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텔레@UPCOIN24테더트론매입암호화폐구매대행테더트론매입암호화폐구매대행' 검색결과

기사/뉴스(1997)

[포커스] 인도영화의 진정한 거목 리트윅 가탁을 만나다

인도영화의 대표적인 거장으로 손꼽히는 샤티야지트 레이는 리트윅 가탁이 생전에 남긴 글과 인터뷰를 모은 <영화와 나>의 서문에서 그에게 다음과 같은 찬사를 바친 바 있다. “리트윅 가탁은 이 나라가 배출한 소수의 진정 독창적인 재능의 소유자 가운데 하나였다… 서사시적 스타일 속에서 그가 창조해낸 강력한 이미지들은 사실상 인도영화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하지만 올해로 작고한 지 꼭 30주년이 되는 인도 영화감독 리트윅 가탁은 우리에겐 여전히 미지의 작가로 남아 있다. 영화광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조차 그에 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영화의 정치학과 시학을 고민한 위대한 작가들-로베르토 로셀리니, 장 뤽 고다르,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글라우버 로샤,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오시마 나기사 등- 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목이 이런 식으로 잊혀져가고 있다는 건 진정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설가로 출발해 인도민중극회(IPTA) 배우이자 연출가로, 그리고 영화감독으로 옮겨갔던 그의 행보는 좀더 많은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매체가 무엇인가를 고민한 결과였다. 심지어 그는 기꺼이 영화를 버리고 텔레비전으로 옮겨갈 것이라 말하기도 했으며 자신의 진정한 관심은 영화가 아니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곤 했다. 그런데 정작 가탁의 영화들은 민속적인 형식과 브레히트적 장치간의 기이한 결합, 다큐멘터리적 터치와 놀랄 만큼 표현적인 촬영의 교차, 거의 당혹스러울 정도로 이례적인 사운드 편집 등이 불가사의하게 어우러진 시청각적 융합물,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영화들이었다. 한편 마르크스주의자이자 비타협적인 예술가였으며 알코올 중독자이기도 했던 이 괴벽의 시네아스트를 평생토록 사로잡았던 주제는 1947년의 벵골분할이었다. 그 자신 동벵골(오늘날의 방글라데시) 출신이었던 가탁에게 이 강요된 분할은 돌이킬 수 없는 문화적 단절을 초래한 참을 수 없는 비극이자 폭력이었다. 따라서 그의 영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별, 그리고 더욱 큰 비극을 초래할 뿐인 재회는 이 사건에 대한 알레고리가 된다. 특히 1960년대 초반에 그가 내놓은 일련의 작품들- <구름에 가린 별>(1960), <사랑스러운 간다르>(1961) 그리고 <강>(1962)으로 이어지는 ‘콜카타 3부작’- 은 이상 언급했던 스타일과 주제가 가장 잘 드러난 대표작들로 손꼽힌다. 가탁의 영화 가운데 생전에 비교적 따뜻한 반응을 얻은 작품은 <구름에 가린 별> 정도였다. <사랑스러운 간다르>와 <강>의 연이은 실패는 가탁을 오랜 기간 침묵하게 했다. <강> 이후 10여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가탁은 신생국가였던 방글라데시 영화 자본으로 <티타시라는 이름의 강>(1973)을 만들 수 있게 된다. 가탁 영화세계의 총결산이라 할 이 작품은 그가 얼마만큼의 예술적 야심과 깊이를 지니고 있었는지를 가늠케 하는 위대한 서사시이다. 동벵골 티타시 강가 말로(Malo) 공동체의 몰락의 과정을 유장한 리듬에 실어 보여주면서 가탁은 자신의 유년기를 사로잡았던 40여년 전의 과거에 대한 숭고한 기념비를 완성했다. 그 자신이 알코올 중독자 지식인으로 출연하는 <추론, 토론 그리고 이야기>(1974)는 그의 마지막 영화가 되었고 이는 그가 죽은 지 일년이 지난 1977년에야 개봉되었다. 씁쓸한 후일담 한 토막. <추론…>이 개봉되기 열흘 전, 가탁의 데뷔작 <시민>(1952)이 콜카타의 한 극장에서 ‘비로소’ 개봉되었다. 샤티야지트 레이는 만일 이 영화가 제때 빛을 보았더라면 자신의 <길의 노래>(1955)가 차지했던 ‘최초의 대안적 벵골영화’ 자리는 <시민>의 몫이 되었을 거라고 말했다. 그것이 의례적인 겸손의 발언이 아니라 진정 정당한 평가였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투덜군 투덜양] 옆나라의 미래가 걱정돼, <오늘의 사건사고>

내가 봤던 일본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 가운데 가장 미스터리한 건 TV애니메이션인 <아따 맘마>다. 일본의 평범한 서민 가족의 일상을 그린 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엄마는 지금까지 봐왔던 일본영화나 드라마 속의 여성과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속된 의미로 ‘아줌마’스러운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 뚱뚱하고 억척스럽고 수다스러우며 뻔뻔하기까지 하다. 한마디로 <순풍 산부인과>에서 옆집 아줌마로 등장할 법한 캐릭터다. 뭐 그게 이상하냐 싶겠지만 일본영화나 드라마에서 한번도 이런 캐릭터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봤던 일본 여성 캐릭터는 과하면 <도쿄 타워>의 여주인공, 덜해봤자 <메종 드 히미코>의 여주인공 정도로 그들은 여성스럽거나 귀엽다. 30∼40대 여성들은 언제나 상냥하고 조용하며 10∼20대 여성들은 귀엽고 사랑스럽다. 