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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포켓몬스터: 성도지방 이야기, 최종장’, 25년 포켓몬스터 시리즈의 정수

포켓몬 트레이너 지우(이선호)는 성도지방 최고의 포켓몬 트레이너를 가리는 ‘은빛대회’에 참가한다. 고향인 태초마을에서부터 함께한 포켓몬 피카츄, 여행 중 만난 동료인 이슬(여민정)과 웅(황창영)이 지우를 적극적으로 돕는다. 가까스로 예선전을 통과하고 결승 토너먼트에 나선 지우의 상대로는 최대의 라이벌이자 엘리트 포켓몬 트레이너인 바람(임윤선)이 등장한다. 지우는 잠시 헤어져 있던 포켓몬 리자몽을 불러 대적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IP인 ‘포켓몬스터’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다. TV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의 한국 방영 25주년을 기념하여 한국에서만 단독 개봉하는 작품이다. 기존에 공중파 방송에서 방영되지 못했던 15화가량의 결말 분량을 재편집했다. TV애니메이션 이야기의 대개가 생략되고 작품 후반부의 중심 이야기라 할 수 있는 지우와 바람의 대결에 초점이 맞춰졌다. 분량이 줄긴 했지만 <포켓몬스터> 시리즈의 정수로 여겨지는 요소들은 모두 담겨 있다. 포켓몬간 상성을 기반으로 한 포켓몬 배틀의 긴박함, 소년 만화 고유의 성장과 우정 서사, 그리고 지우가 아끼는 동료들과 이별할 때의 서글픔과 뭉클함이 고스란히 서려 있다.

[인터뷰] 바닥을 딛고 다시 올라선 순간, <종말의 바보> 배우 안은진

삭막함 속에서 저만큼 아이들을 위하는 게 가능할까? <종말의 바보> 속 세경을 보며 떠올렸던 질문이다. 본래 중학교 기술가정 교사였던 세경은 소행성 충돌 소식이 알려진 후 휴교령이 내려지자 웅천시청 아동청소년부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어수선한 틈을 타 발생한 폭동을 겪은 후, 세경은 위험에 빠진 아이들을 지키려 분투한다. 김진민 감독은 “세경 역엔 본능적으로 안은진 배우를 떠올렸다”고 말하며 배우에 대한 강한 신뢰를 드러냈다. 믿음에 부합하는 연기를 보여준 안은진에게 <종말의 바보>는 배우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 등장인물이 많은데 그중 세경의 감정 변화와 고민이 가장 세부적으로 그려진다. = 성장형 캐릭터의 경우 발전하는 과정에서 다른 선택을 하는 변화를 유심히 바라보게 되는데, 세경은 폭동 이후 가고자 하는 길이 명확했다. 그 단단한 마음을 유지하면서 중간중간 증폭되는 감정을 잘 표현하면 되겠다 싶었다. 아주 평범한 기술가정 교사고 다른 사람들도 충분히 대변할 수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해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 이전 작품들과 다르게 접근한 부분이 있다면. = 상상력이 좀더 필요한 작품이었다. 종말을 바라보는 극한상황이 배경인데 이걸 겪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배우들끼리도 각자의 상상을 자주 나눴다. ‘정말 200일이 남았다면 어떨 것 같아?’ ‘도망가고 싶을 것 같은데.’ 결국 모인 의견은 웅천 시민들처럼 도피하는 대신 일상을 살아갈 것 같다는 거였다. 세부적으로는 연인인 윤상(유아인)의 부재나 폭동 사건이 세경에게 어떻게, 얼마나 크게 다가왔을지를 상상해봤다. 시나리오만 읽었을 때는 가늠이 잘 되지 않았지만 현장에서 곧바로 와닿는 장면도 있었다. 가령 폭동으로 희생된 아이들의 시체를 발견하는 신은 현장을 맞닥뜨리자마자 확 몰입이 됐다. - 자신과 애인보다 아이들을 우선시하는 때가 종종 발생한다. 그런 세경의 선택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 폭동 때 아이들을 잃은 후로 세경에겐 그런 선택이 당연해졌다. 가령 생존자인 하율이가 위험에 처하면 이전의 트라우마로 인해 자연스레 몸이 먼저 움직인다. 말하자면 ‘아이들을 지킨다는 것’ 외엔 남은 목표가 없는 거다. 그게 세경이 대단한 인물이어서라기보다는 그 상황에 놓이면 모두가 그렇게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9화에서 세경이 윤상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신을 연기하는 순간이 좋았다. 그 대화에 세경의 마음이 전부 담겨 있다. - 아이들을 대할 때와 어른들을 대할 때 다르게 접근한 부분도 있나. = 특별히 그렇진 않았다. 세경이 워낙 친구 같은 선생님이었고 또 동네에서 오래 살면서 동네 사람들과도 깊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세경에게는 다 똑같고 편안한 사람들이다. 다만 아역배우들과 함께 촬영할 때는 선생님의 입장으로 계속 케어해주다보니 자연스럽게 모성애가 발동하더라. 그리고 정말 쑥쑥 자란다는 걸 느꼈다. 촬영 시작할 때는 강훈이 키가 나보다 작았는데 지금은 나보다 크다. (웃음) 게다가 공연계 선배님들이 많이 계셔서 현장에서 의지가 됐다. 다 같이 식사하고 추도를 하는 등 단체 신이 많아 촬영을 거듭하며 사이가 돈독해졌다. - 종말을 앞뒀음에도 함께 일상을 살아가고 희망을 이야기하려 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 시민들의 삶을 보면서 이 작품은 거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개인적으로 6화와 12화를 가장 좋아한다. 5화까진 극의 배경이 소개되며 세경의 선택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려진다면, 6화부터는 시민들 한명 한명을 조명하며 성당에서의 일을 각자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려진다. 망해가는 세상에서 성당을 복원하는 게 뭐 그리 중요하냐고 할 수 있지만, 그게 또 살아갈 힘이 되고 한편으론 사람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대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엔딩 시퀀스는 세경의 바람이자 모두의 염원이 잘 구현된 장면이라 좋아한다. 사람들이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는 데에서 오는 울림이 큰 작품이다. - <연인>의 길채, <종말의 바보>의 세경 모두 위기를 다부지게 견뎌나가는 캐릭터다. 그런 캐릭터가 본인에게 자주 주어지는 이유를 생각해본 적이 있나. = 길채, 세경처럼 행동할 수 있을지를 묻는다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싶긴 하다. 하지만 모두에게는 힘듦을 극복할 힘이 있다고 느낀다. 그게 이런 캐릭터들이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바닥을 찍고 다시 올라오는 캐릭터는 배우라면 다 반길 거고 나 역시 그렇다. 이런 역경을 딛고 힘을 발휘하는, 또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인물을 연기하는 게 개인적으로 재밌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이런 역경 속에서도 자신이 택한 삶을 살아가는 캐릭터를 계속 만나고 싶다 - <종말의 바보>를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 사실 이 작품은 촬영하면서 개인으로서도 바닥에 닿았다고 느낄 때가 자주 있었다. 상상하면서 연기하는 한편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내가 이 상황이 진짜라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했다. 그래서 어려운 작업이었다. 드라마에 출연하기 시작한 뒤로 무대에서의 연기, 카메라 앞에서의 연기에 대한 고민이 컸다. 무대에서는 제스처가 중요하고, 드라마는 감정을 타이트하게 잡기 때문에 미세하고 정확한 전달이 중요하다고 여겼는데 <종말의 바보>는 그 중간 지대에서 연기를 펼쳐야 했다. 그간 공연과 드라마에서의 연기를 별개로 봤는데 이번 작품을 기점으로 결국 연기의 본질은 같다는 생각이 명확해졌다. 더불어 김진민 감독님이 강조한 “발끝까지 연기해야 한다”는 말씀이 <종말의 바보> 촬영 때에도, 다음 작품에서도 도움이 많이 됐다.

