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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과 수다 패밀리 [2] - <묻지마 패밀리> 배우 7인방

신하균 신하균이 쑥스러워한다. “교복 입고 어린 학생들 사이에 끼어 있으니까 꼭, 삼십대 아저씨 같아서… 참….” <묻지마 패밀리>의 첫 번째 이야기 <내 나이키>에서 꼬마들 돈을 뺏는 불량학생으로 출연한 것이 못내 부끄러운 모양이다. 그런데 정작 부끄러울 것 같았던 장면을 말할 때는 오히려 대범하다. 연상의 유부녀 방은진과 이곳저곳 부딪치는 격렬한 키스를 아주 오래 나누는 <사방에적>의 호텔장면을 “NG가 거의 없이 금방” 찍었다고 한다. 자주 터져나오는 웃음으로 자기를 덮는 듯하면서도 묻는 사람이 무안하도록 천연덕스럽기도 한 그는 만날수록 재미있어지는 배우다. 신하균은 생각보다 길어진 <서프라이즈> 촬영이 끝나자마자 <지구를 지켜라> 촬영에 돌입했다. <지구를 지켜라>에서 그가 연기하는 인물은 자신이 외계인이라고 점찍은 인물을 체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열혈 청년. <복수는 나의 것> 촬영을 결정하고 며칠 뒤에 받은 시나리오가 너무 마음에 들어 아쉬웠는데, 인연이 닿았는지 올해 다시 한번 시나리오가 들어와 “옳다구나” 하고 결정해버렸다. “딱히 한마디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정말 기대를 많이 하는 작품”을 찍고 있고, <복수는 나의 것> 때 기력이 달리는 게 느껴질 정도로 빠졌던 살도 원래대로 돌아와 기운이 넘치는 신하균. 정말 지구를 지켜도 될 것 같다. 류승범 길지 않았던 모처럼의 휴식 끝에서, 류승범은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 돈가방을 향해 몸을 날린 <피도 눈물도 없이>의 양아치를 거치고, 수개월 동안 몸담았던 드라마 <화려한 시절>을 마친 지 1달이나 지났을까. “크랭크인은 벌써 했는데, 첫 촬영분이 27일”이라고 <품행제로>의 시작을 알리는 말 속에 경쾌한 설렘이 감지된다. “영화도 익숙지 않은데, 처음 하는 TV 연기라” 힘들었지만, <화려한 시절>은 류승범에게 또 다른 배움터였다. 브라운관 사이즈에 처음 적응하면서 연기에 ‘오버’가 많다, 감각만으로 연기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진 감독이 세심한 조언을 준 <묻지마 패밀리>는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작업. 주먹으로 1등이 되고 싶은 <내 나이키>의 고교생, 이상한 손님들에게 시달리는 <사방에적>의 벨보이 등 역할은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절제된 연기를 고민한 결과다. 류승범이 ‘수다’를 접한 것은 <다찌마와 리>에서 임원희를 만나고, 신하균과 친분을 쌓으면서부터. 그동안 매니저를 맡아온 김영일씨 독립에 따라 최근 적을 바꾸긴 했지만, “한식구란 생각만으로 힘이 됐던” 마음엔 변함이 없을 듯. “망가지는 역이 좋다”는 그의 앞에는, <품행제로>와 형 류승완 감독의 <마루치 아루치>의 시험장이 대기중이다. 정규수 70년대 말 <품바>로 세간에 등장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스무해가 넘도록 정규수는 연극무대에서 신뢰를 쌓아왔다. 극단 유의 창단 멤버인 그는 백상예술대상 인기상을 받았던 <문제적 인간 연산>을 필두로 <홀스또메르> <햄릿 1999>, 연희단거리패와 함께한 <우리 시대의 리어왕> 등 많은 화제작을 거치며 든든한 중견배우로 자리매김해왔다. 연극무대에서 공연자로 우연히 만난 장진 감독과의 인연은, <택시 드리벌>부터 <박수칠 때 떠나라>까지 그의 연극과 영화 전편을 함께하며 ‘수다’로 이어졌다. “아무것도 모를 때” 주연급으로 발탁됐다가 편집에서 많이 잘렸다는 <미스 코뿔소, 미스터 코란도>, <명자 아끼꼬 소냐>의 일본놈 앞잡이 이후 잊고 있던 영화를, 장진을 통해 다시 만난 셈. 스크린에 머무는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간첩 리철진>의 택시강도처럼 어리숙하면서도 익살맞은 그의 분신들은 유쾌한 웃음을 동반하곤 한다. 이문식과 짝을 이룬 <일단 뛰어>의 엉뚱한 도둑 커플도, 살수대첩을 온몸으로 설명하던 <내 나이키>의 국사선생님도 마찬가지. 가을에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를 각색한 <라쇼몽>, 겨울에는 장진의 신작 등 두편의 연극으로 무대에 선다 정재영 정재영에 따르면 <묻지마 패밀리>는, “친하지 않으면 못할 일”이었다. 이를테면 <사방에적>의 난투극. 정재영이 연기한, 여자친구를 죽이려는 남자, 킬러의 표적이 된 조폭 보스 등 제각각 다른 이유로 모텔을 찾은 이들이 슬로모션으로 뒤엉키는데, 카메라 트릭은커녕 콘티도 없이 한 쇼트로 찍었다. 배우들이 서로 치고 빠지는 호흡을 하나하나 맞추지 않으면 안 됐다는 얘기다. 정재영이 고삐리 깡패로 분한 <내 나이키>에서 류승범과 맞고 때리는 연기도 마찬가지. “어찌 보면 찍는 사람들이 더 즐거운, 이기적인 영화”라는 정재영은, 손발이 잘 맞는 촬영이 즐거웠던 흔적이 역력하다. 대학 선배인 장진 감독과는 <허탕>부터 함께 한 사이. <간첩 리철진>의 택시강도, <킬러들의 수다>의 솜씨좋은 킬러를 거치면서, 그는 '장진 패밀리'로 주목받아왔다. '수다'라 이름하기 전부터 오래동안 한 식구였던 만큼, "감독, 배우, 다른 파트의 일을 함께 지켜보며 언제든 얘기할 수 있다"고 장점을 꼽는가 하면 "모여있으면 주목은 받겠지만 각자의 발전을 위해 흩어질 줄도 알아야" 한다며, 열린 성격을 강조한다. 그 자신 역시 '장진 밖의 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는 처음 주연급인 독불이를 맡아 섬뜩한 광기를 뿜어내기도. 하지만 그래선지 지금, 정재영은 차기작에 대한 고민이 더 많아졌다. “예전에는 한 작품이라도 더 해야 되는데, 였다면, 지금은 더 후퇴하면 안 되는데"로 고민의 종류가 달라졌기 때문. 아직 정해진 작품은 없지만, 서두르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문식 이문식은 스스로 ‘꼬인 인생’이라고 말한다. 막 상경한 대학 1학년 때 터미널 앞에서 사기당한 일을 비롯해 단 일년이라도 사고없이 넘어간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술 마시고 싸움 붙은 것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고 차마 말하기 힘든 ‘비하인드 스토리’도 한 보따리나 된다. 그는 “생긴 것 때문인지 살아온 게 그래서 그런지” <공공의 적>의 깡패 ‘산수’ 같은 역만 들어온다고 푸념하지만, 그의 지난 삶은 코믹하면서도 서글픈 그 인물들을 크로키처럼 잽싸게 그릴 수 있는 든든한 밑천이다. 재수 시절, 같은 학원 친구가 “탤런트될 수 있는 과”라고 해서 연극영화과에 들어간 이문식은 연극 <매직타임>으로 수다 패밀리와 인연을 맺었다. <달마야 놀자>의 해병대 출신 스님이 가장 비중있는 역이긴 하지만, 그가 없는 영화는 왠지 심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많은 영화에서 특유의 에너지 넘치는 조연 연기도 선보였다. 그러나 마음 맞는 식구들과 소풍 가는 기분으로 찍은 <묻지마 패밀리>와 고집한 역을 따낸 <라이터를 켜라> 촬영이 끝난 요즘은 쉬고 있는 중이다. 지금쯤 자제하지 않으면 그저 쉬운 배우로 남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한 선배가 들려준 “처음 만난 남녀가 네 영화를 보고 마음이 통해 인연을 맺으면 성공한 영화”라는 말을 아직도 기억에 새기고 있는 그는, 천생 배우다. 임원희 임원희는 영화에서와는 달리 눌변가처럼 보인다. 그러나 말이 필요없는 카메라 앞에서는 ‘자세’가 달라진다. 짙은 눈썹에 힘을 주고 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는 등 사진촬영을 위해 줄지어선 7명의 배우들 중에서도 ‘순간 연출’이 으뜸이다. “하여간 설정은 끝내주는” 사람이다. “계산없이 같이 할 수 있고, 일종의 놀이 같은” <묻지마 패밀리> 현장에서는 피로를 몰랐다. 공부를 잘해보겠다는 일념으로 밤낮 책을 끼고 사는 <내 나이키>의 고지식한 학생이 되느라 촌스런 가발을 쓴 채 땀을 흘렸고, 바람난 아내를 감시하며 쓰린 가슴을 움켜쥐는 <사방에적>의 남편, <교회누나>의 카메오까지 단편 3편에서 임원희는 예의 심각한 얼굴로 웃음을 자아냈다. <묻지마…> 이후 한 가지 변한 것은, ‘수다’의 매니지먼트에서 떨어져나온 것. 어차피 “계약 때문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친한” 관계고, 행여라도 일 때문에 서로 불편해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생각에서다. 요즘은 수중에 들어온 시나리오들을 보고 또 보며 항로를 탐색중이지만, ‘수다’에서 부르면 언제든 달려올 요량이다. 김일웅 김일웅은 “간신히 1/3 넘는 자의와 2/3 되는 타의”로 연기를 시작했다. 재수를 하고도 대학에 떨어진 뒤 후기대 시험장 앞에서 그냥 발길을 돌린 그의 집에, 친구가 사진까지 붙인 서울예대 원서를 들고 나타났던 것이다. “아버지, 일웅이가 여기 가면 참 좋겠네요”라는 한마디에 들어간 학교. 연기가 뭔지도 몰랐던 김일웅은 ‘만남의 시도’라는 동아리를 전공 공부하듯 열심히 들락거렸고, 선배인 장진 감독도 그곳에서 만났다. 수다에 들어오라는 권유를 받았을 때 “형이 불러주는 게 너무 고마워서” 딴 생각 안 했을 정도로, 그는 “물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장진의 패밀리에 합류했다. 서른한살이 되도록 <간첩 리철진> <킬러들의 수다> 등에서 스쳐지나가던 그는 <묻지마 패밀리>의 세 번째 단편 <교회누나>에서 드디어 주연을 맡았다. 기차 창문 너머 누나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죽도록 악을 쓰고 났더니 녹음팀은 모두 밖에 나가 있더라는, 황당한 경우도 있긴 했지만, 그는 바보처럼 어눌하게 나오는 이 영화가 좋았다. “만 스물아홉”이라고 우기는 앳된 얼굴의 그가 지금 찍는 영화는 “단순무식하고 버릇없는 양반”을 연기하는 . 몸이 힘들어도 이렇게 바빠 본 적은 처음이라 열심히 자기 최면을 걸며 일하고 있다.

