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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석의 씨네콜라주] 롤라 걸 런

“돈 꼬를레오네. 이탈리아의 시실리 출신. 9살 때 가족 몰살. 단신으로 미국으로 건너와 밑바닥 범죄세계로 들어가다. 이후 온갖 추악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 “추악하다니, 어디까지나 밤의 룰대로 사업을 벌였을 뿐이네.” “그래, 그 규칙 때문에 모질게도 사람들을 죽였구만. 에∼또, 말년에 일가 붕괴의 위기를 겪게 되나 손자와 뜰에서 놀다가 심장마비로 사망. 마피아 대부치고는 너무나 평온한 죽음이군. 꼼짝없이 지옥행이겠어.” “3그러니까 자네를 부른 것 아닌가. 이것봐, 변호사 양반. 어떻게 안 되겠나?” “쉽진 않은데. 여긴 이런 게임이 있어. 자네 영혼에 붙은 돈 중 1억원을 내놓게. 그걸 오늘 하루 만에 다 써버리면 선처가 가능하지.” “까짓거 써버리지. 여기는 룸살롱이 없나?” “어허, 아니야. 지상에 있는 누군가가 대신 돈을 써줘야 하네. 그것도 한번에 100만원 이상은 쓸 수 없고, 같은 건 두개 이상 살 수 없지. 재빨리 뛰면서, 좍좍 돈을 써줘야 해."

대부 꼬를레오네가 선택한 선수는 조직 산하의 포르노 여배우 롤라 걸이었다. 그녀는 평소 ‘쇼핑의 여왕’이라 불릴 만큼 탁월한 낭비벽에, 항상 롤러 스케이트를 타고 다니는 기동력까지 겸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잊지 마. 꼭 이 돈을 다 써야 해. 만약 10원이라도 남으면 네가 산 것은 모두 반납해야 해.” 사후 담당 변호사는 롤라 걸에게 당부했다. 그녀는 걱정말라며, 변호사의 뺨에 진한 립스틱 자국을 남기고 달려갔다.

‘좋아, 우선은 백화점 명품관으로 가야지. 택시? 아니야. 지하철이 빠를 거야.’ 그녀는 호기롭게 2만원짜리 정액권을 사서 개찰구를 통과했다. 그때 변호사가 준 PCS에 메시지가 떴다. ‘주의. 잔액은 현금의 효과가 있으므로 전부 써버려야 함.’ 롤라 걸은 비명을 지르며 다시 개찰구로 나갔다. 그때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유치원생들을 잔뜩 데리고 내려왔다. 그녀는 다행히 그들의 요금을 모두 내주는 것으로 일단 정액권은 써버릴 수 있었다.

‘10년 만의 대세일’이라는 끔찍한 포스터를 뒤로 하고 롤라 걸은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세일중임에도 100만원이 넘는 물건들이 너무 많아서, 롤라 걸은 향수 몇십개만 챙겨서 카운터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손님 저희 백화점 카드 있으신가요?” “없는데요. 이 카드로 해주세요.” 롤라 걸은 변호사가 준 카드를 꺼냈다. “네, 이 카드도 가능합니다. 사신 금액의 5%는 현금으로 적립해 드려요.” “그런 것 필요없어요.” “자동으로 되니까 걱정마세요. 그리고 카드 영수증은 바로 추첨하여, 어머 어머, 축하드려요. 경품으로 1천만원 상품권에 당첨되셨어요.” 롤라 걸은 그 1천만원을 쓰기 위해 매장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추가로 얻은 금액은 ‘건당 100만원 이하’ 규정이 적용되지 않았다.

‘안 되겠다. 카드는 너무 복잡해. 전부 현금으로 찾아서 바로바로 써버려야지.’ 롤라 걸은 백화점 옆 은행으로 들어갔다. ‘현금 자판기, 아니 지급기는 감당이 안 될 테고. 어머, 창구는 50명이나 대기중이네. 그래, 미인계를 써야지.’ 마침 잘생긴 사내가 왼손으로 삐뚤빼뚤 청구서를 쓰고 있었다. “어머 아저씨, 번호가 다 됐네요. 그냥 창구로 가세요. 직원들이 알아서 해줄 거예요.” 롤라 걸은 사내의 팔을 끼고 창구로 갔다. 여직원은 미소를 지으며 사내의 청구서를 받았고, 롤라 걸은 화답의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청구서를 읽은 여직원이 얼굴이 새파래지며 기절하는 게 아닌가? “제기랄, 모두 꼼짝마!” 갑자기 사내가 소리를 지르며 창구 위로 뛰어올라갔고, 또다른 남자가 경비원을 때려눕히며 은행 출입구를 막았다. 역시 가슴 철렁할 정도로 잘생겼다. “우리가 그 유명한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다. 모두 얌전히 현금만 모아서 이 여자가 돌리는 자루 속에 넣어.” 이 여자? 그렇다. 롤라 걸은 얼떨결에 부치가 준 자루를 들고 창구와 손님들의 현금을 긁어모았다. 그리고 두 남자는 그녀의 양쪽 겨드랑이에 팔을 넣어 번쩍 들더니 은행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가씨 땡 잡았어. 오늘 이 돈 다 써버리는 거야.” “으앙! 돈은 필요없어. 잘생긴 아저씨들 나랑 그냥 놀아요. 잡혀가긴 싫어.”

등장 인물

롤라 걸: <부기 나이트> 등에 출연한 포르노 여배우. 연기중에도 절대 롤러 스케이트를 벗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돈 꼬를레오네: 설명이 필요없는 마피아의 대부.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 <내일을 향해 쏴라>로 국내에 알려진 전설의 은행 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