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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월의 외로워 말아요 눈물을 닦아요] 다시 보고 싶은 사람

음악가들은 의외로 남들 놀 때 일하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저는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공휴일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때라면 어차피 약속도 없고 나가봤자 사람만 많은 때라 차라리 일하는 게 좋기도 하고요, 이런 인기 있는 날에 내 음악이 부름 받았다는 은은한 기쁨 같은 것도 느낄 수 있지요. 저에게 가을이 아름다운 건 여러 크고 작은 단체들이 인디 밴드 공연을 만들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 소중한 전통이 계속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따사로운 가을날 저는 기타와 짐꾸러미를 메고 열차에 오릅니다. 그날은 구미의 복합문화공간 ‘각산살롱’ 의 오픈 축하공연을 하러 갔습니다. 요사이 정신이 없는 탓에 부실하게 먹고 잤더니 공연 가는 기차 안에서 멀미로 고생했습니다. ‘노래를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어 음원 사이트에 있는 저의 노래를 반복 재생하며 마인드컨트롤을 했습니다. 실기시험을 치르기 전에 머릿속으로 과정을 그려보는 식이랄까요. 멜로디가 나오는 목과 코의 감각을 리허설해봅니다. 그렇게 도착한 공연장은 문화공간의 앞마당이었습니다. 열매를 맺은 석류나무가 있는 아담한 공연장 속 오손도손 앉은 관객들, 기웃거리는 행인들과 가끔 지나가는 정겨운 오토바이 소리까지 오늘의 무대는 따스하게 예열되어 있었습니다. 공연자인 저를 신기한 듯 바라보는 호기심 어린 눈빛을 느끼며 아무렇지 않은 척 무대 위로 올라갑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제 이야기로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고요, 노래를 들려드릴게요.” 집중하기로 결심한 듯한 그날의 관객들은 저의 목소리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며 흡수했습니다. 멀미는커녕 도착하자마자 최상의 컨디션이 된 저는 누에고치처럼 목소리를 정성스럽게 뽑아냈습니다. 그러다 관객석을 보았습니다. 인파 속 드문드문 낯익은 얼굴, 몇명은 이름마저 알겠는 오래된 그 사람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실제로 보신 적이 있나요? 보러 갈 돈과 시간이 없어서, 티켓팅이 어렵거나 나와 살았던 시대가 달라서 우리는 만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실제 공연을 보게 되면 우리는 농도 짙은 경험을 하게 되고 그와 동시에 “이렇게라도 한번 봤으니 되었다” 같은 마음을 느끼게 되지요. 그렇기에 더더욱 저의 공연을 한번 이상, 두번 세번 보러 오시는 그들을 보면 ‘고마움’ 같은 단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이상한 감정을 느낍니다. 당신은 한번 봤던 저를 어떻게 또 보러온 걸까요? 제가 나름대로 자주 봤다고 할 수 있는 공연은 이소라 콘서트일 것 같습니다. 적어도 그녀를 보러 8번 이상은 공연장에 갔던 것 같네요. 처음에는 친구의 손에 이끌려 갔다가 이젠 제 발로 갑니다. 아니 그녀가 공연하면 무조건 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소라의 공연에는 굉장히 그녀다운 지점이 있습니다. 일단 무대 위에 가습기가 있습니다. (건조해지는 걸 막는 것 같지만,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의자 옆에는 인이어 이어폰으로 연결해서 자신과 밴드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멀티 믹서가 있는데 노래를 부르면서도 그 볼륨 노브를 조절합니다. (마치 전자음악가의 공연 모습 같네요) 연말에 치르는 공연 일자 중 이소라의 생일(12월29일)에는 자신을 위한 생일 축하 노래도 부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아무리 울고 빌고 애원해봐도 앙코르는 없습니다. 첫 공연에서는 그동안 사람을 안 만난 느낌이 뚝뚝 묻어나는 낯가리고 음울한 느낌의 그녀이지만 마지막 회차쯤엔 마음이 풀어졌는지 조잘조잘 수다도 들려주는 등 공연 동안 사랑받은 티가 납니다. 1회차엔 감동받느라 정신없지만 n회차에는 공연의 의도나 흐름을 더 잘 느낄 수 있습니다. 같은 세트리스트라도 그날그날 바뀌는 컨디션을 감지하며, 어제는 해줬는데 오늘은 안 해준 멘트를 떠올리며 지금 우리 소라는 (죄송합니다) 어떤 기분일까? 생각합니다. 나름 많이 본 영화를 꼽는다면 왠지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이하 <밤해변>)를 말씀드리고 싶네요. 네, 그 당시 저는 실연을 했습니다… 이 영화를 처음 보고는 그냥 엉엉 울었던 것 같고 그 후엔 울고 싶을 때마다, 마음을 감당하지 못할 때마다 티켓을 끊어서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는 <밤해변> 속으로 들어가 제 상황을 회피하거나 직면했습니다. 그때는 헤어진 연인을 잊겠다면서도 기다리며, 진짜 사랑한다는 게 무언지 화가 난 듯이 묻는 영희(김민희)를 보아야 마취되고 치료되는 삶의 지점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김민희 배우가 담긴 장면들은 그냥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순한 표정과 묘한 말투, 특유의 가녀리고 세련된 움직임, 대담한 발성으로 버럭 소리를 지르는 모습도 무척 매혹적이지만 그런 매력 이상으로 당혹스러운 생동감이 있습니다. 스크린에서 이 배우가 담긴 장면을 볼 때면 무언가의 본질을 본 것 같은 귀한 기분이 듭니다. 마지막 신에서 겨울 해변에 누워 있던 영희는 모래를 털고 일어나고요, “저, 꿈꿨어요”라고 말하는 옆모습 뒤로는 바다새가 슥 지나갑니다. 꿈에서 깬 듯 영화관을 나오면 꽃을 샘내는 바람이 코트 속으로 맹렬히 들어옵니다. 아, 너무 춥다 하며 영화 상영 동안 잊고 있던 인생과 세상살이의 차가움을 실감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가끔 자신의 삶과 포개어지는 작품을 만납니다. 30분 공연하는 저를 보러 여러분은 편지와 빵과 꽃을 들고 어떻게 이렇게 멀리까지 오셨을까요? 뭔가를 드리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공연자는 매번 받는 존재입니다. 제 음악을 듣는 중학생이던 친구가 어느새 성인이 되어 맥주를 마시고, 대학생이던 친구가 면허를 따고 어엿한 회사원이 되어가는 모습을 볼 때면 살아가는 게 덜 두려운 기분이 들다가도 공연을 찾아와주셔야 제가 당신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못내 두렵게 느껴집니다. 왜 제 영화는 오늘이 절정인 것 같은데, 이제 끝내면 될 것 같은 장면에서도 계속 이어져서 재미없는 내일로 이어지는 걸까요? 자정에 가까운 시간, 서울역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를 타고 바라본 내부순환도로의 가로등 불빛이 눈물 맺힌 시야로 뿌옇고 찬란하게 보였습니다. 이런 사랑을 받는 제가 그리 대단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음악가인 게 좋아서 울었습니다.

‘영화적인 것’에 대한 강박과 오해 - 영화 <채식주의자>와 <흉터>의 경우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채식주의자>(2010)와 <흉터>(2011)가 재개봉했다. 누군가는 작가의 팬으로서, 누군가는 작가를 알려고 영화를 볼 것이다. 문제는 두 영화가 성공적이지 못한 영화화 사례로 이야기되는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한강 작가는 2014년 웹진 <채널24>와 한 인터뷰에서 “사건 중심보다 인물의 내면을 따라가”는 영화화를 바란다고 말했지만 두 영화가 그 바람을 제대로 실현했다고 말하긴 어려워 보인다. 우선 도드라지는 문제는 두 영화 모두 연출상 원작의 에피소드를 피상적으로 재현했다는 점이다. 영화 <채식주의자>의 경우 영혜(채민서)가 누구인지, 어떤 아내로 살았는지 등 설명 없이 영혜가 냉장고 앞에서 멍하니 있는 장면부터 그린다. 사건을 지탱하는 감정적 인과는 옮기지 않은 채 시각화에 몰두하니 감정이입이 쉽지 않다. 영화가 소설의 서사를 모두 담아낼 필요는 없지만 핵심적인 뼈대를 생략하는 건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다소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영화 <채식주의자>는 원작의 문학적 장치와 주제에 대한 몰이해의 결과물이다. 소설 <채식주의자>의 핵심적 장치는 다름 아닌 ‘시점’이다. 소설집 <채식주의자>에는 영혜를 소유물로 보는 남편 ‘나’(<채식주의자>), 몽고반점이 있는 처제 영혜에 대한 예술적인 영감과 성적 매혹을 느끼는 형부(<몽고반점>), 영혜를 연민하는 언니(<나무 불꽃>) 등 세 인물의 시선이 교차한다. 각각 혐오와 대상화, 연민이라는 타자화를 그려내며 입체적인 이해를 돕는다. 반면 영화 속 카메라는 원작의 장치를 외면한 채 영혜에게 가해진 폭력을 관찰할 뿐이다. 영화 <흉터>도 마찬가지다. 원작 <아기 부처>의 화자가 남편에게 유자차를 탈 동안 자신을 “병원체를 품은 숙주”처럼 보는 자기혐오를 외면한다. “표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없는’ 표정”(송경원, <씨네21> <흉터> 리뷰 중)이라는 평가를 뒤틀면 카메라가 없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마땅한 역할이) 없는 카메라다. 영화 <채식주의자>는 원작 속 익명으로 등장한 남편과 형부, 언니에게 이름을 더하는 과오도 저지른다. 소설 <채식주의자>는 육식주의와 남성성 이데올로기에 반성 없이 따르는 인간을 익명적 존재로 보고, 그들의 시선 밖으로 벗어난 영혜의 주체성을 그려낸다. 반면 영화는 형부 민호(현성)과 영혜가 격정적인 정사를 할 때 절정에 이른 영혜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등 포르노의 클리셰를 답습한다. 소설처럼 민호의 카메라에 둘의 육체를 담되 그 카메라 밖에선 포르노를 찍는 상황은 원작의 의도를 정확히 배반한다. 결론적으로 영화 이미지에 대한 강박은 역설적으로 영화의 실패로 이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영화는 인물의 은폐된 내면을 몸짓과 이미지로만 그리려고 한다. 영화 <채식주의자>에서 감독은 원작에서 기울임체로 서술된 영혜의 악몽과 내레이션을 그리려는 최소한의 시도라도 해야 했지만 하지 않는다. 타인의 상처를 온전히 볼 수 없다는 원작의 태도가 타인에 대한 감응을 포기하고 관찰만 하라는 태도는 아니다. 시각화에 앞서 원전의 충실한 이해가 필요함을 방증하는 사례다.

