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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낮의 파스텔, 밤의 비비드 - <악마가 이사왔다> 임윤아

배우 임윤아가 연기한 선지(임윤아)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로 인해 악마를 품고 살아간다. 새벽 2시만 되면 악마가 깨어나는데 그는 선지의 몸을 빌려 아파트 단지를 배회한다. 여러 인격체를 연기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리는 대신 임윤아는 연기의 완성도를 올릴 디테일을 챙기는 데 집중했다. 스크린에 등장하는 낮의 선지와 밤의 선지는 “배우 임윤아의 스펙트럼”을 새삼 체감케 한다. 낯익다 여긴 배우 임윤아에겐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 존재한다. - <엑시트>에 이어 이상근 감독의 작품에 출연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엑시트> 때의 기억이 너무 좋았고 <악마가 이사왔다>의 시나리오도 신선했다. 선지를 통해 1인2역에 도전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았고 한번 호흡을 맞췄던 팀들이라면 내 매력을 잘 살려주시겠다 싶었다. <악마가 이사왔다>까지 찍고 나니 이상근 감독님이 진짜 하고 싶어 하시던 영화, 감독님의 스타일을 명확히 파악하게 됐다. - ‘선지의 몸속에 악마가 들어 있다’는 설정을 설득시키는 게 주요했을 텐데. 영화가 시작했을 때 밤 선지가 갑자기 자신은 악마라며 행동하는 것들이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밤의 선지의 모습도 사랑스럽게 비치길 바랐다. 그렇게 선지를 따라가다 보면 악마의 감정선을 이해하고 후반부에 들어선 울컥하는 마음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선지의 톤 설정과 같은 디테일부터 엔딩 신까지 잘해내고 싶었다. - 단아한 낮 선지는 배우 임윤아에게서 자주 봐온 모습이지만, 밤 선지만큼 거침없이 에너지를 발산하는 역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담스럽진 않았나. 혹은 통쾌한 순간도 있었는지. 첫 촬영할 땐 수많은 스태프 앞에서 연기하려니 쑥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촬영에 들어가면 내가 어떻게 이걸 했지 싶을 정도로 선지에게 빠져들었다. 낮 선지는 차분하고 길구(안보현) 앞에선 수줍음이 묻어난다. 그런 낮 선지의 톤을 기준으로 삼아 밤 선지의 톤을 맞춰갔다. 밤 선지는 하고 싶은 말은 무조건 해야 하고 자기주장을 굽힘 없이 마음껏 펼치는 성격이라 말투와 목소리, 템포까지 그에 맞췄다. 밤 선지가 익숙해질수록 현장에서 더 신나게 뛰어놀았다. - 낮 선지, 밤 선지는 성격뿐 아니라 스타일도 상반된다. 낮 선지는 단정하고 청순한 파스텔톤의 의상을 주로 매치했다. 반면 밤 선지는 비비드한 컬러의 화려한 의상을 갖춰 입도록 했다. 동생 아라(주현영)처럼 이제 막 자신을 꾸미기 시작한 20대 초반의 친구라고 생각하며 스타일링을 준비했다. 특히 밤 선지일 땐 컬러 렌즈를 끼고 네일아트와 액세서리도 의상마다 다르게 가는 등의 아이디어를 냈다. 밤 선지의 의상에는 레드가 꼭 하나 들어가는데 한번은 위아래로 레드 의상을 세트로 입고 나온다. 감독님은 그 옷을 ‘전투복’이라고 부르시곤 했다. 색감이 워낙 화려하고 다양해서 선지의 의상을 입고 보는 재미가 있었다. - 선지가 길구를 처음 만났을 때 보이는 적대감이 상당한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선지 속의 악마는 과거에 큰 상처를 받았다. 그렇기에 어쩌면 사람들에게 또다시 상처를 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발현된 것이 아닐까. 가족은 안전하다고 느끼는 반면 길구는 가족구성원이 아닌 새로운 인물이었기 때문에 ‘나 무서우니까 건들지 마, 큰일난다’는 식으로 경고를 건넨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다 길구가 가족들이 채워주지 못한 부분을 충족시켜주면서 점점 그를 듬직하게 여기게 된 것이다. - 길구와 한강 나들이를 간 선지가 다이빙을 하는 장면은 실제 원효대교에서 직접 소화했다고. 그렇다. 당시 8월의 여름에 뛰어든 것으로 기억한다. 밤 선지로 분장하는 데에 시간이 꽤 걸린다. 때문에 다이빙에 실패하면 그 장면을 다시 가기 위해 또 오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가장 마지막 신으로 딱 한번만 찍자고 사전 계획을 세웠다. 그 한번을 잘해내고 싶어서 감독님과 같이 수중촬영 세트장에서 잠수복을 입고 뛰어드는 연습을 여러 번 했다. 감독님이 바라는 선지가 뛰어들 때의 포즈가 콘티에서부터 명확하게 그려져 있었기 때문에 잘 수행하고 싶었다. 여러 번 촬영했다면 더 잘했을 수도 있겠지만 연습한 대로 결과가 잘 나왔다. - 선지는 정말로 몸속의 악마가 밤마다 깨어나는 걸 몰랐을까. 낮 선지인지, 밤 선지인지 애매하게 그려지는 영화관 신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감독님, 그때 진짜 선지였을까요? 아니면 악마였을까요?” 명확한 답을 해주시기보다 내가 내린 결론에 따를 수 있도록 감독님께서 열어주셨다. 그 신에서만큼은 관객들도 헷갈리기를 바라서 낮 선지와 밤 선지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반씩 담는다는 느낌으로 연기했다. 나중에 보니 그게 오히려 더 잘 표현이 됐더라. 개인적으론 선지가 자신이 밤마다 변한다는 것을 끝까지 몰랐다고 여기고 있다. - 다양한 면모를 가진 선지를 연기하며 배우로서 무엇을 얻었다고 느끼나. 선지는 나의 가장 극강의 외향적인 에너지와 코믹함, 드라마적인 감정, 챙겨주고 싶은 마음 같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담긴 인물이다. 여러모로 도전이었고 그만큼 깨닫고 얻은 것이 많다. 임윤아가 이런 캐릭터도 할 수 있구나,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전부 표현할 수 있는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배우구나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 차기작은 드라마 <폭군의 셰프>다. 연지영의 캐릭터 설명에 ‘프렌치 셰프’라 적혀 있는데 프랑스 유학을 꿈꾸는 제빵사 선지가 연상되는 설정이다. 그렇게 세계관을 연결지어볼 수 있겠다. (웃음) 프렌치 셰프인 지영은 과거로 타임 슬립을 한 뒤 목숨을 걸고 왕에게 음식을 대접하게 된다. 지영이는 무척 당차고 똑 부러지는 캐릭터인데 카리스마까지 있어서 선지와는 또 다른 느낌의 인물을 만나보실 수 있을 거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극의 포인트는 지영이 한복을 입은 채 수라간에서 요리를 할 때다. 남들과 달리 나 혼자 현대 말투를 쓰고 귀걸이, 선글라스와 같은 현대 소품을 활용한다. 그런 외적인 차별점을 중심으로 시대적 차이를 보여드릴 수 있을 듯해 기대가 크다. 판타지 로맨스 코미디이지만 지영이 요리하는 모습, 완성된 요리도 퀄리티 있게 담길 예정이다. 작품을 보며 배고파지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특집] 배우와 함께 만드는 볼 법한 사람의 알 법한 하루, <내 말 좀 들어줘>와 마이크 리의 연출론

