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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젊은 법학도들이 영화에서 희망과 영감을 얻기를, <기후재판 3.0> 닉 발타자르 감독

2015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열렸다. 이 회의에 참여한 195개국은 파리협약을 체결한다. 파리협약은 지구 평균온도의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2도로 제한하며 이를 위해 협약 당사국 모두 자발적으로 탄소 배출량 감축을 국가별 목표에 따라 실현할 것을 타결한 조약이다. 이후 수많은 국가에서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기후변화로 발생한 손실과 피해에 대해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인 ‘기후 소송’이 벌어졌다. 수많은 소송의 중심엔 변호사 로저 콕스가 있다. 그는 실제로 네덜란드의 일곱 환경단체와 함께 에너지 기업 셸을 고소한 이후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19년 수준 대비 45% 줄일 것”을 법으로 주문한 우르헨다 소송을 승리로 이끌어낸 환경운동가이기도 하다. 지금 로저 콕스는 “그간 기후 소송이 정부, 기업을 대상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었다면 이젠 기업 이사들에게 책임을 묻는 ‘기후재판 3.0’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후재판 3.0>은 로저 콕스가 어떻게 기후 소송에 뛰어들었고 그가 소송에서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지를 정리한 다큐멘터리영화다. 영화의 연출자이자 기후활동가인 닉 발타자르 감독과 화상으로 만나 나눈 대화를 전한다. - 오랜 기후 운동 동료인 로저 콕스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연출하게 된 배경은. = 나는 주로 극영화를 만든 영화감독이다. 동시에 나는 기후활동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언젠가 로비스트들이 등장하는 기후-환경 스릴러를 만드는 게 궁극의 꿈이다. 그러다 로저를 알게 됐다. 어느 날 로저가 소송을 준비 중인 셸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을 때, 로저와 함께라면 역사적인 사건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다큐멘터리에 필요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로저는 농담조로 “나는 출연하지 않을 거예요. 내가 주인공이면 아마도 영화 역사상 가장 지루한 다큐멘터리가 될 테니까요”라며 고사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 말을 듣지 않고 바로 영화화 준비에 들어갔다. - 로저 콕스의 고사에도 불구하고 그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 할 당위는 무엇이었나. = 개인이 변혁을 일으킬 수 있는 훌륭한 예시 아닌가. 많은 이들은 자신이 직면한 거대한 문제 앞에서 무력감을 느낀다.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난점을 시작도 하기 전에 체감하기 때문이다. 로저의 출발점은 환경운동가가 아니었다. 그는 육식을 좋아했고, 새해나 생일에 선물로 자동차 신상품 카탈로그를 받을 때 가장 기뻐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영화에 등장한 대로 <불편한 진실>을 관람한 후 충격에 휩싸인다. 지금 그는 엄격한 비건이고 비행이나 운전, 옷 소비를 최소화한 삶을 산다. 단적인 예로 로저는 늘 단일한 재킷만 입고 셔츠는 다섯개가 전부다. 로저와 동년배인 나도 그와 비슷한 시기에 <불편한 진실>을 보았다. 나는 몇년간 여행 프로그램을 연출하던 터라 다량의 탄소를 배출하는 비행기를 장시간 타고 다녔고, 많은 친구들에게 비행기 여행을 권장했다. 나 역시 <불편한 진실>을 시청한 이후 내가 지구에 진 빚을 탕감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불편한 진실>을 시청한 이래 영화로서 기후 위기에 대한 인식을 관객들에게 촉진하는 삶을 살고 있고, 로저는 자신의 모든 지식과 법률 전문성을 총동원해 기후 행동에서 가장 중요하고 희망적인 혁명 중 하나를 일으켰다. - 당신은 이미 전작 <타임 오브 마이 라이프>에서 탄소중립적 영화제작을 시도했다. 이번 <기후재판 3.0>을 만들 때도 비행기를 전혀 타지 않는 등 탄소중립적 촬영 현장을 운용하려 노력했다던데. = 나는 감독이자 제작자로서 영화산업의 자성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영화판엔 확실히 “우리는 영화를 만드니까, 우리가 남기는 폐해는 예술을 위한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풍조가 있다. 그래서 <타임 오브 마이 라이프>를 만들 땐 이 영화가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할지 추산했고, 탄소 감축 방향을 전방위로 고려했다. 당시 우리가 영화 촬영장에서 평균적으로 나오는 쓰레기양의 1/4만 만들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또한 우리는 네 가구가 1년간 사용하는 정도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다. 말로 들었을 땐 상당한 배출량처럼 보이지만 이는 다른 영화 촬영장에 비하면 극미량이다. 그만큼 촬영 현장에서 발생하는 탄소량이 상당하다는 방증도 되겠지. 