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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9404)

<죽이는 이야기> <우렁각시>, 삐삐롱스타킹의 고구마

국경의 끝을 떠도는 여행자 “만나봐, 재밌어.” “뭐랄까, 백현진이 괴로워하는 건달이라면, 권병준은 꿈꾸는 건달이라고 할 수 있지.” 주위의 풍문을 듣고 고구마를 만나러 가는 동안, 오래 전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그가 아직 대학에 다니면서 밴드 ‘토마토’를 하고 있을 때였다. 우연히 그와 한 택시를 탔다. “아, 고구마 아니세요?” 하고 알아보는 척을 하자 그는 조금 쑥스러워하며 “네”라고 했었다. 그때, 고구마는 이미 특별했다. 강의실과 집, 기껏해야 술집과 학원을 오가는 평범한 학생들 속에서 그는 무엇인가에 매료되어 자기만의 세상 속을 유영하는 이로 보였다. 말하자면 그때 이미 고구마는 “뭘 하고 살지 필이” 온 사람 같았다. <죽이는 이야기>에서의 그의 잊지 못할 대사처럼. 강남구청 사거리 대로변 빌딩의 작업실에 들어섰을 때, 고구마는 하얀 식탁 옆에 연두색 티셔츠를 입고 서 있었다. “천천히 하죠. 저도 지금 방금 왔는데” 하며 차를 끓여 주었고, 작업실 구경을 권했다. 널찍한 연주실과 유리창 벽 너머 또 하나의 공간. 석달 전 그가 직접 벽도 세우고 마루무늬 바닥도 붙이며 마련했다는 새 스튜디오는 번듯하고 깔끔했다. 눈에 띈 건 작은 방문을 열었을 때 보이던 가야금 두대. 그는 국악 연주팀 ‘사계’에 방 하나를 세주고 있었고, 곧 그 팀의 프로듀서로도 일할 거라고 했다. 고구마는 특유의 느긋함으로 그리 바빠 보이지는 않았지만, 알고보니 하고 있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렁각시> O.S.T , 강기영씨와 만든 팀 ‘모조소년’, <굿 플레이>라는 안혜순의 무용음악, 신윤철씨를 도와서 하는 의 음악에다가 <죽이는 이야기>의 조감독이었던 박준현 감독의 입봉작 <오! 해피> 음악, 사계 프로듀서까지. 아직 ‘천천히 하는’ 시간. “좋은 데로 보여줘야 하는데”, 하면서 그가 <우렁각시>를 컴퓨터 화면에 띄웠다. 고구마가 선택한 아직 공개된 바 없는 남기웅 감독의 신작 <우렁각시>의 장면들이 나타났다. 고구마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뒷거래 철공소직원 건태를 연기했다. 주윤발을 흠모하는 건태는, 고구마가 영화에서 처음 해보는 주인공. 남기웅 감독과 만나 둘이 서로 뜻이 통해 바로 하기로 했고 ‘굉장히 열심히 했다’. “여지가 크지는 않았어요. 저기 나오는 거 다 대본 그대로 한 거예요. 대사 하나, 토씨 하나 대본하고 다른 게 없어요. 휴, 세 페이지짜리 대사 한컷으로 가는 것도 있었어요.” 고구마는 음악과는 달리 영화에서는 “감독이 시키는 대로 다 한다”며, <우렁각시>에서도 감독 요구대로 각본에 충실한 연기를 했단다. 불법무기를 만드는 철공소에 수상한 단속반이 들이닥치는 장면이 모니터에 뜨자 건태가 전전긍긍하는 걸 보며 웃는 고구마. “지금 단속 나온 거예요. 근데 저기 벽에 뒷거래 철공소라고 다 써 있어요. 큭큭.” 영화 속에서 고구마는 묘한 데가 있다. <죽이는 이야기>에서 그의 몰카 찍던 여관종업원 연기를 떠올려보자. 직업배우들에 비해 어딘가 미숙하고 때로는 연기하고 있다는 게 보이지만, 그게 밉거나 어색하지 않다. 직업배우가 아닌 이는 보통 아예 자기 개성으로 밀어붙이는 일이 많은데, 고구마는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착한 학생처럼, 정말로 열심히 연기를 한다. 그게 매력적이다. 배우 아닌 끼 있는 사람이 최선을 다해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는 와중에 빚어지는 현상. 그건 가만히 있어도 영화캐릭터 같은 사람이 애써 자기와 다른 어떤 캐릭터를 연기할 때 생겨나는 유머러스한 겹쳐보임이다. 영화배우로서의 자기에 대해 고구마는 이렇게 말했다. “별 매력없지…. (웃음) 그냥 조금 작품을 이해하는 센스가 있는 것 같고, 연기를 너무 연기같이 하는 연기자들에 질린 사람들이 저를 보면 끌리는 것 같아요.” 재밌는 것은, 그 역시 자기 음악에서 그런 시도를 한다는 것이다. 모조소년에서 그는 노래부르지 않는다. 게스트싱어들을 쓰는데, 그중에는 <해변으로 가다>에 나오는 여배우도 있다. “가수한테 노래시키는 게 싫어서”란다. 경계에 있는 사람 “인터뷰 약속 잡으러 전화했을 때, 신종 문화건달이라는 말을 꺼내니까 웃으셨잖아요. 왜 웃었어요?” “저기 좀 전에 여기서(<우렁각시>를 보던 모니터를 가리키며) 그 애(건태)도 그런 거(건달)를 동경하는 애였고, 제가 또 다른 영화 한 게 있거든요(). 그것도 그런 거라서, 그래서 그렇게 제목을 붙였나 했어요.” 이런 대화로 시작한 인터뷰는 그가 자신을 “경계에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조금씩 깊어갔다. “영화는, 어떻게 보면 외도 같잖아요. 곁가지잖아요. 그런데 그런 걸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음악은 돈이 안 돼요. 저는 판 팔아서 돈 1원 한장 받은 적이 없어요. 다 손해봤지요. 그걸 바꿔보려고 모조소년 음악을 하고는 있는데, (웃음) 영화음악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제가 일을 접근하는 방식이 그런 식이에요. 하나를 집요하게 들어가기보다는 둥글둥글하게 돌면서 경계에서 왔다갔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저보고 회색도당, 회색분자라고도 해요. (웃음)” ‘경계’라는 말은 고구마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키워드다. 그건 단지 그의 행보가 보여주듯 ‘여러 장르의 문화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단순한 설명이 아니다. 그의 가치관이고 행동지침이다. “여행하는 사람의 느낌”이다. “여행자는 떠돌이잖아요. 여행지에서 그 삶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스치는 사람이잖아요. 저는 여행을 좋아해요. 여행자는 국경 근처를 자주 오갈 수밖에 없어요, 한곳에 3일 이상 머무르지 않는다…. 뭐 그런 거에요.” 내 방식대로, 사람들이 즐겁게 ‘경계’를 늘 오가는, ‘한곳에 3일 이상 머무르지 않는’ 그이지만, 가장 애착을 두고 있는 건 있다. 음악이다. 피아노 선생님이었던 어머니 덕에 그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접하고 살았다. 다른 아이들은 다 다니기 싫어하는 학원을, 종류도 가지가지 졸라서 5, 6개씩 다니던 호기심 많던 소년 시절, 그는 어머니로부터 피아노도 배웠고, 그러다 싫어 바이올린을 했고, 현악기에 재미를 붙인 뒤 중2 때 클래식기타를 하면서 기타로 옮겨갔다. 밴드를 처음 만든 건 휘문고 2학년 때. ‘제1회 한티가요제’가 그의 데뷔무대였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줄곧 보이스카웃을 하던 그는 그 무렵 보이스카웃단실에서 전자기타를 치곤 했는데, 가요제 소식을 듣고는 보이스카웃 친구들과 밴드 ‘강아지’를 급조했다. <렛잇비>로 예선 통과, 본선에서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를 해 인기상을 받았다. 그때 친구들과는 나중에 인디레이블 ‘강아지문화예술’을 같이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는 들어온 서울대 불문과. 교수는 이인성, 조교는 성기완, 게다가 온통 끼 있는 친구들. 황금조합이었다. “진짜로 재밌었어요, 저는 대학생활에 하나도 후회가 없어요. 공부는 하나도 안 했는데, 아 그건 조금 후회가 되는데, 기본적으로 끼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요, 엠티를 가건 뭘 하건…. 저는 동아리 활동 하나도 안 했어요. 과 사람들하고만 놀았죠.” 1992년 그는 대학 2학년 때 조교이던 성기완, 그리고 서울예전의 정선문, 국악과의 민경현과 함께 밴드 토마토를 만들었고, 이듬해 앨범을 냈다. 그 다음이 바나나보트다. 바나나보트는, 앨범 하나 내지 않은 추억 속의 밴드다. 하지만 “반갑습니다. 이곳은 한국의 얼터너티브 록밴드 바나나보트의 공식 홈페이지입니다. 1994년 말경에 결성된 바나나보트의 당시 데모곡들을 위주로 꾸며진 이곳에서 음악을 좋아하는 세 청년의 꿈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나나보트는 온라인상에서만 활동합니다”라는, 고구마가 직접 만든 바나나보트 홈페이지 안내문에서도 알 수 있듯, 아직 살아 있다. “제가 그때 만들었던 곡들을 그대로 웹에 올려놨어요. 나중에 그거 갖고 뭐 하려고. (웃음)” 바나나보트의 데모곡 중엔 방에서 녹음하다가 갑자기 친구가 오는 바람에 빨리 끝난 노래()도 있고 <액션가면>이라는, 고구마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노래도 있다. “밴드할 때가 그리워요.” 옛 음악들을 들으며 그가 말한다. 그립다고? 토마토도 1집만 냈고, 삐삐롱스타킹도 해체, 강아지문화예술, 99, 원더버드까지. 사실 그는 한 밴드 혹은 한 집단을 오래 유지한 적이 없다. 앨범 하나 정도를 작업한 뒤 해체되거나 그가 빠져나왔다. 토마토와 삐삐롱스타킹 사이, 제일 ‘개인적’인 바나나보트 시절은 그래서 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지도 모른다. 고구마라는 이름을 지은 것도 그때였다. 하지만 고구마는, 지금이 제일 좋다고 한다. 거쳐온 여러 밴드들, 그러나 “좋았으면 계속했을 텐데”라는 말이 스친다. 어딘가 그의 한구석, 어두움이 만만치 않다. 사실 인터뷰의 상당 부분은 그가 말하지 않고 내색만 약간 하는 어두움이 차지했다. (중략) 꽤 오랜 침묵이 흘렀고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경계에서 사는 사람들 있잖아요. 힘들 때도 많아요. 여기 가면 여기서 치이고 저기 가면 저기서 치이고. 그렇지만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제일 또, 점점 안으로 들어갈수록 없어지는 그런 것들을 잘 볼 수는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거를 놓치고가고 싶지 않아서, 영화든 음악이든 자꾸 밖으로 밖으로 여태까지 그랬던 것 같아요. 저는 이때까지 계속 상업적인 것들하고 한번도 담 쌓고 지내본 적이 없어요. 상업적인 음악을 해왔고, 상업적인 영화에 출연도 했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있잖아요. 그런 거를 이때까지 계속하려고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그게 웃기는 거가 될지도 모르고 뭐가 될지도 모르는데…. 아무튼. 그런 걸 하고 싶어요. 내 방식대로 사람들을 즐기게끔 만들고 싶어요.” 밝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고구마는 요즘 새로운 꿈 하나가 생겼다. 스튜디오를 안에다 꾸민 차를 가지고 유럽에 가는 것이다. “여기 한국에서 너무 오래 있는 것 같아서, 나가고 싶어요. 답답해 죽겠어요. 올 말쯤에는 나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얼마나 길어질지는 모르겠는데, 열심히 돈 모으는 중이거든요. (웃음) 북유럽에 가서 현대음악을 공부하고 싶어요. 생각을 해봤는데, 한 2천만원 모아도 방 구하고 그러면 다 써지잖아요. 그래서 차를 사서 조그만 스튜디오를 차려서 중국으로 가서, 아니면 직접 유럽으로 갈 수도 있고. 그런 생각을 최근에 했어요. 여기서 이러고 지지고 볶고 지하실에서 곡 쓰고 이런 거 별로 안 좋아요. 여기 있으면 음악이 여기같이 나와요. 지하실 같은 음악. 밝고, 아름다운 세상 있잖아요. 그런 곳에 가서 그런 음악을 하고 싶어요.” 우리는 언젠가, 중국 대륙을 혼자 달리며 밤이면 아무도 없는 어떤 벌판에 차를 세우고 아름다운 어떤 곳을 닮은 음악을 녹음하는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느 홈페이지에 그의 음악들이 실리는 거다. “반갑습니다. 여기는 한국의 얼터너티브 문화건달 고구마의 공식 홈페이지입니다. 2002년 말경 떠나, 언제나처럼 경계에 살았던 고구마의 음악들로 꾸며진 이곳에서 세상을 동경하는 한 청년의 꿈을 들으실 수 있기 바랍니다.” 뭐, 이런 말을 거기다 써놓을 수도 있겠다. 글 최수임 sooeem@hani.co.kr 사진 이혜정 hyejung@hani.co.kr▶ <뽀삐> <꽃섬> 출연한 어어부프로젝트 보컬 백현진 ▶ 백현진이 쓴 노랫말들 ▶ <죽이는 이야기> <우렁각시>, 삐삐롱스타킹의 고구마 ▶ 고구마의 영화작업들