[인터뷰] “내 캐릭터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한다”, 마동석 인터뷰

- 얼마 전 사무실 근처에 빅펀치복싱클럽을 오픈했다. 회원제로 50명만 받고 있다고. = 주변의 다른 형들도 장사를 해야 하지 않겠나. 여기로 사람이 너무 몰리면 안된다. 퍼스널 트레이닝이 목적인 곳이라 다른 복싱장과는 성격이 다르다. - 임시완, 정경호, 김무열 등 다수의 배우들이 다니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연예계의 복싱 전도사 같다. = 복싱선수를 하다가 배우가 된 사람은 나밖에 없다. 내가 좋아하는 복싱의 매력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었다. - 예전에 복싱을 6개월 동안 배운 적이 있다. 줄넘기와 기본동작만 배우고 회사 일이 바빠져서 그만뒀지만. = 복싱이 정말 좋은 운동이다. 기회가 되면 꼭 다시 배워보셨으면 좋겠다. 줄넘기는 종아리근육을 키우기 위해 하는 거다. 발뒤꿈치를 들고 지구력 있게 뛸 수 있는 훈련이 되어야 복싱 스텝도 잘 밟을 수 있다. - 남들보다 동작을 빨리 배운다는 칭찬도 받았는데…. = 원래 회원을 유치하기 위해 초반엔 칭찬을 많이 해준다. (웃음) <범죄도시> 시리즈의 시나리오 작업 공정 - 5월 예정된 결혼식부터 <트웰브>를 비롯한 차기작 준비 등으로 분주한 와중에 복싱클럽까지 열었다. <범죄도시4> 홍보 스케줄도 시작되지 않았나. 이번 영화는 어떨 것 같나. <범죄도시4> 역시 천만 관객을 달성할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 다른 영화는 손익분기점을 넘느냐 마느냐, 혹은 아직 시장이 100% 안정화된 상황은 아니라 관객수 100만명을 넘기느냐 마느냐를 논하는데 <범죄도시> 시리즈는 갑자기 잣대가 높아진다. (웃음) 갑자기 천만 관객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너무 당황스럽긴 하다. 언제나 우리의 기준점은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이다. 그래야 안심하고 다음 편을 만들 수 있다. - 시리즈영화가 연달아 천만 관객을 넘은 것은 이례적이다. 내부적으로는 흥행 요인을 무엇이라고 평가하고 있나. = <범죄도시> 시리즈는 오락 액션물이다. 재미있고 뛰어난 액션을 보여주면 관객이 재미있게 본다는 맥락을 기본적으로 지켜나가는 게 스코어를 내는 데 큰 힘이 되지 않았나 싶다. - <모범택시> 시리즈의 오상호 작가가 각본에 참여했다. 언제나 원안은 직접 쓰는 것으로 아는데 두 사람의 시나리오 작업 과정은 어땠나. = 원안은 매편 가볍게 정리한 기획 정도다. 오상호 작가님이 한국 작가 중에서도 거의 톱급으로 글을 빨리 쓰고 또 유연하다. 또 기획자의 머릿속에는 있지만 말로 잘 표현되지 않는 것들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현직 형사에게 디지털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건 몇년 전이었는데, 이번에 작가님도 형사님과 직접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드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도시> 시리즈는 촬영 직전까지 계속 시나리오를 수정한다. <범죄도시3> 때는 첫 촬영이 끝난 다음날 모여서 주성철(이준혁)의 대사를 14시간 동안 함께 고쳤다. - 제작자, 프로듀서, 감독, 배우, 조감독, 작가 혹은 스크립터가 모여서 시나리오 첫 글자부터 마지막 글자까지 신 바이 신으로 검토하는 회의도 진행한다고 들었다. = 한명씩 아이디어를 내면서 신 구성과 대사, 액션까지 세세하게 논의한다. 서로 의견이 갈릴 땐 내가 장첸(윤계상)이나 강해상(손석구) 등 다른 캐릭터의 연기까지 직접 시범을 보이면서 비교한다. 그리고 어느 쪽이 더 좋은지 의견을 모아 정리한다. 회의를 하다 보면 내가 원맨쇼를 하게 된다. (웃음) 하루에 12~13시간씩,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진행하면 그게 작업을 한번 끝낸 거다. 그렇게 6~7번 회의를 한다. 내가 각색한 시나리오를 넘기면 감독이나 작가가 또 고치면서 서로 피드백을 반영한다. 그렇게 다양한 아이디어 중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한다. 만장일치가 되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그래서 <범죄도시> 시리즈는 시나리오 작업 공정이 많다. 시나리오 작업을 미리 해야 하는 이유다. <범죄도시2> 찍을 때 이미 <범죄도시3> <범죄도시4> 시나리오 작업을 진행했다. 덕분에 <범죄도시> 시리즈가 매해 개봉할 수 있었다. - 후속작 반응을 보고 이후 작품을 준비하지 않고 바로 제작에 착수한 이유는 무엇인가. = 일단 정해놓은 스토리들이 있었다. TV드라마처럼 시청자 의견을 보면서 대본을 수정하기 보다는 한편 한편 뚝심 있게 매력적으로 만들고 싶었다. 프랜차이즈 영화는 전편이 어땠든 지금 작품만 봐도 흥미로워야 한다. <범죄도시3>는 좀더 경쾌하고 테크니컬한 오락물로, <범죄도시4>는 묵직한 톤으로 만들고 싶었다. 동시 제작한 영화지만 완전히 다르게 보였으면 해서 마석도의 헤어스타일, 의상 등을 달리했다. <범죄도시4>의 배경이 겨울이라 내가 두꺼운 옷을 입으니 사람들이 따로 벌크업을 한 줄 알던데 아니다. 벌.크.업.안.했.음. (웃음) 그리고 “이 영화가 개봉하면 관객 반응이 이러이러할 것”이라고 예상하며 미리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흥행은 예상할 수 없지만 영화나 캐릭터에 대한 리액션은 먼저 점칠 수 있다. 예컨대 잔인하다고 느낄 수 있으니 앵글을 바꿔 찍자고 논의하거나 빌런 역 배우 캐스팅에 대해 세간에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예상했다. - 좋은 반응과 나쁜 반응을 모두 예상했나. 실제로 적중했나. = <범죄도시3> 개봉 후 아쉽다고 지적되거나 장점으로 거론된 것들 모두 우리가 회의할 때 나왔던 이야기다. 그런데 약점을 알면서도 가져가야 할 때가 있다. 시리즈물은 자기복제를 하게 돼 있다. 천 가지의 복싱 기술이 있어도 일반 관객이 보기에는 똑같기 때문에 그것을 얼마나 영리하게 풀어내느냐가 관건이다. 범죄물의 많은 소재가 무척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다. 요새 관객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서스펜스와 액션을 세련되게 만들어내야 한다. - 전반적으로 관객과의 소통을 우선시한다는 인상이다. 일반 관객 대상으로 한 시나리오 모니터링이나 편집본 시사회 반응을 꼼꼼하게 체크한다고 들었다. = 일리 있는 의견은 수렴하고 어쩔 수 없이 그대로 가야 하는 것은 고수한다. 영화는 영화가 가야 할 방향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내가 기획자이자 처음 설계자로서 어느 정도 기준을 만들어놔야 한다. 이것이 흔들리면 아무리 좋은 의견이 나와도 적절하게 반영할 수가 없다. 영화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단순히 합쳐서 만드는 게 아니다. 처음 뼈대는 정확히 지키되 많은 이들의 의견을 참고하는 작업이다. - 모니터링 시사회를 열면 관객이 신별로 점수를 매긴다. 만약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문제점이 있다고 가정하자. 받아들이는 편인가. = 대부분 받아들이지만 우리가 고칠 수 있는 문제인지 아닌지를 먼저 판단해야 한다. 타당한 지적일지라도 특정 신을 수정하면 영화 전체가 무너질 때도 있다. 