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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어린이 SF드라마도 100억원 시대

비행 물체에 달린 줄이 훤히 보였던 어린이용 에스에프 드라마의 수준이 달라진다. 제작사 청암엔터테인먼트(대표 김종학)는 모두 100억원을 끌어들여 실사와 3디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이레자이온〉(감독 박찬율·윤민항, 극본 윤민항, 사진)을 만들고 있다고 최근 제작 발표회를 열어 밝혔다. 30분짜리 26부작으로 완성해 올해 말께 지상파 텔레비전에 방송할 계획을 잡고 있다. 2년 전부터 기획된 이 에스에프 드라마의 3디애니메이션은 〈엘리시움〉을 만들었던 한국의 ㈜빅필름이 진행하고 있다. 특수의상은 영화 〈고질라〉에 참여했던 일본의 ㈜몬스터즈가 맡았다. 노력과 돈을 들이는 만큼 이익을 뽑을 통로도 여럿 모색 중이다. 이철희 청암엔터테인먼트 이사는 “세트는 테마파크로, 캐릭터는 인쇄물, 놀이도구, 게임까지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작사는 수출도 낙관하고 있다. 실제 국외시장에서 한국 창작 방송 애니메이션의 수출실적은 늘어나고 있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쪽은 “프랑스에서 열리는 방송 콘텐츠 시장 ‘밉티브이’ 등에 진흥원 주관으로 참여한 업체가 따낸 수출계약 액수는 2002년에 비해 지난해 48.36% 늘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아이언키드〉는 미국 망가엔터테인먼트로부터 150달러, 스페인 비알비인터내셔널로부터 130만달러를 투자받았다. 배영수 콘테츠진흥원 대리는 “제작사들이 예전의 주문생산하던 방식을 2002년께부터 창작 쪽으로 바꿔갔고 그 결과물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편집의 마술 [1]

나는 수술대요 재봉틀이다. 내 위에서 영화는 사지가 꿰맞춰지고 이음매없이 매끄럽게 연결된 뒤 마침내 숨결을 얻는다. 예전 내 주인들은 무비올라니 스탠백이니 하는 내 선조의 몸 위에서, 손으로 일일이 필름을 확인하고 자르고 붙이는 중노동을 했다. 이제 주인들은 한결 편해져 자판 한번, 마우스 한번 옮기는 것으로 가위질과 바느질, 순서 바꾸기, 속도 조절, 화면 전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장에서 영화를 찍은 필름과 필름을 텔레시네하여 비디오테이프로 옮긴 것이 편집실에 오면 나와 내 주인의 일과가 시작된다. 그날 찍은 것을 보내오는 현장이 있고 며칠분의 촬영치를 묶어서 보내오는 곳도 있다. 비디오테이프를 컴퓨터 하드디스크로 옮겨 입력시킨 뒤 OK 컷만으로 영화 순서를 이어붙이는 순서편집은 편집의 초벌구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촬영이 다 끝나고 수십개의 비디오테이프가 쌓이면 본격적인 편집이 시작된다. 내 앞으로 감독과 현장의 모든 걸 기록하는 스크립터와 편집기사가 옹기종기 모여 순서 편집본에서 110여분의 상영시간을 넘어서는 분량을 쳐내는 작업부터 한다. 편집이 끝난 뒤 편집된 순서대로 원판 필름을 잘라 현상소에 보내는 것으로 편집의 모든 과정이 끝난다. 마틴 스코시즈가 3개월, 쿠엔틴 타란티노가 8개월을 내 곁에서 산다지만, 보통 제작자들은 내 앞에서 3주 이상 감독과 편집기사가 진치고 있는 걸 이상하게 생각한다. 월터 마치 같은 전설적인 기사는 영화 캐릭터의 복장을 입고 오지 않는 한 배우를 들여놓지 않는다고 하는데 가끔 배우가 편집기사에게 자기 분량을 늘리기를 요구하기도 하고, 그래서 편집기사가 8kg씩 몸무게가 빠지는 사태도 벌어지며, 제작자가 나타나 삭제를 요구하는 바람에 감독이 위경련으로 쓰러지기도 한다. 자존심 강한 나의 주인님들은 자율적인 편집기사의 리듬 감각을 존중받고 싶어하지만, 가끔 편집기사가 무시된 채 제작자나 감독의 의향대로 자판만 치는 오퍼레이터가 되기도 한다. 그때 주인님들의 시무룩한 입술이란. 그런데 편집이란 게 촬영된 필름의 순서를 배열하는 일만은 아니다. 푸도프킨의 스승인 쿨레쇼프가 실험한 걸 예로 들어보겠다. 배우의 무표정한 얼굴 클로즈업에 각각 수프가 담긴 접시, 여자의 시체가 담긴 관, 뛰노는 어린 소녀를 연결해보면 이상한 효과가 발생한다. 배고픔, 깊은 슬픔, 아버지가 느끼는 긍지의 정서가 차례로 느껴진다. 배우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는데 말이다. ‘무엇을 어디에다 연결할 것이냐’가 바로 나의 과제인 바, 나로 인해 이런 예기치 않은 드라마와 정서의 리듬이 창조된다. 나는 수백만년 떨어진 시간을 이어주기도 한다. 유인원이 던진 뼈다귀 다음 장면에 우주선을 놓으면, 인간의 도구의 역사를 단 두컷으로 설명할 수 있다. 나는 또 시간을 엿가락처럼 늘이기도 하고 압축시키기도 한다. <분노의 주먹>에서 로버트 드 니로는 슬로모션과 빠른 교차편집으로 실제 상대 복서에게 맞는 시간보다 훨씬 더 길게 얻어터진다. 