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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씨네21> 독자들이 바라는 미래 - 영화비평 강화, 가장 만나고 싶은 필자는 박정민 배우

<씨네21>이 창간 30주년을 맞아 진행한 독자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합니다. 지난 4월23일부터 27일까지 총 238명이 참여한 이번 설문에서, 독자들은 <씨네21>에 대한 다양한 바람을 나누어주셨습니다. <씨네21>이 앞으로 더 다루어주었으면 하는 기사는? 지금 <씨네21> 독자들이 가장 읽고 싶은 글은 ‘한 작품에 집중한 깊이 있는 영화비평’이었습니다. 결국 영화잡지에 바라는 것은 영화에 대한 치열한 탐구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스태프 인터뷰’는 현장을 이루는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달라는 요청으로, ‘긴 호흡의 배우 인터뷰’는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한 인물의 궤적을 함께 따라가고 싶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신작 시리즈 리뷰’와 ‘영화산업 심층 리포트’가 나란히 순위에 오른 것은 OTT 콘텐츠의 확장 속에서 변화하는 감상 지형과 산업의 구조와 흐름에 대한 독자의 관심이 동시에 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술 분야 정보 기사’와 ‘영화인 외 창작자 인터뷰’는 문화 전반을 아우르며 시야를 확장해주길 바라는 요청으로, ‘예비 영화인들의 목소리’는 영화 하는 사람들의 범위를 더 넓혀달라는 바람으로 다가옵니다. 다시 읽고 싶은 연재 코너는?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연재 코너는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였습니다. 정제된 문장과 섬세한 감상이 독자들의 마음속에 긴 여운을 남긴 듯합니다(이어지는 지면에 스페셜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가 실렸으니 놓치지 마세요). 2위는 유쾌한 풍자와 재치 있는 시선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정훈이 만화’로, 여전히 보고 싶고 그립다는 독자들의 한마디가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3위는 ‘한국영화 블랙박스’가 차지했습니다. 깊이 있는 분석으로 ‘공부하듯’ 읽은 독자들이 많았던 코너입니다. ‘신형철의 스토리-텔링’은 문학적 감수성과 영화의 접점을 짚어내며, ‘김영하의 영하의 날씨’는 독특한 시선과 언어 감각으로 많은 팬을 모은 꼭지였습니다. 그외에도 ‘김연수·김중혁의 나의 친구 그의 영화’ ‘이효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고현정의 쪽’ 등 다양한 코너에 대한 향수를 표현한 목소리도 많이 들려왔습니다. 독자들이 뽑은 만나고 싶은 필자 베스트 5인 독자들이 가장 만나고 싶은 필자는 출판사 무제의 대표이자 작가이기도 한 박정민 배우였습니다. 이어서 이동진 영화평론가와 한강 작가, 연출자 중에는 박찬욱, 봉준호 감독이 러브콜을 받았습니다. 저희도 지면으로 무척 뵙고 싶은 분들인데요. 독자들의 바람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을 기다려봅니다.

[기획] 스페셜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 일기의 영화

※ <콘클라베>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월8일 혁명이나 혁신이라 하면 속도를 높이는 변화를 연상하기 마련이지만, 영화 세계에서는 느린 쪽이 혁명적이다. 전후 네오리얼리즘, 타르콥스키, 차이밍량, 샹탈 아케르만 등 상이한 문화권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느림의 미학을 예술적 무기로 삼는다는 사실이 일견 신기하기도 하지만, 전세계 주류 상업영화의 표준인 할리우드영화가 더 짧은 숏과 더 빠른 편집을 향해 질주해왔기에 이에 대한 안티테제들에서 공통점이 발견되는 현상은 자연스럽다. 빠른 시간이 처리되는 시간이라면 느린 시간은 체감되는 시간이고 배우는 시간이다. 켈리 라이카트 감독과 미셸 윌리엄스의 <쇼잉 업>도 느릿하다. 현대 예술가의 삶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이 영화는 이렇다 할 낙차가 없는 이야기다. 포틀랜드의 세라믹 아티스트 리지(미셸 윌리엄스)는 미대 교직원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시간을 쪼개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리지의 집주인인 성공한 설치미술가 조(홍차우)는 이따금 리지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고, 부상당한 비둘기를 돌봐야 하는 뜻밖의 사태까지 발목을 잡는다. 일상의 간섭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것들을 그러모아 안고 리지는 참을성 있게 테이블에 앉아 심플한 동작으로 물질의 상태를 바꿔나간다. 흙을 빚고 구워 아름다운 사물을 짓는다. 전시회 개막날 그동안 리지에게 스트레스를 준 친구와 가족을 포함해 작은 갤러리에 모여든 오붓한 예술 공동체 멤버들을 지켜보며 우리는 예술가는 혼자 작업할지언정 혼자서는 아무것도 완성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들은 서로 작업의 계기이고 라이벌이고 관람자다. 있어야 할 자리에 나가 하루치의 일을 하는 자들이 예술가다. 스스로 교수로서 학생을 가르치며 2, 3년에 한번씩 영화를 만들어온 켈리 라이카트 감독은 그렇게 예술 행위에 따라붙는 부르주아적 아우라와 신비를 걷어낸다. 현재 서울 리움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피에르 위그의 <휴먼 마스크>(2014)는 ‘인류세’ 이후 세계를 상상하는 작품이 많아진 최근 영화의 흐름과 맞물려 시선을 붙든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버려진 식당에 소녀의 옷을 입고 가면을 쓴 채 방치된 원숭이는 훈련받은 서빙 행동을 목적 없이 반복한다. 인간과 동물, 연민과 소외, 연기와 주체성 사이에서 무한 진동하는 이 비디오는 ‘림보’ 그 자체다. 1월9일 리지는 영화평론가이자 미술가였던 매니 파버(1917~2008)가 창안한 개념에 의하면 ‘흰개미 예술가’다. ‘흰개미 예술’은 ‘흰 코끼리 예술’과 반대된다. 흰 코끼리 예술이 걸작과 거장을 추구하고 거대 담론과 작품의 완성도를 중시하는 반면, 흰개미 예술은 미시적인 것에 몰두하고 과정 자체에 집중한다. 최종 목적을 정하지 않고 어깨를 숙이고 눈앞에 있는 질료를 씹어서 작품을 만든다. 파버의 친구인 장피에르 고린은 “흰개미 예술은 제한된 지형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그 지형의 모든 부분을 어떻게 문제화할 것인가에 관한 탐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쇼잉 업>에서 리지의 예술 세계는 그의 작업 테이블 위에 있으며, 리지는 자신의 팔꿈치 너비 안에 있는 평면과 위에 올려놓은 재료들을 속속들이 안다. 흰 코끼리 예술가들은 고공에서 내려다보는 신적 시점이 진리의 총체를 파악하는 데에 유리하다고 여기지만 정작 높은 곳에서 보는 시야는 넓을지 몰라도 구름과 바람으로 흐리기 일쑤다. 흰개미 예술은 ‘루틴’의 아름다움, 혹은 현대사회의 위태로운 일상을 지탱하려는 안간힘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위에서 말한 느린 영화, 슬로 시네마와 닮았다. 매니 파버와 친구들이 제시한 흰개미 예술의 태도를 당연히 관객에게도 적용해볼 수 있다. 영화의 예술적 테제, 작가적 시그니처, 상징을 추려내 명세서를 만드는 대신, 현실의 표면으로 만들어지는 예술이 영화이기에 끌려들어온 우연한 디테일과 시간의 흔적에 감각을 열어두기. 그래서 한편의 영화에서 더 많은 입구와 출구를 찾아내기. 3월2일 <아노라>가 오스카 작품상을, 마이키 매디슨이 여우주연상을 탔다. 숀 베이커는 편집, 각본, 감독, 작품상을 하룻저녁에 수상해 평생 DIY 감독으로 고생한 보람을 찾았다. 숀 베이커는 미국 자본주의 변두리의 가려진 시장에서 먹고사는 인물들에게 꾸준한 관심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한 감독이 주로 다루는 계급만으로 그의 영화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우선 “왜?”의 물음이 있다. 2018년 <플로리다 프로젝트> 개봉 당시 서울에 온 그는 내게 빈곤층의 서사가 더 흥미롭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했다. 다만 영화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진입 비용’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복한 계층이 필름메이커가 되는 비중이 높고 자연히 영화 속 인물의 계급도 편중되기 마련임을 깨달은 베이커는, 이왕이면 좀처럼 재현되지 않는 인물들을 통해 보편적인 욕망과 우여곡절을 지닌 삶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뿐이라 했다. 다음은 “어떻게?”다. 방법론적으로 <아노라> 이전까지 지역과 주민을 취재하고 캐릭터를 만드는 그의 방식은 마이크 리의 그것과 유사한 구석이 있다. 그러나 숀 베이커는 탐욕스러운 영화광이기도 하다. <아노라>에서 테이크 댓의 신나는 노래와 함께 고속촬영으로 클럽 광경을 보여주는 오프닝 시퀀스에서는 “내가 언제 이 정도 규모로 익스플로이테이션영화를 만들어볼 수 있겠어?”라는 감독의 비밀스러운 흥분도 전해진다. 베이커의 초기작 <테이크 아웃>(2004)은 중국집 폐점 전에 브로커에게 줄 150달러를 벌어야 하는 불법 이민 배달부의 이야기인데, 그의 동분서주는 숨찬 노역이지만 감독은 그의 배달을 틈타 뉴욕 지붕 밑의 다양한 가구(家口)를 엿보는 즐거움을 숨기지 않는다. 한편 숀 베이커의 영화는 ‘츤데레’들로 북적인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그의 인물들은 위기에 취약하다. 간혹 찾아오는 행복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 미사여구는 그들의 입에 잘 붙지 않는다. 그들의 친절과 우정은 예쁘게 표현되지 않는다. <탠저린>은 영화 전체가 언쟁이고 <아노라>는 티격태격 스크루볼코미디로 분류해도 손색이 없고 <스타렛>의 나이 차 많은 두 여자는 몇번이나 절교할 뻔한다. 베이커는 서로 다른 둘 이상의 개인이 만날 때 가장 일어날 법한 물리적 작용은 ‘충돌’이라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베이커는 끝내주는 라스트신을 욕심내는 엔딩 요정이다. 다른 건 몰라도 엔딩은 알고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다고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밝힌 그는 작품마다 절묘한 착지법을 찾아낸다. 그의 마지막 신은 첫 장면의 자리에 역방향으로 도착하거나,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궤도로만 다닐 필요가 없음을 입증하거나 구겨진 종이 쪼가리처럼 보이던 인물이 도로 펴지기 시작하는 첫 찰나를 보여준다. 3월9일 평론가 남왈리 세르펠은 최근 <뉴요커>에 기고한 글에서 오스카 작품상 후보를 비롯한 최근 주요 영화들이 신 직설주의(New Literalism)에 물들어 있다고 우려했다. 신데렐라 스토리로 요약되는 <아노라>, 문자 그대로 젊은 신체가 50살 여성의 등뼈에서 태어나는 <서브스턴스>, 자유의 여신상을 뒤집어놓는 노골적 상징을 쓴 <브루탈리스트>, 성전환수술 과정을 고스란히 가사로 쓴 뮤지컬 <에밀리아 페레즈> 등은 불분명한 뉘앙스와 아이러니를 제거하려는 강박적 재현으로 점철돼 있다고 세르펠은 비판한다. 반복은 예술의 기초이고 부정확한 반복으로부터 창조가 시작되는데 신 직설주의의 반복은 중복에 가깝고 역사를 동시대적 경험으로 재연하는 대신 ‘복붙’할 뿐이라는 요지다. 그러면서 세르펠은 <키메라> <챌린저스>와 더불어 에드워드 버거의 <콘클라베>를 호평했다. <콘클라베>는 가톨릭 도상과 의례의 시각화는 선명하기 이를 데 없지만 예측 불가한 드라마와 계시적 표현으로 관객의 미디어 리터러시를 신뢰했다는 이유다. 최근작 영화들을 구분하고 평가한 남왈리 세르펠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콘클라베>가 자명한 진리와 확신을 경계하고 현대 종교가 처한 위기의 돌파구를 경계를 흐리는 간성(intersexual)의 존재에서 찾는 이야기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전 시대 영화에서 인터섹슈얼이나 트랜스젠더는 위장이나 속임수의 플롯과 관련됐다. 주인공이 사랑한 여성이 간성의 신체를 드러내는 <크라잉 게임>(1993)의 결말부는 부정적 충격으로 묘사됐다. (진실을 안 남자는 구토한다.) <콘클라베>는 반대로 젠더 이분법 밖에 있는 베니테스 주교의 육신과 거기에 깃든 영혼을, 교회의 관용을 넓히고 현 질서에 대한 겸허한 회의(懷疑)를 북돋을 수 있는 반석으로 간주한다. 영화는 베니테스가 수술을 통해 완전한 남성의 몸으로 전환하지 않은 이유를 확정하지 않는다. 당사자의 대사는 “신이 준 것을 바꿔야 할 불가피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이나, 선종한 진보적 선대 교황은 간성 정체성이 교회의 혁신에 유용하리라는 전망을 가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새 교황 이노켄티우스의 정체성은 로렌스 주교(레이프 파인스)와 베니테스 사이의 비밀로 남는다. 공표되지 않은 교황의 정체성은 얼마나 교회를 바꿀 수 있을까? 현재 가톨릭은 트랜스젠더의 사제 서품을 금하는 한편 간성인의 그것에 대해서는 전면적 금지 입장을 취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안정적 성정체성을 강조하는 교회 전통에 의해 당사자에게 양성 가운데 보다 우위에 있는 젠더를 택일하기를 종용하고 그것이 여성일 경우 성직에 있을 수 없다. 만약- 그럴 리 없지만- <콘클라베>의 속편이 베니테스의 커밍아웃 스토리가 된다면 영화가 본격적으로 현실을 추월하는 셈인데 적어도 남왈리 세르펠 평론가는 기꺼워하지 않을 것 같다. 밥솥 종교가 달라 몰래 사귀는 연인이 모르스부호처럼 종일 타전하는 문자, 마음에 둔 여자를 향해 한편씩 써내려간 시, 어느 날 UFO처럼 날아온 전기밥솥.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의 뭄바이는 희미한 신호로 웅성인다. 간호사 프라바는 중매결혼 직후 독일로 취업 간 남편의 침묵을 어찌 판단할지 알 수 없던 중 독일제 전기밥솥을 소포로 받는다. 쪽지는커녕 발신인 이름도 없는 무뚝뚝한 선물을 받은 날 밤 프라바는 다른 남자에게 받은 사랑의 시구를 가만히 읽어본다. 마치 둘을 결합하려는 듯. 또 다른 공허한 밤 프라바는 팔다리를 접어 온몸으로 가만히 밥솥을 안아본다. 감정적 허기와 욕망이 담긴 이 몸짓은 온후한 작별 인사이기도 했음을 우리는 나중에 알게 된다.