제5장 착각

5-1-3 우리는 한 명제의 참이 다른 명제들의 참으로부터 따라 나온다는 것을 그 명제들의 구조로부터 알아본다. 5-2 이 영화에는 두권의 책이 있다. 하나는 (영화 바깥에 놓여진) 이 영화의 제목인 임어당(林語堂)의 <생활의 발견>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 안에서 사용되는) 춘천에서 선배 성우의 집에서 들고 나온 <스콧 니어링 자서전>이다(영화에서 사용한 판본은 표지로 미루어 짐작건대 김라함씨가 번역한 실천문학사 출판본이다). 아마도 성우는 지난해 또는 지지난해에 샀을 것이다(이 책은 2000년 5월에 출판되었다). 또는 홍상수가 <생활의 발견> 트리트먼트를 쓰기 석달 전에 나왔다. 임어당은 ‘자유주의’를 내세운 반공주의자였으며, 스콧 니어링은 ‘급진적’ 사회주의자였다. 경수는 스콧 니어링에 대해서 알고 있으며(선영에게 설명한다), 선영은 “그 책이 아마 제가 알고 있는 어떤 분 인생을 바꾼 책일 거예요”라고 대답한다(분명치는 않지만 아마 그 ‘어떤 분’은 그녀의 남편일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정말로, 정말로, 남을 위해서 일만 하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그 남편은 춘천 소양호에서 (여자와 바람을 피우며) 성우에게(경수가 아니다. 그런데 경수가 그녀의 남편을 기억하기 때문에 처음 보았을 때는 경수에게 빌렸다고 착각을 했었다) 라이터를 빌려 달라고 부탁한다. 경수가 선영의 남편에게 한 말은 “Can you speak english?”가 전부이다. ▶ 성일, 상수의 영화를 보고 회전문을 떠올리다 ▶ 제2장 자막 ▶ 제3장 회전문 ▶ 제4장 구조 ▶ 제5장 착각 ▶ 제6장 아버지 ▶ 제7장 …그리고 침묵

