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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하지 않은 불륜드라마 <거침없는 사랑>

KBS2 월·화 밤 10시30분(월드컵 기간 중 변경될 수 있음) 지금 드라마는 사랑의 불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그 불가능성은 <사랑은 이런 거야>(KBS 일일연속극)의 과거를 숨긴 여자와 남자와의 결혼이나 <유리구두>(sbs 주말연속극)의 자매의 사랑 다툼처럼 드라마 상용 변수의 조합일 때도 있다. 하지만 돌출변수들이 드라마 실험에 동참했다. 금언으로만 여겨졌지 검증되지는 않은 명제들이 탐구대상이다. ‘정말 사랑은 국경을 넘는가’는 <그대를 알고부터>(MBC 주말연속극)가 연변처녀라는 독특한 변수를 도입하면서 실험중이다. ‘정말 사랑은 나이를 초월하나’, ‘정말 나이는 숫자일 뿐인가’라는 실험은 <로맨스>의 남학생과 여선생이라는 위기일발의 변수가 결합하면서 폭발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 그리고 <애인>이 논란과 함께 제기한 이래, <불꽃> <거짓말> 등의 화제작들이 집중되어 있는 명제, ‘결혼은 사랑의 끝인가’. <애인>의 결론이 여론과의 타협이었다면 <애인>에서와 마찬가지로 시련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황신혜는 <위기의 남자>에서 자신을 배신한 남자를 버리고 꿈같은 성공을 누리며 시대를 따른다. 그리고 <위기의 남자> 끝과 맞물려 다시 실험이 처음부터 시작되었다. ‘불륜의 실험’. 제목 역시 주제가 명확하다. <거침없는 사랑>. 노처녀, 유부남을 만나다 8회 비오는 날, 서경주(오연수)는 차분하던 머리가 아줌마 파마 머리가 되어버렸다. 시장에 들어가 술을 시켰지만 주머니에는 꾸깃한 천원짜리뿐이니 안주도 못 먹겠다. 혼자라고 저쪽에서 술 먹던 남자들이 지분거린다. 열이 올라 오버를 했다. 식탁을 엎고 배째는 시늉으로 들고 있던 맥주병을 죽사리 벽에다 부딪혔다. 그런데 이게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깨지지 않더라. 맥주병을 이젠 인정사정없이 벽에 들이박았더니 그냥 목만 남고 부러져버리더라. 그래 맥주병은 이렇게 딱 부러지는 게 아닌가보다. 31살 서경주의 사랑이 맥주병 같았다. (부러지지 않은 맥주병) 경주에게는 노처녀로 늙기 전 기회가 있었다. 8년을 친구처럼 알아온 민우(서태화)가 결혼을 제안했다. 대답을 머뭇거리는 사이 민우는 경주를 보러 왔다가 만난 경주 회사 동료 원희(송선미)와 짧고도 열정적인 사랑에 빠지고 곧 결혼한다. 민우와 원희의 결혼식, 그날 같은 곳에서 결혼식이 있던 정환(조민기)은 신부 채옥(유혜정)이 부케를 뭉개버리며 결혼 못하겠다고 난동을 부리자 밖으로 나오고, 부케를 안고 울고 있는 경주를 ‘출입금지’ 문 앞에서 만난다. 정환은 결혼을 속행하려고 경주의 부케를 빼앗아 채옥에게 갖다준다. 7년 뒤, 경주가 디자인한 텍스타일이 정환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허락도 없이 옷감으로 제조되면서 경주와 정환의 악연은 계속된다. (목구멍만 남은 맥주병) 하지만 악연의 만남이 거듭될수록 둘은 서로에게 끌린다. 경주와 같은 직업의 텍스타일 디자이너인 영재(송일국)는 경주와 동대문 시장에서 만나고 말다툼 끝에 헤어진다. 엄마의 “남자 찾아오라”는 등쌀에 떠밀려 나간 거리에서 경주와 영재는 다시 만나고 경주는 장난스레 “너 나랑 잘래”라는 말을 던진다. 이후 감정은 둘에게 각자 다른 몫으로 자리한다. 이것이 <거침없는 사랑>의 숨가쁜 전반전의 양상이다. 이외에도 이야기는 더 있다. 최근 미니시리즈들이 범했던 이야기의 단순함을 넘어서, <거침없는 사랑>은 복잡한 이야기로 미니시리즈의 미덕을 살려냈다. 서브 스토리 라인도 탄탄하다. 텍스타일 디자인 도난사건으로 알게 된 경주의 동생 경철(공유)에게 난영(박시은)은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중국 회사에 근무하는 국제적인 바이어 유지는 난영, 경철과 어울린다. 셋이 같이 간 술자리에서 경철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뒤 난영은 약 탄 술을 마시고 남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탄탄한 서브스토리 라인, 현실적인 캐릭터 물샐 틈이 없는 이야기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캐릭터다. 주인공 서경주는 31살 노처녀라는 설정부터 애잔함보다는 억센 느낌을 준다. 밥을 꼬박꼬박 챙겨먹는 성격도 그렇다. 정환 역시 인정 많고 최선을 다하는 프로이지만 넉살 좋은 성격이라 “내 한몸 다 바쳐 웃길 수 있다면”이라며 가끔 물불 안 가리고 웃기는 상황으로 돌진한다. 