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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검색결과

기사/뉴스(9404)

[복길의 슬픔의 케이팝 파티] 보이지 않는 마음의 끝, (보아, 2002)

학교에 신입생이 들어올 때마다 사는 곳을 캐묻고 다니던 선배가 있었다. 건배를 하기도 전에 늘 먼저 취해 있던 선배의 주사는 ‘강남’에 산다는 신입생을 만날 때면 더욱 징그러워졌다. 집이 논현동이라고? 몇평에 사니? 아버지는 뭐 하시니? 선배가 그럴 때마다 모두가 경멸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왜 대답을 안 해? 말하기 싫어? 내가 되게 나쁜 사람이 된 것 같네? 술판의 주도권은 윗사람에게 있으니 싸늘한 분위기의 원인도 그에게 추궁해야 맞는 데 어째서인지 언제나 혼나는 쪽은 우물쭈물하는 신입생들이었다. 건물의 값, 땅의 가격, 그리고 그것이 매겨지는 이치를 남보다 빨리 알게 되었다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말을 했다. 부자가 나쁜 거야? 나는 욕망에 솔직한 사람일 뿐이야. 해장국집의 껌뻑대는 조명 아래 ‘부’를 선망하는 이들의 철학이 수없이 설파되었다. 그런 것을 몰라도 그만, 알아도 어찌할 방법이 없는 나는 그저 식당 직원들의 눈 밑에 나의 시커먼 피로감을 함께 묻었다. 부자가 될 수 없다고 비관할 때에도, 부자들의 삶을 증오할 때도, 마침내 부자가 되는 것에 큰 관심이 없어졌을 때에도 변하지 않은 것은 논현동에 대한 나의 마음이었다. 논현동은 마치 게임 속 중앙광장처럼 늘 내게 열린 동네였다. 나는 수당 없는 자발적 야근을 불사하며, 24시간 운영하는 ‘행복한 약국’에서 피로회복제를 마셨고 야간 콜센터 근무를 마친 친구와 ‘스파레이’ 사우나 수면실에서 함께 쪽잠을 잤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었지만 어쩐지 논현동에 있으면 전혀 서글프지 않았다. 모두가 잠들지 않았는데, 누구도 잠들지 못한 이유를 묻지 않으니 나의 감정과 직접 마주할 일 또한 없었다. 누군가 그곳에 값비싼 저택들이 있다고 일러주어도 그 안에 누군가가 살고 있을 거란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세상은 내가 사는 만큼 보이는 것이었다. 논현동은 내게 어디까지나 ‘고단한 삶’이라는 체념이 지탱하는 말도 낭만도 없는 번화가였다. 언젠가 새벽에 홀로 논현동 골목 내부를 걸었다. 한번 걸으니 미용실이 나왔다. 거기가 <비스티 보이즈>에 나온 곳이란 사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 영화의 주인공들이 가진 결핍과 불안은 왜 매력적일까? 그 위태로움이 아무런 안전도 보장되지 않는 공간과 누구도 말하지 않으려는 시간 속에서 발생되는 것임을 알아도 여전히 매력적일 수 있을까? 나는 생각만 했다. 두번 걸으니 좁은 골목에 다닥다닥 붙은 고깃집과 술집들이 온갖 잡스러운 냄새를 풍겼다. 고기를 익힌 숯에 알코올과 향수 냄새가 섞이니 묘하게 흥분이 되었다. 가슴을 진정하려고 눈을 돌리면 벗은 여자들의 사진이 무수히 깔린 바닥이 보인다. 여길 걷는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짓밟으며 비틀거린다. 세번 걸으면 그 전단지가 인도하는 주점들이 나온다. 네번 걸으면 외제 차가 빼곡히 주차된 원룸촌이, 다섯번 걸으면 ‘만’(卍)자 간판을 세운 점집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땅값이 높아서인지 허투루 생긴 것이 없다. 모든 공간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져 있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골목이 만드는 서사에 내가 속하는가? 나는 스스로 묻고 아니, 하고 답하지만 내 삶도 이 동네의 구조와 다를 바 없는 곳에 놓여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도시를 걷고, 도시에서 사람을 만나면 가끔 구역질이 난다. 그러나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감정을 끝까지 추궁한 적은 없다. 나는 언제나 를 듣는 것으로 그것을 해소해왔기 때문이다. ‘만 13살에 데뷔한 소녀 보아가 일본 시장을 점령하고 그 인기에 힘입어 한국에서도 톱 아이돌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이제는 ‘고대사’ 같은 것이다. 그래서 ‘J팝’이란 말은 있어도 ‘K팝’이란 말은 없던 고대에 오리콘 차트 1위를 기록한 는 현대에도 논쟁이 된다. 한국 대중에게도 익히 알려진 일본어 가사로 일본 작곡가가 만든 곡이니 당연히 ‘J팝’이라 보는 게 맞겠지만, ‘해외에서의 인기’가 큰 척도인 ‘K팝’의 성질을 생각해보면 한국어 버전의 와 이 곡이 속한 2집 앨범 《No.1》은 ‘K팝’의 기원이라 불리기에 손색없기 때문이다. 는 일본어 버전과 한국어 버전이 모두 좋지만 가사에 맞게 강약이 배치된 일본어 버전이 곡에 더 어울린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조금은 어색한 번역투가 느껴지는 한국어 버전인데 그 이유는 왠지 더 개연성이 없기 때문이다. 도쿄에서 보아는 그대를 향한 마음이 끝이 없음을 고백하고 당신이 원하는 결말에 내가 있는지를 묻는다. 그러나 서울에서 보아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끝을 따라 걷다 멈추지 않는 바람과 속삭여지는 빛을 따를 뿐이다. 이 노래가 표현하는 대도시의 슬픈 풍경은 무언가를 선언하는 듯한 10대 시절 보아의 창법과 추상적이고 모호한 가사가 만나 완성되는 것이라 느낀다. 도시에서 느끼는 고독의 본질은 무엇일까? 완전히 연소한 채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동네? 아파트 단지를 보자마자 ‘호갱노노’를 켜서 집값과 평판을 보는 행위? 그렇게 집값을 알게 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의 무력감? 내가 잃은 것은 아무것도 없음에도 왠지 손해보고 있다고 느끼는 박탈감? 이렇게 질문하듯 수많은 답을 내놓지만 마침표를 찍지 못하는 것은 그중 무엇도 내가 머물고 싶은 정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정답을 찾게 되면 삶이 끝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결국 나의 고독을 파고드는 일이다. 세상은 가끔 쉽게 결론을 내리라 부추기지만 나는 그 끝을 영원히 모르고, 내 몸 바깥의 고독에 내가 머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인터뷰] 우리에게 소통이 필요한 순간, <막걸리가 알려줄 거야> 김다민 감독, 배우 박나은 인터뷰

