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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지브리화되었나

지난 3월 말, 오픈AI의 CEO 샘 올트먼이 자신의 SNS에 챗GPT-4로 생성한 지브리 스타일의 프로필 사진, 일명 ‘지브리 프사(프로필 사진)’를 올리자 전세계 사람들이 너도나도 따라 올리는 이색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챗GPT 사용자도 5억명에서 2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특히 한국에선 미국 다음으로 사용자가 늘면서 이 유행을 주도했다. 그렇다면 때아닌 이 지브리 밈은 우리나라에서 왜 그토록 관심과 인기를 끌었을까? 그 원인을 생각하다가 문득 1990년대 어느 해 겨울, 홍대 거리의 한 카페 앞에 서 있던 토토로 모양의 눈사람이 떠올랐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살짝 해볼까 한다. 아침잠을 설치게 한 특선 만화 지브리 밈과 관련해 머릿속을 정신없이 뒤지다 보니, 어느새 기억 저편의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마땅한 놀이가 없던 시대, 텔레비전에서 매주 나오는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에게 큰 위안과 즐거움을 주었다. 당시 애니메이션은 ‘TV 만화’로 불리며 일본산 작품이 방송국마다 경쟁하듯 전파를 탔다. 특히 방학이나 공휴일 아침 시간대에 ‘특선 만화’라는 타이틀로 미국이나 일본의 극장용 작품을 자주 방영했는데, 눈곱 낀 눈을 비비면서 비몽사몽 본 기억이 난다. 지금은 세계의 거장이 된 스튜디오 지브리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가 20대에 참여한 도에이 초창기 작품들도 이때 처음 보았다. 그중 1975년에 방영된 <장화 신은 고양이>가 뇌리에 짙게 남아 있다. 무서운 마왕에게 쫓겨 높은 탑 꼭대기에 올라 제발 해가 뜨기를 빌며 부둥켜안은 소년과 공주…. 자신도 모르게 두손을 꼭 잡고 흑백 브라운관 속으로 빨려 들어갔던 추억, 나만 갖고 있지는 않을 듯싶다. 웃픈 사실은 이 작품들이 일제가 아닌 미제로 둔갑해 소개됐다는 점이다. 미국에 수출된 일본산 필름을 미국산인 것처럼 수입했기 때문.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라며 일본 문화를 개방하지 않았던 시절, 방송심의규정을 통과하기 위해 쓴 깜찍한 속임수였다. 그래서 누가 그렸는지, 어떤 회사가 만들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미야자키와 처음 만났다. 이후 그가 메인으로 참여한 명작 동화 소재의 <플란다스의 개> <알프스 소녀 하이디> <엄마 찾아 삼만리>가 차례로 방영되면서 비로소 지브리 스타일이라는 것을 접할 수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언급하자면, 지브리 스타일은 미야자키 고유의 것이 아니다. 1958년의 <몽견동자> 와 <백사전> 때부터 제작사 도에이 동화에 하나의 전통처럼 내려온 화풍에다 미야자키의 만화적인 몇몇 특징이 더해져 탄생했다. 이는 지금도 후배 애니메이터들에 의해 미세하게 진화하고 있다. 열혈 소년과 감성 소녀, 안방극장을 찢었다! 코난 세대 구별법을 아는가? 코난을 아느냐고 할 때 <미래소년 코난> 을 말하면 구세대, <명탐정 코난>을 말하면 신세대라는 철 지난 우스갯소리다. 이처럼 <미래소년 코난>은 1980년대 우리 어린이 문화의 아이콘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 작가가 누구인지는 몰랐지만 지브리 스타일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기발한 액션과 세기말 메시지로 TV 시청률도 고공행진이었는데, 방송국에 재방영을 요청하는 어린 시청자들의 전화가 쇄도했다는 뒷얘기도 있다. ‘푸른 바다 저 멀리’로 시작하는 주제가는 가을 운동회 때 응원가로 목이 터져라 불렀고, 반마다 포비(코난의 단짝)라는 별명을 가진 학생이 한둘은 꼭 있을 만큼 몰입감도 상당했다. 돌이켜보면 이것이 한국 최초의 지브리 밈이 아니었을까 싶다. <미래소년 코난>이 남자아이들의 로망이었다면, 1985년에 방영된 <빨강머리 앤>은 여자아이들의 로망이었다. 이화여고 신지식 선생이 국내에 처음 번역한 캐나다의 성장소설이 지브리 스타일로 TV 화면에 나오자 사춘기 여학생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앤을 담당한 성우 정경애의 목소리는 캐릭터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높은 인기에 한몫했다. 그녀의 호소력 있는 감성 보이스는 일본의 오리지널 성우보다 찰떡궁합이라는 평가까지 들었다. 우리 문단엔 소설가 백영옥처럼 당시 <빨강머리 앤>을 보며 작가가 된 사람이 꽤 있다. 엄마와 딸이 함께 시청한 사람들이 많았고, 그런 소중한 추억을 쌓을 수 있도록 했다는 의미가 크다. 201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한국 대중문화 시장에 한자리를 차지한 ‘앤 컬처’도 이 애니메이션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미녀와 야수> 하면 디즈니 작품을 떠올리듯 이제 <빨강머리 앤> 하면 어김없이 이 지브리 스타일의 작품을 떠올리게 된다. 애니 덕후의 소장 1티어 1980년대 후반, 비디오의 대중화로 지브리 스타일은 한 걸음 더 가깝게 다가왔다. 그리고 서울 명동의 회현 지하상가는 애니메이션 덕후들이 전국에서 시도 때도 없이 모여드는 본산이 되었다. 그곳을 통해 이전까지 애니메이션 잡지나 무크 등 해설과 스틸컷으로만 봐왔던 귀한 작품들을 비디오테이프로 소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가게가 용산이나 잠실에도 있었지만 명동처럼 많지 않았다). 당연히 이들 모두 불법복제였다. 해상도 420이라는, 당시로선 높은 해상도를 자랑하는 레이저디스크로 암암리에 카피한 해적판…! 하지만 일본 문화 개방이 안된 상황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은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오팔전자, 현대전자, 형음악실 등 애니메이션을 좀 봤다는 사람치고 이들 가게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가장 인기 있던 품목은 <이웃집 토토로>나 <천공의 성 라퓨타> 등 지브리 작품이었다. 구입을 예약한 사람이 너무 많아 일주일 이상 기다리는 것도 예사였다. 무엇보다 이 비디오테이프들이 전국 대학가를 돌면서 지브리를 테마로 한 소규모 애니메이션 영화제와 PC통신 동호회가 주도하는 감상회가 열렸다. 한편 일부 덕후들은 여기서 머물지 않고 영화 개봉일에 맞춰 직접 일본에 가서 <붉은 돼지>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등을 직관했다. 이른바 ‘원정 관람’이었다. <모노노케 히메>가 발표된 1997년은 그 기묘한 현상의 정점을 이루었다. 그래서 대체 지브리가 뭔데 비싼 해외여행 비용을 써가며 보느냐는 말도 무성했다. 유난을 떤다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젊은이들은 지브리처럼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동경의 싹을 틔웠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 중 많은 수가 훗날 대중문화 각 분야로 진출해 눈에 띄는 활약을 보였다. 서두에 언급한 홍대의 카페에 서 있던 토토로 눈사람도 아마 그런 꿈을 가진 학생이 만들지 않았을까? 지금은 꼰대가 됐을지 모를 X세대의 자유로운 일상의 한편에 어느새 이렇게 지브리가 들어와 있었다. 젊은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1998년 일본대중문화개방 이후 지브리는 우리 일상에 더 깊고 더 넓게 자리 잡았다. 물론 지브리 판권 전쟁이 치열하게 치러진 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필두로 국내에 정식 개봉된 지브리 명작들은 성적이 그리 썩 좋지 않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힘든 시기를 지나 2002년 개봉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덕후의 벽을 넘어 일반 대중에게도 큰 호응을 얻으며, 관객 200만명이라는 디즈니급 흥행을 거두었다. 2004년 겨울,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300만명을 흥행 몰이해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의 대세임을 입이런 사실을 직접 들었다. 이같은 현상은 영화계에만 국한되지 않는증했다. 이후 <고양이의 보은> <게드 전기: 어스시의 전설> <벼랑 위의 포뇨> 등 신작이 속속 개봉하면서 지브리는 어느 영화 제작사보다 우리와 가까워졌다. 이런 흥행력과 친근감은 당연히 관련 굿즈의 판매로 이어졌다. 학생들의 가방에는 토토로 액세서리가 달리고, 책상에는 하울의 피규어가 놓였다. 과거 지브리 캐릭터에 고개를 갸웃하던 사람은 줄고, 굿즈를 모으는 사람은 늘어 두터운 팬층을 이루었다. 이에 지브리 굿즈 숍은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지브리 음악으로 잘 알려진 히사이시 조는 <시네마 천국> 등의 엔니오 모리코네와 함께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영화음악가의 반열에 올랐다. 특히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테마곡 는 지금도 여전히 라디오 영화음악 프로그램에 곡 신청이 이어지고, 클래식 음악 콘서트에선 단골 연주곡으로 눈길을 끈다. 지브리 작품은 시각뿐 아니라 청각의 즐거움마저 주고 있다. TV, 라디오, 신문, 잡지 등에 미야자키의 세계관이나 지브리의 성공담을 다룬 프로그램이나 기사의 노출도도 급상승했다. 2000년대, 트렌드 측정 기준이 된 포털사이트 검색에도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단어는 매년 5위 안에 들었다. 젊은이들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자리 잡은 것이다. 지브리 스타일로 불리는 미야자키의 화풍은 불법의 시대 이후 합법의 시대에 우리 뇌리에 또렷하게 각인되었다. 이 모두가 현재진행형이다. 토토로는 옥자를 낳고 2017년 프랑스의 칸영화제에서 <옥자>의 감독 봉준호는 “어릴 때부터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랐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창작자 중에 자연과 생명에 대한 작품을 만들면서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긴 쉽지 않을 듯하다”라고 밝혔다. 그의 말대로 <옥자>는 <이웃집 토토로> 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토토로의 배 위에서 곤히 잠든 메이를 연상시키는 해외 포스터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이전 <설국열차>는 사회 계급의 갈등이라는 미야자키의 전형적인 레퍼토리를 답습했고, 최신작 <미키 17>에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왕충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크리퍼라는 벌레형 우주 생명체도 선보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에게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창작 모티브로 작용하고 있었다. 과거 다른 영화에도 비슷한 예는 여럿 있다. 2005년 극장가 흥행 1위였던 <웰컴 투 동막골>은 마치 <미래소년 코난>의 무대 하이하버를 실사로 옮긴 듯하다. 어릴 적 <미래소년 코난>에 열광했던 경험과 그 메시지를 말하던 박광현 감독의 인터뷰로 미야자키의 영향력을 십분 느낄 수 있다. 또 같은 해 발표된 <청연>은 원래 <붉은 돼지>를 롤모델로 삼은 본격 항공영화였다. 지브리의 열렬한 팬이던 해당 기획자에게 이런 사실을 직접 들었다. 이같은 현상은 영화계에만 국한되지 않는 다. 유행에 민감한 대중음악도 마찬가지다. 이승환의 노래 <꽃>의 뮤직비디오에선 <천공의 성 라퓨타>의 SF 세계관을 느낄 수 있고, 그룹 코나의 <마녀! 여행을 떠나다>와 장나라의 <키키>를 들으면 <마녀 배달부 키키>를 떠올리게 된다. 드라마 <궁>의 주제가 를 제이와 듀엣으로 부른 남자 가수는 ‘하울’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며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이외에도 만화, 애니메이션, 소설, 드라마, 상업디자인 등 대중문화는 물론이고 생각지 못한 다양한 분야에까지 지브리가 끼친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그야말로 ‘지브리 사조(思潮)’라고 불릴 만하다. 올봄, 세계인의 SNS을 뜨겁게 달군 챗GPT의 지브리 밈은 이 거대한 흐름의 한 지류에 불과하다. 순수하고 아련한 세계를 여는 열쇠 미야자키가 일으킨 지브리 사조는 오래전부터 전세계인의 창작 영역에 소소하게, 혹은 막대하게 영향을 끼쳐왔다. 2021년 블록버스터의 본고장인 할리우드에 아카데미영화박물관이 세워졌을 때 첫 전시회로 미야자키의 창작 세계를 다뤘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상업영화에 대한 자부심이 어느 나라보다 강한 미국에서, 게다가 자신들의 영화 역사를 드러내는 대규모 시설에서 개관 기념 전시의 테마를 미야자키 하야오로 정했다는 사실은 이미 그의 영향력을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이 대단한 인지도는 쉽게 얻어지지 않았다. 1963년 <멍멍 주신구라>에 동화 참여를 시작으로 2023년 마지막 장편으로 발표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까지, 미야자키는 백발의 야윈 모습이 가엾을 정도로 꼬박 60년을 제작 현장에서 쉼 없이 달려왔다. 필름영화, 흑백TV, 컬러TV, 2D 디지털영화, 3D CG영화의 시대를 거치며 상업적으로나 예술적으로 꾸준히 주목받은 세계 영상 역사상 유일무이한 행보다. 미야자키는 모든 세대를 관통한다. 수많은 사람이 태어나서부터 TV나 영화를 보기 시작해 사춘기를 거쳐 청년이 되고 중년과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의 창작 세계와 함께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또 지브리 작품의 영상과 그림은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AI 시대에 지브리 스타일이 유행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그저 그 시점이 언제일지가 문제였을 뿐…. 순수하고 아련하다는 말은 지브리 스타일을 가장 잘 대변한다. 부드러운 선과 따뜻한 색감은 그 느낌을 구현하는 수단이다. 미야자키 작품을 보면서 알 수 없는 노스탤지어를 느끼는 까닭도 그 때문일 것이다. AI로 만든 지브리 프사는 우리가 지브리의 순수하고 아련한 세계로 들어가 빡빡한 현실을 잠시 잊고 쉴 수 있는 비밀의 열쇠였는지도 모른다.

