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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전화, 대화, 영화

첫눈이 사납게 내린 이튿날이었다. 출근길 택시에서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비정규직연대회의 노동자들이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는 뉴스였다. 소식을 전한 진행자는 천연스레 말을 이었다. “그럼, 크레인 위에 계신 분들을 연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흠칫 놀랐다. 어어 잠깐, 진짜로? 정말이었다. “위원장님 안녕하세요?” “예, 수고하십니다.” “물은 남아 있나요?” “예, 아직은.” 농성 노동자들은 바람 찬 공중으로부터 휴대폰으로 지상에 안부를 전하고 있었다. 지나고보니 내가 둔감하게 살아온 탓이지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전화의 발달에 영향을 받은 것이 어디 뉴스의 꼭지 구성뿐이겠나. 그러고보니 휴대폰이 나오고 전화의 기능이 다양해지면서 현대를 무대로 한 영화와 TV드라마도 알게 모르게 변모했다. 우선 우리는 혼자 걸어다니며 중얼거리고 군중 속에서 속내를 털어놓는 사람들의 모습에 익숙해졌다. 대화의 미장센은 참으로 다양해졌다. <생활의 발견>에서 예지원이 걸어온 눅눅한 구애 전화를 벌레 밟듯 응대하는 김상경과 그 앞에 펼쳐진 경치 좋은 강변의 대조라니. 핸드폰이 없었다면 맛보지 못했을 미묘한 그림이다. 러브스토리와 미스터리를 비틀기 위해 극중 인물 사이의 연락을 두절하는 일은 예전에 비해 훨씬 복잡한 작업이 됐다. 당신이 멜로드라마나 스릴러의 작가라면 주인공을 산중에 고립시키거나 연인들을 갈라놓기 전에 일단 휴대폰을 분실하거나 배터리가 방전될 만한 핑계를 고안해야 할 것이다. 조지 클루니와 미셸 파이퍼의 휴대폰을 바꿔치기하는 아이디어의 로맨스 <어느 멋진 날>은 끝없이 움직이는 남녀의 통화만으로 스토리를 끌어간다(사실 두 스타의 일정 맞출 일이 줄어든 연출부가 제일 기뻐했을 성싶다). 이쯤은 기본 응용이고 메시지, 자동응답, 다자간 통화 등 플롯의 재료는 많은 영화를 도왔다. <슬라이딩 도어즈>에서 기네스 팰트로는 네 자리 숫자를 누르면 직전 통화번호로 연결되는 영국 텔레콤(BT) 특유의 과잉 서비스 덕택에 애인의 배신을 발견한다.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전화의 역할은 화면 구성과 플롯에 끼치는 영향 이상이다. 세상 속으로 흩어진 소녀들의 엇갈리는 다자간 통화는 화면분할과 결합해 그들의 관계를 일목요연하게 그린다. 스크린 위로 또박또박 흘러 대사 같기도 하고 미술 같기도 한 소녀들의 문자 메시지는 영화와 하나가 되어 반짝거린다. 기술은 발전할수록 스스로의 존재를 지우고 투명해진다. 전화가 추구하는 궁극의 형태는 텔레파시일 것이다. 텔레파시가 무슨무슨 텔레콤 상표 아래 상용화되는 시대의 영화는 어떤 모습일지. 인물의 배치와 이야기의 얼개를 놓고 미래의 시나리오 작가들은 더 심한 두통에 시달리게 될까? 아니면 더 큰 가능성을 만끽할까? 플롯의 고충은 정작 걱정거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텔레파시로 나와 남 사이의 ‘정당한’ 거리가 사라져버린 세계에서도, 극장은 우리가 타인의 인생을- 호기심 많은 교환원처럼- 잠깐 엿듣는 밀실로서 여전히 호객에 성공할 수 있을까? 김혜리 vermeer@cine21.com

10가지 열쇠말로 돌아본 2004 방송계

안방극장은 올 한해도 한국인들의 가장 가까운 쉼터였다. 팍팍한 일상에 치인 시민들은 하루 평균 3시간씩 티브이에 눈과 귀를 맡겼다. 수많은 프로그램과 연예스타, 방송인들이 안방극장을 명멸했고, 가장 압도적인 장르인 드라마를 중심으로 숱한 뉴스가 양산됐다. 일본 열도의 열기를 흡수하며 태풍으로 번진 ‘한류 열풍’ 속에 방송 콘텐츠 생산과 유통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뒤안의 각축 또한 어느 때보다 거셌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소추’ 사태는 방송을 시민정치의 한가운데 서게 했다. 콘텐츠와 관련한 방송계의 주요 뉴스를 10개의 열쇠말로 정리해 본다. 드라마 ‘캔디+신데렐라’ 열풍 캔디렐라=올 한해 정규 프로그램 시청률 10강은 모두 드라마가 차지했다. 그 드라마를 이끈 핵심 모티프는 ‘신데렐라 콤플렉스’였다. ‘왕자’를 욕망하는 신데렐라들은 게다가 한결같이 ‘캔디’였다. 장기불황의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고픈, 그러면서도 ‘왕자’ 앞에서 심리적으로 당당하고 싶은 시청층의 욕구를 반영한 결과였다. 