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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 영화관 위의 다락방… 내가 꿈꾸던 이상적인 장소
장영엽 2018-02-21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이하 <셰이프 오브 워터>)으로 아카데미 최다 후보 지명에 오른 것을 축하한다.

=고맙다. 아카데미 후보로 지명된 것에 매우 기쁘고 영광스럽다. 지난 25년간 내가 탐구해온 수많은 이미지와 아이디어에 이 공을 돌리고 싶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감독으로서 나의 정체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영화다. 더불어 이 작품은 영화적으로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이야기였다. 이러한 나의 노력이 영화 커뮤니티에 의해 지지와 사랑을 받는다는 점이 기쁘다.

-이 영화는 ‘사랑’이라는 테마를 가장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인 동시에, 당신의 전작을 통틀어 가장 로맨틱한 작품일 것이다. 당신은 왜 사랑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나.

=당신의 말대로, 나는 과거에 러브 스토리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크림슨 피크>(2015)라는 예외가 있긴 했지만, 이 작품 역시 진짜 로맨스와는 거리가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셰이프 오브 워터>에 이르러 사랑에 대한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한 건, ‘다름’을 가진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목소리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존재들,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 하는 사람들. <셰이프 오브 워터>는 이러한 ‘다름’을 지닌 사람들이 그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존재인 크리처를 구하기 위해 힘을 합치는 이야기다. 이 작품을 통해 나는 사랑에 형태가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는 사랑이 어떤 모습을 하게 될지 알지 못한다. 또한 우리는 어떤 것이 형태를 이루어 사랑이 될지 알지 못한다.

-<셰이프 오브 워터>의 주인공인 일라이자(샐리 호킨스)는 들을 수 있지만 말을 할 수 없는 농아다. 그녀를 농아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말은 때때로 오해를 낳고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하지만 말이 없는 사람들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눈빛과 몸짓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일라이자라는 인물을 통해 언어를 넘어 소통할 수 있는 사랑을 다뤄보고 싶었다. 본질과 본질이 연결되는 사랑 말이다.

-일라이자의 목에는 무언가에 날카롭게 긁힌 상처가 있다. 이러한 설정은 마치 오래전 그녀가 ‘아가미 인간’을 만났다는 인상을 준다.

=두 가지 의도가 있었다. 하나는 일라이자가 과거로부터 벗어났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가미 인간을 만나 그녀의 상처는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된다. 또 일라이자가 처음부터 그를 만날 운명이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어쩌면 일라이자 역시 물속 존재였으나 그녀와는 다른 육지의 존재들 사이에 섞여 살아가는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로맨틱한 설명이다. (웃음) 이 영화의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일라이자가 자위를 하는 장면이나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비중 있게 묘사한다는 점이다. 섹슈얼리티를 비중 있게 묘사하는 건 왜 중요했나.

=나에게 중요했던 건 성적인 행위 자체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누군가는 변태적이라고 볼 수도 있는 모습을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당신이 언급한 <셰이프 오브 워터>의 오프닝 신에는 일라이자가 자위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녀는 이 대목에서 페티시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매우 규칙적이고 평범한 모습으로 자위를 한다. 아가미 인간과 물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도 매우 다정하고 따뜻한 느낌으로 묘사하고자 했다.

-아가미 인간을 구상하며 가장 큰 영감을 받았던 작품으로 <해양 괴물>(감독 잭 아놀드, 1954)을 언급한 적이 있다. 아가미 인간은 한편으로는 당신의 전작 <헬보이> 시리즈의 에이브 사피엔을 떠올리게 한다. 그 밖의 레퍼런스가 궁금하다.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작품은 <해양 괴물>이다. 우리는 아가미 인간의 디자인을 완성하는 데에만 2년의 시간을 보냈는데 그중 1년은 스컬핑과 페인팅만 했다. <해양 괴물> 이외에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는데, 도롱뇽을 비롯해 수많은 파충류와 물고기의 모습을 참고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목표는 아가미 인간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셰이프 오브 워터>의 주인공은 몬스터가 아니라 무비스타여야 했다. 아름답고 섹시하고 멋진 존재 말이다.

-이 작품은 1960년대 볼티모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시공간을 선택한 이유는.

=1960년대는 미국이 나라의 이상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점점 더 확고히 하고 있던 시기다. 하지만 동시에 인종과 젠더, 섹슈얼리티의 다름으로 인한 갈등과 분열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다. 나는 이러한 분열이 지금의 미국이 직면한 상황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현재의 미국인들이 마주하고 있는 불관용과 다름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과거를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재의 본질은 과거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라이자가 살고 있는 영화관 위의 다락방은 모든 시네필의 꿈같은 공간이다.

=맞다. 이 공간은 내가 꿈꾸던 이상적인 장소이기도 했다. 일라이자의 다락방에는 늘 영화가 상영되는 소리가 새어들어오는데, 어린 시절 날마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잠들곤 했던 나의 개인적인 경험과도 맞닿아 있는 설정인 것 같다. 어른이 된 다음에는 라디오 대신 영화를 틀어놓고 잠든 적이 많다. 물론 곤히 잠들기엔 영화가 너무 좋았던 경우도 많다. (웃음)

-그런데 다락방 밑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작품들은 이른바 위대한 걸작들이 아닌, <마르디 그라스>(1958)와 <룻 이야기>(1960) 등 당대의 평범한 작품들이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건 작은 규모의 영화, 사소한 영화들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실제로 인생에서 나에게 더 깊은 영향을 미친 작품들은 <시민 케인>이나 <사랑은 비를 타고>가 아니라 이름 모를 코미디, 멜로영화인 경우가 더 많다. 한국인들에게도 1950, 60년대의 멋진 한국 멜로드라마가 이름난 걸작보다 마음속에서 더 중요한 작품으로 각인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셰이프 오브 워터>를 통해 하고 싶었던 건 영화에 러브레터를 보내는 것이었지 영화사에 중요한 족적을 아로새긴 영화들에 러브레터를 보내고 싶었던 게 아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 이후 1년간 연출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기간 동안 마이클 만조지 밀러 감독을 직접 인터뷰하겠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연출작을 맡지 않겠다는 것일 뿐 나는 여전히 많은 영화에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있으며 두편의 TV시리즈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활동적인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셰이프 오브 워터>가 내게는 매우 어려운 작품이었기 때문에 휴식을 취하면서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감독들을 직접 인터뷰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시네마 랭귀지’를 좀더 탐구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감독들에겐 그들만의 특화된 언어가 있고,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는 건 매우 중요한 작업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나는 박찬욱, 봉준호 감독과 어느 영화제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들은 한국 출신이고 나는 멕시코 출신의 감독이었지만 우리가 얘기를 나누는 순간만큼 우리는 시네마라는 같은 나라 안에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감독이 다른 감독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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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