[특집] 전투기’를 ‘건십’으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자막 변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25년 만에 재개봉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초기작의 화풍을 큰 스크린으로 만날 수 있다는 점 외에도 극장에서 다시금 관람해야 할 이유는 자막이 전면 수정됐기 때문이다. 세로 자막에서 가로 자막으로 표기법이 달라지면서 한줄에 최대 8자에서 12자로 대사량이 바뀌었고 그에 따라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세계관을 더 세세히 표기할 수 있게 되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새롭게 접할 관객을 위해 달라진 자막의 주요 특징에 관해 정리해보았다. 그냥 ‘곤충’이 아니었다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는 수많은 종류의 동식물이 등장한다. 특히 다종다양한 벌레들이 묘사되는데 과거 자막에선 전부 ‘곤충’(몸이 머리, 가슴, 배로 나뉘고 다리가 6개인 동물)으로 아울러 표기했으나 새 자막에선 ‘벌레’(곤충을 비롯하여 기생충과 같은 하등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전면 바뀌었다. 나우시카가 오무와 소통할 때 사용하는 피리 또한 더이상 ‘곤충피리’가 아닌 ‘벌레피리’로 불린다. 또한 “왕매미 유충이 살아 있어!”를 “쇠등에가 살아 있어!”로, “세균들이 포자를 날리네”를 “벌레거름이 오후의 포자를 날리고 있어” 등으로 종별 명칭을 넣어 고유 세계관의 특징을 살렸다. 괴물 ‘거신병’의 과거 거신병은 과거 불의 7일이라는 전쟁 때 사용됐던 인간 형태의 병기로 토르메키아 왕국의 황녀 크샤나가 부활시켜 활용하고자 했다. 이전에는 단순히 “과거의 괴물”로 표기하거나 “7일 만에 세계를 불태웠다는” 등으로 지난 사건을 풀어 설명했는데, 새 자막에선 “페지테시 지하에 잠들어 있던 옛 세계의 괴물로 ‘불의 7일’에 세계를 불태웠다”고 표기했다. 그 밖에 ‘비행기, 전투기’ 등으로 뭉뚱그려 서술됐던 ‘건십’ 또한 본래의 이름을 찾아 팬들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지하동굴의 비밀 “부해(강한 독기를 내뿜는 균류의 숲)의 나무들은 땅의 독을 흡수해 깨끗한 ‘결정체’로 만든 다음, 죽어서 모래가 되는 거야. 이 지하동굴도 그렇게 생긴 거야. 벌레들은 이 숲을 지키려고 하는 거야.” 부해가 자연을 순환시키는 과정에 구체적인 설명을 더해 인간에게 마냥 해로운 존재가 아님을 명시했다. 오무의 분노 크샤나가 부해를 없애겠다는 뜻을 밟혔을 때, 바람계곡의 장로 할머니는 이에 반대하고 나선다. 부해를 없애려 할 때마다 거대한 오무 떼가 나타나 국가를 멸망시켰기 때문인데 이때 “오무 떼가 인간 세상을 덮쳐서 쑥대밭을 만들었다”는 설명을 “오무 떼가 미친 듯이 날뛰며 땅을 온통 뒤덮는 큰 파도처럼 끝없이 밀려들었지”로 수정하고 “굶주림으로 목숨이 다할 때까지 오무는 달리고 또 달렸”으며 오무의 시체에서 생겨난 포자로 인해 “거대한 국가들이 썩어내려간”(이전 자막) 것이 아닌 “광대한 땅들이 부해로 가라앉았다”(현재 자막)는 것으로 명확히 설명해 후반부에 등장할 오무 떼의 위력을 드러냈다.

