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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김기덕과 <시간> [1]

김기덕의 열세 번째 영화 <시간>의 최초 시사회가 지난 5월25일 <씨네21>과 KT&G 공동 주최로 열렸다. <시간>의 개봉은 아직 불투명하지만, 영화를 개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씨네21>은 개봉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그리고 <시간>에 대해 궁금해하는 독자들을 위해서 미리 기획기사를 마련했다. 여기에는 김기덕 영화에 꾸준한 관심을 가져온 해외 필자들의 소중한 글을 같이 실었다. 한국영화에 지속적인 관심을 피력하고 있는 프랑스 영화잡지 <포지티프> 기자인 아드리앙 공보의 글과 이탈리아의 영화평론가 안드레아 벨라비타의 글이 그것이다. 두 필자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각각 자국어로 김기덕 감독에 관한 책을 낸 저자들이다(유럽에서 한 한국감독에 관한 책이 두 권씩 나온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검은 화면에 두번 연거푸 쓰인 <시간>이라는 제목이 뜬다. 마치 찌그러진 데칼코마니인 양 양편으로 비스듬히 붙어 있는 그 두개의 같은 글자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초침 소리에 맞춰 흔들리기 시작한다. 제자리에서 두번 쓰인 시간, 그러나 서로 어긋나게 등을 맞댄 문자의 형상. 그 기이한 예고로 시작한 김기덕의 열세 번째 영화 <시간>을 지난 5월25일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427석을 가득 채운 관객이 보았다. <씨네21>과 KT&G가 독자 시사를 빌려 마련한 <시간>의 최초 시사 자리였다. 때문에 이 자리에는 아직 완성된 영화를 보지 못한 주인공 성현아, 박지연 등 배우와 주요 스탭들이 함께했다. 이 영화에 관심을 두고 기다려온 몇몇 저널리즘 종사자들과 충무로 관계자들도 동석했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 중요한 참석자들이라면 어떤 인연이나 의무감없이 오로지 김기덕의 신작이 보고 싶어 치열한 접수 경쟁을 뚫고 찾아온 대다수 일반 관객이었다. 그리고 아쉽게도 그 자리에 초대받지 못한 나머지 관객이 지금 애타게 기다리는 것은 <시간>의 개봉일 것이다. 한 수입·배급사가 <시간>의 국내 판권 협의 중 최근 <시간>의 불투명한 개봉 소식이 전해지면서 <씨네21>의 독자 중에는 “스타들을 비롯한 한국영화 관계자 분들, 문화다양성 말로만 하지 말고 서로서로 한푼 두푼 조금씩 모아서,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한국 관객이 극장에서 볼 수 있도록 지원 좀 하십시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감독이고, 그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알려지면 거리에서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시위하는 것보다 열배 백배 더 효과가 있을 겁니다”(newcross) 등의 다소 감정 섞인 호소를 표시한 이도 있었다. 김기덕 감독이 <시간>의 개봉과 관련해 관례적인 극장 개봉 절차를 밟지 않을 생각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거대 배급 구조에 회의를 느껴, 단 한 차례의 언론 시사도 없이 단관 개봉하여 직접 관객을 만나고자 했던 전작 <활>의 시도가 철저한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전국 1634명이라는 <활>의 관객 수는 독창적인 세계를 지닌 한 영화 창작자가 관객과 직접 대면하기 위해 용기있게 선택한 만남의 과정에서 큰 실망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숫자였다. 이런 근황에 대해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시간>은 한국의 배급 구조가 갖고 있는 모순을 보여주는 명증한 징후다. 스크린쿼터 문제만큼 프린트 제한 쿼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스크린쿼터의 이름으로 문화의 다양성을 말하는 사람들이 왜 프린트 제한 쿼터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일종의 질책과 대안을 내놓았다. 동시에 영화평론가 허문영은 “어떤 정책이나 일종의 준강제적 조치로 이 영화가 국내 개봉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 그건 왠지 부끄럽다. 이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잠재된 관객의 열망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현재화할 수 있는 영화사의 혜안과 능력을 기다린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그 바람에 대한 한 가지 희망적인 소식이 될 수 있을까? 현재 국내의 모 수입·배급사가 <시간>의 국내 판권 계약을 놓고 김기덕 감독쪽과 긍정적으로 협의 중이다. 지금으로서는 적어도 해외 영화사에 수출된 뒤 다시 역수입해 상영하거나, 그것마저 없이 외국영화처럼 DVD 등으로 출시되어 보게 되는 최악의 결과는 피할 공산이 크다. 깊은 우려와 달리 <시간>을 극장에서 보는 일은 비교적 이른 시일 안에 성사될 가망성이 큰 셈이다. 만약 그럴 경우, 이제 남는 건 다시 관객의 능동적인 선택이다. 김기덕 작품 중 가장 섬세하고 복잡한 영화, <시간> <시간>을 본 국내외 평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다. 다소 긴 국내 평자의 즉각적인 두 논평이 대표적이다. 정성일은 “김기덕이 갑자기 그 자신의 영화를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이후 이끌리던 불투명한 침묵의 도주로부터 선회하여 감정의 구조 안으로 돌아온 것은 신기한 일이다. 나는 그의 (이번) 영화에서 인물들이 시선의 텔레파시로부터 다시 혀의 하소연으로 돌아온 것 같은 정서적 환기를 느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정서에 대한 고통의 연민이, 말하자면 피와 육신이 다시 마음을 움직인다”고 말했다. 허문영은 “김기덕 영화 중에서 가장 섬세하고 복잡하다. 시간과 공간 이미지에 대한 김기덕의 탐구가 결집해 미묘한 하모니를 연주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즉,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혹은 <나쁜 남자>에서의 선형적 시간을 대체하거나 교란하는 순환적 시간에 대한 영화적 사유와 <사마리아>와 <빈 집>에서의 현대 도시 공간의 반복성과 익명성에 대한 탐구가 결합돼 있다. 이를 통해 김기덕은 자신의 영화 생애에서 가장 비관적이며 비판적인 결론에 이른다. 새로워지지만 그것은 자기동일성을 상실한 새로움이며, 자기동일성은 유령이 되어 도시 공간을 배회한다. <시간>은 근대적 시간관에 바탕한 진보의 환상에 대한 맹렬한 야유다. 그 야유를 그는 비판적 리얼리즘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에 대한 독창적 탐구로 이뤄낸다”고 평했다. 한편 이번 칸영화제 마켓에서 상영된 <시간>에 대한 리뷰에서 영미권 산업지 <스크린 데일리>는 “김기덕 영화는 언제나 최소한의 흥미를 자아내는데, 그의 신작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운을 뗀 뒤, “비록 <시간>이 스스로 제기한 몇몇 이슈들을 충분히 탐구하지는 못했을지라도 다가오는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것에는 이견이 없을 정도다. 김기덕의 연출은 통제 불가능한 좌절의 발작상태로 두 여주인공을 몰아간다”며 김기덕의 연출력을 높이 샀다. 지금까지 김기덕의 영화 중 <시간>은 스스로의 영화적 중력에서 가장 멀리 벗어나본 영화로 기록될 것이다. 세희(박지연)라는 한 여자가 있고, 지우(하정우)라는 한 남자가 있다. 둘은 오랜 연인이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지우를 만나러 오던 세희는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고 나오는 한 여자(성현아)와 부딪친다. 세 사람의 만남은 그렇게 이미 운명적이다. 세희는 다른 여자들과 희희낙락하는 지우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의 모습이 지겨워졌기 때문이라고 자책한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성형을 결심하고 사라진다. 세희가 성형을 하고 나타났을 때 이름은 새희이며, 그 새희는 세희가 영화의 초반에 병원 앞에서 부딪쳤던 바로 그 여자다. 지우는 새로운 연인 새희와 사귄다. 그러나 새희는 지우가 여전히 세희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는 이전의 세희 얼굴을 오려낸 가면을 하고 나타난다. 그렇지만 남자의 완전한 사랑을 얻지는 못한다. 이제, 지우는 성형외과를 찾아가 그 역시 다른 사람으로 얼굴을 바꿔 새희 앞에 나타나려고 한다. 지우를 기다리는 새희는 누가 지우인지 궁금해하며 점점 광인이 되어간다. 그러다 새희는 다시 얼굴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영화는 첫 장면으로 되돌아간다. 시간에 담긴 비극적 반복의 순환 <시간>은 김기덕 영화 중 가장 요란하고 현란한 영화다. 그 형식에서 영화는 <빈 집>에서의 그 공간적 기능을 얼굴이라는 인체의 일부로 대체하고 있으며, 정서적으로는 가장 비통한 <해안선>보다 더한 비극의 벼랑에 서 있다. 김기덕 영화에 한 가지 소명이 있다면 그건 절대적인 것 혹은 불가능한 것을 향해 온몸을 투신하여 부딪치려는 인간들의 극한적인 몸짓일 것이다. 그것이 김기덕 영화 속 인물들의 광기 혹은 같은 이름으로 등을 맞대고 서 있는 구도(求道)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그래서 인물들은 미쳐가거나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그때마다 인체는 증명의 도구였다. 차라리 그건 고상한 말 인체보다는 인육에 가깝다. <시간>은 그 인육의 일부를 바꾸어서라도 사랑을 증명하고 얻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실패를 그린 영화다. 그러나 <시간>에서 정작 불변의 법칙은 다시 시간이다. 바꾸어도 다시 제자리에서 시작해야 하는 비극적 반복의 순환이 <시간> 속에는 있다. ‘시간만큼 절대적인 그 무엇이 있겠는가. 하지만 그 안에서 꿈틀거리고자 하는 욕망 또한 있을 것 아닌가.’ 이 간단하면서도 무구한 난제와 도전의 과정에 김기덕은 자신의 인물들을 세웠다. 이제 <시간>이 개봉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어서 오기를 기다리는 것만이 남았다.

