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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업론은 비만, 영화문화는 발육부진
한국영화에 관한 담론을 지배해온 문화산업론은 인터넷 비지니스의 활황과 더불어, 더욱 기세를 떨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영화문화는 어떤 발전을 이루었는가. 미진한 미학적 성취, 진정한 시네마테크와 필름아카이브의 부재, 대학 영화관련 학과의 과다와 영화학의 부진이 빚는 극심한 불균형 등 한국 영화문화의 왜소화를 초래한 주범은 혹시 문화산업론이 아닌가.
김 | 한국영화계를 과연 문화산업이 지배하고 있는지부터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한국영화가 자본주의적 사고를 하기 시작한 것도 90년대라고 생각한다. 그 이전 제작시스템은 식민지 반봉건사회 비슷한 것 아니었나 싶다. 때론 국가독점자본주의 성격도 있었지만. 반면 지금의 한국영화 현실은 문화적인 양상에서마저도, 후기 자본주의적 모습이 보인다. 자본주의적인 사고를 한다는 것이 꼭 그 산업이 완숙한 단계에 진입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지금 한국영화의 문제를 문화산업론으로 파악하는 것은
김홍준·정성일의 종횡4담 [2] - 문화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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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영화광의 근심, 21세기 영화의 그 우울한 스펙터클
선도 교사들의 눈을 피해, 모자를 눌러쓰고 극장 한켠에서 숨죽인 채 은막에 투사되는 빛의 향연에 넋을 잃었던 두 고등학생이 있었다. 두 사람은 어느 극장에서 스치듯 비켜가기도 했고, 독일문화원에서 얼굴을 마주보기도 했다. 그의 한 사람은 구회영이란 필명의 영화평론가 그리고 본명의 감독이 됐고, 영상원 교수, 부천영화제 집행위원장, 영화진흥위원이란 감투를 한꺼번에 쓰게 됐다. 다른 한 사람은 <키노> 편집장과 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를 거쳐 며칠 전 백수, 그러니까 순수 평론가가 됐다.
김홍준과 정성일.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건, 한국에 영화의 시대가 막 도래했을 때, 그리고 그후로도 오랫동안, 그들이 관객의 곁에서 영화의 아찔한 매혹을, 영화의 아득한 깊이를, 이전엔 들어보지 못한 섬세하고 세련된 언어로 들려준, 관객의 친구, 영화의 친구였기 때문이다.
많은 감투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그들은 영
김홍준·정성일의 종횡4담 [1]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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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트 어웨이>가 또 2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톰 행크스 혼자 한 시간 이상을 떠들고, 혼자 뛰어다니는 ‘무인도영화’가 그만한 돈을 벌어들일 영화가 되리라고는 쉽게 상상할 수가 없다. 아무리 톰 행크스 주연에,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러나 로버트 저메키스는 <백 투 더 퓨처> 이후 할리우드의 주류에서 조금씩 엇나간 작품들로 승부해왔다. 지독하게 씁쓸한 <죽어야 사는 여자>나 변형된 미국 현대사를 그린 <포레스트 검프> 등등. 모든 작품이 성공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포레스트 검프> 이후 로버트 저메키스는 만드는 작품들마다 흥행은 물론 화제를 모으는 데도 성공했다. 로버트 저메키스는 스필버그처럼 거창하게 떠들지는 않지만, 일관되게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온 ‘작가’로 부족하지 않다. 물론 <왓 라이즈 비니스>처럼, 그냥 기분풀이, 또는 테크닉 실험용으로 만드는 아무 의미없는 ‘상업영화’가 필모그래피
[저메키스]오락과 예술 사이, 환상의 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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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영화는 지금 새로운 변화의 물결 속에 있다. 80년대 소위 5세대영화가 미학의 반란을 꾀했다면, 90년대 중국영화는 또다른 세대의 등장과 더불어 영화산업 격변기의 와중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올해가 중국영화산업의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바로 중국이 WTO 가입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WTO에 가입한 이후에 영화산업이 어떻게 변할지 쉽게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점진적이나마 개방의 길로 나아가리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최근 중국 정부가 외화시장 개방과 해외투자 유치 등과 같은 개방적인 정책을 천명했기 때문이다.사실, 그동안 중국영화산업을 지탱해왔던 스튜디오 시스템은 이미 90년대 초부터 와해상태에 있었다. 그리고 그 시발점은 70년대부터 시작된 덩샤오핑의 개방정책이었다. 국영 스튜디오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점차 줄어들었고 스튜디오들은 새로운 생존전략을 짜야만 했다. 이를테면 시안스튜디오의 경우 1988년까지 매년 10편 정도의 영화를 제작하였으나, 98년에는 5
