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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내게 영화를 가르쳐준 책 [6] - <영화 만들기>

촬영현장에서 생긴 일 시드니 루멧의 <영화 만들기> 연극의 유산과 텔레비전의 현장성을 잘 결합시킨 시드니 루멧의 영화를 개인적으로 퍽 좋아한다. 하지만 그의 영화들은 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편이 못 된다. 주목할 만한 데뷔작 <12인의 노한 사나이>나 <전당포> 같은 고전이 비디오로 출시되지 않았을뿐더러, 명작 <네트워크>도 비디오숍에서 금방 찾기 힘들다. 이런 국내 사정을 고려하면 시드니 루멧이 자신의 영화제작과정을 토대로 쓴 <영화 만들기>는 얼핏 흥미가 덜할 수도 있다. 오히려 한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교과서적으로 충실히 풀이한 다른 이론서가 도움이 클지 모른다. 그럼에도 굳이 <영화 만들기>를 추천하는 것은 이 책이 먼저 연출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실용서이면서도 동시에 영화에 이론적인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시드니 루멧은 거장답게 자신의 특수한 체험을 소재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그것을 자연스럽게 영화미학으로 일반화한다. 영화 스타일에 관한 그의 견해, 배우의 연기가 필름에 기록되는 양상을 묘사한 부분, 영화음악에 대한 연출가로서의 통찰력 등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이론서라도 전해 주기 힘든 신뢰감이 느껴진다. 따라서 영화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적절한 서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추천 도서로 선뜻 시드니 루멧의 이 책을 떠올린 것은 나 자신의 개인적 체험 때문이기도 하다. 1994년 가을부터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대에서 1년간 객원연구원으로 머무를 기회가 있었다. 인터넷으로 서적을 주문하는 것은 아직 생각도 못할 당시에, 가자마자 들른 서점의 영화 코너에서 먼저 눈에 띈 것은 영화감독, 그리고 배우들의 자서전과 전기물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었다. 서울의 외서 수입점에서는 간혹 서가에 꽂혀 있어도 눈길을 주지 않았던 종류의 책들이었다. 구체적인 삶의 모습보다 사변적인 영화이론에 더 가치를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 앤드루 새리스를 비롯한 몇몇 교수들의 강의를 들으면서 작품 분석에서도 그들이 일차적으로 실증적 사실들을 중시한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서울서 영화와 관련해 지겹도록 들은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용어는 들을 수도 없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차츰 나는 영화인들의 전기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평소에 좋아하던 빌리 와일더 감독의 할리우드 생활을 길게 기록한 책, <이브의 모든 것>의 배우 베티 데이비스가 스튜디오의 횡포에 맞서 투쟁한 이야기를 담은 전기물을 읽으면서 나는 영화뿐 아니라 그들의 삶 자체도 사랑하게 되었다. 시드니 루멧의 책을 읽은 것도 같은 시기였다. 1995년 봄 그는 컬럼비아대 영화과를 방문해 학생들과 함께 <전당포>를 감상한 뒤 방금 출간한 자신의 책 <영화 만들기>를 중심으로 강연을 했다. 비록 이 책은 전기물은 아니었지만 감독 자신의 체험을 기반으로 쓴 영화론이라는 점에서 비슷하게 인상적이었다. 마침 국내에도 번역이 되어 있기에 쉽게 이 책을 추천 도서로 선정할 수 있었다. 조금 빗나간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전기물에 대한 관심에 꽤 인색한 편이다. 며칠 전 서울의 큰 서점에 가 보았는데, 엄청난 양으로 늘어난 영화서적 가운데 영화인들의 전기물은 여전히 찾기 힘들었다. <구로사와 아키라 자서전>, 그리고 <나의 인생 나의 영화>라는 제목의 장 르누아르 자서전 정도였다. 타인의 삶과 체험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관심없이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일이 가능할까.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대한 사랑없이 진정으로 큰 인간이 되는 것이 가능할까. 구로사와 아키라, 장 르누아르, 베티 데이비스는 단순히 일본 감독, 프랑스 감독, 미국 배우가 아니다.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그들은 훌륭한 인생 선배, 자랑스러운 영화 선배이기도 하다. 적어도 영화 학부생들에게는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에 관한 메마른 이론보다는 이같은 서적들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시드니 루멧의 책은 그 훌륭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소개/ 시드니 루멧 1924년 필라델피아에서 출생. <전당포> <개 같은 날의 오후> <네트웍> <허공에의 질주> 등을 만들었다. 4살 때 뉴욕의 연극무대에서 아역배우로 활동하던 시드니 루멧은 26살에 에서 연출제의를 받고 감독의 길에 들어섰고 57년 <12인의 노한 사나이들>로 데뷔한 뒤 뉴욕을 본거지로 작업하면서 존 카사베츠 같은 후배를 키우기도 했다. 그의 작품들은 대략 세 덩어리로 묶이는데, 연극을 영상화했거나 가족 문제에 관심을 보이거나 사회 문제를 다루는 영화들이 그것. 장르를 봐도 드라마, 코미디, 로맨스, 뮤지컬 등에 폭넓게 퍼져 있다. 76살인 그는 여전한 현역으로 올해에는 <휘슬> <아름다운 세이든만 부인>, 두편의 영화를 세상에 내놓을 예정이다.

내게 영화를 가르쳐준 책 [7] - <히치콕과의 대화>

시네필, 작가를 만나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히치콕과의 대화> 히치콕(1899∼1980)은 이제 신화다. 살찐 이중턱 위로 삐죽 나온 아랫입술과 불룩 나온 배가 그려내는 특유의 실루엣으로 한눈에 그임을 알아보게 하는 이 감독이 영화사에서 거의 신격화된 존재임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은 바로 지난해 전세계 영화계가 이 거장의 탄생 100주년을 ‘경건하게’ 기념한 ‘사건’이다. 세계의 영화인들은 20세기, 즉 영화의 세기를 히치콕에 대한 기억을 반추하고 그에 대한 존경을 표함으로써 보낸 것이다. 영화탄생 100주년과 맞먹을 정도로 자신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영화인이 도대체 또 어디에 있을까? 나에게 히치콕은 중고등학생 시절 텔레비전의 흑백 브라운관을 통해 다가왔다. 당시 나는 앨프리드 히치콕이란 이름을 ‘서스펜스의 거장’ 정도로 알고 있었다. 여기에 그가 자기 영화에 어떤 방식으로든 한번씩 얼굴을 내미는 독특한 감독이며, 한 장면 한 장면 손수 스토리보드를 그리는 완벽주의자고, 형식상의 실험과 카메라테크닉 구사에 특출하다는 것 등이 나의 ‘상식’에 포함된 것들이었다. 하지만 좀더 지나면서 나는 히치콕이 단순한 테크니션이 아니라 ‘작가’로 간주된다는 것을 알았고, 조금 더 지나자 그가 만든 영화들이 아예 정신분석학이나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 됨을 알게 되었다. 히치콕을 바로 ‘작가’로서 재발견한 사람들이 <카이에 뒤 시네마>에 포진하고 있던 프랑스의 젊은 비평가·감독들이었고, 그 중 한 사람으로 프랑수아 트뤼포가 있었다. 그 자신이 누벨바그를 주도하는 중요한 감독의 한 사람이었던 트뤼포는 이 선배감독에 대한 한없는 흠모의 마음을 안고 히치콕을 찾아가 장시간의 인터뷰를 진행한다. 그 결과가 바로 <히치콕과의 대화>이며, 1968년에 영어본이 간행된 이 책 자체가 ‘히치콕=작가’라는 인식을 영미권 전체로 확산시킨 주요 공신이기도 하다. 히치콕을 만나러 가던 도중 트뤼포가 연못에 빠진 일로부터 시작되는 이 책에서, 우리는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롭게 핵심을 짚어내는 두 사람의 대화를 직접 보고 있는 듯한 착각 속에, 예컨대 히치콕이 어떻게 해서 자신의 영화에 카메오 출연하게 되었는가(이 방면에서도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가’이다), 또는 <의혹>에서 케리 그랜트가 들고 가는 우유잔이 어떻게 어둠 속에서 홀로 빛을 발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히치콕의 작품세계 전모와 그것을 형성하는 그의 세계관 자체를 살펴볼 수 있다. 히치콕을 보고 읽어야 할 이유는 많다. 좀더 큰 문화적 맥락에서 보더라도 이를테면 정신분석학은 그의 영화들에서 무의식과 욕망의 논리를 다시 읽어내고, 페미니즘은 그것이 성차화되는 메커니즘을 재발견하며, 어떤 철학자는 인물들간의 관계 그 자체가 이미지화하는 방식을 본다. 이 모든 성찰들은 다음과 같은 지점으로 귀착된다. 히치콕의 영화는 감독과 카메라와 관객이 서로 연루되는 방식을 드러내 준다. 즉, 그의 영화들은 우리가 영화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하여, 궁극적으로 ‘본다’는 것이 무엇이며 어떤 욕망에 의해 추동되는가에 대하여 반성하게 해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가치는 질문하는 사람과 대답하는 사람이 공히 가진, 영화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흔치 않은 책이라는 데 있지 않을까? 히치콕은 순수한 영화적 방식 그 자체의 구현에 가장 근접한 작가다. 그는 인물의 감정 및 그가 처한 상황과 관계를 순전히 시각적으로만 표현하고자 했으며, 이런 점에서 배우란 부차적인 존재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잉그리드 버그만이나 그레이스 켈리 또는 티피 헤드런의 아름다움(이른바 쿨 뷰티)을 그보다 더 잘 포착해낸 감독이 누가 있는가?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결국 영화 그 자체에 대한 그의 애정 덕분이 아닐까? 바로 그런 그가 영화사랑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울 트뤼포와 만난다. 히치콕이 영화사상 역시 손꼽을 시네필 트뤼포와 만난 것은 그로서는 또한 행운이었다 할 것이며, 이 두 사람이 만난 것은 우리로서도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인 것이다. 저자 소개/ 프랑수아 트뤼포는 누벨바그를 이끈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비평가로 활동하면서 1950년대에 지배적이었던 ‘프랑스영화의 어떤 경향’을 비판하고 ‘작가 정책’을 천명하였으며, 1959년 <400번의 구타>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감독 활동에 들어섰다. 그는 사실상 누벨바그 작가들 가운데 가장 따뜻한 감성의 영화들을 만들었다.