CF로 배우를 엿보다 [3]

스타 탄생은 때로 한편의 영화, 한편의 드라마, 한장의 음반에서 이루어지지만, 최근에는 CF가 스타 탄생의 산실이 되고 있다. 극중 배역은 스타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중요한 기제이고 보통 광고는 이런 스타의 이미지를 차용하지만, 역으로 광고가 스타의 이미지 형성에 기여하고 무명의 연기자를 일약 스타도 만들기도 한다. 욘사마의 미소, 코카콜라의 미소 일본 열도를 끓어오르게 한 욘사마 배용준의 낭만적이고 부드러운 이미지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그의 부드러운 미소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것은 오래전 광고에서 시작된 것이다. <겨울연가>를 제외하고 배용준이 부드러운 이미지를 보여준 드라마는 거의 없다. 이전 드라마에서의 배역은 대체로 반항적이거나 복수심에 불타거나 권위와 체계를 거부하는 인물이었다. 배용준의 부드러운 이미지는 1996년 그가 모델로 기용됐던 과일나라 CF와 LG그룹의 기업광고에서 만들어졌다. 워낙 광고는 행복하고 살 만한 세상을 보여주기 때문에 행복한 미소를 보여주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광고에서 보여준 배용준의 미소는 그야말로 백만불짜리 미소였다. 새소리와 아이들 웃음소리가 넘치는 시골길, 지프를 탄 배용준이 LG로고가 새겨진 운동모자를 쓰고 아이들과 함께 ‘사랑해요. 사랑해요 LG’를 합창하는 이 CF는 천진난만한 아이들, 귀에 착 붙는 CM송으로 그의 미소를 더욱 따뜻하고 부드럽게 만들어주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광고모델이 우리에게 스타의 이미지를 주조하는 기제로 떠올랐을까? 한국 광고사를 되짚어보면 1920년대 광고모델로 무용가 최승희가 등장한다. 이미 근대 초기에도 대중스타, 셀레브리티가 광고모델로 기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 광고가 명실공히 체계를 잡아가고 스타와 광고가 상승효과를 일으키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 이후다. 시인이자 영화감독인 유하는 그의 시집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에서 ‘톡 쏘는 맛처럼 떠오르는 여자’를 예찬한다. 바로 코카콜라 CF의 모델, 심혜진이다. 시인은 그녀의 미소를 ‘폐수 위에 핀 연꽃’으로 비유했다. 1988년 코카콜라 슬로건이 ‘난 느껴요’(I feel Coke)로 바뀌면서 등장한 당시 21살의 무명모델 심혜진은 해변이나 운동장 등이 등장하던 기존 코카콜라 CF의 분위기를 확 바꿨다. 도회적이고 세련된 정장을 입고 시원하게 웃는 그녀는 팔꿈치로 장난스럽게 동료 남성의 얼굴을 치기도 하고, 정장 차림으로 야구장에서 홈런을 날리는 모습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영상을 선보였다. 광고에서 활동적이고 건강한 미소를 지닌 여성 모델이 등장한 것은 우리 사회가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순식간에 우리 사회에 페미니즘이 꽃피고 여권이 신장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같은 시기 삼성전자 CF에서는 ‘남편사랑은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고 애교스럽게 말하는 새댁이 있었으니. 이 새댁이야말로 우리나라 광고역사에 기록될 만한 CF스타다. 사랑받는 아내와 산소 같은 여자 최진실이 등장한 1988년 즈음, 서울올림픽을 전후하여 우리의 소비문화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소비의 폭발적인 성장세와 함께 바야흐로 혁명의 시대는 욕망의 시대로 접어들어가게 된다. 수출역군이었던 가전 3사들은 내수시장에 전력을 다했고 광고는 전자제품의 경합장이었다. 특히 백색가전이라 불리는 세탁기, 냉장고, 텔레비전, 비디오, 전자레인지 등 생활용품들이 대중화하기 시작했다. 혼수가전의 패권을 장악한 삼성전자는 “남편 귀가시간은 여자하기 나름이에요”, “남편사랑은 가끔 확인해봐야 해요” 등의 가부장제 냄새가 물씬 나는 카피와 더불어 최진실의 애교있는 모습으로 소비자를 공략했고 모델 최진실은 일약 스타가 되었다. 최진실은 당시까지 공식화돼왔던 광고모델과 탤런트 혹은 영화배우의 관계를 뒤집어놓았다. 탤런트나 영화배우로 성공하고 지명도를 얻어야 가능했던 광고모델은 더이상 스타의 부업거리가 아니라 데뷔무대가 되었다. 상업광고의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실질적으로 여성의 이미지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것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이다. 1991년 태평양의 ‘마몽드’는 이영애라는 최고의 CF스타를 배출했다. ‘산소 같은 여자’라는 슬로건으로 내세운 이 CF는 ‘세상은 지금 나를 필요로 한다’는 카피와 함께 운동과 사격으로 자신을 단련하고 사건현장에서는 남자들을 지휘하는 여형사의 모습이 등장한다. 캠페인 초기에 등장한 ‘결혼이 목표는 아니다’, ‘나의 삶은 나의 것’, ‘성취는 남자의 것만은 아니다’ 등의 카피에서 드러나듯이 20대 여성의 가치관 변화가 담겨 있다. 이후 그녀는 영화 <선물> <공동경비구역 JSA>와 드라마 <대장금>의 성공으로 아시아의 스타가 되었고, ‘CF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말 그대로 CF를 종횡무진했기에 ‘이영애의 하루’라는 인터넷 유머가 등장할 정도였다. 이영애에 이어 CF여왕의 지존에 도전하는 테크노 요정이 혜성같이 등장했으니, 1999년 말 삼성 마이젯 프린터 광고에서 섹시한 테크노댄스를 선보인 10대 소녀 전지현이다. 그녀는 춤 하나로 스타덤에 올랐다. 업계에서는 ‘전지현이 광고하면 상품이 뜬다’는 전지현 효과가 거론될 정도로 이후 그녀가 모델로 등장한 광고 상품마다 시장점유율이 호조를 보였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는 청순, 발랄한 이런 광고에서의 이미지가 확대재생산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의 부침과 달리 ‘CF여왕’ 전지현의 입지는 현재 그 누구보다 탄탄하다. 20년을 함께한 CF모델, 키치로 거듭난 배우 ‘파블로프의 개’로 잘 알려진 조건반응이론은 광고의 세계에서도 통용된다. 즉 낯선 상품을 어떤 익숙한 이미지와 결합시켰을 때 자연스럽게 그 이미지가 광고제품에 투영된다는 것. 천연조미료라는 새로운 상품으로 런칭한 다시다와 모델 김혜자의 만남이 대표적이다. 드라마 <전원일기>를 통해 전통적이고 수더분한 어머니의 이미지를 얻고 있던 김혜자는 다시다 CF에서 도시에 사는 현대인에게 고향의 맛, 그리운 어머니의 손맛을 일깨웠다. 다시다의 캠페인이 지속되는 20여년간 <전원일기>도 장수하고 있었고 덕분에 이 드라마와 광고는 서로 상승효과를 일으켰다. 김혜자와 더불어 20여년간 장기적인 광고캠페인을 벌여온 또 다른 모델은 맥스웰하우스의 안성기다. 동서식품 맥스웰하우스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커피 광고는 전통적으로 부드럽고 사색적인 망중한을 그려왔다.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거실 소파에 앉은 부인에게 커피를 건네주는 자상한 남편 혹은 유럽 어느 관광지의 노천카페에서 아내와 이마를 맞대고 다정하게 웃는 남편 등 영화배우 안성기는 자상하고 편안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동안 점점 맥스웰커피 이미지는 안성기를 닯아가고 안성기는 커피 이미지를 닮아가고 있다. 광고의 세계는 섹시하고 건장한 젊은이들의 전유물일까? 이전에는 그랬다. 그러나 전원주를 모델로 기용한 1998년 데이콤의 ‘터치터치002’ CF가 등장하면서 그 공식이 깨졌다. 호들갑스러운 웃음소리로 극에서 감초 역을 해왔던 전원주는 이 CF에서 만화영화 <짱가>의 주제곡이 흐르는 가운데 지붕 위를 달리거나 공항에서 텀블링하는 기묘한 이미지로 등장한다. 부조화의 조화가 독창성을 낳았던 키치 광고다. 이 광고로 인해 전원주는 화제의 인물이 되었고, 제2의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 중견배우가 CF모델로 대거 등장하게 된 것도 이 광고가 계기가 되었다. 원로배우 신구는 롯데리아 크랩버거 CF에 등장해 “니들이 게맛을 알어?”라는 독특한 뉘앙스의 대사로 최고의 인기를 얻었고, 김수미 역시 <대장금>을 패러디한 한국야쿠르트 ‘장라면 CF’로 인기를 얻고 있다. 식품 광고와 김수미는 이미 잘 어울리는 이미지로 변해 있었는데, 이는 그 유명한 홈쇼핑 채널의 ‘김수미 꽃게장’ 덕분이다. 어쨌든 광고전략의 발상의 전환은 모델의 전환을 가져왔고, 모델로 등장한 배우들에게 인생의 전환을 가져왔다. 이렇듯 광고와 스타 이미지는 서로 공모의 관계에 있다. 스타가 매스미디어와 스타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다면, 광고는 그 시스템을 움직이는 자본의 동력이면서 스스로도 막강한 텍스트로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사실 영화를 통한 이미지건 CF를 통한 이미지건 그 이미지는 스타 개인의 본질과는 무관한 가상의 이미지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 가상의 이미지에 대중은 물론 스타 자신도 포획되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비열한 거리’서 비열한 조폭 열연 조인성

