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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연애> 의 전미선, “사랑도, 주연도 늦깎이…딱 내얘기”

“얼굴 크게 나왔죠? 그쵸? 내가 또 이럴 줄 알았어….” 인터뷰 사진을 찍는 내내 불안하고 억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이는 12월9일 개봉하는 <연애>(오석근 감독)의 여주인공 전미선(33)이다. 그럴만도 한 것이, 방금 찍힌 사진 속 그의 얼굴에서는 ‘주먹만 하다’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실제 얼굴의 느낌이 살지 않는다. 사진 기자의 탓이 아니다. 1989년 <토지>로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꼬박 16년 동안 출연했던 모든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그의 모습은 실물만큼 빛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조명발, 화면발 기가 막히게 받는 또래 연기자들이 주연으로 승승장구할 때 그는 늘 눈에 띄지 않는 조연이었다. 그러다 서른을 훌쩍 넘긴 이제서야, 뒤늦은 연애와 함께 자아를 일으켜 세우는 <연애>의 어진 역으로 주연을 맡았다. 어진은 시체처럼 무능력한 남편과 이혼한 30대 여성으로, 두 아이의 엄마다. 어진의 일상은 좁쌀만한 이미테이션 보석 수백개를 손으로 일일이 붙여 머리핀을 만드는 그의 아르바이트처럼 고단하면서도 무미건조하다. 그러던 그는 전화방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난 ‘드물게 괜찮은’ 남자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외로움을 달래고, 유흥업소에서 접대부로 일하다 만난 손님 민수(장현성)와도 연애 같은 감정을 나눈다. “차승재 싸이더스에프엔에이치 대표가 이 역을 제안했을 때, 내가 영화 한편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겁이 나서 도망다녔어요. 하지만 촬영이 시작된 뒤 어진을 연기하는 것 자체가 힘들지는 않았어요.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부터 ‘어진이는 나다, 딱 나다’라고 생각했거든요.” <연애>에서 어진은 서른이 넘은 나이에 2차까지 뛰는 유흥업소에 나가 뒤늦게나마 연애의 감정을 느끼게 된 주부 역을 맡았고, 충분히 짐작 가능한 것처럼 모멸스럽고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맞는다. 그런 어진을 연기하기 위해 전미선도 적나라한 정사 장면과 두들겨 맞는 장면을 연기해야 했다. 또 어진은 연애의 감정을 느꼈던 민수로부터 ‘납득하기 힘든 부탁’을 받고, 눈물로 이를 받아들인다. 충격적이기까지 한 이 장면은 연기자에게도 감당하기 벅찬 경험이었을 것 같지만, 전미선은 이 모든 연기에 대해 “어진은 나와 같기 때문에 힘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상황을 보지 말고, 사람을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어진이 처한 구체적인 상황 하나하나는 저와 다르지만, 힘들고 화나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성격은 제 모습 그대로예요. 힘들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죠. 화나는 상황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해못할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냥 받아들이는 거죠. 그러면서 깨달음도 얻는 거고, 성장하는 거고… 어진이나 저나.” 그런 그에게 연기보다 힘들었던 것은 오히려 “관객들이 이런 영화, 이런 연애에 대해 너무 답답해하지 않을까, 너무 올드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하는 점이었다. 전미선은 그런 걱정에 덧붙여 “하지만 영화가 아니라, 시나리오가 아니라, 그냥 어진이라는 사람을 봐주시면… 울림이 있지 않을까요”라는 기대를 내비쳤다. <연애> 뒤 “연기에 대해 없던 욕심이 생겼고, 해보는 데까지 해보겠다는 오기도 생겼다”는 그는 현재 촬영중인 친구 안진우 감독의 영화 <잘 살아 보세>에 이어 “잔잔함 속의 기쁨이 있는, 느낌이 확 오는 시나리오를 선택해” 적극적인 연기 활동을 이어나갈 생각이다.