최고 시청률 56.3%를 기록한 <파리의 연인>은 그 정점을 찍으며, ‘캔디렐라’로 불리는 사회적 신드롬을 창출했다. 이런 물결을 거스르는 <장길산>과 <영웅시대> 등의 고답적 시대극은 부진에 시달렸다. <아일랜드> <단팥빵> <반올림> 등은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마니아층을 결집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한류, 일본열도마저 휩쓸다 욘사마=드라마의 힘은 나라 밖에서도 거칠 것이 없었다. 한류 드라마는 중국과 동남아를 돌아 마침내 일본 열도마저 휩쓸었다. <엔에이치케이>를 통해 <겨울연가>가 방영된 이래 한국 드라마의 낭만적 감수성은 일본 중·장년층의 심금을 울리며 한류 열기의 도약을 이끌었다. <겨울연가>의 드라마적 매력에서 시작된 일본 내 한류 바람은 나아가 ‘욘사마’ 배용준을 필두로 한 한류 스타 개인에 대한 숭배에 가까운 팬덤으로 달아오르고 있다. 이를 계기로 한류스타를 내세워 처음부터 해외 수출을 겨냥한 드라마의 사전전작이 시도되는 등 드라마 제작과 유통 환경에도 급격한 변화가 일고 있다. 연예기획사와 독립제작사가 공동제작에 나선 <슬픈 연가>는 제작완료 전에 48억원에 해외시장에 팔렸다. 방송사가 주도하던 드라마 제작에 스타파워를 앞세운 연예기획사와 외주제작사의 입김이 거세질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진다. 병역비리 연예계를 울리고 병풍=차기 한류스타로 손꼽히는 송승헌의 병역 비리 사건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일부 운동선수들의 신장 질환을 이용한 병역 면제 비리가 드러나면서, 송승헌을 비롯해 장혁, 한재석 등 남자 연예인들한테도 그 불똥이 튀었다. 드라마 <해신> 출연을 예정하고 있던 한재석은 방송사쪽의 발빠른 대응으로 큰 무리 없이 입대절차를 밟았으나, 송승헌의 경우 드라마 <슬픈 연가> 출연을 둘러싸고 긴 논란을 벌이기도 했다. 국회의원까지 가담해 드라마 촬영 뒤 군에 입대하도록 힘을 실어줬으나, 오히려 더 큰 역풍을 맞고 지난달 16일 현역 복무를 시작했다. 방송계 일각에서 공공연히 돌던 불법적인 병역 면제 수법 등이 완전히 퇴출되는 계기가 돼, 내년엔 원빈, 소지섭 등 많은 남자 배우들이 군 복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스타 복귀·변신 줄이어 고현정=드라마 붐 속, 왕년의 스타가 컴백하는 한편 음반 시장 불황에 따라 연기자로 변신하는 가수들도 대거 등장했다. 고현정은 내년 초 방송될 드라마 <봄날>을 통해 연예계 복귀를 선언했다. 지난 1995년 <모래시계>를 끝으로 재벌3세와 결혼하면서 연예계를 떠났다. 지난해 11월 이혼의 아픔을 겪은 지 1년 만에 티브이 드라마를 통한 연예계 복귀를 선언했고, 여러 언론들이 이를 대서특필했다. 가수들도 방송 드라마를 통한 연기자 변신에 힘쓴 한 해였다. 철저한 준비 끝에 성공적인 변신에 이른 이들이 있는 반면, 너도나도 연기자 변신 행렬에 끼어 쓴 맛을 본 이들도 있었다. 전자가 비, 유진 등이었다면, 후자는 박정아, 성유리였다. 가수들이 이처럼 연기에 열을 올린 것은 가요시장의 전반적 침체가 주요한 이유였다는 분석이다. 코미디, 경제불황 타고 ‘활짝’ 스탠드업=웃음이 많이 고픈 한 해였던가보다. 덕분에 코미디 프로가 크게 떴다. 다시 코미디의 시대가 온다는 말도 떠돈다. 수년간 차근차근 준비해온 <개그콘서트>에 이어, <폭소클럽>과 <웃찾사>가 어렵게 살림 사는 이들을 웃겼다. 특징은 우리 입맛에 맞게 변형된 스탠드업 코미디가 새로운 웃음을 선사했다는 것. 콩트보다 훨씬 간결하면서 강렬한 짧은 형식의 코미디가 시청자들에게 설득력있게 다가갔다. 긴 시간 웃음에 목말라온 시청자들은 작고 짧은 자극에도 폭소를 터뜨렸다. 블랑카, 화니와 지니, 안어벙, 리마리오, 윤택 등 새 코미디 스타들이 대거 등장했다. “사장님 나빠요” “그때 그때 달라요” “쌩뚱맞죠” “뭐야” “마데 전자” 등 촌철살인의 맛 깊은 유행어가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오락물 하향평준화를 막아라 !느낌표=연예인들의 잡담이 밤 시간대 텔레비전을 점령했다. 방송사를 가리지 않았다. 비슷비슷한 얼굴들이 나와 판에 박은 듯한 수다로 밤을 지새웠다. <야심만만> <해피투게더> <상상플러스> <놀러와> <아이엠> <즐겨찾기> 등 제목도 채널도 달랐지만, 쌍둥이처럼 차이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시청률이 잘 나오니 서로 베끼고 닮아가며 하향 평준화의 길에 앞다퉈 줄섰다. 에스비에스가 주도하는 다툼이었다. 신동엽, 유재석, 강호동 등 나오는 이들도 겹치기로 바빴을 터다. 특정 연예인 의존도는 끝없이 커지고 있다. 