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바람' 검색결과

기사/뉴스(9404)

[김수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다음 소희’는 대학을 안 가도 될까

<다음 소희>를 본 관객은 ‘다음에 올 소희’의 삶을 향해 기도했을 것이다. 콜센터 소희를 괴롭힌 자본과 소비자의 갑질이 사라지기를, 다음 소희에게 권리와 노조가 주어지기를 소원했을 것이다. 다음 소희의 일터는 자신의 적성과 전공을 살린 곳이기를, 특성화고가 이를 받쳐주기를 희망했을 것이다. 나의 바람은 조금 더 나아간다. 나는 다음 소희가 본인이 원한다면 부담 없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고, 그의 직업 탐색이 여유롭기를 바란다. “우리나라 진학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맹목적으로 대학에 진학한다. 국가적 낭비다.” 지난 3월31일, 국회 인구위기특별위원회에서 한 의원은 이렇게 발언했다. 많이 듣던 말이다. “대학은 공부할 놈만 가자. 대학 안 가도 먹고살 수 있게 해주면 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제 자녀를 ‘공부 안 해도 될 놈’으로 분류하는 경우는 못 본 것 같다. 자기네는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 강물’이고, 남의 집은 ‘개천의 가재, 붕어, 개구리’인가. 유럽의 낮은 대학 진학률이 부러운 사람들은 대학에 가는 사람과 안 가는 사람이 어느 계급·계층에 속해 있는지, 그곳에서도 ‘고졸 마이스터’의 신화가 붕괴되고 있는 현실부터 살펴보시라. 2016년 스크린도어 수리 중 사망한 ‘구의역 김군’은 그 무렵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내겐 ‘대학을 나와야 대접받는 세상’보다 취업하기에 너무 이른 그의 나이가 더 두드러져 보였다. 최근 정년 연장과 관련한 여론조사에서 2030세대가 높은 찬성률을 나타내고 있다. 첫째, 고성장 속에 일자리가 쏟아지던 시대는 지나갔다. 청년들은 어차피 이른 취업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부모 세대의 연장전을 응원한다. 둘째, 기대수명의 증가는 절대 막지 못한다. 오늘의 청년들이 지금 퇴직자의 나이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지금 퇴직자들보다 꽤 젊을 것이다. 후일을 생각하면 ‘조기 취업’보다 ‘은퇴 지연’이 합리적이다. 인생은 길어졌고 조기 취업은 힘든 판에 ‘대학은 갈 놈만 가라’? 4년제 대학 졸업자가 전문대로 ‘리턴’하는 현상도 “처음부터 전문대를 가지 그랬어”라고 치부할 일이 아니다. 일반적인 시민 교육과 전문적인 직업 교육이 모두 필요한 세상이다. 원하는 사람은 둘 다 배울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고 대학교와 전문대 문을 더 활짝 열어야 한다. 엄청난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대학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 부실한 지방 사립대는 청산하기 전에 ‘공공 영역 흡수’를 꾀하고, 대학 서열을 저층화해야 한다. 청년들의 공익 활동 기회를 늘려, 그들이 ‘지원만 받는다’는 열패감이나 ‘아직 어리다’는 인식에 휩싸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요즘 ‘대학가 천원 아침밥’을 체험하는 정치인들 누구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교육-노동 패러다임도 없고, 재정 확보를 위해 국민에게 증세를 요청할 용기도 없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는 구호도 곱게 들리지 않는다. “빨리 취업해서 니들이 알아서 사세요!” 다음 소희의 등도 떠밀리고 있다.

[인터뷰] 배우 김희애 X 문소리, 양자경의 시대에 우리라고 뭔들 못할까!

- 현장에서 서로의 연기 스타일을 보면서 받은 인상은 어땠나. 극 중 인물들만큼 각기 뚜렷한 개성이 있지 않았을까 예상되는데. 문소리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희애 선배님은 정말로 완벽하게 준비해 오신다. 그리고 현장에서 한치의 흔들림이 없다. 존경스럽다. 김희애 그건 내가 그렇게밖에 못해서지. 일하러 왔으면 일을 잘해내는 게 상대를 위한 최선의 배려이기도 하잖나. 내가 잘해야 스탭들에게도 피해가 안 간다고 생각하면서 그런 방식이 몸에 뱄다. 어떤 면에선 현장에서 중간중간 수다 떨거나 여유 부리는 유형이 못 된다. 그에 비하면 소리씨는 IQ가 정말 높은 사람 같다. (웃음) 놀라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대처하는 부분이라든가, 팀원들을 아우르는 리더십이라든가. 여러모로 자기 자신을 조율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우린 연기할 땐 무척 다르지만 또 재밌는 게 자연인으로선 교집합이 많다. 문소리 맞다. 서로 집중하는 방식은 확연히 다르다. 그런데 사적인 성향은 비슷한 구석들이 많다. 사는 얘기를 들어보면 특히 그렇다. 예를 들어 조그맣게라도 일을 그냥 다 내 손으로 처리해야 마음이 편하다든지. 김희애 게다가 소리씨는 행동대장이다. 나름대로 자기 커리어가 있는 사람이 그러기도 쉽지 않은데, 여러 배우들에게 연락해 모임도 추진해줬다. 우리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였다. - 한쪽은 퀸메이커, 한쪽은 분위기 메이커였던 현장인 건가. (웃음) 함께 호흡을 맞춘 첫 촬영날도 기억나는지. 김희애 물론. 초반 고공 농성 장면에서 처음 만났다. 경숙이 고공 농성 중인 건물 옥상에 도희가 찾아가는 장면이었다. 엊그제 일도 잘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날은 너무도 생생히 떠오른다. 46층의 옥상은 춥고 바람 부는 힘든 현장이었지만 중요한 신이라 잘해내야 했다. 길이도 길어 마음 한편에 걱정이 있었다. 그런데 첫 촬영이 시작된 순간 일사천리로 끝이 났다. 문소리 <퀸메이커>는 리허설을 많이 하지 않았다. 내 경우는 그래서 그 신을 찍으면서 모든 게 명확해졌던 것 같다. 대본에서 경숙은 좀더 터프했다고 할까. 정작 옥상 신에서 선배의 강단 있는 존재감을 보고 나니 경숙은 오히려 치고 빠지는 재치 있는 플레이를 해줘야 재밌는 대비감이 생기겠더라고. 뿌리가 강하니까 흔들릴 수도 있으리란 마음으로. 그렇게 황도희와 확실히 대비시키면 우리의 콤비 플레이가 더 재밌어질 거라 판단했다. 도희가 꿋꿋하게 버티는 인물이라면 경숙은 그보다 훨씬 잘 휘청거리고 곧잘 넘어질 것 같으면서도 절대 꺾이지 않는다. -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문소리 중꺾마! (웃음) 김희애 ? 문소리 월드컵 때 나왔잖나 선배!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혐관’은 몰라도 ‘중꺾마’는 안다. 김희애 그렇구나…. 문소리 <문명특급>에서 선배가 남긴 “독한 게 딴 게 없어. 오래 버틴 사람이 독한 거야”라는 말도 비슷한 데가 있다. 김희애 <퀸메이커>의 이야기가 정말 그렇기도 하니까! - 정치 드라마는 결국 정치를 쇼 비즈니스로 해석하고 접근하는 연출을 통해 스릴과 카타르시스를 만든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오래 버텨온 배우들이기에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 있었다면. 김희애 아, 그게… 우리 <퀸메이커> 포스터에 “연기력이 권력이다”라고 쓰여 있길래 처음엔 우리 두 사람이 연기 잘한다는 소리인 줄 알았다. (웃음) 문소리 하하하하. 김희애 두번 생각하니까 그게 아니더라고. 어찌보면 배우의 세계가 훨씬 심플하다. 닮은 데도 있지만 정치적 지형도의 복잡함은 또 다른 차원이다. 그래서 감정적인 접근이 필요할 땐 황도희, 오경숙의 성장 서사라는 점에 집중한 측면이 더 크다. 둘의 관계가 점차 발전해나가는 드라마라는 점이 내게는 중요했다. 문소리 대본을 보면서 ‘세상이 뭐 이래?’ 싶다가도 실은 현실이 더하다는 생각이 든 건 사실이다. 뉴스를 보면 우리가 잘 모르고 지나가는 세상의 무서운 일들이 너무 많다. 배우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용감한 마음을 지키는 일 같다. 연극하고 영화하는 사람들, 그림 그리고 연주하는 사람들, 다 각자 엄혹한 자기 시대를 통과하면서 용기를 지켜온 것 아닌가. 일을 계속 하다보면 마음이 무뎌질 때가 오는 건 사실이다. 알면 알수록 겁도 많아지고 세월에 물들어가기도 하고, 뭣보다 기운도 딸린다. 그래서 휘청할 때도 있지만 처음에 품은 용감한 씨앗이 썩지 않도록 가끔 볕도 쐬어주고 물도 주면서 들여다보려고 한다. 그렇게 세상도 작품도 계속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 김희애 용감해지려면 고민도 많아지지. 문소리 맞다. 나만 해도 아직 겁이 많다. 당장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이래야 되나 저래야 되나’ 늘 이런저런 일로 혼자 머뭇대고. - <퀸메이커>는 여성들의 커리어 전환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야망과 야심, 진취성을 자극하면서 고무시키는 요소가 있다. 두 사람에겐 그동안의 긴 배우 생활 중 두렵지만 자기 일에 강력한 시동을 걸어야만 하는 순간이 언제였을까. 김희애 아무래도 여성배우들은 결혼하고 출산까지 하고 나서 한동안 아이를 키우게 되면 배우로서 제2의 출발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엔 더 그랬다. 내게는 그때가 인생의 큰 터닝포인트였던 게 사실이다. 공백기에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인연도 또 새롭게 다가오는 인연도 있었다. 숙고하고 단련하는 시기였던 셈인데 그 시간을 견디고 나자 진취적으로 다시 뛰쳐나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내가 배운 건 살면서 앞으로만 나아갈 게 아니라 몇 걸음 다시 뒤로 물러나는 시기가 꼭 필요하다는 거였다. 문소리 나는 커리어 초반에 특히 힘들었다. 지금도 종종 생각한다. 그때 내 안에 뭐가 있었길래 사범대 다니다가 배우 하겠다고 뛰어들었는지. 그냥 욱하는 마음은 아니었다. 존경하는 선배들에게서 엿본 용기 같은 것이 분명 내 안에도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오아시스> 이후에도 근 몇년이 줄곧 긴 데뷔 기간 같았다. 내가 지금껏 살아온 세계를, 내 알을 스스로 깨트려야만 했다. 그게 일적으로 강하게 시동 걸 수 있는 트리거가 됐다. 그때가 어쩌면 살면서 필요한 거의 모든 욕심과 야심과 심지어 전략 같은 것들이 가장 필요한 시기였다고 볼 수 있는데 정작 내겐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 시간 덕분에 이후에도 일하는 게 자신 없고 두려워질 때도 ‘불안하더라도 계속 한번 해보자’라고 쉬지 않고 이어갈 수 있었다. 김희애 열정을 갖고 불태우겠다고 해서 삶이 그렇게 마음처럼 불태워지지가 않더라. 모두들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 양자경 언니도 말했잖아. 문소리 레이디스, 돈 렛 애니바디 텔 유 아 에버 페스트 유어 프라임!(여성들이여, 누구도 여러분에게 ‘전성기는 지났다’고 말하게 내버려두지 마세요/ Ladies, Don’t let anybody tell you are ever past your prime.) - 두 사람 모두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시아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양자경 배우의 수상 소감을 인상적으로 기억한다는 사실 자체가 많은 것을 말해준다. 게다가 이렇게 정확한 인용이라니. 문소리 몇번이나 반복해서 봤으니까. 영상도 따로 저장해둘 만큼. 김희애 우리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려줄 자격이 충분한 사람 아닌가. 깊이 공감한 이들이 정말로 많을 것이다.

