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포인트>는 저주받은 땅 알포인트로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병사들의 이야기다. 식민지 시대 원한에 사로잡힌 병사들은 죽어서도 구조를 요청하고, 비명 섞인 그 무전은 또 다른 희생자들을 불러들인다. 슬픔과 원한과 진한 핏자국이 떠도는 전쟁터. <텔미썸딩> <하얀 전쟁>의 작가 공수창은 자기가 직접 쓴 시나리오를 들고 그곳으로 떠나 베트콩만큼이나 완강하게 저항하는 캄보디아 땅과 싸웠다. 15년 동안 문자로 영화를 대해온 사람. 좋아하는 메이저 리그 경기도 못 보고 우기와 건기와 태풍을 두루 겪은 공수창 감독은 낯설기만 한 감독 의자로 서둘러 옮겨 앉았지만, 올해 가장 뛰어난 공포영화라는 결과로 보상을 받았다. 전쟁호러 <알포인트>는 어떻게 태어나고 자라서 세상에 나왔을까. 공수창 감독은 4년에 가까운 그 과정을 들려주었고, 촬영현장에서 이십년 만에 쓴 일기도 함께 보내왔다. /편집자
공수창 감독은 아직 앙코르와트를 보지 못했다. 석달 넘
전쟁호러 <알포인트> 이야기 [1] - 40도 넘는 열기와 빽빽한 밀림
-
△ 동료가 크레바스 아래로 추락했지만 구할 틈이 없다. 살아남은 자들 또한 언제나 죽음 앞에 노출되어 있다.
<남극일기>는 어떤 영화?
도달불능점을 향한 한국 탐험대원들의 여정
남위 82’08분 동경 54’58분에 위치한 도달불능점(到達不能粘). 남극대륙에서 가장 먼 지점으로 해발 3700m, 최저기온이 무려 영하 80도에 이른다. 1958년 소련 탐험대가 단 한 차례 정복한 것 외엔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은 이곳에 닿기 위해 최도형 대장l송강호l을 위시한 6명의 한국 탐험대가 세계 최초 무보급 횡단에 나선다. 탐험 10일째.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반에 성공한 최도형 대장에게 끌려 이번 횡단에 합류한 민재l유지태l는 크레바스에 빠지는 위기에 처하지만 노련한 리더 최도형과 동료들의 도움으로 살아난다. 매일 죽음과 대면할수록 팀워크는 탄탄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탐험 21일째. 최도형 일행은 행군 도중 80여년 전 도달불능점에 도전했던 영국 탐험대가 남긴 남극일기를 발견
<남극일기> 뉴질랜드 촬영현장 [3] - 감독, 배우 인터뷰
-
맑다가도 눈보라가 몰아치는 변덕스러운 날씨
오전 10시가 넘자 태양은 더욱 맹렬하게 타오른다. 취재진 중 몇몇은 그때서야 허둥지둥 스탭들에게 선크림을 빌려 바르지만 이미 늦었다. 안면은 고루, 그리고 살짝 익어 꺼끌꺼끌하다. “그래도 지금까지 촬영 중에 오늘이 가장 날씨가 좋은데요.” 통신담당 대원 성훈(윤제문)이 얼음구덩이인 크레바스에 빠지자 그를 구하기 위해 막내 민재(유지태)와 식사담당 근찬(김경익)이 달려가는 장면 세팅을 지시해놓고서 임필성 감독이 뒤늦은 인사를 건넨다. 고양이를 너무 무서워해서 장난으로 고양이 소리만 내도 벌벌 떤다 하고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푼다고 타박받는 그이지만, 촬영장에서만큼은 판단이 빠르고 냉정한 모습을 잃지 않는다. 제작에 들어가기까지 무려 5년의 시간을 <남극일기>에 바쳤던 탓일까. “처음인데 신인감독 같지가 않다. 상황이 힘들다 해서 대충 넘어가는 컷이 하나도 없다”는 게 송강호의 말이다.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는 정정훈 촬영감독
<남극일기> 뉴질랜드 촬영현장 [2]
-
뉴질랜드행 비행기에 올라 제작사에서 나눠준 보도자료를 뒤적이다 임필성 감독이 쓴 감독일지가 거기에 들어 있는 걸 봤다. 현지 로케이션 촬영 준비에 코피 터지도록 바쁜 임 감독을 채근해 얻어낸 글이었다(<씨네21> 458호). 당시 <씨네21>이 통보한 마감 시한에 맞추기 위해 임 감독은 회의가 끝난 다음에도 집에 귀가하지도 못하고 제작사인 싸이더스에서 몰래 숨어 자판과 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한다. 어쨌든 그가 꼭두새벽에 보내온 글은 절절했다. 거기엔 버릴 수 없는 <남극일기> 시나리오를 들고서 제작사를 전전하며 행군했던 5년이 담겨 있었다. 극적으로 둥지를 찾은 뒤 뉴질랜드 현지 촬영 기회를 얻은 그 일지의 마지막은 흡사 도달불능점에 닿아야만 하는 극중 최도형 대장의 심정과 비슷했다. “이 괴물 같은 영화에 숨을 쉬게 하고 싶었다. 이제 모두의 힘으로 진짜 남극일기가 쓰여지기 시작했다. 이 전투에서 질 수 없다. 괴물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남극일기> 뉴질랜드 촬영현장 [1]