시청률 경쟁 와중에 성우 장정진씨가 숨지는 참극도 빚어졌다. 막판에 가 7개월만에 다시 등장했다. ‘눈을 떠요’ 등 새로운 꼭지를 들고 나와 신선한 바람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비타민> <스펀지> 등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도 적잖이 성공하면서 오락프로의 하향 평준화를 저지하고 있다. 중복중계 논란…채널선택권 위축 판박이=방송사의 연말 각종 시상식에 대한 폐지 요구가 잇따랐다. 이달초 연예기획사들 모임인 한국연예제작자협회(연제협)가 연말 가요시상식 폐지를 요구하며 불참을 선언했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들도 자사 이기주의에 따라 진행되는 각종 시상식의 폐지를 요구했다. 서로 다를 바 없는 시상식들이 각 방송사에 대한 기여도와 이해관계에 따라 나눠먹기식으로 진행된다는 지적이다. 이런 방송사간 담합성 경쟁에 대한 비판은 지난 8월 올림픽 중계방송에서도 불거졌다. 방송위원회의 분석 결과, 지상파 3사가 동시에 같은 경기를 중계한 시간은 하루 3시간 12분에 이르렀고, 2개 채널 이상 중복 중계시간도 하루 4시간30분을 넘었다. 그것도 일부 인기 종목에만 집중된 것이었다. 시청자의 채널 선택권은 크게 제약됐다. 시사프로, 정치공세에 휘말려 탄핵=시사물과 보도·미디어비평 프로그램 등은 거센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대통령 탄핵 소추’라는 초유의 사태를 공론장으로 끌어들인 방송계의 시도는 ‘편파방송’이라는 야당과 보수신문의 시비에 시달렸다. 한국방송의 14시간 탄핵 생방송과 문화방송 <신강균의 사실은> 등 탄핵 관련 프로그램들은 방송위원회의 심의대상에 올라, 첨예한 논란을 불렀다. 탄핵방송이 ‘불공정’했다는 언론학회 보고서가 작성자의 정치적 성향과 조사방법의 객관성을 둘러싼 신뢰성 논란으로 번져간 가운데, 방송위는 뒤늦게 탄핵방송 전반은 심의대상이 될 수 없다며 각하 결정을 내렸다. 하반기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야당은 <미디어포커스>와 <시사투나잇> 등이 ‘불공정’하다며 정치공세를 폈다. 문화방송과 에스비에스는 자사 뉴스를 통해 국감에서 제기된 상대방의 의혹을 집중제기하는 ‘보도전쟁’을 펼쳐 ‘방송 사유화’ 논란을 일으켰다. 문화방송 ‘뉴스 보수화’ 논란도 연말 방송가를 달군 화두의 하나다. 다큐 ‘봇물’ …다큐폐인 등장 다큐 페스티벌=9월초 일주일 동안 다큐멘터리만을 종일 방영한 ‘제1회 이비에스 국제다큐페스티벌’은 “방송계를 일주일 동안 공황으로 몰아넣었다”. 99편의 세계 각 나라 작품들이 안방극장을 찾았고, ‘다큐폐인’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출품작인 <금지된 축구단>에 대한 중국대사관의 방영중지 요청과 대상 수상자인 중국 다큐멘터리스트의 시상식 불참 소동, 통일부의 다큐 내용 일부 삭제 요청 등 잡음이 없잖았음에도, 다큐의 의미와 재미를 새롭게 돌아보게 한 대담한 기획으로 평가된다. 뒤이어 한국방송이 3년 기획 끝에 내놓은 문명사 다큐 <도자기>와 문화방송의 창사 특집 <빙하> <중동> 등도 독자적 시각과 빼어난 영상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문화방송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에스비에스 <환경의 역습> 등도 새로운 문제 제기와 높은 성취도로 호응을 끌어냈다. 한국방송 시사다큐 <한국사회를 말한다>는 지난 10월30일 출범 1년여만에 퇴장해 아쉬움을 남겼다. 케이블 자체제작영화 첫탄생 동상이몽=불황 여파로 방송산업도 전반적인 침체를 기록했으나, 케이블티브이 쪽만은 예외였다. 케이블과 위성방송에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채널사업자(피피)들은 광고수주에서도 증가세를 이어갔다. 이를 기반으로 대형 복수채널사업자(엠피피)들은 자체 제작의 첫 걸음을 뗐다. 온미디어의 영화채널 <오시엔>은 15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국내 첫 티브이영화 <동상이몽> 6부작을 제작·방영했다. <동상이몽>은 닐슨미디어리서치 집계에서 98개 케이블 채널 프로그램 중 1위에 오르는 등 흥행에도 성공했다. 씨제이미디어 계열의 <엠넷>도 이달 말 가수 백지영이 출연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자체제작해 내년 초 방영할 계획이다. 그러나 인기 개그맨 신동엽이 <엠넷>의 <슈퍼바이브파티> 엠시를 맡기로 했다 1회만에 그만 두는 등 지상파에 맞선 자체제작의 한계 또한 뚜렷했다. 한겨레 손원제, 김진철 기자

