걸 알고 경악한다. 그리곤 “난 이런 큰 돈은 못 받겠다”고 한다. 식구 수를 꼽아보며 총액이 얼마가 될까 놀라워한다. 그런 그가 시어머니는 더 할 나위 없이 한심스럽기만 한다. “어디서 예단 봉투를 쑥쑥 맘대로 열어 보느냐”는 것이다. 못 배운 티 낸다는 것이다. 그에게 결혼이 돈잔치가 되는 세태는 이해할 수 없는 허영의 발로로 느껴진다. 하지만 시어머니에게 그건 당연한 문화일 뿐이며, 중요한 건 그런 ‘관습’을 우아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감수성이다. 그와 시어머니는 한 집에 살고 있어도 여전히 계급이 다르다. 왕자조차도 그에겐 힘이 될 수 없다. 클래식을 즐겨듣는 남편과 텔레비전으로 코믹 영화를 보며 깔깔대다 잠드는 그 사이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남편은 옛 여자친구의 적극적 구애를 받으면서도 결코 바람만은 피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그러나 그건 도덕적 다짐일 뿐, 아내와의 관계는 결코 회복되지 않는다. 부부의 다름은 취향의 다름이며, 그건 이미 돌이킴이 불가능한 계급적 취향의 다름이기 때문이다. 는 수많은 신데렐라 이야기들이 간과해 온, 결혼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한국 사회 구성원 사이의 계급적 분할을 곳곳에서 드러낸다. 나아가 그 계급의 차이는 단지 돈만이 아니라 취향을 포함하는 문화적 자산의 차이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데 의 독특함이 있다. <파리의 연인>에서 보여준, 강태영(김정은)과 한기주(박신양) 사이 계급적 취향의 섞임이란 실은 실현될 수 없는 판타지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품게 하는 것이다.

제 9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7] - 고레에다 히로카즈

“오즈의 그늘에서 전진한다” 아시아 감독과의 조우2 - <아무도 모른다>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원래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 위해 영화계에 뛰어든 사람이다. 그를 영화로 이끄는 데 주요한 계기를 마련했던 것은 20대 초반에 보았던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이다. 대학 신입생 때 오즈의 영화를 접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그전까지 몰랐던 이상한 형식의 힘을 느꼈다. 주인공의 의미없는 듯한 대사가 반복되는 가운데 어느 순간 리듬이 생겨난다는 것을 알아내고 궁금증은 더해졌다. 그리고는 그것을 모방하는 시나리오를 써보기 시작했다. 그의 20대 오즈 습작시기는 그렇게 갔다. 30살이 막 넘어가며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환상의 빛>으로 데뷔한다. 그 첫 번째 영화는 수작이었지만, 오즈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습작이었다. 그는 “내가 찍은 것이 정적인 느낌이라면 오즈의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정적이지만 그 안에 역동적인 감정이 흐른다”고 뼈아프게 고백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이제 자신이 추구할 태도는 오즈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고 다짐한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만들던 시기의 자유분방한 감각으로 돌아가자고 스스로 종용한다. 이번에 부산을 찾은 그의 세 번째 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보면 그 힘겨운 ‘독립’의 싸움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1988년 도쿄, 아버지가 서로 다른 네명의 아이들이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아무도 모르는 아파트 한구석에서 몇 개월간을 버티며 살아가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 극영화를 정적인 다큐멘터리처럼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이제 그는 오즈로부터 벗어난 걸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내년에 만들 시대극 <꽃보다 조금 더>에서 그는 오즈만큼 형식적인 영화에 도전해보겠다는 의욕으로 가득 차 있다. -당시 이 사건은 일본인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나. =그 사건이 일어났던 1988년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빈번한 어머니들의 육아 포기 현상이 없었기 때문에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그건 도쿄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사건이다. 많은 언론에서 다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나를 포함하여 몇몇 작가와 언론은 그 사건에 대해 강렬한 인상을 갖고 있다. -어떤 동기로 시작했나. =나는 이 사건이 일어난 도쿄에서 태어나고 지금도 그곳에 살고 있다. 주인공 아이의 눈을 통해 도쿄라는 도시를 그려내고 싶었다. 그러니까, 이 사건이 센세이셔널하긴 하지만, 영화의 중심은 이 소년이 만나고 헤어지는 성장과정에 있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연출 경험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것이 극영화를 만드는 데에는 어떤 도움을 주는가. =뭔가 세상에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갖고, 그것이 내 마음으로 들어와서 씨앗을 낳고, 그 사이에 물이 뿌려져서 점점 커지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다큐멘터리 감독 때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극영화로 그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도 다큐멘터리 작업은 병행하고 있다. -이 실화를 영화로 옮기면서 갖고 있던 각색의 원칙은. =도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실화의 드라마화라고 받아들여지면 곤란할 것 같다. 실제 사건과 비교해보면 인물의 구성이나 연령 설정이 다르다. 버려진 네 아이들이 6개월간 어떻게 살았는지를 실제로 그러했던 것처럼 그려내자는 것이 아니었다. 상황을 가져오긴 했지만, 그것에 얼마나 접근할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떨어질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 점에서 이 영화는 재현드라마가 아니다. -오즈를 벗어나기 위해 좀더 자연스러운 리얼리즘을 추구하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구체적으로 그 말뜻을 설명해달라. =첫 번째 영화는 어쩔 수 없이 오즈를 의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영화에서는 나만의 색깔을 가진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바로 자연스러움의 문제였다. 그런데 그 시도들을 거치면서, 한번 더 오즈 감독의 형식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전과 비교해 영역이 확장되었다. 그것은 처음 내가 의식했던 오즈 감독의 형식이나 위상과는 관계가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다음 영화인 시대극 <꽃보다 조금 더>에서는 좀더 인공적인 영화를 만들려고 계획 중이다. 이 시대극에서 오즈가 갖고 있는 그 부자연스러운 형식과 다시 한번 재회하게 될 것이다.