영화는 내 위에서 자기만의 리듬과 자기만의 시간 배열을 얻은 뒤에야 온전한 드라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숀 펜의 말대로 편집은 감독을 자살로부터 구해내는 성모 마리아인 것이다. 오늘도 내 주인님들은 타란티노의 말대로 ‘한 프레임 차이로 쓰레기가 되느냐 오르가슴이 되느냐’의 문제에 목을 맨다. 그러나 주인님들은, 그때 ‘거기에 없는 사람’이다. <라스트 타이쿤>에서 상영 중에 죽어가면서도 상영을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사라지는 편집기사 에디처럼. 내 소개가 늦었다. 나는 컴퓨터 영화 편집 프로그램으로 아비드, 파이널 컷 프로, 프리미어 등등으로 불린다. 내가 모시는 열분의 기사들과 내가 함께 만든 빛나는 창조의 순간을 소개할까 한다. 오늘 나를 만난 순간부터 당신이 보는 모든 영화가 다르게 보일 것이다.

편집의 마술 [8] - <취화선> 박순덕 기사

데뷔작/ <똘이장군-간첩잡는 똘이장군>(1979) 나의 데뷔 경로/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한양녹음실로 들어가 녹음과 편집 일을 배웠다. 나의 대표작/ <씨받이> <아제아제 바라아제> <장군의 아들> <서편제> <춘향뎐> 나의 이 장면/ 장승업(최민식)과 매향(유호정)의 마지막 조우. *임권택 감독 영화의 편집은 기교를 잘 부리지 않는다. 템포를 중시하는데 다 설명하지 않고 점프하면서 설명을 단순화한다. 군더더기 장면은 미리 배제한다. 첫 장면의 축은 매향과 오원의 만남이다. 시대 상황 속에서 카메라가 들어가면 매향의 시점으로 오원이 보인다. *오원이 확인하는 리버스 숏. *매향이 프레임 아웃된 뒤 들어오지 않고 화면 오른쪽에서 나온다. 바로 클로즈업으로 오원을 잡거나, 또는 오원과 매향을 크게 잡으면 재미가 없다. 매향이 프레임 아웃된 뒤 바로 오른쪽에서 잘라서 들어오면 느낌이 덜 온다. 만남 과정을 넓게 안 보여주면 만나는 과정의 슬픔이 덜해진다는 거다. 더 정감있고 미묘하고 풍부해진다. 최민식을 크게 잡은 다른 컷도 있었는데 버렸다. *집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발로 갔다. 드라마 후반부에서 늘어지면 안 된다. 끝으로 갈수록 드라마로 몰고 가야 하는데 시선을 다른 곳에 분산시키면 매향과 오원의 관계가 늘어지고 구구절절해진다. *다음 풀숏에서 귀퉁이에 평범한 도자기를 잡아준다. 앞에서 보여준 뒤 뒤에 오원에게 끼칠 영향을 암시한다. 도자기가 여러 번 잡혔으나 두 사람 사이의 드라마가 약해져 잘랐다. 도자기를 보는 오원의 시선, 매향이 자기 손으로 빚은 도자기에 대해 너그럽고 여유있고 따뜻하다고 말한다. 거의 처음으로 오원의 시선이 너그러워진다. *시간 경과를 알려주는 컷. 오원의 컷이 없이 간결하게 간다. 마지막 남겨둔 그림으로 오원이 사라졌음을 알려준다. 내가 꼽은 명편집/ 최근엔 <범죄의 재구성>을 잘 봤다. 박곡지가 한 <쉬리>가 생각난다. 다리 교전 장면은 많이 찍었는데 2, 3컷만 쓰고 버렸더라. 그렇게 힘들게 찍고 버리기가 어렵다. 편집자가 과감하게 했다. 나의 편집론/ 거칠어도 드라마를 살려야 한다. 컷 하나하나가 아니라 드라마 전체가 중요하다 드라마가 깨지면 안 된다. 고생스레 잘 찍은 것, 애착이 가는 컷, 그림 좋은 컷들을 자르는 게 제일 어렵다. 드라마에 거슬린다면 필요없는 장면이다. 나의 편집실 에피소드/ 밤을 새워 편집하고도 아침이면 선배에게 세숫물과 수건을 갖다바치는 도제제도를 거쳤다. 스탠백으로 할 때는 <진짜 사나이> 같은 경우 18만자를 찍었는데 자르는 분량도 엄청났지만 35mm를 16mm로 축소하면 키코드가 없어져서 양쪽에 일일이 다 키코드를 적어야 한다. 적는 일이 지겨워서 내가 뭐하는 인생인가 싶기도 했다. 물론 필름을 직접 하는 맛이 있지만 말이다. <취화선>은 처음엔 2시간35분 버전이 나왔는데 그걸 국내용으로 하고 칸에는 2시간짜리를 보내려고 했다. 그랬더니 너무 복잡해지는 거다. 필름이 15만자(6900자가 한 시간 분량)인데 듀프(사고를 대비한 복사본)를 뜰 제작자가 어디 있는가. <취화선>은 촬영 중에 그때그때 편집실로 온 촬영분량을 편집하면서 그때마다 찍은 것과 편집한 걸 35mm로 봤다는 게 특이한 점이다. 텔레시네한 것으로 보면 색감이나 여러 가지를 확인하기 어렵다. 색상이 다르게 나올 수도 있으니까. 필름을 먼저 본 뒤 아비드로 편집하고, 그 편집에 따라 포지티브 필름을 편집해서 양수리 시사실에서 영사기 걸고 봤다. 새벽 2∼3시에 호출하기도 하는데, 제작부가 차를 가져오면 양수리에 가서 느슨한 필름 컷들을 잘라내고 아침에 돌아오기도 했는데 편집 끝까지 항상 대기해야 한다.

제59회 칸영화제 중간보고 [4] - 작가 4인의 신작②