-
-
박찬욱의 세계에 떨어진 이상한 나라의 강혜정. 카드의 여왕 따위가 ‘참수!’를 외친다면 그냥 다가가 여왕 따위 ‘갈아’버릴 테세다. 피아노 줄에 묶이고 손가락을 잘린 채 독하게 눈을 부릅뜨고 “죽여! 죽여버리란 말이야!”를 제대로 외칠 줄 아는 여배우가 그리 흔하던가. 그런데. 솔직히 말할까. 실례가 될지 모르지만 인간 강혜정의 첫인상은 그냥 ‘소녀’였다. 입을 삐죽 내밀고 예쁘게 웃는데, 영화 속에서 보이던 아우라가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정말로 실망할 뻔했다!” 그런데 그것도 다 오해였다. 이 무서운 여자/소녀/여인/아이는 또 한번 자신을 뒤집어엎는다. 선량한 눈으로 웃고는 있지만 이거 왠지 좀 내숭 같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뷰를 해가면서 슬슬 그 당돌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제야 영화 속에서 강혜정이라는 배우가 독하게 부릅뜨고 있던 그 눈빛이 보이고 있었다.
-<쓰리, 몬스터>의 피아노 줄에 묶여 있는 연기. 얼마나 오래 묶여 있었나.
=대강 한
<쓰리, 몬스터>의 박찬욱·강혜정 [3] - 강혜정
-
본전도 못할까봐. 그게 제일 큰 공포지
군말없는 감독 박찬욱
건방지고 오만하다? 오해다. 솔직하며 여유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착하다. “죽겠어요. 3편을 동시에 하는 셈이니. <쓰리, 몬스터> 후반 작업, <친절한 금자씨> 시나리오 작업, 네장으로 나오는 <올드보이> DVD 확장판 작업까지.” 그는 좀 봐달라고 했다. 파병반대 영화인 선언 직후, 그에게 파병반대에 관한 원고를 한 페이지만 써달라고 청탁하자 정작 그가 사정을 봐달라고 했다. 다음날, 다시 전화를 걸자마자 “생각해봤는데, 도저히 안 되겠어요. 미안해요” 한다. 다른 감독들이 다들 못 쓰겠다고 급박한 상황을 알렸더니 대번에 달라진다. “그래요? 그럼 할 수 없네.” 새벽 5시에 원고를 넣어주면서 두 문장을 첨가했다. “원고 보냅니다. 미워요.” 감독과 배우를 표지에 나란히 등장시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웬만해선 구도가 잘 안 나온다. ‘안타까운’ 마음에 양해도 구하지 않
<쓰리, 몬스터>의 박찬욱·강혜정 [2] - 박찬욱
-
왜 궁금했을까. 유영철의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박찬욱 감독의 생각이. 그런데 그도 궁금해했다. “그가 그려놓은 그림을 보고 악마적 범죄자와 예술가의 관계가 궁금했다. 그런 경우가 많이 있지 않나.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긴 했는데, 그러려면 그에 대한 조사가 많이 필요할 거다. 아직은 호기심만 갖고 있는 정도다.”
물론, 박찬욱의 <쓰리, 몬스터>는 실제가 아닌 상상의 산물이다. 그렇지만 인간들 위를 배회하는 악마성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현실의 조건과 무관하지 않다. 게다가 영화감독이 만든 영화감독과 엑스트라의 목숨 건 대결 이야기가 아닌가. 그의 영화들이 고약하다고들 한다. <쓰리, 몬스터>에서 인형이 돼버린 인질의 처지가 그렇다. 감독의 아내는 온몸을 피아노 줄로 꽁꽁 묶인 채 끔찍한 고문을 당한다. 손가락이 잘리고, 잘려나간 손가락은 또 한번 수난을 당한다. 박찬욱 감독의 현실은 이와 정반대다. 그는 아내의 조언에 자신이 얼마나 귀기울이며 아내
<쓰리, 몬스터>의 박찬욱·강혜정 [1]
-
얼마 전 <혈의 누> 촬영을 시작한 김대승 감독은 온몸이 구릿빛으로 그을어 있었다. 3년 전, <번지점프를 하다>로 세상에 있을 것 같지 않은 사랑을 들려주었던 그는, 탐욕이 빚어낸 지옥 속에서 1년 넘는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매우 무서운 영화로 만들고 싶은” 역사 스릴러 <혈의 누>. 김대승 감독은, 향수가 따뜻하게 내려앉은 80년대와 17년 만에 돌아온 연인을 눈물로 맞는 순정으로부터, 왜 그토록 멀리 떨어져 있는 영화로 몸을 옮긴 것일까. 원한과 죽음으로 뒤덮인 섬 동화도에서 잠깐 돌아온 그는, 스스로 ‘멜로영화 감독’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을 낚아챈 영화 <혈의 누>의 청사진을 펼쳐보였다.