[외신기자클럽] 한국영화, 세계로 가려면 안정된 시스템과 충분한 인력 필수

12월17일 영화진흥위원회의 ‘해외배급용 한국영화 제작의 국제적 표준화 포럼’에 참석하면서 지난 5년간 한국 영화업계가 거듭한 발전이 다시금 떠올랐다. 우린 ‘한국영화 붐’을 얘기하지만 사실상 두개의 붐이 있었다. 국내시장에서의 자국영화 인기폭증과 더불어 국제무대에서 일어난 더욱 진기한 변화가 그것이다. 영화제 상영과 해외 세일즈, 세계 영화계 참가의 전체적 수준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졌다. 이렇게 빠른 성장은 큰 이득을 제공하는 동시에 또한 엄청난 난제를 제시하기도 한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한국 영화업계를 그릴 때 굉장히 빠른 파도를 타면서 그 뒤를 모는 기세를 통제하고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서퍼가 떠오른다. 한국 영화업계는 국내 붐에는 준비가 잘된 것 같고, 아마 한국에서 흥미로운 영화가 만들어지는 한 그 붐은 계속될 것이다. 그런데 이 업계가 국제 붐의 파도를 탈 수 있는 능력은 훨씬 더 위태로워 보인다. 한국영화가 세계에 걸친 극장 스크린, 텔레비전, DVD 플레이어에 더욱 퍼져나갈 수 있는 가능성은 확실히 있지만, 그러려면 영화인들에게 영감과 창의성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자재, 더 많은 인력, 그리고 널리 행해지는 제작방식에의 변화와 같은 실제적인 요소가 요구될 것이다. 영진위 포럼에서 발표자들의 얘기를 들으니 업계의 어떤 부분들은 이미 심한 무리를 겪고 있음이 명백했다. 한국영화들이 가공과정의 재료 흐름의 관리나 인력부족과 같은 평범하게 실제적인 요소들 때문에 해외에서의 잠재 가능성을 실현시키지 못한다면 안타까운 일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영화를 구매하는 많은 해외 회사들은 필요한 선재를 한국에서 받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유럽 DVD사들은 PAL 방식으로 영화 사본을 받아야 하는데, NTSC 방식을 쓰는 한국은 고품질 사본을 제공할 수 있는 기자재가 없다. 자막 대신 더빙을 사용하는 나라의 배급사들은 (대사없이) 음악과 효과음만 있는 사운드트랙 사본이 필요한데, 대부분의 한국 제작사들은 이런 걸 미리 만들 생각을 하지 못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건 어렵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해외 영화사들이 첫 한국영화를 구매했을 때 이런 불편을 겪고 나면 다시 구매할 리가 없다. 한편 국제영화제들은 한국영화 상영에 굉장한 관심을 보이지만, 가용 자막 프린트가 부족하거나 (더 많은 경우) 한국에 있는 직원들이 모든 요청을 처리할 수 있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많은 경우 상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로 인해 한국영화의 전체적인 관객 수가 줄어든다. 종종 영화업계에서 일하는 모든 이가 극도의 피로상태가 되도록 과로에 시달리는 것 같다. 인력이 많으면 한국영화는 더 많은 관람자를 얻을 것이며 더 효과적으로 팔리고 마케팅할 수 있겠지만 영화사와 정부는 붐을 따라가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 몇년간 한국은 국제적으로 퍼져나가는 것에 뒤지지 않기 위해 많은 자원을 동원해왔다. 한 가지 예로, 1998년 영진위 해외진흥부는 상근 직원이 3명밖에 없었지만 현재는 8명의 상근 직원과 4명의 상근 인턴이 있다. 그렇지만 한국이 이 정도 수준의 발전을 계속하려면 아직 더 많은 트레이닝과 인력과 기술이 필요하다. 기자재와 인력 투자의 필요성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더 큰 도전이 될 것은 업계에 성행하는 태도와 업무 방식을 바꾸는 것이 될 수도 있다. 한국영화가 다양한 포맷으로 세계를 누비는 지금, 국내 회사들은 훨씬 더 복합적인 요구를 받게 됐다. 한국 제작사들은 영화가 완성될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초기 기획단계부터 해외에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마케팅하고 팔지에 대해 고려해야 할 것이다. 포럼에서 발언한 사람 중 많은 이는 한국의 정신없는 제작 페이스가 느려져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 기술 전문가들은 한국영화들이 거치는 후반작업의 속도에 종종 충격을 받곤 한다. 영화사들이 호흡을 가다듬고 속도보다 품질과 완성도에 초점을 맞춘다면 한국영화의 미래 잠재력에 이득이 될 것이다. 달시 파켓/ <스크린 인터내셔널> 기자

