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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영화로 간 PD들, 무엇이 문제인가 [1]

입사한 지 10년, PD로 입봉한 지는 6년차 되는 드라마국 PD ‘예술하네’씨는 오늘도 출근을 했다. 하지만 별다른 일없이 책상 앞에 앉아있다보면 점심시간이 오고 이럭저럭 책이나 잡지를 뒤적이다가 퇴근을 한다. 1년에 만들어지는 드라마라고 해봐야 6개월 단위의 주말연속극 2편, 월·화 혹은 수·목 미니시리즈 4편씩, 일일드라마, 아침드라마, 단막극 통틀어 봐야 스무개도 안 되는 편수에 비해 들이미는 숟가락 수는 너무 많지, 그렇다고 어디 AD급으로 공동 연출하기에는 자존심 상하고, 설상가상으로 외주 비율이 높아지면서 그나마 몇편 안 되는 굵직 굵직한 것들은 어느새 밖으로 나간 유명세 있는 선배님들 차지고보니 1년 아니 2년 동안 연출 한번 못해보고 나이만 먹고 있는 것이다. 아! 한때 그는 얼마나 잘 나갔던가? 어릴 땐 신동소리 들으며 크고, 좋은 대학 들어가 주위의 부러움을 사면서 그 힘든 ‘언론고시’에 합격했을 때만 해도 그의 미래의 청사진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일상에 지친 노동자들도 집안일에 치이던 주부들도 뛰어놀던 아이들도 그가 브라운관에 쏟아내는 이야기들에 매료되어 삶의 기쁨을 누릴 ‘대중적 예술가’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입봉 초기에는 영상미 뛰어나고 아름다운 ‘작품’을 몇편 만들어냈고 나름대로 ‘마니아’층도 형성된 ‘촉망’받는 감독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너무 ‘예술’적인 데 있었다. 조금만 굽히고 어디서 약간 베껴오고 유치하지만 사람들 좋아할 작품을 기획하면 좋으련만 아직 그럴 만큼 ‘대범’해지지 못한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그래서 안 그래도 밟지 않으면 밟히기 쉬운 방송가에 그는 “예술하냐” “영화찍냐”라는 싸늘한 냉대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 비난의 소리들을 들을 때면 ‘예술하네’ PD는 항상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자기보다 어린 장진이니 정지우 민규동 김태용 같은 ‘애들’도 영화감독이라고 대접받고 있는 데 그애들보다 ‘큐’소리를 불러도 더 많이 불러본 ‘탐미적 영상언어의 달인’인 자신이 점심시간만 기다리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영화 한편 찍어봐?, 사실 내 능력은 영화쪽에 더 가까운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두려움이 앞선다. ‘영화판’이라는 미지의 땅에 대한 두려움도 크지만 앞서서 그 땅으로 간 대부분의 선배님들의 처절한 패배를 알고 있는 그로서는 영화라는 신세계는 죽음을 동반한 매혹인 것이다. 그 선배님들이 어떤 선배님들이었던가? <꽃을 산 남자>의 H선배님, <아! 러브>의 L선배님, <개인병원에서 만일동안>의 C선배님 등 모두 예술성과 대중성의 두 마리 토끼를 다잡고 대중의 부름 아래 당당히 방송사를 박차고 나간 분들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TV에서는 ‘작가주의 PD’라는 소리를 듣던 분들이 영화만 가면 ‘삼류감독’이 돼버린 것이다. 문득 ‘예술하네’ PD는 궁금해진다. 이유가 무얼까? 똑같이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고 사람사는 이야기인데… 자본의 차이인가? 시스템의 다름인가? 아니면 원래 TV PD들은 실력이 떨어지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밤새 뒤척이다보니 문득 옆에 누워 있는 마누라한테 미안해진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예술은 무슨 예술이냐. 내일은 실직하고 외판일하는 친구돕는 셈치고 <전래동화전집>이나 한질 사서 대본 연구 해야겠다.’ 그렇게 ‘예술하네’ PD는 오늘도 씁쓸히 잠을 청한다. ‘영화’를 향한 그의 꿈은 또 한번의 백일몽으로 끝이 나는 것일까? ‘예술하네’ PD, ‘부활하리’ 선배를 만나다 이곳은 ‘예술하네’ PD의 꿈 속. 하얀 연기 같은 구름을 뚫고 가니 어떤 한 사람이 그를 향해 손을 내민다. 한손에는 꽃을 들고 마라톤복을 입고 종합병원 약봉지를 들고 인자하게 웃는 그는 자신을 ‘부활하리’ 선배라고 소개한다. “아니 당신이 바로 그 유명한 ‘부활하리’ 선배님이란 말씀이십니까?” TV에서는 시청률 70%의 신화를 이룩한 스타 PD였던 그는 충무로로 간 뒤 거대한 제작비와 해외 올 로케이션 등 제작 단계부터 화제를 뿌린 영화 <이게 바로 예술이야>를 감독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전국 1만이라는 싸늘한 관객의 판결이 내려졌고 쓸쓸히 잠적했다. 이후 아무도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없고 혹자는 자살을 했을 것이다, 절에 들어갔을 것이라는 등 무성한 소문을 뿌렸던 터였다. ‘예술하네’ PD는 온몸에 전율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런 그가 지금 바로 자신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부활하리’ 선배는 마치 그가 지금 어떤 고민을 하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 조목조목 이야기를 시작했다. “‘예술하네’ 후배, 지금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듣게, 그리고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말 것이야. 왜냐하면 이건 정말 비싼 레슨비를 치르고 배운 내용이기 때문이지….” 흥행 5계명 그 첫 번째, 네 이름값을 믿지 마라 “후배, 영화감독이 되고 싶나?” “글쎄요,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기보다는 영화를 찍고 싶습니다.” “그렇군, 텔레비전에서 드라마 찍던 사람들이 영화를 찍겠다고 하면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지. 하나는 작품세계에 대한 욕구가 강해 TV 안에서 그것을 펼치기에는 브라운관이 너무 좁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 예술가들 타입이지. 또다른 부류는 영화를 연출 인생의 승부처로 두는 경우일세, 주로 야심가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어. 하지만 야심가든 예술가든 절대로 잊지 않아야할 몇 가지 것들이 있어. 자네 지금 뭐 하나 안 받아적고!… 에, 그러니까… 첫째 자신의 이름값을 믿지말라는 것일세, 대부분 영화 쪽으로 오는 TV감독들은 자신이 방송사에서 얻은 명성에 대한 부풀린 믿음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TV의 명성은 참으로 위험한 것이라 만약 실패시에는 후배를 더욱 깎아내리는 구실이 되지만 흥행에는 별반 도움이 안 되는 꼬리표란 걸 명심해야 하네. 어떤 이도 내 시청률 70%의 신화를 보고 영화표를 사진 않았다는 말일세. TV시청자나 영화 관객이 설령 같은 사람일지라도 그들이 방바닥에 드러누워 발가락에 리모컨 끼우고 자네 프로그램을 볼 때와 꿈같은 주말을 할애해 하루 행사로 자네 영화를 볼 때의 자세는 180도 다르다고 보면 되는 것이지. 그러니 먼저 어깨의 힘을 빼게. 충무로에 온 이상 자네는 ‘유명한 TV PD’가 아니라 그저 ‘실전 경험 많은 늦깎이 신인감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게야.” 흥행 5계명 그 두 번째, 영화는 드라마가 아니다 “하지만 선배님, 사실 저도 나름대로 거품이 아닌 ‘마니아’ 팬들이 있다고 생각해서 적어도 그 사람들이 2∼3명만 데리고 와도 영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글쎄, TV 마니아는 그저 TV 마니아일 뿐이야. 그리고 그들을 영화에서도 잃지 않고 가져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 좋아하는 드라마 스타일과 좋아하는 영화 스타일은 다른 거니까. H후배를 생각해 보게, TV 시절 H후배의 열혈팬이었던 한 시청자는 그의 영화를 보고선 실망했는지 다른 어떤 사람보다 강하게 보지말라고 말리더라는군, 애증이지. 오히려 더 무서운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네, 물론 다시 돌아온 H의 드라마를 요즘엔 다시 열성적으로 본다고 하지만 말야….” “그래도 선배님 때는 단막극 만드는 재미가 있었겠어요. <잘 팔리는 책 극장>은 초반에 필름 작업도 했다면서요. 반은 영화를 만들어 보신 거나 다름없지 않나요?” “어허, 이렇게 자네 스스로가 나의 두 번째 충고의 화두를 꺼내는군. 둘째, 영화와 드라마는 다른 것일세. 아까 자네가 말했듯이 영화로 간 대부분의 PD들은 영화를 너무 쉽게 생각한 바가 없지 않았어. 우리가 영화를 찍어봤다고 스스로 생각한다는 거야. 가끔 비디오로 영화를 보다보면 ‘저거 너무 쉽지 않아? 저 정도면 <잘 팔리는 책 극장> 수준도 못 되잖아? 나한테 저 돈 주면 진짜 빨리 찍어줄 수 있겠다’하며 은근히 충무로를 얕잡아본 알량한 마음 같은 것들이 있었네. 사실 우리가 만든 작품은 항상 ‘영화적이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던 게야, 솔직히 무엇이 ‘영화적’이고 무엇이 ‘드라마적’인가 하는 정확한 구분도 안 선 상태에서 말일세. 영화를 드라마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하지 말게. 그 말이 영화는 우월하다, 드라마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다른 매체로 인식하고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야.” “그렇다면 선배님, 영화와 드라마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후배, 숨 한번 쉬어보게.” “이렇게요, 휴우∼.” “아니 더 짧고 깊게… 그렇지, 하지만 그런 식으로 숨쉬는 것이 쉽게 익숙해지진 않을 거야. 왜냐하면 후배는 항상 그보다 긴 호흡에 익숙해져 있을 테니 말일세. 흥행 5계명 그 세 번째, 네가 프로듀서를 이용하라 시나리오부터 촬영, 편집의 모든 길이와 리듬은 드라마의 그것과 다르게 생각해야 하네. 하지만 편집 리듬의 차이, 화면 크기의 차이, 촬영 장비의 차이, 돈을 내고 안 내고 이런 것들이야 쉽게 유추할 수 있는 표면적 다름이 아니겠나. <인샬라샬라>를 제작한 K후배는 “TV가 소설이라면 영화는 시다”라고 말하더군. 보통 TV PD들은 ‘설명하기’가 몸에 배어 있는 편이지. 당위성을 위해 10분, 20분을 그냥 흘러보내기도 하고 많은 등장인물을 일일이 설명해야 하고…. 하지만 영화에서는 삭제하고 압축해야 하거든. 그런 면에서 소설과 시에 비유한 것 같아. 이런, 또 설명을 하는군. 그리고 <꽃을 산 남자>의 H후배는 프로듀서의 존재유무가 차이점이라고 말하더군. 그동안 우리는 어땠나, 몸은 하나인데 머리가 두개 달린 샴쌍둥이가 아니었나? TV에서 연출가(Director)와 제작자(Producer)의 두 가지 역할을 하던 우리에게는 같은 피가 흐르는 ‘같은 과’의 프로듀서를 만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네. 더욱이 요 몇년 사이 제작자의 위상이 얼마나 많이 달라졌나? 예전엔 제작비 오버만 하지 않으면 내용적인 간섭이 없었대지. 하지만 충무로에 요즘은 안목있는 젊은 제작자들이 자리 잡아가면서 제작의 내용적 측면까지 함께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 처음엔 간섭같고 부담스러웠네. 하지만 예술영화든 상업영화든 제작자와 연출가가 ‘동상이몽’하는 상태에서는 배가 산으로 가게 마련이지. 망하는 건 불보듯 뻔한 것이고…. 프로듀서를 부담스러워하지 말고 프로듀서를 이용하게. 연출만 하기에도 힘든 게 영화판 아닌가?” 흥행 5계명 그 네 번째, 스타가 뭐기에 “아! 선배님 잠시만, 잠시 꿈에서 깨서 노트 바꿔오면 안 될까요? 말씀이 너무 주옥 같아서 벌써 노트 한권이 넘었습니다.” “아까 내가 필기하라고 말한 것은 노트에 쓰라고 함이 아니라 마음에 새기라는 걸세.” “아! 제가 그 깊은 뜻을 몰라뵙고… 계속 하십시요.” “넷째, 스타를 믿지말게. 사실 TV드라마는 김히선이 나오면 그게 <토마토 케찹>이건 <미스터 G>건 30%를 넘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영화는 주연의 얼굴 가지고만은 안 되는 뭔가가 있네. 똑같은 이종재와 시모나가 주인공이라도 그 영화가 <이 재수좋은 날>인지 <인터뷰어>인지가 관객에게는 중요하거든. 예를 들어 <아! 러브>의 L후배를 생각해봐. 고소소, 정우상 정도의 스타들을 가지고 TV 미니시리즈라도 할라치면 안 봐도 대박 아닌가. 게다가 탁월한 구성력과 삶에 대한 통찰이 영민한 송자니 작가 정도라면 말야, 하지만 결과는 어땠지? <개인병원에서 만일동안>의 C후배의 경우도 마찬가지야. TV히트작 <개인병원>의 히로인이 배신 안 하고 출연했는데도 결과는 TV 반도 못 미쳤다는 이야기밖에 못 들었지 않나. 그러고 보면 <체인지 바디>의 L후배는 이런 면에서 꽤나 똘똘한 편에 속해. 적어도 자기가 잘하는 게 뭔가, 하는 데 대해서 분명히 알고 있거든. 캐스팅에 무리하지 않고 신인급 아이들을 데리고 영화찍겠다고 덤볐을 때만 해도 모두들 반신 반의 했지. 하지만 라이트한 소재에 청춘물에 익숙한 자신의 장기를 살려 고등학생 이야기로 가져간 것뿐 아니라 무리하게 욕심 안 내고 저작권 문제도 사전에 해결하고 결국 흥행도 어느 정도 되면서 이 친구는 ‘인정받는’ 영화는 아니라도 자기 나름대로의 ‘드라마 같은 영화’의 길을 튼 거야. 개중 영화를 산업으로 제대로 이용하는 축에 속한 거지. 하지만 ‘예술하네’ 후배, 자네의 목적이 이런 상업적 성공에 있지않고 정말 ‘예술’하는 데 있다면 마지막으로 정말 명심해야할 것이 있어.” 흥행 5계명 그 마지막, 다시 문제는 내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선배님. 서둘러 주십시요. 새벽이 밝아오려 하고 있습니다.” “쯧쯧쯧, 저 조급증, 그게 바로 문제야. 순간순간 느껴지는 대중의 반응에 휩쓸리기보다는 자기의 이야기를 가지고 대중을 이끌 수 있는 여유로움 말일세. 연출의 기회가 잦고 또한 이른 시간 내에 진행하던 제작에 익숙한 PD들은 이 정도면 드라마되지 않나!식의 안일함이 자신도 모르게 몸 속 깊숙이 침투해 있네. 사실 하루에 20신씩 찍어대야 하는 방송현실에 비춰볼 때 당연한 결과이지. 하지만 이 치열함의 부족이야말로 가장 큰 걸림돌이 될거야. 한 프로그램 망해도 다음 프로그램 시작하면 되고 굳이 목숨바쳐 일 안 해도 월급받던 곳, 즉 직장에서 하는 직업적 일로 영화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 친정이 가까이 있는 부인들이 더욱 쉽게 짐을 싸게 마련이지 않나? 영화가 안 되면 다시 드라마하면 되지 하는 식의 생각은 금물이네. 패장을 받아주기엔 이미 TV엔 너무 많은 좀비들로 포화상태란 말일세. 조급해하지 말게, 가슴속에 품은 후배만의 이야기가 있다면 40대에 <초록물고기>나 <박하사탕> 같은 깊이있는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지 않겠나? 결국 위 같은 패인분석을 다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내러티브의 힘이고 이야기, 즉 시나리오의 힘이 아니겠나. 후배여, 오욕을 되풀이하지 말아다오 내가 왜 이 야밤에 야근수당도 안 나오는데 이렇게 떠들고 있는 줄 아는가? 만약 TV PD들이 영화란 건 애초에 꿈도 못 꿀 형편없는 집단이었다면 달밤에 체조한 격이겠지. 하지만 지금의 충무로를 보게. 후배들이 아무런 메리트가 없다고 생각하진 않네. 조감독 한번 하고 혹은 영화학교 졸업하고 현장 경험 없이도 바로 작품 들어가는 충무로 젊은 감독들에 비해 후배들은 수많은 현장경험의 노하우와 스피디한 진행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대중의 감을 쉬이 읽어낼 수 있는 밝은 눈이 있지 않은가. 이런 것들이 좋은 영화를 합리적으로 찍어낼 수 있는 훌륭한 거름임에도 불구하고 앞선 시행착오에 대한 올바른 진단도 없이 ‘TV PD는 영화 오면 망한다’는 징크스의 이야기만 떠돈다면 똑같은 실수를 자네 같은 후배들이 반복할 것이 아닌가? 망하더라도 한발 진보한 망함을 택하게. 내가 왜 ‘부활하리’인 줄 아는가? 나는 죽었으되 죽은 게 아니네. 어제의 바닥침으로 금보다 더 귀한 교훈을 얻었으니 다시 살 날만 남았네. 후배, 부디 나의 당부를 잊지 말아주게, 혹시 또 만날 기회가 있으면 그때는 더 깊은 노하우를 알려주리다. 그럼, 잘자! 내일도 내 꿈 꾸시게.”

