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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사랑해, 말순씨> 찬반양론 [2] - 남다은 비평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장 의아한 점은 이것이다. 왜 <사랑해, 말순씨>일까? 왜, <사랑해, 엄마>가 아니라 <사랑해, 말순씨>일까? 영화를 보기 전까지 별다른 사전 지식이 없었으므로, 나는 박흥식은 이제 엄마가 아닌, 엄마의 ‘이름’을 부르고 있구나, 했다.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고, 말순씨라고 부르는 것의 그 의미심장함. 아마도 그는 <인어공주>에서 매우 긍정적인 의미로 한 발자국 나아간 게 분명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뒤, 동일한 제목이 다른 의미로 다시 의아해진다. “사랑해, 말순씨”라고 말하는 자는 누구인가? 왜 하필이면, “사랑해, 은숙(주인공 광호가 짝사랑해 마지않던 여인)씨” 혹은 “사랑해, 내 십대의 추억”이 아니라, 말순씨란 말인가? 이 영화에서 말순씨가 다른 인물들에 비해 그다지 특별한 비중을 차지하지 않음을 깨달은 순간, 나는 더욱 궁금해졌다. 단순히 관객 동원용이었나, 아니면 말순씨를 연기한 문소리 때문이었나. 우습지만, 이 이상한 제목에 대한 집착에서 이 글의 그림은 시작된다. 그러니까, <사랑해, 말순씨>라는 영화가 반드시 <사랑해, 말순씨>라는 제목을 달아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던가. 소년성장영화 클리셰의 반복 영화가 시작된 지 얼마지 않아, 나는 말순씨가 등장하는 장면이 교복을 입은 까까머리 소년의 장면에 양적인 측면에서 현저히 뒤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불길했다. 이건, 말순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또 소년의 성장기에 대한 이야기란 말인가! 최근 우리나라 소년성장기영화의 클리셰. 폭력적인 학교, 짝사랑, 성적 호기심, 도색잡지, 적당한 반항심, 그리고 박정희의 사진과 전두환의 목소리, 혹은 그들의 그림자. 19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하는 <말죽거리 잔혹사> <친구> <해적, 디스코 왕 되다> <품행제로> 등에 반복 등장하는 이미지들. 이 영화들은 분명 과거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들이 재현하는 시대성은 역사가 제거된 이미지이다. 사진과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갇힌 박정희와 전두환의 얼굴, 음성은 박제된 배경으로 소년들의 성장기에 일종의 면죄부를 주거나 연민을 느끼게 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소년과 역사는 만나지 않는다. 동일한 시절, 동일한 이미지로 돌아가는 이 감독들은 이 기형적인 성장기영화 속에서 소년과 역사의 성장을 멈추게 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창조한다. 심지어, 나는 이 감독들이 두 권력자들의 이미지와 목소리를 아무런 사유없이 전면화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그 시대에 대한 자신들의 부채의식을 지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한다. 이건 최근 소년성장영화의 무언의 공식이었다. 그런 점에서는 <사랑해, 말순씨>도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그렇고 그런 소년의 성장기영화라는 전제를 인정하기로 하고, 그 틀 내부에서, 그 틀의 전형성을 균열할지도 모를 말순씨와 소년의 관계를 자세히 뜯어보기로 했다. 말순씨에게 집중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아마도 말순씨와 소년의 특별한 관계가 드러나는 순간이 있겠지. 단순히 아들에 대한 엄마의 모정이라든가, 엄마에 대한 아들의 애증이나 그리움 이외에 어떤 유대관계가 존재하지 않을까. 실제로 영화 속에서 아버지는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흥미로운 건, 이 자리를 말순씨가 차지하기에 그녀는 너무 구김살이 없고(그녀는 화장품 외판으로 생활을 책임지는 가장임에도 ‘아버지’ 같은 권위가 없다), 그렇다고 아들 광호가 차지하기에 그는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어리다(광호는 철없는 말순에게 ‘아버지’처럼 충고하지만 그건 언제나 ‘처럼’일 뿐이다). 말순씨와 광호는 모두 아버지의 자리를 번갈아 맡으며, 그 자리의 주인이라고 믿어지는 누군가를 그리워하지 않으며(광호와 여동생은 단 한번도 아버지가 그립다는 말을 하지 않으며 말순이 병에 걸렸을 때도 그들은 아버지에게 편지하지만 답장은 오지 않는다), 그 자리의 권위를 지우며 공존한다. 그런데 영화는 안타깝게도 이처럼 흥미로운 조건 속에서 이 둘의 관계가 재미있어지는 순간들을 찾아내지 못했다. 말순씨와 광호가 친구처럼 싸운다거나, 함께 맥주를 마시고 취한 장면만으로 이들의 특별한 관계가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두 캐릭터와 그들의 조건은, 미약했으나 신선했던 가능성을 묻어버리고 뻔한 운명과 상황의 틀에 의존하기로 결정한다. 그 필연적인 상황이란 말순씨의 불치병, 그녀의 죽음,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예견되어 있었던 죽음이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없이 말순씨, 혹은 그녀와 광호의 관계를 다시 성장기의 철저한 틀 내부로 끌고들어올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이 지점에서 <인어공주>에 대한 미련, 상투성을 버린 관계에 대한 그리움 또한 잊기로 했다. 살아남아서 성장한 소년은 비겁하다? 그리하여 다시 성장의 이야기로 돌아와야 한다면, 이 영화의 흐름은 소년이 썼던 ‘행운의 편지’를 중심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어느 날, 소년 앞에 도착한 행운의 편지는 다른 누군가에게 부치지 않으면 불행을 몰고올 편지이다. 소년은 불행을 막기 위해 편지를 다시 쓴다. 그 편지의 수신자는 소년을 귀찮게 하던 다운증후군 친구 재명, 창피한 엄마, 소년에게 동경과 두려움의 대상인 같은 반 반항아, 그리고 몇몇을 지나, 마지막 수신자는 전두환. 그런데 그 편지가 수신자에게 전달되는 순간, 소년은 답장은커녕 그 편지의 존재감조차 믿지 않을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낸 것을 후회한다. 소년은 그들에게 다가올 불행이 걱정스럽다. 재명과 엄마와 반항아 친구에게서 멈춘 편지는 불행이 되어 돌아온다. 재명은 변태 짓을 일삼다 어느 날 갑자기 연행되고(그런데 감독은 굳이 재명을 다운증후군으로 설정하여 거기에 바보 같고 변태적인 이미지를 부여한 이유가 무엇일까), 반항아 친구는 급우의 돈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퇴학당하고, 엄마는 결국 죽는다. 그리고 소년이 청와대로 편지를 보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전두환만은 멀쩡하다. 나는 여기서 뜬금없이, 그 편지의 발송, 돌아옴의 의미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영화는 혹시 끊임없는 편지의 흐름을 당대의 억압적 권력에 대한 알레고리로 상정한 것이 아닐까. 