가해는 잊고 피해만 기억하는 머리 둘 달린 유대인들이여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안은 로만 폴란스키(69)의 <피아니스트>는 1939년 나치의 폴란드 침공 이후 바르샤바에서 벌어진 유대인 박해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영화가 그린 바르샤바 게토는 그대로 지옥이다. 그들이 당한 부당한 박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아파하고 분노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나는 시종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 유대인 박해 장면을 볼 때마다, 유대인들이 지난 반세기 동안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저질러온 가혹행위가 오버랩되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영화의 매끄러운 만듦새를 보면서 혹시라도 칸이 이 영화에 황금종려가지를 후광으로 얹어주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을 때, 칸의 모든 정치적 고려가 고지에서 내려다본 고샅길처럼 선명하게 드러났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칸은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사실대로 그린 이스라엘 감독 아모스 기타이의 <케드마>와 팔레스타인 감독 엘리아 술레이만의 <야돈 일라헤이야>를 나란히 경쟁에 초청하고, ‘반유대주의’라는 비난을 막기 위해 폴란스키에게 영광을 안긴 것이다. 균형감각이 돋보이는 매끈한 ‘정치’다. 그러나 나는 칸의 이런 정치보다, 자신들이 저지르고 있는 가해사실엔 눈감으면서 자신들이 당한 피해사실에 대해선 집요하게 파헤치는 유대인 사회가 더 무섭다. 유대인은 흔히 지혜의 겨레라고 불린다. 나는 궁금하다. 그 지혜로운 겨레가 왜 자신들이 당한 박해로부터는 어떤 보편적 교훈을 끄집어내지 못하는 걸까. <탈무드>에는 “머리 둘 달린 아이를 한 사람으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두 사람으로 보아야 하는가” 하는 유명한 질문이 있다. 답은 이렇다. “한쪽 머리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다른 쪽 머리가 비명을 지르면 한 사람이고, 다른 쪽 머리가 시원해하면 두 사람이다.” 유대인은 <탈무드>의 우화처럼 자신이 당한 아픈 기억엔 소리 높여 비명 지르고, 자신이 저지른 악행엔 둔감한 머리 둘 달린 아이인 건 아닐까. 우리는 에서 <쉰들러 리스트>에 이르기까지 유대인이 당한 고통을 스크린에서 충분히 볼 만큼 봤다. 오늘의 팔레스타인 비극을 외면하면서 어제의 아우슈비츠만 강조하는 건 중증의 균형감각결핍증후군이다. 유대인들은 흔히 머리 둘 달린 아이의 우화를 응용해, “러시아의 유대인이 박해를 당했는데, 파리의 유대인이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면 그는 유대인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 말의 적용범위를 조금만 더 넓히면 좋겠다는 게 내 작은 바람이다. “아우슈비츠를 아파하면서 팔레스타인을 아파하지 않는다면 그는 인간이 아니다.” 이상수 기자