그래서 둘이 이루어내는 상황은 치고받는 재미가 쏠쏠하다. 접대한다고 나와서 뻣뻣하게 굴고 기껏 춤을 춘다는 것이 막대토막 돌아가 듯하는 경주 앞에서 비웃던 정환은 급기야 돌아가는 경주 뒤에다 주문을 왼다. 콱 넘어져라. 그 말에 경주는 콱 거꾸러진다. 새삼 돌이키건대, 그건 모두 후회가 된다. 어느 사이에 마음이 끼어든 것이다. 절뚝거리는 경주가 불쌍해진다. 정환은 다짜고짜 업는다. 경주가 발버둥을 치자 인정을 베푸는 자가 벌컥 화를 낸다. “어허, 움직이면 더 무겁지.” 그들이 만나지말자고 서로에게 말하는 장면에서도 음악이 고즈넉이 흐르고 간지러운 말에 체하는 일은 없다. 밤새 울고 걸어다니느라 배가 고파 서로 바라볼 틈도 없이 감자탕을 열심히 먹고 앞에다 뼈만 수북이 쌓던 날이었다. 그러고는 헤어지자는 말이 나온다. 어렵게 떼는 사랑이라는 말에 정환이 따라 나와서 복도에 쩌렁쩌렁 울리게 하는 말이 “사랑이 밥 먹여주냐”이다. 소재는 시작일 뿐이다 악역이랄 만한 캐릭터의 ‘이유있음’은 인물이 생생하게 살아나도록 한다. 원희는 회사에 늦게 들어온 경주가 월급이 많자 경주를 대놓고 푸대접이다. 결국 경주의 남자친구와 사랑에 빠진다. 그 이후 원희는 7년 동안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소문의 ‘나쁜 년’이었다. 시부모님은 경주를 여전히 며느리보다도 예뻐한다. 시부모 댁에 들어가면서 뺀 아파트 전세금으로 마련해준 스튜디오에 남편은 기뻐하기보다 “내가 노는 것이 그렇게 부끄러우냐”며 소리를 지르고, 결국 7년 전 아이를 지웠다는 사실까지도 알게 된다. 그리고 이혼 말이 나오고 “결혼이 그렇게 쉬웠으니 이혼도 쉽다”는 말을 듣는다. 그런 사이에서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는 건 남자를 빼앗긴 경주다. 이쯤 여자들 간의 현실적인 우정을 논해야 할 것이다. 이들은 가부장적 사장 앞에서 똘똘 뭉치지만 서로의 오해 앞에서는 매섭게 싸우기도 한다. 그러면 불쌍한 여자가 남았다. 노처녀에게 남편을 뺏기게 되는 여자 채옥. 낳은 아이를 기르게 하고 뒷바라지를 시키는 바람에 정작 처음 유학간다 한 사람은 학업을 포기하고 장사에 뛰어들게 만들었던 여자. 이런 남성의 희생은 바람기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은 아닌가. 그래서 채옥이 미워지도록 하기 위한. 하지만 채옥 역시 설득력 있는 커리어우먼이다. 정환과 채옥이 결혼한 이유는 철저히 이해타산적이었다. 채옥은 정환이 뉴욕으로 유학간다는 것을 알고 결혼을 했고 정환도 이것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처럼 살지 않겠다”는 것이 그녀의 이유였다. 채옥은 그렇게 얻은 학위로 회사에서는 짱짱하지만 집안에서는 응석받이가 된다. 아이의 앞에서 엉엉 울어버리는 채옥은 빈틈이 뻥뻥 뚫린 여자다. 그러니 채옥의 빈틈은 정환이 밖에서 사랑을 찾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남편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고 채옥에 화가 난 것은 어머니다. 하지만 채옥과 말다툼을 벌이자 먼저 와서 정환을 타박하는 것이 어머니다. 둘의 화목을 가장 고심하여 지켜보는 것도 어머니일 것이다. 정환의 아버지는 사랑을 찾아 떠났기 때문이다. 이러니 이 스토리는 적어도 누구를 악인으로 만들지는 않을 것 같다.서로 원수로 만나서 사랑하게 되는 줄거리, 둘이 안고 넘어가는 것으로 애정이 싹트는 사람간의 만남- <여우와 솜사탕>을 비롯한 많은 드라마에서 숱하게 보았던- 역시 이 드라마에서 보인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이유있는 전개는 제작진이 퍽이나 고심하여 드라마를 짜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케 한다. ‘불륜’이라는 뻔할 것 같던 스토리는 세세한 점들이 갖춰지고 캐릭터들이 생생하게 살아나면서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이혼하고 결혼하고 다시 화해하고 하는 일들이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라는 것을 알지만 여전히 드라마에 대한 기대치는 높다. 그래서 여느 드라마를 보면서는 거짓말 같았던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문제는 단지 그것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다. ‘불가능 사랑’에 도전하는 드라마 실험들, 나이는 숫자이고, 결혼은 사랑의 시작이고, 드라마 소재는 시작일 뿐이다. 구둘래 kuskus@dreamx.net▶ 뻔하지 않은 불륜드라마 <거침없는 사랑> ▶ 월드컵 이후의 TV편성

