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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너무 노련해지지 말기로 하자, <탈주> 배우 구교환

한 사람은 가까워지려고 하고 한 사람은 달아나려 할 때 좀더 외로운 쪽은? <탈주>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이는 아무래도 보위부 장교인 현상(구교환)이지만, 그의 무시무시한 집념에도 불구하고 종국에 애처로워지는 한 사람도 현상이다. 일찍이 <반도>(2020)에서 디스토피아의 광기를 애절하게 풀이한 바 있는 구교환의 해석력은 이번에도 인물의 옆구리를 비스듬이 파고들어 여기 숨겨진 상처와 흉터들을 좀 보라고 넌지시 가리킨다. 규남의 아버지를 운전기사로 고용한 고위층의 자제로 러시아 유학 시절 피아노를 전공했고, 그때 묘령의 남성과 돈독한 관계를 형성했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는 인물에 대해 우리가 거듭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되는 이유다. 돌이켜보면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확장하기 시작한 뒤 구교환은 곧잘 추격자였다. 주인공을 가로막는 안타고니스트로서의 지위는 <반도>의 서 대위, 아신을 쫓는 <킹덤: 아신전>의 아이다간과 흡사하다. <길복순>에서 복순을 위협하는 의외의 천적인 한희성, 탈영병을 수소문하는 의 한호열, 동생의 복수를 도모하며 기생수를 쫓는 <기생수: 더 그레이>의 설강우도 추적의 궤적을 따른다. 이는 동시대 장르영화에서 배우 구교환의 긴요한 쓰임을 알려주는 중요한 지표이자 그가 언제나 특정한 인물을 심중에 품은 채 활보하는 정념의 소유자였다는 공통분모도 엿보게 한다. 한마디로 전형과 비전형 사이를 오가는 절묘한 재능의 소유자, 배우 구교환은 장르영화의 충실한 일원을 자처하는 동시에 어디서든 구교환답게 녹아드는 단독자다. <탈주>는 그 연장선상에서 배우의 특질을 선명하게 조각한 작품으로 기억될 듯싶다. 시작과 종점에서 사뭇 다른 채도를 띠는<탈주>처럼, 앞으로의 구교환도 쉬이 예상되지 않는다. <왕을 찾아서> <부활남> <폭설> 등 부지런한 차기작 행보를 예고한 그는 행여나 마감이 늦어질세라 하반기에 계획 중인 첫 장편영화 연출작 크랭크인의 소식도 부지런히 알리고 있다. - 이종필 감독이 추격자 리현상 캐릭터는 배우를 만나 시나리오가 더욱 입체화된 경우라고 밝혔다. 캐릭터에 색을 입힌 과정을 들려준다면. =기존의 현상도 멋있었다. 클래식한 멋스러움이 있었달까. <터미네이터>의 액체인간 T-1000처럼 ‘저 사람을 이길 수 있을까’ 싶은 공포감을 조성하는 상징적인 추적자 캐릭터였다. 그러다 나라는 사람을 해석하는 이종필 감독의 시선에 따라 변화구들이 더해졌다. 그 과정에서 내 바람으로는 더욱 담백해지고 싶었다. 자기 감정에 빠져 있는 악역은 징그러워지기 십상이다. <탈주>는 서스펜스가 중요한 영화고 내가 규남을 확실히 공격해야 하는 역할이니까, 자기 연민이나 치명적인 척하는 느낌이 도드라지지 않도록 중화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시사회날 보니 여전히 아주 살짝 치명적인 척하는 느낌이 나온 것 같기도 하고…. (웃음) - 센 악역이란 점에서 오랜만에 <반도>의 서 대위를 떠올리게 하는데, 영화를 보면 볼수록 오히려 단편영화 시절의 구교환도 겹친다. 영화가 뜻밖에 청춘의 코드를 건드리기도 하고, 지금껏 구교환의 단편영화에서 묘사된 청년들이 마음과 다르게 행동이 엇박자로 나가는 아웃사이더들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리현상은 아주 장르적인 캐릭터로 기획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구교환의 계보 속에 적절히 놓이게 됐다. =이종필 감독님과 작업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가 이거였다. <반도>의 구교환이 아니라 사실상 내 공식적인 첫 필모그래피라 할 수 있는 <아이들>(2008)의 구교환을 아는 사람이니까. 우리는 2009년 인디포럼에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때부터 나를 재료로 해석해줄 연출자가 텍스트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를 더해줄 거란 기대와 궁금증 같은 게 있었다. 왜 그럴 때 있지 않나. 저 사람이라면 나를 발견해줄 거야, 그런 마음이 들 때. - 이종필과 구교환, 둘의 인연은 어떻게 흘러왔나. =우리는 따지고 보면 희한한 관계다. 오래전부터 알아왔고 그렇다고 아주 친한 사이도 아니었지만 또 위닝은 같이 해본 적 있다.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은 <미씽: 사라진 여자들>의 시사 뒤풀이 자리였다. 밤이 깊어지고 어느 순간 눈이 딱 마주쳤는데 너무도 자연스럽게 “같이 따로 나갈까요?” 같은 분위기가 되어서 감자탕집으로 이동해서 아침까지 술을 마셨다. 내가 한창 상업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을 때였는데, 이종필 감독이 고맙게도 아주 본질적인 질문을 툭툭 던져주었다. “지금 시나리오, 왜 쓰는 거예요?” 같은. 그날 이종필 감독은 말하자면 <탈주>에서 규남이 기억할 만한 어린 날의 현상, ‘피아노 형’ 같은 사람이었다. 에너지가 정말 좋았거든. 나한테 <탈주>의 리현상은 자신이 설정한 어떤 벽에 갇히기 전까지 이종필 감독 같은 사람으로 설정돼 있다. - 구교환의 일면을 꿰뚫는 감독의 고유한 시선이 특별히 흡족스러웠던 장면도 있을까. =내가 아주 좋아하는 현상의 모습 중 하나가 숲속 장면이다. 부하들이 규남과 일당을 향해 격발할 때 혼자 차 안에 앉아서 ”시끄러워”라고 작게 신경질적으로 읊조린다. 약간 제인(<꿈의 제인>) 같기도 하고, 캐릭터 표현에 있어 내 취향과 잘 맞는 감성이라고 할까. 자기가 시켜놓고 자기가 괴로운, 그래서 마음 안에서 뭔가 비죽 튀어나오는 순간 같다. 감독님이 캐릭터의 뾰족한 순간을 테이크에 담아내려고 했고 편집하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게 고맙다. 그 남자의 손이 말하는 것 - 그 흔한 전사가 없는 영화다. 대신 현행하는 인물의 디테일들이 숏을 채운다. 리현상은 ‘손’의 움직임으로 설명되는 인물 같다. 총격과 피아노 연주, 그리고 마술까지. =그러니까 <탈주>는 리현상만 놓고 보면 수많은 그립을 잡는 손의 영화다. - 아까 현상을 스스로 설정한 벽에 갇힌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게 보면 피아노를 치는 시간이 그에게 허용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마침 현상은 정념이 넘쳐흐르는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한다. =규남의 액션이 질주라면 현상의 액션은 피아노가 아닐까? 피아노 앞에서의 무브먼트가 현상에게는 일종의 탈출 과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 이 사람에게도 분명 탈출 같은 분출이 필요할 테니. 현상의 키워드는 리듬감이다. 피아노 칠 때뿐만이 아니라 동굴 수색을 할 때도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의 리듬을 듣고 상대의 위치를 파악한다. 메트로놈처럼 움직이는 사람, 그렇게 상대를 계속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 최초 탈주에 발각되어 곤경에 처한 규남을 현상이 데리고 오는 길에 도로 위에서 다짜고짜 손수건 마술을 선보이는 장면은 어떤 맥락에서 탄생했나. =마술 장면은 규남과 현상 사이의 아이스브레이킹 혹은 두 사람의 관계에 관한 관객과의 아이스브레이킹이 되어주는 장면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더 중요한 건, 규남을 만난 것을 현상이 좋아하고 있다는 점일 테다. 나는 그 지점이 마음에 든다. 갑자기 마술하는 리현상을 이상한 인간으로 볼 수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완전 애정 표현이다. 현상 입장에서도 용기를 내서 규남에게 ‘내가 과거의 그 피아노 형’이라고 사인을 보내는 것이다. - 갑자기 살짝 애틋해진다. =영화의 표면에서 강조하지는 않아도 나에게는 그런 힌트들이 중요했다. (웃음) 하나의 또 다른 유니버스를 이야기해볼까. <탈주>는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주고받은 만큼 최종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버려진 컷도 많다. 파이널컷을 보고 든 생각은 현상을 절묘하게 조각해주셨다는 것이다. 들판에서 규남이 일부러 총맞은 척하고 쓰러지는 장면에서 또 다른 테이크가 하나 있었다. 죽은 줄 알았던 규남이 일어나서 도망가자 현상이 자기도 모르게 씩 웃는 컷이다. 그 생존이 반가운지 아닌지 어사무사한 표정으로 나로서는 감정을 최대한 숨겨서 살짝 웃었지만, 영화 전체 구조상 현상의 감정과 컨디션이 벌써 드러나면 안되는 지점인 게 맞다. 그러니까 그 시점에서 딱 보여주어야 할 수위까지 감독님이 정확하게 잘라서 보여준 셈이다. - 총을 쏘라고 지시해놓고 실제로 죽지는 않았으면 좋겠고. 이를테면 약간 <팬텀 스레드> 같은 관계 아닌가. =정말!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영화! - 징벌과 애증의 코드가 묘하게 중첩된 감정선이 현상이란 인물을 따라가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전면에서 도드라지는 건 립밥을 바르는 장면 같은 캐릭터의 표현적 디테일이다. =립밤 바르는 장면은 약간 리현상의 브이로그 같지 않나? (웃음) 캐릭터의 일관성 측면에서 외적인 면에 신경 쓴다는 것이 중요했다. 껍데기를 유지하려 애쓰는 행동에서 자기 컨디션을 들키고 싶지 않은 현상의 심리 같은 것도 읽어볼 수 있겠다. 불안과 공포를 들키고 싶지 않은 남자다. 스스로 자기 레이어를 계속 만드는 사람이어서 립밤, 포마드, 핸드크림, 향수 뒤에 겹겹이 숨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아마 바르면 바를수록 본인을 가두는 셈일 것 같다. 그러니까 오직 뷰티의 목적만은 아니었다고 말해두고 싶다. - 원래 여성 캐릭터였던 인물을 남성으로 바꾸어 배우 송강이 연기했다. 리현상이 북한으로 넘어오기 전 러시아에서 연인 관계는 아니었을지 유추해보게 된다. 이 관계에 대한 팬덤 반응이 폭발적인데. =러시아에서 현상에게 큰 영향과 영감을 준 사람임이 분명하다. 현상은 북한에서의 자기 모습을 그에게 보여주기가 싫고 부끄러울지도 모른다. <탈주> 안의 관계에 대해 다비치의 <두사랑>을 많이 들었다. 내 해석은 그렇다. 젠더가 어떻든 간에 서로 치열하게 몰아붙이고 냉정하게 평가하는 관계에서 갑자기 펑! 하고 사랑이 불붙는 관계 구도를 좋아한다. - 추격자 캐릭터의 숙명은 자신이 좇을 대상을 항상 생각한다는 점이 아닐까. <탈주>에서 구교환에게 상대역 이제훈은 어떤 존재였나. =어떤 역할을 맡아도 늘 상기하는 게 있다. 나는 상대역이 내 연기도 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연기 혹은 그 사람의 감정이 곧 내 것이다. 심플한 구도의 <탈주>는 그 점이 더더욱 위력을 발휘하는 컨셉의 영화일 테고. 나는 제훈씨가 내 역할도 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일했다. 마찬가지로 내 연기도 제훈씨에게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내내 품었다. 상대배우와의 호흡이란 게 함께 등장하지 않는 순간에도 서로 ‘해주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러니까 이제훈 배우가 처음 나를 상대역으로 호출해주었을 때의 기쁨은, 나도 당신의 거울이 될 수 있어 좋다는 감정이었던 것 같다. 데칼코마니가 된다는 게 말이 쉽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같이 만들고 있다” - 기자회견에서 규남을 추적할 때 발휘되는 현상의 비범한 청력을 두고 “정말 간절히 바랄 때 잠재력이 발휘된다”는 말을 했다. 인간 구교환에게도 살면서 그런 순간이 있었을까. =거의 매 순간 그렇게 되려고 한다. 왜냐하면 내가 쉽게 진심이 티 나는 사람이라서? 그러니까 정말로 좋은 생각을 하려고 한다. 모든 작업을, 모든 사람을 각자의 장점대로 좋아해본다. 그게 때로는 자신의 뇌를 속이는 걸지라도 계속하다보면 진실이 되더라. 좋은 것은 더 좋게 만들기, 내가 내 생각을 믿게 만들기. 두 가지를 기억하려고 한다. 단편 <사람냄새 이효리>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듣는다”는 말은 실제로 내가 쓰는 말이다. - 구교환을 본격적으로 독립영화계에 알린 단편 <왜 독립영화 감독들은 DVD를 주지 않는가>(2013)가 나온지 10년이 훌쩍 지났다. 독립영화의 아이콘에서 상업영화의 주연으로 존재감을 확장한 시간이었다. 최근에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 적 있나. =2009년 <남매의 집>부터 쳐도 정말 신기하게 자신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냥 타임라인이 쭉 이어지는 느낌? 좀처럼 플래시백을 하지 않고 그냥 한신 한신 넘어가는 중이다. 스스로 느끼는 감각은 끊임없이 취직, 퇴사, 이직 중인 것 같은…. (웃음) 그런 면에서는 삶의 시간이 막 헝클어져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쉽게 표현하기가 어렵다. 어쩌면 매끄럽게 정리되기를, 너무 노련해지기를 스스로 경계하고 있는 중인지도. 작품 선택이나 작업의 방향이 앞으로 쭉 그랬으면 좋겠다. 무언가 빌드업해나가려 의식하지 않으려 한다. 아직은 조금 덜 노련하고 싶다. - 그럼에도 자신도 모르게 쌓인 시간의 효과가 있지 않을까. =(작품별 커피차 스티커를 붙인 테이블 위의 텀블러 가리키며) 이거! 요즘에 한참 텀블러 꾸미기에 빠져 있다. 후회라면 너무 늦게 시작한 거다. 앞선 작품들 스티커까지 차근차근 모아서 붙여놓았으면 좋았을걸.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이제야 배우가 내 ‘직업’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을 최근에서야 해봤다. 일하는 과정의 작은 것들을 잘 들여다볼 수 있는 태도가, 그나마 아주 미세한 여유가 생긴 것 같아서 그게 무척 기쁘다. - 그렇다면 요즘 배우 구교환의 시야에 새롭게 들어오는 것들은. =사람들이 보인다. 제작진의 얼굴을 더 자세히 보게 된다. 최근에 느꼈던 걸 꼭 말하고 싶다. 촬영하다가 주위를 둘러싼 스태프들을 쭉 둘러보는데, 내 시야에서 모든 스태프들의 얼굴이 단 한명도 ‘더블’되지가 않는 거다. 이유가 뭘까? 그들이 다 우리를 보고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들이 각자의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위치를 잡았기 때문에 모든 얼굴들이 아주 촘촘하게 그러나 중첩되지 않은 채로 펼쳐지게 된 거다. 그게 얼마나 감동적인지 모른다. 결혼식장에서 조금씩 위치와 각도를 조정해서 모두의 얼굴이 나오게 신경 쓰기라도 한 것처럼. 연기를 한다는 게 외롭지 않은 요즘이다. 그 든든함에 감사한다. 우리는, 같이 만들고 있다. - 하반기에 첫 장편 연출작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다. <반도> 이후 배우로서 선택과 집중이 분명한 시간을 보냈다. 이제 새로운 챕터인가. =전념의 과정에서 나름대로 확고한 바람 하나가 있었다. 관객들과 친해지기. <반도>가 나한텐 출사표였다. 우리가 누군가와 친해지려고 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이다. 자주 만나고, 밥 먹고, 그저 같이 무언가를 하고. 그래서 계속 연기했다. 가까워지면 내 취향을 더 알려주고 싶지 않나. 그런 마음으로 연출작에 초대하려고 한다. 나의 영점은 언제나 관객이다. - 그러니까 드디어 구교환의 서랍을 열어보여줄 정도로 우리들(관객)이 친해진 건가. =그렇지. 그동안은 디스코 팡팡 돌고 롯데리아 가서 햄버거 먹고 즐겁게 보냈다면 이제 ‘우리 집에 놀러 올래?’ 단계다. 연출작은 우리 집의 내 방 같은 거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다. 물론 하반기 연출작 계획을 일부러 더 이야기하고 다니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얘기 안 하면 스스로 마감을 안 지킬 것 같아서. - 감독 겸 주연배우로 출연할 계획이 있나. =그렇다. 그리고 상대배우가 깜짝 놀랄 만한 인물이다. 아오이 유우? 아니, 나카야마 미호 수준의 임팩트를 줄 만한 배우를 캐스팅하려고 준비 중이다. 큰 영화는 전혀 아니다. 거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른들의 작은 멜로임을 알려드린다. - 출연작, 차기작 리스트만 보아도 내년까지 쉴 새 없이 바쁘다. 지금은 문가영 배우와 멜로영화를 한창 촬영 중인데. =그래서 1일1식 중이다. 풋풋한 어린 시절부터 성인기까지를 모두 담는 작품이다보니 관리가 필요하다. (웃음) 지금 혼자서 세미 양조위를 노리고 있는데 잘되려나…. 아, 그렇게 비교한다면 내 코드 안에는 언제나 임청하도 있다. 따지고 보니 리현상은 <동방불패>의 임청하쪽이다.