[인터뷰] 다만 이것은 선한 세상을 향한 질문, 스즈키 도시오 스튜디오 지브리 프로듀서

어떤 세계는 그곳에 진입했다는 이유만으로 더이상 전과 같을 수 없다. 만화잡지 편집장이 극장용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합류한 순간이 그렇고, 요란한 세상에서 우직하게 자기 생각을 관철하는 애니메이션영화를 본 순간의 관객들이 그렇다. 빗자루를 타고 날 수 없는 마녀, 엄마와 아빠가 돼지가 되어버린 여자아이, 인간을 사랑한 해양생명체, 숲을 지키는 경계심 높은 투사, 엄마를 병상에 둔 어린 자매…. 스튜디오 지브리 세계관은 세상의 결핍을 딛고 선다. 그 결핍으로 빚어진 주인공들은 우리가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이 어떻게 다른지 구분하게 한다. 동시에 희망도 준다. 자연과 공동체, 양심과 윤리, 미움과 사랑이 인간사에 얼마나 순수한 연료가 되는지 이 심지 굳은 스튜디오가 꾸준히 보여줬다. 일본 애니메이션 잡지 <아니메주> 전 편집장이자 미야자키 하야오의 오랜 친구, 그리고 스튜디오 지브리 초창기 멤버인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와 함께 오래된 시간을 되돌아봤다. 종국엔 선한 것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견고한 믿음을 손에 쥔 이만이 되짚을 수 있는 신념이 공명을 일으킨다.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부터 <모노노케 히메> <천공의 성 라퓨타>까지 약 20년 전 개봉한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들을 차례대로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당시 어린이였던 지금의 2030세대 대부분은 세 작품을 처음으로 극장에서 만난다. 다른 사람과 함께 몰입하는 극장 경험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지향점과 맞닿아 있다. 스튜디오 지브리 영화들은 처음부터 대형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극장 관람이 OTT 스트리밍 감상과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스크린 외의 요소가 시야에 들어오지 않고 스스로 영상을 멈추거나 재생할 수 없다는 점이다. 자체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만큼 자의적·타의적으로 영화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거기서 바로 몰입감이 쏟아진다.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하고 이야기 전개에 마음이 흔들리는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영화적 경험이다. 지브리가 추구하는 가치가 극장 안에 있기 때문에 이번 재개봉도 큰 의미가 있다. - 다큐멘터리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에 출연하여 과거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어줬다.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흥행 실패를 맛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혼란스러워하며 “이제 뭘 해야 할까”라고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에게 물었을 때, “만화 연재를 해보라”고 답했다. 그렇게 시작한 작품이 바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다. 무수한 창작물 중 오히려 ‘움직이지 않는’ 만화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게 권한 이유는 무엇인가. 영화제작은 기획서를 작성하고 투자사를 모집한 후 스태프를 모으는 등 많은 수고와 노력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그에 비해 만화는 혼자서 묵묵히 책상 앞에 앉아 그려나가는 작업이다. 거대한 세계관의 SF 작품이라도 종이와 연필, 펜만 있으면 자기만의 속도로 모든 것을 창조해낼 수 있는 훌륭한 창작 수단이다. 이런 과정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 믿었다. 일본은 전쟁 직후 데즈카 오사무로 대표되는 스토리 만화가 큰 인기를 끌었고 오랫동안 가장 친숙한 미디어로 자리 잡았다. 더불어 만화 작업은 영상화할 때에도 캐릭터 설정, 미술 설정, 레이아웃 작업에 크게 도움이 된다. - <아니메주>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잘 알려지지 않은 시기에도 그를 조명하려 애쓴 매체다. 당시 미야자키는 <미래 소년 코난>과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을 만든 사람으로서 열성적인 팬들에게 지지를 받았지만 대중적인 관심을 받진 않았다. 1980년대 초반 일본은 로봇이나 메카가 활약하는 SF 애니메이션이 대세였고, 미야자키가 잘하는 이른바 만화영화 스타일의 작품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원래 애니메이션은 움직이기에 재미있는 예술이다. 나는 잡지 판매가 설령 줄어드는 한이 있더라도 공고히 다져진 유행에 균열을 내고 싶었다. 그래서 미야자키 하야오를 중심에 내세운 기획을 진행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 특집호의 실판매부수는 절반으로 떨어졌다. (웃음) - 창간호부터 <아니메주>와 함께해온 사람으로서 전시에서 가장 반가웠던 부분은 무엇인가. 그동안 잊고 지냈지만 전시를 통해 다시금 소환된 기억이 있다면. <아니메주> 초대 편집장인 오가타 히데오의 공로를 다시 돌아보는 것. 이 지점이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그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아니메주>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 애니메이션 그랑프리가 다뤄진 것도 무척 신났다. 한해를 결산하는 독자 인기투표는 오가타가 처음 제안했지만 모든 편집부원이 땀 흘린 자산이다. <아니메주>가 없었다면 스튜디오 지브리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게는 물론이고 미야자키 하야오에게도 <아니메주>와 지브리는 처음부터 하나로 이어진, 같은 길 위에 존재하는 것과 같다. - <아니메주>에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연재된 시간은 무려 12년 정도다. 연재 과정 중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가장 어려워한 부분이 있었다면 무엇인가.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고민을 함께 나눴을 듯하다. 미야자키 감독에게 가장 힘들었던 점은 연재 과정에서 다음 이야기를 빨리 그리고 싶지만 그 와중에 본업인 애니메이션영화를 작업해야 했던 것이다. 영화제작을 마치고 나서도 머리를 전환하는 데 시간이 걸려, 좀처럼 연재를 재개할 수 없었던 상황에 꽤 힘들어했다. 그런 날에 미야자키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정확히는 생각나지 않지만, 내가 이따금 상식적인 이야기나 시시한 세상 이야기를 일부러 건넸던 기억이 난다. 한밤중에 만화를 그리다 혼자 내면으로 파고드는 그를 환기해주고 싶었다. -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과 함께한 스튜디오 지브리 창립 초기 당시 세 동료가 가장 많이 논의했던 지점은 무엇인가.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에서 “스튜디오 지브리는 고정된 비전을 세우는 방식으로 열심히 일하는 회사는 아니”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두 감독은 오랫동안 TV애니메이션을 작업해왔지만 그보다 장편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어 했다. 애초 스튜디오를 설립한 것도 <천공의 성 라퓨타>를 제작할 거점이 필요해서였다. 원대한 목표나 장기적인 꿈, 비전 같은 것을 최우선으로 내세웠던 기억은 단 한번도 없다. (웃음) 스튜디오가 지금까지 계속될 수 있었던 건 두 사람이 동시에 ‘지브리를 그만두자’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태프를 정직원으로 채용하고, 제작위원회 방식으로 함께하는 회사가 늘어나고, 지브리 미술관이나 파크를 만든 덕에 사회적인 책임감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쉽게 그만두자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지금은 미야자키 고로 감독을 비롯한 젊은 세대의 스태프들의 손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 - 많은 젊은 창작자들은 여전히 지브리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창작한다. 2023년 개봉했던 <스즈메의 문단속>에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게 헌정하는 오마주 장면이 많고, 많은 한국 애니메이터들도 애니메이션을 시작한 계기로 지브리 작품을 꼽는다. 스튜디오 지브리가 지닌 ‘시간의 불변함’, ‘타임리스함’은 어디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나.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웃음) 다만 지브리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볼 수 있는 양질의 선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해왔다. 세상의 유행이나 마케팅 같은 것을 중요 요소로 고려한 적이 없다. 그래서이지 않을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작품이 낡아 보이지 않는 것은. 그럼에도 우리는 세상에 부는 바람, 다시 말해 세간의 분위기나 시대의 흐름을 잘못 읽지 않으려 항상 노력한다. 나도, 미야자키도 항상 의식하고 있다. - 문득 아주 작은 질문이 생겨났다. 스튜디오 지브리 전체 작품 중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의 최애작은 무엇인가. 미야자키 감독도 나도 과거의 작품은 되도록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그보다 앞으로 만들 작품만을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제는 나이가 들어 슬슬 작품 제작에서 은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꼭 하나를 꼽아야 한다면 <이웃집 토토로>. (웃음) 캐릭터만 나오고 스토리가 전혀 떠오르지 않아서 “이거 어떻게 하면 좋아요, 스즈키씨…” 하고 곤란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미야자키 감독이 생생히 기억난다. - 한 논설가는 현대인이 자연과 환경에 대해 고민하거나, 사회 규칙을 의심하거나, 인간관계를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고 비평했다. AI나 온라인 검색만으로 자기 판단을 충분히 했다고 믿는 경향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들은 보편적으로 이런 문제를 짚어왔고, 또 관객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이끌어왔다. 스스로 사유하길 피곤해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지브리는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인터넷과 AI의 등장으로 우리의 삶은 훨씬 편리해졌다. 전세계 사람들과 소통이 쉬워졌고. 몇년 전만 해도 세상의 모든 정보를 몇초 안에 얻을 수 있으리라곤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단 하나의 정답만 알고 싶어 하는 풍조는 다양성을 부정하고, 스스로 생각하려는 태도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미야자키 감독이 늘 말하듯 현실 세계에는 하나의 정답만 존재하지 않고, 개인의 눈과 귀만으로는 모든 진실을 알기 어렵다. 지브리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내가 확답할 수 없다. 그럼에도 관객이 스스로 고민하고, 성찰하고, 판단할 딱 한끗만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기쁠 것 같다. - 현재 준비 중인 차기작이 궁금하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이후 관객은 어떤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 그건 기업 비밀인데. (웃음) 다양한 기획들이 오가고 있다. 지금은 단편애니메이션을 제작 중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말할 수 없다. - 마지막으로 <아니메쥬와 지브리展>과 재개봉 3부작은 공통적으로 과거의 시간을 들여다본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무엇을 경험하길 바라나. 최근 영화감독 이와이 슌지와 <아니메쥬와 지브리展>을 관람했다. 그분이 쏟아내는 애니메이션 지식이 정말 어마어마했다. 알고 보니 그는 중학생 시절부터 <아니메주>를 정독해온 열혈 팬이라고 하더라. 잡지를 보며 제작 스태프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자연스레 영상 제작의 길을 꿈꿨다고 한다. <아니메주>는 애니메이션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작품을 만든 창작자를 조명한 최초의 잡지다. 작품 뒤에 얼마나 많은 스태프의 열정과 고생, 눈물과 고민이 있는지 보여주고자 했다. 이번 전시 또한 어린 세대들이 제작의 뒤편을 들여다보고 애니메이션의 품에 들어올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의 추억은 방울방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영화제작이 얼마나 힘든지 정말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작품이다. 무아지경으로 몰입해서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오전 9시에 작업을 시작해서 점심으로 도시락 절반을 5분 만에 먹고, 나머지 절반은 저녁 식사로 남겨두었다. 그리고 새벽 4시까지 일했다. 주말도, 휴일도. 그런 미야자키 옆에서 나도 계속해서 일했다. 이게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담긴 기억의 전부다. <천공의 성 라퓨타> 전작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관객층 연령대가 생각보다 높았다. 성인 팬층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관객 연령을 낮추기 위해 아이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주인공 파즈가 초등학생 정도로 설정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주인공이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캐릭터에 어두운 면이 없는 게 과연 괜찮은가, 우리는 이 지점에 대해서 정말 길게 논의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내가 정말 프로듀서다운 일을 하고 있구나’ 하고 처음 느꼈던 작품이기도 하다. <모노노케 히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이후 13년이 흐른 상태였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도 나이를 먹었고 언제나 그의 이름에만 의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처음으로 ‘스튜디오 지브리’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세워 홍보했다. 혹여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은퇴하더라도 스튜디오 지브리라는 이름 아래 다음 세대들이 작품을 만들어갈 수 있길 바랐다. 그래야만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시점에 미야자키 하야오가 은퇴 선언을 했다.