<토이 스토리 2 SE> 전편만한 속편도 있다

‘전편만한 속편은 없다’는 속설은 적어도 <토이 스토리 2>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만장일치의 평가와 함께 흥행에서도 성공을 거둔 최초의 장편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의 속편은 전편의 주제를 변주, 확장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속설을 멋지게 깨 버렸던 것이다. 1편이 ‘장난감은 갖고 놀아야 가치가 있는 것’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2편에서는 전편의 주제와 함께 ‘장난감을 갖고 노는 아이들이 점차 자라게 된다면 장난감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새로운 물음을 던진다. 이것은 단지 인간의 관점이 아닌 장난감의 관점에서 진행된다는 <토이 스토리> 특유의 세계관에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성장’이라는 체험은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에 관객들도 보다 깊은 공감이 가능했을 것이고, 바로 그 점이 이 영화의 성공 요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0주년 기념판으로 새롭게 DVD로 출시된 <토이 스토리>와 함께 특별판(SE) 사양으로 재발매된 <토이 스토리 2>는 먼저 1.78대 1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 지원의 영상이 반갑다. 기존 출시판은 일반 텔레비전 화면비에 맞춘 1.33대 1 스탠다드 영상이었기 때문에 아쉬움을 느꼈을 팬들도 많았을 터. 이번에야말로 극장 그대로의 영상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화질 면에서는 구판도 훌륭한 수준이었으나, 이번 특별판에서는 디지털 원본을 다시 한 번 리마스터하여 전례 없이 선명하고 깨끗하다. 도입부 버즈가 무수한 외계 로봇에 포위당하는 장면이나 클라이맥스에서 불스아이를 타고 질주하는 우디와 버즈의 장면 등 급격히 데이터가 증가하는 영상도 무리 없이 소화해 낸다. 돌비 디지털 5.1 EX는 원본인 영어 더빙은 물론 우리말 더빙도 함께 지원되어 보다 풍부하고 박력 있는 사운드를 감상할 수 있다. 부록에서는 감독을 비롯한 주요 제작진이 참여하여 새롭게 녹음한 음성해설을 꼭 들어보자. 이 속편을 만들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아이디어들이 추가되었는지, 만드는 과정에서 고민했던 것들은 무엇인지 등 당신이 <토이 스토리 2>에 관해 알고 싶은 모든 것들이 들어 있다. 배꼽 빠지는 NG 장면과 제작과정, 리모콘으로 즐길 수 있는 게임 등 영화 감상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즐거운 장난감과 같은 다양한 기능이 지원되는 DVD다.

스펙트럼DVD, 12월 출시작 라인업 공개

스펙트럼DVD의 12월 출시 라인업이 공개됐다. 조폭 코미디물로서 전작 <가문의 영광>을 뛰어넘는 흥행을 기록한 <가문의 위기 SE>와 이미숙, 이대근의 열연이 돋보인 토속 에로 영화 <뽕>, 그리고 세익스피어 원작의 <베니스의 상인>과 성룡 주연의 모험물 <용형호제 1, 2 박스>가 출시를 앞둔 작품들. <가문의 위기 SE>는 HD 텔레시네 과정을 거친 고화질 영상으로 선보일 전망이며 정용기 감독의 음성해설과 메이킹 필름 등 부록을 포함한 2디스크 디지팩 패키지로 구성된다. 출시예정일은 오는 23일. 21일 발매되는 <뽕> 역시 HD 텔레시네 과정을 거쳐 제작되는데 제작시기가 비교적 오래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앞서 출시된 <서편제>가 그랬듯, 이제껏 보지 못했던 준수한 화질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1.85:1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과 돌비 디지털 2.0 음향을 지원하며 예고편, 오리지널 포스터, 스틸 사진 모음 등의 부록이 수록된다. 알 파치노, 제레미 아이언스 등 호화 캐스팅으로 주목 받은 <베니스의 상인>에는 감독, 주연배우가 참여한 음성해설과 제작과정 등이 포함된다. ‘세익스피어 에디션’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에단 호크가 주연한 영화 <햄릿 2000>과 2,30 페이지 분량의 소책자가 함께 곁들여진다(21일 출시 예정). 성룡 특유의 리얼 액션에 인디아나 존스 식의 모험을 가미한 <용형호제>는 1, 2편 모두 성룡 팬들에게 특히 인기 있는 작품. 오리지널 화면비의 영상과 광동어 DTS 음향 등 우수한 스펙으로 무장했으며 예고편, 스틸 사진 모음 등의 부가영상을 담았다(13일 출시 예정).