〈말죽거리 잔혹사〉 유하 감독이 15일 개봉하는 영화 〈비열한 거리〉에서 선택한 ‘조폭’(조직폭력배)은 조인성(26)이었다. 하지만 ‘청춘스타’ 조인성을 ‘연기자’로 끌어올린 텔레비전 드라마들에서 조인성은, 심지어 조폭이었을 때조차(〈피아노〉) 조폭 같지 않았다. 그는 독하고 체구가 딱 벌어지기보다는 여리고 휘청거리는, 그래서 안쓰러운 느낌이 컸다. 지난 5일 언론시사를 통해 조폭 두목 병두로 분한 조인성의 모습이 공개됐다. 조인성은 순수하고, 그렇기 때문에 비열해지기도, 파멸하기도 쉬웠던 조폭 연기를 멋들어지게 소화하며, 제 깜냥의 한계를 한 차원 끌어올린 것 같았다. 조인성이 생각하는 병두의 삶은 ‘조폭의 삶’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모습’이었다. “병두가 죽여서는 안 될 사람들까지 죽여가며 먹고 살려는 이유에 공감이 가잖아요. 아픈 엄마, 속 썩이는 동생, 공부 잘하는 동생,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 …. 그건 꼭 조폭이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가 비열한 거리에서 비열하게 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모성본능 자극? 왜 그럴까요 조폭 병두에게서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찾은 그는 “딱 조폭 이미지인 배우가 병두 역할을 했다면, 다른 조폭 영화와 차별성이 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하 감독님이 ‘유약한 이미지’라고 표현한, 저 같은 배우가 출연했기 때문에 단순한 조폭을 넘어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나 싶어요.” 하지만 조인성은 유하 감독과 그의 많은 팬들이 그에게서 발견한 ‘유약함’, 혹은 ‘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특유의 모습’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는 알지 못한다는 반응이었다. 그는 “연기는 제 안에서 출발하는 거니까, 사람들이 제 연기에서 그런 걸 본다면 저한테 그런 면이 있는 거겠죠. 하지만 모성을 자극하는 법 같은 건 정말 몰라요. 그런 걸 연습할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라며 웃었지만, 그 웃음 역시 모성을 자극하는 듯했다. 일상적 장면의 힘 배웠어요 그는 시나리오 선택에서부터 촬영과 후반작업까지 꼬박 1년을 쏟아부은 〈비열한 거리〉를 끝낸 뒤 “‘생활 대사’ 연기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액션 장면에서조차 주먹질을 보여주는 것보다, 병두라는 인간의 처절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에 신경을 썼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을 잔뜩 실어 열연을 펼치면 관객들도 힘든다는 걸 알게 됐어요. 또 일상적인 장면 하나하나가 영화에 얼마나 큰 힘을 불어넣는지도 배웠고요.” 덧붙여 영화출연 뒤 처음으로 쏟아진 ‘호평’으로 한껏 자신감을 얻은 것 같았다. “〈남남북녀〉 때는 연기 그만두라는 얘기까지 들었지만, 그건 너무 성급한 결론 아닌가요. 연기라는 게 삶을 표현하는 건데, 태어날 때부터 모든 삶을 꿰뚫어 볼 수 없듯,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알게 되는 부분들도 있잖아요. 그래서 전 나이 드는 게 기대돼요. 서른 이후, 또 그 이후의 제 연기를 지켜봐주세요.”