이를테면 재미있는 장면이 나오다가 갑자기 앉아서 조용히 생각하는 모습이 나오고 다시 액션 신이 나오면 분명 중간 부분은 점수가 낮게 나온다. 그렇다고 그 신을 빼면 안된다. 흐름상 꼭 필요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내가 오래 팠던 범죄수사물이기 때문에 빠르게 갈 수 있지만 그외 장르는 종종 내가 도전하는 분야가 될 수 있다. 그런 작품은 사람들의 의견을 구하고 반영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시행착오을 겪게 된다. 그렇게 배워나가는 것 아니겠나. - 1편부터 3편까지 빌런 캐릭터 캐스팅엔 ‘의외성’이 많이 작용했다고 생각했다. 반면 <범죄도시4> 백창기 역의 김무열은 안정적인 선택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그는 거친 악역 연기를 보여준 적이 있으니까. = <범죄도시> 때 윤계상 캐스팅에 대해 의아해하는 분들이 많았다. 우리는 나쁜 얼굴을 보여준 적 없는 배우가 악역을 연기했을 때 독특한 시너지효과가 난다고 판단했다. <범죄도시2>의 손석구는 당시 신인이었지만 굉장한 가능성을 보고 캐스팅했다. <범죄도시3>의 이준혁과 아오키 무네타카도 의외의 캐스팅이었지만 너무 잘해줬다. <범죄도시4>의 백창기는 연기를 잘하고 난이도 높은 액션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맡아야만 했다. 전투력과 기술력이 요구되는 액션 신이 많고 대역을 쓸 수 없는 앵글이 많았다. 액션스쿨에 가서 3개월, 6개월 훈련을 받아서는 소화할 수 없는 난이도다. 한국에 그 정도 몸을 쓸 수 있는 배우는 많지 않다. 나는 (김)무열이밖에 생각이 안 났다. 슬러거 마동석, 정교한 테크닉의 마석도 - 실제 복서들이 <범죄도시> 시리즈를 리뷰한 영상들을 봤다. 편을 거듭해 갈수록 복싱 동작의 디테일이 잘 살아난다고 극찬하더라. 실제로 <범죄도시4>는 문외한이 보아도 복싱 스타일이 돋보이는 액션이 많았다. 이번 영화의 액션을 준비할 때 주안점을 둔 부분은. = 길게 질문하셨으니 더 길게 대답하겠다. (웃음) 어렸을 때 <록키>를 보고 복싱선수를 꿈꿨다. 통찰력 있는 어린이였다면 저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을 텐데 그때는 영화가 뭔지 잘 몰라서 잘못된 선택을 했다. 그렇게 14살 때 시작한 복싱 덕분에 지금 영화로 먹고살 수 있게 됐지만 말이다. 소위 말해 ‘끝까지’ 운동을 했다. 산을 뛰고 스파링하고 경기하고 안와골절도 입었다. 그러다 오토바이 사고로 어깨가 부러지는 바람에 복싱을 더이상 하지 못할 거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렇게 한동안 운동을 쉬다가 미국 텍사스에 살 때 다시 복싱을 시작하게 됐다. 그때도 복싱에 대한 열망이 불타올랐다. 한국에 들어와 배우 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는 언제나 복싱 액션 연기를 선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제작자가 원하는 그림의 액션을 잘해내야 하는 배우였지 실제 할 줄 아는, 직접 만든 동작을 선보이고 싶다고 의견을 낼 수 있는 포지션이 아니었다. 그러다 직접 기획한 <범죄도시> 시리즈를 통해 오랜 꿈을 실현시킬 수 있게 된 거다. 지금부터 복싱에 대한 재미없는 디테일을 설명드리려고 하는데 혹시 이것도 인터뷰에 실어줄 거냐. - 물론이다. (웃음) = 복싱 스타일에는 네 가지가 있다. 인파이팅, 아웃복싱, 복서 스타일, 슬러거. 인파이팅은 안으로 파고들어서 세게 후려치는 것이고, 아웃복싱은 상대가 접근하지 못할 먼 거리에서 빠르게 치고 빠진다. 마이크 타이슨이 전형적인 인파이팅, 무하마드 알리나 플로이드 메이워더가 아웃복서다. 복서 스타일은 모든 복싱 기술을 해내는 올라운더로 슈거 레이 레너드가 여기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슬러거는 다른 유형만큼 기술이 다양하진 않지만 펀치력으로 승부를 본다. 이를테면 조지 포먼과 마동석이 있다. (웃음) - 그동안 <범죄도시> 시리즈에서 선보인 액션은 어느 스타일에 해당하나. = 슬러거 스타일은 연타도 적고 시원시원하다. 그런데 영화에서 보여주면 그냥 주먹질인 줄 알지 사람들은 이게 복싱 동작인지 잘 모른다. <범죄도시> <범죄도시2> 당시 그런 반응이 많았다. 그래서 <범죄도시3> 때는 인파이팅, 아웃복싱, 복서 스타일 세 가지를 섞었다. 다시 말해 좀더 정교한 테크닉을 보여준 것이다. 잔기술과 큰 펀치를 섞고 발이 안 보이는 웨이스트숏에서도 발을 끊임없이 움직이는 스타일을 구사했다. 재미있는 기술이 많이 담겨 있다 보니 실제 복싱이나 격투기 선수들이 <범죄도시3> 리뷰를 많이 한 것 같다. 영화의 경쾌한 분위기와도 잘 맞았다. <범죄도시4>는 잔기술을 배제하고 내가 원래 하던 슬러거 스타일과 복서 스타일을 섞었다. 그래서 굵직굵직한 큰 주먹 위주의 액션이 나온다. 전편보다 무게감 있는 액션이 묵직한 영화의 톤과도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마석도 그리고 마동석 본연의 베이스가 복싱에 있기 때문에 후속편에서도 다른 복싱 기술을 계속 선보일 예정이다. 기본적으로 드라마와 액션이 어울리도록 디자인하는 것이 관건이다. - 실제 복싱 동작을 영화에 녹여낼 때 어려운 부분은 없나. = 주먹이 얼굴이나 몸 아주 가까이까지 날아오게 된다. 짧게짧게 치기도 하고 얼굴 1cm 앞에서 멈춰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현장에서 위험할 수 있다. 둘 이상이 함께 복싱 액션을 연기하기 위해서는 실제로도 할 줄 알고 영화적으로도 해낼 수 있어야 한다. <범죄도시> 시리즈가 리얼리즘을 추구하기 때문에 고속 장면 없이 실제 속도로 싸운다. 순간순간 지나가는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 영화를 보면 체중 100kg인 배우(마동석)가 선보이는 액션인데도 무척 속도감 있고 동작도 잘 보인다. 어떻게 가능한가. = 그것에 대한 비결이나 트릭은 없다. 실제로 할 줄 알고 잘해야 그렇게 보일 수 있다. 사람들은 체중이 많이 나가면 동작도 느릴 거라는 편견이 있는데 어려서부터 복싱을 꾸준히 한 사람들은 헤비급이어도 날렵하다. 여기에 스피드와 힘 배합이 잘되어야 펀치력이 나올 수 있다. - <범죄도시3>에는 실제 종합격투기 선수 홍준영, <범죄도시4>에는 <주먹이 운다> 복싱 트레이너 출신 김지훈이 나온다. 일종의 직업인들을 배우로 출연시킨 배경은 무엇인가. 실제 운동을 하는 것과 그렇게 보이게끔 연기하는 것은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해왔는데. = 그렇지 않다. 실제 복싱선수나 격투기 선수들이 당연히 액션도 훨씬 잘한다. 그런데 연기도 잘해야 한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후배 복서들을 많이 알고 있지만 그들이 모두 연기를 잘하지는 않기에 영화에 캐스팅할 수 없었다. 홍준영 선수는 계속 영화 오디션을 봤었다. 극 중 일본어를 구사하며 연기를 해야 했는데 몇번 오디션을 거친 결과 다행히 합격해서 출연하게 됐다. 김지훈 선수는 예전에 배우를 한 적이 있고 실제 오디션도 많이 봤다. <범죄도시4>는 마석도와 국가대표 선수 수준의 실력을 가진 백창기의 부하가 복싱으로 맞붙는다는 컨셉이었다. 단순히 액션을 배워서 하는 배우가 출연하면 부상을 입을 수 있다. 때문에 실제 연기도 해봤고 이번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는 의지도 강한 김지훈 선수를 캐스팅했다. 앞으로도 연기가 가능한 실제 선수들을 자주 기용하고 싶다. 그런 분들과 액션을 할 때 아무래도 할 수 있는 동작도 많고 시너지효과가 많이 난다. <범죄도시> 시리즈 탄생 비화 - <범죄도시4> 마지막 기내 액션 시퀀스는 어땠나. 