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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필모그래피 총정리: 80년대

<레이더스> _1981 <1941>의 실패로 스튜디오의 신용을 잃고 <제임스 본드> 시리즈 연출 제안도 두번이나 거절당한 스필버그에게 조지 루카스는 “제임스 본드보다 더 나은 것이 있다”며 새로운 영웅의 이야기를 꺼냈다. 실수하고 다치고 고통을 느끼고 농담거리가 되기도 하는 영웅, 터미네이터와 제임스 본드와는 다른 영웅 인디아나 존스가 탄생한 순간이다. 고고학자 인디아나 존스라는 새로운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만들어낸 <레이더스>는 제5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편집상, 시각효과상, 음향상, 음향편집상, 미술상을 받았다. (김수영 기자) _1982 홀로 지구에 남겨진 외계인과 외로운 소년의 우정과 연대를 그린 영화 에도 가족을 두고 떠난 아빠, 놀이에 끼지 못하는 엘리엇 등 스필버그의 유년기가 투영되어 있다. 스필버그의 영화에서 소중하게 다루어지는 어린아이의 상상력과 순수한 시선으로 채워진 는 스필버그가 영화로 그려낸 꿈처럼 보인다. 의 엄청난 흥행으로 속편 압박을 받았을 때 “이미 완벽한 영화를 만들었다”며 거절했던 스필버그는 최근에도 를 자신의 필모 가운데 “몇번이고 다시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각별한 영화”로 꼽았다. (김수영 기자) <인디아나 존스: 마궁의 사원> _1984 <레이더스>의 역사적인 흥행에 힘입어 제작된 속편. 조지 루카스가 가져온 첫 대본에는 흑마법, 부두교, 파멸의 신전으로 가득해 스필버그는 코미디를 가미해 최선의 균형을 잡고자 애썼다. 오비완 클럽부터 광산열차 추격적, 협곡 위 절벽 행거 등 개성 넘치는 두 창작자의 색깔이 최대치로 반영된 협업물이다. 모험에 관한 영화이지만 다양한 근접 촬영, 빨강, 노랑, 초록 등 다양한 색의 조명 사용, 철저한 스토리보드 작업 등 스필버그의 영화에 관한 탐구가 담겨있기도 하다. (김수영 기자) <컬러 퍼플> _1985 SF와 어드벤처 장르에서 이름을 떨친 감독은 <컬러 퍼플>로 의외의 행보를 보인다. 미국 흑인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인권운동가인 앨리스 워커의 <컬러 퍼플>은 의붓아버지의 자식을 둘이나 낳은 흑인 소녀 셀리의 고달픈 삶을 다룬 이야기다. 사건과 서스펜스 대신 대사와 감정이 두드러지는 <컬러 퍼플>을 두고 스필버그는 “첫 어른 영화”이자 “팝콘과 잘 어울리지 않는 첫 번째 영화”라고 말했다. 카메라의 따뜻한 시선, 유머 있는 대사, 감정을 움직이는 퀸시 존스의 스코어까지. 스필버그식 휴머니즘 드라마의 시작을 알리는 영화다. (김수영 기자) <태양의 제국> _1987 1941년, 부유한 부모와 상하이에서 거주하던 소년이 일본군의 습격으로 가족과 헤어지게 된 이후의 일대기를 그린다. SF 작가 제임스 G. 밸러드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고, 스필버그가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데이비드 린 감독의 <콰이강의 다리>처럼 일본 포로수용소가 주요 배경이다. 참혹한 전쟁으로 생의 감각을 잃어가는 소년의 변화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비행단에서 복무한 아버지의 경험담에서 많은 자극을 받은 스필버그의 일면이 비행기에 대한 소년의 동경으로 녹아들었다. (조현나 기자)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 _1989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인기 비결에 대해 조지 루카스는 “나와 스필버그는 단지 우리가 봐왔고 보고 싶었던 종류의 영화를 만들 뿐”이라 답할 만큼 이 시리즈는 스필버그의 취향으로 가득하다.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이 맥거핀과 클리셰의 조합 이상으로 각별한 건 클래식한 전개와 아날로그 활극에 기반한 액션의 진중한 속도감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디아나 존스(해리슨 포드)와 아버지 헨리(숀 코너리)가 그려낸 부자 관계에는 자신의 아버지를 향한 스필버그의 바람이 듬뿍 녹아 있다. (송경원 기자) <영혼은 그대 곁에> _1989 전쟁영화의 클래식이라 불리는 빅터 플레밍 감독의 <조라는 이름의 사나이>를 리메이크한 영화다. 스필버그는 유년기에 관람한 원작으로부터 “영화감독이 되는 데에 영감”을 받았다고 말한다. <죠스>를 제작 중이던 1974년 무렵부터 스필버그가 리메이크를 계획했던 이 영화엔 모험에 대한 열망이 가득하다. 삶과 죽음을 넘어선 사랑이라는 익숙한 명제 또한 애틋하게 그려냈다. 천사를 연기한 오드리 헵번의 유작. (조현나 기자)

[인터뷰] 왕가위 감독이 밝힌 ‘해피 투게더 리마스터링’ 아휘가 홍콩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유

- 아휘와 보영, 두 남자가 가장 가깝던 시절 함께 보내는 공간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아휘의 아파트다. 이곳은 침대 하나, 소파 하나, 이구아수폭포가 그려진 전등이 전부인 작은 공간이다. 장숙평 미술감독과 이 공간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어떤 고민을 했는지 궁금하다. = 낸 골딘이 찍은 사진을 보았다. 그녀는 행복하지 않은 관계를 담은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나는 그 사진을 아주 잘 찍었다고 생각했다. 장숙평 미술감독에게 “이렇게 영화를 시작하고 싶어”라고 말하며 그 사진들을 주었다. “러브신으로 영화를 시작하자. 두 남자가 사랑을 나누는 곳이 이 방이었으면 좋겠어. 침대와 소파가 있을 거야. 조명은 적게 쓰고.” 이 말을 들은 장숙평 미술감독은 “더 많은 디테일이 필요해”라고 요구했지만 나는 “디테일은 없어. 지금 방을 바로 만들어야 해. 나는 양조위가 이 영화를 감당할 수 있을지 아니면 관둘 건지 알아야 하거든”이라고 대답했다. 아휘와 보영이 가장 친밀한 순간을 이 방에서 담고 싶었고, 그 뒤로는 두 사람 사이가 점점 멀어지기 때문에 양조위가 그 과정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지 확신을 얻고 싶었던 것 같다. - <해피 투게더>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이구아수폭포 등 아르헨티나의 많은 곳을 돌아다니는 로드무비인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공간은 어디인가. = 우리는 미국 국경에서 출발해 팬아메리칸 하이웨이를 따라 아르헨티나 최남단까지 따라 내려가는 동선을 계획했었다. 그 동선에 있는 모든 장소를 체크했다. 후후이나 멘도사 같은 북쪽 지역도 갔고. 마침내 우수아이아라는 곳을 발견했는데 아주 멋졌다. 그곳은 세상의 끝이었다. 세상의 끝에서 이 영화를 끝내면 되겠다고 생각했고, 우리는 그곳에서 촬영을 마치기로 결정했다. 우수아이아는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 끝 마지막 카페, 세상 끝 마지막 호텔 같은 세상 끝 여러 공간을 찾을 수 있는 관광도시다. 도시 중심가에는 세상의 끝에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 수 있는 전화 부스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척 로맨틱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장소들 말고는 남극으로 가는 일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카지노도 하나 있었는데 마카오에 있는 카지노와 달랐다. 10달러를 베팅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카지노였다. 