[로우예]인디, 환한 얼굴로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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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중국 상하이에서 연극배우의 아들로 태어나다. 어린 시절을 무대 뒤 분장실에서 보내며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1985년 베이징 영화아카데미에 입학하다.1989년 아카데미 졸업 뒤 TV프로그램과 CF를 제작하며 살아가다.1993년 <주말연인>(周末情人)을 만들면서 영화감독 데뷔하다.1996년 <주말연인>으로 제45회 만하임-하이델베르크영화제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상(최우수 감독상) 수상. 이로써 세계 각국의 비평가들에게 주목을 받지만 여전히 가난하게 살다.1997년 중국TV로부터 ‘슈퍼시티 프로젝트’(Super city Project)를 제안받다. 처음엔 돈을 벌기 위해 제안을 승낙, 이후 독자적인 제작의 기회임을 깨닫고 다양한 영화적 시도를 해보다.1998년 ‘슈퍼시티 프로젝트’의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프로듀서들을 모아 독립영화제작사 ‘드림 팩토리’ 설립, 장편 극영화 <수쥬> 제작에 들어가다. 제1회 부산영화제 PPP <패션게임>
로우예(Lou ye)감독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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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진출 원년’인 지난해 한국영화가 거둬들인 성과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한국영화로는 최초로 칸영화제 본선에 오른 뒤 <춘향뎐>은 유럽 평단을 중심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거짓말> 등과 함께 미국에 나란히 배급되기도 했다. <쉬리>는 일본에서 1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는 대성공을 거두는 성과를 올렸다.한국영화계의 올해 최고 화두 역시 해외진출일 것. 이제 해외진출은 ‘하면 좋은 것’에서 천정부지로 치솟는 제작비를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됐다. 이같은 영화계의 바람이 이뤄지기 위해서라도 해외 현지에서 한국영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귀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뉴욕, LA, 도쿄, 파리, 홍콩 등에서 보내온 한국영화의 잠재력, 시장성, 예술성 등에 관한 보고서를 찬찬히 살펴보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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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특급, 질.풍.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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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세계가 바라본 한국영화의 얼굴국제무대에서 아시아영화의 전반적인 강세와 더불어 그간 중국, 홍콩, 일본 등에 집중되었던 미국영화계의 관심이 다른 아시아 국가들로 확대되고 있으며 그 변화의 중심에 한국영화가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뉴욕의 경우 2000년 하반기에만 <거짓말> <춘향뎐>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한국영화 3편이 연달아 개봉을 했고 이에 맞춰 뉴욕에서 발행되는 정평있는 영화잡지 <필름 코멘트>는 2001년 신년호에서 ‘왕국의 도래’라는 제목으로 무려 7페이지에 달하는 한국영화 특집을 게재하기도 했다. 이제 <빌리지 보이스>나 <뉴욕타임스> 같은 유력지의 지면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기사를 발견하는 것은 더이상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한국영화에 대한 미국 시장의 관심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비평가들은 현재 아시아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영화들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믿고 있는데 이러한 성