집요하게 파고드는 한 남자의 마음 누리 빌게 세일란의 <기후> 대학교수 이사(누리 빌게 세일란)는 방송국에서 아트디렉터로 일하는 연인 바하(에브루 세일란)와 여행을 하다가 갑자기 이별을 통고한다. 그가 내세우는 이유란 바하가 자신에 비해 너무 젊다는 것뿐이다. 이스탄불로 돌아와서 홀로 한 계절을 보낸 이사는 지금은 자신의 친구와 사귀고 있는 옛날 여자친구 세랍을 찾아가 정사를 가진다. 겨울을 맞은 이사는 바하가 드라마 촬영을 하고 있는 터키 동부로 휴가를 떠나고, 자신이 변했다며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가지겠으니, 다시 만나달라고 애원한다. <우작>으로 2003년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던 누리 빌게 세일란은 <기후>에서 아내와 함께 주연을 맡았다. 오랫동안 일해온 <우작>의 배우 에민 토프락이 사고로 죽은데다가 터키 전역을 돌아야 하는 촬영에 참여하겠다는 배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사진작가였던 세일란처럼 카메라로 유적을 찍는 이사는 그의 분신처럼 느껴진다. 시나리오를 촬영 도중에 쓰고 리허설을 거의 하지 않은 채 연기를 했다는 세일란 또한 자신의 감정과 이사를 완전히 분리하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스크린 인터네셔널>은 “이사가 세일란과 닮았다면 <기후>는 영화사에서 냉혹한 자화상 중 하나일 것”이라고 썼다. 그 때문에 <기후>는 세일란의 전작처럼 시적인 풍경과 서사의 여백이 많은데도 한 남자의 마음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바닥에 떨어진 땅콩을 여자에게 억지로 먹이는 데 몰두하거나 헤어진 연인과 하룻밤을 보낸 다음 하품을 하는 이사는 분명 치사한 인물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등장했던 몇몇 남자들처럼. 그러나 “시도는 해봤지만 도무지 나의 스타일을 버릴 수가 없었다”는 세일란은 수평으로 펼쳐지는 터키의 풍경과 오랜 시간 머물며 인물의 마음에 다가가는 클로즈업에 기대어 자신만의 감정을 창조한다. 애정은 아니지만, 바람에 날리는 모래처럼, 동정과 공감을 희미하게 흩뿌리는 것이다. 세일란은 아직 이별을 깨닫기도 전인 바하가 멀리서 사진찍는 이사를 바라보며 왜 눈물을 흘리는지 결코 알려주지 않지만 그 마음은 대사가 아닌 공기를 통해 스크린 너머 관객에게 스며든다. 그 침묵의 연기는 감독이 바하와 이사, 혹은 에브루 세일란과 자신에 관해 잘 알고 있지 않다면 얻어내기 힘든 결과였을 것이다. 누리 빌게 세일란 감독 기자회견 "나의 관심은 내적인 풍경에 있다" -당신은 아내인 에브루 세일란과 함께 연인을 연기했다. 그 때문에 <기후>는 당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보이기도 한다. =이 영화는 자전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배우를 묘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다만 배우를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우작>을 찍으며 이미 연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HD카메라 덕분에 결심했다. 모니터로 내 연기를 직접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 스타일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카메라를 고정하고 정지된 미장센을 찍는 방식 덕분에 나는 나의 연기를 컨트롤할 수 있었다. -<기후>는 당신의 전작인 <우작>에 비해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다. 이런 변화는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우작>은 터키의 정치·경제적인 상황에 영향을 받는 인물들이 주인공이어서 그런 요소가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기후>도 바하가 동부로 떠나는 설정을 보며 많은 터키인들이 그곳으로 이주하고 있는 현재 상황과 연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나의 관심은 내적인 풍경에 있었고, 인물이 자신의 내면에 머무르기를 바랐다. 나는 지나치게 감상적이 되었다고 느끼면 외국으로 여행을 가곤 했는데, 그곳의 풍경은 텔레비전을 보는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기후>의 여행도 그렇게 보이기를 원했다. -감정과 드라마의 표현이 모호한 편이다. 이사가 바하와 헤어지는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이사의 감정이 변하는 대목도 느닷없을 때가 많다. =<기후>의 시나리오는 촬영을 하며 즉흥적으로 쓴 것이다. 처음엔 그저 단순하게 연인이 다투었다고 생각했고, 그 이유를 찾으려고 했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관계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본질적인 문제보다 눈에 보이는 현상에 관해서만 떠들어대지 않는가. 