그 권력의 언어, 실체없는 위협의 호명에 답하는 순응적인 인간들은 살아남고, 권력의 부름을 거부한 세 사람은 처벌받았다는 것일까. 그래서 감독은 실체없는 권력에 굴복한 소년의 살아남음을 통해, 지금 우리의 이 비겁한 살아남음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의 상상은 끝없이 이어졌지만, 영화의 방향은 점점 다른 쪽을 향하고 있었다. 소년의 죄의식은 자신이 편지를 다시 써서, 타자에게 그 불행을 전가하며 스스로의 불행을 지연시켰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특정한 ‘그들’을 수신자로 정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소년은 그들의 불행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과 별개로, 영화의 후반 엄마에게서 멈춰진 편지를 다시 누군가에게 써 보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영화가 소년의 죄책감을 행운의 편지와 연결시키는 과정에서 소년이 진정 지녀야 할 죄의식을 지우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소년은 재명이 연행되는 순간, 재명의 마지막 구원의 요청에 답하지 못했고, 친구의 무죄를 목격했음에도 끝까지 변명해주지 않았으며, 엄마에게서 일찍이 시작되었던 병의 그림자를 알아채지 못했다. 영화는 소년의 죄의식은 어떤 외부적 힘, 행운의 편지에서 시작되기보다 소년 내부에서 시작되어야 함을 모른 척하고 있다. 왜? 그건 소년이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외부의 힘에 의해 상처를 겪으며 성장하는 것이 이 시대, 소년성장영화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화의 후반부, 퇴학당한 친구가 학교 창문을 깨며 뚝뚝 피를 흘릴 때, 엄마가 화장실에서 뻘건 피를 쏟을 때, 두려움 가득한 소년의 눈빛은 의미심장하다. 타자의 몸에서 흐르는 피, 타자의 상징적인 죽음. 영화는 기어이 주변 인물들 중에서도 상징계의 경계에 선 자들, 장애인, 피를 쏟는 병자 엄마, 그리고 끊임없이 법과 충돌하는 존재를 죽이고서 소년을 상징계의 주체로 인도한다. 혼자 살아남은 소년은 과연 이 무지막지한 죄의식을 어찌할 것인가? 영화는 여기서 마지막 판타지 혹은 꿈장면을 삽입한다. 죽은 엄마와 떠나간 재명, 퇴학당한 친구, 동생, 고향으로 돌아갔던 첫사랑 은숙이가 집 앞 마당에 모여 평화롭게 웃고 춤을 춘다. 희생되었던 타자들이 모여 소년의 죄의식을 쓰다듬고 소년의 성장통을 축하해준다. 난데없이 등장한 이 장면 하나로 영화는 소년의 죄의식을 말끔하게 봉합하고 있다. 이제 <사랑해, 말순씨>의 말순씨는 곧 재명, 퇴학당한 친구, 소년의 성적 환상을 채워주던 은숙씨 혹은 그 시절이어도 상관없다. ‘말순씨’는 특이성을 가진 그 누군가가 아니라, 소년의 성장을 위해 기꺼이 희생당한 모두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이름을 부르는 자가 소년이라는 사실뿐이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소년은 교복을 고쳐 입고 모든 상처가 아문 얼굴로 우리를 향해, 영화 속 누군가가 아닌, 영화 밖 우리를 향해 말한다. “저, 이제 3학년이에요.” 그 순간, 그의 이기적이고 폐쇄적인 성장에 어떤 식으로든 공모한, 영화 밖 우리 중의 하나가 된 나. 성장기의 고통을 박제하지 말길 덧붙이며, 우리는 영원히 성장한다. ‘성장기영화’가 아픈 건, 현실의 타락한 내가 그 시절의 철없는 순수함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 아니다. 그건, 세상 모든 것을 가슴에 새겼던 그때 그 정신과 육체와 마음의 예민함을 여전히 잊을 수 없기 때문에,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아픈 것이다. 그러니 제발 피 흘리는 과거를 반복 박제하여,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쉬운 선택으로 만들지 않길. 성장기를 추억의 신화에서 꺼내길. 아픔과 고통의 그 순간을 정면으로 대면할 자신이 없다면 결코 다시 돌아가지 말길.

‘남 다 간길’ 택한 MBC 가을개편

수요일 밤이 허전했다. 좀처럼 보기 힘든 국내외 실력파 뮤지션들의 명연주도, 썰렁한 농담과 어눌한 진행으로 밤잠을 깨우던 재즈 피아니스트 김광민과 가수 이현우의 모습도 이제 볼 수 없었다. 프로그램 폐지 소식은 들었지만, 정작 수요일 밤이 되니 그 아쉬움이 절절히 사무쳤다. 깊은 밤 흔치 않게 텔레비전이 휴식 같은 친구가 돼줬던 시간. 문화방송 <수요예술무대>를 이젠 볼 수 없다니. <김동률의 포유>는 허전함을 메꾸지 못했다. 이름부터 <윤도현의 러브레터>(한국방송) <김윤아의 뮤직웨이브>(에스비에스)가 떠오른다. 뚜렷한 차별성 없이 베끼기나 따라가기라는 의심이 불거지니 불만이 터져나올밖에. 내용도 그랬고, 분위기도 그랬다. 다를 게 없었다. 내세울 것 없는 후속 프로그램이, 탄탄하게 자리잡은 경쟁 프로그램을 따라잡기란 쉬운 일이 아닐 터다. 다시 의문이 든다. 왜? 더 나을 게 하나도 없는, 오히려 경쟁력을 갖기 조차 어려울 ‘똑같은’ 프로그램을 ‘하나 더’ 만든 걸까? 그것도 문화방송의 대표 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 13살짜리 프로그램을 내쫓고 말이다. 누구는 저조한 시청률 탓이라고도 하고, 또 누구는 프로그램 소속 부서가 편성국에서 예능국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어처구니가 없다. 심야 프로그램 시청률이 1~5%면 괜찮은 것 아닌가. 부서 변경이 13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고품격 음악프로그램을 폐지한 이유라면 더욱 황당하다. 뭔가 설득력있는 설명이 빠진 듯 허전한, 문화방송의 이번 가을개편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바로 <수요예술무대>다. 다른 개편·신설 프로그램들도 그렇다. 몰래카메라를 부활시키고 정치인들을 출연시키면서 논쟁을 부르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 정통 코미디 부활을 내세웠지만 웃기기보다는 민망함과 안쓰러움이 앞서는 <웃는 데이> 등도, ‘왜?’라는 의문을 품게 만든다. 과거 <경찰청 사람들>의 새 버전인 <형사>나 중년 연예인들이 추억을 되새기는 <스타스페셜 생각난다> 등을 보면, 가을 개편의 화두는 복고란 말인가? 그렇다면 더욱 13년을 이어온 프로그램을 쉽게 폐지해버리는 건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다. 이러저러한 여러 사건·사고들과 전반적인 시청률 하락으로 문화방송은 위기를 맞고 있다. 대대적인 가을개편으로 분위기 쇄신을 꾀하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이었을 터다. 그래서 지난 8월부터 여러차례 고심어린 회의와 조정을 거쳤다. 그러나 알맹이가 빠져있다는 생각이 든다. 알맹이란 가을개편의 중심을 꿰뚫는 철학이며, 이는 늘 문화방송의 자랑스런 표상이었던 ‘실험정신을 바탕으로한 창의성’이어야 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이나 등이 크게 성공하며 문화방송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었던 것 또한 다른 방송이 ‘가보지 않은 길’을 과감히 골랐기 때문이 아닌가. 허전한 수요일 밤, 아쉬우나마 토요일 밤을 기다리며 위안을 삼는다. 가을개편에서 돌아온 <베스트극장> ‘태릉선수촌’이 그나마 문화방송의 ‘명성’을 이어가는 씨앗이라 여기며.

누가 제2의 ‘장밋빛 인생’ 될까?

