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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통, 오프라, 그리고 하이너 뮐러
2001-09-12

정윤수의 이창

● 벌레먹은 어금니가 밤새 시큰거릴 때, 타이레놀의 경고가 충분치 않을 때, 손가락이나 혀로 그 빌어먹을 어금니를 지그시 눌러본다. 아주 상쾌한 아픔이 느껴진다. 무릎의 상처 딱지도 그렇다. 시뻘겋게 되도록 손톱으로 긁어대면 또한 역설의 쾌가 밀려온다. 무좀으로 너덜너덜해진 발톱 사이를 문지를 때도 그렇고 뒤꿈치의 각질을 벗겨낼 때는 극도의 희열까지 맛보게 된다. 유쾌통쾌상쾌한 아픔의 순간들!

그러나 오프라 윈프리라면 우리는 잠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거역할 수 없는 치욕과 쾌감의 이중주! 그녀는 어릴 적, 그러니까 아홉살 때부터 성년에 이르도록 친척 오빠를 비롯해 아주 가까운 남자들에게 치욕의 순간들을 당했다. 원치 않는 임신, 열네살 때 그녀는 강제에 의한 임신을 했고 조산한 남자 아이는 두 주도 살지 못하고 숨졌다. 지금은 여성운동계는 물론 굴지의 미디어그룹을 장악한 일급의 활동가요 어마어마한 부자이자 이웃집 언니처럼 고통받는 여성들의 카운셀링을 맡고 있는 이 ‘입지전적’ 여인이 토로하는 지난 시절의 고통은 가난, 학대, 강간의 쓰라린 병력표만이 아니다. 윈프리가 과거의 수치를 떠올리면서 정녕코 거역하고 싶었던 순간은 다름아닌 자신의 육체였다. 그 고통의 순간에도 감각적 반응을 했던 자신의 몸. 그 참혹한 이율배반! 거부와 저항, 고통의 발악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물질로서 육체는 천연덕스럽게 상대방의 공격적인 애무에 일정한 반응을 보였다는 점에서 윈프리는 감각의 상실, 이성적 통제력의 마비, 급기야 영육의 분리와 치욕의 다이나미즘을 거쳐 마침내 철저히 하나의 자아로서 1분1초도 서 있을 수 없는 처절한 파괴의 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고 토로했다.

… 만일 이 지옥도에 관하여 조금이라도 양식이 있다면 나는 치통이나 각질 따위로 이 얘기를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니 서둘러 하이너 뮐러 얘기로 돌아서야겠다. 80년대, 몇편의 낭만적 소설로 기억에 남았던 작가 강유일이 어느 일간지를 통해 매주 전해주는 동독의 작가들 이야기는, 역사의 장막 뒤로 사라져버리는 그 비장비애한 쓸쓸함으로 인해 아주 쓰디쓴 독후의 감이 있다. 특히 며칠 전, 하이너 뮐러의 고통스런 일대기는 격렬한 시대의 삼각파도에 휩쓸리고야 마는 직업으로서의 작가에 대하여 낯익은, 그러나 점점 잊혀지고 있는 심상을 일깨워준다.

“내 평생 세개의 국가, 즉 바이마르 공화국, 히틀러 제3제국, 그리고 동독의 멸망을 지켜본 것은 작가로서의 내겐 하나의 특권이다”라고 했던 하이너 뮐러의 독백은 물론 이중적 발언이다. 필경 이 드라마에는 역사적 DNA의 이중나선이 펼쳐지는 바, 그 갈래 길에서 하이너 뮐러는 ‘스페인 화가 고야가 프랑스혁명의 이상에 대한 동경과 나폴레옹 정복군의 테러라는 극렬한 모순’을 겪은 바와 같은 영육의 분리, 자기 통제력의 상실, 이성의 마비와 부작용, 심리적 테러와 분노, 모국어에 대한 회의와 중증 언어장애, 그리고 무엇보다 이 희비의 쌍곡선 사이에서 육체는 또다시 스멀스멀, 벌레처럼 움직이며 ‘창작’이라는 생태적 배냇짓으로 상처투성이의 영혼을 스스로 공격했던 것이다. 초기작 <시멘트>에서 대표작 <햄릿 머신> <임무> <맥베스>, 그리고 이른바 ‘경악의 미학’이 최고 수준에서 성취된, 오감을 마비시키는 격렬한 음향과 세트 디자인과 증오섞인 아우성과 충동적인 씻김굿으로 점철되는 <메디아>를 통해 하이너 뮐러는 동독의 정체성에 대하여, 사회주의에 대하여, 지배와 욕망의 인간학적 참상에 대하여 쓰고 또 썼던 것이다.

더욱이 통일 과정에서 구동독의 작가들이 서독의 ‘반공주의 작가’와 자본에 괴멸당하는 상황은 20세기의 독일을 참여적 관찰자, 즉 ‘작가로서의 특권’으로 지켜보았던 뮐러에게는 궁극의 고통으로 귀결된 바 있으니 다름아닌 구동독 비밀경찰 슈타지의 에이전트가 아니냐는 서독 문단의 공격이 그것이다. 우베 욘존, 크리스타 볼프, 폴커 브라운, 심지어 귄터 그라스마저도 시비의 대상이 되었던 광란의 청소 작전, ‘구동독을 악마화’하려는 서독 반공주의자들의 공격에 대하여 뮐러는 자서전 <전투없는 전쟁>으로 반격했다. 그리고 그것을 끝으로 뮐러는 신독일연방제국의 시발역이자 자기 생애로서는 종착역이 되는 시기에 이르렀다.

‘이창’에 글 쓰는 게 이것으로 끝이다. 스스로의 갈증도 해결하지 못하는 주제에 격주마다 무책임한 조롱이나 일삼고야 말았는데, 지난 순서, ‘소설의 운명’이 끝내 마음에 남았기에 조종삼아 하이너 뮐러를 기억했지만 오히려 이것만이 변명인 듯, 심리적으로 불편한 상황이므로 마지막 사실 확인으로써 그동안의 궤변들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겠다.

… 그리하여 하이너 뮐러는 알콜중독과 과다한 흡연 끝에 후두암의 공격을 받아 영하 20도가 넘는 혹독한 겨울, 도로틴슈타트 묘지에 묻혔다.

정윤수/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