마이크 리의 <비밀과 거짓말>에서 검안사 호텐스로 분한 메리앤 장밥티스트는 영화 말미 다음과 같은 대사를 말한다. “진실을 말하는 편이 가장 좋아. 그러면 아무도 상처 입지 않으니까.” 그로부터 28년 후, 메리앤 장밥티스트는 마이크 리 감독과 ‘불편한 진실’(Hard Truths)을 원제로 한 <내 말 좀 들어줘>로 재회한다. 장밥티스트가 연기한 팬지는 내 말 좀 들어달라며 자기 딴의 진실을 말하는 독설가다. 28년 전 호텐스의 바람과 달리 팬지가 쏟아내는 진실은 그저 불편하다. 팬지 또한 타인이, 특히 가족이 불편하다. 건강염려증에 사로잡혀 집 안 위생에 집착하지만 아들 모지스(투웨인 배럿)와 남편 커틀리(데이비드 웨버)는 협조할 생각이 없다. 동생 샨텔(미셸 오스틴)은 어머니의 날에 함께 성묘를 간 후 가족 동반 식사를 하자며 성화다. 팬지가 침묵할 때는 또 어떤가. 수차례 신랄한 악담이 지나간 후, 고단해진 팬지는 가족 식사 자리에서 입을 꾹 닫고 모든 소통을 차단해 자리를 가시방석으로 만든다. 그러니 팬지는 입을 열어도, 입을 닫아도 문제다. 극적인 실화만이 영화가 될까? 영화화되는 주인공은 정해져 있을까? 이를테면 <내 말 좀 들어줘>의 팬지는 편의점에서 “봉투 드릴까요?”라고 묻는 점원에게 “그럼 이걸 들고 가리?”라며 쏘아붙일 작자다. 누구든 이런 광경을 보고 ‘영화 같다’고 말하지 않는 까닭은 어디서나 볼 법한 사람의 알 법한 하루이기 때문이다. 당사자인 점원 말고는 굳이 기분 나쁠 사람이 없고 이렇다 할 사건이 벌어지지도 않았다. 과민한 손님도 실상 곁에 한명쯤은 있을 것 같은 꼬인 사람이다. 그 점이 마이크 리에게 중요하다. 켄 로치와 더불어 영국의 키친 싱크 리얼리즘의 태두인 마이크 리는 ‘부엌 싱크대 사실주의’라는 사조의 명칭 그대로 한끼 식사가 하루의 중요한 과제인 노동 계층의 일상을 담아왔다. 이들의 오늘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내 말 좀 들어줘>의 팬지가 갑자기 장기를 살려 힙합 배틀에 나간다든가, <해피 고 럭키>의 긍정의 화신 포피(샐리 호킨스)가 큰 시련을 겪어 행복의 의미를 회의하는 일 따윈 일어나지 않는다. 팬지는 시종일관 고통을 호소하고 포피는 영화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는다. 마이크 리가 별날 것 없는 인물에게 영화주인공이 될 자격을 부여한다면 그건 인물에게 놀라리만치 섬세한 양감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마이크 리는 배역을 연기하는 배우와 함께 지난 50년간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심층 탐구해왔다. ‘배우와 함께’에 주목하자. 마이크 리와 배우들은 인물의 창조에 호혜적으로 기여한다. 마이크 리라는 유일무이한 작가 <내 말 좀 들어줘>는 마이크 리가 메리앤 장밥티스트가 주연인 이야기를 쓰겠다는 일념으로 출발한 프로젝트다. 마이크 리는 배우에게 캐스팅 제안을 건네되 시나리오를 건네진 않는다. 아니, 시나리오를 건넬 수가 없다.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기 때문이다. 마이크 리는 자신의 영화에 출연할 모든 배우에게 동일한 프러포즈를 한다. “이 영화에 출연해주세요. 어떤 영화가 될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캐릭터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당신이 출연을 결정한 다음 협력해서 캐릭터를 만들어갈 테니까요.” 이때 마이크 리는 아주 중요한 단서를 덧붙인다. “당신은 이 작업이 끝날 때까지 절대 영화 속 배역이 아는 것 이상으로 이 프로젝트에 대해 알 수 없습니다.” 마이크 리의 현장에서 배우는 자신이 연기할 캐릭터에 한해선 감독만큼 정통하다. 하지만 자신을 제외한 캐릭터에 대해서는 관객만큼 무지하다. 마이크 리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 약 18주의 프리프로덕션이 필요하다. 배우는 감독과의 첫 미팅에 지인 5명의 신상 정보를 챙겨 나간다. 메리앤 장밥티스트도 신원 불명의 프로젝트를 위해 지인 5명의 목록을 적어갔다. 마이크 리는 충분한 대화 끝에 엔트리에 남길 사람과 제외할 사람을 선정한다. 장밥티스트는 이 과정에서 <내 말 좀 들어줘>가 쉽지 않은 프로젝트가 될 것을 직감했다. 다정한 이들은 모두 지워지고 고약한 사람들만 명단에 남았기 때문이다. 마이크 리는 목록에서 남겨둔 인물을 종합해 새 캐릭터의 기초를 만든다. 이후 감독과 배우는 긴 시간을 할애해 캐릭터를 공동으로 짓는다. 가정환경, 구직 과정, 음악 취향, 올여름 휴가지 등을 삶의 경험에 기초해 설정한다. 공동 작가로서 배우를 작품 창작에 동참시키는 방식은 배우에게 자연스럽게 몰입의 가능성을 높인다. 배우들은 자기가 연기할 배역의 전사를 써나가며 인물 내부로 들어가고 나오는 과정을 훈련한다. 여전히 시나리오는 나오지 않았다. 배우들은 캐릭터의 설정을 인지한 채 즉흥극에 돌입한다. 이 즉흥극에도 마이크 리의 대원칙이 적용된다. <비밀과 거짓말> 즉흥극 당시 신시아 역의 브렌다 블레신은 호텐스로 분한 메리앤 장밥티스트가 말을 걸자 낯선 이가 쫓아온다며 당황해했다. 젊은 날 아이를 낳긴 했지만 그 아이가 흑인인지도, 신시아를 찾아올지도 모르는 채 현장에 갔기 때문이다. <베라 드레이크>의 즉흥극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베라(이멜다 스탠턴)와 그의 가족이 송년회를 보내는 동안 경찰이 들이닥친다. 베라가 가족들 모르게 불법 임신 중단 시술자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이멜다 스탠턴은 이 상황에서 경찰이 닥칠 줄 몰랐다. 가족 역의 배우들은 그때까지도 베라의 다른 직업을 몰랐다. 그리고 경찰 역의 배우들은 즉흥극 전까지 누가 베라를 연기하는지조차 몰랐다. 마이크 리는 배우들이 즉흥극을 통해 인물로서 받은 충격과 감정을 체화해 그대로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도록 유도한다. 즉흥극을 마친 후에 비로소 시나리오가 나오면, 배우들은 전체 대본 중 자신이 등장하는 부분만 읽을 수 있다. 마이크 리는 별도의 지시가 없는 한 인물 내부에 들어간 상태에 머물 것을 요구한다. 이는 흔히 통칭되는 ‘메소드연기’와 반대 개념이다. 마이크 리는 배우들에게 객관화를 주지한다. 배우들은 절대 자신의 배역을 1인칭으로 칭할 수 없다. <내 말 좀 들어줘>의 현장의 경우 장밥티스트는 팬지를 ‘나’(I)가 아닌 ‘그’(She/Her)라고 3인칭화해 말해야 한다. 배역 안에 몰입하되 배역의 감정과 배우의 감정을 철저히 분리하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다시 <내 말 좀 들어줘>로 돌아오자. 메리앤 장밥티스트는 이 작품으로 미국 3대 비평가협회상의 여우주연상을 모두 거머쥐었다. 이 기록은 <베라 드레이크>의 이멜다 스탠턴, <해피 고 럭키>의 샐리 호킨스도 동일하게 보유 중이다. 마이크 리 고유의 필름 메이킹은 배우에게 일생일대의 명연을 펼치도록 한다. 그는 한결같이 자기 방식을 관철했다. 캐릭터 스터디의 유일무이한 영토를 개척하며 스크린 위에서 서민의 복잡한 심리가 재현될 기회를 제공했고, 개인의 미묘한 감정이 표출될 권리를 보장했다. 배우가 연기 외의 배역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작가적 지위 한층을 개발했으며 관객으로 하여금 감독과 배우가 함께 만든 인물형을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를 통찰케 했다. 마이크 리가 영화의 투자자들에게 내거는 3무(無) 조건이 있다. ‘대본 없음, 캐스팅 논의 없음, 간섭 없음.’ 위 타협 불가한 조항은 수익 위주의 시장에서 점점 그의 신작 제작이 뜸해지는 원인이기도 하다. <내 말 좀 들어줘>는 전작으로부터 제작 시차가 가장 큰 작품이고, 인플레이션을 반영하면 가장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만약 마이크 리의 방식이 더이상 시네마의 환영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화가 인간을 응시하는 시선과 배우가 배역에 다가가는 연기론 전체를 통째로 잃는 셈이다. 가능한 한 오래 더 자주, 마이크 리의 세계가 영화와 인간이 모두 잘 살 수 있는 길을 비추길 희망한다.