한국방송 2텔레비전 드라마 <장밋빛 인생>의 뒤를 이을 수목 드라마의 선두자리는 어떤 드라마가 차지할까? 40%를 넘나드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한 달 넘게 1위 자리를 지켜온 <장밋빛 인생>이 지난 10일 막을 내림에 따라, 같은 시간대에서 경쟁할 드라마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문화방송도 수목 드라마 <가을소나기>가 같은 날 종영을 해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이 약속이나 한 듯 16일 새 드라마 <황금사과>와 <영재의 전성시대>를 각각 선보였다. <장밋빛 인생>의 인기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던 에스비에스의 <사랑은 기적이 필요해>도 밋밋하던 줄거리 진행에 반전이 도입되는 등 ‘3사 3색’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복고풍으로 중장년층 노리는 ‘황금사과’ 유쾌발랄 성공담 ‘영재의 전성시대’ 극적 반전 나선 ‘사랑은 기적이 필요해’ 방송 3사 수목금 경쟁 치열 한국방송의 <황금사과>는 <옥이 이모> <서울뚝배기> <서울의 달>을 쓴 김운경 작가와 <명성황후> <무인시대>를 연출한 신창석 피디가 의기투합해 만든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황금사과>는 1960년대 한 산골마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4남매의 이야기를 그린 시대극. 복고풍을 앞세워 중장년층 시청자를 텔레비전 앞으로 끌어들인다는 전략이다. 경북 문경을 배경으로 4남매의 성장과 인생을 다룰 이 드라마는 초반까지 아역들이 나오고 8회부터 박솔미, 정찬, 김지훈, 이덕화 등 성인 연기자들이 등장한다. 아버지가 계모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게 되면서 가정이 풍비박산난 뒤 4남매는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겪게 된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동생들을 돌보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장녀 경숙 역은 박솔미, 서울의 대학에 진학해 현실적인 삶을 살아가는 남동생 경구 역은 김지훈, 반항적인 막내동생 경민 역은 지현우, 경숙의 집안에 계모가 데리고 들어온 딸 금실 역은 고은아가 맡았다. 전작 <가을소나기>에서 2~3%대 최악의 시청률로 참패를 맛봤던 문화방송은 <내 이름은 김삼순> 식의 유쾌한 ‘올드 미스’ 성공 스토리를 다룬 <영재의 전성시대>(극본 김진숙, 연출 이재갑)로 설욕을 노리고 있다. 이 드라마 역시 문화방송 드라마국장 출신의 베테랑 이재갑 피디가 연출을 하고, <한지붕 세가족> <전원일기> 등의 작품을 쓴 김진숙 작가가 극본을 맡아 기대를 모은다. <영재의 전성시대>는 30살 노처녀 주영재의 좌충우돌 성공담을 경쾌한 터치로 그린 트렌디 드라마로, <황금사과>와는 확실하게 구별되는 색깔을 드러낼 예정이다. <영재의 전성시대>는 반말투의 대사와 코믹한 상황 설정으로 시청자의 눈길을 끈다는 전략이다. <가을소나기>에서 진지한 분위기의 정통 멜로물로 처절한 실패를 경험한 문화방송은 가볍게 만들어야 시청자들에게 먹힌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 드라마에서 주영재(김민선 분)는 보잘것없는 학벌과 많은 나이, 여성이라는 장벽을 넘어 조명 디자이너로 성공한다. 유준상은 주영재의 상대역으로 조명 디자인업계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로 출연한다. 영재는 스카우트 과정에서 착오가 생겨 중서의 회사에 취직하게 되고, 중서와 티격태격하며 사랑을 키워간다. 이들 사이에 영재의 전 애인 찬하(조동혁 분)가 끼어드는 것도 ‘삼순이’와 비슷하다. <장밋빛 인생>의 종영으로 반격에 나선 에스비에스 <사랑은 기적이 필요해>(극본 권민수ㆍ염일호, 연출 고흥식)는 그동안의 코믹 터치 외에 멜로 라인과 휴먼 스토리를 부각시켜 도약을 꾀한다. 김원희와 오대규의 감춰진 관계를 드러내는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스토리를 풀어가면서 시청자를 끌어들일 계획이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서 버림받아 고아원에서 자란 김원희가 키우고 있는 진토가, 절친했던 친구가 죽으며 남긴 아이이며 진토의 아버지가 오대규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김원희와 오대규는 상처입은 사람들끼리의 공감을 서로 키워간다. 김원희를 둘러싸고 형제 오대규와 이규한이 빚어내는 미묘한 감정선도 극적 흥미를 돋울 듯하다. ‘쪽 대본’(녹화 직전에 급히 쓴 대본을 일컫는 방송가 용어. 책처럼 제본된 것이 아니라 낱장으로 돼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음)으로 그날그날 촬영을 하는 드라마 제작 현실에서, 이 주일치 대본이 미리 완성될 정도로 스토리를 탄탄하게 다진 뒤 제작에 임한다는 점도 제작진이 내세우는 강점이다.

테리 길리엄의 <그림형제: 마르바덴 숲의 저주> [3]

“미친 사람과 어린이들만이 이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다” 60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테리 길리엄은 나이를 모르는 악동이다. 테리 길리엄과 미라맥스의 하비 와인스타인은, 영화의 개봉 직전까지 온 할리우드가 수근거릴 정도로 요란한 싸움을 벌여왔다. 그러나 라운드 테이블에 마주앉아 끊임없이 너스레를 떨어대는 길리엄은 정작, 그건 별것 아닌 문제였다며 시치미를 뗀다.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온 것만은 분명해 보이는 그와의, 수다스런 인터뷰의 일부를 전한다. -이 프로젝트를 처음 접한 게 언젠가. =2002년에 처음 시나리오를 봤다. 내가 쓴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었고, 그 시나리오는 뭐랄까 너무 유행에 편승한 것처럼 느껴졌지만 컨셉 자체는 꽤 괜찮았다. 자신의 세계에 사로잡힌 사람의 이야기인데다, 동화를 바탕으로 특정한 세계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해볼 만했다. 그래서 <타이드랜드>의 작가 토니 그리조니와 함께 시나리오를 처음부터 다시 썼다. 물론 영화의 크레딧으로 올리진 못했다.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들의 규칙을 당신들도 알지 않나. 그래서 생각한 게, 드레스 패턴 메이커라는 항목을 만들어서 우리 둘의 이름을 거기에 집어넣었다. 다음 작품부터는 시나리오에 바탕을 둔 영화가 아니라 드레스 패턴이 중심이 되는 영화를 만들어볼 생각이다.(웃음) -영화가 찍은 뒤 개봉까지 2년이 걸린 이유는. =스튜디오와 나는 서로 완전히 다른 영화를 생각하고 있었다. 와인스타인은 정말 호전적이고 절대 지지 않는 사람인데,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우리는 거의 서로 죽일 듯이 싸웠다. 그러니 영화는 구제불능 상태가 되어버리고. 그래서 내가, “좋다, 어쨋거나 나는 이제 새 영화 <타이드랜드>를 지금 꼭 찍어야 된다. 그러니 그걸 찍고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했고, <타이드랜드>를 찍은 다음 그들은,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라고 하더라. -그럼 결국 당신은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은 셈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결론적으로 이건 내가 옛날부터 생각했던 방식의 영화만들기다. 영화를 거의 끝까지 만든 다음에 몇 달 정도 치워놨다가, 다시 보면 영화가 달라 보인다. 처음에는 형제의 어린 시절이 영화의 맨 앞부분이 아니라 중간에 있었다. 그런데 둘의 어린 시절의 한 순간을 앞에 놓으니까 인물 설명도 명확하고 훨씬 부드럽더라. 그냥 쭉 편집했다면 그렇게 못했을 거다. 앞으로도 이런 방식을 종종 써먹어볼까 생각 중이다.(웃음)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었나. =집중을 유지하는 것. 나는 속도감 있게 작업하는 편인데, <그림형제>는 모든 것들이 문제를 일으키면서 굉장히 느리게 진행됐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중심을 유지해야함을 다짐하고, 다시는 큰 영화를 만들지 않겠노라 결심했다. 항상 두세 파트로 나뉘어서 촬영을 천천히 진행하는, 군대 같은 거대한 규모의 영화를 찍으면서, 머릿속에 있는 걸 빨리빨리 꺼내놓을 수 있는 영화가 너무 하고 싶었다. 그게 바로 <타이드랜드>였다. -동화는 당신의 유년기에서 어떤 의미였나. =나의 모든 것이었다. 그게 문제였다.(웃음) 텔레비전도 별로 없던 그 시절에는 동화책밖에 없었고, 그게 내가 세상을 배운 곳이었다. 내가 만든 모든 영화들을 보면 알겠지만, 모두 동화의 구조를 띄고 있다. 거기서 벗어나질 못했다. 이젠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자신은 없지만.(웃음) -<그림형제> 속 판타지를 믿는 사람과 현실을 믿는 두 형제의 갈등에선 결국 판타지가 승리한다. 현대인들에게 판타지가 중요한 이유가 무엇일까. =모든 것이 숫자와 계산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되어간다. 꿈과 상상은 확실한 숫자로 보여줄 수도 없고, 숫자에 비해서 설명하기가 더 힘드니까. 나는 그저 내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고, 그리고 자신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미친 사람인 줄 알았던 누군가가, 자기와 비슷한 사람이 적어도 둘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안정감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웃음) 나는 미친 사람과 어린이들만이 이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는 지금보다 상상력도 풍부하고 생각도 열려 있으며 유연했다. 그러다가 성장하면서 점점 폐쇄적이 되어간다. 한계를 가지게 되는 거다. 나이를 먹어가면, 모두 예전의 어떤 것을 생각하며 받아들인다. 난 계속해서 거기에 반대해왔다. 매번 영화를 만들 때마다 내가 믿는 세상을 사람들에게 설득하려 했다. <브라질>(국내 비디오 출시명 <여인의 음모>)을 만들 때는 한밤중에 망망대해에서 깃발을 흔들고 있는 기분이었다. 누군가가 여기도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주기만 해도 좋았다. 누군가 내 영화를 싫어하든 그건 상관없다. 내 영화를 좋아해주는 사람, 그들이 바로 내가 영화를 만들게 하는 동력이다.