[비평 릴레이] <썸> <21그램>, 김소영 영화평론가

예컨대, 비 오는 날. 마포대교 북단 어디쯤에서 자동차의 브러시를 튼 채 서울의 교통지옥을 맞는다고 하자. 새삼스러울 리 없는 그 경험에, 도심 무한질주의 판타지가 더해지면 영화 〈썸〉이 탄생한다. 영화의 중요 소도구는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디지털 카메라와 핸드폰 그리고 자동차. 교통방송 리포터인 서유진(송지효)은 하루 종일 서울의 교통 흐름을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을 통해 보고 있다. 반면, 강남 경찰서의 강성주(고수)는 그 교통지옥 속을 용케도 질주하는 마약 밀수단을 잡아야 한다. 디카와 감시 카메라 그리고 핸드폰이 매개하는 관계를 지배하는 것은 그러나 프로이트가 말한 바 있는 언캐니, 즉 친숙한 낯섦, 낯선 친숙함이라는 기시감이다. 또한 그 언캐니에 동반되는 초자연적 예정설, 운명설과 그 운명을 바꾸려는 헛된 의지 등이 이 영화의 기조를 이룬다. 주로 서울 도시 근교에서 촬영된 영화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일촉즉발의 위험과 그것을 누그러뜨리는 사랑과 같은 정감의 교환, 피어싱족이나 디카족과 같은 동아리 구성 등을 동적 이미지와 정적 이미지 교환을 통해 표현하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참 배우들은 늘 초조하기만 한 표정이고, 정적 이미지는 자동차 광고를 위탁받은 광고회사에서 환영할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접속〉과 〈텔미썸딩〉에서 보여준 장윤현 감독의 테크노 문화에 대한 민감한 강박과 도시의 위험지대에 대한 예민한 지정학적 촉수를 존중하는 나는 사실 〈썸〉을 그것을 완성시키는 길로 가고 있는 흥미로운 실패작으로 보고 싶다. 하위문화에 젖은 20대가 이 영화를 본다면 수백 개의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저 시나리오로 어떻게 자본을 끌어들여 영화를 제작했을까? 라는 꼭 자본가의 편에서 던지는 것만은 아닌 질문을 하게 만드는 영화들이 가끔 있다. 〈21그램〉이 그렇다. 이 영화는 심리적으론 잔인하고 상황적으론 비관적이다. 남편과 두 딸을 교통사고로 잃고, 남편의 심장을 기증받은 남자 폴 리버스(숀 펜)와 관계하는 크리스티나 펙(나오미 와츠)의 이야기는 영혼의 무게라는 21그램을 짜내기 위해 가학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이 보인다. 그리고 촬영은 대부분의 장면에 푸른 필터를 끼워 영화 전체를 흐려놓아, 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작동할 수도 있을 법한 계급적 코드를 뭉개놓았다. 편집 역시 미국식 리얼리즘의 구태의연함을 걷어낸다고 시간을 뒤섞어 놓고, 다음 장면이 늘 앞선 장면을 충격 속에서 잊혀지게 하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정말 영혼 21그램의 무게를 지닌 채 살아가야 하는 많은 관객들을 심리적으로 착취하는 방식이다. 아마도 숀 펜의 출연 승낙과 멕시코 영화 〈아모레스 페로스〉로 글로벌한 히트를 친 감독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에 대한 기대가 이 영화를 탄생시키고, 부시 집권 하에 지친 관객들의 자학적인 마음이 〈21그램〉을 시장에서도 비교적 성공적인 영화로 만든 것 같다. 그래도 역시 불가사의는 불가사의다.