승리의 쾌감이 없는 정직한 블록버스터, <역도산>

<역도산>을 보는 두 가지 시선① - 위대한 패배를 음미하다 역도산은 “딱 한번 사는 인생, 착한 척할 시간이 어디 있냐”고 했지만 송해성과 설경구의 <역도산>은 기어이 착한 척하고야 만다. 벚꽃이 흐드러진 신사로 나들이갔던 아야와 역도산의 기념사진이 그 아이콘이다. 일정한 시간을 두고 반복해서 클로즈업으로 등장하는 이 사진에서 아야는 더할 나위 없이 환히 웃고 있지만 역도산은 뒤틀린 미소로 불온하게 서 있다. 그건 눈부신 햇살 때문이겠지만 아야는 그 빛을 자신의 몸과 조화시킨 반면 역도산은 일그러진 거부반응을 보인다. <역도산>은 그의 이런 체질이 어디에서 연유했는지,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놀라울 만큼 차분한 연대기로 풀어간다. 이상한 건 그게 위대한 패배자의 연대기라는 것이다. 샤프 형제와의 경기에서 게임에선 졌으나 일본 대중을 상대로 한 경기에선 이겼듯 그는 위대한 패배자다. 그런데 그 위대함은 실은 비열함과 조작으로 똘똘 뭉친 승부수의 결과물이다. 왜 <역도산>은 패배와 비열함으로 뒤범벅된 이상한 블록버스터가 돼야 했을까? 왜 <록키> 같은 링의 아드레날린을 스스로 삭제하고 현실이란 땅에 바짝 엎드려 ‘남자로 산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묻는, 착한 척하는 블록버스터가 됐을까? 아마도 이건 한국영화가 한국이란 테두리를 좁다고 여긴 순간 역도산을 불러내는 게 운명이었고, 역도산이 자신의 욕망을 불살라버리지 않는 한 민족과 국가라는 호명에 얽매이지 말아야 했던 운명과 관련될 것이다. 김신락이 역도산이 되기 직전까지, 그러니까 상투를 자르며 스모를 포기하기까지의 패배 과정은 식민국가 대 피식민지라는 기존 민족주의 드라마의 감정선을 그대로 따른다. 그렇지만 역도산은 이 전형성을 곧 배반한다. 프로레슬링의 일본 도입을 놓고 망설이는 흥행사들에게 역도산은 “미국인을 보는 일본인들의 눈에 두려움이 가득하다. 언제부터 일본이 이렇게 나약해졌느냐”고 일갈하며 그들의 민족 감정을 건드린다. 물론 이건 계산된 전술이었고 주효했다. 선천적으로 갖게 된 피와 귀화로 택한 후천적인 피에 대한 그의 태도는 “난 일본이고, 조선이고 그런 거 몰라. 난 세계인이다”라고 뇌까리는 생존 이데올로기로 집약된다. 조선의 민족주의든 일본의 민족주의든 모두 그의 작은 무기일 뿐이다. 나아가 국가 단위로 움직이는 자본주의의 구별도 하찮아진다. 가장 드라마틱하고 중요한 대칭선을 이루는 역도산 대 칸노 회장의 구도는 사나이 대 사나이, 비즈니스맨 대 비즈니스맨, 세계화(서양 물신주의) 대 일본(동양 물신주의)으로 끊임없이 변이해간다. 각자의 선택과 고집이 최후의 승자를 가리지만 매 국면으로 따지면 영원한 승자는 없다. 아니, 역도산 자신이 자본주의 발전사의 화신이 되어 장렬히 스러져간다. 이것이 <역도산>이 일본에 말거는 방식이다. 이건 조롱이 아니고 편견도 아니며 훈계는 더더욱 아니다. <역도산>에서 가장 자극적인 순간은 아마도 역도산이 샤크 형제를 때려눕힐 때일 것이다. 늙은 일본인이 눈물을 글썽이며 만세를 부르는 순간, 역 광장의 조그만 텔레비전 앞에 거대한 무리를 이룬 일본인들이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는 순간이다. 일본의 무력감을 통쾌한 승리감으로 바꿔주며 자존심을 세워주었던 역도산이 자신들이 핍박하던 조선인이며 자신들을 속인 비열한 승부사였다는 사실은 자칫 위험해 보인다. 그래서 <역도산>은 위대한 실패자가 돼야 한다. 모질게 괴롭히는 스모 선배 다무라의 기를 무력으로 꺾어놓는 것도, 칸노 회장의 환심을 사기 위한 절묘한 작전도, 프로레슬링 첫 경기에서 상대방의 숙소로 뭉칫돈을 들고 찾아가는 것도 대단한 승부수였으나 결국은 쓸데없다. 그 남자는 모진 승부수로 얻어낸 모든 것과 결별한다. 자신을 알아준 보스 칸노 회장과도, 깊은 사랑과 헌신으로 버팀목이 되어준 여인 아야와도, 불고기로 환대하던 고향 친구와도. 그는 햇살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체질이 돼야 한다. 이것이 출발부터 일본의 돈과 사람을 끌어들이고 일본의 관객을 겨냥한 한국 블록버스터의 얼굴이다. 위대한 패배를 함께 음미해보자는 손짓이다. 한국 블록버스터가 바다를 건너가 정서적 일체감을 추구하는 이 방식은 승리와 정복의 일체감으로 도취시키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보다는 나아 보인다. 사실 햇살에 찡그리는 게 더 자연스럽다는 점에서 <역도산>은 무척 정직한 블록버스터다.