경찰, 은행을 털다

The Parole Officer 2001년, 감독 존 듀이건 출연 스티브 쿠건, 레나 헤디, 스티븐 딜레인, 옴 푸리, 스티븐 워딩턴 장르 코미디 (유니버설) <경찰, 은행을 털다>를 만든 존 듀이건은 70년대 중반 호주영화의 ‘뉴웨이브’를 이끌던 감독의 하나다. 영국에서 태어나 61년 호주로 이주한 존 듀이건은 1974년 저예산영화 으로 데뷔한 뒤 젊은이들의 고통과 방황을 그린 , 등을 만들며 문화적 배경과 사회적 문제를 충실하게 그려내는 감독으로 평가받았다. 대표작은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년의 낭만적인 사춘기를 그려낸 연작 와 . 89년 존 듀이건은 할리우드로 가서, 엘살바도르의 독재정권에 살해된 신부의 일대기를 담은 <로메로>를 만들기도 했다. 90년대 들어서는 1840년의 자메이카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 <카리브해의 정사>, 30년대 호주의 완고한 성직자 부부가 자유분방한 화가의 집에 머물면서 개안하는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그린 <휴 그랜트의 사이렌스>, 노예제도하의 흑인들의 고통을 그린 <어거스트 킹> 등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다. <경찰, 은행을 털다>는 전작들과는 다른 길로 접어든, 엉뚱한 대사와 부적절한 상황들로 웃기는 영국식 코미디다. 보호감찰관 사이먼은 지나치게 전과자들과 친하게 지낸다는 이유로 동료들에게 따돌림당하고 맨체스터로 직장을 옮긴다. 술집에 놀러갔던 사이먼은 우연히 부패 경찰관이 살인하는 현장을 목격한다. 신고를 하지만, 살인을 한 경찰이 담당을 맡는 바람에 그냥 돌아서 나온다. 현장에 지갑을 떨어뜨리고 온 사이먼이 결백을 입증할 방법은 범행 현장을 담은 CCTV의 녹화 테이프뿐이다. 테이프가 은행 대여금고에 들어간 것을 확인한 사이먼은, 그가 교화시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세 남자를 끌어들여 은행을 털기로 한다. 하지만 세 남자의 ‘전과’는 은행털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중혼이나 사기 등등. 별다른 액션도 없고, 좌충우돌이 심한 편도 아니라 약간 심심하긴 하지만 <경찰, 은행을 털다>는 인도 출신의 옴 푸리를 비롯한 뛰어난 재능을 가진 배우들의 호연과 원숙한 연출이 맞물리며 원활하게 움직인다. 사이먼을 연기한 코미디언 스티브 쿠건은 다양한 표정과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피터 셀러즈와 종종 비교되기도 하는 배우. <경찰, 은행을 털다>는 영국 코미디 특유의 재치와 능글거림 그리고 요즘 유행인 배설물을 이용한 엽기코미디까지 다양하게 선보이며 가벼운 볼거리를 제공한다.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

장원재의 <속을 알면 더 재미있는 축구이야기>

시청 앞 광장을 붉은색으로 메운 붉은 악마들, 온 거리를 돌아다니며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자동차 안의 청년들, 녹색 구장 속 꽃미남들을 주시하다가 축구경기에 매료된 여성들…. 월드컵을 맞이해 최근 우리 눈앞에 선보이고 있는 풍경들은 너무나도 낯선 것이다. 그런데 혹시 온힘을 다해 자신이 좋아하는 팀과 선수를 응원하다 이런 생각이 든 적은 없는지. “도대체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지, 축구가 뭐기에?” <속을 알면 더 재미있는 축구이야기>는 이같은 의문에 시원한 답을 주는 책이다. 요즘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라는 ‘본업’보다 ‘축구마니아’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장원재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축구의 본질을 간단명료하게 정의하고, 나아가 월드컵이라는 행사가 갖는 의미까지 친절하게 설명해낸다. 그에 따르면 축구는 전세계가 공히 즐기는 유일한 스포츠다. 육상도 일부 아랍국가에서 마라톤을 법으로 금지할 정도니 축구만큼 보편적이진 못하다. 이런 보편성을 갖고 있는 축구는 그가 보기에 현대의 유사종교다. 그는 만인을 열광케 하는 축구에서 문명간 충돌을 방지하는 “인류구원과 문명화합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모든 인류가 동일한 규칙하에 동일한 목적을 향해 어울리는 제도”인 월드컵대회는 ‘인류 최대의 제전이요 잔치이며 한바탕 대동굿’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축구와 월드컵의 본질을 이론적으로 정리하는 ‘학술서’는 절대로 아니다. 무엇보다 이 책이 재미있는 것은 축구와 월드컵과 관련된 갖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장 교수 특유의 맛깔스런 문체로 담았기 때문이다. 1982년 스페인월드컵 때 잉글랜드의 관중이 대프랑스전이 열리기 직전, 프랑스의 상징인 수탉을 살해했다거나 66년 잉글랜드월드컵 당시 조직위원회의 실수로 잃어버린 줄 리메컵을 한 강아지가 찾은 일, 그 대회의 기념우표 속 축구장면이 모두 반칙이었다는 사실, 78년 아르헨티나월드컵 때 담배 한대를 피웠다고 선수단 전체에 돌아갈 막대한 포상이 물거품이 된 일, 70년 멕시코월드컵에서 홈팀 멕시코가 엘살바도르가 차야 할 프리킥을 대신 차 골을 기록했다는 것 등 그가 보여주는 축구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무궁무진하다. 축구에 꽤나 관심이 있는 팬이라도 1969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가 축구 때문에 전쟁을 벌였다는 일화는 알고 있겠지만, 훗날 두 나라가 축구 덕분에 따뜻한 우정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은 가물가물했을 것.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가 앙숙이라는 사실 또한 잘 알려진 바지만, 이 책은 그 발단에서부터 지난 4월 아르헨티나 출신 선수에 의해 베컴이 부상당한 데 대한 아르헨티나 언론의 반응까지, 축구로 매개된 양국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이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바는 월드컵을 개최하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우리가 가지면 바람직한 생각과 자세다. 한국식 경기용어, 시축과 같은 요식행위, 광고에만 신경쓰는 방송문화, 남을 존중하지 않는 우리의 관객문화 등 그가 지적하는 바는 귀담아둘 만한 주장들이다. 물론 축구를 사랑하는, 아니 축구에 ‘미친’ 한 사람의 애정고백이라는 차원만으로도 이 책은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폴리미디어 펴냄)

