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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응원의 마음을 발신하기, <룩백> 오시야마 기요타카 감독

애니메이션 <룩백>의 성취는 동명의 단편 만화를 적절히 계승하는 동시에, 연출자의 특색까지 놓치지 않으며 첫 장편애니메이션을 완성한 오시야마 기요타카 감독의 역량으로부터 큰 힘을 받는다. 그의 실력은 어느 순간 깜짝 등장한 것이 아니다. <바람이 분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로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페이스 댄디>로 와타나베 신이치로와, <데빌맨 크라이베이비>로 유아사 마사아키와 협업했고. TVA <플립 플래퍼즈>를 감독하며 20년간 최정상 애니메이터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기 때문이다. 3D와 AI가 틈입하는 애니메이션 세계에서 오시야마 감독은 손 그림으로 <룩백>을 그리며 후지노와 쿄모토의 우주와 같은 눈동자, 그 속에 담긴 감정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움직일 수밖에 없는 <룩백>의 동세와 정적을 만들어냈다. - <룩백>이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은 풍경을 어떻게 바라보나. 전력을 다해 만든 영화인 만큼 국경을 넘어 한국 관객에게도 그 마음이 닿은 것 같아 기쁘다. - 원작 만화와의 차이도 궁금하다. 후지노와 쿄모토가 그리는 4컷 만화를 애니메이션화한 이유가 뭔가. 다양한 이유가 있다. 초등학교 4학년 후지노의 만화 재능이 비범하게 개화하는 순간을 포착하고 싶은 목표가 가장 컸다. 또 이 작품엔 만화를 보여주는 표현이 반복되기 때문에 어느 순간 그것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해야 한다는 직관이 들었다.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제작 초기부터 밀어붙였다. - 후지노와 쿄모토의 첫 만남 이후 후지노가 논밭을 뛰어다니는 장면이 한국 관객 사이에서 명장면으로 꼽힌다. 원작보다 더 강세 있는 움직임과 긴 시간, 역동적인 카메라 워킹을 선택한 이유는. 후지노는 라이벌에게 패배한 감정을 느낀 후, 얼굴엔 드러나지 않지만 무척 고통스러운 1년을 보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장면에서만큼은 후지노가 하늘로 솟구칠 만큼 기뻐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 최대한 다이내믹하게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구도와 컷을 설계했다. - 원작은 컷이나 프레임의 공백 때문에 차분하고 담담한 인상을 주는데, 애니메이션은 후지노의 달리기 신처럼 더 감정적인 연출이 많다고 느껴진다. 우선 만화엔 음악이 없고, 작가가 인물의 등을 보여주는 묘사를 대사 없이 점묘하는 방식을 택했기에 담담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그저 만화를 계속 그려나가는 나날을 현실적으로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다만 애니메이션에선 후지노의 노력을 단시간에 부각하기 위해 감정적 연출을 강화했다. 또 영화는 물리적 특성상 중간에 감상을 그만두기가 어렵기 때문에 관객들이 집중력을 유지하고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게 만들고 싶었다. - 결말에 대해 말하자면, 후지노가 만화를 다시 그리게 된 원동력을 무엇이라 생각했나. 후지노와 쿄모토의 진로가 갈린 이후에도 후지노는 쿄모토의 존재를 무의식적으로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르러서 비로소 과거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각오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이후 후지노의 완전한 회복을 보장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적어도 마지막엔 후지노에게 응원의 메시지만큼만은 전하고 싶었다. - 마지막 장면에 대해 사소하지만 한국 관객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이 있다. 원작의 마지막 컷에선 후지노가 짐볼 위에 앉아 있는데 애니메이션에선 의자에 앉아 있다. 짐볼에 앉으면 애니메이션의 특성상 후지노의 움직임이 조금 이상하고 특이한 동작이 되어버릴 수 있었다. 이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후지노가 책상을 마주하고 있는데 몸이 위아래로 흔들린다면 관객이 후지노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에 방해될 수밖에 없다. 후지노가 의자에 앉아 있더라도 그의 등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에 의자 등받이에 비스듬히 기댄 자세로 앉는다는 대안을 생각해냈다. - 작품 초반에 후지노가 방에서 혼자 만화를 그릴 땐 책상에 거울이 있어 후지노의 표정이 다채롭게 보이지만, 쿄모토와 만화를 그릴 땐 거울이 강조되지 않는다. 초반부에 애니메이션에서 특별히 긴 1분30초의 컷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거울에 비친 후지노의 모습을 그렸다. 관객이 지루하게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한 장치였다. 이후 둘이 함께 만화를 그릴 때도 거울이 놓여 있긴 하지만 그때는 거울을 특별히 강조할 이유가 사라졌다. 쿄모토와 함께 있으니까. 이외에도 이번 작품에서는 거울이나 다양한 물체에 피사체가 비치는 표현을 아주 중요하게 그려내려 했다. - 원작 만화를 애니메이션화하는 과정에서 중시하는 기준이나 태도가 있나. 모든 표현과 창작은 어떤 방식으로든 2차 창작이라고 생각한다. 원작도 어떤 원천이나 감정에서 영향을 받아 쓴 2차 창작의 일종이기 때문이고, 그 원작을 애니메이션화하는 작업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원작이든 그것을 기반한 새로운 작품이든 작품의 이야기를 창작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떻게 소화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어떠한 창작물도 원작을 그대로 좇는 것으로는 원작을 능가할 수 없고 자칫하면 열화된 복사본에 그칠 위험이 크다. - 최근 <룩백>을 비롯해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창작에 관한 청춘물이 한국에서 보편적 인기를 끌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일본이나 한국이나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때라고 본다. 그러므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창작에 관한 일을 꿈꾸는 이들이 많아지고, 이런 소재의 작품에 더욱 공감하게 되는 것 같다. 얼마 전 제주도에 갔을 때 한국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최근 일본 학생들과 관심사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나도 요즘엔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를 자주 보고 있으니 양국의 교류나 공감대가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 <룩백>은 만화가뿐 아니라 모든 창작자에게 바치는 헌사와 같다. 어떤 마음을 전하고 싶었나. 내가 특별히 어떤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전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각자가 작품을 보며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느끼는 것만으로 내 역할은 충분하다. 언제나 최선을 다해 작품을 만들지만 우리가 발신하는 것을 완전히 신뢰하거나 강요하진 않는다. 다만 한 가지 욕심을 부리자면, 극장을 나온 후에도 <룩백>에 대해 이것저것을 되새길 수 있는 작품이 되기를 바란다.