베네수엘라, 할리우드영화와 전면전 선포

“할리우드의 독재를 막겠다.”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가 할리우드영화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했다. 그는 6월3일 수도 카라카스에서 열린 영화 스튜디오 ‘필름 빌라 파운데이션’의 오픈 행사에서 총 1100만달러의 자금을 투자해 자국의 영화를 지키겠다고 말했다. 이번에 세워진 스튜디오는 일종의 ‘영화종합타운’. 영화 촬영부터 후반작업까지 가능하도록 꾸며졌다. 그는 이번 스튜디오 건립과 관련해 “이는 베네수엘라의 문화적 기반을 지키기 위한 무기다. 미국의 문화적 독점을 막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스튜디오에서 제작될 첫 번째 프로젝트는 베네수엘라의 국가적인 영웅 프란시스코 드 미란다를 소재로 한 영화. 그는 19세기에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싸웠던 인물이다. 차베스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할리우드식 영웅인 슈퍼맨은 거절하겠다. 우리의 영웅을 스스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필름 빌라 파운데이션은 할리우드영화 속에 보이는 라틴아메리카의 스테레오 타입에 대한 반감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무법 지대에서 갱들이 출몰하고, 마약이 자유롭게 유통되며, 식수로 하기엔 매우 위험한 물이 있는 곳. 차베스 대통령은 “이같은 라틴아메리카의 모습은 매우 할리우드 중심적인 시선에서 비롯됐다”며 불편함을 드러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콜래트럴 데미지>와 러셀 크로의 <프루프 오브 라이프>에서 묘사된 콜롬비아가 그 예. 차베스 대통령은 이에 대해 “이건 완전한 할리우드의 독재다. 그들은 실제 우리의 전통과는 상관없는 잘못된 이미지와 메시지로 우리를 세뇌시킨다. 미국식 삶의 방식인 제국주의로 우리를 물들게 하고 있다”며 강한 반감을 표했다. 1998년 처음 대통령에 당선된 뒤 2000년 재선에 성공한 차베스 대통령은 남미 지역의 대표적인 좌파 지도자. 그는 민간 기업의 국유화를 비롯해 세계 자본주의 흐름에 반대하는 정책들을 펴왔다. 최근에는 미국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전쟁을 비판하며 이란을 ‘형제국’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지난해에 설립된 <텔레수르>도 베네수엘라 정부의 자금이 70% 넘게 투자된 TV채널. 라틴아메리카의 시선으로 뉴스를 제작한다는 취지의 이 채널은 쿠바,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브라질 등에서 지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채널이 차베스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텔레수르>가 아닌 <텔레차베스>라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케이블 새 드라마 ‘시리즈 다세포 소녀’ 지휘 김의석 총감독

고등학생 ‘음란비사’ 다룬 인터넷 인기만화 원작 젊은 감독 9명 총 40편 나눠 찍어 전복적 즐거움 끌어낼까 만화 〈다세포 소녀〉는 무쓸모 고등학교에서 일어나는 청춘답지 못한 청춘들의 음란 비사다. 변태 수학 선생, 가난을 등에 업고 다니는 소녀, 성행위를 한번도 못해 왕따가 된 외눈박이, 오빠의 자위 현장을 목격하고 자살을 기도하는 도라지 소녀 등 고정 캐릭터들은 있지만 주인공은 없고, 매회 에피소드는 있지만 꾸준한 줄거리도 없다. 이 만화를 텔레비전 드라마 〈시리즈 다세포 소녀〉로 옮겨 오는 8월부터 수퍼액션 채널에서 방영한다. 원작만화 자체가 독특한 만큼, 드라마도 9명의 감독들이 편당 15분짜리 2~6편씩을 제작해 총 40편으로 완성하는 특이한 방식을 택했다. 단편영화 출신의 아이디어가 싱싱한 젊은 감독들이 감독을, 〈결혼 이야기〉 〈북경반점〉 〈청풍명월〉을 감독한 김의석이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 2005년 7월 삼십대 초반의 젊은 감독들과 백전노장 프로듀서가 모여 “원작 만화가 가진 전복성, 성적 판타지, 코믹성만을 살리기로 합의”하고, 나머지는 각자 알아서 시나리오 쓰고, 팀을 구성해 게릴라식 촬영에 나섰다. “파격적인 원작과 제작시스템에서 감독들만 믿고 찍었습니다. 〈어린이 바이엘 상권〉의 조운, 〈구타유발자 잠들다〉의 유정현, 〈정말 큰 내 마이크〉의 우선호 등 단편영화에서 인정받은 감독들과 김성호, 안태진 등 실력있는 현장 조감독들을 모았습니다.” 김의석 프로듀서는 〈시리즈 다세포 소녀〉를 “하나의 원작이 아홉명의 감독들로 세포 분열해서 만든 작품”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성기를 표현할 때도 어떤 감독은 플래시 애니메이션으로, 어떤 감독은 과일로 하는 식입니다. 우선호 감독은 아예 줄거리를 다시 썼지요. 그 결과 ‘무쓸모 고등학교’ 편에서는 원작에는 없던 교육현실을 풍자하는 대목이 생겼습니다.” 만화 내용에 너무 의존했다는 드라마 〈궁〉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시리즈 다세포 소녀〉에는 30% 이상 창작 내용을 넣었다고 한다. 인터넷 연재 당시 가장 흥미를 끌었던 캐릭터 ‘가난소녀’는 정소연 감독이 맡아 만화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사랑을 이루어지게 하니 만화보다는 드라마가 더 판타지인 셈이다. 감독의 상상력을 제약하지 않는 대신, 현실적인 제약은 컸다. 제작비 10억원, 촬영기간 2개월, 에이치디 소형 카메라 3대로 40편 티브이 드라마를 찍어야 했다. 더한 현실적인 제약은 ‘검열’ 문제였다. 원작의 재미는 모범생들이 벌이는 에스엠(가학적 성행위) 행각, 게이인 축구부 주장, 전교 1등 일진회 등 고정관념과 마구잡이식 성담론이 충돌하는 그 순간에 있었다. 김 프로듀서는 “성기 노출 절대 금물로 시작해 성을 묘사하는 단어를 일일이 제한하는 방송윤리 심의 규정을 두고 고민했다”고 한다. 자체 검열도 작용했다. “만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이 이처럼 ‘센’ 성적 코미디를 즐길 수 있을까,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이 프리섹스를 즐기거나 선생님들이 변태처럼 나오는 등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목들에 대해서도 고심하고 있다.” 충돌을 피하면서 ‘전복적 즐거움’을 캐올 수 있을까? 지금 편집 중인 40편의 〈시리즈 다세포 소녀〉는 아직 그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아마도 참여했던 젊은 감독들은 만화 원작에서 ‘학생회장’이 한 말에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의 대부분 재미난 것들은 반윤리적이지. 투우라든가 이종격투기라든가. 그렇지 않아?”