밤이 되면 으스스한 느낌과 함께 유령의 집과 같은 황량한 곳으로 변했다. 돌아갈 홍콩은 이제 없다 - 영화는 아휘와 보영의 이야기로 전개되다가 중반부부터는 장(장첸)의 사연이 등장한다. 장첸이 연기한 장은 대만에서 아르헨티나로 여행 왔다가 돈이 떨어져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중국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아휘를 만나는 인물이다. 장첸의 어떤 점 때문에 캐스팅해야겠다고 생각했나. = 당시 장첸은 경험이 많지 않지만 장 역할을 소화할 에너지와 신선함이 있었다. 장첸은 에드워드 양 감독의 <마작>(1996)에서 바람둥이 역할을 맡았는데 그때 그를 처음 봤다. 실제로 그는 수줍음이 많은 배우인데 그 수줍음을 이 영화에 담고 싶었다. - <해피 투게더>의 중국어 제목은 <춘광사설>(春光乍洩)이다. ‘봄 햇살이 살며시 드러난다’는 뜻인데 이 제목으로 짓게 된 사연이 있나. <춘광사설>은 홍콩 가수 황요명이 1995년 낸 앨범 《愈夜愈美麗》(유야유미려)의 수록곡이기도 하다. = ‘춘광사설’은 어떤 은밀하고 로맨틱한 것이 살며시 드러난다는 뜻이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욕망>(1966)의 중국 개봉 제목이기도 하다. <욕망>의 원래 제목인 을 의미하는 말이 아닌데도 나는 춘광사설이라는 제목을 좋아한다. 이처럼 춘광사설이 <해피 투게더>에 관능적인 면을 더해줬다고 생각한다. - 크리스토퍼 도일 촬영감독이 카메라에 담아낸 이구아수폭포는 굉장히 웅장하고 거대해서 모든 걸 집어삼킬 것 같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영화는 이구아수폭포로 끝나는데. = 눈앞에서 이구아수폭포를 보았을 때 완전히 압도됐다. 중국에서 폭포는 모든 게 모인다는 뜻을 상징한다. 영화 제목을 <해피 투게더>로 정한 것도 당시로선 중국 반환 이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일종의 질문을 던진 셈인데 분명한 건 1997년 이전의 홍콩은 이제 없다는 사실이다. 아휘가 홍콩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 것도 그래서다. <해피 투게더 리마스터링> O.S.T “탱고에 관한 영화를 찍기 위해 아르헨티나에 간” 만큼 <해피 투게더>의 음악 역시 탱고에 기반한다. 등 O.S.T에 수록된 세곡은 탱고의 거장인 아스토르 피아졸라가 작곡한 탱고곡이다. 특히 록음악의 대부 프랭크 자파의 가 이 탱고곡들과 함께 귀에 들어온다. 이 음악들은 거대한 아르헨티나를 방황하는 두 남자의 상반된 풍경과 정서에 쓸쓸함을 더한다. 영화 주제곡인 는 1967년 미국 록밴드 더 터틀스의 히트곡으로, 왕가위 감독은 홍콩 출신 가수 대니 청이 부른 버전을 영화에 사용했다. 다큐멘터리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로 디그리> <해피 투게더>의 메이킹 필름이자 또 다른 이야기. <해피 투게더>의 촬영 현장, 왕가위 감독과 제작진의 인터뷰를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제로 디그리’(영도지대·zero degree)는 동쪽도 서쪽도 아닌, 밤도 낮도 아닌,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곳에서 발현되는 영구 망명을 뜻하는 말이다.

[비평] ‘스즈메의 문단속’과 ‘이니셰린의 밴시’, 긍정의 함정과 비관의 힘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며 어딘지 계속 브레이크가 걸린 이유는 아마도 내가 배배 꼬인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스즈메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에너지로 가득한 친구다. 처음 본 남자에게 반해 이변이 일어나자마자 문제의 장소로 달려가고, 일상으로 복귀하라는 전문가의 조언을 가볍게 무시한 뒤 끝까지 소타를 책임지며 일본 열도를 종단한다. 가는 곳곳마다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금방 친해지며 종국엔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마을의 위기를 막아내는 스즈메는 의지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가히 초인적이다. 스즈메가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묻는다면 답은 두 가지로 짐작해볼 수 있다. 하나는 원래 타인의 곤란한 상황을 참지 못하는 착하고 이타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다른 하나는 스즈메가 한명의 독립된 인격체라기보다는 그렇게 결정된 이야기 속 당위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도호쿠 지방 이와테현에서 이미 한번 저승의 문턱을 넘어갔던 스즈메는 돌고 돌아 이야기를 끝맺기 위해 처음부터 운명지어졌다. 세계의 종막과 남자 친구 그리고… 운명적인 만남과 끊어낼 수 없는 인연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꾸준히 반복해온 코드다. 하지만 <스즈메의 문단속>은 정해진 운명과 떠맡아야 하는 역할을 과하다 싶을 만큼 전면에 내세운다. 스즈메는 평범한 여고생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단 한순간도 평범하지 않다. 일본 열도를 종단하는 스즈메의 꺾이지 않는 마음과 바닥이 보이지 않는 긍정의 에너지는 거의 ‘미래소년 코난’급이다. 한마디로 스즈메의 반짝임은 비현실의 영역에서 유지된다. 나의 생리적 거부감 역시 여기서부터 비롯됐다. 고백하자면 나는 스즈메가 언덕길을 자전거로 내려갈 때 다시 올라올 일이 걱정되는 종류의 인간이다. 바닷가 마을의 그림 같은 상쾌함을 위해 헌사된 장면에서도 올라올 때의 고됨이 먼저 떠오른다. 비관주의자의 방어기제에 불과할 수도 있다. 신카이 마코토가 이 장면에서 그쳤다면 나의 배배 꼬인 심보로 납득하고 마무리지을 것이다. 그러나 신카이 마코토가 스즈메와 소타를 다루는 방식은 실로 비인간적이다. 두 캐릭터는 살아 움직이는 인물이라기보다 재난의 애도를 위해 봉납된 제물처럼 정해진 수순에 따라 행동한다. 공동체를 위한 스즈메의 헌신과 희생은 재난을 직접 겪은 이의 측은지심이라 이해할 여지도 있다. 물론 생명까지 내던지는 돌격 정신은 받아들이기 힘들고 마치 죽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여 섬뜩한 구석마저 있다. 그럼에도 스즈메의 행동 자체는, 말은 된다. 따지고 보면 <스즈메의 문단속>은 일본 열도를 미미즈라는 재난에서 구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와테현에서 멈춰버린 스즈메의 시계를 다시 돌리는 이야기에 가깝다. 사실 <스즈메의 문단속>의 뼈대는 스즈메가 봉인했던 자신의 과거를 뒤돌아보고 상처를 직시한 뒤 미래로 나아가는 이야기다. 여기서 ‘개인=나’를 구한다는 건 곧 세계를 구한다는 명제와 연결된다. 여기서 세계는 나다. 이제는 종막을 고한 이른바 ‘세카이계’(世界系)의 흔적을 이곳에서 마주한다. 스즈메가 잃어버린 것, 신카이 마코토가 채워넣은 것 2000년 전후로 일본 대중문화 속 주요 코드 중 하나인 ‘세카이계’는 거대 서사의 세계 대신 개인=나라는 소우주에 집중해왔다. 신카이 마코토야말로 세카이계의 한가운데에서 성장한 감독이며 동시에 세카이계의 종막을 고한 인물이기도 하다. 나의 세계는 어떻게 끝이 나는가. 신카이 마코토의 답은 언제나 명확했다. 너라는 세계와 이어져 우리라는 세계로 확장되는 낭만적 해법. 세계관에 대한 명확한 설정이나 말이 되는 배경이 지워진 대신 내면묘사와 자의식에 몰두해온 신카이 마코토는 점차 대중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사이 어느샌가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 <스즈메의 문단속> 속 허술하거나 적당한 설정들은 인간 스즈메의 행동 패턴으로는 당최 이해되지 않지만 스즈메를 이야기 도구의 자리에 놓는 순간 대부분 설명된다. 