[스크린 속 나의 연인] <사랑의 스잔나>의 ‘진추하’

누구나 한번쯤은 영화를 보면서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을 사랑하게 된 경험이 있지 않을까? 그 사랑은 자신의 연애관은 물론 세계관에까지 작든 크든 영향을 끼쳤을 터. 영화에 대한 얘기를 좀더 풍성하게 한다는 취지에서 영화인뿐 아니라 사회 각계 인사들의 ‘스크린 속 내 연인’을 만나보는 난을 매주 화요일에 마련한다. 편집자 내 사춘기 시절 ‘둘도 없는 내 여인아’ 사춘기 시절 내게 가장 큰 충격을 안겨준 영화배우는 진추하(천추샤·위 사진)다. 중학교 2학년 봄에 서울로 전학을 와서 연합고사를 보기까지 근 2년간 변두리라고는 해도 서울 한구석에서 나름대로 땟물을 벗었다고 턱을 한껏 쳐들고 고향으로 돌아갔던 1976년 12월, 나는 운명적으로 그와 마주쳤다. 관객이라고는 두 개 있는 구공탄 난로 옆에 앉아 있는 네댓 명이 전부인 명성극장에서였고 영화의 제목은 〈사랑의 스잔나〉, 당시 이따금 선보이던 한-중 합작, 엄밀하게는 한국과 홍콩의 합작영화였다. 영화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대략 여주인공인 진추하가, 예쁘고 모범생이고 온 세상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추하 양이 저 몹쓸 백혈병에 걸려 죽는다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어디선가 좀 본 듯한 내용에 어디선가 읽은 듯한 대사며 장면의 연속이었다. 이것저것 짜깁기해서 대충 만든 영화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주었던 것이다. 그때까지 내가 태어나서 본 영화라고는 순수 국산영화고 외화고 합작이고 간에 통틀어 스무 편이 될까 말까 했는데도 그랬다. 텔레비전의 ‘주말의 명화’며 ‘명화극장’은 빼더라도. 극장 밖에는 주인공의 사돈의 팔촌도 닮지 않은 배우가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서울의 극장과 너무도 수준차가 나는 간판이 달려 있어서 어설프다는 점에서 안팎이 일치됨을 보여주고 있었다. 게다가 진추하는 내가 일찍이 초등학교 때 어떤 여성지의 별책부록으로 나온 영화배우들의 화보에서 본 것 같은 특별한 점이 없었다. 이를테면 소피아 로렌의 야성미, 잉그리드 버그만의 청순함, 캐서린 헵번의 우미함,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천변만화, 오드리 헵번의 고고함 그 무엇에 비견할 만한 특징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숨이 넘어갔을 때는 아예 울었다. 스스로가 촌스럽고 우습다고 생각하면서도 울었다. 극장 화장실에 가서 살인적인 암모니아 냄새 속에서 오줌을 누면서도 울었다. 왜 울었는가. 그가 뭔가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어떤 집단에 속해 있으면 안도하고 획일화된 틀 속에 안주하고 앞으로 남들과 똑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 정해져 있는 존재에게도 내밀한 나름의 무언가가, 조개 속살처럼 약하고 건드리면 아프고 눈물이 나오는 부분이 있음을 진추하는 알려주었다. 그 방법이 통속적이든 수준이 높든 아무 상관없었다. 숨 넘어가면 숨 넘어갈 듯 울고 노래하면 노래에 푹 빠져 당시 고등학생들의 자취방에 압도적으로 많이 걸렸던 배우는 올리비아 핫세(아르헨티나 출신으로 60년대 후반 17살의 나이에 〈로미오와 줄리엣〉에 출연함으로써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영어로는 Olivia Hussey인데 그 당시 남학생들은 백이면 백 올리비아 핫세라고 불렀지 미국식으로 ‘올리비아 허시’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런 인간이 있었다면 백이면 백 맞아죽었을 것이다)였다. 핫세의 인기가 지속된 데는 그 당시 중고생들이 제 또래라고 생각할 만큼 앳되고 동양적인 외모 덕이 컸겠지만 〈로미오와 줄리엣〉 주제곡 ‘어 타임 포 어스’의 사운드 트랙에도 힘입은 바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진추하는 청신하고 동양적인 미모는 기본이고 저 심금을 울리는 ‘원 서머 나잇’과 ‘그래주에이션 티어스’를 직접 작사, 작곡하고 노래까지 불러젖혔으니 핫세 양이 한국에서, 아니 동양권 어디에서 〈사랑의 스잔나〉를 보았더라면 청출어람의 후배가 나왔음을 뼈아프게 실감하지 않았을까. 그로부터 진추하와 올리비아 핫세는 고등학생 자취방 벽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나갔다. 멀리는 80년대 중반까지. 영화 〈사랑의 스잔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노래 ‘원 서머 나잇’이나 ‘그래주에이션 티어스’는 여전히 남아 있다. 내 또래인 유하 감독의 〈말죽거리 잔혹사〉에 진추하의 노래가 나온다는 말을 듣고 무척 반가웠다. 그 영화를 보면서 찔찔 울고 또 울었다는(화장실 가서도 울었다는) 사나이들을 나는 알고 있다. 진추하는 소풍날 교련복 입고 탄띠, 수통, 각반을 차고 줄지어 행군(行軍)을 해야 했던 어이없는 시절 내 사춘기의 들창이며 코드였다.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누벨바그 대가’ 자크 리베트 회고전