그리고 나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이사처럼 감정을 표현하지 않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 격렬한 반응을 보이곤 한다고 생각한다. 실재하지 않는, 그러나 실체가 있는 전쟁 브루노 뒤몽의 <플란더스> <플랑드르>는 실재하지 않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그 실체가 분명한 어떤 전쟁에 대한 이야기다. 미국의 이라크전 참전을 암시하는 건조한 사막으로 파병된 플랑드르 지방의 청년들과 그들 뒤에 남겨진 한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 <플랑드르>는 풍성한 녹색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플랑드르의 풍경과 대비되는 메마른 사막의 풍경과 인물들의 건조한 섹스, 건조한 시선, 건조한 표정들로 이루어진 영화다. 플랑드르에 살고 있는 데메스테는 바르브와 어렸을 때부터 친구로 지내고 있다. 둘은 가끔 섹스를 하기도 하지만 연인 관계는 아니다. 바르브를 좋아하고 있지만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데메스테는 어느 날 전쟁터로 떠나게 된다. 브루노 뒤몽은 시나리오보다는 이미지와 사운드, 배우들에 의존해서 영화를 만든다. 비전문 배우를 즐겨 기용하는 그는 이번에도 주인공 데메스테 역에 플랑드르에서 살고 있는 사뮈엘 보아댕을, 바르브 역에 아델라이드 르루를 캐스팅했다. 뒤몽은 “그들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내가 그들에게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고 믿는 그는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을 있는 그대로, 감정에 충실하게 드러내게 하는데, 이러한 시도는 전작들에서와 마찬가지로 <플랑드르>에서도 성공적으로 표현되었다. 플랑드르와 전쟁이 일어나는 사막이 주요 무대로, 이 장소들은 인물이 겪고 있는 감정을 드러내는 구실을 한다. 카메라가 데메스테의 시선으로 전장인 사막을 바라볼 때 데메스테 마음속의 황량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플랑드르>는 보기 편한 영화는 아니다. 영화 속 전쟁에 대한 설명은 구체적으로 등장하지 않고, 데메스테의 무표정은 그의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려주지 않는다. 데메스테와 그의 동료들이 파병된 사막에서 적은 쉽게 눈앞에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윤간에 대한 보복은 잔인하게 이루어진다. 살상은 대개 무의미하게 벌어지고, 인물들의 이동경로는 쉽게 생략된 채 불친절하게 다음 장소로 넘어가버린다. 뒤몽은 “TV는 전쟁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는 매우 끔찍한 일이다. 나는 영화감독으로서 텔레비전으로 본 전쟁의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다. 이라크 전쟁을 암시하는 몇 가지 요소들을 배치하면, 관객은 이 전쟁을 믿게 된다”고 영화 속 전쟁을 설명했다. 지옥을 경험하고 나서야 데메스테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고백을 할 수 있게 된다. 전쟁을 겪고서야 욕망에 솔직해질 수 있는 것이다. 브루노 뒤몽은 99년 두 번째 작품 <휴머니티>로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과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을 휩쓸었지만 천재적 재능이라는 극단적 찬사와 역겨운 현학주의라는 극단적 비판을 동시에 들었다. 사막에서 펼쳐지는 기괴한 에로틱스릴러인 <29 팜스>(2003)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플랑드르>는 그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한번 되짚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브르노 뒤몽 감독 기자 회견 "내 작업은 암시이고, 감정이며, 시선이다" -<예수의 생애>와 <휴머니티>에 이어 <플랑드르>로 다시 칸영화제를 찾은 소감은. =작업의 출발점은 제목인 플랑드르에서였다. 내 영화에서 풍경은 첫 번째 요소인데, 이는 배경이면서 하나의 몸이고 토대이며, 이야기의 시작이기도 하다. 풍경은 영감을 주는 결정적인 요소다. 