변혁 vs 이정재 [1]

다큐|픽션, 경계의 영화 <인터뷰> <인터뷰>는 멜로드라마이되 멜로드라마가 아니고, 다큐멘터리이되 다큐멘터리가 아니고, 픽션이되 픽션이 아니고, 영화만들기에 관한 영화이되 또한 영화만들기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변혁 감독의 <인터뷰>는 하나로 매듭지어 버리기 곤란하게 풍성한 결을 지닌 영화다. 그리고 그 결 사이사이에는 카메라란 영화란 진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들이 깔려 있다. 변혁 감독은 또, 심은하 이정재라는 당대 최고의 스타배우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했으면서도 스크린에서 그들의 스펙터클을 지워냈다. 이것만으로도 주류영화에서는 파격적인 실험이라고 할 만하다. <인터뷰>는 따라서, 배우 이정재에게도 커다란 도전이었을 것이다. <인터뷰>를 위해 극중 감독 이정재가 실제 감독 변혁을 인터뷰했다. 극중 감독은 성실히 물었고, 실제 감독은 골똘히 대답했다. 그들은 인터뷰를 나누며 <인터뷰>에서 이런 생각거리들을 길어 올렸다. 진짜이자 가짜, 진실이자 거짓 이정재 | 영화를 찍으면서 실제로 인터뷰 촬영에 참여했는데, 정말 어려웠다. 은석을 카메라를 든 인터뷰어로 설정했을 때에는 특별한 기대가 있었을텐데. 변혁 | 보통 인터뷰에서는 주로 말하는 사람이, 그가 하는 말이 중요하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수많은 인터뷰만 봐도 찍히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느냐를 중시한다. 나는 찍는 사람의 입장도 들어가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찍히는 사람만큼은 안 나오지만 카메라 든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주인공이 카메라를 든 사람이라서 자칫 잘못하면 영화만드는 과정만 보여주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우려도 했다. 어쨌든 찍히는 사람의 이야기와 만드는 사람의 입장이 얼마나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지를 다루고 싶었다. “카메라 뒤로 몸을 숨기고 싶어요”라는 대사처럼 인터뷰 대상만이 아니라 찍는 사람도 인터뷰의 영향을 받는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이 | 비디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치과부부들은 다큐멘터리 인물인데, 우리가 이야기를 만들어서 필름으로도 찍었다. 그렇게 양쪽에 나오니까 전문배우처럼 보였다. 다른 사람도 그렇게 느낄까. 변 | 나 보고도 그 치과부부가 진짜 배우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결혼식이 진짜냐고 묻기도 하고. 난 인터뷰할 때마다 틀리게 말한다. 다 진짜예요 했다가, 다 배우예요 했다가. 뭐냐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거다, 도대체. 심은하가 배우인지 모르는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이 사람은 배우예요’ 하면 감동이 없어지고, 진짜라고 하면 감동이 샘솟 듯 솟아나는 건 아니다. <인터뷰>는 모호한 지점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앞으로는 인터뷰할 때마다 어떻게 대답할지 미리 짜자. (웃음) 박청화 부부 인터뷰 중에 재현된 부분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실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도대체 필름으로 찍었다고 가짜고, 다큐로 찍었다고 해서 진짜인가. 그렇지 않다. 이 | 누구나 경험했다고 하지만 쉽게 꺼내놓기 어려운 게 사랑이야기다. 특별히 이런 주제를 선택한 이유는. 변 | 누구나 다 품고 있는 이야기이고 누구나 다 한마디씩은 할 수 있는 얘기라고 생각해서다. 사실 <인터뷰>는 주제가 다른 것이었어도 큰 상관이 없었을, 그런 영화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할 만한 주제가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이 | 사랑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애초 생각한 것만큼 풍부하게 표현됐다고 생각하나. 변 | 다양성은 보여준다. 인터뷰 대상들의 사랑에 대한 생각은 다 다르니까. 글쎄, 잘 모르겠다. 이 | 그게 잘 표현이 안 된 것같아서 묻는다. 인터뷰 중에 “담배피운 여자와 키스하면 재떨이를 빠는 것 같아서 싫었는데, 지금 여자는 담배를 피우는데도 키스할 때 그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라는 대목이 있다. 근데 영화를 보는데 “재떨이 맛이 나서 싫다”라는 대사에 관객이 웃는 바람에 뒤는 잘 안들리더라. 여자를 사랑하게 되니까 키스할 때도 담배 맛이 안 난다는 게 핵심인데. 변 | 굉장히 중요한 지적이다. 웃기는 인터뷰만 고른 게 아니냐는 지적도 들었다. 박청화씨 얘기처럼 잔잔한 얘기가 있음에도 몇 가지 얘기가 강력해서 그런 것 같다. 모든 예술 작품이 다 그렇지만 영화는 만드는 과정에서 끝나지 않는다. 미적인 향수, 곧 관객이 받아들이는 과정이 작품의 끝이기 때문이다. 그런 훈련이 돼 있지 않은 채 그저 웃으려고 극장에 오면 재떨이 운운하는 얘기에 막 웃어버리고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심은하 예쁘다고 박수치고, 이정재 머리 죽이는데 하고 박수치는 거로 끝난다. 그러나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영화를 보면 더 중요한 얘기가 들린다. ‘아 이런 얘기를 하고싶었던 거구나’하고 알게 되는 거다. 영화를 만드는 우리의 몫이 50%, 70%라면 관객이 읽고 재창조하는 몫이 50%, 30%는 된다. 멜로드라마의 탈을 쓴 카메라에 대한 성찰 이 | <인터뷰>는 멜로드라마라는 장르로 구분이 되지만, 난 오히려 “그대는 진실을 찾고 있는가”라는 대사가 굉장히 중요한 화두라는 생각이 든다. 그 얘기가 몇번이나 반복되고. 변 | 관객 60∼70%는 이 영화를 이정재, 심은하 주연의 독특한 멜로드라마로 읽겠지만, 좀더 훈련된 사람은 <인터뷰>를 영화, 이미지, 진실에 대한 성찰로 읽을 것이다. 굳이 광고카피를 말한다면 이 영화는 ‘멜로드라마의 탈을 쓴 카메라에 대한 성찰’쯤이 될 거다. 멜로드라마의 ‘탈’을 썼다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멜로만을 기대하면 채워지지 않는 게 생긴다. 이정재가 정말로 심은하를 좋아하면 감정이 더 드러나야 하는 거 아냐, 하는 아쉬움을 느끼는 거다. 흔히 드라마의 완결성을 기대한다. 나는 약간 시작하는 듯한 감정까지를 영화화했는데, ‘그래서 이정재가 심은하랑 결혼을 했어, 안 했어’, 이런 걸 묻고 싶어하는 거다. 이 | <인터뷰>를 멜로드라마로 국한시키지 않고 스스로 장르를 지정한다면 어느 서랍에 넣겠는가. 변 | 좋은 질문이다. 그냥 영화라는 서랍에 들어갔으면 좋겠다. 이 영화의 진짜 의도 중의 하나는 영화에 대한 정의들을 부정하는 거다. 영화의 첫 시작은 이래야 되고, 끝은 이래야 되고, 멜로는 이래야 된다는 따위의 규정들에 대해 질문하고 싶었다. 멜로의 탈을 썼기 때문에 멜로처럼 만들면 안 되는 게 나의 숙제였다. 다큐, 픽션 중 무엇으로 분리하겠느냐고 묻는다면 그런 분리 자체가 무의미다고 대답하고 싶다. 그런 구분 자체가 옳지 않다고 말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그냥 여러 가지가 혼재된 ‘영화 한편’이다. 어떤 틀로 맞추려고 들면 거기에 비하면 이게 아쉽고, 여기에 대면 그게 아쉽고,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이정재를 ‘영화배우 이정재’로 말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사랑하기가 힘들어진다. 이정재라는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고 수사어를 붙이고 규정하고 카테고리로 묶으면 총체는 없어져버린다. 이 | 이번 영화에서 그런 틀을 깨고 싶었나. 변 | 가능하면 영화의 수많은 정의들을 거부하거나 질문하고 싶었다. 상당히 많은 영화학도들이 그랬을 텐데, 타르코프스키를 추앙하는 영화학도의 입장에서 과연 그의 영화가 우리에게 좋기만 했나, 그로 인해 아류들이 나온 건 어떻게 봐야 하나, 예술은 이런 거다라고 제한해버린 건 아닌가. 이런 걸 질문하고 싶었다. 영화의 맥이 끊기는 건 안 좋고, 감정이입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영화 끝내고 나서 핑계만 많아지는지도 모르겠다. 공부하면서, 작업하면서 스스로에게 ‘영화는 이래야 한다’라고 제시했던 것들에 대해 다시 질문하고 싶었다. 다시 인터뷰를 한다면 또다른 것을 성찰하겠지. 예를 들어 내가 담배피우는 걸 싫어해서 이 영화에는 단 한 장면에도 담배피우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조금 자세히 보면 신기호씨 인터뷰 장면에서 담배 연기가 살짝 올라온다. 이건 아무리 내가 감독이라고 해도 다큐의 인물을 컨트롤할 수 없다는 증거다. 정말 기분나쁘면 들어내는 수밖에 없다. 배우라면 다시 찍을 수 있겠지만 진짜 인물의 삶은 그럴 수가 없다. 다큐와 픽션에 차이가 있긴 있는 거다. 이 | 프랑스에서 더 작업을 많이 했는데, 충무로와 프랑스의 차이를 많이 느꼈는지. 변 | 촬영과정 자체는 별로 차이가 없는데 프리 프로덕션의 차이가 크다. 프랑스에서는 프리 프로덕션이 훨씬 치밀하고 길다. 기획한 촬영 횟수와 실제 사이에 오차율이 5% 미만이다. 심지어 배우와의 계약도 횟수를 예상해서 개런티를 선정한다. 프로덕션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더욱 치밀해진다. 프리 프로덕션에 1년에서 3년이 걸린다. 후반작업기간도 훨씬 길다. 편집에 최소 4개월, 사운드에 2개월이 걸리고 믹싱은 하루에 10분 이상을 하지 않는다. 충무로라고 해서 힘들었던 건 별로 없다. 좋은 조건에서 찍었다. 여전히 창작하는 입장에서 내 안의 문제들을 정리하는 게 더 힘들었다.