[특집] 풍부한 토대와 자기만의 리듬, <우리 집> <모든 밤을 기억하다> 기요하라 유이 감독

1992년생 기요하라 유이 감독은 2018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 기획전 ‘일본영화의 새로운 물결’을 통해 국내에 본격적으로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도쿄예술대학원 졸업 작품으로 만든 첫 장편 극영화 <우리 집>으로 제40회 피아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고, 두 번째 장편 극영화 <모든 밤을 기억하다>로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 부산국제영화제 등 국제영화제의 너른 관심을 받고 있다. <우리 집>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뉜 이야기 구조를 택한다. 한집이지만 두개의 세계에 사는 네명의 여성이 간접적으로 서로간의 기억을 공유하며 서사가 산발적으로 이어지는 작법을 택한다. 유령처럼 보이는 인간들의 신묘한 일상은 기요하라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자크 리베트나 아피찻퐁 위라세타꾼의 영향을 받아 “영화에서의 리얼리티를 어떻게 설정할지의 문제”에 천착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그의 영화적 작법은 모던 시네마의 미학적 유산을 적절히 계승하되 소마이 신지, 모리타 요시미쓰 등 이전의 일본 감독들이 보여준 일본 영화만의 파격적인 정동을 곳곳에 섞어낸다. “춤이란 건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행위고, 인간의 움직임을 보여주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하며 인간의 움직임에 주목했던 그의 두 번째 장편 <모든 밤을 기억하다>는 형식주의적 모양새에 집중했던 <우리 집>보다 더 정제되고 편안한 형태의 영화이자 말 그대로 ‘인간의 근원적인 움직임’을 더 세세히 파고드는 역작이었다. 근래 동시대 일본 감독인 스기타 교시나 사이토 히사시, 오타 다쓰나리 혹은 최근의 오기가미 나오코처럼 등장인물들의 전원적인 일상을 천천히 좇는 듯한 이 영화는, 무성영화의 톤 앤드 매너 아래에서 사람을 비롯한 자전거, 기차, 불꽃, 나무, 바람, 돌 등 온갖 생물과 무생물들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포착한다. 카메라는 아주 천천히 그것들의 동선을 채록하고 상하좌우 프레임을 넘나드는 수직과 수평의 운동으로 조립해낸다. 말수는 적고, 움직임은 다채로우며, 그 움직임의 리듬이 수학적으로 절묘하게 배치되어 있는 덕에 피사체들의 동선만 유심히 바라보더라도 하나의 영화가 완성된다. 다만 <모든 밤을 기억하다>는 그 모든 움직임의 근원에 ‘사람’의 생태와 성정이 묻어날 수밖에 없다는 일견 인본주의적인 결론에 도달하며 <우리 집>에서 보여준 ‘인간의 기억’이란 테마에 다시금 복귀한다. 별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던 무생물들의 존재와 주연들의 관계는 사람들 각자가 지니고 있던 훼손된 필름, 부식된 디지털 메모리의 기억을 복원하면서 달라진다. 그들은 기억의 연결과 복구를 통해 서로에게 이어져 있던 인연의 실을 발견한다. 즉 동시대 일본 작가들이 하나의 시대 의식으로 견지하고 있는 인간적 회복의 가능성을 기억이라는 매개와 카메라라는 도구를 통해 적절히 조합해낸 것이다. 요컨대 기요하라 유이는 풍부한 영화사적 맥락 위에서 자기만의 템포와 로맨틱함을 유려히 조정할 줄 아는, 그러는 동시에 작금의 시대가 원하는 (커다란 절망 이후) 삶의 향상성을 부담 없이 내재할 줄 아는 독보적인 영화 작가로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그의 세 번째 장편이 과연 어떤 결과물을 보여줄지 한없이 기다려지면서, 그의 작품이 더 자주 국내에 소개되길 바란다.