동그란 머리에 동그란 눈. 붉은 두뺨에 데굴데굴 굴러가는 웃음소리. 인터뷰를 하기 위해 박나은 어린이 배우가 스튜디오에 입장하는 순간 곳곳에서 탄성이 터졌다. 무표정하고 뚱한 표정으로 자기만의 모험을 펼쳐나가던 화면 속 동춘이가 그대로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어색하고 낯선 분위기에도 어린이는 곧잘 웃고 곧잘 대답하며 사진 촬영에 임했다. 보호자를 대동하지 않고 “저는 원래 혼자 다녀요”라고 씩씩하게 말하는 모습에서 영화의 힘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막걸리가 알려줄거야>의 엉뚱하고 개성 넘치는 상상은 가까운 문화센터에서 막걸리 제조법을 배운 김다민 감독의 경험에서 비롯했다. 저녁마다 학원 차량이 늘어선 학교 앞 풍경과 발효된 막걸리가 말을 걸듯 톡톡톡 소리를 낸다는 두 가지 사항을 합쳐 지금의 <막걸리가 알려줄거야>가 완성됐다. 인터뷰를 위해 김다민 감독과 박나은 배우가 한자리에 모였고, 김다민 감독은 동춘이에 대해 묻는 질문에도 나은이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인터뷰이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답하는 모습. 이토록 다정하고 사랑이 넘치는 장면이 대화를 나누는 내내 펼쳐졌다. - (인터뷰 진행 일정을 기준으로) 바로 어제 언론배급 시사를 마치고 기자간담회를 진행했어요. 어떤 경험이었나요. 박나은 기자회견 자리에 앉기 전부터 너무 떨려서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저만 바라보는데 너무 떨리는 거예요. 김다민 그래서 나은이의 심장박동 소리를 손을 올려 확인할 정도였어요. 콩콩콩. 심장이 엄청 뛰더라고요. 그래도 긴장하지 않고 질문에 대답도 너무 잘해줬어요. - <막걸리가 알려줄거야>의 주인공을 발굴한 과정이 궁금합니다. 어떤 과정으로 오디션을 거쳤고, 또 동춘이 역으로 나은이를 선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다민 동춘이다운 것을 생각했을 때 너무 인형처럼 예쁘거나 매체 연기에 능숙한 친구들은 다소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보다는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친구들을 찾고 싶었어요. 영화에서 동춘이가 멍 때리는 장면이 많이 나오거든요. 그런 표정을 만들어낼 수 있는 어린이 연기자를 물색했어요. 근데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오디션 막바지에 이르러 정말 결정해야 할 시기가 왔을 때, 그때 나은이를 만난 거예요. 제가 실제로 콘티에 그려두었던 동춘이랑 너무 똑같아서 일단 놀랐고요. (웃음) 그리고 독보적으로 사랑스러운 표정이 제 마음에 들었어요. 멍하고 뚱한 표정에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하며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그냥 동춘이 그 자체였어요. 박나은 오디션에서는 세 장면을 연기했어요. 들판에서 털복숭이랑 얘기하면서 깨달음을 얻는 장면이랑 모스부호 공부하다가 엄마가 뭐 하냐고 묻자 “문제 풀기!”라고 얼버무리는 장면. 그리고 막걸리 마시는 장면 이렇게 세 장면이었어요. 이중에서 털복숭이랑 얘기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페르시아어’라는 단어를 계속 말해야 하는데 그 발음이 저한테는 너무 어려웠어요. -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를 할 거라고 처음 알려준 어른은 누구인가요. 박나은 저희 소속사 대표님이요. 이 작품 하고 싶은지 먼저 물어보셔서 “당연히 해야죠!” 하고 대답했어요. 영화를 너무 찍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8살 때 드라마 <위대한 쇼>에 출연하고 오랫동안 쉬었거든요. 이제는 작품을 해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어른들 폭소) 경청하고 이해하는 어린이가 되기까지 - 김다민 감독님은 나은이를 처음 본 순간 동춘이와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는데, 나은이는 어때요? 김다민 감독님을 처음 만난 순간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박나은 20대인 줄 알았어요. 김다민 (나은이의 어깨를 흔들며) 나은아, 너 통찰력 좋다! - <막걸리가 알려줄거야>가 어린이 주인공을 그려내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동춘이는 아주 어려서부터 자기 납득이 중요한 인물입니다. “지금 이걸 왜 해야 해요?”라는 질문을 여러 번 반복하기도 하고요. ‘왜’가 중요한 인물 설정,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김다민 동춘이는 합리적인 답을 듣고 싶어 하는 친구예요. 그런데 주변 어른은 에둘러 얘기할 뿐 정작 명확한 답을 내려주지 않죠. 납득할 만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는 상태 그대로 시간이 흐른 거예요. 나중에 동춘이가 11살이 되고 고학년에 접어들지만 여전히 그 답을 궁금해하죠. 사실 동춘이가 하는 질문들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묻는 질문이기도 해요. 그런데 어른들에겐 이 질문이 너무 고단하고 어려우니까 남들에게 계속 미루는 거죠. 영어 선생님은 어머니에게 물어보라고 하고, 엄마는 다시 선생님에게 물어보라고 하면서. 박나은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에는 동춘이가 소심하기만 한 아이라고 생각했어요. 멍 때리는 거 좋아하고 말도 많이 안 하니까요. 그런데 대본을 여러 번 읽어보니 소심하다기보다는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아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실천력을 잘 보여주고 싶었어요. - 이 작품은 페르시아어와 모스부호가 중요한 언어로 작용합니다. 새로운 세계를 접하기 위해 어린이가 다른 언어를 계속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하고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에서 언어는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김다민 동춘이가 막걸리와 소통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 소통 과정에 필요한 언어들을 보면 들으려고 노력해야만 간신히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에요. 사실 영화 속 많은 인물들은 집단적 독백처럼 자기 이야기만 하거든요. 화장실 앞에서 엄마와 동춘이가 이야기하는 것도 같은 내용을 나눈 것처럼 보이지만 동춘이가 정말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어요. 현실에서도 각자 다른 사정이 있고 다양한 뉘앙스가 있는데 그걸 모두 건너뛰고 허공에 허우적거리며 이야기할 때가 종종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귀 기울이면 정답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같은 말을 쓰는 데도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과 다르게, 다른 언어에도 주의 깊게 경청하면 들리고 보이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지적으로 담고 싶었어요. - 많은 외국어 중에 페르시아어인 이유가 있나요. 김다민 동네 주민들에게 무료로 특수 외국어 강좌를 열어준 곳이 있었어요. 힌디어, 페르시아어, 태국어 등 난생처음 보는 것들이 있었죠. 직접 페르시아어를 배워봤는데 어렵기도 어려웠고 쓰는 방향이 정반대다 보니 완전히 뒤집힌 느낌이 들었어요. 영화에서 이렇게 낯선 언어를 사교육으로 접하려 혈안인 모습을 보여주면 약간의 황당함도 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박나은 촬영 현장에서 페르시아어를 직접 글씨로 써야 하는데 정말 어려웠어요. 김다민 거의 따라 그렸죠. (웃음) 박나은 저에겐 딱 3번의 기회가 있었어요. 세번의 기회를 다 쓰면 노트를 다시 처음부터 써야 했거든요. 그래서 엄청 조마조마해하면서 썼어요. 모스부호는 세상에 존재하는 줄도 몰랐어요. (웃음) 나중에 엄마, 아빠한테 물어보니 SOS랑 비슷한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영화를 찍으면서 모스부호가 누군가를 구해주는 데에만 쓰이는 게 아닐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린이를 위한 세상, 어린이가 선택한 세상 - 사실 동춘이는 안락한 환경에서 자라는 어린이에요. 매일같이 이어지는 사교육에 고통스러워하지만 부모님은 그런 동춘이를 사랑해주고 응원해줘요. 중간중간 방안에 간식도 집어넣어주고요. 영어 말하기 대회를 앞뒀을 때에는 무대 공포증이 있는 동춘이에게 “네가 선택해” 하면서 선택권까지 줍니다. 사교육 문제를 견지한 작품에 온건하고 다정한 부모님을 설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김다민 지금까지 사교육을 다룬 작품들이 정말 많았죠. 대부분 부모가, 정확히는 엄마가 악역을 자처하고 있어요. 사교육을 미션처럼 헤쳐나가는 게 모두 엄마의 뒤틀린 욕망 때문이라고 보여주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했어요. 현실에서 이런 모습은 응원하는 마음에서 시작하잖아요. 이 안에도 사회적 맥락이 있다는 것을 한번 짚어보고 싶었어요. 사교육을 단순히 엄마의 욕망이라 일컬어버리고 그걸 악역화하는 건 진짜 문제에 접근하기 어렵게 하니까요. 그래서 엄마 혜진이 동춘에게 중간중간 물어보잖아요. 하고 싶은 거 맞냐고.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도 말하고요. 그런 게 현실의 언어라 생각했어요. 사교육을 하긴 하지만 아이들의 의견도 살피고 싶은 게 요즘 엄마들의 말이니까요. 아이들을 무작정 가둬놓고 공부하라고 강요하는 모습보다는 모순적으로 보일지언정 이런 질문을 건네는 게 더 현실과 가깝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아이 입장에서는 다르게 보이겠죠. 도대체 무엇을 위한 응원인가 싶을 테고, 부모의 선의와 사랑이 직접적으로 느껴지지 않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런 입장 차이도 필요해요. 아이들은 이렇게 많은 일에 많은 감정을 쏟아내는데 그 이유가 대학 진학이라는 게 너무 작은 것처럼 느껴지잖아요. 뭔가 더 크고 원대한 목표가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고. 동춘이는 그 정답을 직접 찾아가기로 한 거죠. - 나은이도 학원을 다니나요? 공부하기 싫을 땐 어떻게 해요. 박나은 학원 한개만 다니고 있어요. 수학이랑 영어 배우고 있고요. 그전까지는 미술 학원이랑 피아노 학원도 다녔는데 영화 촬영하면서 힘들어서 그만뒀어요. 저희 반에서 동춘이처럼 학원을 많이 다니는 애들은 3분의 1 정도 되는 것 같아요. 공부하기 싫을 때도 정말 많지만 그럴 땐 좀 쉬었다가 다시 해요. 안 그러면 진도를 따라가기가 어렵거든요. 수학은 알아가는 재미가 있고 국어는 읽는 재미가 있어요. 과학이랑 사회는… 잘 모르겠어요. (웃음) - 동춘이가 막걸리를 만나기 위해 밤 거리를 나섰을 때 유흥가에서 비틀거리는 어른들을 목격해요. 어른들에게는 무척 일상적인 풍경이지만 어린이인 동춘에게는 어른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을 것 같았어요. 김다민 보통 동네에 학원가랑 유흥가랑 붙어 있잖아요. 길거리에 나온 동춘이가 그 길 위에 있는 사람들을 천천히 바라보죠. 늦게까지 공부한 중고등학생들을 보고 그다음에 술에 취한 어른들을 차례대로 보죠. 동춘이가 살아보지 않아도 알 것 같은 미래인 거예요. 그때 동춘이가 학생들을 뚫고 어른들과는 다른 길을 향해 나서죠. 동춘이만의 선택과 결정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박나은 이때 비가 와서 진짜 힘들었어요.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서 뛰었어요. 김다민 맞아요. 헤쳐 모여 헤쳐 모여 계속 반복했었지? (웃음) - 동춘이 주변엔 많은 어른들이 있어요. 영화에서 동춘이는 어떤 어른에게 의지했다고 생각해요. 박나은 어른들에게 의지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털복숭이들. 항상 옆에 있어주고 동춘이의 속마음도 질문도 들어주니까요. 그런데 털복숭이가 탈인형이잖아요. 털복이한 배우는 털복이랑 똑같이 생겼고, 숭이 연기한 분은 또 숭이랑 너무 닮은 거예요. (김다민 감독을 보며) 그것도 일부러 얼굴에 맞춰 캐스팅한 건가요? 김다민 (크게 웃으며) 어? 아니에요. 그런데 말 듣고 나니까 닮았단 생각이 드네요! - 동춘이는 또래 아이들보다 조숙한 편이에요. 노키즈 존, 민폐 논란 등 어린이를 잘못의 근원인 것처럼 여기는 사회는 어린이들이 빨리 자라주길 바라거든요. 그런 바람에서 시작된 눈총도 있고요. 이런 현실에서 조숙한 동춘이가 어떻게 비쳐지길 바랐나요. 김다민 동춘이는 자기 주관이 뚜렷해요. 자기만의 공상 세계가 있고 친구들이나 주변 어른에게 톡톡 쏘는 말도 곧잘 해요. 그게 조숙함으로 보일 수 있겠죠. 하지만 동춘이는 어른들이 바라는 말을 해주는 부류의 조숙함과는 거리가 있어요. 친구들이 그러잖아요. “동춘이 요즘 이상하지 않아?” “얘 원래 이상했어.” 그런 독특함이 있을 뿐이죠. 오히려 동춘이는 자기 주관이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어른들에게 질문하지 않아요. 질문하는 순간 학원 수만 늘어나니까요. - 그러고 보니 동춘이가 영어 유치원에 다니게 된 것도 “대머리는 영어로 뭐예요?”라고 질문하면서였죠. 박나은 그럼 대머리가 영어로 뭔지 알면 학원 그만두는 거예요? 김다민 아니지. 대머리가 영어로 뭔지 묻지 않아도 될 만큼 다니는 거지. (웃음) - 귀엽고 명랑하던 앞의 이야기와 달리 극이 진행될수록 서늘하게 가라앉는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런 분위기 전환을 준 이유가 있나요. 김다민 영화에서 페르시아어 말하기 대회를 기점으로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했어요. 모스부호와 페르시아어에 과몰입한 동춘이의 모습을 보고 대회장에 있던 어른들처럼 관객도 당혹스럽게 만들고 싶었거든요. 뒤편으로 갈수록 분위기가 천천히 가라앉는 건 동춘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계속해서 쌓이기 때문이에요. 혜진과 화장실 앞에서 나눈 대화도 그렇고요. 저는 이 작품의 엔딩을 해피엔딩이라 생각하지만, 만약 그걸 슬프게 혹은 무겁게 받아들인다면 그건 동춘이가 이겨내야 했던 것들을 이해했기 때문일 거예요. 비현실적이지만 가장 현실적으로 비추려 했거든요. 하지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지막에 쿠키영상을 넣었답니다. - 영화 마지막엔 동춘이가 자기만의 결단을 내리고 맙니다. 영화 전체 맥락에서 가장 중요한 시퀀스이자 강렬한 메시지도 담겨 있어요. 김다민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결말은 정해져 있었어요. 이 결말을 이뤄나가기 위해 좀 뻔뻔하게 밀고 나가려 했고요. 너무 중요한 부분이라 말을 아끼게 되지만 동춘이가 난생처음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답변을 들은 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어요. 박나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동춘이는 행복하기만 할 거예요. 그러려고 스스로 선택한 거니까!

