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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 하는 것처럼 연기하기, <아 유 레디?>의 천정명

좀 엽기적인 생각일진 모르겠지만, 천정명의 몸과 얼굴을 따로 떼어놓고 조각 맞추기를 한다면 좀처럼 제 짝을 맞추기 어려울 것이다. 동글동글 귀엽고 순한 얼굴에 근육형 팔뚝은 잘 연결이 안 되는 조합인데다 ‘배시시’하는 웃음에 조곤조곤한 말투까지 듣고 있다보면 농구, 축구, 테니스, 골프까지 섭렵한 ‘만능 스포츠맨’이란 말은 거짓말처럼 들릴 정도다. 영화 데뷔작인 <아 유 레디?> 역시 처음엔 ‘좋은 몸’ 때문인지 터프한 고등학생 현우 역으로 캐스팅되었다. 하지만 그를 지켜본 제작자는 “정명이 성격은 오히려 준구에 가깝다”고 판단, 결국 교복을 단정히 입은 모범생의 모습으로 처음 스크린에 담길 수 있었다. <아 유 레디?>에서는 고등학생을 연기했지만 천정명은 올해 대학 4학년인 80년생이다. “낯가림도 많고 친구들과 운동만 하던 학생”이었던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길에서 캐스팅 디렉터의 눈에 띄어 데뷔했다. 처음 찍은 ‘호빵CF’는 “거금 100만원”의 용돈을 벌게 해주었을 뿐 아니라 처음으로 “조명을 받는 일,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의 매력”을 느끼게 해주었다. “공부할 땐 그렇게 졸리더니 일하면서 밤샐 때는 졸리지 않더라구요. 그냥 재미있고 신났어요. 운동밖에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일이 좋아질 것 같았어요.” 준비기간이 짧아 연극영화과가 아닌 체육학과로 진학하긴 했지만 그는 대학생이 되고부터 운동이 아닌 연기쪽으로 중심을 기울였다. 혹시 그의 얼굴이 낯익다면 SBS 단막극 ‘남과 여’의 <꽃다방 순정>이나 MBC 특집극 <세번째 우연>과 베스트극장 <한 잎의 여자> 등을 통해 이미 남모르게 그와 조우했으리라. “저는 찍을 때마다 다쳐요.” 처음 <꽃다방 순정>을 찍을 때 스턴트맨의 뒷발에 차여 턱이 돌아가고 <세번째 우연>에서는 달리는 자전거 체인이 빠지는 바람에 큰 사고가 날 뻔했다. 어드벤처영화 <아 유 레디?>는 말하나마나, 타이의 폭포 안에서 원신 원컷의 액션신을 찍던 그는 심장마비로 앰뷸런스에 실려가며 “이렇게 죽는구나” 했던 사고도 겪었다. 그 순간 인공호흡까지 동원해 함께 있어준 이종수는, 4살의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아 유 레디?>를 통해 만난 가장 소중한 친구다. 촬영이 끝난 뒤에도 이종수가 출연중인 시트콤 촬영장에 놀러가는 등 그들은 남다른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 기대에 찬 데뷔작이자 어떤 작품보다 고생이 심했던 영화, 그러나 비록 흥행이 생각만큼 좋지 않다는 소식을 접해도 그는 “후회없이 촬영했고 너무 재미있게 찍었다”며 크게 괘념치 않는 눈치다. 그저 “그렇게 좋아하는 운동도 포기하면서 선택한 것이니만큼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할 것”이라며 다짐만 거듭할 뿐. “헬스나 영화나 어떻게 보면 닮은 것 같아요. 모두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점이 그렇구요. 함께하는 친구나 동료가 있다면 더욱 즐겁다는 것까지요.” 아직 스물둘인 그의 눈에서 미래를 읽을 순 없지만, 이미 천정명의 발은 한 발짝 앞서 나가 있다.

˝입체영상, 60년대 한국영화에도 쓰였어˝

(지난주에 이어) 그래서 나와 제작부장이 입을 다문 상태에서 촬영이 무사히 끝났어. 장비를 철수하고, 인천으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붕대 감은 내 손을 본 스탭들이 하나둘 이유를 물어오니, 그제야 비로소 얘기를 꺼낼 수 있겠더라고. 당시 옆자리에 배우 황해도 타고 있었는데, 그이 성격에 대충 넘어가지 못하고 대뜸 “그걸 왜 진작 얘기하지 않았냐, 사람이 중하지 촬영이 중하냐” 꾸짖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랬지. “전문으로 총을 쏘던 사람들도 아닌 배우들이, 가뜩이나 실탄이 든 총을 들고 연기를 하는데 얼마나 긴장이 되겠어. 그런데 누가 유탄을 맞았다는 소리가 들려봐, 배우들은 당연히 집중력이 떨어지고, 간혹 겁에 질리는 스탭들이 속출하지 않겠어? 그런 어수선한 분위기론 촬영이 제대로 될 리가 없잖아. 그래서 조용히 하라고 시킨 거야.” 순간 사람들이 조용해지더라고. 그때 제작부장이 다가와 참 고맙다고 몇번이나 인사를 하는 통에 어찌나 쑥스럽던지.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나로선 제작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결정을 내린 셈이었어. 유인촌, 황해 등과 <정조>(1979)를 찍을 때의 해프닝을 끝으로 들려주지. <정조>의 촬영지는 전남 신안 근처 우이도라는 섬이었어. 섬 모양이 소 귀를 닮았다고 그렇게 불리나봐. 현지 로케를 모두 마치고 목포로 가는 배를 탔는데, 일행이 많다보니 정원을 훨씬 넘어버린 거야. 게다가 도중에 황소까지 한 마리 태웠으니, 과도한 하중을 이기지 못한 배는 그저 중심을 잡기에도 바쁜 형국이었지. 하루에 두번밖에 운행되지 않는 배를 놓치지 않으려고 너도나도 올라탄 끝에 30명 정원의 배엔 60여명의 사람들이 북적댔고, 설상가상으로 태풍이 몰려온다는 아침 뉴스를 증명하듯, 바람이 거세게 불어대기 시작했어. 높은 파도를 이기지 못한 배는 앞뒤로 뒤집힐 듯 흔들렸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제자리에서 석고처럼 굳어버렸지. 숨소리조차 크게 낼 수 없는 상황에서 소가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요동을 치기 시작한 거야. 사람이라면 말로 달래 진정시킬 수 있었겠지만, 소를 달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어. 가뜩이나 무게 중심을 못 잡고 흔들리는 배 위에서 만에 하나 소가 난동을 부린다면 배가 뒤집히는 건 자명한 일이었지. 그때 누군가가 다급하게 소리를 쳤어. “소를 빠뜨립시다. 다같이 죽는 것보다 저 녀석만 빠뜨리면 배가 안전해지지 않을까요?” 침묵이 이어졌고, 다들 서로의 눈치만 살폈지. 흥분상태에 빠진 소를 바다에 빠뜨리겠다고 덤벼봤자, 어느 소가 얌전히 빠질 것인가. 제가 죽겠다고 스스로 물로 뛰어들지 않는 이상, 그 제안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발상이었어. 그 순간 할 수 있는 일이란, 황소를 중심으로 빙 둘러앉아 소가 더이상 발작을 일으키지 않고, 뭍에 닿을 때까지 얌전히 있어주길 기도하는 거였어. 