[인터뷰] 완전히 파멸적인 영화를 만들기 어려운 시대다, <클라우드> <뱀의 길>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올해 구로사와 기요시는 <클라우드>와 <뱀의 길>, 두편의 영화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의 주인공으로 호명된 그가 직접 참석하는 관객과의 대화 회차는 빠른 속도로 표가 동났다. 스다 마사키가 온라인 리셀러로 분해 집단 광기의 보복에 휘말리는 <클라우드>, 죽은 어린 딸의 복수를 하는 1998년 원작의 스토리라인은 그대로이지만 주인공이 여성으로 바뀐 <뱀의 길> 두편 모두 감독이 천착해온 테마, 실체화되지 않는 폭력과 공포를 구로사와 특유의 필치로 그려낸다. “질문 수준이 무척 높고 내용이 날카로운” 한국 관객을 만나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과 영화제 기간에 만났다. - <클라우드>는 액션 스릴러 영화지만 조금 이상한 액션 스릴러다. <큐어> <회로>가 기존의 호러 연출 문법을 따르지 않은 것처럼 이 영화가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상상하게 만드는 방식 역시 전형적이지 않다. 무엇을 보여주고 생략할 것인지 결정할 때 어떤 고민이 있었나. 계획을 세워서 촬영 현장에 가도 다양한 상황이나 변수가 존재한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할지 결정한다. 그렇게 논리적으로 계산하기보다 직관적으로 영화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영화를 찍을 때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내용이 있다. 장소가 있고 배우가 있을 때 흘러가는 상황을 가능한 한 빈틈없이 새지 않게, 엄밀하고 균일하고 평등하게 담는 것이다. 흔히 클로즈업할 것이라고 생각한 대목에서 그냥 클로즈업을 하면 장소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너무 멀리서 찍으면 배우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의 평균을 찾아야 한다. - 지금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배우 스다 마사키와의 작업은 어땠나. 그와의 작업은 처음이었다. 매우매우 훌륭한 배우였다. 나도 그가 출연한 영화와 TV 드라마를 여러 편 봤다. 유약한 캐릭터도 악역도 잘 소화하고, 주연을 할 때도 조연을 할 때도 있다. 자신의 이미지를 자유자재로 컨트롤하며 어떤 역할이든 두려움 없이 도전한다. 멋진 영웅이 아닌 탁한 캐릭터를 제안했는데 흔쾌히 승낙해줘서 기뻤다. <클라우드>의 주인공은 좋은 인간도 나쁜 인간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 인물이 일본 장르영화의 주인공을 맡는 경우는 무척 희박하다. 이를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스다 마사키처럼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모습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반드시 필요했다. 스다 마사키는 감독의 의도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연기를 보여 줬다. - <뱀의 길>은 1998년 직접 연출한 동명의 영화를 프랑스에서 리메이크한 경우다. 1998년 영화는 <링>의 각본가이기도 한 다카하시 히로시의 색깔이 강했다. 셀프 리메이크는 무척 특수한 상황이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프랑스 회사에서 먼저 제안을 해서 성사됐다. 때문에 이런 방식이 옳은 건지 틀린 건지는 잘 모르겠다. ‘프랑스는 이러이러할 것’이라는 정의를 내리고 작업에 들어가지 않고 그냥 주인공을 여성으로 바꿔보자는 단순한 발상에서 시작했다. 그러자 여자에겐 남편이 있고 남편에겐 아내가 있다는 부분을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 일본과 프랑스 영화제작 환경에 차이가 있던가. 프랑스에서 영화를 찍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그런데 실제 로케이션 촬영, 현장 녹음 등 일본과 영화 만드는 방식이 거의 비슷하다. 다만 이런 차이는 있다. 요즘은 디지털로 작업하다 보니 영상이든 소리든 자유자재로 더하거나 빼는 가공이 가능하다. 그래서 흐린 날을 맑은 날로 바꿔보자는 식의 제안이 들어온다. 일본에서는 거의 하지 않는 작업이다. 있는 그대로 두고 현장 분위기를 가능한 한 살리고 싶었다. 내가 필름 시대 감독이라 더 그런 것일 수도 있다. - 한국영화의 가장 특별한 지점 중 하나는, 세계적으로 예술성을 인정받는 이들이 훌륭한 장르영화 감독이라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봉준호와 박찬욱이 그렇다. 이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특징이기도 하다. 당신이 오랫동안 봉준호와 교류한 이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말해주어 정말 기쁘다. 명예롭다. 나와 비슷한 스탠스를 취하는 영화감독이 일본에서는 거의 사라졌지만 한국에는 아직 존재한다. 장르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 현실에서 시작해 장르가 되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봉준호와 박찬욱을 보면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똑같이 영화와 싸우고 있다는 것을 늘 느낀다. 그들이 참 잘하고 있어서 부럽기도 하다. -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기자회견에서 “영화이기에, 영화만 할 수 있는 것들을 찾는다”는 표현을 썼다. <클라우드>와 <뱀의 길>을 만들면서 찾은 ‘영화적인 것’은 무엇이었나. 분명히 무언가를 찾아낸 것 같고 여러 가지가 있는데 설명하기가 참 어렵다. (웃음)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평범한 인간이 장르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모습은 문학에서 표현하기 어렵다. 영화는 관객이 스크린을 보고 몰입할 수 있는 영화적인 작용을 가능케 한다. <뱀의 길>에서 일본인 여성 시바사키 고가 파리의 변방에 있는 공장에서 또각또각 발소리를 내며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걸어가는 모습은 영화이기에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영화적인 무언가가 작용하는 순간이다. - <큐어> <회로>가 버블경제 붕괴 이후 만든 공포영화라면 <클라우드> <뱀의 길>에는 2023년의 일본이 투영돼 있다. 특히 두편의 <뱀의 길>에는 1990년대와 2020년대의 일본 사회가 각기 영향을 끼친다. <큐어> <회로> 그리고 <뱀의 길>을 만들 때는 20세기가 끝나갈 때였다. 버블경제가 붕괴됐다고 하지만 곧 다가올 21세기는 훨씬 밝고 진보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그래서 20세기의 끝에는 좀더 비극적이고 파멸적인 영화를 만들고 즐겨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막상 21세기가 되어 보니 더 행복하고 풍요로울 것이라고 생각한 시대는 오지 않았다. 세기말에 만들었던 비극적 주인공, 사회 밖으로 완전히 튕겨나가는 망상을 픽션으로 그릴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한다. <뱀의 길> 이나 <클라우드>도 끝까지 밀어붙이는 연출을 하고 싶은 바람이 있었지만 과거의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밀어붙이지 못했다. 결국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은 장르영화다. 처음부터 판타지를 설정하면 전혀 상관없지만 현실을 시작점에 두면 더 멀리 가지 못한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을 때와 없을 때가 달라졌다. - 앞으로 호러영화를 다시 찍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후 <도쿄 소나타> <해안가로의 여행> <산책하는 침략자> 등 멜로드라마적 색깔이 강한 작품을 찍었다.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기자회견에서 “한 작품을 끝내고 나면 ‘이제 다음 영화는 어떻게 찍지?’라고 고민한다”고 했는데, 그래서 다음 작품은 어떻게 찍을 것인가. (웃음) 다시는 안 찍는다고 한 적은 없다. 당분간 안 찍는다고 한 거다. (웃음) 그러니 다시 호러영화를 찍을 수도 있다. 그리고 질문에 대해서는, 죄송하지만 정말 모르겠다. 영화는 내가 하고 싶다고 혼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프로듀서부터 배우까지 많은 사람들의 만남에서 태어나는 것이 영화이기에 어떻게 만들고 싶다고 단언할 수 없다. 다만 앞으로 현실적인 것, 영화적인 것, 장르적인 것이 서로 부딪혀가며 완성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

[인터뷰] “우리는 지하에서 영화를 만들었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은 이란에서 <신성한 나무의 씨앗> 촬영 중 징역형을 받았다. 8년형이 확정된 후 그는 감옥에 가는 대신 이란을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감독과 일부 배우들은 칸영화제 레드카펫에 입성했지만, 미처 이란을 빠져나오지 못한 배우들은 사진으로 참석할 수밖에 없는 사연이 화제가 됐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반정부 시위를 진압하는 아버지와 그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어머니와 두 딸의 대립을 그린다. 정부에 비판적인 영화를 찍는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징역형, 여권 몰수, 출국 금지를 당한 바 있는 감독은 비밀리에 이 영화를 완성하고 올해 칸영화제 특별각본상을 받았다. 영화보다 영화 같은 스토리로 화제가 된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 심사위원으로 선정되어 부산을 찾았다. 심사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시간을 내어준 그와 이른 오전에 만나 그간의 지난한 여정에 대해 들었다. -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 심사위원장이다. 한국 영화제의 심사를 수락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심사위원단을 이끄는 사람으로 이 자리에 함께하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뉴커런츠 섹션에서는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온 영화언어를 보여주는 젊은 감독의 영화를 만날 수 있다. 후보에 오른 영화들이 보여주는 문화적 디테일과 비전이 무척 흥미롭다. 심사위원도 각기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이다. 심사위원들이 각자 제시한 시각을 잘 혼합하고 조율해 훌륭한 선택을 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이란 정부, 이슬람 공화국의 억압과 가부장제가 맞물려 진행되는 영화다. 국민이 억압적 정권하에 살고 있을 때, 사회의 다양한 작은 일부, 즉 가족이나 작은 커뮤니티는 국가와 국민의 관계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억압적이고 국민에 압력을 가하는 사회일수록 그것은 가족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 감옥에서 복역하는 동안 이 영화의 스토리를 떠올렸다고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떻게 영감을 받았나. 15년 동안 정부의 감시와 검열을 받았다. 책상에 앉아 조사를 받으면서 나를 감시하는 조사관들의 마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것이 어떻게 영화의 스토리텔링이 될 수 있을지 생각했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이런 사람들과 소통한 경험에서 비롯됐다. 2년 전 감독으로 있을 때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행사를 열었다. 그때 어떤 사연을 가진 남자를 만났다. 그는 수감자들을 감시하는 자리에 있었음에도 나 같은 사람들이 감옥에 있다는 사실을 무척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때때로 자살을 생각했고, 가족은 그에게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거야?” “정확히 당신이 하는 일이 뭐야?” 하고 물었다. 그의 이야기가 영화의 재료가 됐다. - 이란 당국의 적발을 피하기 위해 극소수 스태프와 전문 장비 없이 영화를 촬영했다고 들었다. 우리는 지하에서 영화를 만들었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어떤 말을 하는지 주시하는 정부의 감시를 받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영화제작 현장에서처럼 촬영을 진행할 수 없었다. 우리는 소형 카메라 같은 최소한의 장비만을 갖고 소수 인원으로 움직이며 서로 주의를 기울였다. 아마 누군가가 목격해도 학생들이 만드는 영화 현장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 2022년 실제 이란 시위 장면을 찍은 영상이 영화에 등장하는데 직접 촬영한 것인가. 이란에서 시위가 벌어지면 정부는 언론매체가 시위대의 모습을 촬영할 수 없게 막는다. 따라서 시위를 알리기 위한 유일한 수단은 모바일로 찍은 사진과 영상을 SNS에 업로드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SNS의 이미지를 활용해야만 했다. 영화에 나오는 영상을 누가 찍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고, 우리도 언제나 알 수 없었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가족의 이야기이며, 주인공의 집 밖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 이미지를 활용해야만 했다. -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은 어떻게 섭외했나. 그들은 스크린에 얼굴이 노출되어야 하는데 위험하지 않나. ‘여성, 생명, 자유’라는 슬로건 아래 히잡 관련 시위가 한창일 때 나는 감옥에 있었다. 많은 영화인이 친정부 성향의 영화에 참여하지 않고 시위대 편에 서서 검열에 반대하기로 결심했다. 사실 대부분의 여자들은 남자보다 더 강하다. 그들은 히잡을 쓰고 카메라 앞에 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덕분에 정부의 눈을 피해 몰래 찍는 <신성한 나무의 씨앗> 같은 작업에 뛰어들 스태프와 배우를 구하는 건 이전보다 더 쉬워졌다. 그들은 이란 사람들의 실제 삶과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의 일부가 되기로 결심했다. 물론 촬영 이후 그들은 압박을 받고 있지만 기꺼이 영화제작이 곧 삶의 일부가 되는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 칸영화제에 오지 못한 배우들이 있었다. 지금 그들의 상황은 어떤가. 칸영화제 이후의 근황도 알고 있다. 법원에 소환됐지만 아직 판결이 내려지지는 않았다. 앞으로 그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래서 판결을 기다리는 일이 무척 고통스럽다. - <신성한 나무의 씨앗>을 촬영하던 중 새로운 징역형이 확정됐고, 극적으로 이란을 탈출해 칸영화제에 참석했다. 감옥에 갈 것인지, 아니면 이란을 탈출할 것인지 기로에서 후자를 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이란 당국의 억압을 고발하는 예술가로서 어떻게든 조국에 발을 붙이는 쪽을 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사실 그 결정은 영화를 촬영할 때 내린 것이 아니다. 나는 감옥에 수감됐을 때 이곳에 남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계속 영화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했다. 감옥에 있는 나는 검열의 피해자였다. 하지만 나는 피해자로 존재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기 위해 무언가 행동하고 싶었다. - 당신이 영화를 만드는 목적은 자국의 상황을 고발하는 데 있나. 당신의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은 어떻게 미학적 예술이 될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시네마’다. 가장 먼저 연출에 집중하고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은 그다음이다. 다만 영화언어와 미학이 중요한 만큼 우리는 실제 사회에 존재하는 정치적 이야기의 그림자를 다룰 수밖에 없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을 만들면서 영화언어와 미학을 위한 고민이 정치 문제와 함께 성취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 올해 5월 이란에서 에브라힘 라이시 당시 대통령이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고, 개혁파에 해당하는 마수드 페제시키안이 새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란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 수 있을까. 근본적인 체제는 대통령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생각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아주 작은 부분이 변화하면 정권이 권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다. 사실 이란 국민은 정부와 무관하게 주체적인 결정을 내린다. 이란이 전세계 천연자원의 9%를 보유하고 있지만 그 자원이 국민의 이익을 위해 쓰이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들은 국가가 그들의 사회적 은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영원히 이란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앞으로 영화를 어떤 방식으로 찍게 될 것 같은가. 이란 정권이 바뀐 뒤 40년이 흐르고, 이란 밖에 사는 이란인들은 서로 디지털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같은 소통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어 행복하다. 지금은 이란에 관한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를 염두에 두고 있다. 지리적 의미의 이란이 아닌 문화적 의미의 이란을 생각하며 이야기를 전달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연속기획 1] 부산영상위원회 아카이브 총서 <부산의 장면들> #1, ‘부산의 아들 윤제균’, <국제시장> 제작기