색깔 다른 법정 공방 안방서 불꽃

법정에서 오가는 고발과 심판의 설전에서 삶의 모습을 건지는 새로운 시선의 외화 두 편이 시작한다. 폭스채널의 휴먼 드라마 〈가디언〉(사진, 목 밤 9시50분) 시즌 2, 캐치온의 리얼리티쇼 〈로펌〉(수·목 오전 10시)이 각각 22일, 7월5일부터 전파를 탄다. 배심원들을 설득해가는 변호사들의 불꽃튀는 법정공방과 허를 찌르는 설전으로 법정을 구원의 장소, 나아가서는 즐거운 놀이의 공간으로 만든다. 〈가디언〉은 따뜻한 감동을, 〈로펌〉은 팽팽한 긴장감을 노린 프로그램이다. 〈가디언〉은 상류층 변호사 닉 팰린(사이먼 베이커)이 마약복용 혐의로 사회봉사 명령을 받고 알게 된 학대받는 아동들을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구하는 과정을 그린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미국 시비에스(CBS) 채널에서 인기리에 방영됐고 짜임새 있는 구성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주인공 사이먼 베이커는 이 드라마로 2002년 제5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텔레비전부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아동법률서비스센터에서 봉사를 하게 된 닉의 달라진 생활을 그린 시즌 1에 이어 시즌 2는 기업들의 돈벌이를 위해 법정에 섰던 닉이 위기에 처한 아이들의 변호를 맡으면서 변호사로서의 양심과 의무를 깨달아가는 모습을 쫓아간다. 방임, 성폭행, 가정불화 등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도우려는 변호사의 모습이 할리우드 영화의 변호사들보다는 현실적이다. 최종 판결로 결론을 내는 전형적인 법정 드라마와 달리 결말을 시청자의 몫으로 남겨두기 때문이다. 〈로펌〉은 ‘신성한’ 법정을 서바이벌 형식의 리얼리티쇼장으로 만든다. 현직 변호사 12명이 상금 25만달러를 얻으려고 법정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펼친다. 실제 사건을 두고 피고측과 원고측 팀을 나누어 진행되는 프로그램은 짧은 시간 동안 사건의 내막을 캐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여기에 긴장감을 더욱 높이려고 재판의 승패에 관계없이 변호사로서 자질이 부족한 두명을 떨어뜨린다.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리얼리티답게 변호사들이 서로를 “비윤리적이다” “건방져 보인다”고 비난하는 말들이 그대로 나오며, 재판에 진 팀원들이 서로 헐뜯는 치졸한 모습까지 낱낱이 카메라에 담았다. 2005년 미국 엔비시(NBC) 채널에서 방영한 이 프로그램은 법정드라마 〈보스턴 저스티스(The Practice)〉로 1999년 에미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드라마 시리즈상을 받은 데이비드 켈리가 제작했다. 법정을 소재로 했지만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 두 프로그램은 사건 재연의 반복과 뻔한 판결로 끝을 맺는 한국의 법정 프로그램에서 느낄 수 없는 색다른 재미를 준다.

[외신기자클럽] 아시아만의 영화 축제가 필요하다 (+영어원문)

이번달 중순 상하이에 열린 토론회에서 중국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감독 펑샤오강은, 중국 영화산업이 5∼10년 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가 될 거라 예측했다. 펑 감독은 얼마 전에 장쯔이가 출연한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각색한 1500만달러짜리 <야연>을 마무리했다. 이 영화는 9월에 중국에서 개봉하기 전에 베니스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가질 계획이다. 2005년에는 장편영화 260편이 베이징영화청에서 배급허가를 받았다. 이 수치는 전년대비 20% 증가한 것이다. 일부는 홍콩과의 공동제작물이었지만 그럼에도 단편, 텔레비전용 영화, 다큐멘터리, 그리고 일명 ‘지하전영’ 영화를 제외한 이 수치는 놀랍다. 그러나 260편 중 유료 관객을 위한 영화관에서 상영될 영화는 몇편 안 된다. 중국은 1인당 극장 수가 적은데다가 외국영화 쿼터는 있지만 국내영화에는 상영쿼터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6월에 개최된 상하이국제영화제는 60편의 최근 중국 장편을 상영했는데, 지난 18개월에 걸쳐 제작된 가장 덜 흥미로운 본토영화들이 주를 이뤘다. 행복한 소수인종, 모범시민에 대한 전기영화, 그리고 사회의식에 대한 영화들이 그 중 몇몇 예다. 이 영화제에서 가장 흥미로운 중국영화는 초보평의 유쾌하게 통속적인 <트러블메이커>이었을 것이다. 초보평의 영화가 나중에 두개의 작은 상을 타갔지만, 주중 저녁에 열린 한번의 상영회는 7장의 티켓밖에 팔지 못했다. 중국영화는 국내 극장개봉의 기회가 거의 없는데다 해외판매는 가느다란 희망밖에 없기 때문에, 감독들은 유일하게 보증된 관객을 위해 영화를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 관객은 자기 자신들이다. 정말 소수의 감독만이 관객이 접근할 만한 영화를 만드는 데 관심을 둔다. 그러나 이런 감독들은 제작비를 모으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반면, 배급의 기회를 잡기란 훨씬 어렵다. 첸다밍, 장이바이, 지에동은 같은 감독들은 정치적인 검열보다는 보수적인 극장 운영자들 때문에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중국영화는 세계에게 (그리고 자국에게도) 자신들의 영화를 소개할 수 있는 행사를 하나도 갖고 있지 못하다. 1980년대 아주 짧은 기간 동안 홍콩국제영화제가 이른바 ‘5세대’의 부상을 위한 관문으로서의 그 역할을 수행했다. 현대 본토 중국영화에 초점을 맞춤에도 불구하고 올해 영화제는 중국 장편 극영화 프리미어를 단 한편도 갖지 못했다. 영화제 프로그램에 있는 영화들은 이미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한 전세계의 다른 행사들에서 소개된 것들이었다. 20여년 동안 중국에서 가장 두드러진 영화들은 유럽 영화제들에서 프리미어를 가졌다. 한국은 이제 동일한 방식을 따라가고 있다. 해외 게스트들은 더이상 한국영화를 보기 위해 부산영화제에 오지 않는다. 발견하기 위해 오는 것은 고사하고 말이다. 지난 5월 칸영화제에서 이루어진 봉준호의 <괴물> 월드 프리미어뿐만 아니라, 칸영화제 참석자들은 마켓에서 20편 이상의 한국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홍상수와 임상수의 가장 최근 영화들은 베니스에서 프리미어할 가능성이 높다. 두드러지게 유명한 한국영화가 부산에서 프리미어하는 것은 타이밍상 우연의 일치가 될 뿐이리라. 부산영화제는 이런 사실을 인식하고 아시아영화의 경쟁부문인 뉴커런츠 부문 출품작들에게 월드 프리미어 조건을 점점 더 강력하게 요구하면서 경쟁이 심한 가을 시즌 영화제 환경에 적응하고 있다. 불리한 결과를 낼 수 있는 도박일지도 모르지만, 10회를 넘긴 영화제를 강화할 수 있는 힘이 될 수도 있으며, 해외 게스트들의 관심을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영화에 돌리는 데 일조할 수도 있을 것이다. At a panel discussion in Shanghai last week, China's most commercially-successful film director, Feng Xiaogang, predicted that the mainland film industry will become the second largest in the world within five to ten years. Feng has just completed his latest film, The Banquet, a US$15m adaptation of Shakespeare's Hamlet starring Zhang Ziyi. It's tipped for a world premiere at the Venice Film Festival before opening across several Chinese territories in September. In 2005, 260 completed feature films received a distribution licence from the Film Bureau in Beijing, an increase of 20% on the previous year. A portion of these were Hong Kong co-productions, but the still astonishing number excludes shorts, television movies, documentaries and "underground" cinema. Few of these 260 films, however, will ever be projected in a cinema for a paying audience as China has so few movie theatres per capita and only a quota for foreign films, not local ones. June's Shanghai International Film Festival presented 60 recent Chinese features, dominated by some of the least interesting mainland films produced over the past eighteen months. These include films about happy minority races, biopics of model citizens and films about social consciousness. Perhaps the most exciting Chinese film at the festival was Cao Baoping's joyously vulgar Trouble Makers. While Cao's film went on to win two minor prizes, it sold only seven tickets to the public at its single screening on a midweek evening. Since Chinese films have little chance of domestic theatrical release and slim hope for overseas sales, directors have had a tendency to make films for their only guaranteed audiences: themselves. Just a handful of directors are interested in making accessible films for audiences. But while these directors have no problems raising finance, distribution is more elusive. Directors such as Chen Daming, Zhang Yibai and Xie Dong have had difficulties getting their films into cinemas because of conservative theater operators rather than any political censorship. Chinese cinema has no single event to introduce its cinema to the world (or to itself). For a brief period in the 1980s, the Hong Kong International Film Festival served that purpose, acting as a gateway for the emergence of the so-called Fifth Generation. Despite a focus on contemporary mainland cinema, this year's edition of the festival was unable to premiere a single narrative feature from China. The films in their program had already been introduced at other events around the world, including the P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For almost twenty years, China's highest profile films have received their premieres at European festivals. South Korea is now following the same pattern. Overseas guests no longer visit Pusan to watch - let alone discover - Korean cinema. In May, in addition to the world premiere of Bong Joon-ho's The Host, Cannes attendees could catch over twenty different Korean films in the market. The latest films from Hong Sang-soo and Im Sang-soo are likely to premiere at Venice. Any high-profile Korean premieres at Pusan will be an accident of timing. Pusan is aware of this and is adapting to a more competitive fall festival environment by becoming more demanding of world premieres in its competitive New Currents section for Asian films. It's a gamble that could backfire, but it could also strengthen the festival as it enters its second decade and help direct the attention of its international guests toward Asian cinema, including that of China.