[21세기 영화란 무엇인가?] 눈을 감은 영화 - 21세기 영화의 얼굴 없는 자화상

이란의 여성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마니아 아크바리는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텐>의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키아로스타미가 사망한 이후 그는 <텐>의 배급권을 보유한 배급사 MK2에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엔 아바스 키아로스타미가 <텐>을 연출하지 않았고, 시나리오를 쓰지도 않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아크바리는 <텐>에 사용된 장면은 모두 자신이 촬영한 것이며 이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기록된 영상이 아니라 심리치료사와 논의를 거쳐 녹화된 사적 프로젝트의 러시 필름이었다고 주장한다. 아크바리는 키아로스타미가 거짓말과 조작으로 자신의 영상을 훔치고 영상에 담긴 가족들의 민감한 사생활을 허락 없이 착취했음을 몇 차례에 걸쳐 폭로한다. <텐>을 편집하고 나서 완성본을 감상한 뒤에도 아크바리는 이 영화를 키아로스타미의 작업으로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칸영화제 공식 상영 직전에 마니아 아크바리가 기억하는 키아로스타미의 말은 다음과 같다. “마니아, 이 영화는 픽션이야.” 그리고 <텐>은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연출작이자 21세기 디지털시네마의 태동기에 새로운 영화의 가능성을 밝힌 영화사의 혁신으로 남았다. 아크바리의 진술에 따르면 <텐>은 현실의 기록을 착취해 픽션으로 구성한 결과물이다. 이 사실이 해명하기 어려운 문제를 산출한다. 아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영화가 촬영되는 현장에 존재하지 않았고 각 시퀀스 사이에 번호를 매겨 에피소드를 구분하는 것 말고는 이 영화의 화면과 구성에 개입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그 영화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이는 키아로스타미가 저지른 폭력과 착취를 외면하거나 비난하려는 판단이 아니다. 또한 <텐>이 함의하는 영화적 혁신과 성취를 일방적으로 옹호하거나 기각하려는 것도 아니다. 스크린을 바라보는 종족인 우리는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대신 우리 눈앞에 도착한 21세기의 영화가 훨씬 모호하고 불투명한 사태로 뒤엉켜 있다는 조건을 받아들여야 할 뿐이다. <텐>은 자동차 앞좌석에 설치한 두대의 소형 디지털카메라로 촬영된 열개의 시퀀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안에는 영화적 시공간과 카메라의 시점을 극도로 제한하고 통제했을 때 영화의 프레임 내부에서 벌어지는 놀랍도록 단순한 혁신이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또한 공개를 염두에 두지 않은 한 여성감독과 가족의 사적인 기록 영상일 뿐이다. <텐>은 두 가지 진실을 포함하고 있다. 무작위적으로 녹화된 단순한 기록이지만, 특정한 규칙과 영화적 구성으로 조율된 픽션이다. 마리아 아크바리가 촬영한 영상이지만,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논리로 작동하고 편집된 영화다. 이 모든 진술은 서로 모순되는 부분적인 진실과 닿아 있다. <텐>에는 키아로스타미의 흔적이 없다. 그러나 <텐>은 키아로스타미의 영화이기도 하다. 디지털카메라와 그래픽이미지가 영화의 표면을 장악한 시대인 21세기에 영화적 이미지의 범주와 위상은 치명적으로 교란되고 있다. 이제 숏에 새겨지는 필름카메라의 사진적 재현, 연출자의 지시에 맞춰 활동하는 피사체와 세계, 인공 어둠이 드리운 극장에서 스크린을 향해 영사되는 이미지의 빛은 영화의 경험을 형성하는 절대적인 조건이 아니다. 촬영과 상영은 어디에서든 편재적으로 발생하고, 이미지는 언제든지 변형되고 조작될 수 있다. 영화 이미지가 생산되고 거주하는 장소는 여러 곳으로 흩어졌다. 허구의 시공간을 전제하는 개별 숏의 물질성이 지극히 불확실한 표면으로 재편되면서 사진적 이미지와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경계 없이 뒤섞이고 촬영하는 자와 촬영되는 피사체의 명확한 위상은 흐트러진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불확실해진 대상은 카메라 뒤에서 프레임 안과 밖의 움직임을 통제하고 교정하던 영화감독의 존재다. 그들은 촬영 현장 한곳에 서서 컷이 시작하고 끝나는 지점을 표시하는 전능한 지휘자가 아니다. 어느 정도 농담 같은 면모가 섞여 있지만 <파이브>를 촬영하는 현장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자신은 잠을 잤을 뿐이라고 술회하며 “내 영화의 목표는 극장에 앉은 관객들을 잠들게 하는 것”이라 말하는 키아로스타미의 언급에는 영화를 촬영하는 현장에 입회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타인으로서의 연출자의 초상이 날카롭게 새겨져 있다. 영화는 연출자의 의도와 통제 바깥에서 일시적으로 모였다가 흩어지며 만들어질 수 있다. 영화감독은 ‘자기’ 앞에 혹은 그들이 만든 영화 앞에서 타인이 된다. 장뤼크 고다르는 20세기의 끝자락인 1990년대를 통과하면서 두 가지 유형의 작업을 전개했다. 하나는 <영화의 역사(들)> <프랑스 영화 2X50>을 통해 영화의 역사적 시간을 투사하는 작업이고, 다른 하나는 을 통해 고다르 자신의 자화상을 구성하는 작업이다. 그는 20세기 영화를 되돌아보면서 21세기의 영화가 역사적 멜랑콜리와 불투명한 자화상의 시대가 될 것을 예고한다. 고다르는 언제나 스크린에 펼쳐지는 영화적 자화상이 그것을 만들어낸 창작자보다 거대하다고 말한다. 그는 영화감독의 초상을 구체적으로 조각하지만, 스크린에 새겨진 자화상은 단순히 카메라 앞에 선 연출자의 얼굴을 왜곡 없이 비추는 거울이 아니다. 영화감독의 자화상이란 사각의 프레임과 스크린 위에서 다시 태어나는 또 다른 자아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연출자’의 자아가 존재론적인 변형을 통과하는 동안 21세기 영화에서 재현되는 영화감독의 초상은 위태롭게 굴절되어간다. 다큐멘터리의 영역에서 아녜스 바르다의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이나 샹탈 아케르만의 <노 홈 무비>처럼 카메라, 스크린, 촬영 행위의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조건을 보다 자유로운 영화적 실천의 장소로 받아들여 연출자의 초상을 성찰적으로 재구성하는 소수의 작업이 출현하기도 했지만, 21세기에 나타난 대다수의 픽션에서 영화감독과 영화를 만드는 현장은 촬영 행위의 지연, 유예, 실패에 구속되어 있다. 일련의 영화들에서 그들의 행위는 희박하고 불안정하며 불확실하다. 고다르가 새로운 세기의 초입을 여는 시기에 만든 두편의 영화 <사랑의 찬가>와 <아워 뮤직>에서 영화를 준비하는 젊은 영화감독과 사라예보를 방문한 나이 든 감독은 협업을 계획한 여배우와 학생 영화감독의 자살 소식을 듣는다. 웨스 앤더슨의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에서 해양 다큐멘터리 감독인 스티브 지소는 결정적인 순간에 카메라를 놓치는 바람에 희귀한 상어의 모습을 담아내지 못했다. 데이비드 린치의 <인랜드 엠파이어>에서 촬영 중인 할리우드영화는 폴란드 단편영화의 리메이크로 밝혀지고, 원작의 두 주연배우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혼란스러운 상태에 빠진다. 미겔 고메스의 <친애하는 8월>에서 고메스가 직접 연기한 영화감독과 그의 제작진은 그들이 계획한 거대한 규모의 극영화를 촬영할 수 없게 되면서 지역 주민들과 마을의 풍경을 다큐멘터리처럼 기록한다. 그들은 그들이 만들고 있는 영화에 설정한 권리와 규칙을 잃어버리고 만다. 21세기 영화 속 영화감독의 자화상은 얼굴 없는 자화상이다. 필름카메라의 촬영 현장과 영화감독이 한곳에 멈춰 서서 서로 굳건하게 결합된 채로 정박할 수 있었다면, 21세기의 스크린 위에 재구성되는 영화감독의 초상은 고정된 장소 없이 분열된 표상의 형식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감독이라는 존재는 실패의 기록과 불가능한 사태의 흔적으로만 접근할 수 있다. 그 불투명한 자아에 관한 두편의 우화를 떠올려본다. 두편의 우화에서 얼굴을 잃어버린 영화감독은 그들 자신의 정체성을 투영한 배우의 얼굴을 바라본다. 벌거벗은 남자의 몸을 촬영한 흑백영화의 장면이 나타난다. 영화관의 관객은 모두 잠들어 있다. <홀리 모터스>의 도입부에서 이 영화의 연출자인 레오스 카락스는 배우로 출연해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극장으로 걸어간다. 잠든 관객 사이로 한 마리 개와 벌거벗은 갓난아이가 극장 안을 배회한다. 12년 만에 만든 장편영화로 21세기 영화의 영토에 진입한 레오스 카락스는 스크린에 떠오른 영화를 외면하고 잠들어 있는 관객을 불길하게 바라본다. 잠든 관객들은 깨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눈앞의 스크린을 바라보지 않는다. 이 도입부가 끝난 뒤에 <홀리 모터스>에는 아홉 가지 에피소드가 펼쳐지고 드니 라방의 얼굴과 신체를 매개로 아홉 가지 자아가 나타나고 사라진다. 분장실이 갖춰진 리무진이 멈춰 설 때마다 드니 라방은 다른 얼굴로 스크린에 나타난다. 그의 육체엔 서로 다른 분열적 자아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고 새겨져 있다. 이 무수한 초상의 여정은 끝나지 않고 반복될 것이다. 레오스 카락스는 시작과 끝이 존재하지 않고 이어지는 혼란스러운 자화상의 여정을 스크린에 옮긴다. 또 다른 우화가 남아 있다. 이 우화에서 영화감독은 영화를 완성하지 못했다. 그는 오랜 친구를 배우로 선택해 영화를 만들었지만, 갑작스러운 배우의 실종으로 촬영을 마치지 못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영화감독은 실종된 친구이자 배우를 되찾는다. 하지만 그는 기억을 잃어버린 상태다. 친구도 가족도 똑바로 기억하지 못한다. 빅토르 에리세의 <클로즈 유어 아이즈>에서 영화감독 미겔은 한 사람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돌리기 위해 완성되지 못한 영화를 상영한다. 21세기에 도착한 20세기의 영화는, 감독과 배우의 잃어버린 기억과 정체성을 복원할 수 있을까?(빅토르 에리세는 디지털영화가 카메라 앞의 세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 뒤에서 세계의 이미지를 바꾼다고 말한다.) 미겔의 친구이자 배우인 훌리오는 완성되지 못한 영화가 상영되는 스크린을 향해 눈을 감는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필름의 시대에서 디지털영화의 시기로, 영화를 촬영하던 영화감독에서 영화를 완성하지 못한 영화감독으로 이미지는 전이된다. 다만 훌리오의 눈감은 얼굴은 그 사이에서 무엇도 바라보지 않고 어떤 진실도 드러내지 않는다. 미겔은 고개를 돌려 훌리오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가 마주하는 것은 두 시간 사이에 걸쳐 어느 쪽의 진실로도 치우치지 않는 지극히 투명하고도 모호한 거울로서의 얼굴이다. 영화평론가 세르주 다네는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내 사랑>과 <밤과 안개>가 포착한 2차 세계대전과 강제수용소의 시신을 스크린으로 지켜본 경험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한다. “시네필은 누구일까? 그는 헛되게 눈을 뜨고 있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자다.”(<영화가 보낸 그림엽서>) 20세기 모던 시네마에서 전쟁이 남긴 죽음은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고, 타인과 공유할 수 없는 사태였지만 끝내 그 시신과 흔적이 필름카메라의 프레임에 담겼다. 자신이 태어난 해(1944년)에 전후 영화의 분기점인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무방비 도시>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역설하며 유년기의 삶과 현대영화의 역사를 병치하는 이 평론가에게 모던 시네마는 우리가 바라보지 못한 죽음을 응시하는 실천이다. 우리는 21세기 영화에 침입한 영화감독의 얼굴 없는 자화상을 마주하며 다네의 표현을 비틀어 인용하게 된다. 이 시대에 영화감독이란 누구일까? 그들은 눈을 감고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말하는 자들이다. 21세기 영화감독의 분열적 자화상을 증언하는 키아로스타미와 고다르와 카락스는 모두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 <클로즈 유어 아이즈>의 마지막 장면처럼 이 모호한 얼굴들은 그 위상과 기원을 해명하지 않은 채로 영화의 두 번째 세기를 물들이고 있다.

