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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쾌도변명

(당사자인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쾌도난담은 희한하다. 양심수들이 애독한다는 양식있는 시사주간지에 지성도 교양도 함량 미달인 두 건달이 별다른 준비도 없이 두세 시간 횡설수설하는 게 매주 멀쩡하게 실려나간다. 한두번의 해프닝으로나 어울릴 이 믿기 힘든 일은 해를 넘겨서도 계속되고 있다. 풍문으로는 쾌도난담 덕에 <한겨레21> 웹사이트 조횟수가 몇배 늘었다고도 하고, 이 수채 같은 기사를 저주하며 구독 중단을 선언하는 비장한 독자가 나타났다고도 한다. 그런 극단적인 반응은 내 머리통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대로 진지한 얘기들을 무겁지 않게 전한다는 장점(제대로 전하는가는 논외로 두고)도 있지만, 사적 톤으로 발언하고 공적 톤으로 읽히는 쾌도난담의 작동 원리는 나를 늘 불편하게 한다. 쾌도난담은 마치 내가 어느 카페에서 친구와 편하게 나눈 대화를 수많은 사람에게 생중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같은 것이다. 쾌도난담을 읽는 사람들은 나를 실제보다 조금 더 경박한 인간으로 실제보다 조금 더 방자한 인간으로 짐작하는 듯하고, 그것은 사람들에게 나를 실제보다 조금 더 기품있는 인간으로 실제보다 조금 더 진지한 인간으로 인상지우고 싶은 내 욕망과 충돌한다. 처음 만난 사람들은 내게 말하곤 한다. “생각보다 점잖은 분이군요.” 빌어먹을. 별의별 얘기를 다루다보니 별의별 잡음이 끊이지 않지만 나나 김어준이나 지성의 부족분을 고집으로 채우고 사는 스타일이라 일일이 개의친 않는다. 다만 이따금씩 내 말에 내가 후회하고 그러는데, 내가 율려라는 걸 들고 나온 김지하 선생을 애처로운 왕자병 환자에 앵벌이하는 상이군인이라고 비아냥거린 일은 바로 그런 예다. 내가 오늘의 김지하를 존중할 수 없는 게 사실이라 해도 그 비아냥은 무슨 얘기든 짧게 훑고 지나가는 쾌도난담의 형편과 결합하여 비열한 인신공격이 됐다. 다른 곳에 김지하 선생에 대한 좀더 차분한 비판문을 쓴 적이 있긴 하지만 나는 내 20대의 치명적인 선생에게 씻을 수 없는 결례를 하고 말았다. 얼마 전 매매춘을 필요악이라고 표현한 일은 쾌도난담의 형식이나 사정으로 변명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내게 남겼다. 후배들은 그 발언으로 별 문제는 없느냐 조심스레 물어왔고, 평소 내 글에 호의적이었던 한 학자는 무척 실망했다며 내 말이 고도의 반어법이기를 바란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나는 김강자라는 여성경찰관의 해프닝과 구성애라는 보수주의자의 맞장구에 내가 가진 이른바 ‘과학적 매매춘론’을 사용하는 일이 왠지 허망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러나 내 발언은 고도의 반어법은커녕 그저 반동적 매매춘론을 한번 더 강조하는 일이 됐다. 두어달 전 나는 담당기자에게 쾌도난담을 그만두겠다 말했다. 내가 뒤늦게 글쓰기라는 걸 시작하여 체험수기류의 잡문이나마 열정을 가지고 끼적댈 수 있었던 건 내 팍팍한 삶에서 빚어지는 나와 세상의 긴장감 덕이었다. 매주 한번씩 세상의 일들을 연예가 방담 하듯 주절대는 쾌도난담’은 그런 내 긴장감을 느슨하게 만들고 있었다. 쾌도난담 덕에 나는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지만, 내가 그런 허명이 한 인간을 얼마나 가련하게 만드는가을 모르진 않았다. 그만두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목요일이 다가오면 으레 쾌도난담 하러 갈 요량하는 나를 보면, 내가 쾌도난담을 정말 그만두려 하는 건지 쾌도난담으로 일어나는 내 민망함을 보상하기 위해 나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건지 나도 헛갈린다. 대견하게도(가증스럽게도) 이젠 공적 톤으로 읽힐 것을 염두에 두고 사적 톤으로 발언하는 일에도 어지간히 익숙해졌다. 또한 나는 쾌도난담이 스테레오타입화된 공격 대상 이외의 대상을 공격하기엔 몹시 불리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한편으론, 진지한 거라면 질색을 하던 나이 어린 후배가 쾌도난담을 낄낄거리며 읽는 모습을 보며 자못 계몽주의자의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쾌도난담이 내게, 내가 쾌도난담에 차분해진 셈이다.

설 연휴 비디오 가이드 [5] - <에드워드 펄롱의 포토그래퍼> 外

숨은 비디오 걸작 5 - <에드워드 펄롱의 포토그래퍼>와 워터스 감독 뒤죽박죽 컬트, 웃고 즐겨라 존 워터스는 참 이상한 영화만 만든다. <에드워드 펄롱의 포토그래퍼>(이하 포토그래퍼)도 마찬가지. 줄거리만 보면 차분한 드라마 같은데, 막상 영화를 보면 아니다. 기묘하고 엉뚱한, 그리고 천박한 장난들이 가득하다. <포토그래퍼>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에드워드 펄롱과 크리스티나 리치 등의 스타급 연기자들이 출연한다는 것이다. 특히 크리스티나 리치는 왜 진작 존 워터스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는지 의아할 만큼, 영화에 딱 어울린다. 영화에서 ‘패커’라는 이름의 청년은 취미삼아 사진을 찍는다. 그의 재능은 금세 사람들 눈에 뜨이고, 뉴욕으로 초청되어 개인전을 갖기도 한다. 잡지에도 이름이 실리고 텔레비전에도 출연한다. 그야말로 승승장구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청년은 고민한다. 내가 과연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패커의 모델이 되었던 가족들과 동성애자, 매춘부들의 삶이 침해받으면서 사진작가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기이하지만 소박한 인생을 살던 패커의 가족들은 점점 다른 사람들이 되어가고 패커는 결심을 굳힌다. 나 혼자만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겠노라고. <포토그래퍼>는 감독의 70년대 영화인 <핑크 플라밍고>와 <암컷 소동>에 비하면 온건하다. 속이 메슥거릴 만한 장면은 눈에 띄지 않는다. 시간(屍姦)이나 배설물에 관한 언급도 없다. 그럼에도 <포토그래퍼>는 정치적 은유로 무장하고 있다. 패커와 그의 연인이 투표장에서 섹스를 벌인다든가 종교에 대한 풍자를 유머스럽게 표현한다. 영화는 매춘부와 스트립걸, 동성애자 등 비주류 인생에 대해 따스한 시선을 던진다. 존 워터스 감독이 미국사회의 가치관에 줄곧 반기를 들었던 것을 상기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게다가 ‘엽기성’이라는 단어 하나로 요약되었던 전작들에 비하면, <포토그래퍼>은 감독의 원숙함마저 보인다. 패커가 온갖 유혹에도 불구하고 촌구석에 남길 결심하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스스로 찾기로 마음먹는 결말은 그래서 빛난다. ‘니들은 엿이나 먹어라’는 식의 비아냥이니까. 존 워터스의 영화는 비디오 출시작이 거의 없다. 조니 뎁의 앳된 모습을 담은 <사랑의 눈물>(Cry Baby) 한편뿐이다. <사랑의 눈물>은 50년대 미국의 청춘문화를 다룬 코미디로 뮤지컬과 공포 등의 장르가 뒤죽박죽 뒤섞인 컬트작. 여느 존 워터스 영화보다 캐릭터들 개성이 돋보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핑크 플라밍고>까지 볼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최소한 캐슬린 터너가 중년주부이자 엽기적 살인마로 분한 코미디물 <시리얼 맘> 정도는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정신없이 웃고 즐길 수 있는 존 워터스의 또다른 수작이다. <비밀의 꽃>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을 만든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 <내 어머니의 모든 것> 이전에 제작되었지만, 여러 면에서 연장선상에 있다. 