또 세트 위치를 정밀하게 계산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제작자과 배우들의 기거지와 가까운 곳에 세트를 지으면 탄소 배출뿐 아니라 제작비까지 절감할 수 있다. 이번 영화를 찍을 때도 여러 가지를 고려했다. 촬영 전문가가 전세계에 있는 상황에서 왜 미국, 영국, 파키스탄 등으로 원정을 가야 할까? 오늘의 인터뷰처럼 화상회의를 통해 현지의 스태프들에게 직접 디렉션을 건넬 수 있다. - 영화는 로저 콕스의 기후 소송이 이어질 것을 암시하며 끝난다. 로저 콕스를 주인공으로 한 시퀄을 기대해도 좋을까. = 갑자기 존 레넌의 명언이 떠오른다. “삶이란 당신이 다른 계획을 세우느라 바쁠 때 당신에게 일어나는 것.” (웃음) 로저는 지금 셸 관련 소송에서 항소 중이고, 화석연료 투자를 지원하는 전세계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나는 그걸 찍지 않기로 했다. 내 카메라에 담지 않아도 이미 나비효과처럼 다양한 기후 소송이 전세계 법정에서 제소 중이고 심지어 승소하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 당신은 영화에서 로저 콕스가 촉발한 전세계의 기후 운동의 흐름을 잔물결 효과로 명명했다. 이 영화가 전세계 관객들에게 어떤 물결을 촉발했으면 하나. = 우리의 목표는 이 영화를 보아야 할 모든 관객에게 소개하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아야 할 관객의 수요에 부응하고 싶다. 바라건대 젊은 법학도들이 영화에서 희망과 영감을 얻었으면 한다. 지구를 파괴하는 것이 소수의 이익을 대변하는 행위란 걸 발언했으면 한다. 다큐멘터리스트로서의 바람도 있다. 나와 로저의 삶이 <불편한 진실>을 통해 바뀌었듯 누군가도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관객도 삶의 다른 면을 개척했으면 좋겠다. 그게 다큐멘터리의 힘 아닐까.

[인터뷰] 쓰레기 사회학, <문명의 끝에서> 임기웅 감독

도시의 수많은 쓰레기는 어디로 갈까. <문명의 끝에서>는 사람들이 더 일찍이 궁금해했어야 하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코로나19 이후 실내 생활 증가와 배달 서비스 소비 급증으로 매일 수만톤의 쓰레기가 생산되지만 이들의 목적지와 처리 과정을 궁금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문명의 끝에서>는 단순히 쓰레기가 지나가는 경로를 안내하기보다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역적 위계, 정치적 갈등, 부동산과 계급 불균형 문제 등을 묵직하게 따라간다. 한마디로 ‘쓰레기 사회학’에 가깝다. 감독 임기웅은 “쓰레기 문제는 지구적인 문제이지만 동시에 지역적 문제”라고 중심 화두를 짚었다. 전체 쓰레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건설폐기물은 한국 사회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땅덩어리가 넓은 미국은 사막 같은 황무지를 활용하여 쓰레기를 매립하지만 그에 비해 여분 토지가 많지 않은 한국은 매립지를 둘러싸고 지역간의 눈치싸움이 벌어진다. “국가에서 관리하는 재활용 선별장을 방문하면 잘 관리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일반 민간 기업이 운영하는 폐기물 처리시설에 갔을 때 받은 충격을 잊지 못한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쓰레기도 놀라웠지만 그곳에서 일하던 노인들과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시선이 멈췄다. 왜 쓰레기는 꼭 약자들이 전담하게 될까. 쓰레기가 버려지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꼭 다루고 싶었다. 계급적 관점으로 쓰레기를 해석하면서 폐지 줍는 노인의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문명의 끝에서>는 쓰레기의 순환을 구조적으로 접근한다. 임기웅 감독은 “쓰레기 매립 비율은 전기 소비 형태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전체 전력 소비량에서 산업용 소비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면 영업용이 30%, 가정용이 20%에 해당한다. 쓰레기 또한 평균적으로 건설폐기물이 50%, 산업용이 30%, 가정용이 20%에 달한다. “넷플릭스 해양다큐멘터리 <씨스피라시>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해양쓰레기의 대부분은 산업쓰레기라고. 이 구조를 알아야 쓰레기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직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다만 관객과 시민들이 자신을 제외하고 산업만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챕터를 둘로 나눴다. 1부에서 생활적인 부분을 건드린다면 2부에서는 산업 측면으로 접근하여 거시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도시의 욕망은 곧 쓰레기 문제와 계급 문제로 이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새집, 새 건물을 통해 부의 축적에 공을 들일 때 부숴진 아파트의 잔재는 또다시 바다로 산으로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문명의 끝에서>는 관객에게 일상적 실천을 강요하거나 촉구하는 목소리를 지니진 않았지만, 작은 바람이 있다면 모두가 각자의 집과 공간을 아껴 쓰면 좋겠다. 너무 쉽게 버림받지 않도록 오래오래.”