짐 자무시의 모든 것 [2]

‘그 시각’이라는 횡적인 분산을 ‘그 시대’라는 시간의 종적 연속성 안에 끼워넣고 ‘문명 속의 고독’을 생각하는 것이 <데드 맨>(1995)과 <고스트 독>(1999)이다. “완전히 문화가 다른 시대, 다른 나라에서 후회없이 자신이 꿈꾸는 생활을 고집스레 끌어나가는 돈키호테를 떠올렸다 돈키호테처럼 고스트 독은 자신의 행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자신의 신념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세계에서 살아간다”고 자무시는 말한다. 그건 <데드 맨>의 주인공 윌리엄 블레이크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시대의 돈키호테다. <데드 맨>과 <고스트 독>은 형제처럼 닮은 영화다. 일단 이 둘은 웨스턴 무비와 갱스터 무비라는 장르를 기점으로 우회한다. 하지만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볼 때 이 두 영화의 닮은꼴은 더 잘 보인다. 영화는 한명의 주인공을 따라 흘러간다. 그들이 만나는 인물들, 사건들은 에피소드처럼 다시금 새로운 국면의 이야기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거기에서 주인공 블레이크와 고스트 독은 이질적인 존재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처음에는 문명인이지만 뒤에는 원주민에 동화되어간다. 야만스러운 것은 원주민이 아니라 이곳을 차지한 문명인이라는 것을 블레이크는 느낀다. 야만적 문명의 개척시대에서 시인의 영혼으로 명명되어 환생한 블레이크(그의 친구 인디언 노바디는 그렇게 믿는다)는 본의 아니게 킬러가 되어 서부를 맴돈다. 그런가 하면 고스트 독은 유령 같은 존재다. 왜냐하면 그는 현대의 규율보다 고대의 규율을 존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영혼의 지침으로 삼고 있는 것은 일본의 무사도 정신을 담은 책 <사무라이의 길>이다. 어떤 계기로 그가 사무라이가 되었는지에 대한 증언은 (일부러 영화 속에서) 엇갈리지만, 어쨌든 지금 그는 문명 속의 고대인이다. 그리고 서구인의 육체를 가진 정신적 일본인이다. 흑인 래퍼 차림의 그는 일본식 무사도의 방식으로 삶을 꾸린다. “스즈키 세이준과 장 피에르 멜빌을 참고했지만, 오마주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자무시의 말은 진짜 참고 정도만 했다는 말로 들으면 된다. <데드 맨>과 <고스트 독>에서 주인공들은 문화와 역사를 지시하는 이질적 탐구자의 모습으로 변모한다. 어쩔 수 없는 건 그들이 모두 고독하다는 사실이다. 물론 친구는 있다. 그것도 말이 통하지 않거나 완전히 반대의 자리에 있을 때에만 진짜 친구가 된다. 그래서 블레이크의 친구는 오직 인디언 노바디이고, 고스트 독의 친구는 말이 통하지 않는 프랑스 이민자 아이스크림 주인청년이다. 하지만 죽음을 옆에 매달고 사는 이들에게 인생은 결국 혼자가 아닌가. 절대의 고독,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할 것인가? 과연 이 고독의 실체는 역사와 문화를 휘도는 형이상학적 영화로만 물을 수 있는 몫인가? 자무시는 형이상학의 신화적 세계에서 일상의 미니멀리즘적 세계로 돌아간다. <커피와 담배>(2003)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쇼>의 청탁으로 1986년에 단편을 만든 게 계기가 됐다. 자무시는 세편까지 뜸하게 만들더니 내처 작정한 듯 연달아 나머지를 만들어 장편으로 늘렸다. 말이 장편이지, 각기 다른 장소의 카페에서 둘셋씩 모여 커피 마시고 담배 피우며 한담하다가 끝나는 10분 내외 11개의 단편을 모은 것이다. 사랑스러운 소품이었지만 좀 의심스러웠다. 이거 일상으로 돌아가도 너무 돌아간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런 의심이 들 때쯤 들고 나타난 것이 <브로큰 플라워>(2005)다. 이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빌 머레이는 <커피와 담배>의 에피소드 중 ‘Delirium’에서 우탕클랜의 RZA, GZA와 한담을 나누는 주방장으로 등장해 자무시 세계의 입문식을 거친 바 있다. 하지만 자무시와 빌 머레이가 <브로큰 플라워>에 합의한 건 그보다 더 오래전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전에 빌 머레이를 염두에 두고 쓰여진 다른 가상의 영화 <하늘에 뜬 세개의 달>(Three Moons in the Sky)의 각본이 먼저 있었다. 