다행히 소는 점차 상황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부두에 닿을 때까지 큰 말썽을 부리지 않았지. 부두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라디오에서는 태풍경보가 발령되었음을 알리는 경보음이 들리더군. 그 순간 다리에 힘이 쫙 풀리면서 ‘살았구나’ 그 생각밖엔 들지 않았어. 당시 배에는 촬영스탭과 배우, 감독뿐 아니라 인솔 경찰도 하나 타고 있었는데, 나중에 들으니 그이는 사고 뒤 문책이 두려워 자살할 생각까지 했다더라구. 얼마나 긴박한 상황이었는지는 이쯤 설명하면 대충 알았을 거야. 요즘 말로 ‘VR’(Virtual Reality)이라고 하는, 가상현실, 혹은 입체영상이라고 하는 개념이 일찍이 한국영화에도 쓰였었지. 임권택 감독의 68년작 <몽녀>(김지미, 박노식 주연)와 같은 해 이규웅 감독이 신영균과 윤정희 등을 기용해 만든 <천하장사 임꺽정>은 한국영화 최초의 ‘입체영화’였지. 두 영화 모두 내가 스틸과 제작을 겸임했기에 어느 영화보다 의미가 깊어. 입체영화라고 하면, 실버스크린이라고 불리는 특수 스크린 앞에서, 입체안경을 쓰고 보는 영화를 말하는데, 지금의 놀이동산에 설치된 입체영화관이나 메가박스에 설치된 메가라이드의 영상과 비슷한 원리의 영화라고 할 수 있어. 당시 실버스크린 기술은 미라맥스에서 지원이 됐고, 지금은 남아 있는 견본이 없어. 입체안경은 내가 몇개 가지고 있던 견본을 고희 기념식 때 영상자료원에다 넘겼고. 사진·구술 백영호/ 스틸작가 54년간 영화현장사진에 몸담음 <유관순> <생명> <천하장사 임꺽정> <만다라> <바보사냥> <바보선언> <아다다> 등 100여 작품 5만여컷의 스틸작업.정리 심지현 simssisi@dreamx.net

치히로를 잊고 센으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어렸을 때 만화보기를 꽤나 좋아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로 가는 길목에 ‘푸른집’이라는 만화방이 있었는데 돈만 생기면 그곳에 가서 만화를 보곤 했다. ‘돈만 생기면’이라고 표현했지만 그 돈이라는 게 생길 턱이 없는데도 어째 그리 그 만화방엘 자주 들락거릴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만화만 있으면 코를 빠뜨리고 보고 있느라 어머니한테 혼이 나가게 야단을 듣기도 했다. 아궁이 앞에서 만화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아궁이 불이 바깥으로 새나오는 통에 머리카락이 타버린 적도 있었다. 만화책에서 정을 끊을 일은 뜻밖에 일찍 찾아왔다. 한번은 푸른집에서 만화를 빌려다 보다가 어머니한테 들켰는데 어머니가 만화책을 불싸질러버리겠다고 했다. 일찍이 어머니는 기타에 빠져 있던 둘째오빠가 공부는 안 하고 밤이나 낮이나 기타만 친다고 기타를 아작아작 부숴서 진짜로 불을 때버린 적이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눈을 피해 얼른 옆마당의 감나무 속에(오래된 나무는 등허리가 오목 패 있어 어린애 하나쯤은 그 속에 숨어도 되었다) 만화책을 숨겨놓았다. 그날 밤에 비바람이 얼마나 몰아쳤는지 모른다. 아침에 깨어서 감나무에게로 가보니 상황은 이미 끝이 나 있었다. 바람에 날아갔는지 어쨌는지 만화책은 보이지 않았고 그나마 남아 있는 것도 반납할 수 없을 정도로 반은 비에 젖고 반은 바람에 찢겨 달아나고 없었다. 그날부터 나는 공포의 ‘푸른집’을 피해 학교에 다니느라 혼자서 길을 돌아돌아 다녀야 했다. 다행히 ‘푸른집’ 주인과 맞닥뜨리지는 않았지만 만화책을 반납하지 못한 강박관념 때문에 꽤 오랫동안 푸른집 주인으로부터 쫓겨다니고 숨어다니는 꿈을 꾸어야만 했다. 실제로 푸른집 주인에게 혼이 난 기억은 없다. 어떻게 그 일이 무마되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한동안 푸른집 주인이 교실에 찾아올까봐 학교 다니는 것이 매일매일 형벌이었던 기억만은 선명하다. 그로 인해 나의 만화보기는 끊어졌다. 푸른집 주인을 연상시키는 것은 무엇도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나의 만화보기가 다시 시작된 건 그로부터 십년도 더 지난 다음이다. 어찌나 사람들이 <공포의 외인구단> 얘기들을 하는지 어느 날 나도 빌려왔다. 못 되어도 서른권쯤은 됐지, 싶다. 처음엔 빌려다 쌓아놓고선 이걸 언제 다 보나, 했으니까. 그런데 무슨 말씀. 무슨 만화가 그렇게 재미있던지 도대체 손에서 놓을 수가 없어 밤을 꼬박 새워 봤다. 만화를 너무나 재미있게 봐서 나중에 영화로 제작되었을 때도 개봉 첫날 부리나케 쫓아가서 봤다. 나에게는 원작인 만화보다 재미가 덜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너무너무 재미 있었다, 로만 기억되지 그렇게나 재미있게 봤던 만화의 내용은 기억이 나질 않으니. 최근에 일본 에니메이션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어린 시절 만화처럼 재미있게 보았다. 오후에 할 일이 잔뜩 있는 며칠 전 오전이었다. 갑자기 하루 일을 다 파투내고 싶었다. 전화를 걸어줘야 하고, 원고를 써줘야 하고, 그리고 3시에는 공적인 약속까지 있는 그런 오전이었다. 에라, 하는 심정으로 대학로에 가서 베트남 국수를 천천히 먹고 여유를 부리며 씨네큐브까지 가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표를 끊었다. 앞에 만화 얘기를 길게 했던 이유는 나는 이 영화를 만화보듯 빠져들어 봤기 때문이다. 할 일이 잔뜩 있었던 오후에 모든 할 일을 잊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어찌나 재미나게 봤던지 정신을 차리고보니 영화가 끝나 있었다. 사랑스러운 치히로로 인해 오랜만에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라 벙긋벙긋 웃기까지 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오로지 재미있기만 한 그런 영화는 아니다. 아니 되새겨보면 끔찍한 영화이기도 하다. 어린아이를 지켜주어야 하는 부모는 주인의 허락없이 맛있는 것을 탐욕스럽게 먹다가 돼지가 되어버린다. 아무리 연약한 어린애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마법에 걸리게 되어 있고, 일을 하기 위해 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 옛 이름을 빼앗기고 새 이름을 갖게 되어 있는 세계에 치히로는 홀로 남게 된 것이다. 치히로는 센이 된다. 치히로라는 자기 이름을 기억하고 있지 않으면 영원히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센으로 살지만 치히로라는 이름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기발한 상상력에 이끌리고 화면을 화려하게 채우는 애니메이션에 이끌리며 재미있게만 봤는데 새겨볼수록 긴장감 있게 포진시켜놓은 상징들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떠오른 생각. 나에게도 원래 내 이름이 있었던 게 아닐까. 아궁이 앞에서 만화를 보다가 머리를 태운 그때의 내 이름을 잊어버리고 지금 나는 다른 이름으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잊어버린 그 이름 때문에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새삼스럽게 미야자키 하야오의 저력인지 무서움인지가 뒤통수를 쳤다.신경숙/ 소설가