[포커스] 김기영의 <하녀> 1위, 한국영상자료원 ‘2024 한국영화 100선’ 공개

‘2024년 한국영화 100선’에서 역대 최고의 한국영화로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가 선정됐다. 그 뒤를 <살인의 추억>(봉준호, 2003)이 바짝 쫓았다.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영상자료원)은 창립 50주년을 맞아 지난해 6월부터 8월까지 ‘2024년 한국영화 100선’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학계·저널·창작·산업 관계자를 두루 포함한 선정위원 240명이 조사에 참여했다. 선정 대상 작품은 한국의 가장 오래된 극영화인 <청춘의 십자로>가 제작된 1934년부터 2022년까지 제작·개봉한 국내 장편영화(극영화,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예술영화, 실험영화, 애니메이션 등 포함)였다. 영상자료원은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선정된 100편의 작품 중 상위 10편은 득표수에 따라 순위를 매겼다. 나머지 90편은 제작연도순으로 나열했다. ‘2024년 한국영화 100선’ 전체 목록을 비롯한 선정위원 명단, 영화별 코멘트 등은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의 리스트 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는 영상자료원이 2014년에 진행한 ‘2014년 한국영화 100선’ 조사에 이어 다시 1위를 차지했다. 2014년 공동 7위에 올랐던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 단독 2위로 순위 상승했다. 3위에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이 이름을 올렸다. 이어서 <오발탄>(유현목, 1961), <올드보이>(박찬욱, 2003),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1975), <시>(이창동, 2010), <8월의 크리스마스>(허진호, 1998), <헤어질 결심>(박찬욱, 2022),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홍상수. 1996)이 상위 10위권에 선정됐다. 박찬욱 감독은 7편의 연출작으로 100선 내에 가장 많은 작품을 올렸다. 다음으론 임권택 감독이 6편, 이만희·이창동 감독이 5편, 김기영·배창호·봉준호 감독이 4편, 이장호·이명세·이준익 감독이 3편으로 100선에 포함됐다. 100선 내 영화에 가장 많이 출연한 남자배우는 안성기·송강호(10회), 여자배우는 배두나(4회)였다. 한국영화사, 시대의 변화 ‘2024년 한국영화 100선’엔 ‘2014년 한국영화 100선’보다 더 많은 21세기 이후 작품과 여성감독의 작품이 포함됐다. 한국영화사를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의 바람이 분 것이다. 2014년 상위 10개 목록에 선정된 21세기 이후 작품은 <살인의 추억>뿐이었다. 반면에 2024년 상위 10개 목록엔 가장 최근작인 <헤어질 결심>을 포함해 21세기 이후의 작품이 총 5편 뽑혔다. 대신 <자유부인>(한형모, 1956), <마부>(강대진, 1961), <별들의 고향>(이장호, 1974) 등 21세기 이전 작품들이 10위권 밖으로 이동했다. 전체 목록에서도 21세기 이후 영화가 39편 선정되며 최근작의 비율이 높아졌다. 1940~60년대 영화의 비중은 2014년 30편에서 2024년 15편으로 감소했다.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 홍상수 등으로 대표되는 21세기 전후 감독들의 작품이 한국영화사의 새로운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영상자료원은 “선정위원들이 21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한국영화를 높게 평가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2014년 한국영화 100선’엔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1995)이 유일한 여성감독의 영화로 이름을 올렸지만, ‘2024년 한국영화 100선’엔 여성감독들의 작품 8편이 추가돼 총 9편이 됐다. 새로 선정된 작품은 <미망인>(박남옥, 1955), <와이키키 브라더스>(임순례, 2001), <고양이를 부탁해>(정재은, 2001), <두 개의 문>(김일란·홍지유, 2011), <도희야>(정주리, 2013), <비밀은 없다>(이경미, 2015), <우리들>(윤가은, 2016), <벌새>(김보라, 2018)다. 영상자료원은 “여성감독 영화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이 달라진 것으로 확인된다”라고 설명했다. ‘2024 한국영화 100선’은 240명의 선정위원을 ‘보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으로 나누어 설문을 진행했다. 선정위원의 성격에 따라 설문의 결과에도 차이가 있었다. ‘보는 사람’ 상위 10선에 선정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휴일>(이만희, 1968), <복수는 나의 것>(박찬욱, 2002)은 ‘만드는 사람’ 상위 10선엔 뽑히지 않았다. 반대로 ‘만드는 사람’ 상위 10선의 <8월의 크리스마스>, <밀양>(이창동, 2007), <박하사탕>(이창동, 1999)은 ‘보는 사람’ 상위 10선에 없었다. 선정위원 중 ‘보는 사람’엔 영화 연구자, 영화 비평가, 영화제 프로그래머 등 171명이 포함됐다. ‘만드는 사람’은 영화감독, 촬영감독, 프로듀서, 배급 및 극장업 관계자 등 69명으로 구성됐다. 한편 영상자료원은 ‘2024 한국영화 100선’ 조사 결과를 기념해 특집 도서 <한국영화 100선>을 오는 6월 발간한다. 책에는 100선 선정작 리뷰, 100선 외 한국영화사에서 주목해야 할 작품의 목록, 보존이 필요한 TV와 OTT 시리즈, 한국영화사 연표 등이 수록된다. 추가로 영상자료원은 100선 선정 과정에 대한 영상자료원 담당자들의 대담 영상을 공개하고, ‘2014년 한국영화 100선’을 정리한 단행본 <한국영화 100선-영화학자, 평론가가 뽑은 한국영화 대표작>을 전자책으로 펴낼 예정이다.