한 남자가 각각 세명의 부인과 가정을 따로 갖고 산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 각본으로 제작비가 거의 모였을 때쯤 자무시는 생각을 바꿔 2주 반 만에 다른 내용으로 고쳤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지금의 영화 <브로큰 플라워>의 내용이다. 자무시와 머레이는 4년 전 토크쇼에 게스트로 초대되어 서로를 처음 알게 됐는데, 그때의 느낌을 빌 머레이는 재치있게 표현한다. 얼마나 죽이 잘 맞았는지 “영화에 대한 생각을 나눴는데 꼭 그동안 있는 줄도 모르고 지냈던 사촌형제를 만난 것처럼 잘 통했다”고 말할 정도다. 그건 자무시도 마찬가지였다. 자무시는 실제 배우를 상정하고 나서야 각본을 쓰는 스타일이다. “내 영화에서 배우들은 항상 출발점을 제시한다. 빈칸이나 채우는 존재들이 아니다.” 어느 영화, 어떤 인터뷰를 봐도 그렇게 말한다. <영원한 휴가>는 크리스 파커를, <천국보다 낯선>은 존 루리를, <다운 바이 로>는 톰 웨이츠를, <데드 맨>은 조니 뎁을, <고스트 독>은 포레스트 휘태커를 염두에 두고 시작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번에는 “배우로서 고정되어 있는 빌 머레이의 이면을 보여주기를 원했다”고 한다. 영미권의 평단들이 <브로큰 플라워>를 계기로 ‘미국 독립영화의 기수 짐 자무시가 첫 번째 메인스트림 영화를 만들었다’는 쪽으로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는 이유도 배우들 때문이다. 빌 머레이를 위시하여, 제프리 라이트, 샤론 스톤, 제시카 랭, 프랜시스 콘로이, 틸다 스윈튼, 줄리 델피 등의 화려한 간판급 배역진이 그 증거로 손꼽힌다. 아니 그럼, 조니 뎁, 가브리엘 번, 빌리 밥 손튼, 존 허트, 로버트 미첨, 이기 팝이 나온 <데드 맨>은 간판이 덜 화려했던가. “도대체 왜 메인스트림 운운하는지 모르겠다”는 자무시의 반응은 그래서 이해가 간다. 비교를 하자면 자무시는 커트 코베인이 음악을 생각하듯 영화를 생각하는 인물이다. 자신에 대한 대중의 몰표를 절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두 번째 이유를 찾자면 영화가 쉽고 재미있으며 곳곳에 유머가 넘치는 로맨틱코미디스럽다는 사실 때문이다. 특히 형이상학적 내러티브를 견지한 <데드 맨>과 <고스트 독>, 이 쌍둥이 같은 영화 이후에 나온 것이고, <커피와 담배>보다는 훨씬 더 대중적인 내러티브를 가졌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가 자무시식 로맨틱코미디 정도로 치부되는 건 모함이다. “<데드 맨>에서는 웨스턴 장르를 일종의 틀로 썼다. <고스트 독>에서도 영화의 다른 장르들을 비유하는 인용이었을 뿐이다. 그 점에서 <브로큰 플라워>는 로맨틱코미디도 아니고, 침울하고 비극적인 영화도 아니다. 범주 그 사이의 무언가다.” <브로큰 플라워>는 9편 장편을 통틀어 백인 중산층이 주인공인 첫 번째 자무시 영화다. 미국사회의 가장자리에서 그 중심부에 사는 인물로 넘어온 것이다. 메인스트림이라는 말은 그런 점에서만 의미가 있다. 굳이 <브로큰 플라워>의 명함을 만들어야 한다면, 실마리는 그 이전까지 반복되던 영화들의 요소가 어떻게 흡수, 변주되었는가이다. 자무시는 여전히 인생은 난감하고, 고독은 운명이라는 믿음을 저버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스포일러를 피하고자 한다면 이 대목은 영화를 본 뒤 읽으시길) 주인공은 돈(빌 머레이)이다. 그는 그 이름의 의미를 텔레비전 속에서 흘러나오는 흑백영화 <돈 주앙의 모험>을 망연자실 보는 것으로 대신한다. 그도 한때는 돈 주앙처럼 못 말리는 바람둥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동거녀 쉐리(줄리 델피)조차 가정의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는 그를 탓하며 기어이 짐을 싸서 나가는 중이다. 그녀는 문 앞에서 분홍색(분홍색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편지 한통을 주워 돈에게 건네주고는 떠나버린다. 20년 전 헤어진 누구인지도 알 길 없는 애인이 보낸 그 편지에는 돈 몰래 낳아서 기른 19살짜리 아들이 지금 그를 찾아 여행을 떠난 것 같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옆집에 사는 절친한 흑인 친구 윈스턴(제프리 라이트)은 편지를 보낸 사람을 찾아보라고 권한다. 강권에 못 이겨 돈은 그녀들을 찾아 나선다. 