새로운 물결, 디지털 장편영화 [7] 대안2-상상과 표현의 신천지 : 윤영호

경험 자체를 많이 줄 수 있는 매체다 윤영호(34) 감독의 <바이칼>은 도시에 관한 묵시록적 예언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시베리아에 있는 바이칼 호수에 관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떠올린 것이다. 그의 말대로 “시원”에 관한 영화이기도 한 셈이다. 개인적인 경험에 자극받은 구상은 “사막이 항상 끝이고, 거기에 다시 땅이 만들어지고, 강이 들어서고, 숲이 형성된다는 자연의 순환 고리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발전했고, “땅으로서 생명을 다한 것이 도시라고 할 때, 그것을 사막과 연결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영화의 두 공간이 결정되었다. 서울 한복판의 정경과 단편을 찍으며 눈여겨봐뒀던 화성쪽 간척지에서 촬영한 사막장면이 교차한다. 주인공 라반과 석치는 황량한 사막을 헤매고 다닌다. 그들은 이 사막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고자 한다. 그러나 길은 없다. 도시가 무너지고 사막이 들어섰는지, 도시를 사막처럼 느끼는 이들의 감정적인 공간인지 정확하진 않지만, <바이칼>의 주인공들은 모두 상처받은 사람들이고 희망을 구하는 사람들이다. <바이칼>은 윤영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20일간 13회 촬영으로 전력질주할 만큼 어렵게 찍은 영화이다. 그런 장편이 극장에서 관객에게 제대로 보여지길 바라는 마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난 주말 강변CGV에서의 상영은 당혹스러웠다. “영사기 기종과 궁합이 안 맞았는지, 아니면 영사실과 스크린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였는지, 어두운 부분에서는 힘을 발휘 못해서 인물들의 얼굴톤이 상당수 암부로 나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남들도 그렇게 키네코를 하려 하나보다”고 씁쓸해한다. 하지만 일면으론 사운드의 효용성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표현하고 싶은 것이 많은 그에게 현재 디지털은 보완이 필요한 최선책이다. -이 영화를 구상하게 된 계기는. =작품 안 찍을 때는 구상하면서 집에만 있는데, 그러다가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됐다. 새벽에 갑자기 앞이 깜깜해지고, 속이 메스꺼우면서 쓰러질 뻔한 적이 있었다. 자는 친구를 깨워 병원에까지 가서 정밀진단을 받았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의사가 나중에 상담하면서 말해주기를 일종의 공황장애라고 하더라. 그러고보니 그전에도 복잡한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가다 답답해서 내리곤 했다. 그런 걸 경험하면서 나도 몰랐던 도시의 답답함을 생각하게 됐고, 도시라는 공간 자체를 새롭게 보게 됐다. 영화 속에서 모래가 흘러내리는 장면은 내가 자주 꾸던 악몽 중 하나였다. 그런 경험들이 영화에 많이 반영됐다. 나보다 더 절박하고 힘든 사람들에게는 이 도시가 더 낯설고 생소하고 힘들게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디지털 작업에 대한 아쉬움 또는 만족은. =미학적인 문제도 중요하지만, 일단 디지털은 경제적이다. 후반작업에서도 상당히 유리하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 점을 제일 먼저 생각했다. 단순히 돈이 적게 든다는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인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감독 입장에서는 작품 내용에만 신경쓸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표현이 양식적이다. =다른 단편들도 그래왔지만, 내 의지대로 공간과 시간을 뒤틀어볼 수 있다는 것이 영화를 할 때 내가 가장 흥미를 갖는 지점이다. 공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많이 생각한다. 그래서 헌팅도 많이 하고. 새로운 이미지로 만들 수 없을까 고민한다. 이 영화도 그런 점에서 서울이라는 낯익은 공간을 낯설게 보여주고 싶었다. -전반적으로 디지털 장편영화의 가능성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무엇이라도 일단 해볼 수 있다는 것. 창작자의 생각을 어떻게든 표현할 수 있게 해준다는 거다. 영화라는 것이 한순간에 뭘 해내는 게 아니고, 자꾸만 해보면서 자기 표현력을 찾아가는 과정인데, 디지털은 필름보다 조금 더 부담없이 그런 과정을 겪을 수 있고, 한 작품씩 찍으면서 자기 색깔을 찾아갈 수 있으니까 좋다. 경험 자체를 많이 줄 수 있는 매체가 디지털인 것 같다. 그건 창작하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것 아닌가 싶다.

차세대 제임스 본드는 누구?

차세대 제임스 본드는 도대체 누가 될 것인가. 지목된 배우는 싫다 하고, 어울리지 않는 배우들이 달려들고, 언론은 오리무중 확인되지 않은 기사들을 남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0월 30일 피어스 브로스넌은 아이리시 필름 앤드 텔레비전 시상식에서 “물려줄 사람은 콜린 파렐뿐”이라며 아이리시 섹시가이 콜린 파렐(사진)을 차세대 제임스 본드감으로 추켜세웠는데, 이 때문에 ‘콜린 파렐이 제임스 본드로 확정’되었다는 오보들이 국내 언론사들에서 터져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콜린 파렐은 최근의 인터뷰에서 “본드 역을 맡게 되면 아일랜드 억양을 구사해서 영국인 첩보원 팬들을 놀려줄 것”이라며 단단히 거부감을 표출했다. 그러자 지난 11월7일에는 영국의 한 인터넷 연예정보 사이트로부터 이완 맥그리거가 제임스 본드 역할을 놓고 협상 중이라는 소식이 터져나왔다. 이완 맥그리거의 측근은 “이완 맥그리거는 로맨틱한 역할은 물론 액션배우로서도 능력있는 세계적인 스타인 만큼 제임스 본드 역에 유리하다”고 밝혔다는데. 게다가 힙합계의 악동 에미넴 역시 제임스 본드의 열혈 팬이라며 황당한 경쟁 선언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새로운 슈퍼맨도 신인배우로 결정된 마당에 차라리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배우가 낫지 않을는지. 어쨌거나 제임스 본드 캐스팅에 대한 소식들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예정인 듯.

한류열풍, 국제적 열풍인가? 찻잔 속의 폭풍인가?