인생은 스포츠처럼, 스포츠는 인생처럼

스포츠에 대해 가장 잘 아는 방법은, 직접 선수로 뛰어보는 것이다. 론 셸튼이 스포츠영화로 한우물을 파는 것도 그런 이유가 있다. 89년 폴 뉴먼 주연의 정치코미디 <블레이즈> 하나를 빼고는, 데뷔작인 <열아홉번째 남자>부터 <덩크슛> <틴컵> <메이저리그의 전설 타이 콥> <플레이 투 더 본>까지 야구, 농구, 골프, 권투 등 다양한 종목을 오가며 끈질기게 승부의 세계만을 그려왔다. 론 셸튼은 스포츠와 일상이 훌륭하게 어우러진, 화목한 영화를 만든다. 1945년 9월15일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론 셀튼은 대학 시절에는 농구를 했고, 졸업 뒤 67년부터 5년간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마이너팀에서 2루수로 활약했다. 메이저리그에는 진입하지 못했고, 트리플 A팀인 로체스터 레드 윙스가 최종기록. 운동을 그만둔 론 셸튼은 로저 스포티스우드 감독의 영화 <언더 파이어>와 <베스트 오브 타임즈>의 시나리오를 쓰며 조감독으로 일한다. 로빈 윌리엄스와 커트 러셀이 출연한 <베스트 오브 타임즈>는 론 셸튼의 장기인 스포츠 드라마가 처음 발현된 코미디영화였다. 인정을 받은 론 셸튼은 자신의 마이너리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야구영화 <열아홉번째 남자>의 감독으로 데뷔한다. 1988년 만들어진 <열아홉번째 남자>(Bull Durham)는 마이너리그 야구팀의 고참과 신예 사이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상황을 드라마틱하게 연출하여 비평과 흥행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 불스 더램팀이 영입한 신인 투수 에비는 빠른 볼을 가지고 있지만 머리가 나쁘고, 쉽게 흔들린다. 에비를 활용하기 위해 노련한 포수가 필요했고, 메이저리그에서도 뛰었던 크래쉬를 영입한다. 크래쉬는 에비를 이끌며 좋은 투수로 조련해간다. 그 사이에 끼어든 바람둥이 여자 애니. 애니는 크래쉬와 에비 사이를 맴돌다가 에비에게 기운다. 성공 가도를 달리는 에비는 마침내 메이저리그로 승격되지만, 나이 많은 크래쉬는 해고된다. 케빈 코스트너, 수잔 서랜던, 팀 로빈스의 중후한 연기가 뒷받침하는 <열아홉번째 남자>는 스포츠세계의 우여곡절을 진지한 연애담과 능숙하게 엮어낸다. 뉴욕비평가협회 최우수 각본상을 받았다. 89년 <블레이즈>를 만든 뒤 론 셸튼은 수작으로 평가받는 <덩크슛>(White Men Can't Jump, 1992)을 만든다. 한국 선수들도 이미 덩크슛을 한 지 오래지만, NBA 스타들의 현란한 덩크슛 경연을 보고 있으면 여전히 입이 딱 벌어진다. 농구스타의 대부분은 흑인이다. 뛰어난 탄력과 지구력을 가진 흑인들이 가장 강세를 보이는 종목이 농구이고, 농구의 꽃은 뭐니뭐니해도 림을 박살낼 것처럼 내려꽂는 슬램덩크다. 래리 버드 이후 골밑을 장악하는 NBA의 백인 센터는 거의 없다. <덩크슛>의 원제인 ‘백인은 점프할 수 없어’도 그런 상황을 비꼬는 농담이다. 흑인인 시드니는 덩크슛을 못한다며 백인인 빌리를 놀려대고, 열받은 빌리는 게임을 그르친다. 인종도, 성격도 다른 두 사람이 한팀을 이루어 직업적으로 거리농구를 하면서, 그들의 사이에 놓인 강도 조금씩 말라간다. 론 셸튼은 스포츠의 다이내믹한 전개에 슬쩍 다른 이야기를 얹는 데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덩크슛>의 농구경기를 한참 보고 있으면, 어느 틈에 인종문제 이야기가 넘쳐난다. 어색하지 않게, 스포츠와 함께 인생의 한 부분을 엮어내는 솜씨는 상대방의 코트로 쏜살같이 달려가며 주고받는 2 대 1 패스를 보는 느낌이다. 웨슬리 스나입스와 우디 해럴슨의 콤비도 천생연분처럼 어울려서 캐릭터까지 그대로 <머니 트레인>이란 영화에 이어질 정도였다. 전설적인 56게임 연속안타 신기록을 보유한 타이 콥의 일생을 그린 <메이저리그의 전설 타이콥>(Cobb, 1994)은 약간 늘어진다. 타이 콥은 자서전 집필을 위해 스포츠 기자 알 스텀프를 고용한다. 알 스텀프는 타이 콥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 그의 생애와 숨겨진 진실을 찾아간다. 그리고 콥의 내면을 이해하게 된다. 96년에 만든 <틴 컵>(Tin Cup)은 <열아홉번째 남자>의 감동과 익살을 다시 느낄 수 있는 수작이다. 한때 주목받던 신인이었지만, 지금은 텍사스 구석의 골프 클럽 강사로 지내는 로이. 예전의 라이벌이었고, 지금은 최고의 프로골퍼인 심슨의 약혼녀에게 반하는 바람에 US오픈 출전을 결심하게 된다는 이야기. 99년에는 권투영화 <플레이 투 더 본>(Play It to the Bone)을 만들었다. 우디 해럴슨이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공연하는데, <덩크슛>의 티격태격하는 동반자를 다시 보는 느낌이다. 한때 스타였지만 지금은 몰락한 프로복서 시저와 빈스가 함께 라스베이거스로 향한다. 여러 가지 사고를 치며 간신히 당도한 시저와 빈스는, 경기의 승자에게 타이틀 도전권이 주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불붙는 경쟁심. 최근 론 셸튼은 <나쁜 녀석들2>의 시나리오를 썼고, 제임스 엘로이의 소설을 각색한 <다크 블루>를 연출할 예정이다. 커트 러셀과 빙 레임스가 출연한다. 스포츠영화의 전문가이지만, 지금 론 셸튼이 관여하는 작품들은 모두 스포츠영화가 아니다. <열아홉번째 남자> 이후 만든 론 셀튼의 영화들은, 아쉽게도 흥행에서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래도 언젠가 론 셸튼은 다시 스포츠영화로 돌아올 것이다. 할리우드도 아마 알 것이다. 론 셸튼만큼 스포츠의 희로애락을 잘 알고 있는 감독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사진설명 직접 운동선수로 뛰었던 론 셀튼 가독은 스포츠의 다이내믹한 전개에 흥비로운 드라마를 슬쩍 얹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다. 그는 <틴 컵><열아홉번째 남자><플레이 투 더 본>등을 만들었다.▶ 게으른 영화광 김봉석, 스포츠 영화 보며 인생을 깨닫다 (1) ▶ 게으른 영화광 김봉석, 스포츠 영화 보며 인생을 깨닫다 (2) ▶ 인생은 스포츠처럼, 스포츠는 인생처럼

`중대결단` 앞둔 싸이더스와 튜브, 충무로의 지반이 들썩인다(1)

