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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지 채널 - 거대한 강박> 아트영화 전문 채널의 영광과 좌절

텔레비전을 켤 때 마다 보고 싶은 영화가 딱딱 나와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케이블 TV의 영화전문 채널이 이런 컨셉이겠지만, 소위 “아트영화”를 즐기는 씨네필들에겐 그저 그런 상업영화나 들이대는 의미 없는 공간일 뿐이다. 세상에 아트영화들만 24시간 틀어대는 공간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내 나중에 성공하면 시네마테크나 아트영화 케이블 TV를 꼭 세운다.” 지금까지 만나 본 많은 씨네필들이 항상 취중에 펼치는 공상의 나래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기는 그들의 면면을 볼 때 요원할 듯 하다. 대신 오늘도 한국 씨네필들은 저작권의 감시를 피해가며 파일공유 사이트를 뒤지거나 아니면 아마존 같은 외국 사이트의 휘황찬란한 DVD 섹션에서 통한의 구입버튼을 클릭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20여 년 전 미국 LA에서는 공상 속에서만 가능할 것 같았던 “아트영화” 전문 케이블TV가 실제로 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돈도 벌었었단다. 이름 하여 “Z 채널 (Z Channel)” 잔 카사베티스의 다큐멘터리 은 초창기 케이블TV 시장에서 LA 일부 지역에서 서비스되던 Z 채널이 경험한 성공과 실패에 대한 일대기이다. 이 영광과 좌절의 역사를 지휘했던 프로그래머 제리 하비의 영화에 대한 애정이 어떻게 한낱 프리미움 영화채널이었던 Z 채널을 강력한 아트하우스이자 할리우드 문화 트렌드로 변모시켰는지를 기술함과 동시에 자살로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비극적인 강박관념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Z 채널을 통해 할리우드의 이단아로 꼽히던 로버트 알트만의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이 재평가 받을 수 있었던 것이나 안드레이 줄랍스키가 처음으로 미국에 소개될 수 있었던 에피소드 등의 소개는 당시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보여주며, 특히 마이클 치미노의 <천국의 문>이 극장 흥행 참패 후 Z 채널을 통해 복원 상영됨으로써 복권되는 과정에 대한 증언은 오늘날 유행하는 감독판 내지 확장판의 의미와 기원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명백히 밝히고 있다. 이번에 발매된 DVD에는 감독 및 스탭의 육성해설이 담긴 영화 본편 뿐 아니라 추가 인터뷰 장면들이 보너스 디스크에 수록되어 있으며, Z 채널 방송만큼이나 인기를 끌었다는 Z 매거진의 복각 카피가 북클릿으로 들어있다. Z 채널에 대한 회고는 지나간 케이블TV에 대한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할리우드 시스템이 영화시장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그 시스템 내에서 필름메이커들이 어떻게 영화를 기획하고 만들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기록으로서도 의미 있는 타이틀이다. 감독 잔 카사베티스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아메리칸 뉴 씨네마의 기린아 존 카사베티스와 지나 롤랜즈의 딸이다.

[로마] 이탈리아 영화산업 어떻게 변했나

최근 5년 동안 이탈리아 영화시장을 분석, 기록한 보고서가 출간됐다. 국립 영화전문기관 시네시티는 ‘시청각 감시소’를 운영하면서 2년 동안 준비한 끝에 지난해 말 <이탈리아 영화시장 2000-2004>를 출간했다. 이 보고서는 시네텔, 메디아 살레스, 우니비데오, 닐슨 이탈리아, 인포카메라, 상공업 회의소, 이탈리아 통계청 등의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했다. 시청각 감시소 소장인 안토니오 브레스키는 보고서 서문에서 “최근 5년 동안의 이탈리아 영화산업을 총망라하여 보기 쉬운 도표로 만들었다. 영화산업 각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최근 영화산업의 경향을 한장의 사진처럼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보고서다”라고 전했다. 이 보고서는 개봉영화 분석, 이탈리아영화 제작현황, 배급, 할인, 영화산업, 홈비디오, 텔레비전영화, 국제 영화시장의 경향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탈리아 영화제작 편수는 해마다 늘고 있고 티켓판매 수도 상승곡선을 보이고 있다는 것. 2004년 제작된 이탈리아영화는 138편으로 2000년 103편에 비해 34% 증가했다. 이에 비해 국내외 영화들의 전체 평균 개봉 수는 2000년 435편에서 2004년 392편으로 감소했다. 보고서는 영화 개봉 편수는 줄었지만 2000년에 비해 2004년 영화티켓 판매량은 11.6% 상승해, 일반 관객은 예전에 비해 영화를 더 많이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흥미롭게도 지난 5년 동안 미국영화 판매수익은 8.33%가 감소했는데 이탈리아영화는 13.75% 더 많은 판매수익을 올렸다. 이탈리아영화 지지율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현상이 이탈리아 영화시장의 직접적인 수입 증대로 연결되지는 못한다는 분석도 보고됐다. 미국영화의 이탈리아 시장점유율이 2000년 66.72%였던 것이 2004년 59.7%로 감소하기는 했지만 최근 5년 동안 많은 관객을 동원했던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 시리즈 등 미국영화들이 대박을 터트리며 이탈리아 영화시장을 침식해왔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영화 시장에 최근 나타난 새로운 경향은 홈비디오 시장의 성장이다. 