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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드라마를 계속한다면 다음은 무조건’, <조명가게> 강풀 작가

강풀은 어느덧 ‘드라마작가’라는 수식어를 뒤에 함께 붙여도 자연스러운 이름이 됐다. 그는 디즈니+ <무빙>에 이어 <조명가게>의 각본을 직접 썼다. 조명을 파는 가게를 통해 산 자와 망자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독특한 세계관을 선보인 이 작품은 2011년 웹툰 연재 당시에도 과감한 구성으로 주목받았다. 강풀 작가는 글을 쓰는 동시에 머릿속에 어떤 장면을 떠올리며 콘티를 짜는 식으로 작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름 롤이 쭉 올라가는 것처럼 웹툰도 연출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웹툰 자체가 가장 영화적인 장르라고 생각한다.” 영상과 웹툰이 꽤 닮았다고 믿으며 같은 이야기를 웹툰과 드라마로 모두 구현하는 데 성공한 강풀 작가를 만났다. - 원작 연재 당시 “이번 작품은 진행 속도가 다소 답답하게 느껴진다”라는 식의 댓글이 많이 달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 후반부에 퍼즐이 맞춰지는 구성이었다. 시리즈로 각색하기 수월한 구성은 아닌데 대본을 쓸 때 어떤 고민이 있었나. 이미 갔다 온 길이지 않나. 만화를 연재할 때도 늘어진다는 반응을 당연히 예상했었다. 원작은 비밀이 풀린 이후 이야기가 다소 힘이 빠지는 경향이 있었다. 호러 드라마는 미지의 존재의 정체가 드러난 순간부터 재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그 이후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드라마는 웹툰과 구성이 거의 동일하지만 반전을 앞당겨서 4회 마지막에 모두 공개했다. 후반부의 울림을 느끼기 위해서는 드라마 앞부분을 시청자들이 잘 따라와야 하는데 그 부분이 관건인 듯하다. 원작과 달라야 한다는 강박은 없었지만 원작보다 더 깊게 들어가고 싶었다. 원작과 후반부 전개가 좀 다르다. 나로서는 가장 마음에 드는 결말을 냈다. - 13년 전 웹툰 연재 당시부터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중요하게 등장한다. 이 곡을 고른 이유는. 골목길을 걸으면서 발박자에 맞출 수 있는 리듬이면서 그렇게 길지 않은 노래를 생각했다. <바람의 불어오는 곳>은 생각보다 템포가 빠른 곡인데 김광석씨의 어딘가 쓸쓸하면서 힘 있는 목소리가 <조명가게>와 잘 어울렸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라는 가사도 극 중 상황과 잘 맞아떨어진다. - 웹툰 <조명가게>는 이제 막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시작했을 때 연재됐다. 스마트폰 스크롤을 내리면서 보는 형식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만화와 드라마 대본,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표현해보니 어떤 차이가 있던가. 만화는 컷과 컷 사이의 여백을 독자들이 채우지만 영상은 되도록 직접 보여줘야 한다. 드라마 대본을 쓸 때 만화에서는 짐작만 했던 인물들의 관계를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내가 극본을 쓸 때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바를 감독이 영상으로 풀어내는 것은 다른 영역이다. 옛날 버릇을 버리지 못해 글을 그림 그리듯 쓰는 편이다. <무빙> 때는 처음이다 보니 나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많은 지문과 세밀한 묘사를 사용했다. <조명가게>를 쓸 땐 감독님과 소통을 많이 했다. 덕분에 묘사를 덜고 감독님에게 많이 맡겼다. - 점프 스케어 등의 연출이 등장하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김희원 감독님과 하지 않았으면 하는 몇 가지 연출을 사전에 합의했다. 점프 스케어 그리고 귀신 같은 존재를 너무 혐오스럽게 묘사하지 않는 것. 어떻게 보면 호러 드라마의 가장 큰 무기 두개를 버리고 가는 것이다. 작가 입장에서 굉장히 어려운 요청을 한 거라 아마 김희원 감독님이 무척 힘드셨을 거다. 그럼에도 <조명가게>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위해 다른 공포 장르와 달라야 하는 지점이라 생각해서 부탁드렸다. 감독님에게 참 죄송하고 감사하다. - ‘공포’스러운 장면을 상상할 때 어떤 과정을 거치나. 무엇이 무섭다는 감정을 가져오는 것일까. 잘 모르는 대상을 마주할 때 우리는 무섭다고 느낀다. 공포는 항상 미지에서 온다. 그래서 정 체가 밝혀지고 나면 덜 무서운 것이다. 사실 나는 겁이 별로 없는 편이다. 그럼에도 호러 장르에 끌리는 이유는 귀신만큼 작가 입장에서 ‘뻥’ 치기 좋은 소재가 없기 때문이다. 창작은 결국 가장 그럴듯한 ‘뻥’을 치는 작업이다. 아직 제대로 밝혀진 게 없기 때문에 상상력을 발휘하기에 정말 좋다. 창작은 항상 개연성 문제가 따라붙기 마련인데 호러 장르는 개연성도 상관이 없어진다. 핍진성, 즉 그 안에서 가능한지를 따지는 것만 중요하다. 그래서 예전에 호러 장르 만화를 자주 그렸다. - 베테랑 배우지만 신인감독과 고인물 만화 작가지만 신인 드라마작가가 만났다. 김희원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조명가게>는 미처 내가 웹툰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있다는 생각에 다시 하게 된 작품이다. 그리고 내가 극본 작가 생활을 계속한다면 <무빙> 다음은 명백히 <조명가게>라고 생각했다. <조명가게>는 많은 캐릭터들을 등장시키고 이들의 사연을 명확히 이해시키고 배우의 최선의 연기를 끌어내야 했다. 그래서 오랫동안 배우 생활을 한 김희원 감독이 필요했다. 아침 일찍 작업실(강동구)에 출근하면 종로에 사는 김희원 감독이 매일 찾아와서 정말 많은 소통을 했다. 신 바이 신으로 논의하며 서로의 주파수를 맞춰나갔다. 감독님의 끊임없는 질문 덕분에 내가 놓쳤던 부분을 잡아내기도 했다. 그야말로 작품을 같이 만들어간 기쁨이 있었다. 김희원 감독은 <조명가게>에 모든 것을 건 사람 같았다. 사적인 대화를 하더라도 다시 <조명가게> 이야기로 돌아갔다. 오히려 내가 조금 릴렉스하셔도 될 것 같다고 얘기할 정도로 지난 1년을 <조명가게>에 파묻혀 살았다. - 웹툰 독자들의 댓글과 드라마 시청자들의 반응을 기다리는 것은 어떻게 다르던가. 웹툰은 업데이트 즉시 댓글이 달린다. 그래서 웹툰 작가들이 더 발전한 것일 수도 있다. 반면 드라마는 수능을 친 후 채점도 못하는 성적표를 기다리는 것 같다. 공개 전 작품 관계자들이 하는 이야기는 믿지 못하겠다. 면전에서는 다들 좋다고 말하지만 실제 대중 반응은 어떨지 모르지 않나. 원작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조명가게>를 본다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 - <무빙> 시즌2 제작 소식이 전해졌다. <브릿지>의 이야기를 담는 것인가. OTT가 생기면서 해피 엔딩, 새드 엔딩, 열린 결말이 아닌 제4의 결말이 가능해졌다. 다음 시즌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예고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마무리를 싫어하기 때문에 <무빙>의 결말을 완전히 닫아놓았다. 하지만 후속편을 위한 이스터에그를 분명히 심어둔 부분도 있다. <무빙> 시즌2는 아직 구상 단계에 있다. 요즘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무빙> 시즌2에 대한 생각은 일단 접어두었다. <조명가게>가 마지막 회까지 공개되고 난 뒤에 작업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지금은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다.

[인터뷰] 난초의 목소리를 듣기 위하여, <(환영합니다) 난초의 행성입니다> 박지윤 감독

홍콩에서의 박사과정 졸업 시험을 앞두고 박지윤 감독은 오랜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박사과정 연구의 일환으로 완성한 <(환영합니다) 난초의 행성입니다>는 홍콩, 런던에서 소개된 적은 있지만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건 이번 서울독립영화제가 처음이다. 영화는 식물 중심의 관점에서 난초의 삶, 난초와 다른 종간의 관계를 그린다. “본래 식물을 좋아하는 편인데 홍콩에 살면서 난초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홍콩에서는 난초가 번영과 부귀의 상징이기 때문에 새해 혹은 가게 개업 등을 축하할 때 선물로 많이 주고받는다. 그런데 꽃이 시든 뒤 골목에 버려진 난초들을 정말 많이 봤다. 꽃이 졌다고 식물이 죽은 게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작품을 통해 식물을 동등한 주체로 다뤄보고 싶었다. 지구는 70~80%가 식물로 구성됐고 인간종은 0.01%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를 토대로 식물이 인간을 자기 행성으로 초대해준 것이란 아이디어가 떠올라 <(환영합니다) 난초의 행성입니다>라고 제목을 지었다.” 작품을 위해 박지윤 감독은 촬영과 난초에 관한 생물학 공부를 병행했다. 야생 난초 보존 연구팀에서 1년 반 동안 난초 보존 과학을 배웠고 시장, 식물원 등을 오가며 수많은 종류의 야생 난초들을 촬영했다. 난초가 발화해 꽃이 지기까지 수개월, 혹은 수년이 걸리기 때문에 집중적인 촬영 기간만 2년 반이 소요됐다. “식물을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제작하고 싶었는데 당연하게도 실현 불가능한 방법이다. 그래서 연구 대상을 직접 그리고 사진, 비디오 등으로 촬영하는 민족지학의 연구 방식을, 대상을 동식물로 넓히는 식으로 차용해 인터뷰를 구현했다.” 식물의 생명 활동을 전기 자극으로 입력해 출력하는 기계를 활용해 난초의 목소리를 표현하기도 했다. “음악감독과 최대한 정제하지 않고 소리를 추출하고자 했고 그렇게 신시사이저를 활용했다.” <(환영합니다) 난초의 행성입니다>는 두번의 연구 과정 전시를 거치며 완성된 네개의 시퀀스를 합쳐 완성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건 만화경 장면이다. 박사과정 논문을 위해 학술적으로 정리하는 게 어려워서 영상작업은 상대적으로 즐겁게 진행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을 졸업한 뒤 박지윤 감독은 미디어아트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 홍콩에서 창의매체 전공으로 석사를 시작했다. 박사과정 중 오랜 기간 난초를 연구하면서 “인류의 역사가 너무 오만하고, 인간이 지구에 해서는 안될 짓을 하고 있”음을 느꼈으며, 한편으로는 “생존이 쉽지 않은 난초가 오랜 기간 생명력을 이어온 것을 보며 경외감이 생긴다”고 박지윤 감독은 말한다. 이후로도 난초 혹은 다른 식물을 주제로 작업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그의 현재 목표다. “유럽에서도 엄청난 자본과 인력을 갈아넣어 온실에서 난초를 기르고 있는데 아주 자본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인 방식이라 생각한다. 가능하다면 온실의 난초에 접근해 촬영을 해보려 생각 중이다.” 박지윤 감독은 “영화 한편을 봤다고 관점이 바뀔 거라 기대하진 않지만, <(환영합니다) 난초의 행성입니다>를 본 관객들이 집의 화분을 바라보거나 꽃을 살 때 좀더 고민해볼 기회가 생긴다면 기쁘겠다”는 작은 바람도 덧붙였다.