[특집] 이제 국회가 나설 때다, 제 22대 국회의 영화계 현안 분석과 국회에서 만난 사람들

5월30일 개원한 제22대 국회는 우리나라의 영화산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애초에 이 국회 안에 영화가 설 자리가 있기는 한 것일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국 영화산업의 침체를 부정할 수 없는 지금,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연달아 내놓은 영화 관련 예산의 삭감과 영화관입장권부과금(이하 부과금) 폐지 발표 등은 국가의 영화 정책이 마땅한 것인지에 회의적인 목소리를 불러왔다. 그렇지만 변화의 바람을 맞은 국회가 영화계 현안에 대해서도 색다른 개선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 영화계는 또다시 기대를 품고 있다. <씨네21>은 이 기대감의 실황을 영화·영상산업과 문화예술계에 특별한 관심을 보여주는 5인의 국회의원과 정치인에게 물었다. 첫 타자는 22대 국회의 전반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문체위) 위원장으로 뽑힌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이어서 초선으로 당선된 영화평론가 출신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꾸준히 문체위에 몸담아온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 가수 ‘리아’로 활동했던 김재원 조국혁신당 의원, 그리고 조국혁신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 중인 정상진 엣나인필름 대표가 타석에 들어섰다. 여야의 정쟁이 존재가치일 수도 있는 국회이지만, 소속 정당을 막론하고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라는 김대중 정부의 ‘팔길이 원칙’을 부정한 인터뷰이는 없었다. 각종 영화계 현안의 해결 방법에 대해서도 대체로 크게 다르지 않은 의견을 꺼내 들었다. 모두가 영화표 객단가에 얽힌 갈등 해결, 스크린독과점의 조정 필요, 영진위의 적극적인 영화계 지원, 홀드백(영화 극장 상영 종료 후 OTT에서 바로 공개할 수 없도록 하는 기간)의 건전한 규제, OTT를 포괄하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 개정을 말했다. 그렇다면 모두가 말하는 개선책들이 20년 동안 유령처럼 국회를 떠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요 이유는 관심의 부족이었다. “영화계 문제를 늘 있는 근육통처럼 여기고 넘기는” (강유정) 국회의 일반적 인식과 “비교적 인기가 없는 상임위인 문체위에서 오래 활동하는 의원이 적은” (김승수) 현실이 문제 해결을 늦추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은 지겨운 논제더라도 관심을 끊어선 안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에 <씨네21>은 의원들과의 개별 인터뷰에 앞서 영화계 논제로 꾸준히 대두되는 4개의 키워드를 의원들과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정리했다. 키워드는 문화예술·영화계 예산 삭감, 부과금 폐지건, 영진위의 한계와 조직 개편 논의, 영화인들과의 소통 부재다. 더하여 6월21일 유인촌 문체부 장관 주재로 독립영화인, 문체부·영진위 실무진이 나눈 간담회의 내용과 6월27일 진행된 ‘문화 불공정 사례 피해자 토론회’의 결과를 간단히 정리했다. “정치도 문화”(김재원)다. 사람이 만든 것이므로 사람이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22대 국회가 막 박차를 가하는 지금이야말로 정치, 문화를 향한 적극적 관심이 필요한 때다. * 이어지는 기사에서 영화계 현안 분석 특집이 계속됩니다.

