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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변신은 나의 성질', 정봉이에서 주오남까지, 배우 안재홍이 자신의 지도를 개척하는 법

예고편만 놓고도 심상치 않은 기대감을 불러내더니, 8월18일 시리즈 공개와 동시에 2화 ‘주오남’, 3화 ‘김경자’를 연달아 본 시청자들을 아연실색게 했다. 지금 안재홍은 <마스크걸>이 지닌 화제성의 중심에 있다. 올봄 영화 <리바운드>에서 실존 인물을 연기하면서 이미 굳건한 존재감을 보여주었음에도, <마스크걸>에서 다시 만난 안재홍의 얼굴엔 익숙한 구석이 없다. 탈모와 피부병 분장을 한 안재홍이 연기하는 인물은 주인공 김모미의 직장 동료이자 일본 애니메이션 오타쿠인 주오남. 외모 콤플렉스를 숨긴 채 인터넷 방송의 스타가 된 마스크걸에게 동질감을 넘어 사랑을 느끼는 남자다. 이른 죽음 이후에도 유령처럼 떠도는 주오남의 잔상은 자칫 희화화에 머무를 위험이 있는 캐릭터에 정확한 표정과 순정을 투여한 배우의 자질에 힘입어 선명히 지속된다. “어떤 작품과 만날지는 내가 재단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일”이라지만 <마스크걸>이 결코 흔치 않은 기회라는 직감마저 물리칠 수는 없었다. 관객만큼 배우 자신도 주오남을 제안받고 “솔직히 놀랐다”. 첫 OTT 시리즈 출연, 게다가 리얼돌과 대화하며 홀로 생일 케이크를 자르고 자위 기구를 셀프로 선물하는 남자라니. 과감한 제안 앞에서 안재홍은 덩달아 대담해지기로 했다. “마음이 움직이면 빠르게 결정하는” 습관대로 3일 만에 김용훈 감독에게 응답을 보냈다. 다중 시점의 플롯을 읽어내려가는 사이 배우 이전에 관객 안재홍의 흥미가 발동한 덕분이기도 하다. “괴상하고 독특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더 끌렸다. 용기란 걸 내보고 싶었다.” 공교롭지만, 그렇다고 뜻밖의 만남은 아니다. 자신의 이면을 경신하고픈 지극히 배우다운 욕망이 안재홍에게도 언제나 존재했으므로. “안타고니스트 역할로 좋은 작품과 연이 닿는다면 어떨까, 막연한 바람은 늘 품고 있었다.” 건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출신으로 홍상수 감독의 현장에서 배우인 동시에 연출부를 겸했을 만큼 인디 신을 활보한 배우지만 안재홍이 대중적인 인지도와 이미지를 갖추기까지 그리 오래 걸린 편은 아니다. 흔한 편견대로라면 독립영화 배우가 마이너한 이미지를 탈색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법도 한데, 안재홍은 처음부터 그저 안재홍다움으로 받아들여졌다. 남성의 ‘무해한’ 매력이 하나의 코드로서 소비되기에 한발 앞서, 그는 이미 <족구왕>(2014)과 드라마 <응답하라 1988>(2015)에서 엉뚱함, 순진함, 친근함을 이유로 사랑받은 배우다. 안재홍의 스타성은 곧 연기력과 친숙함을 두루 갖춘 배우를 향한 대중의 호감으로 입증됐다. <위대한 소원> <굿바이 싱글> <임금님의 사건수첩>에서 코미디의 지평을 넓혔고, 트렌디 드라마 <쌈, 마이웨이> <멜로가 체질>이나 영화 <해치지않아>에선 군더더기 없이 담백한 연기 스타일의 장점을 극대화했다. <소공녀>의 공장 노동자이자 돈이 없어 애잔한 연인인 한솔, <사냥의 시간>의 속 깊은 동창생 장호는 배우가 지닌 희극적 이미지에서 깊이와 쓸쓸함을 알아본 연출자들이 파토스를 끌어낸 경우다. <리바운드>에 이르러 그는 코트를 관장하는 리더로 분한다. 안재홍은 실존 인물인 강양현 코치를 소화하기 위해 말투와 제스처는 물론 10kg 이상 몸무게를 증량해 데뷔 초 이후로 볼 수 없었던 묵직한 실루엣으로 나타났다. <마스크걸>에서는 여태 한번도 시도한 적 없는 양식적인 분장을 덧입고서 선악의 경계를 오간다. 올해 그의 행보는 마치 체급을 불려 나타난 선수의 한방을 보는 것 같다. “김경자(염혜란)가 죽은 아들의 노란 점퍼를 입고서 복수를 감행한다는 설정을 보고 <마스크걸>에서 주오남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감을 잡았다. 오남은 죽음과 동시에 경자에게 바통을 건네면서 분노한 엄마가 달려나가게 만든다. 오남이 <마스크걸>의 이야기가 폭주할 수 있도록 추진력을 모으는 인물, 혹은 뇌관을 터뜨리는 인물이라면 더욱더 장르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겨야만 했다. 몇몇 장면들의 수위가 꽤 센 것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했다.” 자신의 쓰임을 정확히 이해한 배우에게도 의외의 고충은 있었다. 어둡게 닫힌 방 안에서의 시간을 안재홍은 이렇게 회고한다. “모니터를 대체한 블루 스크린을 보면서 채팅창의 내용과 속도를 혼자 상상해야 했고 대화는 인형하고만 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세상 밖으로 나가 실제 사람과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지더라. (웃음)” 사랑하는 여자 대신 살인죄를 뒤집어쓸 용의가 있는 남자를 지켜보는 동안, 안재홍은 대본 귀퉁이에 ‘삐뚤어진 깊은 마음’이라고 썼다. “오남이 울고 있는 모미에게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 먼저 나가라’고 말할 때 무언가 턱 하고 마음에서 북받치는 게 있었다. 오남의 진심은 이 순간에 있다고, 그렇게 느꼈다. 그에 대한 평가는 보는 분들마다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오남의 서사는 비극이다. 세상과 늘 조금씩 어긋났고, 그 속에서 내린 선택들로 인해 점점 더 수렁으로 빠지더니 결국에는 파국에 이른다.” 파격적 변신에 대한 호평의 일환으로 SNS상에서는 “안재홍이 악마와 거래했다”는 식의 밈까지 퍼졌다. “이 정도로 어두운 카타르시스와 함께 다가온 인물은 내게도 처음”이라고 그 역시 인정한다. 그러나 안재홍은 자신의 결과물이 거창한 단어로 수식되는 일이 하여간 겸연쩍은 눈치다. “내가 배우로서 지향하는 바가 뭐지? 새로운 작품을 제안받을 때 주로 이것 하나만 질문해본다. 헷갈릴 때도 있지만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은 간단하더라. 좋은 배우가 되고 싶은 것, 연기를 계속해서 더 하고 싶은 것. 그러니 안 가본 길로 가보는 즐거움을 마다하지 않는 것뿐이다. 앞으로도 그냥 계속 여행하듯 나아가보고 싶다.” <마스크걸>로 새 개척지에 당도한 뒤에도 그는 쉬지 않고 다음 경로로 이동 중이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면 이전과는 마음이 조금 달라져 있다. 한 작품을 잘 끝내고 난 후도 비슷하다. 다음에는 더 멀리 갈 수 있을 것 같고, 더 즐겁게 놀 수도 있을 것 같은 용감해진 기분이 든다.” 영화와 현실의 틈새를 좁혀온 안재홍의 청년들은 조금씩 미덥게 나이 들고 있다. <리바운드>와 <마스크걸>을 마주하는 현재, 우리는 어느덧 30대 중반을 지나는 배우 안재홍의 분기점을 목격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이어질 작품들 역시 그가 가장 잘하는 것과 새로운 모험을 골고루 품은 모양새다. 내년 공개 예정인 넷플릭스 시리즈 <닭강정>에선 “원작 웹툰을 처음 봤을 때 ‘날 보고 그렸나?’ 생각할 정도로 엄청난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캐릭터”로 나온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온스크린 섹션에 초청된 티빙 시리즈 에선 배우 이솜과 생계형 부부로 남다른 호흡을 맞춘다. 인터뷰에 앞서 “한창 의 클라이맥스 신을 촬영 중이라 목이 쉬어 죄송하다”고 첫인사를 건넸던 그는 마무리 인사로 차기작에 대한 기대감을 슬쩍 지피는 일도 빠트리지 않았다. “임대형, 전고운 두 감독님이 각본을 쓰고 공동연출을 하는 데서 오는 엄청난 시너지가 있다. 밀도 높은 드라마가 나오리란 예감이 든다.” <마스크걸>로 만난 배우 안재홍의 낯선 표정 대본에는 없던 일본어 대사 “아이시테루!”를 외치는 순간, 안재홍은 그를 마주한 김모미만큼이나 주오남 스스로도 본능적인 수치심을 느끼고 있음을 표현해낸다. 차마 뜨지 못한 눈, 아래로 축 처진 채 일그러진 입꼬리를 하고서.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남자의 모습은 후련하기는커녕 미묘하게 낭패스럽다. 관계에 숙맥인 남자를 처음 연기하는 것도 아닌데, 이 순간 오남의 얼굴은 안재홍에게서 처음 보는 그것이다. 오타쿠적 면모를 부각하는 일본어 대사보다 주오남에게 축적된 오랜 실패감과 접속한 것이 이 장면의 진정한 성취다. 안재홍은 “촬영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스크걸>에 유독 클로즈업이 많이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웹툰 원작의 이야기라고 해서 만화적으로 그리기보다 오히려 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배우의 얼굴을 여과 없이 담고자 하는 김용훈 감독님의 바람이 느껴져서 가능한 한 더 감정에 예민해지고자 했다.”

