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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로드리고 세희의 초소형 여행기] 어느 실패한 등정의 기록

알래스카에선 경비행기가 택시였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원시림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문명이 싹트기 전 태고의 지구에 와 있는 것 같았다. 문득 알래스카 사람들이 부러웠다. 한국과는 삶의 결이 다르겠지. 마음의 넓이와 생각의 크기까지도.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니까. 나는 네명의 산악인 선배와 함께 북미 최고봉 ‘디날리’로 향하는 중이었다.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미지의 동토.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품지 않으니 문명이라고는 흔적조차 없는 곳. 오직 인간만이 첨단의 등반 장비와 피복으로 무장하고 겨우 며칠을 바득바득 머물다 간다. 운이 나쁘면 영영 돌아가지 못하거나. 원정 동안 길에 작은 새 한 마리가 죽어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가냘픈 주검이 디날리에서 만난 유일한 생명체였다. 인간의 부산물을 주워 먹으며 따라온 새는 몰랐을 것이다. 올라갈수록 공기가 희박해지고 추워진다는 것을. 새의 죽음 앞에서 역설적인 평화를 느꼈다. 섭리가 그렇다면 죽음 또한 받아들여야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풍경은 한없이 거대하고 소리는 지독하게 고요했다. 햇빛이 눈에 닿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그저 앞사람과 뒷사람의 들숨과 날숨 소리만이 희미하게 맴돌았다. 척박한 곳이지만 눈물겹게 아름다웠다. 오직 자연의 질서만이 존재하는 곳. 등정을 위해 보름치 식량과 텐트 등 필수품을 썰매에 가득 싣고 첫발을 내딛었다. 차갑고 깨끗한 공기가 몸에 퍼지자 서울의 공해에 오염된 폐부가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숨쉬기가 이렇게 즐거운 일이었다니. 큰 숨 한번에 한 걸음씩, 무거운 썰매를 끌고 천천히 나아갔다. 이 한 걸음이 모이고 모여 기어이 나를 정상에 데려다주리라. 하루 종일 눈과 얼음 위를 걷고, 혹한의 텐트 속에서 두꺼운 패딩 재킷을 입은 장정들과 부대끼는 지난한 생활도 조금씩 적응되어갔다. 일주일 남짓한 동안 캠프1, 2, 3을 무탈하게 지나며 할 만하다는 시건방진 생각이 고개를 들려고 하자, 디날리 등반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모터사이클 힐’이 나타났다. 가히 악명 높은 언덕이었다. 그곳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저절로 입이 다물어지는 경사 길이었다. 겉은 고요해도 내면에서는 저마다 사투를 벌였다. 산과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마주한 싸움이었다. 기어이 언덕을 다 오르고 입안에 단내가 가시기도 전에 가장 고령인 S가 고산병 증세를 보였다. 원정대장 K는 어렵지 않게 결정했다. 다시 내려가자.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고산병은 따로 약이 없어 고도를 낮추는 수밖에 없다. S의 고산병은 끝내 호전되지 않았다. 논의 끝에 그는 홀로 캠프3에 남고, 다른 사람들은 다시 정상을 향하기로 했다. 홀로 남겨진 선배의 처지가 눈에 밟혔지만, 얼른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길을 나서야만 했다. 모터사이클 힐은 여전히 힘들었고, 언덕 끝에는 새로운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탈에 좁게 난 길을 횡으로 가로질러 통과해야 했는데, 혹여라도 미끄러진다면 시체를 수습할 방법도 없어 보였다. 한 걸음마다 피켈을 박아 지지하며 긴장 속에 길을 건너 드디어 캠프4에 도착했다. ‘디날리 시티’라고 특별하게 불리는 캠프. 정상의 8할 정도 되는 지점이라 부쩍 추웠고 바람은 더욱 거셌다. 사람들은 여기서 축난 몸을 추스르고 날씨를 보아가며 최소한의 짐만 챙겨 속전속결로 등정을 완료한다. 손에 잡힐 것처럼 디날리 정상이 가까웠다. 하지만 원정대장 K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이제 그만 하산하자고. 팀에 균열이 생겼으니, 정상에 도전하기 어렵다고. 나머지 선배 둘이 크게 다툰 탓이었다. 나야 고산 경험이 적은 초보라 애초에 큰 욕심이 없었지만, 다른 선배들은 벼르고 별러서 온 것이었다. 고작 이만한 일로 돌아가야 하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인간들 사이에 분란이 있든 말든, 디날리는 무심했다. 안개는 두터웠고, 텐트 천장이 코에 닿을 것처럼 강한 바람이 불었다. 하산을 결정하고도 악천후에 묶여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누가 우리 텐트를 찾아왔다. 불길한 예감과 함께. 그는 캠프3에 홀로 남겨진 S의 안위를 전했다. 까닭을 알 수 없는 이상 증세를 보이니 최대한 빨리 내려가서 살피라고. 이미 끝난 등반이지만 이제 정말로 끝이 났구나. 악천후 때문에 당장 나설 수 없었다. 모든 짐을 꾸려 하산할 수 있는 상태로 한참을 대기하다가, 희미하게나마 시야가 열린 틈에 하산을 강행했다. 하지만 이내 짙은 안개가 다시 들어차 한치 앞만 겨우 보였고 바람은 갈수록 심하게 불었다. 디날리에 침입한 인간들을 세상 밖으로 날려버릴 것 같은 기세였다. 날카로운 얼음 알갱이가 허공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며 얼굴을 때렸다. 고글에 얼음 알갱이가 달라붙어 시야를 막았고 장갑으로 연신 훔쳐도 달라붙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장갑이 젖으며 손끝이 시려왔다. 총체적인 정비가 필요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모두 조난당할 판이었다. 디날리는 매정했다. 그야말로 혼비백산해서 하산하는데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날이 화창하게 갰다. 뒤돌아보니 머리 바로 위에 구름이 있었다. 우리는 구름을 뚫고 내려온 것이었다. 홀로 남겨진 S는 우리를 만나자 곧 안정을 찾았다. 다행이었다. 최악은 면했구나. 하지만 거기서 시련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하산을 마저하는 동안 원정대장 K는 크레바스에 추락해 수십명이 동원된 구조 끝에 헬리콥터로 후송되었고, 다른 선배는 손에 동상이 걸려 귀국과 함께 손가락 두개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한여름 밤의 꿈같은 소란과 함께 디날리 등정은 막을 내렸다. 여행은 필시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고, 삶은 이처럼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실패한 등정이지만 디날리에 다녀온 것을 생각하면 여전히 감개무량하다. 욕망만으로 쉬이 거스를 수 없는 대자연의 숭고한 섭리를 잘 만나고 왔다. 내 삶이 결과주의에서 해방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여행이고.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꼭 좋은 영화는 아니지 않던가. 가끔 생각해보곤 한다. 순탄하게 등정에 성공했더라면, 나에게 디날리는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

[Masters’ Talk] 개러스 에드워즈 감독과 김성식 감독의 마스터스 토크 ➁

- 김성식 기술적으로 궁금한 것들에 관해 질문하고 싶은데, <쥬라기 공원>은 애니매트로닉스(생물을 모방한 로봇을 사용하여 촬영하는 기술.-편집자)를 많이 사용했잖아요. 이번 영화에서는 애니매트로닉스 비율이 어느 정도였는지 궁금합니다. = 개러스 에드워즈 이런 규모의 할리우드영화는 보통 연출을 제안하는 전화를 받는 날부터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2년 반 정도 걸립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의 경우, 전화를 받고 처음 들은 말이 “1년3개월밖에 없다”였어요. 거의 절반의 시간밖에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더 빠르게 작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제 백그라운드가 컴퓨터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자신은 있었어요. 흔히 영화제작 과정에서 멋진 실물로 만든 크리처를 카메라 앞에 세워 촬영해놓고 처음 만든 걸 지워버린 뒤 컴퓨터로 다시 크리처를 만드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면서 많은 돈을 낭비하죠. 우리는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공룡을 실제로 만들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컴퓨터 작업을 할 거라면 처음부터 그걸 인정합시다”라고 선언했습니다. 대신 퍼펫티어와 퍼포머를 불러 그림자극처럼 다양한 크리처를 표현하게 했습니다. 저는 그게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만약 다시 돌아가서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 2년 반 동안 영화를 만들 수 있더라도 같은 접근법을 썼을 거예요. - 김성식 영화 <크리에이터>도 그런 방식으로 작업한 것 같아요. 컨셉을 먼저 구상하기보다 일단 다 찍어놓고 후반작업을 길게 하는 방식. 그 방식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저도 애니메이션을 해서 잘 아는데, 만들어놓은 크리처를 지우고 다시 VFX 작업으로 돌아가 랜더를 걸면 시간이 많이 낭비되죠. 그렇게 낭비되는 시간 동안 퀄리티도 떨어집니다. 개러스 감독님은 아주 영리하게 작업하신 것 같네요. = 개러스 에드워즈 좀 이상한 비유일 수도 있지만, VFX 작업이 많은 영화들은 보통 이렇게 움직입니다. 벽에 과녁을 그려놓듯이 “크리처를 이 정도 퀄리티에 꼭 맞춰야 해”라고 목표를 정하죠. 그리고 감독이 다트를 던져서 그 과녁의 중심에 맞추려 애씁니다. 하지만 정확히 그 수준에 도달하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연출한 <크리에이터>나 <몬스터즈>처럼 소규모 영화가 만들어진 방식은 그것과 완전히 달랐어요. 말하자면 다트를 먼저 던졌습니다. 일단 뭐든 찍고 보는 거죠. 그리고 다트가 어디에 꽂히든, 그 자리에다 과녁을 그리는 거예요. 일단 촬영을 해두고 ‘진짜 멋있다’ 싶은 장면 위에 뭘 얹을 수 있을지 디자인하면 과녁의 중심을 정확히 맞춘 것처럼 보입니다. 반대로 ‘이런 멋진 장면을 만들고 싶다’고 먼저 정해두면 제작비만 수백만달러가 들어요. 길거리에 나가 몇 시간 동안 촬영하고, 그중 제일 흥미로운 장면 위에 무언가를 디자인해 합성하면 비용은 백달러 정도밖에 안 듭니다. 엄청난 차이죠. 저는 후자의 방식이 더 창의적이고 더 저렴하다고 봅니다. 왜 다들 이렇게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슬프게도 할리우드가 쉽게 바뀌지 않네요. - 김성식 맞아요. 예산이 많이 드는 할리우드에서는 컨셉 아트가 있고 그에 맞춰 똑같이 만들기로 약속하는 방식이죠. 감독님처럼 일단 촬영을 하고 거기에 맞춰서 VFX 작업을 하면 효율적이고 합성 티도 안 나서 좋은 것 같습니다. = 개러스 에드워즈 하지만 누군가에게 가서 “천만달러 주세요, 아직 영화가 구체적으로 예상되지 않았지만 가서 알아낼게요”라고 말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게 이 방식이 어려운 이유예요. - 김성식 저도 크리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했고 <크리에이터> 같은 영화를 만드는 게 최종 목표인데요. 하지만 한국 크리처영화를 보면 잘 모르겠어요. 컴퓨터그래픽 툴 자체가 외국 것이어서 그런지, 광선이 안 맞아서 그런지, 한국 크리처들은 VFX인 게 늘 티가 난단 말이죠. 제작비 부족 때문일 수도 있지만 <몬스터즈>를 보면 꼭 돈 문제만은 아닌 것 같아요. 감독님 작품에서 VFX 합성 티가 안 나는 건 라이트 때문인지 텍스처 매핑 덕분인지 궁금합니다. VFX 작업 때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나요. = 개러스 에드워즈 제가 첫 영화 <몬스터즈>에서 쓴 방식은, 무리하지 않고 사용 가능한 빛만 이용해서 촬영하는 것이었어요. 그냥 그 공간에 들어가서 바로 찍는 거죠. 그럼 인위적으로 보일 일이 없어요. 왜냐하면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든 방 안의 조명이든 원래 있던 빛으로 찍는 거니까요. 시작부터 현실적이죠. 그런 다음 CG를 추가하더라도 배경이 이미 현실적이라 그 안에 뭔가를 더해도 진짜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문제는 영화에 돈이 많이 들어가는 만큼 유혹도 커진다는 거예요. ‘조명을 써야지, 영화처럼 보여야지.’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기 쉽거든요. 그런 식으로 조명 장비들을 세팅하고 반짝이는 조명을 쓰기 시작하면 인위적인 느낌이 들어요. 거기에 CG까지 넣으면 CG도 반짝반짝하게 처리돼 전혀 현실적이지 않죠. 마치 아이들용 애니메이션처럼 보여요. 그래서 애니메이션 혹은 CG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촬영하는 실사 영상 자체가 최대한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 김성식 백그라운드 소스도 자연광으로 찍고 합성해야 할 소스도 자연광으로 찍으면 좋겠네요. = 개러스 에드워즈 맞습니다. 우리가 영화에서 현실적이지 않다고 느끼는 장면들은 거의 대부분 조명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반사판으로 배우 얼굴에 빛을 반사시킨다거나, 바운스 조명(피사체를 직접 비추지 않고 빛을 반사시켜 피사체에 비추는 방식의 조명 연출.-편집자)으로 인위적인 빛을 만들면 관객은 무의식적으로 현실 세계와 다르다고 느끼거든요. 겉으론 예쁘겠죠. 광고처럼 보이고요. 하지만 현실처럼 느껴지진 않습니다. 그리고 촬영 현장에서 진짜 어려운 건 수십만달러짜리 장비를 준비해온 사람들 앞에서 “이 장비들 사용하지 말고 그냥 트럭에 놔두세요” 혹은 “그 조명 꺼주세요”라고 말하는 용기입니다. 제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영화 중 하나가 <블레이드 러너>인데요. 그 영화와 관련한 일화를 좋아해요. 리들리 스콧 감독이 당시 촬영장에 도착하면 세트에 조명이 스무개씩 설치돼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 그는 늘 “이 조명들 전부 꺼주세요”라고 말했답니다. 그런 다음 조명을 하나씩 켰다 껐다 하면서 마음에 드는 조명을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꺼버렸습니다. 조명 하나로 장면 전체를 찍은 거죠. 그런데 그 결과물인 <블레이드 러너>가 정말 아름다워요. 결국 아름다운 이미지는 ‘정보를 덜어내는 것’에서 나옵니다. 관객의 시선을 한곳에 집중시키는 게 중요하죠. 요즘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카메라 제조사들은 픽셀이 얼마나 많은지, 해상도가 얼마나 높은지, 얼마나 많은 걸 보여줄 수 있는지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진짜 아름다운 예술은 ‘보이지 않는 것’, ‘암시된 것’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20년 뒤 관객이 추억할 영화 - 김성식 더 질문하고 싶지만 시간이 얼마 안 남았네요. 마지막으로 한국 팬들에게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이 어떻게 다가갔으면 좋겠는지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 개러스 에드워즈 김성식 감독님이 제 이전 영화들에 관해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 영화들이 처음 개봉했을 때 저는 좀 허탈했어요. 첫 영화 <몬스터즈>는 거의 아무도 보지 않았고 흥행도 안됐거든요. <고질라>가 나왔을 때도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닐까 걱정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 한 10년쯤 후에 그 영화를 보고 자란 사람들이 다가와서 따뜻한 말을 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깨달았어요. 영화라는 건 이번 주말, 개봉 후 몇주, 이번 여름 등 짧은 순간만을 위한 게 아니란 걸요. 정말 중요한 건 10년, 20년 후에 그 영화가 어떻게 기억되느냐입니다. 결국 우리가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시간이 지나도 계속 사랑받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제 바람은 한국 관객들이 이번 여름에 이 영화를 보고 마음속에 오래 담아두는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10~20년 후에 제가 또 다른 영화를 들고 한국에 왔을 때 누군가가 “아,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정말 좋았어요”라고 말해주는 거예요. 저한테는 그게 박스오피스 성적이나 평론가들의 평가보다도 훨씬 더 큰 보상입니다.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람들이 그 영화를 즐겨본다면, 그것이야말로 제가 영화를 만드는 가장 큰 이유이자 기쁨일 거예요. VFX 아티스트가 영화감독이 되기까지 개러스 에드워즈 감독은 연출자로 데뷔하기 전에 10년간 VFX 아티스트로 일하며 시리즈와 TV영화의 시각효과를 담당했다. 장편영화 데뷔작 <몬스터즈>(2010)를 만들기 위해 그는 시나리오를 쓰고 직접 촬영했으며 VFX까지 맡았다. <몬스터즈>의 장면 대부분은 그를 포함해 프로듀서, 녹음기사, 스페인어 통역 스태프, 단 네명의 힘으로 완성되었다. 제작비 20만달러 수준인 독립 SF영화였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몬스터즈> 제작비의 800배에 달하는 예산이 투입된 영화 <고질라>(2014) 감독으로 할리우드에 입성했으며,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2016),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까지 연출했다.