[스크린 속 나의 연인] <아라비아의 로렌스> 피터 오툴

세상의 어떤 규칙들을 이제 겨우 하나하나 배워나가는 어린 나이의 소년, 소녀들에게 어른들이 저지르는 꽤 폭력적인 질문, 그러나 어른 입장에선 꽤 즐기게 되는 두 가지의 질문이 있다. 하나가 넌 누굴 가장 존경하느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가 넌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는 질문이다. 솔직히 별로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괜히 할 말이 없을 때면 곧잘 해대곤 하는 이런 질문이, 어렸을 적 내겐 꽤 골치 아프고 귀찮았다. 교과서에 나오는 위인들마다 나름 존경할 거리들이 만만치 않게 있었고, 무엇인가 되고 싶기엔 세상 사람들이 무엇을 하며 사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그런 질문에 재빠르게 확신에 차서 대답하지 못하게 되면, 나보다 더 의기소침해지고 걱정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기도 썩 즐겁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질문에 확신에 차서 대답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으니, 그것은 바로 데이비드 린 감독의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보고 난 뒤였다. 거대한 화면안에 불타는 사막이 광할하게 펼쳐지고 콤플렉스로 가득차 보이는, 뭔가 비어있고 나약해 보이는, 하지만 어린 내가 보기에도 꽤 귀족적인 느낌의 피터 오툴과 이글거리는 사막 저편에서 점처럼 희미하다 조금씩 거대하게 다가오며 카리스마를 자랑하던 오마 샤리프는 나를 한순간에 사로잡았다. 그 뒤로 내가 존경하는 사람은 로렌스와 그의 사막 친구들이었고, 장래 희망은 사막으로 가서 베두인족의 일원으로 함께 생활하는 거였다. 뭐, 나의 확신에 찬 이 대답이 어머니를 결코 평온하게 해주진 못한 것 같았지만 나의 사막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스무살이 넘어, 당시의 실제 역사가 제국주의 침탈의 역사였고, 로렌스 역시 그 안에서 장기알처럼 도구화된 영국의 식민지 정책의 한 단면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러나 진실은 언제나 매혹적인 것들에 저당잡힐 때가 있다. 더군다나 피터 오툴이 더위를 극도로 싫어하는 체질인지라 사막에서 살기는커녕, 며칠동안의 여행조차 거부할 정도라는 것을 인지한 이후에도…. 난 <아라비아의 로렌스> 화면 안의 모든 것들에 여전히 매혹당했다. 기차를 보기만 하면 그 위에서 세상을 움직이듯 성큼성큼 걸어가는 로렌스를 떠올렸고, 그 영화로 인해 피터 오툴이 나오는 모든 영화를 보려고 애썼고, 특히나 당시 텔레비전를 통해 방영된 피터 오툴 주연의 <마사다>는 나를 아침형 인간에서 늦은 밤 잠 못드는 인간형으로 변신시켰다. 어쩌면 나는 피터 오툴의 이미지에서 언제나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하지만 스스로 자신 안에 끊임없이 갖혀버리고 말았던 나의 성장과정을 예지몽처럼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로렌스와 사막에 매료당하던 어느날 나를 또 한번 매혹의 뭉텅이안으로 빠트린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장호 감독의 1975년 작 <어제 내린 비>의 김희라 선생이었다. 영화의 모든 것을 상세히 기억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하얀색 와이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고,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은혜를 갚기 위해 그리고 배다른 동생의 행복을 위해 갖은 추한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여주며 울부짓던 김희라 선생의 연기와 이미지는 당시의 나에게 젊음의 어떤 이면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김희라 선생의 최고 걸작들은 모두 이장호 감독님과 함께였던 것 같다. <어둠의 자식들> <과부춤>에서 김희라 선생은 캐릭터가 인정하는 범위의 경계선에서 어떤 빛을 느끼게 해준다. 때때로 나 역시 연속적인 빛을 뿜어줄 그런 영화 안에서의 파트너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커플이 나에겐 이장호-김희라 커플인 것 같다.