[인터뷰] 모든 것이 뒤바뀐 세상에서의 논리, <지옥> 시즌2 연상호 감독 × 최규석 작가 대담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사이비>의 감독으로 먼저 이름을 날렸던 연출가 연상호와 <송곳> <습지생태보고서> 등 현실을 날카롭게 해부하는 작풍으로 평단의 지지를 받는 만화가 최규석. 대학 시절부터 절친했던 둘은 더 자주 얼굴을 볼 기회로 삼자며 함께 <지옥>이라는 놀이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편에 쏟아진 뜨거운 반응은 기어코 이들로부터 두 번째 이야기를 소환해낸다. 먼저 네이버 웹툰 <지옥2:부활자>가 지난 7월 완결된 가운데 오는 10월25일에는 연상호 감독이 연출하고 두 사람이 공동 각본을 맡은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시즌2가 공개된다. 웹툰과 실사 시리즈라는 상이한 매체를 동시에 활용하는 두 창작자의 작업법은 사실 지극히 효율적이다. 함께 플롯을 꾸려나가는 도구이자 하나의 이야기가 분화하는 수많은 형질의 실험실, 거기에 창작의 즐거움을 자극하는 작가적 본령의 역할을 겸하니 말이다. 교류는 줄어들었다지만 그만큼 편안한 동반자의 분위기를 풍기던 두 친구의 유쾌한 대화를 잠시 엿들었다. - <지옥> 시즌1 공개 당시 받았던 큰 인기에 두분 다 놀랐다고 들었다. 후속작에 대한 논의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연상호 후속작 이야기를 처음 한 것은 <지옥> 시즌1 촬영이 마무리될 즈음이었다. 최규석 작가와 두어달 동안 의견을 나눴지만 어째 이야기가 하나로 묶이지 않더라. 그때 나온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작품이 바로 웹툰 <계시록>이다. 그러던 중 시리즈가 공개되었고 생각보다 너무 좋은 반응 덕분에 자연스럽게 논의가 재개되었다. 최규석 <지옥>의 세계관에 어느 정도 안착하고 나니 의사소통이 갈수록 심플해졌다. <지옥> 시즌2를 작업할 때부터는 내가 지방에서 살게 되어 전화나 온라인으로 의견을 교환하는 경우도 잦았다. 연상호 결말은 미리 정해놨지만 그곳까지 도달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즉흥적으로 쓰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한번은 4화 대본을 써서 최규석 작가한테 보냈더니 박정자(김신록)한테 이런 설정이 있었냐며 전화하더라. (일동 웃음) 분명 처음 <지옥>을 같이할 때는 둘의 교류가 더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요즘에는 교류가 더 없어졌다. (웃음) - 이전 시즌과 달리 <지옥> 시즌2의 작업은 영상화를 상정한 채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제작 과정에 변화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최규석 아무래도 한쪽이 완성된 상태라면 나머지도 그 영향을 받아 비슷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 <지옥> 시즌2는 콘티만 있고 만화와 영상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이다 보니 시리즈는 시리즈대로, 만화는 만화대로 그 색깔이 짙어질 수 있었다. - <계시록>은 최규석 작가의 만화적 스타일에도 전환점이 된 중요한 작품으로 보인다. 기존의 흑백 작화에서 벗어나 인물의 옷이나 하늘 등에 컬러 포인트를 넣기 시작한 새로운 스타일이 <지옥2:부활자>까지 이어지니 말이다. 최규석 6개월 분량의 짧은 만화인 <계시록>은 평소에 주저하던 여러 도전을 해볼 기회였는데, 컬러가 그중 하나였다. 사실 만화 <지옥>을 그릴 때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화살촉의 얼굴 분장과 무늬를 흑백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옥2:부활자>에서는 화살촉만이라도 색을 넣어보자는 생각으로 빨간 분장 등에 부분적으로 색을 입히기 시작했다. 연상호 만화 원작이 흑백이다 보니 새진리회의 사제복 색깔 등의 설정도 원래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시리즈에서 등장한 하늘색 사제복이 워낙 각인되다 보니 만화에도 적용이 된 것이고. 이전 시즌의 세계관에서 파생된 이야기 - <지옥> 시즌2는 이전 시즌에서 제시된 세계관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과정과도 같다. 특히 오지원(문근영)이나 천세형(임성재), 이수경(문소리) 등 세계관에 새로 진입하는 인물들이 기존 인물들 사이에 자연스레 안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일이 까다로웠을 것 같다. 연상호 무척 힘들었던 부분이다. <지옥> 시즌1의 세계는 우리가 현실 사회에서 느꼈던 것에서 만들어진 가공의 세계라면 <지옥> 시즌2는 현실 세상보다는 이전 시즌의 세계관 안에서 생각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새로운 인물 각자의 사연이나 에피소드는 있었지만 이를 큰 줄기 안에 어떻게 들어가게 할 것이냐는 고민이 필요했다. 최규석 사실 <지옥> 시즌1에서는 정진수(김성철)의 사고방식만 특이하고 나머지 인물들은 아직 평범한 세상에 살고 있던 보통 사람이지 않은가. 하지만 <지옥> 시즌2는 세상이 뒤집어진 지 8년이 지난 후의 사람들을 그린다. 바뀐 세계에서 일상적으로 지닐 만한 생각과 논리를 이수경 등의 인물에게 투영하는 작업이 특히 까다로웠다. - 광신도 집단인 화살촉이 <지옥> 시즌2에서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믿음에 복무하는 이들처럼 비치는 것 또한 독특하다. 연상호 <지옥> 시즌2에서 가장 진정성 있는 두 인물이나 집단을 꼽자면 화살촉과 민혜진(김현주)이 아닐까. 양극단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둘은 굉장히 비슷하다. 민혜진 역시 자신이 믿는 원칙을 고수하는 나이브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혜진은 이야기의 결말에 다다라 자신의 믿음을 일부 수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어쩌면 자기 모습이 화살촉의 광적인 신념과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았을까. 최규석 화살촉 일원이나 새진리회 사제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지 고민해본 적이 있다. 내 결론은 범죄의 피해자들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세상에 죄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에 굉장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들로만 채워지는 “표백된 세상”을 바라는 사람들. 그렇게 각자만의 슬픔을 많이 품고 사는 사람들이 아닐까. - 피해당한 약자를 대표하는 또 다른 유형의 인물이 천세형이다. 다만 천세형은 어떤 집단에 가담할 만큼 강한 신념을 지니지 못한 유약하고 평범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최규석 자칫 너무 갈대 같아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천세형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천세형을 설득하는 정진수의 말도 굉장히 섬세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지옥> 시즌1에서 뿜어냈던 교주 정진수의 카리스마와 에너지를 다시 한번 보여줄 수 있는 매력적인 장면이 탄생하게 되었다. 연상호 천세형에게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하려면 그 기저에 아내에 대한 사랑이 동력원으로 자리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러자 점차 내 전작 <사이비>에 나오는 칠성이란 캐릭터와 비슷해지더라. 칠성도 종교에 빠진 아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종교를 믿고 있는 남편의 역할인데 의외로 <사이비>에서 가장 입체적인 인물이 바로 그다. 최규석 시리즈와 만화가 달라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 천세형에 대한 묘사였다. 내가 그린 만화에서는 점차 감정이 식어가는 무미건조한 부부의 느낌이었다면 시리즈에서는 떠나가는 아내를 향한 애정이 여전히 남아 있는 남편의 애틋함이 듬뿍 묻어났다. 배우의 연기가 이렇게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 자신이 믿는 논리를 관철하려는 치열한 설전이 <지옥> 시즌2의 골격을 이룬다. 대사량이 무거운 장면이 많아질 수밖에 없을 텐데, 특히 이수경의 경우 대사 소화력으로 정평이 난 문소리 배우의 캐스팅이 전략적으로도 주효한 선택이라 느꼈다. 연상호 문소리 선배님 덕을 정말 많이 봤다. 이수경은 새 시대의 논리에 입각해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쓴 대본이지만 사실 내가 봐도 ‘이게 뭔 말이지’ 하고 집중을 놓치기 쉬운 대사들이 많다. (웃음) 그런데 촬영날 선배님이 동선이나 대사를 처리하는 모습을 보다 보니 점차 내 안에서도 정리가 되더라. 선배님이 언어에 힘을 주고 빼는 지점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확실히 대사 전달력에 있어서는 최고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 만화의 경우 대사가 길어지는 것은 텍스트와 이미지의 균형이라는 고민을 낳을 것 같다. 어떤 전략을 취하는 편인가. 최규석 만화에서 대사를 길게 쓴다는 것이 정말 위험하다. 대사가 긴 신이 있으면 몇달 전부터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송곳>을 그릴 때도 한화가 통째로 강의하는 장면으로만 이루어진 경우가 있어서 그때부터 경험치를 쌓은 것 같다. <지옥> 시즌1에도 정진수가 죽기 직전 한화 내내 혼자서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고. 대사의 순서나 문장구조를 재배치해보고 어휘도 조금씩 바꿔보며 최대한 독자들의 흥미를 유지할 수 있는 문장을 담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연상호 얼마 전에 <지옥2: 부활자> 단행본이 나와서 집에 가져갔는데 우리 딸이 재밌게 읽었다고 그러더라. 최규석 그래? 문화 수준이 상당히 높네. 우리 아들은 뭘 보려 하지를 않아요. (일동 웃음) 연상호 엔딩에서 배재현(오은서)이 자기 얘기인 줄 모르고 민혜진의 얘기를 듣는 게 재밌다 하더라. - 시리즈의 엔딩은 액션 방식이나 민혜진의 마지막 대사 등의 디테일이 만화와 조금 다르지 않나. 이야기의 첫머리에도 다소 차이가 있다. 연상호 만화 오프닝이 좀 헷갈리지 않나? 고양이 나왔다가 정진수 나왔다가 박정자 나왔다가. 한두번이면 모르겠는데 세번을 꼬니까. (일동 웃음) 최규석 내가 수미상관을 좋아하는 것 같다. 엔딩이 배재현으로 끝나니 오프닝도 배재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나 나름대로는 <지옥>을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인간은 의미가 없으면 멸종하는 존재”라는 정진수의 말처럼 <지옥>은 의미 부여에 대한 이야기지 않나. 인간 앞에 나타난 여러 자연적 사태의 연결 지점들을 이어 붙이는 작업이 곧 이야기다. 그래서 엔딩에서도 민혜진이 무언가 이야기를 하면서 끝이 나면 좋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다. - <지옥> 외에도 앞으로 두분의 협업 계획이 있을지 궁금하다. 연상호 우선 <지옥> 외에 함께 작업한 미공개작이 하나 있다. 그 뒤에는 각자 일을 하는 시간을 가질까 했지만 요즘 다시 생각이 바뀌는 것도 같고. 최규석 연상호 감독 생각이 하루에도 굉장히 많이 바뀐다. 보통 사람보다 시간이 한 5배는 빨리 가기 때문에. (웃음) 연상호 사실 만화는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모되는 매체다. 함께 작업할 다른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고 있다. 최규석 나는 원래 그리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 다만 <지옥>을 비롯해 내가 지금껏 그린 대부분의 작품이 현대물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니 그리는 재미를 더욱 자극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소재를 다루고 싶다는 욕심도 생긴다. 예컨대 로봇이 나오는 판타지라든가.