[베이징] 영화에 녹아든 인연, ‘영화의 황제’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 선정

9월 중국 극장가의 화제작은 선아오 감독의 <고주일척>이다. 왕대륙과 장이싱 주연의 이 영화는 인터넷 도박 범죄 실화를 다룬 범죄 스릴러로 8월8일 개봉해 지금까지 37억위안의 박스오피스를 올렸다. 중저예산의 제작비에도 엄청난 수익을 거두며 여름 극장가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이 영화의 배후에는 감독이자 제작자인 닝하오 감독이 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된 <영화의 황제>에서 닝하오는 오랜만에 자신의 연출작으로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유덕화와 함께 주연을 맡았다. 유덕화는 홍콩의 슈퍼스타 리우웨이치로, 닝하오 감독은 린하오 감독으로 등장한다. 리우웨이치는 재기에 성공하기 위해 린하오 감독과 농촌을 주제로 한 영화를 공동 작업하기로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그의 오만으로 인한 불협화음들로 바람 잘 날이 없다. 이처럼 <영화의 황제>는 엔터테인먼트와 영화 업계의 현실을 풍자하는 이야기다. 두 사람의 인연은 <영화의 황제>보다 훨씬 전부터 시작됐다. 닝하오 감독의 첫 작품 <크레이지 스톤>이 관객과 만날 수 있었던 건 유덕화가 만든 ‘아시아의 신예감독’ 지원 프로젝트 덕이었다. 2006년 <크레이지 스톤>은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됐다. 2006년에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이 2023년 부산에서 다시 이어진 것이다. 2006년부터 끈끈하게 이어진 닝하오와 유덕화의 인연이 만들어낸 선순환 구조는 중국영화계의 작은 울타리가 되어주었고 두 사람은 자신들의 실제 이야기이자 영화 만들기에 대한 찬사인 <영화의 황제>를 통해 다시금 관객을 만난다. 둘의 만남을 손꼽아 기다려온 팬들뿐 아니라 영화계에도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OTT 추천작] ‘사랑에 빠진 것처럼’ ‘우리도 사랑일까’ ‘일본 곤충기’ ‘노스탤지아’

<사랑에 빠진 것처럼> 웨이브, 왓챠 ▶▶▶▶▶ 한때 인간의 고유한 역량으로 간주됐던 인지작용은 이제 우리를 둘러싼 사물과 기기의 자동화된 역학으로까지 분산됐다. 동시대 감독들이 현실의 재현을 회피하는 이유는 인간화된 주체의 의지와 욕망을 토대로 경험의 형식을 구조화하는 관습적 극작술이 그런 시대를 담는 데 불충분한 도구이기 때문일 테다.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사랑에 빠진 것처럼>은 그런 한계를 일찍이 돌파했다는 점에서 재평가가 시급한 걸작이다. 핸드폰, 자동차, 전자레인지 등 온갖 사물이 빚는 시청각적 물성이 영화적 현실의 지분을 당당히 점유하는 이 작품에, 상실된 2010년대의 시공이 근사하게 구현돼 있다. <우리도 사랑일까> 웨이브, 왓챠, 티빙 ▶▶▶▶ 좀더 어렸을 때엔 엉뚱한 몸짓과 괴상한 수다로 가득한 <우리도 사랑일까>의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고서야 그 까닭 모를 기호들이 사랑이라는 사건의 본질에 근접한 활동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사랑의 순간은 명확한 논리로 해명할 수 없지만, 현전하는 강렬한 실감만으로 존재론적 정당성을 얻어가는 말과 몸짓의 매혹적 인상으로 가득하다. “오직 인상만이 마주침의 우연성과 효과의 필연성을 자기 안에 겸비하고 있다.”(질 들뢰즈) <우리도 사랑일까>는 사랑에 빠진 연인이 오직 그들에게 고유한 언어와 기호를 창조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다. <일본 곤충기> 왓챠, 티빙, 웨이브 ▶▶▶▶ 대지를 기는 곤충은 시대를 부감하는 성찰적 자의식을 갖지 못한다. 그리고 이마무라 쇼헤이가 포착한 인간 또한 그런 존재다. <일본 곤충기>는 근현대사의 질곡을 통과하는 하층민 도메의 삶을 그린다. 주된 역사적 사건이 다큐멘터리적 질감으로 망라되지만, 시대의 가장자리를 맴도는 여인은 세계를 서사가 아닌 사실의 집합으로 체험하며 표표히 소요할 뿐이다. 허식으로 가득 찬 역사의식이 엉망진창으로 흘러가는 내 삶을 해명해줄 의미를 마련하지 않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그 진창을 들여다 봐주는 예술의 존재를 갈구하는 법이다. 부박한 시대를 통과하는 우리에게도 위안이 돼줄 작품이다. <노스탤지아> 왓챠, 웨이브 ▶▶▶▶▶ 고르차코프는 시종 뒤를 돌아본다. 물끄러미 돌아보면 거기 작별한 연인의 미소가, 지나온 시간의 조각이 우수 어린 빛깔로 점멸한 후 사라진다. 그러나 불가역적인 기억이 지나가면, 이제 돌아와 불확실한 현재를 견뎌야만 한다. 그렇기에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인물에게는 한 걸음을 내딛는 행위가 그토록 버거운 일이었다.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시인한 채로, 바람에 꺼지는 촛불처럼 연약한 현재의 실감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시인한 채로, 모든 불가능성을 시인한 채로 우리는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을까. <노스탤지아>는 그 운동을 향한 신념에 모든 것을 내거는 영화다.

[임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신비롭지 않은 바비들

핑크를 기대했지만 온통 그레이다. 회색 콘크리트 아파트부터 핵폭탄이 만든 잿빛 하늘까지. 미국을 비롯해서 전세계적으로 흥행 중인<바비>가 유독 한국에서는 상영관을 찾기 힘들 정도로 고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천쪽이 넘는 과학자 평전을 사 읽고 과학 공부까지 하며 보러 가는 <오펜하이머>와 너무나 대조적이다. 그냥 켄, 아니 백인 남성 과학자의 이야기에 한국인들은 왜 이토록 진심인 것일까? 아, 물론 나도 과학에 진심이다. <바비>의 많은 것들이 좋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지막 장면이었다. 영화 후반부에서 바비는 바비랜드와 현실 세계 중 후자를 택한다. 바비가 청바지와 면티에 베이지색 재킷을 걸치고 슬리퍼를 신은 채 현실 세계에 발을 내딛으며 처음 방문한 곳은 다름 아닌 산부인과 의원. “산부인과 의사를 만나러 왔어요”라는 대사를 듣기 전까지 나는 바비가 직장 면접을 보거나 출근하러 가는 길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바비가 인간 여성이 되면서 가장 처음 한 일이 산부인과 진료를 받는 것이라니! 아, 바비는 인간 여성이 아니었지! 현실 세계에서 산부인과를 방문한 바비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나는 바비랜드의 ‘그녀’들이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 인간 여성의 몸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의 생물학적 몸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인간을 닮고 인간의 이름으로 불리며 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인형이라니…. 우리는 이런 인형을 ‘로봇’이라고 부르기로 하지 않았던가? 최근 인공지능과 로봇에 대한 전 사회적 관심 속에서도 창의성이나 의식 여부 등에 비하면 몸은 그렇게 큰 관심을 받지 못해 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인간성의 정수가 정신에 있다고 믿는 이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일 것이다. 로봇 바비와 인간 바비의 차이가 다른 무엇도 아닌 몸이라는 사실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찾아보니 이 마지막 장면에 대한 그레타 거윅 감독의 설명은 이렇다. 자신이 10대 소녀였을 때 부끄러움과 수치심 때문에 자신의 몸을 숨기려고 했던 기억이 있어서 지금의 소녀들이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고. 그러고 보니 산부인과 의사를 만나러 왔다는 말을 하며 밝고 환하게 웃던 바비의 얼굴이 기억난다. 자부심과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산부인과 진료를 받으러 가는 인간 바비라니. 거대한 바비가 나타나자 엄마 놀이를 하던 어린 여자아이들이 아기 인형을 집어던지던 영화의 첫 장면과 묘하게 연결된다. 여성형 로봇 바비에게는 없지만 여자 인간 바비에게 있는 몸, 특히 산부인과의 대상이 되는 몸은 여성의 생식기능과 관련이 있다. 바비랜드가 여자들의 유토피아일 수 있었던 것은 바비들이 아이를 낳는 여성의 몸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인 것일까? 그렇다면 현실 세계 여자들에게는 희망이 없는 것일까? 그럴 리가. 거윅의 바람처럼 희망은 당당하게 산부인과에 가는 바비에게 있다. 희망은 자신의 몸과 삶을 신비롭게 두지 않는 여자들 그리고 여성의 몸과 삶을 신비롭게 두지 않는 과학에 있다. 과학과 여자에 진심인 내가 <바비>를 사랑하지 않을 도리는 없었다.