[LA] 폴 해기스의 <크래쉬>, 인종문제에 대한 촌철살인 돋보여

한밤중 고속도로에서의 무차별 총격사건이 11건째. 숱하게 미디어에 오르내리는 강도, 총격사건보다 이 불특정 고속도로 총격사건이 ‘엔젤로’들의 발길을, 아니, 운전길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브랜트 우드, 사우스 캠튼, 다운타운, 샌타모니카, 차이나타운 등 지명만 들어도 그곳에 사는 사람의 계급과 피부 색깔이 감이 잡히는, 자기만의 안전지대를 벗어나 비슷한 혹은 어울림직한 ‘색깔’의 안전지대에 가기까지 대개 거쳐가야만 하는 곳이 로스앤젤레스의 고속도로이다. 이 고속도로야말로 로스앤젤레스의 컬러풀한 다인종들이 가장 평등하게 공유하는 공간일지도 모른다. 물론, 돈 치들이 <크래쉬>(Crash)에서 읊조렸듯이, 이 잠깐 동안의 ‘공유’도 자신의 차창 너머 안전이 보장될 때의 얘기다. 거기서 어디선가 차창을 뚫는 총알을 만난다? 어떡하라고. 그런 식으로 굳이 접촉을 하지 않아도 좋단 말이다. 내 안전지대로 가게 해달란 말이다. <크래쉬>, 고속도로 총격사건 파헤쳐 참으로 시의적절하게,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시나리오 작가 폴 해기스의 장편 데뷔작, <크래쉬>가 요즘 무의식을 짓누르고 있던 고속도로 총격사건의 두려움의 실체를 속시원히 밝혀준다. 5월6일 개봉된 <크래쉬>는 로렌스 캐스단의 <그랜드 캐년>, 로버트 알트먼의 <숏컷>, 최근의 <매그놀리아>에서 그려진 복잡하고 삭막한, 복합 인종 도시 로스앤젤레스의 이미지를 다시 파고든다. 그러나 <크래쉬>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스파이크 리의 <똑바로 살아라>의 로스앤젤레스판이라 할 만한, 이 도시를 정의하는 인종문제에 대한 그 촌철살인의 시선 때문이다. 와의 인터뷰에서 해기스 감독은 이 영화가 인종문제라기보다는 9·11 사태 이후 ‘타자와의 접촉’으로 신경증과 불신의 골이 깊어진 미국사회에 대한 이야기라고 밝힌다. 하지만 일찍이 미국의 TV프로그램이나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강도 높은 인종 차별주의적 발언과 스테레오 타입들의 하룻밤 소동을 보고 있노라면, ‘인종’이야말로 미국사회에서 이방인을 정의하는, 그리고 엔젤로들의 삶의 반경을 규정하는 핵심적인 척도임을 부정할 수 없다. 실제로 <크래쉬>는 90년대 초반 실제로 자신의 차를 도난당했던 해기스 감독의 경험에서 잉태됐다. 해기스 감독은 ‘과연 그 강도들은 누구였는지, 초범이었는지, 어디 사는지, 평소에는 뭘 할지’에 대해, 강도사건 이후 현관열쇠를 바꾸러 왔던 열쇠공이 ‘갱단 멤버가 아니었을까’ 하는 등등의 꼬리를 무는 궁금증을 시나리오로 옮겼다고. 캐나다 출신으로 오랫동안 로스앤젤레스에서 텔레비전 극작가로 활동해온 해기스 감독은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감독 데뷔를 할 뻔했으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메가폰을 넘겨준 상실감을 자신의 목소리로 되찾은 셈이다. ‘정치적 올바름’ 아래 숨은 두려움 <매그놀리아> 스타일을 연상케 하는 이 멀티 캐스팅 드라마에서는 앵글로색슨, 라티노, 흑인, 아시안, 페르시안 등 로스앤젤레스의 대표적인 인종들과 경제적 계층의 조합이 만들어낼 수 있는 예상 가능한 모든 스테레오 타입의 인물들이 타인종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으로 로스앤젤레스의 하루를 불태운다. 진보주의자든 인종차별주의자든 막상 상황에 부딪히고 나면 자신도 모르게 ‘정치적 올바름’의 가면 밑에 숨겨진 두려움과 현실과 타협하고 마는, 그래서 미워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돈 치들, 샌드라 불럭, 맷 딜런 등의 배우들이 영화 속에서 뼈아프게 그려내고 있다. 겉으로만 보면 할리우드 메이저급 영화이나 실제론 돈 치들이 나서서 제작비를 모아야 했을 정도로 작은 영화다. 그런데 이 작은 영화가 엔젤로들과 부딪치는 소리는 꽤 짱짱하다. 고속도로따라, 방향감각을 유지하며, 내 안전 지대의 반경을 매일 그려봐야 하는 엔젤로들에게 이른바 ‘움직이는 게토’라 불리는 로스앤젤레스 시내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왜 시내버스의 창문이 그렇게 큰지, 영화 속 인종차별주의 노이로제에 걸린 아프리칸 아메리칸 건달의 명답(?)이 생각날 것이므로.