[특집] 세계사의 궤적을 좇아온 스튜디오 지브리

전쟁과 인간다움, 공동체와 고립감, 자연과 문명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은 그간 인류가 빚어온 이념들을 반영해왔다. 세계사적 사건과 그 궤를 함께해온 스튜디오 지브리의 일화를 모았다. 인간의 일을 외면하지 않는 애니메이션의 다정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1945년 - 일본 우쓰노미야시를 향한 미국 공습. 차후 <천공의 성 라퓨타> <하울의 움직이는 성> <바람이 분다> 등에 영향을 준다. 1984년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개봉. 스튜디오 지브리 설립 이전이기 때문에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원 제작사는 지브리가 아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성공으로 스튜디오를 설립할 수 있었다. 1985년 - 스튜디오 지브리 설립. 1986년 - <천공의 성 라퓨타> 개봉. 이 시기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본 전통 녹나무에 흠뻑 빠져 있었다. 1987년 - 일본 버블경제의 시작. 1988년 - <이웃집 토토로> <반딧불이의 묘> 개봉. 일본 나고야에 위치한 지브리파크에는 <이웃집 토토로>의 메이네 집이 그대로 구현돼 있다. 병상에 누운 엄마를 그리워하는 자매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결핵균에 의해 척추 감염을 앓았던 미야자키 감독의 슬픈 기억이 반영된 것이다, 1989년 - <마녀 배달부 키키> 개봉. <마녀 배달부 키키>의 주무대는 스웨덴 스톡홀름. 1971년 미야자키 하야오가 <말괄량이 삐삐>를 추진했을 때 현장 답사를 갔던 곳이다. (스웨덴 화폐에는 <말괄량이 삐삐>의 창조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1991년 - <추억은 방울방울> 개봉. 1991년 - 세르비아군의 두브로브니크 폭격. 1992년 - <붉은 돼지> 개봉. <붉은 돼지>의 배경지인 두르보르니크 폭격이 있고서 작품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1995년 - <귀를 기울이면> 개봉. 유명한 일화이지만 <고양이의 보은> 바론의 원형이 첫 등장하는 작품이다. 바론은 러시안 블루. 1997년 - <모노노케 히메> 개봉. 미야자키 하야오의 정수. 셀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마지막 작품 중 하나다. 전체 장면을 손으로 그리고 하나하나 촬영했다. 전체 그림 14만4천장 중 8만장을 수정했다. 미야자키의 완벽주의자적 면모가 드러난다. 1999년 - 야나세강 정화 작업. 버림받은 강을 청소한 경험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이어진다. 2001년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개봉. 52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하고 7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면서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잡았다는 평을 받는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시상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날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있었던 것. “세계가 불행한 상황에 있다. 이 수상을 온전히 기뻐하기는 어렵다.” 2002년 - <고양이의 보은> 개봉. <귀를 기울이며>의 바론이 살아난 바로 그 작품. 2004년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개봉. 2008년 - <벼랑 위의 포뇨> 개봉. 어린 시절의 미야자키 하야오는 애니메이션 <백사전>을 보고 애니메이터를 꿈꿨다. 뱀이 젊은 여자로 변신하여 어린 소년과 사랑에 빠지는 중국 전통 설화를 다룬다. 포뇨가 인간 소스케를 보고 좋아하게 된 구성은 아마도 <백사전>으로부터 영향받았을 거라 유추할 수 있다. 2010년 - <마루 밑 아리에티> 개봉. 2011년 - <코쿠리코 언덕에서> 개봉. 2013년 - <바람이 분다> 개봉. 2014년 - <추억의 마니> 개봉. 2023년 -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개봉.

[특집] 우리가 직면한 중요한 문제를 다룬다는 것 - 스튜디오 지브리 대표작 제작 비하인드

인공지능의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 제작이 한차례 유행한 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을 평화롭고 밝은 이미지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한층 짙어진 모양새다. 하지만 개별 애니메이션을 들여다보면 전쟁의 폐해, 기후 문제, 자연과 인간의 대립 등 그는 자신이 유년 시절부터 마주해온 동시대적 위기와 현실을 면밀히 기록해왔다. 지난 5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을 중심으로 미야자키 감독의 삶과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두드러지게 녹아든 작품과 제작 비하인드를 정리해보았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1941년 일본에서 태어난 미야자키 감독에게 가장 강렬하게 각인된 이미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벌어진 맹렬한 폭격의 기억이었다. 유년 시절 자신이 살아가던 우쓰노미야에서 폭격을 겪은 경험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바람이 분다>의 전쟁 장면에 녹아 있고, 이후 미국이 원자폭탄을 투하한 것을 바라본 경험은 <천공의 성 라퓨타>의 원자폭탄 폭발 장면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45년 7월12일, 내가4살이었을 때 야간 공습을 겪었다.하늘이 대낮처럼 밝았다. ‘지금 불타오르는 게 우리 집인가?’”미야자키 하야오의 단편 만화 <타인머스로의 여행> 중 <벼랑 위의 포뇨> 미야자키 감독이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고 결심하게 된 건 고등학교 졸업반 시절 애니메이션 <백사전>을 본 뒤다. 인간의 모습을 한 뱀이 한 소년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인데, 이에 크게 감명받은 그는 후에 비인간 존재가 인간을 좋아하게 되는 <벼랑 위의 포뇨>를 기획한다. “자연이 항상 온순하고 인간이 오염시킨 환경을 되돌려줄 거란 생각은 완전히 거짓”이라던 미야자키 감독은 <벼랑 위의 포뇨>에서 위협적인 파도의 힘을 맹렬히 묘사하면서도 자연재해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지를 소스케 가족을 통해 보여준다. <벼랑 위의 포뇨>에 담긴 감독의 메시지는 훗날 쓰나미 및 후쿠시마 원자력발전 사고를 겪은 일본인들에게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로부터 15년 동안 내 작업은하나의 목표를 중심으로이루어졌다. 좋은 애니메이션을보고, 그것을 뛰어넘는 것.”미야자키 하야오의 에세이집 <출발점 1979-1996> 중)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첫 장편 연출작인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애니메이션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던 미야자키 감독은 제작자 스즈키 도시오의 제안으로 만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12년에 걸쳐 연재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오염된 세계에서 인간과 자연의 전쟁이 예고된 상황에서, 인간만큼이나 동식물을 사랑하는 나우시카 공주가 이들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이야기다. 극 중 오염된 세계는 일본의 미나마타 해안에서 일어난 수은 중독 사건이 바탕이 됐다. 한때 죽음의 바다로 불렸으나 어업이 중단된 지 수년 후, 다시 물고기 떼가 나타났다는 뉴스는 미야자키 감독이 자정능력을 지닌 자연을 묘사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도쿄가 태평양에 잠기고 NTV타워가섬이 될 날을, 인구가 감소하고더이상의 고층빌딩 없이 야생초원이지구를 덮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미야자키 하야오의 <뉴요커>와의 인터뷰 중 <붉은 돼지> <붉은 돼지>는 전직 전투기 조종사의 모험을 그린 단편애니메이션이다. 거의 매년 장편애니메이션을 제작하던 미야자키 감독이 환기 차원에서 가벼운 단편 제작을 기획했으나 영화제작 중 아시아의 버블경제가 붕괴되고 소련이 해체됐으며 유럽에서는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발발했다. 이러한 현실의 참상은 <붉은 돼지>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미야자키 감독은 자신의 작업실을 부타야(돼지의 집)라 부를 정도로 종종 스스로를 돼지 캐릭터로 묘사하는데, <붉은 돼지>에서 돼지의 외형을 지닌 조종사 포르코 로소는 감독의 분신으로서 세계를 바라보는 그의 복잡한 심리를 대변한다. <모노노케 히메> <모노노케 히메>는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 중 가장 생태학적인 작품이라 평가받는다. 다만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달라진 점은 자연과 인간의 화합을 도모하는 것이 아닌 갈등과 충돌의 형식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완전한 화합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미야자키 감독은 숲에서 모두 함께 살아가는 해피 엔딩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모호한 결말을 택했다. 그의 애니메이션 중 가장 어두운 분위기로 완성된 <모노노케 히메>는 개봉 당시 일본에서만 14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꾸려고했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진짜 아무것도 안 변했어. 그런 게감독의 일이야.”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 중 “지브리가 편안한 영화를 만든다고 할 때마다그 생각을 지우고 싶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중요한 문제를 다루지 않으면 영화를 만드는의미가 없다. 혼란스러운데 모든 게 괜찮을거라고 거짓말하는 게, 그게 과연 가능할까?”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 중