[기획] 쓸쓸함도 황량함도 노래가 된다, 독일영화의 좌표에서 크리스티안 페촐트의 자리 찾기

처음 본 크리스티안 페촐트의 영화인 <내가 속한 나라>에서 지금도 또렷하게 남아 있는 장면이 하나 있다. 차창 밖으로 달려가는 유럽의 풍경과 그 풍광을 담고 있는 동경 어린 소녀의 눈망울은 쓸쓸하기 짝이 없다. 부모가 좌파 테러리스트라 쫓겨다니는 통에 자기가 선택하지도 않은 떠돌이의 삶을 살아가는 소녀에게는 자신의 자리인 세상의 점 하나가 간절하다. 점이 없으니 선도 없다. 내부 안전을 위해 세상 누구와도 연결되면 안되니 내면의 안정은 찾을 길이 없다. 그렇다면 1960년 서독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서 태어난 페촐트의 자리는 어디일까? 의외로 쉽게 답이 나온다. 독일이다. 독일 감독이니 당연한, 그런 의미가 아니다. 그러니까 활동 영역을 뜻하는 게 아니고 국적을 뜻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의 시점이 독일에 있고,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도, 그의 시야도 독일이다. 이는 오랫동안 정체되었던 독일영화계에 1990년대 이후로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던 동료 감독인 도리스 되리, 톰 튀크버, 올리버 히르슈비겔, 플로리안 헹켈 폰 도네르스마르크의 행로와 비교해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무엇보다도 영화의 주제들이 그가 언제나 현재 독일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68 학생운동의 잘못된 유산인 적군파 테러리스트들의 유령 같은 삶, 포스트 포드주의 시대를 맞은 자본주의국가 독일의 도덕적 함몰, 그곳에서 일찌감치 낙오자이자 국외자가 된 청소년들, 통일 뒤에 나타난 또 다른 동서의 비대칭, 전범국가 독일의 해외 파병과 그 후유증, 독일 내 터키 이민자들의 고단함, 사회주의 독재국가 동독의 억압 체계, 나치 독일의 수용소와 정치적 난민의 생존 문제, 신자유주의 사회의 사랑, 능력사회의 폐해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선은 늘 독일을 맴돈다. 사회에서 개인의 문제로 그렇다고 신독일영화의 선배 감독들처럼 직접적인 사회 비판을 하는 것도 아니고 노선이 선명한 것도 아니다. 베를린파라는 범주의 실효성을 믿지는 않지만, 그 대표주자답게 사회의 큰 사건보다는 일상 속 인물들을, 대우주와의 격돌보다는 개인들의 소우주를 바라본다. 사회적 모순에 대한 해결 방법이나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새로운 삶에 대한 간절한 희망이 꺾이는 순간을, 선한 피억압자보다는 가해자가 되는 피해자를 차분히 그려낸다. 그러나 페촐트의 매력은 이렇게 사회의 민감한 지진계 역할을 하는 것으로 소진되지 않는다. 사회적 문제의식은 매번 인간의, 또는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철저하게 독일적이면서도 그렇지 않은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탐구 과정은 전적으로 탐색을 통해 이루어진다.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는 자신이 스크린 위에 펼쳐 보이는 세상의 전지전능한 창조자처럼 굴지 않는다. 그의 인물들은 결코 완전히 파악되지 않는다. 사람의 계획은 우발적 사건들을 통해 끊임없이 엎어진다. 그렇기에 연민과는 거리가 먼 객관적인 탐색의 시선과 시선이 가닿지 않는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는 무엇인가가 언제든지 뒤엉킬 수 있다. 또 한명의 독일 거장 감독인 안드레아스 드레젠의 세계에 마법 같은 순간들이 있다면 페촐트의 세계에는 미스터리와 신비로움이 대기 중에 떠돈다. 물론 이러한 탐색의 모습은 정밀하고 섬세한 수공예의 결과물이자 오랜 성찰의 산물이다. 이제는 루틴이 된 듯한 삼부작 구조가 그 극명한 증거다. 삼부작의 경향은 그가 자신의 주제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얼마나 끈질기게 천착하는가를 방증한다. 또한 직접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배우들과 촬영을 준비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다른 예술작품들과의 대화가 늘 동반된다. 그가 영화를 공부하기 전에 독문학과 연극학을 전공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세미나’라 불리기까지 한다는 배우들과의 준비 과정에는 주로 영화와 문학작품들이 ‘교재’로 쓰인다. 그것들을 골라내는 솜씨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난다. 평소에 열심히 읽고 본다는 얘기일 뿐 아니라 읽어내는 능력 또한 뛰어나며 응용력은 말할 것도 없다. 그의 영화가 보여주는 다층성과 상징성은 문학의 영향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회화의 영향은 무엇보다 그의 영화 곳곳에서 등장하는 황량한 풍경에서 드러난다. 독일 낭만주의 풍경화의 화풍을 떠올리게 만드는 영상은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이며 위태로운 존재인가를 느끼게 해준다. 바바라가 탈주 자금을 감추러 바위 더미로 갈 때면 바람은 또 어찌나 부는지. 어쩌면 베를린파 미학의 핵심 개념인 ‘분위기’의 요체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중적인 시선 페촐트는 자신의 인물들에게 해피 엔드를 선사하지 않는다. 그의 인물들에게 과거의 흔적들이 지워져 있듯이, 영화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또한 늘 열려 있다. 오히려 그들 뒤로는 항상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서 때로는 서서히 그것에 잠식당하고 때로는 난데없이 급습당한다. 이것이 페촐트의 낭만주의적 리얼리즘이다. 그렇기에 신산한 인생의 뒷맛이 영화관을 나선 뒤에도 여운처럼 남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차갑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사실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의 인간적인 면모는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지만 온기에도 종류가 있는 법이다. 드레젠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확연하게 느껴진다. 동독 출신으로 포츠담 바벨스베르크 영화·텔레비전 대학교를 나온 드레젠에게서 무조건 내 편일 것 같은 푸근한 엄마의 따뜻함이 느껴진다면, 서독 출신에 베를린 독일 영화·텔레비전 아카데미를 나온 페촐트에게서는 젊은 감각을 유지하며 짚고 넘어갈 것은 짚고 넘어가는 이성적인 아빠의 따뜻함이 느껴진달까. 드레젠의 영화에 동트는 아침의 노릇한 붉은빛이 감돈다면, 페촐트의 영화는 그 두 시간쯤 전, 푸르스름함이 가라앉아 있는 풍경을 담는다. 드레젠이 여명으로 독일 사회의 아래쪽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감싸안는다면, 페촐트는 사회의 바깥으로 밀려나 그 푸르스름함 속에 서 있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 시선은 이중적이다. 그들을 밖으로 내모는 냉혹한 사회를 직시하는 냉철함 안에 곧 퍼져올 따스함이 담겨 있다. 이렇게 그의 영화에서는 쓸쓸함도 황량함도 노래가 된다.