특히 그런 느낌을 강하게 주는 건 말투인데, 이게 얼마나 본래 일본어 말투와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한국어 더빙판인 <아따 맘마>를 볼 때마다 일본어판이 늘 궁금하다. 마트에서 공짜 사은품 받기에 사활을 건 아줌마가 ‘스미마셍’을 연발하며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새치기한 옆사람과 얼굴이 벌게져서 싸운다면 그건 또 얼마나 웃길까. 유키사다 이사오의 청춘영화 <오늘의 사건사고>는 추측건대 오늘의 일본의 평범한 20대, 또는 대학생들의 일상을 과장없이 그린 영화일 것이다. 과장이 없으니 대단한 사건사고도 없다. 여기에는 세명의 여성이 주요 등장인물로 등장한다. 이상한 건 이 여성들이 ‘평범한’ 대학생이라기에는 너무 귀엽고 깜찍하다는 거다. 다른 게 아니라 말투가 그렇다. 좋게 말해 깜찍하다는 거고 제대로 말하면 유치원생들을 데려다놓은 것 같다. 이들은 끊임없이 징징거리는 아기 말투로 남자친구와 남자친구의 친구들에게 투정을 부리고 애교를 떤다. “에잉, 꼭 사려던 치마가 벌써 팔렸다고 몰라몰라, 나 삐졌어” 식의 말투를 연발하는 마키와 그 친구, 소심한 남자친구에게 끊임없이 아이 같은 말투로 푸념을 쏟아놓는 치요가 과연 지금 일본을 살아가는 젊은이의 초상 맞나. 맞다면 나와 상관도 없는 일본사회의 미래가 심히 걱정되는 일이다. 그리고 여자 셋이 앙상블로 연기하는 콧소리 섞인 징징거림을 보는 건 영화에의 집중을 방해할 지경으로 피곤했다. 이 세 여자의 말투가 진짜 동시대성을 가지고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몹시 부럽기도 하다. 남자친구한테 “뭐야뭐야 미워미워”를 연발하면 모든 문제가 다 풀리는 세상에서 살 수 있다면 페미니즘 따위는 상관없다. 얼마나 편하겠는가. 그러나 “뭐야뭐야 미워미워”를 연발하다가 여러 남자를 떠나보내며 본의 아니게 주체적인 여성으로 성장한 나로서는 이 여자들의 말투가 딱하고 한심스럽다. 더불어 적어도 이런 도착적 캐릭터를 요구하지 않는 한국에 사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스크린 속 나의 연인] 이케와키 치즈루

2005년 10월 그녀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일년 전 스크린에서 보았던 그녀를 실제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때론 장난기 있는 목소리로 마치 쓰네오에게 투정부리듯 또 어떤 때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일년 후〉를 읽는 것처럼 나지막한 말투로 얘기를 한다. 2004년 10월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나에겐 특별한 영화다. 매번 남들이 말하는 좋은 영화, 꼭 봐야 된다는 영화를 수입해서 개봉했지만 그 결과는 대부분 실망할 수준이었다. 미리 영화를 본 사람들이 인터넷에 찬사의 글을 올렸지만 그건 영화의 흥행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막상 남자주인공 역을 맡은 쓰마부키 사토시가 방한했을 때야 겨우 “음, 이 영화가 손해는 보지 않겠구나” 안심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결과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영화를 보면 항상 내가 한 일이 아닌데, 계속 조제와 헤어진 쓰네오처럼 그녀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궁금했다. 조제가 잘 지내고 있을까? 요즘도 혼자 그렇게 생선을 구워서 먹고 있을까? 혹시 또 옆집 변태아저씨의 이상한 요구를 들어주면서 지내지는 않을까? 정말 쓰네오와는 그 이후로 다시는 만나지 않았을까? 그리고 영화를 개봉한 지 정확히 일년 만인 2005년 10월 극장에 다시 영화를 걸었다. 그리고 감독님과 조제 역을 했던 이케와키 지즈루를 한국에 초청했다. 처음 만나자마자 그런 얘기들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스스로에게 “이 사람아, 저 사람은 이케와키 지즈루라는 배우야, 조제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그런데 한시간, 두시간이 지나면서부터 그런 다짐이 소용이 없어졌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그녀는 이케와키 지즈루가 아닌 조제였다. 웃는 모습이며, 장난치는 동작 하나하나까지 영화에서 본 조제와 지금 눈앞에 있는 그녀는 똑같은 사람이었다. 지난 1월, 디브이디 제작을 위해 영화의 촬영지를 찾아갔다. 조제와 쓰네오가 같이 마지막으로 여행갔던 그 바다와 또 돌아오는 길에 들렀던 모텔, 조제가 남자친구가 생기면 제일 먼저 가고 싶어했던 동물원과 그리고 처음 쓰네오가 조제를 데리고 달렸던 그 둑길. 촬영을 모두 마치고 저녁에 감독님을 만났다. 우리가 찍어 온 사진을 보시면서 너무나 즐거워하시던 감독님은 갑자기 “음, 조제는 지금 뭐 하고 있지?” 그리고 그녀에게 전화를 하셨다. 늦은 일요일 저녁시간, 그녀는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방송되는 만화를 보고 있었다. 그녀와 몇 달 만에 다시 통화를 했다. 여전히 밝고 씩씩한 목소리다.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가을이 되면 이누도 잇신 감독님의 예전 작품 〈금발의 초원〉을 개봉할 생각이다. 물론 주인공은 이케와키 지즈루다. 조제가 아닌 이케와키 지즈루가 주연을 맡은 영화인 것이다. 감독님과 주연배우를 초청하는 행사를 계획중이다. 그런데 이케와키 지즈루가 아닌 조제를 다시 보고 싶고, 또 그녀의 안부가 궁금하다. 아무래도 그녀의 방한 중에 다시 한번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극장에서 봐야 할 거 같다. 요즘도 맑은 하늘에 걸려 있는 구름을 보면 문뜩 생각이 난다. 뚝방길을 과속으로 달리던 조제의 유모차가 길 아래로 구르고, 그리고 하늘의 구름을 보면서 저 구름을 가져가고 싶다고 말하던 그녀가.