[기획] <파묘> 배우 최민식, 땅 파먹고 산 사람의 깊은 시선

최민식은 20여년 전부터 연기란 신내림처럼 자기의 몸 전체에 영혼을 집어넣는 과정이라고 설파해왔다. 최민식에 따르면 연기는 “촬영 전까지 인물의 내외면을 분석해 감독과 충분한 상의를 거친 후” 크랭크인을 하는 순간 “그 누구도 개입할 수 없게 캐릭터와 혼연일체가 돼 ‘굿 한판’을 벌이는 일”이다. 그런 그가 굿과 풍수의 신명으로 가득한 오컬트 영화 <파묘>로 돌아왔다. 그가 분한 베테랑 풍수사 김상덕은 돈을 많이 준다는 소식에 파묘에 돌입하는 속물이지만, 묏자리에 얽힌 저주를 파악한 순간 물러서지 않고 악귀를 제거하는 작업에 뛰어든다. 상덕의 호는 호랑이의 눈, ‘호안’(虎眼)이다. 그 호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는 최민식 또한 김상덕의 시선에 유의하며 풍수사의 영혼을 입어갔다. *인터뷰에 <파묘>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영화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굿의 종류나 풍수 용어가 다수 등장한다. 풍수사 상덕이 전문성을 보이는 여러 개념들을 어떻게 체화해갔나. = 오컬트 영화에 처음 출연하지만 장르에 관한 생경함은 없었다. 풍수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젊은 관객들에게 생소하게 들릴진 몰라도 나에겐 꽤 익숙한 단어들이었다. 무속과 풍수가 한국인의 삶에 알게 모르게 녹아 있지 않나. 손없는날에 맞춰 이사를 한다든지 장례식에 다녀온 후엔 소금을 뿌린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우리 영화의 소재들이 오랫동안 우리 곁에 존재했던 개념들이라 장르에 관한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었다. - 상덕은 직업의식 이상으로 땅에 애정을 품은 풍수사다. 영화엔 상덕이 땅의 의미를 술회하는 긴 보이스오버 내레이션도 두 차례 있다. = 장재현 감독이 촬영 초반 내게 “<파묘>를 통해 우리 땅이 가진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싶다”고 전했다. 땅의 트라우마라니! 신선한 표현이었다. 장재현 감독의 전언이야말로 우리 영화의 주제고 감독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일 것이다. 상덕은 속물이다. 처음 파묘에 들어가는 동인도 돈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상덕은 딸의 결혼과 곧 태어날 손주를 생각하며 후손들이 밟아야 할 땅에 흉측한 것이 존재하면 안된다는 일념을 내세운다. 상덕은 베테랑 풍수사로서 그리고 시대의 어른으로서 마지막 책임감을 수호하는 사람이다. - 상덕이 습관적으로 피우는 담배는 대본에 명시돼 있었나. 흡사 차례상에서 피우는 향 같다는 생각도 했다. = 일부러 예스런 느낌을 주고 싶어 빨뿌리 담배를 피우는 듯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상덕은 현재를 살아가지만 풍수사라는 직업은 옛 문화를 연구하는 일이다. 그래서 담배를 태우는 자세부터 전통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는 디테일을 보이고 싶었다. - 화림(김고은)의 굿이나 영근(유해진)의 염처럼 가시적인 행위를 동반하지 않지만 <파묘> 속 상덕은 관객에게 시선의 단서를 제공하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처음 파묘를 위해 산에 오를 때도 가장 뒤에서 산세를 관찰하고, 주요한 사건이 벌어지는 보국사도 먼저 알아챈다. 흡사 상덕이 사건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형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 상덕의 시점이 대본 안에 정확히 명시돼 있었다. 가령 상덕이 봉분 위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는 장면도 무덤의 방향과 상덕의 응시점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배우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이야기를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뒤에 어떤 장면이 나올 것이라는 걸 의식하고 연기하면 안된다. 상덕도 뒤에 첩장된 오니가 나올지 극 중에서 몰라야 하기 때문에 감정의 빌드업을 위해선 순간의 시퀀스에만 충실하고자 했다. 풍수사라는 직업은 이렇다 할 시각적 지표가 없다보니 최민식이라는 배우가 풍수사처럼 보여야 하는 고민은 늘 있었다. 이마에 ‘풍수’라 써놓고 내내 나올 수도 없는 노릇인데(웃음) 40년을 땅 파먹고 살아온 사람의 모습이 나를 통해 드러나야 했다. 오랜 시간 풍수사로 살아온 사람은 깊은 시선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땅을 바라보든 산에 오르든 일반 등산객과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지 않겠나. 바람의 감촉, 물길의 방향, 흙의 맛 등에서 느끼는 오감을 열고 상덕의 시선에 유의하며 연기했다. - <파묘>의 네 주연 캐릭터 중 상덕이야말로 가장 ‘끝까지 묘를 파는’ 캐릭터다. 상덕은 베테랑 풍수사라 파묘 행위와 쇠침 뽑기가 가져올 위험성도 알았을 텐데 과업을 완수하려는 과단성을 보인다. = 끝까지 속물은 아닌 거다. 평생 흉지와 길지를 판가름하며 경제생활을 영위해왔지만 인간이 사는 땅에 그런 흉측한 것이 존재하면 안된다는 풍수사로서의 마지막 양심이 있었을 것이다.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세상의 위험을 제거하자는 선언에 나머지 셋이 동의해준 것이다. 그걸 보면 네 사람 모두 아주 영악한 이들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실리를 따지지만 캐릭터마다 내면에 순수함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 <파묘>는 영화 초반 은근한 견제를 보이던 네 캐릭터가 결국 합심해 공동의 목표로 돌진하는 앙상블 영화다. 카메라 안팎에서 나머지 세 배우와의 화학 작용은 어땠나. = 유해진 배우야 워낙 베테랑이라 큰 걱정을 안했다. 김고은 배우와 이도현 배우는 이번 작품으로 처음 만났다. 나이 차도 크다 보니 불편할까 염려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이들은 프로페셔널이다. 그래서 협업이 어떤 의미인지 명징히 알고 있었다. 대본 리딩 후 뒤풀이도 가져보니 이들과 함께라면 ‘묘벤저스’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네 배우가 서로 생각하는 <파묘>의 방향성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 좋다. 결국 영화 촬영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촬영 중 “이번엔 이렇게 해보자”라고 새로 시도해보는 것이 설령 의구심이 들어 불편할지라도 수반돼야 한다. 장재현 감독의 경우도 그렇다. 앞선 두편의 장편영화로 마니아층이 형성돼 있어 안전한 길로 안주하기도 쉽고 남의 시선을 의식한 작품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개의치 않고 자기가 만들고 싶은 작품을 만들지 않았나. 그 용기가 좋다. - 영화의 결말에 이르면 네 캐릭터는 모두 파묘 중 마주한 오니의 영향 아래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유사 가족처럼 한데 화합해 추억을 남긴다. 비극과 희망이 혼재된 결말을 배우로서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 <파묘>의 결말이 참 좋았다. 네 사람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여러 사건이 이들에게 남긴 육체적, 정신적 상흔이 없진 않을 것이다. 그 상흔을 분명히 적시한 채 그럼에도 삶은 이어진다는 진리를 내포한 엔딩이라 마음에 들었다. 장르 관습으로 만든 유치한 결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겪은 형이상학적 파국의 여지는 남겨 두되 시간이 허락하는 치유를 보이는 결말이다.