[비평] 주인 없는 영화, ‘어파이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어파이어>의 후반부, 갑작스러운 통증으로 병원에 입원한 출판사 대표 헬무트(마티아스 브란트)의 병문안을 마치고 돌아온 나디아(파울라 베어)는 레온(토마스 슈베르트)에게 외친다.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안 보여?”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말하던 헬무트가 사실은 암 환자 병동에 입원해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떠나가는 나디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레온은 두눈을 감싸고 탄식한다. 되짚어보면 영화의 첫 장면에서 운전 중인 펠릭스(랭스턴 위벨)가 자동차 고장을 감지하며 비슷한 말을 건넸었다. “이상한 소리가 들려.” 그러나 창밖을 향해 눈을 감고 있던 레온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답한다. 그는 세계를 보고 듣지 않는다. 무엇을 보고 들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크리스티안 페촐트는 <어파이어>를 휴가의 영화라고 말한다. 물론 이 영화는 여름휴가를 보내는 네 남녀의 우연적인 만남을 다루고 있으며, 그들 사이의 복잡한 감정과 날씨의 변화를 예민하게 비춘다. 휴가 영화를 구성하는 많은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어파이어>는 그러나 페촐트가 영화를 계획하면서 떠올렸다고 밝힌 몇몇 휴가 영화들(<일요일의 사람들>에서 에리크 로메르의 <수집가>에 이르기까지)처럼 눈앞에 존재하는 자연의 풍부한 생명력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작업과는 거리가 멀다. 세계의 매혹이 통제 바깥의 자유로움에 있다고 믿으며, 자연의 경이에 눈과 귀를 열어두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대신 페촐트가 창안한 휴가의 풍경은 자동차가 멈추고, 벽지에 곰팡이가 피어나고, 평온한 별장 근처에서 꺼지지 않은 산불이 타오르는 것처럼 화면을 중단하고 재건을 요구하는 기록으로 채워져 있다. 휴가지의 바깥 무엇보다 영화의 주인공인 레온이 제대로 된 휴가를 보내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는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대신 원고를 완성해야 하는 문제에 강박적으로 사로잡혀 있으며, 바다에서 수영하거나 지붕을 고치고 요리를 만들어 먹는 주변 사람들의 일에도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페촐트가 <어파이어>를 구상하는 단계에서 참조했다고 밝힌 로메르의 영화나 미국의 스크루볼 코미디처럼 여유롭거나 리드미컬한 대화를 주고받을 만한 여력이 없다. 그는 신경이 예민하고 시도 때도 없이 잠든다. 바깥으로 나가자는 제안을 거절하고 어디서나 잠이 들기 때문에 그가 제대로 보지 못한 일들로 매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한다. 레온에게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앞뒤를 파악할 수 없는 돌발적인 사건으로 다가온다. 레온은 소설을 쓰기 위한 작은 공간에 앉아 있지만, 아무것도 실행하지 않는다. 그는 마치 휴가의 바깥에 있는 사람처럼 다뤄진다. 레온은 여름휴가의 주인이 아니다. 그는 눈을 감은 채로 숲속에 진입해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른다. 그 별장은 레온의 것이 아니다. 펠릭스 어머니의 소유인 그곳엔 이미 나디아가 도착해서 생활하고 있다. 게다가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관계 역시 레온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는 상대를 바꿔가며 섹스하는 이들의 옆방에 언제나 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뒤바뀌는 관계의 옆자리에서 다른 이들을 지켜볼 뿐이다. 심지어 레온이 쓰는 글조차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는 소설을 쓰는 작가지만 남들에게 능숙하게 이야기를 전달하지도, 자신이 쓰는 글을 똑바로 설명하지도 못한다. 숲속에 도착한 헬무트는 그가 쓴 소설 <클럽 샌드위치>의 출간을 반려한다. 그가 휴가지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어파이어>의 이야기는 크게 훼손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레온은 <어파이어>의 주인(공)이 아니다. 그는 세계를 바라보는 주체가 아니라 화면의 기록에 노출된 수동적 존재다. 그의 눈과 귀 뒤편에 불투명한 세계가 존재한다. <어파이어>는 레온, 또는 카메라가 세계를 바라보는 기록이 아니라 그 세계가 레온을, 영화의 시선을 관찰하는 역투시도법의 무대다. 이곳에 도착한 레온이 거론하는 가장 우스꽝스러운, 그러나 그의 처지를 가감 없이 대변하는 말은 이런 것이다. 나디아가 수영하러 바다에 가자고 제안하자 레온은 거절하며 대답한다. “일이 허락하지 않아요.” 레온은 주어의 자리에 자신을 대입하지 않는다. 주어는 일이다. 작가인 그에게 그것은 소설을 쓰는 작업이고, 원고를 마쳐야 하는 상황이다. 그는 육체적으로 숲속에 존재하지만, 다른 이들을 지켜보거나 잠드는 것 외에 달리 실행할 수 있는 행동을 허락받지 않았다. 정물이나 다름없는 레온에게 달라붙는 것은 날벌레거나, 뜨겁게 내리쬐는 7월의 태양뿐이다. 그는 자외선차단제와 벌레퇴치제를 피부에 뿌리며 부패하고 있다. 레온은 주어에서 탈락한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그는 단지 보고 듣지 못하는 것만이 아니다. 레온은 자신이 이야기를 창작하는 작가이자 주어진 휴가의 시간을 관장하는 주체라고 믿지만, 영화적 인물이 수행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박탈당한다. 글을 쓰지 못하고, 행동하지 못하고, 사랑을 고백하지도, 우정을 확인하지도 못한다. <어파이어>가 진정 휴가의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이는 이 영화가 여름휴가의 시간을 다루거나 바닷가와 숲속을 보여준다는 사실과 무관하게 영화적 주체의 자리를 비워둔다는 측면에서 그러하다(휴가를 뜻하는 단어 바캉스의 어원은 ‘텅 빈’, ‘비우다’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다). 레온의 시선과 움직임을 매개로 전개되는 이 영화는 어느 것도 자신의 것으로 끌어들이지 못한 무(無)의 자리에 있다. 로메르가 휴가 영화의 이상적인 형태를 말하며 언급한 대로 “어디에도 이르지 못하는 바캉스의 시간”을 통과하는 존재가 바로 레온이다. <어파이어>에서 그는 세계를 바라보지만, 세계의 일부로 속하지 않는 자의 비어 있는 초상으로 화면에 붙잡힌다. 뒤집힌 주체 <어파이어>는 닫힌 공간 안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한 남자를 묘사한다. 페촐트는 그의 시선과 움직임을 묘사하기 위해 바깥으로 뚫린 창문이 필요했을 것이다. 카메라는 레온의 얼굴이 있는 높이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비춘다. 한밤중에 잠에서 깬 레온이 커튼 사이로 배드민턴을 치는 세 사람을 지켜보는 장면에서 레온은 시선을 제외한 모든 것이 완벽하게 닫힌 자리에 멈춰 있고, 세계는 바깥에서 그가 이해할 수 없는 현상과 소리로 그를 자극한다. 얇은 벽을 부식하는 미세한 곰팡이에서부터 거대한 산불에 이르기까지 화면 바깥의 물질적 활동은 그렇게 그의 내부를 잠식한다. 흰 잿가루가 아름답게 흩날린다. 눈처럼 내리는 잿가루는 지면에 남은 모든 인물의 피부에 닿는다. 숲속에 남겨진 모든 사람이 잿가루를 맞는다, 존재하는 이들은 잿가루처럼 흩날리고 있다는 듯이. 잿가루 아래서 인간을 포함한 세계가 평등하게 부서지고 있다. 잿가루가 날리면서 헬무트는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지고, 펠릭스와 데비드(에노 트렙스)가 사고를 당한다. 잿가루에 의해 그들의 시간은 소멸로 향할 것이다. 물질은 반대편에 있다. 중심은 이곳이 아니다. 화면 바깥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타오르며 잿가루로 변해버린 물질처럼 지각되지 않는 미세한 삭감으로 화면은 희박하게 지워진다. 지금까지 벌어진 모든 사건을 바라본 시선의 주체는 인물과 그들을 포착한 카메라가 아니라 산불이자 그것으로 인해 불타버린 물질의 잿가루다.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그 잿가루가 모든 것을 바꿔놓는다. 인물들이 보여주는 행동과 감정, 그로부터 발생하는 관계의 변화가 펼쳐지지만, 그것은 여전히 의미를 규정하기 어려운 불투명한 사건으로 남는다. 레온은 뒤늦게 나디아에게 처음 봤을 때부터 사랑을 느꼈다고 고백하지만, 그들이 처음 본 순간이 언제인지(레온은 그녀를 창문 사이로 지켜보지만, 그전에 침실 너머의 소리를 들었고 서로 첫인사를 나눈 것은 다음날이다), 그 감정이 정말 사랑이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어파이어>가 레온의 시선과 청각을 빌려 세계를 전달하는 방식은 이 지점을 향해 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수동적으로 노출된 존재인 레온은 영화에 관한 관람자의 수동성, 더 나아가 세계에 관한 인간의 수동성을 환기한다. 그는 모든 사건과 인물을 바라보지만, 휴가지에서 보여주는 많은 행동이 그랬던 것처럼 반응할 수 없다. 그의 수동성은 꺼지지 않는 산불을 지켜보는 카메라의 시선처럼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벌어지고 있으며, 원인을 파악할 수 없이 이어지는 사건 앞에 영화의 자리를 지정한다. 아무도 남지 않은 해안가에서 레온은 바다의 조류들이 발산하는 발광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린다. 이 영화의 바다는 여름 햇빛과 파도의 인상으로 가득한 생명력 넘치는 자연의 공간이라기보다는, 페촐트가 인용하는 아녜스 바르다의 말대로 “물과 흙과 바람, 그리고 영화에 필요한 외로움을 제공하는 장소”로 다가온다. 언젠가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앞모습과 뒷모습을 촬영한 펠릭스의 사진을 보고 레온은 그들의 얼굴이 바다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퉁명스럽게 반문한 적 있다. 그는 얼굴만을 보여주는 제한된 프레임의 한계를 짚는다. 그 얼굴이 무엇을 바라보는지 바깥의 광경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깥을 확신할 수 없는 시선이라는 문제는 바닷가에 남겨진 그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레온은 나디아가 보고 싶다던 조류의 아름다움을 지켜보지만, 그 시선이 무엇을 바라보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바깥과 교통하지 않고 내부에 갇혀 있다. 페촐트는 <어파이어>가 제공하는 주요한 감정이 질투와 수치심이라고 말한다. 레온은 질투하고 수치심을 느끼는 인간이다. 다른 사람들과 더 친밀하게 지내는 펠릭스에게, 자기보다 더 능숙하게 이야기를 꾸미는 데비드에게, 문학도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고 자기 소설을 혹평한 나디아에게 깊은 질투와 수치심을 느낀다. 그 감정은 지각을 오염시킨다. 질투와 수치심에 사로잡힌 레온은 자기가 정확히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영화의 수동적 존재로 전락한 그는 오염된 감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다. 얼굴을 바라볼 때까지 레온으로 설정된 영화의 자리가 불투명하기에, 페촐트는 스크린에 펼쳐지는 현재 시점의 화면에 다른 매체의 시제를 덧붙인다. 영화는 현재형의 장면을 건네는 경험이다. 영화가 전달하는 시간은 장면이 바뀔 때마다 과거로 전환되지만, 순식간에 또 다른 현재를 불러들인다. 그런데 이 현재형의 경험은 레온이 보고 듣는 것에 실패한 대상, 화면에 감각되지 않는 것들이다. <어파이어>는 영화가 발산하는 현재를 받아들이는 대신 사진과 글쓰기라는 다른 시제를 빌려온다. 페촐트는 <어파이어>에서 영화를 불순한 시제의 경합으로 다룬다. 그의 말을 빌리면 “영화는 과거와 현재의 균형을 찾는 형식”이다. 현재형으로서의 영화, 그러나 촬영된 사진과 뒤늦게 녹음된 목소리가 영화에 입혀지면 현재는 과거에 노출되어버린다. 그렇게 영화는 여전히 숲속에 머무는 과거의 레온과 그 바깥에서 글을 쓰고 사진을 바라보는 현재의 레온을 분리한다. <어파이어>는 레온의 소설을 읽는 헬무트의 목소리를 빌려, 지금껏 카메라가 지켜본 장면들이 레온에 의해 각색된 현실의 한 단면이거나 기억의 조각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투여한다. 사진과 글쓰기의 시제는 비극으로 닫혀버린 여름휴가의 시간을 돌아보는 시선을 드리운다. 펠릭스와 데비드가 막다른 길이 아닌 다른 경로로 갔다면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헬무트의 내레이션처럼, 영화가 상상하는 가능성의 세계를 투사하는 것이다. 페촐트는 모든 휴가 영화는 그리운 것, 혹은 실수한 것에 대한 기억을 재생한다고 말한다. “아마도 이 여자와 키스를 할 수 있는 순간이 있었는데 그 순간을 놓쳤을지도 모른다. 30년 후 침대에 누워 있을 때, 그 순간이 인생의 실수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어파이어>가 전하는 감정이다. 펫졸트는 스크린에 도착한 현재를 고정된 단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변형될 수 있는 가능세계로 본다. 이 영화는 실현되지 않은, 감지하지 못한, 다가오지 않은, 존재하지 못한 현실에 관한 기록이다. 레온이 계속해서 잠들고 깨어나던 것처럼, <어파이어>는 그가 적은 소설을 매개로 영화에 어스름한 꿈의 질감을 물들인다. 크리스티안 페촐트는 거대한 재난 앞에 선 영화를 재건하기 위해서라면, 영화의 특별한 역량으로 여겨지는 많은 것을 중단해야 한다고 믿는 듯한 영화를 만들었다. <어파이어>가 페촐트의 걸작은 아니지만, 가장 과감하게 영화의 요소들을 비워낸 작업인 것은 분명하다. 주체가 없고, 행위가 부재한 채로, 중심에서 밀려난 영화의 형태를 그리는 작업을 말이다. 결말에 도착한 레온은 어느 여자의 뒷모습을 포착한 사진 한장을 바라본다. 펠릭스는 사람들의 앞모습과 뒷모습을 모두 촬영했지만, 그 사진의 피사체만은 앞모습이 누락되어 있다. 돌아보지 않는 그 뒷모습은 나디아인가? 알 수 없다. 사실상 영화는 그 자리에서 끝난다. 나디아의 얼굴은 빈칸으로 남는다. 그리고 건물 바깥으로 나간 레온의 눈앞에 기적처럼 나디아가 되돌아온다. 누락된 나디아의 얼굴이 그의 시선 앞으로 다가온다. 이 순간에 카메라는 닫힌 프레임을 넘어서 상대방을 바라보는 레온의 시선을 믿을 수 있을까? 펠릭스의 사진을 두고 말한 것처럼 그 얼굴이 무엇을 보는지 확신할 수 없는데도 나디아가 그의 눈앞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영화는 눈앞에 존재하는 세계를 보고 듣는 장치다. 그런데 영화는 세계를 보고 듣는 일에 실패한 레온의 감각을, 혹은 그 감각에 대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을까? 역시 알 수 없다. <어파이어>는 마지막 시선의 교차를 통해 그 답변의 자리를 남겨둔다. 빌렘 플루서는 ‘글쓰기의 몸짓’을 서술하면서 단락을 끝내는 마지막 문장으로 그리스의 철학자 플루타르코스의 말을 인용한다. 그 인용구는 작가인 레온이 잃어버린 모든 것과 마침내 얻게 된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전해준다. “글쓰기는 꼭 필요하다. 삶은 그렇지 않다.”