오늘의 ‘독립영화’를 고민하다 - 김진유 감독, 장우진 감독,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 정지혜 평론가 4인 대담 ❶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 50주년을 기념하며 각자의 전선에서 영화를 만들고 주시해온 4인의 창작자, 비평가를 초대해 오늘의 ‘독립영화’에 대해 물었다. 영화제 예산 삭감을 위시한 지원제도의 축소와 공백, 시장의 한파에 위축된 창작 진영의 분위기에 공감하고 자성적 고민을 더하는 한편, 이들은 공동의 신기함을 나눴다. ‘이런 상황에서도 어떻게 새로운 영화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것일까?’ 산재한 위기를 직면하면서도 바람은 한데로 모아졌다. 우리를 찌르고 당황하게 만드는 이상한 영화. 작지만 막강한 힘을 지는 독립영화를 계속 만들고, 쓰고, 보고 싶다고. 백재호 <대관람차> <시민 노무현> <붉은 장미의 추억> 감독, <역할들> <최선의 삶> 프로듀서. 2024년부터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장우진 <새출발> <춘천, 춘천> <겨울밤에> 감독. 춘천 지역을 기반으로 영화사 봄내필름을 운영 중이다. 김진유 <나는보리> 감독. 현재 두 번째 장편영화 신작 후반작업 중이다. 정동진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정지혜 영화평론가. 서울독립영화제 예심위원. 비평 워크숍 플로모션을 운영 중이다. - 씨네21 - 서독제 프로그래머, 예심 심사 등에 참여해온 정지혜 평론가가 올해 작품들을 살피고 느낀 경향이나 질적, 양적 변화를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해보면 어떨까. 정지혜 일단 작품 편수는 매년 역대 최다를 경신하고 있다. 제작 여건이나 배급 상황, 시장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는데 어째서 이렇게 많은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과거보다 쉬워졌다기보다는 핸드폰, 유튜브, 다양해진 카메라 장비 등 여러 채널과 플랫폼으로 인해 더 익숙한 매체가 된 것 같다. 만듦새 측면에서는 굉장히 잘 만들어진 작품들이 많지만 새삼 ‘웰메이드’의 의미가 무엇인지 질문해보게 된다. ‘이거 뭐지?’ 하는 주의를 끄는 작품, 평자로서 ‘이것만은 지키고 싶다’고 하는 날 선 영화는 올해 많이 만나지 못한 것 같기도 해서 그 점이 고민스럽다. - 씨네21 - 서독제 상영작 외에 최근 한국영화를 두루 접하며 감독님들이 개인적으로 느낀 바는 어떤지도 궁금하다. 장우진 <괴인> 같은 영화가 특별했는데, 이정홍 감독님 같은 분이 자주 작품을 못 만드는 환경이니 그런 거 아닐까? 김진유 말씀하신 장우진 감독님도 본인만의 색깔로 영화 만드시는 분 아닌가. 최근에 신작을 작업한 입장에서 이야기해보자면, 내 경우는 관객과의 접점을 고민하는 형태로 작업을 하다보니 어느샌가 나의 어떤 부분이 무너져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더라. 많은 연출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타협하는 부분들에 대해 고민하곤 할 것이다. 스스로 작가의식을 더 고집해서 지켜나갈 필요가 있는 것 아닌지 질문하는 요즘이다. 그만큼 독립영화를 만드는 환경 안에서 실험적이거나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않고 있다. 장우진 시나리오를 통해 영화진흥위원회 제작지원을 받고자하면 다들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나. 여러 사람에게 고루 지지를 받으려면 작품이 쉽게 설명될 수 있는 형식이어야 하고, 사실 그건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이야기한 것처럼 현대영화의 어법이 아니다. 동기나 감정이 납득되게 스토리텔링하지 않고 그냥 그 상태를 보여줄 수도 있는 것이 영화인데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쓰면 심사 과정에서 신뢰를 얻지 못한다. 나는 딱 한번 전주시네마프로젝트(JCP) 지원을 받은 적 있지만 그때도 “시나리오대로 안 찍겠다”고 선언했고 그걸 받아주셨던 경우다. 그외엔 보증금 빼서 작업하거나…. (웃음) 그럼 이게 시스템에서 벗어나 용기 있게 쓰자고 버티면 되는 문제냐, 말이 쉽지 그렇지가 않다. 고립되는 시간을 겪다보면 내 작품을 세상 사람들이 안 좋아해줄 것 같고 영화제에서도 안 받아줄 것만 같은 불안감이 커지기 마련이다. 김진유 이야기 중심의 영화들에 그 미덕과 효용이 없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창작자의 색이 보이는 영화들 대신 이야기만 앞서는 영화들이 훨씬 더 많아졌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장우진 그게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다. 우울한 건 지원을 받기 위해 그런 방향을 전략적으로 택하게 되고, 그렇지 않은 감독은 아예 시도를 하기 어렵게 되는 상황이다. 백재호 영화과, 영화교육기관도 비슷해 보인다. 워크숍 과정, 학교 졸업 작품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교수님의 인정을 받거나 동기들에게 지지를 얻으려면 결국 이해받을 만한 작품을 써야 한다. 내 세대가 데뷔하고 첫 작품을 만들 때만 해도 지금처럼 제작비가 높지 않았고 서로 품앗이로 작업을 할 수 있었으니 어떻게든 이런저런 시도가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인력 및 인건비 부분에서도 한계를 마주하기 쉬운 상황이다보니 제도적으로 승인받고 최소한의 ‘플랜’이 짜여져 있는 영화들 위주로 우선 만들어지게 된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미 영화가 완성되어 있는 경우라고 할까. 정지혜 올해 서독제 포럼 <창작자의 작업실 2. 비타협영화집단 곡사의 '전위' 시대>에서 김곡 감독이 한 말이 생각난다. 아직도 자신들이 전위적인 창작자로 불리는 것이 민망하다고 하면서, 과거에는 오답을 내는 분위기가 허용된 덕분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요즘은 정답을 내려는 분위기가 강하지만 과거엔 누가 더 미쳤는지, 얼마나 더 과격한 오답을 내는지 오히려 경쟁하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제작지원 단계든 영화제에서의 선정이든 시스템에서의 탈락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이건 창작자 뿐 아니라 심사위원과 평자들에게도 공유되는 것이다. 사라진 영화제, 정답 찾는 지원제도, 위기의 양성소 - 씨네21 - 근본적으로 독립영화는 지원과 육성의 대상일까. 그렇다면 지원 제도의 문턱과 닿아 있는 정형화된 내러티브 스타일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영화학교는 오랫동안 있어왔지만 언제부턴가 학교 졸업 작품들의 일률적인 경향에 대해서도 말이 나온다. 어디서부터 짚어볼 수 있을까. 김진유 독립영화의 육성과 지원 자체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 학교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달려가서 배울 수 있는 공간, 영화에 관한 철학을 나누는 네트워크, 제작지원 제출이라는 1차 관문이 열린다는 점에서 그렇다. 출발점에 선 막막한 개인이 한 단계, 한 단계 넘어가면서 영화를 완성할 수 있게 된다. 다만 나는 과거에 한국예술종합학교나 한국영화아카데미를 굉장히 가고 싶어 했던 사람이라 지난 10년간 주요 학교들의 영화를 챙겨봐왔는데, 점점 후퇴하고 있다는 인상은 지우기 힘들다. 공공연히 떠도는 소문도 있지 않나. 선생님들 말을 듣지 않은 작품들이 결국은 잘 풀렸다고. 백재호 경쟁하려는 사람들은 늘어났는데 문이 좁아지니까 정답을 맞히려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를테면 기존에 인정받은 영화들을 레퍼런스 삼아 만들기 시작하니까 1, 2년 전에 만들어진 성공 사례를 답습하는 구조의 반복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한 10년 사이의 흐름이 그래 보인다. 장우진 출신 학교라 이렇게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한때 단국대학교 영화과 대학원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들은 조금 달랐다. 객관적으로 그렇게 말해보고 싶다. 그런데 금방 없어지지 않았나. 학교는 사실 지도교수 개인의 역량에 어느 정도 기댈 수밖에 없다. 일본 도쿄대, 릿쿄대 영화처럼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새삼 궁금하다. 도대체 <괴인>은 어떻게 만든 거지? 만약 지원받고 찍을 요량이었으면 찍지 못했을 것이다. 김진유 덧붙이자면 최근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시나리오 수업 과정에서 영화 시나리오가 아니라 드라마 수업을 한다고 알고 있다. 쇼러너적 접근을 한다고 들었다.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어 작가 교육도 바뀔 수밖에 없다지만 영화 학교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철학은 놓치지 말아야 되지 않나 생각이 든다.. 