[특집] 박보영에 의한, 박보영을 위한, 박보영이라 가능한

우리는 박보영의 어떤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까. 앞으로 박보영의 어떤 모습을 보고 싶을까. 12명의 <씨네21> 기자, 객원기자가 각자의 기억과 기대감을 기반으로 10개의 질문에 답했다. 박보영과 가장 케미가 좋았던 배우는? <과속스캔들>의 차태현은 “박보영과 청량함의 시너지를 내 작품의 공기를 만들”(남선우)었으며 “탁구를 치듯 감정과 유머가 오가는”(최현수) 상황의 재미를 보장한다. 박보영과 차태현은 그야말로 “코미디의 말맛과 타이밍을 정확히 아는 고수와의 찰떡 호흡!”(이유채)인 것이다. 한편 드라마에선 <오 나의 귀신님> 조정석과 <힘쎈여자 도봉순>의 박형식이 고른 지지를 받았다. “누군가의 귀여움은 그 자체의 절대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반응에서 나온다는 걸 알게 해”(남지우)줄 만큼 조정석의 리액션은 남달랐고, 박형식은 “민민과 봉봉이 진짜로 제발 사귀길 염원”(이자연)할 만큼 과몰입하게 만든 점에서 둘의 케미를 증명한다. 박보영이 출연하길 바라는 클래식 리메이크 영화가 있다면? 이만큼 “첫사랑 역에 잘 어울리는”(이우빈) 배우가 몇이나 되겠는가. “바이올린을 켜는 박보영은 얼마나 좋을까. 불 꺼진 집 앞 전봇대의 가로등이 켜지는 순간 남자에게 달려가는 박보영은 얼마나 좋을까. 남자의 눈이 안 보인다는 사실을 안 순간 우는 박보영은 얼마나 좋을까.”(이자연) <클래식>은 박보영의 기존 이미지와 잘 어울리고 <아멜리에>는 “이제껏 보여준 것과 또 다른 종류의 러블리함”(김현승)과 “귀여움, 엉뚱함을 극대화”(송경원)할 것이란 긍정적 기대와 함께 다수의 표가 향했다. 박보영이 도전해주길 바라는 콘텐츠는? 압도적인 지지다. “팬들과 도란도란 소통하는 영상” (김현승)에서 확인했듯 “‘버블’에서 팬과의 소통력에 정점을 찍”은 박보영이 “좋은 목소리를 활용해 팟캐스트까지 한다면 금상첨화”(이유채)이지 않을까. “한 사람의 솔직한 생각, 가치관을 가장 캐주얼하게 전달할 수 있”(남지우)고 “담백하게 상대와 대화 나누는 포맷”(김소미)인 팟캐스트를 통해 게스트에게서 “편안한 분위기의 대화”(김현승)를 이끌어내는 진행자 박보영을 언젠가 만날 수 있길 고대해본다. 박보영이 새롭게 시도해주길 바라는 장르는? 기자들의 의견이 가장 명확하게 갈린 문항이었다. 와중에도 법조물이 높은 순위를 차지할 수 있던 데에는 박보영이 “법정물의 컨벤션을 어떻게 바꿔놓을까”(김소미)에 관한 기대가 컸던 덕이다. “각 대사를 곱씹듯 뱉어 말의 참맛을 알게 하”(최현수)는 박보영은 “<과속스캔들>에서 애드리브를 쏟아낼 때의 에너지”(김경수)를 기반으로 “부조리에 분노하고, 피해자의 아픔에 호응하는 연기를 누구보다 잘할” (김경수) 거라는 의견이 공통적으로 감지됐다. 이자연 기자의 말대로 언젠가 법조물 속에서 부조리한 “세상을 마구 파헤”치고, “정의를 구현해주길!!” 박보영의 연기를 더 인상적으로 만드는 장치는? 한표 차이로 ‘목소리’와 ‘눈빛’의 순위가 갈렸다. “얇은 재봉실인 줄 알았으나, 겪으면 무엇도 끊을 수 있는 낚싯줄 같은”(정재현) 목소리는 특유의 단단함으로 “박보영이 울면 나도 같이 우는 이유”(이자연)로 작용한다. 눈빛은 또 어떤가. “애수와 미지가 동시에 담긴”(김소미) 그의 눈을 바라보노라면 <미지의 서울>의 두 쌍둥이, “미지와 미래도 말 한마디 없이 구분할 수 있게”(남선우) 만든다. “장난기가 넘치는 눈웃음”(김경수), “특유의 슬픔이 복받칠 때의 눈빛”(김경수)은 박보영이 커버 가능한 감정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그대로 드러낸다. 박보영이라 좋았던 대사는? “지금 20대 후반을 막 지나는 청춘의 불안과 불투명한 미래를 이만큼 잘 품은 대사가 있을까.”(김경수) <미지의 서울>의 미지는 “슬럼프로 가득한 까마득한 세상을 박보영의 얼굴과 목소리로 위로”(이자연)해줬다. 이는 “박보영의 목소리였기에 너무 날카롭지도, 너무 무르지도 않게 관객의 마음을 쑤시는 대사가 가능”(남선우)했기 때문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속 명화의 대사도 개봉 당시 불호의 의견이 있었으나 “영화의 암울한 톤을 군더더기 없이 정리하는 좋은 대사”(이우빈)였고, 결과적으로 “박보영이라 납득”(송경원) 가능한 말이었다. 내가 꼽은 박보영의 인생작은? “10년 이상 계속된 ‘러블리 보영’ 챕터에서 ‘다크 보영’, ‘현실적인 보영’의 챕터를 가장 확실하게 열어준 작품”(남지우)으로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그녀가 연기했던 캐릭터와 연기할 캐릭터가 한데 어우러지는 드라마”(김경수)라 말할 수 있다. “원래 갖고 있던 선한 이미지만 부각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병동 간호사가 겪는 부침과 불안 그리고 우울까지 한몸에 소화한 변곡점 같은 작품”(최현수)을 통해 마침내 현재의 우리에게 익숙한 “지치고 예민한 박보영이 탄생”(이유채)했다. 박보영의 의외성을 발견한 작품과 그 이유는?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다은은 모두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남겼다. 다은이 “우울증에 걸렸을 때의 표정 연기는 이 배우의 진짜 끝은 어디일까를 생각하게 만들었”(김경수)으며 “<82년생 김지영>의 얼굴을 한 박보영이 정말 새롭”(이유채)게 느껴졌다. <콘트리트 유토피아>의 명화 역시 “퍼석하고 악에 받친 박보영을 처음 본 것 같은”(남지우) 느낌을 드는 주는 동시에 “디스토피아 장르물에서도 이 배우가 지닌 이미지가 퇴색되지 않는다는 점”(최현수)을 보여주며 배우 박보영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할 기회가 되어주었다. 박보영에게 어울리는 계절은? 봄은 “사계절 중 모두가 좋아하는 계절인데 대한민국 배우 풀에서 그런 배우가 박보영이 아닐까”(남지우). 겨울은 지나온 지 오래다. “긴 뽀블리의 터널을 이제 벗어났다는 생각”(이유채)이 들게 하는 근래 박보영이 보여준 “생명력”(김소미)은 “이제 대중도 박보영을 귀여운 얼굴로만 기억하지 않을”(이유채) 만큼 만개했다. 특유의 해사함 덕에 “무더위를 살짝 해소하는 그늘 밑에 부는 바람 같은 배우란 인상”(최현수)을 남긴다는 점에서 여름 역시 박보영과 잘 어울리는 계절로 수차례 언급됐다. 박보영이 함께 작업했으면 하는 감독과 그 이유는? 도저히 한명만 꼽을 수 없다. 강형철 감독이 “박보영의 남은 미지의 영역을 발견”(이유채)하고 이경미 감독이 “전에 없던 배우-캐릭터 조합으로 박보영의 의외성”(남선우)을 이끌어낸다면? “허진호 감독의 <보통의 가족> 같은 영화에 박보영이 불균질한 에너지를 더해도”(김경수) 좋겠고, 정가영 월드에선 “<오 나의 귀신님>에서 보여준 능글 러블리의 진수” (김현승)를 드러내며 “말맛을 잘 살려주면서도 경쾌하게 극을 이끌 수 있을”(최현수) 듯하다. “박보영식 사려가 정주리의 어른 여자를 만난”(정재현)다면 또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이옥섭 감독이 그랬다. 버스에서 매니큐어 바르는 여자를 봤을 때 속으로 미워하다 내 영화에 나오는 인물이면 어떨까 생각했더니 사랑하게 됐다고. 이옥섭이 사랑하는 박보영은 또 얼마나 대단할까.”(이자연)