예컨대 스즈메는 왜, 그리고 어떻게 오이타현 유노하라 온천에 박힌 요석을 뽑았나. 미미즈를 억누른다는 요석은 어디에 꽂아도 상관없이 힘을 발휘하는 것인가. 검은 털의 사다이진은 인간이 저지른 일을 인간의 손으로 수습해야 한다며 스즈메를 굳이 이면 세계에 데려간다. 요석을 뽑은 인간이 결자해지를 해야 한다는 설정이지만 애초에 스즈메가 왜 요석을 뽑을 수 있었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관점을 달리하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린다. 봉인된 미미즈가 날뛰는 건 스즈메 탓일까. <스즈메의 문단속>은 작품 내에서 명확한 설명을 거부한다. 애초에 스즈메의 모험은 인과가 뒤집힌 상태기 때문이다. 스즈메는 미미즈를 억누르고 일본을 구하기 위해서 이와테현의 뒷문으로 들어간 게 아니다. 오히려 그 장소에 스즈메를 데려가야 했기 때문에 스즈메는 요석을 뽑는 역할이 주어진 쪽에 가깝다. 이건 일본 열도의 문제가 아니라 그날의 트라우마를 해결하지 못한 스즈메의 문제다. 요컨대 이와테현의 뒷문 속 풍경은 차라리 스즈메의 내면으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그렇게 <스즈메의 문단속>의 인과는 필요에 의해 역전되어 있다. 소타의 경우는 한층 더 심하다. 교원 임용고시를 코앞에 두고 있는 소타는 가업이라는 이유로 일본 전역의 뒷문을 닫고 다닌다.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개인의 행복, 심지어 생계마저 뒤로 미룬 채 토지시 일을 수행하는 소타는 그야말로 대의의 화신이다. 심지어 임무를 수행하며 자신의 생명을 바쳐야 하는 순간에도 거의 망설임을 드러내지 않고 상황을 받아들인다. 소타의 할아버지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숭고한 임무를 위해 기꺼이 개인의 욕망과 감정을 지웠다. 소타가 저주받아 요석이 되기 전부터 그는 이미 살아 있는 요석이나 다름없었다. <스즈메의 문단속>이 쉽사리 납득되지 않는 건 캐릭터들의 행동에 피와 살이 돌지 않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일이다. 신카이 마코토는 본래 ‘나’의 내면에 집중하던 감독이다. 운명의 붉은 실 앞에서 세계의 운명이나 자잘한 설정 따윈 사소한 일이었다. 그런 신카이 마코토가 언젠가부터 일본 사회 전체의 트라우마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얼핏 <스즈메의 문단속> 역시 ‘나’라는 세계를 구해줄 ‘너’라는 운명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스즈메의 세계를 구하는 건 결국 사랑, 넓게는 타인과 연결되는 관계다. “죽는 건 두렵지 않아. 누군가 죽고 내가 살아남은 건 운이야. 당신 없이 혼자 살아가는 게 두려워.” 스즈메와 소타의 절박한 연결은 이에 대한 화답일 것이다. 하지만 사적이어서 기적적일 수 있는 이 신비한 연애담이 일본 열도 전체의 문제로 확장되는 순간 길은 모호하게 흐려진다. 공간에 얽힌 사람들의 기억과 바람을 달래주는 행위로서의 토지시 작업은 매력적인 아이디어였다. 그런데 <스즈메의 문단속>은 중간부터 모든 서사의 공백과 모순을 ‘운명으로 예정된 사랑’으로 환원해버린다. 사실 그건 문제가 아니다. 원래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은 그래왔다. 하지만 이번엔 세계의 운명과 너라는 인연 사이에서 어정쩡한 자세를 취한다. 그 결과 스즈메와 소타는 자기희생에 망설임이 없는, 숭고한 인물이 되어버렸다. 스즈메와 소타의 사랑은 절절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어딘지 비인간적이다. 기꺼이 자신을 내던지고 대의 앞에 사적 욕망을 누르는 두 사람의 모습은 차라리 이상화된 영웅, 아니 이야기로서 기능을 부여받은 기계에 가깝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클리셰라 해도 좋을, 이른바 ‘다다이마/오카에리’ (다녀올게/어서 와요) 서사가 공허한 숙제처럼 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스즈메의 어둠을, 소타의 고뇌를, 재난의 상흔을 똑바로 응시하는가. 폐허가 된 놀이공원은 어느새 쓸쓸함 대신 낭만으로 가득하고, 신카이 마토코가 끝내 머물고자 하는 자리엔 마쓰토야 유미의 <ル―ジュの佺言>(립스틱 전언)을 필두로 한 1980년대 지나간 영광의 기억이 들어찬다. 한없는 긍정을 바탕으로 한 자발적 희생, 그 끝에 마주한 낙관적인 치유와 회복의 세계에는 좀처럼 살아 있는 ‘나’가 보이지 않는다. 나를 응시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그린 세계는 그저 예쁘게 빛나다가 신기루처럼 사라질 뿐이다. 고독이라는 예정된 운명 앞의 네 가지 답변 그렇게 스즈메가 무분별하게 발산하는 낙관 에너지에 지쳐버린 마음을 <이니셰린의 밴시>의 차분한 어둠이 쓰다듬어주었다. 판타지적인 상상력을 동원한 <스즈메의 문단속>과 비교하면 <이니셰린의 밴시>는 아일랜드 역사의 단면을 은유적으로 녹여낸 매우 사실적인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니셰린의 밴시>는 더 비현실적이기에 공감이 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관점에 따라선 미미즈가 일본 열도를 뒤집는다는 ‘설정’보다 콜름(브렌던 글리슨)이 자신을 건드리지 말라고 손가락을 자르는 게 더 말이 안된다. 의미 있는 작업을 남기기 위해 절교를 선언한 음악가가 단지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손가락을 자른다는 건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스즈메의 문단속>과 마찬가지로 <이니셰린의 밴시>는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사실성과 논리를 희생한, 일종의 부조리극이다. <스즈메의 문단속>이 기어이 이어지는 운명과 인연에 관한 이야기라면 <이니셰린의 밴시>는 정반대로 불가항력과도 같은 관계의 종말에서부터 걸음을 뗀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에반게리온>과 더 닮았다고 해도 좋겠다. 타인을 완벽히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하고 소통이란 환상에 불과하다는, 파국의 운명. 감독이 던지는 질문은 간단하다. 예정된 상실의 운명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가. 답은 없다. 이것은 인간의 인지를 벗어난 차원의 질문이다. 파우릭(콜린 패럴)과 콜름이 왜 갈라지는지는 중요치 않다. 그 역시 이미 결정된, 인지 바깥의 운명에 불과하다. <이니셰린의 밴시>가 집중하는 건 예정된 운명, 단절과 고립이라는 비극 앞에 던져진 인간들의 반응이다. 영화는 파우릭, 콜름, 도미닉(배리 키오건), 시오반(케리 콘던) 네 인물의 서로 다른 반응을 통해 깊이에 다다른다. 크게 두 그룹이 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게 (관계의) 다정함이라 믿는 사람들과 의미 있고 납득 가능한 결과를 남기는 일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파우릭은 관계의 다정함을 갈구하는 인물이다. 대체로 손해를 보고 주변에서 답답하고 모자라다는 말을 듣지만 괘념치 않는다.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친구가 있다면. 도미닉 역시 본질적으로는 파우릭처럼 다정함과 상냥함을 추구한다. 이들의 특징은 주변으로부터 무시당한다는 거다. 어쩌면 다정함이란 영악하게 세태를 따르지 않는 태도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파우릭보다 한층 순수한 도미닉은 심지어 아버지에게도 학대를 당한다. 반면 파우릭의 친구였던 콜름과 파우릭의 동생 시오반은 의미를 찾는 사람이다. 파우릭과 어울리며 현재에 만족하던 콜름은 어느 순간 문득 그와 결별하고 기록에 남을 음악을 만들겠다고 선언한다. 