충무로는 늘 움직인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최근에도 충무로의 대치구도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만한 거대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이 새로운 합종연횡의 중앙에는 싸이더스와 튜브엔터테인먼트가 있다. 한국영화계의 양대 군단이라 할 수 있는 시네마서비스, CJ엔터테인먼트와 모종의 협력관계를 도모하던 두 회사는 각기 새로운 행선지를 향해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 싸이더스는 시네마서비스를 이탈해 ‘유령’호를 타고 반대편에 있는 CJ쪽으로 항해를 시작했고, 튜브는 독자적인 판을 짜기 위해 ‘로스트 메모리즈’를 찾아 다시금 배급 전선을 향해 길을 떠났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이들의 움직임에는 어떤 배경이 있나, 그리고 향후 충무로의 판도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편집자 올해 초만 해도 차승재 싸이더스 대표는 “음반, 매니지먼트, 게임 등까지 챙기다보니 정신이 없다”고 말해왔다. 그러던 차 대표의 말수가 최근 들어 급격히 줄었다. 그 시점은 지난 4월 윤곽이 드러난 로커스홀딩스와 시네마서비스의 합병법인 플레너스 엔터테인먼트의 출범 전후와 대략 일치한다. 그의 침묵은 마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반면 튜브엔터테인먼트 김승범 대표의 표정은 밝아졌다. 연초만 해도 긴장감과 수심 비슷한 것에 젖어 있던 그의 얼굴에 생기가 돌아오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집으로…>의 흥행 성공과 CJ엔터테인먼트와의 인수협상 중단 결정을 내린 시점과 얼추 맞아떨어진다. 두 기업을 대표하는 두 사람의 변모는 뭔가 중대한 변화를 의미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싸이더스와 튜브, 움직임이 심상찮다 오는 6월 공식적으로 출범하는 플레너스 엔터테인먼트의 사업구상에선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주요 계열회사인 싸이더스가 두개의 기업으로 분할된 것이다. 하나가 기존의 싸이더스, 다른 하나는 싸이더스 HQ다. 즉 영화제작, 음반사업, 연예인 및 스포츠 선수 매니지먼트 등 엔터테인먼트 관련 사업을 종합적으로 펼쳐나가던 싸이더스가 둘로 쪼개져, 싸이더스에서는 영화제작 및 스포츠 선수 매니지먼트를 맡고, 싸이더스 HQ는 음반과 연예인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게 된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이와 동시에 53%에 이르던 플레너스(구로커스홀딩스)의 싸이더스에 대한 지분율도 38%로 낮아졌고 차승재 대표의 지분은 49%로 상승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플레너스의 박병무 대표는 이같은 기업 분할이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지만, 차승재 대표가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 충무로의 입방아꾼들은 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결국 플레너스 출범이나 싸이더스 분할과 관련한 의사결정에서 배제된 싸이더스가 옛 로커스홀딩스-시네마서비스와의 협력체제로부터 떨어져나와 독립적인 노선을 추구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이에 따라 지분변동을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최근 싸이더스가 <발해> <지구를 지켜라> <연인> 등 신작에 대한 투자를 시네마서비스의 라이벌 업체 CJ엔터테인먼트로부터 받고 배급권을 넘겨주기로 한 것은 이같은 추측에 신빙성이라는 날개를 달아주는 사건이다. 나뉘는 싸이더스, 홀로 서는 튜브 튜브엔터테인먼트에서도 이상기류가 엿보이고 있다. 지난 한해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며 기업 인수 협상을 거듭했던 튜브가 최근까지도 계속됐던 CJ와의 논의를 중단하고,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 또 튜브는 자회사인 튜브픽처스를 확대, 강화하는 대신 홍보업을 하는 자회사 튜브커뮤니케이션스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김승범 대표는 현재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길 꺼리고 있으나, 관계자들은 튜브의 이러한 움직임 뒤에는 <집으로…>의 대성공이 놓여 있다고 바라본다. 즉, <집으로…>가 400만명 가까운 흥행을 기록해 70억원가량을 확보하게 된 튜브가 그동안 겪어왔던 현금 유동성 문제에서 벗어나면서 다른 기업에 인수될 이유가 없어졌다는 얘기다. 특히 CJ의 투자를 받게 될 경우 배급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므로, 여력이 생긴 마당에 굳이 기업의 독자성을 잃을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같은 전망은 결국 튜브가 배급업으로 다시 진출할 것이라는 예측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동안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내츄럴시티> <튜브> 등 총제작비가 50억원에서 100억원 가까이 소요되는 초대형 프로젝트에 투자하느라 허덕였던 튜브가 이제는 CJ로부터 수혈받은 자금으로 부담을 덜었다는 점과 평소 “배급업만이 내가 펼칠 비즈니스라고 생각한다”는 생각을 피력했던 김승범 대표의 지론으로 미뤄볼 때, 튜브의 다음 행보가 배급일 것이라는 견해는 설득력을 얻는다. 싸이더스와 튜브의 의미심장한 움직임은 두 회사의 활동을 고려할 때 결코 무시할 만한 성격의 것이 아니다. 싸이더스는 우노필름 시절부터 뛰어난 기획력과 일정 수준의 완성도를 일궈내왔다. 현실적으로 1년에 5∼6편 정도의 영화를 꾸준히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제작사라 할 수 있는 싸이더스가 어떤 곳이든 배급 라인에 가담하게 된다면, 해당 배급사의 파워는 배가될 것이다. 튜브 역시 일신창투 시절부터 뛰어난 투자, 배급 수완을 발휘해온 김승범 대표의 경력이나 50억원이 넘는 초대형 프로젝트 여러 개를 개발, 관리해온 노하우를 고려할 때 결코 만만치 않다. 배급의 힘이 결국 라인업에서 나온다고 했을 때, 한국영화 블록버스터의 존재는 극장으로서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싸이더스와 튜브의 움직임에 충무로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위기에 몰려 기회를 노리다. 최근 보이는 두 회사의 움직임은 주목할 만한 것임에 틀림없지만, 충무로를 주도하기 위한 그것이라기보다는 수렁과 같은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한 수세적인 대응책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지난해 초반까지의 상황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셈이다. 싸이더스는 2000년 당시 우노필름 차승재 대표가 로커스와 손잡고 만든 종합엔터테인먼트 업체. 차 대표의 주도로 정훈탁 현 싸이더스 HQ 대표가 이끌던 매니지먼트 업체 EBM, 전 SM기획 대표 정해익씨 등이 참여해 성사됐다. 당시 한반도를 휘감았던 벤처 열풍과 함께 싸이더스는 공세적으로 활동을 펼쳐나갔다. 2000년의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으나 싸이더스에 2001년은 그동안의 기반 다지기 작업을 통한 성과가 나타나고,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는 해였다. 그만큼 주위의 기대도 많았다. <무사> <화산고> <봄날은 간다> 같은 프로젝트가 있었고,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해외와의 작업도 활발했다. 하지만 성과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었다. 특히 야심작으로 꼽혔던 <무사>가 작품성과 흥행에서 미진한 평가를 얻은 것이 타격이었다. 충무로에서는 싸이더스가 그동안 확장만을 신경쓰며 내실에는 힘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또 하나, 지난해 싸이더스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만한 사건이 있었다. 싸이더스의 지주회사였던 로커스홀딩스가 시네마서비스를 계열회사로 포섭한 것이었다. 결국 로커스홀딩스를 매개로 싸이더스와 시네마서비스는 형제관계를 맺게 됐다. 시장은 시네마서비스-싸이더스 연합군이 지배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상황은 썩 잘 풀리지 않았다. 시네마서비스가 투자, 배급면에서 폭넓은 활약을 펼친 데 비해 싸이더스의 활약상은 상대적으로 두드러지지 않았다. 로커스홀딩스를 중심으로 묶인 거대 엔터테인먼트 기업군 안에서의 무게중심은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안정적인 매출 및 수익구조를 갖고 있으며,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커다란 힘을 발휘하는 시네마서비스쪽으로 힘이 기울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엔터테인먼트를 본격적인 산업으로 키우겠다는 로커스홀딩스의 전략과 맞아떨어지는 것이기도 했다. 반면 이 기업군에서 싸이더스의 비중은 갈수록 줄어드는 듯 보였다. 특히 1년에 1∼3편의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단단한 제작사들을 제휴사로 두고 있는 시네마서비스 입장에서 싸이더스의 영화를 모두 배급하는 것은 바람직하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튜브에도 2001년은 기대로 시작했지만 악몽으로 마무리지은 한해였다. 일신창투에서 독립한 김승범 대표가 2000년 튜브인베스트먼트와 함께 설립한 튜브엔터테인먼트는 창립 첫해 외화들을 배급하며 그런 대로 좋은 가능성을 보였다. 한국영화를 본격적으로 배급하게 된 2001년만 해도 튜브는 기존 시네마서비스-CJ엔터테인먼트와 함께 ‘배급 3강’을 형성하게 될 것으로 전망됐다. 김 대표의 경력도 경력이지만, 무엇보다 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와이 순지의 <스왈로우테일/버터플라이> 같은 일본영화와 <툼 레이더> 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까지 품고 있던 튜브였기에 자신감 있게 “업계 1위”까지 호언장담할 수 있었다. 잘 나가던 두 회사, 수세로 역전된 2001년 하지만 튜브가 후발업자로서 배급업계에서 빨리 자리를 잡기 위해 채택한 회심의 전략인 블록버스터 확보 노선은 부메랑처럼 날아와 도리어 회사의 상황을 어렵게 만들었다. 제작사나 튜브쪽이나 블록버스터에 대한 경험이 일천한 탓에 수많은 시행착오가 벌어졌다. 우선 제작비가 애초 예상치를 넘어 상승 일로를 탔다. 그나마 영화가 빨리 완성돼 개봉을 제때 했더라면, 입장료가 회수돼 자금난을 덜 수 있었겠지만, 제작 기간마저 길어져 2001년 안에 두 작품 모두 개봉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때 좋은 반응을 얻었던 일본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급작스럽게 싸늘해졌다. 튜브는 애초 투자조합의 200억원과 얼마간의 추가자금만 확보하면, 한해 배급을 이끌 수 있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았다. 결국 2001년 초부터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지루한 나날들이 지속됐다. 오리온 그룹쪽과 인수협상을 했던 것이나, 유니코리아와 투자협상을 펼쳤던 것도 모두 블록버스터영화에 대한 제작비를 조달하기 위한 것이었다. <내츄럴시티>와 <튜브>가 제작에 돌입하자 자금난은 더욱 심해졌다. 영화제작에 들어간 150억∼300억원의 자금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물려 있으면서 신규, 또는 추가투자는 갈수록 어려워졌다. 결국 김승범 대표는 “배급을 포기하더라도, 풍부한 자금을 투자받아 영화를 살리자”는 ‘고뇌에 찬 결단’을 내렸고, 지난 연말부터 튜브를 CJ에 인수시키기 위한 협상을 벌이게 됐던 것. 올해 접어들면서도 두 업체의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더 나빠지는 것 같았다. 싸이더스는 <정글쥬스> <결혼은, 미친 짓이다> 같은 작품들의 배급이 시네마서비스가 아니라, 시네마서비스의 자회사인 청어람을 통해 이뤄지는 결정을 맞이하게 됐고, 로커스홀딩스가 시네마서비스를 합병해 플레너스 엔터테인먼트를 꾸리는 과정을 그저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 튜브 또한 CJ와의 인수 협상에 난항을 겪었다. 게다가 큰 기대를 품고 개봉했던 의 성적이 기대에 못 미쳐 CJ와의 협상 테이블에서 튜브의 몫은 더욱 좁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링의 코너에 몰려 잔뜩 웅크리고 있던 두 회사는 카운터 블로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위기의 막바지에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 `중대결단` 앞둔 싸이더스와 튜브, 충무로의 지반이 들썩인다(1) ▶ `중대결단` 앞둔 싸이더스와 튜브, 충무로의 지반이 들썩인다(2) ▶ 싸이더스, 튜브 출범이후 제작된 영화와 차기 영화들