[우수상 당선자 최선 이론비평] 미키가 보낸 미래 사용 설명서, <블레이드 러너 2049> <공기인형> <미키 17>로부터

그래도 우리에겐 인간을 사랑하던 시절이 있었다. 외계인이 침공하면 그에 맞서 싸우고 그들과 친구가 되기도 하며 고향별로 쫓아 보내기도 했다. 다른 행성으로 탐사를 떠났을 땐 우주선에 무단탑승한 외계 생명체와 사투를 벌인 후 귀환했다. 영화 속 인간은 인간영역의 최전선에서 지구와 인류를 위해 분투했다. 우리 집과 정든 동네, 식료품 사는 이웃과 선물을 고르는 연인, 우거진 숲과 푸른 바다를 지키기 위해. 미래에 사는 영화 속 인간은 어떤가. 인류를 지킬 마음도 지구를 고쳐 쓸 마음도 없다. 해수면이 상승해 수몰되거나 빙하기가 닥친 도시에 살면서 쓰러진 랜드마크로 옛 명성을 전해 들을 뿐. 그나마 멸망 초기엔 해가 뜨고 노을이 지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더 먼 미래로 가면 영화가 끝날 때까지 어둠에 갇힌다. 지구는 낙오자의 세계가 되어버린 지 오래. 인간은 끝내 회복하지 못한 지구를 버리고 다른 행성을 개척해 새로운 터전으로 옮겨 앉는다. 복제인간과 우주 개척지, 식민행성을 만들어가면서. 우주 개척지로 갈 때 그들은 무엇을 버렸나. 지구. 그리고 인간. 그 빈자리를 복제의 방식으로 채운다. 고의인지 기술적 한계인지 알 수 없으나 아직 복제되지 않은 한 가지를 남겨둔 채로. 인간성 쟁취하기 드니 빌뇌브의 <블레이드러너 2049>는 짐작 가능한 근미래로 시공간이 설정돼 있다. 204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그곳에 복제인간 K가 산다. 그는 인간의 DNA를 기반으로 한 생물학적 레플리컨트로 제조시설에서 완성된 형태로 출시된다. 그는 인간에게 철저히 복종하도록 설계된 신형모델인데 반란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순응코드’가 각인되어 있으며 구형 레플리컨트를 제거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구형 레플리컨트를 제거하는 이유는 자유를 원하고 반란을 시도해서다. 그들은 비밀조직을 만들고 인간처럼 출산이 가능한 레플리컨트의 출현을 혁명의 계기로 삼아 해방운동을 벌인다. 2049년의 복제인간은 감정을 느끼고 자의식을 가질 수 있다. K는 ‘만들어진 존재’지만 레플리컨트에게서 출산을 통해 태어난 존재가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임무를 마치고 귀가한 K는 조이와 저녁 시간을 보낸다. 조이는 AI 홀로그램 여자친구로 사용자의 감정에 맞춰 반응하고 위로를 제공하도록 설계된 소비재다. 조이는 올림머리에 앞치마를 두른 1960년대 미국 가정주부의 모습으로 K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음악을 튼다. 1966년에 프랭크 시나트라가 불러 크게 히트한 곡 Summer Wind. 음악을 들으며 밀어를 나누어도 K의 기분이 나아지지 않자 조이는 책을 들고 온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쓴 장편소설 <창백한 불꽃>. 이 소설은 영화 전반에 걸쳐 중요하게 쓰인다. K는 구형 레플리컨트를 제거하는 임무를 완수할 때마다 외상 후 테스트를 받는데 그가 암송하는 텍스트가 이 소설에 나오는 시 999행의 일부분이다. ‘피처럼 검붉은 무無가 하나의 줄기 속에서 서로 연결된/ 세포들 속에 연결된 세포들 속에/ 연결된 세포들의 조직을 짜기 시작했다’ 외상 후 테스트를 실행하는 이유는 구형 레플리컨트를 죽이고 눈알을 파내 증거물로 제출해야 하는 작업의 참혹함 때문이다. 반복되는 고위험작업으로 인해 순종형 신모델의 감정이 흔들리지 않았는지 검증하는 절차다. 테스트방식을 인간이 쓴 문학작품으로 설정했다는 점은 복제인간이 인간의 하위개념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해두겠다는 인간의 의지며 안간힘이다. 인간이 부른 노래와 인간이 쓴 시. 그것을 듣고 외우는 신형 레플리컨트. 인간지능과 인공지능을 구별하는 기준선을 향유로 잡고 이를 흉내 낼 수 있을지언정 획득할 수 없음을 공고히 한다. 기준선 테스트를 훌륭하게 통과한 K에게 직속상관은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은 벽 위에 세워졌어. 두 종족을 구별하는 벽. 그 벽이 없다고 했다간 전쟁이 터지거나 학살이 벌어지겠지. 그러니 네가 본 건 없었던 일이야.” K가 본 것은 출산 흔적이 있는 구형 레플리컨트의 뼈다. 질서유지를 위해 진실을 덮으라는 상관의 지시에 K가 질문을 던진다. “태어난 존재는 영혼이 있지 않을까요?” 자신이 ‘태어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갖게 된 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데서 기인한다. ‘만들어진 존재’에 불과하다면 도대체 이 기억의 정체는 무엇인가. K는 그것이 자신에게 영혼이 있다는 증거라 믿는다. 진실을 좇던 끝에 애나 박사를 만나게 되고 그녀가 진짜 ‘태어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K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기억마저 복제된 대체품이라는 현실과 마주한다. 레플리컨트는 인간다운 삶을 열망한다. 인간은 영원한 삶을 갈망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윤리적인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기에 힘들고 위험한 영역으로 감정적 동요 없이 대신 들어갈 존재를 탄생시키기로 한다. 출산이 아닌 생산의 방식으로. 그렇게 생산된 대체품은 해방운동단체를 조직해 인간과 투쟁한다. 그들이 정의하는 인간성의 상징은 출산을 통해 태어난 존재, ‘아기’다. 이는 미래를 내다본 수많은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아기가 없으면 미래도 없다는 수학적 정확성. 그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돼 최근작에까지 적용되고 있다. 린 타로가 만든 <은하철도999>의 시간 배경은 2212년이다. 인간이 지구에 낙오돼 빈민으로 전락한 가운데서도 어린아이들이 허물어진 도시 골목을 활기차게 뛰어다닌다. 우리의 미래가 황폐하리라 예상하면서도 아이가 없는 세상은 상상하지 않았다. 워쇼스키 자매의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지구 멸망 후 다른 행성으로 이주한 2346년으로 시공간이 설정됐는데 노인이 어린아이들에게 지구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끝을 맺는다. 아이가 우주를 가리키며 어느 별이 지구인지 노인에게 묻는다.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이 뛰어노는 장면을 통해 어느 행성에서든 인간의 이야기가 지속될 거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한국 최초의 SF 영화로 화제를 모았던 조성희의 <승리호>는 어떤가. 2092년에 펼쳐지는 서사의 중심에 강꽃님이 있다. 뇌 신경이 나노봇으로 일부 대체됐어도 꽃님이는 분명한 인간이다. 죽어가는 모든 생명체를 회생시키는 초능력이 있어 인간은 물론이고 버려진 지구까지 되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블레이드러너 2049>에도 다른 선택지는 없다. ‘태어난 존재’ 애나 박사는 인간이다. 아기로 태어나 성장 과정을 거치는 인간은 완성형으로 출시되는 레플리컨트와 같을 수 없다. 수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고 다양한 고난 속에 등장인물을 밀어 넣어도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은 다르지 않다. 인간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자 돌파구라는 믿음. 눈여겨볼 지점은 자신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진실 앞에서도 K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인간성의 핵심이 출생의 방식에 있지 않음을 증명해 보인다. 마지막 장면에서 K는 애나 박사에게 아버지를 데려다주고 눈 속에 누워 죽음을 맞는데 이는 타인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 순간 단순한 레플리컨트가 아닌 윤리적 주체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한다. 그의 희생은 자신을 넘어 타인을 위한 것이며 어떤 출생의 신비보다 강력한 인간성의 증거가 된다. K는 타인을 위한 윤리적 행동을 통해 대체품의 프레임에서 자력으로 벗어나 비로소 인간성을 쟁취한다. K는 인간과 복제인간, 두 종족을 구별하는 기준을 영혼이라 생각했다. 인간만이 그것을 통해 노래를 부르고 시를 외우며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낳는다고. 인간성이 복제되지 않은 레플리컨트에게 그것은 향유가 아니라 흉내일 뿐이며 살아서는 넘지 못하는 불가능과 불가침의 영역이다. K는 죽음을 통해 인간성을 쟁취했으므로 살아서 누릴 방법이 없다. 해일을 일으킬 위험이 있는 바다에 거대한 방벽을 세웠듯이 인간은 대체품을 만들 때 끝내 넘지 못할 절대의 벽도 함께 만들어놓았다. 인간은 영혼을 가질 수 없는 복제인간을 ‘껍데기’라 멸칭하며 확실히 선을 긋는다. 인간성 습득하기 여기서 우리는 껍데기로 사는 영화 속 인물을 한 명 더 데려올 수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만든 <공기인형> 노조미. 노조미는 인간의 성욕 해소용으로 만들어진 인형으로 2000년대 후반 도쿄로 짐작되는 도시에 산다. 그녀 또한 ‘만들어진 존재’며 K를 비롯해 21세기 영화에 등장하는 인간대체품의 잠재적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생활 도구로 쓰이는 노조미는 몸속이 텅 비어서 반투명한 그림자가 생기고 빗방울을 맞으면 퉁, 퉁, 소리가 난다. 노조미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관찰을 통해 배운다. K와 비교할 때 훨씬 소박하고 감각적인 방식으로 인간성을 체득하며 고레에다 히로카즈 특유의 잔잔하고 철학적인 시선 아래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정서적으로 접근해 탐구한다. 껍데기에 불과했던 노조미는 감정을 배우고 비디오 대여점 직원을 사랑하게 되면서 이렇게 말한다. “마음이 생겨버렸습니다. 내게 있으면 안 되는 마음이” 이웃 노인은 마음이 생긴 노조미를 위해 하루살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를 읊어준다. 그는 고등학교 대체 교사였는데 자신은 늘 ‘텅 빈 대체품’에 불과했다고 고백한다. 인간은 사실 지구에 옹기종기 모여 살던 과거부터 대체품을 써왔다. 대체품을 구별하고 차별하는 일에도 열중했다. 복제인간을 만들 기술력이 없는 관계로 ‘태어난 존재’를 대체품으로 썼다. 대체품으로 사는 인간은 영혼이 훼손되고 파괴되다가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은 텅 빈 껍데기가 된다. 후천적 레플리컨트다. 진짜 인간을 텅 빈 껍데기로 만드는 일은 복제인간을 새로 만드는 일보다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친다. ‘태어난 존재’를 ‘만들어진 존재’로 변태시키는 일. 인간의 악취미를 이해하기 위해 노조미는 2049년의 K처럼 시를 읊는다. 껍데기가 암송하는 인간의 시. ‘그저 뿔뿔이 흩어져/ 서로에게 무관심한 채 살아가며/ 때로는/ 서로를 혐오하는 것마저 허용하는 관계다/ 이렇게까지 세상의 짜임이 허술한 것은 왜일까?/ 꽃이 피어 있는 곳 바로 근처까지/ 등에의 모습을 한 타인이/ 빛을 가득 몰고 날아오고 있다’ 그녀에게 날아온 타인. 고무 살갗이 찢어져 공기가 빠지는 사고를 당했을 때 비디오 대여점 직원이 찢어진 상처에 테이프를 붙이고 공기 주입구에 입바람을 불어넣어 그녀를 살린다. 그 이후로 그녀 안에 다른 게 채워진다. 직원이 불어넣은 건 단순한 공기가 아니다. 숨이다. 노조미는 숨이 돌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행복한 감정만 느끼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비디오 대여점 직원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자신의 주인이 새 인형을 들여와 노조미로 부르는 걸 보았을 때 그녀는 괴로움이라는 감정을 배운다. 자신은 결국 대체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간과 대체품 사이의 방벽을 넘어 그들의 세계로 진입할 수 없음을 확인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노조미가 인간성을 갈망하고 습득할 때 그녀 주변의 인간들은 타인을 대체품으로 다루며 비인간적인 행위를 한다. 인간성의 결핍은 오히려 인간에게서 드러나고 노조미는 살아있음의 의미를 되짚어주며 인간성의 공백을 메운다. K가 윤리적 선택으로 인간성을 쟁취했다면 노조미는 사랑하는 감각을 통해 인간성을 습득한다. 그들이 인간성에 도달하는 방법은 서로 다르지만 죽음의 관문을 통해 완성되는 방식은 같다. 살아서 누리지 못한다는 의미다. 인간은 그들에게 향유 할 시간을 주지 않는 대신 최후를 맞는 장면에 애도의 마음을 담는다. 죽음이 아니라 파괴의 형식일지라도 그들과 천천히 작별하도록 배려하고 아름답게 장식한다. K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계단에서, 노조미는 찬 바람 부는 거리에서 파괴된다. 쓰러진 노조미 앞에 민들레가 피어 있다. 노조미는 생일파티의 주인공이 된 꿈을 꾼다. 태어난 날을 갖는 꿈. 케이크의 촛불을 후, 불어 끄고 이웃들에게 박수를 받는다. 비로소 ‘태어난 존재’가 된 것이다. K와 노조미의 종말을 지켜볼 때만 해도 우리는 알지 못했다. 그 시절엔 인간에 대해, 인간을 닮은 대체품에도 최소한의 예의가 있었다는 것을. 인간성 삭제하기 오늘 우리에게 온 최신형 대체품이 있다. 봉준호의 <미키17>. 미키는 인간의 유전 정보를 3D 바이오 프린터로 재구성해 만든 복제체로 죽을 때마다 같은 형체로 다시 복제되어 재가동한다. 기능을 다 하면 교체되도록 설계된 일회용 소모품이다. 그의 죽음은 K나 노조미와 다른 방식으로 다루어진다. 애도하는 마음도, 애도할 마음도 없다. 눈 내리는 풍경이나 홀씨가 핀 민들레를 기대할 수 없고 천천히 작별할 시간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의 시신은 온갖 쓰레기를 처리하는 용광로에 버려진다. 미키가 파괴되는 방식은 왜 다른가. 제작방식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미키는 태어나지도,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그는 ‘프린트’된다. 인간성에 대해 사유하거나 인간만이 갖는 아우라를 동경할 시간이 없다. 프린트된 지 십 분 만에 용광로로 버려지기도 하니까. 시나트라의 노래를 듣거나 나보코프의 시를 외우는 건 꿈도 꿀 수 없다. 그래서 K는 레플리컨트로 불리고 미키는 익스펜더블로 불린다. K는 대체품, 미키는 소모품. 미키는 언제든 죽을 수 있고, 죽어도 되고, 죽도록 설계된 익스펜더블이자 죽을 때마다 복제돼 자리를 다시 채우는 리플레이스먼트다. 임무 수행 중 손실되어도 전체집단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미키가 죽으면 이전 기억을 업로드하고 복제과정을 거친 다음 재투입되는 방식으로 순환되므로 이전 기억은 그대로 이어지고 정체성은 단절된다. 이 지점에서 미키17은 딜레마에 빠진다. 여러 번 죽었는데 왜 죽음을 무서워하는지 묻는 미키18에게 그는 이렇게 답한다. “지금까지는 그냥 내가 다시 태어나는 거잖아. 내가 계속 이어지는 느낌이었거든. 근데 지금은 내가 죽으면 나는 끝이고 네가 살아가는 거지.” 미키17는 지구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다. 식민행성으로 이주해 익스펜더블이 되기 전엔 인간이었다는 뜻이다. 태어나고 성장하며 천천히 완성된 존재. 인간 시절을 기억하는 상태로 미키18과 마주하게 되면서 자아의 연속성이 끊어지고 고유한 주체성이 지워지는 끔찍한 상황에 놓인다. 고유한 존재로 삶과 죽음을 온전히 소유하지 못한다는 데서 오는 공포. 기억은 연속돼도 자아의 서사가 이어지지 않는 방식은 인간에게 인간성을 부여하지 않는 세계가 도래하고 죽음의 존엄마저 부정하기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미키가 사는 시대는 2054년이다. K가 사는 2049년으로부터 5년이 흐른 뒤다. 미키 시대에 이르러 인간은 필요에 따라 생산되고 편집되며 삭제되는 기능적 존재로 급격히 전락한다. 영화 속에 살아 있는 대체품들은 우리의 투영체다. 그들을 대하는 방식은 우리가 인간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비추며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내다보게 한다. 태어난 존재의 가치는 출산 방식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태어나 성장하고 사랑하고 이별하는 과정을 시간과 함께 기억으로 간직할 줄 안다는 데서 생긴다. 먼 먼 미래, 예측 불가능한 기술 사회로 가더라도 ‘간직’한다는 인간만의 행위를 복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키에게 이어지는 기억은 간직이 아니라 이식이다. 노래하고 시를 짓는 인간의 아우라를 복제해낼 시대가 과연 올까. 인간성 재정의하기 다른 건 몰라도 복제인간과 복제체가 인간성을 갈망하던 시대는 막을 내린 듯하다. K가 그 마지막 대체품이며 미키는 인간성 삭제 시대의 첫 소모품일지 모른다. 복제가 반복될수록 원본은 희미해진다. 하이퍼리얼리티로서의 복제체가 인간의 자리를 차지하는 동안 인간은 자신의 원본을 지우고 있다. 미키 이후에 탄생할 복제체는 인간성을 습득하고 쟁취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인간성에 대한 고민 없이 제 기능을 다 할 것이다. 인간과 다른 기준으로 존엄의 개념을 재정의하면서 주체적으로 서사를 이어갈 수도 있다. 생물학적 인간이 아니어도 인간과 동일한 대우를 받거나 생물학적 인간이라도 재정의된 인간성을 획득하지 않으면 인간 대우를 받지 못하는 미래, 인간에게서 태어난 ‘아기’에 인류의 명운을 거는 시대, 복제인간이 생물학적 인간을 동경하는 시대는 끝났다. 인간의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복기하며 강조하기에는 우리는 이미 그곳으로부터 멀리 떠나왔다. 영화 속 대체품이 사랑을 학습하고 출산을 시도할 때 영화 밖의 인간은 사랑을 포기하고 출산 의지를 삭제하고 있으니까. 미래라는 개념은 오직 인간에게 국한된 환각일 뿐, 인간이 소멸한 후에도 시간은 흐르고 지구는 오히려 회복할 것이며 우주는 예정대로 움직일 것이다. ‘만들어진 존재’가 ‘태어난 존재’보다 더 인간다워지면서. 노조미는 인간성의 결핍을 탐색하고 K는 인간성을 찾기 위해 투쟁하며 미키17은 인간성이 지워진 자리에서 무심히 죽어간다. 그들은 다가올 미래의 예고편이자 오늘을 사는 우리의 그림자다. 우리는 이제 영화 속에서 인간성을 어떻게 새로 정의하고 구성할지 질문해야 한다. 인간성이 유일한 윤리 기준일 수 없는 시대, 인간적이고 인간다운 영화란 이제 무엇이어야 할까.