실마리 - 탐욕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았다
김대승 감독은 공포영화나 연쇄살인이 나오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무서운 장면은 견디고 보지를 못하는 천성 탓이다. 그러나 김성제 프로듀서가 건네준 <혈의 누> 시나리오는 그 자체로 완성도가
두둥! 신작 프로젝트 5인 5색 [5] - 김대승 감독의 <혈의 누>
-
장항준 감독 영화에 폼나는 인생들은 안 나온다. 라이터와 목숨을 바꾸는 백수(<라이터를 켜라>)의 무모함이나, 남이 해준 이야기를 받아먹고 사는 삼류 대필 작가(<불어라 봄바람>)의 뻔뻔함 정도는 갖춰야 주인공을 꿰찰 수 있다. 그렇담, 이번에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긴 ‘겉저리 인생’은 누구일까. 얼마나 꾀죄죄하고 후줄근한 인생이기에, 한달 전까지만 해도 <깊은 산 먼 친척>이라는 구미호 이야기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그를 변심케 만들었을까.
전개도 - ‘실화’엔 역시 뭉클한 뭔가가
씨네2000 제작 스탭이었던 신도영씨가 자작 시나리오를 들고 왔을 때, 장항준 감독은 “이 양반이 왜 이런 소재 영화를 내게 들고 왔지” 싶었다. 수중에 들어오는 대부분의 시나리오가 유행 타는 코미디 일색. 그런데 1950년대라는 낯선 시대가 강하게 드러나는 드라마의 연출자로 자신을 선택한 게 아무래도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 아닌가’ 했던 것이다. “그날 반신욕하면서
두둥! 신작 프로젝트 5인 5색 [4] - 장항준 감독의 <꿈의 시작>
-
“<품행제로> 끝내고 1년 정도 빈둥거렸더니 노는 게 지겹고 돈도 떨어지더라. 게다가 영화 잘 봤다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30대 마초 아저씨들뿐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엔 사랑 이야길 쓰자. 그러면 우아하고 교양 있는 여성 팬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웃음) 현실적인(?) 이유로 차기작 구상에 시동을 건 뒤, 조근식 감독은 한동안 제작사인 KM컬쳐에 “멜로영화를 쓰고 있다”고만 통보했다. 제목조차 불문에 붙였다. 지금 와서 털어놓지만 당시 그가 쓰던 시나리오의 제목은 <천재소년과 척척박사>. <품행제로>의 원제였던 <명랑만화와 권법소년>처럼, 제작사가 들으면 ‘뜨악’할 이름을 가진 “서늘한 느낌의 러브스토리”였다고 그는 전한다. 그렇다면 연내에 제작에 들어간다고 알려진 조 감독의 신작 멜로영화가 바로 이 작품?
실마리 - 따뜻한 온기+칙칙한 감수성
비밀리에 <천재소년과 척척박사>의 시나리오 작업을 진행하던 도중 그는 <
두둥! 신작 프로젝트 5인 5색 [3] - 조근식 감독의 <여름 이야기>
-
<고양이를 부탁해>가 개봉됐을 때, 정재은 감독은 "여자아이들이 주인공인 성장영화를 만든 여성감독"이었다. 정리하기를 좋아하는 것이 언론의 속성이라지만, 영화를 만드는 감독을 타고난 성(性)으로 구분짓고, 한 영화를 그저 ’성장’이라는 수식어를 통해 단정짓는 단순함은 그에게 있어 사실 지루한 것이었다. <고양이…> 이후 2년 반. 정재은 감독은 약간의 휴식을 취했고, <여섯개의 시선>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그남자의 사정>을 연출했다. 우연히 관심을 가지게 된 소재를 가지고 시작한 그의 두번째 장편이 구체적 제작공정에 들어선 것은 지난 6월. 어그레시브 인라인 스케이트에 미친 한 무리의 젊은이들의 이야기인 <태풍태양>의 크랭크인은 이제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 물론 이번에도 정감독은 처음으로 남자들을 주인공으로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사실 그가 만든 단편영화 중에는 남자가 주인공인 영화도 많다), 그리고 또다시 성장영화를 찍게 된
두둥! 신작 프로젝트 5인 5색 [2] - 정재은 감독의 <태풍태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