[특집] 언제까지 치유할 것인가? 언제까지 눈을 피할 것인가? - 동시대 일본영화의 경향으로 비추어보는 한국영화의 한계

하마구치 류스케와 미야케 쇼가 유럽의 주요 영화제에서 거둔 성과는 동시대 일본영화의 뚜렷한 결점을 보여주는 표식이기도 하다. 하마구치 류스케로 대표되는 일본의 뉴 제너레이션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 2019년 코로나19 팬데믹 등의 사회적 참사를 자신들의 영화에 직접적으로 내포하지만, 이러한 사태들의 영향을 ‘치유와 극복’이라는 주제 아래에서 일관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서구권의 영화제들은 이러한 그들의 태도에 감복하며, 삶의 향상성을 찬미하는 일본영화의 은밀한 나르시시즘을 미화하고 있다. 이는 마치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 무렵 이와이 슌지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가와세 나오미가 등장하여 <러브 레터>나 <환상의 빛> <수자쿠> 같은 작품을 통해 일본 특유의 체념적 정서를 미적으로 승화했던 것과도 비슷한 맥락으로 감지된다. 너무도 선연해진 치유의 감각 치유와 극복이란 주제에 치우친다는 경향만으로 동시대 일본영화의 가시적 성취를 격하하긴 어려울 테다. 다만 하마구치 류스케와 미야케 쇼가 그들의 초기 영화인 <해피 아워> <와일드 투어> 등에서 보여준 워크숍 영화 등의 미학적 활력을 잃은 채 서구권의 입맛에 맞는, 전술한 대로 동양의 ‘신비성’이나 ‘내적 초월성’에 기반한 드라마로 응집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적할 법하다. 김병규 영화평론가가 말했듯이 워크숍 영화는 “임시적인 규칙을 내세워 공동체를 조직하고 그로부터 이탈하는 위반까지도 포착할 수 있는 ‘워크숍 현장의 천재성’”을 드러내는 매개로서 21세기 영화의 지반의 어느 곳보다도 탄력적인 생동을 자아낸 곳이었다. 요컨대 영화의 바깥을 드러내며 영화 매체 본연의 한계와 그 너머 사회의 냄새를 탐색하고, 이어 그 개선을 모색하는 영화적 실천의 장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실천적 시도는 전술한 1990~2000년대의 일본영화에도 유사하게 존재했던 풍광이다. 예컨대 아오야마 신지의 <헬프리스>는 일본의 아름다운 자연을 수직으로 내려다보는 관조적 시선을 통해 일본 사회의 치부를 드러냈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큐어>나 기타노 다케시의 <하나비>, 쓰카모토 신야의 <동경의 주먹> 등은 옴진리교 사건, 버블경제 이후 일본 사회의 고질적 염증이었던 죽음의 충동을, 구수연의 <우연하게도 최악의 소년>과 최양일의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는 재일교포의 여전한 자아분열증을 가시화했다. 동시대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 오토모 가쓰히로의 <아키라>, 안노 히데아키의 <신세기 에반게리온> 등의 재패니메이션이 공상과학의 상상력으로 표현했던 파괴적인 시대정신도 유사했다. 그러나 지금 일본영화의 주류 정서는 사회의 상흔을 표면화하여 렌즈로 직시하는 의지적 실천이 아니라, 상흔의 총체를 개인(들)에게 내재하여 그것을 정서적으로 극복하게 하려는 자기 다독임으로 기울어졌다. 이를테면 죽거나 떠난 가족을 그리워하고 잊지 못하는 한 인물이 새로운 일상의 바람과 소통의 가능성으로 회복에 이른다는 일련의 플롯은 <환상의 빛>에 이어 <드라이브 마이 카>, 후카다 고지의 <러브 라이프>에 연결되고 있다. 혹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걸어도 걸어도>가 죽음의 필연성을 ‘나비’라는 자연물의 체념적 뉘앙스로 종합했던 길도 반복되고 있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자연의 무심함 앞에 선 인간의 죽음을 끝내 영구한 미스터리로 봉인한다. 이는 홍성남 영화평론가가 <수자쿠> 등 1990년대 후반의 일본영화를 두고 “체념과 단념의 정서를 체화하는 삶의 태도”를 통해 “개념적이고 이성적인 사유를 도외시한 채 그저 ‘이대로임’이나 ‘저대로임’이란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선(禪)적인 태도”(<필름 컬처> 2호)를 취했다고 분석한 일과 이어진다. 이러한 선택은 치유에 대한 나름의 긍정적인 열망임과 동시에, 치유의 주체와 대상 사이에 있는 근본적 이물감을 외면하는 회피이기도 하다.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로 일본 사토리 세대의 부유를 표면화했던 미야케 쇼는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과 <새벽의 모든>을 통해 계속하여 ‘회복’을 내세운다. <새벽의 모든>의 첫 내레이션, “난 어떤 인간으로 보이고 싶은 걸까?”란 자문은 감독 자신을 포함한 동시대 일본영화의 정체성을 고심하는 비유로도 보인다.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로 사토리 세대의 가난한 혼란을 전면화했던 이시이 유야 역시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 <우리가 말하지 않은 것>으로 타자와의 연대를 극의 중심으로 소환했다. <플랜 75>에서 일본의 고령화사회 문제를 가감 없이 직시했던 하야카와 지에 감독이 11살 소녀의 가족 이야기로 치유의 감각에 몰두한 <르누아르>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일 역시 무관하진 않아 보인다. 한국형 픽션의 다큐멘터리적 궁핍에 대해 하지만 동시대 일본영화는 카메라 바깥의 균열을 명징한 징후로 드러내는 사회에의 비판적 실천이나 여타 형식적 즐거움을 어느 정도 포기한 대신 적어도 시대정신, 시대감각이라는 무형의 감성을 영화적 경향으로 녹여내고는 있다. 이것이 비록 전술한 대로 다소 편향적인 치유의 감수성에 몰두해 있다 해도 모두가 오시마 나기사나 소마이 신지, 아오야마 신지처럼 날 선 감각을 유지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아다치 마사오는 아베 전 총리 피살 사건을 즉각적으로 극화한 <레볼루션 +1>을 만들었고, 근래 개봉한 소라 네오의 <해피엔드>도 일본의 1960~70년대를 다분히 현재화하게 만드는 정치적 대범함을 뽐내며 주류영화의 빈곳을 채우고 있다. 사실 이러한 논지를 기반으로 진정 비추고 싶은 바는 동시대 일본영화에 대한 반감이라기보다 그에 비춰 바라본 한국영화의 비판 의식이다. 단적으로, 동일본대지진은 시도 때도 없이 일본영화를 통해 픽션화되나 왜 한국영화는 세월호 참사를 픽션의 영역으로 더 끌어오지 못하는 것일까.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서 일본 청춘의 파괴적 충동을 아름다움으로 승화했던 이와이 지마저 동일본대지진을 극화한 <키리에의 노래>를 내는 시점이니 이는 자연스레 들 수밖에 없는 의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한국영화의 픽션엔 다큐멘터리적인 감각이 부재하다. 하마구치 류스케가 흩뿌리는 시대정신의 뉘앙스는 그가 동일본대지진을 다뤘던 다큐멘터리 <파도의 목소리> 연작에서 읽힐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동시대 일본 뉴 제너레이션의 틈새 곳곳에는 고모리 하루카와 같이 끝없이 일본의 사회적 재난을 응시하는 다큐멘터리적 시선이 존재한다. 그러나 한국영화는 90년대 코리안뉴웨이브 당시 <바람불어 좋은 날> <고래사냥> <칠수와 만수> <바보사냥>이 그렸던 시대의 잔혹, 혹은 2000년대 무렵 <살인의 추억> <공동경비구역 JSA>가 복기했던 역사의 현재화 작업을 끊어버린 것처럼만 보인다. <서울의 봄>과 <파묘>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이 작품들이 대중의 시선을 끌며 천만 관객을 돌파한 것은 결국 한국적인 것으로 지시할 수 있는 역사적 기반이 픽션의 틀 아래 최소한으로 똬리를 틀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픽션이 다큐멘터리적 시선 아래 사회의 담론을 끌어올 필요는 없다. 그러나 지금 만약 한국영화의 위기를 말하고 싶은 자라면 이러한 문제의식을 등한시할 순 없을 것이다. 영화 매체를 민족주의적인 역사의 수단으로 삼는 일 역시 위험하긴 마찬가지겠지만, 그럼에도 ‘한국영화’란 정체성을 유지하고 그것을 대외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방식은 당연히도 시대정신의 형성, 공동체의식의 장르화에 있다. 2023년 <씨네21>이 당시의 여름영화를 두고 나눴던 대담에서 김소희 영화평론가는 “지금의 한국영화는 모두가 다음을 얘기하는데 아무도 현재를 얘기하진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라고 지적했다. 그의 말을 변주하자면 지금의 한국영화는 현재를 말할 과거의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 가깝다. 이 대담의 기반이 됐던 상업영화 진영에만 국한하는 말은 아니다. 최근 들어 공개되는 대개의 독립영화 역시 사적 경험, 좁은 담론에 기반한 소재주의적 드라마 안팎, 혹은 독립영화라는 이름의 제도에서 벗어나 대안적 형식미를 택하는 가욋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모양새다. 2019년 <벌새>가 (마찬가지로 작품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한국 독립영화에 하나의 분기점이 될 수 있던 이유, 조금 더 돌아가 이강현 감독의 <파산의 기술>이 여전히 한국 다큐멘터리의 자오선이 되는 이유는 이 영화들이 어떠한 시대의 풍취를 사유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풍취란 특정한 사회적 사건을 다루기만 하면 된다는 소재주의적 발상이 아니다. 사건이 풍경으로 다뤄질 수 있는 매개라면, 풍취란 말 그대로 외부의 자극을 주관적 경험으로 수용한 뒤 그것을 언어로써 외부와 공유하는 감각의 복잡다단한 과정이다. 손에 명확히 잡히진 않으나 모두가 순수하게 공유하는 그 분위기의 총체. 동시대 일본영화가 공유하는 바로 그 무형의 시대감각이다. 나아가기 위해선, 그리고 어떠한 ‘파도’를 만들기 위해선 우리가 함께 겪었던 혹은 겪고 있는 시대를 직시한단 집단적 동력이 우선 필요하다.