[비평] 시간을 살다, 오진우 평론가의 <레슨> <여름이 지나가면>

김태양 감독의 장편 데뷔작 <미망>은 거대한 중력이 작용이라도 한 듯 인물들이 종로 일대로 모인다. <미망>은 스침의 영화이자 서울이란 도시의 영화다. “12시에서 12시.” 시계에 빗댄 인상적인 대사에 비춰보면 영화 속 인물들은 언제나 제자리에 있지 않다. 각도를 달리하여 더 멀고 긴 시간을 떨어졌다가 아주 짧게 만나고 헤어진다. 여기 두편의 흥미로운 장편 데뷔작에서도 시간에 따른 변화를 다룬다. 공간이 부각된 <미망>과 달리 <레슨>과 <여름이 지나가면>은 좀더 시간에 집중한다. 김경래 감독의 <레슨>은 시간 그 자체를 보여준다. 어느새 싹둑 썰린 시간의 단면을 바라보며 우리는 사라진 시간을 상상하게 된다. 장병기 감독의 <여름이 지나가면>은 여름방학 전 짧지만, 누군가에게 너무나도 긴 그 시간을 함께 겪게 만드는 영화다. 출발점으로 데려가다 나선형을 그리는 <레슨>은 끝에서 모든 사건의 출발점에 우리를 데려다놓는다. 거기서 영화는 다시 시작한다. 그렇게 다시 영화를 보면 이미 시작부터 무언가 어긋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영화는 꿈에서 출발한다. 꿈에서 영어 과외 강사 경민(정승민)은 자전거를 타고 한강에 도착한다. 한강 변에 많은 사람들이 누워 있다. 경민도 따라서 눕는다. 그가 눕는 동시에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사라진다. 여기서 그의 모습이 의아하다. 떠나는 사람들을 바라볼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그는 평온히 잠을 잔다. 그리고 영화는 커피숍에서 자고 있는 경민의 모습을 다음 장면으로 연결한다. 몽중몽(夢中夢). 깨어나고 싶지 않은 꿈처럼 <레슨>은 그렇게 뫼비우스의 띠를 그리며 무한 반복하는 영화이자 경민의 어느 한 시기를 담은 기억의 총체다. 단순히 자고 깨어나는 과정이 아니라 몽중몽을 넣음으로써 영화는 어떤 틈새를 벌려놓는다. 이를 통해 영화는 선형적으로 시간이 흐르다 어느새 뒤섞이며 기억이나 꿈으로 미끄러지는 순간으로 도약한다. 경민은 이 시간을 곱씹으며 후회라는 굴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다. 경민은 애인 선희(전한나)와 3년째 연애 중이다. 하지만 경민은 과외 학생에게 연애를 하고 있지 않다고 거짓말을 한다. 선희와 달리 경민은 결혼 생각이 없다. 그는 다소 미온적인 태도로 관계를 유지해나간다. 그는 과외 학생이 소개해준 또 다른 과외 학생인 영원(이유하)을 만나며 선희와의 관계에 금이 더 가기 시작한다. 피아노를 가르치는 영원은 경민에게 레슨을 교환하자고 제안한다. 이 교환 과정이 상당히 흥미롭다. 교환이 일어나지 않는 교환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공평한 물물교환이 아니라 한쪽이 일방적으로 유리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레슨을 빌미로 경민은 영원에게 끌린다. 좋게 표현하면 사랑의 디졸브, 즉 경민이 선희에게서 영원으로 마음이 바뀌는 이행의 과정을 그린다. 공공장소인 커피숍에서 진행하는 영어 레슨과 달리 피아노 레슨은 영원의 집에서 진행된다. 사적이고 내밀한 둘만의 서사가 켜켜이 쌓여간다. 촉각적인 관능을 최대한 살리며 영화는 두 사람을 포갠다. 특히 다 먹은 자두 씨를 뱉는 과정은 특별하다. 창피함과 관대함이 오가며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쪽은 친밀해지고, 한쪽은 서먹해지며 경민의 마음의 시소는 점차 영원에게로 쏠린다. 하지만 관계의 키를 쥔 것은 영원이었다. <레슨>은 존재했던 시간을 순서대로 배치하지 않는다. 이 시간은 경민의 불완전한 기억의 형태에 가깝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온전히 현실이라 말할 수 없는 순간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배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메타적으로 바라볼 때 가능하다. 영화에서 경민은 그러질 못한다. 그저 어리둥절하게 그 상황을 지켜볼 뿐이다. 경민이 바라보는 것은 자전거다. 자전거는 영화에 세번 등장한다. 경민이 길몽이라 여긴 꿈에서 처음 등장한다. 이후 자전거라는 기호는 현실로 침투한다. 경민은 선희와 여행을 가서 한적한 산책로를 거닐다 자전거를 발견한다. 경민은 자전거를 타고 선희 주위를 뱅뱅 돈다. 마치 선희를 중심으로 공전하듯이 말이다. 동일한 상황은 경민과 영원에게도 일어난다. 이때는 반대로 경민을 가운데 두고 영원이 자전거를 타고 빙빙 돈다. 둘을 잇는 중력은 어느새 사라지고 각각의 관계는 붕괴한다. 그렇게 모두가 떨어져나가 혼자 남겨진 내면의 풍경이 우리가 <레슨>을 보며 처음 목격했던 그 장면이다. “당신에 대해서 말해보세요.”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대사다. 경민은 저 질문으로 과외를 시작한다. 정작 경민 자신에게는 물어보지 않았던 질문이다. 자신을 규정하는 것은 결국 기억이다. 경민이 외면했던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레슨>은 기억의 형태로 재구성하여 보여준 셈이다. 우리는 경민의 기억을 훑고 난 뒤에 다시 첫 장면으로 돌아와 위의 대사를 다르게 바꿔 생각해봐야 한다.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혹은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경민은 옛날 비디오테이프를 디지털로 변환하여 어머니와 함께 시청한다. 해외여행을 가서 찍었던 영상 속 돌아가신 아버지의 멋졌던 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예전에 아버지가 바람을 피웠다고 아들에게 처음 고백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잘생겨서 그랬던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이미지와 실체 사이의 간극. 이는 경민도 극복할 수 없는 숙제였다. 그는 갈수록 빠져나가려는 영원을 구속하려고 든다. 하지만 영원은 경민의 뜻대로 움직여주질 않는다. 경민은 영원과의 첫 레슨을 추억한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영원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찍어뒀던 영상을 꺼내 본다. 스마트폰은 건반 위의 손을 찍다가 은근슬쩍 영원의 얼굴로 향한다. 그때의 그러한 설렘은 어느새 집착으로 바뀐다. 반대로 영원이 경민을 기억하는 방식은 향수다. 그녀는 경민과 달리 관계를 깊이 받아들이지 않았고 심하게 말해서 향수로 자신의 영역을 표시한 것뿐이었다. 향수를 바꿨다는 건 경민과 선희가 이별했다는 것이다. 경민이 영원에게 질척거리기 시작하면서 영원은 자신의 집에 다른 사람을 들인다. 그것에 분노해 경민은 향수를 영원의 집 앞에 던져버린다. 경민은 그렇게 냄새를 벗겨내고, 긴 머리도 다듬는다. 영화의 마지막에 선보이는 몽타주는 놀랍다. 이별 후 기분 전환하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과외 학생으로 선희를 처음 만나러 가기 전, 다시 말해 과거의 모습이기도 하다.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듯하다. 시간은 그렇게 뒤섞이면서 마치 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경민의 욕망처럼 비추기도 한다. 시간 속에서 경민은 무엇을 배웠을까? 마치 게임을 다시 시작하듯이 경민은 선희와의 첫 수업을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레슨>이 시간의 미로에 갇힌 인상을 준다면 <여름이 지나가면>은 빛이 보이지 않는 시간의 터널을 통과한다. 그것을 표현이라도 하듯 영화는 블랙아웃된 화면에서 사운드를 드러내며 시작한다. 아들의 전학에 대해 부부가 통화를 한다. 어딘가로 이동하는 자동차. 그 안에 모자가 있다. 엄마(고서희)는 아들 기준(이재준)을 농어촌특별전형을 위해 시골의 한 초등학교로 전학시킨다. 미래에 저당 잡힌 현재를 살아가는 이 모자에게 현재라는 시간은 무엇일까? <여름이 지나가면>은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미래의 특정 시점을 향한다. 영화 속 인물들이 처한 현재는 벗어나고 싶은 순간이기도 할 것이다. 모자를 기다리는 건 동네를 사실상 지배하는 영문(최현진)이다. 그는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동생 영준(최우록)과 함께 살아간다. 형제는 부모 없이 살아간다. 동네 사람들은 형제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다. 하지만 사실상 방치한 상태이며 동네 사람들은 형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형제와 엮인 아이들만이 진실을 알고 있다. 형제에게 도둑질은 일상이다. 이것은 생존의 몸짓이지만 스릴 넘치는 놀이이기도 하다. 영문은 영준의 친구들의 돈을 갈취하고, 영준은 동네 식당에서 밥을 얻어먹고 다닌다. 형제는 자신들의 딱한 처지를 일면 악용한다. 염치라는 것이 상당 부분 사라진 상태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안면몰수와 거짓말은 패시브 스킬이 됐다. 신고식처럼, 기준의 엄마는 반에 햄버거를 돌린다. 영준은 햄버거를 하나 더 먹기 위해 선생님에게 거짓말을 한다. 이를 본 기준의 엄마는 영준에게 햄버거 하나를 준다. 이때 영준의 경계하는 태도와 햄버거를 빠르게 채가는 버르장머리 없는 제스처에서 그간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렇듯 <여름이 지나가면>에서도 일종의 교환이 일어난다. 아이들은 영문에게 돈을 상납하고 안전을 보장받는다. 말이 안전이지 영문의 통제하에 아이들이 관리되는 세계였다. 그곳으로 외지인인 기준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아이들이 줄 수 없었던 것들이 오가기 시작한다. 영화 시작부터 기준은 자신의 운동화를 도둑맞는다. 영화 전체가 이 사건에 신경 쓰는 양상을 보인다. 없어도 될 플래시백이 그것이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이 플래시백이 목에 가시처럼 거슬리며 잔상을 남긴다. 왜 굳이 친절하게 플래시백을 넣었을까? 제자리를 찾아가다 <여름이 지나가면>은 제자리를 찾아가는 영화다. 그것이 물건이든 사람이든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무언가를 잃어버려야 한다. 그것이 서사의 기본 원칙일 것이다. 첫 번째 플래시백은 식당에서 기준의 엄마가 영준의 이름을 들었을 때다. 그녀는 선생님이 다른 학생들에게 영준이 어디 있냐고 묻는 장면을 떠올린다. 두 번째 플래시백은 새 신발은 어떠냐고 물어보는 엄마의 물음에 기준은 낮에 굴다리에서 같은 신발을 신은 영문을 떠올린다. 세 번째 플래시백은 CCTV다. 이것은 객관적인 기계의 시선으로 기록된 데이터다. 전학을 왔기에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그냥 묻어두려고 했던 판도라의 상자인 CCTV를 기준의 엄마는 기어코 연다. 불완전하지만 복구된 데이터 속 열화된 이미지에 파란색 칼라 티셔츠를 입은 영준이가 있다. 다른 학생도 있지만 식별 가능한 사람은 오직 영준이뿐이다. 영화에서 영준은 시종일관 파란색 칼라 티셔츠만 입고 있다. 축구 대회 때를 제외하곤 영준은 오직 그 옷만 입는다. 범인의 이름, 도둑맞은 신발 그리고 그것을 훔쳐간 범인의 인상착의. 그날의 기억은 어쩌면 저 옷으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지난여름을 기억의 형태로 엮어내고 있다. 여름이 지나고 어느 미래에 모든 것이 점차 옅어진 그때 그 ‘파란색’ 옷 입은 녀석으로 시작될 기준의 기억 말이다. 영화에서 운동화만큼 중요한 것은 게임기다. 기준은 자신을 위해 복수를 해준 영문에게 게임기를 갖다바친다. 영문에게 무언가를 주면 돌려받지 못한다고 한 친구는 경고했다. 이 세계의 게임의 규칙은 깨지기 마련이다. 기준이 영문에게 준 것들은 이미 사라졌다. 게임기는 부서졌고 운동화의 주인을 알게 된 영문은 도둑질해서 둘 다 새것으로 장만한다. 그렇게 기준에게 다시 돌려준다. 그것은 단지 표면적인 교환이다. 물건들이 돌아왔다고 모든 게 제자리를 찾은 것은 아니다. 실질적인 교환이라면 그동안 가려졌던 얼굴을 살짝 드러낸 것이다. 여태껏 도둑질했어도 들키지 않아서 무뎌진 영문의 감각은 기준네가 등장함으로써 되살아난다. 영문은 양심의 가책과 수치심을 오랜만에 느꼈고 그 때문에 그가 일군 세계의 규칙은 잠시 깨진다. 기준은 영문을 만나서 물이 들었다고 보지 않는다. 기준네 가족이 시골에 도착하면서 도시와 비슷하다고 말했듯이 내면의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단지 발현되지 않았을 뿐이다. 영준을 배신했을 때, 영문 앞에서 말을 돌릴 때 기준의 비겁함은 오히려 도시적인 것은 아닐까? 부모의 통제 밖, 영문의 통제하에서 기준은 좀더 풀어헤쳐져 극단에 놓인 자신의 본모습을 본 것이다. 그렇게 기준네는 도시로 다시 떠나고 남겨진 형제는 그들이 버린 게임기를 들고 오토바이에 탄다. 이때 영준은 다른 옷을 입고 있다. 이때부터 영화는 기준의 기억이 아니다. 기준의 시점으로 영화가 시작했다면 끝에선 시점은 분리돼 형제의 것이 된다. 하지만 영화는 블랙아웃이 되고 형제의 오토바이 소리만 들린다. 이는 기준의 미래보다는 형제의 미래를 상상하게끔 유도한다. 모든 것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영화의 관성 때문에 형제의 오토바이는 고향을 떠나지 못하고 배회할 것이다. 혹은 그 소리와 함께 기억의 저편으로 형제는 잊히는 것은 아닐까? 검은 화면에 울려 퍼지는 오토바이 소리가 섬뜩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여름이 지나가면>은 마지막에서 관객을 일종의 윤리의 시험대에 올린다.