최근 몇년 동안 동아시아를 휩쓴 한국영화, 텔레비전 시리즈물, 음악, 패션에 대한 한류 열풍을 중국에선 “한훵”(한국 바람)이라 부른다. 최근 일본 웹사이트(OZmall)에서 15만7천명의 여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아시아 스타를 물었을 때 10명 중 9명은 한국인이었다. 유일하게 한국인이 아닌 사람은 일본과 중국 혼혈인 금성무였는데, 겨우 7위로 들어간 것이다. △ 칸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올드보이>의 유럽 흥행 성적은 수상 결과에 비하면 실망스러운 수치다. 이는 서구권에서의 한국영화의 입지를 단적으로 설명해준다. 사진은 칸영화제에 걸렸던 <올드보이> 포스터(맨 위). 한류는 현재로서는 오직 아시아권 내에서만 부는 바람이다. 사진은 상하이 거리에 붙은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포스터(위). 이와 비슷한 설문조사는 서구에서 시행된 일은 없지만, 만일 그랬다면 장쯔이나 공리, 성룡, 주윤발, 양조위 등의 홍콩이나 중국 본토 이름들이 독점적으로 지배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 “한국 바람”은 아시아 바깥으로 그리 멀리 불지 못한다. 아시아만 벗어나면 잠잠한 바람, 한류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고려해보자. 올해 가장 국제적으로 두드러진 한국영화 <올드보이>는 몇몇 유럽 국가에 현재 개봉 중이다. 프랑스에선 총 15만명의 관객이 들 전망이고, 영국에선 3주 동안 지금까지 약 5만명이 들었다. 독일에서 극장 막을 내린 지금, 총 5만명 정도가 들었다(주: 특히 영국이나 미국과 같은 몇몇 나라에서는 관객 수가 아닌 극장 수익만 발표한다. 이 기사를 위해 국가별 평균 푯값을 사용하여 수익을 관객 수로 전환시켰다. 결과는 아주 대략적일 수밖에 없지만, 전체적 그림을 좀더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유럽에서 개봉한 외국어영화치고 봐줄 만한 수치다. 그러나 칸에서 각광받은 것을 생각하면(쿠엔틴 타란티노가 “개인적으로 추천”한 것에 더해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것), 실망스러운 수치다. 배급사들에 팔린 가격에, 상당한 P&A 비용을 생각하면 프랑스에서 수익을 남기지 못할 전망이다. 그리고 이 영화가 돈을 벌지 못하면, 배급업자들은 다음 한국영화를 살 때 더 조심스러워질 것이다.서구권 흥행수익 저조- 한국영화 입지는 여전히 좁다 프랑스, 영국, 미국이 서양에서 한국영화의 가장 큰 시장이지만, 각국의 비교되는 이야기들은 놀라울 정도다. 지금까지 서구에서 개봉한 한국영화로 가장 인기있었던 것은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었다. 미국에서 37만명, 독일에서 24만명, 프랑스에서 20만명, 영국에서 5만7천명의 관객을 불러들였다. 모든 시장에서 이 정도의 전면적인 성공을 이끈 한국영화는 없다.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지금까지 서구에서 개봉한 한국영화 중에서 가장 흥행성적이 좋았다(맨 위).<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프랑스에서 6만명이나 들었지만 미국과 영국에서는 아직 배급사를 찾지 못하고 있다(위).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은 프랑스에서 32만명의 관객이 들어 수익을 남겼지만, 미국에선 1만명, 영국에선 7천명밖에 끌어오지 못했다. 대조적으로 임 감독의 <춘향전>은 미국에서 13만명을 끌어왔지만, 프랑스에선 5만명밖에 끌지 못했다. 영국에서는 결코 개봉되지 않았다. 다음 영화들의 결과는 더 진지하게 읽게 된다. <무사>는 프랑스에서 15만명이 들었지만 다른 곳에선 참패했다.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프랑스에서 6만명이 들었지만 미국과 영국에서는 아직 배급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공식통계에 의하면 <태극기 휘날리며>는 미국에서 15만명을 끌었지만,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아직 개봉되지 않고 있다. <쉬리>는 영국과 미국에서 개봉되기까지 거의 5년을 기다려야만 했는데, 각각 3천명과 1만6천명밖에 끌어들이지 못했다. 다른 영화의 수치도 같은 이야기를 나타낸다. 자국 내나 동아시아 내에서의 성공은 서구에서 별 의미를 갖지 못한다. “오우삼스러운” 액션영화로 잔뜩 홍보되긴 했지만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미국에서 4천명 정도의 관객이 들었다. <친구>는 서구에서 거의 개봉되지 않았고, 아시아 공포영화의 물결을 탄 <장화, 홍련>은 영국에서 겨우 1만5천명이 들었다. 다른 영화들도 극장 개봉에서 미미한 흥행 수치를 남겼다. 수익성은- 관객 수에 대비되는 것으로- 다른 문제지만, 마찬가지로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무사>는 프랑스에서 15만명 흥행으로 괜찮았지만, 배급사는 영화를 비싼 가격에 구매한데다가 P&A 비용도 굉장히 많이 썼다. <장화, 홍련>도 마찬가지 상황으로, 아마 프랑스에서 한국영화치고 P&A 비용을 가장 많이 들인 경우일 것이다. 