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텔레@CASHFILTER365비트코인송금대행카지노믹싱비트코인송금대행카지노믹싱' 검색결과

기사/뉴스(1997)

[단신] 부산영상센터 '두레라움' 건립기념식外

부산영상센터‘두레라움’내일 건립기념식 2008년 완공 예정인 부산영상센터가 이름을 ‘두레라움’으로 확정하고 10월7일 건립기념식을 연다. 두레라움에는 200~1200석 규모의 상영관 6개와 영상문화관, 시청각실, 전시장, 시네마테크 등이 들어설 예정. 건축설계는 7명의 해외건축가들을 초대하여 공모하며, 영화제 기간 내내 해운대 PIFF 파빌리온존 내 10주년 특별전시관에 전시되는 공모작 중에서, 폐막일인 14일에 당선작이 발표될 예정이다. 두레라움 건설은 전용극장이 없어 어려움을 겪어온 부산영화제의 숙원 사업이기도 하다. 순 우리말인 두레라움은 ‘(다)함께 (영화를) 즐기는 것’이라는 의미. 밤에는 파티를 즐기세요 부산의 밤은 파티의 연속이다. 장동건과 이정재가 출연하는 대작 <태풍>은 10일 그랜드호텔에서 ‘태풍의 밤’을 열고, 마침내 12월 개봉을 눈앞에 둔 <청연>은 PPP 폐막과 발맞추어 웨스틴 조선호텔에 ‘청연의 밤’을 준비했다. 이밖에도 영화 <연애>와 <야수> <데이지>, 영화사 쇼이스트와 MK 픽처스 등이 부산을 찾은 손님들을 파티에 초대할 예정이다. 함께 KTX타고 싸게 갑니다 KTX가 보편화되면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는 관객들이 동반승객을 구하는 새로운 풍속도가 생겨나고 있다. KTX열차 가운데 위치한, 마주보고 있어 다른 좌석보다 다소 좁은 4석을 성인요금 기준 37.5% 할인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자리는 한꺼번에 사야 하기 때문에 2~3명 짝지어온 관객들이 인터넷에 “함께 할인받아 부산가요!” 등의 글을 올리고 있는 것. 절약한 돈으로 영화 한 편이라도 더 보고 싶은 관객은 부산국제영화제 자유게시판에 들러보도록 하자. 외국언론들 부산 취재 열기 영화제 개막을 하루 앞둔 부산이 외신들의 취재열기로 달아오르고 있다. 세계 3대 영화 업계지인 <스크린 인터내셔널>, <버라이어티>와 <헐리우드 리포터>는 영화제 기간동안 부산국제영화제 특집호를 발간할 예정이며, <스크린 인터내셔널>은 최근 발행호의 라는 기사를 통해 주요 작품들의 프리뷰를 포함한 전반적인 영화제 모습을 소개했다. 프랑스의 아르테 TV와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미국의 AZN 텔레비전에서도 대규모 취재진을 특파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특히 아시아 영화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아시아 무비위크>는 영화제를 맞이하여 창간호를 발행할 예정. 가장 대규모 취재단을 보낼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일본과 중국의 매체들. 중국국립영화채널 CCTV 6와 NHK를 비롯한 두 나라의 주요 언론매체들은 한류열풍을 등에 업고 속속들이 부산항에 상륙하는 중이다.