프랑스의 영화평론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평론을 하다가 카메라를 든 누벨바그 감독 중 한 명인 자크 리베트(77) 회고전이 4일부터 13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리베트는 평론가 시절 누구보다도 필명을 날렸던 인물로, 장 뤼크 고다르를 제외하고는 활동이 잦아든 동세대의 감독들과 달리 최근까지도 왕성한 창작을 하고 있는 감독이다. 그러나 연출 편수에서는 비교적 과작인 탓에 동료 고다르는 “그가 10편의 영화를 만들었다면 그는 아마 나보다 훨씬 더 유명해졌을 것”이라는 존경어린 말을 남기기도 했다. 데뷔작 〈파리는 우리의 것〉(1960)에서 지난해 국내 개봉한 〈알게 될 거야〉(2001)까지 장편 10편과 비평가 시절 만들었던 단편 〈양치기 전법〉(1957), 텔레비전 시리즈 중 하나로 스승인 장 르누아르를 인터뷰한 〈우리의 후견인 장 르누아르〉 등을 상영한다. 두 번째 영화 〈수녀〉는 종교적 스캔들을 일으키며 개봉이 금지되는 수난을 겪었지만 리베트의 실험은 누벨바그의 충격이 사그라지기 시작한 60년대 후반부터 도리어 황금기를 맞는다. 4시간짜리 〈미치광이 같은 사랑〉을 비롯해 무려 12시간이 넘는 〈아웃 원: 유령들〉 등 통상적인 상영시간을 뛰어넘는 영화들에서 혁신적인 서사구조를 도입했으며, 한국 개봉 당시 누더기 편집 상영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누드 모델〉은 예술적 창작 행위에 대한 뛰어난 성찰로 극찬받았다. 이 밖에 〈잔다르크〉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 〈대결〉 등을 상영한다.

[비평 릴레이] <하울의 움직이는 성> 정성일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상한 것은 도대체 왜 전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라크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홉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이 영화의 원작 동화를 읽어보았다. 영국의 동화작가 다이애나 윈 존스가 1986년에 발표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의하면 이 모든 사건은 사라진 왕자를 둘러싼 전쟁이었다. 그런데 이 동화를 읽고 나면 그 다음에는 도대체 왜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제외한다면 동화의 줄거리와 영화는 거의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 권으로 된 이 동화의 전편만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사물에게 말을 걸면 생명을 불어넣는 재주를 가진 18살 소피는 그저 소녀일 뿐이다. 멋진 청년 왕실 마법사 설리만은 아줌마 마법사가 되어버렸고, ‘몸짱’인 황야의 마녀는 ‘몸꽝’이 되었다. 게다가 소피의 두 여동생 레티와 마사도 사라졌다. 미야자키는 이 동화에서 로맨스 부분을 필사적으로 삭제해 버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희생만이 마법을 풀수 있다? 환상에만 내맡기는 게 아닌가 물론 미야자키의 공중부양의 신기는 여전히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들고(특히 소피와 하울의 첫 번째 상공비행!), 쿵쾅거리면서 그 가느다란 네 발로 아슬아슬하게 돌아다니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귀엽기 짝이 없다. 그렇지만 여기는 지금 19세기 말 지도상으로 알 수 없는 지명의 전쟁터. 다이애나 윈 존스의 동화에서 남은 것은 전쟁뿐이다. 비행선들은 도시를 불바다로 만들고, 사람들은 피난길에 여념이 없다. 일체의 저항도 없는 무자비한 폭격. 그 잔인한 공격은 예외 없이 시종일관 밤에만 이루어진다. 만일 장면의 스펙터클 효과를 노린다면 그렇게 밤으로만 이루어진 불바다를 다룰 필연적인 무슨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그 전쟁 장면을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이 이미지들이 어디서 많이 본 것임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건 텔레비전을 통해 위성 중계방송 된 이라크 바그다드 시내의 불바다다. 