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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이거 노력파를 두번 죽이는 거네, <인크레더블>

내 남편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는 ‘노력파’다. 본인의 학창 시절 별명이었던 탓이다. ‘노력파는 좋은 의미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시리라. 그런 분은 한번도 제대로 노력해보지 않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문자 그대로의 뜻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의미의 ‘노력파’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의 ‘내 나이키’ 편을 보시라. 밤낮없이 예습복습을 하고 밥상머리에서도 책을 안 놓는, 그러면서 “형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데 어떻게 34등을 하냐, 반에서”라는 이야기를 동생에게 듣는, 그리하여 부모로부터 야단칠 권리도 빼앗고(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어쩌란 말이냐) 다만 깊은 시름에 빠지게 만드는 임원희의 캐릭터가 노력파의 실체다. 기실 노력파는 미디어에서 호도하는 것과 달리 전혀 칭찬과는 거리가 먼, ‘해도 안 되는 불쌍한 인간’의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우연히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기까지 나는 임원희 캐릭터를 완전히 까먹고 있었는데(난 노력파가 아니다. 믿어달라) 나의 남편, 그의 대사뿐 아니라 행동의 디테일까지 세세히 기억하고 재현하며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더란 말이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자신이 노력파라는 걸 남들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아주 심각한 어조로 부탁했다. 나는 노력파는 부끄러운 게 아니라 다만 불편할 뿐이라고 말했지만 그건 위안도 안 되는 공허한 말일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 이 세상의 모든 노력파를 두번 죽이는 영화가 개봉했다. 이다. 인크레더보이. 어린 시절 이미 화력으로 방방 뛸 수 있는 스프링 신발을 만든 그는 재능있는 소년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는 재능있으나 영웅의 피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민간인이었던 것. 민간인이 영웅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죽어라고 노력할 수밖에는 없었던 것. 자신의 우상이었던 미스터 인크레더블에게 면박당한 뒤 복수심을 성취동기삼아 그는 엄청난 괴력의 무기를 창조해내는 훌륭한 과학자가 된다. 그러나 영화는 인크레더보이의 근면성, 성실성을 형편없는 콤플렉스의 산물로 변질시킨다. 가장 좋은 건 인크레더보이의 말대로 누구나 노력해서 슈퍼히어로가 되어 그 이상의 슈퍼히어로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거다. 평등사회란 그런 거다. 그러나 은 노력파가 타고난 천재나 영웅의 영역을 건드리는 걸 역겨워한다. 한마디로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있으니 노력파는 까불지 말라는 거다. 영화를 보고 나서 또 한번의 충격. 내 친구들 너무 재미있다고 다만 해맑은 웃음으로 즐거워하는 거다. 왜 나만 기분이 나빴던 거지? 나도 노력파인 건가? 아니다. 이 모든 걸 없던 이야기로 해달라. 나도 그냥 재미있게 봤다. 헤헤. 나, 노력파가 아니다. 정말이다(강한 부정… 끄응).

<미트 페어런츠2> 미국 박스오피스 3주 연속 1위

개봉한지 3주가 지나도록 의 흥행열기가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2004년 마지막주와 2005년 첫주 박스오피스에 이어 1월 둘째주까지 3주 연속 1위를 독점중이다. 엽기적인 사돈들의 상견례 해프닝을 그린 속편코미디 가 이렇게까지 잘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1월7일부터 9일까지 3527개관에서 2850만달러를 벌어들여 지난주보다 겨우 32% 하락했다. 현재까지 매표수입이 2억430만달러로, 이미 전편의 최종수입 1억6620만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벤 스틸러, 로버트 드 니로, 더스틴 호프먼,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등 초호화 배우와 친근한 가족 이야기라는 점이 관객을 끌어모으는데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의 강력한 적수로 예상됐던 신규 개봉작 (White Noise)는 2261개관에서 2400만달러 수입을 거둬 2위로 데뷔했다. 마이클 키튼 주연의 호러미스터리물로, 비평가들의 반응은 썩 좋지 않은 편이지만 고정적인 호러팬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는데 성공했다. 죽은 아내가 텔레비전을 통해 자신과 소통하려 한다고 믿는 남자의 이야기다. 전설적인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하워드 휴즈의 전기영화 는 지난주와 같은 3위에 머물렀고, 짐 캐리의 판타지영화 은 두 계단 하락해 4위에 자리했다. 10위권엔 들지 않았지만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와 테리 조지의 가 100여개관에서 소규모 개봉했다.

[스크린 속 나의 연인] <브레드리스> 건달 리처드 기어

내가 최초로 좋아한 배우는 냉혹한 투우사이자 방황하는 영혼, 타이론 파워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그의 피가 모래밭에 스며드는 〈혈과 사〉의 마지막 장면에서 너무나 큰 상실을 알게 되었다. 다시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그때 이후 나는 얼마나 많은 배우를 좋아했던가. 〈태양은 가득히〉의 알랭 들롱, 〈더 웨이 위 워〉의 로버트 레드퍼드, 〈아비정전〉의 장궈룽(장국영)…. 그리고 한때는 게리 올드먼의 광기와 순수가 뒤섞인 눈빛을 좋아했고 미국의 막막한 시골을 여행할 때마다 〈길버트 그레이프〉에서의 삶에 포위되어 지친 청년 조니 뎁의 불안한 표정을 떠올렸다. 또한 내가 정우성을 좋아한다는 것은 나 스스로 소문을 내고 다니기 때문에 주변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내 노트북의 사진파일에는 정우성으로 가득 차 있고, 얼마 전 탈고한 내 장편소설 속 한 인물이 ‘난 남자배우 얼굴이 불안을 담고 있어야 화면에 몰두할 수 있거든’ 하고 말하는 것은 물론 정우성을 두고 한 말이다. 한편 내가 세월을 두고 좋아한 배우는 역시 〈대부 2〉의 알 파치노다. 그러나 이 모든 매혹에도 불구하고 내게 가장 강력하고 또 짧은 사랑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연인은 〈브레드리스〉의 정말로 대책 없는 건달, 리처드 기어(사진 왼쪽)다. 수많은 총구앞으로 뛰쳐 나간다, 경쾌한 음악 네멋대로 춤을 춘다 그때 나는 결혼 이후 닥쳐온 가난과 일상에 찌들어 있었다.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파트타임 직장에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가정사도 고단했거니와 적성에 맞지 않는 회사 일도 힘들었다. 몹시 위축돼 있었으며 무엇보다 고독했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 고민하거나 심지어 연민을 느낄 여유조차 없는 그 시절 어느 햇살 좋은 날, 지금은 영화평론가의 아내가 된 친구와 함께 참으로 오랜만에 시내의 극장에 갔다. 과자 봉지와 음료수를 들고 재잘거리며 극장 문으로 들어서는 순간 잠시나마 자유의 실감 때문에 눈물이 핑 돌았다. 〈브레드리스〉의 리처드 기어는 경찰에게 쫓기는 싸구려 시골 건달 제시다. 그의 꿈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멕시코로 떠나는 것이다. 그러나 여대생 모니카는 방학 때 시골에서 잠시 어울렸던 제시가 찾아오자 어처구니없을 뿐이다. 어디에서 구했을까 싶은 굵은 체크무늬 바지에 요란한 재킷을 입은 천박한 취향, 리모컨이 신기해서 가랑이 사이로 권총을 뽑듯 리드미컬하게 이리저리 눌러보는 장난스럽고 낙천적인 모습. 지구를 구원하는 만화 속의 영웅만이 우상인 제시는 삶에 아무 준비도 대책도 없다. 그러나 지도교수의 애인이 되어서라도 출세하고자 했던 모니카의 마음 한편에는 도시의 속물성에 환멸이 있었다. 제시는 섹스가 끝나고 욕실로 가려는 모니카를 붙잡으며 뜨겁게 말한다. “내 체취를 갖고 다녀.” 제시의 맹목적인 순정을 거부하기에는 삶이란 게 너무 숨통을 죄는 위선적인 존재가 아닌가. 경찰에 포위된 제시는 수많은 총구 앞으로 뛰쳐나간다. 다음 순간 경쾌한 음악과 함께 시작되는 그의 춤만큼 절망을 숨막히게 표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그 절망은 이 영화의 원본인 장 뤼크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보다 훨씬 원색적이면서 강렬했다. 그때 나는 얼마나 많은 순간, 발레리 카프리키스처럼 그가 골라준 핑크색 끈 원피스를 입고 경찰에 쫓기며 세상에 나밖에 모르는 남자와 함께 차 안에서 밤을 새우고 싶었던가. 누군가 나를 지친 일상에서 빼내 다른 곳으로 데려가주었으면, 어떤 것이든 좋으니 다른 인생을 시작하게 해주었으면, 며칠만이라도 내 멋대로 함부로 살아보았으면…. 하지만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오는 돈 많고 친절하고 잘생긴 남자는 평생 한번도 기대해본 적이 없다. 세상에 기적이 하필 나한테 일어날 리가 있겠는가. 그것은 오직 키치와 순수의 건달 제시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마지막의 비극은 예정된 수순이다. 〈미스터 굿바를 찾아서〉와 〈아메리칸 지골로〉를 끝으로 리차드 기어에 대한 내 사랑은 사라졌다. 그러나 이제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살기는 글렀다는, 막바지에 이른 젊음의 한 시절. 일탈에 대한 불온하고 충동적인 꿈. 그것들과 함께 〈브레드리스〉의 순정 건달 제시가 내 곁에 머물렀던 그런 시절이 내게 있었다.

