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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여전히 유효한 비평적 모험’, 김보년, 김병규, 김예솔비 평론가의 하스미 시게히코 대담

왜 지금 하스미 시게히코를 말해야 하나. <존 포드론>을 둘러싸고 나타난 젊은 한국 평자들의 의견을 조금이나마 그러모으기 위해 김보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와 김병규, 김예솔비 평론가가 모였다. 그들은 하스미 시게히코의 비평이 주는 매혹을 세세히 인정하면서도 그에게서 종종 느껴지는 한계와 이질감을 쉬이 지나치지 않았다. 대담에 앞서 임재철 평론가는 하스미 시게히코의 이력, 한국에 하스미 시게히코가 소개된 경위 등을 상세히 설명한 뒤 젊은 평자들에게 대담을 맡겼다. 임재철 평론가는 90년대 후반부터 하스미 시게히코의 작업물을 한국에 소개했고 첫 한국어 번역본이었던 2001년 <감독 오즈 야스지로>를 기획·발간한 뒤 <영화의 맨살> <존 포드론> 등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2001년과 2003년 <씨네21>을 통해 그와 하스미 시게히코가 나눈 대화는 한국 매체에서 하스미 시게히코의 비평적 태도를 엿볼 희귀한 기회였다. 항상 영화의 ‘탈역사화’를 주장하며 영화의 표면만을 바라봐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하스미 시게히코였다. 그러나 한국에 전해진 이 1930년대생 일본 평론가의 글들은 1980~90년대 영화평론가들이 1950년대 미국영화에 대한 역사적 논의를 이어가도록 자극하고 있다. 이것마저 하스미 시게히코가 품고 있는 매력적인 모순으로 느껴질 정도다. “하스미에겐 가능했고 우리에겐 불가능한 것” (김병규 평론가)을 파악한다면 비평의 모험은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 지금 시점에 하스미 시게히코에 대한 대담을 진행한다고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김병규 한국에서 하스미 시게히코는 숭배의 대상이거나 부정의 대상이지 논의 대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존 포드론>과 다른 저작을 통해 영화 화면에서 무엇이 보고 들리는지 다시 봐야 한다고 요구한다. 마찬가지로 하스미 시게히코가 내놓은 작업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일이 선제적으로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뒤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하겠지만, 흔히 이야기하는 ‘표층비평’에 대해서 제대로 된 이야기가 필요해 보인다. 누구나 쉽게 감탄하고 누구나 쉽게 기각하는 표층비평이 정말 하려는 것들이 무엇인지 논의해봐야 하지 않을까. 김보년 2000년대 초반부터 영화에 관한 글을 읽기 시작했다. 그 당시만 해도 한국어로 나온 하스미 시게히코의 글은 <감독 오즈 야스지로>뿐이었다. 모든 평론가가 오즈 야스지로를 이해하려면 이 책을 꼭 읽으라고 하는 느낌이었고, 실제로 읽었을 때도 무척 강한 인상을 받았다. 다만 다른 책이 없었기에 ‘하스미 시게히코의 스타일이 이런 이상한 느낌이구나’라는 정도에서 그쳤다. 이후 <영화의 맨살>이나 <존 포드론> 등이 번역됐지만 여전히 그가 쓴 책이 한 트럭은 남아 있는 것으로 안다. 우리는 아직도 하스미 시게히코의 일부만 보고 있는 거다. 막막하다는 느낌이 든다. 여하튼 그 일부라도 뒤늦게 찾다 보니 한 가지 든 생각이 있다. 조심스러운 발언일 순 있는데… 2000년대 초반에 내가 읽었던 소위 선생님급 평론가들의 비평이나 글, 혹은 어떤 비평적 태도에서 하스미 시게히코의 방법론과 영향이 느껴졌다. - 어떤 부분에서 겹쳐 보였나. 김보년 높게 평가하는 감독들과 영화의 리스트를 만든다든지, 서로 다른 감독과 영화들을 비교하며 무엇이 더 뛰어난지 질문하는 방식 등이 특히 눈에 들어왔다. 좋은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를 단호하게 구분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선배 평론가들이 일어, 영어, 불어 등 어느 방식으로든 하스미 시게히코의 글을 읽으며 공부했고, 그러면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겠단 짐작이 들었다. - 흥미롭고 공감이 가는 의견이다. 어느 영화를 봤는지 안 봤는지 혹은 영화를 얼마나 봤는지를 시네필의 조건으로 결정하는, 이른바 ‘영화력 시험’이란 풍습도 하스미 시게히코의 여러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김보년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90년대 전후로 하스미 시게히코의 이름이 일반 관객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 이미 그때부터 한국의 비평 담론과 시네필 문화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아닌지 싶다. 그리고 그 영향력이 시차를 두고 지금 <영화의 맨살> <존 포드론> 등을 통해 더 분명한 형태로 드러난 게 아닐까. 그래서 나를 포함해 2000년대 후반부터 비평을 공부하기 시작한 나이대의 평론가들이 오늘 무슨 얘기를 나눌지 궁금하다. 선배 세대들은 이 기사를 읽고 무슨 생각을 할지도. 그래서 이 대담 기획이 굉장히 짓궂다고도 여겼다. (웃음) 김예솔비 하스미 시게히코를 숭배하든 하지 않든 간에 그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단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한국 평단에 유령적으로 떠도는 하스미식 비평의 유효성을 따지는 일을 내가 할 수 있나 싶으면서도… 어쨌든 이에 대해 생각해보는 일은 필요하다고 본다. 그의 비평이 자극하는 여러 영화적 충동은 아직 유효하다는 인상이 있다. 이것을 동시대적인 영화적 실천으로 읽어내면서 우리가 그의 파문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얘기해볼 법도 하다. ‘숏의 성립’을 판단하던 비평가의 특권 - 하스미 시게히코의 비평이 여전히 어떤 충동을 일으킨다면, 근래 자신의 활동에 영향을 준 측면이 있을까. 김보년 요즘 관객과의 대화 같은 자리에서 관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왜?”다. “감독님, 그 장면은 왜 그렇게 찍은 거예요?”라는 질문이 많다. 그런데 하스미 시게히코는 ‘왜’라는 질문을 의식적으로 지양한다는 인상이 있다. 어떤 장면이 어떤 상징이라거나 하는 도식적인 해석을 싫어하고 다 쳐내는 것 같다. 대신 “이 장면에서 누가 무엇을 하고 있다”라는 동사로 시작해서 “그래서 이 장면은 관능적이고, 고독하고, 무섭다”라는 형용사로 단언하듯 결론을 내린다. 장면의 의미를 영화 바깥에서 억지로 찾으려 하다 보면 결국 작품과 점차 멀어지기 마련인데 하스미 시게히코의 방법론에 그런 위험은 없겠다는 것을 느꼈다. - 맞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왜?”라는 질문으로 영화를 유추하는 대신 우선 판단한 후에 설명한다. 그리고 그 판단의 기준 중 하나는 ‘이 감독이 숏을 찍을 줄 아는가’라는 모호한 명제다. 김보년 오늘 그걸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말했듯이 하스미 시게히코는 결국 숏이 성립하는지 안 하는지로 좋은 감독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데, 이 판단의 근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서 나는 막힌 상태다. - 사실 숏의 기준에 대해선 하스미 시게히코 본인 역시 저작마다 다른 논거를 펼치는 감이 있기에 쉽게 규정지을 순 없겠다. 김병규 하스미는 ‘숏의 성립’이라는 자기만의 기준으로 어떤 감독을 발견하거나 재정의한다. 그런데 이런 권리가 한 사람의 평자에게 특권적으로 주어지긴 어려운 상태가 된 것 같다. 최근엔 한 영화가 개봉하거나 영화제에 공개되자마자 여론이 생기고 작품에 대한 평가가 순식간에 결정돼버린다. 비평가의 역할이 영화제나 산업적 마케팅의 한 기능으로 흡수된 것 같다. - 그런 임무를 실행해야 하는 게 영화잡지나 영화 저널리즘의 역할이기도 하다. 어떤 감독을 확고하게 지지하고 소위 ‘베팅을 거는’ 일이 필요하지만, 잘 이뤄지지 않는 게 사실이다. 김예솔비 개인적인 문제이지만 그러한 저널리즘 비평에 대해서든 영화산업과 영화제의 난점 같은 것들이 잘 체감되지 않는다. 한명의 평론가로서 굉장히 멀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래서 이러한 느낌 자체가 동시대 저널리즘 비평의 부재를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김병규 달리 말하면 존 포드처럼 ‘숏의 규범’을 논할 수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비평을 개진할 수 있는 영화감독이 이제는 없어 보인다. 개별 감독들의 능력 문제라기보단 영화 문화에 차이가 있다. 50년대까지 미국 감독들은 철저한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영화를 찍었다. 촬영 단계의 ‘부자유’를 내재했던 사람들이고 그 속에서 역설적으로 놀라운 장악력과 인장을 구축할 수 있었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이 긴장감을 포착했고 자신의 글에도 ‘숏의 규범’이라는 부자유를 하나의 규범으로 삼는다. 김보년 20세기 중반 미국 감독들은 계약 감독이니까 어쨌든 다음 작품을 찍을 수 있단 확신이 있었다고도 생각한다. 당장 이번 작품에 자신의 자유로움을 발휘해서 흥행에 실패하더라도 ‘잘리진 않을 것’이란 마음이 있었을 텐데, 현대 감독들은 현실적으로 그러기 어렵다. 이런 문제에서 오는 차이도 있는 것 같다. 김병규 그러니 <존 포드론>은 역사적으로 특정한 시점에 딱 맞물린 사건이라고 여겨진다. 특정 조건을 벗어나 범용하게 적용할 순 없다. 존 포드나 오즈 야스지로에 대한 하스미 시게히코의 접근을 보고 ‘나도 같은 방식으로 홍상수에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건 섣부른 판단이다. 표층비평의 매혹과 한계 - 그럼에도 <존 포드론>을 포함한 하스미 시게히코의 비평 방식이 여전히 매력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김병규 전혀 의미 없어 보이는 장면의 세부들로 하나의 비평적 체계를 만드는 과정을 보면 매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는 숏의 표면을 탈역사화된 장소, 그러니까 역사라는 영화 바깥의 개입이 없는 진공상태로 보는 태도로 읽히기도 한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오즈 야스지로의 <바람 속의 암탉>(1948)과 <만춘>(1949)을 두고 제작연도가 1년밖에 차이가 안 나는 두 영화에서 도쿄가 그려지는 방식의 차이를 본다. 전자에선 더럽고 지저분한 패전 직후의 도쿄가 있는데 <만춘>에선 굉장히 청결해졌다는 것이다. 전쟁과 오즈의 관계를 묻는다. 반면에 하스미 시게히코에게 <바람 속의 암탉>은 오즈의 다른 영화에서 볼 수 없던 계단이 나오는 영화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역사성이 개입된 무대가 아니라 몸짓과 사물과 기후가 교차하는 네트워크로 바라본다. <존 포드론> 제1장에서도 존 포드 영화 속의 아프리카 코끼리를 ‘존재의 기척’으로 옹호하지만, 미국영화가 어떻게 아프리카의 동물들을 담아내게 됐는지는 묻지 않는다. 그건 제국주의를 경험했고 미국영화의 제국주의적인 맥락을 외면할 수 있는 사람에게 가능한 일이 아닐까. - 하스미 시게히코의 작업이 완전히 탈역사적이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특히 최근 50년대 미국 작가를 말하면서는 당대 할리우드의 제작 시스템이나 감독, 배우들의 실제 삶을 자주 언급하기도 한다. 김병규 하스미 시게히코의 비평은 대상에 따라 매번 맥락을 달리한다. 특히 미국영화에 대해선 다른 국가의 영화를 건드릴 때와 사뭇 느낌이 다르다. 표층비평은 숏 바깥의 맥락을 모두 걷어내겠단 고집일 수도 있다. 다만 제아무리 고집한다고 한들 영화를 순전히 미적 형식으로만 볼 순 없다. 숏이라는 표층은 어떤 식으로든 바깥의 맥락을 끌고 들어온다. 즉 그는 표층비평이라는 틀을 사용하되 표층만으로는 절대 성립되지 않는 영화를 다룬다. 이 점이 하스미 시게히코식의 비평이 끌어안고 있는 긴장인 것 같다. 김예솔비 일부러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표층비평의 태도를 정언적으로 고수하는 게 아니라 그걸 무너뜨리려는 충동을 얘기하면서 긴장감을 생성한다. 굉장히 미묘하다. 말로는 숏의 표층적인 현실만을 파악할 것이라고 말해놓고 본인이 그것을 무시하고야 만다. 자신의 말장난이나 거짓말이 통하는 지대를 의도적으로 만들어놓는다. 탈역사적이라고 말하지만 동시에 굉장히 역사 유물론적인 태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숏의 성립’이란 개념을 계속 고전영화로 사유하고, 그것을 현재의 문제로까지 끌고 오면서 스스로 비평의 게임 같은 과정을 마련한다. 이게 하스미 시게히코 비평의 힘이고 그래서 쉽사리 그를 모작한다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김보년 <존 포드론> 233페이지에 보면 미국 사람들이 존 포드와 존 웨인을 보수적인 영웅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전면으로 반박하는 대목이 있다. 실제 존 웨인이란 배우가 지닌 역사와 극우적인 면모를 부정하진 않지만 영화 속 존 웨인이 얼마나 많이 상처받고 다쳤는지를 보라고 말하면서 변호한다. 사실 비판적으로 보면 존 포드의 서부극은 미국이 지닌 폭력의 역사를 낭만화하는 영화일 수 있는데, 적어도 하스미 시게히코의 변호를 읽고 있으면 존 웨인이 연약한 형상이라는 그의 말에 설득당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 역사의 맥락을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그가 말하는 ‘필름적 현실’을 통해 영화와 인간을 방어할 수 있단 사실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김예솔비 모험담과 활극으로 알려진 포드적인 서부극을 어머니와 아내와 연인의 존재감을 수렴하는 가정극으로 재구성하는 시도도 재밌었다. 전통적인 성역할이나 성의 경계선을 붕괴한다는 시선이 흥미로웠고, 그 대표적인 사례로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에서 제임스 스튜어트가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장면을 언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경계 흐리기가 전통적인 성역할을 재생산 중인 영화의 구조 속에서는 성립되지 않는다고도 느꼈다. 성별 분업의 붕괴는 결국 드라마적인 활력을 위한 화면의 자극에 불과하다는 의구심도 들었다. 대신 하스미 시게히코는 이런 주제를 또 다른 주제들과 서로 겹치고 충돌시키면서 새로운 주제의식으로 나아가고, 일부러 포드 영화의 존재감을 더 키우는 데 집중한다고 느껴졌다. 김병규 그렇다. ‘필름적 현실’에 노출된 단서를 통해서 한 영화와 장면을 두고도 다른 평가를 하고, 다른 맥락으로 쓰기도 한다. 그렇게 존 포드를 서부극, 전쟁영화, 감상적인 멜로드라마의 연출자로 다르게 관측한다. 기억의 오류가 주는 비평적 긴장 - <존 포드론>엔 탈역사화의 한계와 더불어 여러 가지 비평적 한계가 등장한다. <역마차>의 특정 장면을 잘못 기억하고 썼다는 저자의 고백이 특히 흥미로운 대목이다. 김병규 영화의 어떤 장면을 자의적으로 날조하는 나쁜 습관이 있단 것을 인정하는데, 이런 부분이 자신의 비평이 지닌 깊은 불안을 환기한다는 느낌도 들었다. 하스미는 자연스러운 것과 부자연스러운 것, 표층에 있는 것과 표층 바깥에 잠재하는 것들 사이의 협상과 조정을 통해서 픽션과 ‘필름적 현실’이란 양자의 모순을 통과한다. 이런 긴장감이 비평적 태도의 관점에서 큰 자극이 된다. 김예솔비 하스미 시게히코가 기억의 오류를 비평적 모험으로 삼는 방식은 나 역시 무척 흥미로웠다. 저자는 영화의 세부를 어떻게든 기억하려는 자신의 기억 노동을 ‘아마추어적인 행위’라고도 표현한다. 그렇게 잘못 보는 활동을 통해서 어떤 우연한 비평적 지대로 나아갈 수 있단 뜻이다. 이 비평적 실천이 마음에 무척 와닿았다. - 다만 그렇게 기억의 오류에 기인하는 비평 방식이 현재의 영화 감상 환경에선 불가능해 보인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정말 극장에서 단 한번 영화를 보고 비평을 써야 하는 시대의 사람이다. 더욱더 집중하여 영화를 직시해야만 했을 것이다. 반면에 지금 우리는 몇번이나 영화를 돌려볼 수 있다. 이런 감상의 정확함이 <존 포드론>을 보고 나니 덜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김병규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한계가 있다. 비평을 쓰는 사람에게 장면을 돌려보는 모니터가 있는 것처럼 촬영 현장엔 늘 현장 편집이 가능한 모니터가 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시각적 오류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버리고, 그만큼 영화 문화도 강박적으로 변한다. <존 포드론>은 이러한 현상에 탄력적으로 항의할 수 있는 글이기도 한 것 같다. 김보년 하지만 그렇게 불가능하다고 단정해버리면 우리 세대가 영화 문화의 커다란 무언가를 상실했단 사실만 남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80년대생 이후가 그 전의 영화 문화에 접속하는 게 어렵기는 하지만 이렇게 말하기 시작하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비평적 태도가 무척 제한적으로 변할 것 같다. 김병규 불가능이 상실만은 아닌 것 같다. 불가능이란 맥락에서 가능한 저항을 찾을 수도 있다. 앞서 50년대 미국 작가들의 제작 환경에 부자유가 있던 것처럼 영화 역사에 불가능이란 언제나 주어진 조건이었다. 그 불가능이 영화를 더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게 만든 동인이었다고 본다. 그러니 하스미 시게히코에겐 가능했고 우리에겐 불가능한 것을 더 선명하게 파악하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송경원 편집장] ‘영화 같은’ 현실을 만드는 가장 쉽고 빠른 길(feat. 투표하고 영화 봅시다.)