백재호 한국영화아카데미가 상업영화를 잘 만들 수 있는 이들을 길러내는 양성소라 한다면, 그리고 아카데미 졸업 작품이 기본적으로 만듦새가 좋고 개봉까지 잘 이어지는 편이라고 본다면, 대중이 생각하는 독립영화의 형태가 대강 그와 비슷할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영화를 한번 보고 싶어서 왔다가 상업영화와 비슷한데 예산이 적은 상업영화를 보게 되는 셈이다. 그 지점에서 똑같은 가격이면 제대로 된 상업영화를 보고 말겠다는 분위기가 생겨나기 쉽다. 엄밀히 말해 애초에 지원제도를 포기하고서 다양한 시도를 하는 창작자들이 오히려 더 많아졌다고 느낀다. 다양한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데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이런 작품들이 가시화되지 않아서 독립영화가 저예산 상업영화처럼 인식이 바뀌고 있는 건 아닌지 더 고민해보게 되는 것 같다. - 씨네21 – 인디포럼과 인디다큐페스티발이 품을 수 있었던 실험영화들,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더 빛났던 장르영화들이 있었다. 창작자들은 사라진 이 플랫폼들의 필요성을 지금 어떻게 실감하는지 궁금하다. 서독제가 이들 영화를 모두 품어야 하는 상황에서의 딜레마도 있을 것이다. 실질적으로는 심사 과정에서 장르별 안배도 고려하는지 궁금한데. 정지혜 서독제가 독립영화 신 안에서 어느 정도 규모감 있는 영화제로 자리 잡아 비교적 대중적인 취향까지 포섭하는 영화제였다면 인디포럼, 인디다큐페스티발은 새로운 출구이자 대안적 역할을 수행했다. 근본적으로 이들 영화제가 문을 닫거나 잠정적으로 활동할 수 없는 상황이 왜 벌어졌냐를 생각해보게 되는데, 결국 지난 10년간 독립영화 신 안에서 누적된 문제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조직의 문제, 사람의 문제, 제도와 예산의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약한 꼬리부터 터져나가는 과정인 셈이니까. 백재호 지금은 확실히 서독제 한곳에 많은 부담을 지우고 있는 것 같다. 이것도 해야 되고 저것도 해야 되다 보니 좀 힘든 면도 있을 테고 그 와중에 프리미어도 지켜야 하고… 정지혜 혼자서 이야기하긴 민감한 부분이지만 내부에서도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서독제가 지금은 사라진 영화제들의 성격까지 포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하나로 묶이는 부분이나 장르적인 안배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크게 보자면 달라진 생태계 안에서 지금의 ‘영화제’라고 하는 형식이 맞는지 의문도 든다. 영화제는 일정 정도 이상의 인력과 재정이 필요한 꽤나 무거운 시스템이다. 창작자가 제작지원을 받기 위해 타협을 하기도 하는 것처럼 영화제도 일부분 바꾸기 힘든 부분들이 있다. 최근 들어 소규모 상영회 조직이나 비평 활동이 떠오르고 있는 것도 그래서가 아닐까. 백재호 이런저런 심사에 참여해본 당사자 입장에서 말해볼 거리는 심사장의 풍경 자체가 좀 온순해졌다는 것이다. 확실히 서로 덜 싸우는 분위기가 생긴 것 같다. 각자의 1순위를 밀어붙이는 치열한 전투가 덜하고 주어진 시간 안에 무난한 합의가 도출되는, 그래서 결과적으로 꼽히는 영화가 모두의 3, 4번 정도일 때가 있다. 왜 그럴까에 대해서는 여러 각도의 이유가 있겠다. 소수의 지지를 받는 뾰족한 작품은 논쟁적일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그걸 지지하는 심사위원도 용기 있게 밀어붙여야 한다. 그런데 정치적 올바름이나 SNS 분위기 등과 맞물려 논쟁적인 요소를 안고 가는 부분에 대해 다소 위축된 심리가 형성된 것 같다. 김진유 영화제 예심뿐 아니라 제작지원 심사나 시나리오 심사 과정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다. - 씨네21 - 만드는 사람도, 지원하는 사람도 사회적 시선과 자기검열에 민감해진 부분이 창작 진영을 어느 정도 경색시켰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런 고민이 성숙을 이끌긴 하겠지만 과도기에는 안전지향적 선택으로 몰리는 경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백재호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이런 소재, 이런 주인공 캐릭터는 안될 거라고 걱정하게 되는 셈이다. 장우진 막상 내가 심사위원이 되어도 위험부담을 얼마나 끌고 갈 수 있을까 자신하기 어려운 부분인 건 맞다. 특히 제도 설립 초기라면 더더욱. 김진유 비슷한 맥락에서 창작자 입장에선 영화제나 지원제도에 관해 출품작의 경향보다는 그해 프로그래머, 심사위원의 경향이 더 궁금해지는 게 사실이다. 백재호 심사위원 풀도 논의해볼 문제인 것이 대체적으로 지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은 참여가 어렵고 최근에 활동하지 않거나 독립영화와 관련이 없는 분들이 심사를 하다보니 어떤 괴리가 생긴다. 정지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심사위원 선정 방식에 큰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 공정성이란 심사위원단을 어떻게 꾸리느냐, 인명의 문제인데 지금 영진위가 내건 순차, 우선순위 기조는 사실상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 아닌가. 공정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 일종의 모독이다. - 씨네21 - 문제는 많지만 현실적으로 제도적 장치의 보강이 필요한 상황이다. 제언해준다면. 장우진 영진위 제작지원작의 경우 1년 단위의 정산이 없어져야 한다. 창작자에 따라 원한다면 영진위 지원금을 시드머니 삼아 해외를 돌면서 펀딩하고 프리프로덕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앞서 우리가 많은 사람들을 납득시키고 설명이 되는 시나리오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런 기준 자체가 해외로 가면 시각이 좀 달라질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느낀다. 역량 있는 감독들이 자신의 작품을 가지고 칸 피칭도 갈 수 있어야 점점 더 3대 영화제 가는 작품들의 경쟁력에 대해서도 더 고민해볼 것 아닌가. 또 최근 중동, 동남아시아에서 괜찮은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크레딧을 보면 한 2년간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펀딩을 받는다. 올해 기준으로 영진위가 11월에 마감을 했고 그럼 내년 12월까지는 완성을 해서 작품을 납품해야 하는데 이 정도 기한 안에서는 대담한 시도를 하기가 어렵다. 아무리 미리 써놓은 시나리오라고 해도 얼마나 깊게 고민할 시간이 있을까. 자꾸만 우리끼리 ‘이 정도면 된 것 같아’로 마무리하게 되기 쉽다. 단적으로 말해 지금의 영진위 시스템은 문화적 예외성이 없다. 기한, 평가지표 등 모든 방면에서. 그래놓고 해외에서의 한국 콘텐츠 경쟁력을 이야기한다. 해외 작품들과 동등하게 경쟁해야 하는데 지금 시스템으론 불가능하다. 배우 캐스팅, 스테핑 문제도 마찬가지다. 스타급 배우들이 독립영화에 출연하고 싶을 수도 있지 않나. 현실적으로 그들 스케줄을 우리가 기다려야 하는데 지금 일정상으로는 무리다. OTT 때문에 배우 스케줄은 더 빡빡해졌는데 말이다. 김진유 문화산업의 예외 조항 없이 다른 산업과 같은 예산안으로서 운용하기 때문에 그렇다. 제작지원금 운용 면에서도 고충이 있다. 자기 작품을 만들고자하는 영화인들 입장에서는 제작지원금을 받고 이 돈을 다른 데 쓸 일이 없다. 100% 쓰고 외려 사비나 기타 투자금 등 더 많은 돈을 투여한다. 그러니 항목별 퍼센티지를 제한적으로 따질 게 아니라 최종적으로 마지막에 100%를 사용했는지 실집행률을 확인하면 될텐데 이런 실질적인 지점들이 간과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점들 때문에 독립영화에서 오히려 제작과정의 규격화가 이뤄질 수도 있는 것이다. 백재호 지원작들의 경우 정산 일정을 고려하면 촬영 시기가 한정적이라 최근 한국 독립영화에 겨울영화가 없다. 미완성 편집본으로 내고 사비를 집행해서 겨울에 촬영하는 편법을 쓸 수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개봉작 지원사업 기한에 맞추려 독립영화의 개봉일정도 몰리는 현상이 벌어졌다. 김진유 개봉작 배급 지원 사업은 물론 배급사를 위한 제도이지만 창작자 입장에서의 아쉬움도 덧붙여보고 싶다. 모든 작품이 똑같은 돈을 써야 하니 개봉 시기, 방식, 단가 등이 규격화된다. 배급사별 라인업이나 전체 포트폴리오를 보고 일정 금액을 통으로 지원해주면 그 한도 내에서 배급사가 다양한 시도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1년치 기획을 꾸려서 영화마다 규모도 방법도 개성 있게 해줄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생각해본다. 이는 마케팅사에도 적용될 수 있는 문제다. 예고편, 포스터 등이 점점 다 비슷해지고 있으니. 정지혜 새로운 개봉 모델에 있어선 장우진 감독님의 봄내필름에서 <춘천, 춘천> 때 인디스페이스 단관 개봉한 사례도 떠오르는데. 장우진 진명현 대표와 상의해서 개봉지원을 아예 내지 않았다. 좋은 공부가 됐다. 백재호 <춘천, 춘천>의 사례를 보았기 때문에 내 연출작 <붉은 장미의 추억>을 개인 배급으로 시도해볼 수 있었다.