[팝콘&콜라] 극장에 금속탐지기? 불법 북제 그만좀 하자고요

지난 17일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 언론시사회가 열린 서울시내 한 극장 입구에서는 인천공항 출국 검색대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 펼쳐졌다. 극장에 들어가려는 이들은 예외없이 검은색 양복을 차려입은 건장한 사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금속탐지기가 설치된 문을 통과해야 했다. 또 조그만 가방이라도 들었다면 무조건 열어서 내용물을 확인시켜줘야 했다. 극장을 폭파하려는 테러범이 두려워서일까? 이처럼 ‘살벌한’ 수색작전을 펼친 이유는 다름 아닌 불법 동영상 유출을 막기 위해서다. 시사회에 참석한 누군가가 영화를 몰래 녹화해 개봉도 하기 전에 인터넷에 퍼뜨린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이를 크게 두려워한 영화사가 “시사회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 아니냐”는 볼멘 소리를 감수하면서까지 까다로운 수색을 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영화사의 이런 물샐 틈 없는 방어막에 끝내 구멍이 생기고야 말았다.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한 19일 인터넷에 불법 동영상 파일이 버젓이 올려진 것이다. 이날 하루만에 1만6천명 이상이 이 동영상을 내려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외신은 보도했다. 개봉 전날인 18일에도 이미 한 인터넷 사이트에 동영상이 올려졌다. 여기에는 특히 시간기록까지 나와 있는 걸로 미뤄 시사회에서 몰래 녹화한 것이 아니라 영화사 내부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보여 더 큰 파장을 일으켰다.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열린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관객들의 가방을 검사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북한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 앞에서였다. 북한 영화를 몰래 녹화하던 사람을 잡아낸 뒤 재발을 막기 위해 취한 조처였다. 그런데 이 사람은 당당하게 명함을 내밀며 ‘녹화 좀 하면 뭐 어떠냐’는 식으로 나왔다고 한다. 명함에는 국내 유수의 영화제작사 이름이 찍혀 있었다. 영화계 내부에서조차 ‘불법 복제는 범죄’라는 의식이 뚜렷하지 않은 것이다. 음반업계는 이미 불법 엠피3 파일 문제로 심각한 위기에 빠진 지 오래다. 좋은 음악을 만들어도 돈을 벌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만사를 젖혀두고 음악에 몰두하는 이들은 점점 줄어든다. 결과적으로 즐길 만한 좋은 음악들을 야금야금 잃게 되는 대중이 최대의 피해자다. 영화계도 이와 비슷한 전철을 밟을 날이 곧 올 것이라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요즘 극장에 가면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공익광고가 있다. 불법 동영상을 내려받는 것은 텔레비전이나 자동차를 훔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내용의 광고가 바로 그것이다. 문화 콘텐츠도 엄연한 재산이며 이를 즐기려면 당연히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의식이 자리를 잡을 때 좀더 양질의 고급 문화 콘텐츠를 즐길 기회가 생긴다는 설교가 그리 고리타분하게만은 느껴지지 않는다.

TV 애니메이션 오딧세이 [2]

천하무적 아줌마 <아따맘마> 백화점 세일 상품에 눈에 불을 켜고 무섭게 달려드는 아줌마, 지하철에서 철판 까는 아줌마, 뒤늦게 몸매 관리한다고 주책 떠는 아줌마, 수다를 떨기 시작하면 사춘기 아들의 숨기고 싶은 사정까지 시시콜콜 이야기해버리는 아줌마. 아줌마, 아줌마…. 흔히 아줌마만큼 무서운 존재가 없다고들 하지만, 세상에는 ‘귀여운 아줌마’도 있다. 귀여운 아줌마라니 믿을 수 없다고? 그야말로 판타지가 아니냐고?! 무슨 말씀을. 이만큼 리얼한 ‘아줌마’가 등장하는 이야기도 없다. 깔끔한 화면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생활 속의 이야기를 10분 단위의 짤막짤막한 에피소드로 묶어놓은 <아따맘마>는 온 가족이 오순도순 둘러앉아 즐겁게 볼 수 있는 그야말로 건강한 엽기 가족 애니메이션이다. 엄마와 아빠, 아리(누나), 동동(남동생)이라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4인 가족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저도 몰래 “맞아! 맞아!”라고 박수치며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원작 만화도 같은 제목으로 국내에 출간되어 있으니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는 만화책쪽도 추천한다. 덤으로, ‘아따맘마’의 뜻이 궁금해서 밤잠 못 이룰 사람들에게 한마디. 이 의미불명 제목은 사실 일본 원제인 ‘아따신치’(우리집)와 발음이 되도록 비슷했으면 좋겠다는 일본쪽의 희망에 따라 완성된 산물이라고 하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다. 텔레토비는 가라! <뽀롱뽀롱 뽀로로> “노는 게 제일 좋아∼♬”로 시작되는 오프닝 주제가는 한번 들으면 자꾸만 따라 부르게 되는 중독성이 뛰어나다. 그 파워는 나도 모르는 새 휴대폰 벨소리로 등록을 하게 될 정도! ‘남북한 합작 3D애니메이션’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기도 한 <뽀롱뽀롱 뽀로로>는 호기심 많은 꼬마 펭귄 뽀로로와 그의 친구들이 벌이는 크고 작은 소동을 그리고 있는 작품으로, 둘리의 뒤를 잇는 제2의 국민 캐릭터 자리를 노리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얼음 나라 작은 숲속 마을에∼”로 시작하는 내레이션은 이전 유아 대상용 프로그램이었음에도 어른들을 더욱 열광하게(?) 만들었던 <꼬꼬마 텔레토비>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의미에서 엽기 코드로 화제가 되었던 <…텔레토비>와는 달리 개성있고 귀여운 캐릭터가 등장하여 펼치는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이야기의 작품으로 정상적으로(?) 즐길 수 있는 재미난 작품이다. 덧붙여, <뽀롱뽀롱 뽀로로>의 ‘전설적인’ 오프닝과 엔딩 동영상은 <뽀롱뽀롱 뽀로로> 공식 홈페이지(http://www.pororo.net/)에서도 맛볼 수 있으니, 꼭 한번 찾아보고 그들의 귀여움에 마음껏 빠져보기 바란다. 예외를 허락한 인기! <이누야샤> 최근 애니메이션 채널을 틀면 희고 긴 머리카락에 각막을 자극하는 선명한 빨간색 옷을 입고, 자기 키만큼 큰 칼을 들고 화면을 누비는 강아지… 가 아니라 인간… 도 아닌 녀석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 주인공은 인간과 요괴 사이에서 태어난 ‘반요’(半妖)라는 설정의 이누야샤. <이누야샤>는 <란마 1/2>로 유명한 다카하시 루미코가 그린 동명의 원작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작품이다. 국내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들마다 모두 장기간 황금시간대에 이 작품을 편성하고 있다는 것에서 그 인기를 짐작해볼 수 있을 정도로 현재 애니 방송계에서 많은 인기와 반응을 얻고 있다. 평범한 여중생 가영이 어쩌다 일본의 전국 시대로 떨어지고, 그곳에서 이누야샤와 함께 조각조각 깨져 흩어진 사혼의 조각을 모으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는 기본 스토리 맥락은 정통적인 모험 판타지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애니메이션이 국내 방영되기 전부터 국내의 만화 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상당한 인지도를 얻고 있었던 작품인 만큼 국내 TV 방영이 결정되고는 팬들의 투표에 따라 성우진을 결정하고, 일본과 국내에서 V6, 하마사키 아유미, BoA, 신화 등 쟁쟁한 인기 가수들이 주제가를 부른 한편, 일본 전통 의상을 비롯해 일본색이 강한 작품임에도 이례적으로 거의 수정을 거치지 않은 방영이 이루어지는 등 여러 가지 화제를 낳은 작품이기도 하다. 이렇듯 기존 애니메이션 팬들을 신경 쓰면서도 일반 시청자들의 눈을 잡는 데에도 성공한 <이누야샤>의 마지막 6기(파이널) 시리즈는 올 7월부터 방영될 예정이다. 깐따삐야 별의 배은망덕 족제비?! <행복한 세상의 족제비> 이야기는 조금 무뚝뚝하지만 평범한 대학생 용준의 집에 족제비 한 마리가 뛰쳐들어오면서 시작된다. 용준은 그 족제비를 키우기로 하고 ‘제삐’라는 이름까지 붙여준다. 제삐의 정확한 학술 명칭은 흰족제비, 족제빗과에서 가장 작은 종으로 애기족제비라고도 불리는 종이다. 하지만 이들 종족은 귀여운 외모와 달리 육식에다 성격이 포악하다. 그래서인지 제삐도 용준의 집에 들어와 사는 식객 주제에 야생의 기질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난폭하게 굴며 집 안에서 대장 행세를 하려든다. 우리는 이런 주객전도의 건방진 녀석을 이미 잘 알고 있다. 바로 투덜대면서도 사람 좋게(?) 거둬준 길동이 아저씨를 애완동물 취급하던 깐따삐야 별 출신 우주인 도우너가 그러하다. 하지만 자신을 거둬들여준 고마운 은인에게 오만방자, 기고만장한 태도를 취하는 도우너 같은 제삐의 말은 인간들에게 “샤- 샤-”라는 소리 이상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의사소통의 문제로 인한 인간과 제삐간의 오해가 이 작품의 가장 큰 볼거리다. 상황을 멋대로 판단, 해석하는 제삐 이하 동물 캐릭터들의 입담과 그들의 돌발적인 행동에 영문을 몰라 하면서도 동요하는 일이 없는 포커 페이스 용준 역시 만만치는 않다. 신선한 웃음을 선사해줄 <행복한 세상의 족제비>는 현재 국내에 <춤추는 족제비>라는 제목으로 원작 만화도 소개되어 있으니 관심있는 사람들은 만화책쪽도 체크해보길 바란다!