[포커스] 크로넨버그와 함께 밤을!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밤>은 신체 변형과 질병과 정신 분열의 밤이라 불러도 좋을 법하다. 이 섹션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은 크로넨버그의 습작인 <스테레오>(1969), <미래의 범죄>(1970)와 초기의 걸작인 <브루드>(1979) <스캐너스>(1981), 모두 4편의 기괴한 모험들이다. 사실 지금의 크로넨버그는 초기와는 전혀 다른 경지에 올라있는 작가다. 88년작 <데드 링거>로부터 <크래시>(1996)를 거쳐 최근의 걸작 <폭력의 역사>(2005)에 이르기까지, 그는 섹슈얼리티와 신체에 대한 불안감을 장르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에서 발전해 인간 본성에 대한 사유로 접어들었다. 그래서 후기작들로부터 크로넨버그에 매료된 관객들에게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밤>은 꽤나 낯선 경험일 수 도 있다. 그의 데뷔작 <스테레오>와 <미래의 범죄>는 언더그라운드 학생영화다. <스테레오>는 캐나다의 성 연구소에서 텔레파시 능력을 갖게 되는 수술을 받은 일곱명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 사이비 과학에 대한 냉혹한 풍자라고 할 수도 있을 이 작품은 사실 ‘이야기’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곤란할 정도로 불친절한 실험영화에 가깝다. <스테레오>의 쌍생아인 <미래의 범죄>는 여성들이 유해 화장품으로 얻은 병때문에 죽어없어진 미래를 배경으로, 화장품의 창조자를 찾아헤메는 제자의 카프카적인 모험을 그린다. 기계적인 나레이션으로 진행되는 두 (일종의)무성영화들을 숨겨진 컬트영화로 평가하는 것도 섣부른 예찬이 될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두 작품은 디스토피아 SF소설 작가를 꿈꾸던 생화학과 대학생이 돈없이 만들어낸 습작에 가깝다. 다만 각각의 작품이 차후 크로넨버그가 즐겨 다루게 될 두가지 주제를 그리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만 하다. <스테레오>가 정신의 변형에 의한 진화를 그리는 영화들(<스캐너스> <초인지대>)의 시작이라면, <미래의 범죄>는 신체적 변형을 통해 진화를 다루는 영화들(<라비드> <비디오드롬> <플라이>)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크로넨버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브루드>와 <스캐너스>는 아마도 팬들에게는 익숙한 작품일 것이다. 바로 이 영화들로부터 신체의 변형과 정신적 전이에 대한 크로넨버그의 변주곡이 본격적인 음계조율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캐나다 시절의 초기 걸작인 <브루드>는 그야말로 악몽같은 영화다. 혁신적인 정신치료의 대가인 래글런 박사(올리버 리드가 무시무시하게 연기한다)는 카베사의 아내 노라를 격리 치료중이다. 카베사는 아내 노라가 딸을 학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노라의 부모가 짐승처럼 생긴 아이들에게 살해당하고, 노라는 점점 이상한 진화 과정을 겪는다. 당시 크로넨버그는 고통스러운 이혼을 겪은 직후였는데, 유아살해와 신체변형의 충격적인 이미지들은 그의 혼란스러운 심리상태가 극도로 파괴적인 창조력으로 재생한 듯 한 인상을 준다. 국내 TV에서도 방영된 <스캐너스>는 크로넨버그를 언더그라운드 호러작가에서 제도권으로 탈출시킨 크로넨버그의 상업적 성공작중 하나다. 스캐너는 텔레파시를 나누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보안 업체들은 이들의 능력을 이용하려 한다. 그리고 의약기업의 흉측한 음모 사이로 스캐너들의 사회를 꿈꾸는 스캐너와 그를 막으려는 스캐너의 대결이 벌어진다. 비교적 관습적인 구조로 흘러가는 이 작품은 80년대 초반 서구사회를 휩쓸던 ‘사이버 펑크’담론에 속해 있으며, 특히 인식의 힘을 이용해서 전화선을 통과해 컴퓨터에 침투하는 설정은 <뉴로맨서>같은 SF 소설들을 연상시킨다. 크로넨버그와 함께 하는 불면의 밤을 크게 둘로 나눈다면, <스테레오>와 <미래의 범죄>는 몽환적인 최면의 밤에 가깝고 <브루드>와 <스캐너스>는 무시무시한 기면의 밤에 가깝다. 75년작인 <파편들>과 77년작인 <열외인간>이 함께 상영되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이미 크로넨버그의 장기(長技와 臟器)가 모두 드러난 지금, 그의 과거를 거슬러오르는 불면의 여행이란 꽤나 흥미진진하다.

