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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드라마 주인공 시청자가 뽑는다

‘서바이블 오디션’을 통해 시청자들이 드라마 주인공을 직접 뽑는 예능 프로그램이 국내 지상파 텔레비전에서 처음 방영된다. 한국방송은 6월 방송 예정인 드라마 <청춘어람>(가제·연출 강일수)의 주인공을 시청자들이 선발하는 ‘서바이블 스타 오디션’ 프로그램을 4월2일부터 6주일에 걸쳐 방송한다고 최근 밝혔다. <청춘어람>은 한의대생들의 수련 과정, 꿈과 사랑을 그린 청춘 드라마. ‘서바이블 오디션’은 연출을 맡은 방송사 프로듀서가 배역에 맞는 연기자를 고르거나 공개 오디션으로 주인공을 선발해 오던 기존 방식과 달리, 시청자들의 선택이 주인공 확정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한국방송은 홈페이지 공개 오디션 공고를 내고 만 17~28살 남녀를 대상으로 오는 8일까지 오디션 참가 신청을 받은 뒤 1차 서류 심사, 2차 카메라 테스트와 면접을 거쳐 합격자 10명을 가려낸다. 합격자는 6주일에 걸쳐 ‘서바이블 스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주연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된다. 이들은 실제 드라마 현장에서 대본을 받아와 연기를 하거나 액션신, 수중키스신 등 각종 상황에 맞는 연기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5주 동안 매주 한 명씩 후보자가 탈락한다. 남은 5명이 마지막 주에 주인공 한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인다. 3명을 먼저 떨어뜨린 뒤 2명이 최종 결선을 치르게 된다. 최근 케이블 채널 등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미국 리얼리티 서바이벌 프로그램 ‘어프렌티스’ ‘도전! 슈퍼모델’ 등과 비슷한 형식인 셈이다. <청춘어람> 제작진은 “고액 출연료 등 스타 캐스팅을 둘러싼 여러가지 문제점 때문에 배우를 시청자들과 함께 직접 키워 보자는 의도에서 기획했다”며, “신인들을 예능 프로에 출연시켜 드라마 방송 전에 팬층을 확보하는 것도 이번 기획의 목표”라고 말했다. 제작진은 주인공에 뽑히지 않은 9명에게도 드라마 출연 기회를 줄 예정이다. 한편 문화방송도 7월 방송 예정인 드라마 <첫사랑>(연출 한희)의 주인공을 ‘서바이블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뽑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영근 문화방송 예능국장은 “‘서바이블 오디션’ 프로그램을 방영할 경우 편성 문제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다”며, “며칠 안에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영상미 압권…‘한국 드라마 미학’ 새로 쓴다

