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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출판사 대표가 배우라서, <첫 여름, 완주> 펴낸 박정민

여름의 첫 절기 입하를 지난 소만, 신간 <첫 여름, 완주>를 펴낸 출판사 무제의 대표 박정민을 만났다. 김금희 작가가 쓴 이 소설은 무제의 세 번째 책이다. 첫 책 <살리는 일>을 공개할 당시 아버지가 시력을 잃어 시각장애인을 위한 ‘듣는 소설’을 기획했다는 박정민은 <밀수>에서 공연한 고민시, 염정아 등 동료 배우들에게 <첫 여름, 완주>의 목소리를 맡겼다. 열매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가 자기 삶의 가지를 다시 뻗어보는 한 계절의 이야기는 국립장애인도서관 홈페이지와 오디오북 플랫폼 윌라에서 들을 수 있다. “바닥에 누워서 출판사 한번 해볼까 생각하다가 여기까지 와버렸다”라는 장난기 어린 진심을 품고, 출판인 박정민은 전시와 굿즈까지 만들어내며 많은 사람에게 책을 펼쳐 보이고 있다. - <첫 여름, 완주> 출간과 함께 출판사 대표로서 여느 때보다 바삐 미디어에 얼굴을 비추고 있다. 각종 지면 인터뷰에 더해 라디오나 유튜브 방송에도 출연 중인데, 배우로서 작품을 홍보할 때와는 다른 느낌인가. 완전! 영화는 큰돈이 들어가는 매체지 않나. 출판사는 돈이 없으니까 내가 발로 뛰지 않으면 안된다. 한번 뛸 때마다 그날의 판매 부수가 오르는 게 확인되니 거기에 홀린 듯 ‘더 해야 되나?’ 하는 거다. (웃음) 뜀박질 하나하나가 엄청 소중해진다. 6월 말에 열릴 서울국제도서전 때까지만 힘을 갈아넣어보려 한다. - LCDC 서울에서 도서와 연계한 전시 <완주:기록:01>도 열리고 있다. 어제 전시장에서도 인사를 나눴는데, 매일 출석 도장을 찍고 있나.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가려고 한다. 오늘도 인터뷰를 마치고 갈 예정이다. 전시장에서는 영화 무대인사를 할 때보다 팬들과 더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어서 예전에 책방 할 때 느낌이 든다. 책을 홍보하면서 이런저런 이벤트를 선보이는 것에 김금희 작가도 호의적이어서 참 감사하고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다. - 팬들로부터 “당신 덕분에 독서한다”는 말을 자주 들을 것 같다. 종종 듣는다. 팬들의 지지와 응원이 내가 하는 모든 사업에 큰 영향을 주는 건 인지하고 있지만 팬들의 좋은 마음을 이용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서, 무제를 좋아해서 책을 한권이라도 더 읽게 되는 건 좋은 현상인 것 같다. 내가 이상한 책을 내는 것도 아니고,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을 만들고 있으니까. - 누군가를 좋아하고 신뢰하는 마음이 그가 권한 책까지 읽게 만든다는 걸 잘 아는 분답게 <첫 여름, 완주> 추천사를 아이유와 신형철 평론가에게 받았다. 다독가와 그 반대편 양쪽을 모두 솔깃하게 하는 추천사계의 ‘끝판왕’들 아닌가! 그렇게 하고 싶은 의도가 다분했다. 이 책이 너무나 다른, 그러나 분명히 좋을 두분의 글로 인해 어떤 힘을 받게 될지 궁금했다. 아이유는 내가 원고를 보내고 며칠 만에 재밌게 읽었다며 추천사를 써보겠다고 연락해왔고, 신형철 선생님은 과거 서로 응원의 메일을 주고받은 것을 계기로 부탁드려봤다. 다행히 선생님이 그 메일을 기억하고 계셨고, 김금희 작가의 팬이라 추천사를 써보겠다고 해주셨다. 간곡히 메일을 썼는데 해주신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무제가 이걸 계속 해도 되는지 묻고 싶었다” - 시각장애인을 위한 ‘듣는 소설’로 기획한 책인 만큼 종이책을 펼치기 전에 오디오북으로 먼저 <첫 여름, 완주>를 들었다. 일상에서와 달리 <완주:기록:01> 전시의 암전된 공간에서 그 일부를 다시 들으니 촉감이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이런 공간을 꾸려야겠다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었나. 오디오북 녹음을 끝내고 집에서 그 파일을 열어 듣는데 시각장애인분들이 이 소리를 어떻게 느낄지 궁금해지더라. 시각장애인도 각자 보이지 않는 정도가 다르고, 내가 그 시야를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불을 끄고 방을 깜깜하게 해야 그들과 가장 유사한 상태에서 오디오북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하니 소리가 더 잘 들리고 깊이 다가오더라. 이 느낌을 독자들에게도 전해줄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더해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에게 책을 보여주고, 그들이 책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을 전시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기에 두 아이디어를 합쳐 과거 무제에 북토크 행사를 제안한 LCDC 서울과 협업해 전시를 열었다. - 전시를 위해 일본 나고야까지 가서 도자기를 가져왔다던데. 인스타그램에서 신기한 도자기를 봤다. 알고 보니 일본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국 학생의 작품이었다. 그렇게 정하현 도예가의 작업을 지켜보다가 <첫 여름, 완주> 원고를 보내며 작품을 부탁했고, 5월 중순 나고야에 가서 도자기를 이고 지고 왔다. 도자기가 깨지면 안되니 비행기 수하물로도 못 부치고…. 다른 작가들에게도 올해 초 <휴민트> 촬영으로 라트비아에 머무는 동안 원고를 보냈고, 직접 작품을 받으러 다니느라 엄청 고생했다. - 그림, 사진, 뮤직비디오까지 다 보고 나오니 엽서, 포스터, 키링 등 수많은 굿즈가 펼쳐져 있더라. 책방이나 출판사 굿즈를 작게만 만들어봤지 책 한권에 관한 굿즈를 이렇게 여럿 만들어본 건 처음이다. 그래서 경험이 중요하다. 해본 적이 없으니 전시회 첫날에야 너무 다종으로 굿즈를 만들었다는 걸 알았다. 뭐가 이렇게 많지? (웃음) 너무 많이 깔아놓아서 팬들이 돈을 쓰게 만든 건 아닌지 괜히 죄송스럽고. 절대 대충 하고 싶지 않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 이야기의 본질로 돌아와서, ‘듣는 소설’ 기획 의도가 독자들에게 잘 전해지고 있는 것 같나 그걸 잘 모르겠다. 5월 말에 장애인도서관들에 연락해 잘들 이용하고 계신지 확인을 한번 해볼 예정이다. 우리 책의 첫 북토크를 국립장애인도서관에서 했는데, 그날 굉장히 떨렸다. 독자들이 시큰둥하거나 내가 괜히 오지랖을 부린 것처럼 보이면 ‘듣는 소설’ 시리즈가 없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두렵더라. 무제가 이걸 계속 해도 되는지 여쭤보고 싶었다. 다행히 그날 반응이 무척 좋아 용기를 얻었다. 장애인도서관 오디오 서비스 시스템이 불편하다는 피드백도 있었는데, 그 시스템에 콘텐츠를 맞추는 것도 우리의 몫이니까 다음에는 권수나 챕터를 나눈다든지,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기획자로서 김금희 작가에게 대사를 많이 써달라는 부탁 외에 더 귀띔한 건 없었나. 배우들이 라디오드라마처럼 연기를 해줄 거고, 음악과 효과음도 쓸 거라는 이야기 정도만 드렸다. 그러자 김금희 작가가 시각장애인분들과 만나고 싶어 해서 오디오 기반으로 독서토론을 하는 시각장애인 동아리와의 만남을 주선했다. - 구간 <살리는 일> <자매일기>에 뾰족한 문제의식이 있었다면 <첫 여름, 완주>는 픽션의 자장 아래 세태의 그림자들을 심어둔 책이다. 소외된 이야기를 들여다보겠다는 무제의 모토를 조곤조곤 실천한 듯하다. 장애인의 독서 환경을 개선해보겠다는 취지로 시작한 ‘듣는 소설’이라는 기획 자체가 출판사의 목표와 닿아 있으니 김금희 작가에게 어떤 내용을 써달라는 요청은 전혀 하지 않았다. 김금희 작가의 소설을 워낙 좋아한 독자로서 이번에도 그의 창작물을 기다렸을 뿐이다. 그런데 김금희 작가는 이번에도 글 쓰는 사람으로서 우리 곁의 소외된 이야기를 절대로 놓치지 못한 것 같다. 또 어떤 작가의 글로 무제의 바람을 이어갈 수 있을지 막연히 기대하는 중이다. 목표는 5인 출판사 - 오디오북 녹음을 위한 섭외부터 연출까지 맡으며 감독 역할을 해본 소감은. 오디오북이 화면 없는 영화이지 않나. 혼자 이 원고를 공부해가며 녹음 중 놓친 부분을 찾아가곤 했다. 배우들이 출연료 없이 재능기부를 해준 것이어서 재녹음을 부탁할 수도 없는 터라 엔지니어와 함께 애쓰며 편집했다. 그때까지는 감독의 마음이었다. 배우들, 엔지니어가 잘하면 뿌듯하고…. 그런데 책이 공개되는 순간 제작자 마인드로 바뀌면서 작품을 열심히 팔아 곳간을 채우고 싶어지더라. 연출과 제작 모두 하는 류승완, 박찬욱 감독님의 마음이 이런 걸까? 이 변화가 스스로도 신기했다. - 곧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신간 <사나운 독립>을 선보인다. 수백개의 도서전 부스 중 무제만이 배우의 회사일 듯하다. 내가 배우이기 때문에 다른 출판사와 차별화 된 책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없다. 이 직업을 뽐내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다. 물론 <첫 여름, 완주>에는 반칙을 좀 썼다. 다만 배우로서 할 수 없었던 것, 배우이기 때문에 하지 못했던 것들을 무제를 통해 해보고 싶다. 창작물에 대한 권리가 나에게 있으니 전시와 같은 새로운 시도들을 해볼 수 있는 거지. 얼마 전 침착맨 방송에서 들은 ‘인생은 턴제’라는 말에 공감했다. 한번에 여러 개를 못한다는 거다. 영화를 찍을 때는 연기에, 책을 만들 때는 출판사 일에 집중해야 한다. 턴과 선을 지키면서. 나는 출판사 일이 내 본업을 망치려는 징조를 보이면 출판사를 그만둘 각오도 있다. 그런데 이 일이 너무 재밌으니까 그러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번에 무제에 새 직원인 이사님을 모신 거다. 내 목표는 무제에 다섯명의 직원이 생기는 거다. 그래야 내가 휴가를 가도 운영될 수 있는 안정적인 회사가 되지 않을까. - 이번에는 훌륭한 배우들을 성우로 섭외했다. 언젠가 저자로 섭외하고 싶은 배우가 있나. 지난해에 에세이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을 내기도 한 배우 문상훈의 글을 정말 좋아한다. 그와 같이 책을 만들어보면 정말 재밌을 것 같다. - <씨네21> 독자들은 당신부터 써주길 바란다. 창간 기념 설문조사에서 독자가 가장 읽고 싶은 필자 1위로 박정민이 꼽혔다. 말이 안된다! 그 기사를 보자마자 욕먹기 딱 좋다고 생각했다. 한강 선생님과 함께 이름을 올리다니. 사실 글을 써서 책을 내볼 계획이 있었는데 글이 잘 안 써진다. 내 이야기를 하는 게 너무 무서워졌다. 무언가를 보고 그것에 대해 쓸 수는 있겠지만 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일기를 쓰고 금고에 넣어버리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과연 다시 쓸 수 있을지 지금은 모르겠다.