[인터뷰] 연대할 수 있는 희망의 씨앗으로 자리하길, <럭키, 아파트> 강유가람 감독

강유가람 감독의 영화 세계는 두 갈래로 거칠게 양분할 수 있다. 한축은 단편 <시국페미>, 장편 <우리는 매일매일> 등 한국에서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다른 축은 공간에 관한 탐구다. 가부장제의 대유로 은마아파트를 활용한 단편 <모래>, 도시문제를 다룬 단편 <진주머리방>이나 장편다큐멘터리 <이태원>에는 모두 특정 공간에 집중하는 동시에 사회제도의 결함이나 모순으로 인해 그 공간에 정주할 수 없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두 갈래의 세계는 그의 첫 장편 극영화 <럭키, 아파트>에서 교차한다. 연애 9주년을 앞둔 레즈비언 커플 선우(손수현)와 희서(박가영)는 서울 시내 한 아파트에서 동거 중이다. 어느 날 선우는 독거노인인 신임(전소현)이 사는 아랫집에서 악취를 맡고, 냄새의 원인을 찾아가던 중 신임과 정남(정애화)이 벽장 밖으로 나올 수 없었던 성소수자 커플이었음을 알게 된다. 지금 한국 사회에 뿌리박힌 동성애, 여성·노인 혐오를 적시하는 사회 드라마이면서 미스터리 장르물로도 인상적인 결과물을 내놓은 강유가람 감독과 만났다. -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가 갖는 의미가 남다르다. 영화의 주요 공간으로 아파트를 떠올린 배경은. 누구나 아파트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안정적 주거 공간이라 믿는다. 그런 공간에 불협화음을 내는 존재가 돌출하고 그 존재가 성소수자라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상상하며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또 한국인에게 아파트는 투자의 대상으로 인식되지 않나. 이런 복잡한 공간을 성소수자들도 욕망한다. 다양한 소수자들이 느끼는 혐오와 배제의 문제까지 다룰 수 있을 것 같았다. - 공교롭게 블랙핑크의 로제와 브루노 마스가 라는 음원을 개봉 직전 발표했다. 안 그래도 오늘 인터뷰 오는 길에 그 노래를 처음 들었다. “아파트 아파트”가 반복되더라. (웃음) - 주인공 커플인 선우와 희서에 손수현, 박가영 배우를 어떻게 떠올렸나. <우리는 매일매일> 개봉 당시 손수현 배우가 GV 모더레이터를 맡아준 적 있다. 이전에도 손수현 배우를 여러 단편영화에서 본 적 있지만 GV로 안면을 튼 이후 손수현 배우의 여러 특성이 눈에 들어왔다. 중저음의 목소리에 선이 굵은 얼굴을 가졌다. 배우가 지닌 고유의 느낌이 선우와 어울려 선우 역을 제안했다. 처음엔 손수현 배우가 퀴어영화에 몇 차례 출연한 터라 역할 중복을 이유로 고사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손수현 배우가 그런 건 아무 상관없다며 출연을 결정했다. 희서에겐 예민한 면모와 회사원 특유의 찌든 모습을 동시에 보이는 섬세한 연기가 필요했다. 박가영 배우는 얇은 선을 통해 도화지처럼 모든 연기를 흡수할 수 있는 배우다. 시나리오를 전한 날 처음 박가영 배우를 만났고, 두 번째 만남에서 바로 출연을 수락했다. - 선우가 아파트에서 불길함을 감지하는 심상이 냄새여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후각은 영화가 표현하기 어려운 심상이다. 내 친구가 실제 겪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창작했다. 그 친구도 선우처럼 공동주택에서 사망한 이웃의 악취를 맡았는데, 다른 입주자들은 이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내가 냄새에 민감하다. 냄새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라 그런지 미지의 냄새가 개인에게 가져다주는 압박감이 어떤 무게로 다가올지 더 크게 체감한다. 후각이 보이지 않는 감각이다 보니 성소수자의 존재로 은유하기에 알맞다고 생각했다. - 영화의 중요한 소품인 신임과 정남의 사진에 비하인드 에피소드가 있다면.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찍은 사진이다. 설정상 1980년대 말에 찍은 사진인데 두 배우가 정말 깊이 몰입해 사진을 찍었다. 사진 촬영이 끝날 무렵 정애화 배우가 전소현 배우에게 “내가 이 바지씨(남성적인 느낌을 풍기는 레즈비언을 뜻하는 옛 은어.-편집자)와 사랑에 빠진 것 같다”라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그런데 전소현 배우가 짧은 머리 가발을 벗고 나오니 바로 “내가 사랑했던 바지씨가 사라졌다”며 속상해하셨다. - 선우는 신임의 고독사를 본 후 자신 또한 신임과 같은 결말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런데 선우가 낯선 방역 노동자에게 마실 것을 내어주는 모습은 정남이 선우가 자신을 찾아오자 마실 것을 건네주는 장면과 조응한다. 호의, 친절과 같은 긍정적 속성이 두 세대의 성소수자 여성에게 전승되는 도식이 희망적으로 다가온다. 선우와 희서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윗세대 퀴어 커플의 마지막을 바탕으로 동료들 그리고 아래 세대와 연대할 수 있는 희망의 씨앗으로 자리하길 바랐다. 그래서 선우와 희서의 다음 세대 여성인 은주(최은율) 또한 혐오 발언자를 저지하거나 단지 내 길고양이를 챙기는 등 사회적 약자를 돌볼 줄 아는 존재로 그렸다. 은주가 선우에게 “언니들 레즈예요?”라고 묻는 대사도 친근감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은주 입장에선 성소수자와 어울려 사는 게 이미 아무렇지 않은 일이다. - 최근 시리즈 <대도시의 사랑법>의 예고편이 보수 단체의 상영 금지 시위와 민원으로 인해 삭제되는 사태가 있었다. 레즈비언 커플이 등장하는 영화 <딸에 대하여> 또한 대전여성영화제에서 성소수자 이슈는 사회적 논란이라는 이유로 양성평등주간에 맞춘 상영이 바람직하지 않다며 상영 대체 요구를 받아 논란을 빚었다. 퀴어 콘텐츠를 향한 포화 공격이 극심한 가운데 <럭키, 아파트>가 세상에 공개된다. 사실 대전여성영화제 상영작 중 <럭키, 아파트>도 있었다. 그런데 포스터에서부터 동거 중인 레즈비언 커플이 등장하는 우리 작품은 논란으로부터 패싱됐다. (웃음) 이슈가 되지 않은 작은 영화여서 그렇지 않나 싶다. <딸에 대하여>는 유명한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대도시의 사랑법> 또한 유명 감독과 배우들이 출연하는 작품 아닌가. 사회에 파급을 가져올 수 있는 콘텐츠라 백래시를 받는 것이다. 이 사태 자체가 <럭키, 아파트>와 닮았다. 만약 선우와 희서가 아랫집의 문제를 조용히 덮고 지나갔다면 아파트 내에서 소외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목소리를 높이는 순간 주거 공동체로부터 배척을 받는다. 우리 작품도 중요한 의제에 목소리를 높일 수 있길, 두 작품처럼 좋은 의미로 물의를 일으키는 이슈작이 되길 바란다.