세트 안에 각종 장비가 있기 때문에 움직임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었겠다. = 일단 공간이 좁기 때문에 카메라워킹으로 트릭을 주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때문에 액션을 실제처럼 해야 한다. 그런데 그 신에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는 그간 쌓아온 드라마를 폭발력 있게 보여주는 것이다. 허명행 감독은 액션 디자인을 노련하고 능숙하게 해내는 베테랑이다. 짧은 액션 시퀀스 안에서도 서사를 만든다. 백창기는 마석도보다 훨씬 전투력이 강한 용병이다. 만약 그가 처음부터 단검을 쓸 수 있었다면, 심지어 초반엔 2 대 1로 붙어야 하기 때문에 마석도가 죽고 영화가 끝났을 것이다. (웃음) 칼을 소지할 수 없는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칼 없이 싸우던 백창기가 마석도에게 밀리다가 주변의 무기를 잡기 시작한 다음부터 전세가 역전되는 등 그 안에도 드라마가 있다. 시간이 좀더 지났다면 결국 마석도가 죽지 않았을까 하고 우리끼리도 생각했다. 그런데 마석도의 기술이라기보다는 투지, 피해자의 어머니와 했던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결국 초인적인 힘으로 발휘된다. 결투로 시작해 응징으로 끝난다. - <범죄도시>가 모든 투자배급사한테 거절당했을 때 마석도 역할을 맡지 못할 뻔했다는 비화가 있더라. = <범죄도시> 시나리오를 굉장히 오랫동안 만졌다. 어느 정도 시나리오가 완성됐다고 판단됐을 때 당시 모든 투자자들과 유명 제작사들에 보여줬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요즘 이런 유의 액션, 형사물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소재의 진부함을 지적받았다. 나는 그 내용을 다르고 알차게 만들 자신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마지막으로 마동석이 너무 약하니 주연배우를 바꿔야 한다고, 아니면 감독을 유명한 사람으로 바꿔주면 제작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제안을 받았다. 강윤성 감독은 17년 동안 감독 데뷔를 하지 못하다가 내가 <범죄도시>를 제안해서 함께 준비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와 했던 악속이 있기 때문에 마지막 제안은 거절했다. 유명한 배우들에게 장첸 역을 제안했을 때 “왜 내가 마동석의 서포터 역할을 해야 하는가”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마동석이 장첸을, 본인이 마석도를 연기한다면 함께하겠다는 배우도 있었다. 당시 <범죄도시>가 촬영에 들어가게 만드는 것이 미덕인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영화를 찍고 궁극적으로 프랜차이즈화하는 게 미덕인지 고민했다. 결국 당시 들어온 투자사들의 제안을 전부 거절했다. 덕분에 3~4년을 더 고생했다. 가까스로 투자를 받고 촬영에 들어갔지만 개봉 이후에도 난항이 많았다. - 당시 경쟁작이 <남한산성> <킹스맨: 골든 서클>이었으니까. = 배급시사 결과 <범죄도시>가 굉장히 낮은 점수를 받았다. 예상 관객수가 적었기 때문에 개봉관도 적게 받았다. 그런데 개봉주 주말 이상현상이 시작됐다. 좌석 판매율이 급등하면서 박스오피스 순위가 뒤집혔다. 그 후 <범죄도시>가 관을 많이 받게 됐다. 사실 스타트가 달랐다면 <범죄도시> 관객수(최종 688만명)도 더 많이 나왔을 것이다. - <범죄도시> 시리즈를 연출한 감독은 모두 신인이었다. 제작자로서 감독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 딱히 정해둔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강윤성 감독은 영화를 하고 싶어 하는 의지가 강했고 실제로 데뷔작을 잘해냈다. <범죄도시>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 조감독이었던 이상용 감독은 현장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니는 모습을 봤다. 감독이 모니터 앞에 앉아 있지 않고 발로 뛰어다니며 배우와 소통한다면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배우의 연기와 편집의 완성도를 끝까지 집요하게 끌어올리는 태도가 훌륭했다. <범죄도시> 후속편도 함께할 예정이다. 허명행 감독은 나와 오랫동안 많은 작품을 한 관계다. 굳이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이미 알고 있어서 호흡이 잘 맞는다. 기회가 되면 또 함께하고 싶다. - 실제 형사들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범죄도시> 시리즈의 근간이 됐다는 비하인드는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범죄를 묘사하는 것과 그것을 오락영화의 소재로 승화해 스토리텔링하는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과제다. 현실에 레퍼런스가 있는 사건을 형사물로 풀어낼 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 영화적 특성을 생각해야 한다. 형사들을 인터뷰하며 조사한 자료가 이만큼 쌓여 있다. 그중에는 수사물로서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건 <범죄도시> 시리즈가 아니지 않나.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지만 영화로 만들 수 없는 것들도 많았다. 액션영화라는 본질에 충실하되 최대한 사실성도 살릴 수 있는 소재를 찾아나간다. 실제 사건 여러 개를 하나로 엮다 보니 그 이음새를 잘 만들어야 한다. 이 사건은 마약반이 맞는지, 로컬 경찰이 맡는지, 기획 수사하는 광역수사팀이 투입되는지, 특별수사본부가 개입해야 하는지 따지는 과정도 무척 복잡하다. 하나하나 모두 고증을 받아야 했고 권일용 프로파일러에게도 디테일한 부분을 검수받았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범행 수법이나 수사 기법, 각종 비하인드를 보여주되 범죄자들에게 노출이 돼서는 안되는 부분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묘사도 어느 정도 수위가 맞을지 고민해야 한다. 통쾌한 액션을 위해서는 어떤 드라마가 필요한지도 연구해야 한다. - 취재는 어떻게 했나. 그 정도 디테일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만큼 형사들의 마음을 열게 하는 게 관건이었을 텐데. = 일단 경찰들은 많은 사람들이 범죄액션영화를 보기를 바란다. 범죄자를 때려눕혀서라도 응징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게 현실 아닌가. 영화를 통해 권선징악의 카타르시스와 대리만족을 할 수 있다. <범죄도시>를 도와줬던 윤석호 형사는 물론 다른 형사들과도 따로 모임을 갖고 있다. ‘명예경찰’로 위촉된 이후 현직 형사들을 많이 알게 됐다. 내가 들을 수 있고 받아도 되는 자료를 토대로 영화를 위한 자료조사를 할 수 있었다. - <범죄도시> 시리즈에 빌런들의 전사가 묘사되지 않는데 그 이유와도 연결되어 있나. = 원래 빌런은 그냥 나쁜 놈들이 많다. 악당들도 각자 사정이 있고 사채 빚이 많고 어머니는 아프다는 식의 사족을 만들지 않는 것이 <범죄도시> 시리즈의 특징이다. 구구절절한 사연은 배제하고 영화가 시작되면 바로 사건이 시작된다.