원귀의 본산, 서울종합촬영소

흔히 양수리라 칭하는, 서울종합촬영소(종촬소)는 원귀의 본산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40만240평 규모에 세워진 6개의 스튜디오뿐 아니라 심지어 입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음식점의 커브길, 올라서는 것만으로도 뒷목이 당긴다는 꼭대기 운단에 이르기까지 괴담이 끊이질 않는다. 심지어 <취화선>의 음악을 담당했던 국악가 김영동씨도 “이곳에 오기만 하면 맥이 풀린다”는 하소연을 늘어놓았을 정도다. 1스튜디오의 귀신은 형체는 분명치 않지만, 주로 세트 작업을 위해 만들어놓은 아시바 위에 걸터앉아 내려다보는 것으로 유명하다. 2스튜디오와 3스튜디오를 갖춘 건물의 터줏대감은 다름 아닌 처녀귀신. 정재은 감독의 <도형일기> 촬영시에는 세트로 만들어놓은 다락 안에 숨어서 한 스탭을, 최근에는 조명 설치를 위한 바탱이라는 장치 위에 매달리는 기예를 선보여 종촬소 직원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5스튜디오와 6스튜디오는 화장실을 경계해야 한다. 특히 여배우들은 몸을 사릴 필요가 있다. 이미 <가위>의 김규리가 화장실에서 나와 머리를 매만지다 거울을 본 순간 귀기어린 형체의 모습을 봤고, <러브 러브>의 이지은 역시 흐느끼는 여자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아 화장실 문을 열었으나 그 안에 아무도 없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는 일화가 전해져 온다. 7스튜디오는 <올가미> <물고기자리> 등의 촬영에 합류했던 스탭들에 따르면 아기귀신이 출현하는 곳이다. 이 밖에 동남장과 유니온 모텔 등 촬영스탭들이 자주 묵는 인근의 숙박시설 역시 양수리 귀신들의 영역이다. 1년 전 누군가 그곳에서 자살했다는 풍문을 가진 일부 객실에 들었을 경우, 가위 눌려 밤잠을 설친 이가 적지 않다. 스튜디오 뒤편에 자리한 <공동경비구역 JSA>의 판문점 세트. 이제 툭 터진 관광용 오픈 세트로 남아 원귀를 봤다는 속보는 더이상 전해져오지 않지만, 세트를 만들 당시에는 갑작스런 회오리 바람이 일어 사고가 일어나는 위험이 있기도 했다. 아트서비스 오상만 대표는 “아내가 다니던 절의 스님을 모셔다 한 차례 고사를 지낸 뒤에야 잠잠해졌다”고 그때를 회고한다. 종촬소의 원령 중 기가 센 것은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녹음실이 자리잡은 건물에 있다. 이곳에서 지난 3년간 사운드 작업을 해온 정지영씨는 풍악이 울리면, 귀신이 따른다는 지론을 펼친다. 일단 이 건물을 지키고 있는 사천왕은 투명해서 밖이 내다보이는 엘리베이터에 가부좌를 튼 채 붙어사는 할아버지 귀신. <아프리카> 촬영 당시 한 연출부가 본 것이 유일하긴 하지만, 긴장을 늦추어선 곤란하다. <동승>의 후시녹음 작업에서 일어났던 소동도 녹음실에서 일어난 불가해한 사건. 당시,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아역 남자배우는 똘망똘망한 초등학교 6년생. 칭얼대는 것도 없었고, 감독이 요구하는 대로 곧잘 연기를 해내는 영민한 아이였다. 그런데 문제의 그날. 아이는 벼랑 끝에 선 장면에 맞추어 “엄마, 엄마!”하고 대사를 쳐야 하는데, 아이는 대사 대신 “집에 가고 싶다”는 말만을 반복했다. 마침 아역배우와 친하게 지냈던 정지영씨가 나서서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런데 정작 아이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녹음본을 재생해본 결과, 아이의 말대로 대사는 그대로 흘러나왔다. 하지만 정작 프로그램에 저장된 파동을 확인했을 때는 분명 모든 사람들이 다 들었던 “집에 가고 싶어!”의 그것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외쳤던 것일까. 하여튼 정지영씨는 이 일을 겪은 이후 한동안 “목이 잘려나간 시체가 비명을 지르는” 꿈에 여러 번 가위 눌렸다고 한다. 물론 대부분의 종촬소 직원들은 이를 허무맹랑한 소리로 치부한다. 원천식 관리부장은 1991년 착공한 뒤로 직접 주인없는 무덤을 여러 차례 이장했으나 그런 기운과 맞닥뜨린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호사가들은 종촬소가 위치한 지명이 조안(鳥安)면 삼봉(三峰)리 라는 것에 주목한다(행정구역상 종촬소가 위치한 곳은 양수리가 아니라 삼봉리다). 새가 편히 깃들 만한 봉우리가 셋이라는 뜻의 이름. 동서양을 막론하고 새는 넋을 물어 운반하는 전령이 아니었던가. 지형 역시 움푹 팬 골의 모양을 띤 데다 그 주위를 산들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어 노여움으로 가득 차 떠도는 원귀들이 모여들기에 딱 좋은 곳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이는 1930년대 사이비 종교였던 백백교의 교도들이 죽임을 당한 뒤, 그 원귀들이 교주의 혼을 쫓다 도중에 이곳까지 흘러들어왔다는 설을 내놓는다. 실제로 이곳은 우연히도 교도들이 떼죽음을 당했던 곳과 결국 쫓기는 신세가 된 교주가 죽은 곳의 중간지대이기도 하다. 땅의 힘일까. 설이야 분분하지만, 그래도 다들 수긍하는 것이 있다. 이곳 귀신들을 보았다고 해서 살을 맞거나, 액을 타는 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덕행 종촬소장이 웃으며 한여름에 귀곡영화제를 열 계획이라고 말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다. 혹 영화제를 찾은 이들 중, 귀신들의 품평까지 듣는 보너스를 차지하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이영진 anti@hani.co.kr▶ 한국영화 제작현장 미스터리 X파일(1) ▶ 한국영화 제작현장 미스터리 X파일(2) ▶ 한국영화 제작현장 미스터리 X파일(3) ▶ 충무로 영계 연구가 이광훈 감독 ▶ 괴담의 해외 사례들 ▶ 원귀의 본산, 서울종합촬영소 ▶ 영상원의 유령 목격자들