야스쿠니신사의 재조명, <안녕, 사요나라>

“시민들이 군대비용을 치르게 하자. 우리가 사지로 내모는 아들들을 위한 비용을 그 아버지들이 치르게 하자. 우리에게 그렇게 할 권리가 없다고? 그렇다면 왕권신수설을 만들어내자. 우리의 군인들이 자신이 무엇을 위하여 죽는지를 모른단 말인가? 그렇다면 왕실숭배사상을 만들어내자.” 오스트리아 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국가가 내세우는 전쟁의 논리를 이처럼 사뭇 신랄하고 냉소적인 어조로 꼬집은 바 있다. 일제에 의해 ‘대동아 성전(聖戰)’으로까지 미화되었던 태평양전쟁의 기반, 즉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적 천황제를 수립한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의 기치하에 일본 국민들과 식민지인들을 사지로 내몰면서 내세웠던 허구적 이데올로기의 실체는 슈니츨러식의 비아냥거림만으로도 충분히 무너져내릴 만큼 시대착오적이고 엉성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아 그 성긴 틈새를 채워넣고 이데올로기를 단단하게 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일본인들- 사지로 내몰린 아들들과 그 비용을 댄 부모들- 자신이었다. 이제 과거 일제로부터 입은 피해에 대한 보상이나 과거사 청산을 요구하는 작업은 비단 황실이나 정부가 아니라 일본이라고 하는 민족-국가의 내셔널리티와의 싸움이 된다. 그렇기에 <안녕, 사요나라>에 삽입된, “총리나 각료가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 것은 내셔널 폴리틱스, 즉 국가 그 자체를 성립시키기 위한 정치적 행위”라는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의 지적은 더할 나위 없이 정확한 것이다. 김태일과 가토 구미코의 <안녕, 사요나라>는 이 피할 수 없는 진실을 분명 간파하고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끌려나가 전사한 부친이 야스쿠니신사에 합사(合祀)- 신사와 같은 특정한 장소에서 죽은 사람들 여럿의 혼을 한데 모아 제사지내는 것-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합사취하운동을 벌여온 이희자씨의 삶을 추적하는 이 다큐멘터리에는, 그녀의 투쟁에 호응하는 일본인들뿐 아니라 이에 격렬하게 반대하는 일본 우익 인사들의 주장까지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쟁의 피해자들이 있었으며 그 상처는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는 사실을 쉬이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대다수 일본인들의 모습을 지켜보다보면, 그녀의 힘겨운 투쟁이 그저 도로(徒勞)에 그치고 말지도 모른다는 우리의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간다. 1995년 고베 대지진 때 이희자씨를 처음 만난 이후, 일제강점기 조선인 출신 군인들과 관련된 재판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일본인 후루카와 마사키는 <안녕, 사요나라>를 이끄는 또 하나의 축이다. 그는 야스쿠니신사 참배의 본질이 “전쟁의 희생자들을 통해 과거의 전쟁을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웅적인 행위로 미화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그러한 기만적인 의식이 중단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그가 이희자씨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과거 일본제국주의가 얼마나 많은 희생자들을 만들어냈는가를 깨닫게 된 과정이 내레이션으로 들려오는 한편, 야스쿠니신사 참배반대 및 합사거부 운동 등의 현재적 실천이 비교적 상세히 묘사된다. 일본 내 진보진영 및 우익 각계인사들과의 인터뷰, 일본 고유의 민족종교인 신도(神道)와 거기에 수반되는 신사참배 및 마쓰리 등의 의식이 일본인들의 삶에서 차지하는 의미에 대한 설명 등은 <안녕, 사요나라>가 단순한 인물다큐멘터리에 머물지 않게끔 적절한 정보와 분석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안녕, 사요나라>가 한국의 비디오 액티비스트들의 작업에 종종 수반되곤 하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와 별다른 차별성이 없다’는 비판을 피해나가기 힘들 거라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여기서 ‘정치적 의의는 있지만 미학적 중요성은 없다’는 진부한 말을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 이희자씨가 아버지의 비명(碑銘) 없는 무덤에 바치는 헌화, 그녀가 과거 일본군 병원 터에서 아버지에게 올리는 제사, 그리고 일본군에 학살된 중국인들의 유골이 전시된 박물관에서 속죄의 기도를 올리는 후루카와의 모습 등은 <안녕, 사요나라>에서 매우 중요한 감정적 클라이맥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장면들이 점점 강조될수록 앞서 언급한 ‘불안감’은 좀더 탈개인적인 컨텍스트 내에서 정치적 힘으로 전화될 기회를 얻는 대신 개인적 위령(慰靈)- 사실 위령이란 죽은 이들과 관련해서 살아 있는 자들에게 허락된 유일하고도 숭고한 자기애이다- 의 언저리만을 맴돌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의 다큐멘터리에 담겨질 인물들에게 인간적인 따뜻함을 지니고 접근하는 연출자 김태일의 태도는 분명 존중할 만하지만, 그의 작업이 텔레비전 <인간극장>류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동지가 아닌) 연출자로서의 냉정함이 필요하다. 그가 냉정함 없이 동지로서만 남을 때, 그의 작품은 <길동무>(2004)와 같은 자족적 기록물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안녕, 사요나라>는 <길동무>의 실패를 반복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태일의 첫 번째 영화 <원진별곡>(1993) ‘다음’ 혹은 ‘너머’의 작업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는 자신의 작업이 ‘작품에 대한 욕심’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작품에 대한 욕심’으로서의 냉정함은 미학적인 동시에 정치적인 입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부인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연장된 구단 광고, <레알>

레알 마드리드는 스페인의 마드리드를 거점으로 한 명문 프로축구팀이다. 베컴, 호나우두, 지단, 라울 등 전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그리고 가장 비싼 선수들이 모여 활동하고 있는 곳이다. 레알 마드리드는 스페인뿐만 아니라 전세계 축구팬들에게 일종의 축구 사랑에 대한 상징으로 자리잡은 팀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그냥 알려진 대로 말한 것뿐이다. 이 영화의 중심적인 화자, 그것도 바로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스타디움이 창문 너머로 보이는 곳에 살고 있는 초등학교 역사 선생이 레알에 대한 사람들의 열광이 하도 궁금하여 구단을 찾아 “도대체 레알은 그들에게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가 얻은 대답은 “레알은 감동입니다”라는 것이다. 구단에 배달된 팬레터의 내용 중 일부를 선별해 극화한 것이라는 이 영화는 몇 가지 에피소드를 나열한다. 베컴을 너무 사랑하는 일본 소녀와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결국 베컴처럼 머리 스타일을 바꾸는 그녀의 남자친구 이야기, 부상당한 영국의 소녀 축구 선수와 그녀의 재기를 돕는 코치의 이야기, 세네갈 오지에서 레알의 경기를 시청하기 위해 텔레비전이 있는 시내까지 이틀을 걸어가는 축구광 아버지와 그 아버지만큼 축구광인 아들의 이야기,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 디 스테파뇨를 납치했던 어느 노인과 그의 손자의 해후에 관한 이야기 등이다. 그리고 죽은 남편과 레알의 경기를 함께 보던 추억을 떠올리는 것이 괴로워, 일부러 레알의 경기 때마다 자리를 피하는 노부인에게 역사 선생이 티켓 두장을 선물하면서 마지막 에피소드가 끝난다. 노부인은 축구광 손자를 데리고 레알의 경기장으로 향한다. 극화된 이야기들 사이에 실제 선수들의 경기 모습 등이 쾌활하게 뒤섞이지만, 영화 전체를 놓고 보면 두서가 없는 뮤직비디오 같고, 한편으로는 연장된 구단 광고일 뿐이다. 하지만, 한국에도 있을 레알 광팬에게는 심심하지 않을 만한 소재다. 이 영화의 핵심은 간단하다. 축구를 통해서, 레알을 통해서 지구의 모든 관계가 회복되거나 더 나아지고, 레알은 그들의 삶 자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지구는 레알을 중심으로 돈다, 이다.