싸움꾼의 부드러운 주먹들, 마동석 배우론

주름진 눈썹과 오래된 흉터 사이에 묻혀 있는 어두운 눈. 사막 바람에 휘날리는 드레드록스 헤어와 태양 아래에서 반짝이는 청동빛 근육. ‘창이파’ 넘버3이자 철퇴를 휘두르는 도적 ‘곰’은 김지운 감독의 액션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작은 역할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스쳐 지나가는 캐릭터는 37살의 늦깎이 연기자인 마동석이 데뷔 초기 맡은 역할 중에서도 유난히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마치 얼굴에 난 깊은 상처처럼. 16년 후, 피지컬 트레이너 출신 배우 마동석은 역대 가장 성공적인 한국 배우 중 한명으로 10년 넘게 활동 중이다. ‘곰’의 철로 상징되는 압도적인 힘은 <범죄도시>의 파괴적인 주먹을 거쳐 넷플릭스 영화 <황야>에 이르면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마법처럼 다가온다. 매체를 넘나드는 ‘마동석 돌풍’은 2024년에도 그 위력을 전혀 잃지 않았다. 현대적이며 접근하기 쉬운 형태의 남성성 많은 외국 시청자들, 특히 지난 10년 동안 한국영화와 드라마를 발견한 사람들에게 마동석의 지울 수 없는 첫 이미지는 할리우드 데뷔작인 마블의 <이터널스>가 아니라 <부산행>에서의 보호자다. 아내 성경(정유미)의 보호자로서 KTX 열차의 좁은 통로에서 석우(공유)와 나란히 좀비를 막아선 상화(마동석)는 건장하고 강인할 뿐 아니라 착한 마음씨가 돋보였다. 그는 위기에서 우리를 보호해줄, 영웅의 뒷모습을 형상화한 존재였다. 넓은 등 뒤로 숨고 싶은 영웅의 이미지는 마동석의 특별하고도 대표적인 이미지다. 그는 여러 면에서, 특히 육체적으로 아널드 슈워제네거나 실베스터 스탤론을 연상시킨다. 할리우드에서 사랑받는 80년대 마초 액션 스타들의 초월적인 남성성이야말로 마동석의 근간이다. 마동석은 그들의 강인함은 물론 부성애를 바탕으로 한 아우라를 물려받았다. 이러한 매력은 그의 개그와 잽으로 못난 놈들을 처단하며 더욱 빛을 발한다. 그러나 80년대의 폭발적인 액션 보디와 파급력 있는 테스토스테론이 지금까지 유행하지 않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마동석은 80년대의 마초성에 그치지 않고 현대적이며 접근하기 쉬운 형태의 남성성을 지닌다. 그의 존재는 위압적이지만 그의 페르소나는 성적인 위협에서 거리가 멀다. 스크린에서 활약하는 마동석은 슈워제네거가 분한 ‘코난 사가’의 코난과는 다르다. 과거 많은 할리우드 액션 스타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히려 여성들의 보호자에 가깝다. 그는 <부산행>의 공유처럼 한국인의 심금을 울리는 부드럽고 잘생긴 외모는 아니지만 위협적이지 않다는 측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시선을 사로잡는 비주얼과 포용 가능한 귀여움은 가정적인 남자로 소비될 조건들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마동석은 보호자다. <부산행>처럼 직접 보호해야 할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범죄도시>처럼 동료 형사의 가족이나 평범한 시민들의 보호자 역할을 구현한다. 디스토피아의 황무지에 방치된 사람들, 악당들의 먹이가 되기 쉬운 사람들 앞에 마동석이 버티고 서 있다. 코미디를 장착한 실베스터 스탤론처럼 마동석이 지향하는 액션 스타는 아무래도 실베스터 스탤론일 것이다. 실베스터 스탤론의 <오버 더 탑>(1987)에 영향을 받은 듯한 마동석의 팔씨름 드라마 <챔피언>만 봐도 알 수 있다. 몇년 전 스탤론의 제작사 발보아 프로덕션과 팀을 이루어 칸영화제에서 상영된 범죄 스릴러 영화 <악인전>의 미국 리메이크 영화제작 소식이 들려왔을 때 당연히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고 느꼈다. 비록 그 이후 이 프로젝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지 못했지만, 언젠간 우리 모두가 꿈꿔왔던 돈 리(Don Lee)와 실베스터 스탤론의 대결이 성사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바라건대 팔씨름의 형태라면 더 의미심장할지도 모르겠다. 마동석은 공식적으로 해외에선 돈 리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영어 매체에서 약간의 혼란을 야기한다. 왜냐하면 이 별명은 또 다른 유형의 스크린 아이콘인 몇몇 홍콩 무술 스타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음성적으로는 도니 옌(Donnie Yen: 견자단)과 브루스 리(Bruce Lee) 사이 어딘가에 속하지만, 사실 마동석의 액션 스타일과 유머 브랜드는 성룡(Jackie Chan)과 같은 스타들에게 훨씬 더 빚지고 있는 느낌이다. 마동석이 할리우드 스타들을 능가하는 또 다른 지점이 다름 아닌 코미디이기 때문이다. 아널드 슈워제네거나 실베스터 스탤론은 상황을 시원하게 돌파하지만 사실 코미디적인 측면에서는 그리 인상적이지 않다. 반면 마동석은 웃음을 얻는 방법을 확실히 알고 있다. 물론 <압꾸정>에서의 과한 의상과 겉모습처럼 때때로 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마동석의 가장 재미있는 역할 중 상당수는 평범하고 코믹한 캐릭터들이었다. 이원석 감독의 <상의원>에서 관리자 판수가 보여준 그의 독특한 스타일처럼 말이다. 이렇게 거친 남자가 이토록 폭넓은 코미디 스펙트럼을 제공할 수 있다는 걸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마동석이 출연한 영화들은 그의 페르소나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성공적인 결과물일 뿐 아니라 그의 대표적인 캐릭터 마석도라는 이름에 어울린다. <범죄도시> 시리즈를 선택한 3천만명에 가까운 관객들은 이번 4편에서도 놀라운 사전 예매 수치로 그 애정을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한국영화 최초로 3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프랜차이즈의 탄생을 눈앞에 둔 상태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상업적 전망은 장밋빛이지만 시리즈가 확장됨에 따라 침체를 겪는 부분이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모든 결과물은 마동석이 사랑하고 사랑해온 요소들 중심으로 만들어졌지만 어둠도 짙어졌다. 그의 영화들은 마동석의 페르소나에 의존해왔는데 여기엔 캐릭터가 더욱 빛나도록 희생된 다른 캐릭터들이 있다. 마동석 외의 캐릭터가 덜 부각될수록 그의 영화들도 점차 덜 흥미로워진 것이다. 가령 윤계상 배우가 열연한 장첸은 <범죄도시> 1편에서 더할 나위 없는 강력한 적수였다. 이 시리즈는 진선규, 손석구, 최귀화, 박지환 같은 배우들의 새로운 발견을 통해 대중적인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범죄도시3>에서 마석도가 무자비한 단독 적수가 아닌 한쌍의 악당을 상대하기로 하면서 마동석과 대척점에 있는 빌런의 기여도에 대한 잘못된 계산을 해버렸다. (마동석이 <범죄도시> 시리즈를 8편까지 제작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제 관객들은 최소한 4편의 <범죄도시>를 추가로 약속받았다. 여기에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마동석 주연의 다른 프로젝트들도 있다. 마동석 월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렇기에 앞으로 마동석이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계획을 세우는지가 더욱 궁금할 때다. 그는 30대 후반에 스크린 데뷔를 했고, 42살에 첫 주연을 맡았다. 성적 학대를 다룬 법정 드라마 <노리개: 그녀의 눈물>에서 출발한 그의 페르소나는 이후 여러 이미지들이 더해졌고, 현재 한국 최대의 영화 스타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 지금 마동석은 53살이다. 이런 사실은 그가 가진 순수한 신체성이 얼마나 오랫동안 최고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자아낸다. 그가 지난 몇년 동안 얼마나 다작을 했는지를 고려해보면 그가 지금 맞서 싸우는 진정한 적은 시간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마동석은 오랫동안 업계에서 가장 헌신적인 일중독자 중 한명이다. 그는 성공적인 훈련 요법을 수행하듯 영화 경력을 쌓아나갔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체육관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했다. 톰 크루즈가 60대가 되어서도 우리의 마음과 상상 속으로 계속 달려들어 날아갈 수 있다면, 마동석이 그 길을 갈 수 없을 거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의 강펀치가 앞으로도 이어지리라는 쪽에 판돈을 걸 수밖에 없다.