2002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참관기(2)

네덜란드 출신 거장 ‘폴 드리센의 세계’ 지난해 알렉산더 페트로프에 이어 올해 안시가 오마주를 바친 거장은 네덜란드의 폴 드리센. ‘폴 드리센의 세계’란 제목으로 마련된 회고전과 함께, 폴 드리센의 다큐멘터리 <폴 드리센의 인사이드 아웃> 상영회 및 <폴 드리센> 출판기념 사인회가 열렸다. 홀란드애니메이션페스티벌과 안시페스티벌이 공동주최한 이 이벤트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3년 전부터 준비해왔다는 그의 첫 저서 <폴 드리센>의 출판이다. 1999년 그의 60번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일환으로 추진했던 이 프로젝트는 3년 만에 그 결실을 보게 됐다. 이 책은 폴 드리센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를 그림과 더불어 네덜란드어, 독일어, 영어 등 3개 국어로 구성해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의 공동제작에 참여했던 홀란드애니메이션페스티벌 디렉터 게벤 쉐머는 “애니메이션에 관심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라는 말과 함께 “이른 시일 내에 한국에도 이 책이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다양한 애니메이션의 화폭이 펼쳐지는 한켠, 살르 몽블랑에서는 6월5일부터 3일간 애니메이션 산업의 주된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5개의 다양한 주제 아래 컨퍼런스가 열렸다. 장편애니메이션의 증가, 애니메이션 테크놀로지 등 제작 현황 및 기술적인 내용과 함께, 특히 급변하는 애니메이션 산업에서 인터넷애니메이션을 주도하고 있는 플래시애니메이션, 온라인에서뿐만 아니라 CD롬, PDA, DVD 등 오프라인을 통해서 점차 그 영역을 확대해나가고 있는 플래시애니메이션의 다양한 접근법의 장단점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축제란 이런 것이다 실사 영화제와 달리 스타가 없는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는 감독과 관객이 서로 어색하지가 않다. 매일 아침 일찍부터 봉리유센터 내 메인 상영관에서 그날의 상영작을 예매하기 위해 줄을 서는 관객 사이에 유명 감독도 함께 줄을 서 있고, 상영관 안 곳곳에서 그들을 만나는 게 전혀 어색함이 없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뮤턴트 에일리언>의 감독 빌 플림턴과 자연스런 눈인사를 나눌 수도, <몬스터 주식회사>의 감독 피트 닥터와 잠시 이야기를 건넬 수도 있는 분위기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안시페스티벌의 매력일 것이다. 상영 시작 전의 극장 안은 얼핏 보면 소란스럽고 어지럽지만, 스크린 앞의 무대까지 종이비행기를 날려 안착시키는 전통이라든가 한편 한편 상영이 끝날 때마다 이어지는 관객의 박수나 야유, 영화 상영과는 별도로 자그마한 도시 곳곳에서 연일 펼쳐지는 이벤트와 거리 공연 등 애니메이션 관계자와 관객과 시민들이 자연스레 “축제”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안시페스티벌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매력일지도 모른다. 왼쪽부터 <루프 섹스>, <해밀턴 매트리스>, <바위돌> 항상 새로운 무대연출로 폐막식에 대한 즐거운 기대감을 선사하는 안시페스티벌은 이번에도 관객의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았다. 우편배달부로 가장한 아트디렉터의 능청스런 연기나, 수상자들을 위한 달콤한 솜사탕과 시원한 맥주, 수상식 내내 울려퍼지는 아코디언 연주는 폐막식 분위기를 한껏 살리기에 충분했다. 이런 모든 점들이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매년 6월이면 이 자그마한 휴양도시인 안시를 찾는 이유일 것이다. 축제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서.