요즘 “영화 같다”는 말을 듣는 드라마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도 있다. 문화방송의 <궁>(극본 인은아, 연출 황인뢰)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한국 드라마의 미학적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린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방송 <봄의 왈츠>(극본 김지연 황다은, 연출 윤석호) 또한 지난 6, 7일 방영된 1, 2회분에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아름다운 영상으로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낮은 시청률에 가려져 제대로 평가를 받진 못하고 있지만, <천국의 나무>(극본 문희정 김남희, 연출 이장수)도 일본이라는 이국적인 배경과 백색의 눈으로 통일된 색감과 분위기를 화면 가득 채워 영화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지난해 방영된 <프라하의 연인>(극본 김은숙, 연출 신우철)이나 <이 죽일 놈의 사랑>(극본 이경희, 연출 김규태), <패션70’s>(극본 정성희, 연출 이재규), <불멸의 이순신>(극본 이성주, 연출 한준서), 더 거슬러올라가 <미안하다 사랑한다>(극본 이경희, 연출 이형민), <다모>(극본 정형수, 연출 이재규) 등도 영화적 감성을 주는 드라마로 꼽을 수 있다. 이런 드라마들은 모두 공들여 촬영하고 연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값비싼 고화질 (HD) 카메라 등 특수촬영장비 사용에 새로운 카메라 작업과 컴퓨터 그래픽, 정교한 조명, 제대로 만든 세트로 텔레비전 화면의 미장센을 넓히고 있다. 일부 ‘사전제작’ 방식이 도입되고 있는 것도 ‘영화적 드라마’를 가능하게 하는 배경이다. 상당수 드라마가 그날그날 ‘쪽대본’으로 촬영을 하고 방송 직전 최종편집을 끝내는 우리 드라마 제작 현실에서 이 드라마들이 높은 완성도를 보이는 데는 여유있는 제작 일정이 한몫을 했다. 앞으로 드라마 제작 현실이 점차 개선되고, 드라마 시장에도 투자자본이 지속적으로 유입될 전망이어서 ‘영화 같은’ 드라마 제작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시청자는 굳이 티켓을 예매하고 극장에 영화를 보러 나가는 번거로움 없이 텔레비전 리모컨만으로 안방극장에서 오감을 만족시켜 줄 드라마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도 영화처럼” 브라운관 바람났네 한류 힘입은 우호적 투자 바탕 제작비용·기간 크게 늘리고 유능한 인력·첨단장비 동원 미려한 영상·광대한 스케일 담아 1980년대 김종학 피디가 만든 <동토의 왕국>은 텔레비전 스케일을 뛰어넘는 스토리와 비주얼을 담아 ‘영화적’인 드라마로 시청자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세트장 건설에만 100억원 이상이 들어간 <불멸의 이순신>은 ‘블록버스터 해전 사극’이란 표현까지 나올 만큼 규모와 특수효과 면에서 영화 못지않은 평가를 받았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가운데는 문화방송의 <궁>과 한국방송 <봄의 왈츠>가 대표적인 ‘영화 같은’ 드라마로 꼽을 수 있다. 입헌군주제 아래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적 가상 역사물 <궁>은 원색이 조화롭게 사용된 궁궐 내부와 주연배우들의 화려한 전통의상,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듯한 상차림 등 세련된 영상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봄의 왈츠>도 새하얀 눈에 덮인 오스트리아의 산과 들, 노란 유채꽃과 푸른 보리밭 사이의 흙길을 따라 넓게 펼쳐진 바다를 담은 한반도 남쪽 섬마을 풍광, 화려한 색감 등 영상미가 돋보였다. ◇ 드라마 미술에 콘셉트 도입=<궁>은 영화 <내 마음의 풍금>, <혈의 누>에 참여했던 민언옥 미술감독이 전체적인 비주얼을 총괄 감독했다. 영화의 ‘프로덕션 디자인’ 개념(작품 전체의 미술, 색감, 배경, 구도, 빛, 의상, 소품 등을 총체적으로 컨트롤하는 개념)을 드라마에 도입해 좀더 효율적인 관리가 이뤄진 것. 민 감독은 “<궁>은 세트 디자인뿐 아니라 인테리어 소품에서 의상, 음식, 테이블 장식까지 모든 미술에 대해 세심하게 정성을 기울였다”며, “의상의 색깔과 장신구 하나까지 콘셉트를 가지고 작업을 하다 보니 각 개체들이 홀로 빛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서로 시너지 효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그는 “쉽게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으면서도 보통 드라마 영상이 아닌, 영화적이면서도 ‘맛있는’ 디자인이 되도록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촬영을 앞둔 배용준 주연 드라마 <태왕사신기> 역시 영화 <취화선>과 <하류인생>의 주병도 미술감독이 참여한다. <태왕사신기>의 이경석 총괄 프로듀서는 “작품의 전체 콘셉트를 미리 정한 다음, 여기에 맞춰 각 장면을 촬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드라마 세트와 미술의 대형화, 고급화=경기도 오산의 <궁> 세트는 궁 내부 제작에만 15억 여원이 들어갔다. 여기에 가구와 도자기 등 소품비용에 25억 여원을 썼다. 그래서 다른 드라마 촬영 세트와 달리 <궁> 세트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볼거리가 될 만큼 화려하다. 문화방송 특별기획드라마 <신돈>의 경기도 용인 오픈세트도 110억 여원의 제작비에 1년이 넘는 제작기간이 걸려 고려 후기 왕궁과 사찰, 민가 등을 재현함으로써 장대한 스케일의 비주얼을 보여 주고 있다. 문화방송이 준비 중인 사극 <주몽>도 약 2만평의 터에 대규모 세트를 짓고 있으며, <태왕사신기> 역시 제주도에 2만여평 규모로 고구려 광개토대왕 궁궐 등을 건축하고 있다. ◇ 고화질 촬영장비와 특수기법은 필수=<봄의 왈츠>가 아름다운 영상을 보여 주는 데는 첨단 촬영장비가 큰 구실을 한다. 이 드라마 제작사인 윤스칼라 조성우 기획실장은 “<봄의 왈츠>는 영화 촬영용 고화질(HD) 소니 F-900 카메라와 독일제 고화질 특수 렌즈로 촬영해 영화 못지않은 화질과 영상을 만들어 낸다”고 말했다. 보통 드라마는 줌렌즈 하나로 촬영하지만, <봄의 왈츠>는 단렌즈 6개에 줌렌즈 2개, F-900 카메라 2대로 찍고 있다는 것. 조 실장은 이어 “장면마다 가장 적절한 노출과 영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다른 드라마보다 촬영에 몇 배 이상의 공을 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기존의 틀을 벗어난 카메라의 역동적인 동선과 영화에서 많이 사용되던 컴퓨터 그래픽 작업, 와이어 액션 등도 드라마의 영상을 한단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영화평론가 남다은씨는 “영화적인 제작기법이 과감하게 드라마에 도입되고 있다”며, “특히 <다모>에서 <불멸의 이순신>, <궁>에 이르기까지 사극과 퓨전 사극에서 이런 기법이 빛을 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 변화의 배경과 전망=이런 변화는 일단 시청자들의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민언옥 감독은 “요즘 젊은층은 그림이 좋지 않으면 극의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느낀다”라며, “드라마는 줄거리가 우선이지만 이를 완성해 주는 것이 영상”이라고 설명했다. 드라마 제작환경이 변화하고 있는 점도 변화를 가능하게 한 이유가 된다. 조성우 실장은 “영화처럼 완성도를 보이는 드라마들은 대부분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제작에 나선 작품들”이라며, “사전제작제는 풍광이 빼어난 촬영장소를 찾아내는 등 치밀한 사전 준비는 물론이고, 좋은 영상을 만드는 데 필수 요소인 조명 등을 충분한 시간을 두고 세팅할 수 있어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유능한 제작진을 기용해 대형 세트와 고품격의 미술작업을 거쳐 값비싼 고화질 촬영장비로 드라마를 사전제작하려면 선결조건이 이에 걸맞은 제작비이다. <쾌걸춘향>, <마이걸> 등을 만든 전기상 피디는 “드라마 한 편 제작에 몇십억원 이상 드는 제작비는 한류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대형 독립제작사들에 몰려들고 있는 국내외 투자자본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 피디는 이어 “뉴미디어 시대를 맞아 하나의 콘텐츠를 다양한 채널에 공급할 수 있게 됐다”며, “앞으로 드라마 제작도 이를 고려해 영상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별들의 안방귀환 배용준·손예진·감우성 등 주연으로…출연료 상승·좋은 작품 덕 영화 배우들이 티브이 드라마로 돌아오는 현상이 눈에 띈다. 배용준, 손예진, 감우성, 성현아, 양동근, 윤소이, 천정명 등은 극장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던 스타들이다. 방송작가 김일중씨는 영화에서 ‘몸값’을 높이던 배우들이 일제히 티브이로 돌아오는 이유를 두 가지 작품에서 찾는다. 한국 드라마의 지형도를 바꾼 <대장금>과 <내 이름은 김삼순>이 그것이다.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배우 김선아가 보여줬던 캐릭터 변신은 사건이었습니다. 브라운관의 대중적 파급력을 이용해 새로운 이미지로 거듭나려는 배우들은 전처럼 상대역을 따지지 않고, 배역이 참신하면 출연을 결정하는 추세입니다.” <대장금> 이후 훌쩍 높아진 드라마 출연료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라고 한다. 곧 방영될 드라마 <연애시대>에 출연할 손예진은 회당 3천만원의 출연료를 받는데, 이는 <대장금>의 전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 한류 수출 붐과 외주제작 활성화로 영화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에게도 ‘티브이 진입 장벽’이 낮아졌다. 드라마 독립제작사들이 우수한 제작진 확보 경쟁을 벌이는 덕분에 많은 작가와 감독들이 활발하게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간다. 감독의 입장에서는 ‘장편’을 시도할 기회이며, 작가들에게는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이다. 영화 <잠복근무>, <여고괴담4>와 드라마 <불량주부>의 시나리오를 쓴 설준석 작가는 “영화는 감독 중심인 데 비해, 드라마는 작가 몫이 크다. 작가로서는 정당한 대접을 받는다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고 밝힌다. 브라운관으로 돌아오는 이들은 대부분 그 이전에도 방송 경험이 있던 사람들이다. 대작 기대를 받고 있는 드라마 <태왕사신기>의 주경도 미술감독과 <궁>의 민언옥 미술감독 모두 문화방송 출신이다. 처음 드라마를 시작한 이들에게는 속도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사전제작 비율이 기껏해야 50%에 이르는 드라마의 ‘초치기 제작 환경’은 아직 크게 개선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영화로 대거 진출한 방송인들이 2006년 다시 돌아오는 상황을 두고 드라마가 자축하기는 이르다. 투자 이전에 제작 환경이 개선되어야 지금의 황금기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눈 높아지는 시청자들 무서워” ‘궁’ 연출 황인뢰 인터뷰 문화방송 드라마 <궁>의 황인뢰 피디는 일찍부터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드라마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고개 숙인 남자>, <연애의 기초>에서 보인 감수성과 연출력에 힘입어 영화 <꽃을 든 남자> 감독을 맡았으며, 2005년에는 다시 <한뼘드라마>로 호평을 받았다. 이번에 연출을 맡은 <궁>도 영화 같은 드라마라는 찬사 속에 20%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올리고 있다. 황인뢰 피디를 만나 제작 과정에 대해 들어 보았다. “<궁>은 2년 동안 공을 들이며 제작사인 에이트픽스가 영화, 방송 가리지 않고 좋은 인력을 찾다 보니 영화인들의 참여가 많았습니다.” <궁>은 영화 <텔미 썸딩>과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의 인은아 작가가 극본을 맡았고, 영화 <유령>, <내추럴시티>에서 실력을 보인 민병천 감독이 시각 효과를 책임졌다. 영화 <혈의 누>를 했던 민언옥 감독은 미술로 참여했다. “<궁>은 영화 같은 느낌을 주려고 고화질(HD)급 16 대 9로 제작했습니다. 수목 시간대 미니시리즈에서 16 대 9의 화면을 시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왕 시작한 일이라 카메라도 영화 <스타워즈>에서 사용했던 것과 같은 기종을 사용하고, 모든 장면에서 다초점 렌즈를 일일이 바꿔 끼우며 최대한 선명도를 높이려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다 보니 소품, 의상, 세트의 색을 통일하는 데만도 각별히 신경을 써야 했단다. “영화에서는 당연한 작업이지만, 50인치 이상의 화면일 때만 차이를 느낄 수 있기에 여지껏 드라마에서는 이런 시도를 하는 데 인색할 수밖에요.” 황 피디는 “시청자와 관객은 우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존재”라고 말했다. 한심한 영화에 관객이 몰리기도 하고, 좋은 드라마를 외면하기도 한다는 것. 그러나 갈수록 시청자들의 심미안이 높아지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빛의 마술사’ 황 피디도 시청자들의 눈높이는 늘 부담스럽다. “채경이 궁에 들어가기 전과 후의 화면색을 다르게 하고, 주인공 네 사람에게 각각 캐릭터에 맞는 색채를 부여하는 등 여지껏 드라마에서 해보지 않았던 시도를 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전회 사전제작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현실에서 처음 의도했던 점들을 완벽히 실현할 수는 없었다. “사실 <궁>에서는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의 30%밖에 실현하지 못했습니다. 이 아쉬움은 다음 작품에서 풀겠지요.” 애초 20부작으로 기획됐던 <궁>은 높은 시청률에 힘입어 24부작으로 연장 방영된다.