[기획] <파묘> 배우 김고은, '신을 받들게 된 이들의 마음을 파고들고자 했다'

“하루 스코어가 이렇게까지 많이 든 게 처음이다. 정말 비현실적이다.” 개봉 3일 만에 100만 관객 돌파, 이튿날 200만 돌파. 데뷔작 <은교>(2012) 이후 어느덧 출연한 영화가 10편이 넘은 데뷔 11년차 배우 김고은은 지난 며칠간 <파묘>가 보여준 이례적 흥행 기세에 놀라워하며 운을 뗐다. 또래 젊은 배우 중 가장 돋보이는 표현력을 가진 그는 이번 작품에서 알아주는 젊은 무당 화림으로 분했다. 극 중 온몸으로 신을 받들던 그에게서는 코끝을 귀엽게 찡그리던 소녀(<쓸쓸하고 찬란하神 - 도깨비>)도, 가난한 집의 첫째 딸(<작은 아씨들>)도, 독립군의 정보원(<영웅>)의 모습도 찾을 수 없었다. 그를 직접 만나 <파묘>와 화림, 그리고 요즘 김고은을 요모조모 파헤쳐보았다. * 인터뷰에 <파묘>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흥행 가운데 화림과 봉길(이도현)의 관계에 관한 관심이 특히 뜨겁다. 둘이 사제 관계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시나리오에 더 있었나. = 그렇진 않았다. 감독님이 해주신 설명을 보태자면 대학 야구선수였던 봉길이 내가 있는 사당으로 찾아온 거다. 자기가 신병을 앓고 있는데 신을 받겠다고. 화림은 그 길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아니까 안타까운 마음에 봉길을 말리지만 그의 의지가 워낙 강해 결국 내림굿을 해주고 둘은 사제 관계가 된다. - 화림, 봉길, 상덕(최민식), 영근(유해진) 등 주요 인물들의 이름이 독립운동가의 이름과 같고, 대살굿을 할 때 화림이 요즘 유행하는 ‘가시 번’ 헤어스타일을 하고 컨버스 운동화를 신었다는 점, 공연장에서 쓰는 마셜 스피커를 썼다는 점까지 화제다. =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따서 캐릭터명을 지었다는 건 감독님이 한창 촬영 중일 때 지나가는 말로 해주셔서 알고 있었다. 가시 번은 분장감독님의 아이디어였다. 으레 하는 머리 망과는 다르게 가보자고 의견을 주셔서 좋다고 했다. 컨버스는 대살굿이 역동적인 굿이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정확하지는 않으나 요즘 (무속인) 선생님들도 굿할 때 운동화를 신기도 한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마셜 스피커는… 솔직히 있는 줄 몰랐다. (웃음) - 화림이 “저는 한국사람이에요”라고 밝히는 첫신으로 돌아가보자. 처음에는 그 신을 화림이 정확한 성격이라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이라고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이 작품의 전체 주제를 관통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 신이 관객에게는 주제적으로 다가왔겠지만 내게는 현실적으로 남아있다. 실제로 첫 촬영이었기 때문이다. 화림처럼 옷을 입고, 그처럼 말을 뱉는 것도 다 어색할 때였다. 아직 모든 게 내 것 같지 않아 불안감도 컸다. 한국인이 일본인으로 오해받았을 때 우리만이 갖는 감정선 같은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준비한 기억도 난다. 화림이 일어를 꽤 하는 이유는 그가 아기 무당 때부터 모셨던 선생님이 일본에서 활동했었고 그를 따라 일본에 가기도 했기 때문이다. - 화림을 범접할 수 없는 무속인이 아닌 커리어에 자부심이 있고 자기관리에 철저한 직장인처럼 표현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모든 인물이 직업인으로서의 자기 삶을 살아간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고 거기서 오는 리얼리티가 좋았다. 그 점을 살리고 싶었다. 그래서 연기할 때 화림이 무속인이라는 ‘직업’을 가졌으며 워라밸을 잘 챙기고 젊은이답게 꾸미는 것에도 관심이 많은 인물처럼 느껴지도록 신경 썼다. 외적인 컨셉의 경우 현실을 많이 반영했다. 컨셉 회의에서 들은 바에 따르면 요즘 젊은 무속인 중에는 무속인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잘 차려입고, 좋은 차를 끌고 다니는 분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 밖에 화림과 관련해서 내가 아이디어를 낸 부분은 말투다. 내 생각에 화림은 상대가 상덕처럼 나이가 많더라도 꼬박꼬박 존대를 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존댓말로 쓰인 대사들을 듣기에 너무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반말, 존댓말을 섞어가면서 쳤다. - 무당이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은 어땠나. 뮤지컬영화 <영웅> 때만큼 지난한 연습실 생활을 거쳤을 것 같은데. = <작은 아씨들>을 찍다가 한달도 안 있다가 <파묘>로 넘어가야 하는 일정이었던 터라 시간 여유가 많지 않았다. 대신 드라마 휴차 때 틈틈이 선생님들 집에 찾아갔다. 사실 그 시간 동안 기술적으로 뭔가를 익힌다기보다는 선생님들의 삶은 어떠했는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밥 먹고 커피 마시다가 잠깐 방에 들어가서 징 치고, 경문 외고, 동작 배우고, 그러다가 다시 또 나와서 바람 쐬고 몇 시간씩 수다 떨기를 반복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뭐랄까, 무속인들의 삶에 스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하게 직장 다니다가 원치 않더라도 신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을 겪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이들의 공통된 정서를 이해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굿도 많이 보러 다녔다. 유심히 보면서 캐치하고 싶었던 건 무속인들이 퍼포먼스에 들어가기에 앞서 하는 특유의 움직임들, 예컨대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떤다든지, 뭔가를 살피고 느끼면서 도구를 집는다는지 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보기 힘든 대국은 동영상으로 찾아봤다. 같은 동작일지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고 무속인마다 자기 스타일이 다 있더라. 거기까지 확인한 뒤에는 내 스타일대로 가도 되겠다는 방향성이 잡혔다. - 스미는 시간을 거쳐 들어간 본 촬영은 어떻게 기억하나. 대살굿 신과 혼 부르기 신에서의 김고은 배우는 무당뿐만 아니라 댄서, 스포츠 선수, 가수 등 여러 아티스트를 삼킨 것처럼 보였다. = 대살굿 신은 전날 리허설을 하고 그다음날 반나절 동안 본 촬영에 들어갔다. 4명의 베테랑 촬영감독님이 카메라 한대씩 잡고 알아서 찍어주셔서 나는 내 퍼포먼스에만 집중하면 됐었다. 칼을 허벅지부터 댈 건지, 볼부터 댈 건지 하는 순서까지는 정했고 머리는 알아서 풀렸다. 혼 부르기 신을 찍을 땐 음을 타며 경문을 외는 게 어설퍼 보일 것 같아 끝날 때까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준비할 때도 걱정이 하도 돼 자문해준 젊은 무속인 선생님의 경문 녹음본을 통으로 외웠다. - 험한 것과의 사건 뒤 4인방은 각자 후유증을 안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 어떤 일이든 결국 다 지나간다. 중요한 건 그 자리에 어떤 식의 흔적들, 잔재들이 남는다는 거다. 그럼에도 우리는 거기서 계속 살아가야 하는 것이고. 장재현 감독님이 그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사건 이후에 인물들의 삶까지 영화에 담으셨다고 생각한다. - 데뷔 초에는 배울 게 많은 선배의 출연 여부가 작품 선택의 제1기준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11년차에 들어선 지금은 그 기준에 변화가 생겼을 것 같다. = 아무래도 이제는 선배들에게 하나라도 더 보고 배워서 부족한 나를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을 덜 느낀다. 때마다 다른 선택을 할 만큼의 여유가 생겼달까. 예컨대 <파묘>는 감독님에 대한 신뢰 때문에 했다. <파묘>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내 상상으로 채워야 하는 지점들이 많다는 게 불안 요소였는데, 번뜩 ‘이건 오컬트의 장재현 감독님 작품이잖아’라는 생각이 들면서 주저함이 사라졌다. 그렇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건 시나리오에 답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우선 그 안에서 무엇인가를 확보해야만 레퍼런스든 뭐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 오래전부터 음악 예능에 출연하거나 O.S.T를 부른 적도 있지만 최근 부쩍 음악과 가까워졌다는 인상이다. <영웅>이 지지난해 말에 개봉했고 얼마 전엔 <이효리의 레드카펫> 무대에 섰다. 10주년 팬미팅에서 뉴진스의 를 춘 게 크게 화제가 되기도 했고. = 집에 들어가자마자 음악부터 틀고 작품마다 어울리는 플레이리스트를 짜는 그런 이미지가 생겨버렸는데 사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웃음) 굳이 따지자면 노래방이라는 공간에 가는 걸 좋아한다. 집에서 음악을 거의 듣지 않는다. 심지어 블루투스 연결하는 법도 서툴다. 다들 잘 모르지만 정적을 잘 견디는 편이다. - 화림의 대사를 빗대어 묻자면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만” 믿는 편인가. = 그렇지 않다. 그건 너무 일차원적이지 않나. 이를테면 난 외계인도 있다고 본다. 이 드넓은 세상에 인간만 살 리 없다. (웃음) 우리가 바닷속 끝까지 들어가보지 못했듯 아직 지구 밖 우주를 다 탐색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진지하게 생각한다. - 확정된 차기작은 이언희 감독의 <대도시의 사랑법>과 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이다. = 두 작품 모두 우정을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촬영을 마쳤고 올해 안에 개봉한다. 박상영 작가의 연작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 중 <재희>를 다룬다. <은중과 상연>은 한창 촬영 중이라 2025년은 돼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아주 큰 주제 하나가 있고 그걸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인데 그 커다란 게 무엇인지는 비밀로 남겨두고 싶다.