일본인이 본 <겨울연가> [1]

일본인이 잃은 순수, 이 드라마에 있었다 2004년의 문화계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한류였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피부로 실감할 수 있는 한류는 한국의 문화상품 일반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2004년의 한류는 정확히 말해 일본에서 일어난 붐이라고 좁게 지칭해야 옳다. 욘사마 열풍 또한 없이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본 위성방송에서 시작해 공중파인 에서 재방송을 거듭하고 있지만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 일본인들은 과연 이 드라마에서 무엇을 보고 감동하는 것일까? 일본의 문화평론가 시미즈 마사시가 쓴 비평은 이 궁금증을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시미즈 마사시는 현재 일본대학 예술학부 문예과와 대학원 예술학 연구과 교수로 등 문학·영화·만화를 넘나드는 다양한 저서를 내놓은 인물이다. 이번에 한국에서 한달 동안 유학을 하기에 앞서 특별히 어떤 준비를 하진 않았지만 한국에 간다면 꼭 를 봐두어야 한다는 친구가 있었다. 가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본래 유행에는 둔감하기 때문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몇번이나 권유를 받는 바람에 그렇게까지 권한다면 첫 번째 이야기만이라도 볼까 하는 가벼운 기분으로 DVD판 1부를 학교에서 가지고 집에 왔다. 밤중에 가족 모두가 잠든 다음에 혼자서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1부에 수록된 세 번째 이야기까지 계속해서 봐버렸다. 다음날 나머지 6부를 한꺼번에 보았다. 이틀간 20편을 보고 나서 분명히 이 드라마는 도중에 그만둘 수 없도록 구성돼 있음을 알았다. 달콤하고 슬픈 테마송을 시작으로 서정적인 영상과 아름다운 남녀의 조화, 드라마가 끝나면 다음 회의 예고, 다음 편을 보면 테마송 뒤에 반드시 전편의 줄거리가 소개된다. 그러니까 어디에서부터 보더라도 괜찮은 것이다. 이번에 나는 1편을 통해 이 드라마의 특수성을 논해보고자 한다. ‘버스’를 쫓는 여자아이-체제에 대해 반항하지 않는 젊은이들 히로인인 여자아이 정유진은 고등학교 2학년. 항상 통학 버스를 뒤쫓는 지각 상습범. 히로인의 첫인상은 ‘달리고 있는 여자아이’이다. 고등학교 2학년이라면 열여섯이나 열일곱이다. 유진 역의 최지우는 당시 25살. 고등학교 2학년으로 보기에는 약간 나이 들어 보인다는 인상은 감추기 어렵다. 이 정유진이 사귀고 있는 이가 소꿉친구 김상혁이다. 상혁은 반장인 우등생으로 전형적인 모범생 청년이다. 정유진은 언제나 버스를 놓칠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시간에 맞춰 도착한다. 유진은 지각 상습범이지만 학교를 퇴학당하거나 하진 않는다. 유진은 학교가 싫지만은 않으며 특별히 누군가에게 불만을 품고서 반항적인 태도를 하거나 하지도 않는다. 유진은 일반적으로 어디에나 있는 듯한 여고생으로 보인다. 너무나 보통스러워서 드라마 주인공답지 않은 타입으로도 보인다. 왜 이런 보통의 평범한 여자아이가 주인공이 되었을까. 첫 번째 이유는 유진을 연기하는 여우 최지우의 매력이 상당히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일본에서 ‘며느리 삼고 싶은’ 여배우 넘버원인 히가시와 어딘가 닮은 최지우의 얼굴은 일본인이 좋아하는 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유진은 ‘버스’라는 체제(질서, 모럴, 혹은 유교적 정신)에 반역하는 존재는 아니다. 유진은 언제나 열심히 ‘버스’를 놓치지 않도록 달리고 있다. 그녀의 달리는 모습에 반항의 흔적이나 항의, 빈정거림은 없다. 유진은 ‘버스’를 놓치지 않고 뒤쫓는다. 그러나 일단 ‘버스’를 타면 이번에는 안심하고 잠들어버린다. 여기에도 ‘버스’가 상징하는 체제에 대한 반역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유진은 체제 안에 있을 때야말로 안심하고 있는 듯하다. 유진은 지각에 대해 주의를 주는 교사에 대해서도 전혀 반항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유진뿐만이 아니라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젊은이들은 체제에 대해서 반항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 이같은 커다란 특징이 한결같이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유진은 질리지도 않고 ‘버스’를 뒤쫓으면서 지각을 반복하는 걸까. 여기에는 의외로 많은 관객이 간과하지 못하고 있는 유진의 성격에 대한 ‘비밀’이 잠재해 있는지도 모른다. 유진은 열심히 달리지 않으면 ‘버스’(체제)를 놓치고 겉돌거나 주변인이 되어버리는 성격을 가진 것은 아닐까? 상혁은 유진의 소꿉친구이긴 하나 우등생이며 ‘체제’의 상징이다. 유진은 상혁과 함께 있으면 안심하기는 하지만 운명적인 사람은 아니다. 유진은 상혁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 한번도 없다. 유진은 열심히 달려서 상혁을 뒤쫓지 않으면 자연적으로 멀어져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느 날 버스 안에서 잠들어버린 유진 곁에 한 청년이 앉아 있다. 이 청년이 강준상이다. 과학고등학교에서 온 전학생. 수학과 음악 천재이며 말수가 적은 쿨한 청년이다. 확실히 만화책에 등장하는 백마 탄 왕자처럼 핸섬하다. 전학생이란 이유만으로도 어쩐지 매력적인 존재로 보이지만 배용준이 연기하는 스타일이 멋진 강준상은 왠지 모르게 그림자가 진 수재이기 때문에 클래스 여자아이들을 사로잡을 정도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유진은 준상과 만나기 위해 매일 ‘버스’에 늦은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정도이다. 만약 유진이 지각을 하지 않는 모범스런 학생이었다면 준상과 버스 안에서 마주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수학과 음악 천재인 준상도 ‘버스’를 놓칠 정도로 지각을 하는 청년이며 그 점에서 그 또한 필사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체제’로부터 떨어져나갈 듯한 경향을 지닌 청년이었다.