후반전 - <재밌는 영화> 재밌는 대담

김정은이 자리를 뜨자 그 사이를 틈타 두 감독은 각각 자기 일에 열심이다. 김 감독은 사진기자에게 “<광복절 특사> 아시죠. 제 작품도 좀 신경 좀 써주세요”라고 홍보전을 펼치고, 장 감독은 휴대폰을 들고서 “뭐, <할리데이> 원곡은 안 된다는 게 말이 돼”라고 다소 언성을 높인다. 막간 5분이 지나고, 두 사람 다 “이제 됐죠?”라고 한마디. 바쁜 모양이다. 그러나 사제간의 허물없고 뼈있는 대화가 궁금한 이들은 “아니, 이제 시작인데요”라고 응수했다. 후반전은 그렇게 재개됐다. 김상진 >>> 지금이 비수기라 어떨지 모르지만 난 폭발적인 관객층을 모을 것 같아. 다시 보는 관객도 꽤 많을걸. 장규성 >>> 전 신기한 게 감독님의 바로 그런 긍정적인 반응이거든요. 한없이 유치하고 황당하다고 하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아, 그런데 잘될 거라는 건 어떻게 알아요? 김상진 >>> 그냥 감이지 뭐. 그걸 어떻게 따지냐. 다소 그런 코드들이 좀 있다는 거지. 장규성 >>> 자식, 잘 찍었네 하는 장면은 없어요? 김상진 >>> 너무 노골적으로 나오네. 장규성 >>> 난 칭찬받고 싶은데…. 김상진 >>> 노골적으로 패러디한 장면보다는 슬쩍 집어넣은 장면들이 좋아. PC방에서 김수로와 김정은 대화나 총격전 중에 타임 걸고 작전 짜는 장면들. 장규성 >>> 죽인다는 거죠? 김상진 >>> 그래 죽는다. (웃음) 자체적인 아이디어로 웃기는 장면들인데, 난 그게 좀 더 많았어도 좋았다고 보는 거지. 근데 난 40계단 같은 경우는 정말 재미없었거든. 그냥 너무 길 뿐이야. 한 시퀀스 전체를 패러디하겠다는 건 좀 무리 아닐까. 그것도 단지 총이 없어서 결국 삶던 순대로 목졸라서 사람 죽인다는 것만으로 끌고가기에는 약하지. 바람 날리고, 비 뿌리느라 뺑이쳤지만, 관객 반응은 고생한 만큼 나오지는 않을 거야. ‘툭툭’치고 ‘슉슉’ 빠져야 하는데. 장규성 >>> 그럼 너무 복잡해지잖아요. 그래서 안 한 건데. 오히려 전 코미디영화를 패러디한 장면들이 힘들었어요. 그걸로 또 웃겨야 하는데 특히 <넘버.3>의 여관방 장면처럼 송강호가 워낙 잘하는 장면은 더이상 넘어서기가 어려운 거예0요. 그래서 찍어놓고 쓰지도 못했지. 김상진 >>> 후반부에도 그런 장면이 또 있어서 그래. 총 맞고 서태화가 전봇대에서 쓰러지면서 ‘고마해라, 마니 무따 아이가’ 하는 거. 룸살롱 장면에서부터 쭉 이어지는 거잖아. 근데 다 알고 있는 장면이거든. 내 생각엔 그 지점에서 오히려 다른 장면이 치고 들어와야 한다는 거지. 아까 40계단 장면하고 연결해보면, 죽일 때 대꼬챙이로 찔러 죽이는 게 아니라 정말 오뎅을 많이 먹여서 죽일 수도 있고, 그럼 ‘마니 무타’가 자연스레 나오는 거고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친구>로 빠지는 것이 되니까. 장규성 >>> 나보다 더하시네. 김상진 >>> 통으로 잘라와서 연결시킨 장면들이 본래 맛이 떨어져서 그래. 힘은 힘대로 들어가고. 물론 어차피 둘 수밖에 없는 악수일 수도 있지만. 너도 그런 것 느끼지? 장규성 >>> 나라고 그런 생각 왜 안 했겠어. 나도 중간에서 딴 길 새는 거 무지 좋아하는 놈인데. 김상진 >>> 패러디라는 장르가 원래 우리 식대로 놀 테니까 관객도 맘대로 즐겨보시라, 뭐 이런 거 아닌가. 그런데 아이디어만 재밌다고 던져놓으면 되는 게 아니거든. 우리 식 표현대로 앞에 리쥬를 쭉 깔아야지. 그러다 한순간에 확 틀고 꺾어야 맛이 나고. 그런데 이 영화도 초반에 상황을 많이 설정해놔서 끌고가다가 여러 번 비틀 수 있는데도 패러디 장면에만 욕심을 부리느라 그런 게 많이 빠진 것 같아. 장규성 >>> 근데 그러면 애초 이 영화의 기획의도랑 안 맞잖아요. ‘한국영화 패러디’라는 걸 무시 못했던 거지요. 그냥 내 식대로 밀고 가면 그냥 코미디영화일 뿐이고. 필요악이라는 표현이 적당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어쩔 수 없이 가져가야 했던 거니까. 김상진 >>> 이해는 돼. 전체적인 리듬이 크게 어긋나지도 않고. 다만 영화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템포가 느려보일 거야. 여기서 한번 더 웃겨도 되는데 하는 부분들도 조금씩 보이고. 물론 관객 반응은 나도 몰라. 다만 <쉬리>를 축으로 따라가는 스토리텔링을 다 알고 있는데다 또 각 장면들이 패러디한 원장면들을 대부분 알고 있으니까 지겨울 수도 있다는 거야. 근데 관객은 다 본 건 아닐 테니 우린 느리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관객은 ‘저게 무슨 장면이지’ 할 수 있어. 패러디인지 모르면 웃을 수 없는 장면들도 좀 있고. 아무래도 개봉을 해놓고 결과론적으로 ‘이건 좀 빨랐구나, 늦었구나’ 감독이 스스로 깨닫는 수밖에 없어. 장규성 >>> 감독님도 <주유소 습격사건>이나 <신라의 달밤> 때 그랬어요. 김상진 >>> 그렇지. 내가 너무 빨리 잘랐구나, 너무 늘였구나 하지. 근데 경우가 좀 다른 것 같아. 나야 내 스스로 템포가 좀 처진다 싶으면 불안해할 정도이긴 하지만 그나마 스토리텔링을 풀면서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다고. 근데 패러디영화는 아니야. 물론 궁금한 건 역시 관객 반응. 다른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재미도 분명 있을 거야. 처음에는 당혹스러워할 수 있지만, 그래도 한 10분 지나면 같이 온 남녀가 ‘오빠, 나 저건 못 봤어. 저거 어디서 나왔지’ 막 그럴 거라고. 안 봐도 뻔해. 나보고 이거하라고 했으면 절대 안 하지. 너처럼 엮어낼 자신도 없고. 당신이 최고다, 그런 당신을 이기면 내가 최고다 장규성 >>> 최종 판단은 관객이 하겠지만, 처음과 달리 데뷔작을 잘 만난 것 같기도 하고. 만날 이런 유의 영화만 들어오면 어쩌나 걱정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김상진 >>> 할 줄 아는 게 이거밖에 없는 것보단 낫지. 코미디에 무슨 애정이 있는 것처럼 해야 되잖아. 솔직히 멜로영화는 성질이 안 맞아서 못 찍겠어. 정말 못 찍겠어. 장규성 >>> 다른 장르를 하더라도 그 안에서 코미디를 풀면 되지 않나요. 찍다보면 장난기가 발동하니까, 난 다른 장르라 하더라도 이 장면 재밌겠다 싶으면 갈 것 같은데. 그래도 감독님 밑에서 배우면서 뭐가 대중적인 코드인지는 감을 좀 잡았으니까. 김상진 >>> 완죤히 서로 키워주기 분위기네. 장규성 >>> <신라의 달밤> 믹싱하는 데 가서도 낄낄대고 웃었을 정도로 관객으로서도 감독님 영화를 좋아해요. 그래서 어떨 때는 부럽기도 했어. 나도 저럴 수 있을까. 감독님을 이기고 싶을 때가 있는데. 아무래도 상업영화 감독이다 보니 흥행스코어가 기준일 테고. 사실 다음에라도 꼭 한번은 이기고 싶어요. 김상진 >>> 무섭네. 전부터 그런 놈인 줄 알았지만. 장규성 >>> 당신이 최고다. 근데 난 이기면 더 최고다 하는 거 있잖아요. 어쨌든 내 영화는 처음 봤으니까 선배로서 후한 평가를 해준 것 같기도 하고 김상진 >>> 그럼 박하게 평가할까? 장규성 >>> 아마 <재밌는 영화>도 마지막 장면의 대사나 설정을 두고서는 네티즌들 사이에서 논란이 될 것 같아. 남북 두 정상이 천황을 왕따시키는 장면 있잖아요. 나야 민족주의자도 아니고 다만 그게 재밌어서 그런 건데. 김상진 >>> 그래도 김정은이 ‘니들이 잘한 게 뭐 있어’라며 일장연설하는 장면은 닭살이야. 너무 드러나니까. 장규성 >>> 느닷없기도 하지요. 나도 느껴요. 근데 그런 것을 완전히 배제하고 가자니 좀 휑해보이잖아. 김상진 >>> 오히려 패러디영화라는 장르를 고려하면, (일본 극우파 테러리스트가) 서태지로 변장해서 구찌 티셔츠를 입고 입국하는 장면 같은 게 좋아보이던데.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의도적으로 사회적인 메시지를 외쳐야 인정을 받았는데 이제 누가 교육 받으러 극장에 와. 화나지. 그런 ‘큰’소리는 이제 없어진 것 같다고. 아, 근데 내가 이런 이야기까지 왜 하고 있지. 어쨌든 쌈마이 문화가 이 시대를 지배하는 것 같아. 문화적인 현상의 배후를 샅샅이 파헤치는 것보다 슬쩍 건드리고, 쓱 지나가는 게 훨씬 세련돼보이는 시대라고. 그래야 보는 입장에서도 더 유쾌하고. DJ아저씨를 그려놓는 노골적인 정치면의 만평보다 닭이야기나 광수생각이 더 먹히는 것과 같은 이치야. 장규성 >>> 마지막 편집에서 뺐다가 다시 붙였을 만큼 고민했어요. 감독님도 그런 것 있잖아요.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김상진 >>> 나도 있지. <돈을 갖고 튀어라> 때. 신문 사회면에 정치권의 비자금 문제에 대해서 통렬한 일격을 가하는 영화라고 통기사가 떴으니. 이건 아니다 싶었지. 내가 누굴 죽이지도 않았는데 신문 사회면이나 시사 주간지에서 얼굴 나는 게 말이나 돼? 아까 내 말은 자기 스스로 통렬한 일침을 가하겠다고 하면, 그 순간 내가 하고 싶어하는 영화와는 달라질 것이라는 거야. 무심한 듯 슬쩍 가야지. 물론 무게있게 한마디 해야 평점이나 별을 많이 받긴 하지만. 평론가와 기자들이여, 순수해져랏! 장규성 >>> 별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감독님도 내가 조감독 시절 보면 별에 신경 안 쓰는 척하면서도 굉장히 민감해 보여요. ‘흥행만 잘되면 돼’라고 해놓고서도 별 1개 반, 2개 반 받으면 은근히 다음 작품에서 부담 가졌잖아요. 김상진 >>> (웃음) 임마, 너도 그런 거 생겨. 넌 특히 패러디 장르로 시작했으니까. 천출이잖아. 장규성 >>> 평론쪽에서는 아주 박한 점수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거든요. 김상진 >>> 물론이야. (웃음) 우리나라에서 평론가와 기자만큼 감각이 느리고 자기 개방을 안 하는 사람들이 없어. 순수해지지 못하는 것 같아. 사회적인 메시지를 너무 강요받고 싶어해. ‘제발 날 좀 강요해 줘’라고. 근데 요즘 10대는 그런 거 보면 짜증내. 사실 우리나라에 패러디 문화라는 게 있어. 고작해야 방송에서 광고 패러디 한 코미디가 전부잖아. 그런데 이걸 영화로 만들었어. 6천원 받겠다고. 아, 요즘 7천원이냐? 남들이 만들어놓은 것 위에 얹혀간다고 하거나 저급하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는데 중요한 건 관객이 유쾌해야 한다는 거야. ‘오빠, 저거 너무 재밌대. 김정은이 죽인대’를 원하는 거지, 일부 소수계층을 상대로 한 장사가 아니거든. 7천원에 인생의 감흥을 얻으려는 분들은 극장 앞에서 돌려보내야 해. 제 영화를 보시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시려는 분들은 서점에 가서 <노인과 바다>를 읽으십시요, 그래야 돼. 그게 대중영화의 가치 아니야. 장규성 >>> 그렇죠. 아. 그러고보니 조감독 시절 많이 배웠네. 감독님 장점이라는 게 뽑아먹을 것은 다 뽑아먹는다는 거잖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현장을 최대한 유쾌하게 끌고 가야 하나라도 더 건질 수 있다는 것도 알았고. 김상진 >>> 난 너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 패러디라는 게 어렵고 용기있는 결정이지만, 어떻게 보면 자기 것을 다 보여준 것은 아니니까. 온전히 네 것만으로 갔을 때는 어떤 그림이 나올까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되고. 중요한 건 사실 첫번째 작품보다 두번째가 어렵다는 거야. 처음이야 도와준 사람들도 많잖아. 기대에 대한 부담만 덜면 되니까. 근데 이 영화는 분명 성공할 테니까 두번째 작품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 거야. 자신이 판단하는 만족도의 문제도 그렇고 고민이 많아질 거라는 거지. 나도 <광복절 특사> 시나리오 오래 끌었잖아. 더 잘해야 하는데 하는 부담 때문에. 장규성>>> 자기 새끼가 만들었는데 나중에 쪽팔려서 죽겠다고 하면 어떡하나 하는스트레스는 있었어요. 김상진 >>> 이제는 개봉을 즐기는 시간만 남은 거야. 고문도 끝났고, 이제는 네 손을 떠난 거니까. 술자리도 가고, ‘난 왕이다’ 하는 분위기로 가면서 실컷 놀아. 나처럼 영화 떨어질 때까지 기분내는 건 좀 그렇지만, 맘껏 즐길 필요는 있어. 그 시간 지나면 다음 작품 언제 들어가야 하나 조바심이 들 테니까. 어차피 네가 알아서 하겠지만, 맘 느긋하게 먹고 차분히 준비하는 시간을 갖는 게 다음 작품에도 좋아. 장규성 >>> 못마땅한 게 많지만, 그래도 오야지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으니 맘이 놓이네. 김상진 >>> 이제 된 것 같은데. 끝! 정리 이영진 anti@hani.co.kr·백은하 lucie@hani.co.kr·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전반전 - <재밌는 영화> 재밌는 대담 ▶ 후반전 - <재밌는 영화> 재밌는 대담