[인터뷰] ‘나 다움으로, 진솔하게, 용기있게’, <공작새> 변성빈 감독, 배우 해준

트랜스젠더 여성의 험난하고 신랄한 병역판정검사 과정을 그린 <신의 딸은 춤을 춘다>로 2020~21년 클레르몽페랑국제단편영화제 관객상, 미쟝센단편영화제 희극지왕 최우수작품상 등을 받았던 변성빈 감독, 배우 해준이 <공작새>로 다시 뭉쳤다. 왁킹댄서로 치열하게 사는 신명(해준)은 군 입대를 앞두고 목돈을 모아 성전환수술을 받으려 한다. 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실상 연을 끊고 지냈던 아버지 덕길(기주봉)의 유언을 수행한다. 그것은 바로 신명이 직접 농악 명인 덕길을 위한 추모굿을 올리는 일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따가운 눈으로 바라보는 고향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신명은 자신의 정체성을 굳건하게 드러내고,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이들을 돌보게 된다. 이처럼 한국 독립영화계에서 퀴어영화의 저변을 넓힐 <공작새>가 지난 10월23일 극장 개봉했다. <씨네21>이 변성빈 감독과 배우 해준을 만나 그들의 오랜 인연부터 <공작새>의 화려한 완성까지를 물었다. 그들은 감독과 배우로서, 그리고 오랜 동료로서 솔직하고 들뜬 대화를 들려줬다. - 어떻게 서로 처음 만나게 됐나. 변성빈 군대에서 만났다. 언제지? 해 준 2016년이었을 거다. 변성빈 아냐 아냐. 내가 2015년에 임관했으니까… 근데 네가 15년에 군대에 있었나? 해 준 네, 겨울부터 있었으니 거의 2016년에 만났죠. 변성빈 아무튼. (웃음) 이렇게 병사하고 장교 사이로 만났다. - 만난 뒤 <신의 딸은 춤을 춘다>로 협업한 계기는. 해 준 군대에서 상급 부대 규모로 계속 올라가는 토너먼트 형식의 무대 경연이 있었다. 그때의 경연 열기가 엄청났는데 당시 감독님이 직접 우리 부대의 무대감독을 맡았고, 병사였던 나는 무대에 섰다. 그때 처음 내 춤을 봤을 거다. 20살 전부터 계속 댄서로 활동하다가 20살 무렵을 넘기며 본격적으로 큰 무대에 서면서 빛을 본 경력이 있었다. 변성빈 그때 해준이가 가진 댄서로서의 아우라와 매력이 엄청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 <신의 딸은 춤을 춘다>로 영화진흥위원회 제작 지원을 받게 됐을 때 주인공을 해준이가 꼭 맡아주길 바랐다. 이 캐릭터는 배우가 연기하는 게 아니라 진짜 한명의 인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래 캐릭터는 싱어송라이터였는데 해준이에게 맞춰 직업을 댄서로 바꾸기도 했다. - <공작새>도 비슷한 경위로 만들어진 건가. 변성빈 아니다. <공작새>는 처음부터 해준이를 주인공으로 삼자는 고정값을 설정하고 시작한 작품이다. <신의 딸은 춤을 춘다>를 함께했던 제작진과 진짜 의미 있는 장편 하나를 만들어보자는 포부를 가지고 시작했다. 이야기에 맞춰서 캐스팅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재밌게 할 수 있는 작업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기획을 점차 발전시켰다. - “진짜 의미 있는 장편”이란 어떤 뜻일까. 변성빈 트랜스젠더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한국영화가 100년의 역사 속에서 10편이나 될까 싶다. 퀴어영화 자체도 나오기 어렵지만 트랜스젠더가 주연인 경우는 더욱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니 이 영화를 제대로 완성하는 것만으로도 유의미한 시도라고 생각했다. 그런 만큼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접근성도 최대한 키우고 싶었다. 메시지나 주제도 중요하게 여기는 한편 엔터테이닝의 요소도 놓치지 않고 연출에 힘쓰려 했다. 그렇게 최대한 많은 관객에게 이 영화가 닿았을 때 많은 이를 설득할 수 있기를 바랐다. - 어떤 맥락에서 관객을 설득하고 싶었나. 변성빈 <신의 딸은 춤을 춘다>가 영화제에서 상영될 무렵 한국엔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고 변희수 하사의 일과 숙명여대의 트랜스젠더 학생 입학 거부 사건이었다. 그때 한국 사회의 반응을 보며 우리 사회가 타자를 수용하는 능력이 아직 부족함을 직면했다. <신의 딸은 춤을 춘다>를 본 관객들 사이에서 좋지 않은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공작새>가 2시간 동안 트랜스젠더 인물을 대상화하거나 타자화하지 않고 관객과 잘 만나게 해준다면, 영화가 사회 전반에 퍼트릴 수 있는 좋은 힘을 가질 거라고 생각했다. - 다른 연기 경력 없이 <신의 딸은 춤을 춘다>를 시작하고 <공작새>의 화면을 가득 채우는 일까지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해 준 <공작새>가 총 77개 신인데 내가 77개 신에 다 등장한다. 같이 연기한 선배님들에게 물어보니 이런 영화는 거의 없다고 하더라. (웃음) 그만큼 <공작새>의 서사와 성격을 2시간 동안 오롯이 내가 끌고 가야 한다는 부담이 없진 않았다. 내가 전문적인 연기 트레이닝을 받은 배우도 아니고 현장에서 일을 배운 사람이니까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국엔 감독님이 나를 선택한 이유가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감독님을 믿고 작업해보기로 했다. <신의 딸은 춤을 춘다>가 새로운 예술 영역에 도전했던 재밌는 계기였다면, <공작새>는 배우로서 내 인생의 큰 그림이 될 만큼 깊은 의미가 된 작품이다. 하늘과 땅을 잇는 춤 - <공작새>의 신명은 사회와 격리되기보다 타인들을 용서하고 서로 화해하는 길을 택한다. 이런 방향성을 택한 이유는. 변성빈 독립영화는 보통 관객에게 명확히 소구할 수 있는 특정 주제를 잡는 과정이 무척 중요하다. 그렇지만 난 ‘이 주제에만 몰두할 거야!’라는 생각으로 영화를 찍고 싶진 않았다. 트랜스젠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긴 했지만 시나리오를 쓰며 느끼는 자연스러운 변화를 받아들이려 했다. 집필 당시 내가 실제로 누군가를 용서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혔고, 이 용서의 의미가 <공작새>로 이룰 수 있는 성취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에서 배척당하던 트랜스젠더 인물이 공동체의 화합을 기리는 굿에 몸담았을 때, 자기를 부정하는 대상들을 향해 오히려 그들의 번영을 빌어줬을 때 나오는 용서의 힘이 정말 우리 사회를 바꿔나갈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겠다고 느꼈던 거다. - 신명의 삶과 배우 본인의 삶을 어느 정도로 겹치고 떨어트려야 할지에 깊은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해 준 맞다. 감독님이 주신 여러 단서 속에서 어떻게 하면 내가 명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많이 고심했다. 이를테면 시나리오에 신명에게 주어진 10개의 감정선이 있다면 이걸 어떻게 한명의 인물로 합쳐야 할지 처음엔 많이 어려워했다. 그런데 결국 나의 기질과 신명의 성격을 전부 동일시하는 방식은 포기했다. 나 자신이 완전히 신명이 되려고 하면 오히려 신명이란 캐릭터의 에너지가 줄어들 것 같았다. 대신 나와 신명이 정말 영혼의 단짝 같은 관계라고 생각하고 임했다. 명이에게 직접 편지를 써본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캐릭터의 감정에 다가갔다. 그렇게 하다 보니 내가 원래 생각했던 감정과 실제 신명을 연기할 때 터져나오는 감정이 확연히 달라질 때가 생겼다. 신기했다. - 어떤 장면에서 감정의 차이가 생겼나. 해 준 명이가 고향에서 한번 아픔을 겪은 후에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는 장면이 있다. 버스 안에서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아버지를 비롯한 가정사를 전부 알게 되는 대목이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허탈함이나 당황에 가까운 감정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막상 직접 연기하게 되니 계속 울게 됐다. 촬영 첫날이었는데 그 사진을 보자마자 버스 안에서 펑펑 울었다. 변성빈 카메라가 찍고 있는지도 모르고 해준이가 엄청나게 몰입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더라. ‘이게 진짜구나’라고 단번에 느꼈다. 시나리오와 좀 다를지라도 해준이가 만든 명이가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다면 참 좋다고 생각했다. 바로 오케이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해 준 육체는 해준인데 영혼에 명이가 들어온 느낌이었다. 장례식장에서 고모부가 명이에게 폭언을 하는 장면에선 대본 리딩 때부터 쌓아왔던 명이의 감정을 한번에 쏟아내고 개운해하기도 했다. 장례식장 촬영이 2회차였다. 그러니 1회차 땐 펑펑 울고, 2회차 땐 고모부에게 뺨 맞고 실컷 화내고. (웃음) 시작부터 ‘어? 연기 좀 재밌네?’라는 마음을 가지고 편하게 촬영에 임할 수 있었다. - 영화의 제목처럼 공작새의 이미지가 반복하여 등장하는 이유는. 변성빈 굿에서 새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존재다. 하늘의 덕길과 땅의 명이를 이어주는 새의 존재를 영화의 중심 이미지로 가져가고 싶었다. 새 중에서도 공작새를 택한 이유는 공작새의 깃털 문양, 눈 모양 때문이다. <공작새>엔 눈이란 오브제를 무척 중요하게 다룬다. 서울의 명이 집에도 눈에 대한 미술이 많다.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주위의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제대로 못 보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영화가 그들과 직접 눈을 마주치는 시작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해 준 시각 요소 중 명이의 의상, 메이크업 등도 무척 중요하게 다뤄졌다. 기존의 다른 매체에서 흔히 보이는 트랜스젠더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란 티가 나는 건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메이크업 방식이나 의상 선택에 내가 평소에 하고 입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섞어냈다. 극 중에 나오는 공작새 무늬가 있는 한복 치마도 공교롭게 내가 갖고 있던 옷이다. - 왁킹과 굿을 섞는 명이의 시각적 퍼포먼스가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해 준 정말 죽을 뻔했다. (웃음) 왁킹이야 원래 하던 거니까 연기하다가 춤을 춰야 하면 언제든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소고춤은 워낙 다른 전문 분야이니 연습하는 과정이 정말 쉽지 않았다. 전수관에 가서 사부님들에게 거의 반년 넘게 고된 훈련을 받으며 터득했다. - 차기작 등 차후 계획은 어떤가. 변성빈 여러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내가 무언가를 늘 찾는 사람이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동시에 자신의 존재만으로 부정당하는 인물들에 대해서 계속 쓰고 있다. 상업영화를 하게 되더라도 내가 원래 추구하던 이런 면모들을 놓지 않고 은유하는 작품을 만들고자 한다. 해 준 난 사실 뭔가 계획을 세우고 사는 편은 아니다. 살다 보니 이렇게까지 왔다. (웃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열심히 하면서 살아보려 한다.