파우릭과 한지붕 아래 사는 시오반은 영민한 죄로 파우릭의 뒤치다꺼리를 떠맡아왔다. 이들이 내놓은 답은 근본적인 고독이라는 질문에 대한 네 갈래의 선택지처럼 보인다. 첫 번째 답변은 세계의 확장 또는 탈출이다. 좁은 섬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던 시오반은 섬(혹은 오빠 파우릭)이라는 세계를 부수고 바깥세계로 떠난다. 두 번째 답변은 도피다. 의미를 찾기 위해 파우릭을 끊어냈던 콜름은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고 집도 불태워진다. 콜름이 손가락을 자른 건 얼핏 분노의 표출처럼 보이지만 논리적으로 그의 행동은 말이 되지 않는다. 콜름의 자해는 차라리 예정된 실패를 미리 선점하는 도피에 가깝다. 그는 음악 속에서 의미를 찾고자 했지만 그런 업적 따윈 불가능하다는 걸 이미 예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파우릭을 핑계 삼아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고 변명 거리를 획득한다. 세 번째 답변은 죽음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변하지 않고 순수한 존재인 도미닉은 끝내 버티지 못하고 시체로 발견된다. 발을 잘못 디뎌서 강에 빠진 모양이라고 하지만 앞선 상황들과 마찬가지로 도미닉이 왜 죽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그는 유일하게 변하지 않았고 죽음은 운명이 그에게 허락한 답변이다. 마지막 답변은 파우릭이 쥐고 있다. 솔직히 파우릭의 행동과 상태를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파국을 초래한 그의 선택이야말로 세계와 나, 관계의 비밀의 단초를 쥐고 있다. 세계와 나, 비관론자의 역설 네 인물이 각자의 운명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에는 파우릭의 사소한 거짓말이 있다. 콜름의 새로운 친구인 음대생에게 질투를 느낀 파우릭은 그를 돌려보내기 위해 아버지가 빵배달차에 치였다는 거짓 전보를 전한다. 본래 운명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부터 균열을 일으키고 진실의 꼬리를 내보이는 법이다. 파우릭의 거짓말 뒤 네 인물은 각자의 입장을 드러낸다. 도미닉은 파우릭에게 “당신은 다정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똑같네”라며 질타한다. 파우릭의 거짓말은 비난받을 정도의 일인가. 반복하지만 그런 건 중요치 않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타인의 마음을 훼손시키는 순간, 운명은 인간에게 되묻는다. 너라는 세계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냐고. 어쩌면 타인과의 소통 따윈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고독이 인간의 필연이라면 우리에게 허락된 건 각자의 방식으로 그에 저항하는 것 정도일 것이다. 다만 그 순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세계의 운명 따위가 아니다. 타인이라는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인정 혹은 거리두기다. 나의 세계를 지키고 싶은 자가 해선 안될 유일한 일은 타인의 세계에 함부로 흙발을 들이미는 일이다. 그 원죄를 범한 순간 파국은 쳇바퀴처럼 찾아오고야 만다. 세계가 당신 생각만큼 당신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당신도 세계에 지나치게 신경 쓸 필요 없다. 내가 책임지고 통제할 수 있는 건 그저 ‘나’라는 세계 하나 정도에 불과하다. 세계가 나를 신경 써주지 않는다고 운명에 섭섭할 필요 없다. 당신이 곧 ‘세계’다. 영화 말미 파우릭은 말한다. “그냥 넘기지 못하는 일들도 있는 거니까.” <스즈메의 문단속>처럼 과거로 묻고 지워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때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감사도 원망도 있는 그대로 곁에 두고 함께 버텨내는 시간도 필요하다. 내일을 말하는 달콤한 낙관 대신 오늘에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는 불가항력의 비관 앞에서 나의 세계는 더 단단하게 무르익어간다.

[기획] 농구에 미쳤던 2022년의 여름, '리바운드' 촬영 현장을 가다

<리바운드>는 2012년 대한농구협회장기 전국 중·고교 농구대회에서 최약체로 여겨졌던 부산중앙고등학교가 보여준 반전 드라마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단 6명의 선수만 출전해 교체가 거의 불가능했던 농구부가 농구를 하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체력상 불가능한 일을 해냈고, 실화의 주인공들은 지금도 농구를 하고 있다. 이 이야기의 본질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드라마 틱한 각색이나 편집을 통한 속임수보다는 배우들이 땀 흘리며 제대로 된 농구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2022년 7월2일 안동체육관에서 진행된 <리바운드> 56회차 촬영 현장을 찾았다. 이날 촬영은 부산중앙고와 용산고의 결승 전반전, 선수들은 교체 없는 경기 출전으로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결승전다운 박진감과 선수들의 감정 연기가 요구되는 장면인 만큼 정확한 리허설을 거쳐 신중하게 촬영이 진행됐다. 그리고 배우도 스탭도 농구에 진심이라는 <리바운드>팀은 쉬는 시간에도 농구공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2주 후, 전 농구 선수 2명이 심판을 보고 기록원까지 함께한 가운데 배우팀 대 스탭팀이 농구로 맞붙었다. 박윤호 프로듀서는 “뜻밖에 스탭들이 이기는 바람에 배우들의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는 일화를 전해주었다.) *이어지는 기사에 <리바운드> 기획 기사가 계속됩니다.

[기획] 시네아스트의 수장고, 비디오 수집가 조대영과 '원초적 비디오 본색' 전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는 2022년 11월23일부터 2023년 6월18일까지 <원초적 비디오 본색> 전시를 진행 중이다. 국내에 출시된 비디오테이프 2만7천여점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 광주 영화인 조대영씨가 지난 20여년간 모은 결실이다. 조대영씨는 비디오 수집가이기 이전에 광주 지역의 영화 문화를 꾸준히 일궈온 영화인이다. 비디오가 가진 영화의 물성에 반한 그는 비디오산업이 쇠퇴하던 2000년 초부터 시대와 영화 유산으로서 비디오를 모으기로 결심한다. 이외에도 조대영씨의 박물관급 수집 능력은 영화 전반에 걸쳐 있다. 영화와 인문학에 관한 책은 물론 각종 기록물도 꾸준히 모아 개인 수장고에 보관 중이다. 무언가를 모은다는 건 애정의 증거다. 영화를 사랑한 광주의 한 영화인은 그렇게 긴 세월 박물관을 자처하며 지금도 스쳐 지나가 사라질지도 모를 기록과 기억을 수집 중이다. ▼이번 기획 전시에서는 조대영씨의 소장 비디오 5만여개 중 중복되거나 파손된 작품을 제외한 2만5천개를 정리해 전시 중이다. 총 4개 구역으로 나누어 전시한 비디오들을 둘러보면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가정용 비디오 시장의 흐름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입구의 인포룸에서는 영화 잡지 <키노> <로드쇼> <스크린> <씨네21>을 비롯한 책자가 모여 있다. 