격동의 20세기, 대한민국 국민의 애환을 어루만진 대중가요가 몇 있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난 온 실향민이 화자인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베트남전쟁에서 돌아온 파병 군인을 온 마을이 환영한다는 김추자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이산가족의 슬픔을 다루며 1983년 이산가족찾기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에서도 널리 불린 곽순옥 원곡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등등. 이 모든 노래는 <국제시장>의 덕수(황정민)의 인생을 대변하는 주제가이기도 하다. 어린 나이에 가장이 돼 일찍 철이 들 수밖에 없었던 덕수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모든 순간을 빠짐없이 통과하며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잘 살고자’ 했다. ‘아버지에게 바치는 송가’ (Ode to My Father)라는 영어 제목을 지닌 <국제시장>의 이모저모를 돌아보았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국제시장> 후반부에 관객의 눈물을 끌어내는 장면은 단연 덕수가 전쟁통에 헤어진 동생 막순(최스텔라김)과 해후하는 순간이 아닐까. 실제 1983년 KBS1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영 당시 많은 시민들이 여의도 광장 일대에 벽보를 붙여 헤어진 가족을 찾았다. 200여명의 보조출연자가 동원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장면은 현재 공원으로 사용 중이라 촬영이 여의치 않은 여의도 광장 대신 부산시체육시설관리사업소 요트경기장에서 촬영했다. <국제시장>의 VFX팀은 요트경기장 후경에 즐비한 마린시티의 마천루를 모두 지운 후 1980년대의 조경과 당시 여의도 KBS 본관의 풍경을 그대로 재현해 합성해냈다. 광장을 도배한 벽보는 연출부와 제작진이 인당 10장씩 총 2000천장을 만들어냈다는 후문. 류성희 미술감독도 이 신을 두고 “촬영 전부터 미술팀과 소품팀이 함께 매일 할당량을 의무적으로 채우면서 준비했다. 물리적인 작업양이 어마어마했다”라고 술회했다. 40년의 역사를 시공해내다 <국제시장>은 부산의 공간을 소재로 한 영화지만, 제작사는 만일에 대비해 부산시가 아닌 곳에 위치한 오픈세트장까지 대안으로 고려했다. 하지만 부산영상위원회는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다른 도시로 보낼 수 없었다. 여러 부침 끝에 부산영상위원회는 부산시 기장군에 위치한 도예촌 예정 부지에 오픈세트를 건립했다. 도예촌 오픈세트장에는 1950, 60, 70, 80년대 등 총 4개 시대별 국제시장이 지어졌다. 류성희 미술감독에 따르면 미술팀과 소품팀은 “한국의 시장은 가게 공간보다 판매하고 있는 물건과 가게 이름이 더 중요하다”는 속성에 집중해 시대별 판매 물건과 가게 간판, 제품 라벨을 다양화하는 데 집중했다. 한편 40년의 한국 역사를 직접 시공해낸 <국제시장>의 세트는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관계자들은 크랭크업 후에도 <국제시장> 세트를 보존하기를 원했으나 유지 예산 등의 한계로 오픈세트는 모두 철거됐다. 굳세어라 덕수야 덕수가 동생 막순과 아버지 진규(정진영)와 헤어지는 흥남철수작전 장면은 부산 사하구에 위치한 다대포해수욕장과 감천항에서 이루어졌다. 이 장면을 위해 300명에 가까운 대규모 보조출연자가 동원됐다. 일주일이 넘게 진행된 15회차 촬영 동안 제작진은 보조출연자들에게 “웃으면 계속 찍어야 합니다. 저 배에 타지 못하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달려야 합니다”라는 연기 주문을 건넸다. 300명의 보조출연자가 입는 의상을 일일이 매만진 임승희 의상실장은 “당시 피난민들은 따뜻할 수만 있다면 천이란 천은 모두 몸에 걸쳤을 것이다. 보조출연자를 위해 마련된 시대 의상만 500벌 이상이다”라며 장면에 들인 공을 설명했다. 해당 장면은 11월에 촬영됐다. 아직 눈이 내리기엔 다소 따뜻한 시기다. 혹한의 풍경을 재현하기 위해 특수효과팀은 강풍기를 동원해 녹말가루로 만든 1.5kg 분량의 가짜 눈을 하늘에 흩날려 장면의 방점을 찍었다. 장면의 스펙터클을 위해 레드에픽, 알렉사, F65까지 총 3대의 카메라가 피난민들의 아비규환과 눈물을 담아냈다. <영화부산> 2014. VOL.8 ‘부산 촬영 클로즈업’,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씨네21> 943호) ‘마, 타임머신 탈 준비 됐나?!’(<씨네21> 983호) ‘KBS2TV <영화가 좋다> 418회(2014년 12월20일 방영)’ 발췌 및 재구성