전반전 - <재밌는 영화> 재밌는 대담

김상진 감독과 장규성 감독. 두 사람은 ‘부적절한 관계’다. 그렇게 지낸 지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그래서인지 요즘 두 사람은 굳이 숨기려고 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필요할 때면 실컷 까발리고 다닌다. “이번에 <재밌는 영화> 만든 장규성이, 사실 내가 낳았다”라거나, “저, <신라의 달밤>의 김상진 감독 새끼거든요” 하고. 그저 웃자고 하는 농담이 아니다. 두 감독의 나이 차이는 고작해야 세살. 하지만 장 감독에게 김 감독은 그것 ‘이상’이다. 적어도 “웃길 수만 있다면, 망가져도 좋다”며 당분간 코미디 장르만을 시추하겠다는 장 감독에게 김상진 감독은 지금까지 믿음직한 길잡이였다. <돈을 갖고 튀어라>부터 <투캅스3>까지 조감독을 맡아 자신을 믿고 따라준 장 감독에 대한 김 감독의 애정도 마찬가지. 4월12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장 감독의 데뷔작 <재밌는 영화>의 첫 시사회가 있던 날. 낮술이라도 한잔 걸친 듯한 김 감독의 상기된 볼은 자신의 차기작 <광복절 특사>의 시나리오를 그날 아침 탈고했다는 후련함 때문이라기보다는 ‘내 새끼, 장하다’라는 자부심 때문으로 보였다. <재밌는 영화>의 입심 좋고, 순발력 좋은 배우 김정은을 시사회 직후 이뤄진 ‘수다’의 향연에 뒤늦게 합류시킨 것도 두 감독의 끈끈한 관계 때문. 하지만 충무로가 맺어준 ‘부자’간의 대화는 칭찬과 격려만큼 조언과 걱정이 뒤따랐다. 편집자 장규성 감독이 조금 늦는 바람에 먼저 도착한 김상진 감독과 김정은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김정은 >>> 김 감독님, 준비하시는 시나리오 좋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김상진 >>> 오늘 아침에 시나리오 끝내고 왔어요. 하… 죽죠… 죽이죠. 내 영화에도 출연 좀 부탁해요. 하하하. 그런데 이거 오늘은 내 이야기 하면 안 되는 날이에요. 김정은 >>> (웃음) 영화, 어떻게 보셨어요? 김상진 >>> 재밌더라고. 장 감독 없을 때 하는 말인데… . 영화보고 나니까, 뿌듯해. <신라의 달밤>도 있고 <주유소 습격사건>도 있고, 내 영화가 저런 많은 장면에서 요소요소에 박혀 있다는 게, 뿌듯하더라고. 내 이야기 하면 정말 안 되는데. 김정은 >>> 장 감독님이 김상진 감독님 조감독 생활을 오래 하셨잖아요. 솔직히 그때 어땠는지 너무 듣고 싶어요. 김상진 >>> 솔직히 말하면, 쌈마이로 봤지. 하하. 처음에 걔가 연출부 들어왔을 때 너 제일 많이 본 영화가 뭐냐? 물으니까, <총알탄 사나이>라고 대답하더라고. 청량리 오스카극장에서도 보고 열몇번을 봤대. 처음엔 이상한 얘다, 취향 참 특이하다, 왕무시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패러디영화를 하려고 그랬나봐. 말을 잘 듣고 일을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었어요. 준비할 때만. 그러다 현장나가서 삐딱선 타는 스타일이었지. 한참 찍고 있는데 와서 “감독님 이건 좀 이상한데요” 뭐 이러는 얘들. 욕심도 많고 의견도 많고 그런 사람이었어요. (문제의 감독 장규성, 입장) 김상진 >>> 장 감독은 뭐하다가 지금 와? 장규성 >>> 어이구, 말도 마세요. 죽다가 살아났어요. 40계단 장면의 <할리데이>를 비지스가 못 쓰게 해서 너무 속상해 하고 있었잖아요. 그런데 지금 금방 연락이 왔대요. 써도 된다고. 김정은 >>> 와, 너무 다행이다. 장규성 >>> 사실 거기는 <할리데이> 없으면 너무 유치하거든. 판권을 가진 BMG에서는 허락을 했는데, 비지스는 코미디, 패러디영화라니까 싫다고 하더라고. 오죽하면 내가 비지스한테 안 되는 영어로 편지까지 썼다니까.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장면하고 우리 영화 장면하고 다 들어 있는 비디오 자료도 보내면서, 한국에서 처음으로 패러디영화가 기획되었는데, 흥행이 죽일 것 같다. (웃음) 뭐 이렇게 써서 말이야. 음, 믹싱 다시 해야지. 신난다. 아, 정은씨. 시사회장에서 정은씨가 제일 많이 웃더라고. 김정은 >>> 제가 원래 웃음이 헤퍼요. (웃음) 게다가 저는 편집 때도 안 보고 처음 보는 거였는데 너무 웃기더라고요. 솔직히 저야 이 영화가 마음에 안 들 수 없죠. 제가 앞장서서 오버하고, 욕심냈던 영화인데, 싫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걸. 제 나름대로는 이런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까놓고 한다는 것 자체가 용기있는 일이였던 것 같아요. 김상진 >>> 난 보고나니 유쾌해지더라고. 그건 뭐 장 감독이 재미있게 만들었기도 하지만 이런 패러디 장르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게 가능했던 건, 근간에 크게 터졌던 한국영화들 때문인 것 같아. 그런 영화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야. 오히려 늦은감도 있지. 장규성 >>> 사실이에요. 앞에 자막에도 썼지만 이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게 좋은 한국영화 만들어주신 모든 영화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리고 싶어요. 김상진 >>> 패러디 영화는 특 이야기 전개에 대한 궁금점과 기대심리는 그만큼 낮은데 똑같은 장면을 가지고 새로운 웃음을 줘야 하니까. 하여튼 대단해. 얼마나 스트레스 받겠어. 장규성 >>> 정확히 잘 찔러주었어요. 패러디란 장르를 좋아하면서도 데뷔작으로 남들이 다 해놓은 것을 한다는 게 처음엔 되게 싫었어요. 여전히 패러디라는 게 그냥 조금 웃기게 만들고, 그냥 베끼는 거 아냐? 하는 생각들을 많이 하시잖아요. 하지만 초고 보는 순간, 이렇게 이렇게 고치면 진짜 재밌는 영화 나오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고 저예산으로 가면, 조잡하게 가면, 유치하거나 장난스럽게 가면, 절대로 안 된다고 판단했어요. 김상진 >>> 영화보면서 내내 배우들이 많이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특히 서태화는 자신이 출연했던 <친구>를 그런 식으로 패러디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용기로 보이더라고. 김정은 >>> 처음에 이 영화 출연한다고 하니까 미쳤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선입견을 가진 분들이 많더라고요. 코믹이미지로 굳혀지는 걸 우려하시는 분들도 계셨고요. 그런데 과연 제가 CF 몇편 찍고 얻은 코믹한 이미지를 콤플렉스로 가져가야 하나, 왜 앞선 걱정을 하나, 했어요. 사실 코믹이란 장르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죠. 시나리오를 괭장히 재미있게 읽었고 아무도 하지 않은 영화를 한다면 괜찮을 것 같다라고 판단했죠. 장규성 >>> 내가 아는 정은씨는 굉장히 신중한 사람이에요. 시나리오를 마음에 들어하면서도 마지막까지 결정을 못 내리더라고요. 나는 처음부터 이 역할을 해낼 사람은 김정은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안 해주면 안 되잖아요. 감독이란 사람을 보고 싶다고 하기에, 개끌려가듯(웃음) 끌려가서 심사를 받았죠. 이를테면 감독 오디션을 본 거죠. 김정은 >>> 어휴, 아니에요. 감독님. 그냥 제 걱정이고 노파심이었죠. 사실 영화의 흥행보다 작업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어요. 만나고 나서 믿어도 될 만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즐겁게 작업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장규성 >>> 나보고 똘똘해 보인다고 그랬다면서요? 김정은 >>> (당황) 그러니까… 내가 뭐 모르니까 그런 거라니까요. 뭐, 모르니까 감독될 사람한테 똘똘해 보인다느니 그런 건방진 소리를 한 거죠. 김상진 >>> 영화를 안 했다는 게 정은씨의 큰 장점이기도 했을 거예요. 한번이라도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들에겐 고정된 이미지란 게 있잖아요. 가령 신은경이나 전지현이 그 역할을 했을 때 자기가 자신의 역할을 패러디하는 꼴이 되니까 어려움이 많았을 거라고. 그런 점에서 <주유소습격사건> 때 철가방 했던 김수로가 다시 철가방으로 1인2역한 장면은 잔짜 웃기더라. 장규성 >>> 잘했죠? 사실은 그 철가방 역할이 우리 음악했던 손무현이 하기로 되어 있었어요. 안 그래도 수로씨한테, 참 감회가 새롭지 않냐, 며 농담하고 있는데 시간이 됐는데 손무현이 안 오는 거야. 그래서 김수로가 직접 하게 된 거예요. 전지현보다 더 드럽게, 시나리오보다 엽기적으로 김상진 >>> 현장에서 애드리브도 많았겠네. 장규성 >>> 배우들이 난리도 아니었어요. 현장에서는 애드리브가 줄줄 튀어나와요. 그래서 어떤 부분 눌러주는 것도 많았다고. 현장 스탭들이야 자지러져서 웃더라도 나중에 붙여보면 오버일 것 같은 부분이 많았어요. 그나마 정은씨는 오버하면 오버하는 대로 다 놔뒀죠. 순발력이 뛰어난 배우예요. 촬영장 가기 전에는 뭐 별다른 좋은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는 경우 많잖아요. 그럴 땐 미완의 콘티를 가지고 현장가서 샘플을 하나 던져줘요. 그러면 배우들이 이것저것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거죠. 예를 들어 정은씨가 치과에서 열받아서 스케일링 환자 이빨뽑아놓고 ‘나 쌍거풀한 거 티나? 턱은 깜쪽같지?’ 하는 장면은 애드리브였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폭탄 들고 객석 향해 “대가리 박아! 누구야? 대가리 안 박는 게, 너! 삼층 다열에 둘넷여섯여덟열…” 하는 대사는 후시녹음 중에 불쑥 튀어나온 거였고요. 김정은 >>> 하하하, 그 ‘둘넷여섯여덟…’은 우리 엄마 말버릇이에요. 저는 누가 던져주지 않으면 잘 몰라요. 찍을 때 제 별명이 ‘한번만 더’였잖아요. 불안한 거야. 하지만 감독님이 요런 면으로 요렇게 생각해봐라 하시니까 이런저런 생각이 나더라고요. <엽기적인 그녀>의 지하철에서 오바이트하는 장면을 찍을 땐 진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가요. 사실 술은 잘 먹는데 오바이트를 잘 못해요. (웃음) 술 먹고 오바이트 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어요. 드라마 <해바라기> 찍을 때도 차태현씨 얼굴에다 오바이트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소주를 몰래 훔쳐 마시고, ‘웩’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진석 감독님이 그 장면 보시고선 저보고 ‘너, 오바이트 안 해봤제?’ 하시더라고요. 초범이 아닌 셈이죠. 이번에도 원희 오빠가 너무 괴로워 하니까 정은씨 손가락 한번 넣어보라고 해서 구역질나게 해서 했어요. 게다가 감독님이 영화 속에서 오물이 나오는 걸 싫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오물도 없이 전지현보다 더 드럽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죠. 그래서 결국 오바이트중에 국물만 걸러서 컵에 쏟아내고 건더기는 다시 삼키고, 그러다 목막혀서 다시 그 국물을 마시는 정말 ‘엽기’적인 장면이 나온 거예요. 김상진 >>> 다른 배우들에 비해 정은씨는 패러디장면이 <쉬리> 빼고는 많이 없는 것 같아요. 김정은 >>> 그런 편이죠. 그래도 전 <쉬리> 마지막 장면 같은 경우는 정말 코믹스럽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앞뒤 상황이 있으니까 그냥 내버려둬도 너무 웃긴다고 감히 생각했었는데. 그 장면은 실수로 박치기 하고 나서 원희 오빠의 코믹한 리액션이 있으니까. 현장에서 사실 그 장면, 더 코믹하게 가려고 재촬영도 했는데, 감독님 붙잡고 그랬어요. 이 장면에서 저만큼은 슬프게 가게 해주세요 하고. 나는 무지 슬프게 넘어가는데 관객은 웃겨서 나자빠지는 상황을 만들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장규성 >>> 시나리오하고 틀린 느낌으로 내가 요구한다거나… 그런 장면은 없었어요? 김정은 >>> 집에 들어가서 자기 전에 머리 속으로 오늘 찍었던 장면을 붙여보고 그랬거든요. 그러면 이상하게 현장에서는 내가 이렇게 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틀렸고 감독님이 말한 방향이 맞는 거예요. 코미디는 사실 하면 할수록 만성이 들어서 스스로 수위조절을 하기 힘들 때가 있는데 감독님께서 잘 조정해주신 것 같아요. 김상진 >>> 코미디는 보통 첫 테이크갈 때가 가장 정확한 감정상태인 것 같아요. 그래서 나도 기술적으로 힘든 장면이 아니면 여러 번 안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 김정은 >>> 특히 여관방 장면 찍을 땐 배우들끼리 미리 되게 웃기게 준비를 했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이 그냥 처음처럼 가라고 했을 땐 좀 실망스러웠던 게 사실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지 않았던 게 천만다행이에요. 그건 그렇고 우리 영화 보고나면 관객이 할말이 많아질 것 같아요. 그 장면은 그거 패러디지? 그거 아니었나? 뭐 이런 거. 그게 패러디영화 보는 재미겠죠? 김상진 >>> 일종의 수수께끼 푸는 느낌이겠지. 김정은 >>> 감독님이 아무도 몰래 ‘살짜쿵’ 집어넣은 장면을 오늘 보고서 너무 사랑스럽고, 귀엽고 그랬어요. 나중에 트렁크에 경호원들이 앉아 있는 장면 있잖아요. (옆자리에 앉은 매니저를 보고서) 그런데 죄송해서 어쩌죠? 저 라디오 생방송이 있어서 가봐야 된대요. 아, 더 놀고 싶은데…. ▶ 전반전 - <재밌는 영화> 재밌는 대담 ▶ 후반전 - <재밌는 영화> 재밌는 대담