[팝콘&콜라] 비즈니스 은하계의 왕 루커스씨 다스 베이더 돼가는것 아녜요?

스타워즈 시리즈의 조지 루카스 감독은 영화 홍보에 깐깐하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1999년 <보이지 않는 위험>을 개봉하면서 홍보용 스틸 사진도 직접 결정했고, 사전 정보도 그가 정하는 만큼만 공개했다. 또한 영화 시작 전에 광고 상영 금지 등 까다로운 조건을 붙였다. 이번에 개봉하는 <시스의 복수>도 예외가 아니다. 스틸 사진을 직접 고르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어떤 컷을 언제까지 사용할 수 있는지도 제한했고 전세계 국가의 개봉 날짜는 물론 시사 일정까지 직접 정했다. 언론 외에 일반인들을 상대로 한 시사회도 열지 않았다. 몇 년 전 아내와 이혼했을 때는 직접 고른 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엄마 없이 아이들을 성실하게 키우는 아버지로 그려달라”며 이미지 메이킹까지 챙길 정도였다. 고인이 된 스탠리 큐브릭 감독도 자기 영화의 홍보 내용과 방식을 직접 챙기기로 유명했다. 그러나 큐브릭과 달리 루카스의 이런 태도를 두고서 현지 언론에서 이런저런 말들이 나온다. 큐브릭 영화와 달리 <스타워즈> 시리즈는 그 자체로 거대한 산업이 됐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알려져 있다시피 <스타워즈> 시리즈의 마케팅은 영화가 비즈니스로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시금석이었다. <스타워즈> 첫 시리즈부터 마케팅과 관련상품 개발에 비상한 열정을 보여온 루카스는 장난감부터 책, 의류, 과자에 이르기까지 수백 가지 상품을 개발하거나 기존 제품과 연계해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다. 경제전문지 <포브스> 최근호는 <스타워즈> 시리즈가 지금까지 벌어들인 돈과 앞으로 벌어들일 돈을 환산하면 200억 달러 규모에 달한다는 수치를 내놓았다. 이는 파라과이의 한해 국내총생산과 맞먹는 돈이라고 한다. <워싱턴 포스트>는 <시스의 복수> 개봉 전부터 햄버거와 초콜릿, 시리얼 등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겨냥한 상품의 포장지를 도배하거나 끼워팔기 식으로 등장하는 다쓰 베이더를 루카스에 비유하면서 “<스타워즈> 시리즈는 엔터테인먼트 판권 산업의 은하계 그 자체”라고 비꼬았다. 루카스는 몇 년 전 <스타워즈> 시리즈의 제작과정을 담은 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의미심장한 고백을 했다. “거대한 스튜디오 시스템의 통제를 벗어나 온전한 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열악한 환경에서도 독립적으로 영화작업을 해왔는데 이제 내 작업과 스튜디오 자체가 내가 그렇게도 혐오하던 메이저 스튜디오처럼 비대해졌다”는 게 요지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메이저 방식의 홍보와 마케팅을 꼼꼼히 챙긴다. 스스로 혐오하던 악의 세력의 편에 서서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는 듯 그 길을 가는 다쓰 베이더가 연상되기도 하지만, 그건 잠시다. 다쓰 베이더에서 루카스로 옮겨가는 순간, ‘비장함’이 ‘쫀쫀함’으로 바뀐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수령님, 우리들의 수령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고려대학교에서 명예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 논문의 제목은 “고려대 100주년 기념관 건립과 현대철학의 상관관계.” 무슨 명분을 갖다붙여도, 본질이 변하지는 않는다. 그는 고려대학교 100주년 기념관 건립을 위해 400억원을 냈고, 고려대학교는 그 돈의 가공할 덩치를 기리기 위해 “명예”롭게 영수증을 떼어주었다. 이것은 “철학”적 사건이다. 한국 철학계에 일찍이 이보다 더 큰 사건이 있었던가? 학생들은 학위에 전공표기가 잘못된 것을 문제 삼았다. 이건희 회장이 ‘명예’로나마 ‘박사’의 실력을 인정받는 분야는 ‘철학’이 아니라 노동탄압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학생들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전공자의 입장에서 봐도 이건희 회장은 철학적 소양이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노조 만들려는 노동자들을 휴대폰 위치추적을 통해 감시하는 실력만은 ‘박사’의 학위가 무색할 정도로 탁월하다. 고려대의 보직교수들이 일괄 사퇴서를 냈다. 웃지 못할 코믹물은 여기서 괴기스런 호러물로 전환한다. 전직 대통령의 진입이 물리적으로 저지당했을 때도 나오지 않았던 사표. 그 귀중한 사표가 일개 기업 회장의 행사장 진입이 저지됐다고 총장 책상 위에 일괄적으로 올라온 것이다. 왜 그랬을까? 독신(瀆神)과 불경(不敬)이야말로 종교인의 가장 큰 죄. 보직 교수들의 일괄 사퇴는 모욕당하고 거역당한 신의 노여움을 달래는 거룩한 희생양 제의가 아니겠는가? 이번 사건은 종교적 경지에 달한 북조선 수령 문화의 자본주의적 버전이다. 회장님이 어떤 분이신가? 스키를 즐겨도 인간의 반열에 낄 수 없기에 레인을 통째로 임대하는 분이다. 외유라도 하실 참이면 교황의 행차를 무색할 정도의 예우가 조직된다. 색깔별로 차려입은 유니폼 점퍼들의 무리 속에 회장님이 거룩하게 출현하시는 장면은 사이비 종교단체의 집회 혹은 전체주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카드섹션을 연상케 한다. 북조선에서는 수령님이 인민을 먹여살린다. 남조선에서는 삼성이 국민을 먹여살린다. 인재 한 사람이 10만을 먹여살린다고 하지 않는가. 삼성에 인재 3천이 없겠는가? 곱하기 10하면 남조선 인민 전체를 여섯번 먹여살리고도 남음이 있다. 환웅은 3천의 무리를 거느리고 신단수로 내려와 나라를 세우지 않았던가. 회장님은 현대의 재림 환웅이시다. 박정희 덕에 먹고살던 불쌍한 인민들은 이제 이건희 덕에 먹고살고 있다. 대한민국은 삼성이 먹여살린다. 그 삼성은 내가 먹여살린다. 주머니 속의 휴대폰, 거실의 텔레비전, 부엌의 전자레인지가 그것을 증명한다. 이를 인정할 수 없다면, 삼성이여, 다음에 휴대폰 광고할 때에는 과감하게 이렇게 해보라. “소비자 여러분, 너희들은 우리 덕에 먹고삽니다.” 한 사람의 인재가 제 밥 벌어 먹으면서 따로 10만을 먹여살리는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 사람의 인재는 여러 범재들의 노력을 먹고산다는 것이다. “400억을 받고도 모자라서.” <중앙일보> 기사의 제목이다. 누가 삼성 계열 아니랄까봐. 언제 학생들이 돈 적게 줬다고 시위를 했던가? 바로 여기서 명예로 박사 학위 받은 이들의 철학이 드러난다. 삼성 철학의 상상력 밖에서는, 자주는 아니더라도 아주 가끔은, 돈 주고 살 수 없는 것도 있다. 돈 주고 살 수 없는 그 가치는 인문정신을 담당하는 교수들이 앞장서서 지켰어야 한다. 그들이 방기한 그 일을, 학생들이 했다. 그리고 그 빌어먹을 교수들은 그 장한 학생들을 ‘징계’하겠다고 벼르고 자빠진 모양이다.