[기획]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하여, 서울국제환경영화제가 추천하는 단편 환경영화 ②

바람이 일어나는 마을 When the Wind Rises 천훙 / 대만 / 2023년 / 18분 / #화석연료 #환경운동 / 에코단편선3 한 노년의 운동가가 작은 어촌의 정유공장 증설에 반대하며 고독한 투쟁을 벌인다. 그사이 마을 주민들의 우유부단함은 전염병처럼 퍼지며, 지속 가능한 변화와 단기적인 사회 안정을 두고 갈팡질팡한다. 만찬 The Feast 리쉬 찬드나 / 인도 / 2023년 / 25분 / #생물다양성 #환경운동 / 에코단편선3 죽어가는 호수를 살리기 위해 한 여성 어부가 지역 유력 정치인을 위한 잔치를 열고 결코 잊을 수 없는 요리를 대접하며 그에게 맞선다. 누가 범인인가? Who Killed It? 치잉주, 이보이 / 대만 / 2024년 / 24분 / #동물권 #반려동물 / 에코단편선3 2017년 유기견 살처분 금지 이후, 유기견 수는 급격히 증가했고 2022년까지 18만 마리에 달했다. 이로 인해 야생동물의 피해도 늘어나고 있으며 생태계에 위협이 되고 있다. 수의사 린유하산과 연구원 원시앙순이 대만에서 개 공격 문제의 심각성을 조명한다. 콩, 영원의 이야기 The Everlasting Pea 수 라이나드 / 캐나다 / 2024년 / 16분 / #자연 #생물다양성 / 에코단편선4 과학적 탐구와 고대 유적, 신비로운 꿈의 풍경이 어우러진 매혹적인 식물 세계를 탐험한 다. 식물의 의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과학자, 로마 콜로세움에서 과거를 꿈꾸는 완두콩 식물,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식물학자의 시선을 따라 영화는 인간과 식물 세계 사이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해석한다. 불이 지나간 자리 When Everything Burns 마리아 벨렌 폰시오 /아르헨티나 / 2024년 / 12분 / #기후변화대응 #산불 / 에코단편선4 이사벨은 산불의 원인으로 지목된 부동산 개발을 공격했다는 이유로 자신이 속한 소방대 에서 외면당한다. 홀로 싸움을 이어가던 그녀는 고립과 좌절을 마주하게 되는 한 만남을 통해 투쟁의 본질을 되묻게 된다. 마지막 계절 The Lost Season 켈리 시어스 / 미국 / 2023년 / 6분 / #기후변화 적응 / 에코단편선4 지구는 마지막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한 스트리밍 회사는 곧 사라질 이 계절의 마지막 순간들을 기록하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카메라 오퍼레이터를 고용한다. 하지만 자신의 영상이 생태 착취 행위임을 깨달은 이들은, 더이상 자신의 노동력으로 기후 붕괴를 상품화 하지 않겠다는 결단을 내린다. 모래 속의 불평등 The Moving Sand 아티디사이 딩 부안다오헝 / 라오스 / 2024년 / 20분 / #발전 #인권 #지속가능성 / 에코단편선4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의 모래 채굴 활동을 중심으로, 메콩강 유역을 따라 경제 성장, 환경 피해, 사회적 불평등의 교차 지점을 탐구한다. 도시 개발과 함께 급증하는 모래 수요는 숨겨진 불평등과 환경 피해를 드러낸다. 영화는 모래 채굴 회사 CEO 티의 이야기를 따라가 며, 개발의 이익이 일부에게만 돌아가고 많은 평범한 시민들이 변화하는 도시 환경을 감당하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나의 3MWh(메가와트시) 3MWh 마리-마그달레나 코호바 / 체코 / 2024년 / 12분 / #에너지 #발전 / 에코단편선4 숫자에 집착하는 한 원자력발전소 직원이 자신이 사용할 전기의 최대한도를 정해놓는다. 하지만 평생 써야 할 전기는 서서히 바닥나고, 그는 남은 전기를 어디에 사용할지 결정해 야만 한다. 영화는 시적으로 탈성장을 이야기하며 자연을 인간 중심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거둔다면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를 보여준다. 목소리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생성 전기 방전 효과를 16mm 아날로그 필름에 입혀 인간과 물질적 현실 사이의 관계를 드러낸다. 빙하를 만드는 사람들 The Ice Builders 프란체스코 클레리치, 톰마소 바르바로 / 이탈리아 / 2024년 / 15분 / #기후변화대응 / 에코단편선4 히말라야산맥의 고지 사막 계곡인 잔스카르는 해발 3,000~7,000m에 걸쳐 있는 외딴 지역으로, 이곳의 주민들은 봄철에 녹는 빙하수에 의존해 농업과 생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최근 수십년 사이 기온 상승으로 빙하가 줄어들고 물이 부족해지면서 수많은 마을이 사라 지는 위기를 맞고 있다. 기후변화라는 불평등한 싸움 속, 오늘날 라다크 지역 주민들은 인공 빙하를 만들어 봄철의 물 부족을 해결하고 지하수 확보에 힘쓰고 있다. AI 대담: 석유 시대의 끝 The Closing of a Refinery 바스코 몬테이로 / 포르투갈 / 2023년 / 16분 / #지속가능성 #AI / 에코단편선4 포르투갈 북부 최대 정유소의 폐쇄를 계기로 지속가능성, 기후변화, 그리고 인류의 미래에 대해 챗 GPT와 자기 탐색적 대화를 나눈다. 탄소 할당량: 죽거나 살거나 Quota 욥 로게벤, 요리스 오프린스, 마리케 블라우 / 네덜란드 / 2024년 /2분/ #에너지 / 온라인 only 전세계 누구나 자신의 탄소발자국을 추적해야 한다지만 CO2 쿼터제의 영향은 미미해 보인다. 하지만 정해진 배출 한도에 도달하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기 바다거북의 새벽 Dawn 장유팡, 드주 매티외, 포레스티에 막심, 욘케르 루카스, 메르시에 노아, 프라데이유 마리, 로이에르 아폴린, 스토라 로리스 / 프랑스 /2024년 / 5분 / #생물다양성 / 온라인 only 바다로 가야 하는 아기 바다거북. 숱한 장애와 포식자의 위협을 뚫고 무사히 바다에 이를 수 있을까? 환경 규제의 행성 For the planet 에네코 무루사발 엘레스카노 / 스페인 / 2024년 / 9분 / #지속가능성 / 온라인 only 무균 실험실에서 일하는 과학자 마리오와 카를라는 날로 엄격해지는 환경규제에 직면한다. 규제가 불합리한 수준에 이르자, 마리오는 돌파구를 모색하고자 상사를 찾아간다. 마틸다와 용감한 탈출 Matilda and the Brave Escape 애쉬 리드 / 영국 / 2024년 / 7분 / #동물권 / 온라인 only 영국 양돈 농가에서 나고 자란 돼지 마틸다는 새끼들과 함께 살아남고자 탈출을 감행한다. 그러나 이미 다른 계획을 세워둔 농장주들은 마틸다를 되찾으러 나서는데…. 모든 낮과 모든 밤 All day and All of the Night 프리야 나레쉬 / 인도 /2022년 / 8분 / #인권 #환경재난 / 온라인 only 아마다바드에서 가장 큰 쓰레기 매립지 옆에 사는 13살 소녀와 물 이야기. 졸속으로 개발된 이 일대는 수도망도 부실하고 지하수도 오염됐다. 영화는 매립지를 거쳐온 빗물에 저지대 주택가가 침수돼 깨끗한 물을 구하기가 더더욱 힘들어지는 우기의 식수난을 전한다.