특히 상처입은 여성들의 연대를 애정어린 시선에서 그린다는 점이 그렇다. 레오는 필명으로 연애소설을 쓰는 작가. 남편과는 서먹한 사이가 된지 오래고 가끔 외국에서 전화만 걸어온다. 점차 연애소설을 쓰는 데 이력이 난 레오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직접 글을 쓰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불현 듯 찾아온 남편은 그녀에게 결별 선언을 던지고 레오는 적지 않은 상처를 입는다. 고향으로 내려온 레오는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삶을 찾기로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덧 그녀 주변엔 새로운 친구가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던 것. <비밀의 꽃>은 여성의 ‘모순성’을 전례없이 온화한 눈길로 바라본다. 알모도바르 영화세계의 새로운 출발을 알린 작품. <어플릭션> 원제는 ‘고통’이라는 의미다. 전미 비평가협회 최우수 남우주연상과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수상작. 폴 슈레이더는 익히 알려진 바 대로, <택시 드라이버>의 시나리오 작가로 널리 알려진 연출자다. 지역 경찰로 일하는 웨이드는 가족문제로 골치가 아프다. 아버지는 늘 술에 절어 있고 웨이드 자신도 이미 부인과 이혼한 처지다.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지만, 부모 등의 가족들이 그의 발길을 부여잡는다. 마을에서 우연한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웨이드는 사건의 배후에 모종의 음모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겨울날 동사하도록 만드는 일이 생긴다. 닉 놀테, 시시 스페이섹, 제임스 코번 등 연기파 배우들을 만날 수 있는 수작. 특히 아버지 역의 제임스 코번은 불굴의 노익장을 과시한다. 종교적 구원의 문제에 천착해온 폴 슈레이더 감독의 최근작. <빌 머레이의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맥스는 명문 사립학교 러시모어의 졸업반 재학생. 다채로운 교내 활동으로 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처지다. 맥스를 잘 모르는 사람은 그를 대단한 모범생으로 착각하지만, 실제는 다르다. 학업성적은 형편없고 친구도 나이가 한창 어린 아이뿐이다. 맥스는 학교 교사인 크로스 선생에게 연정을 느끼고 선생을 위해 교내 수족관을 짓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블룸이라는 재벌을 찾아가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원제가 <러쉬모어>인 <빌 머레이의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는 성장 영화의 공식을 거꾸로 뒤집는 모험을 감행한다. 왕따당하던 아이는 스스로의 처지를 이해하면서 제자리를 찾는다. 80년대 존 휴즈 식의 청춘드라마와 일맥상통하는 영화. 해외에선 ‘올해의 수작’으로 평가될 만큼 평가가 좋았던 영화지만 국내에선 아예 개봉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스크린 속 나의 연인] 내 심장을 멎게 한 <노팅 힐> 의 안나스콧, 줄리아 로버츠

단언컨대, 나는 줄리아 로버츠를 좋아하지 않았다. 거실에 앉아 케이블 텔레비전의 채널을 이리저리 떠돌다가 문득 걸리기라도 하면 결국 끝까지 보고야 마는 그 재밌는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도 나는 줄리아 로버츠만은 미스 캐스팅이라고 생각했다. 멀대처럼 큰 키에 인천공항만큼 큰 입을 소유한 여자는 나의 이상형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나는 1970년대의 다이안 키튼이나 80년대의 피비 케이츠, 혹은 90년대의 맥 라이언처럼 작고 귀여운 느낌의, 고양이 같은 여자가 좋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단 한 편의 영화, 그것도 단 하나의 장면 때문에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영화는 <노팅 힐>이고, 그 장면은 후반부에 그녀가 휴 그랜트의 서점에서 마지막으로 사랑을 확인할 때다. 스크린을 보면서 이야기해야겠으나 불가능하므로 지면으로나마 한번 재현해보자. 서점에 찾아온 그녀. 하늘색 카디건에 파란 스커트를 입은 그녀는 자신의 실수 때문에 상처를 받은 휴 그랜트에게 사과하며 조분조분 상황을 설명한다. “이제 나는 당신의 판결을 기다리는 죄인”이라며 농담하는 그녀, 하지만 소심한 휴 그랜트는 결국 그 사랑을 포기한다. 그 거절의 말을 듣는 순간, 그녀의 얼굴이 클로즈업 된다. 그를 멍하니 쳐다보는 그녀. 잠시 입술을 꽉 다물고 있더니 이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어색하게 웃는다. 그녀의 눈은 툭 건드리면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지만, 그녀의 굵은 선은 그녀를 단지 ‘연약한 여자’로 놔두지 않는다. 금세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한숨을 내쉬며 하는 말. “훌륭한 결정이에요. 하지만 잊지 말아요. 지금의 나는 단지 한 남자 앞에 서서 사랑을 구하는 여자일 뿐이라는 걸.” 그러곤 그녀는 뒤돌아선다. 나는 스크린 속에서 이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더니 이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그러곤 나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휴 그랜트에게 ‘이 얼간아, 그녀를 잡아!’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이처럼 내가 영화 속 여배우를 보고 가슴이 뛴 건 <천녀유혼>의 왕쭈셴(왕조현)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한마디로 나는 단숨에 그녀에게 반하게 되었다. 이런 걸 사랑이라 말하면 우습지만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한 순간 반하게 되는 것. 누군가에게 반하는 것이 그 사람의 인품이나 능력 등을 하나하나 따진 후에 결정하는 게 아니듯, 내가 그녀를 좋아하게 된 것도 그녀의 전작이나 <할리우드 뉴스 101> 같은 가십 프로그램에 나오는 그녀의 사생활에 기인하지 않는다. 그저 단 한 장면, <노팅 힐>의 마지막 장면 속에서의 모습으로 인해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그 이후 다른 작품에서의 그녀도 꾸준히 사랑해왔다고 말하긴 힘들다. 예를 들어 <오션스 일레븐>의 줄리아 로버츠, 혹은 <에린 브로코비치>의 그녀를 좋아하느냐면 고개를 끄덕이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 내가 좋아하는 그녀는 오로지 <노팅 힐>에서의 극중 배역인 ‘안나 스콧’뿐인 것 같다. 더 이상 그녀에 대해 구구절절 할 말이 없다. 나는 <노팅 힐> 이전의 그녀의 모습, 혹은 그 이후의 그녀에 대해 온통 부정하고 있으니까. 마치 17살 여름방학 때 동네 도서관에서 첫눈에 반했으나 두 번 다시 보지 못한 어여쁜 여학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녀에 대한 나의 감정엔 서론도, 본론도 없다. 그저 <노팅 힐>에서와 같은 그녀의 모습을 다른 작품에서 만날 수 있게 되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사랑했던 옛 연인을 다시 만날 것 같은 기대감으로 오늘도 줄리아 로버츠의 새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 앞을 기웃거린다.