운명을 신념으로 뒤흔드는 사랑의 해석, <걸 온 더 브릿지>

<걸 온 더 브릿지>는 불행에 관한 영화다. 그런데 파트리스 르콩트 감독이 생각하는 불행이란 남녀가 서로의 짝을 찾지 못하는 데서 온다. “난 아예 불행 자체니까요”라고 말하는 창녀 아델은 난간에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그녀의 말을 빌리면, 자신은 ‘역’과 같은 존재다. 수많은 남자들이 다가왔지만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신념으로 행운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 가보가 찾아온다. 사실 파트리스 르콩트 감독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새로운 행복을 찾아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 창녀 아델은 한 남자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공연을 가는 곳마다 남자들에게 추파를 던진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녀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에서도 마찬가지다. 충만한 사랑의 기쁨을 나눈 뒤 물건을 사러간 여자는 강물 속으로 뛰어든다. 그녀가 자살한 이유는 이제 둘 사이에는 행복의 절정보다는 ‘하강’만이 남았기 때문이다. 행복해지고 싶은 남녀, 그러나 행복해질 수 없는 운명. 집요하게 그의 전작들을 연결하는 고리다. 하지만 진리는 단순하다. 과거의 영화 속에서 해답을 찾지 못했던 감독은 이제야 가보의 입을 빌려 하나의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자신은 어렸을 적 이웃집의 모습을 항상 부러워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이웃집은 우리집을 부러워했다는 것이다. 방금 만난 그리스 남자와 함께 떠나려는 아델에게, 가보는 행복은 자기 안에 있음을 은유적으로 들려준다. 사실 안과 밖의 경계는 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상징화된다. 예를 들어, 난간 밖에서 바라본 센강이 그렇게 아름답게 비춰진 것도, 사람들은 쓰디쓴 현실의 다리 안쪽보다는 난간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고 꿈꾸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간 밖은 죽음일 뿐이다. 명암대비가 강렬한 흑백의 화면, 프랑스 특유의 시적인 대사 그리고 사랑에 관한 르콩트 감독의 독특한 해석이 개입한 <걸 온 더 브릿지>는 99년 프랑스를 대표하는 영화 중의 하나다. 특히 같은 이야기를 조금씩 변주하는 묘미와 사랑의 판타지를 엮어내는 유머넘치는 화술은 당대 프랑스 감독 중 단연 으뜸이다. 영화 속에서 칼 던지기 쇼는 세상에 내던져진 남과 여가 ‘섹스’를 나누는 명백한 은유이고, 남녀 사이의 우연을 필연으로 바꾸고 운명을 신념으로 뒤흔드는 사랑의 해석은 메마른 현대인들의 감성에 울림을 준다. 특히 어린 나이에 데뷔해 유럽을 뒤흔들었던 요정 샹송 가수 바네사 파라디의 묘한 매력과 눈빛으로 사로잡는 다니엘 오테이유의 연기는 프랑스 최고의 ‘남과 여’를 엮어낸다. 감독의 찬사 그대로, 이 영화의 주인은 바로 등장인물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트리스 르콩트는 이 모든 것을 마치 현란한 서커스처럼 빠르게 엮어놓는다. 그러나 정작 영화의 시작은 재판정에서 자신의 과거를 진술하는 듯한 아델의 클로즈업이다. 운명의 사건이 시작되기까지 아델은 자신을 거쳐간 남자들과 불행에 관해 이야기한다. 마치 뒤에 등장하는 가보와의 만남은 하나의 꿈 아니면 어딘가에 묶여 있는 기억과도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여자의 꿈, 아니면 행복을 꿈꾸는 운명적인 사랑이야기를 함께 꿈꾼 것은 아닐까. 사실 영화가 단박에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관음주의적이고, 신파적인 요소들이 머리로 영화를 받아들이기에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의 틈새들을 힘이 넘치는 비약과 사랑의 대화들로 채워놓는 그의 방식은 누벨바그의 전통과 맥을 이으며, 이야기 자체보다는 이미지를 앞에 놓는다. 그래서인지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남녀의 대화를 마치 텔레파시처럼 교차 편집하는 황당한 장면도 자유롭고 감미롭다. 이 모든 것에는 바로, ‘남과 여’라는 단단한 하나의 끈을 상정한 것인데, 강박적이고 한편으로는 상투적이지만, 시적인 비약과 상상력으로 인해 90분이라는 시간은 남과 여의 운명에 관한 놀라운 향연으로 충만하다. 감독 파트리스 르콩트 사랑에 관한 기나긴 탐구 사랑에 관한 남다른 해석을 보여주는 파트리스 르콩트 감독은 90년대 초반부터 대중적이면서도, 비평적인 찬사를 동시에 받아온 독특한 감독이다. 그는 프랑스영화들을 주대상으로 하는(우리의 대종상과 비슷한) 세자르영화제의 단골 손님이기도 하다. 그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감독상에 노미네이트되었으며, 급기야 97년에는 <조롱>이라는 작품으로 세자르영화제 최우수 감독상과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당시 베르트랑 타베르니에와 공동 수상을 하게 되어 좀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했는데, 96년 최고의 프랑스영화로 선정된 <조롱>은 49회 칸영화제의 오프닝을 장식하기도 했다. 배경은 루이 16세가 마지막으로 베르사유궁의 주인으로 행세하며 프랑스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며 부도덕한 궁정생활을 할 시기에, 굶주린 농부들과 격리된 이 사치의 공간에선 말 한마디로 상대방을 몰락시키는 말장난 게임이 유행했다. 영화의 소재는 바로 이 말장난 게임. 그런데 독특한 소재로 프랑스의 역사를 재해석한 이 작품은 르콩트의 작품군에서는 의외다. 사실 90년대의 대표작인 <사랑한다면 이들처럼>(1990)이나 <살인혐의>(1989)를 보면 남과 여의 사랑과 이별에 관한 독특한 해석으로 관객을 당혹시켜왔다. 93년도에 완성한 <탱고>에서는 ‘마누라 죽이기’를 결심한 남자들의 여행을 소재로 삼았다. 코믹하지만 역시 주된 정조는 남녀의 사랑이다. 국내에서는 크게 소개된 적이 없지만 그의 주요작품들은 이미 비디오로 출시됐다. 좀 찾기 힘든 것도 있지만, 이 사랑의 곡예사가 펼치는 사랑이야기는 한번쯤 들어두면 좋은 파르마콘(독약이자 치료약)이다. 파리 태생인 르콩트는 원래 만화작가로 출발했으며, 아마 상상력이 자유롭게 느껴지는 것은 만화의 작업 탓일 것이다. 처음에는 주로 상업적인 작품들로 일관했지만 점점 그의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는 중이다. 최근에는 프랑스의 비평가들과 설전을 벌일 정도로 입김이 센 감독이다.

히치콕 전성기를 열다, 앨프리드 히치콕의 <다이얼 M을 돌려라>

인물들이 스크린의 평면을 뚫고 나오는 듯한 환영을 주는 3-D 테크놀로지는, 1897년에까지 거슬러갈 만큼 오랜 발전의 역사를 가진 것이었지만, 그 혁신의 절정기는 주지하다시피 50년대 초·중반이었다. 그것은 관객 수가 줄고 텔레비전의 위협이 등장하던 당시 관객을 영화관으로 다시 끌어 모으려는, 일종의 이미지 향상의 시도였던 것이다. 모든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손을 댔던 이 ‘획기적인’ 테크놀로지는 그러나 단지 진기한 볼거리에 지나지 않았고, 결국 그 유행은 대략 52년에서 54년까지 3년도 채 지속되지 않는 일시적인 것으로 그쳤다. 3-D라는 이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영화들은 거의 대부분 과거의 역사 속에서나 언급되는 범작들이었지만, 아마도 앨프리드 히치콕의 <다이얼 M을 돌려라>에 대해서만은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거장의 손길은 테크놀로지의 ‘한계’를 가뿐히 뛰어넘는 것일까? 히치콕의 이 영화는 당시 가장 성공을 거둔 3-D 영화 가운데 한편일 뿐만 아니라, 또한 완성도만을 놓고 봤을 때도 수작임에 틀림없으니까 말이다. <다이얼 M을 돌려라>는 거짓말, 기만, 위협, 살인 등의 모티브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전형적인 ‘히치콕 영화’다. 토니라는 인물이 이 이야기의 치명적인 음모의 주동자. 부인인 마곳이 미국인 극작가 마크와 외도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된 그는 부인을 살해해 그녀의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을 계획을 세운다. 그 실행의 일 단계는 자기 대신 살인을 대행할 사람을 물색하는 것. 고등학교 동창인 스완이 곤혹스런 비밀을 감추고 있음을 알아낸 토니는 비밀 누설과 사례금을 미끼로 스완을 살인 거사에 끌어들인다. 이제 치밀하게 짜인 토니의 사전 계획은 단지 실행만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곳을 살해하려던 스완이 오히려 마곳이 집어든 가위에 찔려 죽게 되면서 사건은 예상 밖의 진로를 밟아나간다. 히치콕의 카메오 출연이 언제 어떤 식으로 나올지 눈여겨보는 것이 그의 영화에 잔재미를 더해주는 요소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은 웬만한 영화팬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 다이어트 광고에 얼굴을 잠깐 내민 <라이프 보트>(1944)의 경우와 유사하게 <다이얼 M을 돌려라>에서 히치콕의 얼굴은 토니가 보여주는 동창 모임 사진 속에 등장한다. 이건 아마도 이 두 영화 모두, 히치콕이 잠깐이라도 모습을 보여줄 틈이 없을 정도로, 전적으로 협소한 공간 속에서만 사건이 벌어지기 때문일 듯 싶다. 과연 <다이얼 M을 돌려라>의 행위 공간은 <로프>(1948)와 비슷하게 토니의 저택 내부로 거의 한정되어 있다. 그 단일 공간 안에서 이미 살인 계획이 알려진 사건이 진행된다는 것은 다분히 연극적이라고 볼 수도 있고 또한 자칫하면 애당초 흥미를 상실케 할 위험마저 있다. 하지만 히치콕은 치밀한 플롯의 짜임새와 정교한 프레이밍으로 그런 잠재적인 위험들을 돌파해 가는 묘미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프레데릭 노트의 동명 희곡을 영화화한 이 미스테리 실내극은 36일이란 짧은 기간에 촬영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히치콕 자신은 이렇듯 속성으로 찍은 이 영화에 대해 별로 할 얘기가 없다고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재충전을 할 양으로 쉽게 만들었다고도 했다. 하지만 <다이얼 M을 돌려라>가 히치콕의 필모그래피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면, 그것은 이 영화의 성공이 1954년작 <이창>으로 시작하는 그의 전성기로 이월할 여유를 주었고 그레이스 켈리라는 히치콕의 이상적인 블론드와의 첫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배우 그레이스 켈리 우아하다면 그녀처럼 우아하고 고상한 매력의 대명사 그레이스 켈리(1929∼1982)는 참으로 영화계의 공주라는 별칭을 전혀 무색하게 만들지 않는 그런 여배우다. 이건 그녀가 스크린에서 발산하는 영화 속 이미지라는 측면에서도, 그리고 실제로 모나코 국왕의 부인이었다는 점에서도 타당한 것이다. 내적인 정열과 외적인 차가움 사이의 패러독스를 체현한 켈리는 또한 앨프리드 히치콕이 선호한 이상적인 금발 미인이기도 했다. 켈리는 히치콕과 세편의 영화를 찍었는데, 그 첫 번째 작품이 바로 <다이얼 M을 돌려라>이다. 이어 그해 그녀는 <이창>에서 제임스 스튜어트의 상대역을, 그리고 다음해에는 <나는 결백하다>(To Catch a Thief, 1955)에서 캐리 그랜드와 짝을 이뤄 출연했다. 결혼 뒤 은막에서 은퇴했던 켈리는 62년에 히치콕의 <마니>(1964)에 주연을 맡으면서 할리우드로 돌아올 것이라고 공표했다. 하지만 모나코의 국민들은 공주가 도둑 역을 맡는 것도, 그리고 숀 코너리와 로맨스에 빠지는 역을 연기하는 것도 원치 않았다고 한다. 결국 나중에 켈리는 그 프로젝트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고 결코 다시는 연기 세계로 돌아오지 못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브로드웨이에 먼저 발을 디딘 켈리가 첫 출연한 영화는 <14시간>(1951). 이 단역을 시작으로 그녀는 프레드 진네만의 <하이 눈>(1952), 존 포드의 <모감보>(1953)에 출연하면서 할리우드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뒤 히치콕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스타덤에 오른 그녀의 다른 대표작들로는 <상류 사회>(1956) <백조>(1956) 등이 있다. 82년 자동차 사고로 숨졌다.