[충무로는 통화중] 충무로를 격려한 <집으로…>의 흥행성공

지난 4월5일 <집으로…>의 조촐한 개봉 축하파티에 이 영화와 별 관련이 없는 청년필름 김광수 대표가 나타났다. 그는 “기쁘고 고마울 뿐이다”라는 말을 거듭하며 관계자들에게 인사를 했다.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 “이 영화의 성공이 기획중인 가족영화에 좋은 영향을 끼칠 것 같아 기쁘고, 스타를 캐스팅하거나 제작비를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우리처럼 작은 영화사에 희망을 줘 고맙다.”개봉 첫 주말 전국 관객 35만명을 불러모은 <집으로…>를 놓고 충무로가 술렁거리고 있다. 스타는커녕 마을 주민들을 배우로 내세웠고, 대단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은 데다가, 그리 많지 않은 예산인 17억원을 들인 이 영화의 흥행 성공에 신선한 충격을 받은 탓이다. 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는 “경이롭고 놀랍다. 한동안 조폭영화 등이 흥행에 성공을 거뒀는데, 이런 영화가 인기를 얻는 것은 영화계 전체의 균형을 맞춘다는 차원에서도 긍정적”이라고 말한다.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남들이 해보지 않았던 것에 도전한 <집으로…>의 용기를 높이 산다”고 이야기했다. 한 창투사 관계자는 “투자를 결정하면서 그동안 갖고 있었던 고정관념을 깨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물론 스타와 물량 위주의 제작방식이 일시에 바뀔 것이라고 전망하는 충무로 인사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이들이 사심없는 박수를 보내는 것은 이 영화가 일으킨 바람이 큰 돌풍이 돼, 스스로도 충무로 제작관행을 벗어나는 ‘의외의 성공작’을 만들 수 있기를 기원하는 탓인지도 모른다.문석