[복길의 슬픔의 케이팝 파티] 나는 너를 잊어도 넌 나를 잊지마, <나만 바라봐>

가끔 어릴 적 친구들이 했던 터무니없는 거짓말들이 생각나곤 한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는 자신이 이건희의 숨겨둔 손녀딸이라고 고백한 친구와 자신이 슈퍼주니어의 한 멤버와 비밀 연애 중이라고 밝혔던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런 종류의 거짓말들은 분명 병적인 망상의 징후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허언이 마냥 음습하거나 징그럽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세상에는 아무리 허술해도 자기가 만든 환상 속에서만 숨 쉴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흔히들 K팝 문화를 ‘환상을 사고파는 일’에 비유한다. K팝은 나의 현실인데 왜 환상이라고 하는 건지. 당장 얄밉게 대꾸하고 싶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만큼 K팝을 관통하는 비유가 또 없다. 먼저 아이돌 멤버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자. 그들은 콘서트에서, 공개방송에서, ‘버블’에서 ‘팬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는다. 하지만 어떻게 한명의 개인이 얼굴도 사연도 모르는 ‘여러분’을 진심으로 사랑하겠는가? 인터넷에서 아이돌은 교주, 팬들은 신도라고 비아냥대는 반응을 보곤 하는데 그들은 틀렸다. 다시 생각해보라. 밤낮으로 실체 없는 대상을 향해 ‘사랑합니다’를 외치는 쪽이 오히려 신도의 모습과 가깝지 않겠나. 아이돌을 향한 팬의 사랑 역시 환상이다. 그것은 ‘아이돌’(Idol)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찾아본다면 굳이 부연할 필요도 없는 하나의 사실이다. 한 중년 여성이 두눈을 꼭 감고, “다른 팬클럽에서 스카우트가 와도, 절대 거들떠보지 않겠습니다”라고 외치는 방송의 한 장면이 K팝의 고전 밈이 된 것처럼 K팝 팬들은 아이돌을 향해 사랑과 영원을 맹세하고, 그 행위를 즐기며 커뮤니티를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맹세 속에 애정, 질투, 집착, 광기에 이르는 갖가지 감정들을 쏟아부은 뒤, 그것을 멋대로 배합해 오직 자신만 이해하는 사랑의 법칙을 만든다. 최애가 혐오 발언을 일삼을 땐 잠시 타일러 훈방 조치를 하지만, 연애 정황이 포착되는 순간 즉시 사형선고를 내리는 그런 비범한 율법 말이다. ‘환상을 사고파는 일’은 거짓말로 유지된다. 아이돌과 팬은 ‘우린 서로 사랑하고,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피상적인 합의 위에서 관계를 맺는다. K팝 팬의 대다수는 이 합의를 전적으로 믿고 따르지만, 그들 중 일부는 ‘우리’, ‘사랑’, ‘거리’를 제멋대로 해석해 두 진영 사이의 균열을 파고들길 원한다. K팝의 이러한 상반된 기제는 음악 자체로 구현되기도 하는데, 콘서트 마지막 순간에 눈물로 떼창을 유도하는 일명 ‘팬송’이 아이돌과 팬이 맺은 ‘합의’의 노래라면, 태양의 <나만 바라봐>는 그 합의를 의도적으로 깨고 선을 넘는 ‘균열’의 노래인 것이다. 2008년, 이 곡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한 강사가 수업에서 했던 말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 “이런 마초적인 발상의 노래를, 이렇게 귀엽게 생긴 남자가 부르다니. 이건 분명 가부장제의 술수예요.” 당시 이 곡의 부도덕함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나는 “<나만 바라봐>는 신에게 바치는 고해성사”라는 음모론을 주변 사람들에게 퍼트리고 다녔다. (애절한 록발라드가 사실은 하나님을 생각하며 만든 노래였다는 비화도 있지 않나.) 하루에도 몇번씩 널 보면 웃어 난… 수백번 말했잖아 You’re the love of my life… 거짓된 세상 속 불안한 내 맘속, 오직 나 믿는 건 너 하나뿐이라고…. 하지만 <나만 바라봐>는 가부장제의 술수, 하나님에 대한 사랑보다 아이돌과 팬의 관점에서 해석될 때, 진정한 파괴력을 갖는 곡이다. 밤을 지새우며 오빠가 변한 것 같다고 말하는 빠순이, 그런 빠순이를 향해 네가 없이는 너무 힘들 것 같지만, 때론 너로 인해 숨이 막힌다고 솔직히 고백하는 오빠. 그 오빠는 기나긴 한숨 끝에 내가 기댈 곳은 빠순이들뿐이란 걸 깨닫고, 그들을 귀찮아하는 스스로를 미워하며 자신을 점점 잃어간다…. 아이돌들이 가질 만한 ‘빠혐’ (빠순이 혐오)과, 염치없는 말을 들어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 팬의 마음을 이보다 잘 표현한 노래가 또 있을까? 축축한 욕망과 날 선 권태가 이토록 펄펄 끓고 있는데, 대체 아이돌과 팬이 어떻게 서로를 건강하게 응원한단 말인가? “내가 바람펴도 너는 절대 피지마” 같은 파격의 문장이야말로, 그들이 가진 감정을 가장 정직하게 표현한 것일지 모른다. 내 안에서 K팝은 밤, 과거, 어둠, 지하, 골목, 염증, 곰팡이 같은 것들과 함께 잔다. 악담처럼 보이겠지만, 이것은 모두 내가 좋아하는 단어이자 K팝이 가진 성질에 관한 키워드다. ‘버닝썬’ 이후의 K팝 팬덤 안에서 나는 배신감, 죄책감, 무력감의 사이클을 반복하며 한동안 내 사랑을 무결한 환상 속에 가두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내 트라우마는 나와 비슷한 상처를 갖고 있는 이들과 서로의 마음을 헤집으며 해소되기 시작했다. K팝은 사랑과 집착, 믿음과 맹신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음악이다.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허공이니 우리는 늘 조심스럽고 예민해진다. 그러니 이제 우리,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생긴 K팝의 헐고 닳은 구멍에서 만나자. 서로 얼마나 오염됐는지,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말하며 서로의 뺨을 갈기자. 그렇게 맷집을 불려 양지화를 시도하는 세력으로부터 우리의 음습하고 징그러운 K팝을 지켜내자.

[정준희의 클로징] 또렷한 기억 속의 여름

언제였는지는 모르겠다. 수평선 너머로 뭉게구름이 피어나는데, 난 한적한 바닷가 그늘에 누워 그걸 바라보고 있다. 목책 사이로 난흙길을 걸어 매미 소리가 울려 퍼지는 짙푸른 색감의 야트막한 산을 향해 걷다 보면 배부터 꼬리까지 새빨간 고추잠자리가 여기저기 날아다닌다. 시각과 청각의 기억은 비교적 선명한데 필경 햇살이나 기온도 무척 뜨거웠을 당시의 촉각은 되살아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헉헉대는 힘겨움보다는 여유롭고 평화로운 분위기만 잔잔히 일렁인다. 짐작건대 이것은 특정한 시공간의 기억은 아닐 것이다. 대략 늦여름에 치우쳐, 내게 ‘전형적으로 남은’, 아니 이런저런 이미지를 끌어모아 하나의 ‘전형으로서 남긴’ 여름 풍광이었을 듯하다. 요컨대 나는 여름을 그렇게 (기분 좋은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은 것이다. 스케치북 앞면에 그려졌던 어느 서양화가의 풍경화라든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이 뒤섞여 윤색해준 부분도 있을 테다. 단적으로 내 이런 기억의 일부는 <미래소년 코난> 등의 이미지는 물론 노랫말과도 중첩된다. 기억은 경험의 반영을 넘어 소망의 발현이기도 하다. 어떤 시점 어떤 맥락에서 그것을 회상해왔는가도 중요한 것 같고, 어떤 이야기 속에 그걸 위치시켜왔던가도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기억이란 원초적 체험과 반복적 회상 행위가 뒤섞인, 늘 재생산되는 이미지인 셈이다. 그리하여 내 기억 속 여름은 현재를 부정하게 한다. 언제부턴가 내가 경험하는 여름은 내 기억 속의 여름과는 무척 다르다. 현재를 긍정하지 못하고 과거를 미화하는 낭만주의와 노스탤지어는 이런 식으로 생산되는 법이리라. 그러나 내 기억이 단순히 노스탤지어로 치부될 수만은 없다. 매미의 육성은 극악스러워졌고 고추잠자리는 자취를 감췄다. 온전히 자연과 함께하며 한적하게 여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도 이제 그리 많지 않다. 세상은 확실히 더 뜨겁고 소란스러워졌으며, 오로지 자연이 허락해준 바람과 물기만으로 여름의 곤란함을 피할 여지는 훨씬 더 좁아졌다. 만들어질 당시부터 이미 노스탤지어적이었던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이제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거의 상실해버렸다. 과거의 여름을 되찾기 위해 우리는 정말 무언가를 결행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여름에 더 긍정적인 측면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과거의 여름에는 늘 물난리가 있었고, 개울과 강을 뒤집어놓은 붉은 황토물이 성난 기세로 세상을 휩쓸어가기도 했다. 다행히 지금은 그런 모습이 드물어졌다. 무섭고 사나운 여름 기억보다는 평온하고 사근사근한 여름 기억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건, 부단히 현재로 나아간 사회적 진보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반지하 방의 침수 참사, 오송의 물난리, 채수근 상병의 목숨을 앗아간 수해는 그런 긍정성마저도 무색하게 한다. 제대로 추모되었던 바 없기에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비극이다. 이런 기억은 잊어서는 안되며, 어떤 식으로든 윤색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야 우리 기억 속 여름이 그리 죄스럽지 않은 낭만과 노스탤지어 속에 남아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인터뷰] 청춘의 실타래를 풀다, <우리들의 교복시절> 배우 진연비, 항첩여, 구이태