문만 열면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그 모든 추적으로부터 자유로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어쩔 수 없이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처를 생각나게 만든다. 이 국적불명의 전쟁은 사실상 지금 벌어지고 있는 세계의 전쟁에 대한 알레고리다. 그러나 비유는 거기까지다. 그 다음은 물론 미야자키의 (유치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겹도록) ‘착한’ 왕국이다. 미야자키는 세계의 전쟁을 자기의 왕국으로 끌어들인 다음 이 전쟁을 멈추기 위해서 할머니와 소녀의 일인이역 소피를 보낸다. 이 90살의 소녀는 자기 자신의 저주를 푸는 일에 관심이 없다. 소피는 자기를 희생하면서 하울을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건다. 마법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진심이다. 오직 그것만이 그 모든 마법을 무효화한다. 그 진심이 심장을 되돌려주는 것으로 표현된 것은 더도 덜도 아닌 숭고함의 행위다. 진심의 표현이라는 행위, 거기에 담긴 반성할 것이라고 가정된 세계라는 주체. 그 순간 심금을 울리는 주제곡 ‘세계의 약속’이 흐른다. “시간이 시작될 때부터의 세계의 약속, 결코 끝나지 않는 세계의 약속” 하지만 여기 그러나, 라는 단서가 필요하다. 그러나 희생이 기적을 만드는 것은 환상에 세계를 맡기는 것이 아닌가?

60년대 일본영화의 반란을 돌아본다, 쇼치쿠 누벨바그전

신년 벽두 1960년대 일본 영화사를 장식한 화제작들이 대거 한국을 찾아온다. ‘젊음, 정치, 폭력, 섹스-반역의 연대기’라는 슬로건으로 시네마테크 부산이 기획하고 주최하는 쇼치쿠 누벨바그전이 1월7일부터 21일까지 보름간 부산에서 관객을 맞이한다. 이번 영화제는 오시마 나기사의 같은 쇼치쿠 누벨바그의 시발점에서 이후 독립프로덕션에서 만들어진 문제작인 시노다 마사히로의 , 요시다 요시시게의 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짜여졌다. 이번 영화제가 소개하는 세 감독의 작품은 총 17편. 특히 시노다와 요시다는 각각 7, 6편의 대표작이 연대기적으로 적절히 배분되어 두 사람의 폭넓은 작가세계를 처음으로 국내에 선보이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세명의 감독으로 대변되는 쇼치쿠 누벨바그는 사실 쇼치쿠에서 영화를 시작했지만 후일 일본예술영화관조합(Art Theater Guild: ATG)과 독립프로덕션의 결합을 통해 영화를 만든 젊은 영화작가들을 일컫는 말이다. 미조구치, 오즈, 구로사와의 영광이 서서히 쇠락의 조짐을 보이던 1960년대 일본 영화계는 경제성장과 텔레비전의 출현이라는 외부 충격만큼 내부적으로도 급박한 변화를 겪는다. 평론가 사토 다다오는 “50년대 중반부터 흥행한 도에이의 참바라영화, 닛카쓰의 태양족 영화와 이시하라 유지로의 액션물에 반해 쇼치쿠는 특별한 대응책 없이 밀리던 점”을 쇼치쿠 누벨바그의 탄생 원인으로 지적했다. 당시 쇼치쿠 대표였던 기도 도시로의 발탁으로 ‘쇼치쿠의 구세주’로 떠오른 오시마를 기점으로 20대 후반의 조감독들이 대거 감독 대열에 입성한다. 당시 쇼치쿠에서 감독의 평균 데뷔 연령이 40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이들이 가져온 반향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메이저 스튜디오와 반항아들의 결합은 오래가지 못했다. 2∼3편의 영화를 만든 뒤 제작사와의 마찰로 인해 그들은 오후네(大船) 촬영소를 1960년대 중반 차례로 떠나간다. 오시마는 창조사, 시노다는 표현사, 요시다는 현대사라는 독립프로덕션을 설립하고 소극장을 기반으로 실험적인 작품들을 마음껏 만들어내는 길을 택한다. ‘일본 뉴웨이브의 지형도, 쇼치쿠 누벨바그 특별전’ 젊음, 정치, 폭력, 섹스 - 반역의 연대기 주최·장소: 시네마테크 부산 후원: 일본국제교류기금, 가와기타기념문화재단, 쇼치쿠영화사 일정: 1월7일(금)∼21일(목) 15일간 문의: 051-742-5377, 051-742-5477, cinema.piff.org, www.piff.org 관람료: 6천원 ☞ 상영일정표 보러가기 상영작 안내 1960년 l 96분 l 컬러 l 오시마 나기사 1960년 l 107분 l 컬러 l 오시마 나기사 1970년 l 167분 l 흑백 l 요시다 요시시게 1969년 l 103분 l 흑백 l 시노다 마사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