영화보다 영화 같다. 낭만적으로 들릴 법한 이 말이 요즘은 피로로 다가온다. 요즘 장르가 대체로 디스토피아였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멀리 떨어진 두 대상을 이어 붙이고 싶을 때 비유법으로 다리를 놓는다. 다리를 잇는 요령은 대상에서 유사한 속성 한 가지를 추출하는 데 있다. 예컨대 ‘눈은 마음의 창’이란 표현엔 ‘본다’는 속성을 매개로 눈동자와 창문, 물리적으로 동떨어진 두 세계를 잇는다. ‘영화 같다’는 표현의 다리로 잇고자 하는 건 결국 현실이다.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일이 벌어질 때 우리는 흔히 ‘영화 같다’고 경탄한다. 여기서 현실과 영화를 잇는 매개는 대중의 욕망이다. 집단의식, 시대정신, 뭐라 불러도 상관없다. 때로 사람들은 영화를 경유하여 각자의 현실을 마주한다. 재밌는 건 이 반응이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두 갈래로 갈라진다는 거다. 하나는 소망을 담은 길. 실현되기 힘들지만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이상적인 상황을 꿈꾼다. 다른 하나는 두려움의 길. 일어나선 안될 일이 일어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빚어낸 악몽이다. 현실과 영화를 잇는 다리는 재료의 총량이 정해져 있는 것 같다. 너무 멀어지면 허무맹랑함에 실감하기 힘들고, 반대로 가까우면 관찰 카메라 같은 무미건조함에 흥미가 떨어질 수 있다. 있을 법한데 신기한, 혹은 희한한데 말은 될 때 비로소 ‘영화 같은’ 쾌감이 발생하는 법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부쩍 ‘영화가 현실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상상으로 만들어진 영화보다 더 황당하고 말이 안되는 뉴스를 매일 접하다 보니 ‘이러니 <개그콘서트>가 망하지’라는 푸념도 이해가 된다. 2024년 대한민국의 스크린 밖에서는 상상된 이야기보다 과장되고, 터무니없고, 상식 밖의 일들이 태연하게 자행 중이다. 화면 너머 뉴스로 보면 흥미진진할 지경이지만 남의 일이 아니라 웃을 수가 없다. 불났다고 해서 구경하러 갔더니 그게 우리 집인 상황. 달리 생각해보면 이거야말로 진짜 현실의 민낯 같다. 현실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는 건 학습된 환상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현실이란 애초에 통제 불가능하고 한치 앞을 예측하기 힘든 혼돈의 연속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영화(로 대표되는 상상력)가 중요하다. 어쩌면 영화야말로 실타래처럼 엉킨 현실을 ‘말이 되게’, 최소한의 개연성을 확보하여 설명하는 방식 중 하나일 것이다. 때론 영화라는 창을 통해 현실을 바라볼 때 더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모두 같은 현실을 살면서 각기 다른 영화를 관람 중이다. 2024년 대한민국은 디스토피아에서 호러, 재난물, 코미디까지 다양한 장르의 영화로 기억될 법하다. 4년에 한번, 새로운 영화표를 끊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권자가 ‘영화 같은’ 현실을 만드는 가장 쉽고 빠른 길은 다름 아닌 투표다. 영화와 현실을 잇는 매개가 ‘본다’가 아니라 ‘한다’가 될 때 막막한 현실이 영화처럼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이번 영화가 사이다 같은 히어로물이 될지, 또다시 디스토피아 속편이 될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기획] ‘돛대를 꺾어버릴, 거센 바람이 인다,’ 영화를 경유해 살펴보는 4·10 국회의원 총선거

