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네21>의 정씨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즐겨보지 않는다. 오래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인가 하는 긴 제목의 단막극을 보고 대낮에 방바닥에 퍼질러 앉아 펑펑 운 적이 있지만, 그래서 이후 그 작가의 히트작들을 가끔 보면서 달동네 뒷골목의 사랑에 눈을 돌릴 줄 아는 사람이라는 공감을 하긴 했지만, 친구들의 부지런한 칭찬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은 지루하기만 했다. 어느 날인가는 홀로 잠실야구장에 앉아 김밥을 우겨먹으며 야구를 구경하다, 치어리더 중에 낯익은 얼굴 한명이 끼어 있는 걸 보고는 ‘중학교 동창이었나’ 기억을 더듬던 중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순박하게 생긴 아저씨가 연출하는 <네 멋대로 해라>의 여주인공이라는 걸 알게 됐고, 그뒤로 혹시 텔레비전에 내 얼굴도 나오지는 않았을까 궁금해서 챙겨보기 시작한 적은 있지만, 그리고 재미있다고는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그 드라마를 보기 위해 시간 맞춰 집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못 봐서
‘럭셔리 멜로’ <파리의 연인> 열풍 분석
-
나는 알코올중독자입니다.
한가할 땐, 술을 마십니다. 바쁠 땐, 한숨 돌리려고 술을 마십니다. 밥을 먹다가도 찬거리가 안주될 성싶으면 술을 마십니다. 일을 하면서도, 일이 안 돼서 술을 마시고, 일이 잘 돼서 술을 마십니다. 술은 내 마음을 지배합니다. 술은 마음의 고향입니다. 술 없으면 난 죽을지도 모릅니다. 또 술 생각이 납니다.
술에서 깨어나면 두통과 위통과 복통과 근육통으로 벌레처럼 바닥을 기어다닙니다. 기억이 남습니다. 술 때문에 쓸데없이 아무한테나 전화를 했고, 술 때문에 되도 않는 말로 우겨댔고, 술 때문에 넘어져 다리를 다쳤고…. 그 나쁜 기억이 싫어서, 또 술 먹습니다. 기억나지 않는 동안 또 같은 짓을 하면서도 기억이 없어서 술로 행복해합니다. 내 몸은 술이 가져가버렸습니다. 정신도 가져가버렸습니다. 개똥 마음의 고향 술 때문입니다. 정신병입니다. 부끄럽습니다.
한-미동맹 중독증에서 벗어나 파병 철회하길
최근에 같은 질환의 중독자들을 보았습니다. 한-미동맹이
영화인들의 파병반대 선언 [6] - 인정옥
-
우리 아버지가 할머니에 대해 말씀하실 때 고정 레퍼토리로 꺼내시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한국전쟁 때 일이다. 한집에 하나씩 장정을 ‘토해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 당시 아버진 중학생이어서 열외였고 대학생인 큰아버지와 그 또래의 아버지 외사촌형이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외사촌형은 우리 할머니의 언니의 아들인데 무슨 일인가로 이모 댁에 와서 지내던 참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둘 중 하나를 전장에 내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리 할머닌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언니의 아들이 아닌 당신의 큰아들을 전쟁터에 내보내셨다고 한다. 할머니의 논리는 당신이야 큰아들이 죽으면 둘째아들이라도 있지만 자신의 언니에겐 아들이 하나뿐이었기 때문이었다지만 그래도 가면 죽을 확률이 100%에 가까웠던 그 상황에서 ‘남’의 자식이 아닌 자기 아들 등을 떠미는 것은 정말 하기 힘든 행동이었으리라.
이 얘길해주실 때마다 항상 부록으로 따라왔던 아버지의 가르침은 ‘내 자식이 중요하면 남의 자식도 중요하다’는 거
영화인들의 파병반대 선언 [5] - 오지혜
-
여기 녹화 테이프가 하나 있다. 그 테이프의 녹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일부 편집된 내용으로 방영되었기 때문에 원본 테이프의 시간은 알 수 없다). 화면 비율은 DV로 찍힌 것으로 보아 두 가지 비율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그중 3 대 4의 비율을 택했다. 김선일씨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의 수를 생각하면 1.66 대 1의 비율이 더 효과적으로 보이지만, 이 테이프는 처음부터 텔레비전 방영을 목표로 만든 비율인 것 같다. 그래서 텔레비전 방영시 레터박스 처리될 수 있는 것을 피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이라크어가 각국어로 번역될 것을 염두에 두고 그 비율을 생각한다면 1.66 대 1이 더 효과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 테이프는 알자지라에 제공되었지만, 결국 이 테이프가 해외방송에 방영될 때 번역의 문제가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은 뒤에 늘어서 있는 ‘유일신과 성전’(이라고 알려진 무장단체)의 테러리스트들과 그 앞에 앉아 있는 김선일씨가 전부이다.