[리뷰] ‘드림’, 승리의 기록보다 최선을 다했다는 기억

동료에게 밀려나지 않으려 아집을 부리던 축구 선수 윤홍대(박서준)가 결국 경기를 망치고 만다. 감독에게 크게 혼난 뒤, 자신의 어머니를 걸고넘어진 한 기자와 육탄전까지 벌인다. 결국 선수 생활이 불투명해진 홍대. 그런 그에게 홈리스 풋볼 월드컵의 국가대표 감독직 제안이 들어온다. 내키진 않았으나 이미지를 쇄신할 기회라는 말에 이를 수락한다. 국가대표팀에는 최연장자 환동(김종수)과 딸밖에 모르는 효봉(고창석), 이길 수만 있다면 반칙도 불사하는 범수(정승길), 에너지 넘치는 골키퍼 문수(양현민), 속내를 알 수 없는 영진(홍완표)이 속해 있다. 그러나 득점은커녕 골대를 향해 제대로 공을 찰 수 있는 선수는 없다. 홈리스 국가대표의 여정은 다큐멘터리로 제작될 예정인데 이를 기획한 PD 소민(아이유)이 오직 사연만을 기준으로 멤버를 구성했기 때문이다. 홍대는 남다른 실력을 지닌 인선(이현우)을 어렵게 섭외해 마침내 팀을 꾸린다. 어떻게든 그림을 만들어야 한다는 소민의 요청으로 홍대는 의욕 있는 척 훈련을 지속한다. 홍대가 불량배들을 처단한 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한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기회가 주어지는데 그러기 위해선 일정상 홈리스 축구단 감독직을 포기해야 한다. 고민하는 홍대와 그의 도움이 절실한 국가대표 선수들. 월드컵을 앞둔 출국 당일, 외로이 걷던 선수들 곁에 어느 순간 홍대가 나란히 발을 맞추기 시작한다. 영화 <스물> <바람 바람 바람> <극한직업>, 드라마 <멜로가 체질> 등을 연출한 이병헌 감독이 오랜만에 신작과 함께 돌아왔다. <드림>은 2010년, 홈리스 풋볼 월드컵에 한국팀이 처음 출전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홍대의 서사가 메인이지만 팀원들이 홈리스가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 또한 공들여 설명된다. 이 과정에서 <드림>과 여타 스포츠영화와의 차별점이 드러난다. <드림>은 일반적인 스포츠영화의 기승전결, 이를테면 우여곡절을 거쳐 성장한 선수들이 끝내 승리하는 쾌감을 보여주는 것에 목표를 두지 않는다. 오히려 헤어진 가족, 잃어버린 애인을 여전히 사랑하고 변화된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홈리스들의 진심이 눈길을 끈다. 한국팀의 경기 장면은 극 후반부의 월드컵 대회에 몰려 있다. 앞서 팀의 합이나 경기력 상승에 관한 묘사가 없었기에 다소 연결이 매끄럽지 않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선수들은 경기 결과를 뒤집을 수 없을지라도 게임이 끝나는 순간까지 뜀박질을 멈추지 않는다. 시합을 거듭해갈수록 상대팀에 예의를 갖추는 스포츠맨십도 배워간다. 승리라는 기록보다 최선을 다했다는 기억이 이들에겐 더 오래 남을 것이란 영화의 메시지가 명확해지는 순간이다. “경기장에 들어가면 또 힘들 거예요. 그래도 우리가 지금 왜 뛰려고 하는지 보여줍시다.” 홈리스 풋볼 월드컵 경기 도중, 홍대가 지친 선수들을 북돋우며 하는 말. CHECK POINT <리바운드> 감독 장항준, 2022 튕겨 나온 공을 포기하지 않고 쫓아가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낸다. 축구와 농구, 종목은 다르지만 게임이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영화 속 선수들의 모습이 가슴을 뛰게 한다는 점에서 <드림>과 <리바운드>는 닮았다.