게임 속 가상현실 다룬 사이버펑크 시리즈 <하쉬렐름>

Harsh Realm 무비플러스(재방송 준비중) <매트릭스>라는 영화가 등장한 이후, 사이버펑크-SF영화는 좀더 대중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공각기동대>에 이르기까지, 기억과 전자두뇌라는 개념은 ‘마니아’라는 암묵 안에서 유명한 개념이었다. <매트릭스>의 업적은 분명히 여기서 출발한다. 기억과 정체성, 전뇌와 사이버세계- 이것을 시각적이고 구체적으로 형상화해서 대중을 향해 신천지의 문을 열어놓은 것이다. 어려운 개념이 아니라 누구나 대충 감을 잡을 수 있는 개념으로. 의 제작자 크리스 카터의 1013프로덕션이 1999년 야심차게 시작했던 TV시리즈 <하쉬렐름>은 <매트릭스>의 붕어빵이었다. 그리고 가상현실이라는 개념이 대중한테 어필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출발한 드라마였다. 미군이 핵전쟁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어놓은 프로그램 ‘하쉬렐름’이 어딘가 틀어지고, 유능한 군인들은 하나둘씩 이유도 모른 채 가상현실게임 안에 투입된다. 문제는, 하쉬렐름 안의 현재 스코어 1위인 ‘오마르 산티아고’가 하쉬렐름 전체를 장악하게 되면 이 세상과 하쉬렐름은 전도된다는 것이다. 게임 안에 들어간 주인공 토마스 홉스는 자기보다 먼저 들어온 마이크 피노키오와 하쉬렐름 안의 인물 플로렌스와 한팀이 된다. 그리고 홉스는 얼떨결에 하쉬렐름 안에서 산티아고를 이길 수 있는 ‘구원자/그 사람’이 된다. <매트릭스>가 현실과 매트릭스를 계속 분리하는 반면 <하쉬렐름>은 대부분 하쉬렐름 안에서만 이야기를 전개하고, 한 에피소드를 하나의 레벨 혹은 플레이 그라운드로 설정한다. 홉스는 동료 플레이어(피노키오)와 게임 안에서 얻은 아이템(플로렌스, 강아지 덱스터)을 기반으로 한 에피소드마다 새로운 생존/게임을 벌여나간다. 그리고 <하쉬렐름>은 시리즈인 만큼 승리를 유보- 즉 패배가 주종을 이루기에 훨씬 게임의 느낌이 강해진다. 유사점은 미묘한 차이점이 있을 때 잘 드러나는 법인데, <하쉬렐름>은 미묘한 가상세계의 잔재미를 아기자기하게 잘 구축한다. 잠깐 지나가지만 집(zip)결투, 말 그대로 ‘압축결투’를 벌이는 장면이 그렇고, 프로그램상 오류가 만들어낸 스캐닝/복사판을 통해 원본-복사본의 의미를 곱씹게 하는 에피소드에 이르면, <하쉬렐름>은 단순한 <매트릭스> 붕어빵이 아니라 유사하기만 할 뿐인 단독적 작품/게임으로 확고하게 자리잡는다. 등장인물들의 어디서 본 듯 단순한 성격도 게임의 느낌을 더욱 강화한다. 어디에나 빈대붙는 배짱(X파일의 멀더)과 저돌성(도겟)의 토마스 홉스, 엄마스러운(스컬리) 짠돌이(스타워즈의 한 솔로) 마이크 피노키오, 성실성(레이어스)을 갖춘 천하장사(츄바카) 플로렌스, 유능한 애완동물(R2D2) 덱스터, 모두 게임에서나 볼 듯한 단선적인 캐릭터들이다. 그런데 주인공들에 비해 악역 캐릭터는 복잡미묘하고, 해석 불가능한 매력을 지닌다. 단순무식한 독재자가 아니라 담배 피우는 남자와 제갈공명을 능가하는 천재 오마르 산티아고의 존재는 <하쉬렐름> 자체를 무시할 수 없게 한다. 마리타와 크라이첵이 하나가 된 듯한 잉가 포사는 조커카드 같은 변수로 움직인다. 적군과 아군, 현실과 하쉬렐름 양쪽을 모두 포괄하는 포사의 역할은 깍두기가 아니라 게임을 예측불허로 만드는 최대 공신이다. 주인공만큼이나 악역을 잘 만들어내는 1013 제작진답게, <하쉬렐름>의 매력은 게임이라는 발상만큼 캐릭터 자체가 게임처럼 상호작용을 하는 줄거리 진행에서도 드러난다. 사실 <하쉬렐름>은 보다도 더 설명이 없는 불친절한 시리즈 중 하나다. 왜 단순한 시뮬레이션 게임이 세상을 지배할 정도의 힘을 지니게 되었는가? 왜 산티아고를 이겨야 게임이 끝나는가? 정말로 끝나기는 하는가? 피노키오는 플레이어인가, 아이템인가? 참으로 자잘한 의문이 많은 시리즈인데, 너무 일찍 끝나버리는 바람에 의문만 남기고 저 너머로 사라졌다. 유즈넷에 들어가도 다 질문만 있다. 사실 만들다 중단했기 때문이지만. <하쉬렐름>은 ‘잘 만들기는 했지만 시청률이 낮다’는 이유로 3편까지만 방송하고 중단했다(이런 소리는 우리나라에서만 들을 줄 알았는데). 그동안 제작했던 나머지 6편은 후일 재방송채널 에서 방송되었는데, 우리나라 케이블과 비디오로는 총 9편을 다 만날 수 있다. 고백하자면 중도하차라고 하기에 재미없는 붕어빵이구나, 했던 의심은 첫회를 보고 싹 날아갔다. <하쉬렐름>의 가치와 재미는 시즌7 이후에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쉬렐름>에서 가장 게임 같은 내러티브 재미를 선사한 ‘출구가 없다’의 대본작가 스티브 마에다는 시즌7의 ‘숨쉬는 공포’, 시즌 8의 ‘거꾸로 가는 시간’, 시즌 9의 ‘시간 패러독스’ 같은 걸작들을 양산해냈다. 혹시 저 에피소드들이 재미있었던 분들은, <하쉬렐름>의 재방송을 만나면 꼬옥 확인하세요!남명희/ 자유기고가 zoo@zootv.pe.kr

판타지로 그려낸 소녀의 성장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

오, 미야자키! 이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다루고 있든,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든, 미야자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이 활력의 엔터테인먼트는 한여름 밤의 축제에 달려온 온 가족을 즐겁게 해주고도 남는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종이 인형과 뒤엉켜 날아오다 불규칙적으로 펄떡거리는 용은 <스타쉽 트루퍼스>를 괴멸시켰던 거대 곤충들의 활극보다 섬뜩하다. 무너져가는 연통을 밟고 아슬아슬하게 달려가는 센의 모습은 <루팡 3세-카리오스트로의 성>과 <미래 소년 코난>에서부터 보아왔던 곡예 레이싱의 향수에 젖게 한다. 미야자키는 미야자키다. 그가 아니면 누가 이토록 즐거운 아름다움을, 아름다운 즐거움을 줄 수 있겠는가? 이 영화는 초기 원화 공정 외에는 거의 디지털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센이 꽃밭을 헤쳐가는 장면이나 건물 안의 3D 조형물 등 몇몇 두드러진 장면을 제외하고는 거의 셀과 구별할 수 없는 전통의 맛을 전해준다. 