영화인들의 파병반대 선언 [4] - 정성일
-
-
나의 개인적인 습관인데,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저 사람은 꼭 누구누구와 닮았구나”라고 규정지으려는 집착이 있다. 김지운 감독님을 보면서 안토니오 반데라스를 닮았다고 생각하거나, 명필름 S대표님을 보며 여가수 N씨와 비슷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참으로 안 좋은 습관이긴 한데 아무튼 그런 관점에서 대통령 노무현님의 얼굴을 보자. 코미디언 한무씨와 똑 닮은 얼굴이다. 요즘은 활동이 뜸해서 얼굴보기가 좀 힘들지만, 386세대들은 다들 한무를 잘 알 것이다(기억이 가물가물한 분들은 옆사진을 참조하시라). 특히 그는 코미디언 정부미와 함께 가장 서민적인 정감을 풍겼던 희극인이었다.
그러고보니 ‘서민의 벗’이었다는 점에서도 노무현과 한무는 서로 닮은꼴이라 할 수 있다. 89년 TV생중계 청문회 현장으로 플래시백해보자. 지금은 고인이 된 정주영 현대 회장을 증인석에 앉혀놓고, 노무현 국회의원은 외친다. “그럼 우리 노동자들은, 아무렇게나 짓밟히고 다치고 끌려가도 괜찮다는 말씀입니까?” 아
영화인들의 파병반대 선언 [3] - 봉준호
-
안녕하십니까? 영화감독 편지를 받으니 또 스크린쿼터 문제냐 싶어 짜증부터 나시죠? 하지만 참으십시오, 오늘은 그 얘기 아니니까요. 이번 이슈는 훨씬 더 짜증스러운 이라크 파병 문제랍니다.
요즘 같으면 미국 사람 마이클 무어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습니다. 무어가 누구냐고요? 왜 그 <화씨 9/11>이란 기록영화 만든 감독 있잖아요, 그이 말입니다. 남프랑스 어딘가에서 황금종려상을 뺏겼기 때문이냐고요? 정녕 사람을 어이 보고 그런 말씀을 하신단 말입니까! 제 질투의 까닭은 그게 아닙니다. 그건 무어 감독이 맘먹고, 대놓고, 질리도록 욕해대는 상대가 바로 조지 부시이기 때문입니다. 좀더 친절하게 말씀드리자면 ‘노무현이 아니라’ 부시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직도 당신을 그런 식으로 공격할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감히 생각건대, 만약 제가 미국 감독이라면, 또는 부시가 한국 대통령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니 차라리 지금 한국의 대통령이 박정희나 전두환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영화인들의 파병반대 선언 [2] - 박찬욱
-
지난 7월1일,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는 파병철회를 촉구하는 영화인들의 집회가 있었다. 감독, 배우, 제작자, 스탭, 영화제 관계자 등 605명의 서명을 받아 공표한 ‘이라크 파병 반대를 위한 영화인 선언’에서 그들은 “더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 미친 자들의 망동을 막기 위해 우린 나서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항공조종사노조의 파병수송업무 거부만큼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지만 이 선언은 그냥 잊어도 좋은 목소리가 아니다. 김선일씨의 목숨으로도 모자라 제2, 제3의 희생을 요구하는 정부에, 홀로코스트를 방불케 하는 더러운 전쟁을 계속하는 부시에게, 더이상 침묵할 수 없다는 그들의 선언은 한반도 전체로 확산돼야 할 반전운동의 불꽃이다. 그 목소리를 전하는 일에 <씨네21>은 망설임 없이 나설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영화인들의 현실참여는 국내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할리우드에서도 부시를 낙선시키기 위한 대대적인 운동이 진행 중이다. 마이클 무어의 <화
영화인들의 파병반대 선언 [1]
-
<거미숲의 집>
영화의 가장 중요한 공간인 거미숲의 집은 두개의 다른 시간대에서 전혀 다르면서도 같은 느낌을 공유하는 공간이다. 이 집에서 벌어지는 두번의 잔혹한 살인 사건과 긴밀한 연결고리를 지닌 곳이 또 하나의 독립된 공간인 다락방이다. 전남 순천 조계사 부근의 숲속 깊숙한 곳에 실제로 지은 이 집은 1400년 된 원시적인 삼림이 보존된 숲의 이미지와 어우러져야 했다. 송일곤 감독이 의도한 건 이렇다.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지배>에서 받은 느낌을 담고 싶었다. 빛 같은 게 한 군데에서만 나오는. 구조에서는 방과 다락이 중간에 있는 무시무시한 공간을 떠올렸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이라는 소설에 거미가 나오는데 그게 다락 안에 있다.