보고서는 홈비디오 시장이 지난 5년 동안 53% 상승률을 보이고 있어 영화산업이 안방을 주목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 외에도 이탈리아영화 중 국가예산으로 지원을 받아 제작된 영화는 지난 5년간 제작된 591편의 영화들 중 224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해 동안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하는 계절은 12월과 1월로 집계됐는데 이는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 영화관을 찾는 이들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가장 저조한 달은 여름휴가가 끼어 있는 7월과 8월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영화인 20인의 추천도서 [5]

테크놀로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제기 <하이테크네-포스트휴먼 시대의 예술/디자인/테크놀로지> R. L. 러츠키 지음/ 김상민·윤원화 외 옮김/ 시공사 펴냄 <하이테크네-포스트휴먼 시대의 예술/디자인/테크놀로지>는 모더니티의 시작부터 현대의 테크노-문화에 이르는 테크놀로지, 예술, 문화의 관계 변환을 고찰함으로써 ‘테크놀로지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책이다. <이론을 위한 전략-마르크스에서 마돈나까지>를 공동 편집했던 R. L. 러츠키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프리츠 랑의 영화와 옥타비아 버틀러의 과학소설, 토머스 에디슨의 발명품과 일본 아니메, 구성주의와 사이버스페이스를 전방위적으로 아우르며 새로운 하이테크네의 지형도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테크놀로지라는 단어 자체가 넘쳐나는 지금. 우리는 어쩌면 테크놀로지라는 단어 자체를 오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어린 시절에 상상했던 서기 2000년대는 지금의 2000년대와 같은 모습이었을까?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미래를 굳이 테크놀로지와 연관시키며 우리에게 그 많은 정보들을 던져주었던 것일까? 그건 어쩌면 단순히 흥미를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었을까? 이토록 많은 궁금증이 있었던 나에게 R. L. 러츠키의 <하이테크네-포스트휴먼 시대의 예술/디자인/테크놀로지>는 조금이나마 어떤 단서를 전해주었다. 영상 미학 세계에 대한 친절한 안내서 <영상제작의 미학적 원리와 방법> 허버트 제틀 지음/ 박덕춘, 정우근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1973년에 초판이 발행된 <영상제작의 미학적 원리와 방법>은 1999년에 두 번째 번역본이 출판되었으며, 다시 2002년에 2판에 비해 새로운 장을 만들고 디지털 시대에 맞춰 새로운 개념들이 추가되어 재출판되었다. 물론 그 지나온 세월 동안 ‘영상’이라는 분야가 엄청난 변화와 발전을 이루었고 영상을 만드는 기술 또한 다양해졌지만, 이 책은 우리가 영상제작에 앞서 이해해야만 하는 기본적인 다섯 가지 미학적 요소(빛, 공간, 시간, 동작 그리고 음향)가 어떻게 상호조화를 이루며 텔레비전과 영화에 적용되는지에 관해서 여전히 잘 설명하고 있다. 또한 각 미학적 요소들의 세부적인 구성 요소들을 사진이나 일러스트, 그림 등을 예로 들며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 처음 영상을 접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도 돋보인다. <영상제작의 미학적 원리와 방법>은 보는 이가 가시적인 메시지의 이면에 존재하는 영상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영상미학의 원칙을 제시하고 다양한 텔레비전과 영화 장르를 경험하고 판단하게 해준다. 또한 이 책은 텔레비전, 컴퓨터, 그리고 영화 영상의 효과적인 표현을 위해 하나의 사건(event)을 명료화하고 강조하며 해석하는 방법을 보는 이에게 제시해준다. 다시 말해 ‘사람의 지각작용을 조절하기 위해 어떤 미학적인 요소들을 어떻게 적용시키는가’ 하는 것을 이 책을 접한 이들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이럴 때에는 이렇게 촬영해라’ 식의 단편적인 정보 전달이 아닌 좀더 체계적인 영상제작 기법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다양한 영상 이론을 바탕으로 실질적이고 응용적인 바탕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영상제작의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우리 주위에서 흔히 접하고 상상할 수 있는 여러 예시들을 다양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책을 읽는 사람들이 빠르고 즐겁게 이론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음향과 영상과의 결합에 관한 여러 정보들은 영상과 소리가 결코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새삼 확인해준다. 어느 광기어린 영화인의 초상 <올리버 스톤1, 2> 제임스 리어단 지음/ 이순호 옮김/ 컬처라인21 펴냄 <올리버 스톤>은 정확히 말하자면 <내추럴 본 킬러>의 올리버 스톤이 있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저자 제임스 리어단은 <올리버 스톤>을 쓰기 위해 3년여에 걸쳐 올리버 스톤과 그의 가족, 주변 사람들과 수많은 인터뷰를 했다. 