[한국영화걸작선] 김기영표 ‘광기의 미학’, <파계>

EBS 1월16일(일) 밤 11시50분 제3회 테헤란영화제 출품 1996년 가을, 의 한국영화작가 시리즈를 연출할 당시, 김기영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그가 추천한 영화가 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당시는 텔레시네된 영상자료가 없어 소개할 수 없었던 안타까움으로 내게 기억돼 있는 작품이다. 절과 수도승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초반부만 보고 있으면 영화 는 광기어린 그로테스크함의 영화미학으로 알려진 김기영 작품의 주제나 소재와는 다소 다른 축을 가지고 가는 듯하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다양한 김기영의 트레이드 마크들을 확인하는 일종의 반가움이 매력을 더해준다. 절간에서 벌어지는 올깨끼(10살 전후에 절에 들어온 승려)와 늦깨끼(어느 정도 장성하여 절에 들어온 승려)의 권력다툼이나 승려들간의 반목과 질시, 비구니를 여자로 생각하는 비구승들의 말투나 행동 등은 역시 김기영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영화임을 확인하게 한다. 상당히 많은 분량의 난해한 대사와 일정한 플롯없이 에피소드 중심으로 전개되는 방식 역시 김기영을 느낄 수 있다. 등장인물들의 독특하고 그로테스크한 캐릭터 역시 김기영표다. 법통에만 집착하는 큰스님, 동굴에서 수행하며 곡차도 즐기는 무불당 스님, 진짜 스님을 가려내기 위해 비구승들을 유혹하는 비구니, 수행 중이면서도 속세의 욕망을 벗어나지 못하는 침애와 묘운, 배고픈 젊은 승려들을 먹이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데에만 관심이 있고 수행에는 관심이 없는 듯한 도심 등등이 그러하다. 그리고 욕망과 집착, 질시와 광기의 육체들 역시 어김없이 등장한다. 쥐가 등장하는 장면에까지 가면 역시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처음부터 끝까지 죽비 때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으면서 김기영의 광기의 미학을 증폭시키는 중요한 음향 효과 역할을 한다. 당시 14살 소녀 임예진의 데뷔작이기도 하며, 명장 정일성이 촬영한 는 ‘지상에 행복이 넘쳐 흐를 때를 기다리면서’ 만든 김기영 감독 자신의 애장품이었다.

영상자료원 “고전영화를 디브디로”

텔레비전이나 영화제를 통해서도 좀처럼 만나기 힘들었던 한국 고전영화 두편이 디브이디로 출시됐다. 한국영상자료원은 보유한 한국영화 필름 가운데 저작권 제약을 받지 않는 1956년도 이전 영화들을 디브이디로 일반에게 공개하는 ‘한국영상자료원 고전영화 컬렉션’시리즈를 내놓으면서 김기영 감독의 와 최인규 감독의 로 첫발을 내디뎠다. 55년작인 는 김기영 감독의 두번째 장편 연출작으로 하층민 간의 사랑이 양반의 ‘농간’으로 끝없는 파국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북한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전국의 많은 극장들이 전쟁통에 닫았던 문을 다시 열게 할 정도로 좋은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한국전쟁 직후 필름이 없어 미군이 버린 기한 지난 썩은 필름을 쓰레기장에서 주워서 이용할만큼 열악한 환경에서 완성한 영화로 비오는 화면과 간간이 유실된 장면 탓에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지만 이후 본격화된 김기영 감독의 작품세계의 맹아를 볼 수 있는 기회다. 50년대 인기 여배우였던 김삼화가 여주인공을, 김승호가 조연과 제작을 맡았다. 46년 개봉한 는 해방 직후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참가해 만든 본격적인 극영화이자 항일과 광복을 소재로 한 영화라는 점에서 영화사적 의의를 가진 작품이다. 지하에서 벌이는 독립운동의 숨막히는 긴장과 그 속에서 꽃피는 로맨스를 소재로 한 이 영화는 해방의 흥분이 잦아들지 않았던 개봉 당시(10월21일) 국제극장이 미어터질 정도로 많은 관객을 모았다. 여주인공 황려희는 당시 연예계에서 찾아보기 힘들던 경기여고 출신 ‘스타’로 화제를 낳았다. 영상자료원으로 앞으로도 50년대 이전 영화들을 해마다 두편씩 디브이디로 출시할 계획이다.