문제없는 부부없고 비밀없는 집안없다, <위기의 주부들>

한국방송 2텔레비전(매주 일요일 밤 11시15분)과 케이블 텔레비전 오시엔(매주 월~목요일 오전 11시)에서 방영 중인 <위기의 주부들> 시즌1이 종영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가운데 인기몰이가 한창이다. 한국방송의 경우 첫 방송 때 5%대 시청률로 시작해 7.5%까지 시청률이 올랐다가 5~6%대를 유지하고 있다. 일요일 밤 11~1시인 방송시간대를 고려할 때 주목할 만한 수치다. 평범한 주부들의 은밀한 일탈 촌철살인 대사에 뛰어난 연출 로라 부시가 왜 밤 9시면 TV 앞에 앉았는지 알겠다 <위기의 주부들> 시즌1은 평범해 보이지만 각자 개성과 환경이 다른 주부 4명이 친구의 자살을 접한 뒤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보며 자살의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것이 큰 줄거리이다. 바람난 남편과 이혼한 뒤 새로운 사랑을 갈구하는 수전, 대기업 간부로 유능한 커리어우먼이었으나 별난 세 아들과 갓난아기를 키우느라 매일 허덕이는 리네트, 완벽에 가까운 ‘살림왕’이지만 그 완벽주의 때문에 가족들을 숨막히게 하는 브리, 부와 잘 생긴 남편 등 원하는 것을 모두 갖고도 어린 정원사와 바람을 피는 전직 모델 가브리엘이 주인공이다. 부시 미국 대통령의 부인 로라가 “남편은 밤 9시만 되면 잠자리에 들고, 나는 혼자 ‘위기의 주부들’을 틀어요.”라는 말로 유명세를 탔던 이 드라마는 탄탄한 스토리에 정곡을 찌르는 톡톡 튀는 대사, 뛰어난 연출력과 연기력, 세련된 영상 등 인기를 누릴 수밖에 없는 요소를 두루 갖췄다. 특히 전형적인 미국 중상류층 40대 주부들인 주인공들이 겪는 일탈과 비밀스런 사생활에 얽힌 이야기는, 주시청자층인 주부들에게 공감과 함께 대리만족을 줌으로써 가장 큰 인기 요인이 되고 있다. 넷이나 되는 자녀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리네트가 피임을 하지 않으려는 남편에게 주먹을 날리고, 가브리엘이 미성년자인 정원사와 불륜을 저지르는 장면 등은 가사와 육아에 시달리는 주부들에게 공감을 주고, 실현하기는 쉽지 않지만 마음 속에 품어봄직한 일탈의 욕구를 대리충족시킨다. 시청자들은 또 매너좋은 브리의 남편이 사실은 ‘피학대 성욕주의자’라거나 리네트의 남편이 함께 사는 젊은 보모에게 은근히 호감을 품는 등 별 문제없어 보이는 부부라도 속을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문제나 비밀이 있다는 점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 드라마의 작가 마크 체리는 2002년 다섯 자녀를 욕조에 익사시켜 살해한 ‘안드레아 예이츠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이 드라마를 썼다고 한다. 당시 어머니와 함께 뉴스에서 이 사건을 접한 마크 체리는 어머니에게 “자식들을 죽일 만큼 자포자기에 빠진 여성을 상상할 수 있느냐?”고 물었는데 어머니가 자신도 그런 적이 있었다고 고백했다는 것이다. 어머니를 완벽한 주부이자 어머니로만 알았던 그는 충격과 함께, 세상의 주부들이 저마다 절박함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깨닫고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히치콕 스타일의 이 코믹 스릴러 드라마는 요소요소에 배치된 코믹한 설정과 진행될수록 깊어지는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또한 매력적이다. 에피소드마다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며 서스펜스와 스릴을 증폭시켜 재미를 더해준다. 이혼녀 수잔이 매력적인 배관공 마이크에게 끌리는 속마음을 드러내면 그동안 드러내지 않았던 마이크의 미스터리한 모습을 보여줘 반드시 다음 회를 보게 만드는 식이다. 극중 출연자들이 죄를 숨기려다 또다른 죄를 짓는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죄의 연결고리에 얽혀든다. 그래서 <위기의 주부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고, 서로 숨기고 캐내는 비밀들로 인해 이야기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서스펜스가 쉴새없이 이어진다. 오프닝과 클로징 등에서 죽은 사람을 화자로 내세운 독특한 내레이션도 시청자를 드라마에 몰입시키는 좋은 장치이다. 이 작품은 방송 첫 회에 자살한 메리 앨리스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됨에도 분위기가 전혀 공포스럽거나 슬프지 않다. 오히려 미스터리를 은근히 암시하는가 하면, 겉과 속이 다른 우리 인간사의 복잡다단한 면들을 초월자의 눈으로 바라보며 인생사에 교훈을 준다. 내레이션을 들으며 시청자들은 좋은 부모의 구실이나 바람직한 이웃과의 관계 등 인생살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히든> 충격요법과 해석의 덫

감독 미카엘 하네케/ 프랑스, 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 2005년/ 99분/ 월드시네마 사소해 보이는 기류가 어느 순간 목숨을 위협하는 거대 인과로 변화하는 이야기 속에서 미카엘 하네케는 게임을 제의하고, 충격 요법을 사용하고, 또 해석의 덫을 놓는다. <히든>의 경우 그 작동 구조는 ‘시선’에 있다. <히든>은 윤리에 대한 내기임을 드러낸다. 별다를 것 없는 어느 하루의 평온한 일과적 풍경으로 시작하여 순식간에 끔찍한 인류의 절멸로 영화를 끝내 버릴 수도 있는 감독이 <히든>의 미카엘 하네케다. 사소해 보이는 기류가 어느 순간 목숨을 위협하는 거대 인과로 변화하는 이야기 속에서 미카엘 하네케는 게임을 제의하고, 충격 요법을 사용하고, 또 해석의 덫을 놓는다.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는 언제나 빙산의 일각을 보는 것에서 빙산을 보는 것으로 옮겨 가도록 요구한다. <히든>의 경우 그 작동 구조는 ‘시선’에 있다. 영화가 시작하고 나면 프랑스 어느 중산층의 집 앞 풍경이 한참동안이나 보인다. 그러고 나면 그 화면 바깥에서 인물들의 나지막한 음성이 들려온다. 이것은 관객이 보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들이 보고 있던 화면을 관객이 따라 보는 것이었다는 것이 그때서야 밝혀진다. 텔레비전 문학프로그램 사회를 맡고 있는 조르주 부부는 이후 반복적으로 이 테이프를 받는다. 누가 보내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화면은 조금씩 내용을 달리하며 그들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그러다 조르주는 별안간 어린시절 자신이 모함해서 쫓아낸 알제리인 입양아 마지드가 뒤늦게 복수극을 펼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아들이 하루동안 실종되자 서슴없이 마지드 부자를 경찰서에 처넣기도 한다. 그러나 마지드는 ‘목숨을 걸고’ 맹세코 그런 적이 없다고 한다. <히든>은 마지드의 그 맹세를 증명하는 충격 요법으로서의 한 장면을 연출하면서, 이것이 윤리에 대한 한 내기임을 드러낸다.