[CULTURE BOOK] ‘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

송경원 지음 바다출판사 펴냄 글쓰기는 쓰고자 한 글과 쓴 글을 가능한 한 닮게 만들려는 노동이다. 여기에는 필연적인 틈새가 발생하기 마련인데, 대체로 머릿속의 이상을 눈앞의 현실이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상상의 지평선을 훌쩍 넘기는 무언가에 당도하기도 한다. 2009년 <씨네21> 영화평론상을 수상하며 영화평론가로 데뷔한 뒤 2012년부터 <씨네21> 기자로 활동하다 2023년에 편집장이 된 송경원의 첫 평론집 <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가 출간됐다. 기자와 평론가 사이에서 그가 찾아낸 영화 글쓰기의 해법은 어떤 것이었는지 만날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그의 글을 오랫동안 읽어온 독자로서 첨언하자면, 만화, 애니메이션(<바람이 분다> <3월의 라이온> <환상의 마로나>)과 게임에 대해서라면 그의 분석은 언제나 좋은 읽을거리가 된다. 이 책에 실린 글 중에서 <덩케르크> <1917>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탑건: 매버릭> 같은 액션 혹은 전쟁영화에 대한 글은 놓치기 아깝다. 불완전하고 흔들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당대의 엔터테인먼트를 오늘의 눈으로 읽어낸다는 점이 이 책의 매력이다. <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에 실린 글을 읽는다는 것은 2020년대 시네필의 고민과 두려움을 공유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시네마라는 단어는 조롱 반 진정성 반의 상징적 단어가 되었고, 영화 관람이라는 행위는 극장의 대형 스크린이 아니라 손바닥에 놓인 스마트폰의 화면으로 축소된 듯 보일 때도 있다. 이런 시대에 영화를 보고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지에 대해, (기존 발표된 글을 묶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신기하게도 반복해 질문하고 답한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서사는 늘 빈약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덩케르크>는 왜 영화라는 매체가 전쟁에 반복되어 매혹되는지를 ‘영화적 움직임’이라는 시각으로 읽어낸다. 이 영화에서 “무성영화 시대의 움직임”을 읽어내는 순간은 다시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아이리시맨>에 대한 글은 유머를 구사하는 데는 재능이 없어 보이는 이 저자의 글 중에서 비교적 웃음기를 띠고 읽을 수 있는 글로, 졸음으로 무력해졌던 관객도 “시간이 필요한 이 고전적인 연출”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지에 대해 감동하게 만들 만하다.