[인터뷰] “블랙리스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야”, 김재원 조국혁신당 의원

이번 총선에서 가장 화제가 된 인물을 뽑으라 하면 김재원 의원을 빼놓을 수 없다. 통상적인 정치 이력이 없던 인물이 신당 조국혁신당의 비례대표로 당선됐을 뿐 아니라, 그 인물이 가수 ‘리아’라는 사실이 많은 관심을 이끌었다. 특히 문화예술인들의 관심이 특별했다. 대중문화계 현업에서 오래 활동해온 그가 문화예술인들의 권리를 최우선으로 살펴줄 것이란 기대였다. 그의 첫 목표인 ‘블랙리스트 방지법’ 제정이 그 기대에 부응할 예정이다. 또한 그는 의정 활동을 위해 출장을 갈 때마다 저녁엔 지역 예술인들을 만나곤 한다. “옛날 가수들이 지역에 가서 낮엔 행사를 뛰고 뒤엔 밤무대 두세탕을 뛰면서 돈을 벌었던 것처럼 바삐 움직이려 한다”라는 그의 비유에선 오랜 현업 종사자의 관록과 융통성이 한껏 느껴졌다. - 갑작스러운 출마였는데도 당내 비례대표 경선에서부터 좋은 결과를 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긍정적 평가를 받은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 경선 때는 어머니께서 병상에 계셨던 터라 워낙 정신이 없었다. 주변에 투표 독려도 제대로 하질 못해서 기대를 안 했다. 이후 경선 결과를 보고 놀란 뒤에 생각해보니 확실히 시대가 변했음을 느꼈다. 경선 투표엔 당원뿐 아니라 일반 국민 50%도 참여할 수 있었다. 이제 국민은 정치를 무척 다양하고 세분화한 분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예전엔 정치인이란 직업이 정치만 하는 사람들을 칭했다면, 이젠 사회의 다양한 불평등에 목소리를 내줄 수 있는 전문가들이 필요해진 것이다. - 당선 후 개원까진 어떤 준비 과정을 거쳤나. = 아쉽지만 개인 활동은 거의 준비를 못했다. 신당이고 의원 수가 그리 많지 않다 보니 지역위원회나 시도당 등 당 단위의 안건이 산적해 있었다. 거대 정당이면 초선은 좀 뒤에 있어도 될 텐데, 난 여기저기 쫓아다니고 일을 해내느라 아주 바빴다. 첫 등원 전날인 29일에야 의원실에 들어왔다. 여야 대치로 인해 업무보고까지 지연되면서 일이 더 늦어지고 있다. 맘 같아선 부처에 직접 찾아가서 빨리 진행하고 싶었는데 보좌진이 말리더라. (웃음) 국회란 게 역시 마음대로 되는 곳은 아닌가 보다. 하지만 기름이 새더라도 계속 시동을 걸어놓고 언제든 달릴 준비 중이다. - 얼마 전 영화계 인사 9명과 간담회 자리를 가졌다. 영화산업에 대해 원래 관심이 있었나. = 늘 관심이 있었고 지금 가장 화두인 객단가 문제 등도 관심이 있던 쟁점이다. 용어만 다를 뿐 음악산업과 전체적인 맥락은 비슷하다. 내가 막 활동했던 90년대는 카세트테이프와 CD의 헤게모니가 1년 만에 뒤바뀌고, 곧바로 MP3가 CD를 잡아먹던 때였다. 거대 기업이 시장에 진출하며 어마어마한 자본과 유통망을 구축하며 판도를 바꿨다. 그 자본의 순환으로 10명씩 되는 아이돌 그룹이 만들어질 수 있었고 예전의 듀오나 트리오 같은 가수 형태가 거의 사라졌다. 한 문화산업의 격변기를 직접 겪은 셈이다. 영화산업도 마찬가지다. 거대 멀티플렉스 계열사나 플랫폼이 시장에 진출해서 자본, 제작, 배급, IP를 전부 가져가버리니 점차 중저예산 영화나 독립영화가 걸릴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음악이든 영화든 소규모 창작 단위의 사람들은 먹고살 길이 사라지고 있다. - 저작권 전문가로서 국제저작권관리단체연맹 세계총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OTT 콘텐츠의 IP 규제나 관리도 제도적으로 무척 미비한 상황이다. = IP 저작권을 재산권적 측면에서 볼 때 콘텐츠 저작권을 플랫폼에 넘기는 건 창작자들의 먹고사는 문제와도 크게 연관돼 있다. 사후 70년까지 보장되는 저작권을 넘겨야만 다음 작품을 위한 자본을 마련할 수 있게 되는 상황이 근본적으로 문제다. 지나친 산업화로 인해 문화예술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음반 제작을 위한 창작 융자금은 보통 300만원이다. 창작자들에겐 이 돈으로 큰 수익을 불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후의 창작 활동을 더 이어가고 싶다는 바람이 있을 뿐이고, 결국 저작권이라도 넘겨 당장 제작비를 융통하게 되는 거다. 한편 저작권 관리를 투명하게 하는 방법으론 블록체인 기술이 세계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수만개에 달하는 음악, 영상 콘텐츠의 저작권을 각 기업에 맡기기보다 세계 단위의 통합적인 블록체인 시스템을 도입해 창작자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는 거다. 대기업 플랫폼의 수익 분배 문제, 구체적으론 영화 객단가의 정보공개 문제에 대한 개선책도 나오게 된다. 정부 차원에서도 숙고하여 저작권 제도에 대한 과도기적 정책을 계속 펼칠 필요가 있다. - 객단가, 저작권을 포함 영화·영상 산업에 걸친 구조적 문제의 개선 방법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 간담회 자리에서 말했던 대로 대기업 위주의 산업생태계에 정부가 직접적인 구조조정을 취해야 한다. 정부 차원의 개입이 없으면 예술의 다양성은 곧 사라져버릴 것이다. 정부에선 K콘텐츠를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관련해 2027년까지 5조원 규모의 정책금융을 공급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 정책은 언제나 큰 산업 단위에만 적용되는 것이고, 사실상 그만한 예산을 안정적으로 투입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지지율, 전국 동시 지방선거 등을 위해서인지 계속하여 이런저런 세금을 없애겠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문화예술의 권리뿐 아니라 국민의 기본적인 사회권을 보장하기조차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 문화예술 권리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개선할 예정인지. = 입당할 때부터 ‘정치도 문화다’라고 공표하고 있다.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된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를 하나의 문화로 이해하고 실제 사회의 속도에 맞는 정책과 법안을 논의하는 일이다. 과거와 달리 사회, 기술의 발전 속도는 너무도 빠르고 정치 문화는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 문화적 지체를 해결하는 최고의 방안이 바로 예술이다. 예술은 당대 문화를 가장 빠르게 함축하고 퍼뜨릴 수 있다. 그러니 예술 표현의 자유를 절대 막아선 안된다는 얘기가 나오는 거다. - 블랙리스트 특별법 제정을 임기 목표로 삼고 있다고 들었다. = 그렇다. 예술의 권리를 막는 블랙리스트 문제를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미래를 제대로 준비할 수 없다. 홍콩영화계를 보면 문화예술 산업에 대한 정치적 규제가 어떻게 산업을 무너뜨리는지 알 수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내부에서 그런 사태가 발생하고 계속 싸우고 있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블랙리스트 방지는 사상 문제와 무관하다. 누구나 억압받지 않고 창작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일이다. 여러 간담회나 토론회, 현장 방문을 통해서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고 있다. 개인별로 아주 다른 사례가 있는 터라 개별 면담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이 개별 사례를 가능한 한 모아서 법안에 구체적인 보상 기준 등을 마련하려 한다. 지금 85% 정도 작업이 완료됐으니 곧 발의 단계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후 행보도 기대해달라.

[LIST] 박서함이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트루먼 쇼 오랜만에 다시 꺼내 본 영화인데 처음 봤을 때의 충격 그대로였다. <트루먼 쇼>를 처음 봤을 때도 충격과 후유증이 상당했었는데, 시간이 흘러 다시 봐도 그 충격은 여전했다. 오히려 전엔 몰랐던 디테일들이 보여 더 박진감 넘치게 봤다. 핸드폰 배경화면도 <트루먼 쇼>의 명장면으로 해뒀다. 조PD <친구여>(Feat. 인순이) 어릴 때 정말 인기가 많은 가요였고 그땐 그저 신나는 곡으로 즐겼었다. 예전 노래를 좋아하는데, 최근에 다시 들으니 이렇게 가사가 와닿고 가슴 찡하게 만드는 곡인 줄 몰랐다. 원래 하나에 꽂히면 반복해서 듣는 편인데 최근 가장 많이 듣는 곡이고 거의 반복하듯 듣는 것 같다. 가사가 정말 좋다. 배움 연기 그리고 무술과 승마 등을 배우고 있다. 새롭게 접하고 배우는 것들이 많아서 즐겁고 바쁘게 지내고 있다. 평소 걱정과 생각이 많아서 100% 즐기면서 배우진 못하지만 안되던 것들이 되는 그 순간이 좋다. 새로운 배움들로 인해 발전한 모습과 가능성을 보이고 싶다. 호주 회사 콘텐츠 ‘네모여행’ 촬영을 위해 호주 멜버른에 다녀왔다. 거리가 그림처럼 아름다웠고 특히 벌룬을 타고 하늘에서 호주의 큰 땅을 바라보는데… 정말 경이로웠다. 하늘 위 벌룬에서 스태프, 배우들과 소원도 빌고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본 일출이 잊히지 않는다. 잠들기 전 시간 일과를 마치고 샤워를 끝낸 뒤 좋아하는 드라마, 영화 혹은 노래를 틀고 향초를 켜고, 가끔 여기에 맥주 한캔을 곁들이는 게 요즘 나의 스트레스 해소법이자 루틴이다. 잠들기 전 베개에 아로마 오일을 뿌리고 눕는 것도 좋아한다.