증권브로커 미국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난 그가 겪는 문화적 혼란, 방황, 베트남 참전을 거쳐 현재에 이르는 이야기가 한편의 영화처럼 펼쳐진다. <올리버 스톤>은 기존 감독들의 평전과는 달리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인간 올리버 스톤과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을 파헤친다. 스티븐 스필버그나 구로사와 아키라를 비롯한 한 세대를 풍미한 감독들의 평전에는 대부분 상찬으로 가득하지만 <올리버 스톤>은 한 영화감독을 현미경처럼 해부하는 치밀함을 견지한다. 올리버 스톤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느낄 수 없는 영화를 그는 근본적으로 만들지 못한다. 느낌을 생생히 살리려는 그의 열망은 때때로 극단적이고 과도한 방법을 수반한다. <스카페이스>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그는 실제로 코카인과 헤로인에 중독되어 많은 범죄자들과 어울리며 생생한 대사와 리얼한 상황을 얻어냈고 이를 여과없이 반영했다. 소재의 위험성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이 책의 제작 당시 에피소드를 읽는다면 그의 영화적 의지에 대해 존경심을 품게 될 것이다. 그의 논쟁적 작품들이 어떻게 발생했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예술적 광기와 동력의 원천이 무엇인가를 <올리버 스톤>은 보여준다. 마이클 더글러스는 <올리버 스톤>의 추천사를 이렇게 적었다. “올리버는 할리우드를 감동시키려고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며 돈을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세상에 영향을 주려고 예술을 하는 것도 물론 아니다. 그는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즉 그 자신의 악마를 정복하지 많으면, 광기를 이겨내지 않으면 그리고 격발적인 성향과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영화를 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한국 영화인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특히 술자리에서 “흔히 할리우드이니까 가능한 이야기이다. 나도 거기서는 그렇게 할 수 있다”라고 쉽게 말하는 이들에게 <올리버 스톤>을 권하고 싶다. 한국에서도 못하는 일이라면 그곳에서는 더욱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올리버 스톤>을 읽어보면 실감할 것이다. 참고로 서점에서 <올리버 스톤>은 영화가 아닌 인문서적 인물 코너에서 만날 수 있다. 영화적인 사진이란? 필립 로르카 디 코르시아·피터 갈라시/ Museum of Modern Art 펴냄 필립 로르카 디 코르시아/ Twin Palms Publishers 펴냄 영화의 스틸을 찍는 것이 사진을 하는 사람으로서 창의력(혹은 더 거창하게 예술성)을 발휘하는 데 제한적 작업이 아니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만, 같은 영화를 다른 사진가가 스틸을 찍는다면, 분명 서로 다른 결과물을 낼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의 스틸이더라도, 사진은 역시 피사체와의 교감이 중요하고, 상대(즉 극중 캐릭터)와 그의 인생을 대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찍어내는 인물과 그의 인생은 물론 가상의 것이지만, 진짜인 것만 같은 순간을 마주할 때는 배우가 아닌 극중 그 인물을 만난 것만 같아서 가슴이 설렌다. 필립 로르카 디 코르시아는 일반인을 모델로 ‘영화적’인 사진을 찍어온 작가로, 미리 선정된 일반인 모델이 포즈를 취하고, 임의로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이 적절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순간을 포착한다. 이런 식으로 그는 <할리우드> 연작 시리즈를 내놓았고, 나아가 세계 도시들의 거리 위에서 ‘거리 장면’(street scenes)들을 보여주었다. 영화의 스틸이 가상의 인물의 삶을 담는다면, 디 코르시아의 작품들은 거꾸로 현재를 살아가는 누군가의 실제 삶을 영화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작품들은 마치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인생이란 영화의 주인공이라는, 누구나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그런 흔한 말들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사진은 순간의 이미지이다. 좋은 사진은 대상의 그럴듯한 외형적 멋이 아니라 그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에 담긴 이야기까지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 코르시아의 사진 안에서 배경과 자연스럽게 융화된 인물은 사전에 합의된 어느 정도의 연출에도 불구하고- 혹은 반대로 그러한 연출에 의해서 각자의 스토리를 가진다. 는 필립 로르카 디 코르시아의 대표적인 작품을 보여주는 사진집이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많이 찍어보는 연습도 필요하지만, 좋은 작품을 많이 보는 훈련도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피사체에 대한 이해와 설득력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디 코르시아 작품은 하나의 모범과도 같은 사진이다. 수년 전에 본 그의 작품은 아직도 나에게는 큰 자극이고 영감이다.

[스크린 속 나의 연인] 오드리 햅번