매혹적인 수련자, 청춘스타 허광한에 관한 오해 혹은 진실

대만의 타임 슬립 로맨스 드라마 <상견니>가 아시아 전역에서 흥행하자 주연배우 허광한에게는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 타이틀이 스스럼없이 붙곤 했다. 그의 인기 요인은 매스컴에서든 개인 블로그에서든 대체로 ‘첫사랑 외모’로 정리됐다. 그리하여 허광한은 메가 히트 데뷔작에서 외모로 뜬 청춘스타로 대중에게 알려졌으나 이같은 정의에는 오해가 있다. <상견니>가 방영하던 2019년에 그는 이미 데뷔 7년차였고 <상견니>는 그의 8번째 장편 드라마 출연작이었다. 극 중 허광한이 동시에 소화한 리쯔웨이와 왕취안성이 그토록 근사해 보였던 건 그가 어느 시간대에서든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남자의 숭고한 순정을 정확하게 표현해냈기 때문이다. 허광한이 가진 탁월한 캐릭터 분석력과 풍부한 표현력의 연원을 찾기 위해선 무명 시절이었던 2015년, ‘Q Place 연기교실’의 2기 수강생이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Q Place’는 8명의 대만 감독이 자국의 쇠퇴하는 드라마 산업을 일으킬 신인배우를 육성하겠다는 포부로 설립한 아카데미로, 그곳에서 그는 혹독한 커리큘럼에 몸을 맡겼다. 기초 발성과 고급 테크닉은 물론, 물을 가득 받은 대야에 머리를 집어넣으며 수중 연기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는 법을 자비 없이 배웠다. 하드 트레이닝의 결과는 마지막 관문인 Q Place 제작 단편 드라마 시리즈 <식극장>에 참여하면서 빛을 발한다. 2016년 이 시리즈에 속하는 <폭풍연애가족전>과 <지앙선생의 딜레마>에 연달아 출연한 그는 허세 가득한 바람둥이 대학생과 강한 성적 충동을 느끼는 지적장애인을 맡아 처음으로 대중적 관심을 받는다. 특히 <지앙선생의 딜레마>는 그에게 첫 연기상 노미네이션(제52회 금종상 시상식 남우조연상)의 기쁨을 안긴 각별한 작품이다. 이 드라마에서 “이제 어떤 배역을 맡아도 두렵지 않을 것 같은” 용기를 얻고 난 뒤 그는 자유롭고 파격적인 소재(<경계선의 남자> <해길랍> <메리 마이 데드 바디>)를 다루거나 긴 시간을 다뤄 연기적 근력이 필요한 (<여름날 우리> <상견니> <청춘 18×2 너에게로 이어지는 길>) 작품을 선택하며 필모그래피를 다채롭게 꾸렸다. 허광한이 대만 청춘물의 적임자인 여러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예민하고 풍부한, 멜로드라마적인 감수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는 그러한 감수성을 음악을 하며 키웠다. 꽤 실력 좋은 초등학교 탁구부 선수였던 2003년, 주걸륜의 뮤직비디오에 탁구 소년으로 출연하면서 가수와 배우를 조금씩 경험한 그는 10대 후반 교내 밴드부 보컬로 활동하며 전자를 진로로 택했다. 그러나 대학에 진학한 뒤 준비하던 보이그룹이 소속사 문제로 무산되면서 생계를 위해 카페, 모델 아르바이트를 병행했고 돌고 돌아 2013년, 말레이시아 드라마 <잠입람중람>을 통해 배우로 데뷔했다. 본업이 되진 못했지만 늘 음악을 곁에 둔 그는 수많은 사랑 노래와 청춘을 보내며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는 상태에 늘 자신을 놓아두었다(결국 2020년 10월27일 첫 싱글 앨범 《별재상견아》를 발표했고, 신곡은 발표 당일 대만 최대 음원 사이트 ‘KKBOX’에서 1위를 차지했다). <상견니> 이후 5년 사이 허광한은 현재 아시아 전역을 대표하는 젊은 남자배우로 자리를 굳혔다. 2020년 중국 대표 예능프로그램 <쾌락대본영>에 출연했을 때 진행자에게 “모두가 좋아했던 드라마에 출연해 항상 보고 싶었던 남자”로 소개받은 바 있는 그는 ‘하나의 현상’(<보그 타이완>)이 되었고, ‘2023년 올해의 남자’ ()로 선정돼 아이코닉한 인물이 되었다. 2023년 주연작 <메리 마이 데드 바디>는 대만 극장 개봉 당시 ‘입지전적인 성적’(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통신원 리포트)을 거두어 배우로서의 흥행성을, 같은 작품으로 제60회 대만금마장영화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어느새 데뷔 12년차 30대 중반에 진입한 허광한은 비리 경찰(<만천과해>), 킬러(한국 시리즈 <노 웨이 아웃: 더 룰렛>)로 변신해 초창기 에너제틱한 면모를 한국 대중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내공과 매혹을 품은 그는 지금 성숙한 청춘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김민하의 타인의 우주] 세상의 모든 선자들에게