[기획] 스물하나의 에코 시네마, <씨네21>이 꼽은 21편의 제22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추천작 ②

플라스틱 판타스틱 Plastic Fantastic 이사 빌링거 / 독일 / 2023년 / 102분 / #자원순환 #지속가능성 <플라스틱 판타스틱>은 플라스틱 문제를 전 지구적 위기로 조명하며 그 해법을 탐구하는 다큐멘터리다. 독일의 여성감독 이사 빌링거는 플라스틱이 우리 일상에 깊이 스며든 과정을 추적하며, 그 생산과 폐기 과정이 어떻게 자원순환 고리를 끊는지를 면밀하게 분석 한다. 해변에서 맨손으로 플라스틱 쓰레기를 치우는 활동가들, 자원순환을 실현하기 위한 혁신적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과학자들의 모습이 교차로 담긴다. 영화는 단순한 고발에서 그치지 않고, 플라스틱 산업의 확장과 그로 인한 환경 불평등, 기후 인종차별에 대한 경각 심을 일깨운다. 동시에 해결책으로서의 순환 경제 모델과 글로벌 연대의 필요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이 영화는 플라스틱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의 소비와 생산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고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플라스틱 인간: 미세 플라스틱의 숨겨진 위기 Plastic People: The Hidden Crisis of Microplastics 벤 애들먼, 자이야 통 / 미국 / 2024년 / 80분 / #자원순환 #지속가능성 인간은 플라스틱과 가장 가까이 살고 있다. 플라스틱으로 뱃속이 가득 차 죽은 새의 잔해는 플라스틱이 동물의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오염의 주범임을 알리는 강력한 이미지다. 미세플라스틱은 분해되지 않고 공기, 물, 토양 등 다양한 환경으로 퍼져 나가며 먼지와 뒤뜰에 내린 눈뿐만 아니라 인류의 뇌, 혈액, 태반에서도 발견된다. 해부도, 엑스레이 영상, 푸티지, 애니메이션 등으로 다양한 시각적 장치를 활용한 <플라스틱 인간: 미세 플라스틱의 숨겨진 위기>가 추적하는 실상은 플라스틱 산업에서 시작해 과학적 접근과 실험, 전문가의 연구와 인터뷰로 채워진다. 미세플라스틱은 천식, 불임, 암 등 치명적 질병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 다큐멘터리는 줄지 않는 플라스틱 산업과 사용이 결국 인간의 몸으로 돌아온다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할 수 없게 한다. 일과 날 박민수, 안건형 / 대한민국 / 84분 / #자원순환 #지속가능성 박민수, 안건형 감독의 다큐멘터리 <일과 날>은 염전 노동부터 육아까지 각자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아홉 노동자의 노동 현장을 기록한다. 카메라는 자신의 일터에서 묵묵히 일하는 노동자의 얼굴을 포착하는 데 그치지 않으며 이들의 불안을 드러내는 데에 이른 다. 각 노동자의 내레이션은 능력주의, 기후 위기, 저출산, 부동산, 지방 소멸 등 개인이 책임질 수 없는 큰 의제를 아우른다. 의제가 하나둘씩 중첩되면서 한국의 총제적인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영화는 청년부터 노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목소리를 통해 관객에게 한국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질문한다. 노동자의 증언으로 기후 위기와 저출산 등이 삶에 곧바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드러내면서 기업, 정부 등 책임 주체를 소환한다. 감독은 노동자 중에서도 기계 수리공, 분리수거 전문 환경미화원을 주목한다. 자원의 순환을 지탱하는 직업의 버거움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 이들의 노고를 역설한다. 우리는 섬으로 갔다 김예림 / 대한민국 / 2025년 / 94분 / #자연 #발전 #동물권 2019년 10월, 결혼식을 막 마친 명철과 도원은 익숙한 도시의 삶을 뒤로하고 머나먼 섬청산도로 향한다. 사시사철 푸른빛을 머금은 자연을 바라보고 있으면 여유로운 삶을 꿈꾸며 먼 길을 달려온 이들의 바람이 벌써 이뤄진 듯하다. 섬에 정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새 생명이 찾아오고, 명철은 세 식구의 근사한 삶을 위해 손수 집을 짓기로 마음먹는 다. 하지만 평온도 잠시, 인구 불균형에서 비롯된 열악한 노동환경이 육아에 지친 부부를 압박해오기 시작한다. <우리는 섬으로 갔다>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꿈꾸며 섬으로 이주한 부부의 정착기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려낸다. 숨 가쁘게 살아가는 이들이 마주 하는 크고 작은 갈등을 통해 도시인이 새로운 환경에 뿌리내리기 위해 어떤 지원이 필요 한지를 절감할 수 있다. 코로나19의 잔해가 남아 있는 시기부터 아이가 자라기까지 4년에 걸친 기록은 두 사람의 삶과 성장을 진솔하게 담아낸다. 종이 울리는 순간 김주영, 소헤일리 코메일 / 대한민국 / 2025년 / 80분 / #자연 #발전 #동물권 평창 동계올림픽은 3번의 시도 끝에 유치에 이른 초국가적 이벤트였다. 2018년 2월9일부터 25일까지, 17일 동안 열렸던 평창 동계올림픽은 국가의 위상을 입증하기 위한 정치적 제스처였으며, 선수들에게는 스스로를 증명하는 시험대이자 영광을 누리는 시상대가 마련된 꿈의 장소였다. <종이 울리는 순간>은 전세계로 영광의 순간을 송출하던 찰나의 이벤트가 끝난 후의 남겨진 흔적을 응시하면서, 지금도 그곳에 머무르고 있는 다양한 사람 들의 증언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이다. 단 3일간 열렸던 알파인스키 경기의 환호성과 맞바꾼 것은 500여년의 역사를 지닌 가리왕산의 원시림이다. 가리왕산을 터전으로 삼았던 야생동식물의 자리를 대체한 것은, 적자로 운영되고 있는 텅 빈 케이블카이다. 산림 복원과 시설 유지라는 좁혀지지 않는 양측의 아우성 너머로, 발언권을 부여받지 못한 숲의 오래된 주인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꽃풀소 임중완 / 대한민국 / 2024년 / 80분 / #자연 #발전 #동물권 불법 개 농장 인근에서 발견된 열다섯 명(命)의 소.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열린 모금은 큰관심을 모았지만,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일은 여전히 막막하기만 하다. 고심 끝에 동물해방물결은 폐교를 활용해 소를 돌보고 이를 관광 콘텐츠로 발전시켜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두 차례의 실패를 겪은 활동가들은 신월리 어르신들과 세 번째 협상에 나선다. <꽃풀소>는 동물들의 안식처를 마련하는 ‘생츄어리 프로젝트’를 따라 가며 야생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한다. 인제의 눈부신 풍광이 잔잔히 흐르는 장면들이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 동물권 문제를 지방 소멸이라는 사회적 이슈와 엮어내어 구체적인 실천 방향을 제시한 점이 돋보인다. 젊은이들의 고운 마음씨를 지켜주고 싶다는 어른들의 말에는 종을 넘나드는 상생의 지혜가 담겨 있다. 환경운동의 경계를 넓혀가는 이 모든 여정은 이름을 붙여주는 작은 행위에서 비롯되었다.

