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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버텨내고 존재하기’, 사라질 장소를 위무하는 음악, 유순히 뒤따르는 장면들
김소미 2023-11-01

8명의 뮤지션이 공연장이 아닌 극장에 모여 노래한다. 1935년 개관해 88년간 지역민들의 문화생활을 책임진,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광주극장이 그 무대다. 이들은 제각기 노래하고 연주하기 위해 버텨내고 존재한 예술가들이면서, 멀티플렉스 시대에 가능한 한 오래 버텨내고 존재한 극장을 사랑하는 관객이기도 하다. 싱어송라이터 최고은은 이동과 만남이 어려워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소수의 뮤지션들을 자신의 고향 극장에 초대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는 원풍경을 서서히 잃어가는 고향에 대한 애틋한 회고를 더하면서 뮤지션들의 노래가 서로 꼬리를 물도록 공연의 세심한 배치와 연출을 시도한다.

영화관을 비롯한 모든 사라지는 장소에 대한 희미한 서글픔을 담고 있는 <버텨내고 존재하기>는 말 대신 노래를 언어로 택했다는 점에서 남다른 공감각으로 확장된다. 우리는 극장 매표소 앞, 층계, 복도, 상영관 안, 영사실, 건물 담벼락 등 극장 곳곳을 배회하는 카메라를 따라가면서, 그곳에서 각자의 가장 편안한 모습으로 노래하는 이들과 만난다.

싱어송라이터 김사월에릭 로메르의 <녹색광선>에서 영감을 얻은 <확률>을 부르고, <뜨거운 불>을 부르는 김일두는 점점 온기를 잃어가는 극장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당신은 저 해보다 뜨거운 불같은 존재”라고 노래한다. 최고은은 바이올리니스트 주소영과 호흡을 맞췄고, 소리꾼 이자람, <슈퍼스타K> 시즌7 출신의 곽푸른하늘, 반도네온 연주자 고상지, 인디밴드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등이 역동적으로 장르를 횡단하며 다큐멘터리 <버텨내고 존재하기>를 완성한다. 그 가운데 <버텨내고 존재하기>를 따라 흐르는 그리움의 감정은 하나로 끈질기게 이어져 뭉클하게 다가온다. 뮤지션들이 좋아하는 영화, 그들이 때로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감독들의 이름을 엿듣는 것도 은근한 즐거움이다. <버텨내고 존재하기>는 2022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한국경쟁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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