새 드라마 ‘사랑찬가’ 대본리딩 현장

지난 21일 오전 10시, 문화방송의 새 주말드라마 <사랑찬가>팀의 대본리딩 현장을 찾았다. <사랑찬가>는 가난하지만 밝은 에너지의 여주인공 순진(장서희)의 사랑과 성공을 그린 드라마로, 시청자들에게 ‘활기를 불어넣는다’는 기획의도로 만들어졌다. <떨리는 가슴>, <한강수타령>, 그리고 이에 앞선 문화방송의 ‘여러’ 주말드라마들의 ‘천적’이었던 저조한 시청률을 깨려는 야심작이다. “짜증나”를 연발하면서도 꼬박꼬박 챙겨봤던 <인어아가씨> 장서희, ‘기자준비 그만두고 한의학과나 가?’ 하는 상상을 하게 한 <허준> 전광렬을 만날 수 있는 기회! 두근두근 용춤을 추는 심장을 다스리며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 사옥 3층 대본연습실 문을 열어젖혔다. 한눈에 ‘서열’ 알수있는 좌석배치 ‘헉!’ 숨막힐 정도로 무거운 연습실 분위기 탓에 목구멍까지 널뛰던 심장이 순식간에 자리를 되찾았다. 테이블과 의자가 꽉 들어찬 5평 남짓한 공간은 열악한 회의실을 연상시켰다. 테이블 정중앙 상석에는 연출을 맡은 조중현 피디가 앉아 있었다. 작가는 조 피디의 왼쪽 옆, 조연출은 오른쪽 옆에 자리를 잡았다. 연출자 양 옆 좌석에 두 주연배우와 조연배우가, 또 그 옆에는 중견배우들이 나란히 앉았고, 테이블에 끼지도 못한 보조 의자는 단역배우 4명의 몫이었다. 한눈에 봐도 맡은 역할의 비중과 서열을 알 수 있는 좌석배치였다. 장서희는 리딩에 앞서 주홍색 필통에서 꺼낸 주홍형광펜을 꺼내들고 눈으로 대본을 읽어내려갔다. 나란히 앉은 전광렬은 4색 볼펜으로 대본에 밑줄을 그었다. 두 주연 배우는 물론, 박근형·임현식·정혜선 등 원로급 무게를 지닌 중견배우들과 임지은·김민·김지훈·이승민 등 젊은 배우들은 하나 같이 브리핑 직전 초치기에 몰두하는 회사원 같았다. 스타다운 거드름은 명함도 못 내밀 분위기. 리딩 현장 분위기를 좌우하는 요소는 여러가지다. 20분전에 대본…‘초치기’ 긴장감 연출자나 출연진 등 멤버가 어떻게 짜이느냐에 더해 대본의 만족도, 시청률도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사랑찬가>는 과묵한 연출자와 ‘선생님급’ 중견연기자들의 대거 출연으로 분위기가 엄숙해진 경우. 대본 리딩은 말 그대로 ‘대본을 읽는 것’이다. ‘선수’들은 이 과정을 ‘대본을 맞춰본다’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영화나 연극과 마찬가지로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대본 리딩은 공식적인 연습의 시작이다. 연기자들은 대본 리딩을 통해 다른 출연진들과 처음으로 연기 호흡을 맞춰보고, 연기의 톤을 조절한다. 또 연출과 작가는 이 과정에서 발음과 속도 등 배우들의 연기를 교정할 뿐만 아니라, 대본의 문제점을 찾아내 촬영 전 이를 수정하기도 한다. 1시간 남짓 동안 1번만 까르르 “시작하죠.” 10시21분, 연출을 맡은 조중현 피디가 입을 열자 7, 8회의 대본리딩이 시작됐다. “순진(장서희)이 밀고 오는 전채 요리가 올려져 있는 수레…” 조 피디가 첫번째 장면의 상황설명을 읽고 난 뒤, 동파(박근형)과 새한(전광렬)의 대사가 이어진다. 리딩 시작 직전에 대본이 나오는 바람에 리딩 전 배우들에게 주어진 개인 연습 시간은 20여분. 대부분의 연기자들이 순서에 따라 대본을 그야말로 ‘읽어’ 내려갔다. “주말드라마는 대본리딩 4~5일 전까지 대본이 나와주면 좋지만, 방송에 임박해서 제작을 시작하다 보니 대본도 리딩 직전 나올 때가 많습니다. 촬영장으로 쪽 대본이 날아오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미니시리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대본리딩 하기에 썩 좋은 여건은 아닙니다.” 조연출을 맡은 김영민 에이디의 말이다. 하지만 양금석 등 몇몇 연기자들은 그 와중에도 지문에 맞춰 몸짓까지 시연해 보이는 노련함을 과시했다. 숨 막힐 듯 엄숙한 분위기는 8번째 장면까지 계속됐다. 그리고 이어진 9번째 장면, 제작진과 출연진의 웃음보를 터뜨려준 건 아니나 다를까 배꼽 잡는 애드리브의 달인 임현식. 그는 딴 생각에 잠긴 나머지 대사 칠 타이밍을 ‘확실히’ 놓쳤다. 연기자들은 조 피디의 눈치를 살피느라 웃음을 참아보는 듯했지만, 임현식의 ‘웃긴 아우라’를 거부할 수 없는 건 연기자나 감독이나 마찬가지였다. 열 네번째, 수정(김민)의 오피스텔 씬. “누구세요?”라는 수정의 질문에 강혁(김지훈)이 “나, 엄마 없는 애”라고 받아치는 장면이다. 대사를 읽던 신인 연기자 김지훈에게 박근형의 벼락같은 호통이 떨어진다. “그게 뭐야, 그게! ‘나’ 하고 ‘엄마’ 사이를 띄워야지, 그걸 왜 붙여 읽어!” 그 뒤 김지훈은 거의 모든 대사마다 박근형의 애정어린 꾸중을 들어야 했지만, 얼굴은 붉어져도 불만은 없는 낯빛이었다. 조 피디는 “보통은 연출자가 직접 연기자들의 연기를 교정한다”면서도 “박근형씨처럼 알아서 연기지도를 잘 해주는 중견 배우들이 많은 작품에서는 특별히 피디가 코멘트 할 게 없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조 피디는 이날 신인 연기자 이승민에게 “갑자기 너무 교태를 부린다, 그거 오버야”라는 지적을 했을 뿐 말을 심하게 아꼈다. 대본 리딩은 오전 11시27분에 끝났다. 그리고 10여분 동안 장서희가 샹송을 부르는 장면과 야외촬영분 등 대본에 관한 비공개 회의가 이어졌다. 이날 연습한 7~8회는 이튿날 오전부터 몸동작을 곁들인 리허설 및 촬영에 들어가 세트촬영 하루, 야외촬영 3~4일을 마친 뒤 다음달 4, 5일 방송된다.