디지털의 풍성한 자유를 누리면서도 2D 셀애니메이션의 자연스럽고 투명한 수채화의 느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의 손길은 알게 모르게 영화 속에 스며 있다. 무엇보다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인 물에 깃들어 있다. 우리에게 컴퓨터그래픽의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제대로 보여주었던 제임스 카메론의 <어비스>에서부터 물은 디지털의 전문 분야였다. 센이 헤엄치고 있는 디지털 물결 역시 그에 못지않게 눈부시다. 온천장의 바깥 수면은 햇살에 반짝거리고, 신들이 몸을 담그고 있는 탕 안의 물은 출렁거리고, 그 위의 수증기는 하늘거린다. 오물신이 꾸역꾸역 뱉어내는 구정물 방울 하나하나까지 아름답다. 그 레이어 한장 한장에 애니메이터들은 훌륭한 이름을 주었던 것에 틀림없다. 수직의 물을 건너 수평의 물로 센은 온천장에서 하나의 큰 과제를 해결하고, 하나의 큰 문제를 만든다. 앞의 일은 십리 밖에서도 악취가 나는 오물신을 정성껏 대접하고 그 몸에서 고철과 쓰레기를 뽑아내 강의 신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뒤의 일은 빗속에 외롭게 서 있는 얼굴없는 귀신 가오나시를 불러들여 온천장의 식구들을 탐욕에 물들게 한 것이다. 오물신은 인간의 무분별한 탐욕이 만들어낸 거대한 죄과이며, 가오나시는 도저히 허기를 달랠 수 없는 그 탐욕의 공허한 실체다. 거기에 유바바에 붙잡혀 있는 하쿠의 이야기가 뒤얽혀 매듭조차 쉽게 알아볼 수 없는 물의 동아줄이 그들을 묶어놓고 있다. 센은 수직의 물인 온천장의 아래로 내려와 수평의 물인 바다의 저편으로 건너간다. 그녀가 타야 할 것은 구식의 편도 기차. 그것은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 <은하철도의 밤>에서 태어나 마쓰모토 레이지의 <은하철도 999>로 이어져온 기차다. 어쩌면 돌아올 수 없는 세계, 죽음으로 향한 기차다. 이승에서 벗어나 신의 세계로 들어섰던 치히로는, 이제 센이라는 이름을 가진 채 돌아오지 못할 저승으로 건너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바다를 건너는 기차의 길은 평온하다. 덜컹거리는 차창 밖은 수없는 상념을 떠올리게 한다. 이곳은 마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만화판에서 도루쿠의 신성황제가 나우시카를 데리고 가려고 했던 청정한 피안의 세계 같다. 그때 나우시카는 말했다. “천년, 혹은 그보다 좀더 지나 네가 좀더 넓고 강해졌을 때, 우리가 멸망하지 않고 조금 더 현명해져 있다면….” 천년. 그것은 완전한 무한이 되지 않은 무한이다. 센(千)이 치히로(千尋)라는 이름을 되찾아야 할 이유는 거기에 있는 걸까? 천(千)에 머무르지 않고 또 다른 천을 찾아야 할(千尋) 운명인 것인가? 아니다. 어쩌면 저 고즈넉한 풍경의 마을들을 지나 센이 가고 있는 이승 너머의 그곳은, 그녀의 생이 시작되기 이전의 어떤 곳이 아닐까? 왜 우리는 죽음으로 가는 기차를 천년 뒤의 미래로 달려가는 기차라고 생각했을까? 그것은 단지 과거로, 아무것도 없던 어둠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꼬마야, 돼지들을 부탁해 기차는 멈추어 섰다. 달랑거리는 전등의 안내를 받아 센과 친구들은 유바바의 언니 제니바의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우리는 알아채게 된다. 복잡하게 뒤얽힌 이야기일수록 그 해결은 단순하다는 사실을. 애초에 저 머리 큰 마녀들이 왜 나왔을까? 무수한 은유로 뒤덮여 있던 물의 모험은 결국 뒤꿈치 쿵쿵쿵으로 단번에 해결될 수 있는 <오즈의 마법사>였던 게 아닌가? 하쿠가 용의 모습으로 마중을 나오고, 센을 태우고 하늘을 난다. 센이 어린 시절 강물에 빠졌던 기억을 되살리고, 그 기억이 강의 신이었던 하쿠의 이름을 되살려낸다. 소년과 소녀의 얼굴로 서로 마주보며 하늘을 떨어져 내려오는 두 사람. 치히로의 얼굴에 반짝이며 솟아나오는 눈물이 이 수수께끼로 가득 찬 물의 여행에 마침표를 찍는다. 그때 물에 빠져 죽음 가까이 있던 그녀에게 누군가 그녀를 불러줄 이름이 있었고, 그로 인해 그녀는 자신이 속해야 할 세상으로 다시 나오게 되었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지. 누군가 나를 불러줄 이름이 있어서 다행이지.” 10살짜리 꼬마에게 미야자키는 이렇게 말한다. 꼬마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돼지 두 마리의 손을 잡고 극장 밖을 나간다. 돼지들이 길을 잃지 않게 잘 이끌어주렴, 꼬마야.이명석/ 만화평론가·프로젝트 사탕발린 운영중 www.sugarspray.com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판타지로 그려낸 소녀의 성장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1)

그것은 잃어버린 부모를 되찾기 위해 몸을 던진 어느 효녀의 고행담이다. 뜻하지 않게 그 여름 밤 신들의 놀이동산을 엿보게 된 소녀의 비밀 일기다. 탈출구를 모르는 수수께끼의 세계에 갇힌 앨리스의 새로운 악몽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난 가뭄 동안 꼭꼭 문을 걸어두었던 미야자키의 뒷마당에 아직도 넘쳐나는 우물이 있음을 폭로한 기쁨의 고자질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 그 소녀가 물 위로 떠내려보낼 뻔했던 어떤 이름에 대한 이야기다. 그 옛날 아드리아 해변에서 만났던 <붉은 돼지>는 말했다. ‘날지 않는 돼지는 단지 돼지일 뿐’이라고. 그런데 오늘 나는 ‘오직 먹기만 하는 인간들 역시 단지 돼지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별다른 악의도 없는 부모를 돼지우리에 처넣어버리고 시작하는 이 영화는, 10살짜리 소녀에게 무기력한 어른들을 ‘일단 포기’하라고 가르친다. 뙤약볕을 뚫고 주말의 극장을 찾은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편안하게 영화를 볼 수 있도록 극장 입구의 놀이방에 들어가 있는 편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재빨리 돼지 어른의 옷을 벗고 그 시절의 자신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이제 물이 차오른다.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다. 토토로의 숲에서 치히로의 물로 <이웃의 토토로>를 지배했던 것이 사실상 숲과 바람이었다면,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물이다. 