[뉴욕]춘향, 뉴욕 품에 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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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코멘트> 신년호 특집으로 한국영화를 비중있게 다루었다.=지금은 모두가 한국영화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한국영화는 최근 수년간의 대발견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국영화는 서부의 태평양 연안지역으로 좀더 성공적으로 진출한 것 같다. 뉴욕은 좀 다르다. 한국영화에 대해서 크게 흥미로워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김기영 감독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제2회 부산영화제에서 회고전이 있은 뒤로 다른 미국의 많은 도시에서 행사가 치러졌지만 뉴욕에서는 아직 기회가 없었다. 우리가 이런 경향을 바꿀 수 있지 않겠나. 사실은 좀더 긴 기사를 생각했다. 한국 특집은 앞으로 우리가 다룰 다른 나라들에 대한 기사의 모델 같은 것이다.-최근 한국영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사실 지금까지의 한국영화는 참 보기 힘든 영화였다. 이제까지 본 작품도 임권택 감독의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대부분 최근 젊은 감독들의 작품들이다. 이것은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가급적 비디오보다는 필름으로 영화를 감상
[뉴욕]자국에서의 성공에 더 힘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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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코멘트> 신년호 특집으로 한국영화를 비중있게 다루었다.=지금은 모두가 한국영화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한국영화는 최근 수년간의 대발견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국영화는 서부의 태평양 연안지역으로 좀더 성공적으로 진출한 것 같다. 뉴욕은 좀 다르다. 한국영화에 대해서 크게 흥미로워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김기영 감독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제2회 부산영화제에서 회고전이 있은 뒤로 다른 미국의 많은 도시에서 행사가 치러졌지만 뉴욕에서는 아직 기회가 없었다. 우리가 이런 경향을 바꿀 수 있지 않겠나. 사실은 좀더 긴 기사를 생각했다. 한국 특집은 앞으로 우리가 다룰 다른 나라들에 대한 기사의 모델 같은 것이다.-최근 한국영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사실 지금까지의 한국영화는 참 보기 힘든 영화였다. 이제까지 본 작품도 임권택 감독의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대부분 최근 젊은 감독들의 작품들이다. 이것은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가급적 비디오보다는 필름으로 영화를 감상
자국에서의 성공에 더 힘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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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세계가 바라본 한국영화의 얼굴지금까지 일본에서 수많은 한국영화가 개봉돼 왔지만 2000년 1월22일 개봉한 <쉬리>는 그때까지 나온 어느 영화도 준 적 없는 충격을 일본영화계에 던져줬다.관객동원 수도 100만명을 넘어섰고 당시까지 아시아영화의 한 분야 정도로 생각됐던 한국영화의 범위도 넓어진 것으로 보여, 일본관객은 할리우드 메이저와 어깨를 겨누는 작품이 이웃나라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문화정보지인 <피아>가 매년 실시하는 독자 인기투표 영화부문에서 <그린마일> <미션 임파서블2> <화이트 아웃> 다음으로 4위에 올랐던 것을 봐도 이 작품이 일본의 아시아 영화팬을 넘어서 폭넓은 관객의 지지를 모은 것은 분명하다. 한국영화를 한번도 본 적 없는 많은 관객이 극장으로 발길을 옮겼던 것이다.이같은 성공을 목격한 배급사들이 차례로 한국영화를 공개한 2000년 가을에는 ‘한국영화 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한국영
[도쿄]스타를 향해 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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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세계가 바라본 한국영화의 얼굴한국영화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시장이 폐쇄적인 중국 본토에서는 최근 영화제나 토론회 등을 통해 소개된 한국영화들이 주목받고 있으며, 특히 아시아영화산업의 보루와 같은 홍콩에서 그 현상은 두드러진다. 만나는 사람마다 최근의 한국영화의 성장세를 언급하며 산업적 가능성에 높은 점수를 준다. 왜일까? 그 공은 우선 <쉬리>에 돌려야 할 것 같다. 99년 브로드웨이를 통해 배급된 <쉬리>는 600만 홍콩달러를 거두면서 한국영화의 존재를 알리는 데 기여를 했다. 비록 이러한 수치는 할리우드 대작의 흥행수입에는 미치지 못한다 할지라도, 아시아의 영화산업이 위축되고 있는 객관적인 상황과 그동안의 한국영화의 해외배급을 고려해본다면 대단한 약진임에 분명하다. 실제로 90년대 초반에 비해 전체 흥행수입이 3분의 1 이하로 줄어들며 9억 홍콩달러에 불과한 박스오피스를 기록(99년)함으로써 그 하강곡선이 급격하게 이어지던 당시 홍
[홍콩]전략적으로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