[충무로는 통화중] <취화선>의 칸 특수

칸에서 시작된 나비의 날갯짓이 멀리 한국 극장가에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른바 ‘칸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 임 감독이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직후부터 <취화선>에 관객이 눈에 띄게 쏠리고 있다. 시상식 전인 25일과 26일의 서울관객은 각각 9천명과 6천명. 한국과 프랑스의 축구경기를 감안하더라도, 이 영화는 가라앉을 듯 보였다. 하지만 수상결과가 알려진 27일부터 관객이 몰리기 시작했다. 배급사 시네마서비스에 따르면, 27일엔 7140명을 기록했고, 28일 1만110명, 29일 1만224명, 30일 1만1327명 등 갈수록 관객 수가 증가했다. 전국 기준으로도, 화요일인 21일 1만2천명이던 게 28일에는 2만2천명을 기록했다. 누적스코어도 늘었다. 10일 개봉한 이 영화는 26일까지 서울 18만4059명, 전국 43만8752명을 동원했지만, 30일 현재 서울 22만3천명, 전국 52만여명의 관객을 기록하고 있다. 시네마서비스는 31일부터 기존 서울 19개관, 전국 44개관을 각각 25개와 60개로 늘릴 계획이다. <취화선>의 ‘부활’을 반기는 쪽은 제작, 배급사만이 아니다. 월드컵으로 인한 급속한 관객 감소로 울상을 짓고 있던 극장들이야말로 가장 큰 수혜자인 셈이다. 중앙시네마의 강기명 팀장도 “개봉했을 때는 비교적 높은 연령대의 관객이 몰렸으나 수상결과 발표 뒤 젊은 관객이 갑자기 늘었다”고 말한다. 그는 “축구 때문에 주말관객도 줄었는데, 평일에 많은 관객을 몰아준 <취화선>이 고맙다”고 덧붙였다. 극장가에선 히딩크 감독보다는 임권택 감독이 선전해주기를 기대해왔는지도 모를 일이다.문석