[연속기획 1] 부산영상위원회 아카이브 총서 <부산의 장면들> #1, <해운대> <국제시장> 윤제균 감독 인터뷰

잘 알려진 대로 윤제균 감독의 고향은 부산이다. 이 사실을 몰라도 윤제균 감독의 영화를 보고 그의 고향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가 <해운대> <국제시장> 등 부산의 명소를 제목에 명기한 두편의 천만 관객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윤제균 감독의 영화엔 부산에서 나고 자라며 꿈을 키운 사람만이 담을 수 있는 지역성이 형형하다. 특히 윤제균 감독은 영화의 배경이 부산이어야만 하는 당위를 관계자들과 관객들에게 설득해내는 데 능하다. 왜 재난 블록버스터인 <해운대> 에 만취한 만식(설경구)이 추태를 부리는 롯데 자이언츠(이하 롯데)의 경기 장면이 굳이 들어가야 할까. 왜 <국제시장> 속 영자(김윤진)와 오랜만에 재회한 덕수(황정민)는 회 한 접시를 기어코 태종대 해상절벽위 평상에서 대접해야 할까. 영화를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해일이 닥치기 며칠 전 폭풍 전야라 해도,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와 가장의 무게가 연신 풍파로 몰아치는 삶 한가운데에 있다 해도, 좀처럼 자기 진심을 드러내지 않는 두 부산 사나이는 “부산 사람이면 다 이해하는 공간”에서 비로소 자유를 누리고 그제야 숨을 쉬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부산 출신 감독’이라 공표하길 주저하지 않는 윤제균 감독을 만나 천만 관객의 호응을 얻은 두 영화, <해운대>와 <국제시장>에 관해 물었 다. 그와의 대화를 마치고 나니 두 남자주인공을 끝내 힐링 스폿에 배치한 뒤 흐뭇해하는 윤제균 감독의 표정을 만식과 덕수의 얼굴에 자연스럽게 겹쳐볼 수 있었다. 인터뷰 텍스트는 표준어 규정에 의해 정리했지만, 윤제균 감독의 문장마다 스민 동남 방언 억양을 가능한 한 곁들여 읽는다면 그의 부산 사랑이 한층 생생하게 전해질 것이다. - 부산을 배경으로 한 두편의 연출작 <해운대>와 <국제시장>이 개봉 당시 모두 천만 관객을 달성 했다. = 많이들 내가 부산에서 두편의 영화를 만들었다고 아는데 사실 세편이다. <1번가의 기적> (2007)도 부산에서 로케이션을 진행했다. - 그래도 <해운대>부터 이야기해야 한다. 부산의 구체적 지명을 배경에 가져다 쓴 영화이기 때문이다. = 기획을 한 지는 20년이 다 되어간다. 날짜도 정확히 기억한다. 2004년 12월26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인근 해저에서 쓰나미 대참사가 일어나지 않았나. 그때 해운대 지역의 어머니 댁에서 뉴스 속보를 보는데 순간 ‘휴가철 100만 인파가 모이는 해운대에 쓰나미가 밀려오면 어떻게 되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시나리오 개발을 시작해 2008년 본격적인 촬영에 돌입했다. - 여러모로 그 당시라 착수할 수 있었던 프로젝트란 생각이 든다. 여전히 해운대 지역이 부산시 제1의 관광지이긴 해도 지금은 100만 인파가 여름 휴가철 하루에 몰리진 않으니 말이다. = 맞다. 그때 동해 경포대나 서해 대천해수욕장도 성업했지만 그래도 두곳에 해운대만큼 많은 사람들이 몰리진 않았다. <해운대>를 찍던 2008년의 해운대 지역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동네였다. 기억하기론 센텀시티가 막 조성될 때였고 엘시티와 영화의전당이 지어지기 전이었다. 그래서 센텀시티 일대엔 고층 빌딩이, 조금만 벗어나도 해운대 시장과 미포 일대엔 1970, 80년대의 소담한 정경이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대도시의 마천루와 촌락의 포구가 한데 모인 로케이션이었다. 지금 해운대 지역의 도시 발전 모습을 보면 <해운대> 속 모습은 또 많이 사라지고 없다. <해운대> 는 장소에 관한 영화다 - 영화를 다시 보니 쓰나미가 본격적으로 몰려오는 시점은 후반 50분이다. 영화의 전반부, 중반 부엔 해운대에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군상들이 주로 그려진다. 그래서인지 엔딩크레딧의 촬영 협조 명단에 ‘미포 어촌계 및 미포 주민분들’이 가장 먼저 올라와 있다. = <해운대>를 기획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이 100만 인파 중 이야기의 표적이 될 세 커플을 선정하는 일이었다. 훗날 <이웃사람> <석조저택 살인사건>을 연출한 김휘 감독과 함께 <해운대>의 시나리오를 쓰며 작업실 벽면에 포스트잇으로 수많은 경우의 수를 만든 후 붙였다 떼길 반복했다. 그래서 해운대 지역이 삶의 터전인 연희(하지원)와 만식, 해운대에 놀러 온희미(강예원)와 그를 사랑하는 토박이 형식(이민기), 이혼 후 부산에 출장 온 유진(엄정화)과 휘(박중훈)가 탄생했다. 여기에 감초 역으로 동춘(김인권)을 추가했다. 부산 시민인 연희와 만식은 정감 넘치는 해운대 지역의 단면이 두드러지는 미포에, 젊은 커플인 희미와 형식은 밤의 해변에, 화이트칼라 외부인인 유진과 휘는 누리마루APEC하우스를 비롯한 마천루에 배치해두었다. 그래서 <해운대>는 장소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사실 기획 단계에서 많은 이들로부터 ‘이 장소만은 빼야 한다. 이야기 진행상 불필요한 장면이다’는 피드백을 받은 신이 하나 있다. 맞혀보겠나. - 씨라이프부산아쿠아리움 시퀀스인가. = 아니다. 롯데가 경기를 벌이는 사직구장 경기 장면이다. 첫째, 사직구장이 해운대 지역에 있지 않다는 이유였고 둘째, 재난영화에 야구 장면이 웬 말이냐는 이유였다. 하지만 부산 사람이면 다 이해한다. 우리에겐 롯데에 대한 애정이 있다. 나만 해도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40년 넘게 롯데 창립 회원이다. 그나저나 지금… 아니 내가 50대 중반인데도 (2024년 기준) 우승을 두번밖에 못한 게 말이 되나! (얼마간 정적) 롯데는 애증의 존재다. 롯데가 이겨야 그날 집안이 평화롭다. 부산 시민들에겐 롯데는 야구단 이상의 의미라 무조건 <해운대> 에 들어가야 했다. 부산 출신 감독, 부산의 정서를 이해하는 감독만이 완성할 수 있는 장면 이라고 생각한다. - 영화 속에서도 경기장에 가지 않은 부산 시민들도 휴대폰 DMB로 경기 중계를 저마다 시청하는 장면이 굳이 등장한다. 롯데와 삼성 라이온즈의 실제 경기 중 촬영에 들어갔다고. = 실제 경기 중 관중석의 한 블록을 전부 예매해 촬영한 장면이다. 우리가 대관한 200석을 제외하면 전부 부산 시민과 관중들이었다. 사직야구장 근처의 사직고등학교를 다녔던 터라 롯데가 패했을 때의 분위기를 너무 잘 안다. 촬영을 시작하니 롯데가 지고 있었다. 그래서 서둘러 배우들과 스태프를 우선 철수시켰다. 롯데 팬들에게 영화를 찍는답시고 배우들이 들어와 있으니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 못했다는 비난, 오해를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스태프와 배우들은 전부 왜 촬영을 중단하냐며 의문을 제기했지만 나는 오늘 촬영은 접을 수도 있겠다는 결심까지 했을 정도다. 그렇게 무한정 대기하던 중 갑자기 환호성이 들리는등 사직구장 일대가 난리였다. 확인하니 롯데가 삼성을 역전하고 있었다. 서둘러 배우들과 스태프를 재투입해 촬영을 마무리했다. (웃음) 결국 관중들도 함께 완성한 장면이다. - 해운대 시장에 쓰나미가 들이닥쳐 아비규환이 되는 장면을 찍던 날 고생이 상당했다고 들었다. 감독님의 차까지 물속에 빠뜨릴 정도로 결단이 필요한 날이었다고. = <해운대>를 촬영하며 가장 힘든 날이었다. 할리우드였다면 그 장면을 찍기 위해 세트를 지었을 텐데, 아쉬움이 컸다. 해운대 시장은 상인들의 생업이 걸린 장소다 보니 해운대구청의 허가가 필수였다. 결국 구청의 허락을 받은 날이 2008년 9월14일, 추석 당일 오전이었다. 공휴일이어도 오후엔 장사를 재개해야 하고, 낮엔 시장 상인들도 차례를 지내러 가니 딱 그 시간만 시장 전체가 비기 때문이다. 원상 복구 시간까지 감안하여 오전 11시에 모든 촬영을 마친 후 정오에 철수한다는 각오로 철저히 준비했다. 상인들의 밤 장사가 끝난 자정부터 오전 7시까지 해운대 시장에 수조를 만들고, 오전 7시부터 11시, 4시간 안에 모든 촬영을 마쳐야 했다. 해뜰녘에 물을 붓기 시작하는데 우리가 경사 계산을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물이 골고루 차 있어야 하는데 경사를 고려하지 않은 채 물을 부었으니, 한쪽에만 물이 찼다. 그래서 급하게 나를 포함한 모든 제작진이 해운대 백사장으로 달려가 모래를 퍼와 경사를 보완하기 위한 둑을 쌓았다. 모래주머니를 열심히 만드는데 그걸 본 부산 주민이 모래를 밀반출하는 사람이 있다며 경찰에 신고해서 촬영장에 출동한 경찰에게 해명도 해야 했다. 지금에야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그때는 그날 예정된 촬영을 마치지 못하면 신 전체가 날아가는 상황이라 심각했다. 제작비도 없으니 당연히 그림이 될 법한, 카메라 앞에 걸리는 자동차도 몇대 없었다. 그래서 우선 내 차를 뒤집어둔 것이다. 결국 오전 9시부터 11 시, 2시간 안에 장면을 완성했다. 그다음 힘들었던 장면이 광안대교 신이다. - 광안대교야말로 부산에서 교통량이 가장 많은 곳 아닌가. 협조가 이루어진 게 신기하다. 해상 교량인데다 직선거리도 길어 카메라와 조명 설치 모두 용이하지 않은 장소지 않나. = 부산시에서도 광안대교만큼은 절대 촬영이 불가능하다며 미안해했다. 해운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부산의 랜드마크인 광안대교가 안 나올 수도 없는 노릇이라 CG 작업 등을 고려하고 있던 차에 부산시로부터 제한적 촬영 허가가 떨어졌다. 세계 1천만명 걷기대회의 반환점이 광안대교인데, 행사 진행을 위해 시 차원에서 광안대교를 한나절 동안 일부 통제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틀에 걸쳐 한쪽 두 차선과 반대쪽 두 차선을 나눠 촬영했다. - 그 장면에서 동춘은 왜 담배에 불을 붙이나. 장르적 서스펜스로 이어지는 필요한 장면이지만 그 바람에 일이 더 커진다. = 다른 감독이 연출했다면 절대 안 들어갔을 장면이지. (웃음) 내가 코미디영화 감독으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영화에 웃긴 신을 꼭 넣고 싶었다. 재난영화지만 어두운 장면만 포함하는 건 원하지 않았거든. 새로운 코믹 아이 디어가 떠오르면 어떻게든 넣으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떤 장면들은 욕심이 과했다. - 원래 시나리오에선 지하철 역사가 휩쓸리는 장면도 구상했었다고. 부산 지하철 또한 부산시의 풍경처럼 역사 곳곳에 1980년대 유물이 남아 있는 등 옛 모습을 오랫동안 보존해두지 않나. = 선택과 집중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예산 문제가 컸다. 지하철역에 쓰나미가 들이치는 장면 이야말로 세트를 지어야 한다. 그러면 다 돈이지 않나. 당시 우리나라엔 수조 세트도 없었기 때문에 실내 공간에 물이 차도록 만드는 방법을 몰랐다. 나중에 샌프란시스코에 특수촬영을 가서야 비로소 노하우를 알게 됐다. - 개봉 이후 15년이 흐른 2024년에 <해운대>를 관람하는 경험은 여러 가지로 다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2014년과 2022년, 한국 사회에서 발생한 대규모 참사를 목도한 이후 <해운대> 의 합동 영결식 장면을 다시 보니 전과 다른 감상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해운대>가 어떻게 나이 들었으면 하나. = 그사이에 벌어진 수많은 참사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일어나선 안됐던 사고들이고, 다시는 일어나면 안되는 사고들이다. 