<파묘> 300만 돌파, 흥행 요인은?, 작품별 타깃층 및 입소문 고려한 배급 전략 유효해

개봉 7일째에 310만 관객을 달성한 <파묘>의 흥행 가도에 따라 극장가 배급 전략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3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영화 소비 트렌드는 “재미가 검증된 작품을 선호”하는 새로운 관객 성향에 의해 “개봉 2주차 이후 관객 확대”로 바뀌고 있었다. 그러나 <파묘>는 개봉 4일째이자 1주차 주말이었던 2월25일 하루에만 82만 관객을 모으며 이례적인 흥행 추이를 보여줬다. 이현정 쇼박스 영화사업본부장은 <파묘>의 흥행 요인 중 하나로 배급 전략을 꼽았다. “많은 분이 왜 설 연휴에 개봉하지 않았는지 물었고 지금이 전통적인 비수기는 맞다”라며 “하지만 이제는 개별 영화에 맞춰 좋은 날짜를 고르는 전략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파묘>는 2월22일 개봉을 선택하며 2월15일부터 열렸던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생긴 화제성을 이어갈 수 있었다. 또 “영화의 주요 타깃층인 10~20대의 활발한 입소문을 공략할 수 있는 3월 개강·개학 시즌”까지 노렸다는 게 이현정 본부장의 설명이다. ‘2023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도 지난해 천만 관객을 돌파한 <범죄도시3> <서울의 봄>이 “극장가 보릿고개라 불리던 5월과 11월에 개봉”했다는 사실을 들며 “전통적인 배급 전략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파묘>는 2월28일 개봉한 할리우드 대작 <듄: 파트2>를 제치고 예매율 51.1%를 기록(2월28일 18시30분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하며 삼일절 연휴에도 많은 관객을 모을 것으로 예상된다.

[로마] 로마에 불어오는 가족 서사의 바람, <이 솔리티 이디오티: 리턴즈>, 평범하고 이상한 가족의 초상으로

가족사를 주제로 한 한국영화 <가문의 영광> 시리즈는 1편을 개봉한 2002년, 국내 영화 흥행 1위라는 성적을 거둬들인다. 이를 계기로 조폭 코미디 영화가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고 21년이 지난 2023년, <가문의 영광: 리턴즈>를 개봉하며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이와 비슷한 가족 코미디 영화가 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에서 상영된 시트콤을 영화화한 <이 솔리티 이디오티>는 2011년 1편을 개봉해 그해 이탈리아영화 중 최고의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그 로부터 12년이 지나 제작된 세 번째 작품 <이 솔리티 이디오티: 리턴즈>는 시트콤 제작 단계부터 참여한 파브리지오 비조, 프란체스코 만델리, 페루초 마르티니의 주도하에 최근 이탈리아 관객을 만났다. ‘평범한 바보들’이라는 뜻의 <이 솔리티 이디오티: 리턴즈>는 5편의 에피소드를 통해 평범하지만 공감 가득한 가족의 모습을 그린다. 잔루카의 삶은 거부감으로 똘똘 뭉친 아버지가 10년 만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면서 다시 악몽처럼 되풀이된다. 테니스 클럽 유명 인사들의 파티에서 항상 배제되어온 한 커플은 아기를 갖기 위해 그리고 클럽에 초대받아 ‘인싸’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남자를 사랑하는 파비오는 결혼식장에서 파트너에게 버림받고 절망에 빠지며, 아픈 할머니를 돌봐야 하는 금속 노동자 세바스티아노는 거액의 복권에 당첨되지만 당첨금을 주지 않는 우체국 직원에게 몽땅 사기당하고 만다. 또 다른 커플은 예상치 못한 계기로 부모가 되는 상황에 직면한다. 우스꽝스럽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고, 서글프지만 명랑하기도 한 다양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솔리티 이디오티: 리턴즈>는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속에 숨은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1, 2편의 단순한 대본과 플롯에서 한 단계 발전된 느낌을 전할 수 있었던 이유기도 하다. 이 영화는 ‘가족은 사회의 기초’라는 바탕을 까는 한편 가족들 사이로 사회로부터 외면받은 비정상적인 슬픔을 곳곳에 배치한다. 이 시리즈는 이탈리아 코미디의 그로테스크한 면을 모델 삼아 블랙코미디를 완성해낸다. 배우 우고 토냐치와 비토리오 가스만의 <로마의 20가지 이야기>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 서늘한 장면들도 마주할 수 있다. <이 솔리티 이디오티: 리턴스>는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관점과 스토리를 통해 현실의 다양성을 성실하게 반영한다. 소통 없는 평온한 지옥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이 새장 밖으로 나와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소통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길 수 있도록 명확한 메시지를 전한다.

[비평] 르상티망의 정치와 진영 논리, 영화 <건국전쟁>

켄 로치 감독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은 노동자계급을 주로 다룬 그의 다른 작품들과 결을 달리한다. ‘영국인’으로서 자국의 식민 지배로 인한 아일랜드 내전을 다룰 때, 감독의 포지션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테리 조지 감독의 <호텔 르완다>(2004)도 비슷한 맥락에 있다. 벨기에의 분할 지배의 결과로 후투족과 투치족은 1994년 100만여명이 사망하는 상호 학살극을 낳았다. <호텔 르완다>는 강대국을 상대로 피식민 주체의 협상 전략을 다룬다. 두 작품은 제국주의로부터 형식적인 독립을 이룬 국가들의 식민성(콜로니얼)과 그 유산(포스트 콜로니얼)에 관한 텍스트다. 많은 제3세계 국가들은 해방 후 국가 건설 방식과 통치 시스템을 둘러싸고 혼란과 분열을 겪었고, 급기야 침략자에게 향했던 총을 ‘동족’에게 겨누었다. 한국전쟁은 그중 가장 큰 규모의 비극이었다. 8·15 해방과 함께 시작된 제노사이드인 4·3은 “일정(日政) 때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정점일 것이다. 분단은 당대 한국 사회를 집어삼키고 있는 진영 논리로 이어지고 있다. ‘화제의 영화’ <건국전쟁>은 그중 한 진영의 목소리다. 진영과 진영 논리는 다르다. 진영 만들기는 나라 만들기만큼이나 불가피한 현상이다. 다양한 정치 주체들의 공과(功過), 각자가 욕망하는 정상 국가(normal state)에 대한 환상, 어떤 방식으로 나라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없을 순 없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대의제가 작동하지 않은 상황에서,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전후로, 진영 논리는 박근혜, 문재인 등 정치인에 대한 팬덤으로 발전하면서 소모적인 갈등의 진원지가 되었다. <건국전쟁>의 공동제작자인 김은구 ‘트루스포럼’ 대표가 <건국전쟁>의 티켓 사재기 논란에 대해 <그대가 조국>(2022)을 언급한 맥락도 여기에 있다. ‘이승만’과 ‘조국’은 역사적으로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지만, 진영 논리에서는 동격이 된다. ‘고난의 행군’의 진짜 주인공은 누구인가 나는 <건국전쟁> 같은 영화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어떤 재현인가라는 논쟁이고, 이를 계기로 의미 있는 공론장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2004년부터 15년 동안 사비로 만든 <김일성의 아이들>(2020년 개봉)로 주목받은 김덕영 감독의 <건국전쟁>은 원래 ‘하와이로 간 대통령’이라는 소박한(?) 제목이었다. <건국전쟁>은 건국을 둘러싼 각 정치 세력간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 아니다. 이승만과 그를 대리한 감독이, 이승만에 대한 ‘무지와 오해로 가득 찬’ 한국 사회를 상대로 한 투쟁을 의미한다. 당연히 이승만도, 감독의 삶도 외롭고 숭고한 여정일 수밖에 없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길위에 김대중> 역시 마찬가지 방식을 취하고 있다. 두편의 다큐멘터리가 ‘예술’이 되려면, 감독은 자신이 재현하고자 하는 인물과 관계성을 밝혀야 한다. 모든 인식자의 시각은 부분적, 당파적(partial)이다. 재현 주체로서 자신이 선 자리(standpoint)를 밝히지 않을 때, 재현물은 맥락을 잃는다. 상황적 지식(situated knowledge)만이 ‘객관성’을 보장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알리기’라는 목적도 달성하기 어렵고 대항 담론만 생산하기 쉽다. 팩트가 아니라 창작자의 혼란과 모순이 반영된 하이브리드한 현실을 다루어야 한다는 의미다. 투명한 재현은 가능하지 않다. <건국전쟁>은 팩트를 두고 기약 없는 전쟁을 반복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당연히 감독이 밝힌 대로 후속작은 2, 3편이 나올 수밖에 없다. <건국전쟁>은 이승만 바로 알기, 역사 바로잡기와 같은 ‘몰랐던’ 사실을 드러내는 전략을 취한다. 하지만 팩트는 사실 여부가 아니라 경합하는 담론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나는 <건국전쟁> 다음에 김구에 대한 영화가, <길위에 김대중> 다음에 박정희에 대한 다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나온다면 새로운 방식이어야 한다. <건국전쟁>의 주장처럼 이승만이 “100년 앞을 내다본 글로벌 지도자”는 아니었을지라도, 그의 정치력은 대단했다. 한국전쟁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협박해 한미상호방위조약(한미동맹)이라는 군사 공공재를 얻어낸 것은 건국의 최대 업적일지 모른다. 이승만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은 아이젠하워는 자신의 일기장에 이승만을 “개자식”(son of bitch)이라고 적을 정도였다. 구한말 이후 근대가 식민 지배와 함께 시작되고 한국전쟁의 참화를 겪은 한국인들에게 민족주의는 르상티망(증오, 질투 따위의 감정이 되풀이되어 마음속에 쌓인 상태)의 정치일 수밖에 없다. 원한과 고통을 경쟁하는 정치에서는, 누가 더 탄압받고 고생했는가가 올바름의 기준이 된다. 이 점에서 이승만은 억울하다. 고난받고 일찍 사망한 투사들을 가슴에 묻은 이들에게 이승만은 ‘밉상’이다. 이승만은 40년간 미국에서 생활(‘독립운동’)했다. 이런 이력을 가진 지도자는 많지 않다. 르상티망의 정치에서 본다면 이승만은 한국 현대사에 무임승차한 기회주의자다. 그런 인물이 외교력을 무기로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은 그에 대한 ‘균형 잡힌’ 평가의 최대 걸림돌이었다. 급히 만든 작품? 작품의 만듦새는 민망하다. 작품 소개를 보자(요즘 이런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밖에 없을 것이다). “1945년 해방 이후 남과 북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자유를 억압하고 인권을 탄압하는 공산주의 독재국가 북한과 자유와 민주주의에 기초한 경제 번영과 선진국의 길로 들어선 대한민국.” 영화에 나열된 팩트가 ‘틀렸음’은 말할 것도 없다. 조금만 한국 현대사에 관심 있는 관객이라면, 많은 장면에서 반박이 가능하다. 아무리 프로파간다 다큐멘터리라지만 “이승만이 국민 교육에 헌신했기 때문에 국민들의 민주주의 의식이 높아져 4·19가 일어났다”, “4·3은 남로당과 북로당의 작품이다”, “이승만이 미국에서 3·1운동을 주문(注文)했다”, “3·15 부정선거나 조병옥 박사 사망(살해) 사건은 이승만이 아니라 그 밑의 사람들이 저지른 일” 등의 내용은 당황스럽다. <건국전쟁>은 이승만의 여성 인권에 대한 기여에 상당 분량을 할애한다. “페미는 여성참정권을 준 이승만에게 감사해야 한다.” 이 말은 작품의 스토리텔러인 류석춘의 주장이다. 그는 “페미니스트”를 “페미”라고 지칭한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승만 내각의 유일한 여성이자 초대 상공부 장관인 임영신(1899~1977)은 중앙대학교 설립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녀의 호는 승당(承堂)으로, 이승만이 머무는 집이라는 뜻이다. 두 사람은 오랜 연인 관계였다. 초대 내각의 최초 여성 장관은 이렇게 탄생했다. 한편 “한국 여성들을 강간한 소련군이 어떻게 해방군인가”라는 식의 내용은 미 군정 시기나 이후 주한 미군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영화는 대담하게도 이승만의 하야 계기가 된 4·19로 시작하는데, 4·19조차 이승만의 작품이라고 말한다. 한국이 국부를 얼마나 업신여기는지에 대한 안타까움은, “미국 전역에는 조지 워싱턴 동상이 3천개가 있고 미국 주재 대사관이 모여 있는 지역에는 넬슨 만델라와 마하트마 간디의 동상이 있는 반면, 우리는 이승만에 대한 배척 때문에 서재필 동상이 이승만을 대신하고 있다”고 탄식한다. 간디와 만델라가 이승만과 같은 비교 대상인가. 너무나 맥락이 없는 발상이다. 이승만은 한학과 서구 교육에 두루 능통해 한국을 전근대에서 근대로 발전시킨 인물이라는 주장은 근대성에 대한 무지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근대는 전근대와 후기 근대로 나뉘는 시간 순서의 개념이 아니다. 근대성은 같은 사회 내부에서도 똑같이 적용되지 않으며, 시간성이 아니라 주체와 장소(로컬)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독립운동가들조차 반상(班常)의 구별이 있었다”는 영화의 지적이 곧 ‘이승만의 근대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건국전쟁>을 나의 이데올로기적 편향에 의해 평가할 의도는 없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자신이 믿고 싶은 사실(事實)을 사실(史實)로 만들고자 하는 제작진의 태도와 시각을 비판하고 싶지 않다. 그들의 순수한 르상티망의 열정임을 나는 믿는다. 요지는 프로파간다 다규멘터리일수록 지성적이어야 하는데, ‘친일파’라는 말 대신 ‘반민족행위자’라는 표현이 옳다는 장면 외에는 관객으로서 나는 배운 바를 찾기 어려웠다. 에피소드(삽화) 대 시멘틱스(semantics, 의미론)의 이분법에서, 대개 한국의 남성 지식인들이 택하는 방식은 후자이다(주지하다시피 홍상수 감독은 그 대척점에 있다). 시멘틱스에의 욕망을 버리고 맥락적 지식을 만들어야 한다. 즉 한 장면, 상황으로 ‘전체’를 보여주는 방식이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4·19에서 사망까지 다룰 것이 아니라 <호텔 르완다>처럼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이승만의 생애를 조명했다면, 지금과 같은 숭배적 작품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한 사람의 생애로 건국의 역사를 대신하려다 보니 통사(痛史)를 표현하려는 감독의 의도와 달리 어설픈 통사(通史)가 되었다. 스크린 밖의 전쟁 재현물로서 <건국전쟁>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를 나의 극장 관람기로 대신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관람객 100만명을 바라볼 즈음, 나는 금요일 오후 8시 서울 시내 멀티플렉스에서 대부분 50대 이상으로 보이는 30여명의 관객 중 한 사람이었다. 영화가 끝나자 갈채도 무반응도 아닌 애매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어떤 이들은 “이런 영화는 널리 알려야 돼”라며 엔딩크레딧이 올라간 자리에서 셀카를 찍었고, 어떤 사람들은 “돈 벌려고 급히 만들었어. 너무 허술해, 라면 저렇게 안 만들지”라고 말했다. 이 글을 마무리할 무렵 김덕영 감독이 “좌파들이 <파묘> 관람을 독려한다”, “<건국전쟁>은 <듄: 파트2>와도 싸우고 있다, 185만명을 동원한 <노무현입니다>를 넘어 200만 고지를 향해 단결하자”고 말했다. 노골적인 선동이다. 이 말은 <건국전쟁>에 대한 나의 마지막 감상(感傷)을 앗아갔다.