SBS 새 주말드라마 ‘백만장자와 결혼하기’ 26일 시작

‘짝퉁’ 두 남녀의 ‘진짜’ 사랑찾기 2년 전 폭스TV 리얼리티쇼 모티브 삼아 2003년 미국에서는 폭스티브이가 제작한 <백만장자와 결혼하기>라는 리얼리티쇼가 화제가 됐었다. ‘가난한 남자가 백만장자를 가장해 자신의 배필을 찾는다’는 내용의 이 오락 쇼는 국내 한 케이블 방송사를 통해 우리나라에도 소개됐다. 에스비에스가 이 리얼리티쇼를 모티브로 삼은 드라마를 방송한다. 주말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 후속으로 26일부터 시작되는 <백만장자와 결혼하기>(극본 김이영, 연출 강신효)가 그 드라마. <백만장자와 결혼하기>는 중학교 동창인 평범한 남녀가 우연히 ‘백만장자’ 리얼리티쇼에 출연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다루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김영훈은 가난한데다 머리도 나쁘지만 인물 하나는 잘생긴 꽃미남이다. 마음씨도 착하다. 이런 영훈에게 방송국에서 텔레비전 리얼리티쇼에 나와 가짜 백만장자 노릇을 해달라는 제안이 온다. 영훈이 가짜 백만장자로 나선 이 리얼리티쇼에 영훈의 중학교 동창이자 첫사랑이었던 한은영이 후보 여성으로 출연한다. 은영은 영훈이 공부도 못하고 가난했던 게 못마땅하지만 백만장자가 된 영훈에게 마음이 흔들린다. 영훈은 이 쇼에서 빼어난 미모의 여성 후보들을 제치고 볼품없는 은영을 파트너로 선택한다. 영훈의 선택을 받은 은영은 “영훈이 가짜라도 그를 좋아한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영훈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은영은 이 프로가 끝나자 영훈을 차갑게 외면한다. 그런데 이 두 남녀 주위에 진짜 왕자와 공주가 나타나면서 애정 구도가 복잡해진다. 명문가의 아들에 사시 합격, 판사 출신의 화려한 경력을 지닌 이 프로그램 피디 유진하는 솔직하고 용감한 은영에게 사랑을 느낀다. 영훈에게 연기 지도를 해주던 배우이자 방송사 사주의 딸 정수민도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선 목숨까지도 내놓을 정도로 우직한 영훈에게 조금씩 마음이 빼앗긴다. 이 두 왕자와 공주의 애정 공세가 시작되면서 주인공들 사이에 복잡한 애정 구도가 펼쳐진다. 에스비에스 <토지>에서 최서희 역을 연기했던 김현주가 평범한 외모에 생활력 강한 계약직 은행원 한은영 역을 맡았다. 가난하지만 착한 남자 김영훈 역에는 에스비에스 <그린로즈>, 영화 <썸>의 고수가 캐스팅됐다. 또 유진하 피디 역은 신인 연기자 윤상현이, 배우 정수민 역은 손태영이 맡는다. 제작진은 10월 중순 프랑스 보르도 인근의 한 성에서 리얼리티쇼 제작과정을 촬영했다. 고성을 배경으로 한 화려한 영상은 3회부터 7회까지 그려진다. 일부에선 이 드라마가 호화로운 데이트 장면이 등장하고 드라마 제목에도 ‘백만장자’가 들어가 시청자들에게 자칫 위화감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연출을 맡은 강신효 피디는 “‘짝퉁’ 신데렐라와 개구리 왕자의 진실한 사랑 찾기를 다룰 예정”이라며,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사랑 이야기를 단막극이 아닌 미니시리즈로 풀기 위해 리얼리티쇼 등의 장치를 도입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주인공들은 친숙한 이웃 같은 이미지를 전할 것”이라며, “다른 미니시리즈에 견줘 주인공 주변의 인물을 많이 등장시켜 가족 이야기도 풍성하게 다룰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탐정과 의뢰인이 같은 기이한 추리소설, <이터널 선샤인>

배우 짐 캐리가 일련의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다듬어온 고유의 페르소나는 영화라고 하는 픽션 속에 구축된 또 다른 픽션과의 관계를 통해 정의되는 경향이 있다. 편의상 여기서 전자의 것을 일차적 픽션, 후자의 것을 이차적 픽션이라고 해두자. 결론을 앞서 말해두자면 자신의 영화 속에서 짐 캐리는 많은 경우 ‘이차적 픽션의 수인(囚人)’으로 등장한다. 상업적인 코미디물인 <에이스 벤츄라> 같은 작품이건 좀더 진지하고 반성적 자의식이 두드러진 <맨 온 더 문> 같은 작품이건 마찬가지다. 물론 미셸 공드리-찰리 카우프만의 필모그래피 내에서 <이터널 선샤인>을 살펴보고 위치짓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겠지만, 짐 캐리라는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가로질러가며 그의 페르소나를 꼼꼼히 살펴보다보면 <이터널 선샤인>이 왜 (독창적이라기보다는) ‘영리한’ 영화라 불릴 수 있는 작품인지가 명확히 드러난다. 이차적 픽션=현실적 픽션의 경우 짐 캐리의 영화들은 각각의 작품에서 구축된 이차적 픽션의 성격에 따라 크게 두개의 범주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픽션 속에 구축된 또 다른 픽션이라고 말할 때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짐 캐리 주연의 영화는 피터 위어의 <트루먼 쇼>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실은 텔레비전 생방송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위한 거대한 세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주인공 트루먼은 분명 영화라는 픽션 속의 또 다른 픽션, 즉 이차적 픽션에 사로잡힌 수인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다. 물론 1990년대 할리우드에서 쏟아져나온 일련의 영화들- 즉 <토탈 리콜> <사랑의 블랙홀> <12 몽키즈> <다크 시티> <13층> 그리고 <매트릭스> 등등- 이 다양한 이차적 픽션의 수인들을 묘사하고 있으며 <트루먼 쇼>가 이들 영화와의 관련하에 논의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여기서 해묵은 이야기를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더이상 세계에 저항할 수 없을 때 세계 자체를 픽션화하고 그 세계-픽션으로부터 도주를 꿈꾸는 자를 영웅화하는 픽션은, 내가 보기엔 참으로 미심쩍은 이데올로기의 발현이라고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는 점만 덧붙여둔다. 여하간 <트루먼 쇼>에서는 이차적 픽션이 일종의 가상현실 혹은 ‘현실적 픽션’(realistic fiction)으로 제시되고 있는데 이러한 특징은 짐 캐리 작품군의 첫 번째 범주를 규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적 픽션이 거대한 속임수, 반드시 빠져나와야만 하는 기만적 픽션으로서만 묘사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블랙리스트에 오른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 피터가 사고로 기억상실증에 빠져 한 마을 공동체의 실종된 청년 루크로 오인되는 과정이 묘사되는 <마제스틱>을 떠올려보라. 한편으로 <마제스틱>은 현실적 픽션으로서의 이차적 픽션이 소망충족적 판타지의 무대로 기능하는 사례이며 그런 까닭에 짐 캐리 작품군의 두 번째 범주로 넘어가기 위한 징검다리가 된다. 이차적 픽션=과도한 픽션의 경우 짐 캐리 필모그래피의 중추를 이룬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차적 픽션이 극중 인물의 소망충족적 판타지가 실현되는 대안적인 현실인 동시에 ‘과도한 픽션’(ultra-fiction)으로서 나타나는 경우이다. <마스크> <브루스 올마이티> 그리고 <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 같은 영화들은 이의 가장 뚜렷한 예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딱히 새로울 것 없는 변신의 모티브를 끌어들이고 있는 이들 작품에서 짐 캐리는 비의지적인 무의식적 욕망의 분출을 ‘과도한 이차적 픽션’(초인이 되거나 아예 신의 자리를 떠맡음)의 도움을 빌려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짐 캐리가 스스로의 욕망이 아니라 아들의 소망이 실현되는 이차적 픽션의 수인으로 등장하는 <라이어 라이어> 같은 영화는 사소하지만 제법 눈에 띄는 변형의 사례다. 하지만 이 범주에 속하는 영화들 가운데 좀더 흥미로운 것은 현실의 공간을 거의 강박적이라 할 만큼 적극적으로 픽션의 공간으로 전환시키려 시도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들로서, <에이스 벤츄라> <케이블 가이> <맨 온 더 문> 등을 떠올려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영화들과 달리 초자연적 기적! 