JEONJU IFF #4호 [프리뷰] 장만민 감독, '은빛살구'

<은빛살구> 장만민/한국/2023년/122분/한국경쟁 회사 생활과 뱀파이어 웹툰 작업을 병행하는 정서(나애진)는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다. 계약금 납부까지 3일. 정서는 어머니에게 손을 벌려 보지만, 어머니는 되려 아버지 김영주(안석환)가 떼먹은 돈을 받아오라는 임무를 맡긴다. 하는 수 없이 정서는 바람을 피고 새 가정을 꾸린 영주가 있는 묵호항의 벌교횟집으로 차용증이 붙은 색소폰을 들고 향한다. 오랜만에 고향을 마주한 반가움도 잠시, 어머니의 돈을 갚을 의사가 없어 보이는 영주는 그녀를 지치게 만든다. 하루빨리 돈만 받고 불편하고 낯선 묵호항을 뜨려 하지만, 시종일관 살갑게 다가오는 이복동생 정해(김진영)를 보며 정서는 과거의 자신을 떠올린다. 은행(銀杏)의 한자는 은빛 살구를 의미한다. 고소한 과육을 둘러싼 속껍질이 반짝이기에 붙은 이름이다. 하지만 은행은 열매를 탐하는 포식자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외종피에 악취와 독성을 품는다. 악취는 쉽게 퍼진다. 이는 욕망도 마찬가지다. 거리가 가까우면 전염은 더 빠르다. <은빛살구> 속 돈을 향한 인물들의 태도가 가족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문제가 있다면 탐욕은 마치 흡혈귀와 같아 인과관계를 교란하고 만다. 생존을 위한 흡혈은 어느 순간 피를 갈망하는 삶으로 전치된다. 수단이 목적이 된 순간 가장 먼저 지워지는 이름은 가족이다. 정서가 마주한 남성들도 돈에 잠식된 뱀파이어의 형상을 따라간다. 그럼에도 영화는 악취와 독성 안에 남겨진 동질감의 과육을 발견한다. 뱀파이어와 가족 드라마 그리고 물신주의를 흥미롭게 교차시킨 <은빛살구>는 장만민 감독의 첫 장편 영화다. 상영 정보 5월 8일, 21:00 CGV 전주고사 6관

마동석 시네마틱 유니버스

마동석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서로 다른 차원의 우주 속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마동석은 똑같아 보이지만 서로 다른 분신을 가지고 있다. 마동석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주먹 하나 믿는 형사였다가도 금방 자신이 형사로 분했을 때 끝없이 잡으러 다녔을 법한 깡패가 된다. 마동석은 천년을 살며 한반도의 집과 가정을 보우하는 가택신이자 메소포타미아문명이 융성하던 시기로부터 지구를 지켜온 슈퍼히어로다. 철종 13년 조선 팔도 최고의 힘꾼은 21세기 대한민국에 와 결혼 전날 급감한 자신의 활력을 고민하고, 조선 정궁 최고의 트렌드세터는 바람 잘 날 없는 여성배우의 뒤치다꺼리를 도맡는 스타일리스트가 된다. 이 페이지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버스 점프처럼 다중우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마동석과 접속할 수 있는 기회다. 단언컨대 다른 우주에서 빌려 쓸 수 있는 마동석의 능력치는 비단 주먹만이 아닐 것이다. 돌고래유괴단의 <마동석 유니버스> 광고 마동석을 가지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찍어보려는 시도는 이미 한 차례 있었다. 돌고래유괴단이 찍은 암호화폐 거래소 코빗의 광고에서 마동석은 수많은 한국영화에 자신을 ‘가상 캐스팅’한다. 마동석은 <신세계>의 이중구(박성웅), <올드보이>의 오대수(최민식), <해바라기>의 오태식(김래원), 그리고 <아저씨>의 차태식(원빈)이 되어 각 영화를 패러디한다. 각 작품에 출연했던 실제 배우들이 카메오로 출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마동석의 캐릭터들 <부라더> 이석봉 <부산행> 윤상화 <38 사기동대> 백성일 <범죄도시> 마석도 <군도: 민란의 시대> 천보 <악인전> 장동수 <함정> 박성철 <상의원> 판수 <시동> 이거석 <챔피언> 마크 <굿바이 싱글> 박평구 <황야> 남산 <퍼펙트 게임> 박만수 <심야의 FM> 손덕태 <신과 함께-죄와 벌><신과 함께-인과 연> 성주신 <나쁜 녀석들!> <나쁜 녀석들: 더 무비> 박웅철 <부당거래> 마대호 <비스티 보이즈> 창우 <이터널스> 길가메시 <이웃사람> 안혁모 <결혼전야> 건호