북과 공동작업 <심청전> 만화영화로

“우리 고전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심청전으로 한국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남북이 함께 만들었다는 점에서 개인적 소원도 풀었고요.” 다음달 남(12일)과 북(15일)에서 동시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왕후 심청>의 넬슨 신(68) 감독은 이번 작품을 만든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할리우드 애니메이터로 활동하며 <심슨 가족> <핑크 팬더> 등을 만드는 데 참여한 그는 무려 7년 동안 70억원을 들여 <왕후 심청>을 완성했다. “캐릭터부터 한국적으로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어요. 눈과 눈썹 사이를 멀게 그린 게 그 단적인 예입니다. 심청의 경우에는 왕후가 될 인물감으로 보이도록 몰락한 조정 대신의 딸이자 ‘얼짱’, ‘몸짱’, ‘인품짱’으로 재해석했어요. 그렇다고 원작의 기본틀까지 바꾼 건 아닙니다. 고전은 그 자체로 보전할 가치가 있거든요.”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나 1·4 후퇴 때 월남한 그는 이번 애니메이션의 원·동화 작업을 북한의 ‘조선 4·26 아동영화 촬영소’에 맡겼다. 통일을 위해서는 직접적인 정치적 교류보다 먼저 문화적 교류를 통해 정서적 물꼬를 터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더 많은 어려움과 비용에도 아랑곳 않고 공동작업을 밀어붙였다. “어렵사리 공동작업 승낙을 받아내고 2001년 처음으로 북한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이후 서해교전이니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이니 하는 악재들이 잇따라 터져나오는 겁니다. 언제 작업이 중단될지 몰랐죠. 그래서 그들에게 모든 작업을 단계별로 끊어서 하도록 했습니다. 혹시 중단되더라도 남쪽에서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말이죠. 그래서 작업이 더 오래 걸렸어요.” 작업 때문에 수없이 남북을 오가던 그는 중국에서 발생한 사스 때문에 북으로 들어가는 여객기 운항이 중단됐을 때 화물기를 타고 평양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는 무려 18번이나 평양을 다녀온 끝에 <왕후 심청>을 완성할 수 있었다. <왕후 심청>에는 북한 지명도 나온다. 그의 고향인 평산은 물론, 평양과 한양의 이정표가 함께 나오는 장면도 있다. “남과 북은 엄연히 하나의 나라였다는 사실을 그렇게라도 알리고 싶었다”고 그는 말한다. “북한의 애니메이터 수준은 상당합니다. 말 타는 장면을 그리기에 앞서 실제로 말 타는 모습을 수없이 관찰하고 작업에 들어가는 사람들이죠. 앞으로도 계속 함께 작업을 하고 싶어요.” 차기작으로 고구려를 다룬 텔레비전 시리즈를 준비 중인 그는 이 또한 남북 공동작업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친절한 금자씨> [2] - 박찬욱 감독 인터뷰

“이번엔 좀 따뜻한 결말이기를 바랐다” 그는 이틀간 종일 인터뷰가 있다고 했다. 잠도 호텔에서 잔다고 했다. 유명세가 불러온 영광의 감금(?)이었다. 하지만 친절한 찬욱씨는 다시 한번 <친절한 금자씨>를 성심성의껏 구석구석 설명해준다. 아직 여과없이 말하기 힘든 부분까지도 말이다. 그래서 이 인터뷰는 중요한 특정 인물의 이름을 살짝 건너뛰거나, 장면 설명을 약간 다듬어서 묘사하는 정도의 수정을 거쳤다. 그 때문에 잠깐씩 미로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그래서 더 꼼꼼히 읽으시기를 권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읽는다면 더 오롯이 들릴 거라고 생각한다. -먼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하자면 현장 검증에 끌려다니는 금자 모습을 보면서 칼 비행기 폭파범 김현희가 떠올랐다. 영화 속에 설정된 시기도 비슷하고. 의도한 건가. =그렇게 보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적인 연결을 갖는 건 아니다. 미모의 젊은 여성이 수갑차고 사람들한테 막 끌려다니는 모습은 누가 만들어놔도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하지만, 나중에 정말 알카에다 비디오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있긴 하다. 아마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이미지가 떠오르는 건 확실히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 같다. 테러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의 끝에서 뭔가 집단적으로 응징을 한다는 점도 그렇고. -초반에 금자에 관한 요약판 시퀀스를 보여주는데, 그 부분이 굉장히 빠르게 편집되어 있다. =금자의 수형 생활이 그렇게 악몽 같지 않았고, 교도소가 지옥처럼 끔찍한 세월이 아니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중점이었다. 요약 시퀀스 안에서 금자는 활짝 웃고 있고, 남을 돕고 있고, 공부도 한다. 교도소 세팅이 우중충하게 보이게 하고 싶지 않아서 살구빛으로 예쁘게 해달라고 주문까지 했다. 그곳에서의 생활이 활기있고 행복한 그녀의 전성기였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앞신에 뒤신의 이미지 또는 사운드가 먼저 들어오는 경우들이 굉장히 많다. =이리저리 시제가 옮겨지는 일이 많아서 섞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단지 왔다갔다한다는 느낌뿐만 아니라 정신없이 뒤죽박죽되면서 섞이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클로즈업이 굉장히 많다. <올드보이>가 최민식의 영화라면 확실히 <친절한 금자씨>는 이영애의 영화다. 그들의 얼굴 자체에서 느껴지는 양면성 같은 것이 영화의 큰 동기가 됐겠다는 생각이 든다 =맞다. 이 영화에는 금자뿐 아니라 많은 조연들의 클로즈업도 있다. 하지만 역시 제일 많은 건 금자다. 병원에서 김부선하고 누워 신장 떼어줄 때 금자는 장난으로 욕을 하면서도 해맑게 웃는다. 그렇지만 출소하고 난 뒤 철공소에서 김부선을 끌어안고 반가워할 때 그 안을 살피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때 얼굴은 침대에 누워 있던 그 맑고 화사한 얼굴하고는 대조적으로 나이들고 칙칙하고 음모를 꾸미고 있는 그런 표정이다. 그 대조가 참 그럴듯하고,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금자의 빅 클로즈업도 인상적이다. =필름 400자 한캔을 다 쓸 만큼 고생해서 얻어낸 장면인데, 카메라 앞에 유족들이 서 있고 영애씨가 그걸 고정된 채로 서서 쳐다보면서 찍은 거다. 보기에 추하다 싶을 만한 제일 예쁘지 않은 얼굴이 되기를 바랐고, 그렇게 해달라고 했고, 본인도 그게 제일 안 예뻐 보이는 걸로 노력한 거다. (웃음) -많은 카메오가 등장하는데 그 배치에 의도가 있었나. =<복수는 나의 것>에서 대적했던 두 사나이 송강호와 신하균이 동료로 등장한다. <올드보이>에서 피해자였던 최민식은 악한으로 나온다. 유지태가 피해 아동인 원모의 유령으로 나오는 것은 <올드보이>에서 누나를 떠나 보낼 때 아역배우하고 유지태하고 교차되는 장면을 생각하면서 썼다. 그런데 여자배우들 스케줄이 안 맞아서 좀 뒤죽박죽이 됐다. 제니의 양부모가 한국에 왔을 때 금자 집에 가서 텔레비전 보는 장면이 있었다. 그때 두나가 연속극에 출연하는 장면을 생각했었는데 안 됐다. 또 혜정이가 원래 하려고 했던 역할은 “뭐 락스를 먹였다고?”라고 말하는 초반 감옥장면의 금자 동료였다. 윤진서도 그 장면에 출연해서 “아! 친절한 금자씨”라고 말한다. <올드보이>의 두 아가씨가 모두 출연하는 거였다. 