아시아영화의 위대한 유산을 보러가자

4월21일부터, 미조구치 겐지의 무성영화 등 아시아영화사의 걸작들 상영세계영화계에서 작품성뿐 아니라 상업성 면에서도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아시아영화의 역사가 스크린 위에 투사된다. 오는 4월21일부터 시작되는 ‘아시아필름페스티벌: 아시아영화의 위대한 유산’은 드러난 부분보다 어둠 속에 묻힌 영역이 훨씬 넓은 아시아영화의 역사를 소개하는 자리. 4월21일부터 28일까지 서울에서 개최되는 세계영상자료연맹(FIAF) 총회의 부대행사인 이번 영화제는 영화사적인 의미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장에선 좀처럼 만나보기 어려웠던 작품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작품은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 14개국의 필름 아카이브가 애지중지 보관해왔던 작품들로 모두 30편. 특히 모흐센 마흐말바프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정신적 스승으로 꼽히는 이란의 소흐랍 샤히드 살레스 감독의 대표작 <정적인 삶>은 현대 이란영화의 뿌리를 읽을 수 있는 작품. 인도 고빈단 아라빈단 감독의 <서커스 텐트> 또한 내면의 흐름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아시아영화의 미학을 정립한 작품으로 꼽힌다. 일본 미조구치 겐지 감독의 무성영화 <폭포의 흰줄기>나 인도 D.G. 팔케 감독의 무성영화들, 60년대 타이 독립영화의 대표작 중 하나인 라타나 페스톤지 감독의 <블랙실크>, 중국 장쉬추안 감독의 <사랑은 힘들어>, 첸카이거 감독의 <황토지>, 대만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펑꾸이에서 온 소년>, 리선펑 감독의 이소룡 주연작 <인해고홍> 등도 놓치기 아까운 영화들이다. 한국영상자료원과 시네마테크 부산이 함께 주최하는 이번 영화제는 4월21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소극장에서, 26일부터 28일까지 한국영상자료원 영사실에서 열리며, 5월3일부터 12일까지는 부산의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개최될 예정. 일부 작품의 경우 만석이 예상된다. 입장료는 무료. 문의는 02-521-3147(내선 161).사랑은 힘들어감독 장쉬추안/ 중국/ 1922/ 30분채플린 분위기가 물씬나는 코미디영화. 목수인 젱은 노점상을 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의사 주의 딸과 사랑에 빠진다.황토지감독 첸카이거/ 중국/ 1984/ 89분첸카이거 감독의 데뷔작. 제5세대의 도래와 중국영화의 뉴웨이브를 선언한 작품이다.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중국의 산골을 찾은 병사는 한 소녀에게 옌안에서는 여성이 평등한 대우를 누린다는 말을 전한다. 얼마 뒤 돈에 팔려 노인과 결혼하게 된 소녀는 버거운 삶을 떨치려고 옌안으로 향한다.주지의 여행일기감독 이토 다이스케/ 일본/ 1927/ 94분사무라이영화의 효시가 됐던 <주지의 여행일기> 시리즈 중 하나. 당시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구니사다 주지는 부패관리에 맞서 싸우며 정의를 실현한다.폭포의 흰 줄기감독 미조구치 겐지/ 일본/ 1933/ 100분물을 이용한 묘기를 선보이는 서커스단원 다키노 시라토는 매우 독립적인 여성. 마부와 사랑에 빠진 그녀는 자신의 지갑을 털어 그를 도쿄의 법대로 진학시킨다. 가부장제 아래서 일본 여성이 겪고 있는 사회적 딜레마를 신파적인 양식으로 그려낸다.초기 인도영화 모음인도 최초의 극영화인 <라자 하리아샨드라>(1913)를 비롯, D.G. 팔케 감독이 1910, 20년대에 만든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등 5편과 P.V. 라오 감독의 <마르탄다바르마>(1931)가 함께 상영된다.서커스 텐트감독 고빈단 아라빈단/ 인도/ 1978/ 129분인간과 자연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주제로 영화를 만든 고빈단 아라빈단의 대표작. 인도 서커스단의 이야기를 통해 인도사회의 단면을 드러낸다.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동시에 담아내는 선구적 영화.면로감독 에릭 쿠/ 싱가포르/ 1995/ 105분싱가포르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장편영화. 면로는 싱가포르 밤거리에서 어묵을 파는 노점상이다. 그는 흠모하는 버니라는 매춘부를 더러운 소굴에서 구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지낸다.인해고홍감독 리선펑/ 홍콩/ 1960/ 104분 이소룡이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적인 영웅으로 떠오르기 직전 만들어진 영화. 우연히 집으로 찾은 소매치기 소년과 아들을 잃어버린 남성의 이야기. 이소룡의 10대 때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영쌍주간>이 뽑은 20세기 홍콩영화 중 30위에 꼽히기도 했다. 붉은 연꽃감독 솜 옥 수티폰/ 라오스/ 1987/ 83분라오스에서 제작된 12편 영화 중 하나. 보아 당은 같은 마을의 카만과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의 양아버지는 그들의 사랑을 방해한다.하지아가와 영화배우감독 아바네스 오가니안스/ 이란/ 1932/ 67분필름으로 현존하는 이란영화 중 가장 오래된 작품. 다음 작품을 위한 아이디어 때문에 고민하던 영화감독은 영화를 혐오하는 하지아가를 추천받고 그의 생각을 돌리기 위해 노력한다.정적인 삶감독 소흐랍 샤히드 살레스/ 이란/ 1974/ 93분철도 건널목에서 30년 동안 근무한 한 노인의 쓸쓸한 이야기. 조용한 일상을 살아가던 노인은 어느 날 퇴직 시기가 됐다는 메시지를 받는다.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마을을 찾은 그는 누구도 자신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블랙 실크감독 R.D. 페스톤지/ 타이/ 1961/ 119분종교에 대한 굳은 신념을 담은 영화. 딸과 함께 살아가는 가난한 과부 프래는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톰과 사랑에 빠진다. 차오프라야의 석양감독 유다나 묵다사니트/ 타이/ 1995/ 135분2차대전이 일어나기 전날 밤, 두명의 젊은 연인 아그수말린과 바누스는 마지막 만남을 가진다.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돼 있는 바누스는 귀국하는 대로 아그수말린과 결혼하기를 원한다. 사랑과 의무감독 부완창/ 대만/ 1931 /150분중국의 전설적인 여배우 완령옥이 출연한 작품. 또 30, 40년대 상하이의 영화황제라 불렸던 김염의 모습도 만날 수 있다. 나이 판은 아버지가 골라준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서 어린 날의 사랑 주이를 포기하지만, 5년이 지난 뒤 주이를 다시 만나게 된다.펑꾸이에서 온 소년감독 허우샤오시엔/ 대만/ 1983/ 101분허우 감독의 초기작으로 <동동의 여름방학> <동년왕사> <연연풍진> 등 ‘성장기 4부작’의 첫번째 영화다. 펑꾸이라는 외딴 섬에서 살고 있는 아칭 등 10대 4명은 고등학교에서 쫓겨난 뒤, 입대만을 기다리는 하릴없는 인생들. 친구들과 함께 갑갑한 고향을 떠나 도시인 카오슝에 엉겨붙어 살아가던 아칭은 성장이라는 바람이 자신을 스쳐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처트 장군감독 M. 루브산잠츠/ 몽골/ 1945/ 150분 17세기 초의 만주가 배경. 암바가이족은 칭기즈칸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황건족을 자처하며,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를 데려와 절을 짓는다.마지막 여왕감독 J. 솔롱고/ 몽골/ 2000/ 118분트센필은 칭기즈칸의 혈통을 이어받은 귀족의 딸. 촉망받는 레슬러인 루브산단바는 같은 마을에 살면서 트센필을 마음에 두고 있다. 여왕이 서거한 뒤 트센필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여왕이 된다. 벤하이 강감독 홍 니, 히에우 단/ 베트남/ 1959/ 90분베트남 최초의 장편 극영화. 벤하이강을 경계로 남쪽과 북쪽에 각각 살고 있는 호아이와 벤은 평화로운 시대가 오면 결혼하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베트남은 벤하이강을 경계로 남북으로 나뉘고, 결혼식날엔 강을 왕래하는 것이 금지된다.강(江) 위의 여자감독 당 낫 민/ 베트남/ 1987/ 100분베트남의 현대사를 서정적으로 다뤄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던 작품. 전쟁 뒤 창녀로 살아가던 뉴엣은 경찰에 쫓기는 튜를 구해주고 사랑에 빠지지만, 갱생기관에 들어갔다가 나온 뒤 튜는 그녀를 외면한다.토히르와 주흐라감독 나비 가니엘/ 우즈베키스탄/ 1945/ 110분 우즈베키스탄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의 주인공이자 여성상인 주흐라 공주의 아름답고도 헌신적인 사랑을 담은 작품.여인천국감독 유수프 라지코프/ 우즈베키스탄/ 2000/ 68분영웅이자 작가인 올림은 예술적, 정신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 게다가 정체 모를 병으로 죽어가는 그의 친구는 아내 지보의 유언에 따라 올림에게 교사직을 맡긴다. 친 엄마감독 옥타비오 실로스/ 필리핀/ 1939/ 90분막달레나는 강간을 당해 아이를 낳고, 아버지는 아기를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 막달레나는 사랑하는 로베르토에게 과거를 고백하는 편지를 쓰지만 그녀를 협박해 돈을 뜯으려는 안토니오의 계략으로 편지는 전달되지 않는다.네온 불빛 속의 마닐라감독 리노 브로카/ 필리핀/ 1975/ 125분세계적 명성을 얻었던 거장 브로카의 영화로, 첫사랑을 찾기 위해 마닐라에 도착한 줄리오라는 소년의 이야기를 로맨틱하면서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이 과정에서 마닐라 뒷골목의 비정한 세계가 앙상하게 드러난다.마음의 고향감독 윤용규/ 한국/ 1949/ 79분고아인 용은 산사에 몸을 의탁하고 노승에게 불도를 배우지만, 장난기가 심해서 곧잘 살생을 범한다. 장난꾸러기 용은 산사에 자주 불공을 드리러 오는 젊은 미망인 은희와 친해져서 그녀로부터 모정을 느낀다.문석 ssoony@hani.co.kr 아 시 아 영 화 제 표 세종문화회관 소극장 날짜 시간 상영작 날짜 시간 상영작 4월 21일(일) 10:30 펑꾸이에서 온 소년 4월 23일(화)  10:30 친엄마   12:30 마음의 고향    12:20 붉은 연꽃   14:10 네온 불빛 속의 마닐라    14:00 토히르와 주흐라   16:40 하지 아가와 영화배우    16:10 사랑과 의무   18:10 서커스 텐트    19:00 인해고홍   20:30 차오프라야의 석양    21:05 정적인 삶 4월 22일(월)  10:30 여인천국 4월 24일(수)  10:30 마지막 여왕   12:00 추지의 여행일기    12:50 블랙 실크   14:00 벤하이 강   15:10 초기 인도영화 모음   15:50 처트 장군    17:00 강위의 여자   18:40 공동경비구역 JSA    19:00 폭포의 흰줄기   20:50 면로    21:50 사랑은 힘들어·황토지 한국영상자료원 영사실 날짜 시간 상영작 날짜 시간 상영작 날짜 시간 상영작 4월26일(금) 11:00 폭포의 흰 줄기 4월27일(토) 11:00 마음의 고향 4월28일(일) 11:00 여인천국   13:00 초기 인도영화 모음   13:00 펑꾸이에서 온 소년   13:00 황토지   15:00 강 위의 여자   15:00 면로   15:00 인해고홍   17:00 차오프라아의 석양   17:00 네온 불빛 속의 마닐라   17:00 서커스텐트 ▶ 세계영상자료연맹은 어떤 단체