미야자키라는 모순적 현상,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각색 과정은 종종 두 예술가의 개성이 충돌하는 전쟁터가 된다. 원작을 쓴 사람과 그 원작을 각색하는 사람들이 텔레파시로 연결되어 있지 않는 한 두 사람의 비전이 절대적으로 일치하는 경우는 없다. 하긴 그래서 각색이라는 작업이 흥미로운 것이다. 작가가 말하는 걸 그대로 충실하게 영상으로 옮겨적는 작품에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사실 진짜로 재미있는 각색물에는 모두 그런 충돌과 교합의 흔적이 있다. 를 보라. 아서 C. 클라크의 낙천적인 예언과 스탠리 큐브릭의 차가운 비관주의가 팽팽하게 맞서 있는 게 보인다. 브알로-나르스작의 우울한 프랑스식 분위기가 히치콕의 냉정한 앵글로 색슨적인 감각과 뒤섞이는 은 어떤가. 다이애나 윈 존스의 원작 - 구식 판타지를 재해석한 유쾌한 로맨스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역시 그런 부글거리는 전쟁을 영화 속에 품고 있다. 이 영화의 원작은 영국 작가 다이애나 윈 존스의 동명 소설인데, 기본적으로 윈 존스의 소설은 마법사와 마녀들이 나오는 구식 판타지물의 컨셉에 대한 가벼운 풍자이다. 윈 존스는 절세미인 여자주인공과 용감무쌍한 남자주인공 대신 마법에 걸려 주름살이 가득한 아흔살짜리 할머니가 된 소녀와 까탈스럽기 그지없는 겁쟁이 마법사를 만들어, 극도로 전형적인 판타지 세계이기는 하지만 현대 웨일스로 가는 비밀 통로가 살짝 숨겨져 있는 인공 세계에 내보냈다. 윈 존스의 작품은 가볍고 발랄하고 유쾌하며 설득력 있는 로맨스다. 윈 존스의 장점은 미야자키의 장점과 일치하지 않는다. 장난스러운 장르 풍자물을 쓰는 윈 존스와는 달리 미야자키는 온화하지만 선이 굵은 모험담의 전문가이다. 미야자키의 유머 감각은 투박하고 직설적이며 공공연하다. 그리고 그의 심리묘사는 종종 설득력 있긴 해도 섬세하다고 말하긴 힘들다. 그의 작품은 내면보다는 외면을 지향한다. 이런 전혀 다른 개성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을까? 못할 건 없다. 사실 나는 을 보기 전에 그 예를 한번 본 것 같다. 미야자키 하야오 밑에서 일했던 애니메이터 가타부치 수나오가 2001년 라는 애니메이션 장편을 낸 적 있는데, 이 작품의 기획은 거의 의 예고편처럼 보일 정도이다. 가타부치 수나오는 미야자키가 그랬던 것처럼(또는 그 뒤에 그럴 것처럼) 현대 영국 여성 소설가(다이애나 콜즈)가 쓴 장르 풍자물(이 경우엔 페미니스트 우화였다)을 미야자키처럼 스팀 펑크 SF의 분위기를 차용한 진지한 드라마로 각색했다. 는 개성이 조금 부족하고 종종 덜컹거리긴 했어도 진지하고 종종 감동적이기까지 한 드라마였다. 그의 제자라고 할 만한 사람이 이 정도까지 했다면 노장에게 그 이상을 기대하는 건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을 각색할 때 취한 태도도 가타부치 수나오의 그것과 거의 같은 것이었다. 일단 그는 원작의 가벼운 농담들을 상당 부분 지워버리고 심각하기 그지없는 반전물을 빈틈에 채워넣었다. 가 그랬던 것처럼 그는 풍자적인 장르 세계를 SF의 세계로 전환시키기도 했다. 단지 가 아틀란티스 문명의 폐허에서 벌어진다면 은 전형적인 스팀 펑크 SF의 배경, 그러니까 빅토리아 시대의 기계문명이 지나치게 발전한 19세기 유럽을 무대로 삼고 있다. 이런 변형은 이치에 맞을까? 다시 말해 다이애나 윈 존스의 소설을 꼭 사와서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일단 윈 존스의 소설과 미야자키의 영화가 만나는 부분부터 따져보기로 하자. 가장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제목에도 나오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다. 원작에서 하울의 성은 그냥 마법으로 움직이는 집에 불과하다. 만약 윈 존스가 묘사한 그대로 영화에 옮긴다면 별다른 시각적 매력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스팀 펑크식 디테일을 첨가한다면? 과거와 미래가 불가능한 지점에서 만나는 근사한 미야자키식 비주얼이 탄생된다. 증기기관에서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쿵쿵 걸어가는 기계 집의 모습이 나오는 것이다. 불의 악마 캘시퍼의 존재도 이런 이미지를 통해 훨씬 그럴싸한 존재감을 얻게 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소피도 미야자키에게 어울린다. 언뜻 보면 소피의 설정은 무척 모험적인 것처럼 보인다. 미모와 친근감으로 젊은 관객에게 어필해야 할 여자주인공이 한순간에 아흔살로 늙어버린 할머니인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미야자키에게 이건 엄청난 이점이었음이 분명하다. 그가 그린 틴에이저들이나 젊은이들은 그렇게까지 개성적이거나 빛나는 인물들이 아니다. 미야자키의 캐릭터들은 나이가 아주 어리거나 반대로 아주 많을 때 더 빛이 난다. 의 파즈와 시타는 호감가는 젊은이들이지만 과연 그들이 조연으로 등장한 공적 할머니만한 개성을 갖추고 있던가? 아흔살로 늙어버린 십대 소녀인 소피는 이 문제점을 해결한다. 여전히 젊은 주인공이면서 나이 든 노인네의 염치없고 내숭 떨지 않는 거칠거칠한 개성과 매력을 발산하는 것이다. 윈 존스가 만들어낸 스토리 자체도 미야자키가 이전에 탐색했던 경로 위에 놓여 있다. 십대 소녀의 성장기는 그가 이전에도 여러 차례 다루었던 것이다. 그런 이야기에 초자연적이가나 불가능한 설정을 덧붙여 색채를 더하는 것도 그의 장기이다. 주인공이 조금 어리긴 했지만 그의 전작인 도 따지고보면 거의 같은 내용이었다. 간극의 발생 - 발랄한 원작을 지나치게 진지하게 해석한 하야오 이 정도면 원작의 존재 이유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렇다면 윈 존스에게서 벗어나 미야자키 고유의 세계를 고집한 다른 부분들은 어떨까?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조금 까다로워지기 시작한다. 윈 존스는 을 한권짜리 농담으로 구성했다. 이 소설에서 배경은 의도적으로 경박하게 구성한 클리셰이고 그것은 분명한 실체로 존재하는 현실 세계의 반영이다. 심지어 하울이나 설리먼과 같은 고유명사까지도 그렇다. 윈 존스는 소설 중간에 등장인물들을 현실 세계의 웨일스로 데려가면서 그 환상성의 뿌리가 어디에 놓여 있는지 밝힌다. 하지만 미야자키는 그렇게 복잡한 문학적 장난은 치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처럼 단순하고 진지하다. 그가 그리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았던 가상의 유럽이지만 그는 그 세계의 기술과 마법을 그리면서 장난치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우리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마법과 불가능한 물리법칙에 의해 조종되는 세계지만, 미야자키는 그 세계를 우리 세계의 에펠탑만큼이나 진지한 현실로 이해하고 그려낸다. 여기서부터 위태로운 간극이 생겨난다. 윈 존스가 가볍게 놀려대듯 그린 캐릭터들이 이 세계에서는 엄청 진지해져버린 것이다. 미야자키는 윈 존스의 농담들 상당 부분을 남겨놓았지만(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머리색이 바뀐 것 때문에 하울이 징징거리는 장면일 것이다) 그래도 이 영화의 캐릭터들은 지나치게 진지하고 감상에 젖어있다. 여기서 가장 손해를 본 캐릭터는 타이틀롤인 하울이다. 윈 존스는 원작에서 이 캐릭터를 잔뜩 놀려대면서도 사랑받을만한 약점과 매력을 가진 인물로 그려냈었다. 하지만 미야자키의 영화에서 하울은 진지한 주제와 함께 일본식 똥폼까지 불려받는다. 그 결과 하울은 뻔하디 뻔한 똥폼 왕자가 되고 그의 매력은 날아가버린다. 윈 존스의 소설에서 하울은 느끼하게 굴어도 귀여운 캐릭터였다. 하지만 미야자키의 영화에 나오는 하울은 심하게 느끼할 뿐이다. 딱한 건 가장 느끼할 때가, 그가 의도적으로 느끼하게 굴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울은 그가 진지해지고 자신의 사상과 믿음을 위해 투쟁할 때 가장 느끼하다. 아마 그는 미야자키가 만든 남성 캐릭터들 중 가장 재미없는 인물일 것이다. 아니, 재미없는 건 의 하쿠가 더 심하다. 하지만 적어도 하쿠는 원래는 재미있었던 캐릭터를 망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간극은 여기서부터 계속 넓어진다. 이번 문제점은 소피다. 원작에서 소피의 행동은 이해 분명하고 명확한 심리 묘사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미야자키의 소피는 과연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위해 행동하는가? 우린 소피가 하울을 사랑한다는 사실은 안다. 하지만 후반부에 이 캐릭터가 하는 행동은 완전 미스터리이다. 왜 소피는 하울의 성을 붕괴시키는가? 왜 소피는 하울의 목숨을 위협하는 행동을 하는가? 물론 여러분은 이 영화를 반복해서 보며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찾아낸 해답이 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르는 어떤 것처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건 단순한 작업을 선호하는 예술가가 비교적 복잡한 대상을 자기만의 재해석 없이 과격하게 옮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사고이다. 만약 소피의 행동이 단순화만 되었다면 별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야자키는 윈 존스의 소설에서 전혀 다르게 행동하는 소피를 가져와 자신의 이야기에 끼워맞추었다. 어떻게 영화 속에 집어넣긴 했어도 여전히 빈틈이 보이는 건 당연하다. 원작과 미야자키의 대립 또한 자기모순적인 미야자키 현상 이런 단점들은 용서받을 수 있는 걸까? 그건 여러분이 이 노장의 영화에서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은 결코 완벽한 영화도 아니고 철저하게 일관성을 유지하는 영화도 아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미야자키의 영화들은 언제나 노골적인 자기모순과 함께 했었다. 마법과 스팀 펑크의 과학, 구식 내연기관과 대자연에 동시에 매력을 느끼는 그의 세계 자체가 모순되는 곳이다. 어떻게 보면 윈 존스와 미야자키의 대립은 그 자체가 미야자키적인 현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외신기자클럽] “미장센을 팝니다” (+영어원문)