<마이너리티 리포트> 미리보기 [2]

미래 시제의 리얼리즘 지난해 완성에 즈음해 인공지능 연구자들을 MIT에서 열린 프레스 정킷에 초대했던 스필버그는 이번에도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제출하기 위해 ‘싱크 탱크’라고 명명된 세미나부터 소집하는 우등생다운 태도를 보였다. 샌타모니카의 한 호텔에서 열린 사흘간의 이 세미나에 초청된 것은 의 작가 더글러스 코플랜드를 비롯해 테크놀로지, 사법, 도시계획, 건축의학, 환경, 건강, 사회복지, 교통, 컴퓨터계의 권위자 스물여덟명. 5년, 10년, 50년 뒤 미래사회의 디테일에 대한 이들의 토의가 벌어진 컨퍼런스의 열성적인 청중이 <마이너리티 리포트> 제작진이었던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싱크 탱크의 운영은, 필름누아르의 렌즈를 빌려오는 것과 아울러 스필버그가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초안을 잡으며 세운 또 하나의 대원칙 실현을 위해 필수적인 작업이었다. 그것은 바로 ‘공상과학’의 딱지를 거부하거나 다른 각도로 규정해보겠다는 것. 즉, 낯설고 신기한 미래를 자유분방하게 공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현재를 거기 잠재된 미래를 포함하여 사실적으로 재현한다는 가이드라인이다(스필버그는 이미 에서 비슷한 시도를 보여준 바 있다). 요컨대 미래시제의 현실이며 현재시제의 미래다. 이에 따라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그려진 52년 뒤의 미래는 핵전쟁이나 로봇의 반란 같은 묵시록적 재난이 야기한 단절없이 2002년 현재의 현실과 뼈와 근육이 연결돼 있으며 테크놀로지는 여전히 세계에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순치된다. 뜻은 바람직하지만 실제 영화화 작업에서 이 원칙을 어떻게 관철할 수 있을까. 단순화하자면 “눈에 익은 배경의 컨텍스트 위에 눈이 확 뜨이는 소품을 배치하는 일”이었다고 프로듀서 보니 커티스는 설명한다. 스필버그는 예컨대 50년 뒤의 워싱턴이 백악관과 워싱턴 모뉴먼트, 캐피털 빌딩을 그대로 보유한 채로 교통 네트워크와 생활권의 변형을 보여줄 것이라고 보았다. 테크놀로지는 현재 성업중인 의류 브랜드 체인점들을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손님이 들어가는 순간 속옷 사이즈를 말해주는 전광판을 더해줄 뿐이다. “우리의 디자인들이 지나치게 판타스틱해질라치면 스필버그가 항상 제동을 걸곤 했다.” 프로덕션 디자이너 알렉스 맥도웰은 말한다. 사진설명돌연변이 예지자 중 유일하게 존 앤더튼과 교류하는 애거사는 더 큰 음모와 비밀의 열쇠가 된다. 바깥 세상 사람들에게는 신령한 존재로, 프리크라임 내부자들에게는 영약을 채취할 수 있는 ‘희귀 식물’ 취급을 받는 예지자들은 자궁 형태의 탱크에 넣어져 영원히 폭력과 살인을 꿈꾸는 가혹한 운명을 감당한다. 프리크라임의 전국 의장 라마 버지스(막스 폰 시도)는 과학자 아이리스 하이네만의 연구 결과에 기초해 프리크라임 조직을 창시한 인물이며 고독한 존 앤더튼에게는 부성을 상징하는 존재다. 그는 범죄로 파괴된 과거를 가진 앤더튼을 내세움으로써 프리크라임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광선검 결투와 우주전쟁이 나오지 않는다고 반드시 시각적 세공의 품이 덜 든다는 뜻은 아니다. 우주선과 신무기만큼이나 신형의 탈것과 새로운 먹거리, 개인 통신기기의 디자인은 많은 맨파워를 요구하며 오히려 더 관객의 민감한 품평에 노출돼 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는 스필버그 영화로서는 <미지와의 조우> 이후 최다인 450개의 시각효과가 덧입혀졌고 ILM과 PDI/드림웍스를 포함한 7개 특수효과 회사가 동원됐다. 봉제선이 드러나지 않는 시각효과와 일상과 밀착된 미래의 발명품들을 필름누아르의 캔버스 속에 쏟아부음으로써 스필버그는 관객이 미래를 현재의 연장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첨단 테크놀로지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영화의 미스터리에 집중하도록 유도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후더닛(whodunit: 미스터리스릴러 장르의 별칭), 혹은 (아직 저질러지지 않은 범죄 동기를 캐는) ‘후윌두잇’이며 매우 인간적인 스토리다.” 물론. 스필버그 영화의 가장 오랜 ‘특수효과’인 휴머니즘의 후렴구도 존 앤더튼의 가족에 대한 갈증, 착취받는 예지자들의 고통을 부각시킴으로써 존 윌리엄스의 반주에 실려 또 한번 울려퍼질 듯하다. 얼마 전 스필버그는 “나는 지금 내 인생에서 실험과 내게 도전하는 것들을 건드려보는 시기에 있다”고 토로했다. 그 실험실에서 나올 리포트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요란하게 읽히는 보고서가 되겠지만.