영화의 기획 당시 관계자들로부터 받았던 걱정이 재난의 시작 시점이었다. 할리우드의 재난영화는 초반부터 재해가 몰아쳐서 스펙터클을 완성 하고 한명의 영웅이 인류를 구원하는 감동이 있는데, <해운대>는 영화 시작 후 한참 지나야 쓰나미가 들이닥치고 단일한 영웅이 없다는 이유였다. 영화가 지루해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지만 내 입장은 강고했다. 쓰나미는 영화의 주제를 전달하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해운대>는 사람들의 인연에 관한 이야기다. 인연이 모여 운명을 이룬 사람들이 불가항력인 재난 속에서 서로를 용서하는 이야길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한치 앞도 모르는 사람의 인생에서 서로 죽이니 사니 아옹다옹 사는 게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 앞에서 다 무슨 의미겠나. 그 지점에 감응한 한국 관객들이 천만이라는 스코어를 달성해주었다고 믿는다. 죽을 뻔한 만식을 살린 건 결국 그가 그토록 증오하던 작은아버지(송재호)고, 형식은 희미를 위해 눈엣가시 같던 남자 대신 희생이 라는 결단을 내린다. 인생의 아이러니다. <국제시장>에 부산의 모든 곳을 담고 싶었다 - <국제시장>도 <해운대>에 이어 제목에 부산의 상징적 장소명을 썼다. =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영화의 제목을 반대했다. <국제시장>이라는 제목을 들으면 70, 80%의 관계자들이 ‘인터내셔널 마켓’이면 자칫 영화가 무기 밀매업자들의 스릴러로 비치지 않을까 우려했다. <해운대> 때도 <해운대> 대신 <쓰나미 인 부산> <빅 웨이브> 등으로 제목을 바꾸자는 여론이 다수였다. 하지만 바꿀 수 없었다. 원래 부산의 중심가이자 번화가는 국제 시장이 위치한 남포동, 광복동 일대였다. 서울로 치면 명동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해운대가 지금의 발전에 이르기까지는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이 큰 몫을 했고 지금은 부산 하면 해운대를 많이 찾지만 20세기까진 부산 하면 남포동, 광복동, 태종대를 찾는 여행객이 훨씬 많았다. 어느새 국제시장 일대가 구도심이 된게 가슴이 아팠다. 어릴 때부터 자주 찾던 동네라 애정과 추억이 남다르다. 중학생 시절 아토피가 있어 치료를 위해 초량동에 위치한 병원에 꾸준히 다녔다. 늘 어머니와 함께 병원에서 진료를 본 후 국제시장쪽을 한 바퀴 순회 하고 집에 돌아오는 게 나의 루틴이었다. 국제 시장은 한국 근현대사에서도 의미가 깊은 장소다. 6·25 당시 피난민들이 낙동강까지 밀려났을 때 국제시장에 모두 모였다. 많은 피난민들이 국제시장에서 다시 삶의 터전을 재건하며 살았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이 역사를 모르더라. 전 국민이 이 역사를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컸다. - <국제시장>에서 부산 방언을 사용하는 방식도 재밌다. 덕수 어머니(장영남)와 꽃분(라미란)은 삶의 절반 이상을 부산에서 살았지만 끝까지 함경도 방언을 쓰는 반면, 덕수는 함경도 방언을 사용하다 어느 순간부터 부산 방언을 쭉 사용한 다. 결혼 전까진 서울말을 쓰던 영자도 마찬가지다. = 아무래도 어리고 젊을 때 이사 온 사람들은 사투리를 금방 습득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내려온 사람들은 말씨가 금방 바뀌지는 않는다. 영자는 20대에 내려와 할머니가 될 때까지 수십년을 살았고 국제시장에서 장사도 했으니 부산 사투리를 금방 익혔을 것이다. 고증에 의한 설정이다. - <해운대>와 <국제시장>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대사는 “고마 해라”다. 이 대사는 모두 중년의 남자주인공, 만식과 덕수에 의해 발화된다. 그래서 두 영화를 ‘부산 남자’에 대한 탐구로 보아도 재미있다. 일례로 두 주인공 모두 자신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일에 서툴러 우회하는 말하기를 택한다. 상대 여성으로부터 왜 고백하지 않느냐며 타박을 듣는 장면도 반복된다. = 지금 부산 젊은 남자들은 덜할 텐데, 경상도 지역엔 대체로 이성에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길 어색해하는 남자들이 참 많다. 그런데 지금껏 내 영화에 나온 남자주인공들은 배경이 서울이어도 하나같이 연애에 숙맥이다. <두사부일체>의 두식(정준호)은 윤주(오승은)에게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고 <색즉시공>의 은식(임창정) 또한 행동만 앞선 놈이었다. 사실 나도 지금의 아내와 대학교 1학년 때 캠퍼스 커플로 만났다. 사랑 경험이 많이 없는 나의 자아가 자연히 내 영화 속 남자들에게 반영됐다고 본다. - <국제시장>은 국기강하식 장면까지도 용두산공원을 배경으로 찍는 등 부산의 모든 랜드마크를 화면에 담아야겠다는 야심이 돋보인다. 부산의 풍경을 기록물로 아카이빙하고자 하는 열의도 느껴진다. = 부산의 모든 곳을 담고 싶었다. 국제시장과 다소 거리가 떨어진 남부민동까지 영화에 담았다. 덕수네 가족이 처음 부산에 내려와 터를 잡은 남부민동은 과거 달동네였다. <1번가의 기적>을 찍을 때부터 내 영화의 로케이션으로 남부민동을 찾았다. 지금은 감천문화마을을 포함해 지역의 고유성을 보존하며 새로운 모습을 보이는 중이다. 영화를 통해 부산의 모습을 보존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초장동에 위치한 덕수 집 옥상에서 부산의 전경이 내려다 보이는 장면은 지금 찍는다면 또 다른 그림이 나올 것이다. 그땐 롯데백화점을 짓기도 전이 었다. - <국제시장>엔 영화를 향한 감독의 사랑이 녹아 있다. 남포동에 위치한 롯데시네마 대영(옛 대영시네마)와 BIFF광장이 등장하고, 달구(오달수)가 릴 영사기를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장면도 굳이 삽입돼 있다. = 안 들어가도 되는데 들어간 장면 중 하나가 상영관 내에서 담배 피우는 장면이다. 그런 식으로 영화를 통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그시절 풍습을 그리려 애썼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멀티플렉스가 어디 있나. 그때 부산에서 개봉 영화를 보려면 무조건 남포동과 광복동에 가야 했다. 거기서 (1982)를 비롯한 많은 영화를 보았다. - 영도대교를 활용한 장면도 시나리오 단계에서 염두에 두었다고. = 6·25 당시 북한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국제시장에 터를 이룬 후 이산가족을 찾는 벽보를 하나같이 영도대교 아래에 붙여두었다. 현인의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의 가사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에 나오듯 말이다. 부산에서 점쟁이들의 좌판이 가장 많이 깔린 곳 또한 영도대교 아래다. 이산가족을 찾는 벽보를 붙인 후 실제 헤어진 피붙이들을 만날 수 있을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리 아래서 점을 본 것이다. 영화 후반부에 1983년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장면이 있기 때문에 생략했다. 모두가 촬영지로 선호하는 부산이 해답이다 - 부산에 대한 감독의 굳은 애정 이외에 영화 촬영지로서 부산이 지니는 이점이 크다고 보나. = 이점이 100%다. 우선 대한민국의 배우, 스태프 등 누구에게 물어봐도 가장 영화를 찍으러 가고 싶은 도시를 묻는다면 부산이라 이야기 한다. ‘다들 서울 혹은 수도권에 사는데 왜 먼 부산을 원할까?’라며 의아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선 영화 촬영은 분명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부산에 촬영하러 내려가는 건 모두에게 휴가를 떠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서울과 분명히 다른 풍광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해외 영화인들이 가장 방문하고 싶어 하는 국제영화제로 부산국제영화제를 말한 지도 한참 됐다. 정말이다. 내가 다 물어봤다. 부산이라는 지역이 가진 신뢰도, 그리고 그 신뢰도에서 비롯한 선호도가 상당하다. 또한 부산처럼 한국 근현대사의 과거, 현재, 근미래의 풍광이 공존하는 도시가 많지 않다. 화려한 스카이라인과 소박한 시골 풍경이 한데 있어 한 도시에서 2020년대 느낌과 1970년대 느낌을 모두 구현할 수 있다. 비용적인 이점도 크다. 영화, 시리즈 촬영이 최소 일주일은 한 세트에서 계속 이루어지는데, 서울 근교는 지가가 비쌀 수밖에 없고 부지도 빈 곳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이때 부산이 좋은 해답이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 개인적인 궁금증이 있다. 부산에서 로케이션을 진행한다고 해서 늘 활어회, 돼지국밥 등 특식만 먹을 순 없지 않나. 제작진과 출연진 모두를 만족시키는 부산 로케이션 운영 방안을 들려준다면. = 워낙 해운대 근처에 맛집이 많아 사람들이 부산 촬영을 선호한다. 매번 별미만 먹는 건 어렵기 때문에 밥집도 잘 찾는다. 영화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 법한 밥집이 해운대에 두곳 있다. 장부를 놓고 식대만큼 기입할 수 있는 곳이다. 가정식처럼 밥과 반찬이 나오는데 두 식당에 대한 선호도가 무척 높다. 아직 두 식당이 있는진 모르겠다. 참 맛있는데. (웃음) - <해운대> <국제시장> 모두 부산이 또 다른 주인공인 영화였다. 부산을 잘 모르는 스태프들에게 특정 장소에서 해당 장면을 꼭 찍어야 하는 이유는 어떻게 설득하나. = 설득보다는 설명에 가깝다. 서울만 해도 피맛골이 지닌 의미를 서울 토박이들은 명확히 알고 있지 않나. 부산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외지인들에게 각 장소가 지닌 의미를 설명하면 대부분 수긍한다. - 외지인(外地人)이라는 표현이 재밌다. 부산 시민들에게 종종 듣는 표현인데 다른 지역에선 들어본 적 없는 것 같다. = 그런데 부산 사람들이 의외로 배타적이지 않다. 부산이 항구도시라 옛날부터 일본을 시작으로 러시아 등 해외 선박이 자주 드나들었다. 덕분에 각국의 다양한 문화가 일찍 흡수됐고, 시민들 또한 문화적 다양성 속에 어우러져 살아가는 일에 무척 익숙하다. - 많은 관객이 윤제균 감독 하면 부산을 자동 연상한다. 윤제균 감독 하면 부산 출신 감독,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다수 연출한 감독이란 의견이 늘 함께 따라붙으니 말이다. 한국영화의 역사를 짚어봐도 대중영화를 만드는 감독 중 이렇게까지 지역성을 줄곧 탐구해온 경우가 감독님 이외엔 거의 없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 부산에서 평생 영화를 찍지 않을 수도 있다. 당장 <국제시장> 다음에 나왔던 <영웅>만 해도 부산과는 무관한 영화였다. 하지만 나고 자란 고향에 대해 느끼는 자부심, 소속감은 사람으로서 더 큰 꿈을 꾸는 데 일조한다. 태어난 곳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마음속엔 엄마의 품같은 고향이 있지 않나. 내가 안정감과 애정을 느끼는 장소가 있는데 그 장소를 대표하는 스토리텔러 중 한 사람이 되는 것만큼 큰 영광이 또 없다. 다시 한번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기획과 대본이겠지. 무얼 해야 할지 이제 고민할 차례다.