[리뷰] '항구의 니쿠코짱!', 사랑과 긍정으로 삶을 바라보는 두 세대의 여성들

열심히 살았지만 모인 돈은 없고, 사랑했다고 생각했던 남자들은 하나같이 빚만 남기고 떠났거나 바람을 피웠다. 아무도 모르게 잠적한 마지막 남자의 흔적을 찾아 딸 키쿠코(고코미)와 일본 북부 항구 마을에 정착한 니쿠코(오타케 시노부)의 인생은 몇줄로 요약하면 박복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니쿠코는 긍정의 힘과 보통의 미덕을 믿고 밝게 살아간다. 니쿠코는 고깃집 우오가시의 종업원으로 일하며 특유의 활력과 체구로 마을의 유명인이 된다. 한편 5학년이 된 키쿠코는 남모를 고민이 많다. 전학 간 학교에서는 급우들간의 파벌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고, 자꾸만 눈에 밟히는 같은 반 남자 친구 니노미야(하나에 나쓰키)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그리고 키쿠코는 티는 못 내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 같은 엄마가 가끔은 부끄럽기도 하다. 영화의 제목이 지칭하는 대상은 엄마 니쿠코지만, 영화가 니쿠코만큼 공들여 주목하는 것은 키쿠코가 겪는 5학년의 고역이다. 영화는 가족영화만의 밝은 분위기와 안온한 시선을 견지하면서도 또래에 비해 일찍 철이 든 것 같은 키쿠코의 내면에 자리한 그 나이만큼의 불안과 고뇌에 중점을 둔다. 영화는 덤벙대고 실수가 잦은 엄마를 보살피려는 키쿠코의 노력, 잦은 이주로 낯선 지역에서 늘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키쿠코의 고민, 그러면서도 한곳에 마음을 주면 엄마의 사정에 따라 언제 터전을 떠날지 몰라 엄마와 달리 사람과 장소에 쉽게 정을 주려 하지 않는 키쿠코의 혼란까지 외면하지 않고 살뜰히 챙긴다. 영화의 초반과 후반, 두번에 걸쳐 서술되는 니쿠코의 인생 또한 지난한 여성 수난사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삶의 위기와 무관하게 천성적으로 긍정적이고 여러 시련에 궁색해하지 않는 니쿠코는 타인에게 주었던 정의 크기만큼 그에게 책임을 다하려는 인상적인 인간상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항구의 니쿠코짱!>은 두 세대의 여성이 각자 자신의 삶을 응시하고 격파해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오키상 수상작인 니시 가나코의 <항구의 니쿠코짱>을 원작으로 하며, 제23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개막작이자 특별상 수상작이다.

JEONJU IFF #1호 [인터뷰] 전진수·문석·문성경 프로그래머 "정체성은 유지하며 저변을 넓힌다"

개·폐막작 매진, 전체 예매율 83%… 개막을 앞둔 전주국제영화제(이하 전주영화제)가 예열 과정을 마쳤다. 예년보다 더 적극적인 관객 참여가 예상되는 가운데 고유의 개성을 간직한 다채로운 작품들이 전주에 모였다. 영화제 개막 3일 전 설렘과 걱정이 공존하는 분위기 속에서 전진수, 문석, 문성경 프로그래머를 만났다. - 지난해 오프라인 행사를 확대하면서 영화제 정상화에 시동을 걸었다. 올해는 영화제를 기다리는 관객의 설렘이 더 크게 느껴진다. = 전진수 실제로 관객 반응의 변화를 몸소 체감하고 있다. 지난해 사전 예매율이 67.2%에 달하는데 올해는 벌써 83%를 넘어섰다. 개막 전부터 많은 사람의 관심이 느껴진다. 해외 게스트도 작년엔 50여 명 정도였는데 올해는 그보다 두 배가 넘는 100여 명의 손님이 전주를 찾는다. 티켓과 숙소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반응도 듣고 있다. 여러 걱정과 함께 긍정적인 분위기를 느끼는 중이다. - 올해 전주영화제는 ‘우리는 늘 선을 넘지'라는 명랑한 슬로건과 함께한다.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전주영화제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문장이다. 이 의미를 가장 잘 보여줄 상영작을 꼽아준다면. = 전진수 작년까지 ‘영화는 계속 된다'는 슬로건을 썼다. 막막한 팬데믹 상황 속에서 어떻게 영화를 지속할 수 있을지 고민을 담은 문장이었다. 이제 코로나19가 완전히 잦아든 엔데믹 단계에서 이 슬로건을 계속 사용하는 건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아이디어를 공모했는데 우리의 명랑한 팀원들이 명랑한 슬로건을 만들어 줬다. (웃음) = 문석 전주영화제는 언제나 참신한 소재와 소외된 이야기, 주목받지 않은 신진 창작자를 주목해 왔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이번 슬로건의 색깔이 잘 맞았다. ‘영화보다 낯선’ 섹션에 해당하는 모든 작품이 올해 슬로건의 의미를 잘 보여줄 것 같다. 한국경쟁 섹션에서 상영되는 손구용 감독의 <밤 산책>은 아예 소리가 나오지 않는 등 실험적인 모습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마스터즈 섹션 중 라브 디아스 감독의 <필리핀 폭력 이야기>는 무려 러닝 타임이 413분이라 시간이 선을 넘었다. (웃음) 이런 독특한 지점들을 흥미롭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지역 밀착형 프로그램들도 눈에 띈다. 전주라는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골목상영이나 전주시와 함께 기획해 산책, 마중, 음악으로 주제를 확장한 ‘전주씨네투어' 프로그램이 인상적이다. 관객의 저변을 넓히기 위한 기획인가. = 문석 기존 영화제 관객뿐만 아니라 영화제에 큰 관심이 없던 일반 시민까지 우리의 잠재 관객으로 만들 수 있는 접점이 될 수 있다. 그 관심을 이끌기 위해 전주 어느 곳에나 영화를 만날 수 있는 방식을 택했다. 한 명이 보든 백 명이 보든 그곳에 여전히 영화가 상영되는 분위기를 만들어 자연스럽게 유입을 끌어내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영화제 관객의 문턱을 낮출 수 있다. = 문성경 전주씨네투어-마중은 독립영화계에서 활약하는 배우들이 많이 소속된 ‘눈 컴퍼니’와 함께 한다. 상영작에 출연하는 배우가 관객과의 대화(GV)에 참석하면 같은 소속사의 다른 배우가 모더레이터를 맡아주는 방식이라 더 편하고 유쾌한 분위기가 이어질 것 같다. 배우들만 아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굉장히 흥미로운 시간이 될 것이다. - 올해 특별전 중 ‘KAFA 40주년 특별전'이 눈에 띈다. 어떤 의미를 담아 기획되었나. = 문석 한국영화아카데미(이하 KAFA)는 한국 영화의 흐름을 만들어 낸 곳이다. 처음 설립된 1984년 이후 김의석, 박종원, 장현수(1기), 임상수(5기), 이재영(7기), 봉준호, 장준환(11기) 등 중대한 영화인들을 많이 배출했다. 결국 한국 영화는 KAFA 자체의 역사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영화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고자 기획하게 되었다. 그런데 작품 수가 너무 많았다. 기본적으로 실습 작품과 졸업 작품이 있고, 이외에도 무수한 장편이 존재한다. 한편 단편 영화를 다시 살펴 보니 우리가 그동안 잘 몰랐거나 다시 보니 더 좋은 작품이 많았다. 장편 영화의 경우 극장 개봉을 했거나 OTT 플랫폼에 많이 소개된 반면 단편 영화는 전문 플랫폼이 활성화돼 있지 않아서 관객이 접근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기수별 졸업생에게 설문을 돌리고 현·전직 교수 10명의 추천도 받아 총 40편의 상영작을 선정했다.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선정할지 헤매는 시간이 있었지만 여러 논의를 거쳐서 지금에 이를 수 있었다. - 저예산 영화 제작을 독려하기 위해 마련된 지원 사업 ‘전주시네마프로젝트’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했다. 이를 기념하는 특별전 ‘전주시네마프로젝트: 프로듀서로서의 영화제’가 열린다. = 문성경 전주시네마프로젝트는 1년에 장편 영화 3편, 편당 1억씩 지원하는 제작·투자 프로그램이다. 지금까지 국내외 통틀어 33편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10년의 세월을 되돌아보고, 또 앞으로의 10년을 어떻게 나아갈지 고민해 보기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우아한 나체들>(2016) <노무현입니다>(2017) <겨울밤에>(2018) <이사도라의 아이들>(2019) 등 지금까지 제작된 국내외 작품을 상영하고, ‘오늘과 다른 내일, 영화의 확장을 꿈꾸다’라는 주제로 유관 컨퍼런스를 기획했다. 최근 영화 산업 자체가 침울하다 보니 영화제도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자리를 통해 우리가 모색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해 보려 한다. 영화를 보는 축제뿐만 아니라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생각하는 축제로서도 의미가 있다. - 영화제 개막을 앞두고 프로그래머로서 포부와 바람이 있다면. =전진수 사고 안 나고 안전하게 마칠 수 있으면 좋겠다. 또 영화제를 찾는 감독과 관객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감동을 받아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프로그래머로서 갖는 꿈이자 바람이다. =문석 집행위원장 선임 관련 이슈가 한동안 시끄러웠다. 많은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전주영화제의 정체성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모두가 확인할 수 있는 자리와 기회가 되길 바란다. =문성경 이번 전주영화제에도 실험적이고 개성 넘치는 작품들이 많이 모였다. 멀티플렉스 극장이나 OTT 플랫폼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들이 아니다. 낯설지만 사랑스럽고 묘하지만 매력적인 이 작품들을 관객들이 신나게 접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최지은의 논픽션 다이어리] ‘MBTI vs 사주’