[culture book] 제국의 음모

하스미 시게히코 지음 임재철 옮김 이리에 데쓰로 해설 문학과지성사 펴냄 하스미 시게히코는 한국에서는 영화비평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불문학자이자 소설가이기도 하다. 이번에 출간된 <제국의 음모>는 일본에서 1991년에 처음으로 간행된 책으로, 본문 110여쪽의 가벼운 분량이지만 내용은 1852년부터 1870년까지 프랑스 ‘제2제정기’를 다루기 때문에 그간 하스미의 국내 출간작을 읽어온 독자에게도 낯선 도전이 될 책이다. 영화비평가 이리에 데쓰로의 해설을 빌리면 <제국의 음모>는 ‘막심 뒤 캉론’이라는 부제가 붙은 <범용한 예술가의 초상>과 <보바리 부인론>과 연결되는 ‘제2제정기 시리즈’로 느슨하게 묶일 수도 있다. 영화평론가 임재철이 번역했고 상세한 ‘옮긴이의 말’을 더했다. 한국에도 출간된 하스미의 소설 <백작부인>의 문체를 느낄 수 있는, 어렵고 복잡하지만 경쾌한 글이다. ‘모노가타리’(이야기)의 형식을 띤 역사 다시 쓰기. 제2제정기는 루이 나폴레옹이 나폴레옹 3세로 즉위한 시기를 말한다. 1장 ‘사생아’는 정통 적자인 형 루이 나폴레옹과 ‘사생아’인 동생 드 모르니의 관계성을 설명하는 글이다. 의붓형에게는 ‘아버지의 이름’ 나폴레옹이 있고 의붓동생 에게는 ‘타인의 이름’ 드 모르니가 있다. 그리고 그 둘이 마침내 프랑스의 권력을 장악할 준비를 갖춘다. 2장 ‘음모’는 권력의 자리에 머무르기 위해 ‘적자’를 압박하는 ‘사생아’의 서사가 된다. 근대국가 최초의 쿠데타가 이렇게 일어난 다. 흥미로운 부분은 곳곳에 숨어 있다. “한때 (이 쿠데타에 맞선) 무장봉기를 꿈꾸기도 했던 시인 빅토르 위고는, ‘무 기를 들어’야 할 ‘국민’을 만나지도 못한 채 망명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시상을 늘어놓은 ‘선언’ 따위로는 퇴고를 거친 대통령(루이 나폴레옹)과 내무대신(드 모르니)의 간결한 요설에 도저히 맞설 수 없었다.” 이 세세하고 복잡한 서술은 7장 ‘반복’에서 제법 아름답게 하나의 이야기로 완결된다. 그리고 저자 후기의 첫 문장은 그 ‘뒷맛’을 진하게 만든다. “‘범용’을 그림으로 그린 듯한 인물들의 그림자가 나름의 명성을 코트처럼 몸에 걸치고, 냉소적인 발걸음 으로 천천히 역사를 가로질러간다.” 논문도 에세이도 아닌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팸플릿’으로 읽혔으면 한다는 하스 미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trans x cross] 지금의 내게 필요한 이야기를 찾는다, 창작 판소리 <눈, 눈, 눈> 세계 초연 마친 소리꾼 이자람