로리타라는 딸과 홀로 사는 로라(샤론 스톤), 잡초 같은 히피 처녀에서 부동산 중개업자의 화초 같은 아내가 된 도라(프랜시스 콘로이), 잘 나가는 변호사에서 동물의사 소통사로 변해 있는 카르멘(제시카 랭), 험상궂은 남정네들과 같이 사는 페니(틸다 스윈튼), 그리고 죽어 땅에 묻힌 미셸 페페의 무덤까지 돌아다닌 뒤 돈은 성과없이 집에 온다. 그런데 어느 날 정말 아들 같은 녀석이 그의 동네를 초조한 눈빛으로 어슬렁거린다. 돈은 그 소년에게 말을 건다. 분명 그 분홍색 편지에는 “그 애가 아버지를 찾아 떠난 게 확실하단 느낌이 들어”라고 적혀 있었다. 먼저 영화의 분위기만을 놓고 설명하자면, <브로큰 플라워>는 완만하고 편안하지만, 궁금증이 동력이 되어 굴러가는 미스터리다. 이 미스터리극을 자무시는 두개의 미니멀리즘 동선으로 그린다. 그 하나는 얼굴 자체가 미니멀리즘인 빌 머레이의 무표정이고, 그 빌 머레이의 무표정을 영화의 무표정한 미니멀리즘 형식이 감싸안고 있다. 여기에 자무시의 키워드들이 변형된 형태로 버팀목이 되고 있다. 돈은 말 그대로 여행자다. 그리고 그 시각, 그 시대에 대한 자무시의 관심은 현재라는 시제로 바뀌어 이 영화의 화두로 자리잡는다. (다른 영화에서도 종종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돈은 한번 만난 사람을 두 번째 만나는 일이 없다. 이미 이 여행길 자체가 다시 만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고,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그 여행길에서 만난 옛 애인들은 말 그대로 이미 지나간 과거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과거의 현현이다. 그래서 돈은 또다시 고독한 현재로 돌아온다. 아들같이 생긴 녀석이 눈앞에 나타나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다음에 아들이라고 믿고 싶지 않은 아들 같은 녀석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자무시는 마지막에 다시 질문을 던진다. 정말 미소년이 돈의 아들일까요? 그렇다면,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돈과 눈이 맞은 못생기고 뚱뚱하고 멍청하게 생긴 저 아이는 돈의 아들이 아니고 누구인가요, 라고. 또다시 판단은 유보되고, 그 순간 카메라는 현기증을 일으키듯 하늘을 한 바퀴 돈다. <브로큰 플라워>가 독특한 건 모든 정황이 다 펼쳐지는데 그중에서 진실을 밝히는 정황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자무시는 <브로큰 플라워>를 ‘기표의 드라마’라는 구조로 만든다. 그 기표란 분홍색이고, 타자기이고, 복장이고, 개중에는 윈스턴이고, 농구대이다. 로라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녀와 그녀의 딸은 번갈아가며 분홍색 나이트 가운을 입고 있다. 도라를 찾았을 때 그녀는 자신을 소개하는 분홍색 명함을 건넨다. 동물의사 소통사 카르멘의 집 앞에는 농구대(열아홉살의 미국 소년이 즐기는 스포츠가 무엇이겠는가?)가 있고, 그녀의 인생을 결정적으로 바꾼 것은 사랑하는 개 윈스턴(이 여행을 강권한 돈의 흑인 친구 이름)이었고, 그녀는 분홍색 바지를 입고 있다. 네 번째 여자 페니의 집에서는 그보다 더 많은 정황들이 있다. 농구대가 있고, 분홍색 커버가 있는 오토바이(열아홉살의 소년이 가장 갖고 싶은 게 무엇이겠는가?)가 있고, 심지어 분홍색 타자기가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페니와 돈 사이의 아들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돈은 분홍색 꽃을 한 다발 사들고 죽은 미셸 페페의 무덤을 방문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도 기표의 드라마는 끝날 줄을 모른다. 윈스턴은 아마 첫 장면에 등장했던 쉐리가 편지를 조작한 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고보니 그녀는 떠날 때 분홍색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돈에게 영화 말미에 분홍색 편지를 보낸다. 점점 더 알 길이 없다. 이젠 더 심해진다. 아들처럼 생긴 미소년의 가방에는 분홍색 꼬리표가 달려 있다. 엄마가 부적처럼 붙여준 것이라고 한다. 그럼 이 녀석이 내 아들 아닌가? 게다가 돈과 그 소년은 생각도 비슷하고, 복장까지 똑같다. 