옆에는 광주 지역의 대표적인 비디오 운동인 1980년대 광주 비디오 자료부터 지역의 시네마테크 운동 자료가 마련된 ‘비디오 꼬뮌들의 연대기’가 함께 전시 중이다. ▼만화영화 시리즈와 어린이영화를 전시한 C구역. “만화영화를 일부러 모은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굵직한 시리즈가 눈에 들어온다. 그 시절 비디오를 보고 자란 세대뿐 아니라 어린 친구들도 흥미롭게 관람해주어 신기하고 즐겁다.” ▼드라마, 액션영화, 중국영화로 정돈한 A구역과 한국영화, 일본영화, 호러영화, 서부영화, 전쟁영화 등을 모아놓은 B구역. “대성초등학교사거리에서 ‘비디오 보물섬’이라는 비디오 가게를 운영했다. 비디오가 컨테이너 박스에 실려 산업폐기물로 버려지거나 변두리 모텔로 팔려나가던 시절부터 사비를 털어 비디오를 모아 지하 창고에 저장했다. 비디오가 한 시대의 유산으로서 한국영화사의 중요한 문화적 자산으로 인식될 날이 올 거라 믿었다.” ▼관객이 비디오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비디오를 직접 넣고 플레이해보는 공간을 마련했다. “관객의 다양한 반응을 즐겁게 바라보고 있다. 아는 분들은 추억에 잠겨 비디오를 틀어보고, 기계를 처음 보는 관객은 낯설어하기도 한다. 마치 훼손하면 안되는 미술품처럼 기계를 조심스럽게 다루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관객의 쉼터이자 전시와 연계된 대담을 하는 휴게 공간. “초입부에 비디오 열람 코너가 마련되어 있어 직접 재생해볼 수도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전시가 시작됐는데 평일에는 아직도 1천명 이상의 관람객이 꾸준히 방문하고 있다.” ▼성인물과 에로영화를 모아놓은 레드존. “에로 비디오는 당시 비디오 산업의 중요한 축이었다. 시대를 풍미한 에로 스타도 많이 나왔고, 클릭 엔터테인먼트 등 잘나가는 레이블에서 대량생산하던 시기가 있었다.” ▼“강시영화는 홍콩영화나 호러영화 중에서도 특히 인기 있는 장르였다. 희소성이 있는 만큼컬렉터 사이에서도 인기 있는 품목이다. 한 섹션으로 따로 분리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한 장르가 이만큼 다양하게 변주된다는 걸 한눈에 보여주고 싶어 가능한 한 한 코너에 모아보았다. 특정 테마로 영화를 모으는 컬렉터들에게 수집품을 양도받은 적도 있다. 가령 어떤 분은 영화제 수상작만 모으기도 했다. 모은다는 것에는 이렇게 각자의 기억과 기준, 바람이 담기기 마련이다. 나는 그 모든 수집품을 한자리에 모아 소개할 수 있는 너른 광장 역할을 맡고 싶다는 마음으로, 물리적으로 허용된 한도 내에서 최대한으로 모았다.” ▼“ACC에서 정리한 원칙을 존중해 분류 작업에는 크게 개입하지 않았다. 대신 시네필이 사랑한 영화와 나의 추천 영화를 별도의 섹션으로 마련했다. 알랭 코르노 감독의 <세상의 모든 아침>(1991)은 미장센의 힘이 탁월하다. 한국영화 중에서는 이명세 감독의 <개그맨>(1988)을 꼽았다. 그는 영화에 대한 고민이 깊었던 진정한 시네아스트 중 한명이다. “당시 비디오들을 보면 제목 번역이 재미있는데, 원제와 상관없이 최대한 자극적인 제목으로 뽑았다. 테리 길리엄 감독의 <브라질>(1985)을 <여인의 음모>로 출시하는 식이다. 제목과 포스터 디자인을 보면 당시 비디오 산업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조대영씨는 비디오 수집가이기 이전에 광주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해온 영화 운동가다. 1994년부터 페미니즘영화제, 컬트영화제, 환경영화제 등 다양한 영화제를 직접 개최했고 정성일, 박찬욱, 변영주 등 감독들을 초청해 강좌도 진행했다. 직접 디자인한 영화제 포스터 앞에 선 조대영씨. ▼조대영씨가 사비로 유지 중인 개인 수장고. 비디오뿐 아니라 여러 분야의 서적과 잡지 2만여권을 보관 중이다. “언젠가 제대로 된 공간이 마련되어 여기 잠들어 있는 수많은 자료가 공적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리뷰] '물안에서', 흐릿하고 희미한 풍경으로의 잠수

세 남녀가 바람과 돌이 많은 섬에 머문다. 그곳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성모(신석호)의 부탁 때문이다. 성모는 아직 무엇에 대한 영화를 만들지 모르고, 나머지 두 사람은 초조한 성모의 곁을 지킨다. 그러던 중 성모는 우연히 해변가의 쓰레기를 줍는 여자를 보게 되고 그녀의 선행에 감명받아 영화를 만들기로 한다. <물안에서>의 상황은 단순하다. 한 남자가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자신을 신뢰하는 두 사람과 동행한다. 그리고 영화를 만든다는 결심과 만드는 것 사이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에는 영화를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홍상수의 많은 영화가 그랬듯 서로 떨어져 있던 시공간의 급작스러운 조우나 동일한 인물이 등장하는 ‘같은 날, 혹은 다른 어떤 날’처럼 가능 세계의 중첩을 형성하면서 변주되는 상황도 없다. 홍상수의 새 영화가 도착할 때마다 예외적인 것과 새로운 것을 탐색하면서 홍상수적인 것의 외연을 넓히는 일은 이제 다소간 무용한 작업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물안에서>가 홍상수의 다른 영화들과 구별되는 시각적 특징을 언급해야 한다면 영화 전체가 아웃포커싱으로 촬영되었다는 사실이다. 인물들의 윤곽선은 흐려지고 배경과 동등한 형상이 된다. 표정은커녕 얼굴조차 식별되지 않는 심도 없음의 세계는 차라리 인상주의 화폭처럼 보인다. 이 감각은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 시력 교정 기구 없이 영화를 볼 때 마주하는 한계와 유사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시각적 선예도를 의도적으로 떨어뜨리는 선택이 영화를 어렵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앞서 말했듯 영화의 상황이 매우 단순하거니와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가 화면처럼 희미하기 때문이다. 감탄사로만 이루어진 대화가 홍상수 영화에서 전례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물안에서>의 대화는 유독 서로의 말을 동어반복적으로 취하면서 대화이기보다는 말들의 반향을 만들어내기 위한 행위로 남는다. 이는 시각적 차원의 모호함을 청각적 차원에서 반복한다는 예감을 추동하면서, 스크린과 모종의 거리를 둔 채로 관객이 보고 듣는 것 모두가 흐릿한 풍경 속으로 잠수해버리는 것만 같다. 아웃포커싱은 본래 카메라가 초점을 맞춰야 하는 대상이 너무 가까이에 있거나, 반대로 너무 멀리 있을 때 생기는 화면의 효과다. 해변의 북적이는 관광객과 그들로부터 떨어진 채 쓰레기를 줍는 여자 사이에서 세계의 이상한 분리를 감지하는 성모처럼, <물안에서>는 너무 가깝거나 너무 먼 것 사이에서 어디로도 향하지 못하고 진동하는 영화다. 혹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프레임 안에 있던 초점의 대상이 갑자기 이탈해버리고 중심을 잃어버린 화면의 상태와 영화하려는 시도다. 이는 삶의 방향을 잃고 거듭 죽음을 떠올리는 한 사람의 유령적인 상태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왜 원하지도 않는데 태어나서 잘해야 한다 그러고, 애써야 한다 그러고… 난 그거 이유 잘 모르겠거든.” 영화를 촬영하던 도중 성모가 불쑥 자신의 진심을 내민다. 초점 나간 화면과 모종의 연관을 띤이 고백은, 유일하게 남은 단 하나의 길로 향하게 되는 영화의 결말과도 연관이 있다. CHECK POINT <파장> (감독 마이크 스노우, 1967) <물안에서>의 아웃포커싱이 <파장>의 줌인에 대한 반응이라고 말해보면 어떨까. 두 영화 모두 수평선의 무상함에 기대고 있다는 점, 그리고 하나의 효과에 대한 일관된 사용이 영화 전체의 운동과 일치하면서 영화의 질료를 노출시킨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기획] 임수정, 문근영 “또다시 만날 작품을 기대한다.”