영화 <박수칠 때 떠나라> 촬영장서 만난 장진 감독

“지금까지 내가 만들었던 영화들과 다르지 않은 영화다.” 24일 낮, 장진(34) 감독은 경기도 파주 헤이리 아트서비스 스튜디오에서 <기막힌 사내들>, <간첩 리철진>, <킬러들의 수다>, <아는 여자>와 “근본적으로 같은 영화”를 찍고 있었다. 차승원, 신하균 주연의 ‘버라이어티 수사극’ <박수칠 때 떠나라>다. 하지만 8월 초 개봉을 목표로 촬영이 중반을 넘어선 이 영화는, 장 감독의 말처럼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상업 영화들과는 다른 영화”다. 기본 얼개는 이렇다. 강남 최고급 호텔에서 카피라이터가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되고, 공중파 텔레비전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이 수사과정을 48시간 동안 실황 생중계한다. 소재나 줄거리도 그렇지만 ‘버라이어티 수사극’이라는 장르가 장 감독의 앞선 네 작품들 처럼 새롭고 재기발랄하다. “범인을 잡는 방식에 버라이어티한, 그러니까 다양한 수사방법과 스타일과 구조를 도입했다. 말 그대로 수사의 모든 패턴을 까발려 보여주는 버라이어티한 수사극이다.” 장 감독은 “일단 영화를 봐야 버라이어티 수사극이라는 장르를 이해하게 될 것”이라며 “유쾌하지만 한국형 코미디라 보기 어렵고, 미스터리지만 결코 무겁지 않은 영화”라고 에둘러 영화를 소개했다. 감독은 또 “범인과 수사방식에만 호기심을 쏟아붙는 대중들의 ‘나쁜 취향’이 죽음의 진실을 얼마나 외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이 낯선 장르의 취지를 설명했다. “다양한 수사방법 다 까발려 보여줘” 하지만 장 감독은 “재기발랄하고 버라이어티한 측면이 부각되다 보면 자칫 ‘기본’이 무시되기 쉽다”며 “코미디로든, 수사물로든, 미스테리물로든 기본은 했다”는 자칭 ‘오만한 멘트’를 통해 <박수칠 때 떠나라>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장 감독이 <박수칠 때 떠나라>에서도 떼지 않은 ‘재기발랄하다’는 수식어는 신인감독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하지만 그는 이미 영화감독으로 데뷔한지 7년이 지난, 장·단편 영화 8편을 연출한 ‘중견감독’이다. ‘재기발랄한 중견감독’의 설명은 의외로 간단했다. “기질을 버리지 않았고, 명분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재기발랄하다’는 얘기를 듣는 것 같다.” 장 감독의 기질은 “관습적인 것을 싫어하고, 다른 사람의 기호에 자신을 끼워 맞추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또 장 감독에게 명분이란 “대중들에게 재미있는 영화를 보여주기 위해 나한테 재미없는 영화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감독 스스로 생각하는 특장점 하나. 장 감독은 “내가 ‘만들 수 있는 영화’와 ‘만들 수 없는 영화’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박수칠 때 떠나라>와 비슷한 시기 개봉될 <웰컴 투 동막골>의 영화화를 박광현 감독에게 맡겼다. 자신이 직접 연극 무대에 올리기도 했던 작품이지만, 직접 메가폰을 잡지 않은 것은 “주민등록 나온 뒤 내린 가장 훌륭한 결정”이었단다. 자신에게는 “머리 굴리지 않고 정직하게 스케일을 뽑아내고, 300만~400만명 관객을 불러들여야 할 <웰컴 투 동막골>을 만들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반면, 애초에 저예산으로 재밌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했던 <박수칠 때 떠나라>는 “규모를 키우면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영화의 볼륨을 키웠다. 장 감독은 헤이리에 지어진 350평짜리 ‘수사본부’ 세트에만 4억여원 가량을 쏟아부었고, 영화의 총제작비도 50여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제58회 칸영화제 중간 결산 [2] - 거장들의 신작 ①

