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은 화성에 먼저 탐사선을 보내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절 뒤뜰에서 밤하늘의 별을 관찰하는 취미가 있었고 미 항공우주국(NASA)의 매리너 4호 프로젝트에 정신을 빼앗긴 아버지 밑에서 자란 딸은 훗날 화성의 자연사 연구에 푹 빠진 과학자가 되었다. <푸른 석양이 지는 별에서>는 NASA 연구원으로 일하며 스피릿, 오퍼튜니티, 큐리오시티 같은 화성 탐사선 제작에 참여한 저자가 갈릴레오 시절부터 화질 좋은 화성 표면 이미지가 바로바로 전달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연대기적으로 또 개인사적으로 화성 탐사의 역사를 풀어낸 책이다.
한때 화성은 인류보다 문명화된 존재가 산다고 여겨졌다. 1800년대 후반 밀라노의 천문학자 스키아파렐리는 망원경을 통해 화성을 스케치했고 이 지도를 기반으로 화성에 복잡한 운하가 건설되어 있다는 말이 나왔으니 대중과학자 로웰 같은 이는 화성에 지적 외계인 집단이 있다는 믿음을 전파했다. 하지만 과학은 냉정하게도
씨네21 추천도서 <푸른 석양이 지는 별에서>
-
‘아처’는 ‘archer’, 궁수라는 뜻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신작 <아처>는 활을 쏘는 궁사 이야기다. 어느 날, 소년에게 낯선 사람이 다가온다. 그 이방인은 한때 이 나라 최고의 궁사였던 ‘진’을 찾고 있는데, 소년이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목수가 바로 진이다. 이방인은 진이 보는 앞에서 활을 쏘아서 자신이 완벽한 경지에 다다랐음을 증명하고자 한다. 소년은 진에게 이방인을 데려가고, 이렇게 두 사람의 활쏘기 대결이 시작된다. 이방인은 실력이 좋아서 40m 떨어진 거리의 체리 열매를 맞춘다. 그런데 진은 산속으로 한참 들어가더니 낡아서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흔들다리 위에서 20m 떨어진 거리의 복숭아를 맞추는 묘기를 선보인다. 이방인은 진을 따라 하지 못한다. ‘정신을 다스리는 법’을 익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처>는 파울로 코엘료의 여느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소설이다. 잠언 혹은 에세이에 가까운 통찰의 문장이 이어진다. 인생의 큰 깨달음을 얻기
씨네21 추천도서 <아처>
-
“1970년대 폴란드인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농담이다. 체코 개가 폴란드 개에게 물었다. ‘너는 왜 체코슬로바키아로 가는 거니?’ 폴란드 개가 말했다. ‘배를 채우고 싶어서. 그런데 너는 왜 폴란드로 가는 거니?’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온 개가 대답했다. ‘난 짖고 싶어서.’ 표현의 자유는 가혹한 세상에서 잘 살아가려는 욕구와 그 가혹함에 맞서 저항하려는 욕구처럼 서로 상반되는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검열관들-국가는 어떻게 출판을 통제해왔는가>에 실린 표현의 자유에 대한 우화다.