제 1회 중국영화제 13일부터 3일 동안 강변 CGV에서 열려

한.중 수교 10주년 기념 '제 1회 중국영화제'가 오는 6월 13일(목)~15(토), 3일 동안 강변 CGV에서 열린다. 중국영화기관인 '중국국가광파전영전시총국(中國國家廣播電影電視總局, 이하 광전국)'와 영화진흥위원회가 공동 주최하는 이번 행사는 한중 수교 10주년을 맞아 한중 양국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문화적 교류를 증진키 위해 마련된 의미 있는 자리. 로맨틱 코미디에서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까지, 최근 중국에서 많은 관심을 모았던 화제작 10편이 상영될 예정이다. 중국영화에도 로맨틱 코미디가 있다?! 그동안 우리가 만나 왔던 중국영화를 떠올린다면 다소 의외일 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중국영화는 크게 두 가지 의미였기 때문입니다. 장 이모우나 첸 카이거로 대표되는 ‘5세대’ 거장들의 영화거나 장 위엔, 지아 장커 등 검열과 금지에 도전하는 젊은 감독들의 영화. 대부분 국제영화제를 통해 소개됐던 이 영화들은, 중국영화는 이른바 ‘5세대’ 아니면 ‘6세대’ 영화라는 오해 아닌 오해를 가져 왔으며 정치와 예술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선 영화들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하지만, 과연 중국영화는 이것이 전부일까요? 그 동안 만나 온 중국영화들이 해외에 소개되는 ‘국제영화제용’이 대부분이었다면 현재 중국 관객들과 가장 가까이서 웃고 울며 호흡하는 영화들은 무엇일까? 한중수교 10주년을 기념하여 열리는 ‘제1회 중국영화제’의 시작은 바로 여기서부터입니다. 현재 중국의 대중 영화를 대표하는 영화들을 만나게 될 ‘제1회 중국영화제’는 월드컵과 중국의 WTO 가입을 계기로 한층 가까이 다가온 중국영화와의 공식적인 첫 만남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상영작 소개> [섹션 1 : 중국 대중영화의 힘] 중국영화에도 로맨틱 코미디가 있다!? 말랑말랑한 사랑이야기에서 중국 대륙을 눈물로 적신 감동의 드라마까지 대륙을 사로잡은 중국 대중영화의 현주소! <몰완몰료> (沒完沒了, Mei wan mei liao, Sorry Baby) 1999년, 35mm, 칼라, 91min 감독 : 펑 샤오강 / 촬영 : 양샤오슝 / 주연 : 오천련, 거요 -현재 중국 최고의 흥행감독인 펑 샤오강의 대표작 <몰완몰료>는 얼떨결에 유괴범과 인질이 된 남녀의 좌충우돌을 그린다. 여행사의 운전기사인 주인공은 인색한 사장에게서 자동차 대여료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분노한 그는 얼떨결에 사장의 애인을 납치하고 그녀는 사장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그에게 협조한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은 예상처럼 순탄하지 만은 않은데... 밀레니엄의 열풍으로 뜨겁던 20세기 말의 중국을 배경으로 개혁해방 경제정책이 낳은 사회현상을 담은 드라마. 중국의 국민배우 葛優(거요)와 최고의 흥행감독 펑 샤오강의 세 번째 만남이다. 여주인공은 홍콩의 인기 배우 오천련이다. <올 때까지 기다려 줘> (不見不散 Bu jian bu san, Be There or Be Square) 1999, 35mm, 칼라, 103분, 코미디 감독 : 펑 샤오강 / 촬영 : 짜오 페이, 양샤오슝 /주연 : 거요, 쉬 판 -주인공의 재치 넘치는 대화가 경쾌하게 전개되는 중국판 로맨틱 코미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이민 온 중국인 남녀. 꿈의 나라, 미국에서의 성공을 다짐하는 이들의 아기자기한 사랑 이야기가 근간이다. 중국 최고 흥행 감독 펑 샤오강과 중국의 국민 배우 거요가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춰 절묘한 조화를 이뤄낸다. 영화의 처음, 대사 중에 언급되는 <뉴욕의 중국인>은 다름 아닌 펑 샤오강 감독의 인기 TV 드라마 제목이다. <아름다운 어머니> (Piao liang ma ma, Breaking the Silence) 1999, 35mm, 칼라, 90분, 드라마 감독 : 순 조우 / 촬영 : 뤼 르어 /주연 : 공리 하와이국제영화제 네팩상, 몬트리올영화제 여우주연상 -청각장애를 지닌 아들을 둔 여영은 아들을 특수학교 대신 일반학교에 보내고자 한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아들에게 제대로 된 발음을 가르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여영. 이혼 후 생계유지에 대한 부담에 짓눌리면서도 강하고 착하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어머니’ 역으로 중국 최고의 배우 공리가 열연한다. 몬트리올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작. <나의 형제 자매> (我的兄弟姐妹, Roots and Branches) 2001, 35mm, 칼라, 95mm, 가족 드라마 감독 : 위 쭝 / 주연 : 최이 지엔, 장우 -70년대 초, 평범한 음악교사인 주인공은 사상이 불손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해고된다. 그에게는 아내와 열 살이 채 안된 아이들이 있다. 아내는 가사일과 남편의 실업으로 피로가 겹쳐 조금씩 약해져 간다. 쓰러진 아내를 병원으로 데려가던 남편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그리고 20년 후, 성인이 된 사첨은 행방을 모르는 형제들을 찾고자 한다. 영화는 70년대 초와 90년대 중국을 대비하면서 중국에서의 가족의 의미와 사회의 변화상을 담고자 한다. 음악 교사인 아버지로는 중국 록을 대표하는 한국계 가수 최이지엔(최건)이, 장남 역에는 장우가 열연한다. 작년 중국 최고 흥행작이었으며 ‘최루탄’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중국 대륙을 눈물바다로 만든 영화였다. [섹션 2 : 중국영화의 다양한 스타일] 중국 사회에 팽배한 관료주의를 비판하는 블랙 코미디에서 <뮬란>의 흥행성적을 누른 전설의 애니메이션, 그리고 중국 영화가 탄생하는 순간을 담은 영화에 관한 영화까지, 중국영화의 다양한 스타일들. <엄마는 갱년기> (Marriage Certificate) 2001, 35mm, 칼라, 110분, 코미디 감독 : 황지엔신 / 촬영 : 양 룬 / 주연 : 펑꿍, 뤼리핑, 펑샤오강 -모든 소동은 “결혼 18년 이상의 부부는 결혼 증명서만 있으면 무료로 담요를 준다”는 광고에서 시작됐다. 아내는 결혼증명서를 찾으려 여기저기 뒤지지만 증명서는 좀처럼 찾을 수 없다. 아내는 가사도 뒷전, 결혼식을 올린 시골까지 가 보지만 헛수고일 뿐이다. 보다 못한 딸이 결혼 증명서를 위조해 주는 곳에서 가짜 증명서를 만들어 오지만, 그 동안 부부 사이는 나빠져 이혼 지경까지 이른다. 과연 이 가족은 어떻게 될까? 중국의 인기 코미디 배우 펑꿍과 드라마 <위성>의 주인공 뤼이 리이핑이 이혼 직전에 이른 중년 부부로 열연한다. <목인의 신부>로 잘 알려진 황 지엔신 감독의 독특한 연출 스타일과 중국의 변화하는 사회상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이 돋보이는 블랙 코미디. <서양경> (Shadow Magic) 2000, 35mm, 칼라, 115분, 드라마 감독 : 후 안 / 촬영 : 낸시 쉬레이버 / 주연 : 위 샤아, 위 페이싱 홍콩금마상 각본상 수상, 제3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이 상영되는 극장, 기차가 정면을 달려오는 순간 혼비백산한 관객들이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신기한 듯 소리친다. 최초로 환영과 현실이 조우하는 영화사 초기의 경험을 담고 있는 <서양경>은 1905년 중국 최초의 영화 <띵쥔산, 定軍山>이 제작돼 상영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여성감독 특유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이 영화는 중국 스스로 최초의 순간을 되돌아보는 ‘중국판 시네마천국’. <보련등>(寶蓮燈, Lotus Lantern) 1999, 3D+2D, 85분, 애니메이션 감독 : 챵꽝시 -중국 개봉 시 <뮬란>의 흥행성적을 앞서 화제가 되었던 상하이 애니메이션의 대표작. 서유기를 중심으로 중국 소수민족 설화, 용의 승천과 진시황의 군대 ‘진용' 등의 중화 사상이 결합한 영화. 모두가 공감대를 느낄 수 있는 중국의 문화적 유산을 재해석한 애니메이션이다. 도입부에 등장하는 3D 그래픽으로 처리한 궁전의 모습과 2D 셀 애니메이션과의 조화는 상해미술영화제작소의 저력과 기술력을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다. [섹션 3 : 혁명과 개방의 사이에서] 급격한 개방화 바람 속에서 중국 대중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전통과 현대화 사이에서 중국 인민들이 체감하는 변화의 감도와 점점 퇴색해 가는 혁명에의 향수에 이르기까지 개방화 바람을 온 몸으로 맞고 있는 중국 인민들의 현재. <샤워>(Xizao, The Shower) 감독 : 장 양 / 촬영 : 쩡 찌엔 / 주연 : 지앙 우, 푸 추웬신 1999, 35mm, 칼라, 94분, 코미디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독립영화제 ADF 촬영상, 극동영화제 관객상, 로테르담국제영화제 관객상, 세바스찬국제영화제 OCIC상, 은상, 토론토국제영화제 비평가상,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주인공 다밍의 집안은 공중목욕탕을 운영한다. 결혼과 함께 가족을 떠났던 다밍은 잠깐 집으로 돌아오지만 연로한 아버지와 지능이 조금 떨어지는 동생만 남은 집안을 보며 불안감과 죄의식에 사로잡힌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공중목욕탕 마저 헐리게 된다. 문제는 혼자서는 생활을 할 수 없는 동생. 이제 다밍은 어떻게 해야할까? 각종 해외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이 영화는 공중목욕탕이라는 중국의 전통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현대화에 밀려 전통적인 인간관계와 가족관계가 점점 사라져 가는 중국의 현실을 바라본다. 촬영감독 쩡 찌엔은 장 위엔의 <북경 녀석들> <동궁서궁>을 찍기도했다. <그산, 그사람, 그개>(那山 那人 那狗, Postmen in the mountains) 1999, 35mm, 칼라, 93분, 코믹 휴먼 드라마 감독 : 꾸어 지엔치 / 촬영 : 자오 레이 / 주연 : 텅 루쥔 중국금계상 최우수작품상, 최우수주연남우상, 몬트리올 영화제 관객대상, 인도 국제영화제 은곰상(심사위원 대상) -중국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받았던 영화. 중국 대륙의 수려한 대자연을 배경으로 아버지와 아들, 아들과 어머니, 아내와 남편의 관계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자본화된 중국 현실과는 대조적으로 자연에서의 삶과 여름 축제 등 토속적이며 전통적인 화면이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는 영화다. 80년대 초, 중국 호남성의 험한 산악 지대에 편지를 배달해온 아버지와 이를 계승하는 아들의 이야기. 아들은 다리를 다치고 은퇴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첩첩산중에 편지를 배달하는 우편배달부가 되지만, 첫날부터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설상가상 아버지의 충복으로 함께 산을 넘던 개마저 신참인 아들을 본체 만체하니, 아들은 성공적인 우편배달부가 될 수 있을까? 40페이지 정도 분량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했으며, 처음으로 편지를 배달하는 아들과 함께 동행하며 도와주는 아버지를 통해 부모와 자식의 진정한 이해와 가족의 관계를 정감 있게 담아낸다. <레이펑을 떠난 날들>(離開雷峰的日子, Days without the Hero) 1996, 35mm, 칼라, 92분 감독 : 레이 시엔허, 캉 닝 / 촬영 : 장리 / 주연 : 리우 페이치, 송춘리 중국인민해방군의 모범 레이펑(雷鋒)이 순직한 1962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중국의 현재를 조망한다. 중국에 있어 레이펑은 “인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이타 정신을 대표하는 인물로 “레이펑 동지에게 배운다”는 이름의 캠페인이 전개됐을 정도로 관제 도덕 운동의 영웅 같은 존재이다. 영화는 레이펑의 친구를 주축으로 하여 개방 이후 가속화된 시장 경제화의 과정에서 표면화된 이기주의적 인간과 이타주의적 인간 사이의 차이를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웅장한 음악을 배경으로 자원 봉사 단체의 붉은 기가 바람에 나부끼는 마지막 장면은 다분히 정치적이지만, 개방화 과정에서 변화하는 중국 현실의 단면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중국 ‘I 전영’ 선정 ‘20세기 명작’ 중 7위를 차지한 영화. 문의전화 : 02-592-4031 인터넷콘텐츠 팀 cine21@news.hani.co.kr 시간표 6/13 목 11:00 12:40 2:40 4:30 6:20 8:25 보련등 올때까지 기다려줘 그산 그사람 그개 샤워 엄마는 갱년기 몰완몰료 6/14 금 10:30 12:40 2:25 4:20 6:10 8:20 서양경 보련등 나의 형제자매 몰완몰료 올 때까지 기다려줘 그산 그사람 그개 6/15 토 10:30 12:20 2:15 4:25 6:15 8:5 레이펑을 떠난 날들 나의 형제자매 엄마는 갱년기 아름다운 어머니 샤워 서양경