벤처시대 충무로 3인방 [1]

충무로에는 돈이 많다? 온나라가 벤처열풍에 몸살을 앓는데 충무로가 무사할 리 없다. 대기업, 금융에 이어 몰려오는 제3의 자본은 벤처. 그러나 벤처는 영리하다. 흥행성이 없으면 투자하지 않는다. 충무로에서 자본을 투자할 만한 파워를 가진 이들로 강우석, 차승재, 강제규를 꼽는 데 주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활화산' 충무로를 재편하는 3인방이 펼칠 인터넷 신삼국시대가 궁금하다. ‘돈은 넘치는데 영화가 없다.’ 최근 충무로의 상황은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발에 채는 게 돈”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자본은 지금 매우 빠른 속도로 영화시장의 중심부로 진입하고 있다. 영화제작에 투자하는 목적으로 모은 펀드만 해도 100억원 규모 자본이 4개나 된다. 일신창투 수석심사역이던 김승범씨가 독립해 만든 튜브엔터테인먼트의 투자조합, 미래에셋창투에서 모은 코리아픽처스 1·2호, 유니코리아에서 내건 드림캐피탈, 무한기술투자가 차승재씨를 내세워 만든 무한영상벤처투자조합 등이 모두 100억원대 펀드들. 이 밖에도 종합기술금융, 국민기술금융, 산은캐피탈, 제일창투, 시그마창투 등 이른바 벤처투자사들이 어떤 식으로든 충무로에 한쪽 다리를 걸쳐놓고 있다. 억억억, 벤처자본이 밀려온다 밀려드는 벤처자본에는 국경도 없다. 현재 시네마서비스에 투자할 계획으로 자산가치 실사작업을 하고 있는 워버그 핀커스(Warburg Pincus)는 미국에 있는 다국적 벤처자본이다. 인터넷, 정보통신, 콘텐츠사업 등 고부가가치 사업이라면 어느 나라든 가리지 않는 다국적 벤처자본이 한국의 영화사를 투자대상으로 고른 것은 한국에서 영화가 강력한 성장산업이라고 판단한 탓일 것이다. 워버그 핀커스와 시네마서비스의 계약이 아직 성사된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예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은 크다. 종합기술금융(KTB)으로부터 57억5천만원 투자를 유치한 강제규필름은 투자자들 사이에서 기업 공개시 자산가치가 1500억원대에 이를 것이라 평가되고 있다. <쉬리> 흥행으로 인한 결과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없는 평가액이긴 하지만 투자자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3월20일 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서는 우노필름이 종합엔터테인먼트회사 싸이더스로 탈바꿈한다는 것을 알리는 행사가 있었다. 영화제작은 물론 매니지먼트, 인터넷영화, 드라마제작, 음반사업 등을 동시에 추진할 싸이더스는 새롬, 다음, 한글과 컴퓨터와 함께 인터넷 4인방이라 불리는 정보통신기술 벤처기업 로커스(대표 김형순)가 투자해 설립됐다. 출범식을 통해 밝힌 싸이더스의 목표는 “엔터테인먼트의 콘텐츠화, 기업화, 산업화, 국제화”다. 한눈에 보기에도 충무로는 지금 폭발 직전의 화산같다. 대기업자본이 금융자본으로 바뀌면서 어지럽게 이뤄진 이합집산은 부글거리는 용암의 뜨거움이 느껴지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대체 어디서 시작해서 어떻게 끝날 변화인지 냉정히 따져보지 않으면 비약과 추락의 운명이 눈 깜짝할 사이 바뀌어버릴 판이다. 우노필름 차승재+로커스+웹시네마=싸이더스 우노필름 차승재 대표가 로커스와 손잡고 만든 회사 싸이더스의 사업계획은 최근 동향을 분석할 수 있는 프리즘이 될 만하다. 우노필름과 싸이더스의 차이는 일단 외양으로 볼 때 사업영역이 대폭 확장됐다는 점이다. 정우성, 박신양, 장혁, 전지현 등의 매니지먼트를 했던 EBM 대표 정훈탁씨와 H.O.T, S.E.S, 신화 등을 발굴한 전 SM기획 대표 정해익씨가 차승재 대표와 한배를 타고 매니지먼트와 음반사업을 하기로 했다. 싸이더스 출범 전부터 차승재씨와 함께 인터넷 영화판권구매에 주력했던 웹시네마(대표 김창규)도 한축을 이루고, 스타급 PD를 영입, 드라마와 연예프로그램 제작까지 준비중이다. 차승재씨는 3년 전부터 이처럼 다양한 사업을 포괄했을 때 생길 시너지효과에 주목하며 종합엔터테인먼트회사를 꿈꿔왔다. 영화사에서 종합엔터테인먼트회사로 규모를 키운 싸이더스의 자본금은 80억원. 로커스가 55% 지분을 확보, 최대주주이며 구성원들이 나머지 지분을 나눠 가졌다. 싸이더스 출범은 투자자인 로커스에 주목하지 않으면 단순한 사업확장처럼 비친다. 하지만 컴퓨터, 인터넷, 전화, 텔레비전 등의 경계를 허무는 정보통신기술을 개발하는 업체 로커스가 차승재를 파트너로 택한 데는 미지의 영토를 선점하려는 야망이 있었다. 로커스뿐 아니라 인터넷과 관련된 정보통신업체가 공통적으로 도달하는 결론은 사업의 중심을 하드웨어와 네트워크 구축에서 콘텐츠사업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문자와 소리뿐 아니라 영상까지 고속으로 전송되는 현재 기술발전 속도로 볼 때 정보고속도로에 올려놓을 그럴듯한 차량이 필요하다는 것. 정보고속도로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쪽이 엔터테인먼트산업이라는 진단은 이미 오래 전에 난 결론이기에 로커스와 차승재의 이해관계는 맞아떨어졌다. 시네마서비스+핀커스, 강제규필름은 일본·홍콩과 접촉 시네마서비스, 강제규필름 등이 구상하는 사업계획도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에 능동적으로 대응한다는 점에서는 싸이더스와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워버그 핀커스가 시네마서비스에 투자할 금액은 약 340억원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시네마서비스의 사업영역이 영화제작, 배급에 국한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올해 20여편의 영화를 제작, 수입, 배급할 시네마서비스의 매출목표는 300억원. 투자액이 더 많다는 것은 사업이 확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씨앤필름(대표 장윤현)의 움직임은 주목할 만하다. 오래 전부터 애니메이션 연출을 염두에 뒀던 장윤현 감독은 애니메이션 제작은 물론 드라마를 비롯한 방송물 제작, 인터넷사업 등을 구상, 사업을 추진해왔다. 독자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다 강우석 감독과 마찰을 빚기도 했던 그는 “시네마서비스에서 독립할 가능성은 없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과정만 놓고보면 또다른 파트너와 제휴할 수도 있지만 강우석 감독이 이런 사업에 관심을 갖는다면 투자자로 나설 수도 있는 상황. 강제규필름도 사업확장이 불가피한데 강제규 감독은 “직접 제작하는 영화 외에 수입, 투자, 배급, 극장 등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상당한 규모의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기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아시아시장을 하나로 묶는 구상을 추진중인데 올 4월 이후 일본, 홍콩쪽 파트너와 구체적인 접촉을 할 예정이다. 신삼국시대, 물밑 제휴는 계속된다 최근 산업이 이들 세 사람, 강우석, 차승재, 강제규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보인다. 90년대 중반 시네마서비스, 삼성, 대우가 이룬 3강체제에서 90년대 말 시네마서비스, 삼성, 일신창투의 짧은 3국시대를 거쳐 신흥 3거물이 영토를 분할한 셈. 이들 세 사람이 각기 다른 비장의 무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강우석에겐 서울극장 배급망이 있고, 차승재는 기존의 탄탄한 제작시스템에 덧붙여 박신양, 정우성, 김혜수, 전도연 등 중량감 있는 배우를 거느리게 됐으며, 강제규는 홍콩, 일본에서도 욕심낼 정도로 핵폭탄 같은 잠재력을 가진 감독이다. 콘텐츠가 결국 재능과 실력을 갖춘 사람한테서 나온다는 걸 아는 벤처자본이 이들 3인에게 몰리는 건 자연스럽다. 튜브엔터테인먼트, 미래에셋창투, 유니코리아 등이 독자행보를 걷고 있고, 대규모 멀티플렉스와 드림웍스 영화가 버티고 있는 CJ엔터테인먼트가 3인체제와 부분 협력하며 경쟁하는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들 중 또다른 강자가 출현할 수도 있다. 관계자들은 지각변동이 상당시간 지속될 것으로 본다. 현상적으로 세 사람이 전면에 나와 있지만 필요에 따른 이합집산도 언제든 있을 수 있다. 차승재씨가 운영하는 무한영상벤처투자조합에서 시네마서비스 영화에 투자하고, CJ엔터테인먼트가 강제규필름에서 제작하는 <단적비연수>에 투자하는 것처럼, 상호 투자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전술적, 전략적 제휴 또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마이클 만 [1]