[씨네인터뷰] 기후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어린이들은 ‘어른의 어른’, 최열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조직위원장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은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조직위원장으로서 22회째 축제를 함께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 정부·기업·시민사회의 협동을 이끌어내는 실천공동체로서, 환경재단은 영화의 쓸모를 믿는다. 한편의 영화가 관객으로 하여금 기후 위기를 인식시키고, 개인의 역할을 일깨운다면 내일은 더 푸르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최열 이사장은 “좋은 환경영화에는 한 사회의 전 분야를 파악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40여년간 환경운동을 해오며 영화제가 그 배움의 터전이 될 수 있도록 애써온 그에게 지난날의 소회와 앞으로의 바람에 대해 물었다. - 기후·환경 문제처럼 복잡한 주제는 영화를 통해 감동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철학으로 서울국제환경영화제를 개최해왔다. 그 시작은 어땠나. 2002년 환경재단을 설립하면서 계획한 첫 사업 중 하나가 영화제 개최였다. 1년 정도 준비 과정을 거쳐 2004년에 제1회 영화제를 실시했다. 영화를 상영하는 것뿐 아니라 직접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1.3.6>이라는 제목의 옴니버스영화를 제작해 제1회 개막작으로 튼 기억이 난다. 옴니버스 중 한편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웃음) 당시 세계경제포럼이 세계 142개국을 대상으로 환경지속성지수를 평가해 발표했는데, 우리나라가 136위를 차지했다. 거기서 제목을 따온 것이다. 2002년에 월드컵 4강까지 올랐던 나라가 환경문제에 있어서는 이렇게 취약했다. - 회를 거듭하며 환경영화제가 현실을 바꾸는 데 일조했다고 보나. 한편의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영화제가 말만 그렇게 하고 사례를 보이지 않으면 안된다. 2017년 제14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 국제환경영화경선 장편 대상을 수상한 <플라스틱 차이나>가 떠오른다. 왕주량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전세계 플라스틱 폐기물이 모이는 중국의 현실을 보여준다. 작품이 중국 정부에도 영향을 미쳐 정책이 바뀌었고, 중국에 플라스틱 폐기물을 수출하던 각 나라에도 영향을 줬다. 그런 변화를 경험한 감독을 몇년 후 다시 초청했는데, 그가 딸을 데리고 왔다. 자신의 영화가 이렇게 파급력이 있을 줄 몰랐다며 감독으로서 보람을 느낀다고 하더라. 영화제를 주최하는 입장에서도 공감했다. - 환경영화제는 ‘환경’을 주인공 삼은 만큼 다른 영화제와 차별화된 운영 방침이 있을 텐데. 지금은 대부분의 영화제가 그렇게 하지만 환경영화제는 초창기부터 탄소중립영화제를 꿈꾸며 실물 필름이 오가게 하는 대신 온라인 출품을 지향해왔다. 영화제 기간 동안 발생하는 탄소 발생량을 상쇄하기 위해 맹그로브 나무를 심기도 한다. 맹그로브는 이산화탄소를 잘 흡수할 뿐 아니라 바다나 강변에서 자라기에 생태계의 오염물질을 정화할 수 있고, 뿌리에서 어패류가 살아갈 수도 있다. 지난해에는 관객이 낸 영화 티켓 값이 방글라데시 순다르반 지역의 맹그로브 식재를 위해 기부되기도 했다. - 영화제의 행보에 공감하는 관객에게 추천하고 싶은 환경재단의 또 다른 프로그램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한다. 어느덧 15회까지 진행한 그린보트를 소개하고 싶다. 크루즈를 타고 동아시아를 항해하며 환경에 관한 강의를 듣고, 환경을 고민하는 명사들과 만날 수 있는 여행 프로그램이다. 대학교 3학년 때 한 학기를 휴학하고 일본의 피스보트를 탄 딸의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한 것이다. 딸이 110일간 배를 타고 여러 도시를 체험한 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소심했던 아이가 적극적으로 변해 많이 놀랐다. 환경재단도 환경문제에 있어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경험을 줄 수 있기를 바라며 일본 피스보트의 대표를 만났다. 그렇게 두 비정부 기구가 협업해 2005년부터 ‘피스&그린보트’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2018년부터는 환경재단이 독자적으로 그린보트를 운영해왔다. 코로나19로 인해 4년간 출항하지 못하다 드디어 지난 1월 2400명이 배를 탔다. 모두들 텀블러를 챙겨왔고 일회용품을 쓰는 분이 하나도 없더라. 우리가 사전에 공지한 바가 지켜져 뿌듯했다. - 바다 위에서 환경을 고민할 때는 땅 위에서와 다른 감각을 느낄 수 있나. 배를 타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하찮은지 느끼게 된다. 인간으로서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던 기분이 사라진다. 망망대해에서 바람이 한번 불면 육지에서 바람을 맞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인 것이다. 대신 배에서는 어떤 주제를 이야기해도 그에 대한 청중의 몰입이 높아진다. 환경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수소로 가는 배가 등장하는 등 조금 더 친환경적인 배가 나올 것이다. 그런 긍정적인 변화를 수용하면서 그린보트를 계속 운영해나가고 싶다. - <최열 아저씨의 지구촌 환경 이야기>와 같은 저서를 집필해 오랫동안 어린이, 청소년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기도 했다. 기후·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어린이들이 그렇지 않은 어린이들보다 훨씬 똘똘하다. 독후감 대회를 연 적이 있는데 보름 만에 5천통의 독후감이 들어왔다. 시상식에 수상자들의 가족을 포함해 400명이 온 기억이 난다. (웃음) 내 책을 본 어린이들에게 편지도 참 많이 받았다. 그들이 자라서 환경영화제 자원활동가로 온다. 한번은 영화제 기간 중 만난 자원활동가 여학생이 초등학생 때 내 책을 읽고 영향을 받아 환경과학을 전공 중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줬다. 만나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그제야 느껴 그때부터는 어린이들의 편지에 간단하게라도 답장을 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내 책을 읽었다는 분들 중 50대도 있다. 언젠가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해 새로운 책을 낼 생각이다. - 제21대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이틀 뒤 영화제가 개막한다. 새로운 정부에 기대하는 환경 정책 방향성이 있다면.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기후·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신경 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지금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아이가 이런 환경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 순수를 간직한 어린이들을 ‘어른의 어른’이라 여기며 이 요구를 진지하게 여겼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책이 필요하겠지만 헌법 1조에서부터 기후·환경 문제를 언급해야 한다. 최재천 교수를 비롯한 각계 인사 33명과 헌법 1조 개정안을 제안하는 기자회견도 했었다.

[인터뷰] 박보검의 인생도 잘 써내려가고 싶다, 배우 박보검 ➁

- 일찍 진로를 찾은 편인데 10대 때 장래희망으로 <굿보이> 같은 경찰을 꿈꿔본 적은 없을까요. 전혀요! (웃음) 그런데 제 안에 정의롭고 깨끗한 사회에 대한 바람은 늘 있어요.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너무 거창한가 싶어 망설여지긴 하지만, 저는 모두가 건강하고 의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사회가 좀더 올바르게 밝아졌으면 하고 진심으로 바라요. - 때로는 작품 선택의 기준이 되기도 하겠네요. K콘텐츠가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외국 팬들이 작품을 통해 한국어를 공부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저도 그 영향력을 염두에 두는 편이죠. 제가 나온 작품을 보고 대화를 할 때 기왕이면 서로 건강한 메시지를 나눌 수 있다면 좋잖아요? <굿보이>는 ‘이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그래도 아직 세상은 살 만하구나’를 생각하게 해줘요. 장르물에서 어쩔 수 없이 비리 경찰들이 부각되어왔다면, 정직하고 투철하게 살아가는 경찰들의 이야기도 많이 보여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제가 잘 이야기한 건가 모르겠어요. - 재현의 대표성이 갖는 힘이 있고 균형도 중요하죠. 윤동주의 정의감과 별개로 인간 박보검이 참기 힘든 불의는 어떤 것일지도 궁금한데요. 강약약강이라고 하나요. 강한 사람에게 비굴하고 약한 사람 앞에 더 강한 모습이요. 그렇게 되지는 말아야지 하는 마음을 넘어서 그런 것들을 보고 싶지가 않아요.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그건 아니지 않을까’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 과거의 현장은 더욱 위계가 분명한 곳이었잖아요. 경쟁을 부추기는 업계의 분위기도 있고요. 그 부분은 저도 신기한데요. 관계와 만남에 축복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정말 좋은 분들과 만났어요. 최근 몇년간 제 안의 화두가 외유내강인데요. 겉으론 유해 보여도 속은 강하다, 그게 무슨 뜻일까를 자주 질문하게 됐어요. 할 말을 해야 할 때 할 줄 아는 사람? 아니면 리더십이 있는 사람? 저는 그 의미를, 강한 사람과 강하게 맞붙기보다 그 사람을 잘 헤아리는 방식으로 포용하고 약한 사람을 피상적으로 연민하는 것이 아닌 깊이 있는 존중으로 맞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생각한 것이에요. - 주변인들이 남긴 미담이 워낙 많은 배우입니다. <폭싹 속았수다> 때만 해도 아이유 배우가 열띤 칭찬을 하는 모습이 화제가 됐고요. 촬영 현장에서 좋은 동료가 된다는 건 실질적으로 어떤 자질을 말하는 걸까요. 상황이 안 좋고 체력적으로도 지쳐 서로가 투박해질 만한 순간에 드러나는 작은 차이 같은 것일지요. 그건 그냥 고통에 반응하는 역치값이라고 할까, 사람마다 다 다를 텐데 제가 꽤 잘 견딜 수 있는 사람이어서인 것 같아요. 실제로 아픈 것도 되게 잘 참고요. (웃음) 그러니까 다 같이 힘들 때 분위기를 살짝만 더 힘차게 가져가보는 거죠. 상대방이 편하면 제 마음이 편한 타입이기도 해요. 그런데 한 가지 주의하는 건, 제 딴엔 배려한 행동이 왜곡되어 받아들여질 때도 있더라고요. 속마음을 구구절절 말하지 않는 편이라 그랬던 것 같아요. 이제는 소통 부족으로 괜한 오해가 생기지 않게끔 조금 더 정확하게 대화하려고 노력해요. 나는 이러이러해서 정말 괜찮으니 편하게 해달라, 고요. 나름의 요령과 지혜가 생긴 정도죠. - 그렇게 애쓰고 나서 집에 돌아가면 그제야 푹 쓰러지는 건가요, 아니면 여전히 멀쩡한 건가요. 아, 제가 회복력도 진짜 빨라요. 맛있는 거 먹고 잘 자고 나면 놀라울 만큼 금방 충전되거든요.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동주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그 친구의 진정한 초능력이라고 한다면 이런 회복 능력일 거라고 봐요. - 대중을 위한 배우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직업인으로서 떳떳하고 싶은 마음을 읽게 됩니다. 예능 을 하면서 절절히 생각했어요. 같이 일했던 동료들,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를요. 외국인로서의 낯선 삶 속에 제가 뛰어들어서 그 사람으로 대신 살아보는 거잖아요. 그 시간 동안 체감하게 되는 건 이 사람이 주변인에게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비록 72시간 동안 대신 살아가는 게 전부이긴 해도 이 사람의 삶에 조금이라도 흠집을 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게 돼요. 정말 잘 살아내고 싶은 거죠. 그 프로그램을 하고 나서 박보검의 인생도 잘 써내려가고 싶다고 마음을 더 다잡았어요. - 30대의 새로운 장르들을 개척해나가는 지금, 박보검의 용광로가 막 끓고 있는 시기 같아요. 선하고 로맨틱했던 청춘의 아이콘이 조금씩 주름을 입어갈 시간들이 기대돼요. 복서에 비유하자면 앞으로의 페이스 조절에 대해 고민할 법합니다. 많은 분들이 제게 기대하고 바라는 모습이 부담이었던 적은 없어요. 이를테면 선하고 무해하고 모범적인 인상을 가질 수 있었다는 데 저는 무척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아가면서 늘 한번 더 주의하고 생각할 수 있었고요. 그런데 제 삶의 경험이 넓어진 만큼 그동안 못해본 역할, 성격과 직업들로 확장해가고 싶은 의지도 뚜렷해졌어요. 다만 너무 직설적이지 않게, 조급하지 않게요. 한꺼번에 과식하지 않으려고요. 제게 다가오는 파도를 잘 타고 싶어요.