기획 단계에서 재미있을 거라 믿었던 아이디어가 막상 구체적 결과물로 만들어졌을 때 이도 저도 아니었던 경우는 생각보다 흔하다. 하지만 지난 수년 사이 적어도 10대에서 40대 사이에서 보편적 스몰 토크 주제로 자리 잡은 ‘MBTI’(성격유형지표)를 본격적으로 파고들어본다면 의미까지는 몰라도 재미는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티빙 오리지널 는 출연자 150명에게 자신의 사회적 가면을 상징하는 종이봉투를 씌운 다음 한자리에 모아 여러 가지 상황에 반응하게 만드는 대규모 실험 다큐멘터리를 지향한다. 그런데 사주는 MBTI만큼 온갖 상황에 재미 삼아 응용되는 틀이 아니기에 처음부터 축이 기울고, 맛도 없으면서 너무 많이 올라간 고명 같은 키워드 ‘MZ세대’가 자꾸 강조되는 바람에 방향성은 한층 더 흐트러진다. MZ세대가 사주에 빠진 이유는 “스펙 경쟁에 내몰리다 보면 자아가 증발하므로 자신에 대해 알고 싶은 절박한 요구 때문“이라거나, 스튜디오에 음악을 튼 다음 “춤을 출 유형은 E(외향형)입니다”라고 선언하는 전문가 멘트에선 어떤 전문성도 찾을 수 없다. 슬픈 영상을 보여준 뒤 울지 않는 사람은 ‘극T(사고형)’라고 진단하거나 약속 시간을 엄수하는 사람 중 사주의 ‘정관’ 보유자가 많았다는 식의 실험은 엄정하지도 신선하지도 않다. 서로의 MBTI와 사주를 모른 채 종이봉투를 쓰고 진행되는 짧은 소개팅 역시 토요일 오후 강남역 스타벅스 옆 테이블에서 이루어지는 어색한 대화를 엿듣는 것보다도 지루하다. 결국 의 근본적인 문제는 특별히 재미있거나 매력적이지 않은 출연자들을 모은 다음 사주와 MBTI에 끼워맞춰 캐릭터와 서사를 부여하려는 데서 비롯된다. 물론 MBTI가 자신을 특별한 사람으로 해석(당)하고 싶어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욕망과 함께 급부상했음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CHECK POINT “친구의 교통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T와 F(감정형)의 반응 차이”, “J(인식형)와 F가 함께 여행을 간다면?” 같은 게시물은 지겹지만 사람들이 일상에서 MBTI를 가지고 노는 익숙한 방식이기도 하다. 그런데 에서는 사주의 ‘식상생재’를 보여주려는 의도로 출연자에게 갑자기 주인이 자리를 비운 붕어빵 노점을 맡겨버린다. 이렇게 비현실적 상황에 어떻게 이입할 수 있을까? 큰 틀에서 어긋난 기획을 수습하려다 보면 더해지는 것은 무리수뿐이다.