대만 청춘영화가 끌리는 여름, 적절한 작품이 찾아왔다. 지난 7월11일 개봉한 <우리들의 교복시절>은 1997년, 10대의 끝자락을 지나고 있는 아이(진연비), 민(항첩여), 루커(구이태)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익숙한 첫사랑의 두근거림과 열렬한 우정을 담고 있지만 마냥 반짝이기만 하는 건 아니다. 대만의 혹독한 입시 문화와 빈부격차, 부모의 기대를 저버려서는 안된다는 압박까지 대만 사회의 젊은 세대가 마주한 현실까지 정면으로 그려낸다는 점에서, 기존의 달콤한 청춘 로맨스에서는 보기 힘든 무게감을 지닌다. 기온이 34도까지 치솟은 7월11일, 개봉을 기념해 전날 한국을 찾은 배우 진연비, 항첩여, 구이태를 만났다. 더위는 견딜 만하냐는 인사말을 건네자 “우리는 여기에 습도까지 높은 나라”에서 왔다며 쌩쌩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 빼빼로와 아이스아메리카노, 손풍기를 벗 삼아 오후 4시의 야외촬영도 거뜬히 마친 이들은 짧은 수다로 에너지를 금세 충전한 뒤 인터뷰에도 활기차게 임했다. 앞으로의 대만영화를 궁금하게 만드는 맑고 단단한 젊은 얼굴들을 소개한다. - 시나리오가 와닿는 부분이 각기 달랐을 것 같다. 구이태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다른 작품 촬영 중 잠시 쉬는 동안 읽었는데, 마지막까지 다 읽고 감동해서 눈물이 났다. 책을 덮으면서 이 작품은 꼭 해야겠다고, 루커를 놓쳐서는 안된다고 결심했다. 진연비 나는 집에서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보았는데, 캐릭터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언뜻 평범한 소녀처럼 보이는 인물일수록 공을 들여 숨겨진 특별함을 찾아내야 하는데, 이 점이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켰다. 항첩여 시나리오에 소개된 옛 음악들을 머릿속에 재생한 채로 그 시절 풍경과 청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읽었다. 이 시나리오가 내게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두 여성이 성장통을 겪으며 함께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라는 점이었다. 누구든 공감할 부분을 많이 찾을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도. - 작품 속 캐릭터와 자신과의 거리는 어느 정도라고 체감했나. 진연비 아이에게서 내 모습을 많이 봤다. 나도 나에게 자주 묻는다. 지금 내 노력이 충분한지, 좋은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걸 누릴 자격이 있는지 말이다.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성격이다. 항첩여 감정을 드러낼 줄 아는 민과 그러지 못하는 나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도 친한 친구 앞에서는 민처럼 돌려 말하지 않고 바로 행동하는 편이라 닮은 면도 있다. 구이태 정확히 반반이다. 운동을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솔직한 점은 비슷하지만 나는 영재인 루커만큼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다. (웃음) - 각자 캐릭터에 몰입해가는 과정에서 촹칭션 감독과 어떤 의견을 주고받았나. 항첩여 처음 민의 단정한 쇼트커트를 확인했을 때는 너무 성숙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 헤어스타일이 배경이 된 시대와 잘 어울리고 무엇보다 민 나이 또래는 성숙해 보이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초안 그대로 진행하게 됐다. 진연비 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했는데, 사실 타인에게도 그렇다. (웃음) 그래서 현장에서 늘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요?”, “이건 어떤 감정일까요?” 하고 감독님에게 의견을 드렸다. 이런 나를 감독님은 한번도 귀찮아하지 않으셨고 “세상에서 아이를 가장 잘 이해하는 건 바로 너”라며 나를 믿어주셨다. 덕분에 내 모습이 아이에게 많이 투영됐다. 구이태 로맨스영화이기도 해서 루커와 아이가 잘 어울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둘이 처음 만나는 탁구장 신에서 어떤 그림이 좋을지 고민했다. 시나리오에는 루커가 오른손잡이인지 왼손잡이인지 나와 있지 않았는데 왼손잡이라고 설정하면 오른손잡이인 아이와 탁구를 할 때 조화가 괜찮을 것 같았다. 이 아이디어를 감독님이 지지해주셔서 루커가 왼손잡이가 됐다. - 구이태 배우가 언급했듯, 아이와 루커는 아이가 아르바이트하는 탁구장에 루커가 찾아오면서 처음 만난다. 초보인 루커가 수준급인 아이의 공을 받지 못해 둘의 게임은 한번 만에 끝나버리고 마는데 진연비 배우는 당시 현장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진연비 우리가 실제로 세번 정도 만난 뒤에 찍은 거라 아직은 어색한 사이였는데 그게 오히려 첫 만남의 상황과 잘 맞았다. 탁구장에 들어온 루커가 아이에게 학생증을 보여주는 순간을 찍을 때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아주 잘생기고 반듯한 태도를 가진 루커에게 아이는 처음 본 순간부터 마음을 뺏기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루커의 연습 상대가 되어 탁구대 앞에 섰을 땐 많이 긴장했을 것 같다. 실제로 나도 그랬다. 아이는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어서도 탁구를 한다는 설정이라 실력이 출중해야 하는데 나는 이번 작품으로 라켓을 처음 잡아본 거라 걱정이 컸다. 운동신경이 좋은 구이태 배우가 더 잘 쳐 보이면 어떡하나 싶기도 했는데 초보 연기를 아주 잘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 아이와 민의 첫 만남은 교실에서 이뤄진다. 이때 민은 아이에게 대뜸 둘 중 뭐가 더 좋은지를 고르는 질문을 던지는데, 아이의 대답을 듣는 민의 만족스러운 표정에서 둘이 단짝이 될 거란 예감이 흐른다. 항첩여 그렇게 ‘같은 과’인지를 알아보는 취향 테스트로 친구를 사귀어본 적이 없어서 재미있었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민과 아이는 닮았다고 느꼈다.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내면에 품고 있는 감정은 비슷하다는 걸 염두에 두고 아이와의 장면을 연기했다. 진연비 내게 이 장면은 아이가 민을 동경하기 시작하는 순간처럼 보였다. 아이는 갑자기 ‘왜 나한테 이런 걸 묻지’라는 당혹스러운 마음이 들지만 입을 떼게 만드는 민의 카리스마에 큰 매력을 느낀다. 그런 똑 부러짐은 아이에게 없는 부분이라 더 끌렸을 것 같다. - 세 배우가 한자리에 모이는 신도 있다. 삼각관계가 진행 중인 문구점 신에서는 아이와 루커, 민의 시선과 감정이 미묘하게 교차하며 긴장감이 흐른다. 각 인물은 이 순간 무엇을 느꼈을까. 구이태 루커는 탁구채가 그려진 필통을 집어들면서 자연스럽게 탁구를 좋아하는 아이를 떠올리는 데 이 컷이 루커에게 중요한 감정 포인트였다. 루커는 연애 경험이 많은 편이 아니라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감정이 향하는 대로 순수하게 반응하고 행동한다. 항첩여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이 눈이 간다고 생각해서 민이 루커를 계속 관찰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이때 민은 여러 생각을 동시에 한다. 루커가 아이에게 호감이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하면서도 그냥 좀 가까워졌을 뿐이라고 애써 정리하고 솔직히 둘 사이에 뭔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 그런 복잡한 심경을 잘 표현하고 싶었다. 진연비 민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전혀 모르는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놀러나왔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하고 있다. 내가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던 건 좋아하는 남자가 가까이 있을 때 느끼는 설렘과 부끄러움이었고 그 감정이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기를 바랐다. - 루커 어머니의 전시회 시퀀스에 이르러 세 인물의 관계는 한층 심각해진다. 관객이 누구에게 감정이입하느냐에 따라 느끼는 감정도 달라질 수 있는 장면이다. 항첩여 민은 내가 상처받았으니 너에게도 상처를 주겠다는 식으로 잘못된 선택과 행동을 하지만 곧바로 그게 잘못됐다는 걸 알고 죄책감을 느낀다. 감정선이 매우 복잡하게 얽혔는데 대사보다는 최대한 눈빛에 모든 걸 담으려고 했다. 진연비 굉장한 압박감을 느낀 시퀀스였다. 시작부터 끝까지 길고 긴 클로즈업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대화를 들으면서도 못 들은 척하고, 밀려오는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연기가 쉽지 않았다. 세 인물 모두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는 상황이고, 이들 관계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지점이라 항첩여, 구이태 배우도 준비하면서 고민이 깊었을 거다. 구이태 몰랐던 사실을 연달아 알게 되면서 루커는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하는 당황스러움을 겪는다. 혹시 내가 이 상황을 촉발한 건 아닌지, 나도 모르는 실수를 한 건 아닌지 무서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비 맞은 길고양이와 같은 눈빛으로 아이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려고 했다. 마지막에 아이가 전시회장을 뛰쳐나갈 때 루커는 부모님의 체면을 생각해 아이를 쫓아가지 못하는데 실제 나라면 달려나갔을 거다. - 아이는 편지를 보낼 정도로 니콜 키드먼을 좋아하는데, 각자에게 그런 ‘빅 팬’의 대상이 있다면. 항첩여 이창동 감독님의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작품을 보다 보면 언제나 감독님만의 독창적인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언젠가 그 시선 안에 내가 담겨보고 싶다는 바람도 있다. 구이태 최우식 배우의 빅 팬이다. 귀여운 역할도 잘 소화하지만 <살인자ㅇ난감>에서 살인마 캐릭터까지 소화하는 걸 보고 정말 놀랐다. <기생충>도 빼놓을 수 없고. 연기 스펙트럼이 정말 넓은 배우라 롤모델이다. 진연비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요네즈 겐시. 데뷔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 팬데믹이 찾아와 일할 기회가 거의 사라졌고, 이 일을 계속해야 할지 아니면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며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지 매일 고민했다. 그 시기에 요네즈 겐시의 을 들으며 큰 위안을 받았고,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지금이라도 감사 편지를 보내고 싶다.