[연속기획 3] 부산영상위원회 아카이브 총서 <부산의 장면들> #1, ‘천만영화’, <변호인> 양우석 감독 인터뷰

부산영상위원회와 함께하는 기획임을 밝히자마자 양우석 감독이 꺼낸 말은 “두 섹션으로 나누어 말씀드리고 싶다”였다. 첫 번째는 제작 당시 부산영상위원회로부터 받은 제작 지원에 대한 감사함, 두 번째는 이 지원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뻗어나온 작금의 국가 시스템 전반에 대한 고민이라고 한다. 이는 <변호인>이 1981년에 대한 영화임과 동시에 2013년에 대한, 다시 2024년에 대한 영화임을 깨닫는 과정과도 같다. 데뷔작인 <변호인>에서 출발해 한국 사회의 다음 ‘지금’으로서 천착한 <강철비>와 <강철비2: 정상회담>을 거쳐, 양우석 감독이 꿈꾸는 미래와 나란히 놓인 차기작까지 이어지는 긴 이야기를 소개한다. 대화의 시작점에서 멀리도 떠나왔다 싶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항로는 결코 <변호인>의 너른 해역을 떠나는 일이 없었다. - 2013년 <변호인>이 개봉하고 12년이 흘렀다. 지금 <변호인>을 바라보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 내가 생각하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대표적인 이미지 중 하나는 ‘코리안 드림’의 신화다. 코리안 드림이 아메리칸드림과 다른 점은 교육을 통한 성공에 방점이 찍힌다는 것이다. 법조 계의 엘리트성이 강조되던 80·90년대에 노무현은 엘리트적인 면모와는 거리가 먼 인물 이었다. 어렵게 공부하며 자수성가한 그의 이미지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 시스템은 부의 정도에 따라 자녀의 성공을 만들어낼 정도로 진화했다. 현재 청년 들의 좌절감도 이 코리안 드림조차 무너지고 있다는 불안감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변호인>이 출발한 과정을 다시금 듣고 싶다. = 내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말하자면 노무현의 ‘갈라파고스의 시기’다. 진화론을 처음 제시한 찰스 다윈은 갈라파고스섬에서 채 한달도 체류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이 다윈의 인생은 물론 인류의 지성사를 바꾼 것이다. 노무현에게는 이 기간이 바로 변호사 시절이라 본다. 하지만 노무현이 대통령 후보가 된 후 그간 모아둔 모든 파일을 지웠다. - 그 후 10년이 지나고 나서야 다시 작품을 제작할 마음을 먹은 것인데,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을까. = IMF 당시의 막막한 분위기에서 자랐던 청소년들이 막 사회에 나올 시기였다. 모두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만 몰두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먹고사는 일에 몰두하다가 무언가에 항의하기 위해 일어선 사람의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싶었다. <변호인>은 그저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고 직업윤리에 충실했던 사람의 이야기다. “국가가 법을 안 지키니까 법을 지키라고 호소하는 것뿐인데”라는 대사를 좋아한다. 어마어마한 정의감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라 그저 법을 어기는 행위에 대해 항의한 것이다. - 시대극의 초반부는 관객에게 작품의 시대상이라는 일종의 약속을 설득력 있게 제안하는 임무를 띤다. 이때 <변호인> 초반의 생활감 있는 장면들의 촬영지가 대부분 부산이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 처음 로케이션을 선정할 때 부산영상위원회 쪽에서 표현한 안타까움이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부산도 많이 발전했다”는 것이었다. 부산의 옛 모습을 담아내기에는 2001년작인 <친 구>까지가 아니었나 싶다는 걱정을 많이 하셨다. 로케이션 탐색에 힘은 들었지만 사실 이런 시대극이 대부분 CG 영화다. 간판이나 차량, 건물 형태 등 소소하게 손봐야 하는 요소들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컷수로만 보면 CG의 양이 가장 많은 장르다. - 영화 초반 우석이 살던 옛집은 해운대의 한 주택가에서 촬영했고, 우석이 진우의 집을 찾아가는 장면을 촬영한 흰여울문화마을은 이후에 관광지화되기도 했다. 이 공간들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 선택지가 정말 많지 않았다. 오히려 공간이 우리를 선택했다고 봐야 하겠다. 얼마 남지 않은 80년대 풍경을 악착같이 찾다 보니 나왔던 공간이 아니었나 싶다. - 그렇다면 실제 모델이 남긴 삶의 흔적을 발견하기도 어려웠을 것 같은데, 어떤 아우라의 부재가 아쉽지는 않았나. =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압도적으로 많은 텍스트와 이미지가 남아 있다. 80년대 후반에는 여성지조차 노무현을 특집으로 다루었다. 만약 그분의 이야기를 모두 스크랩한 사람이 있다면 분명 창고 분량 하나는 나올 것이다. 그래서 답사 때 우리가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변했네”. (웃음) 요즘은 로케이션을 찾을 때 현장 다녀온다고 하면 그냥 인터넷에서 찾아보라고 한다. - 영화의 마지막 장면 중 하나인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항의 시위 장면은 실제 시위가 진행되었던 중구 대청동의 중앙성당에서 촬영되었다. = 유일하게 진짜 고집을 지켰던 장소가 아니었나 싶다. 도로 통행을 전부 막고 촬영해야 했기에 주어진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거기에 보조출연진도 많다 보니 최대한 빨리 끝내야 했다. 미리 합을 여러 번 맞춰보고 잔뜩 긴장한채 진행했던 기억이 난다. - 주조연 배우의 대부분이 부산 또는 경남권 출신 이다. 시나리오 집필 단계에서부터 캐스팅에 대한 명확한 계획이 존재했나. = 공간도 영화의 주인공이라 생각한다. 특히 <친 구> <바람> <변호인> 등에서 부산이라는 도시는 빼놓을 수 없는 영화의 주인공이다. 부산 사투리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 배우들을 캐스팅하고자 했다. 원래 <변호인>은 웹툰용으로 기획한 시나리오였다. 우연히 당시 위더스필름의 최재원 대표님을 만나 영화로 제작 하게 된 경우고. 그러다 보니 각 배역에 특정 배우를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 우석 역의 송강호 배우가 인터뷰에서 “양우석 감독님은 배우에 대한 신뢰가 커서 ‘이렇게 가야 합니다’와 비슷한 이야기도 한 적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말 그대로 인생 연기를 펼친 송강호 배우와 <변호인>으로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임시완 배우의 어떤 점이 특히 미더웠나. = 송강호 선배님은 사람이 쓸 수 있는 온갖 찬사를 다 갖다붙여도 모자랄 정도로 놀라운 분이다. (웃음) 축구의 공격수는 아주 짧은 순간 필드 위에 일종의 카오스 상태를 만들어내는 포지션이 아닌가. 그런 연기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모든 스태프가 내일은 어떤 연기를 할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현장에 임했다. 임시완 배우는 어마어마한 노력파다. 그런데 그걸 티를 안 낸다. 나중에 예능프로에서 동료인 광희씨가 “맨날 임시완이 거꾸로 매달려 있길래 뭐 하는 거냐고 놀렸다”고 이야기했는데, 고문당하는 장면까지 연습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 노력의 자세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 웹툰 작가로도 활발히 활동했다. 영화 콘티를 작성할 때 웹툰 작가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고 느낀 적이 있나. = 영화의 콘티는 원칙적으로 시나리오에 종속 되어야 한다. 어쨌든 영화는 시간예술이며 카메라와 스크린의 제약이 존재한다. 만화처럼 스타일과 감상법에 자유로운 변형을 줄 수는 없기에 더 보수적으로 콘티를 그린다. 픽사 애니메이션의 대표였던 존 래시터는 애니메이션에서만 가능한 자유로운 앵글을 자제하고 오히려 영화보다도 더 연극적인 숏을 요구했 다. 스크린에서 작품을 보는 관객들을 고려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 <변호인>도 그렇지만, 이후 연출한 작품인 <강철비>와 <강철비2: 정상회담>은 확실한 논리적 영토를 구축한 뒤 그 구성 요소의 화학반응을 풀어나가는 관측과 설득의 영화라 느꼈다. 그렇기에 <강철비>의 두 철우처럼 인물의 성격과 정서 또한 논리를 담아내기 위한 최적의 도구라는 인상을 줄 때도 분명히 있다. = 논리는 오히려 쉽다. 1, 2년 공부하면 논리는 알아서 나온다. 그 논리를 누구에게 투영해야 하는지, 어떤 인물이 이 논리를 설파했을 때 더 진정성이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강철비> 를 준비하며 많이 했다. 말하자면 자신의 성격 보다 믿는 논리를 앞에 둘 수 있는 사람이겠다. 이때 논리는 곧 이야기, 내러티브다. 당장 자신이 입을 손해를 감수하고도 자신이 관철 하고자 하는 내러티브를 우선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변호인>의 우석이 그 예시다. - 시대극으로서 <변호인>의 풍부한 로케이션이 눈에 들어왔다면 <강철비>는 정치물 특유의 현대적인 세트 디자인에 눈길이 갔다.