하지만 그 순간 돈과 그 아들로 보이는 소년과 똑같은 복장을 입은 또 다른 소년이 눈앞을 지나간다. <브로큰 플라워>의 기표들은 기의를 향해 있는 것이 아니다. 뭔가 있음을 밝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것만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맥거핀들이다. 자무시는 기표를 모아 뭔가 해보려 하지 않고, 그냥 기표 자체의 너저분한 널림으로 놓아둬버림으로써 만 가지 가능성을 갖게 한다. 그게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돈의 여행은 끝없이 이 몇 가지 기표들을 따라 옮겨다니는 의식의 여행이다. 애타게 기표를 쫓아다닐 뿐이다. 짐 자무시의 로드무비가 해답이 없는 길이라는 것은 기표의 드라마로만 구축되어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휴가>의 파리가 그것이고, <천국보다 낯선>의 플로리다가 그것이고, <다운 바이 로>의 두 갈래 길이 그것이고, <미스테리 트레인>의 엘비스 프레슬리가 그것이고, <지상의 밤>의 시계가 그것이고, <데드 맨>의 담배가 그것이고, <고스트 독>의 <사무라이의 길>이라는 책이 그것이고, <커피와 담배>의 커피와 담배가 그것이다. “플롯을 먼저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나를 두렵게 합니다. 그보다는 과정 안에 뭔가 있다는 것이 나를 더 흥분시키죠. 내가 원하는 것은 이야기를 찾기보다 디테일을 첨가하고 모아서 퍼즐이나 그 이야기를 구성하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기표의 드라마는 이런 창작의 습성과도 관계가 있는 셈이다. 짐 자무시의 영화에 사실은 있지만 진실은 없다. 때문에 조급해하지 말아야 한다. 이 세계는 아예 정해져 있지 않은 것들로만 채워져 있다. 그래서 그의 영화를 감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소개하자면 그건 명상이다. 자무시는 ‘명상의 영화’를 만든다. 명상의 영화를 만들지, 성찰이나 통찰의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가령 성찰의 영화를 만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를 보고 나서는 무언가에 대해 열심히 반성해야 하는 책임 아닌 책임이 주어진다. 그러나 자무시의 영화는 잘 모르겠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깊이 그냥 거기에 생각을 적시면 된다. 옳고 그르고, 공감하고 아니고는 그 다음이다. 보고나서 아주아주 맑은 명상에 깊이 잠기면 되는 것이다. 그게 <브로큰 플라워>의 여행길이 인도하는 무언가다.

짐 자무시의 모든 것 [4] - 음악

톰 웨이츠에서 물라투 아스탓케까지 짐 자무시는 음악을 잘 다루는 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의 영화에서 음악은 거의 미장센의 일부다. 물론 엘비스 프레슬리에서부터 물라투 아스탓케까지 특별히 가리지 않고 적재적소에 쓰는 편이지만, 대체로 우울한 정조가 진하게 배어 있거나 그도 아니라면 구슬프면서도 유머러스한 간결한 음조가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는 것들이 많다. 알고 보면 자무시는 대학 시절 델 비잔틴이라는 밴드를 결성할 만큼 음악에 대한 정열이 많았다. 그의 초창기 인터뷰를 보면 70, 80년대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록밴드들, 특히 “연주의 전문적인 기술보다 음악의 영혼이 훨씬 중요했던 패티 스미스, 텔레비전, 하트 브레이커스, 라몬스, 블론디, 토킹 헤즈 등을 좋아했고, 그 당시 내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말을 곧잘 한다. <영원한 휴가>에서 주인공 앨리는 찰리 파커의 광이다. 영화 속에는 얼 보스틱의 음악도 흘러나온다. <천국보다 낯선>에서 에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윌리에게 들려주는데, 그건 스크리밍 제이 호킨스의 노래 다. 실제로 자무시가 어린 시절에 즐겨 들었던 노래라고 한다. <다운 바이 로>에서 톰 웨이츠는 라디오 DJ였던 것으로 설정돼 있을 뿐 아니라, 영화의 시작도 그의 노래와 함께다. <미스테리 트레인>에서 멤피스의 밤하늘 아래 흐르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앨비스 프레슬리 버전의 <블루 문>이다. <지상의 밤>에서는 다시 톰 웨이츠의 노래가 에피소드 사이사이의 간주곡이 된다. 