제4회 방콕국제영화제 견문록 [2]

국경을 넘는 범아시아 프로젝트 <보이지 않는 물결> 푸미콘 국왕이 재위 60년 다이아몬드 희년을 맞는 2006년은 타이 곳곳에서 축제가 꼬리를 무는 ‘타이 대초청’(Thailand Grand Invitation)의 해다. 타이 정부는 영화제 개막 전야인 16일 정부청사 앞마당에서 파티를 열고 ‘타이 대초청’의 축포를 울렸다. 권력 남용과 탈세로 제기된 위헌 심판 탄원이 그날 아침 헌법재판소에 의해 기각돼 한숨을 돌린 탁신 친나왓 총리가 잔뜩 잠긴 목소리로 축제의 개막을 선언했다. 왕의 그림자는 영화제 어디에나 일렁였다. 엄밀히 말해 영화제 관객이 맨 처음 본 타이 필름은 펜엑 라타나루앙 감독의 개막작 <보이지 않는 물결>이 아니라 모든 출품작 앞머리에 꼬박꼬박 상영된 150억원 예산의 시대극 블록버스터 <나레수완>의 예고편이었다. 차트리찰레름 유콜 왕자가 감독한 <나레수완>은 미얀마에 대항해 아유타야 왕국의 독립을 지킨 왕의 전기영화로, 감독은 타이의 국가적 이벤트였던 자신의 전작 <수리요타이>(2001년, 3억2100만바트 수입)에 도전하고 있다. <나레수완>은 프레스센터 문 위에 배너를 드리웠을 뿐 아니라 상영관으로 통하는 길목 입구에는 아예 테마파크식 성채를 짓고 성문과 망루에 분장한 보초들을 종일 세워두었다. 타이의 영화관과 공연장마다 흐르는 <왕의 노래>도 국제영화제라 해서 예외를 두지 않았다. 첫 상영인 개막작 기자 시사에서 앞줄에 앉았다가 일동 기립하는 장내 움직임을 뒤늦게야 알아차린 기자는, 백성을 보살피는 왕의 덕을 칭송하는 영상과 노래가 흐르는 내내 타 문화를 존중하지 못한 자의 부끄러움에 몸을 움츠려야 했다. 반면, 개막작 <보이지 않는 물결>은 “국적은 나를 규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온 펜엑 라타나루앙 감독의 다국적 프로젝트답게 정주하지 못하는 자의 관점으로 인생과 운명을 그리는 영화였다. 크리스토퍼 도일의 무심한 카메라 앞에 선 일본의 아사노 다다노부와 한국의 강혜정, 홍콩의 증지위, 그리고 타이의 툰 히라니아섭 등은 자신과 상대방의 언어 때로는 제3의 언어까지 동원해 가까스로, 하지만 진심으로 대화한다. 보스의 여자와 얽히면서 천천히 수레바퀴 밑으로 끌려들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달콤한 인생>을 추억하게 했으니 꼭 초콜릿 무스가 영화에 등장해서만은 아니었다. 방향을 잃은 여행자의 혼미한 감각을 재현해냈다는 점만으로도 <보이지 않는 물결>은 먼 이방에서 찾아간 관객에게 개막작으로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전문 프로듀서군이 탄탄하지 않은 타이 영화계는 이름을 알 만한 감독들이 서로의 영화를 제작하는 품앗이 풍습을 가지고 있다. 아시아 경쟁부문에 나온 <세 친구>는 <보이지 않는 물결>을 공동제작한 평론가 출신 밍몽쿤 소나쿤이 아디티아 아사랏, 푸민 친나라디와 함께 감독한 청춘영화. 화보 촬영을 위해 섬에 온 10대 모델 마미와 그녀와 동행한 두명의 단짝 친구의 여름날을 현장의 자발성을 수용한 시나리오와 디지털카메라로 따라잡았다. 비디오 다이어리 같기도 하고 연예정보 프로그램 같기도 한 이야기 안에 진실의 사금파리들이 반짝인다. 아시아 경쟁부문의 또 다른 타이 청춘영화 <주석광산>은 <세 친구>와 동시대 영화라고 믿기 힘들었다. 실화에 기초한 베스트셀러를 각색해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타이 대표로 출품됐다는 이 영화는 대학에서 제적된 뒤 호주인이 운영하는 광산에서 4년간 노동규율과 인생의 참지식을 터득하는 청년의 ‘도제 시절’을 교육용 산업영화의 필치로 그린다. 1997년 논지 니미부트르, 펜엑 라타나루앙 등의 감독들이 ‘타이영화 르네상스’를 일으키기 전까지 시장의 주류였던 타이 청춘영화는 들쭉날쭉하게 진화하고 있었다. 2월21일 짐 톰슨 하우스(타이 실크의 명가)에서 젊은 타이 감독들의 차기작 간담회를 진행한 <방콕 포스트>의 평론가 콩 리트디는 “가장 흥미로운 타이 청춘영화는 인디 진영에서 나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날 패널로 참석한 순스카 판시티보라쿤 같은 퀴어 뉴웨이브 감독이 그가 지칭하는 인디 진영의 예. 순스카는 일본, 타이, 영국의 젊은이들이 결성한 밴드의 생활을 그린 <푸통>을 만들고 있으며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이 <인티머시>의 촬영을 끝내는 10월에 그를 제작자로 맞아 <핫브레이크 파빌리온>을 찍는다. 이날 간담회에는 판시티보라쿤 외에도 성공한 로맨스 <디어 다칸다>의 콤크릿 트위몰과 <셔터>에 이어 <얼론>- 이 영화는 한국 배우와 로케이션을 쓴다- 을 함께 연출할 반종 피산타나쿤과 팍품 윙품이 상업영화를 대표하는 차세대로 초대됐고, 다큐멘터리스트 산티 타에파니히 감독이 독립영화 진영을 대표해 순스카와 나란히 앉았다. 평론가 콩 리트디는 타이영화에 세대 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지 묻는 질문에 “논지 니미부트르, 펜엑 라타나루앙, 위시트 사사나티앙 세대는 광고계 출신이지만 이들은 영화학교 출신이다. 선배들보다 더 어린 나이에 영화 만들기를 시작했고 덜 무거운 주제의식을 갖고 있는 이들이 다가오는 1, 2년 안에 어떤 성취를 보여줄지가 타이영화 미래의 관건이다”라고 말했다. 이형석의 <공사중>, 아시아 단편영화상 수상 방콕국제영화제는 국제 경쟁, 아시아 경쟁, 심사위원 선정 신인, 국제 다큐멘터리, 아시아 단편의 다섯 개 부문으로 나누어 골든 키나리 상을 수여한다. 왕족이 참석하기 때문에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이 소감을 발표하지 못한다는 것도 방콕영화제의 독특한 풍경이라고 한다. 2월25일 발표된 올해의 국제 경쟁부문 작품상은 “종교의 부작용을 시의적절하게 환기한” 디파 메타 감독의 <물>에, 감독상은 <친절한 금자씨>의 박찬욱 감독에게 돌아갔다. 최우수 남우주연상 수상자로는 남아공과 영국이 합작한 <초치>의 프레슬리 차웨네야게, 최우수 여우주연상 수상자로는 <트랜스아메리카>의 펠리시티 허프먼이 호명됐다. 아시아영화 경쟁부문에서는 도안 민 푸옹과 도안 탄 은기아 감독의 베트남영화 <침묵의 신부>가 수상했고 이형석 감독의 <공사중>이 아시아 단편상을 차지하는 기쁨을 누렸다. 타이 관광청이 기자들에게 제공한 견학 프로그램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방콕영화제는 영화 예술의 현재를 관객, 영화인과 공유하는 과제보다 영화 촬영지와 후반 작업지로서 타이가 지닌 장점의 프로모션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그 또한 영화제가 가질 수 있는 방향성의 하나임은 틀림없지만, 모든 국제영화제의 장기적 생명력은 자국 영화산업과 영화 문화의 건강과 풍요를 근간으로 한다는 점에서 방콕영화제 집행부는 “투자의 우선순위를 다시 생각하라”는 타이 영화인들의 바람을 좀더 심각하게 경청할 필요가 있다. 고급스러운 상영시설과 이채로운 문화, 상냥한 시민과 풍족한 관광 요소를 갖춘 도시 방콕의 국제영화제가 정작 작심하고 지어올려야 할 구조물은, 타이 영화산업과 문화의 인프라와 남아시아영화의 독보적 창이 되겠다는 정당한 야심일 것이다. 지어라, 그러면 부르지 않아도 그들이 올 것이다. 태국 최초의 3-D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깐 꾸앙> 조국의 독립을 지킨 왕의 코끼리 영화제를 찾은 기자단의 마지막 방문지는 칸타나 스튜디오의 후반작업 시설과 애니메이션 프로덕션이었다. 1951년 라디오 방송에서 출발한 칸타나는 영화 및 TV 프로그램 제작, 영상물 후반작업, 애니메이션 제작, 출판, 음반을 사업 분야로 아우르고 있는 멀티미디어 그룹이다. 특히 칸타나가 자랑하는 것은 필름 스캔, 현상, 텔레씨네, 사운드 등 원 스톱 방식으로 후반 작업 전체 공정을 처리할 수 있는 자회사 ‘포스트 방콕’이다. 칸타나 애니메이션과 록슬리 비디오 포스트가 1:1로 출자해 1998년 설립한 ‘포스트 방콕’은 현재 타이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다. 체류비용과 인건비가 저렴한 지역적 장점을 활용해 세계 시장에 구애하고 있는 포스트 방콕이 후반 작업한 장편영화로는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셔터> <메콩의 만월파티> <뉴 폴리스 스토리> 등이 있다. 제작분야에서 올해 칸타나가 기대를 걸고 있는 프로젝트는 태국 최초의 3-D 장편애니메이션 <깐 꾸앙>이다. 칸타나 관계자는 “운이 좋았다. 우리가 마침 창작에 욕심을 품었을 때 타이 정부도 애니메이션 산업에 의지를 가졌다. 일단 정부 지원을 약속받자 그걸 단초로 소니, 타이항공, 방콕 은행 등의 스폰서를 구할 수 있었다.”고 귀뜸했다. 80%가 완성된 85분 길이의 <깐 꾸앙>은, 1592년 버마로부터 아유타야의 독립을 지킨 나레수완 왕을 보좌한 코끼리의 일대기다. 아버지 없이 자란 개구쟁이 깡 꾸안은 온갖 모험 끝에 강한 어른으로 자라 코끼리 전투에서 왕의 승리를 돕고 최고의 명예를 하사받는다. 방문한 기자들에게 공개된 <깡 꾸안>의 10여분 분량은, 디즈니적인 영웅 성장담의 스토리 라인을 짐작하게 하는 한편 할리우드보다 단순미를 추구하는 캐릭터 디자인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깐 꾸앙>의 정체성에 대한 칸타나 애니메이터들의 생각은 확고했다. 애니메이션 부서 책임자 오차라 키즈칸자나스는 코끼리가 타이 문화에서 차지하는 특수한 지위를 언급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타이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구를 일으킬 수 있는 스토리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또 시각적 스타일에 관해서는 “타이의 조형적 전통과 색감을 취했다. 커브와 직선이 어우러진 배합은 타이 문자와 비슷하며 이는 인도나 버마의 보다 복잡한 곡선, 네모반듯한 중국과 한국의 선 사이에 있는 중간적 형태다.”라고 설명했다. <깐 꾸앙>은 타이 메이저 사하몽콘에 의해 올해 5월 자국에서 개봉되고 이후 해외 배급을 모색할 예정이다.