칼날 위의 삶, 감독은 실수할 수 없다 마이클 만은 시시한 이야기를 재미있는 영화로 만드는 재능이 있다.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가 나왔던 <히트>는 강력한 스타 카리스마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사실 시시한 영화다. 수많은 영화에서 써먹었던 형사와 범죄자의 대결 구도에 전문가의 윤리의식 문제를 입힌 것일 뿐이지만, 또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는 허장성세에 가까운 것인지만, 이 영화는 굉장한 흡인력이 있었다. 담배회사의 압력으로 시사프로그램 <60분>의 중견기자와 제보자가 겪었던 시련이라는 실화를 소재로 한 <인사이더>도 미국인들에게는 그리 새롭고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대기업의 이익과 개인의 도덕이 대립하는 이야기 구도에 굉장한 힘을 불어넣는다. 시시한 이야기에 웅장한 배경을 입히고 성격파 배우의 뛰어난 연기를 끌어내는 만은 현대 미국영화 감독의 계보에서 가장 뛰어난 세부묘사와 시각 표현력을 지닌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장르를 현대화한, 재능있는 미국 영화감독이 누리는 특권을 지닌 사람이다. 종종 만 감독은 지나친 표현의 과장법 때문에 허세를 부린다는 평단의 빈정거림을 사기도 하지만 지나침은 때로 보상받는 법이다. 대다수 미국영화는 대체로 너무 안전한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할리우드가 두손 든 완벽주의자 영국 영화월간지 <사이트 앤 사운드>의 닉 제임스는 <히트>의 첫 장면에서 알 파치노가 연기하는 빈센트 한나 형사의 모습이 바로 영화 촬영장에서 볼 수 있는 만의 모습이라고 했다. <인사이더>에서 만의 지휘를 받으며 알 파치노와 공연했던 러셀 크로는 사람들이 호기심에 차 “완벽주의자인 마이클 만과 함께 일했던 경험은 어땠나요?”라고 물으면 쌍소리로 대꾸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제작과 각본과 감독을 곧잘 겸하는 만은 자기 영화의 세계를 폐쇄적으로 다스리는 좀처럼 보기 드문 감독이다. <히트>의 빈센트 한나 형사가 “형사들은 실수할 수 없다”고 말한 것처럼, 만은 한치의 틈도 없어 오히려 질식할 것 같은 그런 세계를 영화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할리우드에 소문난 만의 완벽주의는 늘 등장인물의 성격을 통해 스크린에 관철된다. <히트>에서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하는 은행털이전문가 닉 매컬리는 15초 안에 버리고 떠날 수 없는 것은 옆에 두지 않는다는 신념의 소유자다. 닉의 집에는 변변한 가구 하나 없다. 닉은 파치노가 연기하는 빈센트 형사와 마찬가지로 일상생활이 아닌 일에서 낙원을 찾는 사람이다. 끊임없이 불안해지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들의 삶은 칼끝 같은 날 위에 선 삶이다. 자신의 성격으로 세상을 제압할 것 같은 등장인물들의 세계에 만은 관객을 몰아넣는다. 언제 베일지 알 수 없지만 결코 지지 않으려는 인간들의 세상이며 화려한 대도시의 이면에 감춰진 악몽 같은 세상이다. 그를 키운 건 8할이 TV 만은 영화보다는 텔레비전을 통해 먼저 유명해졌다. 만은 1943년 시카고 태생이지만 영국의 런던영화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영화학교 재학중에 텔레비전 CF와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CF에서 잔뼈가 굵은 리들리 스콧, 알란 파커, 에이드리안 라인 등 영국 출신 감독이 할리우드로 건너와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 만은 TV시리즈인 <스타스키와 허치> <경찰 이야기>의 각본을 써 인정받은 뒤 79년 TV영화 <제리코 마일>로 데뷔했다. TV영화지만 해외에서는 극장판으로도 배급됐을 만큼 팽팽하고 지적인 긴장을 주는 감옥 스릴러였다. 만의 본격적인 극장영화 데뷔작 <도둑>은 제임스 칸이 금고털이전문가로 나온 범죄영화였는데 훗날 이 장르를 세련시킨 만의 재능을 볼 수 있다.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탠저린 드림의 배경음악이 깔린 가운데 보여주는 초반의 금고털이 장면은 말보다는 설명할 수 없는 이미지로 관객을 내리누른다. 이 영화에서 제임스 칸이 연기하는 주인공은 말을 삼가는 것 같은 표정과 몸짓 연기로 고독한 현대 영웅의 이미지를 변주해냈다. 그리고 거의 추상화 수준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도시의 거리와 밤풍경은 주인공이 마음속에 감추고 있는 불타버릴 것 같은 초조한 격정을 시각적으로 옮겨내면서 범죄스릴러 영화에 현대적인 명상을 불어넣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플롯이 아니라 분위기로 관객의 기선을 제압하는 만의 스타일은 나치 병사가 루마니아의 한 성에서 원시 괴물과 만난다는 기발한 발상의 공포영화인 두 번째 작품 <킵>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만은 독일 표현주의 영화스타일을 이야기에 끌어들여 전쟁영화와 공포영화의 관습에 두루 걸쳐 있으면서도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이상한 공포영화를 만들어냈다. 이야기는 들쭉날쭉하지만 회색과 초록색이 압도하는 화면 분위기를 통해 이 영화는 두 악의 세력, 나치와 괴물이 대립하는 이야기를 초현실적으로 끌고 간다. 독특한 영화였지만 미국 배급업자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배급할지 몰라 허둥댔고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으며 만은 다시 TV로 돌아갔다. <마이애미 바이스> <맨 헌터>, 미국의 어두운 초상 그리고 TV매체를 통해 만의 진면목이 나타난다. 만이 제작하고 각본, 연출에도 관여한 <마이애미 바이스>와 <범죄 이야기>는 고금의 범죄영화 스타일을 인용하고 또 인용하는 자기 반영적인 스타일에다 MTV의 속도감을 입힌 박진감 넘치는 내용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 때부터 만은 TV매체의 전설적인 작가 감독으로 자리잡았다. 알란 파커, 리들리 스콧, 에이드리언 라인 등 CF를 영화에 접목한, 만과 비슷한 감각을 지닌 영국 감독들이 때로는 할리우드에서 레이건과 부시시대의 소비 이데올로기에 공헌하는 장식적이고 현시욕에 가득찬 속 빈 강정 같은 영화를 만들었다면, 만은 지나치게 폭력묘사가 많다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보수적 매체인 TV에서 당대 미국의 어두운 초상을 거의 초현실적으로 보일 만큼 실험적인 화면에 담아냈다. TV에서 작업했는데도 만의 스타일은 영화적으로 보일 만큼 과감하고 치밀하고 혁신적인 것이었다. <맨 헌터>는 TV에서 성공한 만이 영화로 금의환향한 작품이다. 토마스 해리스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맨 헌터>는 연쇄살인범을 좇는 FBI 요원의 이야기로 그 유명한 한니발 렉터라는 인물이 나온다. 