‘울 딸 손 하나 건드리기만 해… 가만 안 둬.’ 2023년 6월, 엄마가 보낸 문자메시지다. 촬영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 엄마와 통화를 하던 중 평상시에는 잘 이야기하지 않던 서러움을 그날따라 구구절절 술회했다. 별일도 아니었는데 유난히 서러워서 눈물이 나왔던 날. 잘 준비를 마치고 핸드폰을 열었는데 엄마에게서 온 문자 한통. 그것도 두 시간쯤 지난 후였다. 가만 안 둬. 그 짧은 문자 한통으로 날 울리는 모든 것을 무찔러주는 슈퍼우먼이 우리 엄마였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세 자녀 중 막둥이로 태어난 나에게 엄마는 강인하기만 했었다. 어렸을 적, 엄마에게서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엄마에게 뭐든 물어보았고 허락을 맡았다. 엄마는 나에게 백과사전이었다. 좋아하는 오래된 기억 중 하나. 다음날 학예회 준비로 노래 연습을 하던 4~5살의 나. <바둑이 방울>이라는 동요를 텔레비전을 보며 누워 있는 엄마 앞에서 연신 불러댔다. 내가 20번을 부르면 엄마는 20번 박수를 쳐주었다. 게다가 매번 다른 칭찬을 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대단한 일이다. 그래서 엄마에게 “엄마, 그때 나 안 귀찮았어?”라고 물어보면 “그게 뭐가 귀찮아? 귀엽잖아”라고 대답한다. 8살 때, 16살이던 큰언니가 유학을 갔다. 공항에서 작별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엄마는 덤덤했다. 우는 아빠를 위로해주며, 영영 못 보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서럽게 우냐며, 멋있게 토닥여주던 엄마였다. 집에 도착해서 왠지 모르게 어색하게만 느껴지는 집을 천천히 적응하던 찰나, 엄마의 훌쩍이는 소리를 들었다. 조심스럽게 안방 문을 열었고, 엄마는 침대 난간에 앉아, 처연히 울고 있었다. 엄마는 그렇게 한동안 울었다. 옆에 앉아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엄마도 우는구나. 엄마도 괜찮지 않구나. 엄마도 무섭구나. 엄마를 처음으로 안아주었다. “엄마는 어떻게 딸 셋을 키웠어?”라고 물어보면 “엄마니까” 하고 웃으며 대답한다. 이보다 더 명확한 대답은 없다. 엄마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파친코>를 촬영하며 다시 한번 느꼈다. 선자는 두 아이의 엄마인데, 아직 딸밖에 해보지 못한 내가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엄마가 되면 어떤 마음일까? 두터운 고민을 했었다. 그리고 선자의 아들, 노아를 낳는 장면을 촬영할 때의 일이었다. 진짜로 임신을 한 것도 아니었고, 촬영장에 있던 아기도 나의 아이가 아니었지만 극도로 예민한 상태가 되었다. 아무도 이 아이를 해치지 않았으면 했다. 내 품에 이 아이가 안겼을 때, 나의 온기가 부디 아이의 숨결에 전해지길. 실컷 토해내는 울음에 부디 막연한 두려움과 서러움도 함께 훌훌 보내버리길 염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켜줘야겠다며 스스로 다짐했다. 놀라웠다. 처음 느껴보는 막강한 힘이었다. 이틀 동안 진행된 분만 장면에서, 처음으로 엄마란 이런 것이겠구나 하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이삭이 체포된 후, 두 아이와 남겨진 선자에게는 슬퍼할 틈이 없었다. 일어나야 했다. 더 큰 목소리로, 부지런히 김치를 팔며 자신과 아이들을 지켜내야 했다.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강인하게, 간절하게 만들었을까. 사랑이었으면 했다. 아무것도 설명되지 않는 이 혼돈 속에서, 사랑만이 유일한 희망과 원동력이라고 생각했다. 노아와 모자수, 경희, 요셉, 이삭 그리고 고향에 있는 양진까지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의 이유. 예전에, 엄마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민하야, 나는 너희를 너무 사랑해. 그게 다야. 엄마가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그거 하나야. 사랑해, 내 딸.” 그렇기에 엄마는 나의 슈퍼우먼, 백과사전, 자존감, 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엄마의 말을 두고두고 기억하기로 결심했다. 꽃이 피면 촉촉해지고 나무가 흐드러지면 같이 물이 드는 엄마. 맑고 투명한 엄마는 엄청난 용기로 우리를 키우는 수세월 동안 풍파를 겪으며 딸로서, 여자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멋진 사람으로서 혹은 어떤 이름으로 그렇게 우리 가족 모두가 찾는 만인의 여인이 되었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이제는 엄마가 날 찾아주었으면 한다. 한없이 두려워질 때, 괜찮지 않을 때, 누군가가 보고 싶을 때, 혹은 아무 이유가 없어도 상관없다. 엄마의 이야기는 뭐가 됐던 간에 귀엽고 따뜻할 테니 말이다. 얼마 전부터, ‘하루에 한번 이상 안아주기’를 부모님과 실천 중인데, 여러분에게도 추천한다. 말 한마디 필요 없는 포옹 속, 깊은 대화가 오고 갈 것이다. 지금에서야 보이는 엄마의 연약함은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오늘 엄마와의 포옹 속에선 반드시 사랑한다는 말을 전할 것이다. 꼭 지켜주겠다고, 걱정말라고. 엄마가 그랬듯 나도 엄마의 집이 되어주겠다고.