<킹메이커>란 제목으로 개봉됐던 영화 두편이 있다. 하나는 조지 클루니 감독, 주연의 2011년 미국영화이고 다른 하나는 변성현 감독, 고 이선균 주연의 2021년 한국영화다. 이들 모두,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자와 그 뒤에서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려 하는 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정치의 흑막이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같지만, 한 <킹메이커>(2011)는 현실 정치의 승리를 위해선 이상적 정치의 패배가 필요하다는 점에 주목하는 반면, 다른 <킹메이커>(2021)는 현실 정치의 패배를 통해 이상적 정치의 가능성과 여운을 남긴다. 나는 인구에 회자되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명언,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만큼 현대 한국 정치, 아니 시대와 국가를 넘은 모든 정치의 본질을 꿰뚫는 말도 없다고 생각한다. 굳이 이 말에 빠진 것을 더하자면 ‘민중의 바람’이다. 이 바람은 흔히 ‘바램’으로 적히는 소망을 의미하기도 하고, 그런 소망이 뭉쳐 움직이는 강력한 역사적 흐름을 뜻하기도 한다.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 사이를 도도히 흐르는 강물 같은 이 바람. 좋은 정치는 의식과 감각이라는 양안 사이에 돛단배를 띄워, 바람의 힘으로 강물과 함께 흐르는 정치라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조지 클루니의 <킹메이커>는 서생의 문제의식에서 시작해서 ‘상인’도 아닌 장돌뱅이의 감각으로 끝났지만, 변성현의 <킹메이커는> 바람 앞에 멈춰 선 서생과 상인을 바라본다. 그 눈길의 끝에는 한국 현대 정치의 역사가 있다. 변성현 감독은 영화의 결말을 영화 안에서 맺지 않고 실제 발생한 한국 정치사로 하여금 발언하게 한다. 예측 불가한 방향으로 김대중 이후의 한국 정치는 과연 얼마나 서생의 문제의식을 발전시키며 상인의 현실감각을 접목시켰을까? 철마다 불어왔던 민중의 바람 앞에서 어떤 돛단배를 띄워 어떤 방향으로 흘러왔을까?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그리고 윤석열을 ‘킹’으로 만든 상인들은 넘쳐났고 정치공학적으로만 보자면 그 상인들의 현실감각은 때로 무서울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어떤 상인은 민중의 바람을 정면으로 받아내는 돛을 올리기도 했지만 대개는 그 강한 힘에 돛대가 꺾였다. 어떤 상인은 기묘한 기술을 발휘하여 민중의 바람을 비껴 받는 돛대를 고안해서 강물의 흐름과는 다른 방향으로 배를 움직이다가 암초에 걸려 좌초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상인들의 현실감각은 넘쳐났지만 그에 비해 서생의 문제의식은 초라했거나 너무 큰 꿈으로 기울곤 했다. 그러다 보니 상인의 현실감각을 압도하는 민중의 바람이 점점 거세진다. 상인들이 올린 돛대가 어설픈 기술로 비껴가지 못하도록, 너나 할 것 없이 한마음으로 바람을 키우고 있어서다. 대통령직선제를 채택한 국가인 만큼 우리나라에서 부는 민중의 바람은 대개 대통령선거에 몰린다. 국회의원 총선거는 대통령선거를 통해 이미 방향이 정해진 바람이 돛단배를 조금 더 세게 밀어붙이거나 방향을 틀게 만드는 중간 국면에 가까울 뿐이다. 그런데 이번 4·10 국회의원 총선거는 조금 판이 다르다. 2년 전 대선에서 불었던 바람이 특정 방향으로 기운 것이었다기보다는, 제각각 다른 마음에서 발원한 동풍과 서풍이 서로 강하게 맞부딪쳐 난기류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조금이나마 강했던 바람의 방향으로 돛단배가 띄워졌다. 그런데 그 배가 영 시원치가 않다. 동풍이 가리켰던 방향대로 가는 것도 아니고 서풍이 견제하는 방향과 만나 진로를 조금이나마 틀어가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냥 제멋대로 간다. 동풍이든 서풍이든 어이가 없어 하는 낌새가 강하게 읽힌다. 그래서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동풍이랄 것도 없고 서풍이랄 것도 없다. 이 바람이 향하는 곳은 오직 하나다. 제 멋대로 가는 돛단배. 4월, 민중의 바람은 어디로? 조슈아 마이클 스턴 감독,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2008년 미국영화 <스윙보트>는 편서풍과 편동풍이 늘 부는 미국 정치판에서, 4년마다 혹은 8년마다 마치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듯한 ‘효과’를 만들어내는 이른바 중도층이나 무당층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비록 웃지 못할 이유로 그 단 하나의 ‘정치 무관심자’의 선택에 의해 권력의 방향이 결정되는 코미디를 그렸지만, 집토끼를 무시하고 산토끼를 잡으러 뛰어다니는 미국 정치의 역학을 잘 보여준다. 미국과는 여러모로 사정이 꽤 다른 한국 정치를 진단하고 전망할 때, 이 ‘과대평가된’ 한표의 의미에 대해 ‘과몰입’하는 비평도 종종 나온다. 편서풍과 편동풍이 팽팽하게 맞설 땐 이런 한표가 대세를 결정짓는 일이 발생하는 법이기는 하니까. 그러나 2024년 총선을 앞둔 한국 정치에서는 ‘중도파와 무당층의 환심을 사는’ 상인들의 기술이 먹히지 않는다. 마치 고결한 판관이라도 된 양 한쪽 바람의 손을 들어주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도무지 말을 들어먹지 않는 눈앞의 돛단배를 멈춰 세우거나, 적어도 압도적인 바람의 힘으로 방향을 틀게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데 동의한 마음으로 뭉쳐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걸 기존의 편서풍이나 편동풍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안된다. 그들은 어느 한쪽의 바람에 합류한 것이 아니라, 아직 구체적인 방향이 결정되지 않은 새로운, 아주 강력한 바람을 만들어내는 데 동참하고 있어서이다. 이 바람을 읽을 때에는 구체적인 방향보다는 전체적인 힘을 가늠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방향이 되었건 지금의 배가 제멋대로 움직이는 일을 묵과할 수 없으며, 다음 배가 띄워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겠다는 의지로 뭉치고 있는 바람인까닭이다. 그 기세 앞에서 상인의 현실감각은 의미를 잃어버렸고, 서생의 문제의식은 쪼그라들어 있다. 상인의 기술을 압도하겠다고 마음먹은 바람 ‘이후’를 감당하는 건 결국 서생의 문제의식일 수밖에 없기에, 2017년 그 바람이 불 때보다도 더 치밀하고 겸손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문제의식을 정련해가는 서생이 필요해질 때가 조만간 올 것이다. 2011년 영화 <킹메이커>의 원래 제목은 “3월 중순”(The Ides of March)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에서 카이사르에게 3월15일을 조심하라고 말한 대목에서 따온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4월 중순을 향한 민중의 바람이 분다. 누군가는 배반을 할 것이고, 누군가는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불길한 경고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길하고 흥할 예언일 수도 있다. 각자의 주관 속 길흉화복은 당대의 역사가 결정한다. 부디 겸허하고 슬기로울지어다.