의 존재가 전혀 눈에 띄지 않는 이들 영화들은 두 번째 범주 내에서 일종의 하위 범주를 이룬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누구보다 앞서 짐 캐리가 이차적 픽션의 수인에 제격인 배우임을 간파한 톰 섀디악이 <에이스 벤츄라> 이후 <라이어 라이어>나 <브루스 올마이티> 같은 영화로 지루한 제자리걸음을 했을 뿐인 반면, 벤 스틸러와 밀로스 포먼은 과도한 픽션으로서의 이차적 픽션을 바로 그 과도함을 통해 내부로부터 무너뜨릴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영화에서 짐 캐리는 스스로가 강박적으로 창조해낸 픽션의 수인인 것처럼 묘사된다. 즉 여기서의 짐 캐리는 현실적 픽션이나 초자연적인 과도한 픽션으로서 이차적 픽션이 묘사되는 영화들에서와 달리 바로 그 자신이 픽션의 창조자가 되는 것이다. <맨 온 더 문>에서 코미디언 앤디 카우프만을 둘러싼 사람들은 그가 무대 위에서 쉼없이 만들어내는 픽션의 희생자들이자 수혜자가 된다. 세계에 예술을 선사하는 대신 세계 자체를 예술적 픽션으로 뒤덮어버리려 했던 그는, 스스로가 동방의 사기 치료술이라는 또 하나의 픽션에 기만당했음을 깨닫고는 씁쓸한 미소를 띠며 죽어간다. 현실적 픽션+과도한 픽션=<이터널 선샤인> 이상의 논의를 참고로 할 때, <이터널 선샤인>에서의 이차적 픽션은 현실적 픽션과 과도한 픽션이 한데 얽힌 복합체임이 드러난다. 여기서의 이차적 픽션-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남김없이 삭제되는 주인공 조엘의 연애의 기억- 은 그것이 분명 실제의 체험에 뿌리를 둔 기억이라는 점에선 현실적 픽션이지만 그 기억이 첨단장비의 도움을 빌려 다시 체험될 수 있다는 설정에서는 과도한 픽션의 성격을 띤다. 또한 여기서 초자연적인 힘을 대체하는 것은 과학기술의 힘이며 이는 과도한 픽션의 두 가지 하위 범주의 절묘한 혹은 영리한 결합의 사례에 다름 아니다. 자꾸만 과거로 거슬러올라가는 기억의 여행은 좀더 행복했던 시절로의 회귀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결국 기억, 게다가 곧 삭제될 기억이라는 점에서 결코 소망충족적 판타지가 되지 못한다. 게다가 그 기억의 여행은 삭제작업 다음날부터 시작되는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또 한번의 연애에 일찌감치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기도 하며 이는 영화의 서사적 구조에 의해 뒷받침된다. <이터널 선샤인>에서의 짐 캐리 역시 그 자신이 픽션의 창조자이자 수인이기도 한 인물이다. 그런데 여기서의 조엘은 조물주와 피조물이 일치하는 세계, 즉 꿈의 세계, 기억의 세계에 붙들린 인물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탐정과 의뢰인이 일치하는 기이한 추리소설의 주인공이다. 사실 기억삭제 전문가들은 기억의 탐색과 제거가 철저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돕기 위한 대리인들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의 도주를 가로막는 자, 나의 뒤를 집요하게 뒤쫓는 자가 바로 나 자신일 때 그러한 상황에서의 도주가 도무지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이렇게 보면 <이터널 선샤인>이 어쩐지 짐 캐리의 이전 영화들에 대한 일종의 ‘메타픽션’(meta-fiction)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편으로 <이터널 선샤인>에서의 이차적 픽션은 한명의 저자가 아닌 여럿에 의해 씌어지는 픽션, 상호작용적 ‘하이퍼픽션’(hyper-fiction)의 구조를 차용하고 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여기서의 이차적 픽션은 카우프만-공드리의 입장에서라면 메타픽션일 수 있겠지만 주인공 조엘의 입장에서는 ‘과도한 동시에 현실적인 하이퍼픽션’이 되는 것이다. 클레멘타인과의 연애에 얽힌 조엘의 기억을 소재로 삼은 이 하이퍼픽션의 저자에는 비단 조엘뿐만이 아니라 기억 삭제 시술을 행하는 전문가들도 포함된다. 시간을 (정확히는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역순으로 거슬러올라가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 이 픽션은 한동안은 전문가들과 그들이 사용하는 유틸리티 프로그램에 의해 지배당하지만 조엘이 어느 순간 기억의 삭제에 저항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좀더 흥미진진한 양상을 띠게 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기발한 아이디어 가운데 하나는 특정한 기억의 망각에 저항하기 위해 가능한 유일한 방법은 바로 그 기억과 전혀 다른 종류의 기억으로 도피해야 한다는 역설이다. 미리 마련된 기억의 지도를 벗어나는 조엘의 정신적 여정, 자신의 기억 안에서 바로 그 기억에 대해 덧붙이는 조엘 자신의 논평, 그를 다시 원래의 지도 안으로 불러들이는 전문가들의 작업으로 인해 이 픽션은 좌충우돌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 이 픽션은 <트루먼 쇼>의 (하이퍼-)리얼한 픽션이나 <마제스틱>의 현실적 픽션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임이 드러난다. 결국은 빠져나와야 할 아름다운 세계. 다만 그 세계 바깥엔 오직 망각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하이퍼텍스트란 이미 전통적 텍스트(읽기)에 의해 식민화된 것’일지 모른다는 혹자의 지적을 떠올려본다면, <이터널 선샤인>의 하이퍼픽션은 이미 짐 캐리의 이전 출연작들에 나타난 이차적 픽션들에 의해 식민화되어 있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게다가 기억 삭제 작업 이전의 고백이 담긴 녹취 테이프를 ‘희생자’(?)들에게 애써 되돌려주는 메리의 존재는 <이터널 선샤인>을 감동적일진 모르나 좀 이상한 결론으로 몰고 간다. 백지 위에 다시 씌어질 수도 있었을 신선한 사랑은 이제 백지 위에 남은 흔적과 자국을 애타게 찾아 헤맬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그들의 사랑이 처음 시작되었던 바다로 가는 건 그 때문이다. 이때 파도와 모래는 불길한 암시일까 사랑의 찬가일까?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김지하의 착각

“얼마 전 유럽에 다녀왔는데, 그쪽 대사들 얘기가 모조리 한류더군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본 유럽 사람들 말도 한국에는 삼성, LG만 있는 줄 알았더니 문화적으로도 막강하더라는 거였어요. 한류가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로 끝날 것 같지 않고 문학과 학문, 기초예술쪽으로도 이어져 나갈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이 책이 기존의 한류 작품들에 더해 미학적 체계가 같이 갈 수 있도록 자극해주는 하나의 힘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지난 11월2일, <한겨레>의 인터뷰 기사를 읽는 순간, 나는 눈을 의심했다. 신간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를 펴낸 김지하 시인의 말이었다. 김지하가 누구인가. 한때 무기징역까지 선고받았던 저항시인의 상징 아니던가. 그가 강대국 주도의 현재 세계질서를 추인하는, 이토록 순진한 말들을 늘어놓다니! 이 말들은 세 가지 현상을 언급하고 있다. 첫째, 삼성, LG의 급성장하는 국제적 위상, 둘째,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가 주도하는 한류열풍, 셋째, 문학과 학문, 기초예술의 한류열풍 가능성이다. 그 세 가지 현상은 모두 다 강대국들의 이익을 위해 강대국들의 주도로 벌어지는 지구촌 통합 과정의 부산물들로서, 김 시인이 희망하는 ‘한국 문화 창달’과는 정반대의 흐름에 있는 것이다. 우선 삼성, LG가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는 것은, 지구경제가 신자유주의 체제 안에서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파생한 과도기적 현상일 따름이지, 한국 경제성장의 성과일 수는 없다. 오히려 국내에서는 극소수 대기업군의 경제권력 과점이 민주적 정치권력의 무력화(“권력은 시장으로 이미 넘어갔다”- 노무현 대통령)로 이어지는 등 사회문제를 확대하고 있다. 