[WHO ARE YOU] ‘우리, 집’ 연우

배우 연우가 인터뷰 장소로 들어섰을 때 긴장했던 건 그가 <우리, 집>에서처럼 상대를 꿰뚫어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곧 “뉴진스에 푹 빠져 있다”며 환히 웃는 얼굴로 드라마 속 오싹한 기운을 대화 초장에 몰아냈다. 작품에서 연우는 남편‘들’을 죽였다고 알려진 ‘마녀’, 반사회성인격장애를 가진 이세나로 분했다. 심리상담전문의 영원(김희선)과 그의 남편 재진(김남희)을 두고 대립하며 극의 핵심적인 한축을 담당했다. 젊은 여성배우에게 흔치 않게 들어오는 역할의 기회를 잡아 강렬하게 연기하기까지 연우는 대본과 거울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미스터리한 여자 정도로 묘사된 세나에 대한 감을 잡고자 대본을 수백, 수천번” 읽었다. “내가 너보다 위에 있다는 권능에 취해 있는 과시적 인물”이라는 걸 파악한 뒤 신비롭고 어딘가 둔탁한 느낌이 몸에서 배어나오도록 움직였다. 캐릭터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눈을 잘 깜빡이지 않는다는 소시오패스의 특징”을 활용해 세나 특유의 사람을 빨아들이는 미소를 완성했다. 가족의 의미를 자문하게 하는 작품을 하면서 연우도 깨달은 바가 있다. “가족이라고 해서 모든 걸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서로를 믿고 기다려주고 힘이 되어주는 관계가 가족이다.” 터닝포인트가 된 작품은 신인연기상을 받은 <금수저>였다.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그때부터 내 연기를 꼼꼼히 분석했고, 이후로 카메라 앞이 편해졌다.” 세나로 사는 동안 어쩔 수 없이 외로웠기에 “본래의 밝은 성격을 살릴 수 있는 사랑받는 캐릭터”라면 주저 없이 도전할 생각이다. 그러나 그 도전은 “비밀과 상처가 있는 여인”으로 나오는 첫 사극 <옥씨부인전> 촬영을 끝낸 뒤로 미뤄두었다. “사극을 하면 왜 연기가 는다고 하는지 체감하고 있다. 낯선 환경, 어려운 감정 신에 나날이 달라지는 내가 신기하고 재밌다. 이렇게 매일 조금씩 발전할 수 있는 좋은 직업을 오래오래 하고 싶다.” FILMOGRAPHY 드라마 2024 <우리, 집> 2023 <넘버스: 빌딩숲의 감시자들> 2022 <금수저> 2021 <달리와 감자탕> <바람피면 죽는다> 2020 <라이브온> <앨리스> <터치> 2019 <쌉니다 천리마마트> 2018 <위대한 유혹자>

[남다은 평론가의 RECORDER] ‘영화로 꿈꾼 영화'