진정한 키덜트 시대의 아이콘, <개구리 중사 케로로: 최종병기 키루루>

케로케로케로. 타마타마타마. 도로도로도로. 이 요상한 반복음에 웃어젖힐 수 있다면 그건 <개구리 중사 케로로>의 팬이라는 뜻이다. <개구리 중사 케로로>는 1999년 만화주간지에 연재되면서 700만부의 단행본을 팔아치우고, 2004년 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되면서 일본의 문화현상이 된 애니메이션. 지구를 침략하러 왔다가 정착하게 된 외계 개구리들의 성공담은 <포케몬>이나 <유희왕>과는 조금 다르다. 보기와는 달리 만만치 않은 개그의 수준이 주요 타깃층인 아이들뿐만 아니라 열혈 성인 마니아들을 양산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개구리 중사 케로로: 최종병기 키루루>는 TV시리즈의 설정을 관객이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시작한다. 케로로는 건프라(건담 프라모델)를 사서 돌아오는 중 괴상한 사당 안에 놓여 있는 단지를 깨뜨린다. 문제는 단지 속에 예로부터 전해져온 케론별의 최종병기 키루루가 봉인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키루루는 사람들의 이마에 텔레파시가 가능한 X표를 전파하고, 서로의 어두운 속마음을 읽게 된 사람들은 집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다. 전 일본의 히키고모리(은둔형 외톨이)화가 시작된 것이다. 알고 보니 키루루는 사람들의 부정적인 생각의 힘을 키우는 괴물. 물론 세상을 구하는 것은 5명의 멋진 개구리들이다. 사실 <개구리 중사 케로로: 최종병기 키루루>는 케로로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외계 행성의 언어나 마찬가지다. 신나게 웃기 위해서는 케로로 만화의 설정을 어느 정도 숙지하고 가야만 하는 것이다. 왜 개구리들은 지구에 살고 있는가. 왜 케로로는 건프라를 좋아하는가. 갑자기 쏟아져나오는 각양각색의 캐릭터들은 어떤 성격과 사연을 가지고 있는가. 조카에게 물어본다면 몇 시간이고 신나서 떠들어댈 것이니 인터넷으로 미리 정보를 다져두는 편이 좋다. 여느 일본 TV애니메이션의 극장판과 마찬가지로 <개구리 중사 케로로: 최종병기 키루루> 역시 무성의한 작화와 대충 써낸 듯한 각본을 타고 63분간 흘러간다. 하지만 값싼 극장애니메이션의 단점도 케로로 중대가 등장하는 순간 모두 잊혀진다. <에반게리온>을 연상시키는 전투장면 등 성인 마니아들을 위한 팁에 낄낄거리다 보면 “지구를 구할 수 있는 것은 너희들의 우정과 신뢰야”라는 대사마저 심금을 울리는 지경에 도달하는 것이다. 케로로는 진정한 키덜트(아이 같은 어른) 시대의 아이콘임에 틀림없다.

구스 반 산트의 걸작 <라스트 데이즈> [2]

시간의 조립과 공간의 은유와 소리의 불일치 <엘리펀트>에서 인물들은 여러 번 같은 순간을 다시 지나친 뒤에야 최종에 도달한다. <라스트 데이즈>에서 주인공 블레이크의 시간은 더 현란한 방식으로 재조립된다. 시간적으로 어떤 한 장면이 앞에 있는 것인지 혹은 뒤에 오는 것인지는 반드시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고 나서야 알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그것도 분명하지 않다. 그렇다면 이 시간은 왜 뒤섞여 있어야만 하는 것인가. 구스 반 산트는 그걸 통해 블레이크의 몸에 관객의 감각을 입히려고 한다. 뒤죽박죽으로 시간을 느끼도록 하는 이 장치는 관객이 망가진 블레이크의 몸의 상태로 들어가 그 시간을 경험하도록 만드는 것과도 같다. 혼몽의 어지럼증은 그렇게 생긴다. 시간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순간을 어떻게 연장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엘리펀트>와 <라스트 데이즈>는 <게리>와 비교하여 더 정교하게 진전된 미학적 차원을 갖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엘리펀트>에는 어떤 문제가 제기되었다. 사회적 논평이 필요할 만한 사건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태도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라스트 데이즈>는 거기에 대한 대답이다. <엘리펀트>와 <라스트 데이즈>는 실제 사건에 기초하지만, 더 정확히 말해 그저 거기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영감은 본능적으로 실재를 수정할 권리를 갖는다. 게다가 영감이 어떤 미완의 사실로만 알려진 사건에서 비롯되었을 경우, 그리고 창작자가 그걸 방점으로 삼겠다고 결심한 이후라면 더더욱 논리적인 해명으로 끌리지 않는다. 그 순간 그런 해명의 욕구에 끌리는 건 오히려 더 위험하다. 어떤 나름의 시각으로 형상화할 것인지가 더 관건이다. 그런 점에서 구스 반 산트는 <라스트 데이즈>에서 혹은 <엘리펀트>에서 실재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실재가 남긴 잔영을 다룬다. 다들 보고 떠드는 신문의 한쪽을 보는 것이 아니라, 거기 미처 적히지 않은 인상을 잡으려 한다. 인과율이 없다느니, 무책임하다느니 하는 말은 그래서 성립이 되질 않는다. 