이안 매켈런의 연기세계 [1]

<엑스맨: 최후의 전쟁>이 상영되는 극장 안에서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매그니토를 보고는 여자친구에게 “간달프 할아버지야”라고 속삭였다. <엑스맨> 시리즈의 매그니토와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간달프가 같은 배우에 의해 거의 시차없이 연기되면서도 어색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안 매켈런이 아니었다면, 선악동체의 강렬한 연기력을 가진 그가 아니었다면 퍽 우습고 눈에 거슬리는 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연기력은 어디서 왔을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그를 낚아채기 전, 그는 영국에서 어떤 연기를 해왔을까. 틈만 나면 게이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 그가 할리우드에 대해 갖는 생각은 어떤 것일까. 이안 매켈런의 수많은 인터뷰들, 그리고 그의 영화 출연작들을 중심으로 코미디언 뺨치는 유머감각을 지닌 영국 게이 할아버지를 조금 더 알아보았다. “지고한 선의 상징과 순수한 악의 화신을 똑같은 위엄으로 연기하는 배우.” 올 칸영화제 개막작이었던 <다빈치 코드> 기자회견에서 이안 매켈런을 소개하는 데는 여러 말이 필요없었다. 이안 매켈런은 늦게, 분명 너무 뒤늦게 할리우드에 ‘발견’된 배우다. 연기력이 뛰어난 이 배우는 갑작스럽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시리즈 <반지의 제왕> 3부작과 <엑스맨> 3부작을 통해 세계 영화팬들의 시선을 끌었지만 사실 그의 연기생활에서 이 대작영화들은 아주 작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영국에서 오랜 시간을 연극배우로 활동한 그는 예술 공헌을 이유로 기사 작위를 받았고, 로렌스 올리비에의 뒤를 잇는 최고의 셰익스피어 배우로 알려져 있다. 지난 5월28일 68살이 된 그가 세계를 무대로 또 한번의 전성기를 맞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그의 영국에서의 활동에 있다. 종이인형으로 셰익스피어를 연출하던 소년 이안 매켈런은 1939년 잉글랜드 북쪽에서 태어났다. 같은 해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어린 이안은 폭격을 맞아도 부서지지 않는 테이블 아래서 잠을 자야 했다. 탄광촌 위건은 큰 폭격에 시달리지 않는 도시였으니, 그가 전쟁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사탕이 없다”는 것 정도였다. 그는 부모 덕에 아주 일찍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처음으로 본 공연인 <피터팬>은 “진짜 악어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다 와이어도 다 보여서” 실망스러웠지만, 여덟살 때 산타클로스에게서 받은 장난감 극장 세트로 셰익스피어를 연출할 정도의 관심을 끄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참고한 원작은 로렌스 올리비에의 영화 <햄릿>이었다. 당연하게도, 진 시몬스의 오필리아도, 로렌스 올리비에의 햄릿도 모두 종이로 오려 만든 인형으로 혼자 해결했다. 죽을 때까지 아마추어 연극배우로, 연출가로, 제작자로 활동했던 그의 누나 진은 동생 이안을 셰익스피어의 세계로 이끌었다. 13살 때, <십이야>에 처음 출연한 뒤 매년 여름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본에서 있었던 여름학교는 그에게 진짜 프로의 세계를 경험하게 해주었다. 여름학교가 열리던 곳에서 30분이면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에 갈 수 있었다. 저녁이 되면 어린 이안은 로렌스 올리비에, 비비안 리, 에디스 에반스, 페기 애시크로프트가 출연하는 셰익스피어극을 볼 수 있었다. “페기 애시크로프트의 연기는 인간 이상의 것이었다. 나같은 아마추어가 그런 경지에 이를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십대의 나는 요리사나 기자가 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장학금을 받으며 케임브리지에 있는 세인트 캐서린 칼리지에 다니게 되었지만, 재학 중에 21편의 연극에 출연하면서 장학금 혜택은 하나씩 사라져갔다. 예술 학사 학위를 1961년에 취득했지만 평점은 2.2에 머물렀다. “다른 일은 맞지 않아서” 그는 착실히 연기 경력을 쌓아갔다. 연기 학교를 따로 다니지는 않았다. 보고 직접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런던으로 이사해 남자친구와 동거를 시작했다. 매켈런의 동료들은 이미 그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가족이나 언론 모두 내 성 정체성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알릴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게이라는 사실을 숨기려고 “운명의 여인을 기다리는 중”이라는 거짓말로 인터뷰를 하지도 않았다. 그는 착실히 연기를 했다. 60년대 후반, 그는 에든버러와 런던에서 리처드 2세와 에드워드 2세를 동시에 연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 합류, 전성기의 시작 29살이던 1969년이 되자 그는 <가디언>으로부터 “위대한 배우가 될 연기자를 언급할 때, 이안 매켈런의 이름은 빠지지 않는다”는 논평을 들었다. 매기 스미스는 매켈런의 런던 웨스트엔드 데뷔 무대에 크게 감동받아 로렌스 올리비에게 매켈런의 공연을 보라고 추천했다. 그의 연기를 본 올리비에는 국립연극컴퍼니를 설립한 뒤 매켈런을 불러들였다. 그의 목표는 이미 “연극 무대를 떠나지 않고 영화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이었다. 영화 일을 시작하기에 연극만으로 너무 바쁘지만 않았으면 좀더 일찍 국제적인 스타덤에 올랐을지도 모른다. 그는 1975년에 로열 세익스피어 컴퍼니에 들어갔는데, 예술감독 트레버 넌을 만나면서 명실상부한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1976년 매켈런이 공연한 <맥베스>는 로렌스 올리비에 이후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다. <선데이 텔레그래프>(텔레그래프??)는 “위대하고 잊을 수 없는 연기”라고 평했다. 주디 덴치는 “매켈런과는 언제라도 함께 공연하고 싶다. 그는 대단히 지적이며 역할을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놀라운 유머감각을 지녔다”라고 말했다. <로미오와 줄리엣>과 <맥베스>의 전설적인 성공을 통해 매켈런은 완전히 입지를 굳혔다. 넌과 매켈런의 협력은 1989년 <오델로>까지 이어지는데, 매켈런은 이아고 연기로 76년의 <맥베스>에 이어 다시 ‘올해의 배우상’을 받았다. 두 작품은 비디오로 녹화되어 여전히 판매되고 있다. 그 즈음부터 매켈런은 영국배우협회 이사, 말로 협회장, 로열 내셔널 시어터 기금 모금 위원장 등 온갖 직책을 맡아 수행해왔다. 노팅엄, 리즈, 옥스퍼드, 애버딘대학 등에서 강의도 했다. 그가 받은 연기상과 담당한 공적인 직책 목록만 해도 A4용지 2장을 훌쩍 넘긴다. 그리고 1988년의 커밍아웃이 있었다. 마거릿 대처 정부가 ‘섹션 28’ 입법으로 동성애의 공론화를 범죄로 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매켈런은 라디오에 출연했을 때 커밍아웃을 했다. 이후 게이인권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인권단체 스톤월을 공동 설립했다. 커밍아웃을 한 뒤 매켈런에 대한 화제는 당연하게도 성 정체성에 대한 문제에 집중되었다. “내가 게이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내가 게이일 뿐 아니라 배우라는 사실을 신문에 투고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할 정도였다. 커밍아웃, 커밍아웃, 커밍아웃. 내가 한 건 그것뿐이다. 묘비에다가 써넣기라도 해야겠군.” 2003년, 매켈런은 “올랜도 블룸에게 키스하고 싶다”는 농담을 했다.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블룸이 “나는 게이가 아니다. 난 여자친구가 있다”고 반응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매켈런이 보기에 이런 민감한 반응은 할리우드에서 남자 배우들이 단지 농담의 대상으로라도 게이문제에 얽히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동성애 혐오증을 드러내는 일일 뿐이다. 이성애자인 남성이라 해도 매력적이라면 연인으로 상상해보는 건 자유니까. “내가 게이라는 걸 알고서도 나를 연인으로 상상하는 여자들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갓 앤 몬스터>,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 1990년, 매켈런은 예술 공헌도를 인정받아 엘리자베스 여왕에게서 기사 작위를 받았다. 그때부터 연극 작품을 각색해 영화화하거나 영화에 출연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별의 여섯 단계>(1993)에 윌 스미스와 함께 출연한 것도, <섀도우>(1994)에 알렉 볼드윈과 출연한 것도 이즈음의 일이다. 무엇보다 직접 각본, 주연, 제작을 겸한 <리처드 3세>(1995)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엑스맨> 1, 2편을 연출한 브라이언 싱어를 만난 것은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1998)을 통해서였다. 싱어는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의 캐스팅을 위해 매켈런을 만난 자리에서, 그가 늙은 나치 역을 연기하기엔 너무 젊어 보인다고 털어놓았다. 싱어는 <콜드 컴포트 팜>이라는 영화에서 목사로 나온 배우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는데, 매켈런은 자신이 바로 그 배우라는 사실을 밝혔다. 싱어는 더이상 망설이지 않고 매켈런을 캐스팅했다. <엑스맨> 시리즈는 물론이고.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에서 매켈런은 나치였다는 사실을 숨기고 미국으로 이민와 평범하게 살아가는 커트 두샌더를 연기했다. 잊혀진 것 같던 과거가 이웃 소년의 집요한 호기심으로 하나씩 되살아나면서 영화는 점점 긴박한 심리스릴러로 옥죄어간다. 평가절하받은 싱어의 수작으로 평가받는 이 영화에서, 매켈런은 평범하고 인자해 보이는 얼굴 뒤에 숨은 사악한, 그리고 전쟁에 의해 파괴된 영혼의 뒷모습을 섬뜩하게 그려냈다. 같은 해에 만들어진 <갓 앤 몬스터>는 매켈런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려놓았다. <프랑켄슈타인> <프랑켄슈타인의 신부> <투명인간> 등을 만들어 30년대 공포영화의 거장으로 추앙받았던, 너무 이른 시기에 커밍아웃한 게이로 살았던 제임스 웨일의 이야기를 다룬 <갓 앤 몬스터>에서 매켈런은 웨일의 도플갱어 같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웨일은 전쟁터에서 만난 첫사랑의 죽음을 그저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과거를 곱씹으며 공포영화들을 잇따라 만들었다. 악몽을 팔아, 영혼을 팔아 그 자신이 괴물이 되면서. 매켈런은 인간의 내면에 끔찍하게 남은 전쟁의 상흔을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에서보다 깊고 선명하게 연기했다. 그때부터 전세계가 알고 있는 그의 필모그래피가 이어졌다. <엑스맨> 대본을 읽기 전까지 가장 최근에 읽은 코믹스라고는 35년전에 읽은 것뿐이었지만. <엑스맨>의 악의 축(영화를 보면 ‘정상인’들이야말로 악의 축이지만) 매그니토를 수락한 이유는 간단했다. 브라이언 싱어, 그리고 “악의 화신으로 말하면 나는 이미 연극 무대에서 위대한 악의 제왕들을 연기한 바 있다. 리처드 3세가 그랬고, <오셀로>의 이아고가 그랬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는 매그니토가 악당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옳다는 확신에는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나는 내가 연기하는 인물들을 윤리적 잣대로 평가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안 매켈런의 연기세계 [2]