[편집장이 독자에게] 미국 축구

한국의 16강행이 확정된 6월14일 밤, 두통의 전화가 왔다. 한통은 냉소적인 성격의 감독(축구감독이 아니라 영화감독)으로부터 왔다. 축구 보고 바람 쐬러 나왔더니 거리가 난리더라, 젊은 친구들이 나쁜 일로 몰려나온 것만 보다가 좋은 일로 몰려나온 걸 보니, 기분 좋더라는 얘기를 전해왔다. 그 감독이 그런 얘길 할 정도니, 그날은 정말 한국의 축제일임에 분명하다. 또 한통은 아는 후배로부터 왔다. 축구를 아주 잘하고 정말 좋아하는 친구인데, 포르투갈이 떨어진 게 속상해서 술을 마시고 있다고 했다. 몰매 맞을 소리인지 모르나, 나는 후배의 심정에 조금 가까웠다. 경기를 보는 내내 제발 무승부로 끝나기를 빌었다. 피구를 따라붙는 송종국의 수비력은 경이로울 정도였으니, 그날 한국 선수들의 플레이는 최상급이었다. 결국 미국 대신 포르투갈이 떨어지고 말았고, 나는 한숨이 나왔다. 고개를 떨군 피구의 눈물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는 스포츠 재벌이니 그를 내가 동정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포르투갈이 서유럽에선 가난한 편에 속한다지만, 그래도 경제위기가 수시로 습격하는 아르헨티나에 비한다면 부국에 가까우니 포르투갈에 대한 연민도 웃기는 짓이다. 또한 박지성의 골이 뜻하지 않게 구원한 미국에 대한 민족주의적 반감 때문도 아니다. 오노의 치졸한 액션 때문에 미국영화를 보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을 때, 나는 찬성할 수 없었다. 축구는 하나의 스포츠 양식이다. 축구가 지구상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는 스포츠라면, 그 양식의 아름다움이 가장 보편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16강 혹은 8강에 들지 못해온 종목이 한둘이 아닌데도, 유독 한국 축구의 성공이 위대한 기쁨이라면, 그 바탕에는 축구라는 양식이 지닌 아름다움에 대한 진심의 매혹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차례로 탈락한 프랑스, 아르헨티나, 포르투갈 그리고 지역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한 네덜란드야말로 그 양식을 앞장서 아름답게 가꿔온 나라들이었다. 나는 미국의 선전과 행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며 약간 불길하기까지 하다. 미국인들은 축구의 아름다움에 큰 관심이 없으며, 당연히 미국 축구팀의 승부에 촉각을 곤두세우지도 않는다. 미국의 프로스포츠가 전제적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많지 않는 종목 가운데 하나가 축구이고, 역으로 그 점이 축구가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의 아름다움을 키워갈 수 있는 조건의 하나이기도 하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운영되는 리그의 힘이 막강하다 해도 농구나 야구에서의 미국의 흡수력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하나의 양식이 그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키워가는 데 특정 지역의 단일 지배력은 저해 요소에 가깝다. 1970년대 중반 이후의 할리우드(고전기 할리우드영화는 아름다웠다)의 지배력이 세계영화계에 끼쳐온 영향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세상 사람들이 영화만큼 축구를 널리 좋아하는 한, 여기에서만은 미국이 변방에 계속 머물러 있기를 바란다.

<서프라이즈> 촬영현장에서 신하균이 고생한 이유는?

스리슬쩍~ 친구애인 12시간 훔치기 영화 <서프라이즈 (감독 김진성, 출연 신하균 이요원 김민희, 제작 씨네2000)>의 한 장면. 얼굴에 검댕을 묻히고 인상을 쓰면서 고개를 내미는 신하균에게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12시간 동안 친구의 애인 정우를 붙잡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하영(이요원). 이런 하영에게 딱 걸린 정우(신하균)의 안타까운 고초가 한창이다. 서울로 간다고 해놓고는 엉뚱한 용유도 갯벌에 떨궈놓더니, 이제 폐선 저장고에 차 열쇠가 떨어졌다며 주워달라고 애원한다. 서울에 빨리 가려면 차 열쇠가 필수인 정우. 썩 내키진 않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일단 내려갔는데, 이젠 문이 꼼짝도 않는다! 저장고에 가둬 시간을 벌어보려는 하영의 속셈에 또다시 걸려든 정우. 어둠 속을 헤매다 반대편 문을 발견하고 빠져나오긴 했는데, 얼굴에 검댕이 잔뜩 묻은 채 어리둥절하다.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거냐고요~ 이날 촬영은 신하균의 천부적인 코믹연기가 가장 돋보이는 장면. 검댕 묻은 얼굴을 가득 찌푸리며 문을 열고 나오는 신하균을 보고 엄하기로 유명한 정광석 촬영감독까지 웃음을 참지 못했으며, 신하균은 얼굴에 검댕을 묻히고 천연덕스럽게 김밥을 먹어서 유쾌한 놀림거리를 자초했다. 이날 촬영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영화 속 설정과 동떨어진 로케이션 장소의 주변 환경들. <서프라이즈>는 초겨울의 어느날, 12시간 동안 일어나는 일인데, 배 뒤편 언덕에는 진달래가 가득 피어서 스탭들을 비웃고 있었다. 스탭들은 촬영을 위해 팔다리 걷어부치고 위험을 무릅쓰며 절벽의 진달래를 따다가 마을 주민들한테 호된 소리를 들었다. 게다가 정우를 골탕 먹인 하영이 배에서 내려오다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바람에 뻘이 온몸에 묻어 망신을 당해야 하는데, 촬영장 배 주변에는 정작 중요한 소품 ‘뻘’이 보이지 않았다. 스텝들이 장화를 신고 직접 뻘을 날라 배 주변에 깔아놓은 다음에야 촬영을 시작할 수 있었다. 스리슬쩍~ 친구애인 12시간 훔치기, 영화 <서프라이즈 (감독 김진성, 출연 신하균 이요원 김민희, 제작 씨네2000)>의 한 장면. 미소천사 신하균이 갖은 인상을 쓰며 힘들게 이요원을 업고 뛰어야만 하는 사정은? 그렇다면 힘들어하는 신하균의 등에서 슬며시 웃음을 흘리고 있는 이요원의 속사정은? 가장 친한 친구 미령(김민희)의 부탁으로 12시간 동안 친구의 애인(신하균)을 찰거머리처럼 쫓아다니는 하영(이요원). 용유도 폐선에 가두거나, 가발과 선글라스로 변장하고 첩보작전을 펼치는 등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한다. 하지만, 계속 당하기만 하던 정우도 반격에 나서기 시작한다! 하영으로부터 도망쳐 재빨리 택시를 잡아타는데 성공. 드디어 하영을 따돌리고 안심하려는 찰나, 열심히 뒤쫓는 하영과의 추격전이 시작된다. 죽기살기로 쫓아오는 하영에게 화가나 갑자기 따지기 위해 차를 세우는 정우. 놀란 하영은 급브레이크를 밟다가 운전대에 쓰러진다. 정우는 급브레이크 소리를 듣고 모여든 사람들의 성화에 못이겨 하영을 들쳐업고 병원을 찾아 뛰어다닌다. 하지만 어느새 슬며시 눈을 뜨고 웃음을 흘리는 하영. 기절한게 아니라, 기절한 척 해버린 하영의 한판승 추가~ 이날 촬영에서 신하균은 생각보다 무게감(!)있는 이요원을 하루종일 업고 뛰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괴로워하는 신하균의 리얼한 표정은 연기를 핑계로 한 실제 상황이었다. 하지만 업혀있는 이요원이라고 편하지만은 않았다. 자꾸만 위로 올라가는 치마 신경쓰랴, 비틀거려서 떨어질 것 같아도 기절한 척 하랴~ 반격에 나섰다가 낭패 본 신하균의 골탕먹는 모습과 지금까지 기품있는 모습만 보여준 이요원의 푼수 연기가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찰거머리 이요원의 추격전에서 벗어나려는 신하균의 모습이 코믹함을 더하는 영화 <서프라이즈>는 현재 후반작업 중이며, 7월 5일 전국 개봉.