왜냐하면 이건 풍문과 반쪽 사실로만 전해진 그 ‘실재의 잔영을 구조화’하는 작업이며, 그 문제에 대한 구스 반 산트식의 해석 방법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것이 바로 구스 반 산트가 취한 윤리적 자세이기도 하다. <라스트 데이즈>의 스토리 라인을 설명하는 것은 그래서 부질없는 짓이다. 영화가 요구한 보기의 방법을 거스르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라스트 데이즈>는 스토리의 구조에 기대고 있지 않다. 영화 속에는 전화번호부 광고 직원과 모르몬교도들과 음반사 중역과 사립탐정이 번갈아가며 블레이크의 집을 방문한다. 그리고 블레이크는 그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대체로 술래잡기하듯 피해다니기 일쑤다. 이들의 방문은 실제와 상상의 뒤섞임인데, 커트 코베인의 생전의 인간관계들을 캐릭터의 관계 내지 영화의 플롯 안에 녹여넣은 것들이라고 보아야 한다. 반면 시간과 캐릭터의 조립만 있는 게 아니라 공간적 은유도 있다. 첫 장면에서 블레이크는 마치 약에 취한 듯 숲속을 헤매고, 계곡에서 미끄러지고, 늪을 허우적거리며 걷는다. 우리는 당연히 궁금할 수밖에 없다. 이건 실제인가? 아니면 무엇인가? 왜 블레이크는, 커트 코베인은 저기 저러고 있는가, 라며 궁금해할 수밖에 없다. 구스 반 산트는 말한다. “그를 처음 봤을 때 관객은 그가 어디서 오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가 등장하는 방식 그대로 그를 표현하고 싶었다. 누구이고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이전의 삶이 어땠는지 등을 모두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영화 내내 이런 불친절함에 시달려야 하지만, 그건 흥미로운 수고다. 숲에서 만신창이가 된 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망설이고 있는 블레이크는 더도 덜도 아닌 커트 코베인의 불행한 마지막 나날에 대한 묘사이며 공간적 은유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블레이크가 집으로 돌아와도 마찬가지다. 그가 살고 있는 음산한 대저택과 그 옆에 달린 조그만 별채. 블레이크는 자신의 휴식처로 혹은 마지막 장소로 허름한 그 별채를 선택한다(이건 실제로도 그랬다). 이 장면들 안에는 불친절함에 몸을 맡기고 보아야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형상의 영화 혹은 시네마토그래피 시간과 공간이 마음대로인데 소리라고 현실에 붙어 있을 이유가 없다. 아니, 오히려 사운드의 활용은 <라스트 데이즈>와 그 이전의 두편을 가르는 가장 큰 요소이며, <라스트 데이즈>의 가장 아름다운 면면이다. 블레이크가 혼자 있을 때 우리는 어떤 특정한 소리들을 반복적으로 듣게 된다. 이때 우리는 눈이 아니라 귀를 열어야 한다. 종이 울리고, 풍금이 울리고, 자동차가 지나가고, 아이들이 떠들고, 새가 울고, 무엇보다 끊임없이 온갖 종류의 문이 닫히고 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여닫히는 문소리… 그건 블레이크가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도, 멍하니 앉아 텔레비전을 응시할 때도 들려온다. 이때 들려오는 것의 실체는 힐데가르트 베스테르캄프의 구체음악 <지각의 문들>(Doors of Perception)이다. 그러나 그게 누구의 음악인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 소리가 문을 여닫는 연쇄라는 것에 온 신경이 집중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문소리들은 아무리 화면을 들여다봐도 그 안에 소리의 진원지가 없다. 그것은 블레이크의 머리에서 그리고 마음에서 울려나오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것이 디제시스 공간(스토리가 진행되는 프레임 내의 공간) 내에 있을 리가 없다. 텔레비전에서는 보이즈 투 맨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 순간에도 우리는 블레이크의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위험스러운 지각의 문소리들을 들어야만 한다. 이 소리가 어디서, 왜 들려오는지 느끼려고 할 때 우리는 블레이크와 커트 코베인의 마음 안으로 들어간다. 시간의 조립과 공간의 은유와 소리의 불일치. 그것이 예고한 불운의 끝은 알다시피 죽음이다. 커트 코베인의 죽음이 예고없이 찾아왔듯, <라스트 데이즈>에서 블레이크의 죽음도 그렇게 조용히 도착한다. 블레이크의 영혼은 육신을 벗고 천천히 일어나 하늘로 올라간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알게 된 비겁한 친구들은 거기에 연루되지 않기 위해 어디론가 부리나케 도망친다. 구급차가 도착하고 킹스 싱어즈의 (원래는 발랄하게 들렸던) 음률의 노래가 구슬프게 흘러나온다. 구스 반 산트는 커트 코베인에 대한 생각을 그걸로 끝낸다. <라스트 데이즈>는 삼부작 중에서도 구스 반 산트의 창작력이 도달한 어떤 봉우리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의 합으로만 이를 수 있는 희귀한 ‘형상의 영화 혹은 시네마토그래피’다. 형상을 추구하는 영화들은 많지 않다. 구스 반 산트의 영화 중에서도 <게리> <엘리펀트> <라스트 데이즈> 정도다.