악몽의 희열 ‘영화제작에 대한 영화’들이 되새기는 악몽의 원체험, 이제는 얼마간 진부한 은유로 느껴지면서도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는 꿈의 운동은 저 유명한 <8과 1/2>(감독 페데리코 펠리니, 1963)의 첫 장면이다. 차들로 빼곡한 도로 위 자동차 안, 옅은 연기가 새어 나오자 한 남자가 절박하게 유리창을 두드린다. 그 광경을 말없이 구경하는 주변 운전자들의 사뭇 사악한 표정과 시선이 이 순간의 숨통을 틀어막는다. 그때 남자가 자동차 천장을 비집고 제 힘으로 탈출하더니 어느새 가볍게 날아오른다. 바람을 타고 구름 위로 떠올라 갑갑한 세속의 풍경으로부터 유유히 멀어지는데, 땅 위의 누군가가 남자의 발목에 걸린 밧줄을 잡아당긴다. 저항할 새도 없이 그가 바다로 곤두박질친다. 악,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깬 자, 영화감독이다. 구속과 한계, 자유와 권능, 그리고 추락. 아마도 꿈이 이어진다면 자동차 장면으로 돌아와 이 행로는 다시 시작되고 말 것이다. 추락의 결말을 안다고 해도 그는 기꺼이 운전대 앞에 앉을 것이다. 도입부를 가로지르는 상태의 극적인 변화는 ‘감독’이라는 세계의 공포, 환영, 욕망, 불안을 동력 삼아 불쾌한 희열, 피학적 아드레날린으로 춤춘다. 촬영 현장은 연출 경험이 미천한 감독만이 아니라, 거장들에게도 어김없이 두려운 장소라고 우리는 익히 들어왔다. 언젠가 봉준호는 한 강연에서 이와 관련된 감독들의 고백을 소개한 적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현장에 도착한 차에서 내리는 일을 가장 힘든 순간으로 망설임 없이 꼽았고, 안제이 바이다는 촬영장으로 향하는 차를 멈춰 세워 심지어 구토한 날도 있다고, 봉준호는 공감한다. “수백명의 스태프와 배우들이 감독을 잡아먹을 듯이 기다리고 있는 거 아니에요.” 궁금하다. 그토록 괴로워하며 겨우 발을 내딛고 가까스로 대면하고 우여곡절 끝에 지나간 촬영 과정을, 그 악몽의 시간을 굳이, 다시, 영화로 소환하려는 창작자의 욕구 혹은 취향이란 대체 무엇일까. 두겹의 현장, 두겹의 카메라 사이에 포박되어 무엇을 상상하고 싶은 것일까. 더욱이 이들 영화는 작업을 방해하고 지연하는 성가신 사건 사고들, 그리고 이에 당황한 창작자의 얼굴에 진심으로 사로잡히곤 한다. 동시대 이탈리아 현실 안에서 ‘영화 만들기에 관한 영화’로 감독 자신을 수다스럽게 응시하며 분열하는 난니 모레티의 <찬란한 내일로>(2023)는 오랜만에 그 의문을 경쾌하게 되살린다. 새삼 여기서 예술의 자기반영성에 대한 논의를 진지하게 펼쳐보려는 건 물론 아니다. 다소 일차원적이긴 해도 나의 호기심은 영화 만들기라는 고행의 구조가 양산하는 영화적 쾌, 그 중심에 놓인 감독이라는 이상한 나라의 정신세계에 언제나 더 가까이 있다. ‘영화 생산을 다룬 영화’는 대개 중단과 재개의 반복을 축으로 나아가는 일종의 모험극이다. 단절의 괴로움과 좌절, 지속의 희망과 환영이 이 영화들의 에너지원이며, 비일관적이고 비선형적인 흐름은 필연적이다. 굳이 이름을 붙여 변덕의 장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창작자의 자기연민, 연민에 밴 자기조롱, 조롱이 동반하는 자기도취, 도취가 빚어내는 자기과장, 그러니까 실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자기애. 설상가상, 첩첩산중의 환경에서 점차 쪼그라들고 여러 겹으로 쪼개져 민낯을 드러내는 내적 형상, 그러니까 창작자의 널뛰는 리듬이 이 세계의 태생적 조건이자 심장이다. 이 장르는 본질적으로 코미디 감각과 어울릴 수밖에 없다. 감독 자신이 출연하든, 배우가 그를 연기하든, 그 심장을 들추는 일마저 능청맞게 향유하는 자만이 감히 ‘영화에 대한 영화’의 배에 오를 것이다. 그러니 영화 속 감독의 초상이 더없이 소심할지라도 그를 가여워할 필요는 없다. 그가 소심하게 부서질수록 우리가 경험하는 건 실은 영화 밖 감독의 천연덕스러움과 대범함이다. 오래전 프랑수아 트뤼포가 직접 감독으로 등장한 <아메리카의 밤>(1973)이 개봉했을 때, 장뤼크 고다르는 “왜 극 중 감독만 유일하게 성교하지 않는 사람인가”라고 힐난하는 편지를 보낸다. 잘 알려진 일화 속 고다르의 비아냥 가득한 논조에 동조할 생각은 없지만, 수긍할 만한 점은 있다. “영화라는 건 뭔가요?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과 잠을 자는 이 직업은 뭐란 말이죠?” 영화 안에서 제작부장인 남편을 감시하러 매번 현장 구석에 얼룩처럼 자리한 아내가 토로한다. <아메리카의 밤> 속 촬영 현장은 좋게 말하면 사랑이 넘치는, 경박하게 말하면 짝짓기 행각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장소다. 그런데 감독만큼은 예외다. 그는 현장의 세속적 소용돌이에서 혼자만 비켜난 듯 중립적이고 도덕적이다. 따라서 무감하고 기계적이다. 제작과 관련한 물적 토대, 배우, 스태프, 자잘한 갈등과 감정을 망라하며 정신없이 출렁이는 이 영화가 희한하게도 뻣뻣하거나 느슨하게 느껴진다면, 혼돈의 현장에서 홀로 뒷짐 진 감독 탓이다. 적어도 ‘영화에 관한 영화’에서라면, 우리가 기대하는 건 성자 감독이 아니다. 차라리 약병을 들고 자신을 불쌍해하는 감독의 고질적 이미지에 더 다정한 마음이 생긴다. 지속의 환영 영화 속 난니 모레티 곁에도 늘 약이 있다. <나의 즐거운 일기>(1993)에서 그는 심각하게 지속되는 피부가려움증으로 온갖 병원을 찾지만, 증상은 나아질 기미가 없고 처방약만 늘어가며 갖가지 병명을 내세운 의사들의 공통된 결론은 우습게도, ‘심리적’ 요인이다. “다 내게 달린 거고 내가 문제라면 잘되긴 글렀다.” 그가 의기소침하게 내뱉은 속내는 마치 촬영 현장 앞에서 감독이 매일 같이 중얼댈 자조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는 흉부 사진을 찍은 뒤에야 폐에 생긴 종양이 이 난리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카메라로 들여다보기 전에는 오진이 반복될 것이다, 병의 언저리, 엉뚱한 부위만 쓸데없이 긁을 것이다! 아마도 <4월>(1998)에서 모레티가 분한 감독 조반니가 카메라의 방향을 뮤지컬영화가 아닌, 현실에 맞추기로 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우파 정권이 교체될 기회가 오자, 조반니는 원래 준비 중이던 1950년대 이탈리아 트로츠키주의자 요리사 뮤지컬을 즉각 중단하고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한다. 좌파는 승리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현실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영화 후반, 알바니아 난민들이 탄 배가 항구에 들어오는 실제 장면이 화면을 빽빽하게 채운 뒤, 다큐멘터리를 결국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조반니의 주눅 든 목소리가 들린다. 그가 요란하게 호소한 다큐멘터리 ‘눈’의 역량은 난민들을 잔뜩 태운 배의 거대한 이미지, 거기 뒤엉킨 수많은 현실 앞에서 무엇도 하지 못한다. 조반니의 침울한 결론은 그러나, 그가 갑자기 뮤지컬 현장으로 기운차게 돌아와 들썩이는 결말의 쾌감에 슬그머니 녹아 어딘가로 사라진다. 암담한 세계 이미지와 화려한 스튜디오 활기 사이의 깊은 간극을 조반니의 스쿠터가 정신없이 오간다. 그 산만한 궤적에 고스란히 몸을 맡긴 <4월>은 난니 모레티가 영화로 앓은 조울증이다. <4월>에서 멈추고 망설이고 체념하다 시간을 다 보낸 감독 조반니는 <찬란한 내일로>에서 항우울제와 수면제로 버티는 노년이 되어 새 영화를 촬영 중이다. 그가 찍는 극영화는 1956년 소비에트가 스탈린식 통치에 저항한 헝가리 시민들을 무력 진압한 실제 사건을 중심에 두고 이에 반발한 이탈리아 공산주의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특이한 점은 이탈리아 공산당 지부가 헝가리 서커스단을 로마에 초대해 공연을 연다는 설정이다. 첨예한 역사와 생기로운 오락의 공존. 헝가리 참극이 알려진 뒤, 서커스단은 연대의 의미로 잠시 공연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다. <4월>의 조반니는 정치와 유희의 거리를 좁히지 못했으나, <찬란한 내일로>의 그는 둘이 맞물려 서로를 고무하는 세계를 상상한다. “서커스는 현대영화의 은유잖아요. 줄 하나에 매달릴 뿐 앞일을 전혀 모르니까요. 감독님 영화는 체제 전복적이에요.” 나중에야 빈털터리로 밝혀진 제작자의 논평은 허세 섞인 말장난에 불과하지만, 외줄에 의존해 몸의 활동을 최대치로 확장하는 놀이, 그 움직임만으로 세계를 초현실적인 우주로 만들어버리는 서커스는 모레티가 역사의 경직된 근육에 동원한 영화적 윤활유일 것이다. 조반니는 이 영화를 사랑의 서사로 접근하는 배우에게 이건 정치 이야기라며 한숨 쉰다. 그러나 사실, 그의 무의식에서 심오한 정치 강박은 노래와 춤의 유연한 감정에 번번이 지고 만다. 이를테면 서커스단이 떠난 뒤, 공산당원들의 이별을 촬영하는 대목에서 조반니는 대사가 끔찍하니 말을 없애자고 고집한다. 배우의 반박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그는 다시 ‘액션’을 외친 후에도 어쩐 일인지 배우들 곁에 선 채, 카메라 뒤로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때 음악이 흘러들어 조반니의 앞선 꿈 혹은 환상 속 연인들이 아이들과 함께 풀밭 위에서 춤추는 광경이 펼쳐진다. 다시 촬영 현장으로 돌아온 장면에서 조반니와 배우들은 화면 바깥으로 시선을 던지다가 프레임을 무너뜨리듯 스태프들쪽으로 횡단한다. 이제 모두가 음악에 맞춰 뱅글뱅글 도는 움직임만으로 자유롭다. 안과 밖의 경계를 가볍게 지우고 말의 번잡함을 증발시켜 수평적 운동의 흥취만 남겨두는 춤과 노래. 그것은 빈번한 충돌, 중단, 단절로 시름하는 영화 현장에서 감독이 꿈꾸는 연결과 지속의 마법이다. <4월>의 조반니는 뮤지컬영화를 찍고 싶어 하지만, <찬란한 내일로>의 그는 뮤지컬의 일부가 된다. 저마다 지속의 환영과 열망을 표현하는 방식이 있을 것이다. 요컨대 1970년대 한국영화 제작 현장을 배경으로 하는 <거미집>(감독 김지운, 2022)에서 감독 김열의 집착은 영화 후반부 불타는 실내에서 벌어질 복수 행각을 하나의 숏으로 구현하는 플랑세캉스로 향한다. 최종 목적지로의 과정에서 일어날 돌발 사건을 차단하기 위해 스튜디오 출입구는 폐쇄되고, 소란 피우는 이들은 술 먹여 기절시킨다. 마침내 김열은 세트가 불길에 완전히 주저앉기 직전까지 카메라를 돌려 플랑세캉스에 성공한다. 그가 몰두하는 플랑세캉스는 영화의 시간과 동선을 절대적으로 지배하려는 야심이며, 자본과 검열의 간섭, 무엇보다 그 자신의 열등감으로 휘청이는 영화에 새겨둘 감독의 권위다. <거미집>에서 그가 주변을 잿더미로 만들며 거머쥔 지속의 힘은 과시적 긴장감으로 팽만하다. 그에 비한다면 <찬란한 내일로>에서 조반니가 노래와 춤으로 실현한 그것은 얼마나 소박하고 간단하고 부드럽게 작동하는가. 물론 조반니의 내면에 꿈틀대는 지속의 욕망이 언제나 화창한 건 아니다. 그가 젊은 감독의 현장에서 일으킨 기행이 그 예다. 한 남자가 무릎 꿇은 상대에게 총을 겨누는 마지막 장면의 촬영이 시작되자, 조반니는 갑자기 카메라 앞에 끼어들어 이 구도의 상투성을 지적한다. 폭력의 재현 윤리를 일갈하는 그의 논리는 대개 옳지만, 그러한 이유로 별반 새롭지는 않다. 정작 흥미로운 지점은 그가 장황하게 떠드는 동안 현장의 모두가 어느새 졸음에 빠지고 마는 상황이다. 상업영화 시스템 한가운데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 훼방하는 조반니의 퍼포먼스, (그의 말에 따르면) ‘원칙’과 ‘일관성’ 없는 천박한 엔터테인먼트 현장을 고리타분한 일장 연설로 잠재운 시도, 무려 8시간이나 지속한 필리버스터, 그것이 이 장면의 핵심이다. 그는 맨몸으로 자본의 시간을 불시에 중지시킨 후 그 자리를 자신의 영화론으로 버텨본다. 현장을 나서는 조반니의 뒤로 촬영은 신속하게 재개된다. 총격 장면은 그의 열변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단번에 자극적으로 완성된다. 하지만 그가 이곳에서 벌인 나르시시즘적 만용은 희극적이되, 왠지 초라하지는 않다. 만약에, 영화 ‘영화제작에 대한 영화’가 닿고자 하는 가장 행복한 결론은 어떤 모습일까. 자신이 무엇을 찍었는지도 모르는 채, “근래 본 영상 중 최고”라는 찬사를 받는 스냅 사진 기사, 영화와 사랑 모두를 쟁취하고도 여전히 어리둥절하기만 한 광대, 내내 어깨에 짊어진 낡은 카메라 눈과 자기 눈이 기이하게 닮은 사실을 혼자만 모르는 감독, 그러니까 <카메라맨>(1928) 속 버스터 키턴의 초상 같은 것일까. 안타깝게도 그런 행운은 너무도 영민한 우리의 감독들에게는 오지 않는다. <찬란한 내일로>의 조반니는 애초 결연하게 준비했던 주인공의 자살이 영화의 끝이 될 수 없음을 뒤늦게 깨닫고 망연자실한다. “역사는 ‘만약에’로 이루어지지 않지만, 과연 그럴까. 나는 바로 그 ‘만약에’로 역사를 만들고 싶다.” 처음에 그 말은 무책임하고 순진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어지는 장면 앞에서 그 섣부른 생각을 금세 거둘 수밖에 없다. 조반니의 ‘만약에’가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문을 과감히 두드려 새롭게 열어낸다. 모레티의 ‘만약에’는 감상적인 공상이 아닌, 진취적인 상상이다. 당 간부들에게 헝가리 혁명 편에 서길 요구하며 거리를 꽉 채운 공산주의자, 서커스단원, 조반니 무리는 소비에트연방과의 결별이 공표되자 붉은 깃발 아래, 관악단의 연주 안에서 환호한다. 떠들썩한 행렬은 이어진다. 조반니의 영화에 나온 배우들, 참여한 스태프들, 서커스단 코끼리, 조반니에게 이별을 고한 아내, 폴란드 대사와 결혼을 앞둔 딸, 한국 제작자들, 사기꾼 제작자, 여기 더해 모레티의 지난 작품들에 출연한 노년의 연기자들, 그리고 사진으로 부활한 레온 트로츠키. 역사와 영화와 현실 구석구석에서 환하게 깨어난 존재들이 씩씩한 발걸음으로 행진한다. 이들은 유령이 아니다. 그들이 바라보는 방향에 무엇이 존재하는지는 몰라도, 지금 이곳이 어디인지 따져 묻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무래도 좋다. <나의 즐거운 일기> <4월> <찬란한 내일로>의 투덜이 감독은 이 순간, 자동차와 스쿠터와 전동 퀵보드 없이도 완연히 다른 지평에 와 있다. 한치의 망상도, 몽상도 들어설 여지없이 쨍한 길 위에 그가 있다. 그리고 카메라를 향해 손 흔든다. 무엇보다도 찬란히, 함께 걸으며. 남다은 평론가의 RECORDER 영화의 육체와 마음을 비평의 기억과 선율로 연주합니다.