웨인스타인 형제의 야심찬 첫 발

웨인스타인 형제가 디즈니와 공식 결별을 선언했다. 디즈니의 계열사인 미라맥스 사장 자리를 떠나 새 회사 웨인스타인 컴퍼니(TWC)를 설립한 것. 올해 칸영화제를 방문했던 웨인스타인 형제는 10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받아 10월 중 새 미디어 그룹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웨인스타인 컴퍼니는 이미 프랑스 텔레비전 방송사 ‘TF1’을 비롯하여 18개 투자사로부터 2억3050만달러를 끌어모은 상태다.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현재 협상 중인 투자자까지 포함할 경우 다음주에는 4억2천만달러 정도의 설립금이 모일 예정이다. 웨인스타인 컴퍼니의 야심찬 출발은 2주 전 실린 ‘뉴욕타임스’ 주말판 두 페이지 광고를 통해서도 한눈에 알 수 있다. 맨해튼의 도심 풍경을 배경으로 왼쪽에는 “특별했던 시기의 끝”이라는 제목하에 미라맥스 시절 그들이 제작했던 100편의 영화, 249개의 오스카 노미네이션과 60여개의 수상 목록을 나열하고 있고, 오른편에는 “그리고 새로운 모험의 시작”이라는 제호 아래 웨인스타인 컴퍼니가 현재 준비 중인 작품들을 길게 열거하고 있다. 하비 웨인스타인은 “11월11일 개봉할 미카엘 하프스트룀의 <디레일드>가 첫 번째 영화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뒤를 이어 리처드 셰퍼드의 <마타도르>, 로렌스 둔모어의 <더 리버틴>, 첸카이거의 <무극>, 앤서니 밍겔라의 <브레이킹&엔터링>, 쿠엔틴 타란티노의 <그린드 하우스>, 케빈 스미스의 <패션 오브 더 클락> 등이 대기 중이다. 웨인스타인 컴퍼니는 전 포커스 피처스의 전무이사였던 글렌 바스너를 인터내셔널 부문 배급 및 세일즈 사장으로 영입한 뒤, 올 11월 열리는 아메리칸필름마켓(AFM)에서의 선전을 겨냥하고 있다. 이 밖에도 IFC, AMC, WE 등의 회사와 제휴하여 케이블 네트워크를 맺어가고 있다. 반면 디즈니는 웨인스타인 형제가 떠난 미라맥스의 세를 다소 축소하여 운영할 방침이다. 미라맥스의 새로운 사장 대니얼 바섹은 대규모 경영보다는 가능성 있는 소규모 인디펜던트영화에 초점을 맞췄던 초창기 스타일로 돌아가 회사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1년 예산도 웨인스타인 형제가 운영하던 때의 절반 정도인 3억5천만달러로 낮췄다. 이제는 더이상 <갱스 오브 뉴욕> <콜드 마운틴> <에비에이터> 같은 1억달러짜리 모험을 감행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니얼 바섹은 토론토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하트 오브 더 게임>을 100만달러에 구입하는 등 그 실질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외신기자클럽] 표준화된 영어 제목이 필요하다 (+영어 원문)