한편으론, 닐 영의 96년 공연 투어를 장편다큐멘터리로 담은 영화 <이어 오브 더 호스>(1997)를 완성할 정도였으니, 이미 <데드 맨>에서 닐 영의 기타 리프가 영화 전편을 휘감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말 웃기는 장면 중 하나는 <고스트 독>에서 늙은 마피아가 보스에게 “진짜 죽이는 노래가 있는데요”라며 우탕클랜의 랩을 소개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우탕클랜의 곡을 틀어놓고 욕실에서 흥얼흥얼 안무와 함께 따라 부르는 마피아의 모습은 자무시의 영화에 꼭 들어맞는 우스꽝스러움이다. <영원한 휴가> <천국보다 낯선> <다운 바이 로> <미스테리 트레인>은 존 루리가(<영원한 휴가>는 짐 자무시와 함께), <지상의 밤>은 톰 웨이츠가 음악을 맡았고, <데드 맨>은 닐 영이, <고스트 독>은 우탕클랜의 RZA가 맡았다. 자무시에 따르면 그중에서도 닐 영의 음악 작업이 가장 신기했다고 하는데, 닐 영은 “영화를 틀어놓고 곧장 그 화면에 맞춰 연주를 녹음했고, 이틀 동안 그렇게 세번 작업했으며, 그동안에는 아무도 그 녹음이나 영화를 멈추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브로큰 플라워>에서 음악은 더 익살맞아졌고, 더 가슴을 적신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도대체 이 음악의 정체가 뭔지 궁금해질 것이다. 애인 쉐리에게 차이고, 19살짜리 아들이 있다는 이상한 편지까지 받고 나서 망연자실 넋을 놓고 앉아 있는 돈에게 옆집 친구 윈스턴이 찾아와 말한다. “이봐, 내가 구워준 끝내주는 그 CD 어딨어? 여기 있구먼. 에티오피아 음악은 말이야 심장에 정말 죽인다고!” 하면서 틀어준다. 한편으로는 비틀비틀 뽕짝 같고, 한편으로는 극도로 정련된 기교 같은 이 음악은 70년대 에티오피아 재즈 펑크 아티스트 물라투 아스탓케의 앨범에서 뽑아온 곡이다. 돈이 옛 연인들을 만나러가기 위해 차를 몰고 다닐 때마다 세개의 곡이 번갈아 흘러나온다. 어쩌면 <브로크 플라워>는 음악만으로도 소통이 가능한 영화인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자무시는 영감을 얻기 위해 물라투 아스탓케의 앨범을 들으며 <브로큰 플라워>의 각본을 썼다고 한다. 관객이 “그 노래를 들음으로써 느낄 수 있는 그 온도와 감촉과 공기를 영화 속에서 포착하려 했다”고 자무시는 전한다.

[스크린 속 나의 연인] <소림축구>의 주성치

성장기 내내 홍콩 영화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고 생각한다. 왕자웨이(왕가위) 감독이나 장궈룽(장국영)의 영화를 거의 다 골라 보았다. 단순히 동양적인 매력을 넘어 서양적 세련미를 덧대는 그들이 나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했다. 멜로나 무협 영화에 온통 마음이 가있던 내게 코미디 배우가 들어올 여백은 사실 없었다. 그러다가 만났다. 저우싱츠(주성치). 뉴욕에서 아메리칸 발레시어터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한국인으로서 최초의 아메리칸 발레시어터 단원이란 수식어로 벅찰 정도의 기대와 절정을 맛보다가 십자인대 파열이란 부상을 입어 발레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사투를 벌여야 했던 시절이었다. 혹독하고 끔찍했던 순간이었다. 그 시절 빼놓을 수 없는 취미 생활이 일주일에 한 번씩 32가의 한인 타운에서 우리 비디오를 빌려 보는 것이었다. 거의 3년 동안 단골로 드나든 탓에, 내 취향들을 잘 알고 있던 비디오 가게 주인이 난데없이 <소림축구>를 권했다. 속는 셈치고 보라며 서비스로 밀어 넣어준 덕에 만난 <소림축구>의 저우싱츠. 그때까지만도 저우싱츠 역시 연휴 때 텔레비전에 흘러 지나가는 흔한 코미디 배우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그날은 좀 달랐다. 중국의 무술 문화와 그의 절대 고독한 표정이 어우러진 블랙 코미디. 웃지도 않으면서 인간의 본질적인 나약함을 불현듯 비웃는 그만의 내공이 오락성, 폭력성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면서 영화는 대중 예술의 극치를 그려냈던 것이다. 무엇보다 허무맹랑 코미디의 유쾌함을 넘어서, 인생철학의 한 단면을 엿보게 해주어서 기뻤다. 