[씨네코프] 다른 영혼 다른 몸집, 그럼에도 연상호적 영화의 정수, 연상호 감독 신작 <얼굴> 촬영 현장

2024년 8월의 첫 번째 토요일 아침, 경기도 파주 헤이리의 한 스튜디오는 바깥세상을 따돌린 듯 시원했다. 두꺼운 철제문을 밀고 들어서자 1970년대 피복 공장 일대를 재현한 세트가 에어컨 바람을 맞고 서 있었다. 연상호 감독의 신작 <얼굴> 현장은 그렇게 한 시대를 옮겨놓은 것 같은 디테일을 휘감고 여름을 견뎠다. <부산행> 이래 연상호 감독과 동행한 이목원 미술감독이 “원기옥을 모아왔다”는 조은혜 프로듀서의 감탄에 신현빈 배우가 거들었다. “공장 출퇴근 카드, 칭찬 카드, 휴가 신청서까지 이 안에 다 구현해뒀을 정도다.” 그래서 미술팀은 컷 소리가 날 때마다 부리나케 창문에 붙은 신문지를 매만졌다. 그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예스러운 포스터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불온삐라를 보면 즉시 신고합시다!’ 그날 첫신은 임성재 배우가 분한 공장 사장 백주상의 몫. 그는 시각장애인 전각 명인 영규(박정 민, 권해효)와 공장 노동자 영희(신현빈) 부부 틈에 파고들어 덫을 놓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영규와 영희의 아들 동환(박정민)이 40년 전 실종된 줄 알았던 어머니의 시신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연상호 감독이 2018년 펴낸 그래픽노블이 원작이다. 점심시간이 끝난 대낮, 박정민 배우도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변산>에 출연하면서 친해졌다는 동갑내기 배우들이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촬영이 끝난 신현빈이 먼저 떠났고, 박정민이 배턴을 넘겨받았다. 그가 분장팀이 켜준 스마트폰 플래시의 도움을 받아 렌즈를 끼자 연상호 감독도 모니터 앞으로 향했다. 손이 남는 스태프들이 분주히 밖을 나설 채비를 하더니 백주상 사장의 술상에 올라갈 무알코올 맥주와 마른안주를 구하러 떠났다. 편육은 제작팀이 어젯밤 홍대 편의점 열 군데를 돌며 미리 구해뒀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쥐포 굽는 냄새가 났고, 단출한 상차림 주위로 배우들이 둘러앉았다. 백주상이 영규에게 도장을 파라고 주정 부리는 장면을 찍기 위해서였다. “70년대 이태리 리조트룩”을 입어봤다는 임성재 배우가 실랑이 신을 함께 찍는 신현빈 배우에게 물었다. “대본에 적힌 ‘득달같이’에서 ‘득달’이 무슨 뜻이지?” 누구도 그 어원을 쉽사리 답하지 못하자 연상호 감독이 나섰다. “서로를 탁! 탁! 탁! 밀치는 느낌이 더 나야 할 것 같아요.” 디렉션을 알아들은 배우들이 고성을 주고받은 후 신현빈 배우가 임성재 배우를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프로폴리스 스프레이 있는데, 목에 좀뿌릴래?” <얼굴>에 얼굴을 드러내서는 안되는 영희 역을 맡은 신현빈 배우는 대기 내내 눈썹 가까이 집게 핀을 꽂고 있었다. 촬영 중에는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려야 하니 쉴 때만이라도 머리 넘길 자유를 누리고 싶은 것이 다. “얼굴이 나오지 않으니 분장 시간이 길지 않고, 지저분한 느낌의 가발을 착용하면 된다”는 이점이 있지만 톤다운 메이크업은 빠질 수 없다. 그가 손과 팔까지 짙게 칠했다며 소매를 걷어 올렸다. “어, 오늘 그러데이션이 잘됐네!” 백 사장이 영규에게 술 따르는 컷을 모니터하기 위해 모인 두 배우가 폭소했다. “백 사장 웃음소리가 거의 임꺽정이야!” 임성재 배우가 못내 쑥스러워하자 박정민 배우가 덧붙였다. “백 사장,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거아냐?” 무알코올 맥주와 보리차 음료를 번갈아 마시며 잔을 비운 두 사람은 화장실로 직행했다.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연상호 감독이 읊조렸다. “영규에게서 나를 봤어. 너무 슬픈데?” 백 사장이 영규에게 술을 들이붓는 신을 찍기 전, 의상 팀이 여벌을 확인했고, 연상호 감독은 잠든 인물들의 자세를 직접 잡아줬다. 박정민, 임성재 배우도 리허설을 반복했다. 이들이 몸을 적셔가며 완성해야 하는 장면인 만큼 긴장감이 맴돌던 순간이었다. 이날 박정민 배우는 총 5번 머리를 말려가며 오케이 사인을 받아냈 다. 웃던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신을 마무리하는 박정민 배우에게 연상호 감독이 “권해효 선배를 봤다”며 칭찬했다. 박정민이 젊은 영규를, 권해효가 노인 영규를 연기하기 때문이다. <얼굴> 쓰고 연출한 연상호 감독 “아내와 TV로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고 있었다. 어떤 에피소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주 영화적인 이야기였다. 제작비가 그리 크지 않은 방송일 텐데 어떻게 이렇게 흥미롭게 만들었을까 궁금했고, 나도 그런 식으로 무언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까지 OTT 시리즈, 제작비 큰 극장 영화 등 여러 규모의 작업을 해왔다. 이번에는 다른 영혼을 가진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더라. 그런데 다른 영혼을 가지려면 몸집도 달라야 한다. 저예산으로 찍자고 결심한 뒤 만화였던 <얼굴>의 시나리오를 쓰고, 배우들을 모았다. 촬영 일주일째인 지금, 너무 재밌다! 대부분 과거에 호흡을 맞춰본 배우들이라 영화 동아리처럼 영화 생각만 하면서 편하게 찍고 있다. 그래서 해방감이 느껴지는 한편 미안한 마음도 크다. 스태프들도 이 현장에 엄청 공을 들이고 있으니까. 어쩌면 원작을 본 분들은 엔딩을 가장 궁금해하지 않을까? 배우가 가진 얼굴의 틀 안에서 전혀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보려고 작업 중이다. 그 결과물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관객의 감상도 많이 달라질 것 같다.” 임동환, 임영규 역 박정민 배우 “<염력>을 촬영할 때인가, 연상호 감독님에게 <얼굴> 만화책을 선물받았다. 그때 재밌게 읽어서 좋은 인상이 남아 있던 작품이라 출연 제의를 받고는 바로 하겠다고 답했다. 시대적 갈등, 세대간 갈등을 한국 현대사와 엮어서 풀어내는 방식이 굉장히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만화를 다시 보니 감독님이 처음 제안한 동환이 라는 역할이 할 게 별로 없는 거다. (웃음) 정확히는 이렇게 말했다. ‘이 캐릭터 심폐소생술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러니 감독님이 내 뉘앙스를 파악하고 동환, 영규 부자를 1인2역으로 해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말씀하셨다. 그게 바로 내가 원한 것이라 덥석 물었다! 피해의식이 강해 성공에 대한 열망이 컸던 영규가 목표를 이뤄냈을 때, 사실 그의 자식 동환은 전혀 그럴 필요 없는 인물이 된다. 그 정반대 위치를 곧 두 인물의 차이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또한 영규가 시각장애인이지만 개인적 사명감 때문에 택한 역할이라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시각장애를 가진 우리 아버지를 포함해 그분들의 고충을 내가 다 알 수는 없어도 그 불편을 조금씩 알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기는 하다. 소품팀, 미술팀, 촬영과 조명 모두 내가 시각장애인처럼 보일 수 있게 도와주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구현에 큰 스트레스는 받지 않으려 하고 있다.” 정영희 역 신현빈 배우 “영희는 ‘좋은 사람’이다. 내성적이지만 정의롭고, 남을 도와주면서도 자기 일에 성실하다. 큰 편견이 없으니 영규와도 결혼했을 테다. 그런데 그 좋은 모습이 타인을 불편하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었을 것 같다.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문제를 끄집어내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그 간극을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도 표현하는 법을 고민했다. 그만큼 소리도 중요했는데, 앞이 보이지 않는 영규가 호감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공장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 수 있는 목소리가 필요했다. 말수가 적어 말하는 박자도 톤도 엇나가곤 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연구했는데, 얼굴이 보이지 않는 역할이니 후시녹음도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웃음) 살아보지 않은 1970년대를 연기하기 위해서는 <미싱타는 여자들> 같은 다큐멘터리도 보고, 어머니와 대화를 많이 나누며 그 시대적 배경을 익히려 했다. 소위 말하는 ‘옛날 글씨체’까지 눈에 담아뒀다. 전단지를 직접 써서 돌리는 장면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요즘은 자음을 통통하게 쓰는 편인데 오래전엔 모음 자간을 넓게, 궁서체에 가까운 정자의 글씨체로 썼더라. 나도 글씨를 잘 쓴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과거 풍으로 바꾸는 건 쉽지 않았다. 다른 배우들도 도전해보다가 나만의 숙제로 집에 가져갔다.”