[특집] 예산은 줄고 말할 곳은 없다, 2024년도 영화진흥위원회 예산 논란

<씨네21>이 국회에서 입수한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202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사업설명자료 4권’(이하 ‘2024 문체부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예산에서 영화 창제작 지원, 국내외 영화제 육성, 애니메이션 종합지원, 지역 영상 생태계 기반 마련 사업 등의 예산이 절반 이하 수준으로 대폭 삭감되거나 폐지된다. 영진위가 공개한 영진위 설립목적 중 임무 항목에는 지역 영상문화 진흥, 예술·독립·애니메이션 영화의 진흥, 영화의 유통배급 지원이 적혀 있다. 요컨대 2024 문체부 예산안엔 영진위의 기본적인 설립 목적에 어긋나는 사업 방향성이 대거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23년에 각각 8억원, 4억원으로 편성됐던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 지원 관련 사업’, ‘지역영화 기획개발 및 제작지원 사업’이 모두 0원으로 전액 삭감된다. 지역의 영화문화 발전을 꾀하며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역 영상 생태계 기반 마련’ 사업을 폐지하는 것이다. 영화제작지원 사업과 영화기획개발지원 사업을 통합한 ‘영화 창제작 지원 예산’은 298억원에서 107억원으로 줄어 전년 대비 36% 수준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이중 기획개발지원금은 70억원에서 37억원으로, 영화제작지원금에선 독립예술영화 제작지원 사업이 117억원에서 70억원으로, 애니메이션영화 종합지원 예산은 32억원에서 0원으로 줄어들었다. 대신 국고 20억원으로 극장용 애니메이션 지원사업을 지속한다. 영진위 관계자는 “국고로 진행되는 내년도 애니메이션 지원사업 중 제작지원, 개봉지원 등 어떤 세부 사업이 진행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라며 “여타 애니메이션 지원사업은 한국콘텐츠진흥원 사업으로 집중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내외 영화제 육성’ 사업 예산도 올해 56억원에서 내년 28억원 수준으로 50%가량 삭감된다. 사업 항목 중 ‘국내 및 국제 영화제 지원’은 52억5천만원에서 25억2천만원으로, ‘독립영화제 개최지원’은 3억7천만원에서 2억9600만원으로 줄어든다. 더하여 ‘국내 및 국제영화제 육성지원’의 경우 지원 대상의 수가 20편으로 40편이었던 전년 대비 절반이다. 심지어 국내와 국제영화제가 하나의 부문으로 통합됨으로써 작은 국내 영화제들의 상황이 더 나빠질 위기에 놓였다.대신 영상전문투자조합 출자, 장애인 관람환경 개선, 차세대 미래관객 육성, 영화·영상 로케이션 지원사업 등이 증액되거나 신설된다. 특히 영상전문투자조합 출자는 80억원에서 250억원으로 전년 대비 212%가 늘어났다. 공공자금을 기반으로 한 영상전문투자조합 결성을 통해 민간투자 활성화와 이탈 방지를 목적으로 한다. 또 영화 향유권 강화 사업 중 지역영화 관련 사업은 폐지됐지만, 장애인 관람환경 개선을 146% 증액했고 차세대 미래관객 육성 사업을 새로 만들었다. 주요 사업에 대한 대폭적인 예산 삭감, 신설 사업 및 일부 사업의 증액이 별다른 공적 논의 없이 결정된 상황이다. | 2024 문체부 예산안에 반발하는 영화인들 | 2024 문체부 예산안에 따른 영진위 일부 사업의 예산 삭감 소식에 영화인들의 반발이 거세다. 먼저 강원·광주·대구·부산·인천·전북·대구독립영화협회를 주축으로 한 지역 영화인 및 영화단체 연합은 문체부에 예산 전액 삭감 결정을 철회하고 협상 자리를 마련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지역 영화 생태계를 파괴하는 처사이며 삭감 결정에 대한 마땅한 근거가 없다”라는 것이다. 실제로 2024 문체부 예산안 중 ‘최근 3년간 동 사업에 대한 주요 외부지적사항 및 평가, 문제점 및 대책’과 ‘해당사업에 대한 각종 사업평가의 결과’ 항목엔 지역 영화 지원사업에 대한 지적사항이 발견되지 않았다. 영진위의 ‘2023년도 예산 영화발전기금운용계획서’에 따르면 영진위의 기금사업 편성안 중 하나는 ‘지역 영화 균형발전체계 구축’이다. 이는 2013년에 제정된 문화기본법에 따라 지역의 문화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는 법률적 근거를 마땅히 실행해온 것이다. 2016년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에 지역 영화 진흥에 관련된 조항이 신설되었고, 2018년부터 영진위는 ‘지역 영상 생태계 기반 마련’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지역 영화 관련 사업은 비교적 적은 규모의 예산 편성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안정적인 성과를 내고 있던 세부 사업 중 하나다. 영진위 9인 위원회 소속이자 지역소위원회장인 김이석 동의대학교 교수는 “올해 초부터 영진위와 9인 위원회는 지역 관련 예산 증액을 우선순위로 올렸다. 지난 2~3년간 해당 사업이 안정적으로 잘 수행되며 알짜배기 소리를 들었던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문체부와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를 거치며 공적이고 합당한 근거나 대안 없이 갑작스러운 사업 폐지가 일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산·전주·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를 비롯한 50개의 영화제는 (가칭)국내개최영화제연대를 구성해 영화제 지원 예산 삭감의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2024년 영진위 예산에 대해 “역대 최악의 산업 중심 예산”이란 강한 비판과 함께 “영화제 예산은 보편적 문화복지 실현과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외치는 현 정부의 정책에도 부합하는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2024 문체부 예산안 중 영화발전기금 운용의 향후 추진방향 및 추진계획엔 ‘다종다양한 영화제 개최 확대’, ‘글로벌 경쟁력과 차별성을 갖춘 국제영화제 육성’ 등이 기재돼 있다. 더하여 예산안에는 최근 3년간 국내외 영화제 육성에 대한 마땅한 외부지적사항도 없다. 지역 관련 사업과 마찬가지다. 영진위의 존립 근거 및 추진 방향성, 사업 결과에 예산 편성 흐름이 반대되고 있는 것이다.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정부 예산안이야 늘 긴축 및 10~15% 수준의 예산 절감을 지시한다. 그러나 올해 영화제 지원 예산처럼 50% 수준의 삭감은 이례적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영화제 관련 영화인들이 모여 앞날을 논의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영화인들의 요청에 대해 문체위 소속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영화인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여 정책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영화 창제작 사업의 축소에도 반대의 목소리가 크다. 이는 올해 6월 문체부가 영진위의 방만 경영을 지적한 일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문체부는 “영화제작지원 사업에 매년 100억원 넘는 예산이 편성되나 최근 3년간의 실집행률이 30~40%”임을 지적하며 영진위 사업 방향성의 개선을 예견했다. 하지만 영화계 일각에서는 문체부가 제시한 ‘실집행률’의 기준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대표는 “문체부는 지원금을 받은 당해 연도에 영화 제작이 끝난 경우를 집행률로 집계했다. 내년으로 넘어간 영화는 미집행으로 간주하여 독립영화 제작지원 집행률이 2~30%라고 지적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지원금을 통해 실제로 완성된 독립영화의 비율을 따지면 90%가 넘는다”라고 주장했다. 문체부가 영화 제작에 필요한 실질적인 소요 기간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애니메이션 발전연대는 애니메이션 종합지원 사업의 폐지가 알려졌던 지난 8월에 해당 사업의 폐지에 반대 성명을 발표하며 일찍이 반발했다. 연상호 감독 등 애니메이션 감독 27인의 성명에 더불어 개인 연명 수가 1만명을 넘기도 했다. 애니메이션 발전연대는 애니메이션 지원사업을 “한국 장편애니메이션 산업 육성을 위한 마지막 산소호흡기”라고 강조하며, 문체부의 결정은 “애니메이션 창작의 씨를 말리는 일”이라고 항의했다. | 줄어드는 영발기금, 영진위의 수난 시대 | 다수 사업의 대폭적인 예산 삭감에 대해 영진위는 고질적인 재원 문제로 인해 부득이하게 일어난 결정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당장 돈이 없으니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었단 논리다. 박기용 영진위 위원장은 지난 9월5일 영진위 보도자료를 통해 “영화발전기금(이하 영발기금)의 충당 여력이 없는 상황을 감안할 때 일부 사업의 조정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또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한시적으로 확대되거나 관행적으로 증대된 일부 보조 사업에 대해 불가피한 조정이 있었다”라고 포괄적인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지역 영화, 영화제, 영화 창제작 사업에 대해 일일이 구체적인 감액의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2024 문체부 예산안도 마찬가지로 모든 감액 사업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실제로 영진위의 예산 부족은 가속화되고 있다. 영진위가 발표한 2024 한국영화 진흥 예산은 734억원이다(영발기금 464억원, 일반회계(국고) 270억원). 영진위는 2023년도 영발기금 사업비 729억에서 5억원 증가한 규모로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영화 진흥 예산이 아니라 2024 문체부 예산안에 따른 영발기금 사업비 총액(영화산업 육성 및 지원비)으로만 따지면 729억원에서 266억원 줄어든 464억원으로 계산된다. 5억원의 증가란 국고로 지원되는 270억원을 포함해 계산한 총 예산인 셈이다. 한편 그간의 사업비 추이는 2019년 660억원, 2020년 899억원, 2021년 1053억원, 2022년 978억원으로 줄어드는 상황이다. 2024년 문체부의 전체 예산안과 비교하면 영진위의 상황은 더욱 나쁘다. 2024년 문체부의 전체 예산은 전년도 대비 3.5% 증가했고 그중 문화예술 분야는 1.9% 감소했다. 영진위 예산 문제의 주된 원인은 영발기금의 급속한 축소다. 영진위 예산으로 쓰이는 영발기금의 주요 수입원은 기금설립 초기에 이월된 출연금과 기금운용수입을 제외하면 극장 관객 입장료의 3%를 징수하는 부과금뿐이다. 이처럼 사실상 영진위의 유일한 재원인 부과금 수입이 2019년 540억원에서 2020년 110억원, 2021년 140억원, 2022년 179억원으로 대폭 줄었다(<표> 참조). 