[기획] 마음껏, 푸르게, 반짝이며, <하이파이브> 배우 이재인 인터뷰

이렇게 햇살 같은 히어로가 세상에 어디 또 있을까. 심장을 이식받은 이후로 근원을 알 수 없는 파워와 스피드가 생긴 완서는 배우 이재인 고유의 낙천성과 외로움을 좇아 선명하게 그려진다. 자기만의 비밀이 생겼다는 으쓱거림이나 잘생긴 사람 앞에서의 음흉한 미소는 여고생 특유의 유머를 자아내고, 중요한 순간에 차분한 무게를 유지하는 균형은 쾌활한 태권도 소녀가 감춘 사적인 결핍을 들여다보게 한다. 이제야 세상과 관계 맺기 시작한 어린 히어로의 빛과 그림자를 이해한 이는 인터뷰 끄트머리에 반짝이는 말들을 덧붙였다. “<하이파이브>를 촬영하는 동안 내가 얼마나 영화를 사랑하는지, 그게 얼마나 큰 마음인지 새삼 다시 깨달았다. 요즘엔 혼자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크리스마스 배경의 좌충우돌 이야기를. 이제 막 후반에 다다랐으니 언젠가 모두에게 보여줄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 <하이파이브>에 합류한 과정이 궁금하다. 강형철 감독이 오디션에서 어떤 요청을 했나. 여전히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다. 완서는 행동이 할아버지 같고 말투도 무척 독특한 친구다. 이런 특징을 확인하기 위해 영화 <괴물>의 희봉(변희봉) 대사를 읽어보는 미션이 있었다. 또 액션이 무척 중요한 요소라 무술감독님 앞에서 발차기를 선보여야 했다. 그날 아주 잘 올라갔다. (웃음) 무술감독님도 가능성이 보이는 발차기라고 해주셨다. 유연성이 좋은 편은 아닌데 어릴 적에 태권도를 배운 게 몸에 남아 있는 것 같다. 평소 히어로영화를 좋아하냐는 질문도 있었다. 그래서 <데드풀>을 좋아한다고 대답했더니 웃으시며 “그거 아직 못 보는 나이 아니야?” 하시길래 “아차차! 어쩌다 봐버렸습니다” 하고 답했다. (웃음) - 영화 촬영이 한창이던 당시, 이재인 배우 또한 완서처럼 청소년기를 거치고 있었다. 어쩐지 완서가 가깝게 느껴졌을 것 같다. 오랫동안 혼자 지내온 외로운 완서는 하이파이브 어른들을 만나 친구를 사귀는 과정을 겪는다. 나 또한 이즈음에 연기 활동으로 출석이 어려워지면서 학교를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배우의 일을 무척 좋아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즐거웠던 학교생활이 끝나버린 건 너무 아쉽고 외로웠다. 그런데 촬영장에서 하이파이브 배우분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는 나의 상황이 완서와 딱 들어맞는 느낌이었다. 완서에게 유쾌한 친구들이 생긴 것처럼 나도 이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또 완서랑 내 말투가 무척 비슷하다. 사실 시나리오에서는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 조금 더 강했는데, 진짜 나로부터 완서를 끄집어내고 싶어서 실제 나의 태도나 반응, 습관에서 시작했다. - 히어로로부터 심장을 이식받은 만큼 가장 강한 위력을 선보여야만 했다. 그린스크린 앞에서 VFX가 접목될 액션을 연기하는 경험은 어땠나. 처음에는 정말 많이 낯설었다. 하지만 현장에 계신 모든 분들이 전문가다. 어느 부분에 무엇이 나올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셔서 그걸 상상하면서 연기할 수 있었다. 꼭 그린스크린이 아니더라도 연기라는 게 상상을 바탕으로 표현해나가는 것이라 그 자체가 어색하진 않았다. 많은 장면들이 컴퓨터그래픽과 VFX로만 이뤄진 것은 아니다. 언덕을 뛰어 올라가는 장면은 실제로 언덕 중반까지 전속력으로 달렸고, 카트 체이싱은 내가 카트를 잡고 바람을 쐬면서 트레드밀을 달렸다. 가장 어려웠던 건 타격감을 주는 듯한 모션. 박진영 배우는 탁탁 끊어지게, 그래서 진짜 무언가를 강타하는 듯한 느낌을 정말 잘 살린다. 나도 이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서 근력운동을 많이 했다. - 액션에 대한 즐거움이 느껴진다. 앞으로 이 장르를 어렵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다. 이젠 와이어가 내 친구다. (웃음) - 하이파이브 히어로와 빌런의 싸움이 최정점에 다다랐을 때 완서는 머리를 쓸어넘기며 새로운 챕터를 연다. 완서라는 인물을 살아 있게 만드는 이 무적의 포즈. 어떻게 완성된 것인가. 그 포인트 동작은 현장에서 내가 아이디어를 낸 거다! (웃음) 전투를 촬영하면서 땀 분장을 계속 하니 머리가 젖어 있었다. 그래서 마치 완서가 변신하는 것처럼 시원하게 머리를 쓸어넘기면 어떨지 감독님에게 제안드렸다. 짜잔 하고 나타나는 느낌이랄까. 내가 워낙 히어로물을 좋아하고 많이 봐서 타이밍을 더 적극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촬영 때에는 이 장면이 어떻게 영상으로 나올지 궁금했는데 너무 멋지게 나와서 진짜 히어로가 된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정말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다. 한국에서 히어로물이 흔치 않고 그 역할을 맡는 것도 쉽지 않은데 내가 그 자리에 함께하다니. 정말 영광이다. - 영화를 설명하는 또 다른 키워드는 코미디다. 지성 역의 안재홍 배우와 코미디 합을 많이 맞췄는데, 특히 리코더 신은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웃음을 이끌어낸다. 리코더 신 너무 웃겼다. (웃음) 내가 안재홍 배우의 오랜 팬이어서 작품을 함께하는 게 너무 설레고 동시에 긴장됐다. 나도 밀리지 않게 재미있고 싶었다. 그런데 엄청 웃긴 장면들도 안재홍 배우는 차분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임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 많이 배웠다. 코미디란 게 진지한 태도로 임할 때 훨씬 더 웃기다는 걸. 꼭 무언가를 해야만 코미디가 완성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 지성과 기동(유아인)의 잦은 싸움은 히어로 전체의 갈등이 되기도 한다. 그 끝에서 완서는 눈물을 보인다. 여기서 물음이 생긴다. 서로 알게 된 지 오래되지 않은 시점에, 심지어 평소 냉소적이던 완서는 왜 이 갈등에서 그렇게까지 영향을 받는 것일까. 완서는 어릴 적부터 또래와 교류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던 만큼, 일상적인 갈등을 경험할 기회도 많지 않다. 그러니 어렵게 사귄 친구들과 마음이 맞지 않을 때 완서는 마치 인생이 무너진 것만 같았을 것이다. 그게 완서의 첫 번째 사춘기다. 지성이 그런 말을 한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꼬여.” 정말 철학적인 말이다. <하이파이브>가 인물들의 전사를 많이 보여주는 편은 아니지만, 이 말을 통해 완서의 지난 시간을 추측할 수 있다. 몸이 아픈 동안 마음속에 쌓여온 감정과 설움이 파도처럼 밀려와 터져버렸을 거라고.