한국영화가 국제시장에 개봉될 때, 영어 제목은 누가 붙이는가? 이유가 무엇이든간에 실제로 마지막 결정은 국제 세일즈사가 하게 된다. 그들이 선택하는 제목은 영화제 상영이나 영어권 국가에서의 일반개봉 때 사용된다. (지역 배급업자가 그것을 바꾸기로 결정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북미 개봉 때 <친절한 금자씨>의 영어 제목은 에서 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수많은 과거의 한국 고전영화와 같이 국제 세일즈사가 없는 영화들은 어떤 실정인가? 신상옥 감독의 고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를 살펴보자. 한국영상자료원의 온라인 데이터베이스에는 로 되어 있다. 2001년 부산영화제에 상영될 때는 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2002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있었던 신상옥 회고전 상영에서는 라고 제목이 붙었다. 한편 이번 봄학기 하버드대 강의에서 이 영화를 가르칠 때는 라는 제목이 사용됐다. “Shin Sang-ok”으로 구글 검색을 해보면 같은 제목이 뜬다. 신상옥 감독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감독이 어머니와 숙박객에 관한 영화를 한편이 아니라 연작을 만들었다고 믿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혼동은 다른 영화에서도 발생한다. <자유부인>(1956)이 전형적인 예다(? ? ?). 영화사 학생에게 두통을 안겨주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표준화된 제목이 없어서 일어나는 또 다른 문제들이 있다. 최근 한 영화학자는 1980년대 호주 텔레비전에 방송됐던 한국영화의 기록을 찾을 수 있었음에도, 영어 제목으로는 어떤 영화인지를 알아낼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나 인터넷 검색의 문제들이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영어로 풍부한 정보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로, 실로 놀라울 정도의 리소스를 만들어냈지만 영어로 검색할 땐 무언가를 찾아낸다는 것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본인이 아는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곧 포기하고 만다. 이런 문제들은, 중국과 같은 나라에선 학교에서 배우는 표준화된 로마자 표기법인 병음 체계가 있는 반면, 한국어 단어를 로마자로 표기하는 데 있어서 폭넓게 동의를 이룬 체계가 없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더 악화되어 나타난다. 한국 밖의 학계는 한 체계를 사용하고, 한국 정부는(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복잡하기 때문에 어떻게 사용되는지 거의 아는 사람이 없는) 또 다른 체계를 사용한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로마자 표기를 하곤 한다. 그래서 로마자로 표기된 한국어 제목을 갖고 온라인 정보검색을 하는 것 역시 가망없는 일이다. 복수 제목의 문제는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 중국, 프랑스영화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이런 문제에 종종 부딪히게 된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쓸 수 있는 중앙의 공식적인 영어 제목 리스트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떤 분야에서든 표준을 세우려면 폭넓은 협조와 정치적 감수성과 잘된 홍보가 필요하지만, 한국영화를 위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한국과 외국의 영화학과 교수, 영화제 프로그래머, 영화사학자, 비평가로 구성된 위원회가 완전한 목록을 갖고,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문법적으로 올바른 영어 제목을 만든다고 상상해보자(만약 1919에서 2000년 사이에 제작된 5천편 이상 되는 모든 영화를 하기 힘들다면, 적어도 선별작업을 통해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모든 제목이 들어간 단순한 엑셀파일을 영진위와 영상자료원 웹사이트에 올리고, 앞으로 참조할 수 있게 전세계 영화제나 대학에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사용하리란 보장은 없지만, 그런 목록이 있다면 오늘날 발생하고 있는 혼동의 수준을 굉장히 많이 낮출 수 있을 것이다. When a Korean film is released into international markets, who gets to choose the English title? For all practical purposes, it is usually the international sales company that has the final say. The title they choose is then used for festival screenings and its commercial release in English-speaking countries. (Unless a local distributor decides to change it ? the English title of <친절한 금자씨> will be changed from Sympathy for Lady Vengeance to Lady Vengeance for its North American release) But what about films with no international sales company, such as the many classic films from Korea's past? Let's consider Shin Sang-ok's classic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1961). The Korean Film Archive's online database refers to the film as Mother and a Guest. When PIFF screened the film in 2001, it used the title Mother and a Guest in the Master's Room. When a retrospective of Shin's films screened at the MOMA in New York in 2002, the title was My Mother and Her Guest. When the film was taught in a course at Harvard this spring, the title The Houseguest and My Mother was used. A Google search for "Shin Sang-ok" also turns up titles like Mother and the Houseguest, My Mother and the Lodger, and Mama and the Boarder. People with a limited knowledge of Shin Sang-ok might be forgiven for believing that the director made not one, but a whole series of films about mothers and houseguests. Such confusion also exists for other films -- <자유부인> (1956) is a classic example (Madame Freedom? A Free Woman? Mrs. Liberty?). Apart from giving film history students a headache, other problems arise from this lack of standardized names. A film scholar recently told me that, although she was able to find records of Korean films screened on TV in Australia in the 1980s, she couldn't figure out from the English titles what films they were. Online databases and internet searches are another problem. The Korean Film Archive has made a truly amazing resource in its online database, with a wealth of information available in English, but most foreigners I know quickly give up because it's so hard to find anything when searching in English. These problems are made worse when considering that, in contrast to a country like China, that has a standardized Pinyin romanization system that is taught in schools, there is no widely-agreed upon system to romanize Korean words. The academic world outside of Korea uses one system, the Korean government uses another (which very few Koreans know how to use ? it's more complex than most people realize), and the majority of people simply romanize words however they feel like it. So searching for information online with romanized Korean titles is also a non-starter. The problem of multiple titles is not unique to Korea ? people studying Japanese, Chinese or French films often run into similar issues. But how nice it would be if there were a centralized, official list of English titles that everyone could refer to? Establishing standards in any field requires wide co-operation, political sensitivity and good publicity, but it would probably be possible to do such a thing for Korean cinema. Imagine a committee made up of local and foreign film professors, festival programmers, film historians, and critics who could go through a complete list of films and establish grammatically correct English titles that everyone could use. (If not all the 5000+ films produced between 1919-2000, then at least a selection) A simple Excel file containing all the titles could then be posted on the KOFIC and Korean Film Archive websites, and sent to universities and film festivals around the world for future reference. Of course, there is no guarantee that everyone would use it, but such a list would go a long way towards reducing the level of confusion that currently exists today.

[투덜군 투덜양]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군! <미스터주부퀴즈왕>

오래전에 애니메이션 <심슨가족>에서 봤던 에피소드 중에 심슨네가 가족상담을 하러갔던 게 있었다. 회사 야유회에 갔다가 화목한 다른 가족들과 달리 아내는 술 취해 헤매고 애들은 싸우는 걸 보면서 호머는 자식보다 더 아끼던 텔레비전을 팔아 상담비용을 마련한다. 실패하면 치료비의 몇배를 물어주겠다고 장담하는 이곳은 전기충격으로 치료를 한다. 가족이 모두 전기충격모자를 쓰고 자기가 버튼을 누르면 고통받는 상대방을 보면서 반성하도록 유도한다는 게 그 테라피인데 심슨네 가족들은 상대방이 발작하는 걸 보면서 즐거워하며 더 신나게 버튼을 눌러대는 탓에 결국 상담자는 두손 들고 벌금을 물어준다. 그 돈으로 더 좋은 텔레비전을 사서 진짜 화목한 가족이 된다는 줄거리였다. 왜 이 에피소드를 썼느냐, 원만한 가족을 꾸리려면 돈이 중요하다는 진리를 말하기 위해서다. 심슨 가족이 화목해진 건 성격을 고쳐서가 아니라 공돈이 생겼기 때문이다. 물론 돈이 전부는 아니겠으나 어쨌거나 돈은 중요하다. 새삼스럽게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미스터주부퀴즈왕>의 결말이 나를 분노하게 만들어서다. 비범하지는 않지만 <미스터주부퀴즈왕>은 꽤 재미있는 영화다. 무엇보다 남성전업주부를 보는 시선이 밉지 않다. 가사에 적응 못해 허둥거리거나 지나치게 여성화된, 그러니까 억지스럽게 희화화한 모습으로 남성전업주부를 그리고 있지 않고 무엇보다 꽤 괜찮은 주부 캐릭터를 한석규가 연기한다는 건 나름 매력적이다(그러나 요즘 젊은 주부들이 한가하게 오순도순 모여 고스톱을 치고 놀 거라고 생각하는 건 남성감독의 올드한 착각이라고 본다). 어머니와 함께 오붓하게 김치를 담그는 진만의 모습도 꽤 근사하다. 진만을 보다보면 돈 많이 벌어오는 마초남편을 두는 것보다 이렇게 능력있는 주부남편을 두는 게 더 나을 거라는 확신도 든다. 그런데 말이다, 마지막에 결정적으로 진만은 나를, 그리고 이 세상 많은 주부를 배신했다(영화를 안 보신 분들은 여기서 읽기 중단하시길). 돈 안 벌어오는 거야 뭐라 할 수 없겠지만 굴러들어온 돈덩어리를 왜 걷어차냔 말씀이다. 물론 돈보다 가족간의 사랑이 중요하다는 아름다운 교훈을 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진짜 이 가족이 행복해지는 길은 화해하기 위해 결단을 한 수희와 진만이 보기 좋게 호흡을 맞춰 퀴즈왕이 되는 것이었다. 내 생각에 진만네 가족은 더 분위기 안 좋아질 것이다. 쪽팔린 거 무릅쓰고 무대 위에 나섰건만 어처구니없는 행동으로 3천만원을 날려버린 남편을 아내가 좋게 볼 수 있겠나. 날아간 곗돈이 우발적 사고라면 퀴즈왕 포기는 엄연한 귀책사유다. 비난받아 마땅한 과실인 것이다. <미스터주부퀴즈왕>은 하나는 알아도 둘은 모르는 영화다.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굴러들어온 돈을 포기하는 건 전혀 유쾌하지 못한 반전이었다는 말이다.