대조적으로 <봄 여름…>과 <여자는…> 같은 영화는 P&A 비용을 덜 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더 높았다. 이런 모든 수치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한국영화가 <쉬리>로 “국제적인” 모습을 드러낸 지 5년이 된 시점에- 한국영화의 서양시장이 여전히 작다는 것이다. 이따금 생기는 성공은 특수한 이유로 인한 것이다. 예를 들어 임권택 감독의 이국적인 시대의상 영화는 프랑스인 취향에 호소하지만 그 외에는 별로 효력이 없고,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은 단순히 스토리가 전통적인 아시아 이미지들에 포장된 것 때문에 서양에서 성공적이었으며(그의 현대적 영화들은 전혀 성공하지 못했음), 한국 공포영화나 액션영화 시장이 작게나마 존재해도 <와호장룡> <영웅> <연인> 같은 중국 액션영화의 시장이나 <링> <검은 물 밑에서> 같은 일본 공포영화의 것에 비하면 무의미할 정도다. 한국 멜로드라마와 코미디물은 서양에서 본질적으로 시장이 없다. △ <무사>는 프랑스에서 15만명이 들어 흥행했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참패했다(위). 지난 10년간 한국영화의 부활이 세계영화의 가장 신나는 발전사항 중 하나라 믿는 사람으로서, 필자는 슬픔을 갖고 이 기사를 쓴다. 서구 취향의 도서성(島嶼性)에 대한 슬픔, 타국에서 온 영화를 억누르고 그럼으로써 관객의 취향을 형성시키는 미국지배의 배급 및 극장 시스템의 힘에 대한 슬픔, 일부 한국영화 세일즈 대행사들이 실정에 맞지 않는 가격과 과다하게 높은 미니멈 개런티(MG)를 부름으로써 영화의 서구에서의 미래를 저해하는 것에 대한 슬픔이다. 5년이 지난 지금, 한국영화의 미래는 칼날 위에 서 있으며 아직 자기 정체성을 단조해나가기 위해 멀리 나아가야 할 상황이다. 보통 견문이 넓고 영화에 유식한 서양 관객에게 한국영화 스타 한명 이름을 대보라고 하면 대답을 못할 것이다. 감독 이름이라면? 어쩌면 임권택, 어쩌면 김기덕, 어쩌면 (프랑스에서나) 홍상수를 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감독들은 영화제를 통해서 알려진 이들이지, 일반 극장가에서 그런 것이 아니다. 서구에 장기적으로 의식을 갖고 한국영화에 관계하는 배급업자들이 남아 있긴 하지만, 수익성이 모든 것인 업계에서 자선사업을 운영하는 건 아니다. 한국 세일즈 대행사들은 실정에 맞지 않게 높은 가격으로 가능성 있는 고객을 소원하게 하기보다 시장을 좀더 현실적이고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보통 서양 관객에겐 아시아영화라면 중국영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중국영화는 액션영화와 이따금 나타나서는 잘해봐야 장사가 조금 될까말까한 왕가위의 예술가 계통 영화를 의미한다. 한국영화가 발전하는 틈새가 있다치면 색다르며 종종 어둡게 폭력적인 영화쪽이다. 영국에서 <올드보이>에 대한 평은- 매우 뒤섞여 있었지만- 극도의 폭력성에 집중됐으며 <섬>이나 <장화, 홍련> <살인의 추억> <폰>과 같은 다른 영화들은 모두 “색다른” 맛이나 “별난” 맛으로 인지됐다. 관객은 동아시아 영화계에서 새롭게 나타난 한국영화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지만, 아직 이름과 정체를 붙여주려고 헤매는 중이다. 단지 한국영화라는 이유만으로 보러 가는 사람은 아직 없다. 위의 모든 내용은 최신작을 인터넷에서 구매하는 전문지식으로 특화된 괴짜 영화광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내용이다. 그리고 위의 영화 중 극장에서는 평균 이하로 흥행하였음에도 DVD로는 잘 나가는 것도 여러 편 있다. 심지어 영국 배급사 메트로 타르탄은 아시아 엑스트림이라는 전문 비디오 라벨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영국의 크게 발달한 홈엔터테인먼트 시장과 같은 데서도 수치는 여전히 작다. 수천개가 나가지 수만개가 나가진 않으며, 수십만개는 더더욱 아니다. 서구 관객을 끌려면 정기적 배급이 필수 아시아에서 “한국 바람”은 겹치는 문화와 텔레비전 시리즈의 힘과 대중음악과 패션의 K.O. 효과 덕을 봤다. 서양에서의 “한국 바람”은 이런 요소들이 도와주지 못한다. 한국영화가 진정 인상을 남기려면- 간혹 나타나는 작은 성공을 넘어서- 서구 관객의 주된 의식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려면 정기적으로 배급되는 영화가 더 많아져야 할 것이고(그러므로 세일즈 대행사들이 미니멈 개런티보다 수익분배 위주로 계약건을 구성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고), 한국 감독과 스타가 자국업계 밖에서 일을 더 하면서 국제적으로 더 많이 알려져야 할 것이다. 아직은 초창기다. 중국어권 영화가 현재의 국제 위상을 누리기까지 30년이 걸렸다. 그렇지만 “한국 바람”이 지역의 비밀로 남게 된다면 끔찍하게 유감스러운 일이 될 뿐만 아니라 세계영화의 손실이 될 것이다.