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에 세트를 제작해 96일간 촬영했다고. = 당시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는 2~3년 전에 예약하지 못하면 들어가지 못할 정도였다. 운이 좋았다. 사실 우리나라의 스튜디오 수가 정말 적다. 한국에 실제로 필요한 스튜디오 수는 수백개 이상인데 정부 보조금이 들어가는 스튜디오는 열개 남짓이고, 일반 사업자들이 스튜디오를 차리기에는 시장가보다 낮은 가격에 형성되는 정부 지원 스튜디오를 이길 수가 없다. - <변호인>의 배경인 부산과 <강철비>의 배경인 수도권은 지금껏 많은 작품에서 다루어진 한국 영화의 익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강철비2: 정상회담>의 배경인 바닷속과 잠수함 선내는 생경한데. 생소한 전문 분야에 대한 고증과 차별화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 작품에 임할 때 꼭 체크하는 것이 있다. 그 분야의 전문가와 만나 대화했을 때 내가 못 알아듣는 것이 단 하나라도 있다면 아직 준비가 안된 것이라 생각한다. 철저한 공부와 고증은 관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사실 창작 과정 중 공부가 제일 편하다. 공부할수록 창작도 편해지는 것이고. 그래서 답답할 때면 ‘내가 아직 공부가 덜 돼서 그렇구나’ 생각하고 만다. - 어찌 보면 그동안은 넓은 공간을 자유롭게 사용 하다가 <강철비2: 정상회담>에서는 잠수함 선내라는 좁은 공간에 스스로를 가둔 셈인데. 밀실 연출에 특히 어려운 점은 없었나. = 인물의 사방에 벽이 있는 좁은 공간에서는 카메라 렌즈를 조금만 잘못 선택해도 그림이 완전히 틀어진다. 잠수함이 밖에서 볼 때는 커보이지만 선내는 정말 좁다. 우리나라의 장보 고급 잠수함의 경우 25평 남짓한 공간에 40 명의 남자 승무원이 함께 생활한다. 약간이라도 폐소공포증이 있다면 승선이 불가능하다. - 잠수함 내부의 색채나 구조물의 디자인도 칙칙하고 답답한 느낌을 준다. 폐쇄성을 강조하기 위한 선택이었나. = 오히려 그 답답한 느낌을 피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폐쇄적으로 표현되더라. (웃음) 배가 떠다니는 수면이 말 그대로 면, 2D 공간임에 반해 잠수함이 움직이는 바닷속은 더욱 자유로운 3D 공간이다. 잠수함 바깥에서는 카메라가 훨씬 넓게 움직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움직임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 답답함이 더욱 강조되는 것이 아닐까. - 부산 시내의 여러 로케이션을 돌았고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도 경험했다. 부산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인가. = 먼저 다른 이야기를 조금 해야 할 것 같다. 현대 관료제에는 크게 보아 포지티브와 네거티브 시스템이 있다. 네거티브 시스템을 간단히 말하자면 ‘법에서 금지하는 것만 아니면 다 해도 돼’이다. 만약 기존의 법이 포괄하지 못한 새로운 영역이 탄생하면 그에 맞춰 규제를 만들어간다. 반면 포지티브 시스템은 ‘모든 규칙을 적어놓을 테니 이대로만 해’의 방식이다. 바꿔 말하면 ‘안 적혀 있으면 하지 마’겠다. 빠른 성장에는 도움이 되지만 위기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다. 그간 우리 사회는 일본의 영향을 받아 포지티브 시스템 방식으로 성장해 왔다. 왜 이 얘기를 하느냐면 부산영상위원회는 네거티브 시스템 문화를 정착시킨 한국의 공공기관 중 가장 성공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그런가. = 언제나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고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데, 그 방식이 정말 유연하다. 예를 들어 중앙성당에서의 촬영도 도로를 막고 촬영한 경우가 지금껏 없으니 안된다고 하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부산영상위원회는 여러 교통법과 조례 등을 참고하고 유연하게 적용해 결국 선례가 없는 새로운 솔루션을 제시해준 것이다. 결국 부산영상위원회의 노력을 통해 민간경제도 활성화되고 부산이라는 브랜드의 이미지도 제고되는 것이 아닌가. 지역 영상위원회나 지방자치단체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전반적 사고방식이 더 유연해져야 한다. - 지방자치제와 지역 영상위원회의 역할은 분명 닮은 점이 많다. 영상문화산업의 발전이 곧 지역발전으로 이어진다는 이론적인 명제를 부산영상위원회가 증명한 것이 아닐까. = 영화를 만들고 나서 제작자에게 남는 건 디지 털데이터뿐이다. 제작비는 모두 어딘가에 쓰인다는 뜻이다. 영화 촬영은 그 지역의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대한민국의 행정 체계에서 네거티브 시스템을 도입해서 운영했 다는 사실 자체로 부산영상위원회가 아주 귀중한 자산이 아닌가 생각한다. - 영화인 양우석은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묵직한 주제를 마주하기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차기작 <대가족>이 더 궁금하다. = 입봉작 <변호인>으로 엄청난 사랑을 받은 후 앞으로 대한민국에 필요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강철비> 당시에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기가 가장 큰 문제였고. 지금 대한민국의 가장 큰 화두는 가족이라 본다. <대가족> 의 ‘대’는 ‘대할 대’, 즉 ‘가족에 대하여’라는 의미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저출생 국가들의 공통점은 학벌 사회라는 거다. 사교육에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돈이 들어가는 한국의 가족은 일종의 직업훈련소가 되어버렸다. 가족이란, 부모와 자식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할 계기가 되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어느 정도 코믹한 터치도 있다. 아버지는 만두 장사를 하고 아들은 스님이 되는데, 덕분에 만두 공부랑 불교 공부도 좀 했다. (웃음)

<아노라>가 성 노동자를 외면하지 않는 방식, 마지막 성냥불을 켠 신데렐라

“네 가족들은 너 이러는 거 알아?” 뉴욕 스트립 클럽의 댄서 아노라(마이키 매디슨)는 많은 손님이 찾는 에이스로서 환호를 받는 한편 그들로부터 멸시의 언어도 자주 듣는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아노라를 상처입히진 못한다. 그는 이미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잘 알고 있다. 자기가 클럽에 온 사실을 가족이 알면 큰일 난다며 웃는 손님이나, 스트립 댄서가 자신의 딸을 닮았다는 말을 한 뒤에 다음 방문을 예약하는 남성들. “그 아저씨 이상하다”는 동료의 말에 “왜? 살인마 같아?”라고 되묻는 대화 등에서 아노라가 거쳐온 남성들이 공통적으로 어떤 모순을 지녔는지, 댄서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아노라가 러시아인 이반(마르크 예이델시테인)을 만난 건 그가 인기 많은 댄서일 뿐만 아니라 러시아어를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여자들은 잘 모르는, 아노라만이 할 수 있는 것. 비록 말하기보다 듣기를 더 잘하고, 그것조차도 다소 어눌하지만 러시아어는 아노라에게 새로운 기회의 가교가 되었다. 생각보다 둘은 잘 맞았다. 아노라는 여느 날처럼 능수능란하게 관계를 리드했고 이반은 그의 여유를 즐겼다. 짧았던 유흥은 클럽 밖에서 더 오래 이어졌다. 이반은 아노라를 집으로 불러 러시아로 돌아가기까지 남은 일주일을 자신과 함께 보내자고 제안한다. 시한부 연인. 그들에게 새로 붙여진 이름이다. 주도권을 쥐고 있는 손은 누구의 것인가 술과 도박, 코카인과 섹스, 게임과 클럽, 소비와 사치. 이반과 아노라의 일주일은 온통 소모적이고 중독적인 것으로 채워졌다. 전용 제트기를 타고 친구들과 라스베이거스로 향한 것도 오직 원초적이고 충동적인 결정에 의한 것이다. 시끌벅적하고 화려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무절제에 익숙해진 커플은 마법의 주문에 걸린 것인지 무언가에 홀린 것인지 돌연 결혼식을 올린다. “나 너랑 진짜 결혼하고 싶어. 너무 떨려서 러시아어로 말할게. 너랑 있으면 돈 한푼 없어도 행복할 것 같아.” 둘만 아는, 진심 가득해 보이는 이반의 프러포즈와 함께. 하지만 현실은 이들의 바람과 달리 순탄치 않다. 결혼 사실을 알게 된 이반의 집안 사람들이 “창녀와의 결혼”에 길길이 날뛰며 혼인을 무효화하기 위해 이반의 집으로 날아오기 때문이다. 토로스(카렌 카라굴리안), 가닉(바체 토브마시안), 이고르(유리 보리소프) 세 남자의 등장과 함께 행복을 꿈꾸던 신데렐라의 꿈은 그대로 균열나기 시작한다. 아노라와 이반의 관계에서 늘 우위한 선택권을 쥔 건 아노라였다. 러시아인 남자에게 갈까 말까, 그에게 더 나은 성적 서비스를 제공할까 말까, 일주일간 그의 연인이 될까 말까, 이 결혼을 승낙할까 말까. 그는 이반가(家)의 말마따나 창녀지만 자기 사정에 쫓기지 않는다. 오히려 늘 여유롭고 느긋해서 우아한 인상까지 준다. 하지만 그의 결혼이 무산될 위기 앞에서, 더구나 이반이 도망가버린 상황 속에서 아노라의 태도는 완전히 전복된다. 아노라의 불안감이 가속도를 높일수록 이 관계의 유지 권한 또한 자연스레 이반에게 위임된다. 이제 결정권자로서의 아노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욕설과 고성, 육탄전으로 자기 방어하기 급급하고 집착적으로 도망간 연인을 찾아내려는, 이반의 선택이 너무나 절실한 피구원자만이 있을 뿐이다. 