소녀 치히로의 등 뒤로 물이 차오르고, 그 물은 깊고도 넓은 바다가 된다. 방금 전까지 이사가는 일에 찡찡대며 부모의 차에 실려가던 소녀의 나약한 세계는 물에 떠밀려갔다. 이제부터 그녀는 필사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돼지가 된 부모를 돌려받아야 하고, 이승으로 돌아갈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 무한의 수평으로 뻗어 있는 바다밖에 없었다면, 그녀는 쉽게 포기했을 것이다.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었는지조차도 금세 잊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녀는 하얀 미소년 하쿠를 만나고, 수평의 물 위로 요동치는 수직의 물을 보게 된다. 기껏해야 10층도 되지 않는 단아한 온천장은 저 넓은 바다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그래도 아래위로 꿈틀거리는 그 물이 그녀에게 허우적거리며 발버둥이라도 칠 희망을 준다. 물을 움직이는 요동의 힘을 찾아 온천장의 밑바닥으로 간 그녀는 보일러실에서 쉴새없이 일하는 가마 할아범을 만나 무릎을 꿇는다. 신기할 정도로 그녀는 단호하고, 그때부터 영화의 끝까지 두려워는 하되 절대 갈등하지는 않는다. 돼지처럼 먹어대는 부모 뒤에서 옷자락을 잡고 짜증을 내던 소녀가 절대 아니고, 숨을 참고 다리를 건너다 개구리에게 들킬 위기에서 소년의 팔을 꼭 잡고 놀라던 소녀 역시 아니다. 놀라울 정도로 현실 인식이 빠르면서도 철저하게 자기 주관을 지켜나가는 소녀다. 부모의 빚을 갚기 위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하루 18시간씩 착취를 당하더라도 묵묵히 일을 할, 이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는 성녀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불완전한 한 인격의 성장과 완성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밑바닥에 완성되어 있던 인격이 외부의 충격으로 서서히 바깥으로 드러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런데 돼지가 아닌 어른이 되는 어떤 방법이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미션! 부모를 구하고 이름을 되찾을 것 바닥에서 해답을 얻지 못한 소녀는 꼭대기로 올라간다. 그리고 온천장을 지배하는 마녀 유바바와 계약을 맺는다. 언제나 그렇듯이 계약은 열쇠다. 유바바는 치히로(千尋)를 취업시키는 대신, 그녀의 이름 한자를 줄이고 센(千)이라 부른다. 이제 센은 온천장의 혹사를 견뎌내며 부모를 구해낼 방법을 알아내야 하고, 언젠가 자신을 되돌릴 열쇠인 이름도 되찾아야 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열쇠가 존재했다는 사실, 문제가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온천장은 온갖 신들이 먹고 노니는 물의 놀이터다. 저녁 무렵이 되면 사방에서 신들이 줄을 지어 찾아온다. 커다란 병아리처럼 생긴 새의 신, 토토로의 친척뻘로 보이는 무의 신,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의 신성황제를 떠올리게 하는 귀신 등 그들은 모두 물 밖에서 온 존재들이다. 그들을 맞이하는 종업원들 중에는 폴짝거리는 개구리 그대로의 모습도 나오지만,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는 것들조차 커다란 입의 메기나 두꺼비를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물의 종족이고, 금부스러기를 몰래 숨기는 얄팍한 욕망을 지니고 있어도 결국은 물과 일체가 되어 있는 존재다(그래도 약간의 자각이 있는 센의 선배 린은 여우의 이미지를 느끼게 한다). 갖가지 탕약이 뒤섞인 온천수가 솟고 때리고, 맛난 술과 생선이 뒤엉켜 신들의 몸과 마음을 풀어준다. 일본식의 흥겨운 잔치를 멋들어지게 그려낸 이 장면들은 <헤이세이 너구리 전쟁 폼포쿠>에 나오는 ‘백귀야행’의 거리 축제를 능가하는 즐거움을 준다. 서극이 제작한 애니메이션 <천녀유혼>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보여준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곳,변소

화장실에 깔끔한 타일과 수세식 변기가 있다면, 변소에는 똥파리와 푸세식 변기가 있다. 수세식 변기가 기세 좋게 똥을 삼킬 때, 푸세식 변기는 똥을 묵히고 또 묵힌다. 시작부터 웬 냄새나는 이야기인고 하니, 단편 <일곱 살>의 무대가 바로 ‘변소’이기 때문이다. 제15회 자그레브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학생 경쟁부문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미운 일곱살의 반항을 변소의 공포와 함께 그려냈다. <일곱 살>에 등장하는 변소는 조금은 근대화된, 신문지 대신 휴지가 있고, 변기도 요즘 것마냥 하얀 곳이다. 유독 넓지만 지독한 냄새와 어두운 공포를 품고 있는 장소. 남동생 역성만 드는 엄마를 피해 달아날 곳은 그러나 여기밖에 없다. 어두컴컴한 변소 문 걸어 잠그고, 일곱살 소녀 유주는 벽에 낙서를 한다. 그림에 등장하는 것은 엄마와 남동생. 그림으로나마 이들에게 실컷 보복을 하면서, 나오라고 애원하는 엄마를 몇번이고 통쾌하게 거부해보기도 하는 소녀. 심심하지도 않다. 이리저리 윙윙대는 똥파리 보느라 정신 잃고, 화장실 줄에 매달려 놀기도 한다. 저 위에 뚫린 창문으로 아직 빛이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소녀는 콧노래마저 부르며 신나게 반항의 시간을 즐기는 것이다. 그러나 통쾌함도 잠시, 화난 엄마가 화장실 불을 끄고 가버리고, 어둠이 내려앉자 변소는 서서히 공포의 장소로 변한다. 공중에서는 거미가 곡예하고, 세찬 바람 탓에 화장실 문에는 무서운 그림자가 일렁인다. 문에 비친 그림자 보며 울먹이는데 저 위 창문에서 뭔가 내려다보고 있다. 번쩍번쩍 빛나는 저건! 다름 아닌 고양이 눈이다. 으악! 이제는 반항이고 뭐고 없다. 소녀는 문을 어떻게 박차고 나왔는지도 모르게 재빨리 집으로 들어가버렸다. 활짝 열린 화장실 문, 그 안으로 어슬렁어슬렁 들어가는 검은 고양이, 세숫대야, 수도꼭지, 그리고 별이 총총한 하늘…. 숨가쁜 기척 뒤에는 밤 풍경만이 남는다. 징조가 나쁘다는 검은 고양이는 정말 유주를 잡으러온 귀신이었을까. 거미는 검은 고양이의 앞길을 안내해준 사신이었을까. 바람은 악마의 장난이었을까. 일곱살 소녀의 반란은 무서운 체험으로 끝나고 말았다. 2001년에 제작된 <일곱 살>은 5분30초가량의 단편으로, 셀에 드로잉 기법을 사용했다. 