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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렇게 만들면 두배로 재미있다 - 김익상
2001-03-12

뮈토스필름 대표·<퇴마록> <가위> <뫼비우스> 데우스 마키나>

어떤 배경, 어떤 과정을 거쳐 프로듀서가 됐나.

‘무식한 놈.’ 대학 졸업작품을 만들 때 네거필름이 뭔지 모른다고 했다가 선배에게 들은 말이다. 그런 말을 들어도 쌌다. 83년, 재수를 해서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간 건 순전히 충동의 산물이었고, 연극연출 전공이었다가 4학년 때 영화로 전공을 바꿨으니까. 그것도 영화를 원해서라기보다 졸업공연을 해야 한다는 게 엄두가 안 나서였으니까. 신방과 대학원을 마치고 MBC에서 FD생활을 6, 7개월 했다. 출퇴근, ‘내 멋대로 해라’라는 점이 좋았다. 사실 영화는 그전부터 좋아했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을 밟았다. 영화에 대해 발언하고 싶다, 직접 만들고 싶다. 당연한 수순 아닌가. 93년 <영화, 이렇게 보면 두배로 재미있다>란 나 홀로 평론집 비슷한 책도 한권 냈다. 94년 <그 섬에 가고 싶다> 연출부 제의를 받았다. 솔깃했다. 단호하게 “하겠다” 했다. 그러나 언제나 내 인생의 갈림길에 훌륭한 이정표를 제시해 주곤 하는 친구 고형욱이 단호하게 “하지 마라” 했다. 그 나이에(그때 이미 서른이 넘었다) 충무로 막내로 가서 뭘 하겠나, 방송하던 사람이니 차라리 TV로 가라 했다. 수긍했고, 그래서 캐치원에 입사했다. 거기서 <유지나 대 이용관>을 기획했다. 그런데 아버지상을 치르고 돌아와보니 구매부로 발령이 나 있었다. 구매부는 국제적 비즈니스 안목을 키우기에는 더없이 좋은 부서다. 그러나 당시에는 ‘제작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였다. 사표를 냈다. 사실 그 전인 96년 3월에 폴리비전과 1년간 사무실을 운영해 보기로 담판을 짓고 사무실을 차리던 상태였다. <퇴마록> 들어갔을 때 주변에선 걱정 일색이었다. 신인 감독에다 IMF 시절에 웬 블록버스터? “아직도 안 엎어졌냐?”란 소리를 한 500번은 들은 것 같다. 상처 많이 받았다. 98년, <퇴마록>이 꼴을 갖춰갈 무렵 틀거리를 떠올렸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 암살에 실패했다면? 재미있겠다 싶었다. 제작비를 감당하겠다는 제의에 삼부파이낸스에 입사했다. 이시명 감독도 소개받았다. 한국영화팀장으로 <주노명 베이커리> <가위> 를 동시에 진행했다. 그러던 중 양준혁 삼부회장이 구속됐다. 모두 엎어졌구나 싶었는데 다행히 어찌어찌해서 <가위>에 튜브 자금을 받게 됐다. 얼마나 절실했는지, 지금도 투자받은 날짜를 기억한다, 99년 12월24일. <가위> 하면서 시행착오는 겪을 만큼 겪었다. 프리 프로덕션이 제대로 안 돼 촬영하면서 콘티 다시 짜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원래 예산은 8억원이었는데 어림도 없어졌다. 그러나 많이 배웠다. 지금은 크랭크인 하기 전에 반드시 트리트먼트(20∼30장 분량의 완결된 스토리를 갖춘, 시놉시스보다 자세한 기획안)를 요구한다.

언젠가 이런 영화를 만들어봐야지 떠올린 영화가 있다면.

<시계태엽장치 오렌지> <성스러운 피>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 영화보는 눈을 뜨게 해준 영화들이다. 그러나 내가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현실적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는 <터미네이터>나 <첩혈쌍웅> 같은 영화.

왜 프로듀서를 하는가? 어떤 재미? 어떤 의미.

검(劍)과 도(刀)의 차이를 아는가. 외날과 양날의 차이다. 프로듀서는 비즈니스 감각과 크리에이티브라는 검을 쥔 글래디에이터다. 박쥐라고도 할 수 있지. 재미? 체질적으로 승부사 기질이 있다. 카드놀이도 좋아한다. 비유하자면 내가 만든 영화 개봉할 때의 쾌감이 포커보다 100배는 좋다.

가장 어려웠던 시기, 사건? 어떻게 헤쳐나갔나?

처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어려웠고 어렵다. 그러나 쉽게 가지는 말자고 다짐하곤 한다.

그간 경험에서 ‘이것만은 고치겠다’고 생각한 충무로 관행이 있다면.

패배주의, 예를 들면 한국영화는 10억원 이상 들이면 안 돼, 하는 식의 패배주의는 깨부수고 싶다. 사실 체질적으로 한국 비즈니스가 안 맞는 ‘드라이’한 성격이다. 비인간적이란 소리도 많이 듣는다. 하지만 충무로는 합리적인 것을 비인간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제일 듣기 싫은 소리가 ‘좋은 게 좋은 거지’, ‘그 사람을 봐서’, ‘나를 믿고’ 등등의 말이다. 난 인간성 좋은 사람과 일 잘하는 사람 중 하나를 택하라면 단연 일 잘하는 사람을 택할 것이다.

나의 스승, 나의 교범은.

내 영문이름이 스탠리다. 눈치챘겠지만 스탠리 큐브릭에서 따온 거다. 스탠리 김브릭이라고도 할까 했었다. 하하, 오버인가. 제작자로는 제리 브룩하이머. 일단 한우물을 판다는 것과 촬영 전까지만 참견한다는 것. 나도 그래야지. 그리고 조엘 실버. 양아치였던 워쇼스키 형제를 알아보는 눈썰미. 나도 배워야지.

3세대 프로듀서들이 해야 할 일, 담당해야 할 몫은 무엇인가.

간단하다. 선배들에게 받은 것을 망가뜨리지 말고 후배들에게 잘 전수하는 거다. 1세대, 2세대가 잘했으니까.

지금 준비중인 작품.

<뫼비우스>와 <데우스 마키나>. <뫼비우스>는 <황혼에서 새벽까지>+<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스피드에 <저수지의 개들>의 스토리 구조에 <유주얼 써스펙트>의 반전을 가진 호러 스릴러다. 4명의 남녀가 등장해서 돈을 갖고 튀는 이야기. <데우스 마키나>(Deus Machina)는 <니키타>+<공각기동대>+<로보캅>+<매트릭스>라고나 할까. 인간병기가 된 소녀와 맑은 소년의 슬프고 애절한 사랑 이야기다.

위정훈 기자 oscar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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