완전히 기울어버린 관계의 중심축에는 이반을 처음 이어준 아노라의 무기, 러시아어가 있다. 어눌한 러시아어와 영어로 뒤섞인 불균등한 대화는 아노라가 이반의 언어를 ‘알아듣게’ 하지만, 이반이 아노라의 언어를 ‘선택’하지 않게 한다. 두 언어 중 러시아어가 소통 언어로 결정된 것은 오직 그를 이해해야만 이 관계가 지속될 수 있는 아노라의 사정 때문이다. 한쪽으로 쏠린 언어 권력 속에 아노라는 주어진 상황에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한다. 이들의 결혼을 되돌리기 위해 세명의 사내가 집 안으로 들이닥쳤을 때 아노라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냐”고 다섯번이나 묻지만, 폭격처럼 쏟아지는 러시아어 사이로 어떤 설명도 듣지 못한다. 마치 그곳에 없는 사람인 것처럼, 그렇게 무시해도 되는 사람인 것처럼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신데렐라와 성냥팔이 소녀 그 사이 숀 베이커 감독은 <씨네21>과 인터뷰에서 <아노라>를 ‘현실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표현했다. “고작 일주일의 단꿈으로 진실된 사랑이 맺어질 거라는 환상이나 프린스 차밍에 대한 소망이 깨진 다음에의 이야기를 펼쳐내려 했다. 동화가 공상이라면 영화는 현실이다.”(숀 베이커) 전용 제트기를 타고 라스베이거스를 가던 공주님은 이제 갓난아이가 빽빽 우는 비행기 이코노미석에서 덩그러니 남은 현실을 발견한다. 이 사실을 깨닫기 전과 후의 낙차가 크면 클수록 아노라의 절망과 낙담은 더 크게 다가온다. 하지만 의문이 남는다. 아노라가 경험한 것이 정말 계급적 수직 상승이었을까. 그렇다면 아노라는 왜 이반과 (보편적으로 고급 문화로 여겨지는) 오케스트라나 오페라가 아니라 클럽 문화를 누렸을까. 왜 갤러리에서 고전미술이 아닌 호텔 루프톱의 코카인을 즐겼을까. 이반 부모의 무례하고 무책임한 언행 속에는 어떤 교양이 있을까. <아노라>는 결혼 제도를 통한 계급 상승을 꿈꾸는 성 노동자에게 헛된 희망을 품지 말라고 저지하는 영화가 아니다. 만일 그게 목적이라면 아노라는 단편적으로 자기 주제도 모르는 아둔한 인물에 그치고 만다. 그보다 <아노라>는 생애 없던 것이 갑자기 주어졌을 때, 이것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 어떻게 탈이 나는지 약자 위치에서 관찰한 작품에 가깝다. 집 앞을 지나가는 기차 때문에 소음 가득한 작은 방에서 지내고, 남성들과 남는 시간에 뭘 해야 할지 몰라 성적 유희만 제안해온 아노라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경험하며 성 노동자로서 삶의 결핍을 발견한다. 아노라를 악인으로 몰아가는 모든 인물 사이에서 유일하게 그의 안부를 묻고 달래주는 이고르가 등장한 것도 진짜 아노라의 삶에 무엇이 필요한지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반과 이고르. 둘을 올려둔 천칭은 아노라의 슬픔 속에서 암묵적이지만 확고한 답쪽으로 기운다. ‘빛.’ 우크라이나 언어로 ‘아노라’가 지닌 뜻이다. 아노라는 어쩌면 계급 상승을 뜻하는 신데렐라보다 사회적 사각지대에 내몰린 성냥팔이 소녀에 가까운지 모르겠다. 자신을 빼고 모두가 따뜻한 저녁을 보낼 때, 겨울바람을 피하기 위해 홀로 성냥을 하나씩 켜던 아이. 작은 성냥 불빛 사이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몽환에 젖어 있다가 빛이 꺼지면 차가운 현실만이 남는다. 아노라는 다시 스트립 클럽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다른 삶을 선택할까. 엔딩 장면의 멈추지 않는 자동차 와이퍼 소리 사이로 자연스럽게 영화 바깥을 상상하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마지막 성냥불은 켜질까. 그것은 아노라(빛)가 결정할 일이다.

[LIST] 승희가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정년이> 진부한 답변일지는 모르겠지만 꼭 넣어야겠다. 요즘 정말 <정년이> 보는 낙으로 산다. 한주의 가장 큰 행복이다. 배우로서 나의 모습이 조금씩 대중에게 각인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점차 나라는 사람이 함께 만들어지고 있는 것만 같다. 유화 색칠하기 벌써 6년째 즐기고 있는 취미다. 밑그림 위로 정해진 색과 순서에 따라 물감을 칠하면 된다. 정신을 차려보면 밤을 새워가며 일곱, 여덟 시간씩 색칠하고 있더라. 인생에는 계획대로 안 풀리는 것들이 참 많다. 그런데 이건 남이 정해준 순서에 따라만 가도 너무 멋진 그림이 나온다. 정성껏 완성한 그림을 팬들에게 선물하는 것도 너무 행복하고! 가족 최근 언니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동거인과의 생활은 온전한 자취와는 또 다른 기쁨을 준다. 밤마다 언니와 맥주 한잔하는 소소한 시간이 정말 행복하다. <스파이더맨> 시리즈 요즘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푹 빠져 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대사가 특히 가슴을 울렸다. 언젠가는 히어로물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하지만 <스파이더맨> 1편의 메리 제인 왓슨같이 그저 도움을 받기만 하는 인물은 별로다. 유튜브 채널<애니멀봐> 모든 동물을 사랑한다. 특히 SBS 의 유튜브 채널인 <애니멀봐>의 모든 영상을 빠짐없이 챙겨본다. 나이가 들면 야생동물보호구역에 있는 동물들을 관리하는 사람이 되어 노후를 보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 있다.

[비평] 이야기의 삶과 죽음, <룸 넥스트 도어>

<룸 넥스트 도어>를 페드로 알모도바르 영화 세계의 예외 목록에 둔다면, 그 이유는 단지 그가 만든 최초의 영어 장편영화라는 사실에 국한되지 않는다. 비교적 죽음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편이긴 하나 위태로운 현재의 몸은 최근 알모도바르 영화의 본질에 가까우니, 달라진 건 플래시백의 지위다. 알모도바르 영화에서 현재의 몸은 마비되거나 죽음에 가까워지더라도 비밀을 담은 회상 시퀀스의 강렬한 작용을 통해 언제라도 욕망하는 육체로 소생할 수 있었다. 플래시백은 현재 이미지와 대등하거나 종종 역전된 형태로 현재를 잠식하며 이를 가능케 했다. 반면 <룸 넥스트 도어>의 플래시백은 이야기 속 이야기라는 본래의 위치에 고정된다. 10대 연인의 육체적 사랑도, 전쟁 현장에서 은밀하게 암시되는 관계도 죽어가는 현재의 몸 앞에선 무력하다. 그렇다면 욕망하는 육체의 현현으로서의 플래시백이 사그라진 자리에 무엇이 있는가. 에두를 필요 없이, 거기에는 말이나 대사 차원을 넘어선 대화가 있다. 틸다 스윈턴과 줄리앤 무어가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은 ‘죽음’을 둘러싼 대화 주제를 초과한다. 배우의 존재로 영화의 뼈대를 삼고, 두 사람이 나누는 끝없는 대화로 살을 붙여 육체를 구조하는 것이 알모도바르가 스스로에게 부가한 새로운 과제다. 죽음과 이야기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어쩌면 하나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잉그리드(줄리앤 무어)는 출간 기념 사인회에 나타난 친구 스텔라로부터 오랫동안 소식이 끊긴 마사(틸다 스윈턴)의 암 투병 소식을 전해 듣는다. 입원 중인 마사는 병실에 입원한 환자로서의 모든 표식을 거부한 채, 붉은 티셔츠에 진한 청색 바지의 평상복 차림으로 1인실 침대에 누워 있다. 그의 몸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의료진의 면담이나 엑스레이 촬영 사진과 같은 사실적 묘사의 보조 없이 오직 마사의 말을 통해서만 전해진다. 면역 치료 도중 다른 장기로 암이 전이됐음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전한 이도 마사 자신이다. 마사가 곧 죽음을 맞을 거라는 이야기가 자신의 말로만 전해진다는 사실이 진위를 의심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그 순간 보여준 틸다 스윈턴의 연기는 의심할 나위 없이 진실되다. 그런데도 말을 통해 전해지는 대화의 구조가 필연적으로 믿음의 문제와 결부됨은 중요하다. 화자의 진실은 청자의 믿음을 요구하며, 때로는 청자의 믿음이 화자의 진실을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는 마사만큼 듣는 잉그리드 역시 이야기에 개입하고 관여한다. 감독의 전작 <페인 앤 글로리>에서 신체 투과 영상이나 몸의 표면에 남은 긴 흉터 자국을 훑으며 신체를 둘러싼 고통이 비스듬히 가시화된 것과는 달리, <룸 넥스트 도어>에서 죽음은 이야기 속에서만 머문다. 그 결과 눈에 보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없다는 대상의 특성이 강조된다. 대신 색을 중심으로 한 미술적 효과는 시각과 접촉의 감각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강렬한 원색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 세계에서 사라지지 않으리라. (이렇게 쓰고 보니 알모도바르의 흑백영화가 무척 궁금하다.) 색채는 단지 감독의 영화 세계의 영속성을 표시하거나 무채색으로 인식되곤 하는 죽음을 전환적으로 사고하려는 목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강렬한 원색의 감각은 무엇보다 배우들의 몸을 휘감은 의상을 통해 체감된다. 의상은 캐릭터의 개성이나 계급 또는 직업의 특성, 시대적인 고증을 위한 도구가 아닌 알모도바르 영화 세계의 주된 구성물이다. 여기에 더해 <룸 넥스트 도어>의 의복은 유난히 접촉을 제한하는 영화에서 몸 가까이에 놓인 접촉물로서 기능한다. 