<귀여워>로 만난 스승과 제자 배우 장선우-감독 김수현

26일 개봉하는 <귀여워>는 여러모로 독특한 영화다. 신인 김수현(36) 감독이 데뷔하면서 스승인 장선우(52) 감독을 배우로 데뷔시켰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 <꽃잎> <나쁜 영화>의 ‘장선우 감독-김수현 조감독’의 관계가 <귀여워>에서 ‘김수현 감독-주연 장선우’로 바뀐 것이다. 장선우가 맡은 역은 점 봐준다며 여자들 유혹하는 사이비 도사이고, 그 덕에 낳은 배다른 세 아들과 한 집에서 사는 ‘장수로’이다. 냉소적인 것 같으면서 철없는 아이들처럼 말하는 그 모습이 실제 장선우와 닮아 있어 이 영화를 두고 ‘다큐멘타리 장선우’라는 농담도 나돈다. 김/직접 시나리오 쓰게한 건 좋았죠, 쉽고 재미있는 영화 쉽지 않네요 16일 함께 만난 장선우, 김수현에 따르면 <귀여워> 촬영 도중 둘이 사이가 안 좋아진 적이 두세번 있었다. “김수현:장수로가 옥외에서 거친 정사를 하는 신을 놓고 (장선우) 감독님이 왜 그게 필요한지 나를 설득하라고 하셨죠.” “장선우:쑥스럽지. 남은 많이 벗겨봤지만 내가 하려니까. 그런데 역시 (김수현이) 감독이야. 장수로 대사가 말도 안 되는 게 많잖아. 그거 다 해야 하냐고 물으니까 대꾸도 안 해. 그래서 알겠습니다, 알아서 기었지. 그런데 말도 안 되는 대사를 하고 있으니까 재밌더라고.” “김:그거야 말로 감독님한테 제가 배운 거죠.” 장수로와 순이(예지원)의 섹스신도 마찬가지였다. “장:나는 한 번에 됐다고 생각했는데 또 찍자니까 삐졌지. 전문배우가 아니라서 그런지 난 첫 테이크가 좋더라고.” “김:감독님은 연출할 때도 첫 테이크를 좋아했잖아요.” “장:꼭 그런 건 아니고 첫 테이크가 좋은 배우가 있더라고. 나? 난 타고난 아마추어지. 아마추어니까 그런 거지.” 장/벗겨만 봤지 내가 벗으려니깐 영‥‘카오스적 미학’ 하나 건졌잖아 장선우 캐스팅은 김수현의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한진희를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썼는데 캐스팅이 안되자 제작자들이 장선우를 추천했다. “김:그러고 보니까 장수로가 감독님과 비슷한 데가 많더라고요. 마음 먹고는 찾아가서 ‘저도 데뷔 좀 합시다’ 졸랐죠.” “장:시나리오는 그 전에 나오자마자 봤지. 좋았어. 그런데 나더러 하라니까. 5년 이상 뒷바라지 했는데 이것도 안 해주냐고 협박하고. 그래서 다시 보니까 말도 안되는 대사 투성이인 거야. 또 나도 폼 좀 잡고 싶은데 완전히 망가지는 거야. 우매한 주변 사람들은 나의 사생활과 일치시키려고도 하고.(웃음)” “김:황학동에서 찍고 세트촬영을 했는데 황학동 촬영 땐 (장선우의 연기가) 불안했는데 세트에 들어와 배우들이 모여찍기 시작하면서 느낌이 살아나더라고요.” “장:나한테도 좋은 점이 많았던 것 같아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끝나고) 한참 동안 영화를 안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시 영화 현장에서 놀 수 있어서 좋았고, 돈도 생기니까 좋았고, 또 다행히도 완성된 영화도 좋으니까. 역시 나는 복이 많은 놈이야.” 김수현이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장선우를 찾아간 건 93년. <너에게 나를 보낸다> 연출부 막내로 들어갔고 그 뒤로 아이디어가 많은 만큼 포기도 빠른 장선우 밑에서 수도 없이 시나리오를 썼다. “김:연출부끼리 열심히 머리 맞대 시나리오 쓰는데 감독님이 ‘재미없다’ 그러면 그걸로 끝이예요. 그날 술 먹고 다른 거 쓰는 거죠. 그런데 연출부에 시나리오를 쓰게 한 건 참 좋은 것 같아요.” “장:<나쁜 영화> 찍을 때 (김수현에게) 촬영 맡겨놓고 놀러갔다니까. 왠만큼 믿으면 그렇게 하겠어?” 김수현이 꼽은 장선우 영화 넘버원은 <꽃잎>이었다. “김: 참 슬픈 영화 같아요. 작년에 텔레비전에서 다시 봤는데 참 잘 만들어진 광주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촬영 때는 뭘 찍는지도 모른 채 금남로 한 구석에서 타어어만 태우고 있었는데.(김수현은 그때 세번째 조감독이었다.)” “장:그랬으니까 영화가 더 슬퍼 보였겠지.” “김:제가 감독님과 닮아있는 점이요? 부지불식간에 많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감독님은 영화할 때마다 쉽고 재밌는 영화한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쉽지 않잖아요. <귀여워>도 쉽고 재밌게 한다고 했는데, 쉽지도 재밌지도 않고.” “장:카오스적 미학을 쓴 감독이 한국에 없었거든. 내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서 한다고 하고 망했는데 김 감독은 해냈잖아.” <귀여워>는 어떤 영화? 신인 감독들의 영화, 그중에서도 극장 개봉작을 대상으로 놓고 볼 때 지난해의 발견이 <지구를 지켜라>였다면 올해의 발견은 <귀여워>이다. 새롭고 전복적이다. 새로운 건 이 영화가 추구하는 혼돈과 축제의 미학이다. 이미 반 이상 철거돼 몰골이 전쟁터처럼 돼버린 서울 황학동 아파트에 콩가루 가족이 산다. 바람둥이 사이비 도사 아버지(장선우)와 그의 배다른 세 아들(김석훈, 정재영, 선우)로 구성된 이 가족은 주거공간이 같을 뿐 각자의 생활과 꿈은 콩가루처럼 따로 논다. 남에게 충고하거나 관여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 남자 뿐인 이 집에 여자(예지원)가 들어온다. 그럼 이 여자가 접착제가 돼 가족이 복원될까. 복원 같은 건 이 영화의 안중에 없다. 여자는 이 남자들 저마다의 꿈과 욕망이 황학동으로 모이도록 하는, 축제의 호스트이다. 여자와 남자들 사이에 각각의 사연이 쌓여 기괴한 4각 관계가 형성되기까지 이 축제엔 웃음과 아이러니가 가득하다. 이 혼란스런 축제가 끝나자 가족은 기다렸다는 듯 바로 흩어진다. 이건 봉합이 아니라 흩어지기 위한 축제다. 안쓰럽고 스산하다. 폭소와 스산함이 한 데 얽히는, 한국영화에서 만나기 힘든 혼란스런 감흥을 연출한다. <귀여워>는 에밀 쿠스트리차를 연상시킨다. 인종청소가 자행되던 끔찍한 유고분쟁의 와중에서 제 정신인지 실성했는지 모를 인물들이 펼치는 난장의 감흥은 <귀여워>와 닮아 있다. 그러나 쿠스트리차의 영화는 유고분쟁이라는, 누구라도 동의할 처참한 상황을 깔고 있었다. 지금의 한국과는 다르다. 철거깡패의 폭력 위협이 상존하는 철거촌이 배경이지만 그 위협에 구속당하는 이는 아들 중 한 명(정재영)뿐이다. 나머지 인물들은 철거를 의식하지 않고 산다. 상황을 탓하지 않는 이들은 상황에 희망을 걸지도 않는다. 쿠스트리차 영화의 배경을 지금의 한국으로 바꿔내는, 그 앞서간 절망감엔 전복의 기운이 있다. 또 상황보다 개성강한 캐릭터들에 의존해 혼돈의 미학을 끌고가는 연출엔, 전압이 불안정하면서도 전력이 큰 에너지가 있다. 올해 한국 영화는 끝자락에서 새 피를 수혈할 감독을 만났다.