[박 로드리고 세희의 초소형 여행기] 6년 사이의 포트레이트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 영문판을 구해줄 수 있을까요?’ 수인의 메시지였다. 난감했다. 노벨문학상이 발표된 지 일주일 남짓한 때였으니, 세상은 온통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과 함께 그녀의 책이 얼마나 불티나게 팔리는지 타전하기 바빴다. 한국 문학계의 오랜 숙원인 노벨문학상이었으니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인 것은 당연했다. 나라 안에서만이 아니라 노벨문학상이라면, 문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읽고 싶겠지. 그것은 아주 평범한 바람이겠지. 멀리서 전해진 누군가의 평범한 바람이 이토록 슬프다는 것이 아연해서 메시지창을 붙들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책을 꼭 구해야겠다는 다짐이 일었다. 비로소 실감되었다. 나는 곧 ‘로힝야’ 난민캠프에 간다. 수인은 국제평화단체 ‘개척자들’의 활동가다. 로힝야 난민캠프가 있는 방글라데시를 들락날락하는 것이 그녀의 일인데, 나도 늘 따라붙고 싶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 어렵사리 서로의 일정을 맞출 수 있었다. 이미 여러 번 필요한 거 없느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챙겨가겠다고 물었지만 따로 회신이 없었다. 검소하고 불편한 생활에 인이 박인 활동가들이라 그러려니 했는데, 처음으로 무언가를 요청하는 메시지였다. 개척자들이 지원하는 난민 학교의 선생님 누군가가 한강의 소설을 읽고 싶다는 것이었다. 급한 마음에 인터넷 서점을 뒤적였는데 죄다 매진이었고, 언제 다시 입고될지 알 수 없다는 안내만 나와 있었다. 한국말보다 영어가 익숙한 친구에게 난감한 사정을 알렸다. 혹시나 이미 가지고 있으려나 했지만 그렇지는 않았고, 대신 전국의 중고 서점을 살피더니 대전에 딱 한권 남은 <채식주의자> 영어판을 친히 차를 몰아 구해주었다. 내가 받아든 그 책은, 한권의 헌책에 지나지 않지만 여러 사람의 소중한 마음이 덧대어져 스스로 고고한 빛을 발하는 것만 같았다. 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 전체 일정이라 해봐야 10일 남짓이었다. 캠프에 들어서니 대나무로 얼기설기 적당히 꼴을 잡고 비닐과 천막으로 벽을 만든 난민의 집들이 빼곡했다. 무슬림은 대체로 위생 관념이 철저한 편인데 좁은 면적에 너무 많은 집들이 들어차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생활의 악취가 가득했다. 가난과 상관없이 늘 매무새가 단정한 로힝야이기에 악취는 더욱 슬프게 폐부를 할퀴었다. 상수도시설은 언감생심이고 지하수를 뚫어 생활용수를 해결하는데 땅은 하수와 쓰레기로 오염되었으니, 오염된 땅은 다시 지하수로 스며들어 악순환을 하고 있었다. 캠프 안을 걷다보면 견디기 힘든 무력감이 몰려와 종종 눈을 감아야 했다. 대대손손 잘 살던 곳에서 갑자기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자유를 제한당한 것도 모자라 총부리를 겨누며 나가라고 하니, 환장할 노릇이었을 것이다. 아무 잘못도 없고 갈 곳도 없는데, 여기가 내 집이고 고향인데. 로힝야는 저항했고, 저항은 학살로 돌아왔다. 희생된 이웃과 친지의 트라우마를 안고 쫓겨나듯 국경을 넘은 그들의 수는 너무 많았다. 100만명에 이를 정도라고 하니 국제사회와 구호단체에서도 쉬이 손을 쓸 수 없었다. 이런 걸 두고 속수무책이라고 하는 거겠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정말 눈감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마음을 다잡아 눈을 부릅뜨고 다시 사진을 찍었다. 미약하고 막연하지만 보탬이 되고 싶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로힝야 난민을 위로해줄 수 있도록. 직접 위로해주지 못하더라도 멀리서나마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도록. 작은 관심이라 할지라도 모이고 모이면 그들에게는 큰 위로가 될 테니까. 한강의 책을 요청한 선생님은 ‘누르 까말’이었다. 6년 전 여기를 처음 방문했을 때 그의 포트레이트를 찍었던 기억이 선연했다. 굳은 다짐에도 불구하고 다시 오기까지 6년이나 걸렸구나. 그동안 한국은 대통령이 한번 바뀌었고, 바뀐 대통령은 국민을 유린하듯 세상에서 가장 짧은 계엄령 기록을 갈아치웠다. 공교롭게도 증언문학으로 한국 현대사의 학살 트라우마를 보듬어온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기 위해 스웨덴에 머물 때 일어난 일이었다. 한강 작가에게도, 국민에게도 비현실감을 가득 먹인 대통령의 계엄은 결국 탄핵에 이르렀고, 한국은 새로운 대통령이 막 선출되기에 이르렀다. 한강 작가에게 노벨문학상이 주어진 연유는 ‘시대의 고통에 대한 증언’ 때문이라지. 그래서 ‘세계의 실체적 진실’을 문학으로 성취하여서라고. 증언의 책무를 깊이 새기며 누르 까말에게 책을 전하고, 그의 포트레이트를 다시 한번 찍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스스로 허물어진 건지 누군가 허물어뜨린 건지 모르게 철조망 사이에 난 개구멍을 통해 난민캠프에 마지막으로 들어갔다. 며칠 전 차를 타고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한 구멍이었는데, 꼬마들 몇이 거기서 뛰쳐나와 세상 밖을 질주하듯 힘차게 뛰어놀고 있었다. 아무리 가두려 해도 인간의 자유의지는 살아갈 구멍을 찾아낸다. 로힝야의 강렬한 생의 의지를 되짚으며 부러 찾아간 구멍이었다. 난민캠프에서는 크리켓이 유행인 모양이었다. 크리켓을 하는 아이들이 종종 보였는데 던지는 아이는 살살 던지고, 치는 아이는 살살 쳤다. 마음껏 던지고 치기에는 골목이 너무 좁았으니까. 귀한 공을 잃어버려서도 안되었고 다른 집에 피해를 줘서도 안되었다. 지나칠 뻔한 풍경이었는데 거기에는 로힝야 난민의 처지가 중첩되어 있었다. 우두커니 한참을 서 있었다. 놀이가 지겨워진 아이들이 제각각 어딘가로 흩어질 때까지. 사라진 아이들의 풍경과 함께 나도 발길을 돌리는 참이었다. 우물가에 쪼그리고 앉아 손톱을 깎는 남자가 보였다. 나도 손톱을 깎아야 하는데. 출국할 때까지 몰랐었다. 손톱이 이렇게 길었는지. 지나치게 바빴으니까. 경유지에서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는 하릴없는 시간에 문득 발견한 것이었다. 오래전 읽은 최영미 시인의 글귀가 떠올랐다. ‘여행지에서 발톱을 자르는 여유를 누렸으니, 나는 이곳에서 이방인이 아니다.’ 나는 남자의 것을 잠시 빌려 선 채로 손톱을 깎았다. 이제 이방인이 아닌 나는, 어느 날 문득 이곳을 다시 걷고 있을 것이다.