<올웨이즈 3초메의 석양>, 일 아카데미 싹쓸이

야마자키 다카시 감독의 <올웨이즈 3초메의 석양>이 일본 아카데미상을 휩쓸었다. 이 영화는 3월3일 도쿄 신다카나와의 프린스 호텔에서 열린 ‘제29회 일본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요시오카 히데타카)을 비롯, 남녀조연상(쓰쓰미 신이치, 야쿠시마루 히로코), 각본상, 미술상, 촬영상, 조명상, 음악상 등 총 12개의 트로피를 가져갔다. 이는 1997년 13개 부문을 석권한 <쉘 위 댄스>에 이어 가장 많은 부문 수상이며, 2003년 <황혼의 세이베이>와는 동일한 성적이다. <올웨이즈…>는 1950년대 도쿄를 배경으로 실패한 소설가가 고아 소년과 함께 살아간다는 내용의 영화로 2005년 일본에서 약 2700만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감독상을 수상한 야마자키 감독은 “마치 텔레비전의 몰래카메라 같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남우주연상의 요시오카 히데타카는 “작품상을 받은 게 가장 기쁘다. 연기가 하기 싫어 현장에 가기 싫을 때마다 천국에 계신 아쓰미 기요시(일본의 국민배우, 서민적인 연기로 유명하다) 선생님을 생각했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올웨이즈…>가 수상에 실패한 유일한 부문인 여우주연상은 <북의 영년>의 요시나가 사유리에게 돌아갔다. 그녀의 111번째 출연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메이지 유신 시대를 배경으로 동토인 홋카이도에서 살아가는 이주민들의 이야기. 그녀는 시상대에서 “<북의 영년>에서 수상자가 나오지 않아 마음이 괴로웠다. 영화의 신이 미소를 보내주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했다”며 일본아카데미상 통산 4번째 여우주연상 수상의 기쁨을 토로했다. 그녀는 이미 1985년 <오항>과 <천국의 역>, 1989년 <꽃의 란>과 <학>, 2001년 <나가사키의 한가롭던 시절>로 세 차례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한편 이즈쓰 가즈유키 감독의 <박치기!>에서 재일 조선인으로 분했던 여배우 사와지리 에리카는 화제의 배우상과 신인상을 수상했고, 노래 <눈의 꽃>의 가수로 더 유명한 배우 나카시마 미카는 <나나>로 신인상을 차지했다.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문소리

<오아시스> <바람난 가족> 등에 출연하면서 배우 문소리(32)에게는 ‘센 캐릭터’라는 표현이 자주 따라 붙었다. 도발적인 표정과 자세를 드러낸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의 포스터는 다시 이 표현을 떠오르게 한다. 포스터나 노출장면 등 겉꺼풀만 보자면 조은숙이라는 캐릭터 역시 세다. 그러나 한꺼풀 벗기고 들여다 보면 예쁜 척, 우아한 척, 지적인 척, ‘척’으로 둘러싸인 그 인물에서 보통 사람들의 ‘뒷담화’에 오르내리는 주변의 누군가, 그리고 문득 뜨끔거리는 내 뒷통수를 느끼게 된다. “나도 센 거 하기 싫었어요. 도발, 모험 이런 거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고. 그런데 정답처럼 딱 떨어지는 영화나 인물은 재미없잖아요. 캐릭터를 만들어가면서 어떤 게 나올까하는 긴장감이 좋고. 생각해보니 이것도 악취미네(웃음)” 내숭과 위선으로 둘러싸인 은숙의 캐릭터는 솔직하고 직설적인 편인 문소리의 성격과 판이하다. 문소리 자신도 은숙이라는 여자를 주변에서 알고 있었다면 “재수없어했을 인물”이다. “처음에는 이 여자의 빤한 내숭과 ‘척’하는 성격을 만들어가는게 즐거웠어요. 웃기잖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 수록 내가 그녀의 진짜 욕망에 무심했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진심이 별거겠어요. 잘 살고 싶고, 쪽팔리기 싫고, 사랑받고 싶고. 사람 마음이 다 비슷한 거 잖아요. 그런 점에서 좋아할 수는 없어도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죠.” 진심이야 어쨌거나 연기와 제스추어로 하루하루를 사는 은숙은 어떻게 보면 진짜 ‘배우’다. 그러니까 문소리는 이 영화에서 배우를 연기하는 배우인 셈이다. “잘난 척하는 은숙이 정신나간 거 처럼 보이지만 생각해보면 배우라는 직업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누군가 만들어준 세계에 퐁당 빠져서 그게 진짜 자기의 세계인 것처럼 착각하기 쉽잖아요.” 배우 문소리 역시 가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헷갈린다고 한다. “일 때문에 좋은 옷 입고, 비싼 화장하지만 배우가 아니라면 이러고 살겠어요? 그런데 이런 게 익숙해지면 마치 내가 진짜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도취에 빠져 살 수도 있는 거죠.” 지금 대학로에서 공연하고 있는 연극 <슬픈 연극>은 문소리에게 “정신 번쩍 들게 하는” 예방 주사 한방과도 같다. “프로 무대는 처음인데 연극을 하면서 밥맛이 좋아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사람과 부딪힌다는 게 이런 거구나 매일 새로워요.” 다음달부터는 텔레비전 드라마 <태왕사신기> 촬영에 들어간다. 영화에서 연극으로, 텔레비전으로 바쁜 걸음을 시작한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영화하다가 텔레비전 한다고 하면 인지도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사실 저는 지금이 좋아요. 문소리 이름은 많이 아는데 얼굴은 잘 몰라서 사는데 별 지장이 없는 정도(웃음). 그냥 연기고 연출이고 다양한 분야가 장르를 넘나들면서 작업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래야 서로 도움이 되면서 발전하는 길이 아닐까 하는 거죠.”