[인터뷰] 열심의 진심 <해피메리엔딩>, 이동원, 성태, 신명성 인터뷰

- 원작인 동명의 웹툰이 많은 독자에게 사랑을 받아 드라마화되었다. 세 배우는 <해피메리엔딩>과 어떻게 인연이 닿게 되었나. 성태 1차 오디션을 진행하고 2차 연락을 받기까지 기다림의 시간이 조금 있었다. 2차 오디션에서 명성이 형과 함께 들어간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로 잘될 거라는 확신이 크지 않았던 터라 연락을 받고 엄청 놀랐다. 신명성 성태랑 2차 오디션에 같이 들어갔을 때 원래는 ‘승준’과 ‘재현’의 대본을 받았다. 그러고 나서 다다음 차례에 다시 ‘호연’으로 연기해달라는 말을 들었다. 대기실에서 성태와 리딩을 맞춰보고 오디션을 새로 본 뒤 최종적으로 호연 역을 맡게 됐다. 이동원 나는 오디션을 늦게 봤다. 민채연 감독님과의 첫 미팅에서 준비한 대본을 읽는데 오디션이 생각보다 오래 이어졌다. 승준의 주된 감정을 드러내는 파트나 긴 대사를 모두 연기했다. 축가자라는 승준의 설정에 따라 노래를 연습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보여드리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그날 함께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 슬픔을 간직한 승준과 직진하는 재현, 무심한 듯 다정한 호연까지 로맨스 장르에 걸맞은 세 인물의 성격이 돋보인다. 각 인물을 어떻게 분석하고 이입하려 했나. 성태 사실 재현은 나와 많이 다르다. 나는 평소 정적이고 조용한 편인데 재현은 전체적으로 에너지를 주는 역할이라 텐션이 높다. 그런 차이를 바탕으로 재현의 원래 모습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신명성 호연이는 무심한 편이지만 승준의 곁에서 항상 응원하고 잘 챙겨준다. 일명 ‘츤데레’ 같은 기질이 있다. 내게도 그런 면이 있어 호연과의 공통점이 편하게 작용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동원과 오랜 친구 사이다. 이동원 10년 정도 알고 지낸 친구다. 명성이 ‘크나큰’ 멤버의 가장 친한 친구라 알게 됐는데 같은 작품에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신명성 처음엔 너~무 어색했다. (웃음) 그래도 조금씩 자연스러워졌다. 이동원 승준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인물 분석표에 따라 공부했다. 기본적으로 승준이 어떤 성격과 성향을 가졌고, 그런 모습을 보이게 된 이유에 어떤 전사가 있는지 분석적으로 이해하려 했다. 이런 과정 덕분에 승준을 표현하기가 조금 더 편했다. - 특히 아이돌 연습생이었던 승준의 배경은 이동원 배우 본인의 이야기와 일치한다. 자신이 자연스레 투영된 부분이 있었을 텐데. 이동원 공감되는 지점이 있었다. 승준이 맞닥뜨린 아이돌 지망생의 현실이나 어려움 등은 직접 경험하지 않았어도 오랜 연습생 생활로 자연스레 이해가 됐다. 중간에 승준이 춤추는 장면이 있는데 다들 “동원이는 아이돌이니까 잘하겠지” 하더라. 사실 워낙 오랜만에 추는 거라 약간 부담감이 있었다. 기대에 부응하려고 열심히 했다. - 성태 배우는 <알고있지만,> <갯마을 차차차> 등 주로 로맨스물에 출연해왔고 신명성 배우는 <인간수업> <방과 후 전쟁활동> 등 장르물에 참여해왔다. 첫 BL(Boy′s Love) 장르물의 도전은 어떠했나. 성태 같은 로맨스지만 <알고있지만,>이나 <갯마을 차차차>에서는 조연으로 나왔다. 간간이 얼굴을 비추며 이야기를 채우는 것과 달리 <해피메리엔딩>에서는 주연으로 극 전체를 적극적으로 이끌어가야 했다. 그런 면에서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동시에 앞섰다. 가만히 있는다고 불안감이 사라지는 게 아니어서 그럴수록 더 대본을 보거나 연기를 소화하면서 정면 돌파하려 했다. 신명성 <해피메리엔딩>에서는 전작보다 더 생활 연기가 부각됐다. 극적인 분위기도 많이 다르고. 그래서 승준에게 말하는 호연의 눈빛이나 어투 등 비언어적인 부분을 더 신경 쓰려 했다. 말할 때 틱틱거림이 느껴지지만 눈빛엔 다정함과 따뜻함을 담았다. 다만 너무 진한 로맨스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균형이 중요했다. - 극 중 셋 모두 계속 무언가를 하느라 바쁘다. 먼저 승준과 재현은 축가자와 반주자로 묶여 노래와 연주를 소화해야 했는데 그 과정이 궁금하다. 이동원 이 장면을 위해 성태와 같이 노래 녹음을 했다. 그런데 정말 어려웠다. 팀에서 보컬이 아닌 랩 파트를 맡고 있어 노래를 부르는 게 약간 어색했다. 하지만 음악감독님의 섬세한 디렉팅으로 많은 도움을 얻었고, 나 또한 오랫동안 연습하며 최선을 다했다. 버스킹 장면은 평소에도 기타를 즐겨 쳐서 비교적 쉽게 촬영했다. 성태 반주자로서 피아노를 능숙하게 연주할 수 있어야 하는데 피아노를 못 친다. (웃음) 그래서 한곡을 2주 동안 피아노 선생님께 매달려 배웠다. 악보도 읽을 줄 몰라 그냥 곡 전체를 통째로 외웠다. 노래 녹음은 음역대가 높아서 힘들었는데 예전에 가수 연습생을 한 경험 덕분인지 다행스럽게 잘 마칠 수 있었다. 이동원 엄살이다. (웃음) 녹음할 때 음이 안 올라간다고 낮춰달라고 했는데 막상 하니까 그냥 올라가더라. 감독님이 잘하는데 왜 못하는 척하냐고 웃으셨다. - 두 배우가 음악과 함께할 때 신명성 배우는 물과 가까이 지냈다. 서핑 강사로서의 호연의 면모를 보여줘야 했는데. 신명성 물을 정말 무서워한다. 촬영 전에 서핑을 익히기 위해 배우러 다녔는데, 한번은 동원이랑 같이 갔다. 정작 물이 무서운 나도 금세 적응했는데 정말 너무 못하더라. (웃음) 서핑 강사라는 설정 때문에 노출이 꽤 있었고 한달 반가량 몸을 만드느라 바빴다. 중간에 날씨가 안 좋아서 촬영 일정이 조금 밀렸는데, 그때 식단과 운동을 병행하면서 살짝 예민해졌다. 오히려 물보다 이 과정이 더 무서웠던 것 같다. - 스타일링에서도 각자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어떤 점을 강조하려 했나. 신명성 활동복과 트레이닝복으로 서핑 강사의 스포티함을 강조했다. 또 일시적으로 까맣게 보이려 스프레이 태닝도 더했다. 야외에서 일하는데 피부가 하야면 어색할 것 같았다. 촬영 시기가 9월 즈음이라 물에 빠지면 꽤 추웠다. 그래서 최대한 안 빠지려고 안간힘을 썼다. (웃음) 성태 재현은 밝고 댄디하고 부드러운 이미지가 중요해서 밝은 갈색으로 염색하고 대체적으로 깔끔한 의상을 입었다. 카페를 운영하면서 반주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설정 자체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모습이지 않나. 그런 의외의 자유로움도 함께 드러내려고 했다. 이동원 승준이는 차분하고 눈에 띄지 않는 모노 톤의 옷을 많이 입는다. 타인과 섞이고 싶지 않은 심리적 상태를 반영하기도 했다. 그러다 가수의 꿈을 이뤘을 땐 헤어나 메이크업, 스타일링까지 더 화려해 보이도록 했다. 그 기점의 변화가 중요했다. - BL 장르는 특성상 자신이 인지하지 못했던 감정을 깨달아가는 과정이 특히 중요하다. 