[기획] 과거에 서서 영화의 미래까지 사랑하다, 난니 모레티 감독의 픽션 페르소나는 어떤 변화를 관통하나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순탄할 리 없다. 이를 영화를 만들어본 적 없는 관객도 수많은 ‘영화 만들기 영화’를 통해 학습해왔다. <찬란한 내일로> 속 영화 만들기도 마찬가지다. 베테랑 영화감독 조반니(난니 모레티)가 5년 만에 만드는 제목 미상의 신작 영화는 프로덕션 내내 난항‘만’ 겪는다. 처음 함께한 제작자 피에르(마티외 아말릭)는 가끔 현장에서 이상행동을 하고 주연배우 베라(바르보라 보뷸로바)는 대부분 감독과 상충하는 해석을 내놓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평생 조반니의 영화를 제작한 아내 파올라(마르게리타 부이)는 조반니에게 별거를 선언하고 딸 엠마(발렌티나 로마니)는 부모보다도 연상인 폴란드 대사 예지(예지 스투흐르)와 열애 중이다. 바람과 대척을 이루는 현실 앞에서 관객은 조반니의 신작을 두고 찬란한 내일을 낙관하기 어렵다. 오히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결말을 비관하게 된다. 희망을 놓지 않고 영화제작의 투지를 불사르는 작중 캐릭터는 조반니가 유일하다. 감독인 난니 모레티가 직접 연기한 조반니는 영화 그 자체를 형상화한 캐릭터다. 그게 아니라면 조반니처럼 살기는 어려워 보인다. 조반니는 파올라가 제작 중인 신예감독의 촬영 현장을 찾고 두번이나 기함한다. 급기야 감독이 지정한 폭력 신의 구도를 문제 삼은 뒤 건축가, 수학자, 미술사학자 심지어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과 전화 연결까지 동원하며 후배 감독이 프레이밍을 바꾸어야 하는 까닭을 열변한다. 조반니는 굳이 신작의 크랭크인 전 온 가족을 모아놓고 자크 드미의 <롤라>를 감상하는 오랜 의식을 펼친다. “하던 대로 안 하면 모든 게 틀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신작 촬영 내내 조반니가 불평하는 건 베라가 신은 슬리퍼처럼 뒤가 트인 구두(뮬)다. 조반니는 대체 왜 슬리퍼를 신고 출근하냐고 툴툴대며 <더 파더>의 앤서니 홉킨스, <블루스 브라더스>의 어리사 프랭클린의 걸음걸이가 현실에 존재하길 바란다. 그런데 조반니의 바람은 언제나 좌절된다. 신인감독은 날이 새도록 충고하는 선배가 무색하게 본인이 찍고 싶은 대로 마지막 장면을 완성한다. <롤라>의 오프닝 시퀀스가 올라간 이후 아내와 딸은 각자의 사정으로 소파를 떠난다. 베라 또한 아랑곳 않고 뮬을 신고 현장을 누빈다. 파올라는 조반니에게 “다들 이런 영화 만들고 이런 영화 봐”라며 대꾸하고, 베라는 “누가 요새 정치물 봐요? 이 영화도 사랑 이야기 아녜요?”라고 되묻는다. 하지만 조반니는 파올라가 말하는 ‘이런 영화’의 대척점을 원하고 베라가 의문시하는 정치물을 만든다. 조반니는 현실도 영화의 논리로 살고자 하지만 현실은 당연히 영화를 비켜나간다. 조반니가 저항하는 것, 고수하는 것 그런데 조반니는 포기하지 않는다. 고꾸라질지언정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는 조반니의 궤적엔 감독 난니 모레티의 이름이 자연히 겹친다. 조반니 모레티가 난니 모레티의 본명이라는 점까지 나아가지 않아도 좋다. 자신이 영화에 등장할 때면 분신으로 미켈레를 내세웠던 난니 모레티는 <나의 즐거운 일기>(1994) 이후 직접 조반니(혹은 난니)를 대놓고 출연시켜 메시지의 대리인으로 삼았다. 다만 로베르토 로셀리니나 페데리코 펠리니 등 선배 감독의 흔적을 찾는 <나의 즐거운 일기> 속 조반니와 달리, <찬란한 내일로>의 조반니는 직접 영화 속에서 자기의 작품을 연출 중이다. 어떻게든 본인이 원하는 방향대로 영화를 만들려는 조반니의 모습에도, 실제 영화처럼 편집된 조반니의 신작에도 지난 50년간 영화를 만들어온 난니 모레티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령 신작에 어깃장을 놓는 넷플릭스 제작진을 향해 타비아니 형제의 <성 미켈레의 수탉>(1972) 결말을 언급하는 조반니의 모습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시네마 계보에서 타비아니 형제의 직속 후계자로 난니 모레티가 위치하는 영화사의 맥락이 더해진다. 