<시티즌 독>의 위시트 사사나티앙 감독

수은주가 35도를 가리키는 비현실적인 2월의 일요일. 방콕의 수쿰윗 99 구역에 자리한 프로덕션 ‘필름 팩토리’의 문을 두드렸다. 위시트 사사나티앙 감독은 촬영 중이었다. 그가 찍고 있는 것은 영화가 아니라 CF였다. 위시트 사사나티앙 감독에게 CF는 기분전환용 일거리가 아니다. 낙숫물이 고이길 기다리듯 장편영화의 투자를 끈기있게 추진하면서 부지런히 CF를 연출하는 것은 위시트 사사나티앙 감독의 일상이다. CF는 그에게 생계 기반일 뿐 아니라 장편영화에서 시도하려는 기법을 테스트해보는 호사스런 실험실이기도 하다. 어렵사리 착수한 장편영화에서 시행착오를 범하는 사치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혹시 광고주는 그 사실을 아냐?”고 묻자 감독은 의젓한 개구쟁이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물론 낙숫물이 대야를 채우려면 만만찮은 시간이 필요하다. 데뷔작 <검은 호랑이의 눈물>(2000) 이후 4년 걸려 두 번째 영화 <시티즌 독>(2004)을 내놓은 위시트 사사나티앙은 아직 세 번째 영화 <핫 칠리 소스>의 스케줄을 기약할 수 없다. 위시트 사사나티앙의 영화들도 더디게 시간을 새긴다. 그의 영화들은 대사가 있는 무성영화라는 평을 얻곤 한다. 극중 인물이 무엇을 말하고 행동하느냐보다 어떤 색깔로 칠해진 방에 어떤 구도로 서 있는지가 종종 더 중요해 보이기 때문이다. 칸영화제 최초로 공식 상영된 타이영화로 기록된 그의 입봉작 <검은 호랑이의 눈물>은, 1950년대 타이영화와 할리우드 서부극의 양식과 정서를 시침 뚝 떼고 재현하는 뚝심으로 관객을 항복시켰다. 서구의 평자들은 세르지오 레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에 빗대어 그의 영화에 부랴부랴 ‘톰양쿵 웨스턴’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시골 청년이 방콕에 상경해 한 여자를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인해 도시의 소시민으로 길들여지기까지를 그린 두 번째 영화 <시티즌 독>은 ‘방콕판 <모던 타임즈>’라는 반응을 얻었다. 위시트 사사나티앙 감독은 “따뜻한 슬픔이 깃든 찰리 채플린의 코미디를 버스터 키튼의 그것보다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그의 주인공 포드는 채플린의 작은 떠돌이보다 훨씬 순응적이고 체념도 빠르다. 아마도 그건 포드가 환생을 믿는 타이 청년인 때문이겠지만. 중간중간 스탭의 연락을 받으면서도 위시트 사사나티앙의 눈빛과 말투는 호젓했다. “너무 열렬히 찾으면 도망치는 것들이 있다”는 <시티즌 독>의 슬로건은 감독의 일기장 속표지에 씌어진 다짐 같았다. -CF 출신 감독이라는 사실에 근거해 평론가들은 당신이 시각적 화술에 능한 동시에 상업적 감각이 발달해 있다고 평가하곤 한다. =타이 국내의 평가는 훨씬 인색하다. CF 출신이라 진지함이 없고 단편적인 영상미에 치우치는 예술성 낮은 감독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1999년 흥행작 <낭낙>의 각색 작가로 참여한 것이 영화 경력의 시발점이었다. 전통적인 원혼 이야기를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로 로맨틱하게 재해석한 것이 <낭낙> 각색의 핵심인데 당신의 의견도 반영된 결과인가. =타이에서 공포영화는 많이 만들어지고 많은 사람이 보는 주류 장르다. 그래서 <낭낙>의 감독과 나는 거꾸로 드라마쪽에 무게 중심을 두려고 결심한 거다. -데뷔작 <검은 호랑이의 눈물>은 할리우드 서부극 또는 산을 폭파하고 마을을 불태우는 액션이 등장하는 1950년대 타이영화 양식을 차용했다. 기존의 타이영화와 차별되는 참신한 영화를 추구한 신인으로서 모던한 영화양식보다 오래된 스타일에 끌린 이유에 호기심이 간다. =요즘 영화보다 옛날 영화를 좋아한다. 나는 1950년대와 1960년대가 예술적으로나 사회 전반에서 최고의 황금기라고 생각한다. 음악도 건축도 영화도 1970년대부터는 혼합과 쇠퇴의 길을 걸었다고 본다. 디스코와 가라오케의 1980년대는 얼마나 끔찍했나. 홍콩영화건 할리우드 영화건 타이영화건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은 ‘옛날 영화’라는 이름으로 국적에 상관없이 한 덩어리로 내게 영감을 주었다. -<검은 호랑이의 눈물>은 칸영화제에서 최초로 공식 상영된 타이영화였다. 그런데 칸영화제쪽이 재편집을 요구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사실이라면 그 요구가 불편한 감정을 일으키지는 않았나. =재편집은 배급사의 요구였고 칸에서는 온전한 편집본이 상영됐다. 문제는 미국 배급사 미라맥스였는데, 그들은 내 의사와 무관하게 필름을 멋대로 재편집해서 마지막을 해피 엔딩으로 바꾸었다. 그것도 극장 개봉이 아니라 선댄스영화제에 상영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 강간당한 느낌이었다. -당신의 두 장편은 스타일의 일관성이 인물이나 여타 요소보다 중요한 영화다. 이것은 많은 영화적 요소들이 선험적으로 결정돼 있다는 뜻이며 바꿔 말하면 배우에게 운신의 폭이 좁을 수도 있는 영화라는 뜻이다. 배우 캐스팅과 연기 연출에서 당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보통 TV 드라마 출신의 타이 배우들은 과장된 연기를 하는 일이 많다. 나는 내 영화 스타일에 맞는 신인을 캐스팅해 감독의 방식대로 훈련한다. 예컨대 <시티즌 독>의 마하사무트 분야락은 극중 포드처럼 말이 느리고 과묵한 성격이다. 한편 진 역할의 상통 켓우통은 진과 비슷하게 예민하고 조증이 있었다. <검은 호랑이의 눈물>은 외국계 여배우 스텔라 말루치를 기용했는데, 그것은 1950년대 영화들이 타이영화나 외국영화나 모두가 인도 여성 같은 짙고 검은 머리칼을 가진 여배우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당신의 영화들을 포함해서 타이영화를 보면 타이 국민들에게 방콕은 단순히 일반적인 수도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는 도시 같다. 주인공이 방콕으로 떠나는 것이 내러티브의 대전환을 이루는 경우가 잦다. 방콕은 당신들에게 어떤 곳인가. =타이는 개발이 심하게 편중돼 방콕과 다른 지방도시의 차이가 크다. 돈을 벌거나 공부하고 싶거나 다른 식으로 발돋움하고픈 젊은이들은 모두 방콕으로 온다. 대학도 모두 방콕에 몰려 있고 졸업 뒤 일자리도 거의 다 방콕에 있다. 그래서 방콕은 실체와 무관하게 ‘낙원’ 같은 상징성이 있다. -당신의 동료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은 방콕에 대한 혐오감을 여러 번 표명한 바 있고, 펜엑 라타나루앙 감독은 국적으로 인해 규정되고 싶지 않다는 입장을 영화나 인터뷰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방콕 토박이인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방콕은 수도가 된 지 200년밖에 안 된 신도시다. 방콕 시민의 90%는 중국 혈통과 섞여 있고 나의 경우 거의 100% 중국 혈통이다. 나는 혈통이나 국적보다 고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방콕을 싫어하진 않는다. 그러나 좋아하는 인간도 미울 때가 있듯이 이 도시도 교통체증, 물신주의 등의 어둠이 있다. 하지만 <시티즌 독>의 주제도 그렇듯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행복은 나의 생각에 달렸다. -<시티즌 독>은 “방콕에 가면 꼬리가 생긴다”는 할머니의 예언으로 시작한다. 꼬리는 부패나 타락의 상징으로 짐작되는데, 나중에는 방콕에서 유일하게 꼬리가 돋지 않은 시민이던 포드에게도 꼬리가 돋는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가 그것을 한탄할 만한 전락으로 묘사하지 않고, 삶의 자연스런 과정으로 긍정한다는 점이다. =꼬리가 의미하는 것은 일종의 트렌드다. 남들이 좋다면 너도나도 소유하고자 하는 물건 같은 거다. 그런데 유행은 계속 바뀌기 때문에 급기야는 꼬리가 없는 포드가 스타가 된다. 당신 말대로 <시티즌 독>은 그것을 긍정한다. 포드는 내게 이상형의 인간이다. 그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런 인간에게는 꼬리가 돋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을 수 있다면 그의 세계는 보존된다. 홀로코스트 속에서도 한줌의 행복을 찾는 것이 인간 아닌가. -<검은 호랑이의 눈물>이 전형적인 비극적 엔딩이었다면 <시티즌 독>은 비전형적인 해피 엔딩이다. =실제로도 해피 엔딩이라고 하기 어렵다. 자본주의의 노예로 살아갈 것을 인정한 셈이니까. -<검은 호랑이의 눈물>은 한줄로 이어지는 전형적 줄거리를 갖고 있는데, <시티즌 독>은 다양한 캐릭터의 에피소드들이 사슬처럼 사방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부인의 소설이 원작이라고 들었는데 이야기에 살을 붙여간 과정이 궁금하다. =방콕을 조롱하는 유머들을 먼저 구상한 다음 그들을 사랑이라는 한줄의 주제로 꿴 결과가 <시티즌 독>이다. 내용은 러닝타임에 맞추기 위한 생략을 제외하면 엔딩을 포함해 원작소설에 충실하다. -짧은 출장이었지만 현세에 집착하지 않는 타이 사람들의 심성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것은 너무 찾아 헤매면 도망간다. 그러나 찾기를 멈추면 먼저 찾아오기도 한다”는 <시티즌 독>의 슬로건은 타이 특유의 사고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은 일상생활에서 나온 이야기다. 어떤 물건을 쓰려고 찾으면 절대로 나타나지 않다가 그냥 가만히 있으면 불쑥 눈에 보이는 일이 있지 않나? 하지만 타이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말해도 좋다. 타이는 농경사회이기 때문에 씨를 뿌리고 수확의 때를 기다리는 문화를 갖고 있다. 서둘러도 소용없는 것이다. -<검은 호랑이의 눈물>은 마치 영화를 모방한 극장 간판 그림을 다시 모방한 듯한 영화였다. 위시트 사사나티앙의 영화라 하면 독특한 팔레트부터 떠오른다. 나비파 화가인 고갱이나 보나르의 그림 같은 색감이다. 전작과 <시티즌 독>의 색채를 내는 기술적 과정에 차이가 있다면 무엇인가. =색채 구조는 타이 전통 민간 예술에서 색의 영감을 받았다. 보통의 타이 사람들은 예술적 지식이 없어서 쓸 수 있는 가장 많은 가짓수의 색깔을 쓰곤 한다. 시골의 극장 간판이 예다. 글씨 한자에 27가지 색깔을 쓰기도 하는데, 그런 색의 조화가 아름답게 느껴진다. 기술적으로 <검은 호랑이의 눈물>은 CG를 쓰지 않고 옛날 영화의 촬영기법을 그대로 시도했다. 반면 <시티즌 독>은 테크놀로지를 이용했다. 텔레시네(필름을 비디오로 전환하는 작업)를 떠서 색을 일일이 보정하는 과정을 ‘포스트 방콕’(칸타나 스튜디오의 후반작업 전문회사)에서 했다. -색 보정뿐 아니라 <시티즌 독>에는 인형 애니메이션, 초점거리가 다른 렌즈, 소도구 등을 동원해 다채로운 시도를 했다. 혹시 4년에 한번 영화를 만들다보니 축적된 아이디어를 한번에 쏟아낸 건 아닌가. =(웃음) 그보다는 원작소설의 비현실적 에피소드에 충실하려다보니 동원된 기법들이다. -펜엑 라타나루앙 감독이 <시티즌 독>의 내레이션을 맡았다. 타이 감독들은 동료의 작품에서 제작자 역을 맡는 일도 드물지 않다. 동세대 감독과 서로의 창작에 영향을 끼치는 커뮤니티가 존재하나. =펜엑 라타나루앙, 지라 말리쿤, 용유스 통큰턴, 논지 니미부트르 등 4∼5명의 감독과 가깝고 술자리도 자주 한다. 필름 팩토리에서 함께 일하는 펜엑은 사무실이 바로 여기 위층이다. 그는 목소리가 좋아서 내 영화뿐 아니라 많은 CF에서 내레이션으로 올리는 수입이 짭짤하다. “하이네켄” 이렇게 딱 한마디해서. 물론 부럽다. (웃음) -당신의 영화를 포함한 일련의 타이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이 개인이나 제도와 빚는 갈등을 끝까지 밀어붙여 상대를 파괴하거나 자신을 파괴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에 흥미를 느꼈다. 달관이나 포용의 대단원이 많다. 반면 대부분의 할리우드영화나 한국영화는 적을 부수거나 자폭하는 길을 간다. 피상적인 연상이지만, 타이 국민에게 피식민지 경험이 없다는 사실이 영화의 스토리텔링에 어떤 흔적을 남긴 것이 아닐까 싶었다. =역사적 경험 차이가 아시아 각국 영화에 차이를 남겼을 거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타이는 식민 지배를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기 욕구를 치열하게 표출하고 끝까지 싸우는 의지가 엷다. 또 농경사회인데다가 천혜의 환경이라 논에는 항상 벼가 풍성하고 물속에는 물고기가 그득해 굶주림을 경험하지 않았다. 게으르다기보다 “더이상 바랄 게 있나?” 하는 안분지족의 심성이 있는 것 같다.