미리 보는 <패닉 룸>

공황의 방에 갇힌 어머니, 강철이 되다데이비드 핀처와 조디 포스터의 만남이 예사로운 것은 아니다. 도저한 무정부주의자이며 극단적인 스타일리스트 데이비드 핀처와 할리우드에서 가장 지적인 여배우 중 하나인 조디 포스터. 하긴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에 제대로 된 러브 스토리가 거의 없었음을 생각하면, <패닉 룸>에도 그런 건 없을 것이다. 기왕 여인이 주인공이 될 것이라면, 핀처는 오히려 도발적이고 당당한 여인을 좋아한다. <에이리언3>에서 시고니 위버의 머리를 밀게 하고, <파이트 클럽>에서 헬레나 본햄 카터의 퀭한 눈을 만들어낸 것처럼. <택시 드라이버>에서 충격적인 10대 창녀 역으로 화제를 모았고, <양들의 침묵>에서 연쇄살인범 렉터 박사와 기괴한 연정을 나누었던 조디 포스터라면 데이비드 핀처와의 궁합은 썩 어울린다.`안전한 방`에서 안전을 위협받다 컬럼비아대학의 교수인 메그(조디 포스터)는 딸 사라(크리스틴 스튜어트)와 함께 맨해튼의 거대한 4층집을 구한다. 저택의 전 주인은 강도가 침입할 때를 대비하여, 거울 뒤에 비밀의 방(패닉 룸)을 만들어놓았다. 콘크리트와 강철로 만들어져 외부에서 부수고 들어가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고, 생존하기 위한 필수품도 마련되어 있다. 외부로 연결되는 독립적인 전화(절대로 외부에서 끊을 수 없는)도 있고, 집 안의 모든 곳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에 연결된 모니터와 인터폰도 있다. 뭔가 섬뜩한 기분을 주지만, 분명 집 안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다.이사온 첫날 밤, 침입자가 들어온다.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집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는 당황하던 남자 셋은, 메그와 사라가 패닉 룸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지 못한다. 메그는 경찰에게 신고했다면서 나가라고 하지만, 침입자들은 동요하지 않는다. 그들은 패닉 룸의 존재는 물론, 그 안에 설치된 비밀금고에 거액의 돈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주동자인 전 주인의 손자 주니어(자레드 레토)는 할아버지에게 우연히 들었던 비밀금고의 거액을 다른 유산 상속인들 몰래 훔쳐내려 한 것이다. 주니어는 패닉 룸을 직접 설계하고 만든 기술자 버냄(포레스트 휘태커)을 찾아 범행에 가담시킨다. 덤으로 버스운전사인, 포악한 성격의 라울(드와이트 요아캄)까지. 그들은 메그와 사라가 안전하게 숨어 있는 패닉 룸으로 반드시 들어가야만 한다. 침입자들이 해머로 벽을 부수고, LPG 가스를 흘려보내기도 하지만 메그와 사라의 저항도 만만치는 않다.<패닉 룸>의 초반은 데이비드 핀처답지 않게 유머가 많다. 세명의 침입자는 성격이 판이하다. 주니어는 덜떨어진 허풍쟁이다. 자신만만하게 떠들어대고, 큰소리도 지르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아무런 결정도 못하고 사고만 친다. 버냄은 아이의 양육비를 벌기 위해서 범행에 가담했다. 그는 사람은 절대로 해치지 않겠다고 공언한다. 첫 장면부터 스키 마스크를 쓰고 나오는 라울은 버냄의 보조 정도로만 출발하지만, 상황이 어려워지자 사악한 본성을 드러낸다. 차갑고, 폭력적이다. 주니어가 침입자들을 이끌며 상황을 벌여갈 때에는 어쩐지 <나홀로 집에>의 성인판 같은 느낌이 든다. 자신들의 꾀에 자신이 넘어가고, 별것도 아닌 함정에 골탕을 먹는. 그러나 라울이 지배하기 시작하자 분위기는 싸늘해진다. 모든 것은 지극히 폭력적으로 바뀐다. 패닉 룸이란 자신을 보호하고, 나아가 도둑이 자진하여 물러나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다르다. 침입자들은 어떻게든 패닉 룸으로 들어가야만 목적을 이룰 수가 있다. 반대로 메그는 패닉 룸에서 무사히 나가는 것이 목적이다. 애초에 누군가에게 위해를 가할 계획이나 의도는 추호도 없었다. 침입자들은 14일 뒤에야 새로운 주인이 들어온다는 정보를 믿고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상황은 서로 모순된다. 서로 상대방의 목적을 인정하고 양보하면 될 것도 같지만, 그들은 상대방을 믿을 수 없다. 거기서 충돌이 일어난다. <트리거 이펙트>와 <스터 오브 에코>의 감독이며 <미션 임파서블>과 <쥬라기 공원>의 작가인 데이비드 코엡의 시나리오는 치고 빠지는 순간을 정확하게 포착한다. 공성전(攻城戰)이 지루해질 즈음이 되자, 이번에는 서로의 위치를 바꿔버린다. 침입자가 패닉 룸으로 들어가는 것에 성공하지만, 반대로 무기는 빼앗겨버린다. 하지만 무기를 들고 밖에 남은 메그는 경찰에게 신고할 수 없다. 혈당치가 낮아져 혼수상태에 빠진 사라가 여전히 패닉 룸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서로 호소한다. 메그는 침입자들에게 대신 주사를 놔달라고 호소하고, 침입자들은 무기를 버리라고 협박한다. 분명 서로 타협하고, 양보를 해야 문제가 해결되겠지만 그들은 그럴 수 없다. 그만큼 절박하거나, 그만큼 믿음이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본성이 악하기 때문이다.<꼬마 천재 테이트>에서 홀로 아들을 키웠던 조디 포스터는, <패닉 룸>에서 10대의 딸을 키우는 엄마로 나온다. 남편이 모델과 바람을 피워서 딸과 함께 독립한 가장. 사춘기의 딸과는 꽤 교감을 하는 편이지만, 한편으로 딸은 엄마를 ‘미쳤다’고 말한다. 패닉 룸 안에 갇혔을 때, 모녀는 서로 침착하라고 타이르며 또 고함친다. 메그는 약간 불안정하지만, 분명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적과 싸우는 데에는 물러섬이 없다. 약간 근육이 부족하긴 하지만, 싸우는 여성으로서 조디 포스터는 그리 손색이 없다. 게다가 촬영 당시는 조디 포스터가 임신을 했을 때였다. 4개월의 촬영기간 동안, 임신한 몸으로 그 ‘액션’을 연기한 것도 놀랍고 불어가는 몸을 제대로 유지한 것도 경이로운 일이다. 그 밖에도 난관은 많았다. 데이비드 핀처는 잘 알려진 완벽주의자. <세븐>에서 핀처의 스타일이 확립되는 데 큰 공헌을 했던 다리우스 콘쥐가 촬영감독을 맡았는데, 의견이 맞지 않아 도중하차하고 콘래드 홀 주니어로 교체되었다. 누구의 잘못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핀처가 한 장면을 100번 이상이나 찍게 한 적이 허다하다면 능히 짐작할 수 있다.할리우드 시스켐이 낳은 거인, 데이비드 핀처 데이비드 핀처는 할리우드 시스템에서 성장한 거장이다. 뮤직 비디오에서 이름을 날리던 데이비드 핀처는 호화 프랜차이즈인 <에이리언3>의 감독으로 일거에 발탁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 데이비드 핀처는 <에이리언3>의 무대를 남자들만 가득한 우울한 형무소 행성으로 설정했고, 게다가 에이리언의 아이를 뱃속에 가진 리플리까지 죽여버린다. 표범을 모델로 다시 디자인한 에일리언이 좁은 지하 통로를 비호처럼 뛰어다니는 장면만은 탁월했지만, <에이리언3>는 지나치게 칙칙했고 또 늘어졌다. 데이비드 핀처는 다음 작품으로 더 암울한 <세븐>을 만들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살인 현장에 들어가면 전등을 켜기보다 플래시 불빛으로 수사를 하는,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기묘한 도시. 그러나 극단적인 비관주의와 숨을 죽이게 하는 어둡고 매혹적인 영상은, ‘네오 누아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절찬을 받았다. 정말 게임처럼 신나게 놀았던 <더 게임>에 이어 데이비드 핀처는 <파이트 클럽>이란 걸작을 만들어낸다. 모든 것이 상품으로 가득한 세상. 나의 존재와 가치가, 상품 카탈로그의 가구나 접시처럼 취급되는 시대. 한 남자가 ‘파이트’를 통하여 그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 찬 사회를 무너뜨린다. 빌딩들이 무너져내리는 마지막 광경은 호쾌하면서도 로맨틱한 명 장면. 지금 보면 9·11을 연상시키기도 하고.데이비드 핀처는, 걸작 한편을 만들고 나면 조금은 놀고 싶은 모양이다. <세븐> 다음의 <더 게임>처럼, <파이트 클럽> 다음의 <패닉 룸>은 즐거움이 느껴지는 영화다. 데이비드 핀처는 <더 게임>에서 결정적인 반전을 끄집어내기까지, 고전 추리소설의 트릭을 꾸며내듯 치밀하게 상황을 조작하느라 다른 곳에는 전혀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 <패닉 룸>에서는 좁은 공간에서, 소수의 인물들을 충돌시키며 스파크를 일으키느라 여념이 없다. <세븐>과 <파이트 클럽>이 세계와의 긴장, 충돌, 파국을 날카롭게 묘사했던 것과는 달리 <더 게임>과 <패닉 룸>은 기교와 ‘게임’에 귀를 기울인다. 데이비드 핀처가 애용하는, 벽이나 마루 환풍기 또는 인체의 살과 뼈까지 마구 통과하는 카메라는 <패닉 룸>에서 종횡무진 거침이 없다. <패닉 룸>은 오로지 집 안에서만 모든 일이 벌어진다. 게다가 중반까지는 서로 육체적인 접촉도 하지 않는다. 메그와 사라는 패닉 룸 안에서, 침입자들은 집 안 이곳저곳에서 서성거린다. 자칫하면 느슨해질 설정이지만, 데이비드 핀처는 세련된 카메라 워크와 인물들의 충돌로 그들의 공성전을 긴장감 넘치게 잡아낸다.긴장, 충돌, 파국의 조율사 조디 포스터의 연기는 안정되어 있고, 포레스터 휘태커도 마찬가지다. 소처럼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며, 자신이 설정한 타락의 선을 넘지 않으려 애쓰는 포레스터 휘태커의 모습은 <패닉 룸>에 긴장을 불어넣는다. 버냄은 침입자와 메그 모녀 사이에 놓인, 거대한 강이다. 서로가 넘을 수 없게, 서로가 쉽게 해칠 수 없도록 완충해주는. 신예인 크리스틴 스튜어트도 반항적인 10대의 분위기를 잘 드러낸다.<패닉 룸>은 <파이트 클럽>처럼 해머로 머리를 내려치듯 충격적인 영화는 아니다. 그냥 가볍게, 묘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공방을 잡아내는 소품이다. 데이비드 핀처의 목적이 무엇이건, <패닉 룸>이 세련되게 다듬어진 ‘웰 메이드 무비’라는 것은 확실하다. 비록 그의 비관적인 세계관이 정면으로 노출되지도 않고, 음울한 스타일이 너무 정형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핀처는 이미 두편의 걸작을 만들었고, 그 사이에 수작들을 끼워놓았다. <패닉 룸> 이후에 무엇이 다가올지 기다려지는 이유는 그것이다.도쿄=김봉석/ 영화평론가 ▶ 조디 포스터 인터뷰 `힘들지 않았냐고? 임신은 장애가 아니다.`