[인터뷰] 열렬한 애정으로 만나다,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 감독 변영주와 배우 고현정

- 올해 초 한해 동안 공개 예정인 시리즈를 소개하는 ‘2025 시리즈 라인업’ 특집을 진행했다. 그때 만난 변영주 감독이 말하길 본래 둘 다 일정이 있어 잠깐 인사만 하고 헤어지기로 했는데 이상하게도 밤 10시까지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변영주 내가 고현정 배우의 오랜 팬이다. 드라마 <엄마의 바다> <작별> <모래시계> 때부터 너무 좋아했다. 그의 연기를 보면서 ‘드디어 우리나라 드라마가 현대 여성을 그리는구나’ 싶었다. 때로 이기적이고 때로 순정적이지만 독립적인 여성을 보면서 언젠가 그와 함께하고 싶었다. 그런데 때가 온 거다.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이하 <사마귀>)의 정이신만큼은 꼭 고현정 배우가 하길 바랐다. 그가 이 작품을 선택해준다면 나도 함께 신날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찍 답변이 왔다. 이신이가 되겠다고. 고현정 그건 내가 감독님이 너무 좋으니까. (웃음) 변영주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꼭 함께하고 싶었다. 스토리도 좋았다. 만약 이 작품이 과거에 잘못을 저지른 엄마가 현재에 와서 아들을 만나고 싶어 하는 단순한 흐름이었다면 그렇게까지 매력을 못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정이신은 다르다. 이때 아니면 영영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빠르게 답변을 보냈다. 열렬한 애정으로 만나다 -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나. 변영주 <사마귀> 대본이 처음에는 6부작이었다가 8부작으로 바뀌면서 정이신의 과거를 늘렸다. 피투성이의 고현정이라니!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웃음) 고현정 배우에게 처음 갔던 대본도 6부작이었던 터라 그 부분을 열심히 설명하며 시간을 보냈다. 긴 애정 고백의 시간이었다. 고현정 나도 못지않게 고백을 많이 했다. (웃음) 전쟁 같은 고백들이었다. 변영주 <사마귀> 방영 채널이 조금 늦게 정해지는 바람에 촬영 일정이 멀리 잡혀 있었다. 그사이에 현정씨가 다른 작품을 진행했는데 우리가 만나지 못하는 동안 작업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계속 내 생각을 전달하겠노라고 말했다. 나를 잊지 말라는 뜻으로. (웃음) 그 기간에 내가 제일 열심히 본 게 고현정 유튜브다. 그의 가장 최근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정말 많은 표정이 그 안에 있었다. 웃는 모습, 찡그리는 모습, 걸을 때 앞모습과 뒷모습. 먹을 때 표정. 그런 것을 눈으로 선명하게 외웠다. 그래서 첫 촬영날 자신만만했다. - 첫 촬영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변영주 촬영장에서 리허설을 하고 난 후 사운드 체크, 조명 설정, 카메라 동선 파악 등을 하다보면 20분 정도 걸린다. 그런데 현정씨가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혼자 앉아 있었다. 보통은 커피 한잔 하거나 멍때리거나 옆 사람이랑 이야기를 나누는데 현정씨는 그저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조용히 연기 연습을 되뇌고 있었던 거다. 그때 유튜브 채널에서 볼 수 없던 정이신의 얼굴이 보였다. 살인마가 된 여자의 얼굴. 사실 나는 촬영장에서 많이 놀라는 편은 아니다. 배우들의 즉흥연기도 늘 내가 예측한 범위 안에 들어와 있다. 그만큼 내가 배우를 탐구하기도 하고. 그런데 현정씨는 상상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나의 예측 영역을 자꾸만 삐져나왔다. 그런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어 사실은 엄청 행복했다. 고현정 촬영장 분위기가 너무 좋으니까 더 잘하고 싶어서 어떻게든 한번이라도 더 해보려고 그런 거다. (웃음) 다른 배우들이 예열이 너무 잘돼서 탕탕 튀어나오니까 나도 무척 긴장됐다. 그 분위기에 화답하고 싶었던 마음이 크다. 작품에서 조성하 배우 다음으로 내가 가장 연차가 높았기 때문에 모범이 되지 못할망정 밀리고 싶지는 않았다. - 정확히 어떤 신이었나. 변영주 3화 즈음에 등장하는 비 내리는 밤 신이다. 설정상 복장이 너무 얇아서 겨울에 촬영하면 배우가 너무 힘들 것 같았다. 아직 촬영 기간이 많이 남았지만 이 장면만큼은 미리 찍어두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러자 현정씨도 흔쾌히 이틀을 비워줬다. 그렇게 전남 신안의 조용한 바닷가에서 촬영을 했다. 워낙 체력적 소모가 큰 장면이라 중간중간 쉴 수 있는 환경을 미리 마련해놨는데 좀처럼 카메라 앞을 떠나지 않더라. 그래서 못된 생각도 했다. 너무 열심히 하니까 더 몰아붙여볼까. (웃음) 고현정 말씀은 이렇게 하시지만 많은 스태프가 나를 위해 대기하고 또 몸을 녹일 수 있는 캠핑카까지 준비해주셨다. 앞뒤 맥락을 쌓지 않고 이 장면만 떼어내 촬영하는 게 심정적으로 부담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모든 걸 뜨겁게 쏟아붓고 나오는 걸 무척 좋아한다. 그게 나와 잘 맞는다. 몰입과 집중을 쏟아내고 나면 진짜 연기를 한 느낌이 든다. 쉬운 장면은 오히려 몸이 찌뿌둥하다. 변영주 여름에 과거 장면을 촬영하고 겨울에 현재의 정이신을 이어 찍었는데 그때 녹음기사님이 그랬다. 목소리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많은 것을 겪고 통과해온 정이신의 음성을 너무 명확하게 구현한 거다. 나도 실제 목소리를 들으면서 깜짝 놀랐다. 아유, 나 이제 현정씨 자랑 그만해야지… 몰입으로 완성되는 순간들 - 오직 자신만이 세상의 기준이자 정답인 여자는 어느덧 경찰로 자란 아들 수열(장동윤)과 공조수사를 펼친다. 연쇄살인범이라는 수식어 아래 자신을 증오하는 아들을 어떻게든 만나려는 정이신의 모습은 자기중심적인 면모를 보여주지만, 자칫하면 단편적인 모성애로 기울어 보일 가능성이 있다. 변영주 나는 살면서 모성애와 부성애, 가족간의 사랑으로부터 한번도 감동받아본 적이 없다. 부모님이 깊은 사랑을 주는 것. 어떻게 보면 그건 인간사 당연한 일 아닌가. 오히려 부모님이 나 말고 옆집 아이나 동네 아이들을 잘 돌봐준다면 그건 정말 감동스러운 일이겠지만, 자식에게 잘해주는 것은 적어도 내게 울림을 주지는 않는다. 따라서 정이신의 면모가 모성애로 잘못 압축되는 순간 모든 게 단순해지고 납작해진다. 그보다 세계관이 다른 사람 둘을 바라보고자 했다. 수열과 이신은 관계적으로 모자지간이지만 서로 치열하게 대립하고 영향을 받는 개인에 가깝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자기가 살기 위해 혹은 누군가를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게 올바르다고 믿는 사람과 한명이라도 구하는 게 더 올바르다고 믿는 사람의 대립. 어머니와 아들이 따로 떨어져 23년을 지냈는데 정이신이 수열을 보고 싶어 한 이유는 결국 궁금증 때문이다. 사랑해서가 아니라, 이 아이가 어떻게 자랐을지 너무 궁금한 마음. 다만 이야기가 모두 흘러간 다음에 혹시 이런 게 정이신만의 모성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는 건 새로운 재미가 될 수 있겠다. 고현정 정이신의 설정은 너무 특수하지만 이런 성향의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특히 가장 표현하고 싶었던 부분은 이런 점들이다. 제3자나 타인이 바라보는 정이신 말고 정이신 스스로 바라보는 정이신. 지금까지 몰랐던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들을 생생하게 그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게 결과적으로 바람직한가 바람직하지 않은가에 따라 자신을 판단하는 기준이 달라진다. 그게 좀 재미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기대만큼 잘 못했던 것 같아서 아쉽고 후회스럽다. 내가 아직 갈증이 난다. 배가 고프고. 변영주 아쉽다고요? 잘 모르겠는데. (웃음) - 왜소하게 마른 몸에 검버섯이 핀 얼굴. 정이신의 늙고 추레한 외형은 곧 고현정의 변형이자 시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변영주 머리에 흰머리를 달기도 하고. 얼굴도 허옇게 뜨게 만들었다. 근데 현정씨가 이걸 엄청 즐겼다. 고현정 분장팀에서 약하게 하려고 하면 그러지 말라고 말렸다. 분장은 연기를 도와주는 유용한 요소이기 때문에 <사마귀>를 위해 받을 수 있는 모든 도움은 모두 받고 싶었다. 처음 대본을 보았을 때부터 크게 거리낌이 없기도 했고. 변영주 분장팀이 가장 행복해지는 순간은 배우가 그 분장을 즐길 때다. 드라마 촬영 초반에 현정씨가 많이 아팠다. 