이자람만큼 트랜스크로스 지면에 어울리는 인터뷰이가 있을까. 이자람은 소리꾼으로서 과거와 현재를 횡단(trans- )한다. <심청가>를 시작으로 전통 판소리 다섯마당을 모두 완창했고 이중 동초제 <춘향가>를 스무살 나이에 8시간 완창해 기네스북에 올랐다. 그의 아성은 창작 판소리를 통해 견고해졌다.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과 <억척 어멈과 그 자식들>을 각각 판소리 <사천가>와 <억척가>로 각색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라틴아메리카의 마르케스와 앵글로 아메리카의 헤밍웨이도 이자람의 눈에 들면 판소리 <이방인의 노래>와 <노인과 바다>로 환생했다. 이자람은 판소리 이외의 분야를 가로지르는(cross) 일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소리꾼이기 이전에 “예솔아~ 할아버지께서 부르셔”로 유명한 노래 <내 이름(예솔아)>의 ‘예솔이’로 데뷔했던 가수다. 2004년엔 록밴드 아마도이자람밴드를 결성해 크고 작은 무대에서 20년간 밴드 보컬로 활동했다. 뮤지컬과 연극, 영화와 시리즈를 가리지 않고 출연한 배우인 동시에 에세이집 <오늘도 잘함>을 낸 에세이스트다. 전천후 아티스트 이자람이 다시 소리꾼로 돌아왔다. 그의 판소리 신작 <눈, 눈, 눈>은 톨스토이의 소설 <주인과 하인>을 재창작한 작품이다. <눈, 눈, 눈>의 세계 초연 내내 언론과 관객은 어김없이 “역시 이자람”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또 하나의 걸작을 써낸 이자람이 <눈, 눈, 눈>의 세계 초연을 마치고 <씨네21>을 찾았다. 이때 씨네리가 장단을 치고, 이자람이 소리를 허는디! - 6년 만의 판소리 신작이다. 이번엔 톨스토이의 소설 <주인과 하인>을 각색했는데. = 대학원에 다닐 때 메레디스 몽크가 운영하는 사운드 워크숍에 참여한 적 있다. 워크숍을 위해 파리의 한 에어비앤비에 머물렀는데 그 후파리에 갈 때마다 가족을 찾듯 이 집에 머문다. 호스트인 데니스는 혜안을 가진 사람이다. “네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어?”와 같이 내가 어떻게, 얼마나 성장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질문을 유도한다. 2024년 1월에 파리의 태양 극단(Théâtre du Soleil)에 작업하러 갔을 때도 유사한 질문을 받았다. 으레 그랬듯 차기작으로 어떤 작품을 각색하고 싶은데 쉽지 않다는 답을 건네자 데니스가 <주인과 하인>을 추천했 다. 한국에 돌아와 원서와 번역서를 둘 다 읽고 충격을 받았다. 바로 창작에 돌입했다. - 번역본이 시중에 있어도 우선 원서를 독파하나. = 번역본은 역자의 시선이 한겹 덧씌워질 수밖에 없지 않나. 번역가가 자란 문화권을 비롯한 개인의 견해가 묻어나니 읽고 나면 내 안의 의심이 자라난다. 못하는 영어지만 우선 더듬더듬 번역기를 돌려가며 원어로 쓰인 문장을 이해하는 시간을 반드시 거친다. 그래야 이야기가 온전히 내 안에 들어온다. - 처음 텍스트에서 발견한 미덕이나 가능성을 창작 과정에서 끝까지 관철하는 편인가. = <주인과 하인>을 읽자마자 한대 맞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감상 즉시 느낀 이 통각을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첫 목표였다. 이 결심을 향해가는 과정이 참 지난했다. 우선 내가 바실리를 좋아하게 되기까지 오래 걸렸다. 그를 좋아해보고자 바실리를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도 존대하는 사람으로 그려보기도 했다. 이러 구러 작창까지 마치고 3개월 전 즈음 실연해보니 고수가 “재미가 없다. 하나도 모르겠다”고 하더라. 캐릭터의 이름이 어렵고, 캐릭터들의 생김새가 눈에 잡히지 않고, 이야기의 초점이 모호하다는 피드백이었다. 원작의 무게에 짓눌려 판소리 특유의 친절함을 잊은 것이다. 그때 부터 ‘Be Kind’의 마인드셋으로 대본을 전면 수정했다. 이준형 고수 덕분에 무겁고 깊은 이야기 전면에 가볍고 경쾌한 터치를 배치할 수있었다. - <노인과 바다>부터 바탕소리 구현에 중점을 둔판소리를 만들어왔다. 소리꾼은 오직 재담, 소리, 너름새로, 고수는 북장단으로 관객과 만나야 한다는 일념이 이번 작품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 북 이외의 다른 악기를 쓸 수도 있다. 내 안의 다른 욕심들이 “이 정도 퀄리티 구현을 위해서 라면 다양한 음악이 들어가야지”라며 고개를 들거든. 그 욕심이 창작에 훼방을 놓는다. <노인과 바다>를 기점으로 여러 상념을 밀어둔 채맨주먹으로 승부하는 중이다. 아직까진 이 감각으로 작품을 만드는 편이 재미있다. - 주요 캐릭터 중 특히 종마 제티 연기가 일품이었다. 레퍼런스가 있었나. = 제티의 외양과 몸짓은 승마를 통해 배웠다. 말을 직접 보고 어루만질 때마다 느껴지는 이들 특유의 섬세함과 신비로움이 있다. 다른 작품 에서도 주변 사람들을 참고해 인물형을 구축했 다. 가령 <이방인의 노래> 속 대통령은 나의 스승인 송순섭 선생님과 손석희 앵커를 배합한 결과다. 송순섭 선생님이 자주 짓는 자세와 표정에 손석희 앵커의 카랑카랑함을 더했다. 내게 음성상징어란 습관처럼 마시는 물에 가깝다 - 판소리가 촉발하는 몰입의 원초성이 있다. 소리 꾼의 사설과 고수의 장단에 “얼씨구!” “잘 한다 ~”와 같이 반응하다 보면 세트도 특수효과도 전무한 무대에서 펼쳐지는 스토리텔링에 절로 이입 하게 된다. = 관객의 추임새가 소리꾼에게도 좋은 자극을 선사한다. <억척가>를 한창 선보일 때는 관객과 호흡하는 이 순간이 어쩌면 내 인생의 황금기일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노인과 바다>를 올렸을 땐 운 좋게 황금기가 갱신됐는데 관객이 직접 무대와 객석 사이의 장벽을 허물 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눈, 눈, 눈> 에 이르니 장식 없이 오직 판소리로 소통을 이룬 것 같아 어안이 벙벙하다. 원초성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게 조심스럽지만 관객이 판소리 현장에서 오롯이 본인답게, 본능에 따라 즉물 적으로 존재한 뒤 공연장을 떠날 수 있다면 소리꾼에게는 그만한 영예가 또 없을 것이다. - 판소리 언어의 주요한 특징이 음성상징어의 빈번한 활용이다. 이자람의 판소리도 의성어와 의태어의 활용이 두드러진다. 그런데 정작 대본을 쓸 때음성상징어를 계산해 넣기보다 새로 만드는 쪽에 가깝다고. = 내게 음성상징어란 삶에서 습관처럼 계속 마시는 물에 가깝다. 일상에서 의성어, 의태어를 정말 많이 흉내낸다. 이를테면 어떤 바람이 불면그 바람이 어떤 소리로 들리는지 입으로 내보는 편이다. 일상의 습관이 그대로 작품에 반영 되는 건 장점 아닐까. 직접 만드는 의성어, 의태어도 많아서 정작 대본에 쓰인 음성상징어 중엔 국어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것도 많다. 이번 <눈, 눈, 눈>의 경우 <주인과 하인>을 읽으며 느낀 장대한 눈의 소용돌이가 언어를 통해 서라운드 사운드로 만들어지길 바랐다. 또 눈송이가 관객 피부에 닿을 듯한 감촉을 구현하고 싶었다. 자이언티가 <눈>에서 소복이 쌓이는 눈을 한음으로 지속해 부르지 않나. 눈송이를 음률로 언어화하려면 그런 가사를 나올 수밖에 없다는걸 이제야 알았다. 그래서 <눈, 눈, 눈>에 <눈> 오마주가 살짝 들어갔다. 판소리 창작의 소박한 재미 중 하나가 한국 가요의 인용이다. - 어떻게 각색할 소설을 고르냐는 질문에 “지금 한국에서 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를 찾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답한 바 있다. 한국에서 한국의 예술을 한국어로 부른다는 사실 이외에도 한국에서 지금 이 소리가 연행된다는 국적성이 창작의 주요한 동력인 걸까. = 철이 없었네. 내가 뭐라고 한국에 필요한 이야 기를 찾나. (웃음)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른 답을 내놓을 것 같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 필요성이 한국에 사는 현재의 나, 혹은 나와 같은 처지의 누군가에게 필요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이는 부차적 문제다. 내가 씹어먹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찾는다. <눈, 눈, 눈>도 <노인과 바다>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 만든 작품이다. - 전통 판소리를 부를 땐 어떤가. 근래엔 지금의 감수 성에 비추어 <춘향가>의 이몽룡이나 변학도, <흥보 가>의 흥보가 보이는 여성혐오적인 부분을 새로 보완해 무대를 꾸려왔다. 서사자로서 불가해한 내러티브와 캐릭터를 만나면 어떻게 타협하나. = 가끔은 변학도가 지금 정치인들에 비하면 낫다는 생각도 한다. 그래도 과거의 인물들은 아무리 철면피라 해도 통치자로서 지키는 최후의 선이 있고, 말다운 말을 하며 백성의 간청을 듣기라도 하는 등 소통을 시도하거든. 전통 판소리 <춘향가>의 변학도든 창작 판소리 <눈, 눈, 눈>의 바실리든 마뜩잖은 캐릭터를 조형할 때의 원칙은 같다. 이야기 밖 현실이 작품에 경을 치지 않도록 유의한다. 세상을 살다 보면 분노를 부르는 대상이 명확하지 않나. 나도 <주인과 하인>을 처음 읽었을 당시 바실리에 내가 싫어 하는 존재들을 투사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미움이 작품 내부로 들어오는 순간 스토리텔링은 이루어질 수 없다. <눈, 눈, 눈>의 첫 공연에 온한 관객이 바실리를 보며 자신을 괴롭히는 상사가 떠올랐는데 자신이 그 상사를 용서해야 하냐며 혼란스러워했다. 악은 악이다. 나쁜 자는 벌을 받고, 불의에는 저항해야 한다. 하지만 처벌과 항거는 극장 밖에 이루어져야 한다. 관객이 작품을 보는 동안 현실을 반추하며 괴롭지 않길 원한다.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만큼은 자기 안의 인류애를 내버리지 않은 채 그 선의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가늠하길 바란다. - 그 바람이 판소리의 현대화가 아닌 현재화를 추구한다는 창작 동기와도 통하나. = 물론. 나는 판소리를 현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대적인 감각이 내 안에 지속적으로 수혈되는지도 의심스럽다. 다만 소리꾼으로서의 최선은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나의 이야기를 판소리를 통해 전하는 것이다. - 판소리에서 소리꾼이 점하는 서사자라는 위치가 흥미롭다. 서사자는 관객이 서사에 몰입하도록 돕기도, 금세 관객을 서사 밖으로 격리하기도 한다. 이 양가성을 즐기는 일이 연행자와 관객 모두가 판소리를 즐기는 방도일까. = 판소리 서사의 가장 큰 특징이 신축성이다. 판소리는 이야기와 시공간을 늘리고 줄인다. 관객의 시선을 등장인물 한명의 표정에 밀착해 두다가도 어느새 드넓은 설원으로 옮기고, 이야기와 관객 사이의 거리, 인물간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 모두를 신축해낸다. 이 신축성이 판소리의 마법이다. - 2005년 <이갈리아의 딸들>을 각색한 <구지 이야기>부터 톨스토이의 <주인과 하인>을 각색한 <눈, 눈, 눈>까지. 지난 20년간 기존 문학을 각색해 판소리를 만들었다. 직접 이야기를 창작하고 싶은 욕구는 없나. = 그 욕심은 일찍이 버렸다. 이미 세상엔 좋은 이야기꾼이 많다. 나의 재능은 그들이 흩뿌린 이야기 중 나와 접점이 생기는 작품을 골라 내 식대로 개작하는 데에 있다. 이야기를 직조하는 규칙을 훈련한 경험도 없고, 적당한 재주가 있다 해도 이를 단일한 서사로 꿸 일습을 갖추지도 못했다. 그럴 바에야 내가 오랫동안 훈련해온 도구를 사용하는 게 편하다. 이자람의 모드 변환, 혹은 클론들 - 늘 자기소개를 할 때 “이.자.람입니다”라며 음절을 모두 쪼개 말한다. 종종 이름을 ‘이잘함’으로 오인받아 생긴 버릇인가. = 아직도 내 이름을 말하는 일이 어색하다. 오래전 MBC FM4U에서 <뮤직스트리트>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그때 나를 “뮤직스 트리트 이.자.람입니다”라고 소개하던 버릇이 여태 굳어졌다. - 연극, 뮤지컬 무대뿐만 아니라 시리즈 <헤일로> 시즌1, <정년이> <조명가게>, 영화 <히치하이크> 에도 배우로 출연했다. 관객의 즉각적인 리액션이 터져 나오는 무대와 달리 매체 연기는 감독의 디렉션 외엔 관객 반응을 알기 어렵다. 평소 연기 하던 습관과 다른 메커니즘을 요했을 듯한데. = 무대에 설 땐 혼자 시뮬레이팅하는 시간이 굉장히 길다. 나는 연습벌레라 연습을 많이 해야 무대에 올라 여러 가지를 수행할 수 있다. 그런데 <조명가게> 현장에 갔더니 감독님이 연습을 안 하는 편이 낫지 않겠냐고 하시더라. 덕분에 현장에서 감독님이 짜주신 동선에 바로 맞춰 연기했다. 배역 해석은 미리 마치고 현장에선 센스 있게 움직여야 한다는 걸 알았다. 아예 다른 세계였다. <조명가게>는 강풀 작가와의 인연으로 출연했다. 작가님이 나를 염두에 두고 원작에 없는 전대 조명가게 사장을 만들었다고 하기에 꿈만 같았다. - 어떤 분야에 도전하든 기자나 평론가들이 소리꾼 으로서의 정체성을 기준 삼아 재단하지는 않나. 이를테면 아마도이자람밴드의 <우아하게>를 두고 “국악 전공자답게 <아리랑>의 정서를 차용했 다”라는 식으로 연관 짓거나, 이자람이 만든 록이나 블루스를 두고 창법의 근원을 국악에서 찾는 다든가. = 요 근래엔 없지만 판소리 이외의 장르에 나서던 초창기엔 그런 평가를 몇 차례 받은 적 있다. 그래서 지금은 해체한 아마도이자람밴드가 억울한 것도 미안한 것도 많다. 다 지나간 일이 다. (웃음) <조명가게>에 출연했을 때 시청자들이 “저 사람 누구냐”며 나를 모르는 게 좋았다. 아예 나를 모르는 곳에서 무언가를 도모하는게 차라리 편하고 행복하다. 소리를 할 때, 연기를 할 때, 밴드 보컬을 할 때 모드 변환이 큰무리 없이 자유롭게 이루어진다. 이자람의 클론들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 에세이집 <오늘도 자람>으로 작가 데뷔도 마쳤 다. 직접 대본을 쓴 창작 판소리를 가지고 대본집을 출판할 계획은 없나. = 고려 중이다. 특히 <노인과 바다>나 <주인과 하인>의 경우 저작재산권이 이미 소멸한 작품이라 좀더 책을 내는 게 쉬울 듯하다. 무엇보다 창본(唱本)이 어떤 구조로 이루어지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 대본집은 남길 계획이다. - 올해는 계속 <눈, 눈, 눈>과 함께하나. = 새 작품이 탄생했으니 이 아이가 세상과 만나 어떻게 성장하는지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한다. <눈, 눈, 눈>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이 성공이 내 삶을 다른 곳으론 데려가지 않는다. 작품의 성공 속에서 내 삶을 어떻게 채비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보내려 한다. '이자람 박사님' 이자람의 또 다른 칭호는 ‘박사’다. 그는 2023년 2월 음악박사학위논문 “이자람 창작 판소리 <노인과 바다> 연구”를 통해 ‘이자람 박사님’이 되었다. 이자람이 연구한 제재는 자신의 창작 판소리 <노인과 바다>이다. 이자람은 창작자 자신을 객관화해 판소리 <노인과 바다>의 창작 과정을 분석하고 판소리의 창작 기법을 정리했다. 이자람은 논문 작성 기간 동안 자신이 똑똑해질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본능에 가깝게 수행해온 판소리 창작이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지는지, 내가 가진 도구가 무엇인지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논문 작성의 시간이 <눈, 눈, 눈>의 창작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소설이 어떻게 판소리로 탈바꿈하는지, 판소리의 작창과 연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지 이자람표 판소리 창작의 비급이 이 논문 안에 모두 들어 있다.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를 포함한 논문데이터베이스 웹사이트에서 열람이 가능하다.