[인터뷰] 솔직함의 힘, <청설> 홍경

명확한 꿈이나 목표 없이 살아가던 용준은 취업 준비를 하던 중 부모님의 가게에서 배달 일을 돕게 된다. 도시락 배달을 하다 우연히 마주친 여름(노윤서)에게 용준은 첫눈에 반한다. 여름이가 용준의 존재를 자각하는 속도는 본인의 것에 비하면 한없이 느리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올곧게 여름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청설>을 보다보면 용준을 직진하게 만드는 힘의 근원지가 궁금해진다. 하지만 배우 홍경은 ‘첫사랑’이라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용준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청설>은 영화 <댓글부대>, 드라마 <악귀> <약한영웅 Class 1>에서 한동안 강렬한 모습으로 등장했던 배우 홍경의 청량한 얼굴을 새롭게 마주할 수 있는 작품이다. “쏟은 시간과 마음이 <청설>에 잘 담긴 것 같아 몽글몽글하다”라는 그의 말에서 작품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 <청설>의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나. 여러 이유가 있다. 요즘 20대 배우들이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를 통해 우리 세대의 초상을 그릴 기회가 많지 않은데 <청설>에서는 나와 (노)윤서 배우, (김)민주 배우가 지금 나이대에 할 수 있는 걸 보여줄 수 있어서 기뻤다. 첫사랑은 찰나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진귀하고, 잔향 또한 깊게 남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첫사랑의 의미에 관해 깊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를 언젠가 해보고 싶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영화를 통해 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러다 <청설> 대본을 받았다. 혼자서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깨닫고 그렇게 자신의 세계가 넓어진다는 걸 용준이를 보면서 느꼈고, 그게 무척 흥미로웠다. 노윤서 배우가 먼저 캐스팅이 된 상태였는데 윤서 배우와 함께라면 극 중 파트너로서 작품을 잘해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출연을 결심했다. - 여름, 가을(김민주)이와 수화로 대화할 때 손과 몸의 움직임에서 그간의 연습량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제작사에서 3개월가량 연습할 시간을 주었고, 배우들끼리 수어를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얻은 것이 영화의 테마와도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수어를 배우면서 느낀 건 결국 ‘어떻게 마음을 전할 것인가’였다. 육성으로 대화하면 상대방을 보지 않고도 이야기할 수 있지만, 수어를 하면 상대방과 눈을 맞춰야 하고 또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고 뭘 느끼는지 온 신경을 집중하며 마음을 쏟아야 한다. 손동작의 디테일도 중요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어떻게 전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어떻게 들을지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 수어 선생님들도 그걸 강조하셨다. 그래서 수어가 어느 정도 손에 익은 뒤에는 상대에게 더 집중하려고 했다. 이걸 체감한 뒤로 <청설>에 참여하게 된 의미를 크게 느꼈다. - 용준이 굉장히 용감한 친구라고 생각했다고, 어떤 지점에서 그렇게 느꼈나. 용준이는 여름이를 만나기 전에 색채가 없는 세상에서 살았지만, 여름이를 만난 후로는 세상이 다채로워진다. 그 감정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누군가를 처음으로 사랑하게 됐을 때,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겁을 먹을 수도 있고 움츠러들 수도 있지 않나. 하지만 용준이는 여름이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타협하지 않고 온전히 사랑을 한다. 가을이에게 온 애정을 쏟는 여름이를 사랑하고부터 용준이의 삶도 조금씩 변화하는 거다. 그런 마음을 ‘용감하다’라는 단어 하나로 정의하긴 어렵겠지만, 무척 인상 깊게 남았다. 그러면서도 여름이에 대한 마음을 부담스럽게 펴내는 게 아니라 여름이가 불편해하지 않게 다가가려고 이런저런 궁리를 하는 용준이를 보며 크게 감탄했다. - 여름이가 가을이를 걱정하느라 용준이와 제대로 연락이 닿지 않았을 때, 용준은 여름이를 한참 기다리다가 거의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크게 표출한다. 그 주차장 신을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한다. 용준이가 여름이를 기다리고, 걱정하고, 애달파하고 또 찾아가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상처받는 그 모든 과정을 과연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 아닐 것 같았다. 하지만 용준이는 물러섬 없이 그 모든 감정을 정면으로 받는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였다는 데에서 용준이가 어떤 친구인지 확실히 느껴졌다. 얼음판 위를 걷듯 조심스럽게 여름이에게 다가가고 배려하다가 그 얼음판이 깨지면서 용준이의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아 좋았다. - 용준이를 보면서 사랑을 시작하고 주저하게 만드는 건 단순히 언어와 소통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용준이란 캐릭터를 연기한 뒤 사랑에 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된 지점이 있다면. 조심스럽지만, 사랑에 굉장히 많은 것들이 작용하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잘못이라기보다는 환경적인 문제가 큰 것 같다. 누군가에겐 여전히 사랑은 순수하고 그 자체로 당연한 것일 수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청설>은 상대방을 위해 자신의 마음을 다하고 완벽히 이해하진 못해도 가닿으려고 노력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용준이도, 여름이도, 가을이도 모두 그렇다. 그런 게 얼마나 소중하고 또 지금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지를 영화를 보면서 느꼈다. 쑥스러워서 잘 이야기하지 못했던 건데 사실 나는 용준이처럼 솔직하지를 못했다. 그런 순간에 작아지고, 숨어버리고 도망가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용준이를 만나고 나서 마음이 조금은 열렸다. 좀더 솔직해지고, 진심이 거절당하더라도 그냥 저질러보는 것. 그런 용준이의 태도를 보며 많은 것을 배웠다.