황당하지만 갖고 싶은 영화 속 발명품들

영화 속 괴짜 과학자들은 평생 인정받지 못하다가도 불쑥 괴상한 기계를 발명하곤 한다. 그 뒤 생길 수 있는 일의 경우의 수는 3가지다. 떼돈을 벌거나, 인생을 종치거나, 애먼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거나. <인생은 오백오십 살부터>보다 더 인기있고, <무중력 상태에서 할 수 있는 또 다른 쉰세 가지 일들>보다 더 잘 팔리며, <알고 싶지 않았지만 억지로 알게 된 섹스에 대한 모든 것>보다 더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역시 그런 발명품의 현대판이라 할 수 있다. 비현실적이지만 그래서 갖고 싶기도 한 영화 속 발명품들. 어디 한번 구경해보실텨? 나도 과학자가 되겠다고 뒷북치시지만 않는다면 대환영이다. 애들이 줄었어요/ 전자자기축소기 이 영화는 하도 옛날 디즈니영화라(세상에 1990년의 영화닷!), 발명품의 작동 원리를 관객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 같은 것은 애초에 하지도 않는다. 때문에 어떻게, 어떤 원리로 만든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이 기계는 물체를 줄이기도 하고 늘이기도 하는 것이다.-그렇다니까!- 처음엔 이 기계도 (다른 모든 발명품들이 그렇듯) 제대로 먹혀들지가 않아 축소시키는 게 아니라 폭파시키기 일쑤였는데, 얼떨결에 작동하여 그집 애들과 옆집 애들을 개미보다 더 작게 줄여놓는다. 덕분에 애들은 잔디 깎은 지 2천년은 된 듯한 집 정원에서, 강아지 오줌 강을 뛰어넘고 스프링쿨러 해일을 피해다니며 갖은 모험을 하게 된다.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게 된 계기가 ‘야구공이 레이저 구멍을 적절히 막아줘서’라니 화가 나지만, 고생 끝에 이웃끼리 친해졌다니 됐지 뭐. 끝이 좋으면 다 좋다잖아. 플라이/ 텔레포터 순간 물질 이동기계. 한쪽 텔레포터에 들어 있는 물질의 분자구조를 컴퓨터가 분석하여 다른 한쪽의 텔레포터로 전송한다. 두 덩이의 시커먼 알처럼 원시적인 디자인이지만 성능은 썩 괜찮은 편. 스타킹을 전송하면(코가 나가는 일 없이) 안전하게 전송된다. 처음엔 생명체 수송에 에러가 있어 관람객들은 튀김 원숭이와 강아지 묵사발 따위를 봐야 했으나, 나중에는 컴퓨터로 하여금 ‘Fresh’라는 개념을 인식케 함으로써 생명체 전송에 성공한다. 하지만 조심하자. 자칫 다른 생명체와 같이 전송기에 들어갔다간, 흰개미 인간, 모기 인간, 바퀴벌레 인간 같은 것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들어가기 전에 진공청소기라도 돌리고 들어갈 일이다. 근데 생각해보니 좀 이상하다. 사람 몸(속)에 있는 그 수많은 기생충, 대장균, 먼지 진드기 따위들과는 왜 섞이지 않는 거냐? 어째 그런 거냐!! 백 투 더 퓨처/ 타임머신 자동차 드로리언 모터스의 DMC21은 영국 MTV 설문조사에서 가장 갖고 싶은 영화 속 자동차들 중 하나로 꼽혔다. 걸윙(Gull Wing) 도어에 스테인리스 합금 보디를 채용했고, 최고속도는 220km/h다. 물론 이 자동차가 인기를 끈 것은 코딱지만한 전면 윈도 때문이 아니라 <백 투 더 퓨처>의 브라운 박사가 장치한 시간이동장치 때문이다. 굉장한 기계지만 조작법은 심하게 간단하다. 가고 싶은 과거나 미래의 시간을 맞추고 시속 88km의 속도로 달려주면 끝. 보기엔 저래도 나름 전기 자동차인데, 시간여행에 1.21기가와트나 되는 전력이 필요하여 플루토늄을 연료로 사용해야 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나-테러단체에게서 플루토늄을 훔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예비 플루토늄을 준비해주는 센스가 없으면 영영 과거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단 말씀- 영화 말미에는 쓰레기를 연료로 전력을 얻을 수 있게 보완되었다. 최초의 탑승객은 브라운 박사의 개 아인슈타인이다. 고스트버스터즈/ 유령 잡는 전자총과 트랩 미친 듯이 울리는 전화벨에, 소방서용 뺑뺑이 봉을 타고 날렵하게(과연 -_-) 내려오는 모습. 유령을 잡으러 간다기보다 농약이라도 살포하러 가는 듯한 차림이지만, 그 문제의 호스와 등에 멘 철가방이 그들 인생 대역전의 무기다. 만날 시시콜콜한 일로 말다툼을 해대는 이 아저씨 3인방도 알고보면 초심령학 박사들이란 말이지. 