플랑드르는 내게 익숙한 풍경임에도 늘 낯설고 신비스럽게 다가오며 또한 깊은 감동을 준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배우들의 존재인데, 주인공 데메스테 역에 사뮈엘 보아댕이라는 플랑드르 지역 사람을 배우로 선택한 이유는 그의 몸과 시선이 이 풍경과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영화다. 조화를 이루는 것. 그 두 요소에서 나는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랑해”라는 대사로 마무리되는 <플랑드르>는 당신의 다른 작품들과 매우 다른 것 같다. =왜 사랑영화냐 하면…. 내 인생에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을 찾고 있다. 전쟁은 무엇인가? 전쟁은 욕망하는 것을 위해 싸우는 것을 말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이란 여자를 욕망하는 것이고,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 영화는 화산 같은 이야기이다. 내가 해야만 했던 영화이기도 하다. 감독은 화가와 같다. 나는 시나리오에는 관심없다. 이미지로 영화를 만들기 때문이다. -북아메리카 관객은 <플랑드르>를 현재의 정치적 상황과 연결지을 것 같다. 영화 속에 낯선 나라에 참전하기 위해 떠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런 설정은 현재 미국의 상황과 관련이 있는가. =영화에서 특별한 것은 한 군인을 사막에 놓기만 해도 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 전쟁은 불확실하지만, 내 작업은 일으키는 것이며 암시하는 것이며 확실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이라크 전쟁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나의 관심은 오직 시선에 있다.

푼수 엄마, 낯선 모성을 완성하다, <가족의 탄생>의 김혜옥

언제부터인가 텔레비전 드라마에 좀 이상한 엄마가 나오기 시작했다. 자식과 남편을 위해 무작정 침묵하고 희생하는 헌신의 어머니상은 분명 아니었다. 자식에게 도리어 투정부리는 혹은 남편의 사랑보다 자기의 애증을 더 소중하게 품고 있는 듯 보이는 그런 엄마. 그때마다 김혜옥이 그 역할을 했다. 아니, 김혜옥이 그런 역할들을 각인시켰다. 조심스럽게 그 인상에 대해 묻자 의외로 명쾌하게 대답이 돌아온다. “그렇죠, 요즘 내가 맡고 있는 역할들이 대개 그래요. 모자라고, 푼수 같고, 변태 같은 엄마, 호호호.” 처음부터 ‘모자라고, 푼수 같고, 변태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믿기지는 않지만, “고등학교 때는 일어나서 국어책도 못 읽는” 수줍은 소녀였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로 시작한 연극을 10년 정도 하고, 뒤늦게 텔레비전 드라마에 뛰어들어 활동하다보니 바뀐 점이 많았다.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기점으로”는 완전히 달라졌다. “촬영 나가면 초등학교 애들이 버스 앞에 줄서서 사인해달라고 데모한다니까. 정신 수준이 자기네랑 똑같다고 생각하나봐. 호호호. 그런데 너무 좋아요. 순수해지는 것 같고. 내가 원래는 너무 왕내숭이고, 차가워서 재수없다는 말도 들었다니까요.” <가족의 탄생>에서도 김혜옥은 여지없이 엄마 역할을 맡았다. 처음에는 고두심이 맡은 첫 번째 에피소드의 ‘무신’ 역할이 더 하고 싶었다. 하지만 선배 고두심이 오히려 자신이 맡은 엄마 역할을 탐냈다는 후문을 듣고는 이내 “내 거나 잘해야지” 마음을 돌려 세웠다. 영화 속 그 엄마는 텔레비전에서 보던 그냥 푼수가 아니라, 아프고 서글퍼도 울지 않는 낯선 모성에 가까워졌다. 병으로 죽어가지만 딸에게는 결코 말로 그 슬픔을 전하지 않는 사람이다. 영화 속에서 엄마는 한번도 자식을 품에 안아 울지 않고, 자기의 죽음 앞에서도 서러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딸을 사랑하는 티는 역력하다. 그 캐릭터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김혜옥은 카메라가 꺼진 자리에서만 많이 울었다. “영화 속에 들어가는 영정 사진을 찍는 날에도 그랬어요. 나중에는 우리 딸로 나온 공효진 얼굴만 봐도 눈물이 막 뚝뚝 떨어지는 거예요.” 그 말을 하면서도 눈물이 비쳤다. 사랑하는 가족을 갑작스럽게 잃었던 실제 경험의 이야기도 그 순간 잠시 내비쳤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내가 울면 안 되잖아요. 우는 것보다는 그걸 참는 게 더 슬픈 거거든요.” 그러고보니 <가족의 탄생>의 에피소드 중 슬픈 건 두 번째다. 창문을 보며 무심하게 던지는 김혜옥의 대사. “올해는 눈이 많이 오려나. 난 눈이 좋은데….” 그 아련함을 표현할 때도 엄마 김혜옥은 눈물을 참았던 것 같다.