이러한 감정적 고조와 변화는 어떻게 담아내려 했나. 이동원 승준이는 재현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입장이기 때문에 액션보다 리액션에 집중된 인물이다. 처음엔 재현의 관심이 불편했다가 조금씩 궁금해하고 나중엔 마음의 문을 연다. 이러한 감정의 굴곡을 반영해가면서 상황에 몰입하려 했다. 기본적인 관계 설정에 굉장히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그대로 표현하는 인물이다. 성태 사실 재현은 ‘금사빠’ 캐릭터이긴 하다. 승준이를 만나기 전부터 다른 사람을 가볍게 만나고 금세 헤어지기도 했으니까. 다만 승준이 가진 독특함과 특별함에 끌리면서 그의 반응이 재미있게 느껴졌던 것 같다. 무엇보다 외적으로는 같은 남자더라도 사랑에 빠지는 데 큰 이유가 필요 없는, 여느 연애처럼 동일한 감정으로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두려 했다. - 인터뷰를 나누는 지금도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실제 촬영장의 분위기는 어땠나. 모두 또래라 금세 친해졌을 듯한데. 이동원 명성이와는 오랜 친구고 성태는 둘이 붙는 장면이 많아서 촬영 전부터 친해지는 게 중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자주 만나 술도 마시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성태 돈을 써본 적이 거의 없다. (웃음) 형들이 정말 많이 사줬다. 그중 최고는 역시 (SS501 출신) 김규종 선배. 이번에 아이돌 소속사 대표 주원 역을 맡으셨다. 이동원 저희에겐 대선배이다 보니 처음에는 조금 어려웠지만 밖에서 자주 만나고 워낙 편하게 대해줘서 이제는 정말 가까워졌다. 촬영할 때에도 같이 감정적으로 맞붙는 장면이 있었는데 어떻게 하면 내가 더 편하게 임할 수 있는지 계속 의견을 물어보며 배려해주셨다. 워낙 섬세하고 다정하다. 성태 우리 모두 규종 선배의 팬이다. 이 말 꼭 써달라! 신명성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에도 하트를 꼭 넣어주신다. 스위트, 그 자체다. - 김규종 배우가 맡은 악역도 3인의 관계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는 사람, 적극적으로 맞서는 사람, 피해자의 곁을 떠나지 않고 위로하는 사람으로서 주요 관계가 드러난다. 성태 규종 선배는 현장에서 미리 동선을 계산하고 합을 맞추는 과정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더구나 몸을 부딪혀 싸우는 장면이라 상대역의 상황까지 고려하는 듯하다. 사실 주원은 승준과 관계가 있는 인물이라 재현이 전면적으로 나설 수는 없다.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촬영 과정에서 이런 감정적 갈등을 나타내는 데 현실적인 부분을 많이 참조했다. 이동원 승준이는 주원으로부터 일방적으로 감정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다. 규종 선배는 그런 부분까지 생각하면서 자신이 얼마만큼 분노해야 적절한지 고민했다. 극이 안정적으로 진행되는 데 필요한 분노의 개연성을 고심한 듯했다. 워낙 섬세한 사람이라 전체 그림까지도 디테일하게 바라보는 것 같다. - 원작 웹툰 <해피메리엔딩>도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원작이 있는 게 마치 정답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원작은 어떻게 보았나. 이동원 일부러 보지 않았다. 좀더 승준을 나답게 보여주고 싶었고 시리즈화되면서 각색된 부분들도 유연하게 묘사하고 싶었다. 원작이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그 안에 갇히지 않으려 했다. 신명성 비슷한 이유에서 보지 않았다. 조금 더 내 안의 창작성을 반영하고 싶었다. 원작보다는 대본을 더 꼼꼼히 보면서 호연의 면면을 참고하려 했다. 성태 나는 초반까지만 보았다. 원작 속 재현의 분위기와 느낌을 참고하려 했다. 이런 기본 정보를 바탕으로 현장에서 감독님과 배우들과 함께 맞춰나가면서 조율점을 찾았다. 재현의 무드를 알 수 있어 초반 톤을 잡는 데 도움을 받았다. - 최근 1년 사이에 BL이 하나의 대중 장르로 떠올랐다. <해피메리엔딩>만의 강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성태 서로의 결핍과 아픔을 사랑으로 극복한다는 이야기에는 많은 사람들의 보편적인 희망과 바람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는 해피 엔딩을 원하니까. 또 그 과정에 악역의 개입과 늘 곁에 존재하는 호연 같은 친구가 재미를 더해주지 않을까. 이동원 <해피메리엔딩>은 수월한 방식으로 행복을 얻어내지 않는다. 굴곡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트라우마를 벗어나려는 한 사람의 성장물로 보아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사랑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좋다. 성태 자극적인 콘텐츠가 많지만 작품을 통해 담백하고 따뜻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무척 매력적이다. 사랑을 통한 뭉클한 감정도 잘 담겨 있다. 또 계절적으로도 잘 맞아서 봄에 보면 좋을 것 같다. 이동원 | 승준 역 ▶아이돌 ‘크나큰’의 리드래퍼 이동원의 첫 웹드라마 작품이다. 결혼식 축가자이자 보컬 트레이너인 승준은 작곡과 노래에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과거 아이돌 연습생을 준비하면서 소속사 대표 주원(김규종)에게 큰 상처를 입고 세상 모든 것에 방어적인 태도를 지닌다.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직진하는 재현이 낯설지만 어쩐지 그가 궁금하기도 하다. 세상만사를 경계하던 승준의 감미로운 축가 장면이 관전 포인트다. 성태 | 재현 역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속 아이돌 ‘D.O.S’의 메인래퍼 준 역을 선보였던 성태는 <해피메리엔딩>에서 카페 운영을 하며 결혼식 반주자로 활동하는 재현으로 등장한다. 지금까지 가벼운 만남을 즐겨왔지만 어쩐지 승준 앞에선 신중하고 진지해지고 마는 갭이 매력적이다. 승준을 향한 저돌적인 태도와 망설임 없는 고백이 설렘을 유발한다. 신명성 | 호연 역 ▶드라마 <인간수업> <성스러운 아이돌> <방과 후 전쟁활동> 등 장르물로 이력을 쌓아온 신명성은 승준의 오랜 친구 호연을 맡았다. 내향적이고 조용한 승준과 달리 쾌활하고 유쾌한 성격을 지녔다. 서핑 강사로 인기가 많으며 승준에게 틱틱대지만 행동과 눈빛은 그 누구보다 다정하다. 알 듯 말 듯한 호연의 미묘한 감정 연기가 포인트.