<고양이 대학살-프랑스 문화사 속의 다른 이야기들>의 로버트 단턴이 이번에는 검열의 역사에 대한 책을 썼다. 18세기 부르봉 왕조의 프랑스, 19세기 영국 통치하의 인도, 20세기 공산주의 동독에서 검열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를 탐구하는데, 계몽주의와 검열, 제국주의와 검열, 공산주의와 검열의 상관관계가 다루어진다. 부르봉 왕조의 프랑스에서 검열관들은 처음엔 이데올로기적 검열보
씨네21 추천도서 <검열관들-국가는 어떻게 출판을 통제해왔는가>
-
“많은 연습을 거치고 나면 필요한 동작을 하나하나 생각하지 않아도 동작은 우리 존재의 일부가 된다.” 파울로 코엘료의 <아처>에 나오는 문장이다. 도쿄올림픽의 열기가 막 가신 이때, 여름의 무더위도 한풀 꺾인 모습이다. 차분하게 읽어볼 만한 책 5권을 소개한다.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8월의 책
-
-
한 사람을 부르는 두개의 이름이 있다. 이반지하와 김소윤. 그는 두 이름의 관계에 대해 여러 질문을 받았던 모양이다. 이렇게는 말할 수 있겠다. ‘비(非)김소윤’은 김소윤에 기대지 않고는 유지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고. 퀴어 퍼포먼스 아티스트 이반지하의 첫 책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는 이름에 얽힌 자기소개로 시작한다. 살려고 했을 뿐인데 겪어야 했던 온갖 혼란에 대한 이야기로. 퀴어가 아닌 이들이 이반지하의 이름을 알게 된 계기가 된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의 코너 ‘월간 이반지하’에 우울증이나 자살충동을 가진 이들의 사연이 꾸준히 온다는 이야기는 이렇게 흘러간다. 평생 살 생각을 하면 너무 힘드니까 5년, 3년, 1년, 6개월, 한달, 일주일, 하루, 열두 시간, 한 시간 이런 식으로 쪼개서 살아보라고. 본인에게 효과 있던 방법이라고. 살려면 죽지 않아야 하는데, 미디어를 보다가 ‘저러다 저 사람 죽겠다’ 생각하면 정말 그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가 나온다.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 친구들아, 사치스러운 마음으로 살아
-
2001년 <트리스트럼 샌디>를 첫책으로 하는 문학과지성사의 대산세계문학총서가 20주년을 맞았다. 총 140종 166권의 책이 이 시리즈를 통해 소개되었는데, 그중 3권이 새로운 판형의 리커버판으로 선보인다.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의 <악의 꽃>,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끝과 시작>, 다니카와 슌타로의 <이십억 광년의 고독>. 세권 모두 시집이며, 대산세계문학총서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책들이다.
보들레르의 <악의 꽃>은 번역을 맡은 윤영애 교수의 옮긴이 주, 옮긴이 해설, 작가 연보야말로 이 책의 아름다움을 풍성하게 알아갈 수 있는 든든한 힘이다. 시대 분위기, 철학과 정치, 경제의 변화상황 속에서 ‘악의 꽃’이라는 상징적인 제목이 어떤 함의를 갖는지, 시어들을 다시 꼼꼼하게 읽게 만든다.
다니카와 슌타로의 <이십억 광년의 고독>은 신기할 정도로 내 주변의 세상을 살갑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시집이다. 찌는 여름
씨네21 추천도서 <악의 꽃>, <끝과 시작>, <이십억 광년의 고독>
-
소설가이자 번역가로 활동해온 작가 아밀의 단편집 <로드킬>의 표제작 <로드킬>은 희귀 인종으로 분류된 여자아이들만 모여 있는 학교 이야기다. 유전자 변형을 통해 임신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한 여느 여자들과 달리 돈이 없거나 종교적 신념 등의 문제로 타고난 신체를 유지한 여자들이 딸을 출산하면 이 여학교에 보낸다. 학생들은 여자다운 여자로 자라도록 교육을 받다가 나이가 차면 결혼 상대를 찾으러 오는 남자들을 만나야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
여성의 울적한 근미래를 다룬 SF 소설들이 떠오르는 설정이지만 동시에 ‘신붓감’을 찾는 설정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느낌이 든다. 얼마 전에도 베트남 여성 유학생에게 어느 시에서 농촌 총각과의 결혼을 권유하는 사업을 추진했다가 중단된 일이 있었다. <로드킬>의 여학생들은 어떻게든 빠져나갈 계획을 세운다. 학교 밖으로 나갔다가 질주하는 차에 치여 죽을 수도 있다는데도 자유를 찾아 나갈 생각이다.
소녀들은 왜
씨네21 추천도서 <로드킬>
-
처음은 가볍게 시작하는 연애 이야기 같다. ‘나’는 마감을 앞두고 글이 잘 써지지 않는 상황에서 마침 소개팅 제안이 들어와 성북동의 찻집 수연산방으로 향한다. 마침 남자와 여자는 둘 다 이혼한 상태이고 여자가 정신과 의사여서인지 둘은 결혼과 이혼과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누기 시작한다.
그 후로 몇번의 만남이 이어진다. 이들의 데이트는 바로 옆에서 숨 죽이고 지켜보는 것 같은 현실감이 느껴지는데 한남동이나 광화문 같은 서울의 지명들이 어색함 없이 등장하고 또 어떤 브랜드의 차를 타고 어떤 공간으로 이동했는지 구체적으로 나열되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순간순간 ‘나’가 느끼는 속마음이 노골적으로 솔직하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두 번째 만남을 앞두고 다급히 면도를 하고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 고민을 하고 정신없이 약속 장소로 가면서 과연 우리가 진지한 관계로 발전하게 될까 너무 앞서나가는 걸까 주고받은 문자는 몇통이나 되나 같은 생각의 흐름들이 손에 잡힐 것처럼 가깝게 다가온다.