[인터뷰] '사랑은 늘 어렵다', <정순> 배우 김금순

<정순>은 그 제목처럼 주인공 정순의 영화다. 디지털성범죄의 늪에 빠진 피해자이지만 정순을 피해자로만 보는 일차원적 시선은 온당치 않다. 영화가 그러한 시선을 조장하지도 않는다. 정순은 우리 일상 저변에 있는 중년의 블루칼라, 딸에게 지는 엄마, 타인에게 쉽사리 화내지도 못한 채 움츠러든 주변부의 인물이다. 정순을 두고 ‘복합적 캐릭터’라는 말을 꺼내기조차 망설여진다. 정순은 복합적이라거나 다면적인 가상 인물이라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한, 당장 화면 바깥으로 걸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지독한 현실의 한 조각이다. 이러한 정순을 완성한 것은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진 김금순 배우의 몫이었다. 그는 정순과 자신의 닮은 점을 호쾌하게 설명하고, 중년이 경험한 사랑의 일면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정순>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정순> 이후 사랑하는 중년의 표상이 된 것만 같은 그에게 사랑과 인생이 무엇인지 배웠다. - 2022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이후 2년 만의 개봉이다. 기분이 어떤가. = <정순> 단톡방이 있어서 늘 인사는 나누지만 다 같이 얼굴 보고 만나기가 어렵긴 하다. 개봉도 개봉인데 오랜만에 감독님이랑 배우들을 만나서 기쁘다. - 오랜만에 영화를 보니 정순이 왜 영수를 좋아하게 됐을지가 문득 궁금하더라. 영화를 보면 처음부터 묘한 시선을 주고받는 것 같기도 하다. 첫눈에 반한 건지. = 글쎄… 아무래도 첫눈에 얼굴 보고 반한 것 같진 않고. (웃음) 아마 같은 중년으로서 느끼는 연민에 가깝지 않았을까. 영수가 워낙 숫기도 없고 일도 배워야 하는 위치지 않나. 등산 갔을 때나 백숙 먹을 때 영수의 어려운 개인사를 들었고 집에 가보니 여관 달방에 혼자 사는 것도 보게 된다. 동병상련의 느낌으로 사랑을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사랑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첫눈에 반했든 연민의 사랑이든 사랑은 늘 어렵다. - 초반부의 정순이 탈의실에서 화장 중인 공장 동료에게 “누구한테 그렇게 잘 보이려고 하냐?”라며 능글맞게 놀리는 장면이 있다. 이런 걸 보면 정순은 마냥 선하거나 호감형의 인물이 아니라 주위에서 쉽게 볼 법한 자연스러운 인물이란 느낌이 든다. = 그렇다. 정말 흔하게 볼 수 있는 중년의 여인이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똑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똑같은 시간에 딸의 출퇴근을 도와주는, 가끔 등산을 가는 그런 인물이다. 실제 내 성격과 비슷한 면이 있어서 더욱더 그런 자연스러움을 잘 표현할 수 있던 것 같다. - 어떤 점이 닮아 있나. 지난 인터뷰에선 화를 내는 대신 허허실실 웃어버리는 점을 언급했다. = 맞다. 그렇게 웃으며 넘기다가 갑자기 쌓여 있던 마음속 깊이 맺힌 마음을 한번에 분출하는 유형이다. 주위 사람들은 좀 놀랄 수도 있다. 또 하나 닮은 점은 사랑에 빠지면 약해진다는 거. (웃음) - 얼마 전 개봉한 <울산의 별>에선 주인공 윤화를 연기했다. 윤화는 정순과 정반대로 한순간도 목소리를 줄이지 않고 호통만 치는 인물이라는 게 재밌었다. = 윤화 그 친구는 완전히 활화산이다. 정순이 좀더 섬세하고 여린 캐릭터라면 윤화는 완전히 다른 거지. 두 연기 중에 어느 쪽이 더 편하거나 하진 않았다. 연기야 늘 힘드니까. 에너지를 어떻게 저울질해야 하는지가 워낙 다르다 보니 양쪽의 고충이 다 있었다. - 정순은 딸에게 져주기도 하는데 윤화는 자식에게 화만 낸다. 실제론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 아들들이 <울산의 별>을 보고 진짜 엄마랑 비슷하다고 말하더라. (웃음) 조용히 하라고 했다. - 영화에선 정순이 디지털성범죄를 저지른 영수의 잘못을 다소 용서하는 태도를 보였을 때 딸 유진과 가장 크게 다툰다. 이때 정순이 가장 서럽게 울기도 하고. = 아마 영수의 현실적인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의 차이였던 것 같다. 영수가 이제 자기 빨간 줄 그어지면 일도 못하고 인생이 힘들 거라고 하니까… 중년의 연민으로 시작한 사랑이니만큼 정순도 많이 고민했겠지. 여하간 자식이 엄마 대신 일을 도맡아준다는 게 사실 창피하긴 했을 거다. 게다가 정순 마음대로 어떤 선택을 했다가 딸한테 욕까지 먹으니 얼마나 서러웠겠나. - 그럼에도 다시 조금 밝은 얘기를 하자면, 정순이 영수와 출근 전에 한 호숫가에 들러서 조용하게 아침 풍경을 만끽하는 장면이 무척 인상 깊었다. 별다른 대사가 없는데도 분명한 애정이 느껴진다. = 중년을 넘어가면 굳이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지 않아도 알게 된다. 두 사람이 뭐 며칠 계획을 잡아서 어디 여행을 떠날 정도로 풍족한 상황은 아니지 않나. 아침에 그렇게 잠깐 시간을 내서라도 알콩달콩 그냥 사랑을 했다고 생각한다. - <정순> 이후에 정순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까. = 글쎄. 다시 사랑하긴 쉽지 않겠지. 사랑보단 일에 더 집중하지 않을까. 그 동네에만 너무 오래 살았고 운전을 새로 배우기도 했으니, 바깥으로 엄청나게 돌아다니지 않을까. 좋아하는 일도 새로 찾을 것 같고. 아마 해외에 가서 일을 구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어디 외국 남자와 비극 없이 평온한 사랑에 빠질 수도 있고. (웃음) - <정순> 이후 중년의 사랑을 대표하는 배우가 된 느낌도 든다. 얼마 전 에서 젊은 유부남과 바람 피우는 은미를 연기했다. “누나는 LG랑 기아 다 좋아해”라고 불륜 상대를 혼내는 기막힌 인물이었다. = 진짜 대사하기 민망하고 미안해서 죽는 줄 알았잖아. (웃음) 하필이면 상대역인 (이)학주씨랑은 다른 작품에서 고모랑 조카 사이로 연기했던 사이여서 서로 더 웃음이 빵빵 터졌다. 언제 어디서나 중년의 사랑은 쉽지 않아. - <살인자ㅇ난감>에선 영수 역의 조현우 배우와 함께 다시 한번 사랑하는 사이로 나온다. <정순>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흠칫했을 거다. = 그때도 자꾸 <정순> 생각이 나서 작품에 몰입이 안되더라. 너무 힘들었지. (웃음) - <정순> 이후 워낙 많은 작품에 참여하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기는 것 같다. 차후 연기 계획은. = 얼마 전 촬영 현장에서 고두심 선배님에게 갱년기를 어떻게 지냈는지 여쭤본 적이 있다. 선배는 “일하기 바빴던 터라 그런 거 신경 쓸 새가 있었겠냐”라고 하시더라. 나도 아직 아들 둘 뒷바라지를 더 해야 한다. 자식들을 원망하는 건 절대 아니고. (웃음) 오히려 고맙다. 연기 활동의 가장 좋고 확실한 원동력이 돼주는 것 같다. 허리가 아파도 소처럼 일해야지.

[특집] 동경에서 사랑으로, 차우민

유도소년 차우민은 영화를 수줍게 동경해왔다. <화양연화> <와호장룡> <색, 계>를 보여주는 시네필 어머니가 있었고, “니 같은 얼굴은 그 바닥 가면 천지삐까리다. 어쭙잖은 재주 갖고 삐댈라 카지 마라”고 일침을 놓는 아버지가 있었다. 그는 매년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구경했고 장래희망란에 ‘영화 포스터 제작자’를 적어내기도 했다. 그렇게 영화 주변을 향해 “통통하고 멋없는 소년”이 품었던 막연한 동경은 차우민을 재수 끝에 서울예술대학교 연극영화과로 이끌었다. 첫 연기, 첫 상경, 첫 독립의 소용돌이 속에서 만난 첫 영화 <용감한 시민>은 진로 고민을 눈물과 함께 끝장내준 작품이다. “여유를 갖고 대사를 잘 뱉는”, 즉 해야 할 일을 잘하지 못했던 날 촬영장을 떠나는 차 안에서 전에 없을 만큼 울었다. 그렇게 알았다. “유도를 하지 않았더라면 연기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걸. 차우민은 이미 유도를 진실하게 사랑해보았고 그 마음을 인생의 다음 순서에 온 연기에 적용할 수 있었다. “언제 이런 감정 느껴본 적 있다. 나 유도할 때다. 나 지금 이거, 연기 너무 사랑하는 거야.” 다니던 도장에 늘 큼지막하게 붙어 있던 말. “유능제강 정력선용”(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강한 힘은 올바른 곳에 사용하라)의 정신은 <약한영웅 Class 1>의 강우영, <밤이 되었습니다>의 고경준 그리고 올해 <스터디그룹>의 피한울로 이어질 필모그래피에도 영향을 주었다. “지금까지 필모그래피의 95%가 액션”이라 말하는 그는 거칠고 폭력적인 교복 액션을 소화하는 중에도 고민이 많다. “앞서 비슷한 역할을 해본 친구들은 뽑지 않으려고 했다”는 <스터디그룹>의 이장훈 감독은 차우민이 보내온 오디션 영상을 보자마자 마음을 바꿨다. 웹툰 원작의 인기 캐릭터들을 연달아 따내면서도 “왜 나지?”라는 자기 의심을 품곤 하는 이 신인배우는 “아직 내가 나를 믿을 수 없다면, 나를 믿어주는 저 사람들을 믿어야 하는” 단계에 있다. 강아지 같은 성격의 두 고양이(하쿠, 센)와 살면서 빈티지 카메라, 커피, LP 등 클래식한 취향으로 가득한 차우민의 일상에서 독서는 빠질 수 없다. 그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파울로 코엘료의 <11분>의 첫 문장을 줄줄 외고 다니는 이유는 “첫 문장에 반해 빨려 들어가는” 독서를 할 때 기쁘기 때문이다. 첫 문장, 첫 대사, 첫인상으로 관객에게 가치 있는 시간을 선사하는 배우가 되기까지. 오직 유능제강 정력선용! 탐나는 캐릭터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의 패트릭 버로나(히스 레저). (핸드폰 배경 화면을 보여주며) 마초 그 자체인 것 같다가도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소심한 듯 웃어 보이는 히스 레저의 얼굴을 정말 좋아한다.” 나만의 플레이리스트 “최근 카톡 상태 메시지 노래로 바꾼 라우브의 <체인지>. 가사가 요즘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영화 2022 <용감한 시민> 드라마 2024 <스터디그룹>(예정) 2023 <밤이 되었습니다> 2022 <약한영웅 Class 1> 2021 <플로리다반점>