둘째, 대중가요, 텔레비전 드라마가 주도하는 이른바 ‘한류열풍’은 말 그대로 일부 아시아권 국가에 한정된 ‘바람’이지, 영속은 커녕 장기간 지속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벌써부터 중국, 대만 등 일부 국가에서 민족정서에 기반한 반발 움직임을 보이는 등 장기적으로 아시아권 국가와의 관계에서 손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영화가 뜬다지만, 들여다보면 그것도 허상이다. 3대 영화제를 개최하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가 할리우드의 독과점에 대항하면서 세력 규합을 위해 아시아권 영화를 의도적으로 키워주고 띄워주다가 생겨난 부수적 혜택이지, 한국영화 자체가 글로벌한 경쟁력을 입증받은 것은 아닌 것이다. 한국영화의 대선진국 수출 실적이 극히 미미하고, 섣부른 선진국 시장(주로 일본) 진출 과정에서 관객 외면을 가속화시킨 예를 보라. 게다가 국민적 관심과 국가적 지원이 영화분야에 집중되면서 문학, 공연예술 등 다른 문화장르가 주변화하고 있는 현상도 그냥 지나칠 대목이 아니다. 우리가 자만심에 도취해서 ‘한류’를 가리키는 손가락들만 쳐다보고 있는 동안, 인구 수에 맞지 않는 수많은 채널을 채우기 위해서 강대국 콘텐츠들이 아무런 심리적 저항없이 압도적인 속도로 한국에 유입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셋째, 문학, 학문, 기초예술의 ‘한류’는 일어날 가능성이 한없이 제로에 가깝다. 학문, 기초예술의 ‘한류’ 희망은 거의 코미디다. 학문, 기초예술의 모든 ‘처음’은 강대국 천재들이 이미 점령해버렸다. 한국은 황우석 박사의 예처럼 그 ‘처음’에서 뻗어나올 수 있는 가지 중의 극히 잔가지들만 붙들고 잘난 척하고 있는 수준이다. 그나마 바란다면 문학 정도인데, 문화제국주의의 한 갈래인 ‘언어제국주의’ 질서 속에서, 한글이 영어나 불어, 중국어, 일어보다 우월한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고 믿는 나이브한 사람이 있을까. 서강대에서는 청소부마저 영어 가능자를 쓰겠다는 판이고, LG 등 일부 기업과 제주도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 영어공용화, 상용화를 공공연히 실천하거나 주장하고 있다. 한국 문학이 조금 더 활발하게 번역, 소개될 가능성은 있지만, 이것도 한국 문학의 창달을 향해서라기보다는 영화와 마찬가지로 일부 유럽국가가 영어의 지구 제패에 저항하기 위해 벌이고 있는 문화적 종 다양성 확보 운동에 실효없는 들러리를 서는 격이 되기 십상이다. 현재 세계는 미국 대 유럽연합 양강의 세력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급속도로 신자유주의 체제 안으로 통합되고 있다. 유럽연합에서 보듯이 국가의 장벽은 무너지고, 문화의 장벽 또한 무의미해지고 있다. 한국적인 것의 세계화를 바라는 것은, 한국이 지구촌의 한 변방으로 영원히 귀속되리라는 사실을 추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진정 한국적인 것이 소중하다면, 지구촌 통합의 흐름 자체에 저항할 일이다. 그런데 김지하는 그 와중에서 떡고물이나 얻어먹는 데 만족하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충무로 소재 공장 <인간극장> [2] - 인간극장 제작기

<인간극장>을 보는 시청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의문을 가질 것이다. ‘어디서 매주 저런 사람들을 찾아낼까?’ 국정원과 FBI의 도움이라도 받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아니면 자료조사원이 1천명쯤 되는 것인가 하는 망상을 휴먼다큐 <인간극장>은 품도록 만든다. <인간극장>의 외주제작사 리스프로와 제3비전의 기획과정을 듣노라면 이 사람들에게 이산가족 찾기를 시키면 절묘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의문은 ‘어떻게 매번 격렬한 감정의 순간을 포착할까’ 하는 것이다. 그 비밀은 오로지 “인간적인 밀착마크”다. <인간극장>을 세상에 낳은 사람들과 5년 반 동안 매주 그들이 우리와 숨쉬도록 만든 장본인들에게 듣는 <인간극장>의 리얼 제작스토리. <인간극장>의 탄생 <인간극장>이 움트기 시작한 것은 1999년 겨울이었다. 찬바람이 쌩쌩 불던 어느 날, 경기도 안성에 소재한 동아방송대학 기숙사에 세 사람이 모였다. 2000년 5월1일 처음으로 방영된 <인간극장>의 첫 에피소드 <어느 특별한 휴가>를 연출한 강동석 PD, 리스비전 이동석 대표, 그리고 리스비전 박은희 본부장이 그들이다. 박 본부장은 초기에 <하늘이 준 다섯아들> <4인의 차력사> 등을 직접 집필한 작가였다. “당시 상대적으로 외주제작사가 접근하기 용이한 장르가 휴먼다큐였다. 하지만 고답적인 방식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라고 박 본부장은 기획 배경을 밝혔다. <인간극장>은 처음에는 3부작으로 준비됐다. 1시간이라는 제한된 분량에서 보여줄 수 없는 “현재성에 충실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연작 개념을 도입”했다. 그 과정에서 KBS가 “5부작으로 해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고 이것이 현재 5부작 형태의 <인간극장>을 탄생시켰다. 처음 방영시간대는 오전 8시25분이었다. 주부를 주요 시청층으로 감안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집안일을 하는 주부들이 가장 바쁜 시간임을 간과한 점도 있었다. 어쨌든 오전 시간대에 첫발을 내디딘 <인간극장>은 책임CP(Chief Producer)인 KBS 김용두 PD의 설명처럼 “시청률 4%선에서 시작해서 단기간에 9%까지 올라갔다. 이후 <인간극장>은 개편이 되기 전에 시간대를 옮기는 이례적인 성과를 달성했다”고 한다. 아이템 선정 위해 하루 전화 취재만 50곳 현재 방영 중인 <분순 할매>는 <인간극장>의 285번째 작품이다. 편당 30분, 5부작을 기준으로 한 <인간극장>을 만들기 위해 평균 소요되는 기간은 두달 반이다. 리스프로 윤양석 PD는 “<인간극장>을 만드는 연출자는 1년을 다섯달로 산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방영이 끝나는 동시에 3∼4주 동안 자료조사에 몰두한다. 방송, 신문, 잡지, 인터넷,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 등 루트를 가리지 않고 저인망식으로 아이템을 찾아낸다. 이때는 자료조사원이나 작가뿐만 아니라 PD, AD를 가리지 않고 전 팀원이 전화기와 자료 분석과 제보에 매달리는 시기다. 윤 PD의 전언에 따르면 “PD가 하루에 전화취재만 50군데 하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현장취재도 보통 10군데를 넘기기 일쑤다. 본격적으로 조사에 임하는 “자료조사 담당과 작가의 고통은 그 10배는 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인간극장>을 제작하는 리스프로와 제3비전의 사무실에 들어서면 모든 사람들이 텔레마케터처럼 통화에 몰두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리스프로 박혜령 PD는 “예를 들어 혼자 섬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든 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해 전국의 섬을 다 뒤지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아이템이 정해지면 출연자 섭외에 들어간다. 제3비전 이귀훈 PD는 “사회적으로는 긍정적인 현상이지만 점차 사생활을 공개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라 힘들다”고 전했다. 섭외를 마치고 출연자와 친해지는 과정이 <인간극장>에서 “인간적으로 가장 힘든 부분”이다. 윤 PD는 “눈만 뜨면 무조건 만나러 간다”고 취재가 생활임을 강조했다. 일단 출연자의 집이나 직장에 찾아가서 밥도 하고, 김장도 해주고, 농사도 돕고, 장사도 거들며, 아이와 노인을 돌보는 출연자의 “가족 혹은 친구 되기”가 시작된다. 취재 당일에도 구순이 넘으신 할머니를 수발하러 나가는 한 PD를 동료 PD들이 격려하고 놀리는 광경을 목격했다. 장소가 머나먼 오지, 섬, 달동네가 되더라도 감내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귀훈 PD는 “<인간극장>에서 출연자들의 마음을 여는 특별한 기술은 없다. 그저 친구나 가족처럼 진심으로 그들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모 PD는 지체장애가 있는 형제를 취재하러 섬으로 갔다가 때아닌 봉변을 당했다. “효성이 너무 지극했던 형제들은 어머니를 촬영하러 온 제작진이 무엇을 조금만 하려고 하면 무조건 돌을 던졌다”고 한다. 