팬데믹으로 인한 극장 관객수의 감소와 코로나19 팬데믹 특별지원사업, 부과금 납부 의무의 면제 조항이 부과금 감소를 초래하고 있다. 박기용 영진위 위원장에 따르면 올해에도 “200억원을 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며 내년엔 250억~300억원 규모가 예상된다. 9월12일 영진위가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 영화산업 매출액은 팬데믹 이전의 61.8%에 그쳤다. 부과금 부족 사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영진위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OTT 콘텐츠도 영화에 포함하고 영발기금을 충당하는 방법을 추진하고 있다. 7월21일엔 영진위 주관으로 국회에서 여야 인사가 참여하는 관련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영진위가 보도자료를 통해 내년도 예산안을 “비교적 긍정적인 성과”라고 발표했지만, 근본적인 재원 구조의 결점을 해결하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당장 700억원대 예산을 국고와 타 기금으로 충당하긴 했으나 영발기금 고갈에 대한 근원적인 해결책은 없기 때문이다. 보도자료에 따른 영진위의 의견은 내년도 정부 예산 증가율이 2005년 이후 역대 최저 수준인 2.8%인 것을 고려했을 때 내년도 예산 확보가 일정 수준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더 중요한 근거는 기금 재원의 다각화를 이뤄냈다는 부분이다. 올해 영진위는 체육기금 300억원, 복권기금 54억원을 영발기금으로 전입했다. 타 기금으로부터 전입금을 확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화예술진흥기금이 위헌 판정을 받은 2003년 이후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체육기금, 복권기금, 관광기금과 국고에서 지속적인 재원 전입을 받은 사례를 떠올리면 긍정적인 지점이다. 타 기금에서의 전입금은 영진위가 재원 구조의 다각화를 위해 계획했던 최선의 방책이다. 2022년 영진위는 공공자금관리기금(이하 공자기금)에서 800억원을 차입해 예산을 충당한 적 있다. 하지만 부채로 처리되는 차입금인 탓에 영진위의 예산 부담은 줄지 않았다. 2023년에 국고 지원으로 해당 부채를 탕감하긴 했으나 긍정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영진위 내부 관계자인 A씨의 말처럼 “공자기금이라 해도 결국 대출이다. 고름이 살이 되진 않는다. 국가 재정까지 안 좋으니 이런 방법은 더이상 타개책이 못 된다. 여타 기금에서 전입금을 받는 게 영진위의 현실적 대안”이었던 것이다. 영진위가 공개한 ‘2023년 제10차 위원회 정기회의 회의록’에서도 박기용 영진위 위원장은 “영진위 전체 예산을 850억원으로 가정할 때 2024년에 부과금이 최대 300억원이 걷혀도 550억원이 모자란다. 다시 빚을 내는 것은 어떻게든 막아보려 기재부 관계자를 만나 타 기금 전입이나 국고 지원을 요청”했다고 지난 5월부터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타 기금 전입과 국고 지원엔 차후 지속성의 문제가 있어 또 다른 활로가 필요한 상황이다. 2024년 이후에도 타 기금에서의 예산 충당을 확정할 순 없다. ‘2023년 제14차 위원회 정기회의 회의록’(이하 제14차 회의록)에서 박기용 영진위 위원장은 “앞으로도 계속 이런 규모로 재원 다각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 없을지는 그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타 기금 전입금과 국고의 출처에 따라서 예산의 용처도 제한된다. 올해에 영진위가 전입한 복권기금 54억원은 소외계층 지원을 위한 기금의 성격에 따라 ‘장애인 관람환경 개선’과 ‘차세대 미래관객 육성’ 사업에만 쓰인다. 문체부 차원에서 지원한 국고 270억원은 영발기금에 편입되지 않고 문체부가 관리하는 일반회계에 편성됐다. 이중 250억원이 ‘영상전문투자조합 출자’ 사업에 쓰이는 것이다. 타 기금과 국고 전입을 통한 사업 확대에 대해 A씨는 “문체부와 기재부에서 영화산업계 전체의 부흥을 목적으로 추진하는 사업들이다. 영진위 입장에서 물론 아쉬운 점이 있긴 하나 출처가 어찌됐든 한국영화계에 지원되는 돈이니 마다할 이유는 없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영진위는 올해 하반기부터 ‘한국영화 개봉 촉진 투자조합’ 결성을 추진해 개봉이 지연되고 있는 약 110편의 한국영화를 지원할 계획이다. 이에 더해 문체부가 내년도에 국고 250억원을 지원하여 영진위 출자/투자 사업의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다. 고영재 대표의 말에 따르면 “영발기금도 없으니 직접 펀딩해서 돈을 벌어오라는 문체부의 지시”인 셈이다. 영진위가 영화 진흥 및 지원 목적의 공공기관이 아니라 투자 수익을 내야 하는 기관으로 변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 하릴없이 정부 기조에 좌지우지 | 영화제 및 지역 영화 관련 예산 삭감은 영진위의 재원 문제뿐 아니라 현 정부의 정책 기조 및 진행 절차와 크게 관련돼 있다. 사실상 문체부의 입김에 따라 영진위의 사업 방향성이 좌우되는 형국이다. ‘지역 영상 생태계 기반 마련’ 예산 삭감이 대표적인 사례다. 2023년 기준, 해당 사업에 배정된 예산은 12억3천만원으로 영진위 전체 예산의 1.4% 수준이었다. 이 정도의 예산이 전액 삭감된 일을 단순히 영진위 재원의 고갈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제14차 회의록에 따르면 영진위측은 지역영화 예산과 관련해 “2차 심의에서 기재부 사무관에게 반은 읍소, 반은 설득하기 위해 설명했으나 이 건에 대해서는 지방정부에서 예산을 적극 부담해야 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김이석 교수는 “정부의 정책 기조가 바람직한지 아닌지를 떠나 지역에서 사업을 할 수 있는 예산 편성이 영진위, 지자체 차원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문제”라며 “영진위 위원장이 문제 상황에 공감하고는 있으나 예산 건은 영진위의 재량을 넘어선 문제로 보인다. 대신 영진위 실무자나 증액된 사업의 관계자들과 만나서 어떻게 지역 예산을 충당할 것인지 논의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영화제 관련 예산의 대폭 축소도 마찬가지로 정부 기조에 따른 결정으로 보인다. 전년도 연말부터 정부는 비영리 민간단체 보조금 관련 현황을 꾸준히 점검해왔다. 특히 정부 17개 부처가 참여한 정책기획관 회의의 결과에 따라 정부는 ‘각 부처는 소관 비영리 민간단체 보조사업을 재검토하여 부처별 감축 방안 마련’할 것을 영진위에 지시했다. 이중 ‘영화유통지원’ 사업과 관련해 정부 차원의 특정한 감액 요구가 있었고 이에 따라 영진위의 ‘국내 및 국제영화제 지원, 아시아 영화 시장지원, 독립·예술영화 개봉지원, 독립영화제 개최지원’ 예산이 크게 삭감된 것이다. 영진위가 독립적인 위원회로서 영화 진흥에 힘쓰지 못하고 문체부의 실무 부서처럼 행동한다는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영진위의 설립목적 중 임무 항목에 기재된 영진위 운영계획의 수립·시행, 영발기금의 관리·운용 등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영진위의 현 상황은 제14차 회의록에서 발견된다. 박기용 영진위 위원장은 “영진위가 주도권을 쥐고 있지 않다. 영진위가 사업 방향성에 대해 기재부와 문체부의 지시대로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라고 언급했다. 또 영발기금 고갈에 대해선 “지난해 칸영화제 수상자 축하 만찬에서 대통령이 발표한 3천억원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란 언급을 남겼다. | 깜깜이식 정책 진행, “문화 민주주의 퇴보” | 결국 문체부와 영진위 사업의 방향성이 영화계와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으며, 영진위가 문체부와 영화계의 교각이 되고 있지 못하단 점에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영진위가 지난 9월5일 발표한 보도자료 “영진위, 재원 다각화 신호탄 쏘아올리고 한국영화 재도약 위해 250억원 쓴다” 외에 문체부의 예산 편성 기조를 간접적으로나마 살필 수 있었던 올해의 보도자료는 문체부가 6월15일 발표한 “영진위, 도덕적 해이 심각 방만·부실 운영으로 국민혈세 낭비”와 8월20일 발표한 “박보균 장관, ‘영화 박스오피스 신뢰 회복 위해 영화계의 자정 노력, 영진위의 조속한 대책 마련’ 강조” 2건이었다. 고영재 대표는 “영발기금 사용처에 대한 영화인들과의 토론회나 직접적인 접촉이 아예 없었다”라며 “깜깜이식의 정책 진행으로 영화계 종사자들의 의견을 청취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문화 민주주의의 퇴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화계 종사자뿐 아니라 영진위에서 활동하는 9인 위원회와 소위원회 구성원들의 처지도 마찬가지다. 이들 역시 2024년 문체부 예산안에 대해 영진위를 통한 문체부의 하향식 통보만을 받았다는 것이다. 강원독립영화협회 대표이자 영진위 지역영화문화진흥 소위원인 김진유 감독(<나는 보리>)은 “소위원회가 예산 편성 과정에 참여하기보단 기결정된 사항을 공유받는 정도로 운영되고 있다”라며 “의견을 내더라도 적용이 되진 않는 편”이라고 전했다. 제14차 회의록에서 김선아 영진위 부위원장은 “소위원회들이 이름만 걸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 성평등,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면 영진위의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된다”라고 밝혔다. 2024 문체부 예산안 수정 가능성을 두고 여러 이야기가 오가고 있지만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예산안은 앞으로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문체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의 심의를 거쳐 11월 말~12월초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결정된다. 영진위 차원에서 해당 예산안에 수정을 요청할 여지는 영진위를 담당하는 문체위 위원들을 설득하는 일뿐이다. 제14차 회의록에서 박기용 영진위 위원장은 “지난해 경험에 비추어보면 예산안 수정 요청이 반영되기는 매우 어렵다”라고 밝혔다. 한편 유정주 의원은 <씨네21>과의 인터뷰를 통해 해당 문제를 충분히 인지한 상황이며 남은 국회 일정을 통해 사태 해결에 힘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영진위 관계자 B씨는 “올해 정부 예산안이 예년에 비해 많은 변화가 있었던 만큼 평소보다는 변화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논란 속의 2024 문체부 예산안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알 수 없는 미래에 영화인들의 속이 타고 있다.