[특집] 스튜디오 지브리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아니메쥬와 지브리展>, 다섯 가지 질문으로 들여다보기

걸작은 보통 천재 예술가 혼자만의 재능으로 탄생하지 않는다. 그 재능을 배양하는 문화적인 토양과 여러 조력자의 도움으로 싹트기 마련이다. 수많은 관객에게 사랑받는 지브리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 6월6일부터 내년 2월22일까지 용산아이파크몰 6층 대원뮤지엄에서 열리는 전시 <아니메쥬와 지브리展>은 지브리가 탄생할 수 있었던 문화적인 토양을 환기한다. 우선 1300점 이상의 방대한 자료를 통해 197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의 황금기와 스튜디오 지브리의 탄생을 이끈 애니메이션 전문 잡지 <아니메주>의 역사와 애니메이션 산업의 발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했다. 이어서 <아니메주>의 창간인 스즈키 도시오와 스튜디오 지브리의 관계를 심도 있게 탐구하며 전시회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Q1. <아니메주>는 어떤 잡지인가. <아니메주>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황금기가 한창이던 70년대 중반, 도쿠마 쇼텐 출판사의 투자로 1978년에 창간됐다. 이 잡지의 창간인이자 훗날 스튜디오 지브리의 프로듀서가 되는 스즈키 도시오는 프랑스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 같은 작가주의 성향을 염두에 두고 잡지를 창간했다. “영화는 본래 움직이는 것이다. 좋은 장면은 한컷씩 보고 분석해야 한다.” 그의 견고한 철학에 따라 잡지의 구성도 정해졌다. 스즈키 도시오는 <은하철도 999> <기동전사 건담> <천사의 알> 등 작품성 있는 애니메이션을 조명하는 특집을 기획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고, 이에 따라 <기동전사 건담>은 <아니메주> 덕에 극장판으로 부활했다. 해마다 열리는 인기 투표 ‘아니메 그랑프리’는 팬덤 문화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Q2. <아니메주>와 스튜디오 지브리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둘의 인연은 <아니메주> 창간호부터 시작된다. 스즈키 도시오는 숨겨진 명작을 알리는 코너에서 다카하타 이사오가 연출, 미야자키 하야오가 장면 설정을 담당한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을 조명했다. 이후 스즈키는 당시 시류를 거스르면서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에 주목했다. 미야자키의 첫 극장애니메이션인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개봉 당시 이 작품을 <아니메주>의 커버로 선택했고, 1981년 8월호에는 31페이지에 걸쳐 미야자키의 작품을 심층 분석했다. 스즈키가 미야자키에게 1983년 만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연재를 제안하면서 둘의 사이는 더욱 돈독해진다. 이번 전시에서는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특집, 원화와 셀화 TV시리즈의 레이아웃 등 미야자키의 손때가 묻은 자료를 볼 수 있다. 거기에 <빨간머리 앤>과 <꼬마숙녀 지에> 등 다카하타 이사오 특집호도 볼 수 있다. ‘스튜디오 지브리 탄생!’ 코너에서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흥행 이후 지브리의 탄생 비화와 <이웃집 토토로> <천공의 성 라퓨타> 원화, CF를 위한 원더십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Q3. 만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어떻게 영화화되었나. 만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아니메주> 연재 직후 평단과 대중을 모두 사로잡았다. 이에 따라 <아니메주> 내부에서는 만화를 영상화하자는 움직임이 생겼다. <아니메주>의 편집장 오가타 히데오는 미야자키에게 5분짜리 파일럿 제작을 제안했으나 한달이 지난 뒤 규모가 커지자 영화화를 논의했다. 6개월 후 애니메이션을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자 미야자키는 다카하타 이사오를 프로듀서로, 제작 스튜디오를 톱크래프트로 결정한 뒤 빠르게 진행해나간다. 전시에는 코마츠바라 카즈오의 캐릭터 스케치부터 21점의 레이아웃, 14점의 배경화, 6점의 셀화 등 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기원을 볼 수 있는 귀한 자료가 걸려 있다. 특히 디자이너 다케야 다카유키의 디자인을 전시해둔 ‘바람술사의 부해복장’ 코너의 디오라마는 이 전시의 백미다. 이뿐만 아니라 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제작 현장을 담은 <아니메주> 1983년 11월호 특집, 개봉 당시의 포스터, 굿즈, 부록 등 보기 힘든 영화 관련 상품도 있다. Q4. 전시에서는 스튜디오 지브리를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 포토존이 인상적이다. 입장 시에는 <이웃집 토토로>의 고양이버스 포토존이 있고 퇴장 시에는 <아니메주> 부록을 모티프로 한 포토존이 있다. 이곳엔 <천공의 성 라퓨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마녀 배달부 키키> <이웃집 토토로> 등 영화 속 명장면을 당장 스크린 바깥으로 꺼낸 듯한 섬세한 세트 구현이 감동을 준다. 내가 바로 그 작품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다. MD 상품도 눈에 띈다. 미야자키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개봉 당시 트럼프 카드, 부채, 배지, 엽서 등 지금 우리에게도 익숙한 굿즈를 발매했다. 이후 <천공의 성 라퓨타>가 개봉했을 때는 컬래버 음료수와 소책자 등 여러 굿즈가 나온다. 이처럼 굿즈 문화의 발전을 보는 재미가 있다. 마지막으로 미야자키가 원화 스태프에게 한 지시가 그대로 실린 원화에서는 그의 완벽주의적 성향을 엿볼 수 있다. Q5. <아니메주>만의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면. <아니메주>와 <기동전사 건담>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전시에서는 <기동전사 건담>을 조명한 특집기사와 잡지에 수록된 원화와 건프라(건담 프라모델), 명장면을 구현한 디오라마를 볼 수 있다. ‘애니메이션의 방’ 코너는 가정용 비디오 붐과 애니메이션 소비문화의 발전을 한 공간에 압축해 보여준다. 로봇과 SF 장르를 중심으로 했던 <아니메주>가 여성향의 BL과 <요술 공주 밍키> 등 마법소녀 장르의 부상에 주목해 여성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했던 혁신적 시도를 주목한 코너도 흥미로웠다. <천사의 알>의 오시이 마모루 등 <아니메주> 가 조명한 작가를 소개한 코너도 있다. 마지막으로 <아니메주>의 커버를 모아둔 코너도 일본 애니메이션의 황금기를 스펙트럼처럼 펼쳐둔 듯한 감흥을 남긴다.