[김세인의 데구루루] 방콕에서

방콕행 비행기 안에서 2월13일 1월25일 첫 촬영을 시작으로 한국 분량 촬영이 끝났다. 어느덧 방콕 촬영 분량만 남아 있다. 유독 이번 촬영이 짧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타이트한 스케줄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 분량을 촬영한 2주 동안 카메라 안과 밖에서 감지되는 현상과 변화를 바라보고 소화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대도시의 사랑법>을 촬영하며 김세인이라는 개인의 삶과 직업인으로서의 감독의 삶, 양 측면에서 현재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지점이 매우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을 계속하여 자각했다. 지난 에세이에 언급했던 고민들에 대한 완벽한 해답은 아니지만 어떤 실마리 정도가 내 발밑으로 자꾸만 흘러들어오는 것 같았다. 두렵지 않다. 촉박한 시간으로 인해 촬영장에서 내내 뛰어다녀야만 했다. 심지어 조급한 마음에 컷을 하기 직전에는 모니터 룸 입구에 서서 모니터를 지켜봤다. 컷과 동시에 모니터 룸 문을 열며 밖으로 달음박질을 시작했다. 짧은 시간 내에 최선의 오케이컷을 찾아야 한다는 일념 아래 뛰고 또 뛰었다. 이번 촬영에서는 그 한정된 시간이 고도의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힘으로 발휘되었다. 오롯이 우리의 현장, 장면 안에 우리가 놓여 있다는 감각. 단순한 상태가 되는 즐거움. 잽싸고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물론 시간 내에 신을 마무리할 수 있을까 하는 약간의 불안과 긴장은 있었지만 그 또한 발목의 모래주머니가 아닌 내 등을 부드럽게 밀어주는 상쾌한 바람 정도로 작용되었다. 지난 작업들에서 보통은 컷을 하고 적합한 말을 고르며 천천히 걸었다. 어떨 때는 꼭 끌려가는 것만 같았다. 모니터에서 배우와 스탭들이 있는 곳으로. (이러한 현장에서의 부담감에 대해 공감하는 연출자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일상에서조차 매사 그다지 자신감이 넘치는 스타일은 아닌지라 이런 기질은 현장에서도 스멀스멀 나타나곤 했다. 매 작품 촬영이 끝나면 역시 나는 감독이라는 직업에 맞지 않는 성격이라고 판단하게 되었고 다른 직업을 찾자는 다짐을 하곤 했다. 현장에서 순수한 즐거움을 느낀 적은 아주 찰나의 순간뿐이었기 때문에 한차례 작업이 끝나고 난 뒤에는 다음 작업을 시작할 기운을 모으는 시간, 소위 ‘쿨타임’이 차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번 <대도시의 사랑법>을 촬영하며 ‘빨리 다음 작품을 찍고 싶다’, ‘다작 감독이 되고 싶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툭툭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 말은 <대도시의 사랑법>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의미의 말이 아니다. 오히려 한 회차, 한 회차가 지나갈수록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게 참으로 아쉽게 느껴졌다. 현장에서 몸과 마음이 지치고 소진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에너지를 얻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감독으로서 비로소 전환점에 들어섰다. 감독의 디렉팅을 갈구하는 배우들과 스탭들의 눈빛을 보며 최대한의 속도로, 더 빨리 그들에게 뛰어가고 싶었다. 그들에게 지금 이 화면 안에 스친 것들을 전달하고 싶었고 나누고 싶었다. 온전히 서로를 받아들이고 서로에게 자신을 던진다는 것. 그런 순간들이 이 작품에 놓여 있다. 예상보다도 <대도시의 사랑법>을 훨씬 더 사랑하게 되어버렸다. 우리는 같은 비행기를 타고 방콕으로 향하고 있다. 비행기가 잔잔하게 흔들린다. 촬영하며 좋았던 순간들, 슬펐던 순간들. 그 모든 것들을 멀리서 바라본다면 바닷물 속에서 춤을 추는 모래알처럼 우리는 잠시 파도를 탔던 거겠지.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같은 방향으로 흔들리는 스탭들의 머리를 보며 생각해본다. 방콕 클럽 안에서 2월22일 이상한 꿈이다. <대도시의 사랑법>을 촬영하며 처음으로 촬영장 꿈을 꿨다. 촬영장에서 나는 극 중 주인공 ‘고영’의 팬티를 입은 채 누군가와 키스했다. 묘하고 이상하다. 아, 이래서 그런 꿈을 꾸었던가. 도착한 방콕 클럽 현장은 그야말로 사랑의 용광로였다. 흥 넘치는 엑스트라들은 컷 사인에도 무아지경으로 춤을 멈추지 않았다. 클럽 무대 위로 뛰쳐올라가 손을 휘저으며 ‘컷!! 컷!!!!!’ 여러 차례 외치고 나서야 그들은 ‘우린 춤을 계속 추고 싶어’라고 말하는 얼굴로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그들은 실제 클럽인 양 서로를 스캔하고 신호의 눈빛을 교환했다. 우리가 임의로 짝지어준 파트너를 거부하고 ‘난 저 친구와 춤을 추고 싶어’를 명확하게 요구했다. 서로가 맘에 드는 자를 픽해 자율적으로 파트너가 되었다. 카메라가 돌기 전 이미 키스를 시작하고 정해주지 않은 공연을 벌이며 환호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자유로움이었다. 음악을 끄지 않은 채 촬영감독, 조감독, 인물 조감독, 통역사와 나는 춤을 추는 그들 사이를 헤집으며 카메라에 그 모습들을 마구 담아냈다. 필름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로 스냅 촬영을 계획한 부분을 촬영하기 전 촬영감독이 나에게 디지털카메라를 건넸다. 직접 찍어보라고. 클럽의 모든 조명이 꺼졌다. 암흑의 클럽에서 음악이 울리고 우리는 플래시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었다. 춤을 추는 엑스트라들의 머리 언덕 위로 저 멀리 촬영감독의 플래시가 빛났다 사라졌다. 모두가 서로의 위치를 알 수 없기에 촬영감독의 플래시와 내 카메라의 플래시가 멀어졌다가 교차되기도 하고 왼쪽이었다가 오른쪽이었다가 마치 전쟁터의 총알처럼 튀어올랐다. 내 카메라에 촬영감독의 어깨가 찍히기도 하고 스탭이 찍히기도 했다. 촬영감독의 카메라에도 분명 내가 찍혔겠지. 이 클럽 신을 찍기 전, 남윤수 배우와 진호은 배우에게 당신들의 유일무이한 청춘의 찰나를 찍겠다고 말했다. 성공했다. 그리고 카메라에 담긴 건 배우들의 유일무이한 찰나는 물론이거니와 이 작품을 함께한 스탭들, 엑스트라들, 그 모두의 청춘의 찰나였다. 이것을 찍기 위해 이 작품이 존재했던 거구나. 그렇게 모든 본 촬영이 끝났다.