[인터뷰] 그리고 남은 사람들에 대하여, <아침바다 갈매기는> 박이웅 감독

데뷔작 <불도저에 탄 소녀>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던 박이웅 감독이 두 번째 장편 <아침바다 갈매기는>으로 다시 부산을 찾았다.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선장 영국(윤주상)이 젊은 선원 용수(박종환)가 바다에 빠졌다는 실종 신고를 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떠난 이의 빈자리를 받아들이고 메우는 건 온전히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다. 지방 소멸, 인구수 저하, 빈부격차 등의 문제를 고루 다루면서도 끝까지 질주하는 힘을 잃지 않는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영화진흥기구(NETPAC)상, 뉴 커런츠상, KB 뉴 커런츠 관객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 두 번째 장편으로 세개의 상을 손에 쥐었다. 축하한다. 처음엔 ‘수상하면 좋겠다’라는 바람 정도였는데 막상 수상대에 오르니 영화제에서 얼마나 큰 상을 받는지 새삼 실감했다. 앞으로 진중하게 처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상이 주는 위압감이 있었다. <아침바다 갈매기는>의 제작자이자 PD인 안병래 대표가 사비까지 보태 진행할 정도로 믿음을 준 덕분에 완성될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영화에 출연한 윤주상, 양희경 배우는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영화를 보셨는데 배우가 아닌 관객으로서 관람했다고, 전에 없는 경험이었다는 감사한 감상을 전해주셨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20여편의 영화를 봤고 여러모로 많이 배웠다. 타협하지 않고 영화적인 것을 더 대담하게 탐구하고, 관객을 놀라게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졌다. 큰 에너지를 얻고 돌아와 차기작 시나리오를 열심히 손보고 있는 중이다. -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시기상 <불도저에 탄 소녀>보다 먼저 구상한 영화라고. 정확히는 2008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전문사 시절 졸업 작품으로 계획하고 쓴 작품이다. 당시 제작 여건이 여의치 않아 <불도저에 탄 소녀>를 만든 뒤 다시 들여다보게 됐다. 처음엔 쇠락해가는 작은 시골 마을의 소동을 떠올렸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지방 소멸, 인구수 저하, 빈부격차 같은 문제들이 서서히 부각됐고 내가 다루려던 주제가 단순히 시골에 한정된 건 아닐 수 있겠다 싶어 서사를 확장시켰다. - 영화에서 묘사한 어촌과 인물들의 모습이 무척 현실적이다. 캐릭터엔 장르적인 재미를 반영하더라도 캐릭터가 놓이는 장소는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할 것 같은 곳을 설정하길 좋아한다. 동해안 일대 마을을 여러 차례 훑으면서 어촌의 상황과 분위기를 극에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인상적이었던 건 어촌 사람들이 처음 극본을 쓸 때보다 요즘 더 뒤엉켜 지내는데 그러면서도 서로를 투명인간처럼 대한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어촌은 선장과 선장의 가족, 그리고 이주노동자들로 구성되는데, 연세가 있는 마을 어른들과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일은 하면서도 대화가 부재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걸 보며 기능적으로 존재하던 이주노동자 영란(카작) 역에 큰 변화를 가했다. - 어촌 사람들에게 주목해서인지 떠난 이가 아닌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보통은 동기를 갖고 나아가는 인물에 주목하기 마련이지만 쇠락해가는 어촌 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왜 이곳에 남아 있는지, 왜 떠나지 못하는지에 관해 의문이 생겼다. 이미 누군가 떠났다면 그 자리를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일 것인가에 관해 더 깊게 다뤄보고 싶었다. - 윤주상, 양희경 등 베테랑 배우들이 영화의 중심을 잡아준다. 배우를 섭외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 건 의외로 체력이었다.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포획하는 일이 무척 고되기 때문이다. 윤주상 배우는 다행히 체력이 굉장히 좋으셔서 몸의 움직임이 남달랐다. 판례는 사고를 감내하고 살아가는 인물이라 다소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는데, 다행히 양희경 배우님이 판례를 온전히 이해해주셨다. 두 배우 모두 워낙 베테랑이라 특정 신이나 연기에 관해 정확한 디렉션만 있으면 그대로 구현해주셨다. - 행방이 묘연한 용수 역엔 박종환 배우를, 용수의 아내 영란 역에는 카작 배우를 캐스팅했다. 용수는 시나리오상으론 속내를 잘 모르겠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던 캐릭터다. 그런데 박종환 배우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 이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해줬다. 맡은 인물을 명확히 파악한 배우가 현장에 있으면 연출자로서도 중심이 잡힌다. 그래서 도움을 많이 받았고 카작 배우는 섭외에 공을 들였다.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베트남 배우 중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베트남 현지에서 한국 웹드라마 오디션을 본 배우 중 카작을 만나게 됐다.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안녕하세요’ 인사 외에는 한국어를 할 줄 몰랐는데 언어 감각이 뛰어나서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 대사를 열심히 외워 촬영에 임했다. 막상 현장에선 원래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처럼 느껴져 무척 놀랐다. - 바다 위에서 촬영한 경험은 어땠나. 장면들의 파도의 움직임만 봐도 쉽지 않아 보였는데. 상업영화 촬영감독들이 내게 공통적으로 말해준 게 있다. 절대 바다에 배를 띄우지 마라. (웃음) 너무 힘들고 시도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모두가 정말 강력하게 말렸지만 나는 바다에 배를 띄울 수밖에 없었다. 프로덕션상의 이유가 아니라 그러지 않으면 원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용수가 바다에 빠지는 장면을 찍었을 때 그날따라 배가 거의 뒤집어질 정도로 파도가 심했다. 나와 스태프들 모두 멀미를 하며 촬영했는데, 찍힌 장면을 보면서는 자부심이 느껴질 정도로 보람찼다. - 바다에서의 촬영분이 가장 마음에 남는 장면인가. 모든 장면이 소중하지만, 편집까지 마치고 난 뒤 애정이 많이 가는 장면은 오프닝 신이다. 강릉에 엄청난 강풍이 불었던 날, 지금 바다를 찍어두면 나중에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촬영감독님께 따로 요청드렸었다. 그러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편집 과정에서 그 컷을 발견한 거다. 갈매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데 강한 바람으로 인해 결국 마지막엔 날아가는 방향을 틀고 만다. 그 새를 보면서 내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떠올렸다. 다들 역경을 딛고 열심히 살아가지만 그걸 이겨내기란 그리 녹록지 않다. 이 컷으로 영화를 시작하기로 결정하면서부터 다시금 편집이 시작됐다고 느꼈다. 어찌 보면 제일 공을 덜 들였는데 가장 마음에 드는 신이다. - 자식을 떠나보내거나 부모와 연을 끊고 살아가는 등 여러 가족의 모습이 영화에 등장한다. 감독 본인이 생각하는 가족의 의미는 무엇인가. <아침바다 갈매기는>이 내가 처음 쓴 장편이기 때문에 살면서 내가 봐온 가족이란 관계의 여러 모습을 복잡다단하게 반영했다. 그렇지만 가족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여전히 어렵다. 아무리 겪어도 가족의 모습엔 내가 모르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래도 이야기해보자면 적어도 가족은 악의를 갖고 서로를 대하는 관계는 아닌 듯하다. 어쩌면 거기서 비극이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가벼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관객들이 영화를 재밌게 봐주셨으면 한다. 극장을 나선 뒤에도 영화에 담긴 여러 주제들에 관해 생각해주신다면 바랄 게 없겠다.

[인터뷰] 불안한 땅을 딛고 일어서면서, <키케가 홈런을 칠거야> 박송열 감독

전성기를 맞이한 메이저리거 류현진은 강팀 애리조나와의 경기에서 7이닝 2실점을 호투하며 8회 등판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기 상황상 키케 에르난데스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감독은 류현진의 타순에 그를 내보내고자 류현진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팀의 승패를 염려하며 타석에, 다음 회 마운드에 서려는 류현진에게 감독은 한마디를 전했다. “너무 걱정 마. 키케가 홈런을 칠 거야.” 새로운 월셋집에 이사 온 미주(원향라)와 영태(박송열)는 더 밝은 미래를 꿈꾸지만 마음과 달리 현실은 버벅거린다. 300만원이 없다는 이유로 동업자에게 버림받은 영태는 아내에게 ‘키케가 홈런을 칠 거야’라는 메시지만 덜렁 남기고 일하기 위해 떠난다. 녹록지 않은 상황 속에 키케가 되어버린 영태를 두고 박송열 감독은 “언젠가 영태가 홈런을 치기를, 꼭 성공해서 돌아오기를 바라는 미주는 홀로 자기만의 현실에 묵묵히 임하”지만, 장면 사이마다 불규칙하게 등장하는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리는 순간들은 영태의 안녕을 확신할 수 없는 미주의 불길한 상상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영태 부부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일까. 내 집 마련이 요원한 현실 속에서 부부에게 집은 안정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뜻한다. “미주와 영태는 여전히 월셋집에 머물지만 지난번보다 더 살기 좋은 환경을 갖췄다. 남들과 같은 평범한 소망을 꿈꾸는 것이다. 이 부부의 바람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이들의 꿈이 어떤 사회적 환경을 딛고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뉴스로 부동산 자율화를 언급했다. 이들은 각자의 삶에서 밖으로 빠져나가는 형식보다, 부부 안쪽으로 수렴하는 감정을 지향한다.” 새로운 집에서 남들과 같은 평범한 생활을 꿈꿨건만 영태가 돈을 벌기 위해 집 밖으로 나서면서 부부는 따로 떨어져 지낸다. 집이 있지만 집은 이들을 한데 묶지 못한다. 박송열 감독은 <키케가 홈런을 칠거야>의 중심 키워드로 부부의 우정 혹은 연대를 꼽았다. “이들은 더 나은 인생을 위해 무언가를 시도하지만 그대로 실패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그 뒤에 자신이 본래 가진 것을 다시금 돌아보며 삶에 고마움을 느낀다. 처음 시나리오를 발전시킬 때 이 부분을 가장 주요하게 다뤘다. 영화 속에서 두 인물은 함께 있는 시간보다 따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 더 길지만 그렇기에 깨닫는 것들도 있다. 그래서 너무 새로운 인물로 접근하고 싶지는 않았다. 전작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에 등장한 정희·영태 부부 같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헤쳐나가면 내가 작품에 담고 싶은 정서와 변화를 그려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박송열 감독의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에서 등장하는 정희와 영태는 이번 작품에서 미주와 영태로 거듭났다. 일명 ‘영태 세계관’은 박송열의 페르소나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사이에 명확한 선이 그어져 있진 않다. “<키케가 홈런을 칠거야>의 영태 부부가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의 영태 부부냐고 묻는다면 다소 모호한 입장을 고수하고 싶다. (웃음) 작품을 세계관이라는 둘레에 묶는 순간 그 이후의 순간들이 발목 잡히는 것만 같다. 창작자 입장에서는 모든 이야기를 자유롭게 펼치고 싶다. 하지만 서로의 이야기 안에서 조각조각 모티브를 얻고는 한다.”