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 난 건 <라스트 데이즈>다. 그런 영화는 일단 만들기가 어렵고, 잘 만들어도 그걸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그래서 구스 반 산트는 <파인딩 포레스터>도 만들고, <굿 윌 헌팅>도 만든다. 어쩌면 <라스트 데이즈>를 보는 관객은 불평을 할 수도 있다. 커트 코베인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는 사람이라면 더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훌륭한 영화에는 언제나 자기만의 이미지 교육학이 있음을 믿자. <라스트 데이즈>에 있는 그것은 눈과 귀를 본능적으로 사용하라, 이다. 때문에 보고 들으며 영화가 끄는 대로 집중하면 되는 일이다. 기복이 심한 구스 반 산트가 오드리 니페네거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다음 영화 <시간여행자의 아내>에서도 이렇게 멋진 영화를 만들 거라고 장담하긴 힘들다. 그러나 <라스트 데이즈>는 경지에 도달한 작업이며, 한마디로 걸작이다. <라스트 데이즈>의 숨은 주역들 컨셉, 영상, 소리의 신세계를 비추다 컨셉과 영상과 소리. 이 세 가지가 독창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 <라스트 데이즈>다. 그 때문에 프로듀서 대니 울프, 촬영감독 해리스 사비데스, 사운드디자이너 레슬리 샤츠를 제외하고 <라스트 데이즈>의 성과를 말하기는 힘들다. 세 사람은 모두 <게리> <엘리펀트>에도 참여한 바 있다. 바로 구스 반 산트의 삼부작 완성을 가능하게 한 3인방인 셈이다. 프로듀서 대니 울프는 단편에서 뮤직비디오, 상업광고까지 두루 걸쳐온 전문 프로듀서다. 96년에 구스 반 산트와 상업광고 및 뮤직비디오 작업으로 처음 만난 뒤, 97년에 단편 <해골의 발라드>, 98년에 장편 <사이코>를 같이 한 바 있다. 한편, 촬영감독 해리스 사비데스는 전형적인 뉴요커로서 패션 사진작가로 경력을 시작했지만, 상업광고와 뮤직비디오를 거쳐 촬영감독으로 거듭났고, 마돈나, REM, 피오나 애플 등의 뮤직비디오 그리고 구스 반 산트의 <파인딩 포레스터>를 거쳐 삼부작을 함께하게 됐다. 제임스 그레이, 존 터투로,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와 왕가위의 BMW 상업광고를 찍은 바 있는 감각적인 장인이다. 아마도 <라스트 데이즈>의 가장 뛰어난 협력자는 레슬리 샤츠가 아닐까 싶은데, <미이라>로 99년 아카데미 베스트 사운드 부문에 노미네이션되기도 했던 그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드라큘라>, 밥 라펠슨의 <블러드 앤 와인>을 작업한 경력이 있다. “결국 구스 반 산트는 화가다. 캔버스에 무엇을 그릴가 하는 것은 구스 반 산트에게 달려 있다. 그의 창조적 비전보다 우선하는 건 없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그것을 완성하도록 돕는 것이다.” 프로듀서 대니 울프는 그렇게 말했지만, 한편으로 이들의 협업이 아니었다면 <라스트 데이즈>라는 명작의 탄생은 요원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로마] 정치인과 마피아 소재 영화 잘나가네

이탈리아 마피아 대부 ‘프로벤자노’가 최근 경찰의 집요한 추적 끝에 붙잡혔다. 40년을 도망자로 살아온 프로벤자노가 숨어지낸 곳은 양 치즈를 만드는 허술한 집이었다. 그 집에는 치즈를 만드는 통과 막 짜낸 우유가 가득했고 그가 거처하던 방에는 성경책과 건강관리책 그리고 타자기가 놓여 있었다. 타자기 옆에는 유명 정치인들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다. 경찰은 확실한 근거를 잡기 전에는 이 명단을 언론에 밝히지 않겠다고 말했다. 현실이 영화 같고 영화가 현실 같은 순간이었다. 어려운 작업이었음이 틀림없을 추적 작업을 성공적으로 끌고 온 마피아 두목 검거팀에 이탈리아 국민은 열렬한 찬사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올해 50주년을 맞는 이탈리아 영화대상인 다비드 도나텔로상도 이러한 흐름을 무시하지 못했다. 집권 여당이 총선에서 패배하고 거의 반세기를 숨어지내온 이탈리아 마피아 대부가 검거된 역사적인 4월에 치러진 제50회 이탈리아 영화대상은 정치인과 마피아를 다룬 두 영화에 수상 영화를 안겨주었다. 미켈레 플라치도가 감독한 <로망조 크리미날레>는 각본상, 촬영감독상 등 8개의 상을 휩쓸었다. 그렇지만 그랑프리와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굵직한 상들은 모두 난니 모레티의 <일 카이마노>에 돌아갔다. 미켈레 플라치도의 <로망조 크리미날레>는 80년대 로마 말리아나 구역의 마약 판매 조직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약 밀매 조직이 마피아와 비밀요원과 연계하는 이야기에 플라치도 감독은 이탈리아의 쟁쟁한 배우들을 대거 고용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킴 로시 스튜어트와 스테파노 아코르시 등 쟁쟁한 배우들의 힘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영화관에서는 그다지 큰 흥행을 거두지는 못했다. 