한국애니메이션예술아카데미 2기 출신인 작가 김상남은 어릴 적 경험에서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제주도 화장실은 무척 넓어요. 어릴 적 제주도집 화장실을 약간 재구성해서 무대를 만들었죠. 애니메이션아카데미 1차 작품으로 만든 건데, 스토리를 발전시켜가면서 진행했던 방식입니다.” 작가가 그려낸 제주도 변소와 소녀는 자그레브에 모인 사람들에게도 커다란 인상을 남겼나보다. <일곱 살>은 실제 일곱살 소녀가 그린 것 같은 그림체와 아마추어의 목소리로 구성되어 더욱 사실적으로 보인다. 스토리를 알아도 무방한 게 연출이 주목해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소년과 어머니가 낙서로 변하는 도입 부분은 특히 인상적. 반항을 포기한 소녀가 엄마 품에서 안겨 잠들었을 것 같은 밤. 이제 일곱살 소녀는 커버렸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래도 잊을 수 없다. 변소 밑에서 얼씬대던 색색의 손들을, 코를 찌르던 독한 냄새를, 공중에서 부유하던 거미를, 번쩍번쩍 빛나던 고양이 눈을, 제주도 화장실이라면 저 아래 돼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일곱살, 변소가 세상의 가장 큰 장벽으로 보였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네. 김일림/ 월간 <뉴타입> 기자 illim@korea.com

[인터뷰] 영화 <마들렌>의 조인성

'사랑이요? 조용히 스며드는 사랑이 좋아요. 여기저기서 사랑을 말하지만 진짜 사랑은 그렇게 과장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순수한 사랑이야기 영화 <마들렌>의 촬영현장에서 만난 조인성은 쑥스러운 듯 사랑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고백했다. 촬영현장은 서울 종로구 이화동의 주택가. 빨간 모자에 검은색 건빵바지, 회색 모자티를 입고 촬영장에 나타난 조인성은 수줍은 모습과 신세대다운 당당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촬영장 앞으로 잠깐 지나가는 차에서 흘러나오는 댄스음악을 놓치지 않고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영화 <마들렌>은 <퇴마록>으로 한국영화에 블록버스터 바람을 일으켰던 박광춘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우연히 만난 중학교 동창 지석과 희진이 한 달 간의 계약연예를 하면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든다는 내용의 로맨스 영화다. 남자 주인공 지석역의 조인성 외에도 <화산고>의 신민아와 <재밌는 영화>의 김수로가 각각 여주인공 희진과 지석의 '특별한 친구' 만호로 출연한다. 지석은 '새벽을 달리는 사람'이라는 소설을 준비하는 국문과 학생. 소설을 위해 새벽 신문배달을 하는 '모범생'이지만 개구쟁이 소년 같은 순수함도 가지고 있다. '시나리오를 처음 보고 머리카락이 설 정도로 짜릿했어요. 바로 내 영화다 했죠' 조인성이 반했다는 영화의 시나리오는 사실 처음부터 조인성과 신민아를 염두에 두고 쓰여졌다. 두 배우의 맑고 순수한 이미지가 이 영화에 딱이라는게 제작진의 말. 조인성은 그동안 「뉴논스톱」, 「피아노」 등의 드라마에 주로 출연하며 때로는 유머스럽고 때로는 터프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마들렌>은 그의 두번째 영화. 조인성은 장혁과 함께 <메이드 인 홍콩>의 프루트 첸 감독의 영화 <공중화장실>에 출연한 바 있다. 오는 8월 중 개봉예정인 이 영화에 대해 조인성은 '2년전에 촬영된 영화라 지금 다시 보면 서투른 연기에 겁도 난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이날 촬영된 장면은 희진과 지석이 신문배달을 하며 새벽데이트를 즐기던 중 선배 만호가 만들어준 빵 마들렌을 먹는 장면. 마들렌은 마르셀 푸르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에게 유년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빵으로 이 영화에서는 사랑의 대명사로 쓰인다. 촬영은 다음날 새벽까지 계속됐다. 한여름밤을 뚫고 계속되는 촬영에 모두들 지친 모습이었지만 전혀 불편함을 드러내지 않고 촬영에 임하는 조인성의 모습이 아름다워보였다. '거품과 작위를 거두어낸 진정성으로 관객의 가슴을 사로잡겠다'며 4년만에 다시 메가폰을 잡은 박광춘 감독의 파인 로맨스(Fine Romance)<마들렌>은 서울과 부산에서 촬영을 마치고 오는 11월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배리 소넨필드 스토리(3)

제 5 장 - 사랑하는 내 마누라, 내 자신감의 원천 <블러드 심플> <아리조나 유괴사건> <밀러스 크로싱>으로 스타일을 인정받은 배리 소넨필드는 할리우드 메인스트림영화의 촬영감독을 거쳐 <아담스 패밀리>로 유망주 감독 대열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급기야 1996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의한 <맨 인 블랙>을 위트와 개성까지 겸비한 희귀한 여름 액션영화로 만들어내면서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찾는 ‘A급 감독 클럽’에 가입했다. 할리우드 명예의 사다리를 무사히 타고 오르는 데 성공한 배리 소넨필드가 난생처음 삶의 자신감을 얻은 순간은 뭇 사람의 짐작과 달리 <맨 인 블랙>이 2억5천만달러의 박스오피스 기록을 세우며 <쥬라기 공원2>를 추월한 1997년 여름이 아니라 아내 수잔이 프로포즈를 받은 1989년의 어느 날이다. “이렇게 자신만만하고 아름답고 똑똑한 여자가 나와 결혼해주기로 했다면, 내가 알지 못하는 괜찮은 면이 내게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소넨필드는 회상한다. 평소 ‘스위티’라고 부르는 아내에 대한 소넨필드의 신뢰와 애정은 어머니와 아들의 유대를 연상시킨다. 소넨필드가의 침실 풍경 하나. 벽장문이 열려 있으면 잠을 못 이룰 만큼 여전히 겁이 많은 소넨필드는 바람 소리나 난방 시스템 소음에 잠이 깰 때면, 아내를 깨워 아래층에 내려보낸 다음 담요를 뒤집어쓰고 아내가 돌아오기만 기다린다고 한다. 이러한 소넨필드 내외의 일상은 <겟쇼티>의 한 장면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맨 인 블랙>의 캐스팅에 결정적 입김을 끼친 것도 수잔 소넨필드. 침대에 나란히 누워 각자 시나리오를 읽은 배리 소넨필드와 수잔 소넨필드는 동시에 겉장을 덮으며 각각 “토미 리 존스!”와 “윌 스미스!”를 외쳤다고 전해진다. 