[복길의 슬픔의 케이팝 파티] 샴푸가 되고 싶어, < Shampoo >

이 곡을 만든 다이시댄스는 빅뱅의 <하루하루>를 통해 2000년대 후반, K팝의 특정 지대를 장악한 일본의 음악가다. 서정적인 피아노 멜로디에 분주한 하우스 리듬을 얹어 감정을 고조시키는 그의 작법은 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곡의 멜로디는 특정한 코드를 반복해 감정을 일정한 고조 속에 머물게 하는데, 그것은 ‘울컥’ 쏟아지는 눈물이 아니라, 가슴이 저린 불안과 낯섦에 가깝다. 그리고 는 그 위에 원태연의 가사를 얹어 음악이 품은 슬픔을 극대화한다. ‘Shampoo가 되고 싶어 그대의 머리카락에 나 흘러내리게’, ‘혹시 너 별, 별, 별 이유로 나를 슬프게 하면 너의 눈을 따갑게 할 거야.’ 시인의 특기인 ‘러브장’ 감성이 녹아든 가사는 이 곡의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오히려 서정성을 한껏 과장해 맺혀 있던 슬픔을 피식거림으로 환기한다. 그러나 내가 이 노래를 씻김굿이라 여기는 데에는, ‘애프터스쿨’이라는 존재가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들의 팀명 ‘After School’은 언제나 ‘방과 후’의 여유보다는 학교를 완전히 떠난 이후의 시간을 떠올리게 했다. 소녀의 시기를 지나 도달하는 슬프고 화나고 미쳐버릴 것 같은 여자의 시간. 이미 어른이 된 소녀들이 유예된 채 머무는 찰나의 구간. 말 그대로 애프터, 스쿨. 나는 을 거치며 그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냈기에 앞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배신감을 느껴야 했다. 나에게 애프터스쿨은 곧 가희였다. 큰 키와 선명한 근육을 드러내며 체조 같은 안무를 이끌던 그는 한번도 본 적 없는 타입의 아이돌이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Shampoo가 되고 싶다’며 갸륵한 표정을 짓는다고? Shampoo란 자고로 모두가 그 향긋함만 취하기 위해 죄책감 없이 착취하는 물건이 아닌가? 가희가 어떤 여자인데 대체 Shampoo 따위가 되고 싶어 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상하게도 막상 노래를 들으면 그 위화감이 너무나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디바’가 되고자 격렬하게 움직이며 북을 치던 여자들이 갑자기 아련하게 ‘Shampoo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이건 정말 위험한 그림이다. 그 관점에서 의 가사를 다시 한번 읽어보자. 화자는 영원히 곁에 머무르기를 꿈꾸기보다 스스로 사라질 존재가 되기를 택한다. 자신의 형체가 거품이 아니라 향기로 남기를 바라면서. 그러니 이것은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흔적으로 남기는 방식이다. ‘흘러 내리고’, ‘바람에 날려가’면서도 ‘너의 눈을 따갑게’ 만들고 영원히 지울 수 없는 ‘향기를 남기겠다’는 선언. 이 이중성이 바로 곡을 지탱하는 핵심 정서다. 소멸을 감수하면서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기 위해, 감각의 다른 층위에 자신을 새기는 전략. 그러니 의 화자, 가희는 결코 복종적인 존재가 아니며 에서의 ‘씻김’은 정화가 아니라 승화에 가까운 것이다. 씻김굿은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의식이다. 하지만 굿이 끝났다고 해서 고통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우리는 남아 있는 재를 견뎌야 한다. 애프터스쿨의 는 바로 그것을 수용하는 노래다. 이 곡은 감정을 완전히 털어내기보다 남은 감정을 견딜 수 있는 형태로 바꾼다. 만약 머리를 감는 행위를 일상의 씻김굿이라 할 수 있다면, 이 노래는 매일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주술인 것이다. k팝으로 한을 씻어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어떤 노래로 자신만의 의식을 치르는가. 어떤 이에게는 무대를 구르며 포효하는 퍼포먼스가, 또 어떤 이에게는 알 수 없는 언어를 저음으로 중얼거리는 랩이 마음을 달래는 방식일 것이다. 나는 를 들으며 떠올린다. 각자의 불안과 분노를 해결하지 못한 채 내일로 넘어가는 사람들을. 마음에 불을 놓고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화려한 굿을 하는 대신, 물줄기가 졸졸 흐르는 샤워기에 이마를 댄 채 어제의 불안에 아파하고, 내일의 평안을 기대하는 작은 굿판 위의 사람들을.