영화 오락을 볼 때 즐거움 중 하나는 영화 속에 보이는 거의 모든 것이 이유가 있어서 나온다는 것이다. 스크린에 뭔가 이상하거나 안 맞는 것이 있는 것 같으면, 영화가 끝나기 전에 이유가 드러나게 된다. 현실 생활에서 많은 것이 근본적으로 임의적이지만 영화의 세계에선 모든 것이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몇년 전 TV드라마 을 보고 있을 때 ‘초록음료’의 수수께끼를 접하게 됐다(‘초록음료’의 상표명은 맨 끝에 가서 나오거나 아예 안 나와서 기억할 수 없다). 드라마에 나온 가장은 사랑이나 사기, 살인 같은 일상적인 화제를 논하다가 갑자기 얼굴에 훨씬 더 심각한 표정을 띠면서 아들에게 크고 거품 많은 초록음료 한잔을 권하곤 했다. 초록음료는 한번만 나온 것이 아니라 여러 에피소드에 걸쳐서 다양한 가족 구성원이 마신 것이다. 나는 의아했다. 드라마 속 아버지가 음료 속에 비밀 화학약품을 넣으면서 무슨 정신통제라도 하는 걸까? 왜 자꾸 나오는 걸까? 안타깝게도 드라마 15시간째가 돼서야 그저 좀 서투른 PPL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PPL은 이상화된 영화세계에 현실세계가 침투하는 것을 나타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전체 작품을 돋워주는 방식이 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 친구 중 한명은 데이비드 린치가 의 인물간 계급 차이를 나타내기 위해 서로 다른 상표의 맥주를 사용했던 것을 지적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에서 윌 스미스가 안티-과학기술이란 것을 표시하기 위해 컨버스 운동화를 신고 나온다. 현실에서 컨버스사가 파산 조처를 취하고 있었고 제작비에 한푼도 더해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PPL 회사는 각 브랜드가 영화에 자연스럽게 맞아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억지로 한 것 같아 보이면 모두가 손해본다”고 한다. 나만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최근 한국영화에서 손해보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지? PPL은 아직 한국 영화업계에서 상대적으로 새로운 현상이니, 어쩌면 예술적인 관심과 상업적인 관심 사이에 균형을 찾기 전까지 과잉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겠다. 그렇지만 어떤 때에는 공격적인 PPL에 따르는 위험이 이득을 초과하는 일도 있다. 를 얘기할 때 “2시간짜리 전지현 CF”라는 말을 안 들어본 사람이 있는가? 이렇게 영화에 대한 간결하고 널리 반복되는 혹평은 흥행에서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줄 수 있다. PPL을 삼가고 비방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쉽게 나오는 이 비평을 빼앗았다면 얼마나 더 많은 영화표를 팔 수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세계적으로도 많은 광고주들이 영화가 광고 플랫폼으로서 얼마나 효력을 갖는지에 대해 재고하기 시작했다. PPL의 성공적인 케이스(예를 들어, 논의의 여지가 있지만, 속편에 나온 삼성전자)마다 아무런 효과없이 돈을 들이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장기로 봤을 땐 대부분의 PPL은, 배급이 훨씬 더 쉽게 통제되며 결과를 측정하기가 쉬운 텔레비전쪽으로 이동할 것 같아 보인다. 흥미롭게도 수년간 이탈리아에서는 정부지원을 받은 영화에 PPL을 금지할 정도였다(이탈리아에서는 대부분의 영화다). 베를루스코니 정부에서 이 방침은 없어졌지만 아직 담배나 알코올, 무기 등을 영화 속에 광고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런 일을 조절하는 데 정부 법률에 의지하지 않아도 되길 바라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초록음료’같이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것 없이 한국영화를 보던 날을 그리워하지 않기란 힘들다. Mise-en-scene on sale One of the pleasures of watching filmed entertainment is the fact that just about everything that appears in a film has been put there on purpose. If something you see onscreen seems odd or out of place, then before the end of the movie, a reason will emerge. Much in real life is essentially random, but in the world of cinema, everything has meaning. So it was that I was watching the TV drama All-In a couple years back, when I was confronted with the mystery of the green drink. (They never did show the brand name of the Green Drink, except perhaps until the very end, so I can't remember what it was) The drama's patriarch would be discussing everyday subjects like love, fraud, or murder, when all of a sudden his face would assume a far more serious expression, and he would urge his son to have a tall, frothy glass of the Green Drink. The Green Drink appeared not once, but throughout multiple episodes, drunk by various members of the family. I was mystified. Was the father practicing some form of mind control by placing secret chemicals in the drink? Why did it keep reappearing? Alas, I was 15 hours into the drama until I realized that this was just a rather clumsy instance of product placement. PPL may represent an intrusion of the real world into the idealized realm of cinema, but that doesn't mean that it can't be done in a way that adds to the overall work. A friend of mine points out how David Lynch used different brands of beer to represent class distinctions between characters in Blue Velvet. In the Hollywood blockbuster I, Robot, Will Smith wears Converse sneakers to signify that his character is anti-technology, despite the fact that in real life, Converse was going through bankruptcy proceedings and never contributed a cent to the production. The president of a leading PPL company in the US says that each brand has to fit the film in a natural fashion. "If it looks forced, everybody loses," he says. Is it just me, or have there been a lot of losers in Korean cinema recently? PPL is still a relatively new phenomenon in the Korean film industry, so it's perhaps natural that there would be some overshoot before a balance is struck between artistic and commercial concerns. But sometimes the risks that come with aggressive PPL can outweigh the benefits. Who hasn't heard the term "a two-hour Jeon Ji-hyun commercial" to describe Windstruck? Such a concise, widely-repeated putdown of a film can have a measurable effect on box-office. I wonder how many more tickets the film would have sold if it had abstained from PPL and removed this easy criticism from the mouths of its detractors? Worldwide too, many advertisers are beginning to reconsider the effectiveness of film as a platform for advertising. For every successful instance of PPL (like, arguably, Samsung Electronics in The Matrix sequels), there are many more instances where companies spend money to no noticeable effect. Long-term it appears that most PPL will be moving to television, where distribution is much more easily controlled, and it is much easier to measure the results. Interestingly, for many years Italy went so far as to ban PPL in any film that received financial support from the state (which, in Italy, is most movies). Under Berlusconi this provision was removed, although it is still illegal to advertise tobacco, alcohol, or weapons in films. Surely one would prefer not to have to resort to government laws to regulate this sort of thing. But it's hard to not feel nostalgic for the day when we could watch Korean films without distractions like the Green Drink.

<그때 그 사람들>의 재구성 [1]