그런데 혜정이가 그때 시간이 안 돼서 그냥 뉴스 앵커가 됐고, 이 역을 맡기려고 했던 두나는 결국 시간이 안 맞아서 못 나왔다. -여전히 동일한 인물에 내재된 양면성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금자의 경우 잔인한 면이 있지만, 한 편으로는 사랑스럽고 달콤한 케이크를 만들 줄 아는 제빵사다. =금자가 그렇게 달콤한 케이크를 만들 줄 아는 제빵사가 된 건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은 직업과 돈벌이 수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출소한 전과자들을 찾아가서 삥을 뜯을 수도 있지만 그건 너무 쉬운 것 같고, 직업훈련도 받았으니까 멀쩡한 숙련공이자 장인으로서 직장 생활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 유족에게 최선을 다해 대접하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럴 땐 먹을 게 제일 좋다. 먹을 것 중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찌개 이런 것보다는 케이크가 제일 깔끔하고, 더군다나 케이크가 주는 아주 달콤하고 화려한 장식도 매력적이었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이 영화의 음악을 포함해서 화사하고 장식적인 면이 강해진 것도 거기에서 시작한 게 아닌지 모르겠다. -복수를 다룬 앞의 작품의 인물들은 영웅의 느낌이 없는데 금자는 영웅의 느낌이 있다. 마치 여전사 같다. =하지만 영웅적인 행동은 못한다. 말했듯이 처형자의 입장에서 구경꾼의 입장으로 전락하니까. 금자는 입을 가리고 있는데 속을 알 수 없고, 얼굴을 드러내놓고 있어도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바랐기 때문이다. 어떤 장면들에서는 좀 유령 같은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마지막에 빵집 나루세에 와서 파티를 할 때, 다들 금자가 거기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그때 그녀는 유령 같은 느낌이다. 나는 영화에서 호흡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서 인물들의 숨소리를 사운드로 많이 넣는 편이지만, 그 장면을 후시녹음할 때 일부러 금자 숨소리는 가급적 뺐다. 동시녹음에서도 잘 안 들리도록 뺐다. 유령처럼 느껴지길 원해서 그랬다. -그런데 왜 하필 유령 같은 느낌을 원했나. =금자가 관찰자라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복수라는 퍼포먼스를 보는 관객 같은 느낌. 그래서 눈만 강조한 것이다. 유족들이 천사가 지나간다는 둥 터무니없는 말과 행동을 할 때 금자는 거기 끼어들 자격이 없는 거다. 자기 아이는 살아 있으니까. 그러니까 숨소리도 내지 않고 죽은 듯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물들의 관계, 특히 금자와 백 선생의 관계를 꼼꼼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백 선생과 금자가 어떻게 시작했는지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곧 소설 <친절한 금자씨>가 출판될 예정인데, 그건 다른 작가가 쓴다. 그 사람이 쓴 원고를 나에게 보내왔는데, 아직 바빠서 전부는 못 읽어봤지만, 백 선생의 성장과정 같은 걸 넣었더라. 그가 왜 이런 악마가 되어야 했는지등등의 그런 과정. 그런 게 책에서는 흥미로울 수도 있겠으나 영화 속에서는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됐는지, 어떤 동기가 있고 어떤 성장과정이 있었는지를 설명할 겨를은 없었다. 이것은 금자의 영화이기 때문에 백 선생에 대해서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요즘 관객은 어디로 봐도 나쁜 놈인 그런 것만 보여줘도 그가 타고난 악마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어떤 사연이 있어서 그렇게 되었거니 생각을 한다. 최민식 같은 배우가 동정의 여지가 있는 역할보다는, 진짜 나쁘기만 하고 비열하기만 한 그런 걸 하는 게 훨씬 보기 좋았다. -백 선생이 영어 선생이라는 점을 이용해서 아주 중요한 장면에 코미디를 발휘한다. =왜 안 써먹겠나. 이걸 써먹겠지 싶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준비해서 이제 막 죽일 때가 된 건데 그럴때일수록 한번 다른 길로 가는 게 필요하기도 했고. 의사소통이 안 돼서 애를 먹는 모녀지간인데 그게 되는 사람이 가운데 있으면 당연히 써먹겠지 싶었다. 그게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상황이 되는 거다. 원래 촬영할 때는 뒤에서 총을 대고 있으니까 담담하게 어쩔 수 없이 통역한다는 걸로 촬영했는데 나중에 녹음을 새로 했다. 연기하듯이. 모녀의 말투를 흉내내서. 매를 버는 짓이지만, 백 선생은 그러고도 남을 종자니까. -전작들과 같이 놓고 볼 때 <복수는 나의 것>은 차갑고 <올드보이>는 뜨거운 영화였다. 그런데 말한 것처럼 <친절한 금자씨>에는 중요한 곳곳에 유머가 있다. 공표한 것처럼 <친절한 금자씨>가 복수 삼부작의 최종회라면 왜 여기서 그 정리의 키워드가 유머가 되어야 하는지 궁금증이 생긴다. =앞의 두편은 전부 사람을 긴장시키고, 보는 데 힘이 들어간다. 육체적으로 피곤하게 만드는 영화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좀더 여유로운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고, 그런 면에서 유머가 좀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나도 좀 지친 기분이 들고…. 하지만 우습다라는 기조로 가다가도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식으로 주저하게 되고, 또 나중에는 웃은 게 조금 미안하게도 되는 그런 상태로 가는 거다. 제일 따뜻하달까? 전작들이 차갑고, 뜨거웠다면 이건 좀 따뜻한 결말이기를 바랐다. 금자의 마지막은 용서받았다고 말은 못해도 수고했다라고 격려할 만한 점이 있다. 결국은 앞의 두편의 주인공들도 별별 고생을 다하고 나쁜 짓까지 하지만, 어떻게든 악마가 되려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내 심정은 그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모두 다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정해주고 싶었던 거다. -여러 명의 화자가 금자를 이야기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중에서도 특히 영화 바깥에서 금자의 심리를 설명하는 중년의 여자 목소리는 중요하다. 그게 누구의 목소리인지 밝혀지면서 이 영화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금자씨에 대해 들려주는 오랜 옛날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마지막에 이르러서 “그래도 나는 금자씨를 좋아했다”라는 말이 나올 때 비로소 우리는 성우 김세원이 낸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게 된다. 그제야 비로소 관객은 이 영화가 2050년쯤의 미래영화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금자씨는 이제 막 늙어서 병으로 죽었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지금 누군가에게 금자씨에 대해 설명해주는 그런 회고담, 옛날 이야기 같은 거다. 관객이 보는 영화는 당대의 이야기지만, 이건 사실 미래에서 온 회고담이다. “금자는 끝내 영혼을 구원받지 못했다”라고 말할 때 그건 도대체 누가 어떻게 판단을 내리는 건지 근거가 없는데, 내 상상에 의하면 만약 죽기 전에 금자가 그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그런 말을 남기고 죽었다면 그 목소리의 주인공도 남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동화 같은 발상에서 시작한 거다. 