퇴원하고 빨리 합류해줘서 다들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순천에 모였다. 그리고 분장을 마친 현정씨 얼굴을 모든 스태프가 본 순간, 아무 말도 못했다. 너무 멋있어서. 고현정에게서 이런 얼굴도 볼 수 있구나 싶어서. 너무 멋있었다. 그날 너무 신나서 테이크를 제일 많이 갔다. - <사마귀>의 중심축으로 서 있는 정이신의 광기에 대해 말해보자. 살해 현장을 방문한 정이신은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고 오히려 괴랄할 만큼 과거의 살인을 즐겁게 추억한다. 수열이 몸서리칠 정도로 잔혹하고 광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이 장면은 어떻게 완성되었나. 고현정 대본에 명확하게 나와 있는 그대로 집중하고 싶었던 장면이다. 사람들은 보통 명분이 확실하면 거리낌이 없다. 이 일을 할 만한 사람이 한 거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정이신은 특히 그런 생각이 강하다. ‘나는 어차피 해야 할 일을 한 거야. 그런데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해? 너희야말로 표리부동인 거지. 너희도 같이했어야지.’ 이런 식으로. 객관적으로 보면 당연히 이상한 사람이지만(웃음), 이신은 할 일을 한 거다. 연기에서도 이신의 입장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움을 가장 우선했다. 변영주 수열이가 23년 만에 만나는 사람은 그의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5명을 무참히 살해한 연쇄살인범이다. 그런 살인마가 과연 ‘내가 인간을 죽이다니…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있어…’라고 쉽게 반성할까. 그 장면은 수열의 입장에서 이질감을 표현한 장면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저 사람은 영원히 알지 못하겠구나 하는. 이신과 수열, 두 인물이 한 공간에 있지만 완전히 분리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때 정말 놀란 게 고현정 배우가 순식간에 확 들어갔다가 확 빠져나온다. 감정을 크게 소모하지 않는 기술을 지닌 것이다. 이런 노련함이 정말 돋보였다. 이런 건 같이 일해봐야 알지, 정말! 고현정 너무 좋게 말씀해주셨다. 그런데 그건 배우의 일이자 몫이다. 만약 나에게 혹은 주변 사람에게 슬픈 일이 일어난다면 그건 쉽게 빠져나오기 어려울 테지만 연기는 실제 같아도 실제가 아니다. 한정된 시간 안에 다른 신을 찍어야 하고 계획된 스케줄을 원활하게 진행해야 하는데 아직도 그 이전의 감정에 빠져 있다면 그건 일종의 민폐다. 무엇보다 내가 변영주 감독님을 정말 많이 의지하고 믿었다. 꼭 필요한 자리에 필요한 역할로 - 이번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단연 배우 장동윤이다. <사마귀>의 수열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장동윤의 변곡점’이다. 수열과 이신이 23년 만에 재회한 날, 그를 심리적으로 자극하는 어머니 앞에서 수열의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떨린다. 그의 디테일한 연기를 어떻게 바라보았나. 변영주 동윤씨는 자신이 연출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전체를 보는 훌륭한 시야를 가졌다. 전체 맥락을 읽고 자신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만 개입하면 되는지 이성적으로 파악한다. 연출자 입장에서는 무척 안심이 되는 배우다. 그래서인지 현정씨와 둘이 붙을 때 정말 좋았다. 특히 3화 마지막 15분. 컷 하자마자 현정씨가 동윤이한테 박수쳤잖아. (웃음) 고현정 그날 타임라인상 동윤씨가 무척 답답하고 더운 옷을 입고 있었다. 목폴라에 겨울 바지, 가죽점퍼를 입고 비까지 맞았다. 게다가 세트 안이 무척 후덥지근했다. 굉장히 답답하고 힘들었을 거다. 그런데 나를 그렇게 배려해주더라. 내가 남자배우에게 이렇게 배려받아본 적이 있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예를 들면 15분에 달하는 긴 신을 촬영하면서 상대배우 얼굴에 맞춘 장면에서조차 에너지를 모두 써버리면 자기 장면에서 힘이 달릴 때가 있다. 그래서 배우들은 보통 그 과정에 에너지를 아낀다. 그런데 장동윤 배우는 자신의 바스트 촬영이 아닌데도 모든 열연을 쏟아내면서 눈물을 후두둑 떨어뜨리더라. 그 분노에 너무 집중한 거다. 순간 놀라서 속으로 카메라에 잘 담겼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너무 감동했다. 이 작품, 연출자와 스태프, 상대배우까지 모두 배려한 그 힘이 너무 좋았다. 박수가 절로 나왔다. - 살인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순간 정이신의 살인을 어떤 관점으로 그릴 것인가는 작품의 중요한 스탠스가 된다. 그를 불쌍하게 보이도록 할 것인가, 그를 정당하게 보이도록 할 것인가, 그를 마녀사냥의 제물로 내세울 것인가. 이 무게를 어디에 설정하느냐에 따라 정이신을 연출하는 법도, 연기하는 법도 모두 달라진다. 변영주 정이신의 살인 방식이 또 엄청나게 잔인하고 그로테스크하다. 그는 무조건 사이코패스로 그려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변명의 여지도 제공하지 않는 사이코패스. 물론 그가 살인을 시작한 개인의 이유는 있겠지만 그것으로 그 사람의 편에 서고 싶지는 않다. 자력구제란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고현정 나도 정이신의 서사에서 시청자가 납득할 만한 요소가 완전히 배제되길 바랐다. 정이신은 우리 모두가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어야만 했다. 극적으로도 그게 더 재미있다. 무슨 짓을 할 줄 모르는 인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여자. 그런 게 더 긴장되고 재미있지 않나? (웃음) 우리도 시즌2 있으면 좋겠다. 그쵸, 감독님? 변영주 하하. - 워낙 여성 캐릭터를 섬세하게 다뤄오는 변영주 감독인 만큼 이번에도 그런 지점을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어떤 점을 더 들여다보면 좋을까. 변영주 모든 여성 캐릭터가 소모적이지 않길 바랐다. 꼭 개별 서사를 보여줄 필요는 없어도 각각 어떤 개성을 지닌 캐릭터고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지 그런 차이를 딱딱 드러내고 싶었다. 주조연 비중을 가르지 않고 일관적으로 자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이 극에 존재만 하는 게 아니라 필요한 자리를 주고 싶었다. 수열의 수사팀에서 프로그래밍 작업을 다루는 손지완 역의 박완형 배우는 연극 두어번 해본 게 전부고 서울독립영화제 배우프로젝트 ‘60초 독백 페스티벌’에서도 무려 꼴등을 한 친구다. (웃음) 그런데 그 친구가 정말 대단하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면서 서른까지 모은 돈으로 부모님께 집과 밭을 사드렸다. 그리고 홀로 생각했다고 하더라. ‘나는 뭘 하고 싶은 사람이지?’ 그때 생각난 게 연기였다고 한다. 그 친구의 목소리가 좋아서 오디션을 볼 기회를 줬다.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는지는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그런데 정말 해낸 거다. - 고현정 배우가 유튜브 채널을 처음 개설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친근함을 느끼며 반가워했다. 실제로 사랑 가득한 표현을 받고 있는데 이러한 따뜻한 말들이 어떤 동력과 에너지가 되나. 고현정 어느 순간부터 내가 신비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그것 덕분에 앞으로 나아왔는데 돌이켜보니 내가 크게 한 게 없더라. 그렇게 SNS를 시작했다. 그러자 목소리도 듣고 싶고 움직이는 모습도 보고 싶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때 생각이 들었다. 못할 게 뭐 있나? 그렇게 유튜브를 시작했다. 대신 소비를 부추기는 것만은 하지 않으려 한다. 그간 보지 못한 나의 일상이 궁금하셨을 테니 그걸 더 많이 보여드리고 싶다. 내게는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힘이 된다. 변영주 내가 제일 많이 보지 않았을까. 배우를 탐구하던 연출자에게 정말 유용한 자료였다. (웃음) 무엇보다 현정씨가 이렇게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소통하는 것을 감사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인다. 건강해 보여.