모 작가의 귀띔에 따르면 허리가 좋지 않은 모 PD는 “출연자가 머슴처럼 부려서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그래도 <인간극장>의 카메라는 돌아간다. 편집하다 호흡곤란으로 쓰러져본 적 있으신가요 이 과정이 무르익고 출연자의 마음이 정해지면 4주 정도 촬영에 돌입한다. 총 2시간30분 분량의 <인간극장> 한편을 위해 촬영 분량은 대체로 60분짜리 DV테이프로 70∼80개 선이다. 경우에 따라 100∼120개까지 촬영하는 상황도 생긴다. 당일에 촬영해서 저녁에 내보내는 엽기적인 스케줄도 있었다. 2002년 월드컵 태극전사를 다룬 <대한민국 나의 아들>은 감동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당일 촬영, 편집, 방영을 해낸 에피소드다. 총동원된 모든 PD가 방영 직후 그라운드 위의 선수들처럼 초죽음이 된 것은 자명하다. 촬영에는 출연자를 배려하여 만반의 준비를 기한다. 윤 PD는 “거부감을 느낄까봐 심지어 와이어리스 마이크도 사용하지 않는다. 초지향성 마이크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인간극장>의 AD들은 선배들의 현장에 따라나서기가 쉽지 않다. 출연자들은 사람이 한명만 늘어나도 금세 알아차리고 기껏 만들어놓은 감정을 숨겨버린다. 그럼 그날 촬영은 공치는 것이다. 촬영 중에도 설득과 인내는 계속된다. 만약 오랫동안 소원했던 가족이 놀이공원에 놀러가는 상황이라고 생각해보자. PD가 집을 나서는데 비가 쏟아진다. 거기서 그대로 물러서면 <인간극장> PD가 아니다. “짜증내는 아이들, 기껏 장만한 김밥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선,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아버지의 얼굴을 잡아내야 한다”고 현장 PD들은 말한다. 촬영이 끝나면 “보는 사람에게는 <인간극장>이지만 만드는 사람에게는 ‘인간끝장’”인 ‘죽음의 편집’이 제작진을 기다린다. 평균 2주간의 편집은 “하루 24시간 중 평균 18시간을 꼬박 조그셔틀에 매달린다. 손목이 시큰거리고 젊은 남자들도 체중이 쑥쑥 빠진다”고 이 PD는 설명했다. <인간극장> PD라면 입을 모아 손을 내젓는 과정이 바로 이 편집 기간이다. 최악의 상황은 시사를 마친 뒤 재편집 명령이 떨어지는 경우다. PD와 카메라맨이 출연자와 가족처럼 지내는 특성상 감정이입으로 인해 에피소드를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볼 때 발생하는 상황이다. 다른 제작진으로 구성된 모니터들이 냉정히 판단할 따름이다. 수요일에 내부시사 뒤 재편집 명령을 받은 이 PD는 “월요일 아침에 일을 끝내고는 호흡곤란으로 쓰러져서 청소부 아주머니에게 발견된 일”도 있었다. <인간극장>은 인간 수양의 과정 <인간극장>을 만드는 일은 “인간적으로 수양되는 과정”이라고 현장 PD들은 입을 모은다. 이귀훈 PD의 표현처럼 “휴먼다큐를 만드는 PD들은 경력이 쌓일수록 사람들이 둥글둥글해진다”고나 할까. <인간극장> 담당 4년차이며 현장 PD를 총괄하는 윤양수 PD는 “내가 촬영에 나갈 때마다 우리 아이의 어린이집 선생님이 ‘아빠 촬영갔구나’라고 눈치챌 정도로 아이가 창밖만 바라본다고 하더라”고 술회했다. 이 PD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태어난 지 1년이 된 아이를 맡기고 <인간극장>을 하다보니 아이가 엄마를 봐도 데면데면한다. 어느 날 3살이 된 아이가 자기 가슴팍에 내 손을 가져가서 얹고는 ‘아 행복하다’라고 말하는 걸 보면서 놀란 일도 있다”고 그는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인간극장>은 “그럼에도 가급적 결혼하지 않은 PD에게는 맡기지 않는 분위기”라고 이야기했다. 다큐멘터리의 만듦새에 대한 경력뿐만 아니라 사람을 보고 대하는 경력을 <인간극장>은 요구한다. 그 이면에는 5년 전에 만난 출연자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PD와 가족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을 털어놓고 상의하는 출연자가 있다. 자연스러움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인간극장>은 방영 뒤에는 자연스러운 ‘인간관계’로 옮아간다. <인간극장>은 기다림의 미학이다. 거의 연출없이 진행되는 프로그램 특성상 “원하는 것을 찍으려고 조바심을 내면 사단이 나게 마련”이라고 제작진은 한결같이 지적한다. 그들은 “준비가 예정보다 일찍 끝나서 먼저 내려간 PD들은 출연자랑 싸우고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고 우스갯소리처럼 말한다. <한민족리포트>를 담당하다가 <인간극장>으로 넘어와서 “억 소리가 절로 난다”는 황명옥 PD는 이를 ‘고통 질량 불변의 법칙’이라고 설명한다. 출연자와 싸우고 올라온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기존 촬영분량을 모니터링해서 출연자가 큰 문제가 없고, PD와의 감정적인 사안이라고 판단되면 “담당 PD가 다시 촬영지로 내려가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완성해야 하는 것”이 <인간극장>이다. 5년 반을 줄곧 CP로 일한 김용두 PD는 <인간극장>의 성공요인을 “현장 PD와 작가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애착에서 비롯됐다. 그 사람들은 완전히 <인간극장>에 미쳐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외주제작이 아니라 KBS의 인하우스였다면 이런 결과가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극장>의 제작과정에서 PD와 양날개를 이루는 사람들은 노련한 작가와 전문 카메라맨이다. <추적60분> <그것이 알고 싶다>를 두루 섭렵했고 처음부터 <인간극장>에 참여한 다큐멘터리 25년차 제3비전 이정혜 작가는 기억나는 작품을 묻자 “할 때마다 똑같이 어렵고 비명을 지를 만큼 힘들어 일일이 기억하면 이 일을 계속하지 못한다”라고 웃으며 답했다. 그는 “<인간극장>을 영화화하려면 책을 단순히 영상화하는 방식보다는 소재만 가져와서 영화적으로 변용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프로그램의 특성상 <인간극장>의 카메라맨은 전반적인 상황을 언제나 숙지해야 한다. 돌발적인 상황이 거의 전부를 이루는 탓에 “황야의 총잡이처럼 어떤 상황이라도 카메라를 빼들 수 있어야” 하고 “감정이 극에 달할 때는 PD도 자리를 떠야 하는 상황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촬영을 하다보면 “어느 제작진보다 카메라맨들이 출연자와 친해진 모습을 쉽게 발견한다”고 한다. 진짜 제작팀은 출연자들이다 제작진과 만났을 때마다 그들이 가장 강조한 점은 단 하나였다. “<인간극장>은 출연자들이 제일 중요하고, 이 프로그램의 성공도 전부 그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인간극장>은 시청률 경쟁에서 MBC <뉴스데스크>를 가뿐히 제압하고 요일마다 바뀌는 SBS의 오락프로그램 융단폭격에도 5년 반 동안 끄떡하지 않은 12∼13%의 평균시청률을 유지하는 KBS의 효자 교양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인간극장>의 PD들은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출연자, 그리고 그 다음이 시청자”라고 단언한다. 촬영을 앞두고 팔목을 긋고 자살을 기도했던 아버지가 촬영을 통해 좋은 아버지로 변모했다면 “시청률에서는 한 발짝 밀려나도 아쉬움은 갖지 않는다”고 그들은 말한다. 한 사람의 인생을 미세하게 다루는 프로그램 특성상 “그들의 인생에 사소하게라도 누를 끼치는 상황이라면 언제라도 카메라를 거둬야 한다”고 제작진은 이야기한다. 시청자들도 이러한 제작진에 화답한다. <세진이 이야기>를 보고 게시판에 자살을 포기했다고 글을 올린 시청자가 있었다. “저런 아이도 그렇게 열심히 산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인간극장>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사람에게 지친다. 하지만 다시 촬영에 임하면서 인간적으로 성숙해지는 것도 그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내 삶을 반추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라는 어느 PD의 마지막 전언은 그래서 가슴에 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