[특집] 진정한 의미의 ‘스튜디오’가 필요하다

“한국의 스튜디오들이 제대로 돌아가질 않는다.” 복수의 영화계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 영화산업에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올해와 내년 기준 주요 투자배급사의 영화 제작 편수가 10여편대로 긴축됐고, 극장업계가 존폐의 위기에 빠져 있는 등 영화업계의 불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찍는 영화가 없다는 것은 스튜디오의 가동률이 낮다는 말과도 같다. 그러나 현재 한국 스튜디오 인프라의 문제는 단순한 가동률과 공실률 등 수요와 공급의 영역에만 있지 않다. “영화산업에 다시 돈이 돈다면 스튜디오야 당연히 다시 가동될 수 있다. 그런데 솔직히 지금 한국에 제대로 ‘스튜디오’라고 부를 만한 곳이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제작자 A씨)라는 것이다. A씨의 말은 한국의 영화산업이 스튜디오를 단순한 ‘촬영 장소’로서의 기능으로만 바라보는 고질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본래 스튜디오란 콘텐츠 기획부터 제작, 촬영 장소 및 후반작업, 부대시설 인프라가 결집해 콘텐츠 공정 과정의 전반을 책임지는 곳을 뜻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 논의하는 ‘스튜디오 인프라’는 대개 ‘촬영 장소’라는 공간 임대의 차원에서 말해진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스튜디오 인프라의 난점을 종합적으로 보기 위해선 발상의 전환이 우선이다. 단순히 스튜디오가 얼마나 가동되고 있는지에 몰두하기보다는 스튜디오의 기능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산업 체제의 미진함을 중심으로 수도권에 집중된 민간 스튜디오의 포화, 지역·공공 스튜디오 활용의 저하, 낙후된 스튜디오의 시설 노후화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영화의 위기를 두고 대부분 극장 상영과 배급, 투자와 제작의 측면을 언급하지만, 위기의 요인으로 “국내 스튜디오 인프라의 기본적인 미흡함”(제작자 B씨)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영화를 실질적으로 찍을 수 있는 환경이 효율적으로 조성되어 있다면 제작비 절감과 영화 품질의 향상은 자연스레 따라온다는 논리다. 국내 스튜디오 인프라의 개선을 위해 실질적인 국내 스튜디오 활용 현황을 살피고 필요한 논의점을 검토한 뒤 어떤 방향성을 설정하면 좋을지 살피고자 한다. 스튜디오 가동의 현황은? 문화체육관광부가 2025년 공개한 ‘2023년 기준 콘텐츠산업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국내의 촬영 스튜디오는 80여개다. 스튜디오 운영 업체는 35여개지만, CJ ENM 스튜디오 센터(파주)에 16개의 실내 스튜디오동이 있는 것처럼 한 업체가 복수의 스튜디오를 운영 중이기에 도출된 수치다. 80여개 스튜디오 중 실내 스튜디오의 80%가량은 서울, 경기 등 수도권에 자리 잡고 있다. 영화 및 방송 제작 업체의 80% 수준이 서울, 경기 등 수도권에 있는 것과 유사한 지표다. 제작자 C씨는 “2019년 무렵 영화산업이 호황일 때 수도권에 민간 스튜디오가 우후죽순 생겨났고, 그 이후 불황이 이어지며 많이 사라졌다”라는 현장의 사정을 전했다. 이처럼 스튜디오 인프라가 수도권 위주로 형성되면서 지역의 스튜디오는 난항을 겪고 있다. 부산영상위원회가 운영하는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는 “2023년 대비 2024년에 스튜디오에 들어온 작품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올해는 그것보다 조금 나은 상황”(양종곤 부산영상위원회 사무처장)이다. 다른 지역의 스튜디오들도 비슷한 실정을 전해왔다. 전주영화종합촬영소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촬영소 가동률이 크게 저하됐으며 전주와 같은 지역은 특히 로케이션 촬영을 겸하는 경우가 많아 촬영 수가 전체적으로 줄어든 상황”(양수연 쿠뮤필름스튜디오코리아 본부장)이다. 제작비 절감을 위해 지역 촬영이 점차 줄어드는 기조를 보이면서 일어난 결과다. 대전 스튜디오큐브 역시 “OTT 콘텐츠 제작 편수가 늘면서 스튜디오 수요가 다소 보충됐으나 2023~24년 가동률이 급감”(김재동 한국콘텐츠진흥원 방송기반조성팀 과장)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제주실내영상스튜디오도 “다른 곳과 별반 다를 것 없이 촬영 수요가 많이 줄어 운영이 어려운 게 현 상황”(제주콘텐츠진흥원 관계자 D씨)이다. 수도권에 있는 민간 운영 중심의 스튜디오들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한화성 디마종합촬영소 소장은 “기존의 인지도와 네트워크 덕분에 운영에 어려움이 있는 정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외 고양, 파주 등 수도권에 자리 잡은 민간 스튜디오들은 지역에 있는 공공기관 주체의 스튜디오에 비해서는 가동률 자체에 문제를 겪고 있는 편이 아니었다. 즉 “한국의 스튜디오들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라는 소문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었다. 한국의 영화산업이 침체하며 직접적인 타격을 입은 쪽은 대개 지역의 공공 스튜디오들이다. 오히려 “수도권 인근의 여건이 좋은 스튜디오는 다른 촬영이 계속 뒤로 밀리면서 계약을 해놨는데도 촬영에 못 들어가는 경우”(E씨)가 잦다. 가격만이 문제는 아니다 지역 스튜디오 촬영이 줄어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결국 돈, 제작비의 문제”(제작자 F씨)다. “전반적으로 영화제작 예산의 긴축이 이뤄지면서 운송비, 체류비 등이 추가로 소모되는 지역 촬영이 점차 줄었고, 심지어 지역을 배경으로 삼았던 각본인데 투자·사전제작 단계에서 지역 로케이션 촬영분을 없애야 하는 사례도 많아졌다”(F씨)는 것이다. E씨도 “업계 불황이 이어지고 지역 영상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지역 촬영 인센티브가 줄어들면서 지역 촬영의 명분이 많이 사라진 상황”이며 “제작 편수가 줄어들며 특정 배우, 헤드 스태프들의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서도 지역 촬영은 더 어려워진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지역 스튜디오의 임대료가 수도권 스튜디오보다 저렴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임대료 외의 제작비와 일정 문제로 지역을 찾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실제로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는 500평의 스튜디오의 일 이용료가 70만원(월 기준 약 2천만원)이다. 업계에선 흔히 스튜디오 평수를 월 임대료 기준으로 책정한다. 즉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의 이용료는 평당 4만원 수준(4만원×500(평)=2천만원)이란 뜻이다. 다만 “수도권 민간 스튜디오 중 여건이 괜찮은 곳은 평당 7만~8만원 수준으로 2배쯤 비싼 평균치”(E씨)를 보이고 있다. 이에 영화 촬영의 품질은 자연스레 하향할 수밖에 없다. 서울, 파주, 양주에 7개가량의 실내 스튜디오와 VFX 스튜디오를 운영 중인 콘텐츠 제작사 케이필름의 김민섭 감독은 “최근 영화 제작사들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평당 4만~5만원대의 스튜디오를 찾으면서도 지역 촬영을 꺼린다. 어쩔 수 없이 수도권 근방의 경기도, 충청도 등에 있는 4만~5만원대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데 그런 곳은 가격만큼 시설이 낙후된 곳이 많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제작 실무자들의 고충으로 이어진다. 미술감독 F씨는 “평당 4만~5만원대의 스튜디오는 대개 창고형 스튜디오로 실내 세트를 짓는 일에도 제약이 크고, 방음 시설이 미흡해 날씨나 외부 상황에 따라 동시녹음이 어려운 상황까지 빈번하게 일어난다”라는 경험을 전했다. 결국 스튜디오 인프라의 활용에 있어 여러 측면의 악순환이 일어나는 중이다. 수도권에 스튜디오가 몰려 있는 현상이나 스튜디오 임대료 문제를 특정 원인으로 규정하긴 어렵다. 수도권에 민간 스튜디오가 집중되어 있다 해도 스튜디오 환경에 따른 고비용과 대형 영화, OTT 콘텐츠의 장기 대여로 인해 다수의 영화가 좋은 스튜디오를 활용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역에 있는 스튜디오를 활용하기엔 앞서 말한 부대 비용과 일정 조율의 문제가 생긴다. 이에 대개의 영화는 궁여지책으로 수도권에서 조금 벗어나 있되 싸고 시설이 낡은 스튜디오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 이는 영화 콘텐츠의 질적 하락, 지역 로케이션 촬영의 축소로 인한 콘텐츠 다양성의 저하, 제작진의 고충으로 이어진다. 더군다나 최근 100억원 이상의 순제작비를 투입하는 대규모 영화의 제작이 줄어들고, 정부 차원에서도 순제작비 30억~80억원 수준의 중급 규모 영화의 투자·제작을 유도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막상 중급 규모 수준의 영화가 활용할 스튜디오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인 셈이다. “수도권 근처의 좋은 버추얼 스튜디오는 일 사용료가 1천만~5천만원에 이른다.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도 없는 촬영소만 늘어나고 있으니, 업계가 따로 노는 상황처럼 느껴진다”(제작자 G씨)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공공, 지역의 종합형 스튜디오 스튜디오 인프라의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할 첫 단추는 지역 내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종합형 스튜디오의 개발이다. 영화 제작자들에게 지역 스튜디오, 로케이션 촬영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스튜디오 시설을 비롯한 오픈세트 부지, 부대시설 제공, 인센티브 사업 등이 필요하다. 서두에 언급한 대로 본질적으로 ‘스튜디오’의 기능을 할 수 있는 종합 스튜디오, 촬영 클러스터가 선호된다는 의미다. C씨의 의견은 간결하다. “과거 남양주종합촬영소처럼 촬영용 실내 스튜디오를 비롯해 오픈세트 부지, 편의시설, 후반작업 시설 등이 밀집되어 있기만 하다면 지역이라고 해서 찾지 않을 이유가 없다”라는 것이다. 지역 스튜디오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된다면 부대비용의 절감을 통한 제작비 하락을 도모할 수 있고, 지금처럼 일부 수도권 인근의 스튜디오에서 어쩔 수 없이 촬영해야 하는 일이 줄어들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지역에 종합형 스튜디오를 짓는 일만이 정답은 아니다. 수도권의 상황을 고려한 산업의 안배가 필요하다. 30여년 동안 영화업계에 종사 중인 양종곤 부산영상위원회 사무처장은 “이미 수도권에 민간 스튜디오가 밀집해 형성된 상황에서 공공기관이 수도권 스튜디오를 새로이 설립하거나 운영하기엔 어려움이 있다”라며 “대신 지역의 공공 스튜디오가 지역 로케이션과 결합한 스튜디오의 활용 방안과 인센티브 사업을 확장하고 중급 규모의 영화도 활용할 수 있는 버추얼 스튜디오 등 다양한 시설을 확보하여 민간과 공공이 서로 보완할 수 있는 형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동성과 접근성을 높인 수도권의 민간 스튜디오와 지역에서 장기적인 로케이션 촬영을 낮은 가격에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공공 스튜디오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에 여러 공공 스튜디오는 종합형 스튜디오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우선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운영하는 대전 스튜디오큐브는 올해 11월에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버추얼 스튜디오를 개관하며 급변하는 콘텐츠 제작 환경에 적응할 예정이다. 전주영화종합촬영소도 개관 이후 17년이 지나 시설 노후화가 진행됨에 따라 추가적인 VFX 스튜디오 등의 확장안을 고려 중이다. 제주콘텐츠진흥원도 제주 동부 지역에 오픈 스튜디오 부지를 비롯한 ‘대규모 영상산업 클러스터’ 조성 방안을 추진 중이다. 고양시는 지난 2월 70만㎡ 규모의 방송영상밸리를 구축해 영상 콘텐츠 원스톱 체계를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업계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는 스튜디오는 역시 2026년 하반기 완공을 목표 중인 부산기장촬영소다. 부산기장촬영소는 남양주종합촬영소의 폐관 이후 국내 대표 종합 스튜디오 건립을 위해 영진위가 추진 중인 사업이다. 영진위에 따르면 현재 부산기장촬영소의 공정률은 21%다(7월16일 기준). 1천평, 650평, 450평 규모의 실내 스튜디오 3개 동과 오픈 스튜디오 부지, 야외촬영 지원시설 등 종합 스튜디오로의 기반을 마련할 예정이다. 부산기장촬영소가 건립된다면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 로케이션 지원사업 등 기존의 촬영 인프라와 연계해 지역 촬영의 매력을 확보”(양종곤)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규모에 따른 민관의 협업 필요해 다만 스튜디오 산업 관계자들은 대규모 공공 스튜디오의 설립과 운영에 몇 가지 우려를 표했다. 우선 장기적인 운영 지속성에 대한 걱정이다. 민간 스튜디오 업체 관계자 H씨는 “공공기관은 아무래도 콘텐츠 자체보다 부대적인 관광 수입 등에 치중할 수 있고, 영화 기획부터 완성까지 대략 3년이 걸리지만 막상 스튜디오 관련 담당자가 1~2년 사이에 교체되면서 제작에 지연이 생기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공공기관 소속 스튜디오 관계자 I씨는 “스튜디오와 관련된 잘못된 인식”의 재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역에서 스튜디오 부지를 확보하고도 외부인과 거리 통제 등 가장 기본적인 부분에서 ‘관광산업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러 제약이 생기는 일이 빈번하다. 스튜디오 사업 활성화를 위해선 콘텐츠 산업에 대한 정부의 이해부터 선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급격하게 줄어든 지자체와 지역 영상위원회의 인센티브 사업 예산 절감도 콘텐츠 산업과 스튜디오 체계의 필요에 대한 사회, 정부의 인식 저하와 연결되어 있다. 민간 스튜디오 업체 관계자 H씨도 “과거에 비해서 한국 영화산업의 민간 기술력이 상승했으며 AI, 버추얼 스튜디오 등 신기술에 대한 빠민간 스튜디오 업체 관계자 H씨도 “과거에 비해서 한국 영화산업의 민간 기술력이 상승했으며 AI, 버추얼 스튜디오 등 신기술에 대한 빠른 적응력도 필요하기에 공공기관이 설립 및 운영을 전부 도맡는 쪽보다 민간의 전문가들과 협업하여 함께 발전시키고 보수·관리하는 방향이 이상적”이라고 밝혔다. 대규모 스튜디오 설립 후의 상황을 예측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과거 남양주종합촬영소에서 일하기도 했던 한화성 소장은 “OTT 콘텐츠의 성장 동력이 언제든 사라질 수 있고, 지금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상업·독립영화가 40여편 안팎이며 큰 제작비의 상업영화는 아주 적은 상황”이기에 “콘텐츠 제작의 활력이 사라졌을 때 남겨진 대규모 시설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의문이 든다. 차라리 민간이 주도하는 유연한 구조의 경량형 스튜디오를 더 많이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분석했다. 요컨대 공공 차원의 재원으로 종합형 스튜디오를 설립하더라도 민간 전문가들의 협업이 요구된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결국 콘텐츠는 기획력이다. 한 스튜디오에서 콘텐츠의 기획부터 완성까지를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어떻게 가장 효과적으로 추진할지 따지는 것이 스튜디오의 미래라고 생각한다”라는 김민섭 감독의 말처럼 기획부터 완성, 그 이후의 단계까지 영화제작 과정 전반에 실무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력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건강한 식물이 자라기 위해 좋은 토양이 필요하듯이 재밌는 영화가 나오기 위해선 좋은 스튜디오가 필요”(B씨)하다는 말처럼 부산기장촬영소를 비롯한 미래의 국내 스튜디오가 진정한 ‘스튜디오’로 거듭나길 바라는 것만큼은 모두의 한결같은 바람이었다.