[인터뷰] 이 작은 행복들을 영영 기억하기를, <퍼펙트 데이즈> 야쿠쇼 고지

매일이 복사 및 붙여넣기 같은 공공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야쿠쇼 고지)의 나날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출근, 화장실 청소, 퇴근, 목욕, 저녁 식사(가끔은 술 한잔도), 독서, 취침으로 끝나는 그에게 설렘이나 일탈은 관심 밖에 있는 듯하다. 하지만 뒷모습에도 표정이 있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그의 정갈하고 단순한 하루에는 다채로운 감정이 있다. 출퇴근길마다 그의 기분을 대변하는 리드미컬한 팝송과 여러 이웃을 마주하는 따뜻한 말투, 갑작스레 찾아온 조카딸 니코(나카노 아리사)와의 소란스러워진 시간까지 그는 계절만큼이나 형형색색의 하루를 보낸다. 단순함이 지닌 명확한 아름다움을 제시하는 <퍼펙트 데이즈>는 히라야마의 삶의 가치를 누구보다 존중하고 이해한다. 그를 통해 흘러간 시간을 다시 보는 야쿠쇼 고지와 긴 편지를 나누었다. - <퍼펙트 데이즈> 시나리오는 어떤 힘을 지니고 있었나. 영화에 합류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이 영화는 시부야의 ‘더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시작됐다. 처음엔 공중화장실을 무대로 한 청소원의 이야기를 단편영화와 사진집으로 낸다고 하더라. 그 기획에 흥미를 느꼈다. 때마침 빔 벤더스 감독에게 연출이 제안됐고 그가 바로 수락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최고의 선물 같았다. 출연을 결정한 이유는 간단하다. 평소 일본영화에서는 웬만해선 통과되지 않을 법한, 평생 한번 만날 수 있을까 말까 한 모험적인 기획이었기 때문이다. 배급사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지만 더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의 화장실을 주무대로 삼는다는 점, 그외에는 자유롭게 만들어도 된다는 이야기가 꿈만 같았다. 시나리오가 완성됐을 때 기존에 본 적 없고 해석의 여지가 자유로운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 영화에서 히라야마는 말이 거의 없다. 말로 자신을 표현하지 않는 히라야마를 어떤 인물이라고 분석했나. 그의 성향을 이해할 수 있던 장면이 있었나. =히라야마는 자신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래서 말수가 적은 자신의 성향이 편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사실 시나리오상에서는 히라야마에 대한 설명이나 전사가 길게 등장하지 않았다. 배우란 연기할 캐릭터의 과거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파악하고 연결하는 직업이다. 이번 영화는 특히 그 작업이 중요했다. 촬영 중반에 다다랐을 때 프로듀서가 감독님에게 히라야마의 과거가 궁금하다고 물은 적이 있다. 그런데 감독님은 “알지 않아도 괜찮”고 “말해주기 싫다”며 거부했다. (웃음) 그러다 어느 날엔가 감독님이 내게 ‘히라야마 메모’라고 적힌 종이를 건네주셨다. 히라야마에 대한 이야기가 거기 있었다. 그 내용을 힌트 삼아 후반 촬영 때 힘을 얻을 수 있었다. - 히라야마는 평범하고 규칙적인 삶을 살아간다. 일을 마친 후에 맛있는 저녁을 먹고 집에 와서 책을 읽는다. 이따금 술을 곁들이기도 하면서. 사건이라고 할 만한 일이 일어나진 않지만 그의 하루는 이유 모르게 편안하다. <퍼펙트 데이즈>가 만들어내는 안정감은 어디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하나. =영화에 내가 나오지 않았다면 이 질문에 더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었을 텐데. (웃음) <퍼펙트 데이즈>는 동일한 장면에 다양한 것을 보여준다. 영화는 한번 보는 것으로 모든 걸 알 수 없다. 여러 번 봐야만 이전에 놓친 것을 발견하고 또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되지 않나. 그런 관점을 거치면서 많은 영화가 시대를 초월해 사람들 곁에 남는다. <퍼펙트 데이즈> 또한 그렇다. 히라야마의 하루는 평범하게 흘러가지만 여러 차례 반복해서 보면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영화의 관점이 일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에 영향을 준다. 영화 안팎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 <퍼펙트 데이즈>는 극영화이지만 인물들로부터 몇 발짝 멀어진 다큐멘터리 형식을 띠고 있다. 평소 연기와 다르게 신경 쓴 지점이 있다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히라야마가 진짜 자신의 하루를 보내듯 무언가를 의식하기보다 자연스럽게 그려내고자 했다. 테스트 없이 진행한 촬영이라 스태프의 고충이 상당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카메라앵글을 담당한 촬영팀 조감독이 가장 힘들었을 것 같다. 그 스태프의 역할이 모든 것을 탄탄하게 만들어줬다. - 영화에는 등 6070세대 팝송들이 흘러나온다. 일하기 위해 떠나거나 돌아오는 히라야마가 직접 선곡한 노래로 구성돼 있다. 아름다운 풍경과 가장 조화로웠던 노래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망설임 없이 한곡을 바로 고를 수 있다. .  - 조카딸 니코를 연기한 나카노 아리사는 후반부 등장과 함께 극에 활기를 북돋는다. =<퍼펙트 데이즈>가 나카노 아리사 배우의 첫 연기 도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순수한 존재감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는 걸 느낄 수 있다. 단조로운 나날을 거쳐온 히라야마에게 어쩌면 가장 큰 존재이지 않을까. - 단순하지만 자신의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삶. 히라야마의 삶의 방식이 한국 관객에게 어떤 힘을 줄 수 있을까.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대도시에서 매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히라야마의 삶의 방식은 큰 위로가 된다. 어쩌면 <퍼펙트 데이즈>는 영화가 끝나는 순간 진짜 메시지가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극장을 나설 때 불어오는 바람, 따스한 햇살,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그림자 등에 마음이 가는 순간들을 간직하면 좋겠다. 지나간 줄도 모를 만큼 작지만 분명히 행복을 준 것들을 영영 기억하길 바란다. - <퍼펙트 데이즈>는 야쿠쇼 고지 배우에게 두 번째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기회를 주었다. =지난해 칸영화제 시상식 이후 일년 동안 <퍼펙트 데이즈>와 함께 전세계를 유영했다. 여러 나라 관객들과 의미를 되새기고 교감하면서 영화의 힘을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다. 국경과 다른 가치관, 신념을 뛰어넘어 끈끈하게 연결될 수 있는 힘. 나는 이 작품의 중심에 그런 힘이 담겨 있다고 믿는다.

[인터뷰] 초인의 기세, <돌풍> 설경구

<돌풍> 앞에서 배우 설경구는 두개의 질문과 씨름했다. 대기업과 손잡은 대통령 장일준(김홍파)에 환멸을 느낀 국무총리 박동호(설경구)는 나라를 바로잡는다는 대의 아래 대통령을 시해한다. 코마 상태에 빠진 대통령 대신 권한대행에게 주어진 기간 동안 세상을 바꾸겠다고 나선 이 거침없는 남자를 두고 설경구는 우선 물어야 했다. “이런 사람이 정말 현실에 존재할까?” <추적자 THE CHASER> <펀치> 등을 쓴 박경수 작가의 뼈 있는 염원이 반영된 첫 번째 질문 뒤에 자연스럽게 뒤따른 배우의 고민은 이랬다. 신념과 명분에만 의지해 정치권에 자기 생을 투신하는 캐릭터를 “진짜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이게 할 수 있을까?” 매체 데뷔 30여년 만에 선보이는 첫 드라마 주연작이자 넷플릭스 시리즈인 <돌풍>을 두고, 세간은 그에게 달라진 산업 환경과 커리어의 전략에 관한 물음을 던지지만 설경구의 대답은 언제나 간명하다. “박동호를 그답게 만들기 위해선 처음부터 끝까지 우직하게, 계산 없이 밀어붙이는 힘만이 필요했다”고. - 완성된 <돌풍>을 봤나. 평소 영화 모니터링도 힘겹게 한다고 알고 있다. 12부작 보기가 쉽지 않았겠다.로 인해 실존 인물을 떠올리게 하는 드라마다. 관련해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 = 아직 전혀 보지 못했다. 출연작을 보게 되면 내 모습, 내 목소리만 들려서 그게 참 괴롭다. 2시간 안팎의 영화엔 그나마 익숙해져 있는데 이건 12부작이니까 작품이 플랫폼에 공개되면 천천히 보려고 한다. - 1994년 방영된 MBC 드라마 로 매체에 데뷔했다. 약 30년 만에 첫 주연작 <돌풍>이 나왔는데, 신인 시절에 드라마 현장을 경험하고 긴 시간이 흘러 돌아오니 무엇이 다르던가. = 박경수 작가의 힘 있는 책, 그 속의 인물들, 그리고 “빨리 결정하라”고 강력 추천하는 김희애 배우의 영향이 컸다. 드라마 현장의 메커니즘은 워낙 빠른 속도로 막 치고 나가야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온 터라 나도 모르게 생긴 공포나 선입견 같은 게 있었다. 물론 옛날 얘기지만…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할 것 같다는 마음으로 덜컥 하기로 결정하고 나니까 (김)홍파 형이 전화 와서 “너 진짜 하는 거냐”고 묻더라. 알고 보니 촬영, 조명감독님을 비롯해 배우뿐 아니라 스태프들도 영화할 때 같이 작업했던 식구들이 많이 합류한 상태였다. 막상 촬영장에 가서는 그동안 왜 드라마를 진작 안 했나 싶을 정도로 편안했다. 노동시간이 정확히 지켜지는 환경을 보면서 ‘7박9일간 쉬지 않고 찍는다’는 무용담이 옛말이란 걸 체감했고 스케줄도 무척 효율적으로 구성해서 한달에 15일 정도 촬영하는 식이었다. 딱 하나 영화와 큰 차이는 밥 먹는 거. 밥차가 없고 식사 시간이 되면 차 끌고 따로 식당에 밥 먹으러 가야 하는 게 처음엔 아쉬웠다. 리듬을 깨지 말고 유지하고 싶은 배우로서의 바람도 있고 그 시간에 한신이라도 더 찍자 싶어서. 지금도 중간에 끊고 밥 먹는 시간은 절대 1시간을 넘기지 말자는 주의다. <돌풍>에서 경험한 뒤 <하이프 나이퍼>(설경구의 차기 드라마 주연작) 때는 내가 건의해서 밥차를 도입했다. (웃음) - 기자간담회에서 박경수 작가는 <돌풍>을 “몰락하는 인간의 이야기”로, 박동호를 “초인”으로 설명했다. 몰락하는 초인의 서사를 한 사람의 독자로서는 어떻게 받아들였나. = <돌풍>은 악인조차 안쓰러운 비극이다. 내게 박동호는 위험천만한 신념을 향해 자기를 밀어붙인 뒤, 그 책임을 지기 위해 끝내 산화하는 인간이다. 정수진(김희애)은 자기 남편이 박동호였어야 하는데 운명이 그렇지 못했으니 스스로가 나섰고 결국 부패한다. 상대역이자 관객으로서 순수했던 정수진이 타락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박동호와 정수진 모두 권력욕이 큰데, 박동호의 권력욕이 세상을 뒤엎기 위해 필요한 힘이자 도구라면 정수진의 권력욕은 탐하고 싶은 무언가라는 차이가 있겠다. 그러니까 박동호는 현실적인 캐릭터라기보다 어떤 면에선 우리의 판타지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두 가지를 질문했다. ‘이런 사람이 정말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연기해야 정말 살아 있는 인간처럼 보일까?’ - 박동호는 오직 이상과 포부로 움직이는 인간형이고 때로 관념이 형상화된 인물 같기도 하다. 배우가 자기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하거나 일상적인 핍진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연기하기 용이한 경우는 아닌데 어떤 식으로 접근했나. = 책에 적힌 이 인물의 위험한 신념과 욕망. 그것에만 의지해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다. 계산을 하거나 접근하면 할수록 잡생각이 들 뿐이다. 시청자 눈에도 그게 보일뿐더러 무엇보다 박동호와 어울리지 않는 선택이라고 봤다. <돌풍>은 우직하게 주어진 숙제를 내가 푸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꾀 안 부리고 했던 것 같다.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이상을 행동으로 옮기기 쉽지 않은 박동호처럼 나 역시 꾸역꾸역 어떻게든 진심으로 앞으로 움직였다. - 어조와 제스처도 힘 있고 담백하게 처리했다. = 온갖 적이 주변에 산적해 있는 인물이다. 무조건 저돌적으로 밀어붙여야 한다. 아니, 쓸어버린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대사의 방향성도 그렇게 잡았다. 한마디로 기세를 유지하는 게 중요한 캐릭터인데 12부작을 그렇게 끌고 간다는 게 때로 물리적, 체력적으로 쉽지 않더라. 중간에 한번은 방향을 좀 바꿔볼까 싶기는 했는데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가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 박동호는 문자 그대로 신념을 위해 투신한다. 그의 마지막 선택에 동의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 후련하던데! (웃음) 그답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박동호가 일말의 망설임 없이 뛰어내렸을지 몰라도 설경구는 나도 모르게 와이어를 붙잡게 되더라. 특히 뒤로 떨어지는 설정이라 순간적으로 더욱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 - 드라마 작업을 하면서 감독만큼 작가의 의견을 많이 반영하려고도 했나. = 나로서는 <돌풍>을 하면서 그 부분이 배움이었다. 작품 초반까지는 현장에서 작가님과 커뮤니케이션할 생각을 못했다. 그러다 슬슬 적응을 하면서 현장 모니터를 보고 스스로 아쉬운 부분들이 있어서 일찌감치 후시도 필요하겠구나 직감했다. 1회부터 12회까지 전부 다 재점검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과정에서 감독님, 작가님과 매우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나 때문에 작가님이 일찌감치 촬영본을 다 보고 피드백을 줬고 그로부터 엄청난 힘을 얻었다. 우리 담당 CP(스튜디오드래곤)는 현장과 후시 차이가 1% 더 좋아진 정도라고 했는데, 회마다 1%씩 좋아진다면 결국 12%나 좋아지는 거 아닌가? 그렇게 해석하기로 했다. 녹음을 모두 끝내고 같이 고생해준 작가님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거듭 말씀드렸다. 작품이 다 공개되고 나서 아쉬움에 얼굴 후끈거리는 것보다 어떻게든 조금 더 바로잡고 수습하는 게 내 방식이다. - <킹메이커> <야차> <유령> <더 문> <길복순> 그리고 <돌풍>까지, 리더와 책임자의 위치에 놓인 인물들을 연기하고 있다. = 전부 역할들일 뿐인데 특별한 소회는 없다. 다만 세월이 쌓였다는 것은 확실히 알겠다. 매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내게 분명한 것은 모든 캐릭터가 언제나 처음 만날 때 똑같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 새 역할을 받아들이는 배우의 ‘불편함’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준다면. = 그러니까 나와 캐릭터를 맞춰가는 과정은 언제까지나 불편해야만 한다. 작품이 끝날 때까지 조금씩 그 불편함을 줄여가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다 끝났다고 완전히 맞춰지는 것도 아니다. 새 옷에 적응하는 과정은 필연적이다. 피할 수 없고 피해서도 안된다. - 인물의 진정성에 다가가기 위해 매번 정면으로 부딪치기란 쉽지만은 않은 일일 것이다. = 물론 어려울 때는 거짓말도 하게 된다. 나 역시 ‘하는 척’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연기에 노하우가 쌓인다는 걸 믿지 않는다. 스스로 진실하지 않게 반응해놓고 어떻게 관객이 믿어주길 기대할 수 있을까. <오아시스> 촬영 때인데, 너무 안돼서 그냥 하느라고 했다. 그래도 나름 괜찮게 나온 것 같았다. 이창동 감독님도 오케이하셨다. 그런데 감독님이 잠시 후 조용히 다가오셔서 이 정도면 된 것 같고 이대로 붙여도 별 문제 없겠다 하시더니 마지막에 담담히 이렇게 덧붙이셨다. “전혀 문제는 없는데, 너랑 나랑은 거짓말하지 말자.” 그날 이후로 모면하는 연기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 설경구와 김희애. 두 베테랑 배우가 최근에서야 세번 연달아 만났다. 촬영 순서대로 차례로 <더 문> <보통의 가족> <돌풍>이다. = <더 문>에선 실제로 얼굴을 못 본 채로 벽 보고 전화했고, <보통의 가족>은 식탁에 마주 앉아 치고받는 대사가 많은 영화지만 김희애 배우와 나는 서로 제수씨, 아주버님 하는 관계라 설정상 서로 거리감이 있다. <돌풍>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싸우기 시작한 거다. (웃음) 애드리브 하나 비집고 들어갈 자리 없는 굉장히 밀도 높은 책이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마지막에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인 관계라 현장에서도 각자 차분히 집중했다. - 설정들이 복합적이긴 하지만 몇몇 특질로 인해 실존 인물을 떠올리게 하는 드라마다. 관련해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 = 꼭 염두에 두고 쓰지 않더라도 모든 작가는 시대의 잠재의식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특히 정치드라마를 볼 때 누군가가 연상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 아닐까. 나는 오히려 그런 자유로운 연상과 논의 속에서 <돌풍>이 문제작이 되기를 바란다.