<오버 더 레인보우> 제작부장 황현정

아무리 영화판 스탭진들의 나이가 어려지는 추세라지만, 제작부장 나이가 스물다섯이랬다. 게다가 일처리 능력에 대한 확실한 보증까지. 점점 그녀가 궁금해졌다. <오버 더 레인보우>의 제작사인 강제규필름을 찾아간 날, 바람머리에 핑클의 유리가 유행시켰다는 등 팬 니트를 입은, 틀림없이 신세대라고 써붙인 황현정이 등장했다. 아나운서 이름과 같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그녀의 체구는 가냘파 보였으나 입매는 야무졌다. 사진촬영을 의식한 옷차림이 쑥스러운지 처음엔 어색한 기색이 역력하더니 일 얘기로 들어가니 본래의 씩씩하고 편안한 웃음이 터져나온다. 공주 영상정보대에 진학해 편집을 전공할 때의 교수님이자, 편집기사로 유명한 박곡지씨가 그녀를 영화판으로 이끌었다. 그때 박 기사의 손에 붙들려 따라간 곳이 99년 <연풍연가> 촬영현장. 애초에 PD에 관심있어하던 제자를 아는 스승은, 그녀를 기획실에 앉혀놓았다. 실습차원에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뭐든 눈 빛내며 따라붙는 그녀를 두고 주위의 평이 좋았다. <연풍연가>를 거쳐, <빙우>라는 작품에 투입됐을 때다. 제작 초반부터 불안하더니 영화가 엎어질 기미가 보였다. 당시 <빙우>의 제작부장으로 있던 최기덕 PD는, “나이 어린 사람을 1년 이상 놀게 할 순 없다”며 이미 제작 스케줄이 잡혀 있던 <텔미썸딩> 제작부에 그녀를 포함시켰다. 겉으로는 놀리지 않겠다는 의도였지만, 바지런한 그녀를 자기 사람으로 껴안으려는 욕심 때문이었다. <오버 더 레인보우>의 촬영기간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원래대로라면 8월쯤에 크랭크인이 됐어야 했는데, 캐스팅 문제로 여차저차 늦어지는 통에 가장 추울 때를 고르고 말았다. 덕분에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촉촉한 비(雨)신들이 제작진들에겐 슬프디 슬픈 비(悲)신이 되었다고. 한번씩 비를 뿌리고 나면 도로가 꽁꽁 얼어붙어, 녹을 때까지 기다리는 인고의 과정이 계속되고, 1회 대여에 500만원 가량 든다는 ‘스카이 레인’이라는 특수 강우기를 2번씩이나 대여하고, 새벽 2시에 남산 1호 터널 앞을 임의로 봉쇄해 며칠에 걸쳐 게릴라식으로 찍었던 인서트 신은 결국 빛도 못 보고 폐기되는 정말 ‘슬픈’ 일이 벌어지기도 했단다. 꼼꼼한 콘티북으로 스탭을 긴장시킨 안진우 감독도, 이 일은 두고두고 미안해했다는 후문. <오버 더 레인보우>의 차기작인 <태극기 휘날리며>(강제규 감독)에서 제작 실장을 맡게 된 그녀가 요즘 무엇보다 뿌듯해하는 일은, 물론 부장에서 실장으로 승진한 것일 터지만, 웹 상에서 운영중인 커뮤니티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제작부의 역할과 현장 분위기를 알려 내고 있는 점과 스탭들의 급여를 월급제로 고정시킨 점. “돈 안받고도 일만 시켜준다면 하겠다”라는 말이 가장 듣기 싫다는 그녀는, “현장에서 모두가 잘 사는 길이란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당당히 요구하는 것"이라며 다시 한번 고정 급여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똑 소리나는, 그녀다운 바램이다. 글 심지현 simssisi@dreamx.net·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프로필 1978년생 공주 영상 정보대 영상 편집과 졸업 <연풍연가>(98) 기획실 직원 <텔미썸딩>(99) 제작부 <단적비연수>(2000)제작부 <오버 더 레인보우>(2002) 제작부장 <태극기 휘날리며> 제작실장

국민영화?