씨네21 추천도서 <언제 들어도 좋은 말>
-
<90년생이 온다> 이후로 꾸준히 출간되는 MZ세대에 대한 책과 기획 기사들은 저마다 세대론을 다르게 설파한다. 레트로 카페가 유행하니 MZ가 레트로를 좋아한다더니, 미래 컨셉의 아이돌이 성공하자 이제는 MZ가 SF를 좋아한단다. 1년 전에는 90년생이 아닌 전 세대가 그들을 분석했다면 지금은 당사자성이 대두되며 “요즘 애들이 말하는 요즘 애들 이야기”가 더 궁금해진 시대다.
나만 해도 여타 매체에 칼럼을 쓸 때마다 ‘MZ세대의 특성을 정리해달라’는 청탁을 여러 번 받았다. 그럴 때마다 갸우뚱하는 것이 “나는 MZ세대인가? 아닌가”인데, MZ세대의 탄생 기준 연도를 언론사마다 다르게 잡기 때문이다. “1981년~2001년생, MZ 평균 연봉은?”이라는 세대론 뉴스에는 이런 댓글이 달린다. “신화부터 에스파를 한 세대로 잡으면 어떡해요?” ‘요즘 애가 말하는 요즘 애들 이야기’를 표방하는 <자본주의 키즈의 반자본주의적 분투기> 역시 뭉툭한 세대 구분에 대한 고
씨네21 추천도서 <자본주의 키즈의 반자본주의적 분투기>
-
<아몬드> 표지의 영향 때문인지 손원평 소설에서는 서늘한 응시가 연상된다. 무감한 표정으로 상대를 뚫어지게 보는 텅 빈 눈동자, 대상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지만 실은 창자까지 꿰뚫어본다. 현실에서 신기한 일이 생겼을 때 흔히들 “소설 같다”고 감탄하지만 으레 독자에게 사랑받는 소설이란 현실의 문제를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을 때가 많다. 독자들이 손원평 소설을 지지하는 이유도 일상의 현실적인 문제들, 인간의 선과 악에 서슴없이 직면하는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5년 만의 소설집 <타인의 집>에는 표제작을 포함해 집이 주요 사건의 장소이자 촉매제로 그려진다. <타인의 집>은 불법적인 셰어하우스가 배경이다. 구축 아파트를 전세로 얻은 쾌조씨는 주인 몰래 방을 쪼개 여럿에게 월세를 주고, 시은, 희진, 재화 언니는 아파트 공용 공간에서 사사건건 부딪친다. 화장실과 냉장고를 공유하는 희진과 재화 언니가 전쟁을 시작할 때마다 제 방에 틀어박힌 시은은 재
씨네21 추천도서 <타인의 집>
-
여름밤엔 미스터리 소설이다! <여름의 시간>을 집어 들고 에어컨을 켜고 최고로 편안한 자세로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독서를 시작했다. 7편의 앤솔러지 중 2편을 읽었을 때 어느새 등을 곧게 편 정자세로 고쳐 앉아 조급히 책장을 넘기는 자신을 발견하고 말았지만.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무섭진 않아도, 주변에 충분히 있을 법한 인물과 사건들이 이어져 눈을 뗄 수가 없는 이야기들. 여름날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것은 독서의 즐거운 정석이다. 실은 네 번째 수록작 <능소화가 피는 집>을 다 읽을 때까지도 이 소설집이 ‘사랑’이라는 테마와 ‘미스터리’ 장르를 결합한 단편소설 모음집이라는 것을 까맣게 몰랐다.
두근거리는 연애 감정보다는 알 수 없는 상대에 대한 호기심, 충만한 행복감 뒤에 숨겨진 치명적인 비밀, 그래서 누가 왜 죽어야만 했는지와 같은 사건 당사자의 증언이 압도하는 흥미진진한 구성 때문이었다. 7명의 작가가 쓴 각 작품은 사건 전개 방식과 소재는 달라도 공통
씨네21 추천도서 <여름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