올해 베를린영화제에 유일한 이탈리아영화로 초청된 바 있는 <로망조 크리미날레>의 감독인 미켈레 플라치도는 감독 이전에 배우로서 <일 카이마노>에서 조연을 맡았다.74년 영화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미켈레 플라치도는 <삼형제> 등으로 영화와 텔레비전을 넘나들면서 이탈리아아인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의 의지는 드디어 89년에 직접 영화를 만들겠다고 도전장을 던지며 시작됐다. 로 2002년 베니스영화제에 소개되었으며 다시 2년 뒤엔 로 세계에 알려졌다. 반면에 <일 카이마노>는 아직도 상영 중인데 첫 2주는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이탈리아인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이번 상으로 평단에서도 좋은 평을 받았다. 좋은 출발과 함께 승승장구의 길을 가고 있는 <일 카이마노>에 또 하나 좋은 소식은 올해 칸영화제 경쟁작에 파울로 소렌티노의 <가족의 친구>(L’amico di famiglia)와 함께 초청됐다는 사실이다. 올해는 이탈리아영화가 국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임기를 얼마 안 남기고 있는 카를로 아첼리오 참피 대통령은 50주년 영화대상을 기념하며 수상자들과 영화인들을 초대하여 간담회를 갖고 좋은 성적이 앞으로도 계속되길 기대했다.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 <내 청춘에게 고함> 김영남 감독

5일 막을 내린 제7회 전주국제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상영된 <내 청춘에게 고함>은 요란한 치장이 없는 청춘영화다. 20대 초반 여자와 20대 중반의 남자, 서른살의 남자 이야기가 3부 형식으로 연결된 이 영화는 열정과 패기라는 청춘의 상투어들을 거둬내는 대신 그들의 일상과 내면으로 조용하게 들어간다. 2001년 단편 <나는 날아가고…너는 마법에 걸려 있으니까>로 칸영화제 등 여러 국외 영화제에서 주목받았던 김영남(34)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가족의 해체와 비정규직 문제 등 동시대적 고민을 놓치지 않으면서 그 안에 불안과 충동같은 젊음의 속성을 섬세하게 포착한 김영남 감독은 “왠지 결혼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서” 첫 연출작을 청춘영화로 결정했다고 다소 싱거운 연출의 변을 꺼냈다. 스스로 아직 청춘이라고 말하는 그는 청춘이 특정 시기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나 삶의 태도라고 ‘청춘론’을 폈다. “세상이 요구하는 삶의 빠르기에서 벗어나 자신의 속도를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썼어요. 2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 근우처럼 불확실한 삶에서 ‘눈 감고 걸어가는’ 상황에 처해 있는, 그렇지만 어쨌든 자신의 속도로 걸어가는 청춘의 느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내 청춘에 고함>은 신인작가의 정통 코스라고 할 만한 길을 밟아 완성됐다. 2004년 부산국제영화제의 신인발굴 프로젝트에 선정됐고, 이를 통해 재능있는 아시아 감독들의 영화제작을 지원해온 일본 엔에치케이 필름 페스티벌에서 제작비를 지원 받았다. 또 이 영화는 예술영화전용관 필름포럼을 운영하는 이모션픽처스가 처음 제작한 영화이기도 하다. 김 감독은 이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정해진 삶의 진로와 속도에서 벗어난 선택을 통해 영화계에 입문했다. 공대 대학원 1학년 때 “살아가면서 남을 만한 일이 뭘까”를 고민하다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시험을 봐 합격했다. 어린 시절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서부영화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영화를 하겠다는 생각은 대학시절에도 해본 적이 없었다고. “지도 교수로 만나기 전에는 그의 영화를 한 편도 본 적이 없는” 홍상수 감독에게 사사했고,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연출부를 거쳤다. 이런 이력은 신인 감독에게 족쇄가 되기도 한다. 그의 영화에서 ‘홍상수식’이라는 꼬리표를 찾기 위한 질문을 피해갈 수 없다는 의미다. “무의식 속에 홍 감독님의 영향이 있을 수 있지만 제가 배운 건 세계관이라기 보다 영화를 만드는 실무적인 부분이 더 컸어요. 이를테면 한정된 예산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내 생각을 어떻게 배우들과 소통할 것인가, 부딪힐 때마다 감독님의 작업방식을 떠올렸고, 많은 힘이 됐죠.” 그는 <내 청춘에 고함>이 ‘자신에게 말걸기’같은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놓쳐버렸거나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삶의 순간들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래요.” <내 청춘에 고함>은 6월 말 극장에서 개봉한다.