드라마 ‘연애시대’가 남긴 것

이혼한 뒤에도 감정의 끈을 놓지 못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 에스비에스 〈연애시대〉(연출 한지승, 대본 박연선)는 시청자가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불편한 드라마였다. 화면, 인물, 이야기, 어느 것 하나 머리 비운 채 볼 수 있을 만큼 전형적이지 않았다. 인물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았다. 카메라는 인물과 거리를 유지하며 즉각적인 감정이입을 지연시켰다. 〈연애시대〉에 몰입하게 되는 첫 번째 이유는 이 텅 빈 공간에 있다. 생소한 드라마는 지난 25일 막을 내렸지만 긴 여운을 남겼다. 이 드라마가 거는 게임에 응하면 몰입의 강도는 세진다. 평균 10% 중반대 시청률에 머물렀지만, 요즘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는 여성 20대(15.4%)와 남성 30대(12.1%)를 붙들어 맸다. 텅 빈 공간에서 자기 마음도 몰라 헷갈리는 동진(감우성)과 은호(손예진)를, 나아가 행복하지도 그렇다고 불행하지도 않은 삶을 견디려 사랑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연애시대〉는 쓸쓸했다. 부잣집 아들 현중과 활달한 미연을 끌어들여 상대적으로 발랄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더니 드라마 중반에 이들을 모두 이야기 밖으로 밀어버렸다. 유부남 대학교수 윤수와 동진의 첫사랑 유경이 나오며 드라마는 더욱 묵직해졌다. 후반부로 갈수록 〈연애시대〉는 사랑의 밑자락에 놓인 삶이란 큰 그림을 잡아냈다. “먹고 일하고 자고…. 지구의 이동진은 무얼 위해 살까.” 이 독백을 하면서도 동진은 신호등이 바뀔세라 횡단보도를 잽싸게 건넌다. 시청자가 동진의 독백에 동감할 즈음 “자기 연민에 빠져 배영을 치고 있네”라는 은호의 핀잔이 이어진다. 〈연애시대〉는 희망만 보는 낙관주의자나 절망만 되새기는 비관주의자를 위한 드라마가 아니다. 삶이 그렇게 녹록하지만은 않다는 걸, 노력해서 얻는 결과가 항상 거창하고 달콤하진 않다는 걸 알아버렸지만 그렇다고 행복해지려는 발버둥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의 드라마다. 마지막회에서 은호의 긴 독백과 함께 여러 인물의 모습이 이어진다. 유방암에 걸린 은호의 동생, 동성애 커플…. 그 불행과 행복 속에 아이를 낳고 함께 사는 동진과 은호가 있다. “돌아보면 이때의 나는 나른한 졸음에 겨운 듯 염치없이 행복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가 내 시간의 끝이 아니기에 지금의 우리를 해피엔딩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은호의 독백)

[명예의 전당] 오스틴의 수다와 통찰은 걸작! <오만과 편견>

지금보다 수십살 어린 시절이었음에도 <오만과 편견>을 내놓고 읽기는 겸연쩍었다. 그리고 ‘수다쟁이 노처녀’의 작품이라고 결론지었다. 얼마 전 극장에서 <오만과 편견>(2005)를 신나게 웃으며 본 뒤, 새로 번역된 <오만과 편견>을 단숨에 읽었고, 다시 10년 전에 에서 만든 미니시리즈 <오만과 편견>을 박수까지 쳐대며 보았다. 결론은? 역시 ‘수다쟁이 노처녀’의 작품이다. 그러나 의미는 달라져, 수다쟁이라는 건 말하는 재주가 좋아 그 이야기가 즐겁다는 것으로, 노처녀(제인 오스틴이 <첫사랑>을 <오만과 편견>으로 개작한 건 서른을 훌쩍 넘긴 뒤였다)라고 함은 세상을 제대로 알 만큼 살았다는 걸로 바뀌게 됐다. 아무리 유쾌하고 재미있는 소설이라도 물경 500페이지를 넘기는 게 고역인 사람에겐 뭐가 좋을까? 원작의 역동성을 느끼기엔 영화도 좋긴 하지만, 단시간에 뛰기가 숨찬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미니시리즈가 낫겠다. 