[인터뷰] 영향 아래의 작가,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 조희영 감독

- 두 번째 장편을 연출하면서 극 중 등장인물 수, 제작 과정에서의 스태프 규모 등 다방면에서 외연을 확장했다. 규모의 확장을 의도했다기보다 이 시나리오가 많은 인원을 필요로 했던 것 같다. 영화진흥위원회 제작 지원을 받으면서 단편 때보다 오래 함께한 정광은 프로듀서와 모색해 공동 제작사를 만난 영향도 컸다. 영화뿐 아니라 드라마, 광고 등 작업의 폭이 넓고 프로페셔널한 프로덕션 서비스를 제공하는 보더리스 필름과 인연이 닿아서 정인석 촬영감독, 그리고 커머셜 작업이나 뮤직비디오 작업에 단련된 크루들과 협업했다. 새로운 동료들과 안정감 있게 촬영하기 위해 콘티 작가를 따로 두고 작업하기도 했다. 창작적인 결정에 있어서 연출자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간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는 점에서 특히 프로듀서들에게 고맙다. - 장편 데뷔작 <이어지는 땅> 이전인 2018년에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의 초고를 썼다고. 우선 제목의 출처부터 묻고 싶다. 오래 전 접한 로버트 배리(미국의 개념미술가, 작품과 반응하는 환경 및 관람객 사이의 상호적 인식에 초점을 맞춘 작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편집자)의 텍스트 작업 중 “It can only be known as something else”(오직 다른 것으로서만 알려질 수 있다)라는 말이 내 안에 아주 강하게 남아 있었다. 오해와 욕망, 외로움에 관한 파편들이 떠오를 때마다 그 문장이 이야기의 바닥에 계속 깔려 있곤 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의 구조를 구상하던 시기였는데, 머릿속에서 생각을 굴려가다가 이영호 작가의 전시에서 버려진 유리문을 깨뜨려 바닥에 설치한 작품을 마주했다. 그걸 본 순간 ‘어디서 어떻게 살았을지 모르는 문이 깨진 채 파편으로 남아 있는’ 형태와 구조로 곧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는 결심이 섰다. - 특정한 사물의 관념으로부터 착안하거나 회화적 발상에 익숙한 연출자다. <이어지는 땅>에선 버려진 캠코더가 인물들의 여정을 촉발하고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는 그림과 미술가의 작업실이 서사의 통로가 되어준다. 폭우 속에서 산책하다가 길 한가운데 서류 가방이 버려진 걸 보고 멈춰 선 적 있다. 누가 잃어버린 것인지, 일부러 놓고 간 건지 구분하기 힘든 자태로 남겨진 가방을 보면서 문득 단편 <주인들>에서 정회린 배우가 가방을 습득한 이들에게 가방이 자기 거라고 우기는 장면을 떠올렸다.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는 유리 조각의 성질이 모든 인물들에게 녹아 있기를 바랐다. 또 깨진 유리 조각들의 위치성이 곧 이 영화의 구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상의 사물들은 내게 중요한 단서인 것 같다. 버스 정류장에 누군가가 떨어트리고 간 열쇠를 보면 한참 동안 집착적으로 생각한다. 무언가를 열 수 있고 어디론가 들어갈 수 있는 사물을 잃어버린 사람에 대해서도. 이런 물건들을 발견하면 꼭 사진을 찍어둔다. 그래서일까. 영화 <몽상가들>에서 매튜(마이클 피트)가 식탁에서 펼친 성냥갑 이론을 들으면서 동질감과 희열을 느꼈었다. 우연한 성냥갑 하나가 자신의 손마디 길이와 정확히 일치하고, 그로부터 식탁보의 길이, 집 벽의 높이, 이자벨(에바 그린)의 키까지 절묘한 우연으로 일치한다는 사실을 짚어주는 장면이다. 대학에서 가장 처음 전공한 분야가 동양화라 기본적으로 평면 회화에 친숙하고 좋아하기도 한다. 오랫동안 미술을 하다 보니 개념적인 현대미술이나 비디오 작업에도 자연스럽게 친숙해져서 아마 이런 영향도 있겠거니 싶다. - 비선형적 흐름으로 시공간을 재배치하는 실험에서 어떤 가능성을 보는가. 내러티브를 가지되 형식적이거나 표현주의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계속 실험하는 중이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이야기가 있는 영화인데, 그 형태는 다채롭게 떠오른다. 장편을 쓰다보면 내러티브적인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단편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이런 아이디어들을 좀더 실험적인 형식으로 옮긴 것이 내 단편영화였다. 계속해서 다양하게 작업하면서 균형점을 찾다보면 가장 나답게 구사할 수 있는 언어에 더 가까이 다가가지 않을까. 보이지 않는 상호작용을 비추는 눈 -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 <이어지는 땅> 그리고 단편들에서 관찰되는 일관된 양식 중 하나는 단일한 주인공이 겪는 사건과 내면에 몰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항상 다중의 시점이 혼재되고, 그들의 경험이나 상념이 교차로를 이루는 지대에서 영화가 흐른다. 종종 배우들에게도 이야기한 것인데, 나는 극 중에서 여러 인물을 상상하고 그들을 만나게 할 때 사실 같은 인물들, 그러니까 모두 하나라고 생각하곤 한다. 뒤집어 말하면 인간은 혼자서는 어떤 영향도 오롯이 낼 수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계속해서 관계에 대해서 쓰려고 한다. 인물과 인물 사이뿐만 아니라 인물과 공간, 인물과 사물 사이의 것들이 내게는 중요하다. 이 사이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의 총합이다. 사람(인물)과 그들을 둘러싼 영향을 동등한 레벨로 담아보려고 노력한다. - 캔버스에서 그림을 분리하는 정호(감동환)의 가만한 손길과 그의 작업실을 기점으로 영화가 접히면서 일종의 2부 구조를 이룬다. 1부에서 보여지지 않은 시공간을 드러내는 2부를 동일한 로케이션에서 연달아 촬영했나. 그렇다. 다만 콘티상의 신 넘버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배우들도 어느 정도 의식했을 것이다. 인주(정보람)가 주영(양의진)을 만나 공원에서 대화하는 장면은 2부에서 역숏으로 촬영했다. 그 때문인지 디렉션으로 강조하지 않았는데도 배우들이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어 소화하더라. 배우들은 자주 1부와 2부가 각각 누구의 시점을 대변하는가를 궁금해했다. 내가 추구한 것은 그런 구분이 아니었고, 배우가 영화에서 최종적으로 보여질 시점의 주인을 의식하지 않고 연기하길 바랐기 때문에 배우들에게 저마다 조금씩 다르게 대답했다. 그런 뒤섞임이 필요했다. - 대사가 적고 뒷모습과 옆모습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정호는 ‘보이지 않는 영향’을 매개하는 일종의 관념적 존재로도 읽혔다. 그래서 스태프들이 왜 배우의 클로즈업을 찍지 않는지 의아해한 적도 있다. 보이는 게 중요한 영화가 아니라고 말하는 영화가 관습적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이 우스꽝스럽다고 느꼈다. 뒷모습이 주는 엄청난 가능성이 이 영화에서 정호 그 자체로 표현되어야 했다. 감동환 배우도 이를 이해하고 지문대로 절제된 표현과 대사를 수행했다. 그러다 딱 한번, 수진(공민정)과 정호가 영훈(김희상)의 생일 파티에서 처음 만나는 과거 장면을 찍을 때였는데, 감동환 배우가 전혀 다른 성격으로 정호를 연기하기에 깜짝 놀랐다. 정호란 사람이 정말로 누군가, 하는 지점이 갑자기 새롭게 보였다. 영화구조를 감안해서 의식적으로 캐릭터디자인을 설계한 것인지 배우에게 물어볼 정도였다. 이후 두 남녀가 건물 밖에서 조금 짓궂은 대화를 하면서 가까워지는 순간이 너무나 내가 그렸던 이상과 일치해서 첫 테이크 만에 기쁜 내색을 감추지 못한 채로 연신 오케이를 외쳤다. - 덧붙여 유정(정회린)이 우석(류세일)과의 관계에서 과거 정호와의 관계를 겹쳐보는 감정도 다수의 공감을 살 만하다.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는 좁혀지지 않는 남녀 관계의 세밀한 성질에 관한 영화라는 점에서 미학적 완성도와 별개로 어른들의 재미있는 연애영화가 아닐까. 다른 분들도 그렇게 봐주었으면 좋겠다. (웃음) 인생에서 연애는 정말 중요하다고, 그리고 아름답다고 믿는다. 친구나 가족과도 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만들고는 헤어지면 다시는 보지 않는 남이 되는 역학이라는 게 참 잔인하고도 애틋하다. 영화를 귀하게 여기기에, 자유롭다 - 미술을 공부하다가 영화작업을 하게 된 경로는. 한국에서 대학교 다닐 때 영화 전공생들과의 협업으로 독립영화의 미술 작업을 맡아서 했다. 그렇게 물꼬를 터서 다른 학교 학생들과도 작업하게 됐다. 처음엔 영화가 하고 싶으니 내가 해온 미술로라도 참여하면 되겠지 싶었는데 그걸로는 해소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더라. 내 영화를 만들고 싶은 마음은 아무에게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그러다 크게 힘든 일을 겪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살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심정에 자퇴 후 프랑스로 도망치듯 떠났다.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었다.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에서 친구가 건넨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책 <봉인된 시간>(개정판 <시간의 각인>)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영화는 삶을 건드리고 있다”는 문장을 품고, 진심을 다해서 삶을 건드리는 글을 쓰는 것으로 내 영화에 다가가자고 마음먹었다. - 해외 생활을 하면서 혼자 영화작업에 뛰어들기 쉽지 않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바로 영화를 하지는 못했다. 프랑스에 있다가 영국으로 건너가서 미술이 아닌 여성복 디자인을 공부했다. 졸업 작품으로 만들었던 옷이 <기억하는 옷>이다. 천 안에 알루미늄을 넣어서 온도가 유지되고, 옷을 벗으면 입었던 사람의 형체가 그대로 남아 있는 옷을 만들었다. 돌아보면 재미있는 것이 어렸을 때부터 그렸던 그림과 여성복, 그리고 지금 만든 영화가 다 닮아 있다.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땐 내가 비전공자이기에 오히려 자유로움이 있겠다는 기대도 했다. 전공하지 않고 미술을 하는 이들의 작품에서만 묻어나는 것들을 반추하려 애썼다. 스스로 끊임없이 공부는 하되 기관에 속해 소속감을 느끼면서 정해진 답에 익숙해지는 환경에는 노출되지 않고 싶었다. - 긴 시간 영화를 향해 왔고 지금은 자신의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 중에, 영화감독을 직업으로 여길 만한 생계와 지속 가능성의 문제는 어떠한지 묻고 싶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영화감독을 직업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생계유지가 어려워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편집이나 의상쪽으로 아르바이트 일이라도 들어왔는데 올해는 모두 끊겼다. 줄어가는 통장 잔고를 보면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자주 들곤 한다. 한국에선 영화진흥위원회 제작 지원을 받지 않으면 사비 외에 영화를 찍을 방법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투자받기 위해 작업의 본질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직업적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워지려고 한다. 내 작업으로서 영화를 하기 위해 너무나 긴 시간 염원해왔기 때문에, 그리고 내 안에서 영화가 아직은 너무나 귀하기 때문에. 영화를 하겠다고 버틸 때 나보다 오래 일한 경력자들이 “너, 집에 돈 많아?”라고 물으며 사기를 꺾곤 했고 그게 정말이지 싫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게 진심 어린 걱정이었음을 알겠다. (웃음) 다만 내가 그런 말을 돌림노래처럼 이어받지는 않고 싶다. 정주리 감독님이 <도라>로 해외 공동제작의 활로를 개척한 사례에서 힘을 얻었다. 나 역시 꾸준히 새로운 방법을 찾아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음 세대 감독들이 좀더 양질의 환경을 꿈꿀 수 있는 데 미약하게나마 보탬이 되면 좋겠다. 관련해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한 부분도 언급하고 싶은데, 영화진흥위원회 제작 지원의 경우 집행 증빙 기간이 짧아 캐스팅 과정상의 촉박함은 물론이고 해외 피칭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제작비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에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1년 안에 영화를 만들어야 해서 창작적 가능성이 협소해지는 상황은 거의 모든 감독님들이 겪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꼭 개선되었으면 한다. - 준비 중인 신작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프로젝트마켓(APM)을 찾는다. 전체 분량의 70~80%가 일본 로케이션이라 APM을 통해 일본 제작사 등 해외 공동제작의 가능성을 찾고 싶다. 가까운 오정민, 이제한 감독 등과 가끔씩 대화하다보면 우리의 바람은 너무도 선명하고도 단출하게 모인다. 계속해서 자신의 영화를 찍고 싶다고.