[인터뷰] 수비형 미드필더의 그림체, <기생수: 더 그레이> 배우 구교환

FF 버튼을 누른 줄 알았다. <기생수: 더 그레이> 속 강우(구교환)는 느릿하거나 진중한 기생생물(혹은 인간)들보다 두배는 빠르게 움직이고 거의 세배 빠르게 말한다. 시공간을 빨리 감으며 이야기의 속도를 가속하는 강우는 배우 구교환을 만나며 더욱 생동한다. 강우는 늘 도망자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속사포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기생생물 하이디에 절반이 잠식된 수인(전소니)과 엉겁결에 여정을 함께하면서 강우는 전과 다른 마음으로 내처 달리기 시작한다. 수인을 구하기 위해, 세상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어쩌면 자신을 구하기 위해. - <반도> <괴이>에 이어 연상호 감독이 쓴 작품에 합류했다. 연상호 감독의 이야기에 계속 마음이 가는 이유는. = 연상호 감독님의 작품을 하면 그저 재밌다. 친구와 농담을 나누며 공방 조형 실습을 하는 기분이다. 공방이라기엔 늘 규모가 크지만(웃음) 함께 작품을 만들어나갈 때 배우로서 경직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현장에서 함께 보낸 즐거운 시간만큼 관객이나 시청자들도 작품을 보고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든다. 알려졌다시피 감독님은 애니메이션에 창작의 기원을 두신 분이고, 나는 애니메이션 마니아다. 또 내가 최근 피규어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뉴비라 감독님과 피규어 제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밸런스가 잘 맞는다. 그러면서 감독님과 자연스럽게 작품 이야기를 하게 된다. 감독님과 이야길 나누다 이번 작품에 캐스팅된 이유를 듣게 됐다. <기생수: 더 그레이>의 그림체가 나와 맞아서이다. 감독님이 나를 총애한다기보다는 배우가 지닌 분위기에 따라 캐스팅을 진행하신다고 생각한다. - 오리지널 만화를 좋아했다고 들었다. = 내 세대 사람 중 좋아하지 않은 이가 있을까. 만화를 볼 당시 기생생물이 외치는 “우리는 하나다”라는 대사가 마음에 남았다. <기생수: 더 그레이>의 코어 또한 단결 정신이다. 우리는 서로 연결될 수밖에 없고 벗어나려 해도 다시 함께일 수밖에 없는 오리지널 만화의 정수가 이번 <기생수: 더 그레이>에도 그대로 유지돼 좋았다. - <반도> <모가디슈> <길복순> 등 근래 매 작품에서 액션 연기를 선보이는 중이다. <기생수: 더 그레이>에서도 다양한 액션 시퀀스를 소화하는데. = 액션이 끝날 때마다 강우가 보이는 마지막 터치가 있다. 강우가 자기 매력에 깊이 빠져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행동을 취향껏 가미했다. 2화 초반의 오토바이 액션 시퀀스가 특히 그렇다. 오토바이에서 내려 상대 조직원에게 강타를 날린 후 다시 오토바이에 올라타는 사이에 사소한 동작 하나를 채운다. 그냥 때리고만 가면 쑥스럽지 않나. 강우는 굳이 오토바이에서 내려 누군가를 해치웠으니 성공의 세리머니라도 한번 보여줘야 하는 성격인 거다. - 강우는 끝의 끝까지 저항하다 생각을 포기하고 수인과의 여정에 합류한다. 강우를 연기할 때 “상황이 강우를 돌파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이에 함몰되지 않도록 저항 정신을 더했다”라고 전한 바 있다. = 연상호 감독님과 류용재 작가님이 강우를 도망가지 못하게 했다. 우선 강우는 본 게 너~무 많다. 자기가 보고 들은 걸 수인에게도 이야기해주고 최준경 팀장(이정현)한테도 전해야 한다. 오죽하면 내가 “이걸 언제까지 설명해야 돼”라는 대사를 했겠나. 그런데 끝없이 대사를 해야 하는 게 도망칠 수도 없고 도망쳐도 잡히는 강우의 상황과 맞아떨어진다. 강우는 수인과 함께하기 전까진 도망치듯 인생을 살았다. 그래서 그를 더욱 도망 마니아로 만들어간 부분이 있다. 비겁함도 용감함도 중간이 없는 강우는 극이 진행되면서 덜 도망치는 법을 배워간다. 마지막 화에서 강우는 마음으로 내심 아끼던 캐릭터의 죽음을 보며 눈물 흘리다가도 슬퍼할 새 없이 다른 이를 구한다. 바쁘다 바빠! 어떻게 보면 강우는 <기생수: 더 그레이>의 수비형 미드필더다. 사실 딱딱할 수 있는 작품 속 정보를 말로 재밌게 전달하는 역할이 취향에도 맞다. 시리즈의 한호열이 대표적이다. 나 없으면 안 돌아간다. (웃음) 정보성 대사를 최대한 시청자들과 즐기며 나누길 희망한다. - 말이 많은 강우를 보다 보면 어디까지 이 캐릭터를 믿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문어체로 말하는 기생생물이나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한 준경 사이에서 내내 편하게 구어체로 말하는 강우가 점차 미덥게 느껴진다. 강우를 통한 이야기의 완급 조절을 염두에 둔 채 연기했나. = 말의 리듬을 따로 염두에 두고 대사를 뱉진 않았다. 강우는 헐렁한 남자라 발성 혹은 말의 리듬이 묵직할 것 같지 않았다. 강우에게 묵직한 것은 오직 수염뿐이다. 내가 목소리를 갈아 끼울 순 없지만 말의 리듬감은 바꿀 수 있었다. 헐렁한 놈을 만들기 위해 리듬을 만들긴 했다. - <기생수: 더 그레이>의 세계관은 모두가 서로에게 반말을 하는데 아무도 개의치 않는 세상이기도 하다. = 넷플릭스는 글로벌 OTT기 때문에 존비 문화가 없는 세계화의 물결에 우리가 동참해야 한다. (얼마간 정적) 농담… 이다. 시나리오에서부터 존댓말이 따로 없었다. <기생수: 더 그레이>의 세계관에선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 강우는 왜 끝까지 수인을 지켰다고 보나. = 수인만큼 강우도 기댈 곳이 없는 사람이다. 강우는 아마 수인에게서 자기 가족의 모습을 봤을 터다. 그래서 수인에게 아주 직접적인 대사를 날린다. “나랑 같이 도망치자!” 강우는 누구보다 애착하는 대상과 떨어지길 꺼리는 남자다. 내가 멜로를 연기할 때도 이런 대사를 해본 적 없는데! - 강우는 수인과 하이디 중 누굴 더 믿었을까. = 둘 다. 하지만 하이디의 무공을 믿고 수인의 심성을 믿는 등 분리하진 않았을 것 같다. 강우는 수인에겐 하이디의 메시지를, 하이디에겐 수인의 메시지를 전한다. 어디서 들은 이야길 누군가에게 말할 때 단순히 말을 전하려다 메시지에 영향을 받아 내가 변화를 겪을 때가 있지 않나. 강우도 여러 말을 전하다 더는 도망치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인터뷰] '돌들이 말할 때까지' 김경만 감독, 4·3에 대한 인식 변화의 가능성을 믿으며