구스 반 산트부터 짐 자무쉬까지 - 거장들의 복귀작들 <라스트 데이즈> <히든> <아이> <만달레이> <어떤 폭력의 역사> <망가진 꽃들> 우선 이름값에 걸맞지 않게 답보상태를 보인 감독은 <진실이 있는 곳>의 아톰 에고이얀이다. 그는 자신의 캐나다-아르메니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따라 역사의 퀼트를 짰던 전작 <아라라트>에서 한 발짝 후퇴한 결과를 내놨다. 한편, 해상 밀입국자들의 인권을 이탈리아 소년의 눈으로 본 <한번 태어난 이상 숨을 곳은 없다>의 마르코 툴리오 조르다나는 안이한 휴머니즘으로 일관할 뿐 아니라, 형식적으로도 갈팡질팡한다. 말할 것도 없이 범작이거나 실패작이다. 조용하게 자신만의 영화를 건설해온 두기봉과 고바야시 마사히로가 있지만, 작품의 힘으로 나머지 거장들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반면, 구스 반 산트, 미카엘 하네케, 다르덴 형제, 라스 폰 트리에,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짐 자무시는 전작에서 사용했던 형식을 다듬고, 그 일부에서 영감을 얻어 확장하고, 유사 연작을 만들고, 실제로 연작을 만들고, 같은 개념을 다른 차원의 방식으로 다루고, 자기 스타일의 원류로 되돌아가면서 깊어진 모습을 보인다. 아직 허우샤오시엔의 <최호적시광>, 빔 벤더스의 <돈 컴 노킹>, 아모스 지타이의 <프리존>, 홍상수의 <극장전>이 상영되지 않았지만, 수상여부와 상관없이 거장들의 복귀를 대변하고 보증하는 감독목록은 이들 여섯이다. 구스 반 산트 최고의 걸작 <라스트 데이즈> 구스 반 산트의 이름이 맨앞에 놓이는 것은 크게 문제의 여지가 없다. 구스 반 산트는 <제리>와 <엘리펀트>를 거치며 확실히 자기의 형식을 새로 깨달은 것 같다. 믿기지 않을지 모르지만 <라스트 데이즈>에 비해 <엘리펀트>는 예습이나 습작에 불과하다. 이미 <엘리펀트>를 만든 구스 반 산트가 27살에 자살한 위대한 로커이자 시대의 아이콘인 커트 코베인의 마지막 나날들을 평범하고 전형적인 전기영화로 만들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반대로 그의 심정과 시간이 이토록 압축적인 이미지의 아포리즘으로 탄생할 것이라고 예측하지도 못했다. <라스트 데이즈>는 커트 코베인의 실제 삶에 대한 일지를 서술하기보다, 그 시절에 그가 느꼈을 법한 심정을 플롯과 이미지와 음악을 통해 은유적으로 치환하려는 시도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성공한다. 가령, 영화는 주인공 블레이크(배우 마이클 피트의 얼굴과 차림새는 커트 코베인의 재림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비슷하게 생겼지만 영화 속 그의 이름은 블레이크다)가 약에 취한 듯 흐느적거리며 거대한 늪지대와 숲속을 헤매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장면은 커트 코베인의 행적을 재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곳을 헤매고 다니는 것은 커트 코베인의 심정이고, 그건 그의 감정상태를 묘사하기 위한 영화적 설정이다. 이런 식으로 구스 반 산트는 블레이크를 둘러싼 장소와 그를 방문하는 사람들과 그것들에 반응하는 행동을 통해서, 실제로 커트 코베인이 피하고 싶고, 경계하고, 두려워하고, 숨기고 싶었던 것들, 그리고 동시에 어쩔 수 없이 부딪치며 살아가야만 하는 슬픈 심정을 세심하게 재구성한다. 블레이크는 처절하게 노래 한곡을 부르고는 잠을 자듯 죽는다. 자신의 시체 위로 혼령이 된 블레이크가 일어나 나체로 하늘을 기어오르고, 텔레비전에서는 커트 코베인의 자살 당시 뉴스들이 흐른다. <라스트 데이즈>는 <엘리펀트>에 이어 감정의 이미지를 훌륭하게 포착한다. 그것을 시간의 다면성으로 재조합한다. 아마도 여기에 이르러 구스 반 산트가 <엘리펀트>를 거치며 얻은 자기 형식의 개념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실재의 잔영’을 다루는 것이다. 만약 <라스트 데이즈>가 커트 코베인에 관한 영화라는 사실을 모를 경우, 또는 커트 코베인을 모르는 사람이 이 영화를 볼 경우 어떤 반응이 나올 것인가? 구스 반 산트는 <엘리펀트>에서 컬럼바인 총격사건을 영화화한 것이 아니라 컬럼바인 총격사건의 잔영을 영화화했던 것이다. 그래서 인과율이 성립할 수 없었고, 또 해석이 없다는 비판도 감수해야 했다. 이것이 최근 구스 반 산트가 실제했던 사건이나 인물을 다룰 때 활용하는 방법론이다. 그 실제 대상의 재현에 매달리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남긴 잔영을 파고들어 구조화를 시도하기. <라스트 데이즈>를 볼 때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커트 코베인의 마음을 외부의 풍경으로 그려내어 한편의 영화로 만든 <라스트 데이즈>는 ‘커트 코베인의 마지막 나날들에 대한 인상’이라고 부제를 붙이는 것이 가능하다. 별점 1위 미카엘 하네케의 <히든> 이번 영화제 최고의 문제작으로 주목받는 미카엘 하네케의 <히든>은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윤리극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특별할 것 없는 어느 집 앞 풍경이 보인다. 그 화면 위로 오프닝 크레딧이 모두 깔리고, 그것이 지워지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도록 카메라는 꿈쩍을 할 줄 모른다. 도대체 뭘 보여주고 싶은 건지 묻고 싶을 때쯤 어디선가 서서히 인물들의 대화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화면에는 목소리의 임자가 없다. 그리고 이제 도대체 어디서 나는 소리냐고 묻고 싶을 때쯤, 갑자기 화면은 일그러지고 뒤로 감긴다. 이때서야 알게 되는 것은 우리가 본 영화의 첫 장면이 영화 속 주인공들이 보는 비디오테이프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자기 집 앞을 찍어서 보낸 이 테이프 화면을 보며 프랑스 중산층이자 텔레비전 문학 프로그램 사회자인 조르주는 아내와 함께 공포에 질린다. 이 처음 시작은 앞으로 보게 될 이미지와의 싸움을 알리는 신호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앞으로 이 영화에서 어떤 장면이 등장하더라도 그 내용이 우리가 보는 무엇인지 아니면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을 우리도 역시 따라 보고 있는 것인지는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때까지 미정이라고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가진 한계, 관객이 갖는 수동적인 시선의 권력을 미카엘 하네케는 교묘히 이용하면서 이 영화가 ‘어디에도 없는 자의 시점’에 끌려가는 영화가 될 거라고 당당히 선언한다. 테이프는 다시 반복해서 배달된다. 그걸 보여주는 방법은 처음과 같다. 조르주는 문득 어린 시절 함께 살다가 자신의 계략으로 쫓겨난 알제리인 입양아 마지드의 뒤늦은 복수극이라고 믿고 그를 찾아가 그만두라고 협박한다. 그런데 그가 마지드를 협박한 장면 또한 녹화되어 다시 배달된다. 사태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어린 아들이 하루 동안 실종되는 사건이 생기자, 조르주는 마지드와 그의 아들까지 경찰에 신고하여 잡아넣는다. 하지만, 그들 부자는 자신들이 한 짓이 아니라고 끝까지 결백을 주장한다. 조르주는 믿지 않는다. 어느 날 경찰에서 풀려난 마지드가 조르주를 집으로 부른다. 거기에서 드디어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다. <히든>에서 이 테이프를 누가, 왜 보내는지에 대한 설명은 끝까지 없다. 경악의 장면까지 치닫기 위한 조건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특별히 이유가 있을 필요도 없다. 그러나 만약 영화가 이 충격의 정점에서 끝났다면 <히든>은 잘 만든 사기극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언제나 얄팍한 충격요법이 하네케의 영화에는 항상 있지만, 그래도 영화를 그 강도의 고조점에서 끝내지 않는다는 것이 근래 하네케 영화에 대한 일종의 믿음이라면 믿음이다. 아마도, <늑대의 시간>을 본 사람이라면 <히든>이 그 영화의 마지막 엔딩신을 확장하여 만든 영화 한편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게 될 것인데, 누구의 것인 것 같기도 하고, 또는 어떤 인칭 시점도 아닌 것 같은 그 모호한 시점의 위치. 그 시점이 도화선이 되어 <히든>을 비윤리에 대한 고발장으로 만든다. 짧은 시간 안에 머리와 눈을 휘어잡는 영화가 유리한 영화제에서 충격요법은 언제나 주목을 끄는 한 방법이다. 그래서 <히든>은 현재 경쟁작을 대상으로 별점을 매기는 영미권과 프랑스 언론 양쪽 모두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다르덴의 ‘인간 구제’ 연작 <아이> 다르덴 형제는 이번 영화에서도 역시 실망을 안겨주지 않는다. <아이>에서 주인공 소년 브루노는 장물을 팔아넘기거나, 가끔씩 물건을 훔쳐서 근근이 살아간다. 그러다가 브루노는 어느 날 갑자기 아기 아빠가 되어버린다. 여자친구 소니아는 너무 좋아하지만 브루노는 돈에 욕심이 나서 자신의 아기를 누군가에게 팔아버린다. 그 충격으로 소니아는 혼절하고, 뒤늦게 잘못을 깨달은 브루노는 다시 아기를 데려온다. 하지만, 소니아의 마음은 이미 돌덩이처럼 굳어버린 뒤고, 아기를 되갖고 갔다는 이유로 브루노는 폭력배들의 금전 협박에 시달리기까지 한다. 그 협박을 모면하기 위해 날치기를 해서 돈을 구하려고 하지만, 경찰에 쫓기는 상황까지 간다. 브루노는 결국 철창신세가 된다. 정말 무엇을 해도 되는 일이 없이 절망은 점점 더 가까이 온다. 다르덴 형제는 쓸모없어 보이거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인간들의 절망을 영화에 담는다. 그들이 하는 일이라곤 주인공들의 등뒤를 졸졸 쫓는 것이다. 그러나 끝내는 그 단 한명까지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영화의 구조를 갖고 간다.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에서 인물 중 하나가 죽어야만 그때부터 진짜 윤리와 비윤리에 대한 문제를 묻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과 반대로, 다르덴 형제는 죽을 것 같은 상황까지 가더라도 끝내 그 주인공을 구제의 문턱 앞에까지 되돌려놓는 것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영화적 윤리의 최선이라고 늘 생각하면서 모든 귀결을 마련한다. 면회장에서 만난 브루노와 소니아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오열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슬프지만 그것은 희망이다. <약속> <로제타> <아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를테면, 영화는 어느 순간 시작해서 언제 끝났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한 호흡의 감동으로 몰아친다. 그것이 언제나 이상할 정도로 평범한 절망 속에 기적 같은 희망의 전조를 심는 다르덴 형제의 방식이다. 작품의 수준에서 <아들>보다는 못 미치지만, 이 영화는 다르덴 형제의 영원한 인간 구제의 연작 중 하나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제58회 칸영화제 중간 결산 [4] - 4인의 신성