저작권 연장하면 영화복원 득일까 실일까

저작권 보호가 고전 영화들을 되살리는 일에 득이 될까, 실이 될까. 저작권 문제가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물론, 비디오 및 디브이디 업계와 텔레비전 방송 등을 망라하는 핫이슈로 떠올랐다. 최근 대법원이 1998년 의회에서 통과된 저작권 연장법안을 재검토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98년 지적 재산권 보호기간을 75년에서 95년으로 20년 연장한 소니 보노 법안에 대해 한 인터넷 자료수집가가 소송을 제기하면서 열띤 논쟁에 불을 붙인 것이다. 대법원의 재검토 결정은 20세기 예술인 영화 분야에서 특히 민감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만약 대법원이 저작권 연장을 뒤집는다면 무성영화 시대와 초기 유성영화 시대에 만들어진 거의 모든 미국영화들의 저작권이 소멸돼 누구나 비디오제작과 인터넷을 통해 맘대로 유통하고 사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영화계가 경험하지 못한 대규모 개방이 이뤄지는 셈이다. 현재 연장 찬성론자와 반대론자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이 논쟁의 한가운데 서 있는 작품은 프랭크 캐프라 감독의 〈멋진 인생〉이다. 양쪽 모두 이 영화의 사례를 들어 각기 설득력 있는 주장들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 연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만약 이 영화의 저작권이 종료되지 않았다면 아직도 이 영화는 먼지가 수북이 쌓인 채 스튜디오 자료실에서 썩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개봉 당시 흥행에 실패해 잊혀졌던 영화가 저작권 종료 뒤 티브이를 통해 방영되면서 재발견됐고, 크리스마스 시즌 최고 인기영화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작권이 소멸되면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돼 재발견될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논리다. 반면, 연장 찬성론자들은 비디오제작사들이 너도 나도 복사판을 남발하는 바람에 시장이 질나쁜 캐프라 영화로 넘쳐나 오히려 대중화에 방해가 됐다고 주장한다. 저작권이 풀려도 최상의 화질을 보장하는 원본 네거티브는 저작권을 지녔던 스튜디오 소유이기 때문에 비디오업자들은 손에 넣을 수 있는 35㎜, 혹은 16㎜ 프린트에서 비디오를 뜰 수밖에 없다. 〈멋진 인생〉은 스튜디오 쪽이 영화 속에 사용된 음악을 꼬투리 잡아 저작권을 갱신하는 데 성공했고 그런 뒤에야 많은 돈을 들여 작품을 복원하고 고화질의 비디오와 디브이디를 출시했다. 〈멋진 인생〉은 지금도 매년 75만장 가량의 비디오가 팔려나갈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는 여러 가지 복사판이 나돌 때의 판매고를 훨씬 웃도는 것이다. 저작권만이 높은 화질을 보장해 오히려 관객들을 증가시킨다는 논리이다. 저작권 문제는 특히 상업성은 떨어지지만 보존 가치가 큰 흑백영화들의 복원과 관련해 많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연장 찬성론자들은 고전영화의 경우 제대로 복원을 하려면 최소한 2만5천달러에서 25만달러가 드는데 자본회수가 보장되지 않을 경우 가뜩이나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영상자료원이나 이윤을 추구하는 스튜디오들이 투자를 꺼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대론자들은 이는 스튜디오들의 연막에 불과하며 디지털시대에 좀더 싼 값에 복원할 수 있는 방법들이 얼마든지 있다고 반박한다. 오히려 저작권 연장은 상업성이 떨어지는 영화들이 재발견되고 사람들에게 노출될 기회를 박탈한다는 것이다. 영화의 저작권 문제는 올 가을 집중 논의돼 이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초에는 결판이 날 예정이다. 로스앤젤레스/이남·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