<반지의 제왕> 간달프로 전세계적 인기 얻어 이쯤 되면 <반지의 제왕> 간달프 캐스팅을 위해 피터 잭슨과 프랜 월시가 직접 런던으로 그를 찾아간 일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반지의 제왕>을 읽어보셨나요?”라는 질문이 가장 지겹다고 할 정도로 <반지의 제왕> 3부작은 그에게 엄청난 인기를 안겼고, 또한 두통거리가 되었다. 호빗들을 수호하는 간달프를 위해 매켈런은 원작자 톨킨이 직접 읽은 <반지의 제왕> 녹음을 들었다. “톨킨의 낭독을 듣고 연극적으로, 연기적으로 자극을 받았다. 리드미컬하고 유머러스했으며 인물의 성격이 확실히 드러났다. 의심할 것 없이 간달프는 톨킨 자신에게서 시작된 인물이다. 내 생각엔 프로도와 아라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이만 어렸다면 여행을 떠나 그 여정에서 변화를 겪고 성숙해지는 프로도를 연기해보고 싶었지만,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간달프가 되었다. 호비튼의 앙증맞은 집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키의 간달프가 서까래에 머리를 부딪히는 설정은 매켈런의 고민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3부작을 1년에 한편씩 개봉하기로 한 전략은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사람들이 1년 전에 뭘 봤는지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화가 박스오피스에서 이렇게 엄청난 성공을 거두리라는 사실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DVD와 비디오를 살 것이라는 사실도 예상하지 못했다. 개봉 방식 때문에 시리즈가 망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매우 기쁘다.” 간달프의 얼굴은 뉴질랜드의 화폐에 새겨졌고, <반지의 제왕> 시사회가 열리던 날 행사장에는 10만명의 군중이 운집했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도 안 한다. “나는 회색 수염을 기른 마법사로는 캐스팅된다. 하지만 커밍아웃을 한 젊은 게이 연기자는 멜로영화에서 남자주인공으로 캐스팅되지 못한다.” 앤서니 홉킨스보다 출연료가 낮은데다가, 홉킨스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그 액수의 돈에 그런 긴 시간을 뉴질랜드에서 있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캐스팅된 건 아닐까, 하는 말을 하는 데도 망설이지 않는다. 동성애자 문제에 적극적 발언 더이상 잘할 수 없을 정도로 매켈런은 동성애자 문제에 대한 발언에 적극적이다. <엑스맨: 최후의 전쟁>과 <다빈치 코드>로 올 칸영화제에 참석한 그는 유머러스한 말솜씨 뒤에 분명한 뼈를 심었다. “동성애자로 사는 것은 돌연변이로 사는 것과 같다. 동성애가 ‘나을’수 있다고 생각하는 보수적인 시선과 <엑스맨3: 최후의 전쟁>에서 돌연변이를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선은 같다. 정상으로 돌아간다고? <엑스맨> 시리즈는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냉대받고 열등하게 취급받는 젊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고 생각한다.” 예수가 결혼했다는 <다빈치 코드>의 내용을 믿느냐는 질문에는 “예수가 결혼해서 자손을 낳았다는 사실을 기독교인들이 행복한 마음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며, 안 그래도 게이문제를 가지고 까탈스럽게 구는 바티칸인데, 결혼해서 애까지 낳았다니 예수가 게이가 아니라는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겠는가.” 전성기를 누리는 매켈런은 행복할까. 연기를 하면서 여전히 즐거울까. 68살이라는 나이 때문에 위축되지는 않을까. <갓 앤 몬스터>에서 그가 연기했던 제임스 웨일이 자살한 나이까지 이제 1년이 남았지만 매켈런은 앞으로 10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니며 일하고, 대사를 암기하고, 다리에 힘이 빠져 넘어지지 않을 수 있는 정도의 시간이 10년. 모든 역할은 슬픔을 남긴다. 쉬운 일은 아무것도 없다. 깊은 걱정과 불안은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좀더 기운차다면, 목선이 점점 늘어지지 않는다면 더욱 좋겠지만. 게이 노인이 되어가는 김에 게이를 위한 실버타운을 만들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한다. “게이 노인이라면 여자 간호사보다는 남자 간호사를 더 선호할 테니까.” <가디언>은 그의 연기를 칭송하며 “이안 매켈런은 국보다”라고 했지만, 유머감각도 저 정도면 국보급이다. 자서전을 쓸 생각이 없는 매켈런은 연기생활을 하는 동안 모은 자료들을 공개하고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홈페이지(www.mckellen.com)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직접 글을 올리는 일도 많다. “모든 것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나이는 몸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매켈런은 늙지 않는다 해도 죽게 되어 있는 인간이고, 게다가 ‘앞으로 10년’이라는 두려운 카운트다운을 눈앞에 두고 있다. 2007년에는 트레버 넌과 다시 한번 뭉쳐서 <리어왕>을 무대에 올릴 계획이고, <엑스맨> 시리즈의 스핀오프인 <매그니토>의 출연도 내정되어 있다.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몇살로 느끼느냐는 질문에 대한 매켈런의 대답은 유머러스하고 또한 의미심장하다. “영화에서 그런 질문을 받는 장면이 있었다. 10살이라고 대답했었지. 흠, 그렇게 어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다만, 모든 일이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겨우 절반쯤 온 것 같다. 끝이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 그 끝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는 웃었다. “안경을 안 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군.” 이안 매켈런의 글과 말 “나는 액션 피겨가 좋다!” 2002년 3월16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오프닝 중 “아카데미 수상식을 기다리며 LA에서 햇볕이나 쬐고 있을 수도 있었고, 런던에 사는 95살 먹은 새어머니를 만나고 있을 수도 있었다. 뭐, 자주 찾아가지도 않지만. 아니면 남자친구와 뉴질랜드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난 지금 여기 있다. 뉴욕에서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를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허영 때문에 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쇼의 출연진들이 정말 좋은 건 사실이다. 특히 지미 팰론. 정말 귀엽지 않은가? 보통 쇼가 끝날 때 감사인사를 하지만, 오늘은 그 즈음엔 팰론을 내 옆에 앉혀두어야 하니까 지금 감사인사를 해야지. (웃음) 그 많은 고전들을 소화한 뒤 매기 스미스가 해리 포터 레이디로 유명해지리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앤서니 홉킨스는 인간의 얼굴을 물어뜯는 걸로 가장 잘 알려져 있고 말이지. 나는 액션 피겨로 만들어져 팔리고 있다! 난 액션 피겨가 좋다. 하루 종일 가지고 놀기도 하는걸. (웃음)” “레이건과의 관계에 대처의 미남에 대한 애호가 작용했다” 2004년 6월6일, 2004년 6월5일 사망한 로널드 레이건에 대한 글 중 “레이건이 죽음은 맞은 집은 캘리포니아에 있다. 아마도 그의 마음은 할리우드를 떠난 적이 없을 것이다. 메릴 스트립이 1984년에 내게 얘기하기로는, 백악관에서 전화를 받은 적이 몇번 된다고 했다. 레이건이 소련문제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고. ‘누가 실세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대처가 영국배우협회에 그런 전화를 거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중략) 대처와 레이건에 대한 많은 글들이 있다. 상당히 유사했던 경제정책과 반공산주의에 대한 열정에 대한 많은 글이. 하지만 한 가지 빠진 것은 내가 목격한 바 있는 대처의 잘생긴 남자에 대한 애호다. 대처가 여성이라는 점, 그리고 레이건이 영화 스타였다는 점은 정치적 성공이라는 면보다는 둘의 우호적인 관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분명한 관계가 있는 일이니까.” “커밍하웃하지 말라는데, 정말 거지 같은 노릇이다” 2006년, 베를린영화제 평생공로상 수상 소감 중 “할리우드는 매우 보수적인 곳이다. 미국 남자 배우가 게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기란 매우, 매우, 매우 어려운 일이다. 여배우가 레즈비언임을 밝히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그 사실이 매우 신경 쓰인다. 같은 미국이라 해도 브로드웨이 무대에 서는 배우들이 성 정체성 문제에 대해 솔직하게 열린 자세를 가질 수 있는 것과 대조되기 때문이다. 커밍아웃한 스튜디오 간부들조차 배우들에게는 커밍아웃하지 말라고 한다. 관객이 싫어할 것이고, 일을 잃게 될 것이라고. 정말 거지 같은 노릇이다.”