전자물리학을 어찌저찌 이용해서 유령을 탐지하고 포획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든 것인데(때 아닌 말이지만, 이콘이 동그란 안경을 번쩍일 때는 어린 마음에 가슴 꽤나 설렜다), 양자총을 쏴 유령을 묶어놓고 기타용 꾹꾹이처럼 생긴 페달을 열심히 밟아주면 트랩이 열리면서 유령이 쏙 빨려들어간다. 정전을 조심해야 한다. 유령창고에 전기가 끊기면 속절없으니까. 급박한 상황에서는 만화에서처럼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아 수동으로라도 꼭 전기를 공급하자. 빅/ 졸타 기계 놀이공원에서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이 기계는 소원을 들어준다. 누가 발명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유리장 안에, 코와 턱이 뽀족한 마법사인형이 들어있는 것이 이 기계의 대략적인 생김새. 돈을 넣으면 무섭게 생긴 졸타가 입을 뻐끔거리기 시작한다. 동전이 졸타의 입 속에 잘 들어가면 빙고! 적절한 타이밍에 소원을 빌면 된다. 드라마 <봄날>에서 조인성이 말을 더듬으며 외쳐대던 ‘조, 조, 졸타 기계’도 바로 이 물건을 지칭한다. <빅>의 주인공 조쉬가 빈 소원은 ‘어른이 되게 해주세요’인데, 어릴 때는 왜 그렇게 어른이 되고 싶은 생각이 드는지 지금 와서 생각하면 참 모를 일이다. 나나 당신이 지금 소원을 빈다면 주식 대박나게 해달라거나, 멋진 홈바와 욕실이 구비된 집을 달라거나, 촉촉하던 옛 피부를 되돌려달라거나 등등의 소원을 빌지 않았을지. 플러버/ 플러버 ‘날아다니는 고무(fly rubber)’라는 뜻으로 ‘플러버’라 명명된 이 물질은, 가열과 냉각을 빠르게 반복하여 만들어진 전도중합체가 뭐 어쩌고 저쩌고 하여 생긴, 준안정체 어쩌고란다. 처음 본 사람들은 푸딩이라느니, 헤어젤이라느니, 푸르죽죽한 엿 같은 것이라느니 하며 실례가 되는 표현을 할 수도 있을 것인데, 이놈은 간지럼도 잘 타고 강아지 모양 풍선으로 둔갑도 하고, 음악을 틀어주면 자기들끼리 춤도 추는 이상한 녀석이므로 플러버가 듣는 데서 그런 소리는 삼가기 바란다(쟈도 인격이 있단 말이다). 통통거리며 부지런하게 튀어다녀서 고양이 장난감으로도 그만. 감마선으로 플러버 내부의 흐름을 조절하면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만들 수도 있다. 신기하긴 하지만 세상사에 찌든 어른의 눈에는 영 현실성이 없어서,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물에 넣으면 불어나는 고무 찐득이가 차라리 그리워질 수도 있다. A.I./ 사람 마음을 가진 로봇 유모로봇에서 섹스용 로봇까지, 겉보기에 사람과 다를게 없는 온갖 종류의 로봇이 나온 세상. 이쯤 되면 과학자들이 욕심낼 것은 (일본만화 어투로) 궁극의 로봇, 즉 사람처럼 감정을 가진 로봇이 될 수밖에 없다. 데이비드는 그 1호로 세상에 나온 존재. 하지만 뭐냐. 아들로 키우겠다고 입양한 가족은 친아들이 살아나자 대뜸 버린다. 사람이 되어 엄마에게 사랑받겠다고 서럽고 눈물겨운 고행길에 올라 ‘세상의 끝’이란 곳에 찾아갔더니 ‘내가 네 애비’라는 작자가 나타났는데…. 앞에서는 대략 ‘너는 굉장히 특별한 아이’라는 요지의 말을 하면서, 뒤로는 ‘야호, 이제 얘들 팔아 돈 벌어야지’라며 엄청난 수의 데이비드를 만들어놨으니… 원 참,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 그의 할아버지뻘로는 <블레이드 러너>의 로이가 있고, 고종사촌쯤 되기로는 <바이센테니얼 맨>의 앤드류, 이종사촌뻘로는 <아이, 로봇>의 써니가 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텔레비전 수상기로 초콜릿 전송하는 기계 쫙쫙 씹어주면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질적으로 양적으로) 식사가 되는 껌이라거나, 상하좌우 심지어 궤도 밖으로까지 날아다니는 엘리베이터라거나, 다람쥐 노동력을 착취한 호두까기 시스템이라거나… 윌리 웡커의 초콜릿 공장에는 온갖 희한한 발명품들이 다 있지만, 역시 가장 신기한 것은 TV수상기 속으로 초콜릿을 전송하는 장치다. 이 발명품이 신기한 이유는 (아직까지 어떤 과학자도 만들지 못한 기계를) 분자구조고 에너지 변환이고 모두 무시한 막무가내 상태로 발명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TV로 방송될 땐 실물 크기보다 작아지기 때문에, TV로 전송된 초콜릿이 정상적인 크기가 되려면 애초에 엄청 커다란 초콜릿을 전송해야 한다. 낭비가 장난 아니신 것이 단점. 하지만 판매자가 개의치 않는다면 뭐 걱정일까. 어서어서 우리에게도 저런 기계를 만들어달라!