요리 프로그램 전성시대 [1] - <제이미’s 키친>

맛집 소개부터 시트콤까지 각양각색 요리 프로그램 불치병+출생의 비밀 종합세트인 드라마나 시시콜콜한 짝짓기 혹은 신변잡기 수다세트인 오락 프로그램에 지쳤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다큐멘터리도 싫고, 우울한 뉴스들도 싫다. 위성·케이블 채널들은 <제이미’s 키친> <키친 컨피덴셜> <아이언 쉐프> 등 특이한 프로그램을 편성하며 시청자를 부른다. 이에 질 리 없는 지상파 채널은 <청년성공시대-내일은 요리왕> <노벨의 식탁>을 신설했다. 국내 최장수 요리 프로그램 <찾아라 맛있는 TV>는 얼마 전 200회를 맞았다. 의 한 작가는 요리가 아이템인 날은 시청률이 껑충 뛰어오른다고 전한다. 요리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은 무조건 망한다는 방송가의 징크스는 깨진 지 오래다. 바야흐로 요리 프로그램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톡톡튀는 재담으로 딱딱함 벗어던진 <제이미’s 키친> 요리법 대신 제이미만 봐도 즐겁다 올리브 네트워크 토·일 오후 9시 한때 우리 방송가에는 “요리 프로그램은 안 된다”는 징크스가 있었다. 다양한 요리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요즘에는 이해할 수 없는 소리지만, 무뚝뚝한 전문가가 나와 레시피만 줄줄 외는 강의식 프로그램밖에 없던 당시의 이야기라면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요리 프로그램도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이는 잘생긴 외모와 장난기 섞인 행동, 놀라운 요리솜씨로 세계 시청자를 사로잡은 영국의 천재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다. 식당을 운영하는 부모 덕에 4살 때부터 요리를 시작한 제이미는 16살에 요리로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캐스터링 칼리지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뒤 여러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요리를 익혀온 그가 세상에 알려진 계기는 ‘리버 카페’의 크리스마스 준비 과정을 담은 다큐 필름에 주방 스탭으로 출연하면서다. 이 다큐를 본 영국의 여러 프로덕션들이 그에게 전화해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옵토멘 텔레비전>(Optomen Television)과 함께 만든 <네이키드 셰프>(The Naked Chef)에서 주방에서 굴러다니는 값싸고 흔한 재료로도 쉽고 다양한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요리의 즐거움’을 일깨워준 그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이어 프레시 원 프로덕션과 함께 <제이미’s 키친>을 찍었다. 그리고 2003년에는 요리로 국위를 선양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영제국 훈장까지 받았다. <제이미’s 키친> 역시 ‘전문가(제이미)가 나와 레시피를 읊어주는 강의식 요리 프로그램’이지만, 신기하게도 지루하지 않다. 이는 제이미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좇는 이 프로그램의 특징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그의 자유분방하고 활달한 캐릭터와 타고난 입담도 프로그램에 활기를 더했다. 그날 필요한 재료를 빠뜨린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이 난처한 상황에서 “내가 참 바보 같죠? 하지만 이렇게 말했다고 해서 여러분마저 ‘그래’라고 하면 안 되죠”라는 농담을 던진다. 또 한참 수다를 떨다 “침이 튀어 음식이 짜겠네요”라는 너스레도 떤다. 그래서 몇몇 시청자는 그가 전하는 재담에 더 큰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요리 프로그램을 말수 적은, 그나마 요리법을 전할 때 외에는 입을 열지 않는 권위적인 전문가들에 의한 정적인 것이라고 여겼던 국내 시청자들이 제이미에게 반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사람들이 제이미에게 반한 다른 이유는 그만의 독특한 요리법에 있다. 정해진 규칙 대신 자신만의 방법으로 요리하는 그의 재능은 간을 볼 때 두드러진다. 양념을 눈대중만으로 팍팍 집어던진다든가, 손으로 음식물을 집어 쩝쩝대며 맛을 보는 그를 본 시청자는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그를 천재 요리사로 추앙하든가, 그의 친근감에 박수를 보내든가. ‘음식은 손맛에서 나온다’고 믿는 국내 시청자들이 열광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좁은 주방을 바쁘게 오가는 제이미를 따라 쉬지 않고 옮겨다니는 카메라도 <제이미’s 키친>을 흥미롭게 해준 요소 중 하나다. 그의 수다만큼 스피디하게 바뀌는 화면은 지루해질 수 있는 프로그램에 활기를 넣어주었다. <제이미’s 키친>을 방송 중인 올리브 네트워크의 관계자는 “자유분방한 진행으로 시청자들에게 성큼 다가서는 게 인기 요인 중 하나”라며 “<제이미’s 키친>은 다른 요리 프로그램에 비해 20대 시청자가 많다”고 말했다. 닮은 프로그램 <헬’s 키친> 온스타일 화 오후 12시50분·밤 10시 데이비드 베컴과 빅토리아 베컴 부부가 호화스러운 스페인식 ‘월드컵 파티’를 연다는 기사에서 눈에 띄는 또 하나의 이름은 바로 요리사로 초청된 고든 램지다. 그는 <폭스TV>의 <헬’s 키친>으로 대중에게도 널리 이름을 알린 인물. <헬’s 키친>은 그가 미국 할리우드 중심부에 ‘헬’s 키친’이라는 레스토랑을 오픈한 뒤 벌이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전직 축구선수인 고든 램지는 요리사로 전업한 뒤, 미디어의 각종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서 거칠고 무례한 태도로 큰 인기를 끌어 유명인사가 됐다. 그는 또 뛰어난 레스토랑 경영 수완으로 엄청난 부와 명예를 겸비했다. <헬’s 키친>에서도 그는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출연진을 긴장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