[피플] ‘트랜스포머 ONE’ 조시 쿨리 감독, 고유의 해석과 설정을 담으려 했다

1984년 미국의 완구회사 해즈브로는 일본의 완구회사 다카라와 제휴를 맺고 ‘트랜스포머’ 프랜차이즈화에 돌입했다. 그래픽노블과 애니메이션에서 영화까지 확장된 변신 로봇은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올해로 40주년을 맞는 트랜스포머 프랜차이즈는 시네마틱 유니버스 최초의 애니메이션영화 <트랜스포머 ONE>을 공개할 예정이다. 영화는 오토봇의 총사령관 옵티머스 프라임과 디셉티콘의 수장 메가트론이 아직 전장에 발을 들이기 전, 오라이온 팩스(크리스 헴스워스)와 D-16(브라이언 타이리 헨리)으로 불렸을 시기의 이야기를 다룬다. <토이 스토리4>에 이어 <트랜스포머 ONE>을 연출한 조시 쿨리 감독도 어린 시절에 “만화부터 애니메이션까지 <트랜스포머>를 보며 자란” 소년이었다. 이번 작품을 맡은 이유도 “옵티머스 프라임과 디셉티콘이 과거 각별한 사이였다는 사실이 스크린에 담긴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영원한 숙적인 옵티머스 프라임과 디셉티콘의 과거는 “두터운 형제애”로 묘사했다. 예정된 파멸을 앞두고 있는 “둘 사이의 상황이 악화될 때, 관객들도 함께 아파하기”를 기대하며 내린 선택이었다. 전작들과 달리 이번 영화는 트랜스포머들의 고향 사이버트론이 배경이다. 인간이 전혀 등장하지 않으면서 “트랜스포머들이 경험하는 세계가 곧 영화를 지탱하는 세계”가 되었다. 따라서 “인간의 관점에서 트랜스포머들의 압도적인 크기에 집중했던” 기존 작법과 반대로 “트랜스포머보다 더 거대한 세계인 사이버트론”을 구성했다. 그 결과 황무지였던 원작의 사이버트론은 “생기 넘치고 아름다운 행성”이 됐다. 제작진은 “지구에 있는 화려한 광물들의 색감”을 차용해 “바람, 물의 흐름처럼 자연현상이 돋보이는 유기체적인 금속 공간”처럼 사이버트론을 묘사했다. 트레일러를 통해 공개된 트랜스포머들의 디자인은 40년 전 최초의 프랜차이즈인 트랜스포머 G1(제너레이션 원)을 떠올리게 한다. 조시 쿨리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보고 자란 G1 시리즈의 디자인은 가독성이 뛰어났다”며 “트랜스포머가 주인공인 만큼 행동과 감정을 명확히 드러내는 G1 특유의 디자인에 제작진만의 디테일을 추가”했다고 밝혔다. 트랜스포머는 미디어믹스마다 서로 다른 세계관이 존재한다. 조시 쿨리 감독은 처음 이 영화를 맡을 당시 “해즈브로사에서 트랜스포머 프랜차이즈의 모든 세계관과 설정이 담긴 매우 두꺼운 사전을 건넨” 일화를 언급하며, “고유의 설정과 제작진만의 해석을 모두 담으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또한 “팬뿐만 아니라 시리즈를 잘 모르는 관객도 쉽게 이해하고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김민하의 타인의 우주] 일기장을 훔쳐보듯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를 유심히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시각으로부터 시작된 자극이 오감으로 퍼져가는 시간이 소중했다. 워낙 소심했던 터라, 언변이 좋지도 않았을뿐더러, 사람들 앞에서 내 생각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말’이라는 것을 무서워했다. 쉽게 퍼져나가는 음성 속에 숨겨져 있는 날카로운 무게들이 나에겐 예민하게 다가왔다. 글쓰기는 아주 큰 위로가 되었다. 누군가에게, 혹은 스스로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생각과 느낌들을 물방울 튀기듯 툭 덜어낼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다. 투박하게 늘어놓은 단어들은 문장이 되었고, 이어진 문장들은 나의 자취로 남아 있었다. 그게 참 좋았다. 어떠한 대상을 관찰하며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종이에 적어내는 것이 어느샌가 작은 습관이 되어 있었다. 종종, 내가 글을 즐겨 쓰는 것을 아는 지인들은 어떤 식으로든 글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었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거니와, 일기 수준인 나의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퍽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한번 용기를 내고 싶다는 마음이 공존한 상태로 보류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번 <씨네21>에서 프로젝트를 제안받았다. 시작을 할 수 있는 ‘장’이 있다는 것이 안도감을 주었다. 예전에는 ‘주제’도 ‘독자’도 ‘틀’도 정해져 있지 않아 주저하는 시간이 길었던 것임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단순했다. 같이 손을 잡고 갈 수 있는 이들이 있어서 고민의 순간은 찰나였다. 꽁꽁 숨겨둔다고 해서 더 값지게 빛나는 것이 아닐 텐데. 용기를 내보면 어떨까. 어렸을 적 시작된 작고 소소한 습관을 나눠보면 어떨까. 나에겐 더더욱 값진 순간이 아닐까. 영화와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울타리 안에서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 아닐까.이러한 결심으로 앞으로 1년간 나의 관찰 일지를 소개해볼까 한다. 거창하지 않을 것이다. 너무 미세해서 눈살을 찌푸리고 가늘게 눈을 떠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 동물, 사물을 관찰하는 것에서부터 한 인물을 구축하는 나만의 과정, 끝이 나지 않는 탐구.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혼자만 간직하다가 공개를 하려니 어색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어색한 시작이 무한 동력이 되어, 좋은 고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의 계획을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특정 대상을 바라보고 느낀 점, 그의 행동이 될 수도, 함께 나눈 대화를 통해 느낀 점이 될 수도 있겠다. 같은 상황 안에서 여러 다른 리액션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아닌 나 자신의 관찰과 성찰 또한 적어내려가고 싶다. 그 과정에서 어떠한 부분들을 배역에 녹여냈는지도, (부끄럽지만) 소개할 예정이다. 그렇기에, 지극히 사적인 대화와 경험들이 많이 포함될 것이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독자들이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본다는 느낌이 들었으면 한다. 소망이 있었다. 자주 웅얼대고, 혼잣말을 많이 하고, 작은 목소리를 가졌던 내가, 용기를 가졌다는 것, 그리고 현시점에서 아주 큰 목소리는 아니더라도, 나의 목소리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용기를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나의 소망이 어쩌면 가장 전하고 싶은 말일지도 모른다. 함께 유유히 흘러가고 싶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가끔씩 유난스럽게도 보내면서, 속절없이 부는 바람도 실컷 마주하면서. 그렇게 묵묵히 바라보면서 소소한 1년을 잘 부탁드린다.

JEONJU IFF #2호 [인터뷰] '쿨리는 울지 않는다' 감독 팜응옥란, “시간의 절대적 방향성을 존중하고자 했다”

오랜만에 고국에 돌아온 응우옌(민 쩌우)에게 현대의 하노이는 어색하다. 결혼을 준비하는 조카 반(하 푸엉)의 단순한 삶의 태도는 더욱 이해할 수 없다. 반이 백화점과 지하철을 오가며 오늘을 살아가는 사이 응우옌은 추억이 담긴 장소들을 방문하며 먼 과거를 더듬는다. 영화는 어떠한 사념도 없이 응우옌의 순례에 차분히 동행한다. 옛 노래의 빛바랜 음색을 통해, 흑백의 거친 촉감을 통해, 쿨리의 신비로운 눈을 통해 그녀의 깊은 회한을 감각한다. 팜응옥란 감독은 개인의 기억과 베트남의 현대사를 우아하게 엮어낸 장편 데뷔작 <쿨리는 울지 않는다>를 들고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진중한 눈빛으로 시간과 공간을 바라보는 팜응옥란 감독의 이야기를 전한다. - 공간, 인물, 사건 등에서 이전에 제작한 단편들과 느슨히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 처음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마음먹은 때가 2016년이다. 그때부터 <쿨리는 울지 않는다>의 제작을 준비하며 다른 단편영화 두세 편의 각본을 병행 집필했다. 촬영 또한 장편 제작을 위해 공간을 물색하는 과정에서 다른 단편들을 찍은 것이라 보면 되겠다. - <쿨리는 울지 않는다> 속 하노이는 응우옌이 거니는 구시대적 공간과 조카 반이 누비는 현대적 공간으로 양분된다. 본인이 실제로 체험하는 하노이의 모습을 반영한 설계인가. = 영화 속 공간의 설계는 개인적인 경험과 각본상의 필요성을 조합하는 과정이다. 나는 하노이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도시 속 여러 공간에 대한 추억이 많다. 각본을 쓰며 특정 장면의 배경을 상상하면 자연스레 나의 기억 속 장소들 중 하나가 떠오른다. 하노이 바깥의 로케이션도 대부분 이전에 한 번 이상 가본 곳들이다. - 영화의 차분한 태도와 걸맞은 흑백 연출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초기 기획 단계에서는 컬러 촬영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 프리프로덕션을 마무리할 때까지만 해도 컬러로 진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촬영을 앞두고 배우가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한동안 전체 진행이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정해진 일정을 넘기면 투자금이 사라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세트 등의 제작 비용이 덜 드는 흑백 연출을 선택하게 되었다. 물론 단순히 흑백 필터를 덮어씌운 건 아니고, 흑백의 색감에 맞추어 각본 전체를 재작성했다. 그 과정에서 영화 속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한 감각을 구현해 보고자 하는 욕심을 갖게 되었다. 더불어 90년 전 베트남의 고전 영화들을 떠올리게 하는 질감도 표현해 보려 노력했다. - 시간의 흐름을 강물로 은유하는 등 그간 꾸준히 베트남의 역사 속 시간의 유동성에 천착해 왔다. 시간의 개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을까. = 어렸을 적 할머니랑 함께 잔 기억이 많다. 내게 항상 ‘Thiên Thai’(천국)라는 이름의 자장가를 불러주셨는데, 영화에서 응우옌이 방문한 클럽에서 흐르는 바로 그 노래다. 가사에는 두 명의 화자가 나온다. 천국 같은 섬에서 살다가 고향에 돌아왔더니 이전에 살던 세계에 비해 이곳의 시간이 너무 느리거나 빠르게 흘러간다는 내용이다. 영화 속에서도 그런 시간의 상대적 감각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영화 속 세계가 실제와 한없이 가까워질 때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또 꿈과 가까워질 때는 어떻게 감각되는지 양측을 오가며 담아보고자 했다. - 자연의 풍경과 소리를 긴 호흡으로 담는 장면들이 마치 다큐멘터리와 같은 인상을 준다. 평소에도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이 있나. = 원래는 건축을 전공했었다. 이후 영화로 전향하는 과정 중 다큐멘터리 제작을 먼저 공부하게 되었다.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촬영은 대상의 실제 인상을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작법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극영화 속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에 요긴하게 활용한다. 영화 속 세계가 내내 개인적이고 상징적인 영역에 치우치는 것도 적절하지 않고, 실생활에 온전히 밀착하는 것도 지양하려 한다. - 응우옌은 자주 과거를 추억하지만, 영화는 그녀의 전사를 플래시백으로 보여주는 대신 보이스오버로 들려주는 방식을 취한다. 지나친 주관적 감상에 빠지지 않으려는 마찬가지의 이유에서일까. = 한 번 흘러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법칙의 절대성을 존중하고자 했다. 때문에 영화는 그녀의 회한에 직접 진입하지 못하고 그저 경청할 수밖에 없다. - 영화 속 세계가 꿈과 현실 사이에서 중용을 지키는 것처럼, 영화는 각 세대의 가치관의 우열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세상을 바라보는 당신의 중립적이고 관조적인 태도는 무엇에서 기인하나. = 베트남의 한 자연과학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본인은 너무 부유하지도 않고 너무 가난하지도 않은 환경에서 성장했는데 그 덕분에 가난한 자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고 부유한 자들의 생각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언제나 중간자의 역할을 자처하며 세상을 온전히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마음가짐을 배웠다. - 반에게 왼쪽 손이 없다는 사실은 이야기의 흐름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 심지어 그녀의 손에 대한 언급조차 찾기 힘들다. = 우리는 항상 다양한 배경과 계층의 인물을 그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제작한다. 그리고 그들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 노력한다. 나이 드신 분은 사회적 책임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누릴 것이고, 어린아이는 순수한 대사를 읊을 것이다. 그런 자연스러운 풍경 속에서 장애인들도 그들 본연의 모습으로 존재했으면 했다. 캐스팅 때에도 반의 장애 유무는 전제 조건이 아니었다. 반을 연기한 하 푸엉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그저 패션과 연기에 관심이 있는 고등학생이었고, 푸엉이 요가를 하는 모습에서 반의 이미지를 발견했기 때문에 캐스팅하게 되었다. 촬영 시에도 카메라가 절대 반의 손을 의식하지 않도록 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쇼트들은 반을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게 무심히 바라볼 뿐이다. - 베트남 정글에 서식하는 야생동물 쿨리가 응우옌의 동반자로 등장한다. 많은 동물 중 어째서 쿨리를 택했는지 궁금하다. = 쿨리라는 동물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눈이라 생각한다. 동그랗고 초롱초롱한, 풍부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눈이다. 특히 응우옌 역의 민 쩌우 배우의 눈과 쿨리의 그것이 닮았다 느낀다. 어린 시절 민 쩌우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커다란 스크린에 담긴 그 분의 눈은 오랫동안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에 영화를 만들며 자연스레 민 쩌우를 캐스팅하게 되었고, 쿨리의 눈을 보면서도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지 않았나 싶다.