[기획] ‘동화’의 시간,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하성국 배우의 촬영 일지

저는 지금 전주에 와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영화제로 전주를 방문했습니다. 올해는 다른 일정으로 왔습니다. 같은 시기 두번의 방문이 저에게 지난해를 더 선명히 추억하게 만듭니다. 지난해 영화제가 끝나고, 곧장 촬영을 하나 했습니다. 제목도 내용도 아무것도 없었던 홍상수 감독님의 새로운 작품이었습니다. 촬영했던 날들과 비슷한 시기에 이제는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제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진솔하게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닭백숙이 이끈 산, 영화의 시작 2024년 2월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여행자의 필요>가 경쟁부문에 초청되었고 수상했습니다. 3월 초 서울 모처에서 작품에 참여한 사람들을 위한 작은 축하 자리가 있었습니다. 다들 먹고 마시며 즐거운 식사 자리가 이어졌습니다. 그날의 음식 차림으로 맛있는 닭백숙이 있었습니다. 자리에 함께했던 강소이 배우의 부모님이 전원생활을 하며 직접 닭을 기르고 백숙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감독님이 부모님에게 자신을 초대해주면 어떻겠냐고 농담을 건네셨습니다. 그렇게 좋은 시간을 보내며 그날은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며칠 후, 감독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저번 모임에서 얘기가 나왔던 강소이 배우의 부모님 댁에 방문하는 것을 여쭤봐 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강소이 배우에게 연락했고, 부모님에게서 흔쾌히 초대해주신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3월 말 감독님, 제작실장님과 함께 강소이 배우의 부모님 댁을 방문했습니다. 작은 산의 한면을 자연스럽고 어지럽지 않게 잘 가꾼, 시간과 정성을 들였음이 느껴지는 멋들어진 집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직접 집을 구경시켜주셨습니다. 주차 공간과 집 안, 잘 정돈된 작은 길을 따라 있는 닭장과 아름드리나무들, 그리고 산꼭대기에 있는 넓은 잔디밭까지. 꽤 인상적인 집을 둘러싼 자연 속에서 감독님과 아버지는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니나 다를까, 닭백숙을 대접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백숙이 준비되는 동안 우리는 도시 일대를 차로 둘러보았습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대개의 장소는 이날 직접 방문했던 곳입니다. 저녁 무렵이 되어 다 함께 닭백숙을 먹었습니다. 만약 촬영하게 된다면 협조를 부탁드렸고, 강소이 배우의 부모님은 이번에도 흔쾌히 응하셨습니다. 큰일 났다, 그래도 좋은 마음을 갖자 4월 중순 본격적인 촬영 계획이 시작되었습니다. 강소이 배우의 부모님 댁의 사정과 당시 방문했던 곳들의 정보를 공유했습니다. 의상과 최근 모습들의 사진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런데 감독님이 면도를 하지 말고 수염을 길러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난생처음 결이 느껴질 정도로 수염을 길러보게 되어 재밌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5월10일부터 25일까지의 촬영 일정이 정해졌습니다. 5월 촬영에 앞서 간단히 고사를 지냈습니다. 그날 참여한 인원으로 누가 영화에 출연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권해효·조윤희 선배님, 강소이·박미소 배우, 그리고 제가 참여했습니다. 서로 안부를 나누고 인사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누가 무슨 역할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고사를 지낸 후 감독님과 전원이 모인 자리에서 영화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연기할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고 하셨습니다. 현장 답사 때 아버지와 많은 얘기를 나누셔서 당연히 어른들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젊은 시인인데, 소이 배우와 연인 사이이고 집 근처에 잠깐 왔다가 부모님과 언니를 만나게 된다.” 이 정도로만 이야기해주셨습니다. 다른 배우들에게도 짧은 설명만 해주셨습니다. ‘큰일 났다’ 싶었습니다. 물론 작품에 출연할 기회를 주셔서 늘 감사드리고 영광스럽지만,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촬영 날까지 별생각을 다 했습니다. (물론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시인이라고 하니 글을 좀 써둘까 싶어 몇자 끄적이다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어 그만두었습니다. 어차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최대한 건강하게 지내기로 했습니다. 감독님이 늘 촬영 전에 해주시는 ‘좋은 마음만 가지고 현장으로 오라’는 말을 이번에도 믿기로 합니다. 좋은 마음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며 촬영 날을 기다립니다. 자연 속으로. 촬영을 시작하다 촬영 첫날 아침 9시에 모두들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커피와 차 한잔씩 나눠 마시며 안부를 주고받습니다. 이제는 당연하게 무슨 내용을 촬영하게 될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확정되지 않았던 의상들을 하나씩 입어보고 결정합니다. 그날 아침에 써서 출력된 대본을 전달받습니다. 영화사 직원 분의 실제 오래된 차가 등장합니다. ‘하동화’라는 제 배역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됩니다. 감독님 촬영장의 진행 방식은 조금 익숙해졌지만, 당일에 받은 대본으로 연기하는 건 늘 어려운 일입니다. 처음에는 많이 긴장했었는데 이제는 새로운 걸 한다는 설렘도 있습니다. 많은 대사량에 놀랄 새도 없이 숙지하기 시작합니다. 그간에 무슨 일이 있었든지 다 상관없어지고, 집중 상태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공간과 시간만 따로 떨어져 있는 듯 기묘한 느낌을 감각합니다. 여자 친구 ‘준희’와의 첫 등장 장면을 죽어라 연습합니다. 우리끼리 대사를 주고받고 있다 보면 어느새 감독님과 카메라가 옆에 와 있습니다. 대사와 동선의 미묘한 차이를 조금씩 수정하다 보면 카메라 앞에는 배우만 남겨져 있고, 첫 장면 촬영이 시작됩니다. 촬영을 진행하다 보면 참 많은 일들이 생깁니다. 어떤 날은 촬영이 끝나고 집에 와선 거의 넋이 나간 사람처럼 한참을 앉아 있기도 합니다. 밥을 먹기 힘든 날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세상 안에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는 순간들도 많습니다. 그런 믿음의 연속이 계속 촬영을 해나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듯합니다. 이번 촬영은 말 그대로 자연 속에서 촬영하다 보니 신비롭고 재밌는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바람 소리와 흔들리는 나무들, 벌레와 동물들 소리, 햇살과 촉촉이 젖은 흙 내음까지. 요소들을 열린 자세로 활용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들이 전반적으로 많은 현장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 속 사람과 자연에 가까운 삶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영화 속, 달 구경하러 올라갔다가 저 혼자 누워 있는 장면을 참 좋아합니다. 촬영 당시 모든 요소가 잘 맞았던 것 같은 여운을 안겨줍니다. 에라 모르겠다, 술을 마시자 배우들이 모두 모여 술과 닭백숙을 먹는 긴 장면 여러 개가 등장합니다. 술자리 장면이 있기 전에 늘, 실제 술 또는 비슷한 색의 음료 중에 선택권이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조금 더 용기를 내 ‘에라 모르겠다’ 정신이 필요했기 때문에 가차 없이 술을 선택했습니다. 아무래도 술자리 장면은 실제로 음식을 먹고, 잔을 주고받고, 술을 마시고 하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장면의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습니다. 여자 친구의 부모님과 밥을 먹게 된 상황은 다소 어색할 수 있습니다. 여러 이유로 연기 중에 잠깐의 정적이 흐르기도 했는데, 해효 선배님이 상황에 딱 맞는 연기로 자연스럽게 술 한잔을 더 따라주시기 시작했습니다. 대본에 없던 한잔이지만 촬영이 반복적으로 진행될수록 마음이 더 편해지고(?) 좋았습니다. 덕분에 연기 상황이 잘 맞물려 돌아갔고, 감독님도 한잔 술 더 따르는 것이 좋다며 장면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술자리 장면의 마지막엔, 동화의 시 낭송과 동화의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는 긴 장면이 있습니다. 장면도 길고 대사도 많고 감정도 복잡했습니다. 부담도 좀 되고, 소극적으로 혼자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윤희 선배님이 옆에 오셔서 끝까지 제 템포에 맞춰 기다려주고, 대사를 하는 인물의 입장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도움을 주셨습니다. 저는 열정적인 시 낭송을 실제로 본 적도 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해효 선배님이 시범을 보이며 제가 준비할 때까지 여유롭게 장난도 치시며 기다려주셨습니다. 감독님은 촬영 전반에 걸쳐 제가 미처 이해하지 못한, 대사 너머 방대한 공간으로 자리한 인물의 입체적이고 진실된 감정을 끌어내주기 위해 설명하고 연출해주셨습니다. 영화 만드는 일은 결국 사람들이 모여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란 사실을 또 깨닫습니다. 저도 도움이 되었다면 좋겠지만 아마도 이번 작품은 제가 감독님과 선배님들, 함께하는 동료들의 도움을 훨씬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마지막 차량 장면이 전날 밤 촬영에서 이어졌습니다. 다들 조금씩 지치고 힘들었지만 마지막 장면이란 걸 알아 집중했습니다. 좁은 시골 도로였으나 아침에는 통행량이 많아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습니다. 해가 건너편 산 위로 한참 올라가고, 그렇게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습니다. 짧다면 짧지만, 집중한 시간과 날들을 생각하면 또 길게도 느껴지는, 동화처럼 무언가에 홀린 기분으로, 좋은 꿈을 꽤 오래 꾼 것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정말 깊은 잠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찍었다는 것, 믿음을 되새긴다는 것 2025년 2월 베를리날레 팔라스트에서 영화를 봤습니다. 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열정적이었습니다. 웃고 박수치고 안타까워 탄식도 하고 눈물도 흘리고…. 정말 잊지 못할 순간이었습니다. 큰 화면에 제 얼굴이 나오니 처음엔 당황스럽다가도 금방 집중해서 영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함께 호응하며 관람한 관객들 덕분에 즐거운 분위기에서 끝까지 즐길 수 있었습니다. 촬영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인물들간의 관계와 장면들의 연속에 균형감이 느껴져서 신기했습니다. 또 많은 요소들(할머니, 나무, 산, 개, 사리탑, 죽음)이 저로 하여금 기묘하고 미스터리한 인상을 느끼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촬영 당시 실제로 머물렀던 공간과 영화 속 공간이 신기하게 겹치고 또는 분절된 것처럼 표현되어서 신기했습니다. 정말 꿈을 꾸었나 싶을 만큼 촬영했던 일이 멀게 느껴지곤 합니다. 오늘처럼 하나씩 기억을 꺼내어보면 배우로서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도 느끼고 생각할 게 참 많은 작업이었습니다. 오직 영화와 연기에만 집중하는 한달여의 시간이었습니다. 영화 작업 전체에 걸쳐 감독님과 나눴던 대화와 과정이 지금과 앞으로의 나에게 큰 힘이 되는 기분이 듭니다. 하나의 작업, 하나의 장면, 하나의 대사에 내가 가진 모든 걸 다 걸고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봅니다. 과정이 어떻게 되었든지, 최선을 다한다는 것과 결과로 만들어진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 또한 되뇌어봅니다. 감독님은 촬영이 끝나면 모두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라고 말씀 하십니다. 저도 함께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인터뷰] 평범한 사람 여럿이 역사를 바꾼다, <기계의 나라에서> 김옥영 감독