처음에는 지금보다 몇배 동화 같은 이야기였다. 많이 줄었지만 그런 점에서 지금도 많이 남아 있긴 한 것 같다. -복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정말 맞을까 할 정도로 결론이 모범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결론은 모범적이라도, 과정이 충격적이다. =모범적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끔찍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야 효과가 있다. 그걸 통해서 원론적인 교훈을 절실하고 뼈저리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다. 관객을 한 방향으로 몰고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백 선생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의 문제에서 점점 더 우스꽝스럽게 갔고, 그리고 이제부터는 유족이 더 잔인하게 느껴지도록 했다. 무방비상태의 인물을 놓고 벌이는 그들의 행동을 보는 금자는 구경꾼이 된다. 복수를 막 수행하려는 사람, 오랜 세월 준비해서 이제 막 잡아놓고 죽일 수 있는 그 단계에서 금자는 이 모든 복수극의 구경꾼, 관객이 되는 거다. 그제야 금자는 어떤 깨달음을 얻는 거다. 금자가 직접 복수를 수행했다면 좀 달랐을 거다. 내가 했을 법한 걸 남이 하는 걸 지켜볼 때 이 모든 것이 다 그릇되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다. 고지식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금자씨가 그 과정을 거쳐서 뭔가 자책하고 괴로워하는 제스처가 바로 두부 모양의 케이크를 먹으려고 할 때다. 금자는 독자적인 방식으로 자기 구원을 갈망하는 인물이다. 전도사가 제시한 두부가 아니라, 자기 손으로 만든 두부 케이크를 먹는다는 거다. -그런 점에서 보는 사람에 따라 금자가 구원을 받았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 같다. =화장실에서 원모의 유령을 만났을 때 원모의 표정이 바로 금자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 될 텐데, 금자가 뭔가 변명하려고 할 때 원모는 왜 그러셨어요 하는 식으로 입을 탁 막아버린다. 이게 금자의 생각이라면 결코 스스로가 용서받았다고 여기는 건 아닐 거다. -올드보이를 본 관객은 사실 이 영화에서도 반전을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스토리상 반전이라고 할 만한 내용이 있지는 않다. 그게 오히려 이 영화의 어떤 메시지처럼 보인다 =이 영화는 금자가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는 그 순간 완전히 다른 영화, 독립된 영화처럼 되어버린다. 스토리상의 비밀이라기보다는 플롯상의 방향전환 내지는 비약 같은 게 순식간에 일어나는 거다. 사실 그게 이 영화를 구상할 때 핵심적인 두 가지 동기 중 하나였다. 하나는 백 선생을 향한 금자의 원한이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사실 별거 아닌 약한 동기로 보일 수 있겠다는 점이었고, 두 번째는 갑자기 다른 종류의 영화로 비약해버린다는 점이었다. 그 내용은 <올드보이>에서의 반전 같은 것은 아니지만, 또 그렇다고 쉽게 공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반전은 없는데 공개를 하긴 어렵다… 뭐 그렇게 말할 수밖에…. -그 두 가지가 복수라는 테마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중요한 장치인가.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기껏해야 동시통역 장면에서 제니에게 해명하는 것처럼 금자가 생각하는 백 선생의 죄는 “엄마(금자)를 죄인으로 만든 죄”라고 할 수 있는데, 그건 상당히 추상화된 거다. 애가 죽은 것도 아니고, 금자는 애를 되찾지 않나. 백 선생쯤 잊어버리고 살면 될 것도 같고. 또 감옥 생활을 했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금자도 유괴 사건에는 직접 관여했으니까 그렇게 억울하다고 보기는 힘들고.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라면 원모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고 빠져나갈 수 있는 사안이 금자에게는 커다란 죄의식과 책임감으로 다가오는 거다. 그래서 비밀이 폭로된 순간 금자는 그 예민한 죄의식으로 감당하기 힘든 몇배의 책임감에 빠져들게 되는 거다. 그래서 이 두 가지 특징적인 요소가 불가분의 관계가 되는 거다. 그런 것을 관객이 아주 쉽게 동일시할 수 있도록, 함께 분노할 수 있도록 만드는 건 쉽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이 스토리가 가진 윤리적인 장치라고 보면 된다. 감정적으로 끌려가는 것보다는, 저런 상황이라면 나는 가만있을 것 같은데, 혹은 저런 원한이라면 복수에 나설 만할 텐데, 이런 식의 여러 생각이 들 수 있도록 강력하지 않은 어떤 것이어야 이 윤리적인 측면이 잘 드러날 수 있다고 봤다. -우리가 죄의식에 대해서 너무 가볍게 지나친다고 지적하고 싶은 것인가. =그렇게 설교할 생각은 없고… 그런 민감한 죄의식을 갖고 사는 사람들, 그래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리석은 방법으로 가거나, 벗어나려고 싸우는 사람들이 보기 좋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 -부조리함 자체에 대해서 매혹을 느끼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한다. =매혹이 있다. 하지만 그건 나의 내면에서 논리적으로 진행되어 만들어지는 부조리다. 내가 목표로 하는 게 그거다. 나로서는 나름대로 정교한 논리로 만들어낸 장면들이 보는 이에게는 부조리하고, 낯설고 기이해 보이는 것, 그런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 비극 속에 나오는 유머나 희극이 효과를 강조하는 이번 영화와는 좀 다른, 희극적인 상황이 주조인데 이따금 비극이 드러나는 그런 작품을 해볼 생각은 없나. =해보고 싶다. 다음 HD 작품이 그럴지도 모르겠다. 정신질환 환자들 이야기라서…. -그 HD영화 프로젝트는 어떤 내용인가.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라는 제목이다. 자기가 전투용 사이보그라고 착각하는 망상증 소녀가 입원을 한다. 그중 젊은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이 남자는 자기가 개발한 조잡한 기계로 원하는 사람의 영혼을 훔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원하는 기간 동안 그 사람 행세를 하고 다시 돌려줄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문제는 이거다. 그렇다면, 이 소녀의 망상 속의 캐릭터도 이 사람이 훔쳐갈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 소녀는 치유될 수 있을 텐데… 하는 그런 얘기다. 내가 할 수 있는 청춘영화 같은 걸 만들어보고 싶었다. (웃음). 결국 치료에 성공하지는 못해도, 자기 망상의 정체는 이해하게 되는, 결국엔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이렇게 끝날 거다. 가급적이면 몇대의 캠코더를 동원해서 섞어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친절한 금자씨>는 베니스에 가나. =보여달라고 해서 일단 보내줬다. 월말에 라인업을 공식 발표한다니까 그때 연락 올 것 같다.