JEONJU IFF #2호 [스코프] ‘목화솜 피는 날’ 전주톡톡 “슬픔과 애도를 전유하지 않도록”

시민과 관객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전주톡톡은 영화인들의 현장 경험,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 작품과 현시 사이를 잇는 메시지 등을 가볍고 유쾌하게 들어볼 수 있는 토크 프로그램이다. 5월 3일 금요일, 청명한 날씨가 이어지는 가운데 문화광장 부근의 소담한 카페에서 <목화솜 피는 날>의 감독과 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작품을 지휘한 신경수 감독을 필두로 박원상, 우미화, 조희봉, 최덕문 배우가 관객들을 만났고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할 준비를 마쳤다는 듯 적극적으로 질문을 꺼내는 공승연 배우가 진행을 맡았다. '코리안시네마: 세월호 참사 10주기 특별전'에 소개된 <목화솜 피는 날>은 10년 전 참혹한 사고로 둘째 딸을 잃은 부부 병호(박원상)와 수현(우미화)의 이야기를 다룬다. 10년 동안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외쳐온 병호는 다른 유가족들과 갈등에 충격을 받아 기억을 잃고 만다. 서서히 희미해지는 과거에도 그에게는 마음 한 편에 영원히 잊지 않는 것이 있다. 이른 아침부터 카페 앞에 줄 지어 토크 프로그램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금세 공간을 가득 메웠다. 따뜻한 관심 어린 눈빛은 종종 웃음 소리로 변해 희망을 보냈다. 이날의 사회를 맡은 것은 신경수 감독이 PD 시절 제작한 드라마 <소방서 옆 경찰서>로 인연이 닿은 공승연 배우. 미리 작품을 보고 온 그는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참관객을 위한 기본 사항부터 영화를 깊이 파고드는 것까지 다양한 관점의 질문을 건넸다. 영화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묻자 조희봉 배우가 과거를 회상하며 답하고 있다. “대본 리딩할 때부터 사람들이 먹먹하고 슬퍼했다. 그제야 알았다. 지난 10년 동안 나 또한 내 안에 내재된 트라우마가 있었다는 걸. 그런 슬픔을 모두가 끄집어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서 더 선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 영화를 촬영하는 과정에 신경수 감독이 가장 신경 쓴 것은 세월호 선체를 촬영하는 일이었다. 실제 선체 안에 들어가자마자 과거의 기억들로부터 감정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스탭들이 많아서 그것을 보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다독여야 했다. 촬영 회차가 8회차로 상당히 짧았기 때문에 현장을 대하는 집중과 몰입이 중요했지만, 세월호를 향한 스탭·배우들의 감정을 추스르는 일은 놓치지 않았다. <목화솜 피는 날>의 수현을 연기한 우미화 배우는 “영화 속에 물리적인 10년이 다 담긴 건 아니지만 긴 시간 동안 유가족들에게 쌓여 온 슬픔과 그들이 겪은 일들은 잘 보여주려 했다. 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공감한다면 앞으로의 10년은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목화솜 피는 날>은 그간 사회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온 창작집단 연분홍치마가 제작한 첫 극영화이면서도 4.16참사가족협의회가 공동 제작 주체로 참여했다. 장면 중간중간 실제 유가족이 배우로 등장하는데, 조희봉·최덕문 배우가 이 때의 기억을 되짚었다. “돈을 받고 연기를 하는 직업 배우와 다른 무게였다.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자기 안의 경험을 끄집어내는 모습들이 보였다.”(조희봉 배우) “우리는 준비를 하고 감정을 조절해서 연기하는데 이들은 그 자체로 툭툭 내뱉는다. 거기서 진실된 감정이 느껴졌다. 영화에는 진상 규명을 외치던 유가족들이 내부 갈등으로 싸우는 장면이 있다. 다툼을 말리기 위해 내가 “그만해! 그만하라고!” 악을 쓰며 소리를 지른다. 근데 그때 실제 유가족분이 뒤에서 “그만해~” 하고 묵직하게 딱 한 마디 던지는데 그게 그렇게 울림이 있었다. 진짜 그만해야 할 것만 같고, 그만하게 되는. 이 갈등을 해소시키고 싶은 제동 장치로서 기능하는 느낌이었다. 영화의 한 끝을 올린 부분이라 생각한다.” 참여자들이 깊이 공감하는 풍경이 가득한 전주톡톡 프로그램은 40여분의 밀도 높은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영화의 흐름과 메시지를 명쾌하게 짚어낸 모더레이터 공승연 배우는 <목화솜 피는 날> 극장 개봉을 위해 텀블벅 펀딩이 진행 중이라는 설명도 함께 덧붙였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신경수 감독이 마지막 말을 전했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가 피해자나 약자에게 너무 가혹한 국가가 돼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영화를 만들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먼저 슬퍼하지 말자. 슬픔과 애도를 우리가 전유하지 말자. 영화를 보면 마음 아프지만 밝고 긍정적인,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몸부림이 담겨 있다. 세월호 하면 떠오르는 공통된 이미지가 있지만 그것보다 더 다양한 풍경을 말할 수 있는 기점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