[21세기 영화란 무엇인가?] 문지방에서 문지방으로 - 우리가 잃어버린 숏

지난 세기를 건너온 다음 다시 되돌아서 그런데 그때 무슨 일이 있었지, 라고 질문하는 대신 무얼 잃어버렸지, 라고 물어보면 비로소 무슨 짓을 했는지를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랄 수도 있다. 그래서 영화가 해나간 일들이 덧셈이 아니라 뺄셈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라는 질문과 만나게 된다. 영화가 처음 시작할 때 무엇이었나. 누구나 할 수 있는 대답. 숏이 있었다. 거기에 카메라가 있었고, 카메라가 찍으면 그 시간은 영화라는 사건이 되었다. 이걸 구태여 설득할 필요가 있을까. 기차가 역으로 들어온다.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퇴근한다. 아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아이가 물장난하는 것을 영화라는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홍상수는 바다로 나가는 배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물결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사람들이 눈싸움하는 거리에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또 보았다. 거기에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거기에 무엇이 출현한 것일까. 여기에 개념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런 다음 각자 개념의 차이라는 구도 아래 의미를 부여하고, 영역을 나누고, 그 사이에서 서로의 공약 불가능한 자리를 만든 다음 그 차이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멀어질 때 결국은 숏에 대한 믿음의 부재에 이르게 될 것이다. 나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고 싶다. 그러면 그다음에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자동적으로 숏이 발생한다는 믿음으로부터 숏이라는 힘이 발생할 때 그것이 비로소 숏이라는 의심을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여기서 의심이라는 말을 긍정적으로 사용하는 중이다. 말하자면 첫 번째 힘. 그러면 두 번째 힘은 어디에 있는가. 거기에 있다. 거기? 거기가 어디? 다시 한번 이미 들었던 예를 가져오겠다.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 퇴근하는 노동자. 다시 한번 읽어주길 바란다. 나는 주어의 자리를 옮겨놓았다. 동시적으로 움직이는 세상 안에서 연장하는 힘으로서의 그것. 매번 바뀌겠지만 항상 식별 가능한 그것. 그것들은 힘을 보여준다. 힘은 어디에 있는가. 운동이라는 인상. 시간이라는 이미지의 연장. 여기에 증인들이 있다. 첫 번째 증인. 플라톤. 당신들은 헛것을 보게 될 거예요. 벽 앞에서 우리는 관객이 아니라 죄수이고, 해방은 미루어질 것이다. 그저 우화라고 지나쳐갈 수 있을까. 영화가 우리 앞에 왔을 때 이미 질문이 시작되었다, 오래된 질문. 왜 무(無)가 아니고 존재가 있는가. 1895년에 무언가 잘못되었다. 헛것을 중심을 두고 공허한 벽을 홀린 듯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거기에 우리를 바친다면, 그런 다음, 거기서 무언가를 보았다고 주장하면 할수록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간다. 그렇게 영화의 역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기에 헛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음과 서로 뒤얽히면서 두리번거렸다. 두 번째 증인. 마르크스. 영화가 발명되기 전 1845년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카메라 옵스큐라를 예로 들면서 삶의 과정이 위아래가 뒤집혀 보인다면 그건 이데올로기 때문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마도 누군가는 이데올로기라는 말에 질겁을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역사 없는 이데올로기야말로 유령의 예술인 영화의 동어반복이라는 걸 먼저 인정해야 한다. 뻔한 정의. 이데올로기는 상상적인 표상이며, 동시에 물질적인 토대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문장 바꾸기. 이데올로기의 자리에 영화를 가져다놓는다고 해도 문장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반격. 그런 다음 개인들을 호명할 것이다. 당신은 개인으로 화면 앞에 앉아 있다. 그렇지 않은가요. 만일 이것을 부정하면 우리는 영화를 삭제시킬 용기를 내야 한다. 세 번째 증인. 귀스타브 플로베르. 1857년 <마담 보바리>에서 엠마는 마차를 타고 가면서 트래블링 숏의 시점으로 길거리를 바라본다. 그 문장을 따라가고 있으면 뤼미에르, 르누아르, 로셀리니, 고다르, 키아로스타미가 떠오른다. 하지만 그들이 플로베르를 읽기는 했겠지만, 플로베르는 그들의 영화를 본 적이 없다. 네 번째 증인. 에두아르 마네. 1862년 50mm 표준렌즈로 야외에 나가서 찍은 것만 같은 초점으로 풀밭에서의 점심을 그렸다(<풀밭 위의 점심 식사>). 마치 아마추어 배우들 같은 어색한 시선 처리. 카메라와 눈이 마주친 것 같은 누드의 여성. 마주쳤다기보다는 바라보는 시선. 카메라를 애써 피하려는 것 같은 신사복의 남성.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 라파엘로, 조르조네를 카피하면서 조롱하는 이 거리감에서 어떤 서사도 상징도 없이 풍속의 외설성을 드러내 보여주는 이 그림 앞에 서면 한참 뒤에 고다르가 이 장면을 극장에 가서 나나에게 요구했을지도 모른다고 떠올려볼 수 있을 것이다(<비브르 사비>). 사진이 아니라 인상주의 그림들이야말로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을 교육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하지만 오해하면 안된다. 이들이 교육한 것은 스크린을 바라보는 관객이 아니라 카메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 미래의 감독들이었다. 다섯 번째 증인. 샤를 보들레르. <파리의 우울>. 1869년, 마침내 마차에서 내려서 길거리를 쏘다니면서 파리의 여기저기를 시선으로 건드린다. 그러면서 여기저기서 지나가다(promener), 라는 동사를 쓴다. 때로 지나가면서 열린 창문을 올려다보기도 한다. 문장의 주어 산책자(frâneur)는 영화가 정지해서 시작했을 때보다 먼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영화적인 것이 있었다. 이걸 다시 각색한 베냐민의 마지막 순간까지 끝나지 않은 프로젝트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영화를 보는 방법에 관한 가장 위대한 책이다. 그다음에는 탄식이 있었다. 1947년 어느 인터뷰에서 데이비드 와크 그리피스, 당신이 알고 있는 그 그리피스, 대부분 <국가의 탄생> 혹은 <인톨러런스>를 말하지만, 나에게는 <부서진 꽃>과 <동쪽으로 가는 길>로 기억되는 그리피스. 그가 사망하기 한해 전에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영화에서 사라진 게 있어요. 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의 아름다움이요.” 나무도 그대로 있다. 바람도 그대로 불고 있다. 사라진 것은 무엇인가. 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의 숏. 이 말을 후렴구처럼 반복할 것이다. 먼저 선을 그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지금 앙드레 고드로와 톰 거닝이 초기 영화사에서 잡아당긴 시네마 오브 어트랙션(들)(cinema of attraction(s))2)으로 돌아가는 따분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대신 이 아름다운 대답을 나는 일부러 잘못 읽을 것(misreading)이다. 그리피스의 대답은 전쟁 직후에 나온 것이다. 물론 그리피스가 아직은 우리보다도 이 전쟁의 참상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 전쟁은 서쪽에서는 아우슈비츠에서 끝났고, 동쪽에서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끝났다. 영화에서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스펙터클. 우파(UFA)의 실내 세트장, 치네치타의 야외 세트장, 파리의 카페에 모인 초현실주의자들, 모스크바의 쿨레쇼프 공장의 제자들, 로스앤젤레스의 값싼 오렌지 농장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은 세상을 자신들의 현장에서 다시 만든다고 믿었다. 하지만 세상 안에 영화가 있었다. 그리고, 이 접속부사로 하나의 역사를 둘로 절단시키는, 문자 그대로, 단절이 있었다. 1945년보다 영화와 세상이 더 멀리 벌어진 적은 없었다. 네장의 사진으로 남은 수용소. 빛에 눈에 멀어버린 백색 필름과 남겨진 참상으로 이루어진 두개의 도시. 구태여 사망자의 수를 헤아릴 필요가 있을까. 건설 대신 파괴가 있었고, 발명은 전멸로 이어졌다. 세상에 대해서 영화는 갑자기 몰이해의 상태가 되었다. 로버트 플래허티는 알래스카에 가서 가혹한 추위와 바람 속에서 5분20초 동안 바다표범을 잡는 에스키모 나누크를 ‘연출’했다. 지가 베르토프의 기록. (혁명이 벌어지는) 세상을 영화는 과장하고 있었다. 험프리 제닝스의 다큐멘터리를 보았을 때 영화는 세상에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그 매듭이 끊어졌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다. 영화는 세상의 현실에서 소외되었다. 네오리얼리즘 영화들은 소외를 다룬 것이 아니라, 영화가 놓인 소외 상태를 다룬 것이다. 안간힘을 쓰고 쫓아가는 안나 마냐니는 차를 놓쳤고(<무방비 도시>), 아버지와 아들은 군중 속으로 사라진다(<자전거 도둑>). 잉그리드 버그먼은 가까스로 손을 놓친 남편과 포옹하지만, 군중은 주위에 서서 영화 촬영 현장을 구경한다(이탈리아 여행>).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는 맞은편 소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며(<달콤한 생활>), 모니카 비티는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화산 에트나를 하염없이 바라본다(<정사>). 그들은 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을 보지 못한다. 물론 그들은 보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들이 보는 것은 텅 빈 공백의 의미이다. 그들은 결국 자신이 홀로 남겨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두편의 영화가 본 것이 없음을 인정한다. 클로드 란즈만은 어떤 자료화면 없이 증인들을 만나고 또 만난다. 그리고 아우슈비츠에 관해서 듣고 또 듣는다(<쇼아>). 여자가 말한다. “나는 전부 보았어요.” 남자가 말한다. “아니, 당신은 본 게 아무것도 없어.”(<히로시마 내 사랑>) 이보다 더 간명하게 영화가 처한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들은 나무를 흔드는 바람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그저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영화는 공백을 바라보면서 기표만을 경유하여 기의를 상상한다. 영화는 세상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기의를 상상하는 예술이 되어갔다. 나는 똑같은 이야기를 한번 더 할 수 있다. 나머지 절반의 이야기. 할리우드의 위대한 이름들이 일제히 스튜디오로 철수한 것은 사물(das Ding)로서의 세상을 마주 보지 않기 위해서, 왜냐하면 너무 흐릿해서 구별할 수 없는 사물로서의 장소에서 도망치기 위해서, 그래서 세상과 비슷한 장소로서의 사물의 시뮬라크라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스튜디오로 피난하였다. 장소와 사물을 뒤집어서 두번 사용한 자리를 반복해서 읽어주길 바란다. 스튜디오의 정치경제학과 유토피아 사이의 협상. 명단의 목록들. 전쟁이 끝나자 필름누아르가 전염병처럼 음산하게 창궐한 것은 얼마나 의미심장한가. 서부극은 얼마나 안전했을까. 멜로드라마는 히스테리와 신경증으로 가득 찬 ‘홈’(home) 안으로 철수하였다. 그들은 문법의 대가들이었다. 같은 말의 다른 판본. 그들은 나무를 흔드는 바람을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들은 영화를 세상과 더 잘 구분시켜주었다. 그러면서 어떤 객관적인 재현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세상의 무게로부터 그렇게 자유로웠을까. 동의하지 않는다. 세상이 은유에 몸을 감추었을 때 무언가 거기서 결여의 형상이 되었으며, 환유로 대체됐을 때 물신주의에 사로잡히면서 세상을 피해갔다. 그러면 재난 이후를 겪는 영화에서 무엇을 느껴보아야 할까. 재난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견뎌내지도 못했을지라도 느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아직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이미지 앞에 마주 선다는 것은 무엇일까. 수수께끼 앞에 서서 느껴보는 감정은 더도 덜도 아닌 고독이다. 기댈 곳 없는 그 느낌. 영화의 고독. 고다르는 구태여 영화의 죽음을 말할 필요가 없었다. 고다르는 영화가 죽은 다음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한 일은 그걸 확인하는 것이었다. 세상은 폭력이 펼쳐놓은 형상으로 남겨졌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폭력을 보게 될 것이다. 고다르는 영화의 고독을 마주 본 첫 번째 영화감독이다. 조금 더 용기를 내서 말하겠다. 고다르는 그리피스 이후 두 번째 영화감독이다. 고독한 영화가 질문을 했다. 여전히 가능한가? 무엇이 가능한가? 어떻게 가능한가? 시급한 질문. 눈앞에 있는 세상. 손에 든 카메라. 그 둘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야 한다. 영화와 세상 사이에서 안과 바깥을 질문하는 대신에 이제는 항상 영화가 세상 안에 있음을 (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속죄하는 심정으로 긍정하고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계속해서 세상을 향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영화의 새로운 윤리가 되었다. 그렇다. 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이 아름답다는 것 을 볼 수 있을 때가 끝났다. 그러면 나무가 재가 되었을 때 바람을 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의 세계성(Weltlichkeit)은 다시 정의되어야만 했다. 재난 이후의 영화 앞에 서 있는 고다르의 고독은 그런 의미에서 실존적 고독이 되었다. 이때 고다르는 에이젠슈테인과 마찬가지로 몽타주를 사용했지만, 그들은 정반대로 이용했다. 한쪽은 그렇게 해서 낡은 세상을 부수고 새로운 세상의 원리를 만들어냈지만, 다른 한쪽은 재난을 감추는 세상의 스크린을 찢어야 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방법도 부숴야만 했다. 재난 이후에 세상이 더이상 즐겁지 않은 것처럼 고다르는 재난 이후에 극장이 더이상 즐거워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두 가지 사실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왜 그렇게 고다르가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를 보자마자 찬사를 바쳤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왜 허우샤오시엔이 <네 멋대로 해라>를 보고 비로소 <펑꾸이에서 온 소년>을 찍을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여기까지 따라오면서 틀림없이 내게 충고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당신은 아주 중요한 문제를 간과하고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 영화에서 자본의 문제. 고다르는 애처롭게 돈을 빌려 달라고 옛 친구 트뤼포에게 편지를 썼다. 로셀리니는 텔레비전 방송국에 가서 영화를 찍어야만 했다. 히치콕은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주겠다고 했을 때 퉁명스럽게 제작자 데이비드 O. 셀즈닉에게 양보했다. 영화에서 자본의 문제가 없는 것처럼 미학만 논할 때 철이 없어 보이거나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인다. 이 문제는 처음에는 둘로 나눠진 것처럼 보였다. 한쪽에서는 자본의 문제, 다른 한쪽에서는 정치의 문제.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다음 이제 단 하나의 문제가 되었다. 자본의 문제. 그때 신자유주의가 시작되었다. 영화는 단 한순간도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데이비드 O. 셀즈닉은 앙드레 바쟁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앙드레 바쟁은 셀즈닉이 제작한 영화를 열심히 보았다. MGM 스튜디오의 누구도 크리스티앙 메츠를 읽지 않았을 것이다. 크리스티앙 메츠는 못마땅하지만 를 예로 든다. 아메리칸 조이트로프는 장 보드리야르에게 관심이 없다. 장 보드리야르는 <지옥의 묵시록>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예로 들었다. 영화의 이론(들)은 한가하게 영화를 개념화하면서 자본의 법칙을 외면하고 고상한 언어를 노래한다. 교실의 학생들은 현장에 나가서야 비로소 영화라는 상품의 하부 토대의 실재와 마주하게 된다. 그런 다음 자신이 하는 일이 예술인지, 사기인지, 아니면 범죄인지 구분하기 힘들어진다. 영화를 선택했을 때 자본주의의 무자비한 분쇄기 안에 들어갔음을 인정해야 한다. 영화라는 자본주의의 식민지. 일단 영화 안에 들어오면 누구도 방관주의자가 되지 못한다. 로베르 브레송은 돈을 구하기 위해 로마까지 갔지만 빈손으로 돌아왔다. 타르콥스키는 독일 제작자들과 긴 협상을 벌이다가 자신이 농락당하고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데이비드 린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내내 제작사와 방송국을 번갈아 전전하며 돈을 구하러 돌아다녔다. 예술가들은 진정성을 말한다. 자본가들은 이 시장에서 진정성이 잉여가치를 만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물론 연대하면서 대항한 긴 역사가 있다. 일시적이지만 세 번째 길을 이야기한 영화들이 있었다. 라틴아메리카의 용기 있는 영화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자본가들은 이 저항을 통해 점점 더 세련된 전선을 만들어낸다. 더이상 아무도 ‘해방’을 믿지 않는다. 실재를 보기 위해서 애쓰지만, 현실이 이 모든 것을 덮어쓰고 있다. 그리고 그사이에 이데올로기가 개입한다. 나는 맨 처음 이야기로 돌아오고 있다. “오늘날 영화에서 사라진 게 있어요. 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의 아름다움이요.” 당신이 물어볼 것이다. 그러면 무슨 영화를 보아야 하나요. 자, 알겠다. 이제 여기서는 그걸 보기는 틀렸다. 하지만 다른 별에서는 그걸 볼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자포자기한 아리아가 어디선가 들린다. <스타워즈>는 서둘러 도착한 다음 세기의 첫 번째 영화이다. 그러면서 이 영화를 스페이스오페라라고 불렀다. <니벨룽겐의 반지>가 예고한 것은 나치즘이었다. <스타워즈>를 찍으면서 조지 루커스는 레니 리펜슈탈의 <의지의 승리>를 ‘레퍼런스’로 삼았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이미 다음 세기가 시작되었다. 내가 부르는 아리아, 한번 더 부르겠다. 어디에 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의 숏이 있나요.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희망찬 비관주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작품 중 뭘 제일 좋아하나요. 직업적으로 ‘당신의 올 타임 베스트가 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 편이다. 솔직히 묻는 사람도 진짜 궁금하진 않을, 자기소개서의 취미와 특기란 같은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이 예정된 테스트는 익숙해지긴커녕 매번 곤혹스럽다. 왜 그럴까 고민하며 작품들을 복기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나 이 작품들 고르기 어려울 만큼 하나하나 되게 진심으로 좋아했구나. 상황과 형편, 기분과 컨디션에 따라 리스트의 우선순위가 달라지는 와중에 요즘은 조금 엉뚱하지만 스튜디오 지브리의 단편 중 가 계속 뇌리를 맴돈다. 는 일본의 록밴드 차게 앤 아스카의 뮤직비디오로 제작된 단편애니메이션이다. 1995년작 <귀를 기울이면>과 동시상영된 이 작품은 6분37초의 짧은 분량이지만 감히 지브리의 낭만과 정수가 응축된 결과물이라 할만하다. 안도 마사시의 작화, 야스다 미치요의 채색, 오가 가즈오의 배경 등 주역 스태프들의 솜씨는 ‘지브리의 육체’를 대변한다. 그 위에 비행기와 날개, 활공을 테마로 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꿈, ‘지브리의 영혼’이 자유의 형상으로 너울거린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시작으로 <모노노케 히메> <천공의 성 라퓨타>가 차례로 재개봉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머릿속에 가 자동 재생됐다. 동시에 몇해 전 보았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2023년 10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개봉 덕분에 취재차 스튜디오 지브리를 방문한 적 있다. 매체 인터뷰를 하지 않은 지 오래라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건물 뒤편에서 서성이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먼발치에서나마 지켜봤다. 작업용 앞치마를 한 채 멍하니 정원을 바라보던 모습이 꽤 오랫동안 눈가에 머물렀다. 살짝 움츠려 구부정한 등 실루엣이 왜 좀처럼 잊히지 않았는진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약간 서글퍼지는 곡선과 어울리지 않게 살짝 부산해 보였던 것 같기도 하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수많은 말과 연구와 평가가 이미 쌓여 있다. 아주 주관적인 경험에 근거해 멋대로 떠들자면, 나는 그가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 비관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이미 망했다. 뭘 해봤자 크게 바뀔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내가 손놓고 있을 이유는 되지 못한다. 아니, 애초에 뭘 이루려 한 건 아니다. 그냥 하는 거다. 그게 (나의) 일이니까. 여러 가지로 혼란스러운 요즘, 미야자키 하야오 어록을 자주 찾아본다. “영화를 만드는 건 고통스러워요. 나는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건 제 희망과 꿈을 담아두는 상자예요. (열어보며) 비었네요.” “미래는 분명해요. 무너질 겁니다. (주변을 둘러보며) 묻히기 좋은 자리네요.” 마치 내 마음 같은, 거장의 덤덤한 염세론을 들으며 더할 나위 없이 평안을 느끼는 내가 이상한 걸까. 목적과 수단으로서의 업무에 몰두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를 배경음악 삼아 다시 미야자키의 어록을 반복 재생한다. “영화를 끝내기 전에 세상을 떠나도 괜찮아요. 아무것도 안 하다 가느니 차라리 일을 하다 갈 겁니다.” “늙은이는 겁먹지 않아.” 그 말에 기대어 이번주는 한번 해보고 싶었던 걸, 해버렸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2종 커버에, 지브리를 되돌아보며 특집도 꾸렸다. 아무쪼록 흠뻑 즐겨주시길.