술자리에서 조금만 유치해지면 나는 영화 배우 얘기를 늘어놓는다. <킹콩>에서 나오미 와츠 죽이지 않든? 그래. 머홀랜드 드라이브 때부터 예사롭지 않더라. 아네트 베닝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아. 에이, 아니다. <러브 어패어>에서의 그녀를 따라갈 수는 없지. <이터널 선샤인>의 케이트 윈슬렛은? 그렇게 팔뚝 굵고 매력적으로 보인 여배우는 처음이야. 맞아, 맞아. 주절 주절…. 마치 헤어진 여자 친구를 회상하듯이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계속되다보면, 궁극적으로 나는 세 명의 여배우를 거론하는 것으로 그 주제의 신선함을 떨어뜨리는 치기를 재탕한다. <카사블랑카>의 잉그리드 버그만.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의 셜리 맥클레인. 그리고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오드리 햅번. 이미 여러 번 들어온터라 지인들은 별 관심도 없는데 나 혼자 잔뜩 감상에 빠져 이 세 여배우 예찬론을 다시금 늘어놓고 집으로 돌아온다. 술기운이 잔뜩 오른 나는 늘 그랬듯이 손닿기 쉬운 곳에 놓아둔 디브이디를 플레이어에 넣고 텔레비전 앞에 늘어진다. 헨리 맨시니의 꿈결 같은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지방시의 검은 드레스를 입은 고혹스런 미스 고라이틀리가 티파니 쇼윈도우 앞을 서성인다. 안녕, 미스 고라이틀리. 이젠 거의 나의 일상이 되어버린, 행복한 기분으로 잠을 청하는 방법. 오드리 햅번. 그녀가 헐리우드 역사의 아이콘인 것도, 패션 리더였으며 말년에 아름다운 일을 많이 했다는 것도 내겐 관심사가 아니다. 사실 오랜 세월 그녀의 영화들을 봐오면서도 전혀 여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다른 배우들에 비해 더 특별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그녀보다 예쁘고 섹시한 여배우들은 수없이 많았다. 단지 그녀가 나오는 영화들은 대부분 재미있었다, 는 정도였을 뿐.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그 많은 영화 중에서 <티파니에서…>는 무의식중에 늘 내 곁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 영화의 어떤 게 나를 끌어당기는 것일까. 헨리 맨시니의 음악? 블레이크 에드워즈의 경쾌한 연출? 그 해답은 나중에 의외의 영화를 통해 찾을 수 있었다. <사랑과 영혼> 이란 덜떨어진 흥행작 땜에 묻혀버렸던 스티븐 스필버그의 또다른 걸작 <영혼은 그대 곁에>(1989)에서 나는 노년의 햅번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영화에서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맞은 드레이프스를 인도하는 천사 ‘햅’으로 깜짝 출연하며 자신의 필르모그래피의 마침표를 찍는다. 환갑의 나이로, 여전히 맵씨가 좋은 하얀색 옷으로도 미처 가릴 수 없는 주름살 가득한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햇살을 받고 있는 그녀에게서 나는, 노년 여배우의 처량함이 아니라 신비로운 슬픔같은 걸 느꼈고, 곧 그 얼굴은 오래 전 젖은 눈으로 애처롭게 웃어보이던 미스 고라이틀리로 오버 랩되며 내 마음을 마구 뒤흔들었다. 한 여배우를 바라보며 신비롭다, 라는 느낌으로 마음마저 뭉클해진 경험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40여년 전 그녀가 만든 홀리 고라이틀리는 생각보다 훨씬 내 마음 깊숙이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햅번은 <영혼은 그대 곁에>를 끝으로 착한 일 많이 하다가 4년 뒤인 1993년에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그녀에 대한 무수한 좋은 평판으로 보건대 아마도 지금은 마지막 영화에서처럼 천사가 되어 활동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천사로 햅번을 기용했던 스티븐 스필버그. 새삼 뛰어난 예지력을 가진 감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논술대특강 - 한방에 끝내는 영화 논술 [2]

논술백서3. 잘난 척 떠들지 말고 뭐든지 왜냐고 다시 한번 따져보라. 자, 출석 부르기 전에 선생님한테 감사의 봉투들 안 주니? 썰렁하구나. 요즘 너희들 <왕의 남자>의 준기 오빠한테 꽂혀서 공부도 게을리한다는 소문이 자자하더라. 자, 수업 들어가자. 연산군은 왜 늘 미친 사람처럼 나오는 걸까? 왜 연산군은 광기의 임금으로 알려지게 된 것인지에 대해 논하라 <왕의 남자> 보면 신하들이 다 그러지. ‘아니 되옵니다’, ‘아니 되옵니다’…. 왜 신하들이 다 연산군만 보면 이가 갈려서 그러니? 학생1 | 임금이 임금다워야 하는데 그러지 않으니까 비판적인 여론을 만든 거 아닐까요? 이걸 생각해보자. 조선시대 중·후기에 연산군, 광해군, 사도세자 같은 불운한 사람들이 많이 나왔단 말이야. 그런데 이런 역사적 평가는 누가 내리는 거지? 그렇지. 다음에 왕권을 잡은 세력이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평가하는 거지. 물론 독단적으로 역사를 적을 수 없는 제도적 장치가 있기는 하지만 그거야 고양이한테 ‘생선 가게를 공정하게 잘 봐주십쇼’ 하는 거랑 마찬가지 아니겠니? 야만의 기록이 아닌 역사가 어디 있겠니? 역사는 늘 승자의 역사라는 점을 유념하고 역사를 대해야 돼. 우리가 늘 역사책에서 장군들이 폼나게 칼 휘두르는 것만 봤지만 <황산벌>을 보면 거기서 신음하는 건 이름도 없고 힘도 없이 전쟁터에 끌려나온 농사꾼들이야. 미치광이로 몰린 연산군이나 사도세자에 대한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그들이 처음엔 자질이 모자라기는커녕 촉망받는 군주였다구. 