[인터뷰] ‘울컥하는 그 마음처럼’, <대가족> 양우석 감독

연출 데뷔작 <변호인>과 두편의 <강철비> 시리즈를 통해 계속해서 스크린 밖의 무거운 현실을 돌아보게끔 하는 영화를 만들었던 양우석 감독이 선택한 다음 작품은 가족영화다. <강철비2: 정상회담> 개봉 당시 <씨네21>과 나눈 인터뷰에서 차기작에 대해 이야기하며 “따뜻하고 가벼운 가족 이야기를 웃으며 가볍게 찍고 싶다”고 밝혔던 양 감독 말처럼, <대가족>은 분명 전작들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띨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과연 가족 이야기를 하면서 편히 웃기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가족에 대한 이야기, <대(對)가족>은 그래서 어느 순간만큼은 <변호인>이나 <강철비>보다 더 현실적이고 묵직한 질문을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영화다. 양우석 감독 역시 인터뷰에서 이번 영화가 관객 입장에선 코믹 휴먼 드라마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연출자로선 이전 작품들과 <대가족>이 같은 결을 지닌 영화라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 전작의 주요 소재를 떠올려보면 양우석 감독의 가족 코미디 영화를 의외의 선택이라고 느낄 관객이 많을 것 같다. 인정한다. 하지만 만드는 입장에서는 사실 전작과 같은 결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변호인>으로 과도한 사랑을 받은 이후, 한동안 관객들에게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를 전달해드리는 것을 개인적인 목표로 삼고 영화를 만들어왔다. 그런 관점에서 지금 시기의 최대 화두를 가족문제로 봤다. - 어떤 점에서 같은 결의 영화라고 할 수 있나. 지금까지의 영화들 모두 자신에게 달리 선택권이 없는 ‘갇힌 사람’들의 성장 서사라는 점에서 그렇다. <변호인>은 법을 지키지 않는 법조인들 때문에 갇힌 사람들을, <강철비> 시리즈는 강대국들의 선택에 따라 휘둘릴 수밖에 없는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했었다. <대가족> 또한 등장인물들이 자신들이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 영화는 평만옥에 갑자기 나타난 어린 민국과 민선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인데, 아이들은 사고로 부모를 잃고 가족이 해체될 위기에 갇혀 있는 상태다. 무옥(김윤석)과 문석(이승기) 또한 마찬가지다. 가족을 지켜야 하는 무옥은 유일한 자식이 승려가 되었기에 옴짝달싹도 못할 정도로 갇혀 있고, 문석도 출가를 하긴 했으나 과거 속세에서 행한 업보가 한꺼번에 몰아닥친 상황이다. 이들 삼대가 변해가는 과정을 영화에 담고자 했다. - 세 그룹의 사연이 영화에 적절히 분배되어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대가족>은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장르이지만 개인적으론 전작들에 비해 구조는 훨씬 더 복잡하다고 생각한다. 한 영화에서 이렇게 다수의 그룹에 입체적인 서사를 부여하는 건 러닝타임을 고려하면 쉽지 않은 작업임을 알고 있어 각본을 쓰는 과정에서 고민이 많았다. 지금의 장르를 선택한 것도 관객들이 레이어가 복잡한 영화를 친숙하게 받아들였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마음 한편으론 걱정이 된다. 영화에 플래시백이 자주 등장하기도 하고. - 가족 이야기를 영화의 소재로 삼은 이유, 이 문제를 지금 시기의 가장 큰 화두로 본 이유는 무엇인가. 무조건적으로 가족을 지키자, 결혼을 하자 같은 말을 하고자 했던 것은 절대 아니다. 가족을 바라보는 개인들의 시선이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는 시기라고 생각했고, 그 변화를 다 함께 곱씹어볼 시간을 마련하고 싶었다. 인류학적으로 봤을 때 가족문화만큼 형태나 그 의미가 잘 바뀌지 않는 것이 없지 않나.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부터 그 변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느꼈다. 영화의 배경을 2000년으로 설정한 것도,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이 시기에 대한민국만큼 큰 변화를 겪은 나라가 인류사적으로 봐도 드물다는 생각에서다. - 그 시기에 벌써 정자 기증이 활발하게 이뤄졌다는 설정이 신기하게 다가왔다.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꽤 많이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2000년에 실제로 수십만쌍의 난임부부가 있었던 게 사실이고, 영화처럼 의대생이 기증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 가족과 관련된 민감한 부분을 소재로 하다 보니 자칫 막장 드라마처럼 전개될 수도 있지 않나. 처음부터 담백한 톤을 목표로 했다. 그러다 보니 극에 뚜렷한 악역이 없다. 인물들에게 주어진 상황 자체가 악역인 셈인데, 그 자극이 너무 셀 경우 가족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이 영화의 본질을 흐릴 거라 판단했다. (영화 속 주요 소재인) 만둣국 자체도 좀 담백한 편 아닌가. (웃음) - 무옥이 파는 음식이 만두인 이유는. 원칙적으로 만두는 설에 먹는 명절 음식이다. 명절에 온 가족이 모여 함께 먹는 음식이라는 점이 중요했고, 무옥이 이에 집착하는 모습이 그가 얼마만큼 과거형 가족에 얽매여 있는 사람인가를 잘 설명한다고 봤다. 평만옥은 인사동에 있는 취야벌국시라는 만두 가게를 모델로 했는데, 영화에서처럼 실제로 고층 건물에 둘러싸여 있다. 그 공간이 주는 분위기와 만두가 무옥이라는 인물을 잘 표현한다고 생각했다. - 사전 시사회를 통해 접한 관객들의 반응은 어떤가. 많은 분들이 울컥했다는 감상을 남기셨다. 그런데 내 판단으로는 영화 자체가 그런 감정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을 거라고 본다. 시나리오를 쓰고 편집할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신파를 최대한 배제하려는 것이었으니까. 오히려 보면서 울음이 나오려고 하면 그 장면을 과감히 편집해버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관객들이 울림을 느꼈다면 그건 영화를 보는 동안 각자의 가족을 떠올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 후반부 문석이 엉겁결에 끌려간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에서 염불을 외우다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눈물 흘리는 장면이 마음에 남는다. <대가족>의 화두인 어머니와도 관련 있는 장면이다. 문석이 출가한 결정적인 이유임과 동시에 아버지 무옥과 서먹서먹한 관계가 된 근원적 계기와도 연결돼 있다. 결론적으로 나는 관객들이 최대한 상황에 몰입할 수 있도록 다양한 캐릭터들을 제대로 설계하기 위해 노력했다. 재미있게 느껴주셨으면 좋겠다. <대가족> 속 이 장면 “문석은 지나가던 스님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이유로 인해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장에서 예정에 없던 염불을 외우게 된다. 직전 장면에서 무옥에게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다투었던 문석은 그 과정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가족이라면, 이를 떠올리며 웃을지 눈물 흘릴지는 각자의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장면이다.”

[OTT 리뷰] <프라블러미스타> <스타워즈: 스켈레톤 크루> <지하창고 사일로의 비밀 시즌2>

<프라블러미스타> 넷플릭스 / 감독 훌리오 토레스 / 출연 훌리오 토레스, 틸다 스윈턴, 이사벨라 로셀리니, 리자, 그레타 리 / 공개 12월1일 플레이지수 ▶▶▶▷ | 20자평 - 성역 없는 초현실주의 코미디 엘살바도르인 알레한드로(훌리오 토레스)는 뉴욕 생활을 시작한다. 그가 관심을 보이는 완구 회사 해즈브로가 미국 거주민에 한해 지원서를 받는 폐쇄적 입사 정책을 시행하기 때문이다. 알레한드로는 우선 사람을 산 채로 냉동시킨 후 원하는 때에 해동할 수 있는 극저온 보관시설 프리즈코프에 관리직으로 취직한다. 하지만 업무 실수를 이유로 프리즈코프에서 해고되고, 냉동인간 보비(리자)의 아내 엘리자베스(틸다 스윈턴)는 알레한드로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건넨다. 잊힌 예술가인 보비의 작품 13점을 모아 함께 전시를 큐레이팅하면 알레한드로의 취업 영주권 알선을 위한 스폰서가 되어주겠다고. 알레한드로는 새 일을 시작하지만 이민자로서의 미국 생활은 만만치 않고, 깐깐한 미술 비평가 엘리자베스의 조수 노릇은 더욱더 고역이다. <프라블러미스타>는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작가로 경력을 시작한 훌리오 토레스가 각본, 주연은 물론 연출까지 맡은 장편영화다. 감독 겸 작가의 모체인 처럼 <프라블러미스타> 역시 풍자를 근간으로 한 블랙코미디를 작품 전면에 내세운다. 마이크로어그레션을 일삼는 백인 고용주, 실리도 원칙도 모두 챙기지 못하는 이민 정책 등이 작품 속에 효과적으로 녹아든다. 하지만 <프라블러미스타>의 야심은 성역 없는 풍자에 국한하지 않는다. 알레한드로 내면의 갈등과 의문을 고갱이나 마그리트풍의 초현실주의 미장센으로 확장하거나 한 시퀀스 안에서 희극과 비극을 절묘하게 오가는 대사로 이야기의 완급을 능숙하게 조절하는 등 ‘영화적’인 시도를 놓치지 않으려는 감독의 의지가 생생하게 드러난다. <페어웰> <미나리>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등 이민자 내러티브의 영화를 북미에 배급한 A24의 신작이다. /정재현 <스타워즈: 스켈레톤 크루> 디즈니+ / 8부작 / 연출 존 와츠, 데이비드 라워리, 대니얼스, 제이크 슈레이어, 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 정이삭 / 출연 주드 로, 라비 캐벗코니어스, 라이언 키에라 암스트롱, 키리아나 크래터, 로버트 티모시 스미스 / 공개 12월3일 플레이지수 ▶▶▶ | 20자평 – <구니스>와 <캡틴 EO>, 할리우드는 지금 복각 열풍 평온한 행성 앳 애틴에 사는 소년 윔(라비 캐벗코니어스)은 등굣길에 수상한 해치를 발견한다. 윔과 순수한 닉(로버트 티모시 스미스), 모범생 펀(라이언 키에라 암스트롱), 조용한 KB(키리아나 크래터), 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고 해치 앞에 모인다. 이들이 발견한 것은 우주선 오닉스 선더. 잠시 내부만 살피려던 아이들은 실수로 전원을 켜는 바람에 우주선과 함께 하이퍼스페이스를 통과하며 우주 미아가 되고 만다. 연말을 맞아 <스타워즈> 시리즈가 온 가족이 즐길 소년 모험물로 돌아왔다. 순진무구한 아이들이 우주 해적과 함께 모험을 떠나는 <스타워즈: 스켈레톤 크루>에서 80년대 <구니스>와 <스탠 바이 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신공화국 시대에도 폐쇄정책을 유지하는 미지의 행성 앳 애틴의 등장은 본작 팬들에게도 흥미로운 설정이 될 것이다. 데이비드 라워리, 정이삭, 대니얼스 등 연출진이 만든 에피소드가 매주 수요일 한편씩 공개된다. /최현수 객원기자 <지하창고 사일로의 비밀> 시즌2 Apple TV+/ 10부작 / 연출 에릭 아벨리노, 마이클 디너, 앰버 템플모어 / 출연 레베카 페르구손, 팀 로빈스, 커먼, 스티브 잔 / 공개 11월15일 플레이지수 ▶▶▶▷ | 20자평 - 우연하게도 디스토피아에서 대한민국을 발견한다 디스토피아의 미스터리가 일부의 이적만 남길 때 사회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휴 하일로의 소설 <사일로>를 원작 삼은 <지하창고 사일로의 비밀>은 버나드(팀 로빈스)의 간계로 추방된 보안관 줄리엣(레베카 페르구손)이 바깥세상의 진실을 마주하며 막을 내린다. 다른 추방자들과 달리 멀쩡히 언덕을 넘는 그의 모습은 시민들에겐 기적 같은 일이다. 바로 이 반응이 시즌2의 출발점이다. 기적을 본 사일로 내부에는 의심의 씨앗이 피어오르고, 시장 대행 버나드는 체제를 위해 통제의 끈을 조인다. 한편 줄리엣은 내전으로 절멸한 다른 사일로를 발견하곤 귀환을 택한다. 외부에 대한 호기심과 내부 체제에 대한 반문, 디스토피아의 두 가지 작동 원리를 충실하게 이행하는 모범적인 시리즈다. 전작보다 사건의 부피는 확장됐지만 서사의 밀도는 여전하다. 압제하는 권력자를 보며 현 정국의 비상식적이고 무논리적인 파행에 씁쓸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최현수 객원기자