이쯤 되면 <아담스 패밀리>의 고메즈와 모티샤가 자랑하는 닭살스런 부부애도, 예의범절과 옷차림의 코드가 뒤집혀 있을 뿐 결국 핵가족 찬가인 <아담스 패밀리>의 기묘한 온건함- 외양이 비슷한 팀 버튼 영화와 대조되는-도 설명이 된다. <아담스 패밀리2>에서 잠시 방황하던 삼촌 페스터가 돌아와 가족과 재결합하는 장면은 어느 할리우드 가족영화의 피날레 못지않게 간지럽다. 제 6 장 - 나, 억세게 운 좋은 사나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뉴욕 출신의 심약한 감독은 살벌한 톱니바퀴가 즐비한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제조 컨베이어 벨트를 어떻게 통과하는가? 지금 와서는 믿기 힘들지만 <맨 인 블랙>은 두명의 백인스타를 위한 시나리오였고 소니픽처스가 고집했던 J요원 후보는 크리스 오도넬이었다. 내심 윌 스미스를 점찍었던 소넨필드는 그러나, 예술가의 권리를 옹호하며 제작자들과 의협심에 찬 전투를 벌이는 대신 배우들에게 자기의 무능함을 내세우는 작전을 택했다. 크리스 오도넬을 만난 자리에서 J요원 역이 약하지 않은가라는 오도넬의 의구심에 맞장구를 치며 “시나리오가 별로죠? 그런데 나도 그 시나리오를 더 낫게 만들 자신은 없어요”라고 고백했고, 오도넬 다음으로 물망에 오른 시트콤 <프렌즈>의 세 남자가 찾아오자 차에 태워 한가하게 드라이브만 하다가 돌려보냈다. 스튜디오가 지쳐갈 무렵 소넨필드는 윌 스미스를 제작을 지휘한 스필버그의 집으로 보냈다. 스필버그가의 자녀들이 윌 스미스에게 홀딱 반해 아빠를 졸라댈 거라는 확신은 며칠 뒤 현실이 됐다. 그렇다해도 갈 데 없는 스트레스를 배리 소넨필드는 어떻게 극복할까? 정답은 “극복하지 않는다”이다. 소넨필드는 자신의 약함을 이용한다. <아담스 패밀리> 촬영현장에서 혼절한 적도 있는 배리 소넨필드는 심장이 약하다. 적어도 심장이 약하다고 스스로 늘 믿는다. 1편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바윗덩어리 같은 부담을 안았던 <맨 인 블랙2> 촬영이 2주째에 접어든 어느 날 배리 소넨필드는 자정을 넘겨 점심을 먹은 다음 온몸이 마비되며 쓰러졌다. 벨뷰의 정신병원으로 데려가 달라 소리를 질러 실려가면서 소넨필드는 이것이야말로 ‘윈-윈 상황’이라고 내심 좋아했다고 한다. 심장마비가 아니면 더 살 수 있을 테니 좋고, 죽게 되면 이 영화를 안 찍어도 되니까 잘됐다고. 소넨필드의 낙관은 옳았다. 마비소동 이후 회의에서 제작자들은 소넨필드에게 한결 친절해졌고 퇴짜놓았던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난 신경증이나 고통을 의연하게 숨기려 하지 않고 그냥 드러내요. 나의 비밀 무기죠.” 정글에서 살아남는 법은 여러 가지다. 10년에 조금 모자란 촬영감독 생활과 10년이 조금 넘는 감독 경력을 통해 배리 소넨필드는 불안과 번민, 노이로제 등의 연약함을 통해 벼려지는 강인함을 신봉하게 됐다. 생존 전략치고는 너무 부실하지 않느냐고? 최근 배리 소넨필드는 5중 충돌 착륙 사고를 낸 비행기에 타고도 멀쩡히 살아났다. 이 정도로 억센 운이라면 한번 해볼 만한 게임 아니겠는가?정리 김혜리 vermeer@hani.co.kr 배리 소넨필드 인터뷰 ˝코미디의 조홧속은 내게도 무궁무진˝ 촬영한 영화보다 감독한 영화로 기억되고 싶은가. → 촬영과 연출 두 가지 작업에 대해 동등한 자부심을, 다른 방식으로 품고 있다. 촬영감독일 때에는 훨씬 적은 압력과 내 일에 대해 더 큰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금전적 보상이 나은 쪽은 감독이다. 영화감독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 “초록색으로 할까요? 빨간 걸로 할까요?” 같은 스탭들의 질문 수백개에 대답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선택들의 총합으로 영화의 특정한 톤과 스타일을 정하고 각각의 요소가 완벽하게 톤과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조정하는 일이다. 내게 감독이라는 직업은 열정도 아니고 나라는 인간의 됨됨이와 관계가 없다. 감독을 장래희망 삼아 성장하지도 않았다. 나는 우연히 감독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배관공과 같다. 아카데미상이 코미디 장르에 부정적 선입견을 갖고 있다고 보나. → 문제는 아카데미 회원들이 그해 최고의 영화나 가장 재미있는 영화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영화를 뽑는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편집에 대하여. → 커팅은 코미디의 적이다. 코미디는 가 그렇듯 액션과 리액션이 한숏 안에서 이루어질 때 최고의 효과를 낸다. 그러나 요즘에는 무엇을 찍든 마이클 베이처럼 MTV 스타일로 찍어야 하는 분위기다. 전편의 성공으로 <맨 인 블랙2>의 흥행에 대한 부담이 컸을 텐데. → <맨 인 블랙>이 지나치게 많은 돈을 번 탓에 <맨 인 블랙2>는 지금까지 내 영화 중 가장 힘든 영화가 됐다. 각본도 골칫거리였고 프로듀서들과의 의견충돌도 힘들었다. <터미네이터> <오스틴 파워즈>의 경우처럼 지금까지 가장 성공적인 속편들을 돌아보면 대부분 1편이 대단한 성공을 거두지 못한 영화였다. 코미디영화의 연출이 그렇게 큰 정신적 스트레스를 가져다준다는 점이 역설적이다. → 코미디는 어렵다. 만약 촬영하는 내내 스탭들이 웃고 배우들이 즐거워하면 그 코미디는 걱정을 해야 한다. 찍을 때는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고 여겼던 장면이 결국 극장에서 가장 큰 폭소를 끌어내는가 하면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촬영 분량이 다 찍고보면 전체 영화에 들어맞지 않아 편집실에서 잘려나가기도 한다. 아직도 나는 코미디의 조홧속을 다 파악하지 못했다. * 이상의 인터뷰는 1998년 1월26일치 <뉴스위크>, 2002년 3월29일치 <뉴욕타임스>, 2002년 7월9일 방송된 <프레시 에어>의 인터뷰와 2002년 7월14일치 <뉴 스트레이츠 타임스> 기사의 인용을 종합·정리한 것입니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배리 소넨필드 스토리(2)