[인터뷰] <결혼은, 미친짓이다>의 감우성

지적이고 부드러운 외모로 여성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탤런트 감우성(33)이 영화 <결혼은, 미친짓이다>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뒤 지난 91년 MBC 공채로 연예계에 입성한 그는 <산> <메디컬센터> <눈으로 말해요>등 수십 편의 드라마에 출연했던 베테랑 배우다. "영화를 위해 11년간 연기 훈련을 하며 기다렸다"는 그는 첫 작품에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결혼은…>은 두 남녀의 불온한 연애담을 통해 우리나라 결혼 제도를 곱씹어보는 영화.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탄탄한 작품"이라고 판단해 데뷔작으로 골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결혼에 대해 냉소적인 생각을 가진 `바람기' 다분한 노총각 대학 강사 `준영'역으로 등장했다. 부모의 성화에 못이겨 맞선을 봤다가 `연희'(엄정화)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결혼은 하지 않는다. "평생 한 사람만을 사랑하겠다는 거짓말을 하기 싫기"때문이란다. 연희가 다른 남자와 결혼해 유부녀가 된 뒤에도 밀애를 나눈다. 영화 속 준영과 실제 감우성의 결혼관은 차이가 크다. 지난 91년 방송국 동료로 만난 동료 탤런트 강민영씨와 10여년째 열애 중인 것. "인생에서 일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남녀간의 만남인 결혼"이라는 게 감우성의 생각이다. 톱스타인 가수 엄정화가 그의 상대역으로 출연했다. 지난 93년 MBC베스트극장에서 호흡을 맞춰 이미 친분이 있는 두 사람은 극중 진한 정사신을 선보인다. "상대역이 정화씨라는 얘기를 들은 뒤부터는 `엄정화가 최고다'라고 생각했지요.정화씨가 성격이 착하고 원만한 편이어서 촬영하는데 어려움은 없었어요. 정화씨는 에로비디오와 상상력을 동원했다고 했는데 저는 실제 경험(?)이 도움이 됐죠." 골프, 수영, 헬스 등 못하는 운동이 없는 만능 스포츠맨인 감우성은 탄탄한 몸매를 과시하며 여성팬들을 설레게 했다. "배우로서 몸매 관리는 기본"이라며 지난 8년간 꾸준히 운동을 해왔던 게 비결이란다. "영화의 경우 TV와 달리 감독과 배우, 스태프들이 자신이 가진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긴장하면서 성과물을 만들어내는 점이 좋았다"는 그는 당분간 영화 출연에 주력할 계획이다.

10년만의 `러브 콜`,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엄정화

“내가 바보같이 보였어?” 시사회가 끝난 직후, 엄정화는 감우성에게 걱정스럽게 물었다. “보는 사람, 가슴 아프라”고 던진 대사에 좌중은 “예상치 못했던 폭소”로 화답했기 때문이다. 문제의 장면에서 감독은 극중 상황과 인물들의 맛깔난 대사를 어긋나게 해놓았고, 관객은 뜻밖의 웃음을 실컷 즐긴 눈치였지만, 정작 엄정화는 얼굴이 화끈거려 미칠 지경이었던 것이다. 하긴 10년 만에 출연한 영화, “가슴 졸이고 봤으니”, 주위의 헛기침에도 사레가 들렸을지 모를 일이다. 시사회에서 그의 ‘엄살’은 괜한 것은 아니다. 1993년,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마누라 죽이기> 등 2편의 영화와 1집 <눈동자>를 연이어 내놓으면서 ‘저울질’을 시도했지만, 상반된 대중의 반응은 ‘배우’가 아닌 ‘가수’의 길을 선택하게끔 강요했다. 이후 ‘서른둘’의 나이를 먹기까지, ‘원기팔팔’한 10대들 틈바구니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자 댄스가수가 됐지만, 반대로 그의 수중에 허락된 시나리오는 “섹스어필한 역할의” 몇편이 고작이었다. 그랬으니, 영화에 대한 갈증과 허기는 갈수록 커져갈 수밖에…. 도중, 슬럼프가 피할 수 없는 역병처럼 찾아오기도 했다. 지난해 봄, 6집 활동을 끝내고나서였다. “추락에 대한 불안함이 밀려왔어요. 여기서 한번 떨어지면 끝이라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가장 역할을 해야 했으니까, 강박관념 같은 것도 있었을 거예요.” 그를 구한 건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뭐든지 즐기면서 하자’는 신조가 다시, 그를 어루만졌다. 그때 여유로운 마음가짐을 다지지 못했다면, 얼마 전까지 영화와 음반활동을 병행했던 ‘이중고’를 감내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쨌든 뒤늦은 ‘러브 콜’은 머쓱했던 모양인지, 우연을 가장해서 그녀를 찾았다. 감우성이 출연하던 <메디컬 센터> 1회분에 얼굴을 내비쳤는데, 그게 유하 감독에게 깨달음을 준 것이다. 당시 캐스팅에 어려움을 겪던 유하 감독은 “정화가 있었구나”라고 무릎을 쳤고, 10년 전 신인 감독과 배우로 만났던 두 사람의 ‘재회’는 ‘극적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엄정화에게는 ‘와신상담’의 시간이었다. 뮤지컬과 드라마의 섭외 요청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였던 것도, “감을 잃어선 안 된다”는 판단하에 나름의 ‘워크숍’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실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퍼졌을 때, ‘골수’ 팬들은 그의 선택을 방해했다. 노출이 심한 영화라는 소문이 파다해서다. 믿음이 없었다면, 그 역시 10년지기 팬들의 성화에 주저앉았을지도 모른다. “감독님이 집에 가서 보라기에 나중에 시나리오를 펴봤죠. 근데 가슴이 철렁했어요. 디테일한 만큼 노골적이었으니까요. 근데 다 읽는 순간, 연희의 행동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이었어요. 그래서 이젠 내가 팬들을 설득하러 나서야 하는구나 했던 거죠.” 극중 연희는 ‘자유연애’의 기치 아래 분방하게 즐기면서도, ‘필수결혼’이라는 현실의 조건을 수긍하는 인물. 7집 <화(花)>를 내놓은 직후라, 방송과 촬영을 병행하는 육체적 고달픔도 심했지만, “쉽게 연희에게 공감하지 못한” 고생이 더 컸다. “내겐 없는 감정이 이 인물에게 숨어 있었구나 하면서 어느 순간 푹 빠져드는 게 연기의 맛인데. 연희한테는 처음에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그러니 내가 잘하고 있나 확신도 안 서고.” 뭔가를 끊임없이 “발산해야 한다”는 욕심 또한 그를 짓눌렀다. “나름대로 계산을 해서 준비를 해가면, 감독님이 자꾸만 한톤씩 낮추라고 요구하시더라고요. 그게 너무 갑갑했어요. 그래서 많이 싸우기도 한 걸요.” 첫 장면 촬영시만 하더라도 볼살이 통통했는데, 지금은 딴 사람이 된 것처럼 빠진 것도 모두 그 때문이라고. 그토록 다시 거머쥐길 원했던, ‘영화배우’라는 타이틀을 손에 넣었지만, 충만한 휴식을 만끽하는 건 아무래도 영화개봉 전에는 힘들 것 같다는 게 그의 말이다.

<재밌는 영화> 프로듀서 김상오

<선물> <재밌는 영화>와 같은 기획영화의 탄생 이면에 서 있던 김상오 PD(34)는 감독이 자칫 놓치기 쉬운 대중성의 측면을 끊임없이 자각시키는 것이 프로듀서의 중요한 역할이며, 이 시대의 관객이 어떤 영화를 요구하는가 하는 고민에서 PD의 역할은 시작된다며 긴 대화의 운을 뗐다. 그의 말을 빌리면 영화판에서 PD가 하는 일이란 한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실무의 모든 것. 작가나 감독에 의해 미리 시나리오가 나와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PD가 최근의 경향을 분석하여 시놉시스도 쓴다. 작품 기획이 끝나면 장르와의 궁합을 살펴 어떤 영화사와 함께 일할 것인지 결정한다. 호러물을 잘 만드는 영화사가 있고, 코미디물과 잘 맞는 영화사가 있기 때문이다.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등을 제작해온 좋은 영화사는 그런 의미에서 <재밌는 영화>의 적격 산실. 그리고나서 감독을 지목하는데 대개 전작의 분위기로 판단하며, 신인감독의 경우 더욱 엄밀하고 객관적인 평가의 잣대를 들이댄다. 장규성 감독이야 워낙 김상진 감독이 비기(秘技)를 전수하며 ‘아들’처럼 키운 사람이기에 별 고민없이 결정된 케이스. 감독이 정해지면, 감독의 스타일과 제작사가 원하는 방향, 대중의 요구 등을 일치시키는 것도 PD의 능력이다. 그 다음은 투자자 모집. 대개의 영화사는 하나에서 여러 개의 투자사에 줄을 대고 있지만, PD가 직접 나서서 기업이나 개인 투자자를 모색하기도 한다. 좋은 영화사는 시네마 서비스라는 든든한 언덕이 있어 김상오의 짐을 덜었다. 투자자 모집이 끝나면 배우와 스탭 캐스팅. 기껏 전달한 시나리오가 거부당하는 데야 어쩔 도리가 없지만, 아예 시나리오가 배우 손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서 이럴 땐 PD가 나서서 소속 회사의 이름과 모든 인맥을 총동원한다. 대개 어느 영화사에서 흘러들어온 시나리오냐를 가려서 매니지먼트사에서 손을 내밀기 때문이다. 이번 <재밌는 영화>는 배우보다 스탭 캐스팅에 더 신경을 썼다. 코미디영화이기 때문에 웃으면서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나야 한다는 김PD의 고집 때문. 촬영이 시작되면 하루에 몇천만원 단위의 제작비를 고스란히 까먹느냐, 예정된 일정과 예산에 촬영을 마치느냐가 PD의 재량에 좌지우지된다. 그 와중에서도 감독의 연출권을 보호하는 것은 기본. 촬영이 끝나고 후반 작업에 돌입하면 그야말로 몸은 녹초가 되지만 정신은 더욱 날카로워지는 시기. 믹싱, 편집, CG, 텔레시네, 현상을 거쳐 프린트가 나오면, 시사회 일정 잡고, 마케팅과 배급에도 관여한다. 개봉관이 잡히고 영화가 상영되면 비로소 그 무겁던 임무에서 면책되는 순간이라고. “<선물>에 이어 <재밌는 영화>까지 일년에 한편씩 꼬박꼬박 프로듀싱하는 실로 이상적인 상황”이라고 자평하는 김상오는 현재 ‘진짜 재밌는 영화’ 시나리오를 한편 구상중이다. 글 심지현 simssisi@dreamx.net·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프로필 1969년생 경성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 <영원한 제국>(94) 제작부 <내 안에 부는 바람>(97) 제작 총지휘 <질주>(98) 제작실장 <선물>(2001) PD <재밌는 영화>(2002)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