[비평] 역사의 흐름은 되돌릴 수 없다, <한 채>

영화 <한 채>에 대한 소개는 ‘집 한채를 얻기 위해 위장결혼에 나선 가난한 이웃을 건조하게 그린 영화’로 요약된다. <한 채>는 부동산 문제를 소재로 삼은 다큐멘터리 시선의 영화로 호평받으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2관왕에 올랐다. 영화에 대한 일반적인 평에 동의하지 않는다. <한 채>는 부동산 문제는 맥거핀으로 활용했을 뿐, 주제는 기독교적 가부장제 혼인의 원형을 복원하는 것이다. 1. ‘부동산 영화’가 아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드림팰리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등은 부동산 문제를 통해 계급적, 사회적 갈등을 파헤치는 ‘부동산 영화’로, 부동산 난제와 부동산을 둘러싼 욕망을 구체적으로 그린다. <한 채>는 신혼부부 특별공급을 노린 위장결혼을 소재로 사용했지만, ‘부동산 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리얼리즘을 표방하는 듯하지만, 청약 사기를 엉터리로 묘사하며 ‘엉터리니까 믿지 말라’며 일부러 모순을 드러낸다. 브로커가 생면부지인 도경(이도진)과 고은(이수정)을 매칭해 위장결혼으로 신혼부부 특별공급에 넣었다. 도경은 어린 딸을 키우는 이혼 남성이고, 고은은 지적장애가 있는 미혼 여성으로 아버지 문호(임후성)의 돌봄을 받는다. 위장결혼을 위해 동거하던 중 아파트가 당첨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단다. 도경이 문호에게 말하길 “분수에 안 맞는 집”이 되었단다. 아니 어떻게? 애초에 청약은 평형별로 넣어서 큰 평수가 당첨되기가 불가능하며, 신혼부부 특별공급은 큰 평수가 아예 없다. 영화는 ‘양심적이게도’ 문호가 판교 부동산에 들어가 시세를 묻는 장면을 보여준다. 문호가 “방 2개짜리는? 3개짜리는? 4개짜리는?” 하고 순차적으로 묻는다. 왜 필요도 없는 방 4개짜리까지 물었을까. 이 장면은 부동산이 아득히 비싸다는 것을 알려주지만, “단지에 방 4개짜리는 없다”라는 답변을 듣기 위해 중요하다. 즉 “분수에 맞지 않는 집이 되었다”라는 도경의 말은 헛소리란 뜻이다(사기 대목은 엉터리니까 믿지 말라고요~). 이상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애초에 문호 부녀와 도경이 브로커 사무실에서 만났을 때, 위장결혼 이야기만 했을 뿐, 당첨된 후 무엇을 어떻게 하기로 한다는 말이 죄다 생략되어 있다. 그러니 나중에 문호가 “우리가 원래 하기로 했던 것을 하라”고 도경과 브로커에게 주장해도 그것이 무엇인지 관객은 알 수가 없다. 그러고 보면 당첨된 집이나 브로커가 도경에게 챙겨준다던 2억원 등도 결국 어찌되었는지 오리무중이다. 도경과 고은의 관계에 정신이 팔려, 위장결혼의 목적이자 원인이던 부동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었다. 요컨대 부동산은 맥거핀일 뿐이며 부동산을 통해 하고픈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그러니 이 영화를 보고, 부동산 문제의 신산함을 논하는 이는 ‘낚인’ 것이다. 2. 아버지가 딸을 남자에게 떠넘기다 정말로 하고픈 이야기는 위장결혼으로 시작된 ‘관계’다. 여기까지는 다들 동의할 것이다. 혹자는 이들이 결국 ‘하우스’가 아닌 ‘홈’을 갖게 되었다며 축복하고 감동한다. 그전에 이들의 ‘관계’와 ‘홈’이 과연 바람직한지 뜯어봐야 하지 않을까. 첫 만남에서 브로커는 둘이 같이 사는 것은 “안 급하고” 당첨된 후에나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결혼사진을 찍자 곧바로 고은 부녀가 도경 집으로 들어간다. 지적장애가 있는 고은에게 부부처럼 보이는 걸 학습시킨다는 명분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 방법밖에 없었을까. 뭔가 정해진 수순마냥 거침없이 동거에 돌입했단 생각이 들지 않나. 더욱이 문호는 지적장애 딸을 단지 며칠 같이 지낸 사내에게 맡기고 홀연히 떠난다. 이때 문호의 믿음과 욕망과 의지는 무엇인가. 앞의 옷가게 장면을 눈여겨보라. 문호는 고은에게 장애인 목걸이를 걸어주고 고은이 혼자 가게에 들어가게 한다. 고은이 옷을 사달라고 떼쓸 때, 문호가 들어가 흥정하면 왕창 깎을 수 있다. 부녀에겐 ‘놀이’처럼 익숙해 보이는데, 타인의 선의에 기대(하)는 수법이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의 요약본이다. 문호가 ‘가게 놀이’ 대신 ‘소꿉놀이’를 하라고 고은을 도경 집에 혼자 들여보낸 뒤 도경이 기대했던 선의를 보이자, 문호가 자신이 의도했던 어떤 거래(?)를 마친 상황이 아니겠나. 애초부터 문호가 원했던 건 ‘고은을 도경에게 떠넘기기’였음을 옷가게 장면이 암시한다. 3. 기독교적 가부장제 혼인 모델 <한 채>는 아버지가 딸을 나빠 보이지 않는 남자에게 넘겨주는 (‘시집보내기’) 가부장적 혼인 모델을 재현하는 영화이다. 여기에 여러 미화 장치를 덧댄다. 딸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딸은 경계성 지적장애인으로 설정되었다(장애와 여성의 이중 혐오다). 문호가 도경의 선의를 기대할 수 있는 구석은 ‘부성’이다. 즉 ‘너도 딸 키우는 아버지’로서 자신이 애지중지 키운 딸을 막 대하지 않을 거란 믿음. 도경이 어린 딸을 키우는 아버지로 등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도경에게 고은은 보통 아내와 딸의 중간쯤 되는 존재로 설정된다. 도경과 고은 둘이 남았을 때, 도경이 고은을 막 대하지 않은 것은 문호의 그림자 때문이다. 도경은 문호를 동일시하고 의식한다.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남성은 부성(애)적 주체이고, 여성은 보살핌을 받고 순종해야 하는 객체이다. 영화 전체로 보자면 문호의 의지가 일관적으로 관철된다. 가족사진을 한사코 찍지 않으려던 문호는 떠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는 딸의 의식과 행동을 ‘놀이’ 개념으로 간단히 제어한다. 새벽에 막걸리를 사온 문호는 두 사람을 앉히고 “지금부터 소꿉놀이를” 명한다. 이 장면에서 문호는 카메라를 등지고 앉아 있는데, 마치 혼인을 주재하는 사제 혹은 신처럼 보인다. 문호의 교도소 장면은 느닷없지만(앞의 대리운전 싸움이 복선으로, 브로커 폭행 등이 암시된다), 어쩐지 거룩한 ‘희생’인 양 느껴진다. 쇠창살이 ‘십자가’처럼 정면 가운데로 찍히고 새소리가 크고 길게 들어가 종교적인 느낌을 물씬 자아낸다. 도경은 도시 일을 접고 하필 ‘포도원의 일꾼’이 되는데, 그 포도원이 고은이 큰아버지 농장이니, ‘장가들기’가 된 셈이다. 기독교적 가부장제의 시집가기와 장가들기가 실현되었다. 도경이 1억원 전세방을 빼서 누나 집의 5천만원 전세금을 올려주는 데 보탰는지, 누나는 이사하지 않았다. 도경 누나가 여전히 도경의 딸을 키우며, 여기에 고은까지 보살핀다. 그러나 이것을 대안 가족이나 유사가족으로 볼 수는 없다. 가부장제 시집가기와 장가들기가 이루어지고, ‘동기간에 우애 있고’(누나가 돌봄을 떠안는) ‘성별 분업’이 이루어진, 확대가족 형태로 볼 수 있다. 영화는 도경과 고은이 문호의 면회를 마치고 함께 차에 오르는 것을 끝으로 이들이 곧 정상 가족을 이루리라는 강한 암시를 준다. 기독교적 가부장제 혼인의 원형 복원 염원이 낭랑하다. 한국 남성들의 역차별 피해망상을 노골적으로 전시한 영화 <파일럿>이 470만 관객을 동원한 데 이어, 영화 <한 채>가 백래시 광풍을 어질어질하게 환기한다. 그러나 시대착오적 쿠데타가 진압되었듯이, 백래시도 꺾일 것이다. 반동의 물결이 아무리 거세도, 역사의 흐름은 되돌릴 수 없다.