제시와 전개 그리고 절정에 이르며 거대한 소나타를 듣는 듯한 원작의 구조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나름대로 원작에 충실해서 여유있게 장편을 읽는다는 느낌을 준다. 게다가 무도회 장면으로 말할 것 같으면, 춤이란 추지 못해도 읽는 맛보다 보는 맛이 한결 좋으며, 무엇보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역을 맡은 두 배우가 주고받는 눈길은 영상이 아니고선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것이다(콜린 퍼스에 빠진 수많은 여자의 찬사를 들어온 바지만 나는 제니퍼 일리의 미소가 그렇게 좋을 수 없다). 그리고 멜빈 탕의 피아노를 따라 흥얼거리다보면 심지어 푼수 엄마조차 사랑스러워 보일 지경이다(셋째 딸 메리의 우울함은 여전하지만). <오만과 편견>을 다시 보고 읽으며 이 이야기는 현대적으로 해석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00살이 다 된 <오만과 편견>에서 다루는 사랑과 다툼, 결혼의 과정 그리고 그 아래 자리한 전통과 새로운 질서의 충돌은 지금 시대에 놓아도 하나 다를 게 없다. 현대판이라 할 <브리짓 존스의 일기>와 비교하면 알 수 있지 않은가. 간혹 ‘신데렐라 플롯’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으나, 그 또한 이야기가 해피엔딩에 이르기까지 벌어지는 노력과 우연의 연속과 오스틴의 통찰을 아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걸작이다. 10년 전 텔레비전물이어서 그런지 DVD 화질은 좋지 못하며, 부록으론 영화의 제작과정(27분)을 제공한다.

<엑스맨> 카운슬러의 임상 노트 [2]

미스틱은 일을 하려면 철저히 한다는 주의다. 다른 존재로 둔갑할라치면 아예 성문, 지문, 망막까지 복사하고 무술, 총검술, 컴퓨터 정보처리 기술도 완벽하다. 요컨대 007보다 유능하고 본드걸보다 섹시하니 인간 스파이들이 비공개 팬카페를 결성했다는 소문이 돌 만도 하다. 그러나 누구의 모습을 훔치더라도 미스틱은 미스틱이다. 미스틱은 타인의 외모는 그대로 베껴내지만 능력은 가져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미스틱을 정의하는 것은 오직 변신 능력 자체다. 미스틱도 매그니토처럼 오래전 인간들에게 혹독한 짓을 당한 모양이지만 과거에 대해 입을 여는 법이 없다. 과거를 꽤나 찾아해매는 울버린을 상당히 비웃는 눈치다. (※비록 냉소의 형식으로라도 관심을 보인다는 점이 그녀로서는 특기할 만하다.) 솔직히 미스틱은 내 도움이 필요없다. 그녀만큼 자아정체감이 확실한 돌연변이는 본 적이 없으니까. 오래전,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나이트크롤러가 미스틱에게 “누구든지 다른 사람 모습이 될 수 있다면 왜 평소에도 남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죠?”라고 물은 적이 있다. 미스틱은 딱 잘라 답했다. “왜냐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니까.” (※ 자긍심이 허약한 로그가 미스틱과 친분이 생기면 많은 정신적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됨. 술자리를 마련할 것.) 사실 스톰의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와 진 그레이-울버린-싸이클롭스-로그를 거쳐 결국 매그니토의 뒷모습으로 돌아가는 미스틱을 보면, 그녀로서도 진자 상담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저 심심풀이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쌀쌀맞은 유머감각에다가 비주얼 조크도 가능한 미스틱과의 대화는 즐겁다. 덤으로, 다른 엑스맨과 상담할 때를 대비해 연습할 수도 있다. 아이스맨이 한눈 판 것도 사실이지만, 로그가 섀도캣을 질투하는 것은 운명처럼 보인다. 