영화가 접촉을 감각하게 만드는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인물들이 가까이 있지만, 접촉하지 않을 때다. 이를테면 잉그리드가 체육관 코치에게 친구의 사정을 털어놓았을 때 이야기를 들은 코치는 안아주고 싶지만, 규정상 회원과 접촉이 금지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의 말은 다정한 말로서의 접촉을 보여준다. 조금 더 직접적인 접촉은 마사와 잉그리드 사이에서 벌어진다. 어느 날 아침 잉그리드는 등을 돌린 채 옆으로 누운 마사의 옆에 같은 자세로 눕는다. 카메라를 마주한 두 얼굴이 겹친 모양새는 두 사람의 평행한 관계를 드러내는 동시에 이야기 아래에 잠복한 비밀을 암시하며, 둘 사이에 행해지는 접촉을 표시한다. 마사와 잉그리드는 과거에 친밀한 사이였으나 최근에는 연락이 뜸해진, 적당히 가깝고도 먼 사이라고 규정된다. 애인을 순차적으로 공유한 적이 있다는 특이점 외에는 평범한 친구 사이로 묘사되지만, 대화하지 않을 때의 두 사람을 보여주는 이미지는 과잉으로 느껴질 정도로 대담하다. 잉그리드가 마사의 병실을 처음 방문했을 때,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던 마사는 노크 소리에 번쩍 눈뜬다. 부감으로 클로즈업된 마사의 어딘가 확신과 기대에 찬 표정은 마치 잉그리드의 도착을 미리 알고 기다린 것 같다. 그간 틸다 스윈턴이 맡아온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캐릭터 중 마사는 현실적인 캐릭터에 속할 테지만, 순간순간 드러나는 비인간적 아우라가 여전히 작동한다. 가장 현실적이고도 가장 불가해한 것으로서의 죽음이 배우의 육신을 통해 현현한다. 기다림의 위치 교환 죽음을 실행할 동안 옆방에 있어 달라고 요청한 마사의 입장에서 ‘옆방에 있음’은 두려운 순간에 용기를 주는 존재가 가까이에 있음을 의미한다. 반면 잉그리드는 마사의 죽음이 지연될수록 그의 죽음을 기다리는 입장에 놓인다. 원래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입장에 놓인 건 마사였기에, 죽음을 사이에 두고 마사와 잉그리드의 입장이 역전되었음을 의미한다. 마사가 끔찍하게 여긴 건 언제가 될지 모를 죽음에의 무력한 기다림이었을지도 모른다. 마사가 죽기로 결심하면서 기다림의 대상은 이제 실행의 대상으로 뒤바뀐다. 남은 기다림의 몫은 잉그리드에게로 외주화된다. 잉그리드는 기다림의 연루자만이 아니라, 실행의 연루자이기도 하다. 마사가 안락사를 실행하는 데 가장 중요한 물건을 집에 두고 오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마사가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린 약물을 잉그리드가 먼저 손에 넣으면서 그 역시 적극적인 연루자임을 확인시킨다. 마사가 죽음의 실행을 표시하는 규칙을 정하면서 잉그리드의 기다림 역시 하나의 구체적인 행위에 가까워진다. 열린 문은 실행 이전 곧 생존이며, 닫힌 문은 실행 이후 즉 죽음이기에 아랫방에 머물게 된 잉그리드는 매일 아침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올라 고개를 들어 문의 개폐 여부를 확인한다. 계단을 오르다 멈추는 동작과 위를 쳐다보는 얼굴, 열리고 닫힌 빨간 문의 존재만으로 서스펜스가 유발된다. 어느 날 닫힌 문을 본 잉그리드는 마사의 죽음을 예감하며, 구토와 호흡곤란을 동반한 패닉상태에 빠진다. 그런 잉그리드 뒤로 마사의 모습이 통유리 창문 안쪽에서 유령처럼 나타난다. 그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표시하는 동시에 죽은 마사의 영혼이 자신의 죽음 이후를 보는 것 같다. 문이 닫힌 이유가 열어둔 창에서 분 바람 때문이라는 설명이 덧붙지만, 실은 잉그리드를 위한 예행연습, 더 정확하게는 죽음 이후를 위한 마사 자신의 예행연습에 가까워 보인다. 죽음을 기다리는 주체가 마사에게서 잉그리드에게로 옮겨갔다 해도 궁극적인 기다림은 마사에게 속한다. 다만 이제 그가 기다리는 대상은 죽음이 아니라, 마사가 죽은 자신을 발견할 순간이다. 마사가 잉그리드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는 마사의 기다림을 표시한다. 그의 방 테이블에 놓인 편지는 마사의 죽은 육체보다 먼저 잉그리드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도착한다. 잉그리드에게 보내는 편지 옆에는 잉그리드의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해 경찰에 남긴 편지가 나란히 놓여 있다. 한쪽에는 진실이, 다른 한쪽에는 거짓이 담겼다. 아니, 두개의 편지는 두개의 이야기일 뿐이다. 마사의 이야기는 잉그리드를 통해 완수될 시간을 기다리며 거기 놓여 있다. 잉그리드는 이야기할 기회를 두번 얻는다. 경찰서 취조실에서 잉그리드는 이야기하기에 실패한다. 조사한 시나리오에 따라 이미 결말을 정해놓은 상대는 마사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었다는 잉그리드의 말을 좀처럼 믿으려 들지 않는다. 취조실에서의 상황은 이야기하기에 있어 청자의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방증한다. 이야기의 진위를 판정하려들 때, 이야기는 죽는다. 반면 마사와 똑같은 얼굴을 한 채 나타난 미셸은 흡사 현장 답사를 위해 파견된 형사처럼 긴장을 불러오지만, 결국 잉그리드의 이야기에 마음을 연다.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된 새로운 청자를 통해 이야기는 다시 작동할 가능성을 드러낸다. 눈이 내린다 몸에서 떨어져 나온 영혼과도 같은 편지(이야기)가 생을 이어갈 살아 있는 육체를 취할 때, 죽은 몸은 이야기로부터 떨어져 나와 이미지 속으로 숨는다. 노란색 바지 정장을 차려입고 짙은 화장을 한 마사가 연두색 소파형 테라스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누워 있다. 부감으로 잡은 바스트숏 안에서 눈을 감은 채 정지한 마사는 배경이 된 의자와 분리된 채 페이드아웃으로 천천히 사라진다. 마사는 죽은 것이 아니라 의자의 짙은 연두색 패브릭 속으로 녹아들어 이미지의 일부가 된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이 마사의 죽음이 전면화된 유일한 순간은 아니다. 서사의 생명력은 결말로서의 죽음을 지연하는 데 있다면, 이미지의 생명력은 죽음을 반복하는 데 있다. 마사가 잉그리드에게 전이 사실을 알리는 시퀀스의 마지막은 마사가 약물을 투여받는 상황으로 끝난다. 이때 부감으로 잡힌 마사의 얼굴은 화이트아웃으로 사라진다. 마치 마사의 얼굴 위로 하얀 천이 덮이는 순간을 상상케 하는, 죽음을 예고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마사는 잠에서 깨어나 제임스 조이스 단편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시키는 분홍색 눈이 내리는 풍경을 마주한다. 내리는 눈을 보며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읊는 시퀀스는 마사의 얼굴에서 흑백으로 프리즈프레임되었다가 암전된다. 정지한 얼굴은 영정 사진을 연상시키며, 앞서 지연된 죽음을 다시 작동시킨다. 그러나 마사는 죽지 않고 살아난다. 다만 이 장면 이후 마사의 모습은 마치 죽음에서 새로 태어나기라도 한 듯 낯선 모습이다. 검은 코트 차림에 빨간색 립스틱을 바른 마사와 함께 영화의 장르는 범죄 누아르로 이동한다. 죽음이 도착하기 전에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마사의 고백이 시한부판정을 받은 이의 무력한 떠밀림이 아니라, 은밀하고 짜릿한 범죄 모의라고 착각할 정도다. 미셸 역시 장르적 서스펜스를 가동하는 인물이다. 마사와 잉그리드의 대화 속 이야기로만 존재했던 미셸은 마사가 사라진 뒤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틸다 스윈턴이 1인2역을 맡은 미셸은 당연하게도 마사와 동일한 사람처럼 보인다. 미셸이 플래시백에 등장하지 않은 이유는 그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의 놀라움을 위해서일 것이다. 미셸을 통해 마사는 비로소 부활한 것 같다. 하지만 서두에 밝혔듯 페드로 알모도바르 영화 속 플래시백의 기능이 전과 달리 축소되었음을 염두에 둘 때, 단지 극적 효과를 위해서라고 단언할 수 없다. 미셸뿐 아니라 잉그리드와 데이미언 역시 플래시백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이 글의 도입부에서 나는 감독의 영화 세계에서 플래시백이 상대적으로 약화한 자리에, 두 주인공이 나누는 현재의 대화가 들어섰음을 밝힌 바 있다. 대화는 결국 각자의 자리에 나란히 누워,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마지막 이미지에 도착한다. 이 불가해한 이미지를 아직 재현되지 않은 미래를 초대하는 이미지로서 플래시포워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리는 눈은 일종의 하얀 장막으로, 무언가를 투사할 수 있는 스크린이기도 하다. 알모도바르는 흩날리는 스크린 위에 몇 가지 색을 바꾸어 비추며 신호를 보낸다. 마사와 잉그리드가 병실에서 대화를 나눌 때 불현듯 내린 눈은 세계가 이들의 이야기에 조응함을 드러낸다. 고층 빌딩이 즐비한 도시의 풍경 위에도, 곧게 뻗은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고즈넉한 교외의 숲 위로도 눈이 내린다. ‘죽은 자와 산 자 위로 내리는 눈’을 노래하는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소설 마지막 구절은 마사에게서 잉그리드에게로, 잉그리드에게서 다시 미셸에게로 옮겨지며 구전된다. 소설에서 따왔으나 시처럼 변주되어 읊어지는 문장들은 완전한 이야기를 상징하기보다는 아직 이야기되지 못한 미래의 씨앗을 품고 있다. 흩날리는 세계의 눈은 이야기의 부활을 꿈꾸며, 한 인물 속에서 살고 또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