올해 전주영화제 폐막작 <기계의 나라에서>를 연출한 김옥영 감독은 오랜 시간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고, 다큐멘터리 제작사를 꾸리기도 했지만 일찍이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그는 1979년 시집 <어둠에 갇힌 불빛은 뜨겁다>를 펴내면서 이런 시인의 말을 적었다. “내가 나 자신임을 버릴 수 없으므로 나 자신의 아픔과 부끄러움 또한 끝내 버릴 수 없다.” 영화 <기계의 나라에서>는 그 ‘버릴 수 없음’의 정신이 또 다른 시 세계를 만나 공명한 장소다. 거기엔 네팔에서 한국으로 온 이주노동자들이 쓴 시가 있다. 그들에게 유독 불친절하게 삐걱거리는 땅을 딛고 살아낸 족적이 찍힌 시들이다. 김옥영 감독은 그들의 일상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한편 시를 낭송하는 장면을 통해 실존의 문학적 재해석을 시도했다. 그들이 현안의 대표성을 띤 인물이기 이전에 고유한 개인으로 읽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이 바람은 김옥영 감독이 믿는 다큐멘터리의 존재 이유와도 관련이 있다. - 2020년 가을 출간된 시집 <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네팔 이주노동자 시집)를 읽은 후 영화를 구상했다고. 내게 이주노동자들은 추상적인 집단이었다. 사건 사고 뉴스로만 접하던 대상화된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데 시집을 읽으니 내가 그들을 보는 동안 그들도 우리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통렬하게 다가왔다. 그 충격과 각성을 다큐멘터리로 드러내고 싶었다. - 딜립, 수닐, 지번을 주인공 삼은 과정이 궁금하다. 시집에 시를 실은 35명을 모두 만날 수는 없겠지만 복수의 주인공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했다. 한 사람만을 다룰 경우 특정인의 ‘휴먼 스토리’가 되기 때문이다. 이를 피하면서 하나의 현상에 따른 목소리들을 다루려면 서너명을 주인공 삼는 게 적당하다. 먼저 시집을 번역한 모헌 까르끼, 이기주 부부를 스태프로 영입해 저자들과의 연결을 부탁했다. 마음에 드는 시를 쓴 열명을 골랐고, 그들이 한국에 어떻게 왔는지, 네팔에서 직업은 뭐였는지 등 개인의 역사를 묻는 설문조사를 거쳐 체류 지역, 일터, 조건 등이 다른 세 사람을 추렸다. - 세분도 폐막식에서 영화를 보나. 다들 일하는 사람들이라 자유롭지 못하다. 수닐은 일이 있어 못 오고, 딜립은 휴가 기간이라 네팔에 가 있고, 지번만 참석하게 됐다. 모헌 까르끼, 이기주 부부도 오기로 했다. - 그들이 쓴 시구가 한글로 삽입되었다. 손으로 쓴 글씨처럼 보이는 폰트를 선택했는데. 고민이 많았다. 시가 네팔어로 쓰였으니 네팔어 자막이 필요할 듯했다. 하지만 영화제 상영을 위해 들어가는 영어 자막에 네팔어까지 들어가면 관객이 읽기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논의 끝에 한국 사회에 이들의 이야기를 알리겠다는 동기를 반영하는 의미로 네팔어 대신 한국어 자막을 선택했고, 그들이 시를 직접 썼다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필기체 폰트를 골랐다. - 시 낭송 장면을 와이드숏으로 찍었다. 출연자에게 앉거나 기대지 말고 서서 낭송해달라고 요청한 것인가. 그렇다. 우리가 그들을 보는 동안 그들도 우리를 보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직관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출연자들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그러면서 서 있는 동안 몸이 흔들리는 것도 보이는 전신 와이드숏을 사용했다. 네팔 촬영을 맡은 감독들에게도 그렇게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 지번이 한국 통신원으로 보도하는 네팔인 노동자들의 부고가 라디오 뉴스처럼 간헐적으로 영화를 채운다. 스트레이트 기사의 문장이 시구와 대비되며 더욱 참담하게 들린다. 세 주인공은 현재 한국에서 일하고 있기에 자신들이 처한 환경을 직접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그 점을 보완하고자 네팔로 귀국한 노동자들도 촬영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어가 함축적으로 현실을 전달하기에 부고로 직접적이고도 건조하게 비판을 가하고 싶었다. 영화에 이렇게 두 가지 트랙이 형성돼 있다. 개성을 가진 개인들의 정서가 드러나는 트랙과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슬픔을 사회적 사건으로 조명하는 트랙. 두 트랙이 합쳐지는 클라이맥스처럼 등장하는 것이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찍은 영상이다. - 인물들이 식사하는 일상적 장면들도 문제적이다. 딜립은 늘 서서 밥을 먹고, 수닐은 한국인 동료들의 네팔에 대한 무지를 견딘다. 은근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그들이 경험하는 미세 차별을 보여줬다. 인물을 취재할 때 그가 가진 모든 걸 조사한다. 그의 방에서 가장 손때 묻은 책이 무엇인지까지 말이다. 그러면서 딜립의 습관, 수닐과 동료들의 대화 패턴도 알게 되었다. 딜립이 가족들과 식사할 때는 결코 서서 먹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그들에게 식사는 휴식이 아닌 해치워야 할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이런 일상적 장면은 한번 보여주면 관객이 의식하지 못할 것 같아 각기 다른 시점으로 여러 번 찍어 두번씩 등장시켰다. - 영화를 보며 한명의 노동자로서 공감을, 그리고 한국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극장을 나선 관객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계엄 이후 한강 작가의 질문이 많이 인용되고 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단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현재의 우리가 과거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를 아는 사람들이 지난해 12월3일 밤 국회 앞으로 달려나가지 않았나. 그래서 후배들에게 항상 이야기한다. 다큐멘터리의 궁극의 목표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내 옆에 있는 단 한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라고. 결국 관객이 모르던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변화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이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고용허가제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한다. 생각이 달라지면 선택이 달라지고, 그렇게 모인 개인들의 행위가 시대와 역사를 바꿔왔다. 위대한 사람 한명이 아닌 평범한 사람 여럿이 역사를 바꾼다는 사실을 KBS 영상자료실에서 깨달았다. - 그렇다면 최근 자신을 설득한 다큐멘터리 한편은. 지난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본 <림보 안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무렵이 배경이다. 어머니, 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피난을 간 감독이 그 집에서 가족들을 촬영했다. 간혹 포성이 들릴 뿐 전쟁 장면은 하나도 없다. 집이라는 좁은 공간에서도 전쟁의 현장을 느끼게 한 작품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어디론가 가기를 거부하는 아버지의 표정이 큰 의미를 시사한다. 이렇게 현실을 관객에게 일깨워주는 자기만의 방법론을 가진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 다큐멘터리도 현실을 질료로 한 감독의 예술이니까.