함께 작업한 사람들이 기억하는 배우 변희봉

봉준호 감독 어릴 때부터 변희봉 선생님의 팬이었다. 변희봉 선생님은 당시 사극과 현대물을 가리지 않고 많은 드라마에서 독특한 개성이 넘치는 조연으로 나왔다.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배우였다. <수사반장>에서 사이비 종교 교주, 이른바 ‘할렐루야 교주’로 나왔을 때나 점쟁이로 나온 일일 사극 <안국동 아씨> 등, <조선왕조 오백년–설중매> 편에서 유자광으로 나오면서 유명해지시기 훨씬 이전부터 나는 변희봉 선생님의 광팬이었다.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 시나리오를 쓸 때 반년 넘게 잘 풀리지 않아 고전을 거듭했다. 처음 시나리오에서는 변희봉 선생님이 연기한 경비 아저씨 캐릭터 자체가 없었다. 그러다 지하실 공간과 경비원 캐릭터가 만들어지면서 이야기가 급속도로 구조를 찾게 되고, 어릴 적부터 내가 너무 좋아하던 변희봉 선생님을 아파트 경비원으로 모시면 어떨까 하는 발상을 하면서 시나리오가 풀리게 된 것이다. 변희봉 선생님, 경비원 캐릭터 덕분에 <플란다스의 개> 시나리오가 비로소 완성될 수 있었다. 경비원 캐릭터에 한정해놓고 보면 이는 변희봉 선생님을 놓고 쓴 캐릭터가 맞다. 그리고 1999년 봄 마포에 있는 한 호텔 커피숍에서 생애 최초로 선생님을 뵙게 됐다. 제작사를 통해 받은 시나리오를 먼저 읽은 변 선생님은 시나리오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웃음) “아파트 지하실에서 보신탕을 먹는다는 게 영화 감이 되느냐?”고 하시고, 영화는 나름 스케일이 있어야 하는데 아파트 단지만 왔다 갔다 하고 본인의 캐릭터는 지하실에서 이상한 짓을 하고 있으니 모처럼 온 영화 시나리오에 실망하셨던 것 같다. 당시 변희봉 선생님은 1986년 이두용 감독의 <내시> 이후에 13년간 영화 출연을 안 하던 상태였다. 소위 말하는 충무로와 무척 멀어져 있었다. 그런데 애송이 신인감독이 보낸 시나리오와 캐릭터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거다. 어떻게 변 선생님을 설득해야 할 것인가 무척 막막했던 기억이 난다. 절박한 마음에 궁극의 팬심의 스위치를 눌러서 다른 사람들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변희봉 선생님의 아주 옛날 드라마 속 장면들을 줄줄이 나열하고 묘사했다. 심지어 직접 선생님의 대사를 흉내내며 발버둥쳤는데 그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나 보다. 자식 나이 또래의 어떤 신인감독이 수십년 전 TV드라마 속 장면을 재연하니 당황스럽기도 기분이 좋기도 했나 보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플란다스의 개>를 함께하게 됐다. 그해 9월 <플란다스의 개> 크랭크인을 했다. 4~5회차쯤 변희봉 선생님의 첫 촬영을 했다. 죽은 강아지를 아파트 뒷산에 파묻는 신을 배두나씨와 함께 찍는 신이었다. 13년 만에 필름 카메라 앞에 다시 서게 된 변희봉 선생님은 백전노장의 베테랑인데도 그날 무척 긴장하신 모습이 역력했다. TV가 아니라 대형 스크린에 나오는 건데 동작 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가 너무 신경 쓰인다며 불안, 초조한 마음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으시고 솔직하게 표현하셨다. 이를테면 카메라나 조명 때문에 엔지가 나서 테이크를 한번 더 가도 “내가 이게 무슨 망신이냐, 나 때문에 엔지가 났다”면서 괜히 자책하셨다. 그런데 첫날만 그랬고 두 번째 촬영부터는 베테랑다운 모습을 보여주셨다. 특히 4분이 넘는 ‘보일러 김씨’ 모놀로그 시퀀스를 고대하며 준비를 무척 많이 하셨다. 시나리오상에 여러 페이지에 걸쳐 본인의 대사로 이야기 속 이야기를 펼쳐내는 신인데, 배우에게 욕심이 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변희봉 선생님의 멋진 보이스를 내가 만드는 영화에서 실컷 듣고 싶은,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덕업일치’의 마음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작품 출연을 결정하신 직후부터 크랭크인까지 몇 개월의 시간이 있었는데, 내내 그 신을 연습하셨나 보다. 크랭크인 몇주 전 경비원 유니폼 의상이 완성돼 피팅을 하는데, 의상을 갈아입는 순간에도 마치 녹음기 재생 버튼을 누른 것처럼 보일러 김씨 대사를 청산유수처럼 했다. 그리고 “봉 감독, 우리 도대체 언제 찍는 거야? 대사 외운 입에서 단내가 나려고 그래”라고 하셔서 내가 폭소를 터뜨렸다. 당시 메이킹 다큐멘터리팀이 현장에 없어서 그 광경을 찍지 못했지만 내 기억 속에는 생생하게 남아 있다. 당시 큰 지하실을 세트로 만들 만한 제작비나 여력이 되지 않았다. 송파구에 있는 방이동 대림아파트 지하에서 마침내 그 장면을 찍었을 때 열정적으로 한 장면 한 장면 연기하셨던 기억이 뚜렷하게 난다. 이후 변희봉 선생님은 <화산고> <선생 김봉두><더 게임> 등 여러 작품에 연이어 출연하며 스크린을 종횡무진했다. 단지 이런저런 우여곡절로 영화계와 멀어졌을 뿐 원래 그렇게 하셨어야 하는 분이었다. 조명과 카메라앵글에 따라 무척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는, 개성 있고 입체적인 시네마틱한 마스크를 처음부터 갖고 계셨다. 자유자재의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는 표현력도 뛰어났다. MBC 공채 성우 출신답게 목소리 톤도 멋지고 대사 전달력이나 에너지도 대단하셨다. 악기로 치면 모든 음역대를 커버하는 풍성한 음색을 가진, 중저음부터 고음역대를 아우르며 극장 사운드 시스템을 뒤흔들 수 있는 목소리를 갖고 계셨다. 애초부터 무척 시네마틱한 배우였는데 그것이 뒤늦게 스크린에서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현장에서 변희봉 선생님은 무척 열정적이고 사실성을 위한 디테일을 늘 고민하셨던 분이다. 2016년 <옥자>를 촬영할 때 산골 노인으로 나오셨다. 2010년대 이후 변 선생님은 국회의원, 대학교수, 병원 원장 등 중후한 사회 지도층 연기를 많이 하셨다. 오랜만에 한골에 처박혀 사는 노인 캐릭터를 맡으면서 리얼한 표현을 위해 많은 고민을 하셨다. <옥자>에서 변 선생님 클로즈업 신을 자세히 보면 한쪽 눈이 약간 뿌옇게 나오는데, 백내장 치료가 잘 되지 않은 노인 느낌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렌즈를 낀 것이다. 변 선생님이 첫 등장에서 잔 나뭇가지들이 수북한 지게를 지고 산비탈을 올라올 때 얼굴보다 지게가 먼저 보인다. 스토리보드를 만들 때 그 장면을 떠올린 것도 변 선생님이 “산골 노인이라면 자기 몸뚱아리보다 훨씬 큰 장작을 거뜬히 지고 왔다 갔다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했던 말에서 착안한 것이다. 캐릭터의 뉘앙스와 리얼리티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셨으며 언제나 연출자와 치열하게 의논을 하셨다. 변희봉 선생님과 4편의 영화를 함께했다. <괴물><옥자> 두편은 부모로서의 이미지, 다른 두편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에서는 구수하고 비굴하면서도 현실적인 기성세대의 모습으로 등장하셨다. 따뜻한 아버지의 모습과 구질구질한 기성세대의 모습을 모두 리얼하게 잘 보여주셨다. 처음부터 변희봉 선생님을 전제로 해서 시나리오 속 캐릭터를 쓰고 묘사했고, 돌이켜보면 모든 역할이 대체 불가능했다. 변희봉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던 인물들이다. 작품 외적으로도 내겐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 덕후의 관점에서 보면 변 선생님과의 만남은 곧 영화적인 꿈을 이룬 것이다. 어제가 변희봉 선생님 발인이었다. 서울 시내에 있는 한 사찰에 모셔졌다. 조만간 한번 찾아뵈려고 한다. 류승완 감독 <플란다스의 개>와 <살인의 추억>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시점에서 <주먹이 운다>를 같이 작업했다. 마치 신인 같은 열정으로 가득하셨던 기억이 난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셨고 최고의 연기를 남기길 원하셨다. 끊임없이 자신의 연기가 괜찮았냐고 물어보시는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우리에게 빛나는 연기를 남겨주셔서 감사드린다. 영화가 존재하는 한 변희봉 선생님의 연기는 계속 기억될 것이다. 우민호 감독 ‘열심: 어떤 일에 온 정성을 다하여 골똘하게 힘씀. 또는 그런 마음.’ 영화에 ‘열심’으로 임하지 않는 배우는 없겠지만 촬영 현장에서 변희봉 선생을 보고 있노라면 유독 그 단어의 의미가 가슴에 파고들곤 했다. 지금의 위상을 지닌 연기자로 자리 잡기까지 꽤 오랜 세월 부침을 겪었다던 그는 노령에도 늘 영화배우로 사는 것 자체에 대한 행복과 희열이 충만했고, 그래서 내겐 참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은 분이다. 어찌 매 순간 저렇게까지 영화에 진심일 수 있을까 싶어서 말이다. 천진함, 심술궂음, 유머러스함, 선량함, 괴팍함 등 수많은 표정이 하나의 얼굴에 실려 자아내는 변희봉 선생만의 독특한 카리스마는 어떤 영화에서도 꼭 한번은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내고야 만다. 때문에 많은 감독들이 매료되었고, 나 역시 그중 하나였다. 영화 <간첩>에서 그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老)간첩 ‘윤고문’으로 분했는데, 짠내와 허세와 온기가 적절히 배합된 변희봉표 페이소스는 아마 내 영화에서는 다시 나오지 않을 캐릭터일 것이다. 특히 투닥거리는 강 대리(염정아)와 우 대리(정겨운)를 보고 씩 웃으며 읊조리던 그의 한마디, “했네, 했어”는 내 영원한 웃음 버튼이다. 이병훈 PD 배우 변희봉과는 1970년대 초부터 드라마를 같이해왔다. 나는 드라마 조연출이었고, 배우 본인은 무명 시절이었다. 80년대 들어 내가 연출한 <암행어사> <수사반장> 및 연속극을 거쳐 <조선왕조 오백년> 시리즈를 하면서 여러 작품을 함께했다. 특히 1984년 <조선왕조 오백년–설중매> 때 희대의 인물 유자광 역을 맡아 능력을 발휘해 대성공을 거두며 각광받기 시작했다. 1999년 <허준>에서는 주인공 허준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나타나 수호천사가 돼준 성인철 대감 역을 맡아 큰 인기를 모았다. 변희봉은 지나칠 정도로 열정적인 연기자였다. 첫 연습부터 감정을 최고로 이입해서 표현하는 바람에 2~3회 연습이 끝나면 기진맥진했고, 연습 때 제발 설렁설렁 해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물론 가장 리얼하게 연기한 순간은 본 촬영 때였다. 이름이 알려지기 전 무명 시절에도 그의 표정 연기가 하도 강렬해서 시청자들은 “드라마에서 눈알 쏟아지는 사람”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1999년 <허준>을 제작할 때는 이미 배우가 나이를 꽤 먹었을 때라 그전보다는 많이 절제하는 모습을 보였던 걸로 기억한다. 또 젊은 나이에 노역을 도맡아 했던 배우다. 최불암이 30대 중반에 노역을 했다면, 변희봉은 30대 초반에 할아버지 역을 맡았다. 변희봉은 연기의 스펙트럼이 넓어 다양한 성격, 다양한 직업, 다양한 신분과 연령의 인물을 무리 없이 완벽하게 소화한 훌륭한 배우였다. 그동안 재벌 회장이나 근엄한 아버지부터 지게꾼, 거지, 양아치, 사기꾼, 깡패, 범인, 사극에서의 정승, 판서, 청백리부터 간신, 거지, 사당패 등 온갖 신분과 성격의 인물을 자유자재로 표현해내는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홈드라마, 멜로물, 수사물 등 장르도 다양했다. 전체적으로 지체 높은 역할도 잘 어울렸지만, 오히려 인생에 실패한, 망가진 인물이나 막장인물 묘사 때 더 능력이 돋보였던 연기자다. 정지인 PD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사진 속 선생님은 너무나도 유쾌하고 행복해 보였다. 드라마 촬영 때 소품으로 썼던 영정 사진이 훨씬 더 나이 들어 보였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 사진은 변희봉이 아니라 판식이었으니까. 사모님께서 두손을 잡고 <2014 드라마 페스티벌-내 인생의 혹> 대본을 같이 읽으셨던 얘기를 해주셨다. 처음으로 선생님이 돌아가신 게 실감이 났다. 집에 돌아와 <내 인생의 혹>을 간만에 보았다. 내가 찍은 모든 컷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선생님은 달랐다. 의욕만 많고 서투르기 짝이 없던 풋내기 감독의 부족한 부분을 아낌없이 채워주고 계셨다. “정 감독, 이걸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현장에서 늘 하시던 말투가 생생하게 기억났다. 술 취해 들어와 세숫대야를 걷어차던 것도, 바지를 다 못 벗고 쓰러져 자던 판식의 모습도 모두 선생님의 아이디어였다. 주인집 사정 때문에 더 길게 촬영할 수 없어 급하게 마무리했던 그날이 새삼 아쉬워졌다. 세숫대야 걷어차던 타이트숏을 찍었어야 했는데. 선생님이 이 얘길 들었으면 100% 역정을 내셨을 것 같다. 진작에 찍지 왜 그랬냐고. 그러곤 얼른 찍자고 바로 준비를 하셨을 테다. 현장에서 선생님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최고의 주인공이었다.