혹시 관객들이 놓칠세라 “나는 네오리얼리즘 영화를 찍고 있다”고 고백하는 후배 감독을 바라보는 조반니의 리버스숏까지 친절하게 존재한다. 조반니는 영화의 주인공이자 풍자의 대상이다. 영화는 변한 영화계의 현실을 한탄하며 자기의 방식을 고집하는 조반니를 무구한 존재로 그려 연민하기보단 제 분수를 모르는 사람처럼 그리길 택한다. 조반니가 원하는 영화 세상은 제목부터 모레티의 창작론을 그대로 보이는 장편 데뷔작 <나는 자급자족한다>(1976)로부터 이미 반 세기 가까이 떨어져 있다. 수집한 우표를 청산해 번 돈으로 구매한 슈퍼 8mm 카메라로 장편 데뷔작을 찍던 70년대의 영화 청년은 변한 현실에 투덜대지만 은연중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 조반니를 담는 촬영 방식의 변화가 이를 분명히 한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파시즘의 잔재를 영화와 대중매체에 동치한 <나의 즐거운 일기>에서 카메라는 조반니의 뒷모습을 끝없이 트래킹했다. 하지만 <찬란한 내일로>의 카메라는 조반니의 뒷모습에 카메라를 거의 가져다대지 않고 오로지 조반니의 정면만 담는다. 조반니는 더이상 영화보다 앞장서서 영화와 이탈리아 정치사의 교차점을 좇지 않는다. 그걸 좇기엔 그사이 시간도 많이 흘렀고 모레티의 영화사적 위치도 달라졌다. 그저 시네마의 끝자락을 절실히 붙잡는 조반니의 곁에 머물며 그의 앞모습을 담을 뿐이다. 조반니는 사그라지지 않는 영화를 향한 첫사랑을 끝까지 고수하려 하지만, 시차에 비례해 그의 사랑과 이격이 생기는 현장을 바라볼 때 분노한다. 제 작부의 한 젊은 스태프는 1956년 이탈리아 정치적 격변기를 다룬 신작의 시놉시스를 듣자마자 “이탈리아에도 공산당이 있었어요?”라고 해맑게 반문한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현장엔 누군가의 실수로 두 차례나 이어폰, 목 마사지기 등 현대의 물건이 존재한다. 이를 매번 조반니가 발견하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과거의 배경에 뜬금없이 놓인 현대의 물건처럼, 조반니 역시 현대의 영화가 거의 요구하지 않는 과거의 스피릿을 유물 삼아 무장한 채 2023년에 서 있다. 한데 조반니가 바라는 시네마는 결국 동료들과의 협업으로 완성된다.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이 이를 명백히 보여준다. 붉은 페인트가 묻은 붓을 든 장인 넷이 줄에 의존해 벽을 내려오며 <찬란한 내일로>의 원제인 ‘IL SOL DELL’ AVVENIRE’를 그린다. 바로 이어지는 장면이 영화 속 영화임을 눈여겨볼 때, 장인들의 원숙한 합으로 시작하는 이 장면은 영화 속 영화의 오프닝으로도 영화 전체의 오프닝으로도 볼 수도 있다. 엔딩에 이르면 <찬란한 내일로>에 등장한 모든 출연진이 거리를 행진한다. 그리고 이들 중 일부는 조반니가 영화의 결말을 통째로 바꾸어야겠다고 말하는 순간 저마다 자기가 생각하는 결말을 이야기한다. 결국 조반니와 불화하던 이들도 때가 오면 소리 높여 지금 찍는 영화에 대한 사랑을 기꺼이 고백하는 존재들이다. 모두가 웃으며 영화는 끝난다. 조반니는 모든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까. 그래도 조반니가 적당히 융통성을 발휘하지 않고 세상과 불화하길 바란다. 모든 문제를 대사로만 전달하는 연출의 수가 영화의 치명적 단점으로 다가오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혹은 듣다보면 그의 잔소리도 어느새 정겹게 느껴진다. 그리고 카메라 뒤에서 이를 흐뭇하게 바라볼 난니 모레티 영감의 미소도 어쩐지 눈앞에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