지난 5월27일, <취화선>이 칸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는 핫뉴스가 날아왔다. 그날 하루종일 온 매스컴이 수상 소식을 전하느라 분주했다. 다음날엔 온 지면 매체가 엄청난 면을 할애하며 임권택 감독과 그의 영화인생에 대해 소개했다. 또 그 다음날엔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한 <취화선>팀 소개와 기자회견 내용이 다뤄졌다. 그야말로, 그 한주가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선전한 한국 축구대표팀과 칸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임권택 감독의 이야기로 채워진 셈이다. 영화계에서 밥 먹고 사는 한 사람으로서 초미의 관심은, <취화선>이 다시 ‘칸영화제 특수’를 잡아 흥행바람을 몰고올 것이냐이다. 업계의 많은 사람들이, 워낙 젊은 관객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요즘 영화 흥행경향이 가볍고, 빠르고, 자극적인 것을 선호하는 추세여서 그닥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현재 <취화선>은 ‘부활’(?)의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월요일 오후부터 관객이 슬슬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28일엔 심지어 어떤 극장에선 두배 이상의 관객이 들기 시작하더니만, 29일에도 역시 상승세를 보였다. 배급사에선 주말부터 개봉관 수를 대폭 늘릴 방침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이런 관심이 언제까지, 어떻게 이어질지 자못 궁금하다. 10여년 전 <서편제>의 ‘역전 신화’가 다시 이어질지, 다시 영화계에서 밥먹는 사람들과 내기를 걸 판이다. 개봉 당시, 단성사 한관에서 개봉 첫날 2천여명이 들어 제작사를 절망시켰다가, 당시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었던 대통령의 관람 이후,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문화’의 변방, ‘대중문화’의 언저리에 존재했던 한국영화가 종합 일간지 사회면을 장식하더니, 급기야 2천여명이 3천명, 심지어 전회 매진으로 역전되며 국민영화로 등극했던 그때 시절이 있었다. 기억하건대, <쉬리>는 99년 설 연후에 개봉되어 나름대로 훌륭한 성적을 기록한 바 있다. 모 종합일간지에서, 연휴 성적을 들어 <타이타닉>의 초반 성적을 눌렀다는 뉴스를 전하자 <타이타닉>을 ‘누를 수 있는’ 한국영화로 자리매김하면서 폭발적 흥행장세를 기록했다. 다음해 개봉한 <공동경비구역 JSA>는, 개봉에 맞춰 남북정상회담 소식이 전해져 바람을 타더니만, 추석 연휴 흥행성적이 <쉬리>와 비교되면서 다시 또 국민영화 자리를 차지하는 행운을 누렸다. ‘며칠간 몇명 돌파’식 뉴스와, 영화흥행을 100m 달리기 기록 경신식으로 이슈화하는 마케팅은 <친구>로 이어져 정점에 이르렀다. 그러고보면, ‘국민영화’가 되려면 시대적 이슈를 만들어내거나, 만들어지는 데 동승하는 억센 운도 영화의 질적 완성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매스컴의 리뷰나 평론가의 평이나 별점엔 놀라울 만큼 시니컬한 태도를 보이는 우리 대중, 한국영화 관객이 아직도 사회, 문화적 ‘이슈’엔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이번 <취화선>의 관객 상승을 통해 확인된 셈이다. 한 문장으로 똑 떨어지는 재미있고 명확한 주제와 소재의 이른바 ‘하이 컨셉’ 영화와 스타의 등장, 코미디, 액션, 멜로가 혼성 변주된 영화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요즈음 고전적인, 그리고 의미있는 이슈 메이커 <취화선>이 작금의 흥행동향을 바꿔놓을 수 있을지 더 지켜볼 일이다. 베켄바우어와 차범근이 선수생활을 끝낸 이후로, 더이상 ‘축구’에 관심이 없는 나는 요즘 빨간색만 봐도 ‘또 월드컵 얘기야’ 하며 지레 심드렁해진다. 책상에 앉아 <취화선>의 관객 상승 그래프나 그려볼 참이다. 실로, ‘월드컵’과 ‘칸영화제’의 주간이다.

스튜디오 `지브리`, 꿈과 환상속의 세계

푸른 수국이 흐드러지게 핀 작은 마을, 도쿄 고가네이. ‘아니메’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61) 감독이 이끄는 ‘스튜디오 지브리(지브리)’가 자리잡은 곳이다. 베를린영화제 대상 수상작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도 이곳이 고향이다. 지난 4일 그는 토시오 스즈키 프로듀서와 함께 지브리를 공개했다. 지브리는 꿈과 팬터지의 산실. <센과 치히로…>에선 신들의 온천장에서 길을 잃은 소녀 치히로가 겪는 모험담을 빚어낸다. 엄마 아빠를 구하기 위해 마녀가 주인인 온천장 종업원이 되어 온갖 모험 끝에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는데 성공하는 이야기이다. 치히로를 돕는 신비스런 소년 하쿠와 머리 큰 마녀 유바바, 얼굴없는 요괴 가오나시 등 매혹적인 캐릭터들이 쉴새없이 등장한다. 소년의 웃음과 개구진 유머를 지닌 두 사람은 그 ‘매혹의 비밀’을 유쾌하게 들려줬다. <센과 치히로…>는 28일 한국에서 개봉된다. “지브리에서 열살짜리 꼬마가 일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봤어요. 열살짜리 아이가 처음 집을 떠나 처음으로 다른 사람이 주는 다른 밥을 먹게 됩니다. 아이는 (그런 상황을) 어떤 진실로 받아들일까요? <센과 치히로…>는 그 진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열살짜리 친구 딸을 위한 영화를 떠올렸다는 미야자키 감독은 치히로를 부려먹는 마녀 유바바가 하는 일이 토시오 프로듀서를 닮았다고 해서 사람들을 웃겼다. 토시오 프로듀서는 “미야자키는 자기가 만들면서도 자기 작품을 잘 모른다”는 말로 자신의 역할을 표현했다. 감독의 의견과 달리 수줍음 많은 ‘왕따’ 요괴 가오나시를 작품 홍보의 전면에 내세웠고, 이는 경제불황으로 고통받는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토시오 프로듀서는 ‘재능있는 한 사람’의 카리스마를 강조했다. “좋은 작품은 재능이 있는 한 사람에 모두의 힘이 합쳐질 때 나오지만, ‘그 한 사람’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또다른 애니메이션 왕국인 디즈니에는 ‘그 한 사람’이 없는 게 지브리와의 차이라고 그는 못 박았다. <센과 치히로…>는 이런 ‘미야자키의 지브리’에서 태어났다. 실제로 교외 주택가에 자리잡은 스튜디오 지브리는 미야자키 감독의 꼼꼼한 수공예 작품 같다. 제1~3스튜디오와 감독의 개인 아틀리에는 미로 같으면서도 곳곳이 계단과 문으로 연결된 열린 구조인데, 구석구석이 그의 손길을 거쳤다. 실제로 유난히 많은 창문과 옥상 정원, 숲으로 둘러싸인 따뜻한 질감의 목조건물 등은 붉은 돼지 간판과 토토로 인형 등 작품 속 캐릭터들과 어울려 지브리를 하나로 묶는 어떤 정서를 만들어 놓는다. 미야자키 감독은 최근 자연과 팬터지로 이뤄진 이런 세계에 한가지 색깔을 덧입혔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등에선 무국적의 세계를 선보였던 그가 <이웃집 토토로> <원령공주> 등을 거치며 <센과 치히로…>에선 일본의 전통 안으로 더 깊숙히 들어간 것이다. “내가 자라난 땅은 일본이고, 일본이란 풍경을 더 많이 드러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일본만 고집할 수 없는 현실도 있으니, 어디든 무대가 될 수는 있겠지요. 사실 일본 젊은이들은 일본 전통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아는 사람으로서 더 알리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 미야자키 감독은 최근 “신작 구상으로만 머리가 가득 차 있다”고 했다. 디즈니의 테마파크가 싫어서 애니메이션 미술관을 만들고, 젊은 애니메이터들의 작업실에서 직접 그림작업을 하기도 하는 육순 청년의 상상력은 여전히 넓은 여백으로 뻗어간다. 그에게 “<센과 치히로…>는 벌써 이전 영화”가 되고 미야자키의 이미지 포스터가 널린 ‘지브리’는 이제 또 새로운 경계를 향해 가고 있다. 도쿄/정세라 기자seraj@hani.co.kr[사진설명]수풀이 우거진 스튜디오 지브리의 전경/ 워크 스튜디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