교육용 동물다큐멘터리, <얼음왕국: 북극의 여름이야기>

동물다큐멘터리를 제대로 찍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동물 고유의 삶을 인간의 틀로 해석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생존을 보여주는 일은 가능할까? 그것도 에 나오는 야생을 잃어버린, 반은 이미 인간이나 다름없는 동물들이 아니라, 아프리카 초원이나 북극과 같은 곳에 사는 생존본능이 투철한 동물들의 경우라면? <얼음왕국: 북극의 여름이야기>는 북극에 사는 각종 동물들이 그 사계를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자연다큐멘터리다. 이 다큐멘터리는 3년여에 걸친 제작기간을 통해 계절의 순환에 따른 북극 생태계의 변화를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이를테면 북극곰은 눈속에 구멍을 파서 그 안에서 새끼를 낳고 젖을 물리며 겨울을 난다. 그리고 봄이 되면 새끼들을 끌고 사냥에 나서는데, 이 봄은 북극곰의 먹이인 바다표범 역시 새끼를 낳는 계절이다. 그들은 서로 쫓고 도망가면서 생존을 이어가지만, 얼음이 녹는 여름이 되면 이들의 활동력은 저하하고 먹잇감을 찾기는 그만큼 어려워진다. 순록들 역시 여름을 피해 5만 마리 이상이 떼를 지어 북으로 떠난다. 그 광경이 장관이긴 하지만, 이러한 생존방식은 텔레비전을 통해 숱하게 보아온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다. 그러므로 북극곰과 순록의 ‘이야기’보다는 차라리 ‘일각돌고래’, ‘사향소’, ‘벨루가 돌고래’, ‘북극 오리’, ‘바다코끼리’ 등과 같은 낯선 존재들의 생김새가 흥미롭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이 다큐멘터리의 문제는 (수입의 과정에서 덧붙여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의 목소리다. 동물들의 소리는 그 소리를 해석하는 인간의 목소리에 의해 왜곡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동물들의 행동의 이유와 과정을 설명해주는 손범수 아저씨의 친절한 내레이션과 북극곰과 표범, 순록 등에게 입혀진 성우의 목소리는 다큐멘터리의 현실성을 떨어뜨린다. 북극의 생태계를 지탱하는 적자생존의 원칙, 야생의 생존본능은 인간이 설명하는 모성애 속에서 순화된다. 아무리 이 영화가 지구 온난화를 경고하고 북극의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교육용으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인간을 교육시키기 위해 인간화된 동물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받아들이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