JEONJU IFF #3호 [인터뷰] '미확인' 전주영 감독, 한국 사회가 쏘아 올린 UFO

<미확인>은 그 제목처럼 알 수 없는 온갖 것들로 꽉 차 있다. 29년 전 지구 상공 곳곳에 다수의 UFO가 출현했단 세계관 아래 다채로운 서사와 형식이 종잡을 수 없이 가지를 뻗친다. 영화의 정체성을 대번에 파악하기 쉽지 않은데, 이것이 바로 전주영 감독의 기획 의도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자란 후 사회인이 되어서야 한국에 온 전주영 감독은 2018년쯤의 한국 사회를 ‘불가해’로 느꼈다. 집단적 갈등, 청춘들의 불안, 갑질, 부조리가 넘쳐나는 사회의 면면을 마주하면서도 문제의 원천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이 혼란스러움의 감정을 UFO라는 물질로 구현하고 탐구하게 됐다. 로테르담국제영화제, 싱가포르국제영화제 등 해외 유수 영화제에 이어 첫 국내 상영으로 전주를 찾은 전주영 감독은 한국 관객들과의 대화를 열렬히 기다리고 있었다. - 첫 장편영화 <미확인>의 기획 배경은? = 2018년에 기획을 시작했다. 당시 한국의 세태를 보면 뭔가 콕 집어서 말하기 힘든 혼란이 느껴졌다. 가령 부모님, 조부모님 세대는 한국전쟁이나 국가 단위의 산업화처럼 특정할 수 있는 난관들이 있었다. 열심히 삶을 이어 나가면 극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종류의 어려움들이었던 것 같다. <국제시장>처럼 말이다. 그런데 요즘의 우리 세대에게 무엇이 문제고 무엇이 불안하냐 물어보면 명확하게 답하기가 곤란하다. 세대 갈등? 지구온난화? 부동산? 문제는 많은데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지 영 모호하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도시 위에 미확인의 비행 물체가 있다는 설정으로 구체화했다. 처음엔 같은 세계관 속의 여러 일을 유튜브 시리즈로 연재하려고 했다. 하지만 하나의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여야 영화의 감정이 더 살아날 듯했고 결국 장편영화로 발전시켰다. - 애초 시리즈물로 기획했다는 전사가 있듯 <미확인> 속엔 페이크 다큐멘터리, 극영화, 뮤지컬, 뮤직비디오 등 다양한 형식이 공존한다. = 여러 형식 속의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장르에서 각자의 규칙을 따른다. 그래서 한 영화 속의 인물들임에도 서로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작금의 현실도 비슷해 보인다. 우리는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서 과거보다 더 연결돼 있다고 느끼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감정적으로는 더 멀어지고, 쉽게 갈등하고,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며 각자의 세계에 갇힌 느낌이다. 그래서 인물들이 각기 다른 세계, 장르의 벽을 깨고 만나는 순간을 영화 후반부에서라도 구현하고자 하는 바람이 있었다. - 전작인 단편 <시간 에이전트>도 그렇고 SF 장르를 표방하지만 사실은 그 속의 드라마를 더 중요히 여기는 것 같다. = 그렇다. 워낙 SF 장르영화나 책, 과학 지식에 관심이 많기에 SF의 외피를 택하고는 있다. 그러나 장르적 재미를 목표하기보단 내 이야기를 맘껏 펼치고 싶은 욕망이 최우선이다. 어떻게 보면 대중성을 얻기 위한 편법이지 않을까. 실상은 이게 뭔가 싶은 이상한 이야기인데, SF라는 껍데기로 관객을 유혹하는 거니까. (웃음) - 그래도 뚜렷한 SF적 설정이 있다. 인간 모습의 외계인이 사회에 녹아들어 있다는 ‘외계인 정신 몰수설’이다. 일종의 바디 스내처 서사인데 흥미로운 점은 본인이 외계인인지 사람인지를 정확히 알 방도가 없다는 부분이다. = 인간과 외계인의 경계를 최대한 모호하게 표현하려 했다. 이런 모호함이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세상의 모습이다. 실제 우리 삶에선 대개 무엇이 옳고 그른지 확실치 않다. 예를 들어 본인의 정체를 알고 싶어서 DNA, X-ray 검사를 받는 인물이 나온다. 과학적 검증에 따라 인간이라는 결과가 나왔는데도 본인의 정체성을 의심한다.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 역시 과학적으로, 이성적으로 증빙할 수 없지만 유지되는 것들이 많다. 가령 종교, 사상, 사회적 정체성처럼 말이다. 논리적인 정답을 떠나서 본인이 무엇을 믿고 판단할지는 순전히 본인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관객들도 각자의 생각대로 영화의 설정과 상황을 판단해 주면 좋겠다. - 영화에서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기도 한다. UFO와 외계인을 신봉하는 신도들이 등장하는데 어떤 의도인가? = 아버지가 목사이시다. 덕분에 어릴 적부터 종교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해온 편이다. 종교의 역할 중 하나는 현실의 불가해한 현상들에 답을 주는 일이다. 그러니 UFO가 지구에 나타난다면 분명 이에 대한 답을 원하는 사람들, 그리고 답을 주려는 신흥 종교가 생기겠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신도들이 UFO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으며 초자연적인 현상처럼 느끼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사실 이 물줄기는 지면의 수증기가 UFO에 맺혀서 내리는 일종의 비일 뿐이다. 단순한 물리적 현상에도 종교가 주관적인 상상을 통해 답을 내려는 상황을 그리고 싶었다. - 비가 내리는 장면에서 UFO를 확대해서 보여준다. 철 같은 표면에 고랑이 나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러한 모양을 택한 이유는? = 철광석의 질감을 구현하려 했다. UFO의 정체성을 최대한 중립적으로 만들고 싶어서다. <디스트릭트9>이나 <인디펜던스 데이>의 UFO를 보면 굉장히 기계적인 모습이다. 또 어떤 영화의 UFO는 생물처럼 꿈틀거리기도 한다. 이런 특징이 있으면 관객들이 UFO의 맥락을 구체적으로 유추할 것 같았다. 그래서 자연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철의 표면을 레퍼런스로 삼았다. UFO가 무난한 구체 모양인 것도 같은 이유다. 정사각형, 정삼각형이면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만 같으니까. (웃음) - ‘중립적’이라고 하니 외계인을 자청하는 남자 둘의 대화가 떠오른다. 외계인과 인간의 공존이 가능할지 아닐지 토론하는 대목이다. 여기서도 영화는 두 세계의 공존 가능성을 중립적으로 다루려는 것 같다. = 우리 주변 사람들도 각자 다른 생각, 사상, 믿음을 지니고 살지 않나. 설사 외계인끼리일지라도 의견이 다르고 대립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론 이런 같음과 다름의 문제가 명백히 판가름 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덧붙이고도 싶었다. 외계인의 눈에는 박테리아든 코끼리든 사람이든 비슷한 지구의 생명체일 거다. 이런 타자의 시선에서 인간의 존재성을 달리 바라보고 싶었다. 글쎄, 말하다 보니 너무 혼란스러운 답변인 것 같아서 미안하다. (웃음) 아무튼 앞에서도 말했듯이 <미확인>의 결론은 오로지 관객의 몫이다. 그래서 더욱더 관객과의 대화가 기대된다. 해외 관객과 다른 한국 관객만의 새로운 해석이 많을 것 같다. 얼른 만나고 싶다.