10·26사태를 다룬 <그때 그 사람들>은 여러모로 기록적이고 예외적인 영화다. 촬영을 마치기까지 제작사가 일체 영화에 관한 아무런 정보도 유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현대사의 정치적 뇌관을 본격적으로 건드린 매우 드문 상업영화라는 점에서, 그리고 중년배우들이 대거 주역으로 나섰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마 개봉 이후에 이런 목록은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 1월 말 시사회, 그리고 2월 설 개봉을 앞두고 성급하게 영화의 궁금증을 벗기려는 까닭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선다. 한국에서 정치성 짙은 리얼리즘영화가 과연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진지한 성찰적 접근이 어떤 정치적 파장으로 연결될까는 영화관객에게만 한정된 관심사가 아닐 것이다. 예민한 정치적 문제 때문에 영화의 맨 얼굴이라 할 수 있는 가편집본은 물론 시나리오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이 영화에 대한 어떤 예단도 할 수 없다. 다만 얻을 수 있는 것은 감독과 현장 스탭, 배우들에게 들은 이야기들이 전부였다. 이것을 바탕으로 영화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보려 했다. 이 글은 영화의 화장도 하지 않은 맨 얼굴의 일부이며 그것조차도 얼마든지 개봉 시점에서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밝혀둔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명예훼손을 막기 위해 최대한 실명 사용도 자제했다. 편집자 풍자성 강한 정치드라마가 될 듯 한 일간지의 도발적인 예측성 기사를 기폭점으로 해서 <그때 그 사람들>에 관한 풍문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과거청산이 뜨거운 논쟁거리로 달아오르고 있는 시점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둘러싼 풍문은 거센 속도로 번져나갔다. 제작사인 강제규&명필름은 이 작품을 ‘본격적인 정치드라마가 아니라 블랙코미디’로 홍보하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고 잇따라 예고편과 인터뷰 등을 내보냈다. 얼마 뒤 박 전 대통령의 외아들 박지만씨가 이 영화의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내면서 언론의 관심도 더욱 커졌다. 영화에 관한 논란은 영화도 개봉하지 않은 시점에서 계속 불거져나오고 있다. 영화상영을 하기도 전에 이토록 논란을 불러일으킨 영화가 얼마나 있었던가. 영화의 내레이터로 참여한 윤여정이 임상수 감독에게 전화로 했다는 농담 아닌 농담은 이 영화의 모험적 성격을 잘 말해준다. “너야 원래 미친놈이니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쳐도 이런 영화를 하겠다고 받아주는 영화사가 어디 있겠느냐. 받아준 영화사에 감사해야 한다.” 설령 예민한 정치적 소재를 흥행으로 연결시키려는 전략이 보인다고 해도, 이런 예외적이고 과감한 시도는 주목할 값어치가 충분해 보인다. 임상수 감독의 네 번째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은 코미디 여부를 떠나 강한 풍자적 성격을 띤 정치드라마가 될 가능성이 크다. 우선 임상수 감독이 설정한 등장인물을 보자. 사건의 주모자로 나오는 박 부장은 외골수 마초 사무라이이며, 그 반대편에는 제왕적 존재인 각하가 등장한다. ‘야수의 마음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는 박 부장이나, 제왕적 존재인 각하나 모두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남성성에 기대어 한 사회를 좌지우지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임 감독에 따르면 제왕의 일상은 보통 사람들에게 악몽이었지만, 그렇다고 쿠데타가 억누를 수 없는 민주주의의 신념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그것은 박 부장의 입장에서 보면 사나이의 길이며, 그와 사사로이 의리에 얽힌 ‘오른팔’ 주 과장에게는 ‘인생을 쇼부봐버리는 일’이며, 주 과장의 운전사 상욱에게는 ‘단지 총을 쏠 줄 안다는 이유’로 연루된 불운한 일이다. “박 부장의 오른팔 주 과장과 왼팔 민 대령만 거사에 대해 알고 나머지 가담 인물은 그에 대해 몰랐다. 모두들 즉석에서 구해진 것이다. 그리고 이들도 역시 주모자들과 함께 사형에 처해졌다. 그 짧은 순간에 생과 사가 갈렸다는 게 아이러니 아닌가.” 임상수 감독은 이 영화가 각하나 박 부장 등 주연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건의 종료를 위해 황급하게 사형에 처해진 무명 인사들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굵은 줄거리는 사실의 밑둥 위에서 뽑고, 잔가지는 상상력으로 뽑았다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실제 사건의 재현보다 그 사건이 지닌 의미를 묻는 데 더 주력한다. 임 감독은 각하(송재호), 양 실장(권병길), 주 과장(한석규) 등을 비롯해 캐스팅에서도 목소리나 외모가 얼마나 닮았는가보다는 연기력을 중심으로 뽑았다고 말했다. 과연 이 영화는 어떻게 10·26을 재현했을까. 갑자기 영화 관련 인터뷰들이 쏟아지고, 엇비슷한 TV 연예프로그램 카메라가 백윤식의 얼굴을 줄기차게 보여주고 있지만 정작 영화의 예민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알 수 없다. 우리는 감독과 현장 스탭, 그리고 배우들과의 집중 인터뷰로 영화를 덮고 있는 미디어의 안개를 헤쳐가고자 했다. 이들에게 구술을 받아 픽션을 뒤섞어 구성한 다음의 몇 장면은 이 영화의 실체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입구까지는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구술을 바탕으로 한 재구성이기에 일부 대사와 지문은 실제 시나리오나 영화와 다를 수 있다. 권력과 캐릭터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미술 #1. 실내. 남산 부장 집무실 (침대에 누워 등에 부항을 뜨고 있는 박 부장. 민 대령이 조심스레 다가간다.) 민 대령/ 부장님. 오늘 저녁 궁정동에서 연회하신답니다, 큰 걸로…. 박 부장/ 또? (골똘히 생각에 잠긴 박 부장. 시커먼 썩은 피가 등에서 나온다.) 권력의 2인자 자리를 놓고, ‘각하의 맹목적 심복’이자 ‘실질적 넘버 투’인 조 실장(정원중)과 겨루고 있는 박 부장의 집무실 장면이다. 짙은 고동색을 주조로 한 드넓은 실내, 직선 위주의 벽 디자인, 고풍스런 가구와 장식용 칼, 그리고 일직선으로 떨어지는 실내등 디자인, 그리고 서가 등이 검박한 무인의 기풍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운현궁 양관에서 촬영됐다. 임상수 감독은 처음엔 남산중앙정보부의 살벌한 지하실(파주 세트장 촬영)에 이어 호화로운 부장의 집무실을 한컷에 담아 보여주려 했다고 한다. 밑에서는 고문이 자행되고 위에서는 한가로이 부항을 뜨는 장면의 대비를 보여주려고 했다는 것이다(이 계획은 CG 여건상 장면 구성이 바뀌었다). 부항을 뜨는 이는 실제로 부항을 뜨는 전문가이며, 화면에 나오는 피도 박 부장 역의 백윤식 피라고 한다. 임 감독은 백윤식의 등에서는 실제 간이 좋지 않은 박 부장의 검붉은 피 대신에 선명하고 붉은 건강한 피가 나왔다고 말했다. 등을 보이고 있는 민 대령 역의 김응수는 극단 목화를 거친 연극배우 출신으로 이마무라 쇼헤이 영화학교를 나왔으며 이 작품에 나오는 일본어 대사를 지도, 감수했다. 임 감독 작품 네편에 모두 선보였다. 부장 집무실의 직선형 디자인은 주 과장 집무실 등 다른 남성적 공간에서도 반복되어 나타난다고 이민복 미술감독()은 말한다. 복도 한켠에 옹색하게 마련한 주 과장의 집무실처럼 직위에 따라 방의 크기는 다르지만 곡선을 배제한 직선형 벽 문양과 어두운 색조는 통일되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실내등 디자인도 경사진 일반 갓등이 아니라 보기 드물게 직선형이다. 이런 직선이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는 강인함과 남성성이다. 조 실장의 집무실도 이런 연장선상에 있다. 그의 집무실은 박 부장의 것에 비해 더 넓고 화려하다. 그러나 서재도 없이 반질반질한 대리석으로만 빛나는 그의 집무실은 박 부장의 것에 비하여 더 휑뎅그렁하다. 이민복 미술감독은 조 실장 집무실이 철저하게 개성이 거세되어 있으며 박 대통령 집무실의 축소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책상과 방 디자인은 똑같고 다만 크기만 줄어들었을 뿐이다. 맹목적인 2인자의 이미지를 도출하기 위해서다. 1979년 사건 당시의 사진과 현장 기록, 텔레비전 화면 캡처 등을 바탕으로 만든 디자인은 역사적 고증보다는 이런 극적인 이미지를 뽑아내는 데 더 역점을 두었다고 한다. 당시 경제사정에 비추어보았을 때 매우 희귀했을 일본에서 직수입한 비데 같은 소품은 똑같이 재현하려고 했다. 외부로부터 철저하게 비밀리에 부쳐져 있고, 권력의 성역이라 할 만한 장소들이 영화의 중심을 이루는 까닭에 감독과 미술감독은 고증보다는 자유분방한 상상력의 재구성에 더 몰두했다. 그렇다고 영화 속에 웅장하고 호사스런 장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처럼 휴일을 아내와 함께 보내려다 거사에 연루된 장원태(김상호, 에서 휘발유 역)의 집은 단 하나의 예외적인 장소이다. 단칸방과 부엌 하나가 전부인 원태의 셋방은 연희동의 비밀 요정, 궁정동 안가, 각하를 비롯한 거물들의 집무실과 대비되어 쓴웃음을 자아낸다. 가장 문제적 장소 궁정동 만찬장, 어떻게 재현했나 #2. 실내. 별관 만찬장-밤 (심상효(충직하며 말없는 집사, 연극배우 조상건)가 세팅을 한 테이블 위에 송이버섯이며 바닷가재 따위를 정성스레 놓는다. 경호실 신 처장과 직원 재국이 들어와 화장실과 방 점검을 마치면 이윽고 들어오는 각하, 조 실장, 양 실장, 박 부장.) 각하/ 어이, 심군 또 왔네. 상효/ (고개를 깊숙이 숙여 인사한다.) 만찬장은 각하 시해사건이 벌어지는 문제의 장소다. 전체 103개 안팎의 장면들이 이 장면을 중심으로 짜여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비중이 높다. 이 장면을 시작으로 영화 중반부까지 만찬장 내부는 바깥장면들과 교차되며 긴장의 수위를 차곡차곡 쌓아올릴 것이다. 현대사의 치부를 건드리는 민감한 성감대가 여기에 있으며, 이 영화의 논쟁적 뇌관도 이 장면 안에 파묻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단식으로 된 독특한 연회장 내부 디자인부터 실내 총격 장면, 목숨을 걸고 주고받는 대사들의 높은 전압 등이 주목거리다. “지극히 소수만 드나들 수 있는 비공개 장소이며, 국가의 1인자가 개인적으로 즐기는 곳이란 점에서 그리고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벌어진 장소라는 점에서 흥미롭고 영화적으로는 얼마나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가 걸려 있는 지점”(임상수)이다. 실제 궁정동 자료 사진과 영화 사진을 대비해보면 궁정동의 실제 주연 장소는 소박해 보이지만(그러나 천장 디자인은 엄청나게 화려하다), 영화 속에선 드라마틱하게 표현되어 있고 위용도 과장되어 있다. 바닥을 파서 다리를 내릴 수 있게 한 점도 마찬가지다. “계단 설정은 계급의 상승과 동시에 하강이 이루어지는 장소이기에 그렇다. 가부장적 사회의 폭력성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표현할까를 고민했다.”(이민복) 현장검증 사진 속의 만찬상과 비슷한 것은 SUN이나 거북선 같은 담배 말고는 거의 없다. 소탈한 음식이 실제로 차려졌지만 영화에선 시각적 효과를 위해서 붉은 바닷가재를 올려놓았다. 처음엔 붉은 색상과 살점을 파먹고 난 다음의 뼈 등을 통해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견하게 하기 위해 붉은 도미를 올려놓을 생각도 했다고 한다.