[LIST] 김남길이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불멍 물을 보면 외로워지고 불을 보면 누군가가 그리워진다지. 작은 모닥불을 피운 뒤 위스키 한잔, 시가 한 모금을 곁들이고 저녁 노을까지 더한다면 즐길 준비 끝! 지구온난화 요즘 기후 문제로 발생하는 사건, 사고가 우리 일상에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무관심하게 무방비 상태로 시간만 흘려보내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끝없이 고민 중이다. 우선 올해 초엔 <손끝으로 줄이는 탄소발자국> 캠페인 영상에 내레이션으로 재능 기부를 했다. 바이크 바이크에 몸을 싣고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순간, 하늘을 나는 것 같은 자유로움을 느낀다. 친구들과 라이딩을 하며 오가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즐거움을 느끼는 중. 청소 온갖 청소 용품으로 집 안 구석구석을 말끔히 청소한다. 깨끗해진 공간을 보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정리되고 기분도 좋아진다. 스팀 청소기와 피톤치드 분사기가 필수템! <파이란> 언제나 변치 않는 영원한 나의 베스트 영화. 잔잔하면서 지독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이 작품의 톤 앤드 매너가 좋다.

[인터뷰] 진심을 담아 자연스럽게, ‘거미집’ 오정세

오정세는 본인과 본인이 연기한 <거미집>의 바람둥이 톱스타 배우 호세 사이의 싱크로율이 10%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당연히 호세의 사생활은 오정세의 삶과 1970년대와 2023년만큼 멀다. 오정세와 호세는 오직 프로페셔널한 배우라는 점에서 10%만 통한다. 호세는 김열 감독(송강호)의 디렉션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도, 현장에서 무수한 소동이 연발해도 모든 난리를 수습하는 와중에 연기도 절륜히 끝마친다. 오정세와 호세 사이를 잇던 1할의 공통점은 어느새 10할, 100할이 되고, 관객은 언제나 그랬듯 스크린 속 오정세의 연기를 진짜라 믿게 된다. - 호세는 ‘거미집’에서도 호세를 연기한다. 실제로 제작자나 감독으로부터 “정세 역을 제안하고 싶다”는 캐스팅콜이 오면 어떨 것 같나. = 장단점이 있지 않을까. 영화 안팎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이 작품의 전체 컨셉에 어울린다면 기꺼이 응할 수 있다. 실제의 인물을 픽션 속에 끌어들여 오는 영화가 있지 않나. 그런 영화라면 ‘정세’로 출연할 수 있을 것 같다. - 김열 감독은 ‘거미집’을 가리켜 “치정과 멜로, 호러, 재난물에 괴기물”을 오가는 영화라 말한다. 극 중 호세는 이 모든 장르를 전부 소화한다. 작품 속에서 다양한 톤을 오가는 작업이 배우 입장에서도 즐거운 작업이었을 듯하다. = 배우로선 즐거웠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을 때 호세는 김열 감독이 구현하고자 하는 모든 걸 이해하지 못했다. 걸작을 만들고 싶은 김열 감독의 열망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오히려 호세의 최선이 영화 전체를 볼 땐 걸림돌이었을 것이다. - 70년대 한국영화 특유의 양식화된 표정과 대사 연기를 감쪽같이 재현해냈다. 이번 영화를 위해 참고한 자료가 있나. = 처음엔 호세가 아예 연기를 못해서 영화에 방해가 되는 설정도 염두에 뒀다. 하지만 연기를 정말 독특하게 하는 것과 독특한 연기를 연기하는 것은 간발의 차이인데도 너무 달랐다. 그래서 연기도 꽤 하는 지금의 호세가 탄생했다. 물론 70년대 한국영화도 많이 찾아봤다. 지금 소구되는 연기 양식은 아니지만 당시 배우들에겐 그 연기가 진심이었다. (직접 기자의 눈을 바라보며 말씨를 재현한다.) “아이 아파라”라는 문어체 대사가 과장돼 보여도 그 속엔 진짜 아픔을 표현하고 있는 거다. - 늘 자연스러운 연기를 고민한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양식화된 연기에서 발견하려는 자연스러움이 있었나. = 호세가 처음 등장해 “슛 들어갑시다!”라고 말할 때, UFC 선수인 코너 맥그리거를 떠올렸다. 맥그리거 그 친구가 링에 등장할 땐 우주 최강의 자신감을 뽐내며 들어오지 않나. 그래서 호세에게도 맥그리거와 같은 “나는 연기도 잘하고 현장에 없으면 안되는 존재야!”식의 자신감이 몸에 자연스레 뱄으면 했다. 어떤 촬영 현장에서 발견한 모습도 호세에게 가져다 썼다. 모 배우가 ‘컷, 오케이’를 들으면 매번 박수를 두번 ‘짜짝!’ 하고 치더라. 그게 그만의 자신감인지 루틴인지 모르겠으나 호세도 그 배우처럼 본인만의 자연스러운 시그니처를 가졌으면 했다. - 배우들끼리 굉장히 사이가 돈독해진 현장이라 들었다. 촬영이 없을 때도 모여서 커피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었다고. = 한 공간에서 일상을 나누던 순간이 모여 좋은 현장 분위기를 만들었다. 극 중 단역 배우들이 현장에서 쉬고 있으면 송강호 배우가 멀찍이서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셨다. 단역 배우를 바라보는 송강호 선배를 바라보던 그 순간의 낭만을 잊지 못한다. 대사가 없는 배우가 있으면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하는 등 배우 개개인을 세심하게 존중해주는 시선이 촬영장에 가득했다. - 서로를 향한 신뢰가 플랑 세캉스 신을 찍을 때도 유효했을 것 같다. = 박정수 선생님이 우리 현장의 활력소였다. 대사인지 애드리브인지 기억이 안 나는데, 플랑 세캉스 신을 찍을 때 김열 감독이 오 여사에게 건네는 “선생님만 잘하시면 돼요”라는 대사가 영화 안팎으로 절묘해 웃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 특유의 투덜대는 유머 코드가 있으시다. 촬영 중 대사가 입에 잘 안 붙으면 감독님께 가셔서 “감독님 대사를 이렇게 쓰면 배우가 어려워서 어떻게 연기해? 감독님이 읽어봐요”라고 하신다. 그럼 김지운 감독님은 또 기가 막히게 대사를 잘 읽으신다. 그걸 들은 선생님은 “아니 감독님이 잘 읽으면 내가 뭐가 돼~” 하며 돌아가시고. (웃음) - <남자사용설명서>(2012), <스위치>(2021)에 이은 세 번째 톱스타 연기다. 이쯤 되면 톱스타 연기도 익숙하지 않나. = 30번 정도 더 해야 익숙할 거 같은데! 스스로도 주변 환경도 아직 스타라는 칭호에 익숙하지 않다. 익숙해지려면 앞으로 더더욱 30번은 더 톱스타 배역을 연기해야겠다. - 배우가 배우를 연기할 때마다 궁금한 것이 있다. 이미 연기자 본인이 잘 아는 배우라는 직업 자체에 집중하는 쪽인가, 아니면 직업보단 캐릭터의 내면을 파고드는 쪽인가. = 당연히 둘 다 고려한다. <거미집>의 경우 나무보다는 숲을 보려 했다. 상대배우와의 호흡, 상대의 시선에 비친 호세 등 캐릭터의 합을 신경 쓰며 연기했다. 최종본엔 편집됐지만 민자(임수정)와 호세가 연기 합을 맞추는 신이 있었다. 극 중 호세가 카메라 욕심이 있어 아무리 민자가 쳐다봐도 카메라에만 눈을 맞춘 채 대사를 쳐서 민자와 티격태격하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엇갈린 호흡을 연기하는 데도 장면이 풍성해지는 경험을 현장에서 했다. 티키타카를 의도적으로 거스르는 장면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묘한 티키타카가 만들어졌달까. - 만약 걸작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으니 크랭크업한 영화를 다시 찍자는 제안을 한다면 응하겠나. = 이틀이면 하겠다! 사흘이면 고민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