4인의 신성 발견 - <상그레> <천국에서의 전쟁> <불타버린 극장의 예술가들> <그림 그리기 또는 사랑 나누기> 작은 변명을 먼저 덧붙이면, 여기서 ‘신성의 발견’이란 이름으로 간추린 네명의 감독 중 아마트 에스칼란테를 제외한 세 사람은 순수하게 신성도, 순수하게 발견도 아니다. 캄보디아 출신의 리티 판은 1985년 <사이트2>를 시작으로 20년간 활동해온 다큐멘터리스트이자 극영화 감독이고 8편의 작품 가운데 2편이 칸에 초청된 적이 있으며 지난해 EBS와 제5회 부산국제영화제는 각각 그의 영화 <앙코르의 사람들>과 <방황하는 영혼의 땅>을 국내에 소개했다. 몇년 전 미국에서는 리티 판의 회고전도 열렸다. 멕시코 감독 카를로스 레이가다스는 데뷔작 <하퐁>(2002)으로 2002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했다. 프랑스의 아르노 라리유와 장 마리 라리유 형제는 지금까지 1편의 단편, 1편의 중편, 그리고 3편의 장편영화를 모두 공동작업해왔다. 프랑스 주간지 <텔레라마>는 칸영화제 개막주에 ‘내일의 시네아스트 40인’을 커버로 내세우며 카를로스 레이가다스와 함께 라리유 형제를 기대주로 꼽았다. <할리우드 리포터>에 따르면 심지어 아마트 에스칼란테도, 애초 경쟁부문에 진출할 가능성 높은 신인 중 하나였다. ‘신성’이란 말은 이들 넷을 거장이란 단어로 묶을 수 없어 핑계 삼아 끌어들인 반의어에 가까운 셈이다. 에너지가 넘치는 데뷔작 <상그레> 아마트 에스칼란테의 <상그레>(Sangre, 90분, 멕시코, 주목할 만한 시선)는 마룻바닥 위에 죽은 사람처럼 반듯하게 누운 한 남자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그는 곧 일어난다. 일어나지만 디에고의 삶은 주로 반쯤 죽어 있다. 행정기관의 문을 지키고 서서 오가는 사람들의 수를 세는 일을 하는 그는 집에 오면 아내 블랑카와 나란히 누워 TV연속극을 보거나 아내의 요구로 섹스를 하는 것이 삶의 전부다. 전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을 블랑카 모르게 만나오던 디에고는 집을 뛰쳐나온 딸아이에게 모텔 방을 잡아준다. 다른 거처를 곧 알아봐줄 터였는데, 어느 날 퇴근 길에 여느 때처럼 들러보니 딸이 죽어 있다. 디에고는 아이의 시체를 검은 비닐로 싸서 쓰레기 하치장에 내다버린다. 제목이 ‘피’로 번역되지만 피 한 방울 볼 수 없는 <상그레>는 감독이 1979년생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굉장히 대담한 태도로 미니멀하게 만들어졌다. 침대 위에서 시작되는 아침, 소파 위에서의 TV 관람, 군역처럼 의무감에 벌어지는 섹스가 강박적으로 반복되는 사이, 삶의 감각을 잃어버리고도 세상을 겁내는 인간의 비참한 이야기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나간다. <상그레>는 리얼리즘의 외피를 썼을 뿐 감독이 자기 의도대로 세상을 제한하겠다는 의지가 시네마스코프 비율의 화면을 지배하는 극영화다. 인물을 잡아내는 클로즈업은 화가 치밀 정도로 갑갑한 반면 풀숏 안에서는 감정이 넘실거린다. 데뷔작의 과욕이 남긴 흔적조차 대담한 에너지에 잡아먹히는 <상그레>는 첫 공식 시사 다음날 <리베라시옹>과 <르몽드>로부터 “틀림없이 영화는 죽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지적인 성찰이 돋보이는 영상시 <천국에서의 전쟁> 이 징그러운 데뷔작의 제작자는 카를로스 레이가다스다. 에스칼란테가 조감독으로 일했던 레이가다스의 두 번째 극영화 <천국에서의 전쟁>(Batalla En El Cielo, 120분, 2005년, 멕시코, 경쟁부문)은 <상그레>보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옷감 위에 종교적, 정치적 서명까지 새겨넣은 작품이다. 장군의 오랜 운전사 마르코스는 장군의 젊은 딸 아나를 어릴 때부터 봐왔다. 아나는 재미 삼아 몸파는 일을 하고, 마르코스는 (가난 때문에) 이웃집 아이를 최근 유괴했다가 죽게 하고 말았다. 아나의 일터에 이끌려간 마르코스는 다른 누구도 아닌 아나와 섹스를 한다. 물론 섹스는 자신만큼이나 뚱뚱하고 못생긴 부인하고도 한다. 마르코스는 아름다운 아나를 사랑한다. 그녀도 자신을 사랑해주면 자기 삶은 구원받게 될 지도 모르는데, 아나는 그를 외면한다. 마르코스는 아나를 죽인다. 자기 계급의 주제를 파악 못하는 인간들의 영화인 <천국에서의 전쟁>은 천국을 믿지 않는다. 성기를 보듬어주는 완전한 사랑이 절망한 인간에게는 가장 직접적인 구원이 될 수도 있다. 군인들이 게양하는 멕시코 국기는 하늘을 뒤덮고, 마르코스가 아나와 함께할 때 세상은 빛으로 가득하다. 인간은 지상에서 천국의 위엄과 기쁨을 경험한다. 마르코스가 높은 산에 올라가 내려다보는 멕시코의 풍경, 바실리카 성당에 모여든 순례자들의 거대한 인파, 천천히 훑어내려가는 마르코스와 아나의 나신, 섹스를 끝내고 누운 두 사람을 중심으로 360도 패닝 안에 담기는 도시. 매우 지적인 성찰들로 가득하면서도 <천국에서의 전쟁>은 A4지 수장 분량의 이야기를 압축시킨 시적인 컷 하나가 보는 이를 먼저 매혹시키는 영화다. 레이가다스의 두 번째 영화는 버릴 것이 없다. 예술의 의미를 묻는 <불타버린 극장의 예술가들> 리티 판의 9번째 작품 <불타버린 극장의 예술가들>(The Artists of The Burnt Theater, 85분, 2005년, 캄보디아, 비평가주간)도 아주 지적인 영화다. 불에 탄 극장에 남아 생활하는 연극단원들의 모습을 담은 이 작품은 ‘예술이란 무엇이며, 예술가란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묻는다. 놀라운 것은, 따분해서 기절할 것 같은 이 질문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리티 판의 재능이다. 비전문배우들을 데리고 6개월간 불탄 극장에 기거하며 영화를 촬영한 리티 판은 20년간 연극을 해온 극장주 호인을 중심으로 10명 남짓한 구성원들의 가난해서 불만스럽지만 게을러서 느긋한 일상을 영화 안에 흩어놓는다. 극장 보수 작업을 하거나 TV를 보거나 가끔씩은 무대에 올리지도 못할 연극을 연습하거나. 박쥐를 잡아 모처럼 고기 요리도 해먹는다. 극단주 호인은 예술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못해 혼자 종이인형극을 하거나 깃털 달린 모자에 긴 칼을 들고 희곡의 주인공 연기를 해본다. TV 보는 극단원들 곁에서 낮잠 자는 개가 찍혔을 정도로 매 순간 작위적인 냄새가 없는 <불타버린 극장의 예술가들>은 마지막에 비로소 “이렇게 고생하는데 내가 예술을 왜 하지?”라고 호인의 입을 통해 묻는다. 섣불리 대답할 수 없는 이 질문만큼 크게 다가오는 것은 영화의 형식이다. 리티 판은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극영화 안에 연극, 영화, 종이인형극 등의 형식을 다시 집어넣고 형식 안과 바깥의 경계를 종종 허물어뜨린다. 다큐멘터리의 자연스러움을 전반에 깔고 지적인 주제의식과 지적인 형식을 고민하는 리티 판의 영화는, 일하던 손을 멈추고 눈물을 흘리는 호인의 얼굴을 비추는 것으로 끝난다. 이 영화가 심장을 두드리며 하나의 기적처럼 다가오는 순간도 바로 그때다. 작지만 매서운 힘을 가진 소품 <그림을 그리거나, 사랑을 나누거나> 아르노 라리유와 장 마리 라리유 형제의 <그림을 그리거나, 사랑을 나누거나>(Peindre ou Faire L'amour, 98분, 2005년, 프랑스, 경쟁부문)는 앞서 세편과 두드러지게 구별되는 영화다. <상그레> <천국에서의 전쟁> <불타버린 극장의 예술가들>이 리얼리즘편에 서 있다면 라리유 형제의 <그림을 그리거나…>는 장르영화에 속한다. 영화는 외동딸을 로마에 보내고 한적한 교외에서 지내는 50대 부부의 이야기다. 마들렌과 윌리암은 서로에게 여전히 애정표현이 후한 커플이지만, 우연한 계기로 젊은 부부와 스와핑을 하게 되고, 그 재미에 빠질 무렵 그들과 이별하게 된다. 허탈해진 두 사람은 이사를 결심하지만, 팔려고 내놓은 집을 보러온 젊은 커플과 새롭게 눈빛을 교환한다. <그림을 그리거나…>의 고전기 할리우드의 장르영화를 현대적인 미니멀리즘으로 변형시켜놓은 영화다. 점점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워지는 상황은 로맨틱코미디의 그것과 비슷하고, 인물들이 감정을 쏟아내야 할 결정적인 순간에 영화가 뜬금없이 먼 산을 바라보며 샹송을 들려주는 낭만은 뮤지컬영화를 연상시킨다. 그 안에 있는 마들렌과 윌리암은 애정과 욕망 때문에 고민하고 당황하고 실수하는 에릭 로메르의 인물들을 닮았고, 말끔한 무대는 연극적이다. 칸영화제 경쟁작으로 치면 소품의 느낌도 있지만 그 작은 몸집이 날렵해도 가볍진 않다. 꽉 짜여진 신과 정곡을 찌르는 대사들이 부르주아들의 티타임 수다거리같은 얘기를 심각하고도 웃기게 100분 동안 몰아간다. 그 힘에는 좀처럼 빈틈이 없다. 독특한 데뷔 감독들 황금카메라상 후보에 오른 배우 출신 감독들 배우가 연출을 하거나 아버지의 직업을 아들이 물려받아 데뷔하는 건 적잖게 마주할 수 있는 스토리다. 올해 황금카메라상 후보들 중에는 그런 이력을 가진 감독이 세명이나 된다. 토미 리 존스, 후안 솔라나스, 니키 카리미가 그들이다. 이름에서 기시감이 느껴지는 후안 솔라나스는 아르헨티나의 감독 페르난도 솔라나스의 아들이다. 그는 아버지의 영화 <구름>의 촬영감독으로 참여하고 데뷔작 <노르데스테>(Nordeste, 104분, 2005년, 아르헨티나, 주목할 만한 시선)를 내놓았다. ‘북서쪽’이란 뜻을 가진 <노르데스테>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40대 독신의 프랑스 여성이 아이를 입양하기 위해 아르헨티나까지 날아갔다가 버려진 집에 살고 있는 가난한 모자를 만나 겪는 이야기다. 헬레네의 불법 입양과 후아나 모자의 가난이 아르헨티나의 사회문제로 커다랗게 뭉쳐져가는 과정을 리얼리즘 방식 안에 담았다. 너무 정직한 대사들이 간혹 영화를 무르게 만들지만 이야기 구조는 전체적으로 아주 단단하다. 니키 카리미는 1993년 <사라>로 데뷔해 타미네 밀라니의 영화 등 8편의 영화에 출연한 이란의 여배우다. 그의 감독 데뷔작 <하룻밤>(Yek Shab, 90분, 2005년, 이란, 주목할 만한 시선)은 이기적인 엄마와 불화하는 십대 소녀가 집 밖에서 보낸 하룻밤을 다룬다. 애인과 지내야 하니 자리를 피해달라는 엄마의 말에 네가르는 화가 잔뜩 나서 무작정 밖으로 나온다. 길에서 세번 차를 얻어타는 네가르는 일부다처제를 신봉하는 택시운전사, 사랑은 상대방을 구속하는 도구가 아니라고 믿는 독신 의사, 자신의 절친한 친구와 바람난 아내를 죽여버린 남자를 만나 대화를 나눈다. 세 종류의 차 안에서 벌어지는 인물들간의 대화를 있는 그대로 찍어냈다. 대중적인 유명세로 가장 관심을 끄는 신인감독은 할리우드의 노장 배우 토미 리 존스다. <멜키아데스 에스트라다의 세번의 장례식>(The Three Burials of Melquiades Estrada, 120분, 2005년, 미국, 경쟁부문)은 텍사스 사막 한가운데에서 죽은 한 남자가 말 그대로 세번 땅에 묻히는 이야기다. <21그램> <아모레스 페로스>의 작가 기예르모 아리가가 시나리오를 썼다. (이 기사가 쓰여지는 시점에서) 아직 상영 전이라 영화를 가늠할 길은 전혀 없다. 토미 리 존스는 1946년생이다. 영화 <스페이스 카우보이>에서 네명의 늙은 우주비행사들 중 가장 열정이 넘친 그의 캐릭터에 겹쳐지는 것은 프랑스 평단이 일찌감치 작가로 인정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배우 출신의 늦깎이 천재감독이 또 한번 할리우드에서 나타나려는 걸까. 어쨌거나 존스의 데뷔작은 올해 황금종려상 후보이기도 하다.