[인터뷰] 진실을 둘러싼 흙, 바람, 물을 읽어내기, <폭로: 눈을 감은 아이> 배우 김민하, 최희서

20년 만에 절친했던 두 친구가 재회한다. 해후의 장소는 취조실이다. 인선(김민하)은 소설가 정상우(이기우)를 살인한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된 피의자다. 형사 민주(최희서)는 그런 인선의 수사를 맡았다. 부산에서 처음 선보인 전선영 감독의 <폭로: 눈을 감은 아이>는 진실을 둘러싼 두 여성의 격동하는 감정이 돋보이는 스릴러다. 작중 끊임 없이 서로를 마주 보았던 인선과 민주처럼,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배우 김민하와 최희서는 끊임없이 서로의 눈을 마주쳤다. - 부산국제영화제 첫 상영부터 두 배우의 주연 소식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폭로: 눈을 감은 아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민하 무엇보다 여성들이 주연이고 여성감독이 영화를 이끈다는 점에서 소중하게 다가왔다. 최희서 한국영화에서 여성들이 온전히 서사를 이루는 구조 자체가 드물다.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언제 이런 기회가 올까 싶었다. 게다가 김민하 배우가 인선 역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듣고 무조건 하겠다는 마음이었다. 왜냐하면 <파친코>의 선자를 보고 너무 좋아서 주변에 김민하에 대한 소문을 낼 정도였기 때문이다. 감독님을 통해 민하 배우가 나와 작업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운명이라 생각했다. - 인선이 민주를 담당 형사로 지목한 후로 영화는 철저히 둘의 관계에 집중한다. 특히 취조실에서 마주한 두 사람의 에너지가 상당하다. 김민하 민주와 인선은 대면하는 순간마다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서로를 바라본다. 두눈을 마주치는 순간에 엄청난 힘이 생겼다. 특히 희서 언니를 바라볼 때면 일순간 주변이 뿌옇게 변한다. 정말이지 눈만 보일 정도였다. 강렬한 경험이었던 동시에 깊은 슬픔이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인선은 필사적으로 정의를 찾아내려는 인물이라서 연기하는 나조차 그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 순간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민주를 바라보면서 그녀의 심리를 납득하게 됐다. 배우와 인물모두를 구원하는 시너지가 깃든 장면들이다. 최희서 인선과 민주가 단둘이 남아 고립된 공간에서 대화하는 신이 총 네 차례 등장한다. 나는 네 장면이 이 영화의 척추라고 생각한다. 감독님께 적어도 이 신들만큼은 차례대로 찍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촬영에 들어간 후에도 우리는 서로에게 신중하게 다가갔다. 감정적으로 격동하는 여느 클라이맥스들보다 인선과 민주가 대면하는 장면에 쏟은 감정의 밀도와 집중력이 극에 달했다. 개인적으로도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순간이다. - 민주와 인선은 서로를 향해 진실이라는 단어를 쓴다. 다만 두 사람의 진실은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 듯하다. 김민하 인선은 사실 민주를 보자마자 사건의 전말에 대해 고백할 수 있었다. 그렇게 행동하지 않은 이유는 진실을 넘어서는 진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함께한 3일 동안 민주는 인선의 의도에 궁금증을 품는다. 어쩌면 민주가 자신에 대해 궁금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인선의 계획이 아니었을까. 사건의 전말은 그저 동떨어진 돌멩이와 같다. 반면 두 사람 사이에는 20년의 세월이 있다. 인선에게 한 덩이의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 돌을 둘러싼 흙, 바람, 물 같은 주변을 함께 읽어야만 한다. 그런 맥락에서 인선에게 진실은 정의에 가깝다. 최희서 민주는 사실로서 진실을 좇기 바쁘다. 경찰은 이성적으로 사건을 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면 민주의 심문은 모두 사실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인선은 그런 민주에게 사실 너머의 시간을 직시해야 함을 암묵적으로 알려준다. 따라서 이 영화는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다. 두 사람이 과거의 상처를 마주하고 교차되는 길목에 진실이 놓여 있다. - 최희서 배우의 말처럼 인선과 민주는 평행선을 달리는 인물처럼 보여도 결국 같은 마음을 향하고 있다. 김민하 인선이 민주를 잊은 적이 단 하루라도 있었을까. 인선은 오래도록 민주를 원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건의 전말을 먼저 알게 된 후로 인선에게 그런 감정은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건을 해결하고 정의를 좇기 위해서 민주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인선은 그런 면에서 원초적인 사람이다. 인선을 움직이는 동력은 근본적인 문제를 뿌리 뽑고 싶은 간절함이다. 따라서 인선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걸었던 모든 길은 동시에 민주를 구원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최희서 이번 작품으로 처음 형사 연기를 소화했다. 배우로서 층위가 많은 입체적인 인물을 연구할 때 연기하는 맛이 있는데, 민주가 딱 그런 인물이었다. 겉으로는 정의를 추구하는 경찰이지만 그녀의 마음속엔 오랜 죄책감이 서려 있다. 그녀의 직업 자체가 위선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건에 배정되고 피의자가 인선임을 알게 되자마자 민주는 부디 그녀가 사건의 범인이 아니길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결국 민주의 수사는 겉으로는 인선을 구하기 위함이지만 결국엔 자신을 구원하려는 길일 수도 있다. - 인선은 진실을 알지만 침묵하고, 민주는 무지하기 때문에 간절히 파헤치려 한다. 두 인물의 태도가 상이한 만큼 연기에 접근하는 방식도 달랐을 것 같다. 김민하 촬영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대본을 읽고 또 읽었다. 읽을 때마다 인선에게 느끼는 감정이 조금씩 달라지더라. 물론 인선은 사건의 진실을 쥐고 있는 사람이지만 민주에 관해선 무지한 사람이다. 20년 만에 친구를 만나면 거의 모르는 사람 아닌가. 아마 인선은 민주가 어떻게 지냈는지 무척이나 궁금했을 것이다. 다만 촬영장에 들어간 뒤론 현장에 스스로를 맡기려 했다. 원초적인 인선처럼 카메라 앞에 선 순간 느껴지는 예상치 못한 낯선 느낌을 표출하려 했다. 최희서 연기가 매력적인 이유는 계획과 즉흥을 유동적으로 조합해나가기 때문이다. 카메라 앞에 서면 민하의 말대로 상황이 주는 첫인상을 포착해야 한다. 과거에는 캐릭터를 맡게 되면 정서 기억이나 일대기 상상처럼 학교에서 배웠던 방법론을 적용했다. 마치 내비게이션을 켜고 방향을 설정한 뒤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것과 같았다. 요즘에는 지도를 들고 목적지를 설정하지만 무수히 많은 갈래의 길을 찾아가는 방식이 더 흥미롭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처럼 알지 못하는 상황을 연기하는 게 참 어렵다. 배우라면 각본을 전부 읽었을 테니 모든 것을 알고 있지 않나. 하지만 알고 있으면서도 무지에서 오는 당혹감을 연기하는 것은 어렵고도 매력적인 작업이다.

[CULTURE BOOK] 괴물들

클레어 데더러 지음 노지양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나는 의식 있는 소비자이자 바람직한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그와 동시에 예술이라는 세계의 시민이고 싶었고 교양 없는 속물의 반대편에 서고 싶었다.” <괴물들>은 이 고민을,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에서 시작한다. 폴란스키의 영화들을 다시 보기 시작한다. “폴란스키 영화에서는 버려도 되는 장면들 또한 단단하게 빛난다.” 고민. 폴란스키는 <차이나타운>을 만들었고, 13살 서맨사 게일리에게 약물을 먹여 성폭행을 했다. 이 모순 사이에서 ‘나’를 온전히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사랑하던 남자 예술가들에게 실망하고 배신당하는 경험을 해온, <뉴욕타임스> <파리 리뷰> 등의 매체에서 영화평론가, 출판평론가로 활동해온 클레어 데더러는 괴물의 목록을 작성하는 대신 “관객의 자서전”을 쓰기로 했다. 여기에는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저간의 심리에 대한 언급도 있다. “그 문제의 인물이 아직 생존하고 있어 그 작품을 소비할 때 그가 경제적 이득을 얻는다면 지지를 보류하거나 철회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의 지갑으로 투표권 행사를 하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를 무료 스트리밍으로 보면 어떨까? 혹시 친구 집에서 보면 괜찮은 걸까?” 이 문제는 단순할 수 없다. 그래서 클레어 데더러는 책 한권을 할애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답만 원할 뿐이지만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에게는 너무나 많은 사례가 있어서(이 책에서 로만 폴란스키 다음은 우디 앨런이 언급되며 ‘자녀를 유기한 엄마들’이라는 항목에서는 도리스 레싱과 조니 미첼이 거론된다) 예술가의 삶이 그의 작품과, 나아가 팬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괴물 천재”의 작품을 고려할 때 우리 중 많은 사람은 “스스로 윤리적 사고를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은 도덕적 감정을 품고 있다”. 그런가 하면 “미학으로만 판단해야” 한다고 훈수 두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런 상황에서 <맨해튼>(영화에서 42살의 남자가 17살 여자와 섹스하는)을 보자면 미학과 작가가 정말 분리 가능한지에 대한 회의가 뒤따른다. 이 복잡함을, 수용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초반부를 지나고 나면 <괴물들>이 하려는 이야기가 얼마나 광범위한지 감탄하며 읽게 된다. 3장의 ‘팬. J. K. 롤링’, 6장의 ‘안티 몬스터.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10장의 ‘자녀를 유기한 엄마들. 도리스 레싱, 조니 미첼’을 놓치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