우리들의 성숙한 사랑, <굿바이 솔로>

<굿바이 솔로>. 대단히 쿨할 것 같은 이런 제목의 이 드라마는 하나도 쿨하지 않다. “개나 소나 쿨…. 좋아하시고들 있네. 뜨거운 피를 가진 인간이 언제나 쿨할 수 있을까?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본다. 나는.” 쿨하게 만나고 쿨하게 헤어지잔 호철(이재룡)과 미리(김민희)의 대화를 보며 영숙(배종옥)은 생각한다. 심지어 미리에게 말한다. “진짜 쿨한 건 뭐냐면, 진짜 쿨할 수 없단 걸 아는 게 진짜 쿨한 거야. 좋아서 죽네 사네 한 남자가 나 싫다고 하는데, 오케이 됐어 한방에 그러는 거, 쿨한 거 아니다. 미친 거지.” 노희경이 극본을 쓴다고 할 때부터 예상됐던 거지만, 이 드라마는 역시 노희경표다. 한없이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을 지닌 얄팍한 인물들만 나오는 여느 드라마와 사뭇 다르다. 한없이 손으로 다독여주고 싶은 등짝을 지닌 짠한 인물들이 나온다. 그렇다고 그들이 매번 눈물 콧물 다 짜고 앉아서 청승을 떠는 것도 아니다. 겉으론 멀쩡하다. 사람들 사는 게 그런 것처럼. 겉으론 잘나가는 회사의 중역이기도 하고, 멀쩡하게 잘나가는 조폭 두목이기도 하다. 또 흔히 보는 것처럼 멀쩡한 카페에서 일하는 바텐더에 월급 사장에 아티스트다. 그런데 그들 속으로 조금씩 조금씩 들어가면, 거기엔 악다구니와 온갖 아픔과 사연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인간의 모습이 있다. 그리고 선무당이 사람 잡듯이, 철학박사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언뜻언뜻 인간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듯이, 이 드라마 속 인간들이 그렇다. 더구나 재벌 2세에 왕자 공주가 등장해, 정말 사람이 아니라 마네킹 데려다 찍은 영화 같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찍고 앉았을 때, 노희경표 드라마는 묵묵히 사람 이야길 한다. 정말로 사람다운 사람 이야길 한다. 이러니 이 드라마를 보다가 다른 드라마를 보면, 소재는 같은 ‘사랑’일지라도 유치원 학예회 구경 간 느낌이다. 주인공은 절절한 척 구는데, 절절한 척 굴기 위해 갖은 아양을 다 떠는 음악만 넘친다. 화면 때깔 아름답게 만들고, 죽여주는 음악만 깔아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오버와 오만만 넘친다. “다행이다. 첫사랑은 처음이란 뜻밖에 없는 건데, 텔레비전 보면 온통 첫사랑 땜에 목매는 거 비현실적이라 싫었거든.” 아무래도 노희경의 대변인 같은 영숙이 말한다. “두번 세번 사랑한 사람들은 헤퍼 보이게 하잖아. 성숙해질 뿐인데.” 그러게 말이다. 그래서 다른 드라마가 첫사랑에 목매달 때, 이 드라마는 성숙해진 사랑 이야기를 조근조근한다. 리얼하게. 드라마 속 대사처럼, 정말로 “사랑은 안 변하지만, 사람 맘은 변한다”.