[특집] 언제나 몇 번이라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재개봉부터 <아니메쥬와 지브리展>까지.

안 그래도 피곤한 삶에 숨 막히는 갓생을 요구하는 세상에서 2030세대 사이에 꾸준히 화제인 밈이 있다. 바로 마감을 앞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짤. 입에 담배를 문 그는 안경을 벗은 채로 마른세수를 한다. 왜 마감 앞에 고통스러워하는 거장의 모습이 대중에게 위로가 될까. 표면적으로는 중대 과업을 앞두고 그가 느낄 압박감과 부담감에 공감이 된다. 무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도 힘들어하는데 나의 고통이 무엇이라고. 하지만 이 위로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딱 한 꺼풀을 벗겨보면 그 안에 담긴 ‘요즘 사람들’의 궁극적인 갈증이 보인다. 중요한 건 미야자키 하야오가 무엇으로부터 고통을 받느냐다. 손으로 하나하나 그리는 고집, 어느 공백도 허용하지 않는 섬세한 스토리, 트렌드에 의존하지 않고 세상에 반복해 관철시키는 신념, 현실 반영도 높은 사회적 문제의식,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다움’. 많은 현대인이 외면하는 번거로움과 피곤함을 자처하면서까지 꾸준히 길을 만들어가는 우직함은 오늘날 실종된 어른됨을 깨닫게 해준다. 과거보다 더 편리해진 세상일수록 왜 다시금 스튜디오 지브리로 돌아가야 하는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어지는 글에서 황의웅 영상 기획자의 지브리를 다시 보는 우리의 일상에 대한 칼럼과 지브리 프로듀서 스즈키 도시오와의 인터뷰, <아니메쥬와 지브리展> 소개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