제주 4·3 사건은 알려져 있지만 알지 못하는 역사다. 해방 직후 제주 도민들이 억울하게 학살당하는 참극이 있었다는 개괄만 알고 있을 뿐 구체적인 내막은 접하지 못한 이들이 훨씬 많다. 특히 군사재판에 회부돼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수형인들의 사연은 제주 4·3 사건이 언론이나 TV 매체를 통해 알려진 한참 뒤에나 수면 위에 올라올 수 있었다. 김경만 감독은 제주4·3도민연대에서 진행하는 수형인 구술조사 연구에 함께하면서 수형인과 이들의 유족 120여명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양농옥, 박순석, 박춘옥, 김묘생, 송순희 다섯 할머니의 목소리에 집중한 다큐멘터리다. 김경만 감독이 이전 작품에서 보여줬던 날카로운 풍자와 독창적인 유머가 의도적으로 거세되어 있다. <하지 말아야 될 것들>에서 전쟁과 군사주의와 남성성 문제를, <각하의 만수무강>에서 북한을 적대시하던 사람들이 누구보다 전체주의와 ‘이승만’ 숭배에 적극적이던 모순된 풍경을, <미국의 바람과 불>에서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다뤘던 감독은 훨씬 조심스럽고 신중한 자세로 한국의 가장 아프지만 은폐됐던 역사에 접근한다. - 제주 4·3 사건 이후 수감됐던 수형인들을 다룬 최초의 작품이다. 수형인 구술조사를 위해 만난 120 여명 중 5명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 배경은 무엇 인가. 이들은 모두 90대 여성이다. = 처음에는 좀더 방대한 내용을 담고 싶었다. 그런데 구성이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들이 전해준 사연이 워낙 무거웠고 이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5명의 할머니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적당하다고 판단했다. 가장 큰 이유는 마음의 문제였다. 다른 분의 이야기를 더 넣기에는 만드는 나도 관객도 너무 힘들 것 같았다.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할머니들이 쓰는 언어나 태도가 참 좋았다. 4·3 사건이 훨씬 생생하게 전달됐다. - 양농옥, 박순석, 박춘옥, 김묘생, 송순희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 = 양농옥 할머니는 수형인은 아니셨지만 제주 4·3 사건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는 머리말 같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또 이승만 이야기를 따로 해주신 점이 특별했다. 박순석 할머니는 남로당 활동을 한 유일한 분이셨다. 제주 4·3 사건은 국가에 의한 폭력이 자행된 학살이기도 하지만 저항 측면의 이야기도 중요하다. 자신의 이야기가 역사에 남았으면 좋겠다는 의지가 영화의 의도와도 확실히 연결됐다. 반면 박춘옥 할머니는 산에 있던 무장대를 두려워했던 분이다. 4·3의 입체적인 면을 보여줄 수 있었다. 김묘생 할머니는 처음 찾아뵀을 때 자기는 4·3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부인하는 모습이 이 사건을 방증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송순희 할머니와 그의 가족은 4·3이 과거에서 끝난 게 아니라 아직 이어져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 2016년부터 전국 각지를 오가며 수형인들을 만났다. 그사이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가 출범하고 문재인 전 대통령이 70주년 4·3희생자추념식에 참석했다. 영화에도 등장하는 재심 판결이 있었다. 처음 촬영을 시작했을 때와 비교할 때 연출자의 생각이나 다큐멘터리의 방향성에 달라진 부분도 있나. = 제주 4·3 사건에 대한 사회 인식이 바뀌었다가 최근에 다시 후퇴했다. 지난해 4·3 추념식 때는 자신들을 서북청년단의 후예라고 일컫는 이들이 들이닥치는 사건도 있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분위기가 이렇게 바뀔 수 있다니 ‘현타’가 오더라. 사람들은 기존에 갖고 있던 인식을 의심하기보다는 쭉 변하지 않는다. 제주 4·3 사건이 ‘빨갱이들의 폭동’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주 긴 세월 동안 이어진 4·3은 피해자 대 가해자의 구도로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는 복잡한 사건이다. 실제 3만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희생자 중 90%는 국가를 등에 업은 군경에 의한 피해자였지만 나머지 10%는 산에 있던 남로당 무장대 등에 당했다. 그들이 군경이 그랬던 것처럼 마을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하기도 했다는 사실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국가의 이름으로 벌어진 학살은 조직적인 초토화 작전의 일환이기도 했던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만주를 토벌하던 방식 그대로이기도 하다. 반면 인간 개인이 갖고 있는 폭력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 할머니들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꺼내야 하는 일이라 영화에 어디까지 담고 담지 않아야 할지 윤리적 고민이 뒤따랐겠다. = 오락영화처럼 폭력을 전시해서는 안된다는 목표가 있었다. 영화에서 초토화 작전 등이 언급될 때 이를 스펙터클화해서는 안됐다. 할머니들의 증언이 그들이 당한 피해를 디테일하게 묘사하는 쪽으로 흘러갈 땐 이를 덜어냈다. 오히려 할머니들의 언어가 정확하게 핵심을 찌르는 순간들을 영화에 더 쓰려고 했다. - 감독이나 제작진의 인터뷰가 아닌 면접 조서관의 구술조사로 영화가 진행된다. 이러한 형식 때문에 만들어지는 차이가 있던가. = 막연하게 다른 인터뷰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가서 보니 달랐다. 인터뷰라기보다는 면접 조사관 선생님과 할머니들의 대화에 가까웠다. 할머니들은 구체적인 이야기를 숨기기 때문에 계속 묻고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상황만 잘 보여주면 관객들이 4·3에 대해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일부러 대화를 대화처럼 보이게 주로 투숏으로 찍었다. 내밀한 이야기가 되기 때문에 최소 인원으로 가야 했다. 나는 대화에 개입하지 않고 거리감을 유지했다. 우리가 아픈 기억에 대해 묻는 것은 물론 할머니들을 찾아뵙는 것 자체가 그들을 괴롭게 할 것이라는 건 분명하다. 그럼에도 재심 재판에 필요한 영상 기록을 위한 촬영이라며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줬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해도 되는지,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는지 계속 고민하게 되더라. 그들은 촬영과 면접 조사에 본인의 의지대로 승낙했고 이들의 증언은 기록될 필요가 있다고 스스로 납득했다. - 수형인들의 증언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들, 특히 제주의 자연경관을 찍은 숏들이 중간에 삽입된다. 전작에서 미군 선전영화, ‘대한뉘우스’, 공보처 영상 등의 아카이브 이미지를 서로 충돌시키며 그들의 관계와 정치적 맥락을 보여줬다면 이번 작품은 관객 각자가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을 둔다. = 전작들은 이미 있는 1층을 토대로 2층을 올리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1층이 아예 없었다. 내가 1층을 먼저 쌓아올리며 직설적으로 그 역사를 이야기해야 했다. 그리고 이번 영화는 그냥 이렇게 만들고 싶었다. 아직 사람들이 제주 4·3 사건에 대해 잘 모르는 만큼 관객이 전작과는 다른 감정을 느꼈으면 했다. 부족한 푸티지 속에서 선택의 문제에 직면했던 전작과 달리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내가 직접 촬영을 할 수 있었다.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 같은 제주 4·3 사건 유적지라든지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도록 돕는 자연 풍광을 찾아다녔다. 비자림로의 잘려나간 나무는 내용상 의미적인 연결이 됐다. 독립다큐멘터리영화가 갖는 의미 - 평범한 인문학도였다가 독립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 영화를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그런데 극영화보다 다큐멘터리영화가 재미있었다. 서울국제노동영화제에서 영화를 많이 봤다. 켄 로치 감독의 작품, <칠레 전투>, 당시 마이클 무어가 한국에 처음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로저와 나>도 봤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창작자의 계획과 범위를 넘어서는 예측 불가능한 요소가 끼어들면서 작품이 더 다채로워진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관심을 둔 것은 나를 포함한 인간들의 현실 인식이었다. 누구나 오해를 할 수 있지만 실제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생각을 바꾸기도 한다. 그게 당연한 삶의 이치인데 사회적으로는 거의 적용되지 않는다. 과거에서부터 누적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고쳐나가야 할 문제들이 있는데 뻔한 진영 논리를 내세우며 공격한다. 역사와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현실 인식이 마치 중력장처럼 작용해 많은 사람들을 휩쓸리게 한다. 그러니 전 세대와 대화할 때 벽을 느끼고 세상이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답답함이 다큐멘터리영화를 작업하게끔 이끌었다. - 노동·정치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됐지만 이후 필모그래피를 보면 영화 언어와 형식에 얽힌 고민 또한 깊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바람과 불>은 기록영상으로만 구성되어 있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은 현재 시점에 찍은 이미지로 과거의 푸티지를 충돌시킨다. = 처음에는 내가 직접 촬영하지 않은 이미지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 이런 다큐멘터리가 없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가 이미지를 쌓아올려 관계성을 만들거나 충돌시키는 작업을 좋아했다. 그런데 작업을 하다 보니 소스가 너무 부족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만들 때는 내가 접근할 수 있는 한정적인 푸티지 중 선택지가 너무 없었고 원하는 숏을 찾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편집 템포도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방식으로는 더이상 영화를 만들 수 없다는 생각에 이번에 다른 시도를 해본 것이다.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푸티지 작업을 다시 해보고 싶다. - 최근 독립영화계가 부침을 겪고 있다. 특히 독립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분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 당사자로서는 우리가 멸종되어가는 종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영화 업계 전반적인, 국내의, 세계적인 상황이기도 하다. 독립다큐멘터리영화는 독립영화라는 마이너 중에서도 마이너다. 영화를 만들어도 제대로 상영할 기회가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체감한다. 그럼에도 관객을 직접 만나면 힘을 받는다. 20~30대는 제주 4·3 사건에 대한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을 때만 해도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관객층이었는데 의외로 공감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렇다면 4·3에 대한 인식도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을까. 내가 영화를 만드는 게 아주 의미 없는 일이 아닌 거다. 1년에 300번 정도는 내가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회의가 들다가도 관객을 만날 때 희망을 얻는다. - 차기작은 어떤 작품이 될 것 같나. = 차차기작을 먼저 말씀드릴 수 있을 듯하다. 제주 4·3 수형인이 겪은 한국전쟁 이야기다. 좀더 다큐멘터리 같은 다큐멘터리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번 영화와 달리 당시 푸티지나 사진도 많이 등장할 것이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전쟁의 이미지와 결이 달라 꼭 보여주고 싶은 컷이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서도 등장한 적이 있다.

[인터뷰] 추억이 반짝반짝, <럭키볼> 배우 박문아

박문아 배우는 5년간의 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거치고 배우로 돌아온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를 따라간 연기학원에서 연기를 시작한 이후 예술고등학교, 대학 연극영화과 경로를 밟으면서 차근차근 단편영화와 독립영화에 얼굴을 비췄다. 장건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회오리 바람>에서 언니 얼굴에 침을 뱉으며 과격한 몸싸움을 펼치던 미영의 모습이 박문아의 어린 시절이다. 그러다가 “대학 졸업 후의 연기 이력에 막막함”을 느낀 그는 고등학교에서 영상·이미지 편집 등을 가르치는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속에서 끓는 연기의 욕망”을 스스로 숨기지 못한 끝에 지난해 무렵부터 배우로 복귀했다. “<피라미드 게임> 같은 학교폭력 이야기가 실제로도 빈번”하다는 사실을 예시로 든 그는 “교사로 있던 5년을 그저 흘려보낸 것”은 아니라고 회상했다. “여러 성격의 학생, 학부모들과 관계를 맺으며 쌓은 다양한 경험들이 연기에도 반영”됐다는 박문아 배우의 말씨엔 이후 활동에 대한 단단하고 뚜렷한 포부가 묻어났다. 거의 10년 만에 다시 보게 된 <럭키볼>은 박문아에게 각별하다. <럭키볼>은 고등학생 연주가 학교 축제에 올릴 공연을 준비하던 중 짝사랑하는 남자와 겪게 되는 풋사랑의 격동을 그린다. “영화 속에서 연기 중인 내 대학교 1~2학년 모습을 보니 그때의 좋은 기억이 되살아난다”라며 그는 “첫사랑의 설렘과 쓰라림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에 관객들도 지난 추억에 푹 빠질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를 내비쳤다. 촬영 당시 “노래와 피아노 연주를 잘 못해서 감독님을 고생”시켰지만 “그런 연주의 모습조차 어린 날의 풋풋함으로 느껴질 만큼 사랑스러운 영화”다. 10년의 시차를 둔 만큼 <럭키볼>에 대한 박문아의 감상은 꽤 달라졌다. “예전엔 연주의 사랑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연주의 꿈에 집중”하게 됐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연기 일에 삶을 쏟아내고 있는 지금 나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연기에 몸담아온 전공생답게 전주영화제를 기대하는 태도도 남달랐다. <럭키볼>을 보며 “연주의 세심한 감정 변화가 어떻게 표현되는지”에 몰두해달라는 세심한 요청은 기본이었다. 영화제 기간 내 관객과의 대화에서 “영화 속 캐릭터들의 각기 다른 목표나 <럭키볼> 속 가수 우효의 노래처럼 영화에서 음악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토론”해보고 싶다는 그의 깊이 있는 진심은 영화를 사랑해 마지않는 전주 관객들의 마음에 적확하게 가닿을 것만 같다. 봄철 추천하고 싶은 독립영화는? “<소공녀>(2017)가 떠오른다. 겨울을 배경으로 한 잿빛 화면의 영화다. 하지만 주인공 미소(이솜)는 그 속에서도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일을 계속해나갔고, 그 끝엔 분명히 미소의 꿈이 이뤄진 봄이 왔을 거다. 관객들에게도 그러한 봄이 꼭 오기를 바라며 추천하고 싶다.”

