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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의 아름다운 청년들 [7] - 정우성

그는 오토바이를 탄다. 핸들을 잡아야 할 두팔을 벌려 고개를 하늘로 치켜든다. 질주하는 젊은이, 그는 궤도를 벗어나고 있다. 그는 달리는 기차에 털썩 오른다. 가벼운 옷차림에 변변한 짐도 없이. 기차가 멈추는 곳이 땅끝마을이든, 아프리카든, 홀로 당당할 수 있는 남자. 그는 욕망과 야심이 질척거리는 땅에서 떠나온 지 오래다. 정우성의 뚜렷한 이목구비와 당당한 체격에는 그 무엇으로도 구속할 수 없는, ‘자유’의 이미지가 있다. 어린아이처럼 씩 웃을 때면 투명한 마음이 비치는 듯하지만 착한 눈망울이 독기를 품을 땐 순수한 분노가 타락한 어른들을 겁먹게 만든다. 그것은 80년대를 창백한 회색지대에 웅크려 있어야 했던 청년문화가 정우성에게서 발견한 시대정신이다.

서태지의, 혁명과도 같은 폭발적 힘은 아니지만, 정우성의 순수한 반항에도 큰 물결을 거스르는 몸부림이 있다. 고등학교를 다니다 그만두고 자기 재능에 운명을 내맡긴 과정도 비슷한 구석이 있지만, 폭력교사의 행동을 힘으로 제압하는 <비트>의 한순간이 가져오는 쾌감은 <교실이데아>의 도발과 맞닿아 있다. 똑같이 오토바이를 타더라도 그에겐 물질적 풍요와 안정이 없다. <사랑을 그대 품안에>의 차인표나 <별은 내 가슴에>의 안재욱과 비교해보라. 정우성은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들고, 그대를 구하러 달려올 꿈속의 왕자님은 아니다. 그의 구애에서 혀끝에 머무는 달콤함을 기대하긴 힘들다. 자기 품에 다가서는 이를 안아줄 넓은 가슴은 진심이 통하는 순간에만 열리기에 몸에 밴 친절과 낯익은 유혹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어 보인다. <태양은 없다>의 도철에게 남은 건 맞아도 무너지지 않는 몸과 자기 것을 다 뺏겨도 저녁노을을 보며 웃을 수 있는 여유뿐이다. 이정재의 단련된 근육과 깔끔한 옷맵시와 대별되는 지점이 여기 있다. 정우성에겐 <모래시계>의 백재희 같은 세련된 매너나 <태양은 없다>의 홍기 같은 현실적 목표가 없다. 사람의 마음까지 팔고 사는 추악한 도시를 코웃음치며 떠날 수 있는 이 남자는 꽉 짜인 질서에 갇힌 모두에게 동경의 대상이다. 정우성의 카리스마는 여기 있다. 오로지 강한 자만 살아남는 세계에 버티고 있는 최민수와 달리, 그는 선명한 논리의 날카로움을 스펀지처럼 흡수해 무력하게 한다. <유령>의 대결구도에서, 최민수의 송곳 같은 대사에 맞서는 정우성의 눈빛은 욕심이 자랄 수 없는 텅 빈 마음이 갖는 불가해한 힘을 보여준다. 승패에 개의치 않고 싸우는 <태양은 없다>의 마지막 권투 장면을 떠올려보라.

그러나 정우성의 속도는 위험천만이다. 그는 피흘리며 쓰러지기를 되풀이한다. 내면에 누구한테도 고개숙이지 않을 강인함을 품고 있지만, 세상은 개인의 일탈과 고독을 슬쩍 밟고 지나갈 만큼 견고하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그곳에서 자신을 대신하는 격렬한 저항을 보며, 여자들은 거기서 비극을 예감하면서도 낭만적 운명의 무대에 이끌린다. 정우성의 출발점과 지나온 행적을 잇는 궤적이 금지된 영역에서 진행된 건 우연이 아니다. 하긴 금단의 열매에 대한 대가로 그처럼 멋진 녀석을, 황홀한 연인을 얻는다면 크게 손해볼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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