‘스타 트렉’ 이은 우주평화 시나리오 결정판, <안드로메다>

<스타 트랙> 작가 진 로덴베리의 우주 시나리오 결정판이 큐채널에서 지난 20일부터 방영되고 있다. <안드로메다>(매주 월∼목요일 밤 11시) 시즌1은 로덴베리가 남긴 제작노트를 바탕으로 그의 아내이자 배우인 메이젤 바렛 로덴베리가 제작하고 티브이 시리즈 <헤라클레스>의 케빈 스로보가 딜런 헌트 함장역을, <13일의 금요일 10: 제이슨-X>의 렉사 더그가 인공지능 안드로메다 역을 맡아 고인의 꿈을 실현시켰다. 이 작품은 안드로메다 어센던트의 선장 딜런 헌트와 인공지능 안드로메다를 중심으로 뭉친 전사 다섯명이 우주의 평화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공상과학 시리즈물로 이미 2000년 10월부터 2005년까지 미국 케이블 텔레비전 사이파이(Sci-Fi) 채널에서 총 5개 시즌의 110편이 인기리에 전파를 탔다. <안드로메다>는 연방을 지키는 평화유지군 지휘관인 딜런 헌트 함장이 블랙홀의 시간지평선에 갇히고 ‘ 코먼웰스’ 행성연합이 위기에 처하게 된 시점에서 출발한다. 함장과 그를 구조하는 유레카 마루호의 리사 라이더(베카 발렌타인 역), 케이스 해밀턴 콥(티르 아나사지 역) 등의 요원들이 행성연합을 재건하기 위해 떠나는 험난한 여정을 담았다. 최근의 과학드라마처럼, 공상과학 시리즈면서도 질량의 법칙, 중력 등 현대물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각 이야기가 짜였다. 논리적이고 정교해 공상을 뛰어넘는 설득력이 있다. 광활한 우주와 박진감 넘치는 우주 전투 장면도 티브이 시리즈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 이상이다. 작품이 담고 있는 주제 또한 눈길을 끈다. 외계 종족간의 치열한 아귀다툼을 빗대어 인간사의 갈등과 분쟁을 풍자하고 화합과 공존만이 살 길이라고 강조한다.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딜런 함장은 “아무런 의미없이 생존을 위해 싸울 것이냐? ”고 대원들을 설득해 폭력과 분노로 가득찬 ‘어둠의 행성’에 화합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다. 로덴베리가 60년대 텔레비전 시리즈 <스타 트랙>에서 이야기해온 ‘평화의 철학’을 고스란히 형상화한 인물이다. 그러나 이 철학 너머에는 미국적인 사고방식도 깔려 있다. 안드로메다 어센던트를 총 지휘하는 딜런 함장은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한다. 안드로메다에서 그의 말은 곧 진리이자 법이다. 그 영웅주의에는 미국식 패권주의의 냄새가 배있다. 장면 곳곳에서 은근 슬쩍 미국 문화우월주의를 내비치기도 한다.

[스크린 속 나의연인] 마릴린 먼로

이상하게도 내겐 나만의 여신이 없었다. 한참 영화에 빠져들기 시작하던 시절에 같은 또래의 아이들처럼 <주말의 영화>를 목을 빼고 기다리거나 용돈이 생기면 얼른 영화관으로 달려가곤 했던 기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게 꼭 특별히 내가 숭배하거나 사랑하는 어떤 스타를 보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예컨대 공책, 책받침, 책갈피 등등 온갖 학용품에 왕쭈셴(왕조현)이나 저우룬파(주윤발)의 얼굴이 넘쳐나던 시절에도 난 그저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영화관을 찾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난 스타 따위에 연연하는 철부지가 아냐’라는 식의 건방진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고, 그저 그 매력적인 홍콩스타들도 <공자다정>같은 영화에선 어처구니없을 만큼 꼴사나운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는 걸 알고 있었던 데 불과하다. 전설적인 섹스심벌이자 세기의 스타로 알려져 있는 마릴린 먼로에 대해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내가 처음으로 본 먼로 주연의 영화는 빌리 와일더 감독의 <뜨거운 것이 좋아>로 기억하는데,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작품이긴 했지만 먼로가 특별히 매력적인 여배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먼로의 하얀 치맛자락이 지하철 통풍구 바람에 날리는 그 유명한 장면이 등장하는 <칠년만의 외출>은 내겐 빌리 와일더의 영화였을 뿐이고, 제인 러셀까지 가세한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도 하워드 혹스의 이색적인 뮤지컬로 비쳤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본 한 편의 마릴린 먼로 영화가 처음으로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그건 오토 프레밍거의 <돌아오지 않는 강>이었다. 블루진에 하얀 셔츠를 입은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먼로에게 어울리는 의상은 온갖 장식들로 한껏 멋을 낸 여성스러운 복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기묘하게 성적인 암시를 풍기는 그녀의 얼굴과 제스처는 그걸 강조하고자 하는 의상과 만날 땐 오히려 천박한 인상을 줄 뿐이지만, 그와 대조적인 단순한 의상에 싸여 있으면 놀랄 만큼 청초한 빛으로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하지만 여타의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먼로의 매력이 온전히 발휘된 유일한 영화는, 존 휴스턴의 <기인들>일 것이다. 잠시나마 그녀의 반려자이기도 했던 아서 밀러가 각본을 쓴 이 작품은 밀러의 먼로 예찬인 동시에 그녀를 향한 작별인사이기도 하다. 세파에 시달린 순수, 성스러운 창녀, 성숙한 소녀 내지는 경험 많은 처녀 등등, 먼로와 결부될 법한 ‘음란한’ 상상과 정의들은 이 영화를 통해 완성되었다. 한편으로 섹스심벌이 아닌 연기자로서의 먼로의 재능을 확인할 수 있는 이 영화에서 그녀는 대개의 사람들이 그녀에게서 전혀 기대하지 못했을 곰삭은 슬픔과 탄식, 절망을 내비치기도 한다. 영화의 안과 밖이 기묘하게 겹치는 순간이랄까. 먼로는 이 영화가 개봉되기 직전에 아서 밀러와 이혼했으며 일년 뒤엔 알콜중독과 수면제 과다로 세상을 떠났다. 영화 속에서 먼로는 클라크 게이블에게 묻는다. “어떻게 그냥 살죠?”(How do you just live?) 게이블의 답변. “먼저 잠을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가려운 데를 긁고, 계란 프라이를 하고, 날씨가 어떤지 보죠. 깡통에 돌도 던지고 휘파람도 불고요.” 그건 먼로가 결코 누려보지 못했던 삶일 것이다. 문득 작년에 열렸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에서 본 한 장의 사진이 떠오른다. 그것은 브레송이 바로 <기인들>의 세트장에서 촬영한 먼로의 사진이었다. 보는 이에게 기묘하게 슬픈 느낌을 전하던 그 사진은 앤디 워홀의 의도적인 과장과 풍자를 가볍게 넘어서며 거장다운 솜씨로 먼로의 내밀한 슬픔과 피로감에 공명하고 있었다.