이상한 동화나라의 팀 버튼 [2]

임무 완수하는 영웅, 팀 버튼답지 않은 캐릭터 한편 <슬리피 할로우>는 외골수 팀 버튼의 영화로서는 놀랄 만큼 개방적이다. 미스테리의 얼개를 입은 앤드루 케빈 워커의 각본은 그의 어떤 전작보다 강한 스토리에 대한 집착을 영화에 심어놓았다. 썩어 부푼 시체, 잘린 머리를 채운 자루, 구더기 끓는 주검 같은 역한 이미지들도 <쎄븐>의 작가였던 그의 취향이다. 품위있는 위트가 살짝 발라진 대사에서는 각본을 가다듬은 톰 스토파드(<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지문이 묻어난다. 크레인 역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팀 버튼 영화의 히어로다. 크레인은 팀 버튼이 붙잡고늘어져 온, 정상성의 세계에 몸을 밀어넣으려다 거절당하는 아웃사이더 캐릭터와 사뭇 다르다. 누구 못잖은 정신적 외상도 있고 컴플렉스도 깊은 인간이긴 하지만, 걸핏하면 졸도하고 큰 소리라도 날라치면 방금 구출한 여자 뒤에 숨는 심약한 남자지만, 어찌됐건 크레인은 비명을 지르거나 도망치는 일 없이 기어코 직무를 마치는 ‘영웅’이다. 그에겐 심지어 <인디애나 존스> 풍의 액션 클라이맥스를 폭발시키는 기회까지 주어진다. 요컨대 <슬리피 할로우>는 순도 100%의 팀 버튼적 상상력을 고대한 관객이라면 실망을 감수해야 할,감히 ‘관습적’ 이기를 두려워하지 않은 영화가 됐다. 그럼에도 <슬리피 할로우>가 90년대가 낳은 시각적으로 가장 뇌쇄적인 영화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죽음의 나무에서 부르델의 청동상처럼 위풍당당한 목없는 호스맨이 흑마를 타고 뛰쳐나오는 장면은 어떤 수사도 초라하게 하는 시각적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해머 호러, 시대 의상극이라는 유럽 영화의 전통과 다른 아티스트들의 영감으로 둘러싸인 슬리피 할로우의 움푹한 분지에서 팀 버튼은 잠시 엉켰던 스텝을 풀고 말 편자를 갈아끼우며 한숨을 돌린 것처럼 보인다. 1월19일 현재 9천 5백만 달러 수입을 올린 <슬리피 할로우>로 어느 정도 스튜디오의 신용을 만회한 팀 버튼의 차기작은 라는 심상치 않은 제목의 영화와 조니 뎁과 함께 만들 것이라는 전기물이라고 한다. 그의 말발굽 소리에 언제나 가슴이 두근거린다 신기한 노릇이다. 아무리 이상한 이야기도 팀 버튼이 쓰고 그리면 어느새 그저 그런가보다 수긍하는 자신을 객석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는 분명 우리의 신경이 감당할 수 있는 이미지의 지평을 확장하는 귀한 감독이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풍차의 날개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 같은 팀 버튼의 마력은 그의 낯선 영화 <슬리피 할로우>에서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비이성적인 사랑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이성의 감독을 받는 열정은 스스로를 세계에 적응시키는 것으로 끝을 보지만 불합리한 열정은 세상이 자기를 따라오도록 유혹하고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의 꿈이 곧 우리의 악몽임에도 불구하고, 매듭 풀린 갑옷에 헝클어진 머리를 흩날리는 기사 팀 버튼의 말발굽 소리가 다가올 때마다 우리의 심장이 대책없이 두근거리는 것도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친구없이도 가지고 놀 영화가 참 많았다 디스 보이즈 라이프:팀 버튼의 소년 시절 영화를 통해 핵겨울 같은 정서적 풍경을 보여주는 팀 버튼은 아이로니컬하게도 햇볕 쨍쨍한 캘리포니아의 버뱅크에서 나고 자랐다. 뚜렷한 계절도 없고 대기의 촉감마저 일년 내내 똑같은 버뱅크는 소년 팀에게 죽도록 지루한 곳이었다. 늘 상냥한 가면을 쓰고 있는 이웃 사람에게서도 그는 위선을 냄새맡았다. 팀 버튼은 동네 사람들이 여가를 즐기는 미니어처 골프장의 풍차를 바라보며 암울한 중세 민담의 세계를 그려보는 특이한 아이였다. 마크 살리스버리가 간추리고 조니 뎁이 서문을 붙인 책 <버튼이 말하는 버튼(Burton on Burton)>에 따르면 팀 버튼의 가정은 청교도적이고 딱딱한 전형적인 미국의 50년대 핵가족이었다. 팀 버튼은 군인 인형의 머리를 떼내거나, 옆집 아이에게 외계인이 공습했다고 거짓말로 겁주는 장난을 즐겼다. 잔디에 누워 인근 공항에서 떠오르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공상하는 것도 일과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 팀의 주요한 도피처는 텔레비전 앞과 극장 객석이었다. 그림자 놀이 램프에 넋을 놓는 <슬리피 할로우> 속의 한 꼬마처럼, 팀 버튼은 빛과 그림자에 매료됐고 질색하는 책 대신 괴물 영화를 머리맡 동화로 삼으며 자랐다. 학교에서 그는 사람과 사물 사이를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학생이었고, 주로 아무 일도 하지 않기 위해 열심이었다. 특별히 따돌림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진득히 사귀는 친구도 없었다. “친구가 없어도 세상에는 가지고 놀 이상한 영화가 참 많았다”는 것이 본인의 설명이다. 사춘기에 들어선 뒤 작은 아파트로 거처를 옮긴 팀은 방세를 내기 위해 방과 후 레스토랑에서 일했고, 그곳에서 인간의 추하고 불친절한 본성에 대해 한두가지 배웠다. “음식과 함께 놓고 보니 인간의 추한 면이 더 잘 보였다”고 그는 회상한다. 어렸을 때 이미 낙서와 스케치만이 자기를 집중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발견한 팀 버튼의 예술적 재능은 고등학교 무렵 숨길 수 없는 것이 됐다. 아티스트로서 그가 사회의 첫 인정(?)을 받은 것은 공교롭게도 쓰레기를 통해서다. 고교 시절 버뱅크 시 오물 처리 포스터 디자인 공모에서 일등상을 받은 버튼의 작품은 그 지역을 도는 쓰레기 트럭 옆구리에 두달간 붙어 있었다. 이웃집 창에 크리스마스와 할로윈 장식을 그려주는 일은 10대 소년 버튼에게 중요한 아르바이트였다. 할로윈 호박, 눈오는 풍경, 거미, 해골 등이 그의 주요 소재였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졸업 뒤 칼아츠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팀 버튼은 곧 유리창에서 필름으로 캔버스를 바꾸게 된다.