제한시간 2분, 예고편의 재구성

<역도산>의 예고편은 설경구의 한 표정을 길게 비춘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중의 환호성 속에 링에 오른 역도산(설경구)은 여유있는 모습을 연출한다. 그러다가 잠깐 고개 숙여 옆을 볼 때 입술 한쪽 끝을 위로 올리며 야릇한 미소를 짓는다. 공공연히 관객을 향해 연출하는 표정들 사이로 짧게 잡히는, 그러나 그의 내면을 드러내는 얼굴. 거기엔 자신감에 더해 관객들에 대한 조롱과 자신에 대한 자조, 협잡꾼의 비열함 같은 느낌까지 많은 게 담겨 있다. 저런 표정은 어디서 나올까. 이 예고편은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동시에 이 영화가 평면적인 인간승리의 드라마가 아닐 것임을 예감케 한다. 막상 영화에선 설경구의 이 표정이 말 그대로 스치듯 지나간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눈에 안 잡힌다. 예고편을 만든 ‘죤앤룩필름’의 채은석 감독은 영화의 가편집본을 7~8번 돌려보면서 이 표정을 잡아챘고 그걸 길게 끌어 예고편의 한 가운데에 앉혔다. 호기심 자극과 내용 전달! 영화의 예고편은 호기심을 자극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반 광고와 같지만 영화의 스토리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 고유의 문법을 갖게 된다. 어떻게 하면 90분이 넘는 영화를 2분 안에 최대한 인상 깊게 전달할 수 있을까. 이건 단순한 축약을 넘어서는 재창조이기도 하다. 최근의 사례를 보면 수사 검사와 피의자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단 둘이 만나는, 영화엔 나오지 않는 장면을 새로 찍어 함축적이고 긴장 강도가 높은 대사를 주고 받게 한다(<공공의 적 2>). 또, 10·26 사태라는 소재의 무거움을 이면으로 돌린 채 텔레비전 드라마 <수사반장>의 주제곡과 흡사한 음악으로 리듬감을 살리면서 영화 속 장면을 재배치한다(<그때 그사람들>). 한국 영화의 예고편의 발전은 90년대 후반 한국 영화의 비약적 성장과 궤를 같이 한다. 본 영화와 별도로 예고편 제작 업체가 전담하기 시작했고 예고편의 형태도 티저 예고편, 텔레비전 스폿 광고, 컴퓨터 모니터용 온라인 예고편, 본 예고편 등으로 분화됐다. 마케팅이 전문화되면서 예고편은 영화만큼, 아니 영화보다 더 기발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선보이고 있다. 어떨 때는 예고편이 영화보다도 더 민감하게 동시대 대중의 기호를 낚아채기도 한다. 이제 예고편은 음식을 조금 떼내 주는 ‘맛배기’가 아닌, 별개의 맛을 가진 애피타이저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아이디어 경연장’ 예고편 어제와 오늘 호기심 자극 작전 그때그때 달라요 10년 전만 해도 한국 영화의 예고편은 개봉될 영화에 대한 ‘고지’에 불과했다. 조감독이 영화 본 편에 사용되지 않는 엔지 컷을 ‘짜깁기’해 완성하는 것으로 별도의 시간적, 기술적 투자가 없었기 때문에 화질이나 사운드 모두 조악할 수밖에 없었다. 예고편이 ‘광고전단’ 수준의 촌티를 벗어나기 시작한 건 영화에 기획과 마케팅 개념이 자리잡기 시작한 90년대 후반부터다. 물론 최초의 기획영화로 꼽히는 92년작 <결혼이야기>는 김의석 감독이 직접 예고편용 필름을 따로 찍기도 했지만 이런 일은 예외에 속했다. 영화의 때깔과 짜임새에서 한국 대중 영화의 분수령으로 꼽히는 97년작 <접속>은 예고편도 제작사 울타리를 벗어나 외주로 제작했다. 그 뒤부터 예고편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회사와 전문인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97년 홍보사 R&I 커뮤니케이션으로부터 출발한 튜브픽처스 영상제작팀에 이어 모팩, 픽셀, 키메이커 등 예고편 전문 제작업체가 생겨났다. 여기에 프리랜서 감독, 광고를 겸업하면서 예고편을 만드는 회사까지 합쳐 현재 20곳 안팎의 업체가 예고편을 만들고 있다. 1분 안에 시선을 잡아라 예고편은 영화 개봉을 한달 앞두고 트는 본 예고편과, 개봉 서너달 전부터 내보내는 티저 예고편으로 나뉜다. 한국영화에서 본격적인 티저 예고편은 2000년작 <시월애>부터 만들기 시작해 2~3년 전부터는 제작이 대세가 됐다. 상영시간 2분 안팎의 본 예고편이 영화의 주요 장면과 스토리를 정보로 제공한다면, 1분 안팎의 티저 예고편의 목적은 호기심 유발이다. 튀는 아이디어는 그 핵심이다. 픽셀의 이규홍 감독은 “1분 안에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는 게 관건이며 이를 위해서는 로맨틱 코미디 예고편을 미스테리 식으로 구성하는 등 색다른 아이디어를 모두 끌어모은다”고 말했다. 코미디는 미스터리 구성, 드라마는 게임처럼 뮤비처럼 만화에 등장하는 말풍선의 삽입, 깜찍한 그래픽 활용으로 2002년 튀는 예고편의 전기를 마련했던 <집으로…>, 영화는 다분히 정적인 드라마지만 예고편에는 발랄한 게임 형식을 도입했던 <질투는 나의 힘> 등은 영화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예고편으로 시선을 모았던 경우다. <집으로…> 예고편으로 그래픽 유행을 선도했던 이현식 감독은 “손자가 할머니를 설명할 때 ‘그녀’라는 말을 사용해 마치 로맨스처럼 흘러가다가 반전처럼 할머니의 실체를 보여주는 게 시선을 끄는 데 성공했다”고 자평했다. 요즘 뜨는 예고편 유행, 연출제작 예고편 최근 티저 예고편은 영화에 나오지 않는 장면을 별도로 연출해 찍어 만드는 연출 예고편이 인기를 끌고 있다. 세 젊은 주인공의 이미지를 극대화해 한편의 뮤직비디오처럼 만든 <늑대의 유혹>이나 세 남자가 한 여자를 코믹하게 훔쳐보는 < S 다이어리 >가 모두 티저 예고편을 별도로 찍었다. 네 명의 남녀 주인공이 어깨를 으쓱거리는 모습으로 영화의 발랄함을 쉽게 전달한 <싱글즈>의 예고편의 연출 예고편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연출 예고편 제작에는 채은석, 용이 감독 등 CF 감독의 활약이 두드러지기도 한다. 교도소 복도로 끌려가는 여주인공과 철창 밖에서 애절하게 울부짖던 남자 주인공의 모습으로 관객을 압도한 <인디언 썸머>(채은석 감독)의 예고편 제작을 진행했던 싸이더스의 권정인 팀장은 개봉 뒤 관객들로부터 “예고편에 나온 장면을 보러 갔는데 왜 나오지 않느냐”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 연출 예고편이 보편화되지 않았을 당시 종종 받기도 했던 오해다. 최근엔 장면 별도연출 많아 전문제작사 20여곳 ‘시간전쟁’ 한국형 예고편 만들기 티저 예고편과 달리 본 예고편은 영화가 어떤 내용을 담고, 어떤 감흥을 의도하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따라서 영화의 장면을 재편집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런데 영화 촬영이 끝나고 개봉하기까지의 기간이 6개월에서 1년에 이르는 미국 영화와 달리 한국 영화는 길어야 두세달이다. 그 안에 예고편 제작을 끝내야 하는데 영화의 가편집 테입을 받기까지의 시간을 빼면 작업기간이 길어야 한달 반이다. 예고편 제작비는 보통 편당 2000만~4000만원, CF 감독을 동원해 예고편을 위한 별도의 연출·촬영을 할 경우 8000만~1억원이다.