왕이 자신의 힘을 강화해 중앙집권을 하겠다는 왕권정치와 당쟁구도에서 승리해 정국운영을 주도하겠다는 신권정치가 긴장 상태를 이루는 가운데 그들은 희생당하고 역사에서도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물론 이건 그냥 그럴 거라는 추정이 아니라 꼼꼼한 역사 읽기를 통해 역사를 재구성한 몇몇 학자들의 주장이야. 여기에 덧붙일 만한 게 야사나 정담, 그리고 각종 개인적 기록들이지. 그리고 음모론도 빼놓을 수 없어. 음모론은 그냥 하나의 가십이 아니라, 통제된 여론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려는 사람들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어. 가령 영조의 경종 독살설, 정조 독살설 등이 그것이지. 연산군은 이런 음모론적인 측면에서 보면 조선시대 중기부터 강력해진 신권정치와 이후의 세도정치에 점차 세력을 내주게 된 왕권의 부실 징후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볼 수 있어. 학생2 | 그렇다면 광대들의 정치풍자극은 연산군이 물타기를 통해 신권을 압박하려는 시도였을지도 모르겠네요? 너 이녀석 똑똑하구나. 너는 ‘봉투’를 면제해주마. 영화적으로 본다면 그렇지. 연산군은 예술의 정치화를 통해 반대세력에 압박을 가하고 싶었을지도 몰라. 이를테면 광대들은 참여예술을 한 셈이지. 군사정권 시절 마당극을 탄압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을까? 부당한 권력을 풍자하는 게 예술의 최대 목적은 아니지만 말이야. 더 볼 영화 날로 보수화해가는 미 군부와 군산복합체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연구. <영원한 제국> 왕권과 신권의 다툼이 빚어낸 비극에 대한 추론. 논술백서4. 세상이 너무 복잡하면 가족을 확대해서 생각해보라. 젖을 때까지 써. 논술 딴 거 없어. 읽는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하면 젖을까, 그걸 열나게 궁리해야 하는 거야. 나 같은 사람이 많아지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될까? 성의 개방화가 사회에 가져올 영향에 대해 논하라 너희들 그런 생각 하고 있지? 이렇게 생각하면 돼. 성적 자기결정권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이양되고 있는 과도기라고 말이야. 너희들 하라는 공부 안 하고 술 마시고 집창촌 근처에서 기웃거린 적 있지? 학생1 | 왜 선생님의 취미를 저희한테 덮어씌우세요? 왜 공창제가 생겼을까. 그건 은밀한 축첩제도라고 할 수 있어. 물론 전근대적이고 마초적이지. 그런데 여성에게 성적 자기결정권과 그를 뒷받침해줄 호적제도의 근본적인 개혁과 여성의 경제적 자립이 이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정말 자기가 직업으로 택하고 싶은 사람만 집창촌에 취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집창촌에 드나드는 사람을 검거하는 현행 제도는 이를테면 여성의 경제적 조건과 법적 제도는 알 바 아니고 들키지 않게 잘하라는 ‘눈 가리고 아웅’ 정도밖엔 안 되는 거야. 왜 <연애의 목적>의 홍이(강혜정)는 그렇게 수동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표현할까? 왜 유림(박해일)이는 ‘5초만 넣고 있겠다’는 준강간적 태도로 연애에 임할까? 그들은 서로 자신의 성적인 자기결정권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성인이지만, 아직 성에 대해 이중잣대를 대고 있는 한국사회의 감시망 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그들은 아직 어린애라고 할 수 있어. 학교 안에서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이나 남의 연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잖아. 성적인 권리, 몸의 권리를 사회적 도덕적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보수주의와 그 권리를 개인에게 이양해야 한다는 자유주의가 여기서 맞붙은 거야. 너희들이랑 상관없을 거 같지? 너희들이 머리 하나 마음대로 못 기르고 학교의 잣대대로 잘라야 하는 거랑 이건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어. 그런 점에서 <싱글즈>에서 아빠도 없이 자기 애를 자기가 키우겠다는 동미(엄정화)는 홍이의 믿음직스러운 선배라고 할 수 있고, <바람난 가족>에서 고등학생 애인의 애를 낳아기르며 무용가로서의 꿈도 키우려는 호정(문소리)은 그런 동미들의 왕언니라고 할 수 있지. 호정은 인권변호사이자 동시에 한국사회의 성의 이중잣대를 실천하는 남편 영작(황정민)을 쫓아내잖니. 그게 경제적 자립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이지. 근데 봐라. 이제 호주제 폐지되지, 여성들의 경제력이 남성을 앞지를 기세지, 그리고 동미나 호정처럼 대안가족을 만들어가는 여성들이 늘어나면 어떻게 되겠니. 이제 경제구조가 개편이 되는 거야. 전통적인 남성 가부장 호주들이 나라를 이끄는 게 아니라 저마다 제각각의 사람들이 각자 형편대로 가정을 꾸리면서 살게 될 거란 얘기지. 그런 사람들이 등록금 내주는 학부모가 되면, 글쎄다, 너희들의 머리 길이도 이제 너희들이 결정할 수 있는 때가 오지 않을까. 더 볼 영화 <델마와 루이스> 남편에게 절절매는 델마가 친구 루이스와 함께 처음으로 자기 자신만의 삶을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논술백서5. 신문과 텔레비전이 먹여주는 대로 먹지 말고 스스로 떠먹어라. 너희들 바쁘구나. 인사 좀 하지. 어, 그래. 오늘은 거짓말의 효용과 기회비용에 대해 생각해보자 <달콤한 인생>의 선우(이병헌)와 강 사장(김영철)이 서로에게 한 거짓말과 황우석 박사의 논문조작을 연관시켜 거짓말의 기회비용을 논하라. <달콤한 인생>에서 왜 보스랑 2인자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거짓말을 했을까? 