터널은 사건이 종결되는 곳이다. 감독은 낡고 오래되며 비현실적인 느낌이 묻어나는 터널을 원했지만 삭막하고 휑한 느낌이 드는 지금의 터널로 낙점됐다. 아직 개통되지 않은 화순의 동복터널을 운
장르로 간 송일곤과 <거미숲> 스토리 - 영화의 공간들
-
“사실 사건은 굉장히 단순하다. 누군가 살인을 했다는 것 하나밖에 없다. 무의식이건 사건이건 주변의 몇몇 인물을 통해서 한명의 주인공을 조망하는 쪽으로 갔다. 스펙트럼을 통해서 하나의 형상이 나오듯이. 스토리는 단순하게 넣고 내 속에서 느끼는 갈등을 채우는 것이 어떨까 싶었다.”
장르로 따지면 <거미숲>은 미스터리, 스릴러, 호러, 멜로의 복합체이지만 캐릭터와 시간·공간, 내러티브가 지닌 깊이는 장르를 위배한다. 물론 이건 송일곤의 의식적인 배치다. 영화 초반에 끔찍한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몇 가지 궁금증을 강하게 던져주지만 해결이 자꾸 지연되면서 감독의 자의식이 곳곳에 깃들기 시작한다.
“사실 사건은 굉장히 단순하다. 누군가 살인을 했다는 것 하나밖에 없다. <유주얼 서스펙트>처럼 인물이 많길 하나, 복선이 많길 하나. 그런 방식보다는 무의식이건 사건이건 주변의 몇몇 인물을 통해서 한명의 주인공을 조망하는 쪽으로 갔다. 스펙트럼을 통해서 하나의 형상이
장르로 간 송일곤과 <거미숲> 스토리 - 장르영화이기만 할까?
-
유령이 나온다는 숲에 관한 제보를 받고 떠난 <미스터리 극장>의 강민 PD가 치명상을 입은 채 발견된다. 혼수상태에서 2주 만에 깨어난 그는 거미숲에 두 남녀의 시체가 있다며 경찰을 찾는다. 달려온 강 PD의 친구 최 형사는 그의 진술을 따라 사건을 추적하고, 강 PD는 그 나름대로 숲에 잠겨 있는 수수께끼를 풀려고 나선다.
미스터리스릴러 <거미숲>(9월3일 개봉예정)은 15억원의 순제작비가 들어간 영화답지 않게 세련되고 깔끔한 매무새를 지녔다. 배우의 연기나 섬세하게 조형된 미술과 공간의 미감,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부럽지 않게 새롭게 만들어진 선율, 제때에 멈추거나 달리는 카메라의 빼어난 질감까지 제작비 30억원대를 넘보는 영화의 ‘때깔’을 폼낸다. 하지만 이보다 더 놀라운 건 이 영화가 <꽃섬>의 송일곤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꽃섬>에 비하면 <거미숲>은 장르의 관습을 지나치게 노출한다(물론 장르의 클리셰를 동시에 지워
장르로 간 송일곤과 <거미숲> 스토리 - 장르로 가기까지
-
<이블 데드>로 어느 정도 명성을 얻은 그는 코언 형제가 각본을 쓴 <크라임 웨이브>를 연출했다. 한 남자가 왜 전기의자에 앉게 됐는지 추적하는 이 영화는 샘 레이미가 좋아하는 폐쇄적인 공간과 빠른 이동, 슬랩스틱 코미디를 모두 가진 영화였지만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코언 형제는 이후 냉소적이면서도 진지한 영화로 돌아서 샘 레이미와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샘 레이미는 규모와 유머가 점점 커진 <이블 데드> 2편과 3편을 찍고, 만화책 스타일을 영화로 되살린 <다크맨>을 찍으면서 고집을 버리지 않았다. 샘 레이미는 자신의 영화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샘 레이미는 자기 영화를 보면서도 “말도 안 돼! 어떻게 저런 일이 생길 수 있지?” 혹은 “정말 멍청한 주인공이라니까”라고 말하곤 한다. <이블 데드2>에서 칼에 찔려 죽은 줄 알았던 여주인공이 자꾸만 다시 일어나서 주문을 끝까지 외우고서야 죽는
<스파이더 맨2> 감독 샘 레이미의 짧고 복잡한 영화인생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