[인터뷰] 용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투쟁, <도주> 아다치 마사오 감독

아다치 마사오란 이름의 무게는 쉽사리 가늠할 수 없다. 눈썹까지 하얗게 센 1939년생 노인, 1960~70년대 일본 영화미학의 최전선을 이끌었던 전위 영화계의 기수, 1974년부터 1997년 국제 지명수배를 통해 체포되기까지 팔레스타인 해방 투쟁에 참여했던 행동가. 이처럼 수많은 수식과 이력이 따라붙는 아다치 마사오 감독이지만 그의 역사는 20세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2000년 형기 만료 후 일본으로 강제송환된 그는 여전히 영화를 만들고 있다. 올해 일본에서 공개된 <도주>는 1970년대 일본의 반정부 조직이었던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소속 기리시마 사토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49년 동안 도피의 삶을 살아온 그가 사망하기 며칠 전 자신의 정체를 세상에 공개했고, 아다치 마사오는 영화를 통해 그의 투쟁에 화답했다. 일본 정부의 출국금지 조치로 한국에 올 수 없는 그를 화상으로 만났다. - 굉장한 애연가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하루에 얼마나 피우시길래. (본격적인 인터뷰 이전 아다치 마사오 감독은 역시나 담배를 피우며 인사를 건넸다.) 아, 그것은 극비 정보입니다만…. 이번 기회에 밝혀보겠습니다. (웃음) 하루에 2갑 정도는 피우는 것 같습니다. 가급적 2갑을 넘기지 않으려 하는 중입니다. 당신처럼 젊은 사람들보다 더 술과 담배를 과하게 하고 있지만 이걸 그만두면 오히려 내일이라도 당장 죽어버릴 것 같습니다. 9년 전쯤 의사가 폐기종이 생겼다며 금연하지 않으면 금방 죽는다고 경고했는데 보시다시피 아직은 살아 있습니다. - 그래도 부디 건강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전작 <레볼루션 +1>의 주인공 가와카미가 벌인 행동은 정치적 의도의 테러리즘이 아니라 개인의 결기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도주>의 주인공 기리시마 사토시도 실존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따왔단 점에선 비슷해 보입니다만 기리시마는 다분히 정치적 행위로 가득 찬 인물 같습니다. 그렇다면 <도주>는 개인의 결의와 정치적 투쟁이란 동기가 모두 섞인 영화일까요. 맞습니다. <도주>는 명백하게 더 정치적인 영화이지요. 가와카미의 실제 인물인 야마가미 데쓰야는 자신이 치를 행위의 대가와 사회적 영향을 굉장히 냉정하게 바라봤다고 생각합니다. 결행 전에 남긴 편지에도 “이것은 개인적인 행동이며 이것의 모든 파장은 받아들이겠다”라고 적었다고 합니다. 즉 어떠한 대의나 사회적 변혁을 목적으로 삼았다기보단 순수하고 사적인 동기로 움직였다고 봐야겠지요. 기리시마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멤버로서 뚜렷한 정치적 동기를 가지고 있었고 그 동기를 축으로 움직였단 차이가 있습니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사적인 실익보단 그룹의 목적성을 우선시했던 것이지요. - 감독님 역시 1970년대 중순부터 일본 적군의 주요 일원으로서 팔레스타인 투쟁에 참여했습니다. 동지들과 투쟁했던 기리시마의 역사에 개인적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기리시마란 인물을 감독님에 빗대어 감상했다는 평도 많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조금 곁들여야 할 것 같군요. 1970년대에 제게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두개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1972년에 일어난 연합적군의 동지 살해 사건(일본의 신좌익 게릴라 집단인 연합적군의 조직원들이 사상 단결을 빌미로 29명 중 12명의 대원을 사살한 사건이며 ‘아사마 산장 사건’으로도 불린다.-편집자)입니다. 또 하나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늑대 부대가 일으킨 미쓰비시 중공업 폭발 사건이지요. 두 사건을 바라보며 전 ‘어떻게 이 참패를 교훈으로 삼을 것인가?’란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이에 대해 뼛속 깊이 반성하지 않는다면 일본은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반성의 결과가 바로 일본 적군의 창립이었습니다. 함께해야 한다고 느낀 것이지요. 그 이후로 정치와 혁명을 공부하며 아랍의 젊은이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그전까지 전 어떠한 정치 조직에도 속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을 통해 조직적 투쟁을 펼치다가 혼자가 된 기리시마와는 완전히 다른 입장이었던 것이지요. 저와 반대로 연대를 펼치다가 고립에 들어선 기리시마에게 강한 존경심을 느꼈고 그것이 바로 <도주>의 출발점이었습니다. - ‘반성’은 감독님의 작품 전반에 드러나는 핵심적 주제입니다. <도주>의 기리시마가 또 다른 자신과 투쟁에 대한 논쟁을 벌이고, 승려의 모습을 한 기리시마가 나타나 “갈!”을 외치는 모습은 <은하계>(1967)의 주인공 M이 끝없이 펼치던 자문자답의 과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맞습니다. 아마 제가 너무 어리석기에 영화를 통한 자문자답이 아니라면 타인과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웃음) 무지하고 유약하기에 계속 질문하고, 실행하고, 반성하려 합니다. 자신의 변화 없이 어떻게 세계를 바꿀 수 있겠습니까. (옆에 있던 아다치 감독의 부인은 “말로만 이렇지, 일상에서도 다른 사람들이랑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다”라고 핀잔을 줬다.) - 2024년 기리시마 사토시의 사망 소식을 듣고 처음 어떤 감정을 느끼셨나요. 영화 작업을 통해 감정의 변화가 있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멤버들과는 이전에도 교류한 적이 있으나 그들은 조직 내외부에서 익명을 사용했기에 기리시마라는 이름은 처음 들었었죠. 엄청난 물음에 휩싸였습니다. ‘대체 이 사람은 왜 49년 동안 도망치다가 최후엔 자신의 이름을 밝혔을까?’ 저의 답은 기리시마가 최후의 투쟁을 펼쳤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폭발 사건 뒤에도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메시지를 지속하기 위해선 자신이 체포당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잘못된 공권력에 대한 끊임없는 싸움을 이어왔고, 그 투쟁을 본인의 손으로 마무리한 것이지요. - 감독님에게 ‘투쟁’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숨 쉬듯이 계속, 이 세상에서 용서할 수 없는 것들을 바꾸기 위한 의지의 실행입니다. - 1970년대 영화적 투쟁을 함께했던 일종의 동지 장뤼크 고다르는 2022년 안락사를 택했습니다. 한편에선 더이상 영화로 투쟁하지 않고 스스로 삶을 마친 고다르의 마지막을 서글프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었습니다. 감독님의 생각은 어떠셨나요. 처음 고다르의 소식을 접하고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도망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아쉬움을 이기지 못해 고다르의 지인들에게 연락하여 상세한 사정을 들었습니다. 안락사 이전 1년 동안은 암 통증으로 인해 영화제작은 물론이고 일상생활을 할 수 없었단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난 뒤엔 그의 결단을 존중하게 됐습니다. - <도주>에서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늑대 부대가 자신들의 ‘의도’가 사상자 발생이란 ‘결과’로 인해 실패했다고 자책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간 영화라는 매체가 정치적인 투쟁을 펼쳐온 역사도 비슷하다고 느낍니다. 고다르의 지가 베르토프 집단이 그랬고, 지금의 영화는 20세기보다도 투쟁의 힘을 상실한 상태라고 느낍니다. 그럼에도 감독님은 “여전히 영화는 100%, 투쟁의 방식이 될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일까요. 단순하지만 어려운 문제입니다. 지금 시대의 영화는 영상매체의 일부로서 너무나 좁은 장르가 되었고 다양화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영화를 통한 혁명의 가능성을 믿으며 삽니다. 지금 갑자기 하나의 형식적 실험이 떠올랐습니다. ‘다이어리 시네마’라고 이름 붙이고 싶군요. 전 쉬는 날엔 대개 TV를 보며 지냅니다. 그리고 TV에 펼쳐진 여러 거짓된 정보와 권력의 야욕에 화를 내지요. 이런 저의 모습을 매일 일기처럼 찍어 영화로 재구성한다면 어떨까요. 기록이라는 영화의 원시적 힘을 다시금 꺼내 보는 것입니다. 사회를 규정하는 미디어의 정보를 저의 사적인 기록으로 재편하여 자문자답한다면 미디어의 정보와 영화적 정보 사이의 균열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 성실한 작업을 하려면 술과 담배를 좀 줄여야겠지만요. (웃음) - 감독님께선 “모든 영화는 풍경 영화라고 부를 수 있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감독님의 다이어리 시네마는 일종의 미디어 풍경론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실제의 조각이 아닌 미디어 속의 풍경에서도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죠. 한 가지 궁금합니다. 지금처럼 대개의 영화적 시공간을 CGI로 만들고, 그린스크린 앞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의 영화들도 풍경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커다란 변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을 통해 만들지라도 연출자의 사유와 의지에 맞는 풍경을 구현할 수 있다면 충분하겠죠. 권력에 대한 저항을 풍경의 돌파를 통해 이뤄낸다는 점에선 아날로그 영화든, 만들어진 이미지의 디지털 영화든, TV 프로그램이든 똑같습니다. 핵심은 자신에게 내재한 이미지를 그저 바깥으로 반영하거나 과거의 모습을 재현할 뿐인지, 세상의 본질을 또렷하게 바라보는 주체로서 이미지를 대하는 것인지의 문제입니다. 이론은 이론입니다. 이론을 파악하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야 마땅합니다. 과거와 현재의 시스템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저 살 것이 아니라 부정해야 합니다. 부정의 방식이 약할수록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힘도 사그라듭니다. 고흐의 <해바라기>를 보고 만족하며 더이상 해바라기를 그리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자기만의 해바라기를 그려야 합니다. - 해바라기를 언급하시니 <약칭: 연쇄살인마>에서 종종 등장하는 해바라기 숏과 <도주>에도 등장하는 해바라기 숏이 겹쳐 떠오릅니다. 허허. 발견해주셨군요. 해바라기는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확신을 가진 이들도 고개를 숙이지 않지요. 이러한 해바라기의 성질을 기리시마의 인생에 빗대고 싶었습니다. - 2019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발행한 <아다치 마사오의 은하계>에선 “현재의 예술은 파괴의 역사를 주시하는 노력이 고갈되어가고 있으며 새로운 창작을 위한 의지와 역량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한 메시지의 힘도 약해지고 있다”라고 적었습니다. 이 생각엔 변함이 없으신가요. 그렇습니다. 현대 예술은 사회적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자기의 것이 아닌 과거의 것을 탐닉하며 만족하고 있습니다. 부정하고 파괴하는 힘이야말로 예술의 근원입니다. - 근래 일본영화에 대한 고견도 여쭙고 싶습니다. 하마구치 류스케 등 젊은 감독이 세계에서 주목받는 일을 어떻게 보시나요. 흥미도 없고 재미도 없습니다. 무척 성실하다고는 생각합니다만 매번 비슷한 서사를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지 의문입니다. 물론 모든 젊은 감독에게 해당하는 말은 아니지만, 지금 널리 주목받는 일련의 영화들은 대개 그렇다고 느낍니다.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영화를 만든 사람의 의지와 세계를 향한 사유가 더 깃들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 <도주>와 <레볼루션 +1>의 시각적 유사성에 대해서도 여쭙고 싶습니다. <도주>는 시퀀스 사이의 잦은 화이트아웃(백색 화면이 스크린을 뒤덮는 방식)이 활용됩니다. 그리고 두 영화의 마지막엔 빛이 인물들을 집어삼키듯 화면을 지배하기도 합니다. 감정, 정보의 맺고 끊음과 서사의 막간을 종용하는 이 방식은 <이탈리아에서의 투쟁>(1971) 등에서 고다르가 활용했던 검은 화면의 방법론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고다르의 방식과 비슷한 접근일 수도 있겠습니다. 영화를 통해 무언가를 질문하고자 한다는 연출자의 바람이 담겨 있단 점에서 말입니다. 다만 고다르가 영화를 일부러 ‘멈추는’ 쪽에 가까웠다면 저는 반대로 영화의 이미지를 완전한 ‘자유’의 형태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빛이라는 무(無)의 형상이 영화를 녹이면서 관객에게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의 순간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 팔레스타인의 비극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영화를 만들 계획은 없는지요. 물론 있습니다. <13개월>이라는 제목의 각본을 써서 제작위원회까지 꾸렸습니다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결과적으론 아직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에 대한 영화를 구상하기도 했습니다. 지진 직후 일본 내 52개 원전 인근을 돌아다니며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동일본대지진은 분명한 인재입니다. 이를 눈감고 넘어가려는 일본 사회의 태도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크나큰 사건 앞에서 모두가 말을 잃을 수밖에 없던 이유를 되묻는 영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동일본대지진에 대한 2천여편의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다고 들었는데, 저 역시 이를 잊지 않고 재난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자 합니다. 아직은 재정적으로 어려워 진행이 더딘 상태지만 마냥 기다리진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든 찍어야지요. - 반세기 넘게 영화를 통한 투쟁을 이어오셨습니다.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글쎄요. ‘최종’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니까요. 매일 술 마시고 담배를 피우듯이 그저 해나갈 뿐입니다. (웃음) 영화가 이 세상을 해방할 때까지, 그렇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