제 4 장 - 코언 형제와 함께 차차차! 배리 소넨필드는 코언 형제의 촬영감독이라는 직함으로 1984년 처음 영화팬들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시작은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카메라를 갖고 있으면 스스로 카메라맨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뉴욕대 필름 스쿨을 졸업한 소넨필드는 그런 발상으로 친구와 돈을 합쳐 16mm 카메라를 샀다. 확실히 무리한 지출이었다. 소넨필드의 친구는 어느 포르노영화 제작자로부터 9일 동안 카메라를 빌려주고 촬영까지 맡아주면 카메라값의 1/4에 해당하는 돈을 주겠다는 달콤한 제의를 받아왔고 소넨필드는 응했다. 그렇게 9일 동안 찍어낸 9편의 장편 포르노영화가 소넨필드의 첫 경험이었다. 약 13년 뒤 <부기 나이트>라는 영화가 빛을 보았을 때 소넨필드는 세상에서 가장 잘 찍을 수 있는 영화의 선수를 빼앗긴 점을 개탄했다. 소넨필드가 살색보다 다양한 색상을 렌즈에 담은 정식 데뷔작을 낼 기회는 뜻밖에도 얼떨결에 초대받은 질식할 만큼 우아한 파티에서 찾아왔다. 온통 앵글로색슨계 손님들만 북적이는 방 안에서 소넨필드와 서로를 알아본 유일한 유대계 청년은 다름 아닌 뉴욕대 필름 스쿨 동창인 조엘 코언이었다. 영화를 둘러싼 수다를 한바탕 나눈 다음, 조엘 코언은 동생 에단과 함께 쓴 시나리오의 제작비가 없다며 마치 완성된 영화인 양 예고편부터 찍어 제작비를 조달해 보려는 계략을 소넨필드에게 털어놓았다. 문제의 영화는 <분노의 저격자>였고, 소넨필드는 무엇보다 카메라를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날 밤 당장 고용됐다. 소넨필드식 코미디 그 무표정, 웃겨 죽겠네! 배리 소넨필드의 코미디 감각은 찰리 채플린이나 우디 앨런과 다르다. 인간의 가난과 나약함과 불운과 신경증을 가엽게 여겨 그 모든 치명적 약점과 싸우는 주인공에게 박수와 성원을 보내게 만드는 채플린이나 앨런과 달리 소넨필드식 코미디는 시추에이션과 캐릭터의 불협화음에서 웃음을 끌어낸다. 각각 2편까지 연출한 <아담스 패밀리>와 <맨 인 블랙>은 소넨필드식 코미디 감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아담스 패밀리>의 엽기 가족은 실은 ‘사랑밖에 난 몰라’라고 되뇌는 가족이다. 틈만 나면 “까라미야”, “몬데시”를 연발하는 고메즈(라울 줄리아)와 모티샤(안젤리카 휴스턴) 커플은 눈만 마주치면 정염에 사로잡힌다. 그 뜨거운 사랑의 배경이 공동묘지이며 “당신 행복해?” 대신 “당신 불행해?”라고 묻는다는 점이 보통 부부와 차이일 것이다. 그들의 딸 웬즈데이(크리스티나 리치)의 무표정도 남동생과 식칼을 휘두르며 노는 위험한 행동과 대구를 이룰 때 코미디의 화음으로 변한다.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에서 고호경의 아무 일 없었다는 듯한 표정이 연이은 자살소동과 어울려 코믹해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아담스 패밀리> 1, 2편은 둘 다 집나간 고메즈의 형 페스터(크리스토퍼 로이드)가 가족의 품에 돌아오는 이야기다. 기괴한 가족을 위협하는 것은 아담스가의 돈을 노리는 정상적인 사람들이다. 1편에선 가짜 어머니가, 2편에선 애인이 순진한 페스터를 속여 돈을 빼돌리는 소동이 벌어지지만 그 과정에서 가족의 사랑은 오히려 강해진다. 이처럼 소넨필드는 기괴한 인물들에게서 진정한 가족애를 끌어냄으로써 정상인들의 편견과 탐욕을 조롱한다. <아담스 패밀리2>에는 웬즈데이가 여름캠프에 참가했다 참기 힘든 고문을 당하는 장면이 있다. 캠프 교사가 웬즈데이의 정신을 순화시키겠다고 디즈니 애니메이션 <밤비> <인어공주>에다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 <애니>까지 연달아 보여준다. 너무나 예쁘고 행복한 영화들을 보고 나온 웬즈데이가 미소를 짓는다. 웬즈데이의 무표정을 뺏어간 디즈니를 제소하고픈 심정이 드는 장면. <아담스 패밀리>에 나오는 소넨필드 스타일로 빼놓을 수 없는 장면 중 하나는 손이 혼자 질주하는 대목이다. 코언 형제의 <아리조나 유괴사건>에서 질주하는 카메라 움직임이 그의 솜씨라는 걸 상기하면 소넨필드가 액션연출에서도 유머를 먼저 고려한다는 것을 능히 짐작할 것이다. <맨 인 블랙> 역시 <아담스 패밀리>처럼 괴상망칙한 캐릭터가 주종을 이루는 영화다. 각종 벌레나 오징어, 문어를 닮은 외계인들이 사람처럼 담배를 피우고 거드름도 피우며 절박한 유언도 남긴다. 불독처럼 과묵한 개는 수다쟁이 MIB요원으로 둔갑하며 엘비스 프레슬리는 죽은 게 아니라 자기 별로 돌아간 외계인이라는 식이다. 그러니까 <맨 인 블랙>의 유머는 윌 스미스가 받는 MIB요원 테스트와 비슷하다. 밑에 받칠 게 없어서 종이에 구멍이 나는데 열심히 문제만 푸는 다른 수험생과 달리 윌 스미스는 천연덕스럽게 멀찌감치 있던 테이블을 자기 자리로 끌고온다. 물론 이런 발상의 전환이 웃음을 끌어내기 위해 잊어서 안 되는 사실이 있다. 소넨필드가 강조하는 것은 “진지한 연기”다. “분명 상황은 코미디지만 배우들은 코미디를 연기한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토미 리 존스의 무표정은 <아담스 패밀리>의 크리스티나 리치와 닮았다. 눈앞에 우주선이 다가와도, 흉칙한 외계인이 달려들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냉철함과 진지함이 이 영화의 만화적 상상력을 납득할 만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맨 인 블랙>에서 윌 스미스가 갑자기 외계인의 아이를 받는 장면은 토미 리 존스의 건조한 표정이 빛을 발하는 대목 가운데 하나다. 한창 진지한 얼굴로 전화받는 토미 리 존스의 뒤편에 윌 스미스가 차에서 뻗어나온 오징어 다리에 감겨 이리저리 휘둘린다. 대조적인 두 상황이 한 화면에 담길 때 관객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이들 콤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역시 소넨필드가 좋아하는, 어울리지 않는 상황의 조합이 출발점이다. 그러나 서부극의 시공간에 SF식 발명품을 전시한 이 영화는 소넨필드식 코미디가 드라마의 중심을 잃을 때 어떻게 좌초하는지 보여줬을 뿐이다. 기이한 외형의 캐릭터가 나오지 않는 <겟쇼티>와 <사랑게임>은 소넨필드의 유머가 로맨틱코미디보다 블랙코미디에 어울리는 것을 확인시키는 예다. 마이클 J. 폭스가 호텔 건립을 꿈꾸는 벨보이 더그로 나와 바람둥이 유부남에게 빠져 있는 여인을 구하는 <사랑게임>은 소넨필드가 요리하기엔 너무 달콤한 이야기로 보였다. 반면 하드보일드 작가 엘모어 레너드 원작의 <겟쇼티>는 소넨필드의 장기를 십분 보여준 유쾌한 영화. <겟쇼티>에서 LA로 와서 영화제작에 손을 대는 뉴욕 출신 갱 칠리로 나온 존 트래볼타는 <맨 인 블랙>의 토미 리 존스처럼 별다른 표정변화 없이 자기가 맡은 일을 척척 해낸다. 상황이 꼬이고 주변 인물이 법석을 피우는 데도 태연자약하는 주인공, <사랑게임>의 더그가 사랑 때문에 너무 많이 흔들린 반면 <겟쇼티>의 칠리는 사랑에 빠졌을 때도 냉정을 잃지 않는다. 소넨필드는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인물을 캐스팅할 것 같다. 남동철 namdong@hani.co.kr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