출연하라, 그리하면 흥행할지니

#1 KBS2 <상상플러스> 지난 1월31일 방영분. 배우 김수로가 꼭짓점 댄스를 선보인다. 다른 출연자들이 대오를 맞춰 따라한다. 대부분 포털사이트에서 검색 1위에 등극한 꼭짓점 댄스는 수만명의 네티즌이 ‘월드컵 공식 댄스로 정하자’고 서명운동을 벌여 화제를 낳았다. 방송 9일 뒤 김수로의 첫 단독 주연작 <흡혈형사 나도열>이 개봉했다. #2 SBS <야심만만 만명에게 물었습니다> 2005년 9월5일 방영분. 배우 김수미가 어린 시절 어머니를 위해 유리그릇을 훔쳤다가 어머니에게 혼난 사연을 이야기한다. 김수미는 “국화꽃 무늬만 보면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말하다가 눈물을 흘린다. “첫 월급을 탔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드릴 수가 없었다”는 그의 모습에 방청석이 숙연해진다. 이틀 뒤 김수미가 출연한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가 개봉했다. #3 SBS <일요일이 좋다―X맨>, KBS <해피선데이―여걸식스>에 지난 1월8일부터 2주 연속 출연한 <투사부일체>의 출연진. 1월9일과 16일의 SBS <야심만만…>에도 연이어 등장했다. 1월10일에는 KBS2 <상상플러스>와 1월20일 MBC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에 출연하며 이들의 오락프로그램 출연은 마무리됐다. 네티즌의 극심한 비난에도 1월19일 개봉한 <투사부일체>는 610만명을 기록하며 한국영화 역대흥행 7위의 성적을 거뒀다. 요즘 TV 오락프로그램은 영화 홍보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토크쇼와 주말 주요 오락프로그램에 개봉을 앞둔 영화배우들이 대거 얼굴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주로 코미디물 배우의 주무대로 여겨지던 토크쇼에 다른 장르영화의 배우들마저 가세하면서 오락프로그램 출연은 영화홍보의 최전선이 됐다. 충무로의 마케팅 속설 중에 ‘신문, 인터넷, 버스와 지하철 광고를 비롯한 모든 광고홍보 수단은 그걸 사용하거나 소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도달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안 보는 사람은 없다’라는 표현이 있을 만큼 영화홍보에 TV의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배우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들은 광고로 치면 SA급에 속한다. 그 시간대 스팟광고 15초를 하는 데 1천만원이 든다. 그런데 배우가 자기 영화를 소개할 기회가 생기는데 그걸 마다할 마케터는 없다”라고 <흡혈형사 나도열>의 마케팅을 담당한 아이엠픽쳐스 김민국 팀장은 말했다. <투사부일체> TV 출연 후 인지도 상승 프로그램 방영 2∼3주 뒤에도 TV 옴부즈맨 프로그램에서 다뤄질 정도로 여파가 컸던 <투사부일체>. 마케팅을 담당했던 시네마제니스 이점애 대리는 “원래 개봉이 1월27일이었는데 19일로 당겨지면서 방송이 한주에 몰렸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방송사의 지침상 이미 개봉된 영화를 홍보하는 성격의 출연은 규제된다. 이 대리는 “배우들이 최선을 다하는 상황에서 마케터로서의 욕심도 있기 때문에 눈앞에서 출연을 포기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투사부일체>는 제작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인지도 상승이 절박했다. <투사부일체> 출연진의 오락프로그램 출연을 통한 홍보전략은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다. 영화사쪽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 순위가 50위권에 머물렀는데 <일요일이 좋다―X맨>의 첫 방영 이후 단숨에 10위 내로 진입했다”고 설명했다. TV 홍보가 위력적인 배경에는 오락프로그램 출연이 인터넷의 입소문과 연동되는 특성이 있다.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를 홍보했던 이진 실장은 “세계야구클래식(WBC)만 해도 TV보다 인터넷과 위성DMB의 시청률이 높았고, 이것은 TV를 인터넷으로 재확인하는 젊은 소비자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다. 출연배우의 입담이나 에피소드가 인터넷을 통해 회자되면 해당 영화의 인지도는 수직으로 상승한다. 공중파 연예프로그램에서 일하기도 했던 영화홍보사 유쾌한 확성기의 류순미 실장은 “주요 TV오락프로그램을 통한 영화 인지도의 도달률은 80%에 이른다. 특히 광고가 취약한 지방에서의 영화 인지도를 고려하면 절대적인 홍보수단”이라고 말했다. 마케팅 격언대로 이런 ‘인지는 선호로 이어진다’는 점이 중요하다. 꼭짓점 댄스로 대박을 터트린 <흡혈형사 나도열>의 경우, 준비된 마케팅도 주효했다. 김민국 팀장은 “최초로 배우의 오락프로그램 출연 자체를 온라인과 신문광고로 선보였다”고 했다. 이후 꼭짓점 댄스가 인터넷을 통해 인기를 모으자, 마케팅팀은 보도자료에서 이를 널리 알리는 발빠른 후속조치를 취했다. 영화사는 흥행위해, 방송사는 시청률 위해 영화사가 흥행을 위해 비난을 감수하며 오락프로그램 출연에 뛰어드는 것처럼 방송사는 시청률을 위해 영화배우들에게 무대를 제공한다. 겹치기 출연이나 간접광고 조항 때문에 방송위원회의 경고 조치를 받는 상황을 감내하며 방송사가 입담이 좋은 배우들을 유치하는 것은 오로지 지상과제인 ‘시청률’ 때문이다. 프로그램 내적인 측면에서는 오락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모 방송작가의 말처럼 “일반 게스트들에 비해 영화배우들의 입담이나 화제의 내용이 신선하다”는 면도 부분적으로 작용한다. 옴부즈맨 프로그램을 통해 겹치기 출연을 비판하는 곳은 방송사다. 하지만 겹치기 출연을 불사하는 것도 방송사다. 최근 시청자들의 거센 비난을 샀던 <투사부일체> 출연진은 대부분의 오락프로그램에서 20∼25%를 상회하는 시청률로 자체 시청률 기록을 대부분 갈아치웠다. 시청률 제일주의와 흥행 제일주의라는 자본주의적 공통분모가 결합되면서 오락프로그램 출연의 과열 양상은 가속화됐다. 영화마케팅 일선에서는 “예산이 적은 영화일수록 TV프로그램 출연은 효과적이고 중요한 홍보수단”이라는 견해를 피력하지만 동시에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약한 출연진으로는 오락프로그램 출연 자체를 방송사에서 거부한다”는 딜레마도 안고 있다.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을 마케팅한 비단길 김진아 실장은 “배우가 약하면 방송홍보를 하고 싶어도 절대 못한다. 아무리 사정해도 시청률 앞에서 방송사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코미디 외의 영화 홍보에는 부적절 모든 영화가 오락프로그램 출연으로 좋은 효과를 거두지는 못한다. “말장난에 가까운 유머, 감각과 일상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토크쇼와 오락프로그램에는 아무래도 코미디영화가 적합하다. 출연 프로그램의 시청률과 영화 흥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사례는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 <투사부일체> <흡혈형사 나도열> 등 코미디물이 강세다. 오락프로그램에서 환대받는 김수로, 차승원, 임창정 같은 배우들도 코미디영화의 아이콘으로 인식된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러한 입담과 말장난에 모든 출연자를 끼워맞추는 방식이다. 김민국 팀장은 “2000년 즈음에만 해도 배우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지금은 쇼프로그램의 성격에 맞춰 배우가 이야기하는 형태”라고 말했다. 영화평론가 허문영은 <한겨레> 3월9일치 “재담꾼 강요하는 ‘오락TV’”라는 글에서 “예컨대 백윤식이 출연한다면 그의 재담 거리가 아니라 그가 자기 분야에서 이룬 성취를 질문해야 한다. 이건 공익 이전에 예의의 문제”라고 평했다. 오락프로그램 출연의 대안으로 새로운 영화 전문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방법은 어떨까. 하지만 문제는 다시 시청률이다. 배우들의 진지한 대화가 시청률을 높일 수 있다면 방송사는 주판을 튕기며 자발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달려들 것이다. 모든 마케터들이 입을 모아 “TV가 없어지지 않는 한 이러한 양상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오락프로그램에 환호하는 대중의 눈높이가 바로 영화 흥행의 눈높이”라는 현장 관계자의 말처럼 모든 것은 리모컨을 누르는 시청자들의 손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배우 TV출연 10계명 현장 영화마케터들이 밝힌 오락프로그램 출연 10계명 1. 시청률 최고의 프로그램을 고른다. 2. 성격이 비슷한 프로그램에 반복해서 출연하지 않는다. 3. 영화 성격에 부합하는 프로그램을 배우와 신중히 논의하고 출연을 결정한다. 4. 노출 빈도보다 중요한 것이 프로그램의 방영 시기다. 일정 조정이 생명이다. 5. 배우의 이미지 메이킹과 성격을 최대한 고려한다. 6. 단답형 대답으로 일관하거나 방송을 싫어하는 배우가 억지로 출연하면 역효과가 난다. 7. 토크쇼 프로그램이라면 영화 소개보다는 일단 시청자를 즐겁게 해줘야 한다. 8. 비방송 용어를 주의한다. 9. 배우의 단면적인 특성만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한다. 10. 방송 출연이 잦은 편이 아닌 배우라면 한 프로그램 출연에 집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