시대가 만든 바보들, 검열, 독재 시대의 한국영화 - 중앙정보부의 검열부터 블랙리스트까지

한국전쟁 이후부터 1980년대 후반 민주화가 꽃피기까지 한국은 길고 긴 독재와 검열의 시대를 지났다. 이 어둠의 시간은 한국의 영화사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수많은 영화가 국가의 주도하에 여기저기 잘려나갔고, 수많은 영화인이 억압당했다. 그럼에도 한국영화는 그 명맥을 이어 현재에 당도했다. 작금 한국영화가 있기까지의 그 어려움을 되살피는 일은 지금의 우리가 마주한 위기에 경종을 울리는 동시에 영화예술의 꺼지지 않는 생명력을 긍정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시민의 힘으로 대한민국 제1공화국을 타도한 1960년 4·19 혁명은 민주주의의 승리와 함께 한국영화의 풍요를 불렀다. 혁명 이후 5월부터 정부는 국가기관 주도의 영화 검열을 철폐·완화했고 6월엔 헌법 개정을 통해 언론, 출판을 비롯한 영화에 대한 검열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8월부터 민간기구인 영화윤리전국위원회가 출범해 영화 심의를 시작했고 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완전한 자율성을 보장받기 위해 노력했다. 잠깐의 자유 속에서 한국영화사의 걸작들이 동시에 쏟아져나왔다. 올해 한국영상자료원이 발표한 한국영화 100선에서 1위, 4위를 차지한 <하녀>(감독 김기영, 1960), <오발탄>(유현목, 1961)을 비롯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신상옥, 1961), <마부>(강대진, 1961), <삼등과장>(이봉래, 1961) 등이 만들어졌다. <마부>가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특별은곰상을 받으며 국제사회에 한국영화를 알렸고 김기영, 김수용, 유현목, 이만희, 신상옥 등 한국영화사를 이끌어갈 거장들이 창작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5·16 군사정변과 유신정권의 칼날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군부 정권이 대한민국을 점령하면서 혹독한 검열의 시대가 막을 올렸다. <자유부인>(한형모, 1956) 등으로 전성기를 맞이했던 1950년대의 한국 영화산업은 스튜디오 시스템을 유지하며 60년대에도 융성한 듯 보였지만, 그 내부엔 검열의 칼날이 움트고 있었다. 핵심적인 권력기관이었던 중앙정보부가 1961년부터 본격적으로 영화 검열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오발탄>이 1961년에 개봉했다가 중앙정보부의 개입으로 상영을 금지당했고, 중앙정보부는 영화와 영화 시나리오를 전반적으로 검열하기에 이르렀다. 많은 영화인이 실제로 처벌받는 일도 빈번해졌다. 이만희 감독은 <7인의 여포로>(1965)를 통해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됐고 유현목 감독은 <춘몽>(1965)으로 음화제조반포죄 유죄판결을 받았다. 검열은 1972년 유신체제 전후로 더욱더 공고해졌다. 1968년 말부터 중앙정보부는 모든 개봉작의 검열 주체로 참여하면서 더욱 엄격한 검열을 자행했다. 1973년 2월엔 유신정권이 영화법을 개정하며 영화예술을 국책사업의 일환으로 낮춰버렸다. 영화 제작사를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전환하고 외화 수입 쿼터제를 시행하며 한국영화의 구조적인 저질화를 이끌었다. 영화 제작자들은 높은 수익을 취할 수 있는 외화 판권을 따내기 위해 정부 입맛에 맞춘 반공영화, 저예산 액션영화 등을 찍어낼 수밖에 없었다. 영화산업이 침체되면서 1971년 전후로 연간 200편을 웃돌던 제작 편수가 1975년에는 94편을 기록하기도 했다. 1975년 5월 유신정권의 긴급조치 9호 발령으로 영화 검열이 강화되자 예술문화윤리위원회의 영화 시나리오 사전심의 수정·반려 비율이 1974년 41%에서 1975년 80%까지 높아졌다. 이러한 압박 속에서도 1970년대 중반 한국영화엔 가능성이 피어났다.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1974)이 46만 관객을 모으며 극장가의 부흥을 이끌었고,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1975)이 당대 청년문화를 스크린에 투영하며 활기를 내뿜었다. <바보들의 행진>은 검열로 인해 대본에 있던 대학생들의 시위 장면을 삭제하고 운동 경기 장면 등으로 대체하는 등 많은 제약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작품에 드러난 당시의 냉혹한 현실과 청년들의 비극은 암울한 시대상을 스크린에 반영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민주화 전후, 여전한 검열? 1979년 10월26일 전두환 정권의 쿠데타로 유신정권이 무너지고 신군부가 들어섰다. 4·19 혁명과 5·16쿠데타를 틈타 많은 걸작이 나타났듯이 한국의 근대사를 직접적으로 건드린 임권택 감독의 <짝코>(1980),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1980)과 국가 주도 산업 개발을 비꼰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1980) 등이 이때 반짝이며 등장했다. 하지만 신군부는 기존 유신체제의 검열 기조를 계승하는 데 더해 반공안보영화의 제작을 추진하는 등 영화산업을 주물렀고 민주화 이전까지 검열의 시대는 이어졌다. 1979년 4월부터 영화 검열권을 이관받은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 체제가 80년대에도 유지됐다. 공연윤리위원회의 영화 사전심의 제도는 1996년 10월4일에서야 위헌 판결을 받으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80년대 신군부의 영화 검열 체제에 가장 혁신적인 반기를 든 영화는 이장호 감독의 <바보선언>(1984)이었다. <바보선언>은 원래 <어둠의 자식들>의 속편으로 제작될 예정이었으나 정부로부터 ‘전면 개작’ 판결을 받았다. 외화 수입 쿼터 때문에 어떻게든 영화를 만들어야 했던 이장호 감독은 제대로 된 각본도 없는 상태에서 6개월 만에 <바보선언>을 완성했다. 결과적으로 <바보선언>은 이미지와 사운드 측면에서 파격적인 실험영화 형태를 띠며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영화의 새로운 물결을 이끌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대한민국이 민주화의 급물살을 타면서 박광수의 <칠수와 만수>(1988), 장선우의 <경마장 가는 길>(1991) 등이 코리안 뉴웨이브를 주도했고 장산곶매의 <파업전야>(1990)가 독립영화의 지평을 열며 한국영화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된다. 2014년 9월 박근혜 정부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다이빙벨> 상영 중단을 종용하며 영화제의 자율성을 앗으려 했고,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작성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수많은 영화인을 억압했다. 그리고 2024년 12월3일 윤석열 정부는 비상계엄선포 포고령 1호에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라고 명시했다. 이는 명확하게 유신, 신군부 정권이 자행했던 검열의 역사를 반복하겠단 의미였다. 70년대에 등장한 <바보들의 행진>, 80년대에 태어난 <바보선언>에 이어 다시금 국민을 바보로 만들고자 했던 잘못된 권력욕의 발로였다. 검열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하면 오산이다. 언제나 눈을 똑바로 뜨고 영화를,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추천작 <바보사냥>(1984) 감독 김기영 /플랫폼 한국영상자료원 유튜브 <한국고전영화>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1975), <바보선언>(이장호, 1984)과 함께 근현대 ‘한국영화의 바보 3부작’이라 불러도 흥미로울 작품이다. 영화의 골자는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강식(배규빈)과 홍익(김병학)의 로드무비다. 겉보기에 다소 온전치 않아 보이는 두 사람이 서울과 전국 각지를 떠돌며 당대의 여러 사회상을 거쳐간다.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천연의 무인도를 찾아 떠나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이들이 마주한 당시의 대한민국은 물욕, 부조리, 난개발, 사기, 비인간적 사고로 가득하다. 이상한 이들보다 훨씬 이상한 사회가 선한 사람들마저 황폐화하기 마련이라는 시대의 비극이 영화 속에 깃들어 있다. 서두의 두 작품과 <바보사냥>을 나란히 감상하면 검열, 독재 시대의 한국과 한국영화가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할 만큼 탄압받았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자료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검열의 시대]영화사 100년 중 단 한번의 경험’(조준형, 2024.9.10.)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검열의 시대]중앙정보부가 영화 검열을 했다고?’(조준형, 2024.5.10.)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과거와 결별한 새로운 한국영화의 출현’(정종화, 2018.8.14.)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한국영화사100년]암흑에서 피어난 한국의 ‘뉴 시네마’(정종화, 2018.4.30.)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100선]선정 작품을 통해 본 한국영화의 흐름’(조준형, 2014.3.27.)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사전검열이 만들어낸 명작 <바보선언>’(김동원, 2008.9.2.)