아는 사람? 학생1 | 보스로서는 자기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인지 검증하는 단계가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선우는 자기만 입을 다물면 아무도 피해를 입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겠죠. 그래, 그런 점에서 선우는 어리석은 선택을 했지. 이실직고를 해서 잃을 것과 거짓말을 해서 잃을 것의 크기를 비교했어야 옳았는데. 낭만적인 상상과 자기 목숨을 맞바꾸고 말았어. 강 사장도 이런 무리한 검증절차를 밟음으로써 굳이 치르지 않아도 될 기회비용을 낭비했어. 조직도 날려버리고 자기 목숨까지 잃었잖아. 황우석 박사도 자신이 보유한 기술만을 이용해 연구했을 때와 논문조작이 들통났을 때의 경우를 여러모로 따져서 생각해야 옳았지. 강 사장네 조직은 소규모라 기회비용이 조직 내부에서만 소모되었지만, 황 박사의 경우는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연구비까지 끌어쓰면서 국가와 국민의 기회비용까지 낭비했다는 데서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부작용, 즉 불필요한 외부효과까지 발생했지. 대외적으로는 한국 과학자들의 신인도 추락 같은 걸 생각할 수 있겠지. 대내적으로는 국가와 언론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추락이지. 학생 2 | 하지만 국익을 위해서 조금만 더 기다려주고 덮어줬어야 하지 않나요? 글쎄. 언제 성취될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국익을 위해서 불필요한 많은 세금과 국제적 신인도와 도덕성을 희생한다는 건 비합리적이지. 그나마 브릭 같은 젊은 과학자들, MBC 같은 ‘내부고발자’에 대한 오해를 긍정적인 인식으로 바뀐 건 큰 수확이지. 만약 이런 내부고발자가 없었다면 더 큰 국익의 손실이 있었을 거야. 황 박사는 정보의 비대칭성(불균형)을 이용해 계속 거짓말을 하고 국익에 호소했잖아. 연구비를 대주는 국가도 그 세금을 낸 시민도 그걸 몰랐지만 대신 그 도덕적 해이를 내부고발자들이 잡아냈으니 무너지는 둑을 가까스로 막은 셈이지. 국제사회에서 신용을 잃을 경우에 받을 타격, 애국적인 광기로 진실을 가리게 될 경우 입을 사회적 혼란은 상상할 수도 없지. 그런 큰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열렬하게 한국사회가 영웅을 고대하고 있다는 슬픈 얘기지. 심각한 도덕적 해이에 빠진 슈퍼맨에 대해 아직도 큰 미련을 갖고 있다는 건 한국사회가 어딘가 깊은 외상을 입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국가의 이익=나의 이익이라는 집단주의적 사고와 효율성의 신화에 대한 맹신이 도리어 집단의 이익과 효율을 해친다는 게 아이러니지. 그러니 무조건적으로 텔레비전과 신문이 말하는 대로 믿지 마. 그건 진실이 아니라 누군가 진실이길 바라는 희망에 불과한 건지도 몰라. 더 볼 영화 <인사이더> 담배회사가 매출을 늘리려 담배에 암모니아 화합물을 첨가하자 연구개발부 책임자가 목숨을 걸고 회사의 비리를 폭로한다. <에린 브로코비치> 대기업 PG&E의 공장에서 유출되는 크롬성분이 마을 사람들을 병들게 하지만 회사는 발뺌을 한다.

[추모기획]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을 추모하다

한국이 낳은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이 지난 1월29일(한국시각 1월30일) 미국 마이애미에서 숨을 거뒀다. 예술가로서는 한창 나이라 할 수 있는 일흔네살에 ‘아리랑’과 ‘엄마’를 흥얼거리며 먼 이국에서 눈을 감았다. 십대 후반에 조국을 떠나 일본과 독일과 미국을 떠돌며 지구적 예술가(글로벌 아티스트)로 살았던 그는 말년에 고향을 그리워하며 한국에 돌아가기를 원했다. 경기도 용인에 자신을 위해 세워질 백남준 미술관이 일종의 종착역이었으나 아쉽게도 개관이 늦어지고 말았다. 백남준은 전세계에 통하는 브랜드를 지닌 거의 유일한 한국 출신 예술가였다. ‘비디오 예술의 선구자’, ‘전위 음악가’, ‘행위 예술가’라는 소개 뒤에 따라붙던 ‘동양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라는 과격한 별명은 그에겐 훈장이자 별점이었다. 서구예술의 우월주의에 맞서 뚝심으로 ‘백남준표 예술’을 밀고 나간 그는 아시아 또는 한국 문화의 가능성을 낙관하고 있었다. 그가 1995년에 쓴 다음 글은 이런 믿음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비빔밥의 미학이란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걸쭉하고 청탁병탄(淸濁倂呑)할 배짱을 갖고 있는, 헐렁헐렁 살 수 있는 유머도 갖고 있다. 우리의 민속음악, 싱코페이트된 3박자의 율동은 일본 중국을 떠나 카자흐스탄에 직결하고 한국 색시의 색동무늬는 무지개의 스펙트럼의 과학적 분석으로서, 몽골 티베트를 거쳐 또 어느 개방적 공간을 응시하고 있다.” 1996년 뇌졸중으로 반신마미가 온 뒤 휠체어 신세를 져온 그는 최근 당뇨병 후유증으로 한쪽 시력까지 잃은 상태였다. 걱정하는 친구에게 “일목요연, 외눈깔이라 더 잘 보인다”고 농담을 했다는 그다. “나는 가난한 나라에서 온 가난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유쾌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그답다. 죽는 순간까지도 그는 명랑했을 것 같다. 특유의 헐렁한 멜빵 바지에 손가락을 걸고 “2012년(그가 스승으로 모셨던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 탄생 100주년 되는 해)까지는 살아야 내가 케이지를 추모하고 환생시키는 일을 해볼 텐데”라고 웃었을 것 같다. 