또 다른 여성 서사를 기다리며 - <장화, 홍련>처럼 본능적으로 연기하던 시절이 그리울 때는 없나요. 문근영 그리워요. 배성우 선배님이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너 <가을동화> 때 연기 진~짜 잘했어. 다시 하라고 해도 그렇게 못할 거야. 그런데 생각하고 고민하고 어느덧 연기에 대해 다 알게 됐을 때, 다시 그때처럼 똑같이 연기를 한다? 그러면 연기의 신이 되는 거야.” 그게 제가 가야 할 길이라고 하면서요. (웃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겠다고 했죠. 임수정 요즘 그 길을 가고 있는 거야? (웃음) 문근영 응, 추구하고 있어. (웃음) 임수정 근데 근영이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옥> 시즌2도 정말 기대하고 있어요. 최근 연기 활동을 쉬어가는 동안 차곡차곡 내면에 쌓인 게 많을 거예요. 그게 어떤 캐릭터와 만났을 때, 특히 장르적인 작품을 만날 때 자기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것들이 있어요. 저도 <장화, 홍련>처럼 연기에 접근하던 시절이 그리울 때가 많아요. ‘나는 더이상 순수하지 않은 걸까?’ 이런 생각도 자주 들고. (웃음) <장화, 홍련> 때는 당시 제 모습과 수미 캐릭터가 너무 겹쳐서 고통스러웠는데, 그 뒤에 저와 닮은 인물과 만나 즐겁게 연기한 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연기 경험이 많아지고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더이상 순수한 캐릭터를 만날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만약 지금 근영이와 저에게 자신과 완전히 맞닿아 있는 작품을 만난다면 순수하게 혼연일체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문근영 연기에는 답이 없잖아요. 이때는 이렇게 하니까 됐는데, 다른 때는 똑같이 해도 안돼요. 어떨 때는 이렇게 하니까 사람들이 좋다고 했는데, 다른 때는 안 좋다고 해요.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 <메리는 외박중> 그리고 연극 <클로저>까지 1년에 무려 세 작품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처음으로 연기가 무엇인지 회의감이 들었고, 모든 걸 쏟아내서 허무하기도 했어요. 그때부터 어떤 게 좋은 연기인지 모르겠다며 방황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건강 문제로 긴 휴식기를 가지면서 연기할 때 취하는 선택의 방향이 달라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무조건 연기를 잘해야 한다는 에너지로 접근했다면, 지금은 살짝 내려놓고 ‘그냥 해보지 뭐’ 하는 여유가 생겼어요. 현장에서 상대 배우의 연기와 전체를 보는 눈도 생기고, 어떤 변수가 생겨도 당황하지 않게 됐어요. 본능적인 감정은 계속 갖고 있는 거니까 잘 재단하고 계산해서 표현하면 돼요. 어떤 변수에 내가 빨리 적응해가면서 내 것을 끄집어낼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차기작이 기대가 돼요. 역할이 커지면 어쩔 수 없이 작품 전체를 봐야 하는데, 이번에 맡을 역은 좀더 본능적으로 접근해도 괜찮을 것 같거든요. - 경력 초기에 <장화, 홍련> 같은 작품을 만난 것이 이후 배우 생활에 미친 영향은 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문근영 배우는 아직 중학생일 때 누군가의 아역이나 딸이 아닌 주연 캐릭터를 연기했고, 임수정 배우는 <장화, 홍련> 이후 박찬욱, 허진호, 최동훈 등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거장 감독들과 연이어 작품을 했잖아요. 문근영 작품 자체도, 당시 현장도 마음 한구석에 선물 박스처럼 남아 있어요. 뚜껑을 열면 제가 좋아했던 감정과 기억과 사람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와요. 정말 행복했어요. 임수정 제가 그 나이 때 수미를 연기한 건 너무너무 큰 영광이고 행운이었어요. 그때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큰 예산이 들어간 여성 서사였고, 더군다나 지금 다룬다면 저예산 상업영화나 독립영화로 만들라고 했을지도 모르는 10대 소녀들의 이야기였죠. 여성배우들이 좋은 여성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작품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영화뿐만 아니라 OTT 시리즈도 좋아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양자경 배우가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으면서 “여성 여러분은 황금기가 지났다는 말을 절대 믿지 말라”고 했잖아요. 저는 아직 희망적으로 보고 있어요. - 오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앞으로 두분이 어떤 작품을 선택하고 연기할지 너무 궁금해지네요. 임수정 연기를 열심히 즐겁게 하던 때도, 조금 느슨하게 작품을 할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쉬어갈 때쯤 멀리서 본 근영이도 개인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그런 시간이 필요해요. 우리가 하는 일은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과정인데, 내 안에 뭔가 쌓여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자발적 아싸’에 돌입해 의식적으로 휴식기를 가졌어요. (웃음) 예전엔 언론의 평가, 업계의 평판, 대중의 말 하나하나를 받아들이느라 제가 너덜너덜해졌는데, 거리를 좀 두고 제가 좋아하는 것 위주로 삶을 채워나가다 보니 30대 때보다 지금 훨씬 단단해졌어요. 저만의 라이프스타일을 구축하면서 닫혔던 마음도 다시 열리고 연기에 대한 욕망이 다시 올라오는 거예요. 코로나19 때 너무 갑갑하기도 했고요. 아무리 힘든 현장이 닥쳐도 무너지지 않고 재미있게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는 저를 꺼내고 표현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40대 중반에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가 분명히 있으니까, 앞으로의 10년은 20대 때처럼 열심히 달려보고 싶어요. 그게 TV드라마든 상업영화든 예술영화든 주연이든 카메오든 유연하게 접근하고 싶어요. 문근영 저는 그냥 하루하루 재밌게 살고 싶어요. 옛날에는 연기가 제 인생에서 1순위였는데, 이제는 내 삶이 1순위가 돼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내 인생을 잘 살면서 하고 싶은 연기도 잘하고 싶어요. 예전엔 그때그때 제 마음이 따라가는 대로 작품을 선택했거든요. 이를테면 <바람의 화원>의 윤복을 선택했던 것은 윤복이 22살의 문근영에게 있었기 때문이에요. 연기로 내 삶을 살았고, 삶이 연기이자 연기가 곧 삶이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내 마음이 온전히 가지 않더라도 다른 이유가 명확하다면 서슴없이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임수정 그런 선택도 필요해요. 왜냐하면 온전히 나와 맞닿아 있는 캐릭터만 만날 수는 없거든요. 새롭게 도전하다 보면 저 깊숙이 어딘가에 나와 닮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돼요. 원래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연정인을 연기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없었는데, 민규동 감독님이랑 이유진 영화사 집 대표님이 제게 그런 면이 있다면서 설득하셨어요. 그래서 그분들을 믿고 용기를 냈어요. 하다보니 점점 입이 풀리고 제 안에 정인이처럼 독설가 같은 면이 있다는 걸 깨달았죠. (웃음) 모든 배우에게 작품은 사랑하는 사람 만나듯 인연이 닿아야 되거든요.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뭔가 설레고 심장이 뛰는 작품이 있다면 만나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 20년 만에 <장화, 홍련>을 다시 보니까, 한국영화계는 이렇게 좋은 배우들을 일찍 발굴해놓고 더 많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문근영 배우는 아직 10대 때라 더 좋은 캐릭터를 연이어 만나지 못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30대의 임수정 배우가 <장화, 홍련>처럼 강렬한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작품을 자주 만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임수정 아무래도 영화에서 연기할 수 있는 여성 캐릭터의 연령대가 한정돼 있고, 더욱이 남성 캐릭터 중심의 장르영화가 더 많이 기획되고 만들어지다 보니 선택의 폭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죠. 한때는 ‘한국 영화산업은 왜 이렇게 평등하지 못하지?’라고 생각했는데 할리우드도 여전히 남자배우와 여자배우의 출연료 차이가 커요. 어디서나 벌어지는 일이라면 너무 마음 다치지 말고 포기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할리우드에서도 커뮤니티를 만들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직접 제작에 뛰어든 배우들도 많아요. 섹슈얼한 매력을 가진 금발 백인 미녀 캐릭터만 계속 들어오는 것에 화가 난 마고 로비가 제작사를 차리고 처음 만든 영화가 <아이, 토냐>였어요. 작품도 좋은 평가를 받고 연기상도 많이 받았죠. 근영이가 자신이 연기해 보고 싶은 캐릭터를 만나고 싶어서 직접 단편영화를 연출한 것도 무척 멋진 시도인 것 같아요. 문근영 내가 직접 보여줘야 사람들도 ‘아, 문근영에게 이런 모습도 있구나’라고 알 수 있으니까요. 임수정 그렇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캐릭터들을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르는 편이어서 프로듀싱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는데, 영화 제작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문근영 재무가 보통 일이 아니에요. 그래도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저한테 주세요. (웃음) 임수정 스크립트를 써봐야겠어, 그치? (웃음) 최근 몇년간 “그냥 네가 제작사를 만들어”라는 말도 많이 들었는데, 이미 훌륭한 여성 제작자들도 어렵게 하시는 일에 그렇게 쉽게 뛰어들 순 없잖아요. 그래도 좋은 여성감독과 인연이 닿아 작은 영화부터 같이 만들어본다든지, 지금 나이대 근영이랑 연기도 같이하고 싶네요. (문근영을 바라보며) 영화가 아닌 TV시리즈여도 좋고, 굳이 자매가 아니어도 돼. 두 트랙의 여성 서사가 같이 흐르는 작품을 함께하면 어떨까. - 이건 김지운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써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웃음) 임수정 김지운 감독님은 여성 서사에 항상 열려 있던 분이에요. 그런 면에서 존경해요. 문근영 김지운 감독님, 보아라! 임수정 아, 오늘 우리가 만났다는 걸 알면 엄청 반가워할 텐데. 근영이와 얼굴을 본 지 10년도 더 됐는데 이런 자리를 마련해줘서 심장이 콩닥콩닥했어요, 처음엔 ‘무슨 이야기로 시작하지?’라고 생각했는데 만나는 순간 모든 걱정이 사라졌어요. 우리는 정말 좋은 케미스트리로 연기했던 관계예요. 왜 그동안 만나지 못했을까, 라는 생각도 들어요. 도착하자마자 여기 오기 전에 있었던 일을 정신없이 얘기하는데 근영이가 아무 말도 없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저를 쳐다보더라고요. 안쓰럽고 반가웠어요. 영상으로 찍어서 감독님에게 보여드렸어야 했는데!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근영이는 똑같다고. (웃음) 문근영 20년 전 언니랑 지금 언니가 너무 똑같아서 울컥했어요. 앞으로 언니랑 다시 만나는 작품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임수정 꼭 좋은 작품에서 다시 만나자. 돌이켜보면 문근영처럼 좋은 배우가 거의 없었어요. 배우 대 배우로 또 연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해지네요. 어떤 작품에서 어떤 관계로 만나면 좋을지 오늘부터 생각해볼래요.