[기획] ‘클로즈’와 벨기에영화의 신성 루카스 돈트

제75회 칸영화제에서 클레르 드니의 <스타즈 앳 눈>과 공동으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루카스 돈트의 <클로즈>가 개봉한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도 오르면서, 샹탈 아커만과 다르덴 형제 등으로 대표되던 벨기에영화계에 새로운 기대를 안기기도 했다. 루카스 돈트는 이미 5년 전, 데뷔작 <걸>로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과 퀴어종려상을 거머쥐며 열렬히 환대받은 젊은 연출자다. 전작에서 발레리나를 꿈꾸는 트랜스젠더 소녀의 이야기를 다뤘던 그가 이번에 동행한 이들은 13살 소년들. 영화는 매일 붙어다니고, 머리를 맞대고, 같은 침대에 눕는 게 자연스럽던 두 친구의 사춘기로 접속한다. 어두운 아지트에서 두 소년이 바깥을 살핀다. “소리 내지 마.” 무엇 때문에 이들은 속닥거리는 걸까? 대화를 듣고 있자니 80명쯤 되는 군대가 돌진해오고 있는 것 같다. 지붕을 에워싸는 병사들을 피하기 위해 두 소년이 택한 방법은 셋을 센 뒤 힘껏 달리기. 물론 이 상황은 가짜다. 레오(에덴 담브린)와 레미(구스타브 드 와엘)는 레오의 부모가 운영하는 화원의 만개한 꽃들 틈으로 장난스럽게 달음박질친다. <클로즈> 도입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은 영화가 가벼운 거짓말로 시작한다는 것과 그 거짓말을 거뜬히 믿고 응수하는 관계가 여기 있다는 것이다. 군대의 갑옷 소리는 오로지 둘에게만 들린다. 둘의 사이가 멀어지는 과정 소년들의 상상은 계속된다. 밤에 쉽게 잠들지 못하는 레미를 위해 옆에 누운 레오는 상냥한 비유를 들어 친구를 달랜다. “넌 아기 오리야”로 운을 떼는 그의 동화는 마치 어린 날 선잠에 듣던 자장가 같다. 그러고 보니 영화에서 이토록 ‘순수’하게 가까운 사이를 본 것은 꽤 오랜만이다. <클로즈>는 분노나 슬픔 없이 서로에게 무결한 관계를 그리며 시작한다. 그러나 이 신화가 금방 깨지는 것은 이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하면서다. 중학교에서의 첫 학기가 시작되자 동급생들은 늘 함께하는 둘을 연인으로 의심한다. 적극적으로 부인하는 레오와 달리 내향적인 레미는 의견을 좀체 드러내지 않는다. ‘내 몸이 곧 네 몸’ 같던 시간은 점차 균열을 맞는다. 영화는 항상 붙어 있던 두 소년이 서로에게 거리를 두는 과정을 담는 데 집중한다. 오프닝에 등장했던 아지트에서 레미가 “너는 안 들려? 발소리 들리잖아”라며 둘만의 놀이를 다시금 반복할 때, 레오는 무심하게도 “집에 돌아갈까?”라고 대답한다. 이 단순한 거절은 둘의 세계가 와해되는 징조다. 레오와 레미 사이에는 이전에 없던 거리감이 묵직하게 자리한다. 영화는 중반부에 주요 인물이 퇴장하면서 느슨하게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클로즈>는 전작인 <걸>을 환기하면서도 조금 다르게 방향을 튼다. <걸>이 성전환 수술을 앞둔 MTF 트랜스젠더를 주인공으로 삼아 퀴어 정체성을 전면적으로 부각한다면, <클로즈>는 본격적인 정체화를 겪지 않은 13살 소년들을 통해 이들의 우정 혹은 사랑이 어떤 자리에 위태롭게 놓이는지 관찰한다. 쉽게 압축하자면 <걸>은 주체가 자신을 이루는 구성물을 이미 자각한 뒤 후행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클로즈>는 자연으로 여겨지던 환경이 급진적으로 붕괴(당)하며 맞이하는 일차적 혼란에 무게를 싣는 편이다. 시작의 위치부터 다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클로즈>는 <걸>보다 더 수동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많은 작품에서 퀴어함을 터부시하거나 억압하는 부모/어른의 이미지는 익숙한데, 돈트의 작품 속 부모들은 이상적일 정도로 바람직한 편이다. <걸>에서 라라(빅토르 폴스테르)의 아버지는 그녀의 선택에 협조적이고, <클로즈>의 양쪽 부모 또한 온정적인 어른들이다. 다만 레오와 레미의 문제가 부모들에게 보였는지 아닌지는 묘하게 가려져 있다. 이는 가정과 학교라는 양분된 체계가 서로 다른 자연으로 이뤄져 있음을 강조하는 설정이다. 두 소년에게 ‘각성’의 빌미를 제공하는 첫 장면은 바로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이뤄진다. 여자아이들이 레오와 레미를 향해 “너희 사귀니?”라고 질문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인물들 옆에 강박적이리만치 붙어 있는 카메라가 유난스럽게도 멀어지는 순간이 한번 있는데, 이는 새 학기 아침 두 소년이 교정에 막 입장할 때다. 전작부터 유사하게 이어지며 확인되는 돈트의 뚜렷한 스타일은 (<걸>에서 디스포리아의 곤란함을 체현하기 위해 라라의 신체 곳곳을 포착하는 근접숏을 열거했듯) 거의 모든 숏이 클로즈업으로 이뤄져 매번 인물들이 가슴팍 위에서부터 담긴다는 것인데, 이 첫 학교 장면에서 카메라는 예외적으로 롱숏을 시도한다. 두 사람에게서부터 점차 뒤로 멀어지는 카메라는 공놀이를 하거나 책가방을 멘 채 수다를 떠는 학생들의 부산스러운 광경을 넓게 담는다. 달리 말해 <클로즈>가 마스터숏을 할애하는 유일한 장소가 학교로, 이곳에서만 이례적인 (비)규칙이 허용된다. 학교라는 커뮤니티가 부과하는 이질적인 시스템이 곧 시작될 테니 말이다. 친밀함의 선 <클로즈>는 많은 퀴어영화에서 성장기 인물을 다룰 때 전제하는 성정체성에 관한 내적 갈등을 요체로 삼진 않는다. 대신 (이 이상할 정도로 평화로운 두 가정의) 친밀함이 지니는 모호한 틈을 주목한다. 두 소년은 지나치게 가까워서 ‘문제’가 된 것인데, 이 친밀함을 수용하는 가장 강력한 두 갈래의 반응은 실은 보편적인 율법 아래 상충하는 관점이다. 하나가 인물들의 퀴어함을 긍정하는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인물들의 근친성을 옹호하는 것이다. 여자아이들의 질문에 레오는 “너무 어릴 적부터 친구라 형제 같아서 그래”라고 말한다. 어떻게 형제는 퀴어를 부정하는 타당한 근거가 되는 것일까? <클로즈>는 여자아이들이 으레 하듯 손을 잡고 어깨에 기대더라도 더 이상하게 받아들여지는 남자아이들 사이의 친밀함을 어떻게 규정할지를 과제로 삼는다. 이 지점에서 2부로 넘어가며 레오의 형인 샤를리의 비중이 꽤 높아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2부의 주된 시점이 레미의 엄마 소피(에밀리 드켄)에게 당도한다는 사실을 차치하면, 다수의 프레임에서 샤를리가 레오와 동행한다. 레오와 레미가 학교 광장에서 크게 몸싸움을 벌일 때 형 샤를리는 대체 어디서부터 달려왔는지 모를 사이에 도착해 레오를 보호한다. 둘은 함께 스쿠터를 타고 등교하고, 같이 부모의 화원에서 장난을 치거나 트럭에 앉아 몸을 맞댄다. 이전에 매일 레미와 자던 레오는 이제 형 옆에 눕는다. <클로즈>의 2부는 혈연관계의 친밀함을 증대시키며 이 위화감 없이 허용되는 접촉이 레오와 레미 사이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 질문하게 만든다. <클로즈>에 새겨진 가족의 그늘은 이토록 끈끈하고 확고하여 모종의 은밀함이 깃들어 있다. <클로즈>는 중의적 뜻을 지닌 제목을 표상하듯 ‘닫다’와 ‘가깝다’라는 양극의 운동을 난사하고 있지만, 사실 (창)문 등을 통해 인물들의 이격을 주요한 정동으로 제시한 사례나 접촉의 문제를 민감하게 형상화한 사례는 많았다. 차라리 퀴어함의 조건에 형제의 테두리를 겹쳐 쓰는 지점을 거슬러 독해하는 시도는 어떨까? 이는 형제 관계에 은닉된 섹슈얼리티를 바라보려는 시도라기보다는, 1부의 상실 이후에도 혈연의 안정성과 정형성이 관객에게 무리 없이 유지되는지 시험할 여지가 생겨난다는 뜻이다. 가족의 자연스러운 친밀함과 친구의 자연스러운 친밀함은 어떻게 다른가? 그리하여 우리는 퀴어를 어디부터 어디까지 정할 수 있는가? A와 B는 서로 겹칠 수 없는가? A의 우세가 B의 성질을 완벽히 방어할 수 있는가? 여러 물음에도 <클로즈>는 안전한 결말로 수렴한다. 특히 2부에서 레오가 응시하는 대상인 소피의 직업이 조산사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이 엄마의 형상은 무염시태한 성모처럼 자애롭게 묘사된다. 소피로 분한 에밀리 드켄의 이미지는 그녀가 배우로 살아온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이 유사 모자 관계의 서사를 따라 로제타의 얼굴을, 그리하여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환기하는 구석이 있다. 때문에 <클로즈>의 2부는 일견 <아들>이나 <자전거 탄 소년>의 변주처럼 보이기도 한다. 신예라는 위치를 감안하더라도, 돈트는 그 비교군(혹은 참조점)이 많은 연출자다. <가디언>을 비롯해 유수의 지면들이 <클로즈>와의 연관성을 주장하며 언급한 영화들만 해도 프랑수아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보이후드>, 배리 젠킨스의 <문라이트>가 있다(물론 소년의 성장기라는 협소한 공통점에 치중한 자의적 목록에 가깝다). 마치 오르페우스 신화를 소년의 관점에서 변용한 듯한 지점은 셀린 시아마를 함께 거론해도 이상해 보이지 않을 정도다. 그렇게 <클로즈>는 영화 속 퀴어(혹은 퀴어 아닌 것)의 콘텍스트를 다시금 모색하는 한편, 선배들에게서 받은 영향을 따라 안전한 서사로 귀착하는 일을 동시에 벌인다. 대단한 열망과 엉뚱한 재능을 품은 이 연출자가 만들 세 번째 영화는 어떤 모양이 될지, 아직 단언하기가 어렵다. 레오와 레미 <클로즈>에서 아무래도 제일 놀라운 것은 레오와 레미를 연기한 두 배우다. 잘 어울린다는 말 이상으로 조화로울 뿐 아니라 각자 맡은 인물에 확 흡수된 듯한 두 친구는 어떻게 <클로즈>에 합류했을까. 루카스 돈트는 레오와 레미의 나이대에 적합한 캐스팅을 위해 초등학교의 마지막 학년 또는 중학교의 첫 학년을 보내고 있는 소년들을 위주로 찾아다녔다. 총 580명에 달하는 아이들을 만났는데, 레오를 연기한 에덴 담브린(위)에 관한 일화는 독특하다. 기차에 타고 있던 루카스 돈트가 우연히 옆에서 친구들과 대화 중인 담브린을 보게 된 것. 때마침 막스 리히터의 음악을 들으며 감격에 젖어 있던 그는 담브린의 눈에 “숨겨진 세계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 오디션을 제안했다. 캐스팅 단계에서는 각 20명으로 이뤄진 소년들의 그룹을 초대했고, 공교롭게도 담브린과 구스타브 드 와엘(맨 위)이 같은 그룹에 속해 있었다. 둘의 조화가 마음에 들었던 돈트는 이들을 레오와 레미로 낙점했다. 루카스 돈트라는 새 가능성 벨기에 출신의 1991년생 루카스 돈트는 여러 단편영화를 작업하다 2018년, 발레리나 노라 몽세쿠흐의 실화에서 영감을 받아 연출한 첫 장편 <걸>을 통해 화려한 데뷔를 치렀다. 칸에서의 스포트라이트는 그로 하여금 단번에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했다. 2019년에는 <포브스>가 선정한 ‘유럽의 영향력 있는 30살 이하 30인’(30 Under 30 Europe) 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영화 경력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는 예술학교에서 패션을 가르쳤던 어머니. 돈트는 12살 때 어머니에게 선물받은 카메라로 일상의 이모저모를 찍기 시작했고, 2014년부터는 어머니의 도움으로 의상 보조 역할을 맡아 영화와 시리즈 촬영 현장을 넘나들었다. 안락한 가정환경에서 차곡차곡 꿈을 키워왔지만, 사실 10대 시절의 그는 아무 데도 속하지 못해 괴로웠다고 회고한다. 특히 “여성스럽다”는 이유로 자주 놀림감이 되었다. 그 불안했던 시간은 자연스럽게 <클로즈>의 이야기와 맞닿게 되었다. 그사이 30대가 된 돈트는 어느덧 벨기에영화계의 새로운 얼굴이 되었다. 그는 현재 <도주왕> <호수의 이방인> 등 알랭 기로디와 오랫동안 작업해온 각본가 로랑 뤼네타와 협업하여 세 번째 장편영화를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