[임수연의 이과감성] 과학과 윤리, <오펜하이머>

전공이 물리학인데 직업은 영화기자라고 하면 십중팔구 이런 반응이 돌아온다. “<인터스텔라> 같은 영화도 쉽게 이해하시겠어요!” 실제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신작이 개봉할 때마다 ‘영화를 보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물리학 지식’ 같은 제목을 단 유튜브 콘텐츠가 쏟아지는데, 아마도 상대성이론을 잘 알아야 영화를 이해할 수 있다는 논리로 나온 기획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는 물리학을 잘 알지 못해도 재미있게 볼 수 있고(한국 관객수 1034만명이 모두 상대성이론을 잘 아는 건 아닐 테니까), 그래서 그가 현학적인 수사만 늘어놓는 게 아닌 뛰어난 대중영화 감독이라는 말도 흘러나온다. 2023년 개봉한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리지만 수소폭탄의 반대자이기도 했던 J. 로버트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의 인생 가운데 특정 시기를 다룬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보다 먼저 핵폭탄을 개발하기 위해 극비로 진행됐던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끌고 성공시키기까지, 그리고 1954년 원자력에너지위원회 청문회에서 오펜하이머의 보안 인가가 취소되던 때다. 그 과정에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 막스 보른 등 특히 전공자라면 익숙할 이름들이 대거 등장하며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전작이 그랬듯 물리학자들에게 꼼꼼한 자문을 받아 영화 내적 세계를 완성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과학 공식보다는 인간 내면의 다면성과 과학자의 윤리적, 사회적 책임, 전후 매카시즘이 훨씬 중요하게 다뤄지기 때문에 핵분열 원리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해도 영화를 감상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고도 한다. 동시에 ‘핵분열’의 컬러 파트와 ‘핵융합’의 흑백 파트로 나뉜 챕터와 플롯 구조, 물의 파동으로 시작해 많은 관중의 발구름과 박수 소리가 중첩되고 원자폭탄의 파괴력으로 이어지는 사운드와 이미지의 몽타주는 물리 이론을 알아야 더 감각적으로 즐길 수 있기도 하다. <오펜하이머>에 나오는 원자폭탄의 원리는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숱하게 설명됐기에 이 지면에서는 간단한 설명으로 대체한다. 1938년 독일 과학자 프리츠 슈트라스만과 오토 한은 질량수가 큰 우라늄에 중성자를 충돌시키면 원자핵이 쪼개질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때 원자폭발로 생기는 질량 결손만큼 에너지(E=mc²,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를 따름)를 방출시키는데, 슈트라스만과 한의 실험에서는 2만 볼트의 에너지가 생성됐다. 당시 과학자들은 뉴스를 보면서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우라늄 하나가 분열하면서 나온 중성자가 또 다른 우라늄을 분열시키고 또 분열시키고 또 분열시키고…. 그렇게 폭탄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일이 가능하겠다고. 과학자들이 원자폭탄의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확인한 것은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당시 독일에는 원자구조를 누구보다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하이젠베르크가 있었다. 미국은 나치가 먼저 핵폭탄 개발에 성공할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먼저 폭탄 제조에 성공해야 한다고 판단, 영화의 주 무대가 되는 맨해튼 프로젝트를 극비리에 준비한다. 미국은 1945년 7월16일 트리니티 핵실험을 통해 그들이 진짜 폭탄을 만들었다는 것을 확인했고 이는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폭격으로 이어진다. J.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끈 책임자였다. <오펜하이머>에는 몇 가지 사실이 생략되어 있다. 이를테면 로스앨러모스는 맨해튼 프로젝트가 진행된 여러 시설 중 하나였고, 컬럼비아, 시카고, 버클리대학교에서 진행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원자폭탄 제조를 실행에 옮기는 일을 지휘했다(마치 영화에서는 오펜하이머가 모든 프로젝트를 이끈 것처럼 나온다). 레슬리 그로브스 대령(맷 데이먼)이 원래 로스앨러모스의 총책임자로 임명하려 했던 인물은 영화에서 조시 하트넷이 연기한 어니스트 로런스였다. “공산주의자로 의심받는 호사가에 바람둥이”였던 친구 오펜하이머를 대신 적임자로 추천한 인물이 바로 로런스다. 한편 오펜하이머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섬유 회사 임원이었고, 그의 집에는 운전기사, 프랑스인 가정교사, 세명의 가정부와 세점의 반 고흐 그림이 있었다. 16번째 생일 선물로 28피트짜리 요트를 받았다. 오펜하이머는 그가 휴가를 보내던 저택에서 말을 타고 하루 만에 갈 수 있는 곳, 뉴멕시코 북부 로스앨러모스에 비밀 기지를 구축했다.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과학자들을 한데 모으며 “보안보다 효율성에 집중해야 이길 수 있다”며 미국의 모든 산업력과 혁신 기술을 철도로 연결하고 같은 시공간에 학교, 상점, 교회 등 모든 것이 갖추어지게끔 건설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이곳엔 극장이 있고 마음껏 술을 마실 수 있으며 토요일 밤마다 댄스와 피아노 독주회, 일요일에는 하이킹과 승마가 마련됐다. 첫해에만 80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복스>는 “많은 맨해튼 프로젝트의 회고록에서 로스앨러모스는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극비 정부 프로젝트라기보다는 전쟁 전 여름 캠프를 훨씬 더 연상시킨다”고 묘사했다. 독일 나치는 이미 1942년에 핵폭탄 프로그램에 반대하기로 결정했고 미국은 그들이 먼저 핵 개발에 성공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전체 GDP의 0.4%를 지출하며 맨해튼 프로젝트를 진행시킬 이유가 없었다. 오펜하이머의 보좌관이자 맨해튼 프로젝트의 공식 역사가 데이비드 호킨스에 따르면 레슬리 그로브스가 이미 1943년 말에 오펜하이머에게 나치가 핵폭탄 프로그램에 돌입하지 않을 것이라 전했고, 오펜하이머는 1944년 말 “전쟁과 원자폭탄 경쟁이 끝에 치달으면서 과학자들이 다른 시민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낼 권리가 없으며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전쟁이 끝나면 다음 전쟁은 핵무기로 치러질 것”이라 말한 바 있다고 전했다. 전쟁이 끝난 후 50~60년대는 대부분 카리브해 세인트존섬에 있는 휴가용 저택이나 요트에서 보냈다. <오펜하이머>는 실제 오펜하이머가 가졌던 훨씬 복합적인 층위를 쳐내면서 대중영화로서 몰입력을 얻어냈지만, 덕분에 그가 극 중 루이스 스트로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호소한 대로 보다 쉽게 “순교자”가 될 수 있는 권위를 얻는다. 영화는 감독이 잡은 프레임과 편집에 따라 권력이 부여되는 매체다. 특히 오펜하이머의 1인칭 내레이션과 그를 중심에 두고 나머지를 포커싱 아웃하는 구도를 즐겨 쓰는 <오펜하이머>는 맨해튼 프로젝트 전체와 윤리적 죄책감의 주체가 그가 되게끔, 그것도 할리우드 거대 자본과 마케팅을 타고 전세계인들이 인식하게끔 유도한다. 공교롭게도 소수 엘리트주의에 복무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오펜하이머>의 소재인 원자폭탄은 자연에 존재하는 우라늄 중 0.7% 정도 존재하는 유일한 핵분열 동위원소, 즉 희귀한 물질을 재료로 한다. (이보다 더 위협적인 수소폭탄이 자연에서 가장 흔한 수소에서 시작되는 것은 정치적으로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관객이 <오펜하이머>를 보기 전에 알아야 할 배경 지식이 있다면, 카메라라는 권위에 가려져서 지워진 역사적 맥락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를 염두에 두고 영화를 감상하는 쪽이 맨해튼 프로젝트 이후 핵전쟁과 죽음 이후에도 프로메테우스적 순교자로 권위를 얻은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을 알아가기에도 훨씬 흥미롭다.