[남다은 평론가의 RECORDER] 진동 속에 증발한 현재성 <해피엔드>

소라 네오의 첫 번째 장편 극영화인 <해피엔드>가 관객수 10만명을 돌파해 감독과 배우들이 다시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관객들만이 아니라, 평단 역시 이 영화의 성취에 고무된 분위기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재난 세대’의 신선한 감각과 정치의식을 고루 갖춘 청춘물로서 최근 주목받는 ‘젊은’ 일본영화 중 하나로 기꺼이 호명될 만한 작품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해피엔드>를 향한 호의적 감상들에 의문을 느끼며, 이견을 적어보려고 한다. 영화가 시작하면,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라는 자막이 화면에 선명히 새겨진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세계의 배경을 굳이 근미래로 제시한 도입부의 선언에 의아함이 생긴다. AI 시스템 ‘판옵티’가 학생들을 감시, 통제한다는 주요 설정을 근미래의 근거로 들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 화두는 오래된 것일뿐더러 복도 구석구석에 위치한 CCTV 카메라가 학생 각각을 스캔해서 벌점을 매기는 상황, 영화가 그 시스템을 재현하는 방식은 오늘날의 시각에서 딱히 ‘미래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인터뷰에서 소라 네오 감독은 이러한 인상에 대해 작가 윌리엄 깁슨의 말을 인용해 이 영화가 “미래는 이미 도래했다. 다만 모두에게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았을 뿐”이라는 생각을 구현한 결과이자 일본이 자기반성 없이 미래에 이른 상태에 대한 상상이라고 밝힌다. 그는 덧붙여 <해피엔드>의 ‘근미래성’이 미래보다 과거와 접속하는 듯한 느낌은 아마도 그가 추종해온 1990년대 대만 뉴웨이브 영화의 면모에 얼마간 빚진 것으로 짐작하기도 한다(<씨네21> 1505호). 근미래를 바탕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 감각을 혼종하려는 <해피엔드>는 그러나 감독의 야심과 달리 이상하게도 낡아 보인다. 사회에 대한 단순한 논평, 인물들의 일차원적인 대사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주목을 요하는 건 근미래의 현실에 정치성을 소환하는 방식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부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인물인 후미(이노리 기라라)는 이와 관련된 문제일 것이다. 음악 동아리 구성원들이 일으키는 활기와 확연히 구별되는 후미의 위상은 청춘의 시간에 정치적인 울림을 일으키려는 목적으로 구상된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그가 처음 등장하는 순간을 떠올려보자. 학생들의 철없는 유희로 떠들썩한 장면에서 그는 “경찰은 국가와 부유층을 위해 무장한 관료야”라는 직설적인 대사로 난데없이 끼어들며 교실 한구석 끝에서 고고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코우(히다카 유키토)가 그 말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소라 네오가 후미를 영화의 정치성을 발화하는 역할로 내세워 청춘의 세계에 각성을 의도할수록 그는 마치 자신이 죽은 줄 모른 채, 잘못된 시공간에 착륙해 맹목적인 신념만 반복해서 읊조리는 음성처럼 다가온다. 평자들이 지적하듯 <해피엔드>에 1960년대 일본 학생운동의 그림자가 얼마간 부유한다면, 이는 상당 부분 후미의 존재감에 서 기인하지만, 후미는 과거의 전투적 활력을 현재로 계승한 인물이기보다는 그에 대한 향수로 불려온 형상에 더 가까워 보인다. 말하자면 소라 네오는 자신의 세대가 가져본 적 없고, 그리하여 상실한 적 없는 시대적 공기를 ‘향수’하는 실로 어색한 위치에서 이 영화의 정치성을 구한다. 후미에게서 풍기는 시대착오적인 분위기는 이에 기인할 것이다. 후미는 제대로 활동하기도 전에 이미 향수되는 존재다. 후미의 발언들과 영화가 그를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가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쟁점이기보다는 구체적인 시대성이 결여된 추상적이고 일견 구태의연한 말들로 들리는 것 또한 그 때문이다. 이 영화의 근미래는 과거에 대한 향수로 작동한다. 청춘들은 화가 나 있고, 어른들 역시 화가 나 있지만, 이 영화에서 의외로 모자란 것은 분노다. <해피엔드>는 자신의 기조를 폭력적인 제도와의 불화로 내세우나 정작 여기엔 액션으로든, 리액션으로든 폭력을 의식하고 대면하고 재현하는 힘이 부족하다. 그러한 성향을 압축적으로 형상화하는 장면이 영화의 인장처럼 초반에 나온다. 클럽에서 학교로 돌아온 친구들은 교장이 관료에게 접대를 받고 스포츠카를 과시하는 모습을 훔쳐본 뒤, 경비원의 눈을 피해 동아리방에서 놀며 밤을 지새운다. 날이 밝자, 유타(구리하라 하야토)와 코우는 학교 옥상에서 교장의 차를 내려다보다가 위험한 작당을 모의한다. 그날 오전, 등교한 학생들이 마주한 것은 교장의 스포츠카가 수직으로 선 광경이다. 영화는 옥상 장면에서 스포츠카 근처에 놓인 지게차를 잠시 보여주기도 하지만, 유타와 코우가 차를 세우는 과정은 생략한다. 그런 이유로 학교 앞마당에서 기이한 각도로 자태를 뽐내는 노란색 스포츠카는 두 학생의 반항적인 행동의 결과로 다가오기보다는 불가해하고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화면을 장식한다. 노란 수직의 형상은 제도에 균열을 일으킨 행위로 의미화되기 전에 희귀하고 매끄러운 이미지의 욕망을 발산한다. 나중에 후미는 교장의 차를 “예술적이고 급진적으로” 만들어놨다며 코우를 격려하고, 교장은 “테러”라 규정하며 노발대발하지만, 당연하게도 둘 다 이 과시적인 이미지에 어울리는 평은 아니다. 유타와 코우는 이 차를 예쁘게, 색다른 모양새로 세웠을 뿐이다. 교장의 고급 스포츠카는 해체되지도, 박살 나지도 않았다. <해피엔드>가 뜻밖에도 충돌과 적대를 꺼린다는 인상은 영화가 두번의 시위 장면을 화면에 불러들이는 방식에서도 엿볼 수 있다. 유타와 코우가 카페 안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동안, 통창 바깥으로는 재일조선인 혐오 시위가 한창이고, 후미는 차별 선동자들을 옹호하는 경찰에 홀로 맞서는 중이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코우처럼 카메라 역시 밖으로 나가 현장에 휩쓸리지 않고 마치 스크린 위 배경 이미지의 소동을 지켜보듯 카페 안에 위치한다. 이 장면은 그런 상태로 끝난다. 유리창 바깥으로 시위 장면이 다시 등장하는 건, 유타가 악기점에서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는 대목에서다. 유타와 점주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때, 갑작스러운 지진으로 가게가 흔들린 직후, 도망가던 시위대 일원이 악기점 창을 두드려 자동문이 열리고, 이내 경찰에 잡혀 사라지는 모습을 두 사람은 가만히 쳐다본다. 재난의 진동과 사회의 진동을 연동시키려는 연출이겠지만 이 장면에서 도드라지는 사실은 따로 있다. 거리의 소란은 역시나 창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투명한 유리막 바깥의 파편적 이미지로 스쳐 지나간다. 영화는 이번에도 ‘안’에 머무른다. 이 ‘안’은 무엇을 할 수 있는 자리일까. 유타가 악기점에서 지켜본 정권 반대 시위대에 후미와 코우가 동참한 사실은 학교 내부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두 학생이 교장의 추궁을 받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여기서 아무래도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악기점과 학교 장면 사이에 후미와 코우의 데모 장면이 부재한다는 점이다. “시위하면 세상이 변해요?”라고 묻던 코우가 처음으로 경험한 싸움이자 어쩌면 서사적 분기점이 될 수도 있을 투쟁의 장소에 영화는 따라나서지 않는다. 다만 학교 울타리 안으로 돌아와 시위를 비난하는 교장, 그에게 대항하는 두 학생, 이들을 변호하는 담임, 자식의 과오를 사과하는 부모를 비춘다. 제도와 격렬히 마찰하는 현장의 현재성을 영화는 카페나 악기점 장면에서처럼 곁눈질로 지나치거나 후미와 코우의 시위 장면처럼 아예 삭제한다. 현장의 거친 현재성을 마주하거나 그에 개입하는 일에 소극적인 영화의 일관된 태도는 짚고 넘어갈 만한 것이다. 영화가 건너뛴 후미와 코우의 데모 장면을 예견하며 두 사람이 시위 참여를 결연하게 다짐하던 술자리의 풍경은 그런 맥락에서 주시할 만하다. 비좁은 술집, 기성세대로 보이는 이들이 저마다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코우는 흥미롭게 바라본다. 그들이 “똥이나 처먹어라”라는 가사를 주고받으며 함께 흥에 젖는 노래는 실제로 1960년대 후반 일본의 포크 가수 오카바야시 노부야스가 부른 곡으로 알려져 있다. 저항의 말들이 시끌벅적하게 울려 퍼지며 마치 과거 운동권의 골방이 환생한 듯한 이 장면에는 카페나 악기점에서 현실의 잔상이 맺히던 창이 없다. 밖으로 통하지 않는 이곳의 풍경은 과거의 싸움을 갈망하는 향수의 정취로 그득하고, 같은 이유로 고루하다. <해피엔드>의 카메라는 후미와 코우의 시위 현장에 뛰어드는 대신, 회고담의 색채가 짙은 시공간의 기운에 취한다. 물론 이 영화에도 학생들이 일으킨 사건은 있다. 학교가 자위대원의 특강을 마련하자, 후미를 필두로 일본에 귀화하지 않은 학생들이 AI 감시 시스템에 반기를 들며 교장을 인질로 잡아 교장실을 점거하고 문을 잠근다. <해피엔드>의 클라이맥스라고도 불릴 만한 이 대목에서 교장이 학생들 무리에 가로막혀 그대로 갇힌다는 설정은 희극적이다. 힘의 강제나 위협, 그에 대한 저항 같은 물리적인 부딪침은 없다. 교장이 그의 권력과 간교함을 이용하지 않고 학생들의 요구를 그냥 받아들이는 상황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는 않는다. 교장실의 문이 음식을 챙겨온 교장의 심복이나 김밥을 가져온 코우에게 순순히 열린 것처럼, 이곳은 애초 강력한 감금의 장소도 아니다. 이 장면을 작동시키는 건 서사적 개연성이나 캐릭터의 일관성이 아니라, 영화의 순진한 이상일 것이다. 폭력 없이, 심지어 어느새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으며 결국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관철하는 곳. 이곳은 경찰에 쫓기는 거리보다 평온하며, ‘우리’의 적은 거리의 혐오주의자들보다 쉽다. 교장실에서 밤새운 학생들은 의기양양하게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학교를 나선다. 영화는 익명의 존재들이 아우성치는 거리의 시위대에 섞이길 주저하지만 이 작은 방에서의 작위적이며 안전한 저항은 옹호하고 과장한다. 학교는 타개할 제도가 아니라, 환상을 충족시켜주는 장소에 더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해피엔드>가 희구하는 세계는 혼돈과 충돌과 균열과 적대가 타협되고 조율된 지평이다. 지진이 발생하는 순간을 재현하는 방식도 그 예가 될 만하다. 학교 안에서 유타와 코우가 흔들림을 감지하고 책상 밑으로 들어가 대피하는 긴박한 모습이 이어지는 동안, 세계는 불시에 침묵에 잠긴다. 감독은 행여 지진을 경험한 이들의 트라우마를 건드릴지 모른다는 염려에 사운드를 배제했다고 말하지만 그의 바람과 별개로 소리를 지운 일촉즉발의 움직임은 그 순간의 불안, 동요, 위험이 제거된 이미지로, 왠지 꿈결처럼 느린 속도로 펼쳐지는 듯한 착각 속에 전시된다. 적어도 이미지의 차원에서 이 장면의 강도는 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거실에서 유타가 잠에서 깨는 아침의 잔잔한 공기, 그곳에서 밤새 널브러져 자던 친구들이 하나씩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분위기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해피엔드> 는 현실의 폭력성과 불안전성과 혼란이 자신의 토대라고 거듭 환기하지만 이 영화의 시선, 리듬, 운동성, 보폭 등은 그 울퉁불퉁한 상태를 순화하는 과정에 복무한다. 시시각각 어두운 도심을 부유하는 “긴급사태조항 발령” 문구나 고층빌딩에 비친 총리의 얼굴은 근미래의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텅 빈 이미지의 기술이며, 폭력은 그저 신기루처럼 다뤄진다. 그것은 신기루일 뿐인데, 이 영화의 청춘들은 무엇과 싸우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신기루일 뿐이므로, 밤거리를 오가는 청춘들의 풍경에는 한적하고 나른한 낭만이 깃든다. <해피엔드>를 <태풍클럽>(감독 소마이 신지, 1985)이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감독 에드워드 양, 1991)의 영향 안에서 거론하는 감상에는 그러므로 동의하기 어렵다. <태풍클럽>과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폭력성과 불안전성과 혼란을 저돌적으로 껴안고 불온하게 밀어붙여 그 자신도 부서지길 두려워하지 않는 힘으로 청춘과 세계를 증명하는 영화다. 이들의 기동력은 과거를 향수하거나 미래를 상상할 겨를이 없는 절박하고 구체적인 현재성에 근거한다. <해피엔드>의 현재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 세계가 뿌리를 내린 곳은 어디일까. 나는 대답을 찾지 못한다. 졸업식이 끝나고, 인물들이 뒤돌아보지 않고 각자의 길로 떠난 육교에 여전히 남아,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라고 공허하게 반문하게 되는 것이다.