빌 클린턴 대통령을 만났을 때 바지가 흘러내려가게 해서(물론 속에는 아무것도 안 입고)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을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던 그때처럼, 미국 기자가 평생 예술 동지로 작업했던 여성 첼리스트 샬럿 무어맨과 혹시 섬싱이 있었는지 묻자, ‘차 안에서 한번 있었던 것 같은데, 내 마누라한테는 비밀로 해주소’ 했다는 그때처럼, 그는 장난기 띤 얼굴로 잠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 제목을 빌려 이렇게 인사하고 싶다. ‘바이 바이 미스터 백.’ ‘삼성’과도 바꿀 수 없는 ‘백남준’ ‘백남준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큰 광대 하나가 한판 잘 놀다 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통 크고 야심만만하며 영리하고 치밀했던 꾀돌이이자 큰 무당이었다. 1969년 그는 자신이 앞으로 해나갈 작품의 설계도를 서구미술사 전체를 예의 그 비빔밥의 미학으로 비벼버린 다음과 같은 말로 설명했다. “레오나르도(다 빈치)처럼 정확하게/ 피카소처럼 자유롭게/ 르누아르처럼 화려하게/ 몬드리안처럼 심오하게/ 폴락처럼 격렬하게/ 그리고 제스퍼 존스처럼 서정적으로.” 도대체 어떤 미술가가 이렇게 우주적인 예술관을 꿈꿀 수 있단 말인가. 백남준의 야심과 희망은 웬만큼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콜라주(뜯어붙이기) 기법이 유화(물감)를 대체한 것처럼, (TV)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신할 것이다”라고 내다봤던 그의 예언이 대부분 들어맞았다. 그가 1960년대에 시작한 비디오아트는 불과 20여년 만에 세계 미술의 총아가 되었다. 지금 우리는 세계 미술사의 한장에 한국 출신 미술가의 이름을 올리는 역사적 순간을 보고 있다. 고인을 누구보다 앞서 이해하고 협력자로 나섰던 존 핸하르트(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는 1970년대 초반에 백남준을 처음 만났을 때 다락방 작업실에서 그가 한 말을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존, 앞으로는 비디오 설치작품이 예술세계를 장악할 거야. 두고 봐, 우리가 해낼 거라고.” 존 핸하르트는 백남준을 ‘한국이 세계에 준 선물’이라고 불렀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말했다면 노무현 대통령도 이 한마디쯤은 할 수 있겠다. “백남준은 삼성과도 바꾸지 않겠다.” “예술은 고등사기다” 백남준이란 이름과 작품세계가 정작 한국에 알려진 건 얼마 안 된다. 오히려 백남준의 죽음이 한국에서 그의 예술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리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1963년 최초의 비디오 아트전을 독일에서 열고, 70년대 이후 휘트니미술관의 회고전 등 미국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지만 조국은 그의 진가와 명성을 알아보지 못했다. 한국인에게 백남준이란 예술가가 각인된 건 1984년 정초에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 <굿모닝 미스터 오웰> 덕이었다. 세계 주요 국가에서 동시 방영된 이 프로그램으로 그는 스타가 되었다. 전세계에 즉각적으로 동영상을 방송할 수 있는 힘과 잠재력이야말로 그가 추구한 ‘더 빠른 테크놀로지를 통해 움직이는 소통의 물결’이었다. 더구나 그해 6월 35년 만에 귀향하면서 연 기자회견에서 그는 길이길이 남을 명언을 던졌다. “전위 예술은 한마디로 신화를 파는 예술이지요. 자유를 위한 자유의 추구이며, 무목적한 실험이기도 합니다. 규칙이 없는 게임이기 때문에 객관적 평가란 힘들지요. 어느 시대건 예술가는 자동차로 달린다면 대중은 버스로 가는 속도입니다. 원래 예술이란 반이 사기입니다. 속이고 속는 거지요. 사기 중에서도 고등 사기입니다. 대중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입니다.” ‘예술은 고등사기’라는 백남준식 어법은 수없이 인용되고 독해되면서 여러 해석을 낳았다. 사람들이 무슨 말인가 싶어 난리를 치고 떠들썩한 바로 그 상황, 그 정경이야말로 백남준이 원한 사기였을지 모른다. 그는 “모든 상식과 틀은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 때문에 수시로 파괴되고 변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세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만들고 도전을 거듭했다. 우리 자신과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계에서 안전하게 보장된 재현 방식을 깨고 나와 이를 다르게 이해하고 더 나은 것으로 변화시키려는 의지의 화신이 그였다. 그 모든 노력과 장치와 구도가 ‘고등사기’가 아니겠는가. 그에게 삶이란 자신이 붙인 작품 제목처럼 ‘글로벌 그루브’(범지구적인 한판 놀이)였다. 백남준은 텔레비전을 자신의 행위예술이나 다각적 탐구와 연결해 낯설고 생소한 것으로 만들었다. TV는 의자가 되고, 젖가리개도 되고, 십자가도 되고 부처도 됐다. 백남준은 이미 결정되고 제한된 매체라는 텔레비전에 대한 고정관념에 반기를 들었다. 백남준에게 TV는 깊이 탐구해야 할 우리 시대의 중요 개념이었고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매체였으며 퍼포먼스의 대상이었다. 그는 한 예로 ‘침묵의 TV 방송국’을 제안했다. 이것은 일종의 지식인을 위한 TV 방송국으로 대부분의 방송 시간 동안 ‘무드 음악’과 같은 느낌의 아름다운 ‘무드 미술’만 내보내는 TV다. 그는 이 방송국을 “비발디의 TV판이랄까 혹은 전자 안정제로서 모든 시청자를 위로하는 빛의 미술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오늘날 환경의 본질은 영화나 회화보다는 TV를 통해 잘 드러난다고 봤다. “TV, 그 작은 전자들의 무질서한 움직임이 바로 오늘날의 환경인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88올림픽을 기념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세운 <다다익선>에 그는 이런 말을 달았다. “방송이란 것은 물고기 알과 같은 것입니다. 