2004 할리우드 소녀영화 유행 분석 [3]

새로운 소녀관객의 등장 - 10대 영화, 자본주의 전선으로 뛰어들다 “어머머머머!” 그때 갑자기 <퀸카로 살아남는 법>의 케이디가 테이블로 뛰어왔다. “셰어 언니! 베로니카 아줌마! 아직도 할리우드 근처를 맴도세요? 셰어 언니는 과다체중으로 만날 신문에 오르내리더니 웬 빅맥세트? 잇힝. (눈을 찡긋하며) 슈퍼사이즈 유! 꺄르륵.” 담뱃재를 통째로 들이마신 표정의 일행이 할말을 잊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다. 아랑곳하지 않는 케이디는 의자 하나를 가져와 턱하니 앉는다. “<퀸카…>가 굉장한 성공이었죠?” 기자가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아휴, 뭐. 약간. 영화 만들기 전에 할리우드의 배불뚝이 아저씨들이 말하길. 소녀가 주인공인 영화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더만. 고루한 미신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고요. 요즘 미국 여자애들은 단체로 영화 보러가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단 말이지요.” 셰어가 살짝 눈을 내리깔며 입을 열었다. “이것 봐. <클루리스> 때도 그랬어. 사실 그때부터 새로운 소녀영화 붐은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니까. 90년대 후반에 나왔던 영화들은 어때. 문학의 고전들을 10대 소녀영화의 세계로 끌고 들어왔던 <쉬즈 올 댓>이나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는 얼마나 깔삼했니. 요즘 소녀영화들에는 그런 ‘고전의 향기’가 남아 있질 않아. 싼값으로 만들어 돈이나 좀 우려먹겠다는 제작자들 심보만 눈에 보이지.” 케이디의 눈에 쌍심지가 켜진다. “글쎄요. 고전의 향기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언니가 탱탱하던 시절의 소녀영화들이야말로 뭔가 좀 어긋난 데가 있는 것들이라고. 언니가 걸치고 다니던 값비싼 디자이너 파티복에 어떤 10대가 공감하겠어. <퀸카…>에 나오는 애들은 다르다고. 다들 할인매장 옷입고 앉아서 손톱 손질하고 남자친구 이야기 따위나 나불거릴 수 있을 것 같은 생생한 애들이란 말이지. 언니처럼 예쁘게 나이든 늙은이가 고등학생 역을 맡는 게 아니라. 린제이 로한이나 힐러리 더프 같은 진짜 10대들이 연기를 한단 말이에요.” 잔인한 소녀들, 베벌리힐스 잔혹사 “케이디! 곧 <오프라 윈프리 쇼> 녹화가 시잘될 참인데 여기서 뭐하는 거야!” <퀸카…>의 각본을 쓰고 수학선생으로 출연했던 티나 페이가 헉헉거리며 달려왔다. 뒤따라 달려온 매니저들이 아직 말도 채 끝내지 못한 케이디를 우격다짐으로 밴에 싣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상황이 진정이 되자 조심스레 티나에게 말을 건넸다. “저희는 지금 올 한해 소녀영화들에 대해 담화 중이었는데요. 이렇게 <퀸카…>의 각본가를 만나게 되다니, 세상에 이런 우연이 또 있을까요.” 티나가 웃어젖힌다. “호호호. 원래 할리우드란 데가 우연의 씨줄 날줄로 이어진 세계잖아. 자기. 그런데 베로니카양도 여기 있었네! 반가워. 내가 <퀸카…>를 쓰면서도 <헤더스>를 많이 참고했거든" 베로니카가 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는 그래도 <퀸카…>에 나오는 애들같이 우아하지 못한 암살쾡이들은 아니었어.” 티나는 그제야 조목조목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글쎄. <헤더스>는 일종의 블랙코미디였지만, <퀸카…>엔 나름대로의 리얼리티가 있어. 아마 그래서 좀 덜 우아할지도 모르지만. 알다시피 <퀸카…>의 원전은 <여왕 벌과 추종자들, 로잘린드 와이즈먼의 십대 소녀들의 행태에 대한 보고서>라는 딱딱한 논픽션이었어. 사실에 입각한 이야기들을 많이 가져왔지. 사실 영화 개봉 뒤에 교육관계자들과 10대 소녀들은 영화가 실제 고등학교 사회와 굉장히 닮았다는 이야기들을 각종 매체들에서 토로하지 않았겠어?” “정말 요즘애들 무서워.” 셰어가 덧붙인다. “그런 패거리들의 살벌한 왕따문화는 우리 땐 본 적이 없다고. 어떤 면에서 <퀸카…>는 <캐리>나 <조브레이커>와 다를 바가 없는 호러영화야.” “정말 미국 여고생들은 그렇게 무섭나요?” 보은이 질린 표정으로 물어보자 티나가 윙크를 보낸다. “꼭 소녀영화 속에서만 여자들이 그렇게 행동해온 것도 아니라고.