[기획] 2022~2023년 일본 애니메이션 경향과 시장 분석

2023년 상반기, 일본 애니메이션은 한국의 극장가를 석권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로 시작하여 <귀멸의 칼날: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 마을로>를 거쳐, <스즈메의 문단속>으로 이어진 애니메이션 붐은 4월 현재도 쉬이 꺼질 것 같지 않은 분위기다. 그렇다면 일본의 현지 상황은 어떨까? 지난 2022년, 일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흥행은 700억엔에 육박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해에 개봉한 100여개의 작품들 중 흥행 수익이 10억엔을 넘긴 것은 열 작품 남짓하며, 실제로는 100억엔 클럽에 들어간 <원피스 필름 레드> <극장판 주술회전 0> <스즈메의 문단속>이 대부분의 수익을 독점했다. 일본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생태계는 실사영화와 마찬가지로 작품들이 놓인 여건에 따라 여러 계층으로 나뉜다. 그 최상위에 존재하는 그룹이 바로 <명탐정 코난>이나 <짱구는 못말려> <도라에몽> 등 국민적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다. 이들 장수 애니메이션은 1천편이 넘는 TV시리즈가 이어지는 동안 매년 극장판 에피소드를 연례행사로 제작하고 있으며, 관객 동원 및 투자 환경도 안정적이다. 개별 작품의 흥행은 최상위권은 아니지만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으며, 시리즈 누적 흥행은 다른 작품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렇게 수십년에 걸친 연속 TV시리즈와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공생 구조는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 중 하나다. 고인물과 고인물의 경쟁 그런 고인물 바로 아래에 있는 것이 <원피스> <주술회전> 등 인기 소년 만화 원작의 애니메이션인데, 위의 장수 애니메이션들과 비교하면 수명은 짧지만 그만큼 짧고 굵게 한 시대를 풍미한다. 이들 역시 본래는 TV시리즈가 중심이며, 극장용 작품은 팬덤의 특별한 축제로 취급된다. 열정과 응집력을 가진 팬덤이 마치 아이돌 콘서트에 참가하는 기분으로 영화의 n차관람을 통해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 조금 아래에는 일반적인 만화나 라이트노벨 원작의 TV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한 작품들이 있지만 팬덤의 규모 이외에는 기본적으로 소년 만화 원작 작품들과 흡사한 패턴을 보인다. 그 아래는 원작이 없는 오리지널 TV애니메이션의 극장판이 자리 잡고 있다. <건담> 시리즈나 <에반게리온> 시리즈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이들이 스크린으로 진출할 기회는 원작이 있는 작품들에 비해 현저하게 적으며, 투자 환경도 좋다고 하기는 어렵다. TV시리즈가 충분한 인기를 얻지 못한 경우 예정되었던 극장판 제작이 무산되는 경우도 종종 일어난다. TV시리즈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극장용 창작 애니메이션은 그보다 더 아래에 자리한다. 본래 의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이란 바로 이런 작품들을 일컫지만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작품들은 투자에서도 후순위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들 사이에서도 인기 소설이나 만화가 원작인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들은 확연히 다른데, 뒷배경이 될 원작의 영향력이 약할수록 감독과 제작진의 작가성이 더 강해진다는 아이러니도 존재한다. 과거 <원피스>와 <디지몬>으로 경력을 쌓은 호소다 마모루와 <짱구는 못말려>로 명성을 얻은 하라 게이이치처럼 이미 TV시리즈에서 인정받은 인재들이 스스로 안정된 환경을 벗어나 창작에 뛰어드는 사례도 많다. 일찍이 <루팡 3세>나 <미래소년 코난>으로 실력을 보여준 미야자키 하야오도 여기에 해당된다. 이런 경우 과거 작품에서 쌓았던 실적과 인맥은 투자와 제작 및 관객 동원에 큰 힘이 된다. 그런 점에서 아무 기반도 없이 처음부터 혼자 창작을 시작한 신카이 마코토는 일본에서도 극히 드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원작의 인기에 기대는 작품들은 결국 원작 자체가 진입장벽이자 흥행의 한계점이 되지만, 창작 애니메이션은 그런 진입장벽이 없거나 매우 약하기에 일단 흐름을 타면 단숨에 치고 올라갈 수 있고, 그 결과 최하위가 최상위로 올라서는 생태계의 전복이 일어나기도 한다. 과거의 미야자키 하야오나 현재의 신카이 마코토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위치에 오른 감독들은 자기 자신이 흥행을 책임질 수 있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 원작 대신 스스로의 역량으로 투자를 받고 관객을 모을 수 있고, 다른 수많은 감독들과 애니메이터들은 이들과 같은 성공을 목표로 삼으며 애니메이션 업계의 활력을 유지한다. 또 하나의 감독, 프로듀서의 영향력 하지만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둔 감독들의 이면에는 대중의 수요를 파악하고 이에 맞춰 작품의 방향성을 이끈 프로듀서의 능력이 작용한 경우가 많다. 미야자키 하야오에 있어선 스즈키 도시오가, 신카이 마코토에 있어선 가와무라 겐키가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뛰어난 감독과 우수한 프로듀서의 조합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가와무라 겐키의 프로듀싱을 받고 있는 호소다 마모루는 이전만큼의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포스트 미야자키의 자리에 가장 근접해 있는 신카이 마코토 역시 가와무라 겐키에게 지나치게 영향을 받은 나머지 초기의 작가성을 잃고 스스로를 국민 감독이라는 틀에 맞추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스즈키 도시오는 오직 그림밖에 모르던 괴짜인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를 잘 이끌며 지브리 성공 신화를 만든 프로듀서로 명성이 높았으나, 말년에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잘못된 판단을 거듭하며 지브리와 미야자키의 명성에 상처를 입혔다. 그의 남다른 안목과 끈질긴 사업 수완이 없었다면 미야자키는 실력은 있어도 흥행과는 인연이 없는 감독으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그의 실책으로 인해 지브리가 일본의 디즈니가 되지 못하고 한 세대 만에 마무리되는 모습을 보면 애니메이션에 있어 프로듀서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한층 절실히 느끼게 된다. <주술회전> <진격의 거인> 등의 제작사인 MAPPA를 설립한 마루야마 마사오 역시 애니메이션 프로듀서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현재의 안정성보다는 앞으로의 가능성에 더 많은 기대를 걸었던 마루야마 마사오는 호소다 마모루를 발굴해 <시간을 달리는 소녀> <썸머 워즈> <늑대아이>로 이어지는 전성기를 열어주었고, <이 세상의 한구석에>의 가타부치 스나오 감독을 발굴해 차세대 거장 대열에 합류시켰다. 그가 없었다면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판도는 지금과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이렇듯 창작 애니메이션의 경우 지침이 될 원작이 없는 만큼 프로듀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며, 뛰어난 프로듀서에게 능력을 인정받는 것은 차세대 거장 후보에 들어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기도 하다. 