[특집] 4·16을 돌아보다,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 영화가 참사를 기억하고 기록해온 방법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 그동안 적잖은 영화가 기록하거나 재현함으로써 애도를 지속해왔다. 돌아온 4월16일을 앞두고, <씨네21>은 진상규명의 움직임에서부터 분노와 비탄의 행진을 거듭한 영화들, 한 걸음 나아가 일상의 체에 눈물을 걸러낸 유가족의 말간 웃음까지 담아낸 영화들을 한자리에 모아보았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스트리밍 서비스 ‘다큐보다’(docuVoDA)를 통해 볼 수 있는 10주기 추모 특별전 ‘10년, 연대의 세월’ 프로그램도 함께 소개했다. 특집의 마지막 장은 시인의 목소리를 빌리기로 했다. <그날 이후> <천칭자리 위에서 스무 살이 된 예은에게>(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를 쓴 진은영 시인이 신작 시 <10년 동안>을 통해 슬픔의 취기를 간직한 모든 부모들을 위로했다. 2014년 가을, “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눈먼 자들의 국가> 중)고 노래했던 시인에게 지난 10년 동안 더욱 길게 이어진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시작 노트에 자세히 적혀 있다. 10주기 영화 프로젝트 ‘봄이 온다’의 김일란 총괄 PD와 장편다큐멘터리 <바람의 세월>의 문종택(지성 아버지), 김환태 감독의 인터뷰에 의하면, 기억의 작업은 아직 10년밖에 되지 않았고 세대를 거듭해가며 이제 막 시작일 뿐이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세월호 참사 10년 특집이 계속됩니다.