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라스트 스쿨>(1993)의 파커 포시 기억나? 짧은 장면이었지만 그가 신입생들을 향해 “씨바 뭘 봐. 대가리를 확 뜯어버린다!”고 외치는 부분은 여전히 소름이 끼쳐.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1995) 역시 호러영화에 가깝지. 린제이 로한도 10학년 때 전학간 적이 있었는데, 영화에 나오는 그런 ‘플라스틱’ 그룹이 정말로 있었다더라고. <완벽한…>에서도 그런 재수없는 패거리들이 등장하잖아.” 티나는 말을 잇는다. “그래도 <퀸카…>를 <헤더스>처럼 어둡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어. 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PG-13등급을 위한 파라마운트와의 타협이었지. 그래도 중요한 건 이 영화가 10대 소녀들에게 엄청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이잖아. 오호호호.” 다들 그 웃음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아무 말도 않는다. “이제 가봐야겠어요. 참, 얼마 전에 만난 마크 워터스(주: <프리키 프라이데이> <퀸카…>의 감독)가 이러더라고. (그를 흉내내며) 10대 소녀들이 <퀸카…>를 마치 리얼리티 쇼처럼 관람하던데.” 티나가 또 한번 정신나간 듯이 웃는다. “깔깔깔. 그래서 내가 대꾸했지. 그애들 이 영화를 <소피의 선택> 보듯이 관람하던데요, 감독님. 꺄르르르륵.” 주체적인 소녀들, 그네들은 울고 웃고 소비한다. “정말 시끄러운 여자야.” 그녀가 떠나는 걸 지켜보는 베로니카가 혀를 찬다. “인정해. 2004년의 10대 영화가 예전과는 좀 다르다는 걸. 그러나 대부분이 소녀들 푼돈이나 한번 노려보려고 기획된 영화들인데다 값싸게 캐스팅한 텔레비전 스타로 가득하잖아. 다들 플롯은 염치없고, 캐릭터들은 바비인형처럼 딱딱해.” 거기에 조심스럽게 보은이 대꾸한다. “그래도 확실히 예전과는 다른 것 같은데요. 이젠 소녀영화들의 흥행을 보장해줄 새로운 소녀 관객층도 생겼고, 소녀스타들이 직접 자기 세대 영화의 주역으로 활동하고, 왕자님 판타지도 조금이나마 진보하는 중이고, 게다가 착하기만 한 소녀들 대신 잔인하고 나쁜 현실의 소녀들이 주역으로 등장하고….” 셰어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보은을 바라본다. “확실히 효과가 있어. 이런 어린애한텐 에스프레소 한잔이 각성제라니까 각성제.” “제가 무슨 어린애인 줄 아세요. 저 이래봬도 어엿한 기혼녀라고요.” 셰어가 보은을 기특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을 잇는다. “<클루리스>가 시작이었어. 닳아빠진 소녀들의 이야기도 얼마든지 흥미진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지. 예전 같으면 주변에서 들러리나 섰던 양갓집 규수들도 동세대의 살아 있는 아이들이라는 걸 처음으로 알려준 영화잖아. 무엇보다도 어른들 마음대로 창조했던 소녀상이 점점 피와 살을 얻어갔던 것도 90년대 들어서나 가능했던 일이지. <쉬즈 올 댓> 같은 영화들이 붐을 이루고 나서 사라 미셸 겔러 같은 애들이 화면 위에서 섹스와 마약을 시작하자 슬슬 그것도 끝물을 탔지만, 그래도 <브링 잇 온> 같은 영화는 어때? 예전 같으면 치어리더 따위는 고뇌하는 여자주인공에게 물세례나 퍼붓는 들러리나 섰을 거 아냐. 걔들에게도 나름대로의 고민과 치열한 투쟁이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잠깐만, 잠깐만요.” 보은이 말을 막는다. “바로 그런 것들이 지난해와 올해의 소녀영화들을 만들어낸 거잖아요. <내 생애 최고의 데이트>와 <프린세스 다이어리2> <내 남자친구는 왕자님>은 비록 시대착오적인 신데렐라 이야기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캐릭터들은 전과 달랐어요. 자기 결정은 자기가 스스로 내릴 수 있는 인물들이었으니까. 게다가 악역으로 등장해야 할 남자 조연들에게까지 세심하게 인간미를 부여한 것도 좋았죠.” 베로니카가 마지막 담배 한 모금을 훅 공중에 불어 도넛을 만든다. “착하고 엄마 말 잘 듣고, 힐러리 더프가 광고하는 건 뭐든 사모으는 시대의 충실한 소비자들. 10대 소녀들이여. 영화를 소비하라. 여기 제대로 상을 차려놓았다. 이런 거 아냐 어쨌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