[인터뷰] 말이 아닌 것으로, <366일> 배우 아카소 에이지

2003년 여름, 오키나와는 눈부시게 푸르르지만 고3 미나토(아카소 에이지)는 짙은 어둠 속에 있다. 어머니의 죽음이 그에게서 모든 동력을 앗아간 참이다. 이어폰을 꽂은 채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던 어느 날, 햇살 같은 한 학년 후배 미우(가미시라이시 모카)가 그를 찾아온다. 같은 음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에서 시작된 관계는 미래를 함께 고민하며 서서히 깊어지고, 미나토는 미우의 밝은 에너지를 통해 터널 밖으로 걸어 나온다. 도쿄에서 함께 20대를 시작하면서 둘은 각자의 방식으로 꿈에 다가가기 위해 애쓰지만 서로 다른 시기에 커다란 시련을 맞닥뜨린다. <366일>은 긴 시간을 들여 엇갈리는 마음과 교차점의 순간을 따라가는 영화다. 배우 아카소 에이지가 깊은 눈빛과 숨결로 간절한 멜로드라마를 완성한다. 드라마 <30살까지 동정이면 마법사가 될 수 있대>로 한일 양국에서 팬덤을 쌓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젊은 배우로 자리 잡은 그가<366일>의 국내 개봉(6월11일)을 기념해 한국을 찾았다. 레퍼런스 사진을 보자마자 정확히 포즈를 취하고 재치와 진지함을 오가는 답변을 쏟아낸 그는 미나토만큼이나 친절했고 때로는 그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었다. <366일>을 찍으며 대사 이외의 방식으로도 감정을 전하는 법을 배웠다는 그의 이야기를 전한다. - 영화를 보며 오키나와에서 펼쳐지는 <라라랜드>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는 어땠나. 나도 시나리오를 보면서 <라라랜드>를 떠올랐다. 두 남녀주인공의 또 다른 미래를 상상하게 만드는 여운 있는 결말이 인상 깊었다. 미나토의 첫인상은 쿨했지만 오랫동안 아픈 엄마를 간병하며 사랑을 주는 법을 알게 된 인물이다. 또 상실을 겪으며 누구보다 절실히 사랑을 원한다고 생각했다. - 21년에 걸쳐 두 남녀의 인생을 따라가는 이야기인 만큼 전체적인 흐름과 감정선을 염두에 두고 연기할 수밖에 없었겠다. 도쿄에서 먼저 촬영하고 오키나와로 넘어가는 식의 역순 촬영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매 장면이 전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미나토에게 무슨 의미인지를 신조 다케히코 감독님과 촘촘히 의논하며 작업했다.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전반부는 미우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기 때문에 미우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최대한 억눌러가며 연기했다. 후반의 변곡점을 지나고 나서부터 묶어두었던 감정을 서서히 흘려보냈다. - 미나토는 감정을 삭이는 편이고 어떤 비밀도 간직하고 있다. 대사도 적은 편이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어떻게 풀어나갔나. 그동안 맡았던 어떤 캐릭터보다 대사가 적어서 오히려 신선했다. 준비를 시작할 때 말수가 적다는 점을 중요한 키로 삼았다. 그렇다면 미나토는 말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어떻게 드러낼까, 그걸 찾아가는 게 과제였다. 표정부터 특유의 분위기, 어떤 속도로 움직이고 어느 정도의 텀을 두고 반응하는지 등 ‘미나토스러움’을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 미나토가 미우에게 처음 호감을 느낀 순간은 언제라고 보았나. 그 지점이 대본에 명확하게 묘사되지 않아서 참 어려웠다. 그래도 미우가 바뀐 CD를 돌려주러 왔을 때 오키나와 전통 도넛인 사타안다기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미나토가 처음 호감을 느꼈다고 봤다. 처음 보는 이 여자애가 누구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자신과 달리 간식 하나에도 행복해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끌렸을 것 같다. 나중에 학교 옥상에서 단둘이 서로의 꿈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미나토는 미우가 정말 멋진 사람이라고 느끼는데, 그 감정이 결정적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 그러나 도쿄에서 둘은 결국 헤어진다. 저녁의 도심 한복판에서 미나토가 미우에게 돌연 “이제 너와 함께 있을 수 없다”라며 이별을 부탁하기 때문이다. 이때 미나토는 어떤 마음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나. 우선 이 신은 지난해 6월에 촬영했는데 재밌는 일화가 있다. 가미시라이시 모카 배우가 내게 감정적으로 힘든 신인데 피부가 너무 윤이 나는 게 아니냐는 거다. 사실 이날 낮에 사우나에 갔다왔는데 본의 아니게 효과가 나는 바람에…. (웃음) 아픈 말을 하며 머리를 숙이는 동안 미나토는 미우의 얼굴을 차마 볼 수 없다는 심정이었을 거다. 미우를 좋아하는 마음을 애써 눌러야 한다는 생각으로 촬영했고. 머리를 깊이 숙인 건 미우가 다른 대답을 못하게 하려는 미나토의 의도가 담겨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토록 간곡히 헤어져 달라고 하는 상대를 어떻게 붙잡을 수 있을까. - <366일>은 서로를 너무 배려한 나머지 결국 어긋나고 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나토와 미우,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조금만 더 용기를 냈다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만약 미나토가 곁에 있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 커뮤니케이션을 해라! (웃음) 좀더 솔직하게 말로 표현하라고. 그리고 모든 걸 혼자서 끌어안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도. 내가 원래 그런 주의다. 내 감정이나 의견은 직접 표현해야 진심이 잘 전해지고, 함께해나가려는 마음이 있어야 일이 더 원활하게 풀린다고 생각한다. - 학창 시절의 아카소 에이지는 어두운 면을 지닌 미나토와 밝고 활기찬 미우, 둘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웠나. 고민할 필요 없이 미우다. 반 친구들 모두와 친했는데 아마도 취미 부자였던 게 비결이지 않았나 싶다. 이 친구와는 서로 좋아하는 만화와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저 친구와는 어제 본 스포츠나 예능 방송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반에서 조금 무서운 친구부터 조용한 아이까지 다 친해질 수 있었다. 취미는 요즘도 많다. 바이크 면허를 취득하려고 준비 중이고 최근에 골프도 시작했다.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몸을 쓰는 활동은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큰 도움이 된다. <366일>은 감정적 여운이 워낙 깊은 작품이라 촬영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미나토를 놓아주기 힘들었는데, 주 4회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면서 조금씩 정리해나갈 수 있었다. - 미나토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지만 그 꿈을 이루는 일은 쉽지 않다. 당신도 배우라는 꿈을 이루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쳤을 텐데 그 여정은 험난했나, 아니면 비교적 행운의 신이 함께했나. 전체적으로 보면 쉽지 않았으나 돌이켜보면 부분부분 운이 따랐던 것 같다. 사실 10대 시절에 ‘나는 꼭 배우가 될 거야’라고 다짐한 건 아니었다. 다만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배우가 됐으니 원하는 방향으로 잘 흘러온 셈이다. 작품이 공개된 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재밌었다는 감사한 반응을 들을 때마다 참 뿌듯하고 이 길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 영화 취향도 궁금하다. 멜로영화를 즐겨 보기에 멜로 작품을 택한 걸까. 나는 ‘새드 엔딩파’다. 새드 엔딩을 곱씹다 보면 ‘그래. 마냥 슬프기만 한 건 아니야’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 순간을 좋아한다. 단순히 보면 주인공이 보상받지 못하거나 잘 안되는 상황이 비극적일 수 있는데 그런 순간에도 발견되는 희망이나 얻어가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라라랜드> <시네마 천국> <인생을 아름다워>를 좋아하는 거고. - <366일>을 본 뒤 아카소 에이지의 다음 작품을 궁금해할 관객을 위해 차기작 정보를 살짝 들려준다면. 8월8일 일본에서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라는 공포영화가 개봉한다. 평소 공포영화를 즐겨 보는데 직접 출연까지 하게 돼 즐겁게 촬영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새 작품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상반기는 비교적 여유롭게 보낸 편이라 하반기에는 다시 일에 집중할 생각이다.

[기획] 그가 다시 날아온다 - <슈퍼맨> 미리 보기, 제임스 건 감독, 배우 데이비드 코렌스웨트, 니컬러스 홀트

미국 캘리포니아 워너브러더스 스튜디오 부지 한가운데 자리한 DC 스튜디오 사무실. 복도에는 크리스토퍼 리브가 입었던 슈퍼맨 슈트가, 욕실 한편엔 진 해크먼의 렉스 루터가 걸쳤던 목욕 가운이 전시된 이 공간의 주인은 제임스 건 감독이다(<롤링스톤>). 그는 2022년부터 프로듀서 피터 사프란과 함께 DC 스튜디오의 공동 수장을 지내며 현대 대중문화 속 가장 오래되고 상징적인 슈퍼히어로를 부활시키는 작업에 몰두해왔다. 그리고 마침내 대부분의 미국 지역과 한국 전역이 무더위를 맞이할 2025년 7월, 그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는다. 제임스 건의 <슈퍼맨>은 2013년 잭 스나이더의 <맨 오브 스틸> 이후 12년 만에 공개되는 슈퍼맨 단독 영화다. 단순한 후속작이 아닌 DC 유니버스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리부트 작품으로 서사적으로도 산업적으로도 중요한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다부진 체격과 190cm가 넘는 장신으로 이미 슈퍼맨감임을 증명한 데이비드 코렌스웨트가 슈퍼맨/클라크 켄트 역을 맡았고, 니컬러스 홀트가 슈퍼맨의 영원한 숙적 렉스 루터로 합류해 젊은 바람을 더한다. 여기에 동시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슈퍼맨의 연인 로이스 레인(레이철 브로즈너핸)과 한층 짓궂고 귀여워진 슈퍼맨의 동물 파트너 크립토까지 가세해 신선한 재미를 예고한다. 7월9일 국내 개봉을 확정 짓기 전 <씨네21>이 일찍이 <슈퍼맨>의 핵심 주역들을 화상으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이어지는 제임스 건 감독과 배우 데이비드 코렌스웨트, 니컬러스 홀트 인터뷰는 다시 날아오른 슈퍼히어로의 세계로 들어가는 흥미로운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곧 DC와 슈퍼맨의 또 다른 하늘이 열린다. *이어지는 글에서 제임스 건 감독, 배우 데이비드 코렌스웨트, 니컬러스 홀트와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