2부 막내린 ‘안녕 프란체스카’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인기를 끌어온 문화방송의 주간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극본 신정구 조진국·연출 노도철)가 지난 1일, 2부의 막을 내렸다. <안녕, 프란체스카>는 루마니아 출신 흡혈귀들의 한국 정착기를 그린 시트콤. 허 찌르는 코미디 세태풍자 패러디 맞춤한 연기 그들이 떠났다… 안녕, 흡혈귀들… 마지막 방송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 관심을 모았던 <안녕, 프란체스카>는 깜짝 놀랄 대반전이 아니라, 두일의 죽음과 그를 보내는 프란체스카 가족들의 이별 장면을 그려 시청자들을 눈물짓게 했다. 이 시트콤은 2부 종영에 이어, 루마니아에서 한국으로 오기 전 프란체스카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아 특집으로 내보낸다. 제작진은 현재 체코 프라하에서 이 내용을 촬영 중이다. 또 9월부터는 새로운 제작진과 출연진이 세번째 시즌을 선보인다. <안녕, 프란체스카>는 지난 1월24일 첫 방송 뒤부터 독특한 스토리와 신선한 풍자로 많은 마니아층을 만들어냈다. 흡혈귀인 프란체스카(심혜진), 소피아(박슬기), 엘리자베스(정려원), 켠(이켠)과 원래 인간이었지만 프란체스카에게 물려 흡혈귀가 된 두일(이두일)이 가족으로 위장해 지지고 볶으며 함께 살아가는 내용을 담았다. 노도철 프로듀서는 “흡혈귀 가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단순한 패러디가 아니라, 이 시트콤만의 색깔로 사회를 풍자하고 세태를 비트는 데는 인간과 비슷하지만 인간이 아닌, 이승과 저승의 중간자적 존재인 흡혈귀가 어울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안녕, 프란체스카>는 흡혈귀라는 이색적인 캐릭터를 등장시켜 현대인의 의식과 변화하는 가족 형태에서 파생되는 문제, 그리고 소비를 비롯한 현실의 문제를 때로는 풍자적으로, 때로는 코믹하게 그렸다. 프란체스카와 두일의 뱀파이어 결혼식 장면에서 축의금 대신 수혈을 받는다거나, 뼈다귀 모빌을 달아놓고 아기에게 무시무시한 내용의 책을 읽어주자 아기가 귀를 쫑긋하며 방글거리는 장면 등 이 시트콤만의 허를 찌르는 유머는 시청자들에게서 호평을 받았다. “패러디의 절정은 현실을 패러디하는 것”이라는 조진국 작가의 말처럼 <안녕, 프란체스카>에는 우리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결혼식 전날 ‘대왕고모’ 소피아가 프란체스카에게 울면서 말하는 장면과, 두일이가 결혼식 기념촬영 때 새로운 가족을 얻었다며 감사해 하는 장면 등 이 시트콤은 단순히 웃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한 감동까지 함께 시청자들에게 선사했다. 뿐만 아니라 각 캐릭터들의 정형화에도 성공했다. 심혜진, 이두일, 박희진, 박슬기 등 주요 출연자들이 펼치는 심리 묘사와 극의 분위기를 장악하는 자연스러운 연기, 에피소드는 시청자들이 생소하게 느낄 수 있는 흡혈귀 캐릭터들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도록 했다. 무표정하지만 날카로운 말투나 화려한 것 같지만 실상은 여린 프란체스카역의 심혜진은 20년 가까이 갈고 닦은 연기력을 아낌없이 발휘했다. 이두일도 무능한 노총각이면서 끝없이 따뜻한 가족을 꿈꾸는 두일 역은 그가 아니면 적역이 아니라고 할 정도였다. 또 능청스럽다 싶을 만큼 노년과 10대를 자연스레 넘나든 박슬기의 연기력과 이켠, 정려원 등 신인들의 풋풋하고 열성적인 연기도 매력을 십분 발휘했다. 여기에 ‘5000원의 궁상’ ‘꼭 한번 만나고 싶다’ 같은 인기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패러디와, ‘안성댁’ 박희진의 끊임없는 변신은 이 시트콤을 ‘흡혈귀들의 인간세계 견문기’에서 ‘인간 세계 일상의 코믹 시트콤’으로 변색시켰다. 매회 적절하게 기용한 카메오도 인기몰이에 한몫을 했다. <안녕, 프란체스카>에는 그동안 최문순 문화방송 사장을 비롯해 국립암센터 박재갑 원장, 디자이너 장광효, 가수 조성모·김흥국, 개그맨 조혜련·김경식, 연기자 다니엘 헤니, 아역배우 박지빈 등 수많은 연예인과 비연예인이 카메오로 출연해 시트콤의 맛을 살리는 촉매제 구실을 했다. 이 시트콤의 카메오 전략은 비연예인의 경우 가능하면 현실의 삶과 똑같은 역할을 맡김으로써 흡혈귀 캐릭터에서 올 수 있는 황당무계함을 완화시키는 기능을 하게 했다. 또 연예인의 경우는 화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나 정반대의 이미지를 내세우는 역할을 부여해 웃음을 자아냈다. ‘시즌’ 개념 첫도입 9월 ‘시즌3’ 시작 김수미·현영·강두·이인성 합류 2부가 끝난 <안녕, 프란체스카>는 9월부터는 우리나라 시트콤사상 처음으로 ‘시즌’이라는 용어를 도입해 시즌 3을 시작할 예정이다. 2부까지 이 시트콤을 진행해온 노도철 피디는 “<프란체스카>가 외국 시트콤처럼 시즌제가 되길 바랐다”며, “원작의 독특함 때문에 부담이 크겠지만 바뀐 제작진이 새로운 느낌의 프란체스카를 보여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예능국 조희진 피디와 김현희 작가가 함께 만드는 <안녕, 프란체스카-시즌 3>은 오는 9월5일 첫 전파를 탄다. 시즌3에는 정규 멤버 중 심혜진, 박슬기만 남고 나머지 멤버는 빠지는 대신 김수미, 현영, 강두, 이인성이 정규 멤버로 투입된다. 조희진 피디는 “기존의 색깔을 유지하되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 역점을 두고 캐스팅을 했다”며, “김수미씨나 현영, 강두씨는 나름의 개성성이 있기 때문에 이 특성을 최대한 캐릭터에 살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프란체스카와 동갑내기 친구인 ‘이사벨’역의 김수미씨는 남자를 잘못 만나 정기를 뺏긴 뒤 졸지에 50대 중년 여성의 외모를 지닌 흡혈귀로 분해, 특유의 코믹하고 맛깔스런 연기를 선보인다. 또 에스비에스 드라마 <패션 70’s>에서의 코믹 연기와 오락 프로그램에서의 엽기적 행동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현영은 이번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섹시한 흡혈귀로 나와 남성 시청자들을 얼마나 텔레비전 앞으로 끌어모을지 관심거리이다. 그리고 이번에 가수에서 연기자로 변신하는 강두는 고민이 많으면서도 육감적인 몸매를 지닌 멋있는 흡혈귀 역을 맡았으며, 영화 <파송송 계란탁>에서 귀여운 연기를 한 아역배우 이인성이 새로운 프란체스카 식구로 합류한다. 조 피디는 “그동안 시즌 1·2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했다면 시즌3은 중장년층 시청자도 흡수할 수 있는 캐릭터와 구성 등으로 시청자층을 넓히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영역을 가리지 않고 인간사회 현실을 더욱 신랄하게 풍자하겠다”고 덧붙였다.