[씨네스코프] ‘이 조합 칭찬해’, <패스트 라이브즈> 셀린 송 감독, 정서경 작가 GV 현장 스케치

셀린 송 감독과 정서경 작가의 CJ ENM 비저너리 인사이트 토크 ‘<패스트 라이브즈> 응원할 결심’이 지난 2월29일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됐다. CJ ENM 비저너리 인사이트 토크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오리지널리티로 비전을 제시하는 인물들과 함께 향후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영감을 제공하는 토크 프로그램이다. <헤어질 결심> <작은 아씨들> 등의 각본을 집필하며 개성 넘치고 진취적인 인물들의 세계를 그리는 독창적인 스토리텔러로 자리매김한 정서경 작가는 2023년 CJ ENM 비저너리로도 선정된 바 있다. CJ ENM과 할리우드 A24 스튜디오가 함께 발굴한 주목받는 신인감독 셀린 송과의 만남에 ‘이 조합 칭찬해’라는 찬사가 쏟아졌던 이유다. 막 시사가 끝난 상영관은 채 가시지 않은 드라마의 여운과 대담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CJ ENM의 신인 창작자 육성 프로그램 오펜(O’ PEN)의 신인 작가 120여명도 객석에 함께했다. GV 모더레이터를 맡은 것이 처음이라는 정서경 작가는 “새벽 4시에 서울의 한 술집에 있다는 느낌으로 감독님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셀린 송 감독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바쁜 내한 일정을 소화 중이던 셀린 송 감독은 “12살까지 성장했던 한국에서 <패스트 라이브즈>를 부분적으로나마 제작하고 한국 관객에게 보여드리게 되어 영광이다”며 화답했다. “영화에서 인연이라는 컨셉이 굉장히 중요한데, 해외 관객은 인연이라는 단어를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접했다. 한국 관객들에게는 일상적이고 친숙한 단어인 만큼 감상이 확실히 다를 것으로 생각했다.” 정서경 작가는 영화 초반의 “짧게 지나가서 더 인상적”이었던 장면들을 차례차례 언급했다. “나영이 캐나다의 학교 운동장에 서 있는데, 한번만 져도 울던 아이가 날마다 질 것 같은 곳에서는 울지 않고 서 있다. 자기가 이제껏 알지 못한 무언가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후 12년이 흐르고 갑자기 군인이 되어 행군하는 해성이 나온다.” 셀린 송 감독은 “영화 속 시간이 우리 인생에서 느껴지는 시간과 비슷하게 만들려 했다”고 답했다. “24년이 한순간에 지나갈 수도 있고 2분이 영원같이 느껴질 수도 있다. 시간이 순식간에 흐르는 지점이 바로 나영이 노라가 되는 순간, 또 군대를 거치며 해성이 소년에서 남자가 되는 순간이라 생각했다.” 12년이라는 숫자에 담긴 한국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그런 철학적인 의미가 있다고 해주셨으면 좋겠지만 사실은 7년은 좀 짧고 20년은 너무 긴 것 같았다”고 답해 웃음을 선사했다. 자전적 요소가 가득한 작품인 만큼 셀린 송 감독이 해설하는 작중 노라의 심리는 생생하고 때때로 예상 밖이었다. 노라가 해성과 연락을 중단한 후 “그녀의 성장이 기뻤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는 정서경 작가의 말에는 “노라가 둘 사이의 인연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문제도 있다”며 다양한 생각의 가능성을 관객에게 던져주었다. “나도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나면 여전히 그 시절에 머무는 것만 같다. 해성과 대화하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정서경 작가만이 포착할 수 있는 해성에 대한 기능적 분석도 인상적이었다. “작가의 입장에서 새로운 인물의 등장은 주인공에게 삶의 의미를 묻기 위한 장치일 수 있다. 해성이 노라에게 찾아오며 그녀가 한국에 있었다면 가능했을 삶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상상력을 함께 제공하는 것 같았다.” <헤어질 결심>에서 이 주임 역으로 분했던 유태오 배우와의 작업 경험도 두 크리에이터의 공통점이다. 정서경 작가는 “유태오 배우의 얼굴에 정말 소년이 들어 있는 것 같다”, “뉴욕에 도착한 후 외롭게 밥 먹는 표정, 노라를 만날 때 조심스러워하는 표정 속 모든 떨림이 정말 좋았다”며 해성을 완벽하게 체화한 그의 연기력을 조명했다. 셀린 송 감독 역시 “나는 타임스스퀘어 전광판 같다고 표현한다. 정말 작은 감정도 그의 얼굴에서는 아주 크게 보인다”고 동의했다. “공원에서 노라와 재회하는 장면에는 해성에게 일부러 큰 윗옷과 꽉 끼는 바지를 입혔다. 24년 만에 만나는 만큼 멋있고 어른스럽게 보이고 싶겠지만, 실제로는 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어린아이같이 보이게 만들었다.” 시간의 과감한 생략과 비약에 관해 시작한 이야기는 어느덧 영속할 듯 확장되는 찰나의 감각에 대한 논의에 도달했다. 정서경 작가가 사랑해 마지않은 영화 종반의 정적인 롱테이크 연출은 “기다림의 초조함과 10초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공존하는 모순된 마음”을 그리려는 셀린 송 감독의 의지에서 비롯되었다. 정서경 작가는 “나는 여기서 관객이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이 없어 뭐라도 더 넣고 싶었을 것 같다”며 감탄했다. 섬세한 감정선 위 탐미적 완벽성을 더한 것은 셀린 송 감독이 “영화의 기적”이라 표현한 촬영 현장의 우연이었다. “이 장면에서 노라가 걸어가는 방향이 곧 시간의 축과 호응한다. 이때 노라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즉 과거에서 현재로 걸어가는데, 때마침 바람이 왼쪽으로 불어 노라의 치마를 과거로 흩날리게 한다. 노라는 그 바람을 거슬러 현재와 미래로 걸어간다. 정말 감동적이었다.” 사랑과 기억에 관한 따뜻한 대화의 시간은 셀린 송 감독이 관객들의 질문에 답하며 마무리되었다. <패스트 라이브즈>를 포함한 한국적인 콘텐츠들이 전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이유에 대해 셀린 송 감독은 CJ ENM이 지원한 또 다른 성공 신화인 <기생충>이 열어젖힌 길을 강조했다. “<기생충>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며 한국어와 영어를 오가는 시나리오를 대하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전에는 ‘자막이 있어서 걱정이다’라는 반응이었다면, <기생충> 후에는 ‘자막이 있어서 신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한국영화 위기론이 여전히 논의되는 지금, 역사적인 성공이 다진 비옥한 토양 위로 새로운 재능이 마음껏 발휘되는 창작 생태계의 선순환이 그 어느 때보다 반갑다. CJ ENM의 한 관계자는 “지속 가능한 K콘텐츠를 위한 근본적 원동력은 크리에이터다. 역량 있는 K크리에이터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신인 창작자들을 발굴해 양성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는 소감을 전하며, “앞으로도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우리 영화계의 뉴 챕터를 계속해 써내려갈 것”이라 밝혔다.

[인터뷰] ‘닭강정’ 안재홍, 전성기의 기세!