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의 경우, 한국 영화 한편 제작비인 30억~40억원 가까이를 예고편 제작에 쏟는다. 또 한국 영화는 예고편 예산이 마케팅 비용에 포함되지만 할리우드는 제작비에 포함된다. 촉박한 시간, 제한된 예산 안에서 한국 영화 예고편은 화면과 사운드의 질보다 아이디어로 승부를 내는 경우가 많다. 여러가지 시도를 하면서 한국 영화 예고편은 한국 영화 못지 않게 빠르게 발전해가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녹음을 담당하는 나준택 기사는 “한국 영화 예고편을 본 외국인들은, 그 예고편을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만들었다는 말을 듣고 놀란다”고 말했다. 예고편 전문제작 모팩 한동성 실장 “이미지와 아이디어 싸움… 줄거리전달형 가장 까다롭죠” 예고편을 전문으로 제작하는 회사 가운데, 제작 물량이 가장 많은 곳은 모팩이다. 1995년 컴퓨터그래픽 회사로 출발했다가 99년 <반칙왕>의 예고편을 만들면서 예고편 제작 전문 팀을 꾸려 컴퓨터그래픽과 함께 겸업하고 있다. 전체직원 20명에 예고편 전담 팀 5명이 한해에 제작하는 물량은 14~15편. <신라의 달밤> <황산벌>처럼 흥행에 성공한 상업영화에서부터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 등 작가주의 색채가 짙은 영화까지 다루는 영화의 폭이 넓다. 한동성(31) 편집실장은 홍대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2000년 모팩에 입사해 첫 작품으로 임종재 감독의 <스물넷>의 예고편을 만들었다. 그뒤 <피도 눈물도 없이> <와니와 준하> <광복절 특사> <질투는 나의 힘> <지구를 지켜라> <효자동 이발사> <바람난 가족> 등 많은 영화의 예고편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 t;피도 눈물도 없이>는 영국 팝그룹 블러의 노래 '송2'를 예고편 사상 처음으로 1천만원의 라이선스 비용을 주고 사와서 썼고, 예고편 자체도 비디오 테이프를 뒤에서 리와인드시키는 형식을 썼다. <신라의 달밤>은 컴퓨터 그래픽을 당시로선 ‘이래도 되나’ 하는 우려가 나올 만큼 많이 썼다. 석가탑이 빙글빙글 돌고, 글자가 툭툭 튀어나오고. 다행히 흥행이 잘 돼서 예고편 평가도 좋아졌고 투자·제작사로부터 보너스도 받았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컷 수가 많지 않아 예고편을 만들기 쉽지 않았다. 한 실장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예고편을 만들면서 불경 낭송 같은 진중한 소리를 바탕에 깔았다. 화면에서 남녀가 벌이는 엉뚱한 행동들이 그 소리와 어우러지면서 묘한 아이러니를 불러일으키도록 의도한 것이다. 한 실장은 예고편의 유형을 세가지로 분류했다. “첫째는 이미지와 느낌으로 스토리를 전달하는 뮤직비디오 스타일로 주로 멜로영화에 많이 쓰이게 된다. 둘째는 아이디어 중심형으로 영화의 컨셉을 어떤 아이디어 속에 담아 전하는 것이다. <광복절 특사> 예고편은 주말의 명화 형식을 빌어와 차승원과 설경구가 빠삐용처럼 감옥에 갇히는 장면을 보여준다. 셋째는 스토리텔링형으로 할리우드 영화 예고편들이 많이 쓰는 방식이다. 영화 본편의 장면들을 편집해 예고편을 만드는 방식인데 실제로 이게 제일 힘들다.” 남이 만든 예고편 가운데 그는 한국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와 외국 영화 <스파이더 맨>을 베스트로 꼽았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사운드 작업이 충실하고 음악도 별도로 만들었으며 내용도 잘 전하고 있다. <스파이더 맨>은 스토리텔링 위주로 어떤 얘기인지, 이번엔 어떤 악당이 나오는지까지 전달하고 나서는 바로 성악 코러스를 깔면서 화려한 액션을 연이어 보여준다. 그렇게 영화의 스케일을 과시하면서 그 정점에 타이틀을 내건다. 스토리텔링형 예고편의 전범인 것같다.” 소리를 둘러싼 수수께끼 예고편은 사운드(음악과 음향)가 특히 중요하다. 90분이 넘는 영화를 1~2분 안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일은 청각에 호소하지 않고서는 쉽지가 않다. 많은 예고편 제작자들은 좋은 예고편의 조건으로 사운드를 두세 손가락 안에 꼽는다. 자기 영화를 관객에게 좀더 세게 광고하고 싶어하는 영화 제작자들은 당연히 예고편의 사운드가 크고 자극적이길 원한다. 그러나 소리의 크기가 일정량을 넘어서면 관객들이 괴로워한다. 이런 폐해를 줄이기 위해 미국처럼 한국도 예고편에 사운드를 입히는 업체들이 모여 자율적으로 음량의 상한 규제선을 정했다. 영화진흥위원회 녹음실, 라이브톤, 블루캡, 웨비브랩 등 20개 업체가 지난 2003년말 모여 정한 이 상한선(LEQ값)은 85spl(사운드 프레셔 레벨)이다. 이 상한선은 영화 본편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 듣기 힘들 만큼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영화라면 관객이 들지 않을 테니까 제작자들이 알아서 조절하게 되기 때문이다. 빵빵한 사운드 매력, 마구 키워도 될까. 한국영화 예고편 내레이션 드문 까닭은? 사운드와 관련해 생기는 한국 영화 예고편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음악 한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배경에 까는 방식의 예고편이 많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영화 예고편 제작비의 규모 안에서 공포, 액션, 공상과학 등의 장르 영화의 질감을 전하는 효과음을 별도로 만들어낼 사운드 디자인 비용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본 영화에 쓰이는 효과음을 예고편에 따서 쓰려고 해도, 본 영화의 사운드 믹싱이 이뤄지기 전에 예고편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의치가 않다. 그러다보니 분위기에 맞는 음악 한 곡을 선곡해 죽 흐르게 하는 방식이 잦아지고 있다. 내레이션을 쓰지 않는 것도 한국 영화 예고편의 한 특징이다. 몇몇 코미디 영화의 예고편을 빼고는 한국 영화 예고편에서 대사와 별도로 성우가 내레이션을 하는 걸 보기 힘들다. 미국 영화 예고편에서의 내레이션은 익숙한데, 한국어로 하는 내레이션이 어색하다고 여기는 충무로의 풍토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할리우드 영화의 예고편 하면 바로 떠올리는 돈 라폰테인 같은 성우가 한국에는 없다. 영화의 제목을 낮은 저음으로 무게 잡아 한번 읽어주고, ‘커밍 순’ ‘디스 섬머’ 같은 말을 들려주는 돈 라폰테인을 흉내낸 한국 영화 예고편이 있기는 있었다. <낭만자객> 예고편의 끝부분에는 영어식 억양이 섞인 ‘낭만자객’이라는 네 글자의 내레이션이 나온다. 이 내레이션은, 텔레비전 광고에서 영어로 된 제품명이나 회사 상호를 한번씩 읽어주는 일을 도맡아 하는 미국인 스톤버가 맡았다. 오래전부터 한국에 살면서 의 디제이를 했던 그는 한국 영화 예고편의 해외 버전에서 제목을 읽는 내레이션을 몇차례 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