물고기 알은 수백만개씩 대량으로 생산되나, 그 가운데 대부분이 낭비되고 수정되는 것은 얼마 안 되죠. 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수억의 세계 인구를 상대로 발신한 것이었는데, 이 발신의 내용이 얼마나 수정되었는지는 그야말로 다다익선(많을수록 좋다)입니다.” 백남준 비디오아트의 핵심은 비디오테이프의 내용이다. 백남준은 텔레비전이 단순한 가전제품이 아니며 일방적으로 정보를 배포하는 형태로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어느 누구라도 집에서 점점 늘어가는 여가를 이용해 자신의 텔레비전 수상기를 수동적인 소일거리가 아니라 적극적인 창조의 매체, 의사소통을 위한 양 방향의 채널로 이용해 수많은 가능성을 지닌 매개체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부추겼다. 그가 창조한 획기적인 동영상 처리기법을 보면 백남준이 왜 독립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지 알 수 있다. 마지막 가는 길도 퍼포먼스 백남준은 죽음 이후까지도 한바탕 행위예술로 마무리해 그다운 풍모를 보였다. 2월3일 미국 맨해튼 매디슨 애버뉴의 프랭크 캠벨 장례식장에서 열린 장례식 뒤 화장된 유해가 한국, 미국, 독일 3개국에 나뉘어 안치되는 것이다. 자신에게 목숨을 주고 사상의 뿌리가 된 한국, 정신적 스승인 존 케이지와 요제프 보이스를 만났고 실험미술집단인 ‘플럭서스’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져 예술가의 길을 열어준 독일, 백남준 예술이 활짝 꽃필 수 있는 무대가 된 미국, 세곳에 이 세상에 왔다간 흔적인 한줌 유골을 분산하는 퍼포먼스가 이어진다. 감동과 신화를 기다리는 대중을 위해 그는 죽어서도 또 한편의 비디오아트를 펼쳤다. 예술의 역할이 사회적이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이 사후에 더 빛을 발한다. 한국을 빛내고 간 백남준은 “나는 한국에 대한 애정을 절대로 발설하지 않고 참는다. 한국을 선전하는 길은 내가 잘되면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글을 읽으며 치열하게 타올랐던 그의 전위정신을 기린다. “한국에서는 말을 앞세우는 국수적인 애국자가 늘 이기는 것 같다. 세계주의자가 늘 패배하는 나라에서는 문화의 시야가 좁아진다. 이제는 군사독재도 사라졌으니 한번 모두가 뭉쳐 뛰어볼 만하지 않은가. 한민족은 기마민족의 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한곳에 정착하기보다는 자꾸 뻗어나가야 한다.”

[해외 타이틀] 정치적 발언의 수단으로서의 다큐멘터리

에밀 드 안토니오란 낯선 이름의 다큐멘터리 작가는 미국 좌파 지성사의 흐름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부유층 출신으로 아이비리그의 명문대를 졸업한 그가 부두노동자 등의 노동자 이력을 거쳐 60년대 중반, 거세게 몰아치는 서구 지성사의 소용돌이 속에 내던진 다큐멘터리는 당시의 급박했던 시대 상황과 지성의 흐름을 증언하는 정치·사회적 유산으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1964년 발표된 첫 작품 <포인트 오브 오더!>는 매카시즘의 절정기에 벌어졌던 상원의원 매카시와 미 육군성간의 미 육군 내 공산주의자 색출에 관한 청문회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매카시 자신이 키워낸 매카시즘이란 공룡 앞에 스스로 자멸해가는 과정이 미국 전역에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텔레비전 자료를 재편집하여 하나의 다큐멘터리 작품으로 완성해낸 <포인트 오브 오더!>는 매카시즘의 진실과 그 거대한 사기극에 동참했던 인물들의 추악함을 까발리는 생생한 기록이다. 더구나 형식 면에서도 다큐멘터리가 실제 촬영이 아닌 기존 영상 자료의 효과적 편집을 통해서도 작가가 원하는 시선과 주장을 전달할 수 있다는 새로운 선례를 남기기도 했는데, 이는 시대를 앞서간 베트남전에 대한 탁월한 다큐멘터리 <돼지의 해>로 연결된다. 베트남전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 최고조에 달한 1968년에 발표된 <돼지의 해>는 베트남전에 대한 대중의 의식이 미 정부의 프로파간다에 놀아나고 있을 무렵, 전쟁의 기원과 전개를 베트남의 역사적 흐름을 바탕으로 당시의 국제·정치적 맥락에서 정확하게 짚어냄으로써 베트남전의 더러운 이면을 만천하에 드러낸 작품이다. 동시에 전쟁의 감상적 측면이나 역사적 사실만을 나열하는 통상의 전쟁 다큐멘터리와 달리 정확한 정치적 의도를 드러냄으로써 정치적 발언 수단으로서의 다큐멘터리의 가능성을 충분히 입증한 작품인데, 보고 있자면 행여 그의 정치적 노선에 동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역사적 진실을 추구하는 다큐멘터리 작가로서의 열정과 방법론에 대해선 수긍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걸작이다. 두 작품의 DVD로서의 질은 보잘것없지만 출시만으로도 DVD라는 매체가 영상기록의 주류로 자리잡고 있음을 방증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게다가 생전의 드 안토니오의 음성을 편집하여 음성해설로 삽입한 것은 작품 자체의 역사·정치적 의미를 좀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기획이라 평가할 만하다. 이쯤해서 드 안토니오가 촬영감독 하스켈 웩슬러와 공동 제작한 70년대 급진적 학생그룹에 대한 용감한 다큐멘터리 <언더그라운드>의 DVD 출시도 기대해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