[비평] 지극히 영화적 순간들, <퍼펙트 데이즈>

제목이 빚어내는 단언적 인상에 비해 빔 벤더스의 <퍼펙트 데이즈> 속 히라야마의 일상엔 순환의 피로감과 은근한 불화가 가득하다. 당초 공중화장실 개선 작업인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출발한 영화는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히라야마의 일이 더러움에서 깨끗함이라는 일회적 전환이 아닌 그 두 상태의 지속적 순환임을 절감시킨다. 히라야마는 마치 정화를 목표로 도를 닦는 일종의 ‘수행자’처럼 정성껏 화장실을 쓸고 닦는다. 그런 히라야마의 모습을 카메라는 장인의 기예를 관찰하듯 공들여 포착한다. 말하자면 히라야마는 내일이면 더러워져 있을 공간을 오늘 깨끗이 하는 일에 온 힘을 쏟는 자다. 동료 타카시가 궁금해하는 것처럼 다분히 호기심을 자아내는 히라야마와 그의 사연에 대해 영화는 히라야마의 과묵함을 반영하듯 그저 그의 일상을 조용히 담아내며 그가 듣고 읽는 노래와 소설을 통해 그의 전사를 종종 은유할 뿐이다. 노동만큼 중요한 일상과 루틴 히라야마의 일상엔 노동만큼 중요한 활동들이 있다. 카세트테이프로 옛 노래 듣기, 취침 전 독서하기,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기. 듣고, 읽고, 찍는 일련의 유희 활동에 영화를 본다는 행위가 포함되지 않은 것에 의문이 들면서도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영화제작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할 때, 자연스러운 선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무렵, 히라야마의 꿈에 돌연 흑백 몽타주가 펼쳐진다. 감독 히라야마(그의 감독으로서의 면모는 이후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인화한 뒤 마음에 들지 않는 컷은 과감히 버리는 모종의 편집 행위에서도 드러난다), 관객 히라야마로 이뤄진 그 영상은 그의 기억과 상상으로 뒤섞였는데, 이는 현실과 비현실의 불안정한 결합인 영화와 닮아 있다. 극장에 가지 않고도 극장을 나선 관객의 표정을 한 채 깨어나는 히라야마는 반복되는 현실의 루틴을 수행한다. 기상과 출근, 퇴근과 취침, 중간중간 식사와 목욕이 더해지는 그의 반복적 일상은 몇몇 인물의 등장으로 인해 변화를 맞이한다. 단출한 일상과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인간관계만 유지하는 그이지만 그럼에도 만남과 이별이 그의 정중동의 세계에 틈입하는 것이다. 어느 날, 히라야마의 알려지지 않은 과거를 상징하는 조카 니코가 그를 찾아온다. 니코는 히라야마의 노래와 책과 사진을 함께한다. 둘 사이에 히라야마의 과거와 니코의 고민에 관한 대화가 이따금 오가지만 핵심을 우회하는 느슨하고 부드러운 방식으로 이뤄질 뿐이다. 니코는 히라야마가 습관처럼 사진을 찍는 나무를 가리켜 삼촌의 친구냐고 묻는다. 그 나무 앞에 선 니코의 뒷모습을 히라야마가 카메라로 찍는다. 앞서 니코도 청소하는 히라야마의 모습을 자신의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한 적이 있다(이때 화장실을 청소하는 히라야마를 힐끔거리는 어떤 여학생의 표정도 함께 포착된다).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카메라에 서로를 담는다. 축소된 언어가 감당할 수 없는 타인이라는 세계가 이미지로 감각된다. 이는 찍히는 존재와 찍는 존재 모두에게 통용되는 이미지의 역량이다. 두 사람의 평화로운 시간도 잠시, 히라야마의 동생이자 니코의 엄마인 케이코가 그들 앞에 나타나 니코를 데려간다. 짧은 포옹으로 이별한 뒤, 히라야마는 눈물을 흘린다. 그날 밤, 그의 꿈-영화엔 물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것은 삼촌과 조카가 낮에 본 강의 소리일까, 조카를 떠나보낸 삼촌의 흐느낌일까. 한편 히라야마가 호감을 갖고 있던 술집 주인의 전남편 토모야마는 히라야마의 다가오지 않은 미래, 요컨대 죽음을 노정한다. 어느 밤, 히라야마는 어둠이 내려앉은 강을 바라보며 토모야마와 대화를 나눈다. 죽기 전 헤어진 아내를 만나고 싶었다며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토로하던 토모야마는 문득 질문을 던진다. 그림자가 겹치면 더 어두워질까요? 그 질문에 히라야마는 두 그림자를 겹쳐보자고 제안한다. 겹쳐진 그림자가 변하지 않았다는 토모야마의 말에 히라야마는 변하지 않은 게 아니라고 말한다. 이후 두 사람은 아이처럼 그림자 밟기 놀이를 한다. 그림자는 구체성이 제거된 인간의 삶을 형상화한다. 그림자로 위시되는 두 세계는 부서지거나 파괴되지 않고도 운동감을 배태한 채 공존하며, 서로의 영향으로 미세한 변화를 겪는다. 히라야마가 낮에 니코와 나눈 대화가 단절되거나 연결될 수 없는 서로 다른 두 세계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밤에 토모야마와 나눈 대화는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무너지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다(그리고 그건 픽션과 리얼리티라는 두 불완전한 세계의 공존을 꾀하는 (극)영화라는 것의 태생적 과제와도 공명한다). 다가올 죽음 앞에서, 당장의 어둠 속에서 히라야마는 암시된 가능성을 가늠해본다. 그날 밤에도 그의 꿈-영화엔 물소리가 울려 퍼진다. 마찬가지로 이건 그날 본 강의 소리일까,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어느 사내의 회한의 울음일까.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 영화의 마지막, 출근하는 히라야마의 얼굴이 보인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이른 새벽, 그가 웃는지 우는지 분간하기 어렵다. 명배우 야쿠쇼 고지의 열연이 돋보이는 이 장면에서 빛과 어둠, 웃음과 울음, 기쁨과 슬픔, 생과 죽음이 그의 얼굴을 무대 삼아 순환한다.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이 일렁이는 배우의 얼굴은 일순간 연기라는 기술의 차원을, 스크린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정념에 가닿지만 곧 대도시의 일부로 스며들고 만다. 영화의 시작 또한 도시의 풍경이었음을 기억한다. 이때 들리는 노래 은 새, 태양, 갈대, 물고기, 강물, 꽃 등에게 자신의 느낌을 아느냐 묻는데, 그 탈중심적 질문은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상기시킨다(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벤더스는 40여년 전 오즈의 도쿄와는 달라진 80년대 도쿄의 모습을 담은 영화 <도쿄가>를 만든 바 있으며, 히라야마라는 이름은 오즈의 영화에서 류 지슈 등이 맡은 배역의 이름이다). 인간에게 결코 특권적인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 오즈의 영화처럼, <퍼펙트 데이즈> 또한 그러한 시점으로 세상을, 인간을 바라보는, 보기보다 (물론 인간 입장에서) 무정하고 사늘한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엔딩 신을 보며 들었다(애초 이 영화의 제작 출발점이 인간이 아닌 공간이었음을 떠올려본다). 한편 이 영화가 분명 관심을 두는 것은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이다. 히라야마의 일상 속에서, 때로는 그의 꿈-영화 속에서 나뭇잎은 바람에 나부끼고 그 풍경 안에서 빛과 어둠이 교차한다. 이때 ‘고모레비’(木漏れ日: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가 존재하는 즉물적 순간은 빛과 어둠의 원리로 작동하는 지극히 영화적 순간에 다름 아니며, 극장을 나선 관객은 그렇게 자신이 삶-영화라는 순간을 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