[기획] 풍요로운 홍해의 무비 로드, 제4회 레드씨국제영화제 리포트

지난해 이맘때 <씨네21>은 국내 언론 최초로 사우디아라비아의 레드씨국제영화제를 방문했다. 이제 막 꿈틀거리기 시작한 시장의 태동에 귀 기울이기 위해서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상업적인 영화 상영을 금지한 35년의 세월을 지나 2018년에야 비로소 극장 문을 다시 열었다. 엔터테인먼트 개발로 석유 의존에서 벗어나겠다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비전 2030’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영화산업”이라는, 한국에선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문구를 현실화하는 중이다. 그 역동의 한가운데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초대 문화부 장관이 설립한 비영리단체 레드씨영화재단이 있다. 재단은 자국 영화 제작·배급·교육에 앞장설 뿐 아니라 제다에서 중동 지역 최대 규모로 영화제를 주최해 세계 영화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씨네21>도 2년 연속 제다를 찾았다. 한국의 부산에 비견되는 이 도시는 12월이라는 날짜가 무색하도록 햇볕이 강하다가도 저녁마다 해안가의 순풍을 선사한다. 제4회 레드씨국제영화제도 모르는 새 찾아든 바람처럼 갖은 변화와 함께 돌아왔다. 그 풍경을 여기에 스케치한다. 낯선 만큼 신선한 영화의 바다로 당신을 초대한다. 머리 위마다 몸집 큰 샹들리에가 반짝였다. 내게 제3회 레드씨국제영화제(이하 레드씨영화제)는 당장이라도 <오페라의 유령>처럼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만 같은 거대 조명의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아랍어로 마켓을 뜻하는 ‘수크’(souk)를 비롯해 영화제 주요 행사와 프리미어가 전부 초호화 호텔인 리츠칼튼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게스트들도 그 주변의 고급 숙박시설로 숙소를 배정받아 홍해 전망을 만끽했다. 그 일대에서 일반 상영이 진행된 레드씨 몰의 VOX시네마까지는 차로 20분이 걸려 번거로운 면도 있었지만, 리츠칼튼에서 몰까지 셔틀 서비스가 제공돼 불편을 덜었다. 덕분에 외신기자들 사이에서는 ‘이 신생 영화제가 열흘을 위해 얼마를 썼을까’를 점쳐보는 한담이 잦았다. 지출 규모는 누구도 정확히 추산할 수 없었겠지만 다들 레드씨영화제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짧은 영화사를 상쇄하는 스케일을 확보해 단 시간에 세계 영화인의 시선을 사로잡고 싶어 한다는 점은 확언할 수 있었다. 2024년의 레드씨영화제는 그 의지를 또 다른 방식으로 드러냈다. 이번에는 올려다본 자리마다 라와신(rawashin)이었다. 라와신은 목각 패널을 덧대 만든 돌출형 발코니로, 쨍한 햇살 아래 자연 냉방을 꾀한 사우디아라비아의 고대 건축양식이다. 영화제가 제다의 화려한 휴양지를 떠나 구도심 알 발라드(Al Balad)로 터전을 옮기면서, 규칙적인 듯 변칙마저도 허용하는 옛 디자인이 눈에 익은 셈이다. 영화제의 모든 스크리닝이 펼쳐진 신축 영화관 ‘컬처 스퀘어’ 또한 알 발라드 스타일의 공간으로 꾸려졌다. 문화유산에 둘러싸인 영화제 여기엔 장소를 이전하며 생긴 이동상의 이점 이상의 효과가 있다. 알 발라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유적지다. 7세기 무렵부터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이 마을은 미로 같은 골목과 정교히 깎인 산호석 벽간을 자랑한다. 사우디 정부는 못해도 150년에서 400년이 넘은 건물들의 보존과 증축을 시도하며 이곳을 간판 관광지로 키우려고 한다. 레드씨영화제가 탐낸 것이 바로 그 상징성 아닐까. 개막식의 메인 스크린은 알 발라드의 담벼락을 구현했고, 개회사를 위해 무대에 오른 레드씨영화재단 회장 주마나 알 라셰드는 “올해 슬로건인 ‘영화의 새로운 집’(The New Home of Film)이 곧 알 발라드”라고 설명했다. 주마나 알 라셰드 회장은 사우디의 헤리티지를 계승한 새 거점을 소개한 데 이어 사우디영화의 경사를 공표했다. 사우디영화 최초로 칸의 부름을 받은 <노라> 이야기였다. 지난해 레드씨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이자 사우디영화 부문 관객상 수상작이었던 <노라>는 2023년 레드씨영화제에서 최초 공개 후 2024년 제77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상영작에 이름을 올렸다. 시상식에서 ‘특별 언급’된 것도 특기할 만하다. 예술 활동이 금기였던 90년대 사우디를 배경 삼은 이 작품은 미술을 통해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된 두 여성의 교감을 그려냈다. 사우디 아트하우스의 존재는 물론 사우디만의 여성 서사를 부각한 타우픽 알자이디 감독은 사우디의 첫 번째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알룰라에서 두 번째 장편을 찍을 계획이라고 한다. 이는 사우디를 기반으로 하는 감독이 내릴 수 있는 마땅하고도 충실한 결정으로 비친다. 알룰라를 로케이션으로 택하면 무시 못할 혜택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사우디 왕립위원회 산하 에이전시인 ‘필름 알룰라’는 알룰라에서의 영화 및 방송 촬영을 장려·지원하는데, 사우디 영화위원회에서 실시하는 40% 현금 리베이트 프로그램인 ‘필름 사우디’ 정책을 수행하는 곳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필름 알룰라는 수크 한편에 넓은 부스를 마련해 방문객들이 VR로 알룰라를 체험할 수 있게 홍보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수크는 74개 참가사가 설치한 부스들로 북적였다. 방문객들은 전통 복장을 한 남성들이 수크 초입에서 나눠준 대추야자를 든 채 회랑을 활보했다. 이 또한 레드씨영화제 마켓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MENA 영화의 다양성을 찬미하며 제4회 레드씨영화제는 제2의 <노라>를 꿈꾸는 여섯편의 사우디영화를 포함해 85개국 122편의 영화를 선보였다. 영화제 기간 내내 레드씨영화제가 “한국의 부산국제영화제를 뛰어넘는 아시아 최대 영화제를 목표로 한다”라거나 “이미 중동·북아프리카(MENA) 지역 최대 영화제가 됐다고 볼 수 있다”라는 진단들이 들려왔는데, 프로그래머들은 우선 “올해의 키포인트는 아프리카영화”라고 입을 모았다. 프랑스 등 유럽 프로덕션과의 협업이 활발한 튀니지, ‘아랍의 할리우드’로 통해온 이집트가 그 중심에 있다. 경쟁부문 초청작 <레드 패스> <아이샤>(튀니지), <시킹 헤븐 포 미스터 람보> <스노우 화이트>(이집트) 등이 대표적이다. 이 영화들을 아우르는 키워드는 역시나 ‘다양성’이다. 특히 레드씨영화제가 경쟁부문에 불러들인 영화는 여성, 장애인 주인공들을 전면에 드러낸 것은 물론 지역사회의 문제적 이슈들까지 끌어안았다. IS 테러 여파(<레드 패스>), 팔레스타인 난민의 향방(<투 어 랜드 언노운>), 방글라데시 반정부 시위(<사바의 좁은 세상>), 이란의 도덕 경찰(<6AM>), 아프가니스탄 정세(<시마스 송>)와 같은 테마들이 선보여졌다. <스노우 화이트>의 타그리드 아부엘하산 감독, <시마스 송>의 로야 사다트 감독처럼 경쟁작 16편 중 7편이 여성감독의 작품이라는 점도 상기할 만하다. 사우디가 이슬람 색채가 강한 국가인 만큼 여성 인권이 열악하다는 인식에 정면으로 도전하듯, 레드씨영화제는 매해 축제 초반 ‘우먼 인 시네마’(Women In Cinema) 네트워킹 파티를 주최해왔다. 2024년에도 영화제에 초청받은 여성 감독, 제작자, 배우들은 물론 글로벌한 활동 반경을 보유한 배우 양자경, 신시아 이리보, 에바 롱고리아, 정호연 등이 얼굴을 비쳤다. 헤리티지를 이식하는 동시에 다양성을 찬미하며 세를 불리고 있는 레드씨영화제의 면면은 다음 장에서 마저 확인하길 바란다. 칸의 남자, 레드씨영화제에 조언하다 수크 포럼 중 가장 많은 청중이 들른 프로그램은 단연 티에리 프리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시네필로마니아’ 행사였다. 그는 자신이 영화에 반한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취향의 발자취를 돌이킨 데 이어 신생 영화제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발터 베냐민을 인용하며 “영화 자체가 아닌 영화를 상영하고 보러가는 행위가 특별한 것”이라 강조한 그는 사우디의 새 영화 문화를 응원했고, 자신만의 프로그래밍 비결도 전했다. “나만의 즉각적인 인상에 집중하되 거기에 함몰되지 않으려 한다. 프로그램팀 직원들끼리도 의견을 공유하다보면 자기만의 의견이 흐트러질 수 있으니 개인적인 감상을 잘 간직하라고 당부한다. 나는 그들이 집으로 돌아간 뒤 전화를 걸어 각자의 생각을 묻는 식으로 어떤 영화를 선택할지 조율한다.” KAFA in 사우디아라비아 영화진흥위원회 산하 한국영화아카데미(이하 KAFA)도 사우디아라비아의 신진 창작자들을 만났다. 11월 한달간 ‘2024 KAFA 부트캠프 인 사우디아라비아’가 펼쳐진 데 이어 12월7일에는 제다에서 엄태화 감독의 마스터클래스가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사우디의 영화학교 학생 또는 예비 영화인으로, 워크숍을 통해 6편의 단편영화를 완성했다. 조근식 KAFA 원장은 “부트캠프가 참가자들에게 단순히 영화제작 기술을 배우는 것을 넘어, 영화라는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앞으로도 KAFA는 글로벌 영화교육의 교류를 확대하며, 영화라는 공통의 언어로 함께 성장해나가겠다”고 공언했다.

[이도훈의 영화의 검은 구멍] 시저를 위하여!

앤디 서키스의 연기는 오롯이 디지털 캐릭터를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반지의 제왕> 삼부작(2001~2003)의 골룸, <킹콩>(2005)의 킹콩, <혹성탈출> 리부트 시리즈(2014~17)의 시저를 연기한 배우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도전한 모션 캡처 연기는 기존의 영화 연기와 현격히 다르다. 모션 캡처는 배우의 움직임과 연기를 포착하고, 전송하고, 전환하여 최종적으로 다른 신체에 코드화하는 것을 뜻한다. 배우는 특수 제작된 슈트를 입고 신체 곳곳에 마커를 부착한 상태로 연기를 해야 하기에 사실상 그 과정은 기계장치를 활용해 선보이는 일종의 묘기에 가깝다. 서키스는 디지털 캐릭터의 생성을 위하여 자신의 존재가 화면 바깥으로 사라지는 것도 거부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그가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여 하나의 범례를 남겼다는 이유로 그를 ‘모션 캡처 연기의 왕’이라고 부른다. 서키스는 한 인터뷰에서 모션 캡처는 “하나의 도구이다. 그것은 배우의 퍼포먼스를 다르게 기록하는 방식일 뿐”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모션 캡처 연기가 전통적인 연기와 마찬가지로 캐릭터의 몸과 마음 모두를 표현할 수 있다고, 즉 대상의 리얼리티를 총체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그런데 모션 캡처의 기계적 자동성이 물질적인 수준에서 대상의 형태와 움직임을 정밀하게 포착하는 것을 넘어 정신적인 차원에서 디지털 캐릭터의 감정과 욕망을 표현한다는 것이 정녕 가능하다는 말인가? 흥미로운 것은 이 분야의 다른 개척자들 또한 모션 캡처가 어떤 대상의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 양적인 것과 질적인 것,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모두 포착할 수 있기를 바랐다는 점이다. 관련해서 <아바타>(2009)를 예로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모션 캡처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배우의 움직임보다는 배우의 연기 그 자체에 초점을 두었다. 그런 이유로 이 영화의 제작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모션 캡처라는 단어를 대신하여 퍼포먼스 캡처라는 단어가 쓰이기도 한다. 이 작품이 모션 캡처와 관련해서 새롭게 시도한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배우의 얼굴 근육의 미세한 변화를 포착하기 위해 페이셜 퍼포먼스 캡처를 시도한 것이다. 이는 배우의 연기를 디지털 캐릭터에 충실하게 옮기는 것을 지향한다. 다른 하나는 모션 캡처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가상의 이미지로 전환해서 보여주는 시뮬캠이라는 모니터를 제작 과정에서 활용한 것으로, 이는 배우와 디지털 캐릭터 사이의 물질적 및 심리적 거리를 최소화하는 것을 추구한다. <아바타>의 제작 과정에 모션 캡처와 관련된 이러한 두 가지 새로운 시도가 있었음을 고려해본다면 이 작품은 관객이 디지털 캐릭터를 외형적으로 그럴듯하게 인식하면서 그와 동시에 디지털 캐릭터의 감정적 상태에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려고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과거 앙드레 바쟁이 사진적 이미지의 존재론적 본성을 이야기하면서 말한 “마음을 설레게 하는 현존”, 즉 바라보는 자에게 감각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설렘을 주는 어떤 대상의 현존을 모션 캡처로 획득하려고 한 것이다. <혹성탈출> 리부트 시리즈의 출발과 끝에는 디지털 캐릭터의 ‘몸-만들기 프로젝트’(body-building project)가 있다. 디지털 시각효과 연구자 크리스틴 휘셀은 인간의 퍼포먼스와 디지털애니메이션을 결합하여 디지털 생명체를 만드는 일련의 과정을 몸-만들기 프로젝트라고 부른다. 그에 따르면 디지털 캐릭터는 영혼 없는 신체, 그렇다고 신체 없는 영혼도 아닌 감정, 욕망, 갈망을 체화한 존재이다. <혹성탈출> 리부트 시리즈는 모션 캡처의 제작 공정을 크게 다음과 같이 개선하여 디지털 캐릭터의 물질적 리얼리티와 심리적 리얼리티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먼저 이 시리즈는 모션 캡처 전문 스튜디오에서 배우의 움직임을 포착하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야외 촬영지에서 실사 촬영과 모션 캡처를 동시에 진행해서 만들어졌다. 시저 역을 맡은 서키스의 주요 연기는 모션 캡처 전문 스튜디오에서 허공을 바라보거나 테니스공을 바라보면서 이루어지는 대신 탁 트인 야외촬영장에서 실사 배우인 제임스 프랭코, 제이슨 클라크, 우디 해럴슨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이루어졌다. 이처럼 모션 캡처가 야외 촬영지에서 실사 촬영과 동시에 이루어졌다는 점은 모션 캡처 배우가 디지털 캐릭터가 처해 있는 상황과 맥락을 몸소 체험하면서 연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달라진 제작 여건이 있었기에 서키스는 자신이 연기하는 시저의 실존적 고민을 체화된 형태로 표현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음으로 이 시리즈는 유인원의 머리카락, 솜털, 모공, 주름, 눈동자 외에도 빛, 그림자, 바람 등 자연적 요소의 정밀한 재현에 도전한 결과물이다. 예를 들어 이 시리즈의 3편에 해당하는 <혹성탈출: 종의 전쟁>(2017)은 설원과 같은 자연적 공간을 극한의 배경으로 설정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축축하게 젖은 털과 수축한 근육을 세부적으로 묘사한다. 설원의 추위와 같은 주변 환경에 반응하면서 나타나는 신체적 변화에 대한 사실적 묘사는 극 중 유인원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시선이나 서로를 쓰다듬는 행동에 서사적 개연성과 함께 감정적 의미를 부여한다. 이처럼 이 시리즈는 모션 캡처 배우의 자유로운 연기를 보장하고 디지털 캐릭터의 물질적 리얼리티를 확보함으로써 관객이 작품 속 인물, 사건, 환경 등에 정서적으로 동화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시저라는 디지털 캐릭터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시저는 모션 캡처가 낳은 자식과 같지만, 그런 이유로 시저를 기술에 속박된 존재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시저는 기술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바라보는 이미지와 관객이 상상하는 이야기 속에서도 분명하게 존재한다. 시저를 위하는 길은 시저를 낳은 기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모션 캡처의 기술적 고도화는 대상에 대한 강박적 묘사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혹성탈출> 리부트 시리즈는 디지털 캐릭터의 묘사에 집착하면서도 그것의 과잉을 제어하기 위한 하나의 효과적 수단으로 서사를 중요하게 활용한다. 관객이 시저의 표면을 바라보면서 가질 수 있는 기괴함, 낯섦, 두려움 등은 시저의 갈등과 고뇌에 따른 그의 심리적 상태의 변화, 즉 그의 영혼의 오디세이를 통해 사그라들 수 있다. 시저의 몸과 눈은 인간과의 대립 속에서 도덕적 갈등과 윤리적 고뇌가 불거지는 주요 서사적 국면 속에서 잔잔하게 흔들리거나 격렬하게 요동친다. 그런 이유로 시저의 신체적 떨림을 지독히도 꾸준히 묘사하는 이 영화의 기술적 성취는 시저의 영혼을 다스리기 위함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영웅보단 인간으로, <하얼빈>이 안중근 의사를 바라보는 시선