[특집] 여름 아직 안 끝났다, 올해의 호러 무비

극장가에 수많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으나 변하지 않는 하나의 공식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여름엔 공포영화!’라는 것. 특히 올해의 호러 무비는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두드러진 강세를 보였다. <씨너스: 죄인들>부터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블러드라인> <웨폰> <28년 후>가 유의한 월드 와이드 수익을 거두며 흥행했고, <메간 2.0> <투게더> <브링 허 백> <어글리 시스터> <컴패니언> <더 몽키> 등 크고 작은 호러 무비가 연달아 개봉하며 적절한 화제와 성취를 이끌었다. 다만 한국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북미에서 크게 흥행한 <씨너스: 죄인들>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블러드라인> <28년 후>가 한국에선 흥행에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다. 다만 김수진 감독의 <노이즈>가 누적 170만 관객을 모으며 7월 한국영화 중 흥행 1위를 기록했다. 또한 J호러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가 20만 관객을 확보하고, <어글리 시스터>와 같은 아트하우스영화가 2만 관객을 모으며 호러 무비 흥행의 또 다른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어지는 기사에선 올해 북미를 중심으로 한 호러 무비의 강세가 어떤 흐름으로 나타났는지 살피고자 한다. 그리고 최근 국내에 개봉했거나 개봉예정인 3편의 호러 무비 <투게더> <컨저링: 마지막 의식>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를 통해 보디 호러, 정통 오컬트, 파운드 푸티지라는 호러영화의 세 갈래 경향을 갈무리한다. 8월23일 처서가 지났음에도 좀처럼 꺾이지 않는 무더위 속에 호러 무비를 보러 극장에 가기 딱 좋은 시기이다. *이어지는 글에서 올해 호러 무비의 트렌드와 <투게더> <컨저링: 마지막 의식>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소개가 계속됩니다.

[박 로드리고 세희의 초소형 여행기]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젊어서부터 많은 시간을 여행으로 보냈다. 대체로 단출하게 짐을 꾸려 혼자서 이곳저곳 쏘다니는 배낭여행이었다. 지금껏 70개국 정도를 여행했고, 기간으로 놓고 보면 5년을 훌쩍 넘긴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엇비슷한 여행을 하도 다녀서인지 감흥이 예전만 못해 이제는 나름 새로운 여행을 해보려고 애쓴다. 나의 삶에 여행의 환희는 여전히 필요하므로. 그래서 산악스키, 자전거, 카약 등 무동력 운송수단으로 여행하는 일에 심취했었다. 무동력 여행 중에서도 요트는 유독 진입장벽이 높은데, 요트 자체가 고가이기도 하고 계류를 비롯한 유지비용이 만만치 않아서다. 또한 요트는 기본적으로 네명의 선원이 탑승해야 항해할 수 있는데 나에겐 요트도 없고 동료도 찾기 힘들었으니, 요트 여행은 점점 소원해졌다. 그런 사정 속에서 반가운 풍문이 들려왔다. ‘개척자들’이라는 NGO에서 요트 항해 훈련을 한다는 것이었다. 인도네시아에 가서 무려 한달 동안.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훈련이 필요한지, 어떤 자격이 필요한지 전혀 몰랐지만 일단 마음먹었다. 무조건 참여하리라. 고백하건대 개척자들처럼 인류의 평화를 좇아 항해 훈련에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염치없지만 그토록 요트 여행이 하고 싶었다 개척자들이 해마다 항해 훈련을 하는 곳은 인도네시아의 술라웨시섬이었다. 말이 섬이지 한국의 두배 정도 되는 큰 섬이었다. 술라웨시에는 ‘산덱’이라는 전통 요트를 가진 해양 민족이 살았다. 산덱의 역사는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현지의 어부들은 지금까지도 산덱을 몰아 어로 활동을 한다고 한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그랬던 것처럼. 개척자들의 최종 목적지는 ‘루아오르’라는 작은 바다 마을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차로 10시간을 더 달려야 하는 외진 곳이었다. 새벽 4시 즈음, 쥐 죽은 듯이 조용한 마을에 개척자들이 탄 차가 들어서자 히잡을 쓴 누군가가 집에서 나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올해도 어김없이 오랜 친구들이 찾아온 것을 확인하고는 일일이 손을 잡고 포옹하며 맞이해주었다. 외지에 나간 아들, 딸이 일년 만에 불쑥 돌아온 것처럼 살갑게 환대했다. 미리 기별을 넣은 것이 아니었다. 매년 이맘때 한국에서 오는 친구들인가 싶어서 나와 본 것이었다. 딱히 소란스럽지도 않았는데 여러 집에 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더니 새벽녘이 무색하게 마을은 금세 적도의 태양만큼이나 뜨겁게 들썩였다. 하루, 이틀 회포를 풀고 이런저런 항해 준비를 마치자 개척자들은 마을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방수포에 싸서 해체해놓은 산덱 요트를 조립하기 위해서였다. 산덱의 선체는 나무로 만들고 각각의 부분을 끈으로 묶어서 조립하는 형태였다. 험한 바다에 나가야 하니 대충 매어서는 안됐다. 바다를 항해하는 일은 뭍에서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험한 일이니까. 오랜 세월 끈과 나무를 만져온 마을 어른들의 손놀림은 장인을 연상시킬 만큼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뚝딱 완성된 산덱의 첫인상은 가볍고 날렵했다. 그리고 뜯어볼수록 단아했다. 나무를 깎아 만든 선체는 단순하고 단단했고, 선체의 양쪽 옆으로 소금쟁이의 다리가 연상되는 대나무 관을 달아 부력을 보완했다. 엄연히 요트인데 못이나 접착제를 전혀 쓰지 않고 순전히 끈으로 묶어 만든다는 게 다시 한번 경이로웠다. 개척자들의 산덱이 완성되자 마을 사람들과 함께 단출한 진수식을 가지고 바다에 배를 띄웠다. 처음 항해하던 날의 환희는 아직까지 잊을 수가 없다. 산덱 위에서 들을 수 있는 세상의 소리는 오직 파도와 바람뿐이었다. 터질 듯이 팽팽해진 돛은 커다란 울림판이 되어 바람의 방향과 강도에 따라 음을 바꾸어가며 노래를 불렀다. 나는 눈을 감고 귀를 귀울였다. 바다 한가운데서 듣는 바람의 노랫소리. 산덱은 파도를 잘도 넘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종종 큰 바람이 불거나 큰 파도에 부딪힐 때면 휘청거렸으나 매듭이 가진 탄성 덕분에 부러지는 곳 없이 낭창거리며 버티었다. 강한 바람이 통나무는 부러트려도 갈대는 부러트리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풍랑 위에서 산덱은 하나의 완전한 유기체였고 그 위에 올라탄 나는 온몸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개척자들은 해상 훈련을 하는 동안 철저하게 루아오르 마을의 일원이 되어 생활했다. 마을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야자열매 껍질을 말려 불쏘시개로 쓰고, 앞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구워 스스로 식사를 지어먹었다. 마을 가운데에 난 공동 우물에서 이웃과 함께 목욕하고 빨래하며, 바다에 걸어들어가 아랫도리만 잠그고 용변을 그대로 흘려보내는 현지의 풍속을 따랐다. 낙후된 생활상을 흉내내거나 체험해보는 차원이 아니었고 진심으로 그들과 함께 생활하고자 애썼다. 뼛속까지 검소함이 몸에 밴 활동가들의 자족적인 생활에 단박에 적응하기란 어려웠다. 나는 지나치게 세속적인 사람이니까. 콜라 한캔조차 쉽게 사먹지 않는 사람들 틈에서 밤마다 거처에서 빠져나와 몰래 콜라를 마시며 하루를 돌이켜보곤 했다. 개척자들이 보여준 삶의 태도는 단순하고 솔직했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이 여행은 그저 요트를 타기 위한 여행으로 그칠 수 없었다. 그동안 찾아 헤매던 ‘새로운’ 여행을 드디어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원하던 여행의 환희가 다시 차오르고 있었다. 국제평화단체인 개척자들은 제주, 오키나와, 타이완을 잇는 바닷길 3000km를 요트로 항해하고자 한다. 군사시설이 즐비하고 무력 충돌이 빈번한 동아시아의 바다를 공존과 평화의 바다, 공평해(共平海)로 만들기 위한 캠페인의 일환인 것이다. 요트는 바람을 동력으로 사용한다. 강한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 엄청난 속도를 내지만 바람이 멈추면 더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한자리를 맴돈다. 바람이 불어야만 나아가는 게 요트의 숙명이다. 개척자들의 요트가 공평해를 항해하기 위해서도 바람이 불어야 한다. 바람(wind)과 바람(wish)이. 나는 가만히 상상해본다. 많은 사람들의 바람을 모아 비용을 마련한 개척자들이 마침 공평해를 항해하는 그날을. 그리고 그 배에 당당히 선원으로 탑승한 나를.

[리뷰] 슬픔과 그리움에서 빠져나와 희노애락의 일상으로, <가족의 비밀>

남편 진수(김법래)는 최근 들어 아내 연정(김혜은)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목적이 불분명한 외출이 잦아지고 집안일에도 빈틈이 생기자 진수는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건 아닌지 의심한다. 진수가 아내의 불륜 증거를 찾느라 바쁜 와중에 가족은 한층 복잡한 상황에 놓인다. 연정은 건축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재취업을 준비하겠다고 하고, 고등학생 딸 미나(김보윤)는 그동안 해오던 피아노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한다. 갈등은 깊어지고 함께할 시간은 줄어들면서 진수의 가족은 진심을 나눌 기회에서 멀어진다. 제2회 4·16재단 문화콘텐츠 공모전 대상작인 <가족의 비밀>은 슬픔으로 묶인 감정을 하나씩 풀어내는 작품이다. 영화는 아들이자 오빠인 승현(박현우)을 사회적 참사로 잃은 가족을 단순히 슬픈 유가족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직업을 고민하고 뜻밖의 사건을 겪으며 희로애락을 경험하는 인물들의 일상을 통해 유가족 서사의 새로운 길을 보여준다. 코미디 장르를 선택하면서도 상처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관객에게 슬픔을 강요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눈물이 흐를 수밖에 없는 영화다. 진수가 차를 좋아하던 아들과 함께 보내던 여가 시간과 경찰이 되고 싶은 미나가 오빠와 상담하던 순간 등 각자의 기억들이 후반부에 포개질 때 느껴지는 감정의 여파가 크다. 특히 연정이 승현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는 다소 직접적임에도 희생자의 평안을 바라는 진심이 배어 깊은 울림을 준다.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톤을 유지하지만 안전한 사회를 위한 메시지를 전할 때만큼은 날카롭다. 작은 것도 소홀히 하지 않고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건축 현장 장면에 특히 무게감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