[특집] 4·16 이후 10년간 탄생한 기억, 연대, 회복의 영화적 움직임들

10년 동안 나온 세월호 참사 다큐멘터리들이 간직한 공통점 중 도드라지지 않지만 무척 중요한 한 가지는 참사 당일을 회고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아주 세밀한 구술을 이어간다는 점이다. 전원 구조 소식에 얼마나 안도했는지, 곧이어 오보임이 밝혀지면서 희망이 얼마나 무참한 절망으로 뒤집혔는지 유가족들은 어제 일처럼 말한다. 비당사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세월호 참사 현장을 취재한 기자들의 회고록인 <그레이존>(옴니버스영화 <세 가지 안부> 중 주현숙 감독의 다큐멘터리)의 한 기자는 그날 구내식당에 앉아 뉴스를 보면서 먹었던 식판 위의 메뉴를 상추 한장까지 묘사해낸다. 또 다른 기자는 전원 구조 소식을 접한 뒤 그제야 숨돌리기 위해 한 모금 마셨던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언급한다. 세월호 참사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자신의 삶으로 침투했다는 증거는 그날 그 시간에 우리가 어디에서 무얼하고 있었는지를 기억한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각각의 구체적 풍경을 수집한 많은 다큐멘터리들이 이 대목에서 말을 건넨다. 우리가 이토록 연루되어 있다고. 9·11 테러 발생 후 20년이 지난 2021년, <뉴욕타임스>는 엘리자베스 A. 팰프스 박사의 하버드대학교 신경과학 연구팀이 수행한 9·11 기억 연구 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연구팀은 충격적인 역사적 순간을 마주한 개인에게 형성되는 생생하고 지속적인 정신적 스냅숏- 즉 플래시백의 기억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기 위해 3천여명을 대상으로 참사 당일에 테러 공격이 발생한 순간 어디에서 무얼하고 있었는지 질문했다. 그리고 정확히 1년 후 같은 사람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졌는데, 무려 40%의 응답자가 기억을 다르게 답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세월은 끊임없이 흐르고 기억은 그보다 변덕스러울진대, 이 연구는 공동의 애도가 시간에 의해 훼손되어 점차 미약해질 것임을 새삼스레 말하려 했던 걸까? 놀랍게도 팰프스 박사의 이론은 정확히 반대다. 참사에 대한 기억이 일반적인 자서전적 기억과 구별되는 점은, 비록 변형되거나 오해된 기억일지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기억에 대한 개인의 자신감이 굳건해진다는 데 있다. 그러니까 어떤 디테일이 틀리거나 심지어는 일부를 개발했을지 몰라도 잊기는커녕 내러티브를 더욱 강화하게 된다는 말이다. 비극 앞에서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이 의지를, 나는 4·16 참사 이후 10년의 한국영화들이 보여준 흐름 속에서도 찾아보고자 한다. 그날과 그날 이후의 다큐멘터리들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에 관해 누가, 무엇을 창작할 수 있을까. 그러나 최초의 응답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나타났다. 참사 발생 6개월 만인 2014년에 등장한 <다이빙벨>을 시작으로 진상규명의 움직임에 뛰어든 다큐멘터리들이 최초의 전선을 형성했다. 다이빙벨 장비의 실효성 논란을 집중적으로 다룬 <다이빙벨>은 부재하는 허수아비 정부를 꼬집는 흐름의 물꼬를 텄고, 부산시가 작품의 정치적 중립성을 문제시하며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을 반대한 사실이 알려져 외압 논란 및 예산 삭감 등의 후폭풍도 이어졌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유가족들의 치열한 고군분투의 과정을 담은 <나쁜나라>, 재미교포 감독의 시선과 전문가들의 분석을 교집한 <업사이드 다운>, 과학적 접근을 표방하며 선박자동식별장치(AIS) 항적도를 중심으로 침몰 원인에 집중한 <그날, 바다>가 잇따랐다. 발빠르게 제작된 이들 다큐멘터리는 진실규명에 대한 뜨거운 목소리, 세월호 특별법 제정 과정의 문제의식에 부응한 반면 다소 미비한 만듦새를 보여주거나 유가족과 공명하지 못한 채로 이념 대립의 도마 위에서 소비되는 현실을 보여주었다. 이때 등장한 <망각과 기억> 시리즈는 영화가 세월호 참사를 불러내는 방식에 있어 훌륭한 대안적, 대항적 움직임으로서 기능했다. 전 4·16연대 미디어위원회가 참사 당일부터 2년간 팽목항, 안산, 서울 등지에서 기록한 현장과 유가족 연대활동을 모은 결과물이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내면을 바흐의 협주곡 위에 얹힌 김응수 감독의 <초현실>, 시신 수습과 인양 작업에 참여한 민간 잠수사들을 호출해 물속의 경험까지 가닿으려 한 복진오 감독의 <로그북> 등이 나오게 된다. 세월호 참사 다큐멘터리가 현상에서 사람으로, 사회적 규명에서 내적 탐구로 이어졌음을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까지 나온 다큐멘터리 중 특별히 기록해볼 만한 두편의 영화- 주현숙 감독의 <당신의 사월>과 이소현 감독의 <장기자랑>은 모두 2020년대 들어 등장했다. 주현숙 감독은 참사의 현장, 세월호의 모습, 유가족의 통곡 등 참사 재현에 관습적으로 동원될 만한 이미지를 배제하고 4월을 기억해낸다. 세월호의 비극과 저마다 다양한 관계를 형성한 인물들을 인터뷰한 다음 이를 느슨한 내러티브로 재구성한 <당신의 사월>은 참사에 대해 막연한 심리적 거리감 혹은 거부감을 지녔던 이들, 그리고 당사자와 비당사자의 프레임 앞에 겁먹은 이들을 향한 사려 깊은 손짓이었다. 4·1 6재단에서 진행한 문화 콘텐츠 공모전 입상작이자 재단 지원작 중 첫 개봉작인 이소현 감독의 <장기자랑>은 유가족에게 씌워진 피해자다움의 프레임을 벗겨내려는 시도도 더했다. 영화는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엄마들이 극단 ‘노란리본’을 꾸려 창작극을 준비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어머니들은 그간 연분홍치마, 전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등이 꾸준히 기록해온 시위 현장에서 비통한 부모들의 일원으로 존재했으나, <장기자랑>에서는 연극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려고 때로 말다툼도 마다하지 않는 욕망의 화자들로 거듭난다. 아이들의 영정 사진을 배경 삼아 연극 연습을 하는 엄마들을 담은 카메라엔 우는 모습 대신 자지러지게 웃는 모습이 더 많이 담겼다. 슬픔의 엄숙함에 짓눌려 사랑하는 아이를 떠올리는 기쁨을 퇴색시킨 얼굴에 다시 색을 입힌 것이다. “<장기자랑> 이전에도 세월호 영화가 개봉하면 본인이 출연하지 않았더라도 GV에 참석해 아이들 이야기를 울면서 했던 엄마들이, <장기자랑> GV에서는 관객과 기쁨 속에서 아이를 기억할 수 있다는 점에 놀라워했다.”(이소현 감독) 엄마들은 한 공동체 상영 GV에서 “국회 앞에서 삭발을 해도 모자랄 판에 연극이나 하면서 놀고 있다”는 비판도 받았다. 이 반응이야말로 투쟁하고 규명하는 영화들 사이에서 <장기자랑>의 역할이 무엇인지 역설적으로 알려준다. 지난해 2월부터 <장기자랑>의 영만 어머니는 자비로 이영만 연극상을 제정해 매해 훌륭한 연극 연출가, 극작가 등을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 <눈꺼풀>에서<너와 나>까지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세월호에 관한 첫 번째 극영화 <눈꺼풀>은 박근혜 정권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압력 아래 개봉까지 4년을 기다려야 했다.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로 4·3의 아픔을 그렸던 오멸 감독이 4·16을 바라본 시도였다. 딸을 잃은 엄마, 아내와 사별하게 된 남편,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잠수사의 방황을 담은 옴니버스 <봄이 가도>가 뒤를 이었다. 정부 지원사업과 자생 사이, 독립영화가 어렵게 시도를 거듭하는 동안 상업영화의 반응은 더뎠다. 공교롭게도 세월호 5주기를 맞은 2019년에 두편의 상업영화가 동시에 개봉을 알렸다. 고 이선균, 전소니 주연의 범죄물 <악질경찰>과 전도연, 설경구 주연의 담담한 드라마 <생일>이다. 경찰 압수창고의 폭발 사건을 목격한 고등학생 미나(전소니)는 세월호 트라우마를 안은 10대 인물이 한국 상업영화에 등장한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유의미하지만, 감독의 의도와 각오가 작품의 실상을 초과해버린 안타까운 사례이기도 하다. 장르영화로서의 전략과 소재에 그친 세월호가 만난 결과는 픽션화에 대한 근본적인 경각심마저 일으켰다. 한편 요원한 일상을 모색하며 속앓이하는 어느 유가족 부부의 생활을 그린 <생일>은 한국영화의 리얼리즘을 따르면서 참사 이후의 아픔과 후유증에 정공법으로 직면했다. 성실한 묘사와 따뜻한 시선, 배우들의 준수한 연기가 어우러진 이 작품에 대해 지금 돌이켜볼 때 조금 아이러니한 것은, 과도한 신파를 피했다는 평가가 개봉 당시에 칭찬처럼 주어졌다는 것이다. 부모-자녀의 애착과 가족적 유대를 감정적 동력으로 삼는 한국의 수많은 장르영화에서 게으름을 읽고 피로감을 학습한 관객이 세월호 참사를 모티브로 한 픽션에도 같은 기준을 대입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세월호 영화는 오열을, 지나친 감정을, 멜로드라마틱한 전개를 피해야만 할까? 개봉을 앞둔 <목화솜 피는 날>을 제외하면 아직 <생일> 이후의 마땅한 후속 사례가 없기에 또 다른 세월호 극영화를 준비 중인 감독들에게 어려운 숙제가 아닐 수 없다. 노출을 극대화해 희뿌옇게 날아간 화면 속에서 수학여행 전날의 시간을 꿈같이 유영하는 <너와 나>의 등장은 어쩌면 그 틈새를 파고든 영리한 돌파구라 할 수 있겠다. 세미와 하은, 두 고등학생의 애증어린 하루를 그린 <너와 나>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고등학생’이라는 설정만으로도 관객이 세월호의 텍스트를 읽어낼 수 있으리라 전제한 작품이기에 의미심장하다. 이 영화는 어떤 과잉을 불러낼 정도로 세월호를 둘러싼 감각이 공동의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안산역, 단원고를 지나는 버스, 봉안당의 이미지는 영화 내부의 치밀한 내적 연결성보다는 영화 바깥에 있는 관객들의 강력한 접속을 예견하며 동원된 장치이고, 바로 이 점이 <너와 나>가 놀라운 이유이자 의심스러운 이유도 된다. <너와 나>의 아름답게 표백되어 갇혀버린 시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것은 절대 꺾이지 말아야 할 사랑에의 주문인 동시에 이다음의 세월호 영화가 깨부수고 나아가야 할 세계이다. 세월호 영화라 명명하기는 어렵지만 신동석 감독의 <살아남은 아이>가 죄책감에 휩싸인 소년을 물속에서 구해내는 장면, 이상근 감독의 <엑시트>가 교실에 갇힌 수많은 아이들의 모습에 반응한 청년 주인공들이 자신들의 몸을 던지는 장면 등도 한국영화에 내재된 세월호 참사의 징후이다. 달라질 기억을 향하여 10주기에 이르러 새롭게 태동한 영화들에서 참사를 기억하는 시선의 주체가 다변화한 것이 눈에 띈다. 3월27일 개봉한 장민경 감독의 <세월: 라이프 고즈 온>은 예은 아빠 유경근씨의 인터뷰로부터 참사의 아픔을 1999년 씨랜드 수련원 화재 참사,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유족들의 이야기로 뻗어 나간다. 애도를 숨겨야 하는 사회, 참사 추모가 마땅한 공적 호명과 지원과 받지 못하고 개별화되어 떠도는 한국 사회의 아이러니를 정확하게 꼬집는다. 기록의 대상이었던 유가족들이 창작의 주체로 나섰음도 더욱 선명해졌다. 참사 이후, 약 5천개의 영상을 촬영했으며 세월호 유가족 방송 <416TV> 제작자이기도 한 지성 아버지 문종택 감독은 4월3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바람의 세월>에서 정연한 연대기를 꾸렸다. 4·16재단의 2023 문화 콘텐츠 공모전 대상 수상작인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세 가지 안부>는 생존자와 1997년생 동년배(<드라이브 97>), 참사 현장을 가까이에서 취재한 기자(<그레이존>), 세월이 지나 자녀를 재해석하기 시작한 엄마들(<흔적>)의 목소리를 공명시킨다. 공모전 입상작인 <목화솜 피는 날>은 사고로 죽은 딸을 그리워하는 부부의 애도를 따라가면서 세월호 영화로서는 최초로 선체 내부의 촬영을 진행했다. 10주기를 앞두고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의 지지가 있었기에 이뤄진 결정이었다. 세월호 10주기 영화 프로젝트 ‘봄이 온다’로 묶인 이들 영화는 장·단편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형식을 포괄하고 서로 다른 경험과 거리감을 지닌 이들의 트라우마가 상응하도록 했다. 10년이 흘렀기에 가능한 작품의 경향도 보인다. <세 가지 안부> 중 한영희 감독의 <흔적>은 죽음의 증거로서의 유류품과 유가족들이 인식하는 실제 유품 사이의 긴장을 다루는 과정에서 두 여성 순화(창현 어머니)와 부자(호성 어머니)의 삶에서 날카로운 미시사를 건져올린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순화는 신앙 문제로 아들과 갈등했던 시간을 떠올리고, 부자는 자신이 기억하는 착실한 아들과는 거리가 먼 주변인들의 묘사를 맞닥뜨린다. <그레이존>에서 내밀한 고백을 들려주는 화자들은 참사 당시 ‘기러기’라는 원색적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기자들이다. 요컨대 동시대의 세월호 영화는 희생자 학생의 초상을 다면적으로 살펴보는 작업, 종교 문제나 계급차 등을 읽어낼 수 있는 유가족 재현, 비당사자의 개인적 진술을 확장 중이다. 집단화된 경험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들에도 카메라의 시선은 분주히 가닿는다. 앞으로는 1997년생들의 영화가 찾아올 예정이다. 세월호 참사 생존자로 응급구조사가 된 장애진씨가 1997년생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기 <드라이브 97>처럼 생존자들의 영화가 제작되고 있다. “지금까지가 부모들의 운동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생존자들의 운동이 시작될 것”이라 짚은 ‘봄이 온다’ 프로젝트의 김일란 총괄 PD는 “10대였던 생존자들이 나이 들어감에 따라 꾸준히 목소리를 낸다면 참사의 의미가 다양하고 견고하게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생존자가 아닌 한국의 모든 1997년생들에게만 새겨진 어떤 인식에 대해서도 그는 주시하고 있다. 원래 <드라이브>였던 영화 제목을 <드라이브 97>로 바꾼 이유다. 같은 맥락에서 4·1 6재단의 미래세대 지원사업도 세대를 거듭하며 이어나갈 기억에 초점을 맞춘 사업이다. 광화문광장 세월호 기억공간에서 자원활동가로 참여한 최호영 감독을 필두로 이우고등학교 다큐제작팀 Re;cord 학생들이 재학 시절 만든 다큐멘터리 <기억해, 봄>은 그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 마주했던 세월호 참사를 18살의 시선으로 기록한 것이다. 10대 다큐팀은 2021년 4·16 재단 소년·청년 꿈지원사업 ‘ 4·16의 꿈’에 선정되어 유가족과 생존자들을 만나고 기억 교실 등을 방문할 수 있었다. 이들이 쓴 순연한 음성의 작품 시놉시스는 미래세대에 세월호를 기억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질문할 때 좋은 대답이 되어줄 듯싶다. “세월호 참사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들. (…) 우리는 왜 기억해야 할까? 기억한다는 건 뭘까? 답을 찾기 위해 안산으로, 진도로, 목포로 발걸음을 옮겼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각자의 시간을 살게 된 우리. 지나간 시간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건 뭘까?” 국가를 막론하고 세월호와 같은 비극적인 대형 참사에는 ‘잊지 말자’는 구호가 뒤따른다. 이 단순한 슬로건은 힘이 세다. 수많은 감정과 감각, 진실과 추정, 세월호가 침몰하는 데 걸린 1시간40분에 얽힌 무수한 반응을 끌어안는다. 혼자 기억하는 사람, 여전히 4·16 아침으로 자석처럼 이끌려가는 사람들도 지탱시킨다. 그리고 기억은 달라진다. 때로 더욱 선명히 채색되거나 일부가 각색되고 아니면 희미해져버린다. 참사의 기억을 연구한 이들은 그것이 오히려 더 잘 기억하기 위함이라고 결론내렸다. 지난 10년간 세월호 영화를 만들고 관람한 사람들, 무엇을 보여주고 보여주지 않을 것인지 참사 재현의 윤리를 고민한 사람들은 모두 더 잘 기억하기 위한 움직임이며 이야기이다. 앞으로의 10년 동안에도 영화의 역할은 확고해보인다. 시간에 지지 않고,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었다는 바로 그 사실을 기억하기.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수행 방식은 다를 테지만 이들이 모색하는 회복으로의 움직임만은 같은 곳을 향할 것이다. 지난 10년간의 세월호 영화들 2014 <다이빙벨> 이상호 감독 / 다큐멘터리 2015 <나쁜나라> 김진열 감독 / 다큐멘터리 <업사이드 다운> 김동빈 감독 / 다큐멘터리 2016 <망각과 기억>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2017 <망각과 기억2: 돌아 봄 part1>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망각과 기억2: 돌아 봄 part2>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초현실> 김응수 감독 / 다큐멘터리 2018 <눈꺼풀> 오멸 감독 / 극영화 <그날, 바다> 김지영 감독 / 다큐멘터리 <로그북> 복진오 감독 / 다큐멘터리 <봄이가도> 장준엽, 진청하, 전신환 감독 / 옴니버스 극영화 <부재의 기억> 이승준 감독 / 단편다큐멘터리 2019 <생일> 이종언 감독 / 극영화 <악질경찰> 이정범 감독 / 극영화 2020 <진도> 유동종 감독 / 다큐멘터리 <유령선> 김지영 감독 / 다큐멘터리 2021 <당신의 사월> 주현숙 감독 / 다큐멘터리 2023 <장기자랑> 이소현 감독 / 다큐멘터리 <너와 나> 조현철 감독 / 극영화 <기억해, 봄> 최호영(Re;cord) 감독 / 단편다큐멘터리 2024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장민경 감독 / 다큐멘터리 <바람의 세월> 문종택, 김환태 감독 / 다큐멘터리 <세 가지 안부>(<그레이존> <드라이브 97> <흔적>) 주현숙, 오지수, 한영희 감독 /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목화솜 피는 날> 신경수 감독 / 극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