*<하얼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두만강을 건너 연추로 오려 했지만 살아 돌아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죽은 동지들의 참담한 비명이 귓가를 맴돌고, 팔다리가 떨어져나간 처참한 형상의 시신들이 눈앞을 떠돌았습니다. 나는 길을 잃었습니다. 나의 믿음으로 인해 많은 동지들이 희생되었으니 더는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걸 포기하고 죽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깨달았습니다. 내 목숨은 죽은 동지들의 것이라는 것을. 나는 죽은 동지들의 목숨을 대신하여 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알았습니다. 대한제국을 유린하는 일본 늑대 우두머리, 늙은 늑대를 반드시 죽여 없애자고.”(<하얼빈>의 안중근 대사 중) <하얼빈>은 영웅 안중근(현빈)의 실패로 시작한다. 그가 이끄는 독립군은 함경북도 신아산 전투에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을 무찌르지만 카메라는 승리의 기쁨보다는 전쟁의 참상을 잔혹하게 담는 데 집중한다. 광기의 전장을 옮겨냄으로써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담던 전쟁영화들이 떠오른다. 이후 생포한 일본군을 당장 처형하자는 동료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안중근은 만국공법에 따라 육군소좌 모리 다쓰오(박훈)를 포함한 포로들을 풀어준다. 하지만 동료들이 걱정했던 대로 적군에 독립군 위치가 노출돼 역습을 받고 많은 이가 희생되는 비극적인 일이 벌어진다. 이에 살아남은 독립군, 특히 이창섭(이동욱)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안중근을 비난하며 밀정으로 의심하기까지 한다. 모두가 아는 1909년 10월26일 하얼빈 거사는 홀로 두만강을 건너 독립군 기지에 돌아온 안중근이 동료들의 죽음에 책임을 통감하며 손가락을 자른 단지회맹에서 출발한다. 우민호 감독이 <하얼빈>을 준비하며 참고했던 <안중근 자서전>(1909년 12월13일부터 1910년 3월15일까지 약 3개월간 뤼순 감옥에서 씀)에 따르면 안중근은 어렸을 때부터 사냥을 좋아해서 산과 들로 수렵을 다녔다. 아버지가 동학당(한국 각 지방 곳곳에서 봉기하여 외국인을 배척한다는 명분으로 여러 군현을 돌아다니며 관리들을 죽이고 민중들의 재산을 약탈함)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의병을 일으켰을 때는 16살에 선봉 겸 정탐 독립대에 자원했다가 큰 공을 세우는 등 뛰어난 지략을 타고난 장군감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에 대해 “내 평생 성격에 좋아하는 것이 네 가지 있으니, 첫째는 친우를 사귀는 것이요, 둘째는 음주가무, 셋째는 총포로 사냥하기, 넷째는 준마를 타고 달리는 것”이라고 서술한다. 이따금 독설과 욕도 쏟아내는 그를 친구들은 ‘번개입’(電口)이라고 불렀다. 한동안 천주교 신자로서 민족 계몽 사업에 몸담았던 안중근은 을사늑약 이후 일본의 수탈이 심각해지자 항일 의병을 조직하고 대한의군 참모 중장으로서 독립군을 이끌게 됐다. 하얼빈 의거만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안중근은 범인과 다른 천성을 타고난 고귀한 인물로 신성시되지만 실제 그는 유희를 즐겼고 호전적인 면도 갖고 있었다(<하얼빈>에도 안중근이 술을 많이 좋아한다는 대사가 잠깐 나온다). ‘의사’ 이전 안중근의 입체성은 다른 독립군 캐릭터들에게도 이어지며 <하얼빈>의 영화적 상상력의 재료가 될 수 있다. 한국 기득권의 권력 역학을 범죄 스릴러 장르로 풀어낸 <내부자들>, <스카페이스>의 한국적 오마주였던 <마약왕>, 박정희와 김재규의 관계를 지독한 치정으로 재해석해 장피에르 멜빌식 프랑스 누아르로 풀어낸 <남산의 부장들>에 이어 우민호 감독은 일제강점기 독립투사의 감정에서 스파이물의 문법을 발견했다. 때문에 실제 역사 기록에는 없는 밀정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독립운동의 본거지가 됐던 대동공보사의 위치와 이토 히로부미(릴리 프랭키) 암살 계획이 누설되면서 독립군 중 누군가가 변절해 일본군의 밀정이 됐다는 의심이 피어오른다. 안중근의 거취를 지나치게 궁금해하거나 일본군과 접촉할 기회가 있었던 이들을 중심으로 관객은 몇몇 후보군을 추리게 된다. 중국 대지를 달리며 굽어드는 기차 안에서 스파이의 정체가 드러나는 연출은 <하얼빈>에서 가장 장르적이고 긴장감이 넘치는 대목이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가 밀정(이하 A라고 칭함)을 대하는 태도다. 을사늑약만큼이나 이를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체결하게 한 을사오적과 이완용에 대해 잘 아는 한국인은 일본 제국주의자만큼이나 배신자에 적대적이다. 그럼에도 <하얼빈>은 변절자 A에게 ‘그럴 만한 일이 있었다’며 사연을 부여하는, 어쩌면 주류 정서에 대척될지도 모르는 선택을 한다. 신아산 전투의 참상부터 독립군의 불안한 정서가 반복적으로 묘사되는 것은 극한까지 죽음의 공포에 몰린 A의 배신을 감정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근거다. 일본군에 짐승 같은 취급을 받는 순간에도 비참하게 생존을 갈구하던 A의 심정을 살피고 짐작할 시간을 내어준 영화는 그의 배신이 드러난 이후에도 한번의 기회를 더 준다.“나는 죽은 동지들의 목숨을 대신해 살고 있다.” 단일한 영웅의 클로즈업이 아닌 독립투사 군상의 그룹숏을 선호하는 <하얼빈>의 지배적인 정서는 집단적 죄책감이다. 죽음의 공포가 도사리는 가운데 독립투사들이 목숨을 바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죽음을 맞이한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일본군의 역습을 허용한 안중근이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 독립군의 본거지에 도착한 것도, 그곳에서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도모한 것 또한 죄책감의 발로였다. 변절자는 척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깨고 안중근이 A에게 한번의 기회를 더 부여한 것은 그간 함께 겪었던 죽음의 공포와 인간의 유약함을 뼛속까지 이해하기 때문이다. <하얼빈>은 죽음의 공포를 초월하고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투사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형 집행을 앞두고 떠는 안중근은 죽음 앞에 초연한 영웅이 아닌 가장 원초적인 감정을 간직한 인간이다. 영화는 영웅적 행위가 가장 인간적인 감정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일관적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독립군 중에서도 의인의 고결함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평화적 관용에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사천만 일본인을 모두 죽여서 우리나라가 독립이 될 수만 있다면 난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라며 일본인 포로 석방에 반대했던 이창섭과 달리 전쟁포로는 석방해야 한다는 만국공법을 떠올리고, 그 때문에 참상이 벌어졌음에도 변절자 A에게 “지금은 두려움에 떨고 있지만 반드시 극복할 것이라고 믿는” 또 한번의 기회를 베푼다. 뤼순 감옥에서 저술했으나 완성되지 못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대한제국, 일본제국, 청 3국의 협력 기구 설치와 아시아의 평화적 관계를 제안한다(공용 화폐 사용 등의 내용은 현재의 유럽연합과 같은 국제기구와 닮았다). 물론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실제 시행됐을 때 결국 경제력 차이를 이유로 일본이 주도권을 쥐게 될 가능성이 높아 그리 이상적이라 평가할 만한 논책은 아니지만 그가 반대한 것은 패권주의 자체였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배신자 A의 내면의 고통을 이해하고 투쟁의 목적이 평화에 있다는 본질을 따른 안중근의 선택은 위태로운 투사들의 항쟁을 지속시키는 발판이 된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일본 제국주의는 몰락한다. 때문에 <하얼빈>은 우민호 감독의 말처럼 “하얼빈 거사가 아닌 그다음이 클라이맥스”가 되는 작품이다. <하얼빈>을 두고 일부 대사가 현 비상계엄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고들 한다. “1980년 5월 광주의 과거가 현재를 도왔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했다”는 탄핵소추안 제안 설명이 “나는 죽은 동지들의 목숨을 대신해 살고 있다”는 안중근의 대사를, “어둠은 짙어오고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라는 내레이션은 탄핵 시위를 연상시킨다. 더불어 <하얼빈>의 안중근이 보여준 포용은 각자 세밀한 입장은 다르지만 대통령 탄핵을 위해 목소리를 모은 민중들에게 싸움이 길어지고 내부 갈등이 불거질수록 되새길 초심을 상기시키게 될 것이다. <하얼빈>이 ‘이 시국 영화’의 지위를 점한다면 그 이유는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