하워드 혹스나 장 피에르 멜빌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이 영화에서 만은 주어진 일을 이뤄내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색채, 세트, 카메라 움직임, 음악 등 영화의 시청각적 요소를 모두 동원해 악마 같은 주인공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어두운 본성을 그려낸다. 이 영화의 복잡한 카메라 움직임과 표현주의적인 구도와 참을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인 분위기를 조장하는 음악은 등장인물의 내면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살아가는 악몽에 가까운 세계를 시청각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만의 연출은 강력하고 놀랍도록 정교한데, 폭력은 클라이맥스에 이르기 전까지 구체적으로 묘사되기보다는 그저 암시만 될 뿐이다. 그런데도 하다못해 벽이나 마루바닥 같은 소도구를 통해서도 관객은 형사가 느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를 온몸으로 전달받게 된다. <맨 헌터>로 만은 장르 영역 안에서 작업하지만 치밀하게 이미지를 짜는 능력으로 장르를 현대화할 수 있는 감독이란 신뢰감을 얻었다. <라스트 모히칸>, 아방가르드에서 주류감독으로 <라스트 모히칸>은 3천만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7천만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으며 TV 출신의 아방가르드 감독에서 대번에 주류 감독으로 만의 위치를 올려줬다. 제임스 페이모어 쿠포의 소설을 원작으로 36년에 만들어진 영화를 리메이크한 <라스트 모히칸>은 영웅주의, 비겁함, 충성심, 복수와 사랑 등 고리타분한 요소를 죽 심어놓은 대작이었으나, 이 영화에서도 단테 스피노티가 맡은 촬영의 아름다움은 눈부신 것이었다. 만은 단테 스피노티의 실력을 빌려 넓은 와이드 스크린에 19세기의 풍경화가인 토마스 콜, 알버트 비어스타트의 회화미에 맞먹을 만한 아름다움과 질감을 만들어냈다. <라스트 모히칸>은 <마이애미 바이스> 유형의 형사 범죄영화에서 벗어나 마이클 만이 다른 것을 해낼 수 있는 감독임을 보여줬지만 만은 다시 본래의 장기인 형사와 범죄자의 이야기를 다룬 <히트>로 돌아갔다. 만은 이 영화에서 돈 심슨과 제릭 브룩하이머가 구축한 액션영화의 유행 장르에 자기만의 변형을 가하는 강렬하고 인상적인 순간을 만들어내면서 전문가주의 윤리를 찬양한다. 날렵한 양복 차림의 닉 매컬리 일당이 은행을 털고 난 뒤 도시 한복판에서 벌이는 시가전은 과장된 수사법으로 액션영화를 장식하는 흔해 빠진 설정처럼 보이지만, 꼬마 소녀를 인질로 잡은 은행강도가 아빠처럼 다정하게 소녀에게 속삭이는 것과 같은 색다른 파멸과 모순의 순간을 잡아낸다. 만의 영화에서 영웅주의는 이야기의 핵심이 아니다. 늘 죽음을 곁에 두고 질주하면서 그것을 통해 고독한 삶을 초극하려는 인간상은, 하워드 혹스가 이미 오래 전에 완성했던 미국영화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받으려는 만의 야심을 보여준다. 세밀한 인물화 그리느라 3시간 걸린다 <필름 코멘트>의 리처드 콤브스는 80분짜리 형사 대 강도의 이야기가 감독의 세밀한 인간탐구 때문에 세시간짜리로 늘어난 작품이라고 평했다. 특히 일중독자이자 완벽주의자인 빈센트 한나 형사와 은행털이 강도 닉 매컬리가 커피숍에서 마주하고 앉아 대화하는 장면은 두 인간의 대결 묘사에서 희열을 느끼는 만의 취향을 엿보게 하는 것이다. 만은 이 두 사람의 삶에서 숙명적으로 피할 수 없는 비극의 냄새를 암시적으로 화면에 배어나게 하기 위해 애를 쓴다. 이들의 삶에는 출구가 없다. 삶의 막다른 골목을 향해 달려가고 피로와 싸우면서 대결하는 순간의 긴장을 통해 삶을 진정으로 감각하는 자들의 삶은 덧없다. 단테 스피노테가 유려하게 잡아낸 LA의 풍광은 이 덧없는 삶의 유한함을 아이러니로 비유해낸다. 만의 영화는 다른 할리우드영화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막강한 시각적 묘사의 힘이 있다. 등장인물의 성격에 매혹당하고 그 매혹을 화면으로 옮겨 보여주려는 만의 충동은 <히트>와 <인사이더>에서 계속 작업한 배우 알 파치노에 대한 호의에서도 잘 나타난다. 만은 두편의 영화 연출이 파치노의 연기를 돋보이게 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이것은 알 파치노의 영화다. 스크린을 응시하면 당신은 그 남자가 하는 대로 끌려가게 될 것”이라고 만은 말했다. <인사이더>는 시사프로그램 <60분>의 기자 로월 버그만 역의 알 파치노와 담배회사에서 해고당한 뒤 회사의 비리를 폭로하는 제프리 와이갠드 역의 러셀 크로가 나누는 일련의 대화 장면으로 대부분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두 사람은 호텔과 식당과 차와 야외를 오가며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전화로, 팩스로도 소통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묘사한 두 남자의 관계는 <히트>의 빈센트 한나와 닉 매컬리의 관계와는 다르다. 버그만은 와이갠드를 설득해 담배회사가 니코틴의 중독성을 알고 있었다는 진상을 공개하게 하고 와이갠드에게 닥치는 인신공격과 살해위협으로부터 와이갠드를 지켜주려고 애쓴다. 버그만은 세상의 게임의 규칙을 알고 있지만, 정작 고독하게 버티며 시련을 맞는 이는 와이갠드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와이갠드는 버그만이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하고 호텔 방에 틀어박혀 자살을 결심한다. 와이갠드가 절망에 차서 호텔 방의 벽을 쳐다볼 때 벽은 갑자기 와이갠드의 두딸이 놀고 있는 스크린으로 바뀐다. 두딸은 낙오자가 된 아버지를 조롱하듯한 시선을 보낸다. 바로 그때 멀리 떨어진 해변에서 강제 휴가를 보내고 있는 버그만이 열심히 휴대폰으로 와이갠드의 소재를 알아내려 애쓰고 있다. 마침내 와이갠드의 소재를 알아낸 버그만은 와이갠드와 통화하고 대화중에 문득 와이갠드가 자살을 결심했다는 것을 알아챈다. 버그만은 필사적으로 와이갠드의 마음을 돌리려하고 바로 그 순간에 버그만의 얼굴 너머 저편에는 넓은 바다의 풍경이 펼쳐져 있다. 성격과 처지가 다른 두 남자가 필사적으로 마음을 나누려하는 이 장면의 시각적 설득력은 논리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것이다. 화려한 고독, 그 뒤의 그림자 만의 영화는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관계 맺기가 불가능한 인간들이 절망적으로 부여잡는 안간힘과 고독의 흔적 같은 것이 배어 있다. <히트>에서 해변에 위치한 그림처럼 아름다운 닉의 집이 닉에게 별다른 위안을 주지 못하듯이, 만 영화의 유려한 화면은 등장인물의 어두운 삶에 아무런 윤기도 더해주지 못한다. 만은 현대적이고 장식적인 수사법으로 인물을 꽁꽁 포위해놓고 거기에서 비극적인 장엄미를 얻어내는 감독이다. 장식적인 스타일과 지나친 기술숭배가 팽배한 현대 미국영화에서 뒤늦게 정상에 오른 이 완벽주의자 감독은 영화가 기교 이상의 무엇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