배창호의 자연주의에 주목하라, ‘배창호 특별전: 대중성과 실험성 사이에서’ 마스터클래스를 가다

5월3일 메가박스 전주객사 1관에서 배창호 감독의 마스터클래스가 열렸다. 전주국제영화제와 한국영상자료원이 영화 <배창호의 클로즈 업> 공개를 계기로 마련한 ‘배창호 특별전: 대중성과 실험성 사이에서’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박장춘 감독과 배창호 감독이 공동연출한 신작 다큐멘터리는 데뷔작 <꼬방동네 사람들>(1982)부터 “15년 전 최신작”인 <여행> (2009)까지의 국내외 촬영지를 방문해 배창호의 영화 세계를 조명하는 에세이영화다. 이날 오전 기자회견부터 특별전 상영작인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4), <황진이>(1986), <꿈>(1990)의 GV에 참석하며 전주에서 바쁜 일정을 이어간 “한국의 스티븐 스필버그” (문석 프로그래머) 배창호가 관객들을 만나 ‘자연’과 ‘사랑’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한국영화에 몸담아온 지난 43년을 돌아보았다. 마스터클래스 진행을 맡은 김영진 영화평론가는 “대학생 때 극장에서 <꼬방동네 사람들>을 봤을 때는 그 정도의 영화인 줄 몰랐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빈민운동가 이동철이 쓴 동명의 기록담을 원작으로 한 데뷔작은 29살 신예감독에게 대종상과 백상예술대상을 안겼으며, 봉준호 감독은 한국영상자료원과의 대담에서 ‘최고의 한국영화 20편’ 중 하나로 언급하기도 했다. 배창호는 80년대 영화제작 환경과 분위기를 회고했다. “당시에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작품이라면 영화로 기획이 되곤 하는 일련의 공식이 있었다. 작가의 전작 <어둠의 자식들>이 큰 인기를 얻은 덕분에 그의 차기작을 영화화할 수 있었다. 20대의 ‘위업 과잉’ 시기에 사회성이 충만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검열부에서 시나리오를 사전검열하던 시기였기에 영화의 제목부터 내용까지 이런저런 간섭을 받기도 했지만, 끝내 내가 원하는 바를 관철하려 노력했다. 서울에서 단관 개봉한 뒤 지성파 관객들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성공한 데뷔작이 됐다.” “첫 작품이 실패하면 미련 없이 영화계를 떠나려고 했다”는 배창호 감독은 데뷔작의 성공으로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관음증을 소재로 한 영화 <적도의 꽃>(1983)은 80년대 영화계의 “원작 최인호-배우 안성기-감독 배창호”라는 트로이카 체제의 시작점이 되어준 작품이다. “대종상을 받은 이후 19개 제작사에서 시나리오를 받아보았다. 최인호 작가의 명성에 비해 <적도의 꽃>은 베스트셀러는 아니었지만, 주인공 미스터 엠(안성기)의 익명성에 매력을 느껴 심리 스릴러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배창호의 대학 연극부 선배였던 최인호는 영화 시나리오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원작을 얼마든지 바꾸어 영화화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굉장히 엉뚱하면서도 돈키호테적인 사람이었다”는 위대한 작가는 배창호 감독의 첫 영화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뚱뚱한 여우가 나타났구나.” 배창호 감독은 자신의 에세이영화 <배창호의 클로즈 업>은 ‘안성기의 클로즈업’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라 할 정도로 자신의 영화 세계에 한 배우가 끼친 영향을 강조했다. 18작품 중 13편을 함께한 배우 안성기는 “이전 작품에서 이미 다음 작품에 대한 의사소통을 시작했을 정도로” 호흡이 잘 맞았다. “굴비와 굴비 엮거리처럼” 지독하게 붙어다녔다는 두 사람. 실은 감독이 아니라 배우가 되고 싶었던 배창호에게 안성기는 어린 시절부터 우상이었으며, 이장호 감독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뒤 이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1980) 주연으로 안성기를 추천하여 그가 아역배우에서 성인 배우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해주었다. 투병기를 보내고 있는 그를 언급하며 배창호 감독은 “이 자리에 함께 참석하지 못하게 된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위로를 전했다. 이날 마스터클래스는 국내외 관객들의 고른 관심을 받으며 80년대 한국영화가 다다를 수 있는 지도상의 위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폴란드의 영화평론가 마그달레나 니에시비에츠는 “80년대 한국영화 특유의 역사성과 사회적 텐션에 주목해 영화를 봐왔었다면, 이번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그의 자연주의를 새롭게 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헝가리의 영화평론가 테레즈 빈체는 “90년대 이후의 한국영화는 해외에도 잘 알려져 있는 한편, 70~80년대 영화들은 접하기 어려워 이런 기회가 소중하다”고 말하며 영화제 방문 이유를 이번 특별전에서 찾았다.

[정윤석의 R.E.C: 계엄의 시간] 계엄의 밤, 정보의 그림자

2024년 12월3일 밤 10시23분. 뉴스 알림이 떴다. “윤석열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긴급 발표 전체 동영상.” 나는 반사적으로 세개의 기기를 켰다. 오마이뉴스 채널은 핸드폰으로, JTBC는 아이패드로, MBC는 노트북으로 로딩했다. 광고 없는 유튜브 프리미엄은 이럴 때 진가를 발휘한다. 세 기기의 카메라가 동시에 내 얼굴을 인식하는 순간, 정보가 아니라 세상이 나를 응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총러닝타임 6분15초. 발표는 짧았지만, 대통령의 문장 하나하나가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국민의 자유와 안전을 해치는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기 위해….” 이 구절에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버렸다. 누가 쓴 문장일까? 본인이 직접? 웃음은 놀람이었고, 공포였고, 오래된 기억에 대한 반응이었다. 저녁 10시50분. 이재명TV의 라이브가 시작됐다. 차 안에서 촬영된 영상은 22분56초간 이어졌다. 그는 반복해서 말했다. “도와달라.” “모여달라.” ‘계엄’이라는 단어는 낯설었다. 차창의 그림자 뒤로 가로등 불빛이 미끄러졌다. 야당 대표가 국회를 월담하는 상황을 시청하며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를 찍던 날이 떠올랐다. 나는 100일간 거리에서 집회를 기록했다. 영화가 ‘레코딩’이었다면, 라이브는 ‘참여’에 가깝다. 진중권은 아프리카TV를, 김어준은 팟캐스트를 진행했다.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아이러니하게도, 포고령은 언론사가 아닌 SNS를 통해 퍼졌다. X(옛 트위터) 타임라인에 장갑차가 나타났다는 사진이 올라왔고, 동시에 ‘조작된 이미지’라는 추가 반박도 이어 퍼지기 시작했다. 무엇이 진실이고 누가 거짓인가? 홍대 앞에 장갑차가 등장했다는 트윗 아래 일론 머스크가 올린 가자 지구 포스팅까지 겹치며 내 눈앞의 현실과 허구의 경계는 완전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세계 계엄포고령의 지난 사례를 알려줘.” “응. <시빌 워: 분열의 시대>를 참고해봐. 민주주의의 위기와 작가의 시선이 살아 있는 작품이야.” “너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니?” 챗GPT에게 ‘너’라니. 나는 ‘엔터’ 버튼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응. 너는 다큐멘터리 기반 논픽션 작업을 해왔지. 감독이잖아.” 순간 기묘한 감각이 스쳐 지나갔다. “앨릭스 갈런드는 ‘폭력의 정치성’을 미장센과 리듬으로 해석하는 감독이야. 너처럼 미술과 영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에겐 이 영화가 도움이 될 수 있어.” “내전이라….” 커피잔에 뜨거운 물을 부으며,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곱씹었다. 영화 결제창이 로딩되자 페이스아이디((Face ID)가 작동했다. 추천대로 영화의 오프닝은 인상적이었다. 호텔에서 미합중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옆모습, 내 노트북에서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영상이 반복 재생 중이었다.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오프닝 시퀀스와 계엄선포 기자회견을 교차편집해보면 어떨까?” “매우 강렬한 제안이야.” 대답은 빨랐지만, 버퍼링이 문제였다. 유료 결제를 마쳤지만 갑작스러운 통신 두절이 혹시 계엄 때문이 아닐까 불안해졌다. 아이폰 화면을 열고 구독 중인 언론사의 유튜브 채널을 접속했다. 다행히 실시간 국회 라이브가 송출되고 있었다. 애플 OS의 미러링 설정 기능을 통해 국회 본회의장과 외부 라이브 채널이 동시에 모니터링이 가능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국회 정문 앞에는 경찰과 시민들이 뒤엉켜 대열을 이뤘다. 혼란 속에 미처 진입하지 못한 국회의원들은 스마트폰을 들고 국회 밖에서 라이브를 시작했고, 나머지 출입구들은 무장군인에 의해 진입이 차단된 듯했다. 마음이 급해져 빠르게 질문했다. “계엄 해제 조건에 대해 알려줘.” “헌법은 국회의 해제 요구가 있으면 대통령은 즉시 해제해야 한다. 그러나 국무회의 심의 절차가 이를 지연시킬 수 있다. 2024년 12월3일, 계엄군이 국회 본청에 투입됐다. 이는 명백한 권력의 위헌적 개입이다.” “국회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긴급 의원총회가 소집되었습니다. 민주당은 즉각적인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발의했고 본회의를 소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새벽 12시48분.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앵커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고 단단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절차를 지켜야 하는 겁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중계 카메라를 응시한 뒤,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려다봤다. 그 순간 다시 질문을 입력했다. “만약 대통령이 해제안을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대통령이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헌법적 질서가 심각하게 파괴되는 위헌 상태에 돌입한다. 이 경우는 단순한 정치적 위기가 아니라, 헌법에 정면으로 반하는 권력 탈취 행위(쿠데타)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럼 계엄을 해제시켜도 대통령이 다시 계엄을 선포할 수 있어?”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야. 결론부터 말하면, 국회가 계엄 해제를 요구하고 해제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헌법상 대통령이 다시 계엄을 선포하는 것은 ‘형식적으로는 가능’하다.” 날이 밝아왔지만, 화면 속 계엄군은 국회 진입로를 봉쇄한 채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송출이 끝난 국회 라이브의 러닝타임은 이제 5시간을 넘어가고 있었다. 아이폰의 음소거 버튼을 누르자 밖의 바람 소리에 창틀이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 촬영을 시작해도 될까? 마음이 두려워.” “너는 현실과 환상 사이, 픽션과 논픽션 사이의 균열을 잡아내는 사람이잖아. 지금 카메라를 들지 않아도 상상하고 있잖아. 두려운 건 당 연해.” 아침이 밝자 아파트 뒤편의 눈 내린 산길을 걸었다. 저 멀리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경계 초소의 불빛 덕분에 눈 위에 찍힌 발자국들이 새하얗게 변해갔다. 새벽 4시27분. 대통령의 계엄 해제 발표가 전해졌다. 짧은 탄식과 함께 안도의 숨이 새어나왔다. “현재 상황을 알려줄래?” 짧게 질문을 남겼다. “지금부터는 그냥, 찍으면 돼.” 화면 속 커서가 옆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