여느 무술 고수 배우들과 달리, 자기는 도저히 흉내낼 수도 없는 전통 무술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변형시켜 소화해내는 그에게서 또 하나의 인간 승리를 찾아볼 수 있었다. 마치 배우 자신이 일반 관객과 하나가 되어, 그 자신 역시 오를 수 없는 고수들을 동경하고, 그 마음을 담아 고수 흉내내기를 감수하며 일반인의 대리만족을 시켜주는 듯한 그에게서 느끼는 매력은 참으로 묘했다. 나는 그것이 다른 무술 고수 배우들에 대한 주성치의 콤플렉스라고도 보았는데, 그는 그것을 좀처럼 감추려 들지 않았던 셈이다. 이후 난 그의 작품들을 닥치는 대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때 발견한 <희극지왕> <식신> 등은 나를 여지없이 ‘저우싱츠’의 늪으로 밀어넣었다. 브루스 리, 청룽, 그리고 리롄제로 이어지는 걸출한 무인들의 축에 절대 낄 수 없어도, 그는 적어도 무술과 연기가 무엇임을 정확히 간파하는 인물이라고 생각되어진다. 그만의 코미디적 해설로 대중에게 친근하게 와 닿는 이유이고, 결국 <007 북경특급> <홍콩 레옹> <도성> 등을 통해 패러디의 지존으로 거듭났던 배경이 아닐까. <쿵푸허슬>의 하이라이트에서 거세게 피어오르는 그만의 카리스마를 난 소름 끼치게 느꼈다. 나는 내가 ‘순수 예술을 하는 이’라고 선 긋고 싶지 않다. 콤플렉스를 인정하고, 그것을 자기만의 매력으로 바꾸면서 자신있게 패러디를 추구한 주성치를 통해 다시금 확인한 교훈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장르를 뛰어넘어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그 ‘무엇’에 대한 갈망도 키워줬다. 그래서 주저없이 내 연인으로 꼽는다. 저우싱츠. 참 힘든 시절, 너무도 소중하게 만난 배우다.

엔터테인먼트 여성파워 100

매년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을 집계해왔던 <할리우드 리포터>가 올해의 리스트를 발표했다. 디즈니-ABC 텔레비전 그룹 회장이자 디즈니그룹 미디어 네트워크 사업부 공동대표인 앤 스위니가 2년 연속 1위를 차지한 가운데, MTV네트웍스 대표 주디 맥그레스, 유니버설픽쳐스 대표 스테이시 슈나이더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지난해 2, 3위였던 소니픽처스엔터테인먼트 대표 에이미 파스칼과 CBC-파라마운트 네트워크 텔레비전 회장 넨시 텔렘은 각각 4위와 5위로 내려앉았다. 8위를 기록한 하포엔터테인먼트의 오프라 윈프리는 연기자로서 유일하게 순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이는 엔터테인먼트 기업에 몸담고 있는 여성을 대상으로 올해 그들의 위치, 그들이 가진 결정권 등을 판단하여 집계한 순위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리스트 분석 기사를 통해 셰리 랜싱이 파라마운트 회장에서 물러난 이후, 차세대 여성 경영자들의 대거 진출이 눈에 띄지만, 업계에서 여성의 영향력은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고 평했다. 그나마 TV분야에서는 여성 대표나 프로듀서들이 이룬 성공이 돋보이지만, 영화감독이나 TV연출쪽에서는 전혀 발전이 없다. 영화학교에서는 매년 비슷한 수의 남녀 학생들이 졸업하고 있지만, 황금시간대 TV프로그램의 86%는 여전히 백인 남자의 손에 만들어지고 있다. 샌디에이고주립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 마사 로젠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흥행순위 250위 안에 포함된 영화의 책임프로듀서, 프로듀서, 감독, 작가, 편집, 촬영감독 중 여성의 비율은 4년 전 19%에 비해 16%로 줄었다. 이는 여성감독의 수가 극적으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 여성의 업계 진출 상황이다. 메이저 스튜디오 고위층에서 흑인 여성은 단 한명도 찾아볼 수 없고, 이는 아시아계나 히스패닉계도 다르지 않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업계 내부에서는 여성 및 소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도제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다. 이 프로그램의 고문이자 컬럼비아픽처스의 간부를 지냈던 스테파니 알랭은 “느리지만 확실한 효과를 보이고 있는” 이 제도가 좀더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