인기 드라마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

인기 드라마가 잇따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이 끝나거나 제작 중인 작품은 문화방송 드라마 <대장금>과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 한국방송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문화방송과 ㈜손오공, ㈜희원엔터테인먼트는 <대장금>을 30분짜리 26부작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장금이의 꿈>으로 공동제작해 이달 말부터 방영할 예정이다. 오현창 문화방송 글로벌사업본부 부국장은 “제작기간이 2년 걸렸고 제작비는 30억원이 들었다”고 말했다. 오 부국장은 “탄탄한 줄거리와 이색적인 이미지를 바탕으로 아이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중국·홍콩 등 국외시장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장금이의 꿈>은 주인공 장금의 생각시 시절 이야기를 다룬다. 장금과 한상궁, 민정호 등 등장인물은 드라마와 같지만, 줄거리는 장금이 궁궐 수랏간에 들어가 수련을 받으며 겪는 이야기로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내용이다. <안녕, 프란체스카>도 10분짜리 6부작 디엠비(DMB)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다. 지난 8월 <안녕, 프란체스카>의 공식 상품화 사업권자인 ㈜시은디자인과 애니메이션 제작사 효인동화, 화이트라인, 오렌지애니메이션스튜디오가 애니메이션 공동제작 계약을 맺고, 현재 시나리오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명숙 효인동화 사장은 “<안녕, 프란체스카>는 시트콤이지만 판타지와 각각의 캐릭터 성격이 애니메이션에 적합한 소재란 판단이 들어 투자와 제작을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애니메이션에는 <안녕, 프란체스카> 1~3시즌의 캐릭터들이 모두 나오며, 등장인물은 시트콤 속 연기자의 모습이 아닌 등장인물의 성격을 갖고 있는 새로운 캐릭터로 재창조된다. 내년 2월쯤 완성돼 3월에 공개될 이 애니메이션은 먼저 브이오디(VOD)로 서비스된 다음 디브이디(DVD) 출시, 디엠비와 지상파 텔레비전 방영 등 다양한 경로로 선보일 예정이다. 한국방송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도 30분짜리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다. 이 작품을 공동제작하는 케이비에스미디어와 지앤지엔터테인먼트는 원래 드라마에서 풀리지 않았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줌으로써 드라마 팬을 흡수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에 따라 주인공 무혁(소지섭)이 죽고 은채(임수정)가 자살을 선택하는 드라마 결말 전 1년 동안의 이야기를 다룬다. 등장인물을 최대한 드라마 속 연기자에 가깝게 설정하고, 분위기도 영상미가 뛰어났던 드라마를 고려해 제작하고 있다. 이 작품은 내년 2월께 완성돼 브이오디와 디브이디 등으로 제공된다. <안녕, 프란체스카>와 <미안하다 사랑한다> 애니메이션 제작을 맡은 모상준 피디는 “드라마를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 제작은, 우리 드라마 등 대중문화에 대한 국외시장의 높은 관심을 침체에 빠진 애니메이션 시장으로 돌려 활로를 모색하겠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대중에게 알려진 소재로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어 그만큼 실패의 위험도 적다”며, “국내 애니메이션의 문제점인 취약한 이야기 구조를 드라마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이방인이 바라본 21세기의 동경이야기, <카페 뤼미에르>