이런 프로듀서들의 존재가 있었기에 일본 애니메이션은 인기 있는 원작의 명성에 기대는 데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지금 팬덤 전쟁 중 일본의 영화사 중 매출 순위 1위인 도호는 최근 회사의 3대 주력 사업에 애니메이션을 추가하며 4대 주력 사업으로 개편했다. 2020년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으로 역대 일본영화 흥행 순위 1위를 갱신한 도호는 올해도 <스즈메의 문단속>을 히트시키며 업계 1위의 자리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분야에서는 2위인 도에이에 크게 뒤처져 있다. 2022년 일본영화 최고 흥행작인 <원피스 필름 레드>에 이어 <더 퍼스트 슬램덩크>로 이어진 흥행 돌퐁은 탄탄한 애니메이션 IP를 보유한 도에이가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그중에서 특히 격렬한 싸움이 예상되는 부문이 소년 만화 원작 애니메이션이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주류가 가족 대상의 장수 시리즈인 상황에서도 흥행의 최상위권은 오랫동안 지브리 작품으로 대표되는 창작 애니메이션이 쥐고 있었는데, 그 자리를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 빼앗으면서 판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많은 취미 및 문화 활동이 제약되고 OTT가 널리 보급되면서 소년 만화 원작 애니메이션의 팬덤은 이전보다 더욱 확장됐는데,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의 대기록에 이어 <극장판 주술회전 0>와 <원피스 필름 레드>가 잇따라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 베스트10에 입성한 것이다. 이런 경향이 점점 뚜렷해지면서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는 TV에 이어 극장에서도 본격적인 팬덤 싸움을 시작한다. 매주 바뀌는 입장 특전, 극장판과 연동된 다양한 이벤트와 상품, 팬덤끼리의 경쟁심리를 자극하는 홍보 전략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그 판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면서 제작사들은 두 가지의 근본적인 대책을 실행하게 된다. 하나는 집토끼, 다시 말해 원작의 팬이나 감독의 팬들을 확실하게 사로잡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현재 많은 소년 만화 원작 작품들이 원작자를 직접 각본가나 프로듀서로 참여시키고 있고, 그중에서도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원작자인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직접 감독까지 맡는 초강수를 두면서 과거 팬덤을 완벽하게 결집시키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나머지 하나는 산토끼, 곧 새로운 팬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이 원작을 초월하는 작화와 연출을 통해 새로운 팬들을 대거 끌어들인 것처럼 TV애니메이션을 원작보다 업그레이드하고 극장판은 여기서 더욱 업그레이드하는 전략으로 팬덤을 키우는 것이다. 그만큼 제작비는 더 늘어나지만 작품의 질이 높아지고 수익이 커진다면 업계에 있어서는 매우 바람직한 현상 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더욱 치열해진 경쟁은 일본 애니메이션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많은 투자를 받으며 역량을 키운 제작사는 그 여력을 다른 작품에도 반영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애니메이터들이 실력을 키우며 창작의 기반을 쌓을 수도 있다. 물론 이런 경쟁의 결과로 팬덤 위주가 아닌 양질의 작품들이 도태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아직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일본 OTT 시장의 확대는 새로운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적극 환영하고 있다. 적어도 이런 경쟁 구도가 벽에 부딪치기 전까지,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은 더욱 확대 일로를 걸을 것으로 보인다.

[OTT 추천작] ‘테트리스’

한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한번만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니 그런데 과연 <테트리스>를 한번도 안 해본 사람이 있기는 할까. <테트리스>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게임인 <테트리스>가 전세계에 널리 퍼지게 되는 과정에 있었던 저작권 분쟁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이 저작권 게임에는 여러 명의 플레이어가 있다. 첫째는 한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헹크(태런 에저턴)다. 그는 우연히 박람회에서 <테트리스>를 발견한 뒤 이에 매료되어 닌텐도를 찾아간다. 닌텐도의 새 상품인 ‘게임보이’와 협력하여 <테트리스>를 팔아보려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단순치가 않다. <테트리스> 개발자인 알렉세이의 국적이 소련이었던 것이 원인이다. 소련 정부의 눈에 헹크는 자국의 소유물을 국외로 빼돌리려는 외국인일 뿐이다. 헹크는 알렉세이를 설득하는 데 성공하지만 부패한 KGB 요원들이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훼방을 놓는 바람에 위기에 처한다. 그 사이를 억만장자 미디어 기업 회장을 비롯한 다른 플레이어들이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한다. <테트리스>는 저작권을 둘러싼 복잡한 사실관계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 노력한다. 쉽게 말해 저작권에 관한 모든 세부 사항을 단번에 이해하기는 어렵다. 대신 영화의 선택은 모스크바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협상 과정을 마치 냉전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첩보영화의 연출법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테트리스>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는 너무 복잡해 익숙한 내러티브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 게임의 사연이 궁금하다면, 직접 플레이해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터뷰] 강길우, 경계를 부수다

전주영화제는 자신에게 “시작”과 다름없다고, 강길우는 여러 차례 말했다. 미대에 다니다 연극영화과에 재입학한 그는 학부 시절엔 연극에만 몰입했다. 그러다 2018년 단편 <명태>로 영화제에 처음 발을 들였고 장편 <한강에게> <파도를 걷는 소년> <정말 먼 곳> <식물카페, 온정> <비밀의 언덕> 등과 함께 5년간 전주영화제와 연을 맺었다. 지난해와 같이 폐막식 사회를 보며 축제를 마무리할 예정이지만, 소속사 배우들과 행사를 꾸리는 올해는 느낌이 남다르다. “‘우리 집 보여줄게’ 싶은 마음이랄까. (웃음) 가방 하나 메고 출연작의 감독, 배우들과 다니던 곳에 다 같이 우르르 내려갈 생각을 하니 기쁘고 뿌듯하다.” <더스트맨> <비밀의 언덕>과 달리 <초록밤>은 전주영화제 첫 상영이라 의미가 크다고. “<고속도로 가족> GV의 모더레이터로도 선다. 우리끼리 웃고 끝나는 게 아니라 관객도 즐길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영화, 연극에 집중하던 그가 드라마로 영역을 넓힌 건 2021년, 눈컴퍼니와 인연을 맺고 나서부터다. 드라마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재벌집 막내아들> <더 글로리> 파트1 등에 출연했고 “장르적이거나 대사, 이미지로 승부 보는 캐릭터를 경험하며 데이터를 쌓아온 2년이었다”. 바쁜 와중에도 장·단편 가리지 않고 독립영화에도 꾸준히 이름을 올렸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독립영화는 나의 시작이니까. 바람이 있다면 앞으로 내가 이름이 더 알려지더라도 독립영화에 계속 출연하는 것이다. 그런 시도가 더해지면 관객이 독립영화계에 더 관심을 갖고, 제작 여건도 점차 나아지지 않을까. 그렇게 완성된 좋은 영화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차기작으로 “극장 개봉작과 OTT 영화, OTT 시리즈, TV드라마 다 있다”며 웃는 그는 올해로 데뷔 10년차다. “아직도 연기가 재밌다. 오랫동안 그려온 그림이 더이상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지난 10년보다 앞으로 걸어갈 길이 더 기대되고, 그 여정에서 다양한 캐릭터들을 만나고 싶다. 미장센 좋은 액션물의 일원이 되고 싶고 해외 진출도 목표로 두고 있다. 정말 오랜 꿈 중 하나는 이창동 감독님과 작업하는 것.” 경계 없이 활동하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는 여전히 새로운 시작을 꿈꾼다. 전주와의 추억 "<명태>가 첫 상영하는 날 조금 긴장한 채로 극장에 갔다. 크레딧이 올라갈 때 객석을 꽉 채운 관객이 기립 박수를 치며 환호하더라. 그때 느꼈다. ‘이 맛에 영화를 하는구나.’ 이후로는 박수 소리만 들어도 영화를 잘 보셨는지, 아닌지를 가늠할 수 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