제58회 칸영화제 중간 결산 [5] - 한국영화

한국영화 사상 최다 진출… 김기덕의 <활>부터 장률의 <망종>까지 현지 반응 올해 58회 칸영화제에는 장편 6작품, 단편 1작품 등 총 7작품의 한국영화가 진출했다. 한국영화 사상 초유의 일이다. 홍상수 감독의 <극장전>이 경쟁부문, 김기덕 감독의 <활>이 주목할 만한 시선,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이 비경쟁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과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가 각각 비공식 감독 주간, 조선족 장률 감독의 <망종>이 비공식 비평가주간에 포진됐다.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는 심민영 감독의 단편 <조금만 더>도 포함됐다. 각 부문에 고루 초청받은 것이 특기할 만하다. 김기덕의 <활>, 호응도 좋은 편 5월18일 현재, <극장전>을 제외한 모든 감독들의 영화가 이미 상영을 마쳤고 호평과 관심 속에 기자회견 등을 열었다. 먼저 주목할 만한 시선 개막작으로 선정됐던 김기덕 감독의 <활>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개막일인 5월11일과 다음날 12일 이틀간 공식 2회 상영 동안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극장의 규모에 상관없이 모두 만석으로 채워졌다. 베니스와 베를린에서 각각 감독상을 타며 주가를 올린 김 감독의 인기를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12일 상영 직전 배우 한여름, 전성환 두 배우와 함께 무대에 오른 김 감독은 “세상에는 이런 영화도 있습니다”라며 간단한 영화소개를 하고 무대를 내려갔다. 상영 직후 관객은 영화에 대해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활>에 대한 현지의 평도 대체로 좋은 편이다.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는 “재능있고 생산적인 한국 감독”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리베라시옹>처럼 “가장 생산적이지만, 가장 과대평가받은 감독”이라는 비판적 논조도 있었다. 한편, ‘이번 영화에 대해서 말로 설명하지 않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으며 국내 모든 언론인터뷰를 거절했던 김 감독은 칸에서 처음으로 소수 매체들을 상대로 말문을 열었다. 칸영화제 공식 텔레비전 채널 <텔레 페스티벌>의 인터뷰에 응한 그는 “내 생각에 이 영화는 어려운 영화다. 예를 들어, 내 다른 영화들에서는 사람들이 진짜 대사로 타인과 의사소통하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이 영화는 오히려 관념으로만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김지운은 분위기의 대가” 5월14일 첫 상영을 갖고 기자회견을 연 <달콤한 인생>의 기자회견장에는 김지운 감독을 비롯, 이병헌, 신민아 두 주인공이 참석했다. 상당수 일본 취재진들이 회견장을 채운 것이 이채로웠다. 김지운 감독은 특유의 말솜씨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가령, “왜 <킬 빌>을 모방했냐”는 비난조의 질문에 “한국에서 영화 첫 시사를 하고 나서 이 영화를 ‘멜빌’과 <킬 빌> 사이라고 말했던 게 그렇게 와전된 것 같다”면서 “앞으로는 <다이하드>와 <터미네이터> 사이라고 말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느 평자가 <달콤한 인생>을 나쁘게 봤다는 말을 전해듣고는 “그런데 그 나쁘게 말한 기자 명함이나 연락처 받아놓은 거 있냐”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이병헌의 경우에도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라 그동안 칸에 올 기회가 있었지만, 구경꾼의 입장에서 오기 싫어 일부러 안 왔다. 호텔 숙소 바닥도 전부 레드 카펫이라 떨지 않기 위해 거기에서 연습 많이 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기자회견은 대체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영미권 데일리 <스크린 인터내셔널>은 여섯째날 리뷰에 “김지운은 그의 전작 사이코 호러 장르 <장화, 홍련>에서처럼, 분위기의 대가”라고 말하면서 “액션 팬들이라면 싸움장면에서의 깔끔한 숏들과 편집에 재미를 얻게 될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고,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 역시 “홍콩영화의 총격전을 흉내내어 만들어진 이 영화를 즐겁게 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면서 <달콤한 인생>의 대중적 만듦새를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그때 그 사람들> 역사를 재해석한 수준작” 비공식 감독주간이라고 해서 무시할 일이 아니다. 감독주간에 초청된 한국영화 중 5월13일 가장 먼저 상영회를 가졌던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해서 <카이에 뒤 시네마>는 5월호 칸 특집 섹션에 영문 리뷰를 프랑스어로 옮겨 크게 실어놓으며 관심을 표명했다. 진보적 일간지 <리베라시옹>도 큰 지면을 할애해 “네 번째 영화를 통해, 우리는 한국 감독 임상수의 기이한 경력을 더 명확히 이해하게 된다. 그는 해방(리베라시옹)의 시네아스트이다. 그것이 페미니즘적 해방이든(<처녀들의 저녁식사>), 성적(<바람난 가족>)이든, 세대문제와 관련해서(<눈물>)이든 정치적인 것(이 믿을 수 없도록 사실주의적인 <그때 그 사람들>의 경우에서처럼)이든 간에 말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피에 물들고 미스터리로 둘러싸인 역사의 에피소드에 대한 해석이다”라며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기자회견 직후 임상수 감독은 사석에서 “한국의 역사를 모르면 이해를 잘 못할 거라고들 했는데, 뭐 막상 와보니 다들 재미있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감독주간 책임자이자 프랑스 감독협회 회장 파스칼 토마도 “아이러니를 잘 살린 굉장한 작품”이라고 하면서 칭찬으로 환대를 아끼지 않았다. 류승범은 제2의 로버트 드 니로? 16일 상영됐던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 기자회견장에는 배우인 류승범이 동석하여 관심을 끌었다. 회견장에 모인 관객은 실제로 어떻게 권투 연습을 했는지, 이 영화가 얼마나 실제 이야기에 기대고 있는지 등을 궁금해했다. “이 세상 어떤 영화도 실제 배우들에게 권투를 하게 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으로 시키게 됐다. 하지만 미안해서 배우들의 얼굴을 잘 못 본다”고 류승완 감독은 전했다. 그중 류승범에 관해서 어느 질문자는 “<성난 황소>의 로버트 드 니로만큼이나 연기의 힘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해 “로버트 드 니로가 이 자리에 있었으면 어떤 표정일지 궁금하다”는 류승완 감독의 재치있는 화답을 끌어냈다. 한편, “류승완 최고의 영화가 나온 것 같다”고 기자회견의 인사말을 열었던 사회자가 회견 도중 “동생과 일한 것은 처음이었냐”고 물어, 아는 사람만 아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장률 “조선족을 알리는 게 중요했다” 비공식 비평가주간에 초청된 조선족 장률 감독의 영화는 5월18일 첫 상영과 관객과의 대화를 가졌다. 그의 영화 <망종>은 중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조선족 여자의 슬픈 삶과 몸부림에 가까운 항거를 다루는 영화다. 상영 직후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영화의 무게를 따라가듯 진지한 문답들이 오고 갔다. 주인공 여자에 관해 묻는 질문에 장률 감독은 “중국에는 200만명의 한인이 있다. 이들을 보여주는 것이 내게 중요했다. 조선족은 중국사회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어를 하고 있지 않는 한 외모로는 구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여자가 한국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이제 칸의 한국영화에 관해 남아 있는 주요 관심사는 19일 오후 상영될 <극장전>의 수상여부다. 홍상수 감독 및 배우 일행은 같은 날 레드카펫을 오른다. 합작영화 <무극> 중국·한국·일본·홍콩이 만든 범아시아 블록버스터 합작영화 <무극>의 밑그림이 칸에서 공개됐다. 12분짜리 프로모션 필름의 마켓 상영과 함께 개막 2일째인 5월12일 아시아 언론을 대상으로 열린 기자회견에 감독 첸카이거와 배우 장동건, 장백지, 사나다 히로유키, 사정방, 리우예, 촬영감독 피터 파우 등이 참여했다. 한국, 중국, 미국 등 3개국의 자본 3천만달러와 중국, 한국, 일본, 홍콩 등 아시아 4개국의 인력으로 만들어진 <무극>은 문자 그대로 범아시아 블록버스터 프로젝트다. <무극>의 범아시아 블록버스터적인 성격을 가장 뚜렷이 드러내는 부분은 스토리다. 국적과 역사를 지운 <무극>은 인류에 존재한 적 없는 시공간을 배경으로 신분제를 거스르는 역경의 멜로를 다룬다. 흔들리는 왕조와 암살자를 앞세운 반란세력이 있고, 거대한 전쟁이 일어나며, 노예(장동건)와 장군(사나다 히로유키)과 공주(장백지)는 삼각관계에 놓이고, 초인간적인 능력과 마법이 등장한다. 공동각본을 맡기도 한 첸카이거 감독은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사랑에 관한 영화”라며 “에픽은 아니다. 판타지라고만 말할 수도 없고 액션과 멜로 등 모든 장르를 다 결합했다. 한 영화를 통해 모든 문화를 보게 만드는 시도”라고 부연한다. 영화의 비주얼도 같은 맥락에서 만들어진다. “첸카이거 감독은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스토리를 설명하고자 했다”고 말한 피터 파우(<와호장룡>)는 이번 영화를 인물의 감정을 따라 드라마틱하고 역동적으로 촬영했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프로덕션디자인은 아시아 각국의 전통 미술양식의 특징들을 다양히 드러내며, 붉은색이 강조된 의상디자인은 곡선이 많고 화려하다. 무술감독은 <스파이더 맨2>와 <매트릭스> 시리즈의 무술팀으로 참여한 디온 람이 맡았다. 130일간 내몽골을 비롯해 중국 대륙 곳곳에서 궂은 날씨를 이기고 촬영된 <무극>은 현재 후반작업 중이다. 개봉은 중국과 한국이 12월경, 일본은 내년 신정께로 예정돼 있다. 베이징21세기솅카이, 차이나필름그룹, 베이징티안유오, 문스톤엔터테인먼트, (주)쇼이스트 등이 공동제작하며, 아시아를 제외한 해외배급을 미라맥스가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