허우샤오시엔의 1995년작 <호남호녀>의 도입부에서 영화배우 일을 하는 여주인공의 방에 놓인 텔레비전이 보여주는 영화는 오즈 야스지로의 <만춘>(1949)이었다. 허우는 자기에게 일종의 도전 의식을 불러오는 영화감독이라는 표현으로 오즈를 평가하곤 했다. 그러니 그 장면이 오즈에 대한 공경의 표시를 담고 있음을 알아채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오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카페 뤼미에르>는 그런 공경의 마음이 아예 온전한 출발점이 되어 만들어진 영화다. 영화는 오즈의 영화들로 들어가는 입구 역할을 했던 표준 비율의 쇼치쿠 영화사 로고 숏에 이어 마치 <동경이야기>(1953)의 도입부를 떠올리게 하는 듯 기차가 지나가는 숏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이쯤 되면 성급한 관객은 이제 오즈의 세계에서 가져온 스토리와 스타일을 스크린에 펼쳐놓는 영화가 진행되겠구나, 라는 예상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금방 기대의 배반을 맛보고 말 것이다. 분명히 오즈의 세계에서 준거점을 찾을 수 있는 몇몇 장면들을 배치해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이를테면, 요코가 자기 집을 찾아온 아버지에게 대접하려 이웃에게서 사케를 빌리는 행위는 <동경이야기>의 노리코가 이미 했던 것의 반복이다), <카페 뤼미에르>에서 허우가 시도한 것은 수오 마사유키의 <변태가족, 형의 색시>(1984) 같은 오즈의 우스꽝스런 패러디는 물론 아니고 나가오 나오키의 <잔물결>(2002) 같은 극히 표면적인 이해에 기반한 오즈의 무미한 계승도 아니다. 허우는 오즈를 단순히 복제하거나 모방함으로써가 아니라 오즈의 정신과 적극적으로 교감함으로써 오즈와 만나려 한다. 허우에게 그것은 무엇보다도 당대 일본사회의 삶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의 문제이다. 그래서 그는 오즈의 것과는 다른, 멀찍이서 시간을 두고 오래 바라보는 자기 식의 시선을 굳이 폐기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게다가 무엇에 대해 유독 강한 호기심을 느끼는 듯한 어떤 때에는 그는 자기라는 관찰자가 이방의 존재임도 숨기지 않는다. <카페 뤼미에르>는 예민한 이방인 관찰자 허우가 바로 그의 시선으로 바라본 21세기의 ‘동경이야기’라고 부름직한 영화인 것이다. 허우는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는 젊은 여성 요코(히토토 요)의 발걸음들을 따라가면서 영화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지하철을 타고 친구를 만나며 식사를 하는 등의 그녀가 하는 행동들이란 게 워낙에 극적인 가치를 거의 갖고 있지 않은 듯 사소한 것들인지라, 이것은 <오즈의 반(反)영화>라는 책에서 요시다 요시시게가 오즈의 영화에 대해 쓴, 드라마가 아니라 자잘한 사건들에 대한 영화라는 표현을 즉각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카페 뤼미에르>는 스토리의 형체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듯한 영화인데, 그래도 여기에 흐릿하나마 이야기의 전개 행로라는 게 있다면 그 중요한 하나는 요코와 그녀 가족의 문제가 될 것이다. 그녀는 대만인 남자친구의 애를 가졌지만 가족의 생각과는 달리 그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애를 낳아 키울 생각이다. 홀로 선다는 것의 가치를 대변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영화는 젊은 여성들이 가족의 뜻을 존중해 결혼을 받아들였던 오즈 영화 속의 시대는 이미 지나간 시간이 되어버렸음을 인식한다. 하지만 시간에 대한 허우의 예민한 감각은 지나간 시간이 모두 증발해버린 것이라고 단적으로 말하진 않는다. 요코가 순간 과거의 침윤을 경험할 때처럼 과거는 현재로 경계를 넘어올 수 있는 것이고 전철의 소음을 기록하는 하지메(아사노 다다노부)가 그런 자기의 행위가 훗날 무언가의 증거가 될지도 모른다고 말할 때처럼 현재는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는 구획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며 젖어듦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다. 이것을 <카페 뤼미에르>는 어떤 도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레 흘러가는 삶 속에서 포착해낸다. <카페 뤼미에르>의 저류를 지나가는 또 다른 이야기의 행로는 요코의 조사에 대한 것이다. 그녀는 대만 출신으로 일본에서 활동했던 과거의 음악가 장웬예(江文也)에 대한 각종 자료들을 수집하고 있다. 그래서 요코는 그가 예전에 자주 다녔다던 서점과 카페를 찾아가고 그의 부인을 만나기도 하는데, 중요한 것은 그럼으로써 그녀가 자기 주위의 세계와 접촉을 갖는다는 점이다. 종종 점유 공간 그 너머를 암시하는 창문과 함께 포착되는 구도가 시각화하는 것처럼 그녀는 실내에 있으면서도 바깥으로 나갈 의지를 가진 인물이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그녀는(틈만 나면 전철의 소리들을 녹음기에 담는 하지메와 함께) 호기심어린 관찰자 허우의 훌륭한 대리인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대리인(들)을 통해 허우가 동시대 일본에서 발견해낸 흥미로운 대상이 바로 전철이다. 영화 속에서 수시로 등장하는 전차는 우선적으로는 요코의 공간적 이동을 가능케 하는, 그래서 세계와의 접촉을 용이하게 하는 하나의 수단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자체가 고유한 존재의미를 갖는 접촉의 대상 혹은 ‘세계’라고까지 말해도 될 것만 같다. 전작인 <밀레니엄 맘보>(2001)의 한 장면에서 허우는 일본에 간 비키가 여관에 머물 때 창밖으로 지나가는 기차를 통해 정체된 그녀와 상관없이 시간은 흘러간다는 것을 효과적으로 보여줬었다. 어쩌면 <카페 뤼미에르>의 허우는 그로부터 더 나아가서 전차를 통해 시간이란 보이지 않는 대상, 그 보이지 않는 흘러감을 애써 시각화하려는지도 모른다. 특정한 종착지 없이 달려가는 전차 안에서 요코가 말없이 하는 여러 가지 행동들이란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는 것의 변형처럼 보인다. 내내 전차와 함께 삶의 그런 광경들을 바라봤던 영화가 전철 주변과 안에서 마무리를 짓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 듯싶다. 약 7분여 정도 대사없이 그렇다고 극적인 행동도 없이 전달되는 영화의 이 마지막 시퀀스는 이상한 흥분과 긴장감을 안겨준다. 그건 여기서 허우가 단절과 지속을 미묘하게 이용하는 방법론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통과한다는 것이 놀랍게도 사건과 스펙터클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해서 <카페 뤼미에르>의 허우는, 삶의 흘러감을 영화들에 그려냈던 오즈와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