좋아하는 대상에게 가 닿는 행위 자체가 공포인 로그와 반대로, 섀도캣은 이물감을 느낄 사이도 없이 접촉한 상태와 순간적으로 일체가 되는 능력을 지녔다. 몸의 분자구조를 물체와 동화하는 방식으로 통과해버리는 것이다. ‘벽’과 맞닥뜨린 엑스맨들의 전략은 성격대로다. 쿼터백 스타일의 저거노트(비니 존스)는 그냥 뚫고 나가고, 수줍은 나이트크롤러(앨런 커밍)는 텔레포트한다. 섀도캣은 스며들었다가 곧장 제 모습을 찾아 자기 길을 간다(그녀의 별명은 유령이다). 13살 때 침실 바닥에 낙상했다가 그대로 투과해버리는 바람에 능력을 각성한 이 소녀는 내가 엑스맨이라서 멋진 점이 무엇인지 묻자 “세상에서 전혀 영웅 대접을 받지 않는 것”이라고 답했다. 섀도캣의 동화능력은 에너지 흡수를 이용한 공격무기로 발전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새벽 우연히 목격한, 학교 뜰에서 홀로 허공을 걷는 섀도캣의 모습은 병기를 연상하기엔 너무 아름다웠다. 기체 분자와 동화한 결과겠지만 그 순간만큼 소녀는 공기의 요정 실피드 같았다. (※상담실 출입시 반드시 문을 이용하도록 주의 줄 것.) 미국 연방정부 돌연변이성 장관이 되어 모교를 찾은 졸업생으로, 초기 엑스맨 멤버다. 처음에는 <몬스터 주식회사>의 설리가 온 줄 알고 “애니메이션 히어로는 옆방으로”라고 말할 뻔했다. 그는 울버린에게 “야수 같다면서?”라고 인사를 건넸다가 “남 말 한다”는 면박을 들었다. 비스트는 알고 보니 동업자로, 엑스맨이 되기 전 전 시애틀에서 정신과 상담의 프레지어 박사라는 이름으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한 경력이 있다.(※NBC 시트콤 <프레지어>, <치어즈> 비디오자료 참조) 실험 중 사고로 푸른 털과 근육으로 뒤덮인 지금의 모습이 된 만큼, 비스트는 내면의 셀프 이미지와 외모가 일치하지 않는 데에서 오는 괴리감을 앓고 있다. 평소 호모 사피엔스와 구별하기 힘든 대다수 엑스맨과 달리 외양부터 ‘이족’임이 분명한 그는 아마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갈 가능성을 누구보다 숙고했을 것이다. 비스트는 유전학, 생화학, 진화생물학의 대가인 동시에, 엄청난 스피드와 민첩성, 지구력과 파워를 가진 전사이기도 하다. ‘치료제’를 선택하는 돌연변이를 비겁하다고 할 수 있을까, 갈등하는 그는 돌연변이 최초의 공직자답게 윤리적으로 매우 강직한 자다. 비스트의 슈퍼히어로다움은 힘도 지성도 아닌 그 두 가지의 놀라운 균형에서 나온다고 나는 확신한다. (※비고-스톰을 향한 비스트의 특별한 감정을 계속 관찰할 것.) 내가 굳이 엑스맨 영재학교 근무를 고집한 데에는 멋진 여성 슈퍼히어로 여럿과 교유할 수 있다는 매력이 컸다. 특별히 <스파이더맨>의 메리 제인이나 <수퍼맨>의 로이스에게 반감은 없지만, 엑스우먼들에게 비할 바는 아니다. 그 중에서도 진 그레이는 엑스맨을 통틀어 최강자다. 알칼리 호수 전투에서 죽은 줄만 알았던 그녀는 매그니토 진영의 다크 피닉스로 부활해 경천동지할 파괴력을 발휘한다. 자비에 교수는 처음부터 진 그레이의 엄청난 힘을 감지했으나 “본인과 사회의 안전을 위해” 그녀의 파워를 은밀히 제어하고 봉인했다고 내게 털어놓았다. 진 그레이는 두통이 염동력과 텔레파시의 부작용인 줄 알았겠지만, 사실은 그것이 내가 그녀에게 그토록 많은 진통제를 처방해야 했던 이유다. 진 그레이는 엘렉트라 콤플렉스의 전형이다. ‘아버지’의 권력을 선망하면서도 파워를 억눌러왔고 결국 인격이 분열된 경우다. 장녀 역할이 몸에 밴 진 그레이는 교사 시절 무던히 공명정대하려고 노력했다. 심지어 구애자 사이클롭스와 울버린 사이에서도. 동료 엑스맨들이 들으면 화를 내겠지만, 그래서 사악한 다크 피닉스로 거듭난 그녀의 거침없는 자태는 은연 중에 ‘비너스의 탄생’과 같은 통쾌함을 내게 안겨주었다. (*비고-진 그레이가 죽었다고 믿은 그녀의 약혼자 싸이클롭스가 상담 시간을 독점하고 기물을 다량 파손했음. 다크 피닉스 앞으로 청구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