30대 여배우들 안방극장 점령

30대 여자 배우들이 브라운관을 점령했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어느새 이들의 독무대가 돼버렸다. 지난해 기미가 보이기 시작해 올해 눈에 띠게 두드러졌다. 티브이 드라마 주인공 가운데 20대 여성 연기자들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파릇파릇하던 20대에 단방에 떴다가 결혼이나 추문으로 홀연히 사라지던 일이 이젠 거의 없다. 결혼·출산·육아 뒤 다시 출연하면서 전처럼 주인공의 누나나 이모 역을 맡는 이도 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짧지 않은 시간을 주부로 지낸 뒤 원숙한 연기력을 뽐내며 돌아온다. 결혼을 선택하지 않고 연기에만 매달리는 이들도 드물지 않다. 연륜의 힘 발하며 이제는 돌아와 카메라 앞에 선 누님같은 배우여 다양한 캐릭터로 주인공 꿰차니 시청자 팔할이 동년배 여성이라 30대 여배우들의 맹활약=오연수(34)·김희애(38)·신애라(36)·하희라(36)·채시라(37)가 가장 대표적이다. 오연수는 1년6개월여만인 지난해 한국방송 <두번째 프로포즈>에서 상한가를 친 뒤, 현재 주말드라마 <슬픔이여 안녕>에서도 독특한 캐릭터로 열연하고 있다. 김희애는 <부모님 전 상서>에서 주인공 역할을 충실히 해냈고, 신애라 또한 6년만에 출연한 <불량주부>로 새로운 가능성을 보였다. 하희라는 올초 에스비에스 특집극 <내 사랑 토람이>로 2년여만에 안방극장으로 돌아왔으며, 현재 <사랑한다 웬수야>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채시라(37)는 지난해 한국방송 <애정의 조건>에서 열연한 뒤, <해신>에 출연해 특유의 카리스마를 자랑했다. 올초 <봄날>로 10여년만에 연예계에 복귀한 고현정(34), 우여곡절을 겪으며 조만간 <장밋빛 인생>에 출연키 위해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최진실(37)도 빼놓을 수 없다. <한강수 타령>에 출연했던 김혜수(35), <변호사들>에 나오고 있는 정혜영(32), <올드 미스 다이어리>에 출연중인 예지원(30), <사랑찬가>의 장서희(33), <돌아온 싱글>의 김지호(31) 등도 티브이 드라마 주연급으로 활약중인 30대들이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선아(31)와 <루루공주>의 김정은(30)은 가장 잘 나가는 30대다. 깊고 넓어진 캐릭터=짧게는 1년, 길게는 10여년만에 드라마에 복귀하는 이들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떤 캐릭터로 돌아올 것이며 변신의 폭은 얼마나 줄 것이냐다. 결과는 30대 이혼녀부터 당찬 재벌2세 여성까지 다양하다. 예전에 견줘 캐릭터의 폭과 깊이가 확대됐다. 서른 즈음이면 누나와 이모를 거쳐 엄마를 맡으며 조역에 머물던 과거에 견줘, 의미있는 변화다. 1990년대 청순가련한 20대로 나오던 이들이, 솔직담백한 30대 여성으로 과감히 몸을 바꿨다. 사업가로 우뚝 서는 이혼녀(<두번째 프로포즈>의 오연수), 남편의 외도로 이혼하고 자폐아를 홀로 키우는 여성(<부모님 전 상서>의 김희애) 등 이혼녀에서부터 실직한 남편 대신 생활전선에 나서는 주부(<불량주부>의 신애라), 힘겹게 재활에 성공하는 시각장애인(<내 사랑 토람이>의 하희라), 미모와 지략을 겸비한 여걸(<해신>의 채시라) 등 이들의 배역은 다양하다. 재벌집 딸(<루루공주>의 김정은, <사랑한다 웬수야>의 하희라) 도 맡는다. 그러나 한계도 있다. 30대 배우가 20대 캐릭터를 연기하거나, 30대 캐릭터에 20대의 취향을 덮어씌운 경우가 적지 않다. 이혼녀나 평범한 주부의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30대의 진솔한 고민은 아직도 부족하다. 들뜬 성공담이나 아줌마판 신데렐라 이야이가 많아, 인생 30년을 살아오며 몸소 겪은 배우의 희노애락이 드라마의 에너지로 온전히 쓰이지 못하기도 한다. 30~40대 여성 시청자들의 힘=30대 여성 연기자들이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티브이 드라마 전면에 등장한 것은 무엇보다 30~40대 여성들이 드라마의 주시청층으로 등장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최근 <내 이름은 김삼순>의 시청자 분석에서도 드러나듯, 30~40대 여성이 드라마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 ‘이들이 보면 뜬다’는 것이 불문율일진대, 이들이 가장 크게 공감할 수 있는 동년배 여성들의 자연스런 연기에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는 것이 제작진의 입장이다. 이른바 ‘아줌마 드라마’가 부쩍 는 것도 그래서다. 30대 주부들의 결혼생활과 이혼, 재취업 등을 소재로 담아 ‘아줌마’들을 공략하는 것이 필요해진 것이다. 주시청자인 30~40대 여성들의 사회 활동이 늘어나고 사회적 지위가 예전에 견줘 급속도로 향상된 것이 드라마의 내용을 바꿨다. 조역에 머물던 드라마 속의 30~40대가 주인공으로 올라서면서 캐릭터가 다양해졌고, 이를 맡아줄 연기자의 수요도 늘어난 것이다. 스타시스템 공고화=이젠 잘 난 외모만으로 연기자가 되기 어렵다. 연기 수업이 전혀 되지 않은 상태로 하룻밤 사이에 톱스타로 떠오르곤 하던 일은 옛일이 됐다. 그래서 30대 여성 연기자들은 20대 연기자들과 경쟁할 일이 적어졌다. 달리 보면 30대 여배우들의 활약은 스타 시스템, 즉 스타를 관리하는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공고해졌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있다. 결혼 등으로 연기를 쉬더라도,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복귀할 준비를 한 이들은 성공했다. 외모 관리도 큰 몫을 한다. 소속사가 공식적으로 내놓는, 배우의 나이가 최대 4살까지 차이가 나는 것을 감안하면 이들의 겉모습은 거의 10살 이상 젊어보인다. 자기 관리 능력 덕분이지만, 우스개 소리로 ‘과학 기술’의 발달을 지적하기도 한다. 일상화된 성형수술 등을 꼬집는 말이지만, 다르게 보면 사회·경제적 역량이 높아진 여성들이 시간과 돈을 스스로에게 투자하는 일이 많아지고 자연스러워졌다는 뜻도 된다.

‘챔프’ ‘투니버스’ 서울시청 광장서 애니메이션 축제

덥다고 집안에만 있기 쉬운 여름철, 시원한 밤공기도 쐬고 자녀들이 좋아하는 만화 주제가를 따라 부르며 더위를 물리치는 것은 어떨까? 올해로 9회째를 맞는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축제(SICAF) 행사의 하나로 케이블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채널들이 다채로운 행사를 펼친다. 서울시청 광장 앞에서‘챔프 데이‘,‘투니버스 데이‘라는 이름으로 각각 12일(금) 저녁 6시, 13일(토) 저녁 8시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코스튬 플레이, 뮤직 콘서트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챔프 데이‘는 가족 맞춤형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을 표방하는 ‘챔프‘가 이번에 처음 여는 행사. 회사쪽은 선물 증정 이벤트를 마련해 즐거움을 배가시킬 계획이다. 행사장에서는 챔프의 인기 캐릭터들이 흥을 돋우며 ‘이누야샤‘ ‘강철의 연금술사‘ 같은 주요 캐릭터들의 코스튬 플레이가 진행된다. 미니 콘서트에서는 노브레인을 비롯해 로켓 다이어리, 레이지 본 등 록 그룹들이 유명 만화 주제곡을 부른다. 끝으로 상영회에서는 인간들의 도시 개발 계획에 맞서서 숲을 지키기 위해 각종 변신술 작전을 펼치는 너구리들의 이야기를 담은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이 신선한 웃음을 선사한다. ‘투니버스‘가 개최하는 ‘투니버스 데이‘는 지난해 1회 때 몇만명의 관람객이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울 정도로 큰 관심을 끌었다. 이번 행사에선 버즈, 박혜경, 박완규 등 인기가수와 성우들이 총출동해 투니버스에서 방영된 유명 애니메이션 삽입곡들을 부르는 뮤직콘서트로 꾸며질 예정이다. 이날 콘서트에서는 1~2분 가량으로 짧게 편집돼 방송됐던 노래들을 원래 노래 그대로 들을 수 있다. 콘서트 실황 녹화방송은 19일 오후 5시5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