“이병헌 감독이 자꾸만 내게서 음악적 재능을 찾으려 하는 것 같다….” 수줍게 말끝을 흐리는 안재홍은 <닭강정>을 위해 댄서 아이키에게 몸 쓰는 법을 배우고 <멜로가 체질>에서도 호흡 맞췄던 박상우 음악감독을 찾아가 기타 레슨을 재개했다. 그가 연기한 고백중은 기계 회사 출근길에 악상을 흥얼거리는 아마추어 작곡가이자 사시사철 핑크 셔츠와 노란 바지를 벗지 않는 남자로, 명실상부 <닭강정>의 아이콘이다. 3월15일 작품 공개를 앞두고 “요새 주 3회 닭강정을 사먹는다”는 안재홍 역시 요즘 변신의 아이콘으로 추앙받는다. <마스크걸>의 주오남과 의 사무엘로 잇따라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전작의 잔상에 머물러있지 않는 이 배우는 닭강정으로 변해버린 썸녀 민아(김유정)를 위해 순정을 바치는 고백중에게 조금 특별한 애정도 느끼고 있다. “문득 나오는 표정, 작은 행동들이 지금껏 연기한 인물들 중 나와 가장 닮은 것 같다.” 닮음을 재료삼아 종종 우주 밖까지 나가버리는 코미디를 소화하기. 이 어려운 미션 앞에서 안재홍은 전보다 더 단단해지기를, 엄격해지기를 택했다. - 얼마 전 제22회 디렉터스컷 어워즈에서 <마스크 걸>로 시리즈 부문 올해의 남자배우상을 받았다. 감독들이 지지를 표명하는 상인만큼 뜻깊었겠다. = 아주 기뻤다, 솔직히. 이런 상이 내게 필요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스스로를 다잡는 계기로 삼았다. - <마스크걸>은 농담 삼아 은퇴설까지 나올 정도로 파격적인 오타쿠 연기를 선보인 작품이었는데, <닭강정>의 인턴 사원 고백중도 일단 외적으로 만만찮다. = 놀랍게도 넷플릭스 시리즈 <닭강정>에는 원작 웹툰에는 나오지 않는 고백중의 샛노란 바지에 관한 비밀이 나온다. 그가 어떻게 자신만의 코스튬을 완성시켰는지, 그리고 늘 회사 로고송을 흥얼거리는 작곡가로서의 정체성에는 어떤 의미와 의지가 있는지 공개된다. 고백중 캐릭터는 물론이고 변신 기계의 작동 방식에 얽힌 역사와 논리까지 각색 과정에서 깨알같은 디테일들로 꽉 채운 작품이다. 한동안은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노트에 마인드맵 형식으로 내용을 촘촘히 정리해볼 정도였다. 웃긴 작품이지만 내적 논리는 치밀하다. - 고백중은 약간의 슬랩스틱도 구사하는 캐릭터인데 어떻게 준비했나. = 원작을 볼 때 네이버 웹툰 쿠키(유료 결제 코인)를 계속 조금씩 새로 구워가면서 무척 재밌게 봤다. 평소에 작품의 원작을 살필 일이 있으면 그것을 반드시 그대로 구현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운 편인데 이번엔 느낌이 달랐다. 이토록 작지만 단단한 세계를, 마성의 새로움을 어느 정도는 정확히 구현해야겠더라. 의도적으로 백중의 몇몇 포즈는 웹툰에 그려진 모습을 오마주하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저혈당으로 쓰러져 있을 때의 모습 같은 건 만화의 컷을 그대로 가져오는 식으로 해봤다. 그래서 안무까진 아니어도 캐릭터를 좀더 잘 표현해줄 재밌는 동작을 안무가 아이키에게 요청한 것이다. - 안재홍이 아이키와의 수업에서 배운 것은. = 자신감? (웃음) 간단한 동작부터 재미있는 동작까지 디테일하게 봐가면서 계속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곤 했다. 처음 백중의 등장 장면을 찍을 때도 현장에 아이키 선생님이 와서 카메라 뒤편에서 계속 잘한다, 잘한다 격려해줬다. - <멜로가 체질>에 이어 이번에도 기타를 든다. = <멜로가 체질> 이후에 기타 학원을 다니다가 스케줄이 바빠지면서 조금 손을 놓고 있었는데 <닭강정> 작업을 통해서 이병헌 감독님이 다시 기타를 손에 쥐어주셨으니 이제 또 꾸준히 해보고 싶다. 공개일인 3월15일에는 음원도 나온다. - 만화보다 더 만화적인 콩트 구간, 연기 스타일이 눈에 띈다. 비교하자면 의 사무엘도 일면 웃긴 캐릭터지만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 이게 참 상대적인데, <닭강정>을 할 땐 ‘자연스럽다’는 가치를 내려놓는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흔히 자연스러운 연기가 좋은 연기라고 말하고, 나 역시 대체로 동의하지만, <닭강정>은 일상의 레벨보다 몇 단계는 더 위로 띄운 톤이 이 세계의 실제였다. 기술적으로는 이른바 ‘쪼’가 요구된다. 역시 보통은 쪼를 빼야 한다고 하고 시나리오에 쓰인 문장을 배우의 입에 맞게 바꾸는 과정이 중요한데, 이번엔 모두 반대였다. 우리만의 쪼가 곧 시청자들을 이 세계로 유인하는 손짓이었다. - 중요한 지적이다. 주춤거리지 않는 기세가 필요한 작업이었을 듯싶다. = 만약에 배우 자신이 조금이라도 혼란을 느껴버리면 목표한 효과를 낼 수 없게 된다. 모호함 자체가 중요한 작품이 있다면, <닭강정>은 아주 분명하고 선명한 세계인 거다. B급도 아니고 D급을 위한 시도를 중간에 힘 빠지지 않고 끝까지, 단단하게 밀어붙이는 게 목표였다. 제작 초기에 영화사 사무실에 모여서 간단히 리딩을 한 적 있었는데 (류)승룡 선배와 아직 어떤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는데도 서로가 연구해서 마음에 품고 온 것들이 그 자리에서 착 맞아떨어졌다. 그래서 신이 술술 넘어갔고 그런 경우는 드물어서 짜릿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그 경험 덕분에 이후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 그래서일까, 제작보고회에서 류승룡과의 연기를 탁구에 비유했다. = 가장 빠르게 오고 가는 구기 종목이 탁구가 아닌가 싶어서. <닭강정>은 서로가 모은 에너지를 치고받는 아주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꾸려졌다. 약속된 동작을 하다가도 그 안에서 약간 새로운 액팅을 했을 때 선배님이 그걸 알아차리고 받아서 또 다른 액팅을 보여준다. 장면의 큰 그림은 여전히 같지만 그 안에 싹튼 생동감은 매번 달라진다. - 배우가 느끼는 그런 차이가 화면의 결과물로도 연결된다고 보나. = 그러길 바란다. 그런데 그 차이가 항상 배우의 의도대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왜 일상에서 친한 친구들이나 가까운 사람들끼리 대화할 때 어떤 순간에 아주 별것 아닌 것으로 유쾌함이 피어오르지 않나. 무언가 스멀스멀 올라와서 못 참겠는 그런 기류는 자연발생하는 것에 가깝다. 다만 배우는 그것을 어떻게든 자아내보려고 하는 사람들, 자연발생의 순간에 다가가려는 사람들 같다. - 건국대 영화과 출신으로 단편영화, 독립영화를 작업하면서 앞서 말한 자연스러운 연기, 땅에 붙은 일상적 연기 스타일을 보여준 적이 많았다. 어쩌면 <닭강정>처럼 양식화된 연기를 할 시도가 희소했으니 더 신나게 놀 수 있는 기회이지 않았을까. = 그래서 즐겁기도 했지만 더 엄격해지고 싶기도 했다. 내가 조금만 우와! 하고 들떠버리는 순간 작품이 저기 우주까지 날아갈 것 같아서. 첫 촬영날에 약간 위협을 느꼈다. (웃음) 닭강정 탈을 쓴 민아 옆에 앉아서 내가 정성스럽게 물엿을 발라주는 장면이었다. 인간 닭강정을 향해 “벌레 꼬이는 거 계속 신경 쓰였어요. 받기만 해 줘요. 나한테 정말 기쁜 일이니까” 뭐 이런 식의 대사를 치는 신이었는데 아무래도 첫 촬영이어서 그랬는지 ‘내가 지금 뭘 찍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피할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대본을 붙들었던 감독님조차 막상 눈앞에 구현된 풍경을 보면서 약간 혼란스러운 눈치였다. 마음을 아주 굳건히 먹어야 했다. (웃음) - 안재홍에게 <닭강정>은 <응답하라 1988> 시리즈부터 이어지는 순정남 계보의 일환이기도 하다. <마스크걸>의 주오남을 연기할 때도 그의 감정을 아주 진지하게 대하려 노력했다는 말을 했었고, 에서 부부가 서로 바람을 피울 때도 이솜 배우가 연기한 그것이 잠깐의 육욕처럼 비친다면, 안재홍의 감정은 순정처럼 묘사된다. = 이 엉뚱하고 황당한 시간 속에서도 이 사람의 뜨거움만큼은 가져가자는 것이 <닭강정> 작업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우선은 감독님들이 나를 그렇게 해석해주시는 게 고맙고, 나 또한 인물이 무언가 뜨거운 감정을 동력으로 삼고 있어야 힘이 생긴다고 믿는 편이다. - 요즘 한마디로 전성기다. 짐작건대 지금의 젊은 남자배우 지망생들에겐 배우 안재홍이 중요한 레퍼런스가 아닐까. 주연급 남성배우의 미덕이 반드시 누아르나 스릴러에서 말초적인 남성성을 보여주는 데만 있지 않다는 사실, 혹은 꼭 로맨스의 왕자가 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니까. 달리 말하면 안재홍이 막 배우가 되려할 땐 더 막막함을 느꼈으리란 생각도 든다. = <족구왕> VIP 시사회가 끝나고 윤성호 감독님이 추천 멘트를 남겨주셨는데 그때 그가 했던 말을 정확히 기억한다. 안재홍이란 배우가 앞으로 잘돼 한국영화의 새로운 캐릭터 폭을 넓혀주었으면 좋겠다는 한마디였다. <족구왕> 시절의 내게는 그 코멘트가 엄청난 격려이고 위로였다. 배우 혼자 마음먹는다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배우와 캐릭터를 바라보는 감독님들의 관점이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럴 때일수록 내게 들어온 요구들을 정말로 잘해내고 싶다. 요즘의 마음은 명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